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바라만 보는가  

사랑의 예수를 믿는다면   

섬김의 시설들을 내어주라  

치유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코로나19 창궐이 마귀의 짓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마귀는 쫓지 못하고 ‘박근혜 시계’를 찬 채 큰절로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세상의 바이러스임을 인정했다. 그는 ‘평화의 궁전’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평화는 결코 거창한 궁전에 깃들지 않는다. 결국 그는 예수 이름을 파는 속세의 노인이었다.   

기성교단은 당장 사이비집단 신천지를 해체시키라 야단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 특히 대형교회는 이단 논란에서 자유로운가. 한국 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는 별난 것이 있었다. 바로 종말론 설파, 개인숭배, 주술적 종교의식, 헌금 강요 등이다. 이러한 물질만능주의, 권위주의, 신비주의를 청산했는가. 아니다, 여전히 세속적이다.  

목사가 앞장서 잘살아보자고 외치고 있다. 교회 다니면서 소원성취 못하면 믿음이 없는 거라고 몰아친다. 당연히 교인 간에도 빈부의 차별이 존재한다. 으리으리한 성전에서는 여전히 돈 냄새가 난다. 우렁찬 아멘 소리로도, 향기로운 찬송으로도 지울 수 없다.  

교인들도 기복신앙에 빠져 있다. 돈 많이 벌고, 자식이 성공하고, 건강해서 오래 살게 해달라 빈다. 헌금 액수를, 통성기도의 부피를 헤아린다. 교회에 바친 게 많다보니 예수와 성경보다는 목사와 교회를 믿는다. 목사는 어서 천국행 티켓을 예약하라고 하늘을 가리키고 교인들은 박수치며 아멘을 외친다.   

예수는 부흥사도 혁명가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가장 소박한 인간으로 살았다. 평생 가난한 사람과 함께 지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일렀다. “가지지 말라.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그럼에도 요즘 교회들은 가난을 잃어버렸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가난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섬겼던 부활의 예수가 아니다. 자기들 취향대로 만들어낸 다른 신, 곧 우상이다. 성전에 정작 예수는 계시지 않는다. 가룟 유다만이 예수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기도 속에 어찌 예수께서 임할 것인가. 하늘 향해 떼를 쓰는 통성기도를 주께서 기쁘게 받으시겠는가. 예수는 그런 기도를 가르친 적 없다. 주의 기도문에는 나 하나만을 위한 기도 말이 없다. 나 아닌 우리의 기도이다. 기도는 골방 같은 곳에 숨어서 하고, 금식할 때는 머리를 단정히 빗어 남에게 티를 내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에 어찌 ‘나만을 위한’ 특혜가 있겠는가.

코로나19의 습격에도 주일 교회예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무리가 있다. 성경을 펼쳐보라.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병을 고쳤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주일예배를 쉬는 것은 이웃을 배려하는 또 다른 예배이다. 대신에 한국 교회가 치유의 예수를 믿는다면 교회 뒷문을 열어 병자들을 가만가만 불러들여야 한다. 지금 병상이 모자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왜 교회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가. 모든 섬김의 시설들을 티내지 말고 내어주라. 

예수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로마 군인 백부장 부하의 병도 고쳤다. 로마 군대는 유대민족의 원수였건만 중풍을 낫게 했다. 목숨은 누구라도 귀할 뿐이다. 주님의 성전이라면 가장 약한 자들을 뉘어야 한다. 그러면 주께서 얼굴을 펴시고 치유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다. 길이고 진리며 생명이니 어찌 현실을 회피할 것인가. 가장 약한 자들에 둘러싸여 회당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았다. 이웃을 사랑함이 곧 예수를 사랑함이다. 사랑은 머리가 아닌 실천하는 몸에서 나온다. 예수처럼 십자가를 질 엄두도 낼 수 없는, 성경 밖에서 사는 목회자들은 성경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사이비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태복음 25장 40절)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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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혹시’라는 불안감에 매일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면서 익숙했던 출퇴근길의 모습부터 변화했다. 내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감염될 것을 걱정하면서 모두 일상에서 지켜야 할 소임을 다한다. 마스크 쓰기부터 30초 이상 손씻기, 기침할 때 소매로 가리기 등 작은 약속들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일상의 변화를 일으킨 것처럼 여성폭력의 일상성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여성폭력으로 인한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전해 듣지만, 여성폭력 피해는 타인의 일, 개인적인 일, 사소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누군가가 폭력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걱정이 작은 약속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소위 ‘농담 삼아’ ‘재미 삼아’ 외모 품평과 피해 영상을 공유하는 단톡방에 ‘이건 폭력이야’라고 말하기, 음란물이 아니라 ‘불법촬영물’이라고 말하기, ‘여자가’ ‘남자가’라는 말 쓰지 않기 등 일상 속 언어를 바꿔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8일은 올해로 112번째 맞는 ‘여성의날’이었다.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1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여성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여성폭력의 양상은 기술과 결합해 온라인상에서 통신기기를 매개로 변화하고 있다. 불법촬영과 유포, 누군가의 일상이 성적 영상물로 거래되는 디지털 성범죄는 여성의 일상에 불안과 공포로 자리 잡았다. 

