매주 흥미진진한 영화들을 쏟아내던 극장가에는 신작이 사라졌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 흑백판의 개봉은 연기됐다. 공공 미술관과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평소 즐겨 들르던 직장 근처 박물관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없게 됐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여자 배구는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다가 결국 리그가 중단됐다. 텔레비전 중계로 본 마지막 경기에서는 따라부르는 이 없는 응원가만이 텅 빈 체육관을 울렸다. 

한국 천주교는 전국 1750여개 성당의 주일미사를 온라인, 개별 미사로 봉헌하고 있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중국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 이래 236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만 해도 광화문과 서초동에 수십만명이 수시로 모이던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낯선 권고안이 들린다. 직장 동료에게 퇴근 후 생맥주 한잔 하자고 제안하던 시절이 전생인 듯 아득하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왔지만, 인간은 아직도 코로나19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애초 우려보다는 낮아 보인다. 확진자의 80%는 증상이 없거나 있더라도 경미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일은 아니다. 통계 숫자에 몰입하면 종종 개인의 존재를 잊는다. 0.1%의 치명률이라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환자와 그 가족에겐 100%다. 

인간이 지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로 들어섰다는 뜻에서 현세를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관점으로 볼 때, 인간을 바이러스보다 우위에 두어야 할 이유는 없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섬뜩한 말을 남겼다. 자연에는 인간적인 어짊이 없다는 뜻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악의를 품지 않는다. 그저 제사 뒤에 태우는 짚강아지처럼 소중히 여기지 않을 뿐이다. 거대한 맷돌 같은 자연의 섭리 아래 인간의 소소한 일상은 쉽게 갈려나간다.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며 병상이 부족해지자 3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노변동 대구스타디움에 경주 등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할 경증 확진자들을 태운 119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있다. 대구 시내에 흩어져 있던 경증 확진자 약 300여명은 이날 119 앰뷸런스를 타고 대구스타디움에 집결 후 마련된 버스를 타고 지정된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했다. 연합뉴스


불안과 공포의 와중에서도 

코로나19를 대하는 한국 사회는 

조금 느리고 다소 불편하지만 

결정적 장애 없이 작동 중이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봄은 온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들은 극단적 환경주의자 행세를 하곤 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발렌타인, <어벤져스>의 타노스는 인구 폭발에 따른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 그로 인한 공멸을 막으려 한다. 그들은 선제적·강제적으로 인구를 줄이는 무도한 계획을 세운다. 발렌타인은 부유층과 권력자를 남기려 하지만, 타노스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무작위로 절반을 죽이려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의 창궐과 함께 중국의 탄소 배출량이 극적으로 감소했고, 대기질도 갑자기 좋아졌다고 한다.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은 시간 여행을 다룬 SF다. 2054년의 역사학도 키브린은 중세 생활상을 관찰하기 위해 14세기 영국 시골마을로 향한다. 키브린은 1320년을 목표로 했으나, 기계 조작 실수 때문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1348년에 도착한다. 키브린에겐 항체가 있었지만 중세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둠즈데이 북>은 한국 번역본으로 800쪽 이상의 장편이다. 작가가 작품 전반부에 공들여 만들어두었던 캐릭터들이 후반부에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정붙이기 힘든 인간도 죽지만, 무고한 소녀도 죽는다. 비록 라틴어 기도문을 정확히 읽지는 못하지만 누구보다 신실한 사제 로슈는 극도로 쇠약해진 상황에서도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백 성사를 듣고 정해진 시간에 만종을 울린다. 인사불성의 키브린은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종을 울린 뒤 21세기로 돌아온다.  

대구·경북의 최전선에서도 의료진의 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언제 물러날지, 어떻게 치료할지 모르는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날마다 땀을 흘린다. 불안과 공포의 와중에서도 한국 사회는 조금 느리고 불편하지만 결정적인 장애는 없이 작동하고 있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지언정, 배달노동자는 주문한 물건을 어김없이 집 앞으로 가져다준다. 마트에 가도 생필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은 정해진 시간에 중단 없이 운행된다. 

