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 정기인사를 단행하면서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법관 7명을 재판 업무에 복귀시켰다. 다른 재판에 개입해 재판 독립을 훼손한 혐의를 받은 판사들에게 시민들이 재판을 받고 싶어 할까. 7명과 다른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이 어떤 업무를 맡는지 궁금해졌다. 지난 4일 취재 대상 법관들이 소속된 5개 법원에 사무분담표(법관 배치표)를 요청했다. 사무분담이란 판사들을 형사·민사·영장전담 등 분야별 재판부에 배치하는 일이다.

“제공이 어렵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5곳 중 대구지법·수원지법 등은 법관 배치표를 끝내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전례가 없다” “민감한 정보가 들었다” 같은 여러 이유를 댔다. 법관 배치표는 대단한 정보가 아니다. 재판부명과 판사 직위, 이름만 적는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공적 기관 홈페이지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형식의 표다. 예를 들어 ‘형사1부 홍길동 판사’가 다다.

법원의 법관 배치표 공개 여부는 이중적이다. 대법원이 관리하는 ‘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에서 법관 배치표를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법원 공보’ 4·10월호에 싣는다. 모든 시민에게 공개하는 자료다. 각급 법원 홈페이지는 재판부명만 공개한다. 판사의 소속 재판부를 알 수 없다. 

수사 보안을 이유로 법원보다 폐쇄적인 검찰은 어떨까. 각급 검찰 홈페이지에 차장검사·부장검사·평검사 이름과 사무실 호수가 적힌 검사실 배치표를 공개한다.

어떤 판사가 어떤 재판 업무를 맡는지에 관한 사항은 시민의 알권리다. “특정 법관(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사무분담을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대구지법)는 말에선 법원이 시민 알권리보다 ‘법원 가족’의 기본 정보에 더 민감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법원은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이 어떤 재판 업무를 맡았는지도 소상히 알려야 할 책무가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는 ‘비공개 대상 정보’를 다룬다. 공공기관은 국가안전보장, 국민 생명·신체 보호, 범죄예방 등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공개 대상 정보’의 예외가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직위’다.

‘김명수 대법원’은 재판 독립, 공정·투명한 사무분담 같은 사법개혁을 외친다. 그 과제를 추진·완수하려고 한다면, ‘형사1부 홍길동 판사’ 공개 문제부터 다시 들여다보길 바란다.

<유설희 | 사회부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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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초·중·고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일제히 개학 연기에 들어간 가운데 학원과 PC방·노래방에서의 학생 감염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부산의 한 어학원에서는 5일 현재 고교 수강생 2명을 비롯해 학원 원장·강사, 학부모 등 5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부산 동래구에 사는 16세 남성은 동네 PC방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확진자가 됐다. 경남 창녕의 한 동전노래방에서는 여고생 등 6명이 집단감염됐다. 방역 사각지대가 된 학원과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집단감염 차단 대책이 시급해졌다. 