텔레그램을 통한 사기와 해킹 등으로 성착취를 일삼고, 돈을 벌기 위해 촬영물을 유포하는 등 범죄가 확산되고 있다. 피해 대상에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중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는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에 대한 긴급지원 결정을 내리고 지원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경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한 각각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여성이 죽어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구조화된 악습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변화에 국민이 앞장서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에 대한 국민청원’으로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의제화하고, 국가의 적극적 행동을 촉구한 국민 행동은 청원 동의 10만명을 넘겨 국민의 손으로 일군 1호 법안이 되었다. 청원에 동의를 누르는 작은 행동이 국민청원의 첫 사례를 만든 것이다.

‘하던 대로’ 하는 모습을 끊어내는 작은 힘은 이제 여성폭력을 끊어내는 힘으로 작동해야 한다. 여성폭력은 남의 일, 개인적인 일, 사소한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나’라는 개인이 ‘하던 대로’를 끊어낼 수 있는 ‘힘’, 그 자체다. 코로나19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작은 약속과 행동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으며, 우리가 지키는 작은 행동과 약속이 여성폭력 예방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봉정숙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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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장애인이 격리기간 동안 함께 지낼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처한 어려움은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자가격리 대상자 생활수칙’에 따르면 자가격리자는 외출을 금지하고 최대한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해야 한다. 가족이나 동거인이 있을 경우 화장실과 세면대는 가급적 따로 사용하고, 불가피한 접촉 시 2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원룸은 화장실과 세면대가 하나일 뿐만 아니라 활동지원사와 본인의 거리를 2m로 유지할 수 없는 크기다. 그는 질병관리본부의 자가격리 지침을 지킬 수 없다.

독립된 공간, 별도의 화장실과 세면대, 타인과의 거리 2m 확보. 벽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옆방 사람과의 거리도 2m가 되지 않을 고시원과 평균 넓이 1.25평의 쪽방은 십수명이 하나의 화장실과 부엌을 사용한다. 자가격리를 한들 생활수칙을 지킬 도리가 없다. 한방에서 여섯 명이 생활한 청도 대남병원의 감염률이 98%에 이르고, 사망자가 8명이나 발생한 것은 사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밀양 요양병원에서,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청도 대남병원을 보았다.

이처럼 코로나19가 미친 여파는 불평등한 세계를 꼭 닮았다. 세상은 재택근무나 휴식이 생계에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아이를 맡길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든 것이 멈춘 김에 쉬어 가자는 사람과 복지관이나 공중시설이 문을 닫자 갈 곳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이 두 조각난 세계는 재산, 소득 수준과 대략 일치한다. 타인과의 2m 내 밀접한 접촉을 거부할 수 없거나, 타인과 2m씩이나 떨어져서는 일자리는 물론 생존을 잃고 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세계의 변방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워진 사람들을 돕겠다는 추가경정예산도 ‘2m’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예산의 대부분은 신용카드 환급 등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간접적인 혜택이거나 건물주나 사업주를 돕는 것이다. 직접 지원은 500만명에게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계획에 그친다.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수당 대상자, 노인 일자리 참여자에 국한된 이 대책은 지금 당장 소득이 중단된 사람들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회복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게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 코로나19가 지난 이후를 함께 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겪은 재난의 결과는 더 깊은 불평등과 좌절로 나타날 것이다. 2m가 없는 사람, 그들을 우선하라.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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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라면 터널 안에서 전조등을 켜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거나 무리하게 차로 변경을 시도하는 차를 피하려다 터널 벽과 충돌할 뻔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달 19일 창원에서 발생한 터널 내 사고로 5명이나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터널 교통사고는 매년 증가 추세로, 운전자들의 안전 불감증과 부주의, 교통법규 위반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 터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터널은 진입 시 어둡고 나올 때 밝아 운전자들의 눈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속도 감각이 저하되고 운전자의 심리 변화 등이 작용해 위험하다.