지난 주말 서울 낮 기온이 13도까지 올랐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조심스레 집 주변 한강으로 나가보았다. 꽤나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낀 채 나와 있었다. 연인은 벤치에 앉아 대화하고, 중년 남성은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청년들은 자전거를 타고 질주했다. 뜻하지 않은 자연 재난 속에서도 인간은 묵묵히 살아간다. 인간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봄은 온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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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중원 기수 진상규명대책위 관계자들이 2일 서울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진행한 ‘문중원 열사 추모공간 폭력 침탈 규탄 기자회견’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지난달 27일 한국마사회 비리를 유서에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기수의 추모공간이 강제로 철거됐다.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유족과 시민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 빈소와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매일 저녁 추모 문화제를 열어 마사회, 그리고 마사회를 관리·감독하는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고인이 사망한 지 91일, 고인의 시신이 정부서울청사 앞에 놓여진 지 63일 만에 정부가 답을 했다. 유족과 시민들이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다. 700여 명에 이르는 용역과 경찰들을 동원한 추모공간의 강제철거가 그 답이었다. 추모공간을 지키던 시민들은 용역에게 하나둘씩 끌려나갔다. 여성의 웃옷과 바지가 벗겨질 정도였고, 목사님은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을 일으켰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님을 비롯한 여러 시민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천막 안에 있던 고인의 부인이 제발 멈추라고 호소했지만, 용역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비닐을 찢고 기둥을 부수었다. 무너져 내린 천막 기둥에 유족들이 깔렸고, 기둥을 받치던 시민들은 용역에게 끌려나갔다.    

현장에 있던 수 백명의 경찰은 용역들의 폭력을 보고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용역이 끌고 나와 내팽개친 시민들을 연행하기에 바빴다. 천막은 강제로 철거되고, 추모공간은 폐허가 되었다. 고인의 부인은 남편의 시신이 실린 운구차를 붙잡고 통곡했고, 기자회견 도중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법 이전에 사람이 있고, 인권과 인륜이 있다. 무슨 법을 들이밀든, 무슨 이유를 내세우든, 남편이나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눈물로 호소하는 유족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공권력은 정의롭게, 필요 최소한도로 행사되어야 한다. 지난달 27일 광화문의 공권력은 마사회 적폐를 감추기 위해 정의롭지 않게 행사되었다. 유족과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과도하게 남용되었다. 촛불정부라 자임하던 정부의 그 알량한 가면은 벗겨졌고, 용역에 의해 무너져 내린 천막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인권도 무너져 내렸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추모공간에 머물던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매일 저녁 진행되는 추모 문화제도 수십 명 안팎의 소규모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십 명이 모이는 추모공간을 700여 명의 경찰과 용역들을 동원해 철거하는 것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한다는 것인가. 말이면 다 말이 아니고, 이번 추모공간의 강제철거가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의 위험을 높였을 뿐이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밝힌 일성이다. 눈물을 닦아주는 것까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이 정부는 너무 멀리 갔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로 인해 더 이상 유족이 눈물을 흘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추모공간 강제철거, 폭력사태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여 마사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그것이 이 정부가 약속한 나라다운 나라,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한 정부의 최소한의 책무다.

<신인수 | 민주노총 법률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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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강 변에는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임은 취소되고 체육관, 식당, 극장, 쇼핑센터, 찜질방에 가기는 겁나고 집 안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나온 것이리라. 평소라면 모이기 힘든 조합의 가족 구성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한강을 따라 함께 걷고 있는 풍경은 낯설었다. 식료품 가게에 가자 매대가 텅 비어 있었다. 가족들이 계속 집에만 있어서 밥해 먹기 바쁘다고 앞에서 계산하시던 분이 한탄했다. 재택근무 중인 친구는 고양이랑 계속 같이 있어서 좋지만, 출근해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한탄했다. 프리랜서 친구 부부는 어린이집 휴원으로 작업을 중단하고 교대로 아이와 놀아주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이 많아 아파트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가족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며 일종의 공동육아를 했다고 한다. 코로나19만 걷어내면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재택근무, 공동육아,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 이뤄진 것 같다.

