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가 문제였지, 미래라는 것들 때문에 열 받았지. 망할 미래 같으니라고.

곰곰이 따져보니, 진만은 ‘미래’라는 이름 자체와도 좋지 않은 기억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진만의 고등학교 동창 중엔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진만이 살던 도시에서 꽤 유명했던 ‘미래내과의원’ 원장의 첫째아들인 ‘최미래’. 나중에 병원을 물려줄 생각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미래는 공부를 꽤 잘했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뭐 나중에 병원을 물려받으려면 어쩔 수 있나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장난 삼아 부르던 ‘최 원장’이라는 별명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최 원장, 그러지 말고 괜찮은 원무과장 한 명 미리 뽑아놓을 생각 없는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 대학 입시 포기하고 미리 회계원리 공부만 죽어라 하겠네. 미래는 친구들의 그런 농담을 웃으면서 받아주기도 했다. 

미래는 공부도 잘했지만, 체격도 좋았고 운동도 잘했다. 씀씀이도 나쁘지 않아서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 진만 또한 미래와 함께 김밥천국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돈가스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오백원을 더 내고 라면과 김밥을 먹을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느라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진만에게 미래는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김밥천국 따위에서”라고 아무런 악의 없이 툭 내뱉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다가왔는지, 진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장면이 불쑥불쑥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또 하나. 진만의 기억 속에 남은 미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학교 식당이 내부공사에 들어가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반마다 급식 당번을 정해 밥이니 국이니 직접 가져와야 했는데, 진만의 반에선 늘 미래가 그 일에 끼었다. “선생님, 이건 공정하지가 않은데요?” 사흘 연속 급식 당번을 했던 미래가 담임에게 항의했다. “뭐가?” 담임이 묻자 미래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4교시 수업 끝나기도 전에 가야 하는데 매번 제가 당번이니까요.” 그러자 담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최미래. 원래 동등하지 않은데 동등하다고 말하는 건 나쁜 거야.” 하필 그날은 진만이 미래와 짝이 되어 급식 당번을 맡은 날이었다. “좆밥 같은 기간제가….” 미래는 국이 가득 든 들통을 진만과 함께 나르다가 이렇게 말했다. “기간제들이 겁이 없어, 겁이.” 미래는 계단 앞에서 쉴 때 카악, 퉤! 들통에 침을 뱉기도 했다. “너 오늘 국 먹지 마라. 개새끼들,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진만은 그런 미래에게 화를 내지도, 뭐라 말하지도 못했다. 동등하지 않았으니까. 진만은 나중에야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진만은 또 다른 ‘미래’를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다. 군 제대 후 부랴부랴 복학하느라 급하게 구한 학교 근처 단독주택 이층 방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거기에서 미래를 만났다. 미래는 주인집에서 키우는 조그마한 누런색 믹스견이었다. 대문 옆 목련나무 아래 합판으로 만든 집이 있었고, 거기에 쇠줄로 묶여 지냈다. 일흔이 넘은 주인집 할아버지는 미래를 몹시 예뻐했는데, 미래 역시 할아버지만 보면 마치 여름 성경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거의 졸도할 것처럼 좋아했다. 

단, 미래는 그 외 사람들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댔다. 그 집에는 진만 말고도 모두 네 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미래는 그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정말이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우박처럼, 쉬지 않고 맹렬히 짖어댔다. 밤이나 낮이나, 자기 말만 해댄 것이었다. 

한번은 아래층에 사는 사십대 아저씨가 자정 넘어 들어오다가 또다시 사납게 짖어대는 미래와 맞부닥뜨린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술이 불콰하게 오른 상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네가 미래라고? 이 개 같은 미래야. 짖기만 할 줄 아는 놈의 새끼가….” 아저씨는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미래와 말싸움을 해댔다. 

방마다 불이 켜지고 이윽고 주인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다. 주인 할아버지는 대뜸 세입자 아저씨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네 왜 우리 미래한테 뭐라고 그러는가? 얌전하게 잘 있는 미래가 뭘 잘못했다고? 응!” 진만은 방 밖으로 나가서 세입자 아저씨를 돕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었지만, 그저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어차피 결론은 뻔했으니까. 주인 할아버지에게 세입자는 개만도 못한 처지였으니까….

진만은 그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다 자취방에서 함께 사는 정용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난 말이야. 그래도 미래 생각만 안 하면 나쁘진 않은 거 같아.”

“그게 뭔 소리야?”

정용이 양말을 개면서 물었다.

“그냥 미래만 생각하면 더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고 올 게 안 오냐?”

“그래도 기분은 덜 나쁘니까.”

정용은 슬쩍 진만을 보다가 이번엔 수건을 개면서 말했다.

“그냥 견디는 거지. 나쁜 걸 견뎌내는 게 민주주의래.”

진만은 뚱한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진만은 정용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바로잡지는 않았다. 이 미래나 저 미래나 나쁜 걸 견디는 건 어차피 똑같으니까. 그러면서도 진만은 마치 수능 금지곡처럼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그제야 미래가 조금 우스워졌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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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의 급작스러운 확산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고 있지만,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바이러스 대응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현안들과 미래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이슈와 쟁점이 무엇인지, 각 당과 후보자들이 추구하는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왜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정책이 서로 경쟁하며 논의되어 결정되는 정책선거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가.