따라서 터널 진입 시에는 다음 사항들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전조등을 켜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면 이를 벗어야 한다. 둘째, 정체 없이 고속으로 달릴 때는 앞차와 100m 이상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차가 정지하는 등 돌발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들이받게 되어 2차 사고로 이어진다. 셋째, 급정체 시 반드시 비상등을 켜서 뒤따라오는 차에 신호를 주어야 한다. 터널 내에서는 차로 변경과 추월을 금지해야 한다. 터널 내 차로 변경은 법규 위반이며 시야의 제한으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벽과의 충돌 위험이 있다. 

터널은 폐쇄된 공간이기 때문에 교통사고 시 자칫 2차 사고가 발생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주의사항을 잘 숙지해 터널 교통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다.

<박유인 | 인제경찰서 북면파출소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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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2판4판]토끼 농장 (출처:경향신문DB)

바이러스가 발발했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할 원칙이 있다. 방역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을 경우 국가의 방역정책이 정당의 탐욕이나 대중의 공포로 인해 정치적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국민의 생명이 달린 사안을 자신들의 정치적 어젠다를 확산할 기회로 여기는 여러 세력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여야의 구별이 없어 보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수습의 책임을 진 정부 측에서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경고의 목소리를 묵살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철마다 찾아오는 인플루엔자와 동일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규모 감염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머잖아 코로나는 종식될 것”이라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짜파구리 오찬 사진을 홍보용으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기 위해 국가의 방역대책을 싸잡아 비난하기 마련이다. ‘방역에 실패했다’는 이미 내려진 결론을 위해 그들은 인과관계를 왜곡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즉에 ‘중국인의 출입을 봉쇄했어야 한다’는 주장. 확진자가 이미 7000명을 넘었지만 그중에서 중국인에 의한 감염의 사례는 겨우 한두 건에 불과하다. 또 진즉에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미국에서도 바이러스는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그릇된 인과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방역에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국에서 오는 직항편을 끊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중국인들에게만 집중하는 바람에 그보다 더 유동인구가 많은 유럽인들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그들이 의심했던 중국인들은 검사결과 모두 음성으로 밝혀졌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 후에야 뒤늦게 0번 환자는 유럽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봉쇄의 논리가 옳다면 같은 논리에 따라 당장 확진자의 90%가 나온 대구·경북부터 봉쇄해야 할 게다. 하지만 그 많은 중국봉쇄론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대구를 봉쇄하자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것만 봐도 중국봉쇄설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베네치아까지 봉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이럭저럭 사태를 수습해 가고 있다.

한편, 그 반대편에서는 분노한 대중의 시선을 애써 종교와 지역으로 돌리려 한다. 서울시장은 신천지 교주를 ‘살인죄’로 고발했고, 한국의 두테르테 경기도지사는 그를 쫓아 야밤에 신천지 본부로 쳐들어가더니, 급기야 주일예배를 강제로 금지시키는 행정조치까지 검토 중이란다. 방역을 핑계로 대나, 이 오버액션이 대중의 뇌리에 자신을 대선주자로서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포퓰리즘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대구사태” “문재인 폐렴” 등 

‘네이밍’ 전술로 정치적 악용에 

낙인찍어 고립시키는 언동들


가장 질이 안 좋은 것은 특정 지역에 낙인을 찍어 고립시키는 언동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코로나19 확진자 현황과 2018년 지방선거 결과가 담긴 사진을 올리며 “투표의 중요성 후덜덜”이라 썼다. 더불어민주당 청년위 소속의 한 인사는 “대구는 어차피 미통당 지역”이고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TK는 손절해도 된다”고 썼다가 보직에서 해임됐다.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은 이번 사태를 “대구사태”라 명명했다.