나는 코로나19가 두렵다. 병에 걸려 아픈 것에 대한 두려움이 1%라면,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 동선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99%다. 가까운 곳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로 비난받는 게 두렵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강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두렵다. 나의 두려움의 이유는 확진자에겐 고통의 이유이리라.

원하진 않았지만, 또 하나의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족들이 계속 함께 있었던 즐겁고 긴 봄방학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집단 기억이라는 것은 강력한 힘이 있다. 그것이 차별과 편 가르기보다는 함께 불안을 나눴던 기억, 서로를 걱정했던 기억, 마스크를 쓰고 함께 산책했던 기억 같은 것이면 좋겠다. 야외에선 마스크를 쓸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굳이 마스크를 쓰고 나온 그 마음들로 기억되면 좋겠다.

<정은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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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정치를 싸움으로 본다. 선한 자신들은 소수인 데 비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 악 그 자체인 미래통합당 등등,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은 극도로 좋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거악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명.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안을 내 편과 네 편 간 치열한 전투로 승화시킨다.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금기 사항. 현 정부가 유난히 사과에 인색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광우병 시위 때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억지로 눈물을 짜내면서까지 사과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마스크 관련 사과를 제외하면, 국민에게 사과한 기억이 거의 없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진보의 몰락을 가져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 사과는커녕 “마음의 빚” 운운하며 오히려 상처를 키웠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선 아예 언급 자체를 안 하는 중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들이 무더기로 기소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사과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문제는 대통령이 코로나19가 번진 현 상황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감염학회와 의사협회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정부에 요청한 것은 한 달도 더 됐지만, 정부는 여기에 관한 논의를 거부했다. 의사협회는 박사모였던 최대집이 이끄는 조직,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경제를 망가뜨리고 시진핑 방한을 무산시킴으로써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니까.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칭찬에만 매달렸다. 칭찬을 통한 사기진작은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 지난달 5일 성동구청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이 박원순 시장에게 “메르스 때에 비하면 어떤가?”라고 물은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최악의 대처로 기억되는 메르스를 굳이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걸 보면, 대통령은 코로나19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을 이겨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 시장은 “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기분이 좋아진 대통령은 2월13일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입니다”라는 발언을 하는데, 이는 국가 지도자가 섣불리 장담하면 안된다는 반면교사로 두고두고 회자할 말이 됐다.

3월3일 현재 우리나라는 50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를 거느린 세계 2위의 코로나19 감염 대국이며, 현재 81개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입국절차를 강화한 상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사과할 만도 하지만, 현 정부는 그러는 대신 신천지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인이 아닌, 중국에서 온 한국인이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한국에 온 중국인 중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 말의 근거지만, 다음 통계는 박 장관의 말을 배척한다. “2월12일부터 23일까지만 따져봐도 이 기간에 입국한 중국인 5만9000여명 가운데 87명만 검사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온 중국인이 쉽사리 병원에 가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 중 누군가가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신천지의 폐쇄적 태도는 분명 문제지만, 천안 댄스교습소에서 다량의 감염자가 나온 데서 보듯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면 규모는 다를지언정 신천지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초창기만 해도 그들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환자 수가 적다면서 대통령을 찬양했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은 대통령을 욕해야 마땅하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나라가 검사를 많이 해서 확진자가 많은 것”이라며 여전히 대통령을 칭송한다. 이유가 어떻든 확진자가 많은 게 자랑은 아닐 텐데 말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사망률이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보다 낮다면서 정부를 칭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통계를 내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어떻게든 칭찬할 이유를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은 정말이지 눈물겹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대통령님, 제발 코로나와 싸우는 데 전념해 주십시오. 박근혜보다 낫다는 칭찬은 지금 열성 지지지들한테가 아니라, 사태가 수습된 뒤 더 많은 국민한테 들어도 충분합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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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1일 일본 NHK 뉴스에 의하면, 전날 일본 경제산업성 소위원회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배출되어 누적되고 있는 삼중수소 등을 포함한 오염수 처분방법으로 해양방출을 추천하는 내용의 정식 보고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 이에 근거하여 경제산업성은 지역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해양방출 시기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에 대하여 후쿠시마현과 이웃한 이바라키현 지사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일본 어업계도 어업 피해 때문에 반대를 표명하고 있으며, 일본 유권자 절반 이상도 반대한다는 것이 최근 여론조사 결과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14일 시민환경단체들로 구성된 탈핵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에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현재 사고 원전에서는 삼중수소와 스트론튬 등 방사성물질을 함유한 오염수가 매일 약 170t씩 발생하여 2019년 10월31일 기준 약 117만t이 저장되어 있다. 함유된 삼중수소 방사능은 약 856조베크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내외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환경 범죄에 해당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을 꾀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그보다 더한 고방사능의 상시적 해양 및 대기 방출을 계획하고 있다. 2022년 본격 가동 예정인 일본 북단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위치한 대규모 재처리공장이 그것이다. 재처리공장이란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산에 녹여 화학적으로 처리하면서 핵연료 사용 목적으로(또는 핵무기 제조 목적으로) 내용물 중 1%에 해당하는 플루토늄을 분리 활용하고 나머지는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리하여 저장한다.