정부는 지난 2일 유치원 및 초·중·고의 개학 3주 연기 방침을 발표하면서 학원의 휴원을 권고했다. 또 학부모들에게는 자녀의 학원 등원을 중단하고 PC방 등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삼가도록 지도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는 권고여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는 학원의 80~90%가 휴원에 들어갔지만, 다른 곳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서울의 학원과 교습소의 휴원율은 32.2%(지난 4일 기준)에 불과하다. 특히 학원이 밀집한 강남과 서초, 양천구는 더 낮다. 부산·대전 등지의 학원들은 절반 정도만 휴원 중이다. 학원 내 집단감염이 현실화된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에 오불관언하는 학원들의 행태는 위험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학원들이 강의를 계속하는 것은 휴원할 경우 임대료·강사료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도 학원 수업을 부추기고 있다. 학원들이 휴원 시 감수해야 하는 경제난이나 학습 중단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고민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학원의 이익이나 자녀의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이다. 아직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소규모 집단감염이 계속되는 속에서 감염병 방역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조치다. 학원들이 집단감염처로 드러난다면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전 학교가 휴업한 상태에서 학생을 상대로 하는 학원, 노래방·PC방 등의 동참이 없으면 감염병 차단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정부가 학원이나 노래방 등의 영업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멈춰야 할 때다. 정부는 방역비 지원, 저금리 대출 등을 통해서라도 이들 시설의 휴업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 학원과 노래방 등은 최소한 개학연기 기간만이라도 휴원과 휴업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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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5일 마스크 구매를 주당 1인2장으로 제한하고 사람들의 출생연도에 따라 월~금요일로 구매 날짜를 분리하는 5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마스크와 핵심 원자재인 필터 부직포의 수출을 금지하고, 판매 최고가도 정부가 지시한다. 마스크가 사실상 ‘배급제’ 물품이 된 것이다. 정부의 고강도 조치는 지난달 26일 하루 생산된 마스크의 50%를 ‘공적물량’으로 유통시킨 뒤 9일 만에 나왔다. 그 수준으로는 수급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고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려고 계속 장사진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가 사나워진 ‘마스크 민심’ 앞에 고개를 숙였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이번 수급 대책은 정부가 빼들 수 있는 수단과 자원을 거의 최대치까지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왜 더 일찍 이렇게 대응하지 못했는지 자성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부터 다지길 바란다. 

새 대책에는 마스크를 더 많이, 그리고 공평하게 분배하겠다는 의지가 배어있다. 하루 생산량을 현재 1000만장에서 이달 내 1400만장으로 확대하고, 조달청이 확보해 약국·우체국·농협에서 살 수 있는 공적 물량도 50%(500만장)에서 80%(1120만장)로 2배 이상 늘린다. 마스크 수출을 금지하고 중국으로부터 수입량이 격감한 필터 부직포는 6월까지 정부가 생산·판매 수량을 보고받고 조정명령도 내리는 ‘긴급수급조정조치’ 품목으로 정했다. 150여개 마스크 업체들과 부직포 생산업체가 휴일 없이 24시간 가동되도록 지원하고, 그 생산품을 국내로만 돌리겠다는 것이다. 주당 1인2장씩, 5부제 구매로 바꾸면 마스크 분배는 시장 통제력이 더 높아진다. 신분증을 보여줘야 살 수 있고 부모·자녀 몫을 대리구매하는 것도 금지된다. 정부가 5000만 인구에 마스크를 무제한 공급할 수 없는 비상시국임을 인정하고, 분배의 공정·투명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둔 셈이다.

정부의 ‘2·5 대책’은 마스크 생산과 소비 모두 전시동원체제를 방불케 한다. 계획대로 된다면 마스크 품귀 사태의 숨통은 틔우겠지만 시민들의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주당 2장 제한은 의료·방역·안전 분야 종사자나 다중접촉자가 아닌 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화하고, 마스크도 2~3일씩 재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민관의 소통과 이해·협력 없이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중복구매와 사재기가 없도록 현장부터 빈틈없이 챙겨야 한다. 그 신뢰의 출발점이 무너지면 마스크 대책은 정착시키기 어렵다. 달라진 것을 체감 못하고, 또 땜질 얘기가 나오면 시민들이 참아낼 수 있을까. 마스크대란은 이번에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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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친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외국에 사는 친구인데 가족 행사가 있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감염이 됐다. 친구가 걱정된다며 보내준 링크에는 차분히 적은 병상일지가 있었다. 평소 건강했는데 가벼운 인후통과 마른기침을 느끼자마자 자가격리를 하고 바로 전화해 검사를 받는 등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게 대응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지의 일부를 칼럼에 쓰고 싶어 연락을 했다. 정중한 사양의 답을 들었다. 감사와 희망이 담긴 글이었고 나 역시 일상의 소중함을 적은 부분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인용하고 싶었는데 거절의 의사가 단호했다. 응원의 메시지도 많았지만 글을 올린 후 온갖 비방을 들었다고 했다. 글을 왜 올렸느냐, 신천지냐, 탄핵에 찬성하느냐, 중국 거쳐 왔느냐… 이런 상황에서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나면 자신과 가족이 받을 2차 가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듣고 보니 단호한 거절이 이해가 갔다. 동시에 화도 났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이듯 병에 걸린 사람을 보면 낫기를 기원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 어디를 거쳤든, 무슨 종교를 믿든, 어디에 살든 당장 아픈 이를 추궁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며 만약 그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되면 감염되는 것이 마땅하기라도 하다는 건가? 공동체의 불행을 함께 이겨낼 궁리보다는 위기를 빌미로 남을 공격하고, 궁지에 몰아 희열을 느끼고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위기 때 본모습이 나온다고 했는데 오히려 신난 듯이 보이는 이들도 있는 건 착각일까.

