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54년 여름,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심신이 건강한 소년 22명(평균 12세)을 초대했다. 그는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독수리팀과 방울뱀팀 중 한 팀에 ‘무작위로’ 배정했다. 첫 주에는 두 팀을 분리했고 각 팀 내에서 아이들이 협조하게끔 만들었다. 가령 각 팀원끼리 식사 준비를 하고 다이빙보드를 함께 만들게 했다. 그러자 팀 내부에 강한 응집력이 생겼다. 

둘째 주엔 두 팀 간의 경쟁을 조장했다. 줄다리기, 축구, 야구 경기를 시키고 이긴 팀에만 상품을 줬다. 더 심한 경쟁도 시켰다. 파티장에 먼저 도착하는 팀에만 맛있는 음식을 주는 식이었는데, 셰리프는 독수리팀이 훨씬 일찍 도착할 수밖에 없게끔 일정을 짰다. 늦게 도착한 방울뱀팀 아이들은 볼품없는 음식을 보고는 상대팀에 욕설을 퍼붓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독수리팀 아이들은 선착순으로 자신들이 이긴 거라며 대립했고 급기야 음식을 서로 집어 던지며 치고받고 싸웠다.  

집단 간 갈등에 관한 고전적 연구로 익히 알려진 이 사례의 핵심은 집단을 만든 방식에 있다. 연구자는 각 팀의 구성원을 ‘임의로’ 배정했을 뿐인데도, 경쟁 상황에 돌입하자 상대 팀의 구성원을 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 정체감 이론을 제시한 헨리 타지펠의 실험은 더 충격적이다. 피험자에게 동전 던지기를 시키고 앞면, 뒷면에 따라 X, W 집단에 배치되게끔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 집단을 치켜세우고 상대 집단을 폄훼하기 시작했다. 같은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이미 친구나 친척인 듯 행동했고 성격과 업무능력도 더 좋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그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줘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설마 그럴까 의심스럽다면, “근처에 사시는가 봐요. 자주 뵙네요”라는 식으로 우연을 가장해 사람을 포섭해온 집단을 떠올려보라. 잘 통했다! 

동전 던지기로 편을 갈라도 이 정도인데 학연, 지연, 혈연은 어떻겠는가? 심지어 흡연자는 건물 밖에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흡연자가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래, 인정하자. 우리는 이분법에 취약하다. 오죽하면 이 세상은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자와 그러지 않는 자로 나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대 그들로 세상을 나누는 이런 본능은 크게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자기 집단에 대한 편애와 타 집단에 대한 편견이 그것이다. 사실 내집단(ingroup) 선호와 외집단(outgroup) 폄훼는 짝꿍처럼 함께 간다. 보이스카우트 사례처럼 집단 간 경쟁 상황이 발생하면, 즉 자기 집단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타 집단 사람들을 폄훼하고 비난한다. 외집단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래야 내집단이 우월해지고 그 속의 자신이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존감은 대개 내집단에서 온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으쓱대는 국민은 외국을 외집단으로, 중국 봉쇄는 못하더니 일본에 봉쇄당했다며 비난하는 국민은 현 정부를 외집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옳은가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왜 이 국가적 응급 상황에 온갖 편견들이 난무하고 있는지를 이해해보려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 초기 단계에서부터 무리를 지어 살아온 조상에게 내부자와 외부자의 구분은 매우 원초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부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 파트너지만 외부자는 대개 경쟁자이거나 침략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부자와 외부자를 같은 태도로 선호했던 조상은 살아남지 못했던 반면, 내부자를 편애했던 조상은 살아남아 우리의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자원이 풍부하면 타 집단에 대한 편견은 잦아들지만 희소자원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돌입하면 편견 본능이 증폭된다. 