재처리 과정 중 사용후핵연료 내 방사성물질들이 방출되는데, 삼중수소도 이 과정에서 방출된다. 롯카쇼무라 공장이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다른 방사성물질들에 더해 연간 약 9700조㏃의 삼중수소가 해양으로 방출된다. 이는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 내 삼중수소 총량의 10배 이상이다. 게다가 대기로도 다른 방사성물질들과 함께 후쿠시마 삼중수소 총량만큼의 삼중수소를 매년 방출한다. 2022년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이 가동하게 되면, 환경 차원에서 볼 때 재앙에 가까운 대량의 방사능을 롯카쇼무라 주변 해양과 대기로 상시 방출하게 되는 것이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가동 여부는 일본의 핵무기 확산 가능성 또는 테러그룹들의 플루토늄 탈취 가능성 때문에 그동안 국제사회의 우려거리였다.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8t의 플루토늄을 분리하는데,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으로 핵무기 1000기의 분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환경적으로도 재앙 수준의 방사능을 상시적으로 해양과 대기로 방출하는 방사성폐기물 방출 공장인 것이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이 중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강정민 |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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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연신내 상점가 일대 골목에서 육군 56사단 군 장병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다. 다들 나를 원망하지만 당치 않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을 숙주 삼아 생존하려고 할 뿐이다. 내가 발이 있나 손이 있나. 인간이 아니면 단 1㎜도 이동할 수 없다. 자기들이 옮겨놓고 내 탓을 하니 어처구니없다. 나더러 인간의 약점과 빈틈을 파고든다고 한다. 그건 인간의 언어일 뿐이다. 생명체가 보다 살기 좋은 곳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한국이 참 좋다. 사실 중국은 더 좋았다. 인구가 많은 데다, 여론통제와 진실 은폐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나아가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리원량 같은 의사를 알아서 물리쳐주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다. 도쿄 올림픽 때문인지 방역에 소홀한 일본, 검사 한 번에 100만원씩이나 하는 미국도 나쁘지 않다. 애초 한국은 내가 서식하기에 까다로운 곳이다. 진단이 빠르고 보건 인프라와 행정력이 우수하다. 원래대로라면 뚫고 들어갈 구멍이 없다. 하지만 한 달여간 공격하다보니 허점이 드러났다. 신천지가 주요 통로였다. 초밀접 예배문화와 비밀주의로 신도끼리 서로 감염시키고, 이어 지역사회 전체로 퍼뜨려주니 내게는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보수 야당·언론의 공로 또한 인상적이다. 전방위적 정부 비판으로 여론을 가르고 방역 역량을 약화시켰으니까. 특히 ‘골든 타임’에 비난의 화살을 중국인에게 돌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물론 나는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오류와 무능에도 힘입은 바 크다.