시계가 진짜니 가짜니, 마스크 공급이 풀리네 마네, 사과를 하라 마라 갑론을박 트래픽의 급증으로 바빠진 뉴스 사이트와는 달리 나를 포함해 많은 이의 삶이 단순해졌다. 퇴근 후 약속해 친구를 만나고, 사람 많은 거리를 걷고, 맛집에 줄을 서고, 장난치며 손을 잡고, 깔깔대며 이야기하다 침이라도 튀면 면박을 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이 새삼스럽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기침을 하자 옆자리 사람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보는 이가 다 무안할 정도였지만 일어서는 사람도 이해가 간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빼꼼하니 중동 어느 나라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려고 보니 품절인 항목이 유난히 많다. 음울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이 됐다. 이런 날이 이렇게 갑자기 닥칠 줄 몰랐다.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이 이토록 쉽게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 와중에 밖에 안 나갔더니 통장에 돈이 쌓였다며 코로나19가 물러가면 매일 세끼 외식을 하겠다고 자영업자들 각오하라는 이가 있지를 않나, 질병관리본부에 자양강장제를 보냈다는 이도 있고, 배송기사를 위해 문고리에 포장도 안 뜯은 마스크를 걸어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비난하고 사재기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료 급식소가 폐쇄되자 도시락을 전달하고, 동네 그룹홈과 쉼터에 익명으로 간편식을 배송하는 이도 있다. 대구에 병상이 부족해 입원을 기다리다 쓰러지는 상황이 늘자 광주에서 경증환자를 이송해 치료를 시작했다.

광주시 발표자료는 무척 비장했는데 마음에 닿는 문구가 있었다. “1980년 5월, 고립되었던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해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경계하고 밀어내기보다 더욱 긴밀한 연대를 통해 국민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이것이 지난 100년간 이어온 3·1 독립운동의 정신이며, 40주년을 맞이하는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이자 “광주다움”이라고 했다. 서울서 나고 자랐지만 ‘광주다움’을 좀 장착해야겠다.

암울한 재난 영화가 따뜻한 휴먼 드라마로 변하는 순간 바이러스는 사그라든다. 영화 보면 다 그렇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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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한 비례당(또는 연합) 창당 논의로 분분하다. 30석이라는 의석수를 맥없이 놓칠 수 없다는 민주당의 현실적 고민은 이해한다. 비례연합을 추진하는 인사들의 충정도 보인다. 하지만 선거구제 개혁을 열망해온 한 시민으로서 그 구상에 동의하기 어렵다. ‘꼼수 위성 정당’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뜻이지만 결과적으로 선거구제 개혁을 퇴색시키기 때문이다. 