코로나19는 현재 명백히 집단 간 갈등의 유발 인자로 작동하고 있다. 품격의 옷 속에 깊숙이 숨었던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삐져나오고 있다. 통제를 무시한 중국인들이 우한에서 외국으로 탈출했으며, 그 와중에 이탈리아의 명품을 싹쓸이하다가 유럽을 전염시켰다고 근거 없이 비난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국인처럼 생긴 이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거나 손가락질, 욕설, 구타까지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가장 우려할 만한 일은 이웃 국가에 대한 편견의 증폭이다. 지난주, 극우파에 끌려다니던 아베 총리는 일본 내 감염 증가와 도쿄 올림픽 회의론에 다급해진 나머지 한국에 대한 편견의 발톱을 바로 드러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우리 정부도 어제 비슷한 수위로 대응 조치를 감행했다. 긴밀한 국제적 협조로도 막기 힘든 것이 코로나19이지 않은가?

자국민이 위협을 받을 때 국가와 국민은 타국을 비난하면서까지 자존감을 지키고 안심할 수는 있다. 이것이 편견의 심리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에 대한 진실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어떻게 편견을 극복하고 협력하는가에 대한 스토리다. 셰리프의 캠프 연구는 둘째 주에서 끝나지 않았다. 셋째 주에 그는 물탱크와 수도꼭지를 몰래 망가뜨려 두 팀이 모두 협력해서 고쳐야만 물 공급을 다시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바로 전주까지 서로 으르렁댔던 두 팀의 소년들은 어느새 친해졌고 서로에 대한 비난을 멈췄다. ‘공동의 위협’이 두 집단 사이의 편견과 혐오 감정을 수그러지게 한 것이다.

코로나19는 대유행(팬데믹)으로 가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전 세계 공동의 위협이 또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인종주의, 민족주의, 정치적 양극화를 추동하는 온갖 편견들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날려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일 양국은 서로를 막을 것이 아니라 더 큰 틀에서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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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확산 방지에 총력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국민이 코로나19에 관심을 집중하고,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을 악용해 확진자 동선을 알려준다는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을 사칭한 문자메시지를 보내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등 코로나피싱 관련 범죄가 발생하고 있어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 ‘마스크 무료로 받아가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배송 지연. 물품 확인’ 같은 메시지를 보내 개인정보를 빼 가거나 무통장 입금을 받는 경우도 적발됐다.

지난 1월 말 공개된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스팸신고 데이터 분석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 관련 안내 및 공지를 사칭하여 다른 사이트로 유입시키는 스팸 신고는 260여건, 마스크·방역 등 코로나19 테마주를 추천하는 금융 스팸 신고는 9770여건이었다.

이러한 스미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문자메시지의 링크 주소 클릭 주의’ ‘알 수 없는 출처의 애플리케이션 설치 제한’ ‘업데이트 및 실시간 검사상태 유지’ ‘금융정보 입력 제한’ 등 피싱을 예방하기 위한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시민들은 정부부처, 공공기관, 보건의료기관 등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금전이나 개인정보, 앱 설치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와 관련한 안내문자에 있는 의심스러운 전화번호나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의심하고 주의를 기울여 혹시 모를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김차연 | 여수경찰서 남산파출소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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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주주총회가 열리는 시즌이다. 주주총회에는 다양한 안건이 오르는데 그중 하나가 기업의 이사·감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안건을 통해 여러 후보자들을 보게 된다. 교수, 법조인, 퇴직관료의 지분이 가장 높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 한 회사에 충성한 사람, 좋은 친구를 두어 자리를 얻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그중 한 사외이사 후보자의 모습은 코로나19 사태로 혼란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지면을 빌려 이 후보자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처음 이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국회의원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사외이사 후보로 올라온 것을 보니 불출마 대열에 참여하신 분이라 생각했다. 양심 있는 정치인이니 사외이사 후보로 손색이 없겠다는 기대로 후보 명단을 검색해봤다. 나의 기대와 정반대로 예비후보 등록까지 하셨다. 사외이사의 임기는 3월 말에 시작되고, 선거는 4월이니 나라면 선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사외이사를 거절할 것 같은데, 역시 뛰어나신 분은 다르다. 이렇게 뛰어난 데다 열심히 사시는 분은 대체 누구인가 싶어 인물 정보를 더 탐색해 보았다.