우선 선거를 바로 앞둔 시점에서의 정당 간 합종연횡은 추구하는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기보다, 누가 의석을 더 차지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 선거라는 링 위에 오르는 선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고, 정당이나 후보가 제시할 정책도 구체적이지 않게 된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의 정책이 제시된다고 해도, 이를 비교하고 논의할 장(場)이 별로 없다는 점도 정책선거를 어렵게 만든다. 각 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총선 1호 공약이 무엇인지 아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청년, 주거, 지역 문제 등 삶에 밀접한 정책 제안이 각 당과 후보마다 어떻게 다른지, 어떤 정책이 더 나은지 토론하고 논의하는 공간도 거의 없다. 검증되지 않은 공약들은 선거 공보지에 인쇄되고 결국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무엇보다 정책선거를 어렵게 하는 것은 주민들이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 누가 정책을 만드는가. 공약을 제시한 선거 후보와 정당에 주민들이 투표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인가. 주민이 자신의 필요를 주민 청원 등의 형태로 표출하고, 주민 청원을 주민 스스로가 논의하여 선거의 어젠다와 정책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정책선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참여 통로의 확보가 시급하다. 

예를 들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앞으로 이와 관련한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도 관계당국, 전문가, 지자체와 함께 시민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주민들이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는지, 지역별·계층별로 어려움과 대안은 어떻게 다른지 등, ‘탁상공약’과 ‘탁상행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직접 하소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 후보, 주민들이 정책이라는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발전시키는 역할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온라인을 통한 정치 참여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정책 설계와 발전이 쉬워진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국민청원과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민들의 요구를 파악하여 정책에 반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중앙 정치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역구와 지자체별로 시민들의 온·오프라인 참여를 통해 주민들이 청원하고 선거의 공약들을 비교하고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거리가 조용하다. 시민들이 차분하게 21대 총선의 정책들을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하여 고민하고 논의하여 정책선거를 가능하게 할 기회이다. 욕설과 상호비방, 가짜뉴스는 빼고.

<이태동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주)우리들의 주민청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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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의 기준’을 시장·경쟁·효율 중심에서 공공·협업·가치 중심으로 이동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노동권은 비정규직·노인 등 또 다른 ‘노동 약자’들의 노동권과 직결된다. 사진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설요한씨의 죽음에 항의하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농성할 당시 모습이다. 김정근 기자

경북 칠곡의 한 중증장애인시설에서 입소자 20명 이상이 코로나19에 집단으로 감염됐다고 한다. 명절을 맞이하여 대구에 있는 집에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은 40대 입소자에게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중증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질병에 매우 취약하다. 비좁고 열악한 시설에서 24시간 집단생활을 하다보면 개인위생 수준이 가정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사스나 메르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발생할 경우 가족이나 활동보조인들이 있어서 빠른 발견과 대처가 가능하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이런 혜택을 못 받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따라서 관계기관에서는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갖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시설 대표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쉬쉬하고 감출 수 있다는 점도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우려스럽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야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양보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정책들이 더욱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증장애인시설 등에 필요한 관련 정책이 법제화되어 안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마음을 활짝 열고 교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점차 사라지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더욱 열리게 될 것이다.