비례연합 논의가 나오는 것은 민주당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선거구제 개편 협상 과정에서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간과했다. 선거구제를 개혁하기보다 다른 당과 타협하겠다는 취지가 더 컸던 탓이다. 정의당도 비례제의 당위성만 주장할 뿐 그 필요성을 유권자에게 이해시키는 데 소홀했다.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흔드는 미래한국당 꼼수에 속수무책이었던 선관위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과 민주당-비례연합을 똑같이 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미래한국당 꼼수’는 정치의 불문율을 뛰어넘은 일대 사건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나 통하는 법이다. 정치에는 명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능한 방법이라고 해도 함부로 쓸 수 없다. 여론이라는 견제 장치가 있어 역풍을 맞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한국당 창당은 바로 이 불문율을 깨고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나 박정희의 ‘3선 개헌’처럼 이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을 실행에 옮긴 셈이다. 민주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꼼수의 출현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설마 그런 명분 없는 일을 실행에 옮기랴, 또 시민들이 그런 창당을 허용하랴 싶었던 것이다. 

또 하나 불문율을 깨나가고 있는 것은 보수언론이다. 보수언론은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꼼수를 처음부터 비난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라면 작은 허물조차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도 정작 그 원인을 제공한 미래한국당의 꼼수 창당과 이후 온갖 편법 행태에는 내내 눈을 감아왔다. 그러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서자 “미래한국당을 그렇게 비판하더니 똑같은 일을 벌인다”고 비난하고 있다. 본말전도나 이중잣대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하다. 진영 논리에 갇힌 나머지 야바위짓에도 눈감은 형국이다. 

미래한국당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치세계의 ‘명분 우위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것 같다. 미래한국당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인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이런 우호적인 서식 환경을 이용해 바이러스처럼 창궐해왔다. 민주당을 일부 감염시키는 데까지도 성공했다. 탄핵당한 박근혜가 옥중에서 다시 정치에 나선 것도 이런 꼼수가 먹히는 분위기가 작용했다. 하지만 명분 없는 야바위가 끝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생존하기는 어렵다. 

민주당과 진보 시민단체들이 비례연합으로 몇 석 더 얻으려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비례대표제 내용과 계산법이 워낙 복잡해 비례연합을 한다 해도 몇 석을 얻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렇게 명분도 없을뿐더러 효과도 불투명한 일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만약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 비례당 때문이 아니다. 비례연합은 그들이 비난해온 꼼수와 다르지 않다. 도덕적 우위를 자부하지 못할 민주당이 무슨 염치로 지지를 구할 것인가. 

진실이 무르익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거짓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시민들은 ‘미래한국당=꼼수’라는 진실을 안다. 이런 명분 없는 일에 시민들이 반응하지 않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궁금한 것은 미래한국당에 대한 가짜 지지의 유통기한이 언제까지냐이다. 4년 전 총선 때도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보고 난 뒤에야 ‘콘크리트 친박 지지’의 유통기한이 지났음을 확인했다. 투표일까지 꼭 40일 남았다. 또 다른 대응책을 모색할 시간이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어떤 ‘계획’을 세워놓았을지 모른다. 민주당은 큰 실책을 잔기술로 만회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민주당은 옳은 길로 가야 한다. 우리는 이익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당”이라고 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결국 시민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그 시민들, 촛불 하나 들고 민주주의를 회복해 세계를 놀라게 한 사람들이다. 어떤 때는 미덥고 다른 때는 못 믿을 그런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 지름길이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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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60세 홍콩 여성 차우씨의 반려견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성도일보

‘코로나19와 반려동물.’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 ‘자주 묻는 질문(FAQ)’ 코너에 있는 항목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겼다. 두 기구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같은 특정 감염병이 대유행할 때마다 관련 코너를 만든다. 이번 코너는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반려동물도 코로나19에 걸릴까’라는 우려에 대한 두 기구의 답변이다. 지난달 28일 이전까지만 해도 반려인들은 이 답변을 보면서 불안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홍콩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반려견에서 ‘약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보도로 다시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만약 그 반려견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공식 확인된다면 사람에서 동물로 전파되는 게 아닌가.’