이분을 보니 ‘노오력’이 부족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관료를 퇴임하자마자 그 좋다는 공기업 사장이 되셨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18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시더니, 낙선 후 다음해에 C기업의 사외이사가 되셨다. 하지만 이분은 기업의 경영을 하면서도 국가 경영을 잊지 않으셨나보다. 사외이사 임기 중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셨다. 이력을 보니 선거 중에도 사외이사는 사퇴하지 않으셨다. 낙선에 대비해 보험용으로 사외이사를 남겨놨다고 생각했는데, 이분은 당선된 이후에도 의원 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외이사직을 수행하셨다. 역시 봉황의 뜻을 나 같은 참새는 알 수 없다.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도 회사를 위해 충실히 이사의 업무를 수행하려던 분을 내가 오해했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렇게 4년의 임기를 마치고 이분은 다시 야인이 되셨다. 하지만 낭비를 모르시는 이분은 그 해에 법무법인의 고문이 되셨고, 또다시 S사의 사외이사직을 맡으셨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려운 자리인데도 동시에 두 자리를 하셨다. 그러면서 사외이사 임기 중에 또다시 20대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하셨다. 물론 사외이사는 사퇴하지 않으셨다. 낙선을 하고도 계속 사외이사를 하고 계신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사외이사 연임을 동시에 하려 하신다. 아마 이번에도 당선된다면 임기 시작 전까지 기업을 위해 노력하실 것 같다. 국가와 기업을 위하는 이분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지만, 건강이 걱정돼서라도 한 자리는 내려놓으셨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어딘가에는 여러 자리를 겸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것도 좋은 자리로만 말이다. 서민들이 약국을 돌며 몇 장 안되는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것은 비난받는데, 일자리가 부족한 사회에서 높은 분들의 일자리 사재기는 괜찮은지 모르겠다. 능력이 있어 겸직을 하는 건 괜찮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매크로를 돌리는 것도 능력이고 약국을 순회하는 것도 노력이다. 사외이사는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여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자리이지 정치인이 사재기하라고 둔 자리가 아니다. 선거를 하며 기업에서 급여를 받던 분이, 균형 잡힌 입법을 하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시민들은 불안한 와중에 성금을 내고 마스크를 기부하기도 한다. 이런 시민들을 대표할 사람이라면 선거 전에 사외이사를 제안받아도 스스로 거절할 수 있는 사리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사외이사 후보자만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이총희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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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거나 빠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따발총’이 흔히 쓰인다. 하지만 따발총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사람은 이 총이 ‘따따따’ 하고 연속 발사할 수 있어 ‘따발총’으로 불리는 줄 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6·25전쟁 때 북한군의 주무기였던 이 총을 보면 아랫부분에 마치 ‘똬리’(짐을 머리에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총알이 든 탄창이다. 그런데 북한 함경도에서는 ‘똬리’를 ‘따발’이라고 부른다. 바로 여기에서 ‘따발총’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도 따발총을 “탄창이 똬리 모양으로 둥글납작한 소련제 기관단총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풀이해 놓았다.

한편 일상에서 ‘똬리’를 ‘또아리’로 쓰는 일도 많다. “뱀이 또아리를 튼 채 노려보고 있었다”처럼 말이다. 하지만 ‘똬리’의 원말인 ‘또아리’는 표준어가 아니다. 표준어 규정 제14항에서 “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그런 것 가운데 하나로 ‘또아리’를 버리고 ‘똬리’만을 쓰도록 했기 때문이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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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아일워드 세계보건기구(WHO)-중국 COVID-19 공동임무국장은 2020년 2월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관련 기자회견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내렸다. AFP연합뉴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할 때다.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왕 다리우스 3세는 가우가멜라 근처에서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전쟁을 치르기 전날 포보스(Phobos)에게 제사를 지냈다. 포보스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아들로 두려움의 신이다. 알렉산더는 포보스가 다리우스에게 공포를 심어줄 것을 기원했다. 이를 두고 알렉산더가 다리우스를 상대로 벌인 선전전이라는 말도 있다. 공포증을 말하는 포비아(phobia)는 그리스어 포보스에서 기원한다. 알렉산더의 제사가 통했는지 다리우스는 전쟁에서 패했고 페르시아도 멸망했다.