나는 인간이 협력하고 연대하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갈라지면 강해진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 여야로 분열돼 있다. 이들은 협력하고 연대하는 법이 없다. 뭉치면 뭐든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 탓에 기꺼이 함께 망하는 길을 간다. 시민 역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아산·진천에서 하나가 된 듯하더니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달라졌다. 각자도생 상황에서는 시민은 서로를 그저 바이러스 전파 매개체로만 보게 된다. 이들이 각성해서 시련을 함께 겪는 공동체 구성원, 동료 시민이라는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기-승-전 중국 때리기’의 근거가 부족한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 내 중국 국적 감염자는 10명이 채 안되고, 이들이 직접 감염시킨 사례는 2명뿐이다. 생각해보자. 한국 방문 중국인이 확산 근원이라면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에서 환자가 가장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대구·경북에서 환자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방문 중국인이 주요 감염원일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이 지역에 신천지의 성지가 있고 가장 번성한 곳이란 사실을 외면하면 안된다. 신천지 교인인 31번 확진자 발견 이후 불과 10여일 만에 환자가 수십명에서 5000명 이상으로 솟구친 사실이 주요 전파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해준다.

보수세력은 나를 막는 것보다 정부가 잘하는 게 있을까봐 걱정하는 것 같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신천지 책임론에 “특정 교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왔다. 최근에야 신천지 측에 “허위보고나 비협조는 절대 안된다”고 말을 바꿨지만 진심은 모르겠다. 이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다.

과거 나는 한국에서 여러번 재미를 봤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신종플루로 70만명 넘게 감염되고 270명이 숨졌다. 박근혜 정부 때도 ‘그 유명한’ 메르스로 또 한번 한국을 혼내줬다. 그런데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는 단 한 명의 환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보수정권 친화적이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그들은 국민의 생명·안전에 관한 분야도 시장에 맡긴다. 시장은 생명·안전보다 돈을 중시한다. 손해가 난다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게 대표 사례다. 진보정권은 생명·안전 분야만큼은 공공성을 높이는 편이다. 자연히 방역망도 촘촘해진다.

나는 신천지를 응원한다. 그 종교 교주는 코로나 사태가 “신천지의 부흥을 저지하기 위한 마귀의 짓”이라고 했다. ‘최대 도우미’인 그가 최근 방역에 협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 못내 실망스럽다. 본심이 아니기를 빈다. 나는 또한 황교안 대표를 지지한다. 그가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 덕에 한국에서 잘 지내고, 진화할 수 있었다. 운명공동체이자 동지적 유대를 강하게 느낀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부정할 테지만.

<조호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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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산업 종사자가 아니라면 항공기의 부품 중 램 에어 터빈(ram air turbine·사진)을 보거나 그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램 에어 터빈은 항공기의 동력계통이 작동하지 않는 비상상황에서만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조종과 통신, 항법, 조명, 공기조화를 위해 전력을 필요로 한다. 항공기에서 쓰는 전력은 메인 엔진과 동체 끝에 보조동력장치(auxiliary power unit)에서 나온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기계는 언제든 고장이 나서 작동을 멈출 수 있다. 램 에어 터빈은 그때 최소한의 전력을 만들어내는 최후의 장치이다. 아주 간단한 장치인데, 평소에는 동체 속에 숨어 있다가 비상시가 되면 작은 프로펠러가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항공기의 엔진이 꺼져도 한동안은 활강을 하기 때문에 램 에어 터빈은 그때 나오는 맞바람을 이용하여 프로펠러를 돌리고, 그 회전은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램 에어라는 말은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라는 뜻이다. 이때 만드는 전기는 대단한 양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을 도울 뿐이다. 즉 조종과 항법, 통신을 위한 전기를 만들어 낸다. 보통 여객기의 경우는 50~70㎾를 낼 뿐이다. 그 정도면 업소용 대형 에어컨 석 대쯤 켤 수 있는 전력이다. 참고로 점보제트기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대전력은 325㎾ 정도 된다.