코로나19 이슈의 정치적 악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네이밍’의 전술이다. 보수언론에서는 여전히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 사태의 원인이 정권의 친중정책에 있다고 못 박아 두려는 게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것을 ‘대구폐렴’이라 부른다.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대구에 있다는 얘기다. 미래통합당의 어느 예비후보는 “문재인 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고 외친다. 그냥 ‘코비드19’, 아니면 (일본처럼) ‘신종폐렴’이라 부르면 안되나?


광주시민 “환자 수용” 선언처럼

작작 좀 하자, 다들 알지 않는가 

혐오·봉쇄 아닌 연대가 답임을


다들 미쳐 돌아가는 가운데 지난 1일 광주시민들은 대구의 경증환자들을 수용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것이 “광주의 길”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머릿속으로 그 옛날 봉쇄된 도시에서 살았던 무서운 체험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그때 광주를 봉쇄했던 자들은 그 불행한 사건을 ‘광주사태’라 불렀다. 작작들 좀 하자. 다들 알지 않은가. 선동이 아니라 과학, 불신이 아니라 신뢰, 혐오가 아니라 이해, 봉쇄가 아니라 연대만이 해답이라는 것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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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였던 거리일수록 텅 비고 가게에는 사람이 없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겠으나, 불황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코로나19가 자연재난이냐 사회재난이냐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경제재난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어려움에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불안정과 불평등의 시대에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기회와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필요한 제도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기본소득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확신하지 못했던 것은, 국가와 사회가 그것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가? 그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서 ‘재난’기본소득은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다. 특정 산업과 계층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코로나19가 끝나도 사람들이 나와서 쓸 돈이 없을 지경이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이번 추경에 “이른바 한국형 기본소득제라는 개념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취약계층 580만명에게 2조6000억원의 자금을 풀어 지역사랑상품권’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우리 현실에서 가장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길’인가?

이것은 아무리 잘 봐도 ‘선별적 피해 구제’에 불과하다. 수혜 대상은 전 국민의 10% 정도이고, 노인 일자리 쿠폰이나 고효율 가전 구매금액 환급 등이 포함된다. 평상시에도 하던 공공근로의 확대나 특별소비세 인하 같은 것을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실행한 것’이라고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추경의 나머지 부분도 특례보증 확대나 의료기관 손실 보상처럼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지금의 상황을 비상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그 대응도 비상한 것이어야 한다. 이 추경은 전혀 ‘비상’하지 않다. 코로나19가 사회와 경제에 미친 충격이 메르스 정도라면, 메르스 추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추경으로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과연 그런 상황인가?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자고 했는데, 기획재정부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국회가 손댈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재난‘기본소득’이라면, 그 대상은 국민 모두이거나 적어도 다수여야 한다. 일단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씩 주자. 모두에게 줄 필요는 없다고? 맞다. 코로나19에 별 지장이 없던 사람, 오히려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무상급식의 강을 건넌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이건희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은 제공되어야 한다고 합의했다. 그것이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2년 전 아동수당을 소득 상위 10%에게 주지 말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상위 10%에게 90억원을 주지 않기 위해 드는 행정비용이 1000억원이라는 답을 얻었고 논란은 잠잠해졌다.

그래도 소득이 충분한 사람들에게까지 재난기본소득을 주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것 같다. 동의한다. 방법이 있다. 우리는 매년 모든 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 신고도 하고 연말정산도 한다. 이 제도를 이용해 소득 최상위자들에게는 전액을, 그 아래로는 적절히 구간을 정해 일정 부분을 돌려받으면 된다. 중위소득 이하는 어차피 현재처럼 세금으로 반납할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반박할 것이다. 그럼 ‘조삼모사’가 아니냐고. 맞다. 조삼모사다. 지금이 바로 조삼모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려울 때 미리 당겨쓰고, 나중에 천천히 갚는 것이다. 경제활성화 효과를 생각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50년 전 우리는 의료보험이 없었다. 40년 전 우리는 국민연금이 없었다. 30년 전 우리는 고용보험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 없이 살 수 없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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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째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를 빼곤 칼럼을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전염이 그렇게 잘되는지,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등의 글을 쓰는 것은 꺼려졌다. 각자 뉴스를 통해 많이 접했을 내용들이고, 질리도록 관련 글들을 읽었을 터이다. 기자는 ‘문송’(문과라 죄송하다)한 사람이어서 남들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본인도 무슨 소리하는지 모를 글을 쓸까봐 나름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란 기사를 접했다. 집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각자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담은 글이었다. 이거였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라는 드라마도 있었으니,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라는 제목의 운율감은 나쁘지 않다. 누군가는 “상황이 엄중한데 농담할 때인가”라고 핀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는 하나 마나 한 말로 답하고 싶다.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말하려면 일상이 초래한 코로나 스트레스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문제를 알아야 뭐라도 더 나은 답을 궁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마스크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우선 떠올랐다. 근무시간은 물론 회의시간에도 종이 쪼가리로 얼굴을 가리다보니, 가끔 숨이 턱턱 막힌다. 일회용 마스크를 며칠 동안 돌려 쓴 탓일까. 코끝이 헐어 며칠째 빨갛다. 코로나 스트레스의 흔적이다.