우려가 현실이 됐다. 홍콩 당국은 60세 여성 확진자의 반려견이 ‘낮은 수준의’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4일 밝혔다. 홍콩 대학들과 세계동물보건기구 전문가들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코로나19가 사람에서 동물로 전이된 첫 사례다. 이 반려견이 코로나19 관련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WHO나 홍콩 당국은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걸리거나 인간에게 확산시킬 증거는 없다고 했다. 홍콩에 있는 평생동물보호재단의 셰일라 매클랜드는 “현재까지의 증거로 보면 개가 문손잡이보다 확산시킬 위험은 적다”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도 사스나 메르스처럼 인수공통감염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서 개로의 첫 전이’는 반려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불안과 공포를 키울 수 있다. 근거 없는 불안감에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확진자는 반려견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은 ‘또 하나의 가족’인 반려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CDC 답변을 참조하면 확진자는 반려동물과의 접촉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접촉할 경우는 그 전후에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좋다. 만지거나 안거나, 뽀뽀하거나 핥거나, 음식을 나눠 먹어서는 안된다. 반려동물의 털에 바이러스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국도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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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외가 쪽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잔잔한 미소와 사투리가 섞인 다정한 음성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만 같은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왕래도 소식도 잘 나누질 못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후 안부 전화를 드렸다가 뜻밖의 부고를 접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은 아니셨다. 상주는 코로나19로 더 정신이 없어 장례를 치른 후에라도 연락한다는 것이 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스크를 구하러 나가던 참이라고 했다. 바빠하는 그에게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고선 나 역시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곳의 경황없음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심각해지지 않았다면 안부 인사는 더 늦어졌을지 모른다. 부고도 더 한참 후에나 알게 됐을 것이다. 다정했던 친척분의 부재의 슬픔을 느끼면서 고통의 시간에, 그동안 가려져 있던 고통들이 마치 부조물처럼 더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후 안타까운 사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20여년간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생활하다 상태 악화로 외부 전문의료기관으로 이송되면서 했다는 한 환자의 말이다. “오랜만에 나오니 좋네요. 나아서 돌아올게요.” 그는 나들이 나선 사람처럼 신선한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을 것이고 비록 감염병에 걸린 몸이었지만 잠시나마 강렬한 삶의 생명력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대남병원의 비정상적인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커지면서 그들이 생활해온 열악한 환경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영양과 면역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들은 환자 인식표도 없이, 침상이 없는 다인실 온돌방에서 지냈으며 비좁은 탓에 보행이 적어 근육량도 많지 않았다. 밀폐된 창으로 환기도 쉽지 않아 호흡기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남병원 폐쇄병동과 밀알사랑의집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마치고 성명을 내놓았다. 인권위는 “인권 취약계층인 장애인 등의 피해가 큰 것에 대해 깊은 슬픔과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정신병원 및 장애인 거주시설을 대상으로 방문조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는 희미했던 취약층의 존재와 그들의 고통을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드러나게 하고 있다. 움직임이 불편한 노약자는 정부에서 싸게 공급하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4~5시간 길게 줄을 설 수 없다. 생계에 쫓겨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쇼핑을 할 줄 모르거나 장당 3000~5000원에 이르는 고기능 마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마스크 대란’에서 처음부터 열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고 있지만 당장 생존에 위협을 받는 약자들에겐 ‘사회적 고립’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휴원이 장기화하고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돌봄공백도 비상이 걸렸다. 공기관이나 대기업 종사자들은 돌봄휴가제 등 시스템 보호 아래 놓이지만 영세기업 종사자나 자영업자, 일용직 등은 제도 밖에 있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각 학교에서 배포하는 과제들에서 소외되는 학생은 혹시 없을까. 영화 보기, 음악 듣기를 끝낸 후 감상평을 제출해야 하지만 여건이 안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다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그 대열에서마저도 빠지는 소수자가 된다면 그 어려움과 고통은 더욱 깊을 것이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언젠가는 종식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 개발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겨 놓을 것이다. 폐쇄병동의 환자나 복지시설에 격리돼 있는 장애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다 같이 지켜봐야 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안타까운 희생들을 불러온 코로나19가 돋을새김한 우리 사회 ‘고통의 부조(浮彫)’들을 일상의 회복 아래 다시 매끈하게 잠재울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 정세랑이 어느 소설집 후기에 써놓은 말이 떠오른다. “세계는 더디게 더 많은 존재들을 존엄과 존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는다. 너무 늦지만 않으면 좋겠다.”