램 에어 터빈을 크게 만들어서 평소와 같은 정상적인 전력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램 에어 터빈의 프로펠러를 너무 크게 만들면 공기의 저항이 커지고 그러면 항공기의 활강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램 에어 터빈은 작기도 하고 동체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그 작동을 승객이 볼 일은 없지만 항공기를 살리는 최후의 수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주 단순하게 생긴 프로펠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 쓸 기계장치는 더 이상 고장 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해야 하기 때문이다. 램 에어 터빈을 볼 일이 없는 비행이 행복한 비행이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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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추경 편성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갑작스러운 코로나19의 침입은 마치 전쟁처럼 한국 사회를 불안감에 빠뜨리고 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서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에 대해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에도 바이러스 대응 과정에서 예외 없이 나타난 정치화 현상은 어려운 한국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런데 백신도 없는 역병이 발생했을 때의 불안과 걱정 및 혼란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아직 감염률이 낮은 편인데도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고, 특히 마스크는 대형 마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항상 그러했듯이 상호 비방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익숙한 한국 사회는 이번 위기도 그럭저럭 나름대로 극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근본적 문제는 이번 사태의 극복과정에서도 여전히 한국의 고질병인 관료체제의 붕괴가 엿보인다는 사실이다. 가깝게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공영라디오(NPR) 방송 앵커가 ‘한국에선 왜 대형사고 발생 시 미국의 교통안전국 같은 곳에서 나가 객관적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해 내지 못하고 정치적 싸움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일이 기억난다. 불행히도 이번 코로나19 대처 방식에도 이전처럼 전문관료의 역할이 위축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관료의 전문성이 정치적 고려로 인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행정체제는 서구의 학계에선 임용고시를 통해 확립된 근대 관료조직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지난 50여년간 한국적 상황의 특성을 외면한 이야기이다. 한국 관료는 서구 이론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산업화를 거치면서 관료적 특성, 즉 법치주의, 전문성, 실적에 근거한 인사 등이 크게 훼손되었다. 국가주도형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실적과 지역주의를 교묘히 결합해 능력 있고 충성심 있는 인력을 확충했다. 이 결과 한국 행정 조직에는 지역주의가 만연하였고 정경유착을 통해 관료 내부가 형해화되었다. 동시에 경제 정책 집행에 속도가 나지 않을 경우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을 무분별하게 동원하여 법질서나 규정은 쉽게 무시되었다.

이렇게 무너진 한국관료제도는 민주화 이후 더욱 황폐화되었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하에서 관료들의 신상은 더욱 불안하게 되었고 이 속에서 관료들은 생존을 위해 정권과 쉽게 타협해왔다. 이 결과 한국관료제는 내부적 결속이 파괴되어 공동화되었다. 이렇게 공동화되고 정치화된 한국의 행정조직은 개인적으로 능력있는 관료가 있음에도 관료의 소신있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관료체제가 상실된 조직으로 전락하였다.

방역 사업은 그 성격상 과학에 기초한 전문성과 사회 분석이 교차하여 정치의 자의적 개입 가능성이 높다. 이번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관료의 전문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에게 맡길 일에 대해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정당인이나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희망사항을 남발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처음부터 전세 파악에 실패한 것도 정치적 고려와 무관하지 않다. 사태 발생 시작부터 눈에 띄는 것은 바이러스 성격 자체에 대한 파악이다.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이번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감염률과 치사율이 마치 이미 결정된 것처럼 가정하고 치사율이 낮다고 판단했다. 과연 이런 판단에 전문가의 식견이 반영되었는지 의문이다. 감염원 차단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끈질긴 권고에 대한 고집스러운 외면은 정치인들이 전문성을 외면한 또 다른 사례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뉴욕타임스도 지적했듯이 여당 정치권의 사태 수습에 대한 희망적 평가였다. 

한국은 이미 여러 차례 유행병을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매번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불필요한 잡음과 혼란은 정치의 무분별한 전문성에 대한 위협과 간섭에서 기인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고 새로운 법과 제도를 형식적으로 정비한다 하더라도 전문성에 입각한 관료체제에 대한 부활과 이에 대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개입이 지양되지 않는 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이 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의 불필요한 개입 없이 깔끔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관료제의 재정비와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성의 회복이 시급하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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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인 나는 매해 두세 번가량 고해성사를 한다. 고해성사란 죄를 성찰·통회한 후 사제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는 가톨릭 고유의 전례이다. 이를 위해 부활절을 앞두고 명동성당에 찾아갔던 어느 봄날 오후였다.