공포에 휩싸이면 판단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위기의 순간에 닥치면 이것저것을 따지는 논리적 사고의 기능은 잠시 정지된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물이 더 높은 생존 확률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 과정에서 설계된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기관인 뇌의 편도체가 다른 기능을 정지시키는 과정을 발견했다. 

코로나19 공포가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다. 국내 확진자가 7300명, 사망자는 50명을 넘었다. 세계적인 확산세도 폭발적이다. 100여개국에서 10만여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목전에 이르렀다.

코로나19가 일상을 삼키고 있다. 두려움이 공포를 부르고 사회는 과잉반응한다.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염려증을 불러왔다. 약간의 이상증세만 보여도 감염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다. 기침하는 승객과 출근했다면 불안에 떤다. 고혈압이나 당뇨, 암 등 기저질환자들의 공포는 더욱 크다. 불면증과 신경쇠약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공포로 자기방어 기제가 발동하면서 마스크 대란이 발생했다. 대공황 시기에 은행이 망하기 전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갔던 것(뱅크런)처럼 한국에서는 한정수량 공급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아침 일찍 약국으로 달려간다(파머시런). 시민들에게 마스크는 코로나19를 방어할 ‘절대 반지’가 되었다. 최선의 감염증 예방은 확진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감염병을 두려워하면서 오히려 병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감염자인지 모를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장사진을 친 것을 보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실제 마스크 구매자 행렬 속에 확진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상식과 비상식이 공존한다.

그리고 공포는 배제와 분리, 혐오를 부추기고 희생양을 만든다. 확진자는 누구로부터 감염병을 얻는 피해자이다. 그런데도 확진자의 사생활이 폭로되고 인신공격이 이어진다.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이나 백화점, 영화관 등은 감염병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확진자가 되면 아파트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이사가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신천지 교회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포 반응으로 생존이 가능했던 정글이 아니다. 이성을 활성화시켜 공포 DNA의 오작동을 막아야 한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가 동원 가능한 자원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진은 의사 10여만명, 간호사 30여만명이다. 그들은 코로나19의 와중에도 교통사고, 뇌졸중, 골절, 암 환자 수술을 위해 칼을 잡아야 한다. 의료인력이 무한정 자원이 아닌 것이다. 마스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마스크 생산국이지만 하루 생산량은 1000만장에 그친다.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열악한 나라들도 많다. 최고급의 마스크만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행동의 길잡이는 과학이어야 한다. 국내 사례로 볼 때 코로나19는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은 낮다. 지금까지의 국내 사망률은 0.7% 정도다. 2015년 발생한 메르스의 사망률(21%)보다 현저히 낮다. 사망자는 주로 고령의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다. 코로나19 감염이 곧바로 세상과의 이별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한한 자원은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먼저 배분되어야 한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국가나 구성원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가 감염병 수칙을 수시로 바꾸는 일은 곤란하다. 그리고 간호사의 머리채를 잡거나, 방역요원에게 침을 뱉고, 감염 사실을 숨기는 것은 구성원이 할 일이 아니다. 위기는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가 아니고 허둥지둥할 때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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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가뭄의 백운산 골짜기를 지나간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흥건한 가운데 생강나무 꽃송이가 꿈틀거린다. 가벼운 봄 흥분을 이기지 못해 야호, 소리를 질렀다. 아뿔싸, 겨울 기운이 낭자한 곳에서의 메아리는 그만큼 날카롭다. 바위를 굴러 떨어뜨리는 작은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 우르르 쏟아지는 돌들. 이 와중에 누가 소리를 질렀느냐, 왜 고함을 쳐서 산봉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느냐를 따지는 건 이 급박한 사태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그건 소리에 소리를 더해 바위를 더 부를 뿐이다. 나중 사태가 수습되고 난 뒤에 물어도 늦지 않다. 엎질러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얼른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뭣이 더 중하단 말인가.