퇴근 후 동료와 술잔을 나누며, 나를 알아주지 않는 야속한 세상을 탓하곤 했던 소소한 즐거움도 사라졌다. 하룻밤 알코올은 달겠지만, 장기간 격리를 감수할 용기는 없다. 주말이면 해왔던 야외 여가활동은 옛일이 됐다. 필자는 토요일 낮 ‘동네 한 바퀴’ 산책이 그립다. 이렇게 ‘갇힌 일상’이 주는 코로나 스트레스는 우리를 좀 먹고 있다. 거울을 보고, 주변을 둘러봐라. 나의 표정도, 당신의 표정도 침울할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 지침도 이런 마음의 병을 달래는 데 맞춰졌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3일 발표한 ‘국민을 위한 마음건강 지침’에서 일정한 식사시간과 수면, 전화와 메시지 등을 통한 주변과의 소통을 제안했다. 되새겨서 나쁠 건 없겠지만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로 들린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기자의 경험을 공유해본다. 우선 ‘나는 무조건 괜찮을 거야’라는 정신승리가 필요하다. 귀가하면 마스크부터 벗고, 수시로 들숨날숨을 쉬어본다. 퇴근 후 여가시간이나 주말에는 코로나 뉴스에 매몰되지 않는다. 확진 현황과 관련된 뉴스는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한다. 이런 뉴스에 집착하면 불안감만 커지게 마련이다. 그 시간에 TV드라마 재방송을 보든, 비트 있는 음악을 큰 소리로 틀어놓든, 잠시나마 정신줄을 놓는 것은 어떨까.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2월27일 (출처:경향신문DB)

미담을 찾아보는 것도 우울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 대구로 모여든 의료진들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불친절하고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던 의사에 대한 선입견이 걷혔다. 경향신문 지난 5일자 1면에는 ‘거리두기 사회’의 빈틈을 메우는 이들에 대한 글이 실렸는데,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아동들, 중증장애인, 치매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상근활동가들이 소개됐다. ‘우리 사회는 최소한 품위는 갖췄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코로나19가 전 대륙에서 확산하며 사실상 ‘팬데믹(대유행)’ 단계에 진입했다는 뉴스도 찬찬히 읽어본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외신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먼저 매를 맞았을 뿐이다. 다른 나라보다 빨리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부가 도시봉쇄나 통행금지 등 극단조치 없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잘 대응하고 있다는 외신을 읽는 것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됐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못 이긴다!

끝으로 턱없는 주장들은 큰 소리로 비웃어주자. “이게 나라냐.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 “특정지역에 확진자가 많다. 국회의원 잘 뽑아야 한다”. 세계적 천재지변으로 판명난 전염병까지 정치에 이용하려는 뻔뻔한 선동들을 접하면 질펀한 욕설을 퍼부어주는 것이다. “에라, 이 더러운 XX들아.” 이편이 밤샘 술자리보다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저 사람들의 ‘사리사욕’ ‘권력욕’보다 ‘그래도 이겨내자’는 당신과 나의 생각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퍽퍽한 일상에서 이만한 자기만족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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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_ 윤여경 기자