토요일이라 고해소에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여러 신부님들이 한 시간 간격으로 배턴터치하듯 일하고 계셨는데, 오후 2시에서 3시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순환이 느려지고 대기자가 늘었다. 수군거리는 인파 안에서는 “어떤 신자가 이렇게 매너 없이 길게 고해하나!” 하는 투덜거림과 “신부님이 너무 정석대로 하시는 거 아냐?” 하는 불평이 들려왔다. 그렇게 30여분을 기다리다 마침내 차례가 돌아왔다.

고해소 안에 들어가자 벽면의 창이 스르륵 열리며 어둠 저편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썽부와 썽자와 썽령의 이륌으로.” 외국인 신부님이신 듯했다. “마지막으로 고해한 건 6개월 전입니다.” 정해진 고해순서에 따라 내가 말문을 떼자, 신부님은 알아듣기 어려우니 더 크게 말하라 하셨다. 벽면에 바짝 다가섰다.

“제 일방적인 선망으로 인해….”

“응? 썬뫙? 그커 머?” 

신부님이 물으셨다. 순간 “이 맥락에서는 adoration(흠모, 경배)의 의미입니다”라고 설명하고픈 충동이 일었으나 “지쿰 영어 할 줄 안다코 잘놘 체 합니콰?” 꾸짖으실 것 같아 참았다.

“계쏙해요.”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되었지만, 고해를 듣는 것은 벽 너머의 사제가 아닌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라고 교리시간에 배웠기에 준비해온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 듣고서 신부님이 물으셨다. “티뷔나 콤푸따, 스맛폰 앞에서 마눈 시간 보냅니콰?” 그건 방금 말한 내용과 관계없는데 왜 물어보는지 의아해하며, 컴퓨터는 종종 사용한다고 답했다.

“스맛폰도?”

“예? 예.”

“그 시간 기토해야 해. 기토 마뉘 합니콰?”

“예? 예.”

“음롼한 영상은 봅니콰?”

“예… 예?”

아아, 우리들의 신부님. 선망이란 단어를 욕망으로 잘못 이해하셨던 것일까. 웃음이 터져 나와 말을 못 잇던 내게 신부님이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재차 물으셨다. “…봅니콰?”

그날 저녁, 친구를 만나 이야기했더니 단번에 “외국에서 오신 그 할아버지 신부님?” 했다. 언젠가 자신이 고해성사 도중 울먹거렸더니 “울지 말코 또박또박!” 하며 야단치셨다는 거다. 그 상황이 희극적이어서 울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가며 문장화했던 무거운 상념이 일순간 풍선처럼 펑 터지면서 마음이 둥실 가벼워졌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잘못’을 고백한 게 아니었다. 죄를 성찰하고 통회하는 대신, 감춰둔 고민들을 난해한 어휘와 수사로 치장한 후 종교의례의 외피를 빌려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듯하다. 하늘에 계신 분 역시 속셈을 모르셨을 리 없다. 그건 올바른 고해 방식이 결코 아니었지만, 떠밀어내는 대신 그분은 어르고 달래며 ‘내가 좀 웃게 해줄까?’ 윙크했던 건 아닐까. 신이 선물한 웃음 한 조각.

바로 어젯밤까지 난 코로나19 창궐로 촉발된 사회적 혐오와 배제에 관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 보름간 읽은 활자의 팔할 이상이 바이러스에 관한 것임을 인지했다. 전문가들의 수많은 지식과 비평과 전망이 지면 위로 흘러넘치는 중에 나의 서툰 글자를 거기 더하는 대신 ‘제가 좀 재밌게 해드릴까요?’ 해보면 어떨지 싶었다. 혹자는 위중한 시국에 무슨 시답잖은 소리냐며 혀를 끌끌 찰 테고, 대다수는 읽지 않고 넘길 것이다. 괜찮다. 무거운 상념에 잠긴 당신이, 신문 귀퉁이의 “음롼한 영상은 봅니콰”에 어쩌다 시선이 닿은 당신이, 엄숙한 고해소에서 부지불식간에 웃음 터졌던 나처럼 아주 잠깐, 한번 웃고 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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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 개학 추가연기를 발표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개학이 2주간 더 늦춰지면서 많은 가정에서 자녀돌봄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는 가족돌봄 휴가 사용을 적극 권고하고,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긴급돌봄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아동양육쿠폰 지원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도 결의했다. 하지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돌봄 비상’을 해소할 전향적인 해법이 시급하다. 