<김희연 소통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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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가로지르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니, 굉장한 번영을 구가하던 대도시였나 보다(<요나서>). 여기에 ‘요나’라는 예언자가 나타나 니네베의 멸망을 선포한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니네베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 ‘과부와 고아와 떠돌이’의 하느님이며, 하느님께 대한 죄는 이들의 억압과 착취로 나타난다. 니네베의 번영은 이들 약자의 피땀으로 이뤄졌고, 이들의 울부짖음이 하느님께 닿았나보다. 이 하느님은 이집트의 압제와 수탈에 허덕이던 히브리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이들을 해방하려 이집트를 쳤었다(<탈출기>).

요나의 경고는 니네베에 들이닥칠 대재앙의 전조로 들렸다. 니네베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했고, 임금에서 짐승까지 모두 단식에 들어갔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단식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사야서>), 약자를 향한 사회적 연대 행위다. 억압과 착취를 일삼던 니네베의 근원적 변화를 위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과연 그들은 변했을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임박한 파국의 경고를 시대의 징표로 알아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했고 재앙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우리는 경험도 상상도 못했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극도의 혼란과 공포가 삶을 엄습하고 옭아맨다. 당연했던 ‘일상’은 사라지고 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도 사라졌다. 하지만 결국, 특히 의료진과 보건 당국의 헌신 그리고 시민들의 협력으로 이 사태도 잦아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런 희망을 품자, 물음이 쏟아진다. 이 재난으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니네베만큼 변할 수 있을까?

이번 재난을 계기로 우리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과 평등을 ‘정말’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할까? 잠시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할 수 없는, 감염보다 생계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사회 안전망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을까? 바이러스 창궐 이전 ‘평온한’ 때에도 네댓 명의 노동자가 매일 산재로 죽어야 하는 사회, 갑질로 인한 좌절과 분노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삶을 버리는 사회를 안전하고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려 할까? ‘김용균’과 ‘문중원’과 ‘이재학’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치한 것에 대한 사회적 참회가 가능할까? 너무도 소중한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재앙이 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핵발전소 같은 위험 시설을 기꺼이 포기할까? 기후재난이 현실이 되기 전 온실가스를 과감히 줄이고 그 불편을 기쁘게 받아들일까? 

아니면, 이 환난을 넘기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익숙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할까? 효율과 성장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비정규’의 굴레를 강요하며 약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 일을 계속할까? 기후재난과 핵사고는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훨씬 더 가혹한 재앙, 파국의 문을 스스로 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우리의 ‘진짜’ 문제를 보여주는 시대의 징표로 읽기를, 이 환난의 때를 새 세상을 여는 ‘카이로스’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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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1월20일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누적 확진자 수가 3월4일 현재 5000명을 넘어서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국민의 눈은 감염병 관리 주체인 질병관리본부와 더불어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감염병 연구를 수행하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CEVI)융합연구단에 쏠렸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국민이 거는 기대감은 쉽게 무너진다. 

우선 정부의 조직을 보면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 하부기관으로 국립보건연구원이 존재하고, 그 밑에 신·변종 감염병 연구를 총괄하는 감염병연구센터가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와는 별개의 연구센터이다. 하지만 이 센터가 ‘국가 감염병 연구를 선도하는 컨트롤타워’라는 비전에 걸맞은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2015년 메르스 위기를 겪으면서 센터의 첫 번째 목표인 감염병 극복에 필요한 핵심 연구기술 및 연구역량 확보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국민은 실감하지 못한다. 이런 사태를 겪을 때마다 긴급 투입되는 일회성 연구비로 국가연구역량을 축적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8억원의 긴급예산이 코로나19 연구에 배정되었다.