물론 백운산을 오르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칠족령 고개를 넘으며 생각을 더해 나갈 때 슬그머니 떠오르는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나라에서 추위 내기 대회가 열렸단다. 어느 마을에선 겨울에 불이 언다고 한다. 그 모양이 활짝 핀 꽃 같아서 집 안에 들여놓기도 한단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누가 나선다. 추워도 너무 추워 말마저 언단다. 입에서 나온 말들이 영하에서 그대로 얼어버린다니 말 다한 셈. 그래서 봄이 되면 온 동네가 시끄러워서 죽겠다나 뭐라나. 

말이야말로 참 무서운 질병이겠구나, 생각하면서 골짜기를 빠져나오니 동강이다. 미끈한 강, 튼튼한 강. 형님처럼 믿음직한 강,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강. 이 강도 얼마 전에는 꽝꽝 얼었다. 물이 바닥에서부터 언다면 물고기는 겨우내 어디에서 살 방도를 찾겠는가. 물은 바깥에서부터 얼어 길쭉한 방을 만들어 준다. 덕분에 물고기는 얼음을 이불처럼 덮는다. 이제는 모두 풀려났다. 물도 풀렸고, 물소리도 풀려났다. 물고기도 수척해진 몸을 풀고 있겠지. 아득한 뼝대가 발을 담그는 강가에 갯버들이 있다. 나에겐 봄의 한 지표가 되는 나무이다. 이 강에서 겨울에 벌어진 일을 모두 기억하는 나무. 우람히 흐르는 강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봄기운을 잔뜩 짊어진 갯버들. 애벌레처럼 올해의 꽃이 꿈틀거리는 갯버들(사진)에 최근의 시름을 얹어두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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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삶이다. 공생처럼 보이지만 다른 생물의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얹혀살이 관계다. 우리는 남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사람에게 ‘기생충 같은 놈’ ‘빈대 붙지 말라’고 힐난한다. 자립할 의지도 생각도 없는 것이라면 어디든 기생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다. 독자적인 노선도 정책도 없고, 선거 공약도 없이 다른 정당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활용하면 기생충과 다를 바 없다. 기생정당이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관계가 그렇다. 전자가 숙주요, 후자가 기생생물이다. 기생의 티는 강령과 당헌에 그대로 드러난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용으로 급조한 정당이라 강령은 대여섯 줄에 불과하고 당헌에는 목적 조항도 빠져 있다. 한 줄짜리 비전과 몇 줄의 강령으로는 당의 이념과 비전, 정강정책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미래통합당이 숙주이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내용을 채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짜정당이라는 논란에도 법정 요건이라는 형식은 갖추었으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성립했다. 아무리 정당 설립이 자유라지만 독자성도 없고 숙주에 빌붙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기생정당이 민주주의국가에서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오점이다. 비례대표 배분용 정당투표는 정당의 정책과 선거공약이 있어야 가능한데, 미래한국당은 비례후보 명단만 있을 뿐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당명에 붙여진 미래라는 장밋빛 수식어가 무색하게 미래는 없다. 총선 후에는 숙주에 포식되어 사라질 몸이다. 

기생정당의 설립주체는 미래통합당이다. 범여권 주도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때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위성정당 설립의 꼼수로 제도의 취지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세력이다. 어느 법학교수가 지적한 알바니아의 역사적 경험을 경고와 교훈으로 새겨듣지 않고 묘수라며 덥석 그 길을 택했다. 제도의 결점을 파고들어 범여권 ‘4+1’의 잘못을 입증하겠다는 전략이란다. 악법에 대한 불복종이자 정당행위라고 강변한다. 불법 선거법 개악에 대한 정당한 응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수준을 위성정당이 난립했던 알바니아 수준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를 경고한 당사자들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후진적인 것이 아니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도입취지를 무너뜨리려는 그들의 꼼수가 문제다. 준연동형 비례제의 빈틈을 파고든 위헌적이고 탈법적인 기생정당의 출현은 의석 챙기기에 몰두한 자들이 만들어낸 정치후진성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공한 뉴질랜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스스로 구린 구석이 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제 대한민국도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는 국가에 비교되는 정치흑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앞으로 알바니아와 함께 후진정치의 예시로 회자될 것이다. 탈당과 합당, 정치적 이합집산이 선거철 풍경인데 이에 더해 시한부 정당까지 창당하는 후지디 후진 정치생태계는 변함이 없다.  