전국 초등학교에서 지난 2일부터 운영되는 긴급돌봄 서비스 신청률은 매우 낮다. 경기지역에선 전체 초등학생의 1.6%, 유치원생의 14.5%만 신청했는데, 그마저 신청 아동 절반 정도가 오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감염을 우려하는 데다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맞벌이 직장인의 자녀돌봄 실태를 조사한 결과, 4명 중 3명은 자녀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양가 부모 등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응답이 36.6%로 가장 많았다. 가족돌봄휴가 사용(7.3%)과 긴급돌봄 서비스 활용(7.0%)은 극히 일부였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연간 최대 10일의 돌봄휴가는 무급이어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쓰지 못하고, 개학 연기가 길어지면서 기간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책이 저연령 자녀에 집중돼 있어 도움을 받는 계층이 크게 제한되는 것도 문제이다. 정부는 8세 이하 아동 돌봄휴가는 최대 50만원까지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최근 추경예산을 통해 결정한 10만원 상당의 양육쿠폰지원도 아동수당대상자인 만 7세 미만에게만 해당된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2주간은 일단 멈추자’는 구호 아래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20일간의 돌봄 비상상황’에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개학 연기가 장기화되면서 돌봄휴가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적극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필요한 경우 대체 인력지원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생계가 어려워 무급 돌봄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구에는 경제적인 지원책을, 장애인자녀돌봄 등에는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지원이 강구되어야 한다. 필요가 있는 곳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찾아 적극적인 추경예산이 편성돼야 한다. 물론 돌봄휴가에 따른 기업의 고충과 과감한 재정 투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돌봄 비상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 전체의 긴급 동의와 과감한 행동, 지원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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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역촌역 인근 도로에서 4일 수도방위사령부 제독차량이 코로나19 관련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천지교 교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증상 조사와 진단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3일 신천지교로부터 명단을 넘겨받은 전체 교인(19만여명)에 대한 증상조사를 사실상 마쳤다. 유증상자(1만3000여명)의 코로나19 진단 검사는 절반 정도 진행했다. 이 결과 대구지역 교인의 경우 코로나19 양성 판정률이 62%(2685명)에 달했다. 신천지가 대구지역 집단감염의 주요 통로임이 입증됐다. 진단 검사가 끝나지 않은 만큼 확진자 증가세가 우려된다. 

코로나19 확진자의 88%가 대구·경북에 몰려 있고, 상당수는 신천지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검역과 방역을 신천지에만 집중해서도 안될 상황이다. 신천지 교인을 넘어서는 확진자 증가 추이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이외 지역에서도 하루 수십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와 달리 최근의 감염양상은 집단감염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를 막지 못하면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산될 수 있다. 

충남에서는 이날 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전체 환자가 81명으로 늘었다. 천안의 40대 줌바댄스 강사와 관련된 집단감염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수원의 생명샘교회는 지난달 23일 예배에 참석한 교인 등 6명이 확진판정을 받자 자진폐쇄했다. 김천교도소에서는 재소자 3명이, 서울 성동구의 주상복합건물에서는 관리사무소 직원 3명이 각각 확진판정을 받았다. 좁은 공간에서 집단생활하는 중증 장애인 시설은 감염병에 특히 취약하다. 지난달 경북 칠곡 밀알사랑의집에서 확진자 23명이 발생한 데 이어 대구 성보재활원에서는 이달 들어 장애인, 직원 등 9명이 한꺼번에 확진판정을 받았다. 대구·경북의 대규모 감염은 대구 신천지교회·청도대남병원 등 집단시설이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집단감염은 또 하나의 ‘신천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코로나19의 집단감염은 아직은 소규모이고 산발적이다. 그러나 신천지와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힘들고 전파 경로가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집단감염을 차단하지 못하면 지역사회로 확산돼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 각 시설에서는 감염병 예방 수칙을 제정·준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집단시설에 대한 검역 및 방역과 함께 지자체와 협의해 격리시설·지원인력을 미리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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