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는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보이는 슈퍼박테리아 극복 기술 및 바이러스 진단과 예방 기술 개발 등을 통한 국가 감염병 대응기술 확보를 목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센터 소속 연구원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수행해왔던 관심 연구 분야를 그대로 수행할 뿐이고, 연구를 총괄하는 센터 또한 개개의 연구를 전체적으로 엮는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개인 연구자가 진단, 예방, 대응 기술을 개발하면 중앙 센터는 감염병 A, B, C에 상응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센터 차원에서 수행해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오류를 수정하면서 실제 유사상황에 대비한 국가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쓰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은 오직 논문과 실적뿐이다. 개인 평가가 자기 연봉과 직결되는 현 시스템에서는 국가기술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개인의 잇속에 매몰된다.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의 경우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2016년 8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미래선도형 융합연구단으로 선정되어 2022년 7월까지 6년간 570억원의 국고를 지원받는다. 한국화학연구원을 중심으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8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단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 대응 융합 솔루션 개발을 목표로 진단기술 개발, 예방, 치료 및 확산 방지를 기반으로 과제를 구성해 연구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난 2월17일이 되어서야 연구단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분리 주를 전달받아 바이러스를 배양 증식하는 단계에 있다. 신청에서 분양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관 간 협의를 통해 사전에 단축해 놓았어야 했음에도 연구단은 늦어진 분양 탓만 했다. 연구단은 현재 파스퇴르연구소와 역할을 분담해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이며, MOU를 맺은 웰스바이오와 앱클론사와 함께 진단분야 연구를 수행하면서 질병관리본부에 코로나바이러스 분자진단키트 긴급승인 요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정작 이상한 것은, 융합연구단이 소속되어 있는 한국화학연구원 외에 다른 참여 출연연구원의 기여도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융합연구단 소속 타 출연연구원의 보유 기술을 보면 신종 바이러스 현장진단용 고감도 진단 기술, 유전자 기반 실시간 현장진단 기술, 바이러스 유전체 기반 고속·정밀 진단 기술, 바이러스 포집 기술, 바이러스 감염 또는 백신 접종 초기 호흡기 계통에 발생하는 염증 억제기술, 슈퍼컴퓨터 기반 질병 예측 통합 플랫폼 구축, 감염병 확산예측 및 방제 전략 수립을 위한 수리적 모델 구축기술 등이 있다. 이 융합연구단이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연구단 내에서 바이러스를 효율적으로 포집하고, 높은 민감도와 정확도를 지닌 진단기술과 확산예측 프로그램을 통한 효율적 국가 방제대책과 후보 치료제가 나왔을 것이다. 연구 종료를 2년6개월 남긴 시점에서 연구단의 연구를 통제하고 조율할 지휘부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쓰고,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되니, 융합연구단은 4일 사스와 메르스에 쓰였던 중화항체가 코로나19의 표면에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물정보학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예측을 근거로 ‘코로나19 항체’를 운운했고 언론에 보도됐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기관이나 정부의 출연금으로 운영하는 연구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출연연이 수행하는 성격의 연구는 국가의 연구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언제든지 국민을 위해 꺼내어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듯,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쓸 수 있는 기술은 아주 제한적이다. 개인 평가 시스템이란 제도가 버티고 있는 한 출연연 연구원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세계 유수의 국가가 운영하는 연구소를 둘러보라. 우리처럼 첨예하게 실적으로 모든 연구원을 줄 세워 일정 비율로 연봉을 책정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업이나 연구역량 강화를 얘기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국가연구소와 정부 출연연의 운영과 평가의 혁신이 필요한 때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인적·경제적 손실이 나자, 2010년 11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농림수산부, 지식경제부, 식품의약품안전처 5개 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신종인플루엔자 범부처사업단이 출범하고 6년간 연구를 수행하고 없어졌다. 그럼 이제 신종플루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근시안적, 일회성 연구보다는 국가의 지속적인 기초연구 뒷받침 역시 중요하다.

<엄치용 코넬대 의생명공학과 연구원·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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