미래한국당 대표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더불어민주당도 꼼수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미래통합당과 그 기생정당의 위력을 간파한 여당과 진보시민사회가 분주하다.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으로 맞불을 놓을 것인지, 범진보세력의 ‘선거연합정당’으로 대응할 것인지 논란 중이다.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제1당 고수에 대한 조바심과 원칙론의 팽팽한 대립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전 당원 투표로 정하기로 했다. 이에 반해 정의당은 어떤 경우라도 ‘비례용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칙에 반칙으로 맞서는 저열한 수를 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의 움직임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격한 비난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이번주가 고비다. 만일 집권여당이 비례대표용 정당창당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비난의 화살은 몇 배가 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비민주적 정치행위이자, 야당이 기생정당을 급조할 때 고발까지 했던 터라 ‘내로남불’이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비난은 잠깐이라며 몇 석 더 얻어 제1당이 되려는 현실론은 소탐대실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편법과 꼼수가 아니라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정치개혁을 위해 손잡은 ‘4+1’ 협의체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떠올려야 할 시간이다. 정치는 게임도 아니고 수학, 공학도 아니다.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이라는 미국 사회운동가의 말이 와 닿는다. 계산기 두드리며 꼼수를 찾을 시간에 정책과 공약을 가다듬어 정책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대의민주주의를 지키고 공동체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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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흩어져 있던 민심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언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이클 최 미국 UCLA대학교 교수는 저서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가>에서 “시위대의 수가 충분해서 경찰이 구속하거나 억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참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조정(coordination)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공유지식(shared knowledge)이 창출되는 사회적 과정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고, 상대가 안다는 사실은 내가 알고, 이 사실을 서로 아는 상태”가 공유지식이다. 공유지식의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공식행사, 집회, 미디어 이벤트 그리고 공공 의례(儀禮) 등이 있다. 네트워크가 강할수록 자신들만의 공유지식을 산출하는 능력이 높게 나타난다. 전광훈 목사가 이끌었던 광화문광장 집회와 이만희 목사의 신천지교회가 그랬다. 

신천지 교인들은 불문곡직 만인의 공적(公敵)이 됐다. 끓어오르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고자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은 두 번의 큰절로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 앞서 신천지 측은 홈페이지와 유튜브, 페이스북 계정 등을 통해 낸 입장문, 그리고 교인 명단 제출 등 나름 조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뒤이어 허위 명단 제출과 중국 우한에 신천지 지교회가 있다는 사실 등을 은폐한 것이 드러나면서 공분(公憤)을 더 키웠다.

전 목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구속되기 전 광화문 집회 단상(2월23일)에서 “야외에서 (코로나19) 감염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며 “하나님은 전염병에서 우리를 고쳐준다. 다음에도 예배 오시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협조하기보다는 정권 타도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 지지자들에게 정부에 비타협적으로 임할 것을 명하는 조정을 유도했다. 모두 악수(惡手)를 뒀다. 

사회심리학자들은 타인의 신념에 대해 오도(誤導)된 신념을 가지고서 공유지식을 형성하지 못한 상황을 가리켜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과학적 사실과 동떨어진 ‘요설(妖說)’ 같은 주장이 난무하는 광화문광장이 그랬다. 오염된 언어들이 광장의 허공을 가로지르며 낡고 찢어진 깃발처럼 나부꼈다. 조선시대 면암 최익현이 광화문에 엎드려 강화도조약(1876) 철폐를 요구하면서 올린 ‘도끼상소’ 기백은커녕 ‘촛불’로 상징되는 정의와 공정 모두 실종된 지는 오래다.