‘피싱’은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든다. 거짓을 사실인 양 위협하고 사기 치는 악성 범죄다. 사회불안 요인이 있을 때 더 활개를 친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코로나19가 창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싱·해킹·악성코드 유포 등 온갖 사이버 공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스크 무료로 받아가세요.” 마스크 대란을 겪는 요즘 누구나 눈이 번쩍 뜨일 문자 메시지다. 그러나 클릭하면 안된다.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유포하거나 개인 계정 정보를 탈취당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배송지연. 물품확인”이라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유명 마스크 쇼핑몰 사이트를 그대로 베껴놓고 무통장 입금만 받는 식으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피싱 사이트도 적발됐다. 인터넷 게시판에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거짓 글을 올려 돈을 떼어먹는 단순 수법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이들은 국내 확진자 발생 초기에는 정부·공공기관을 사칭해 ‘도시별 분포’ ‘실시간 상황’ 등 가짜 정보를 주로 내걸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주 관심사인 마스크 쪽으로 타깃을 옮기고 있다.

코로나 불안에 편승한 피싱 등 사이버 범죄는 남의 불행, 사회적 혼란을 증폭시켜 한몫 챙기겠다는 반사회적 범죄다. 그동안 사이버 공간에서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 이들과 비교하면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코로나 확진자들의 지역별 분포와 동선을 보여주는 ‘코로나맵’ ‘코로나 알리미’와 주변 편의점의 마스크 재고 현황을 알려주는 ‘마스크 알리미’ 등 앱은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대구의 16세 중학생 두 명은 코로나 관련 실시간 뉴스, 국내 환자 현황, 국가지정 격리병상 지역별 현황, 선별 진료소 위치 등을 총망라한 ‘코로나 나우’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주목받았다. 이들은 “중학생이라 미숙하지만, 걱정 없는 하루를 만들기 위한 일이라 시작했다”고 했다. “사이트 수익금이 생기면 마스크를 구입해 기부하겠다”고까지 했다.

마스크 대란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마스크 양보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더 필요한 곳에 마스크를 양보하겠다는 배려다. 이런 마음이 뭉치면 코로나도 결국 극복할 것이다. 하물며 피싱 따위야 퇴치 못할 리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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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발표한 5일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과 연결된 농협 하나로마트 서대문점 앞에서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강윤중 기자

이 사태가 끝나면 간격은 더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보았다. 누구는 재택근무를 하지만 누구는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격리되어 자신의 휴가를 사용하는 이도 억울하겠지만 해고 통보를 받는 사람만큼은 아닐 거다. 같은 난리통이지만 다르게 허우적거리는 차이는 노동의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세상이 멈추니 삶도 멈춰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성실한들, 평소에 절약한들 추락을 막을 수가 없다.

약자라서 더 위험해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안정적인 일자리에 집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대학 이름에 대한 강박은 증가할 것이다.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것을 경쟁하게 되면 금수저의 위력이 커지니 반대편의 수저들은 별다른 꿈도 꾸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힘들어한다. 방황하는 청년들이 이상한 공동체에 집착하는 건 당연하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이 사태가 끝나면 간격은 더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보았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니 부모 중 누가 더 좌불안석인지를. 평소에도 여성들은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눈총과 자녀를 방치한다는 원망 속에서 힘들어했는데 상황이 틀어지니 답이 없다. 과거에 알파걸이었든 현재에 슈퍼맘이든 부질없다. 앞으로는 경단녀다.

여성의 진로는 더 좁아질 것이다. ‘살아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경험사례는 ‘공부 잘하면 교대 가라’는 무례한 조언으로 이어진다. 다른 전공을 선택한들 고시 합격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개인을 짓누른다. 이들 중 성공한 일부는 ‘프로페셔널한 여성’으로 포장되어 유리천장에 막힌 다수를 핍박하는 소재가 된다. 사회에서 여성의 입지가 좁아지면 가정에서는 ‘모성애’를 발현하여 정체성을 찾는 엄마들이 많아지고 워킹맘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모두가 절벽 끝에서 위태로워하지만 바람이 부니 떨어지는 사람은 모두가 아니다. 낭떠러지에서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버티던 인생부터 꼬였다. 이제 누구도 세상이 아름답다거나 평등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이왕이면 부동산으로 돈을 모으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람들의 마스크 집착이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지만 공포라는 심리적 감정은 질병의 과학적 사실과 비례해 정량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발을 딛고 있는 얼음판의 두께가 약한 사람들은 냉정히 언론을 선별할 시간도, 공동체의 미래를 장기적 안목에서 고민할 여유도 없다. 오늘 버텨내지 못하면 내일이 없는 이들은 누구를 시켜서라도 마스크부터 구해야 한다. 그런 자녀들에게 걱정을 끼칠 것이 두려운 노인들은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몇 시간을 기다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의 의지로만 실천되지 않는다. 일상의 속도를 늦추는 훈련을 한국사회는 한 적이 없다. 늘 달렸고 바빴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되어도 마땅한 게 되니 별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다면 지금처럼 난리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차분히 상황을 지켜볼 지혜는 정신력의 차원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도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받는 사회였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공포심을 느끼지도, 유난을 떨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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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 시장에서 화물전표 글씨는 아버지 전담이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아버지가 시장에서 대접을 받은 건