시나브로 코로나19로 문재인 정권의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실기(失機)와 실언(失言)한 정부·여당이 진상을 호도(糊塗)한 것이 화를 키웠다. 설상가상으로 바이러스의 조기 소멸을 점쳤던 대통령의 낙관적 언어는 의도치 않게 허언(虛言)이 됐다. 주워 담을 수 없는 패착(敗着)이었다. 대통령은 그 결과 깊은 정치적 내상을 입었으며, 관련 참모들은 모두 대역죄를 지었다. 애꿎은 시민들만 졸지에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마스크 유랑민’ 처지가 됐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대리석 바닥에 던져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마스크 구매행렬은 정권 위기의 전조를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이다. 그렇다면 하루바삐 마스크 품귀 현상을 잠재우는 게 상책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곤 진실한 사람들(good men)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라며 반어법으로 말했다. 세월호 참사 때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취임사에서 굳게 다짐했다. 봄이 오면 우리는 오염된 광장을 청소하고서 정의와 공정 그리고 민주주의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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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서울시가 도심 집회를 금지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8일 서울시청 앞 세종대로가 텅 비어 있다. 김기남 기자

한국사회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은 지 9일로 꼭 50일이 지났다. 중국 우한에서 온 35세 중국인 여성이 처음 확진된 1월20일 한국은 4번째 감염국이 됐고,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2월18일 확진된 61세 여성(31번)은 2차 대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한때 909명까지 솟은 하루 확진자는 8일 367명, 9일 248명으로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신천지 교인과 감염자 조기격리에 주력한 방역이 전환점을 맞은 셈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확진자 90%가 나온 대구·경북이나 그외 지역에선 산발적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감염국이 109개국으로 늘어난 해외로부터의 유입도 막아야 한다. 이제 질서있게 대응할 틀은 갖췄단 자세로 마지막 긴장을 높일 때다.

[시사 2판4판]토끼 농장 (출처:경향신문DB)

돌아보고 다질 게 있다. 먼저 연대의 정신이다. 처음에 우한 교민 수용 문제가 불거졌을 때 코로나19 공포와 지역 갈등을 녹인 것은 ‘우리가 아산(진천)이다’라는 환영 글이었다. 대구 병상 부족엔 광주가 ‘달빛연대’ 손을 내밀고, 전국의 기업 시설들이 뒤따르고 있다. 대구엔 지금도 자원봉사자가 몰려들고 있다. 지쳐가는 그들에게 대구 서문시장은 속옷·양말을, 칠성야시장은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반대로 “대구사태” “대구봉쇄”와 같은 가슴을 후비는 막말도 나오고 있다. 말 한마디에 어깨 힘이 솟거나 다리 힘이 빠지기도 한다. 연대를 갉아먹는 언어가 발붙이지 못하게 집단지성이 강화돼야 한다.

배려는 더 촘촘해져야 한다. YWCA가 시작한 ‘애프터 유(After You)’ 해시태그 물결이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지고 있다. 의료진이나 건강 약자들에게 보건마스크를 양보하자는 캠페인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부터 나누겠다는 마음에 공동체의 건강함이 배어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부하는 일부 교회들이 새겨야 할 일이다. 대구 출신이어서 진료를 거부당하자 그 사실을 숨긴 채 서울백병원을 찾았다가 병원 일부가 폐쇄된 일도 있었다. 재발되지 않도록 행정력이 작동해야 한다. 확진자 정보 공개도 개인 노출은 자제하고 시간별 방문 장소와 방역 현황만 알리는 쪽으로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손가락질이 두려워 감염자들이 더 깊이 숨는 일을 막아야 할 때다.

추경 편성은 더 확대돼야 한다. 자영업·소상공인들의 ‘SOS 자금’ 신청이 줄잇고, 관광·여행업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됐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9일 “추경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당의 생산적 제안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라고 했다. 바람직한 자세다. 세금 감면을 빼고 8조원 정도 지출될 추경은 소외계층이 체감할 수 있게 충분히 적기에 집행돼야 한다. 이제 정부도 시민들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과학적 사고로 빈틈없이 약한 사람들을 챙겨가야 한다. 외환위기 때 벌인 금모으기 운동이 지금도 회자된다. 난국 속의 그런 감동은 많을수록 좋다.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말이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에게, ‘함께 잘 극복했다’는 자부심이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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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9일 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회의에서 “코로나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은 국난극복위에 당력을 모으기 위해 4·15 총선 정책총괄 조직인 미래선대위원회 활동을 중단했다. 김영민 기자