순전히 필체 하나 때문이었다


전국 시장에 너거 아부지 글씨 안 간 데가 없을끼다 아마


지게 쥐던 손으로 우찌 그리 비단 같은 글씨가 나왔겠노


왕희지 저리 가라, 궁체도 민체도 아이고 그기


진시장 지게체 아이가


숙부님 말로는 학교에 간 동생들을 기다리며


집안 살림 틈틈이 펜글씨 독본을 연습했다고 한다


글씨체를 물려주고 싶으셨던지 어린 손을 쥐고


자꾸만 삐뚤어지는 글씨에 가만히 호흡을 실어주던 손


손바닥의 못이 따끔거려서 일찌감치 악필을 선언하고 말았지만


일당벌이 지게를 지시던 당신처럼 나도


펜을 쥐고 일용할 양식을 찾는다


모이를 쪼는 비둘기 부리처럼 펜 끝을 콕콕거린다


비록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획을 함께 긋던 숨결이 들릴 것도 같다


이제는 지상에 없는 지게체 


손택수(197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육필(肉筆)의 필체 하나로 아버지는 시장에서 이름이 났었나보다. 살림이 어려워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셨지만, 아버지는 펜글씨 교본으로 글씨 연습을 하셨나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반듯한 글씨체는 칭찬과 부러움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나보다. 고유하게 ‘지게체’라고 명명(命名)되면서.

어른들의 필적을 보노라면 애당초 악필(惡筆)이라는 것은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어머니의 글씨체는 명필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멋지고 아름답다. 내 어머니만이 소유한, 나름의 풍(風)을 갖고 있다. 굴곡이 있는 모든 글씨체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다. 글씨체에 삶이 들어 있으므로.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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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DB)

9일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실시된다. 이제는 약국 등에서 마스크를 1인당 1주일에 2장만 살 수 있다.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요일도 제한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수요는 폭증했지만 공급 물량이 따라가지 못해 고육지책으로 마련된 ‘준배급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꼭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배려와 양보,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콩 한쪽도 나눈다는 심정으로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마스크 5부제’ 도입으로 시민들이 무작정 약국 앞에서 장사진을 치는 혼란과 불편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마스크 수급난의 근본 해소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내 마스크 생산량이 하루 1000만장 수준에 불과해 준배급제로 돌린다고 해도 전체 수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스크 재사용과 면마스크 활용을 권장하고, 공직 사회가 면마스크 사용에 앞장서기로 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개성공단 기업협회에 따르면 개성공단에는 보건용으로도 사용 가능한 방진 마스크를 월 100만장 제조했던 전문업체가 있다. 면마스크와 위생 방호복을 제조할 수 있는 봉제업체들도 60여곳에 이른다. 개성공단 가동이 멈춘 지 4년이 넘었지만 2018년부터 개성공동연락사무소를 운영 중이어서 전력, 통신, 공업용수, 폐수처리 등 공단 기반시설 가동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특히 봉제업체는 다른 업종에 비해 기계 설비가 단순해 간단한 점검만 거치면 언제든 가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성공단을 부분 가동해 마스크 등 당장 시급한 방역장비를 생산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합의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예외 인정만 받아내면 긴급 가동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대북 제재도 보건·방역물자 생산이라는 인도주의적 목적이라면 예외 인정 사유가 될 수 있다.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현금 대신 방역물자로 지급한다면 ‘대량현금(벌크캐시) 이전’ 논란도 피할 수 있다. 

국내 업체들에 생산력을 급히 늘리도록 하는 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 과잉설비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개성공단에서의 마스크 생산은 창의적인 제안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코로나19 방역장비 개성공단 생산’ 제안이 올라와 있다. 정부는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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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당국이 경북 봉화 푸른요양원에서 실내 소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하루 500명 이상씩 발생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주말에 300명대로 떨어졌다. 신천지 교인들에 대한 검사가 마무리돼 가면서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하는 양상이다. 그렇다고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 위생수칙 준수로 개인 감염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신천지 밖’의 집단감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의 80%는 집단감염에서 비롯되고, 그 대부분은 의료기관·사회복지시설·종교시설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병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병원·요양원에서 환자 발생이 이어지면서 ‘원내 감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 분당제생병원에서는 8일까지 모두 13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다. 확진자는 간호사 등 종사자 6명을 비롯해 입·퇴원 환자 6명, 보호자 등이다. 지난달 27일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된 이 대형병원은 1주일 만에 병원 내 감염이라는 어이없는 사태를 맞았다. 대구 문성병원에서는 10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경북 봉화 푸른요양원에서는 환자와 종사자 등 51명이 무더기 감염됐다. 요양원 입소자들은 대부분 치매·당뇨·천식 등을 앓는 기저질환자이다. 이 요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70대 여성은 사망했다. 또 경북 경산시의 요양원 제일실버타운에서도 확진자 17명이 발생했다. 경산 세명병원에서는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1명이 확진자로 드러나 병동을 폐쇄했다. 환자를 치료·관리해야 할 병원과 요양원에서의 코로나19 확산은 감염병 관리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청도대남병원에서 환자 집단감염 사태 이후 병원과 요양원 내 감염은 가장 우려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원내 감염은 끊이지 않아 서울 은평성모병원(14명)과 경남 한마음창원병원(7명)은 집단감염으로 병원이 폐쇄되기도 했다. 환자가 집중 발생한 대구에서는 대학병원 4곳의 응급실이 한때 폐쇄됐다. 감염병에서 원내 감염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는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의료진 감염 시 의료공백까지 초래하기 때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병원 내 감염으로 의료체계가 큰 혼란에 빠졌던 경험이 생생하다. 이 상황에 원내 감염으로 지역 의료시스템까지 무너지면 정말 큰일이다. 감염에 취약한 다인실 운영 등 병실 관리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검사 정례화 등 입원 환자에 대한 철저한 방역이 필요하다. 의료진·간병인은 자기 모니터링 등을 통한 자체 위생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확진자가 주춤한 이때 원내 감염을 차단해야 코로나19 사태의 고비를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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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례공관위원장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진보·개혁 진영의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비례정당 참여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짓지 못하고 전 당원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보수야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해선 ‘가짜 정당’이라고 실컷 비난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볼썽 사나운 모습이다. 아무리 제1당을 빼앗기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앞선다 해도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건 정도(正道)라 할 수 없다. 

민주당이 직면한 현실적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진보·개혁 진영의 비례연합정당 없이 선거를 치를 경우 민주당은 비례대표 6~7석, 정의당 9석, 미래한국당은 최소 25석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계산대로라면 통합당은 지역 선거구에서 지더라도 미래한국당 의석수를 합쳐 원내 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반인 150석 이상을 확보할 수도 있다. 통합당은 원내 1당이 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 등 검찰개혁법안 폐지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 탄핵까지 추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는 판이다. 그러니 눈 뜨고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치는 꼼수가 아닌 대의와 명분의 싸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낙선할 걸 뻔히 알면서도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그의 우직한 도전을 지켜본 시민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결국 그는 지역주의를 타파한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민주당은 군소정당의 사표(死票) 방지와 다당제 확립을 명분으로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게 시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이라고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수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비난해오지 않았는가. 그랬던 민주당이 선거에 불리하다고 비례정당에 참여하겠다니 이런 모순이 없다. 실망한 중도층이 떠나가면 ‘소탐대실’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비례연합정당과 같은 공학적 발상은 범진보개혁세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그의 말이 옳다. 정치는 시민을 믿고 시민과 함께 가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이런 민주당을 보면 뭐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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