코로나19로 고통이 가장 큰 계층은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자영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매출이 반 토막 났다고 한다. 소득이 격감하고 해고 위험에 처해 있는 돌봄·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하소연도 잇따른다. 조만간 한계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들을 부축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 등은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했다. 코로나19 피해계층에 집중해서 한시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옳은 방향이지만 시행하려면 넘어야 할 관문이 너무 많다. 또 재난기본소득은 재정투입 부담이 큰 반면 지원규모는 적은 단점이 있다. 1인당 50만원을 1000만명에게 지원해도 5조원이 든다. 

그런데 정부 예산으로 취약계층의 혜택을 늘릴 수 있는 제도가 있어 시민사회단체들이 확대 시행을 주문하고 있다. 긴급복지지원제도가 그것이다. 긴급복지지원제는 갑작스러운 위기로 생계가 곤란해진 저소득층을 정부 예비비로 신청 후 48시간 내에 지원,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4인 가족 기준 월 123만원의 생활비를 6개월간 지급하고, 의료·교육·주거·복지시설이용 등도 지원한다. 요건에 맞지 않게 수급한 경우에는 돌려주어야 한다. 선별적 복지로 효율성이 높으면서 무엇보다 기존에 시행해온 제도라 저항이 작다. 까다로운 지원 요건이 문제이기는 하다. 가족 중 주소득자가 갑작스럽게 실직·폐업했거나 사망한 경우 등이어야 하는 데다 소득·재산 등 지급 기준도 엄격하다. 저축이 500만원 이상이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재산기준을 완화하고 코로나19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향으로 요건을 고쳐 시행한다면 이들에게 ‘맞춤형 지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대책이 정작 피해계층은 비켜가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국회가 코로나19 추경을 심사하고 있다. 긴급복지지원제를 ‘코로나19 피해 저소득층’으로 확대 시행할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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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4·15 총선을 앞두고 대폭 물갈이 공천을 통해 정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금 이 약속은 공수표가 될 게 자명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40명 이상 물갈이를 자신있게 선언했지만 9일 현재 교체 비율은 전체(129명)의 26%(34명)를 기록하고 있다. 86그룹은 대부분 공천을 받아 세대교체론을 무색하게 했다. 청년 후보를 키우고 출마 후보 중 여성을 30% 배치하겠다고 요란 떨었지만, 경선을 통과한 2030청년 후보자는 1명뿐이다. 공천이 확정된 여성 후보자는 10% 초반에 불과했다. “여의도는 유리천장도 아닌, 콘크리트천장”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질서 있는 혁신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자화자찬도 유분수지, 부지깽이에 금칠하는 격이다. 

미래통합당도 마찬가지다. 황교안 대표까지 나서 ‘현역 50% 물갈이’와 ‘2040세대 30% 이상 공천’ 의지를 피력했지만 역시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현역 교체율은 37%(44명)로 그나마 민주당보다는 높다. 하지만 현역이 교체된 자리에 과거 친이(친이명박)계 인물들이 귀환해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말았다. 한선교 의원 등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놓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서 새출발을 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통합당 공천 확정자 111명 중 여성은 14명(12.7%)이었다. 

여야는 선거 때마다 청년과 여성, 정치 신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퇴행적 정치지형은 늘 그대로였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존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와 쇄신보다 당선 가능성을 앞세운 당 지도부의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국회는 청년·여성 인구의 비중을 의석에 반영하지 못한,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성이 왜곡된 국회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로 세계 평균인 24%에 크게 떨어진다. 20·30대 국회의원 비율은 스웨덴 34%, 독일 18%, 일본 8%, 미국 6.7%인 데 비해 한국은 0.7%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성별·세대별 대표성을 개선하는 것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나쁜 정치를 바꾸는 일을 기성정치에 맡길 수도 없다. 시민들은 참신하고 능력있는 인물이 들어와 정치를 혁신해주기를 바랐지만, 이번에도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결국 ‘젊은 정치’를 골라내는 혜안은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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