<이성심 |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산지회 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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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경씨는 택배노동자에게 KF80 마스크를 감사 메모와 함께 전했다. 그는 마스크가 더 필요한 이들과 여유분을 나누겠다고 했다. 최씨 제공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가 그림을 그린 <안데르센 메르헨>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뭉뚱그려 무시하지 말고 저마다 그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바로 동화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거지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자리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다. 지금처럼 불안 속에 일상을 지탱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시기에는 상당히 위안이 된다. 한꺼번에 잠적해버린 것 같은 세계의 활력이 어딘가에는 남아있으리라는 든든한 기분이 든다. 동화책에는 고양이와 노루와 공주의 분투가 나온다. 가혹하지만 부딪쳐볼 만한 시련이 있고 우연의 부드러운 도움이 있고 필연적인 보상이 있다. 절망은 침착한 노력으로 채워지고 책 속의 친구들은 바닥에서 벗어난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이름들이 있다. 라일락 아주머니, 주석으로 만든 병정, 하늘을 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똥구리는 실명은 아니지만 더없이 당당한 이름이다. 우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주인공으로 호명할 수 있다. 현실의 세상도 그런 조용한 이들의 도전과 모험으로 움직이지만 어려운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스르르 잊히는 경우가 많다. 동화는 이것을 찾아내고 기억하며 험난한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굴뚝청소부는 책 속에서 “정말 나랑 같이 난로를 기어 올라갈 용기가 있어?”라고 묻는다. 너와 내가 무쇠 난로와 연통을 지나면 굴뚝으로 나갈 수 있고, 거기서는 가야 할 곳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독려한다. 행복한 사람만큼이나 슬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노래하는 새 나이팅게일은 “황제 폐하의 정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날아갈 거예요”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대유행을 선언했고 국가별 생사의 기록이 주식시세표처럼 그래프로 발표된다. 사람들은 확진자 번호로 불리는 낯선 이의 구체적 동선이 담긴 긴급재난문자를 읽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타지역 거주 확진자 발생, 해당 지역 방역 완료, 관내 경유 확인, 마스크 수량이 제한적입니다’ 같은 경고문구가 날아온다. 그 사이에서 가쁜 호흡을 이어가고 있을, 동화라면 꼭 붙들었을 이름들을 떠올린다. 바이러스보다는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민원을 더 걱정해야 했던 콜센터의 목소리들, “문 앞에 택배 놓고 갑니다”라고 ‘딩동’ 소리를 남기며 우리들의 숨이 되어주고 있는 택배기사님들, 학교에 가고 싶다고 스마트폰 창에 상태 메시지를 올리는 어린이를 생각한다. 뚝 떨어진 요양시설에서 오래 외롭게 편찮으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봉사자의 도시락을 기다리는 중증장애인 여러분은 오늘을 무사히 보내고 있을까. 유학을 준비하며 공부하던 책을 덮고 병원으로 되돌아간 간호사의 이름을 읽는다. 인적 없는 거리에서 이웃을 기다리며 가게 문을 열고 소포로 보낼 몇 권의 책을 포장하는 책방 직원의 두 손을 그려본다. 극도의 긴장까지 목숨 걸고 돌봐야 하는 의료기관과 공공기관의 공기는 상상으로도 가늠이 잘 되지 않지만 그곳에 그들이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라일락 아주머니>에서 할아버지는 독한 감기에 걸린 증손자를 위해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그리고, 그리고, 그래요”로 나지막하게 이어지다가 끝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동화 덕분에 부러진 나뭇가지에 물을 주었더니 초록색 눈이 나오고 다시 커다란 나무로 자라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이름 없는 이름들의 힘으로 이곳에도 라일락의 봄이, 건강한 계절이 곧 올 것을 믿는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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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 무와 상추/ 푸른 미나리, 흰 토란에 붉은 차조기/ 생강·마늘·파·여뀌로 오미를 갖추어/ 잘 데쳐서는 국 끓이고 담그기는 김치(菹)라네.” 

조선 문인 서거정(1420~1488)이 노래한 채마밭 풍경이 그저 소담하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이런 법이지 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가운데 미나리는 새봄의 맛을 대표하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친숙한 채소다. 워낙 한반도 어디서나 잘 자라 일찍이 텃밭이며 습지에 심어졌고, 상하귀천 모두의 국·나물·김치가 되어주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도 미나리는 도시 근교 농업과 맞아떨어졌다. 박지원(1737~1805)은 오늘날 왕십리의 무, 석관동의 순무, 서소문 밖의 가지·오이·수박·호박, 연희동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 청파동의 미나리, 이태원의 토란을 가장 환금성 높은 서울 채소로 손꼽았다. 1831년 청나라를 다녀온 한필교(1807~1878) 일행은 낯선 음식에 질려 먹는 타령 하던 끝에, 팔뚝만 한 무, 희디흰 배추 줄기, 청파동의 미나리로 김치를 담가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소리를 하게 되었다.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듣고 있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마치 눈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는 듯”했단다. 아,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미나리는 활용도 배선(配膳)도 다채롭다. 미나리 자체의 풍미와 빛깔과 질감을 한껏 살린 미나리김치 한 젓갈, 미나리물김치 한 모금은 언뜻 봄의 관능을 일깨운다. 미나리나물은 집집마다 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무침과 볶음이 다 좋다. 서거정은 회에다 미나리국을 곁들여 회 상차림의 균형을 꾀하기도 했다. 복국 등 온갖 생선국에다 미나리를 날로도 올리지만, 회에 미나리국을 따로 곁들이는 방식에도 더 파고들 필요가 있겠다. 옛 조리서에 보이는 미나리 고명법, 곧 미나리 통통한 대에 녹말 묻히고 데쳐 풀빛 살려 쓰는 방식, 그리고 녹말 묻힌 달걀옷을 입혀 살짝 지져 풀빛과 어울린 노랑이 감도는 장식으로 쓰는 방식 또한 복기할 만하다. 데쳐 그대로 미나리만으로 매듭을 짓거나, 고기며 생선이며 두부, 오이, 파, 잣 등을 부재료로 해 맵시 있게 감아 내는 미나리강회는 일품요리로도 손색이 없다. 이색 샐러드 개발에 여념 없는 요식업계에서도 반드시 주목해야 할 줄로 안다. 미나리를 올리브유 두르고 짓찧으면? 이만 한 페스토 재료가 또 없다.

끝으로 미나리 산지를 한 군데 추천한다. 경상북도 청도는 미나리 농사에 힘써온 곳이다. 물빠짐이 좋은 화산암질 땅에 기른 미나리는 속이 차 있으면서도 씹기에 부드럽고, 향은 특별히 높고 좋다. 이번 감염병 사태에 청도 또한 상처를 입었다. 모두의 평화를 빌며, 청도 사람들의 회복을 빌며, 글쓴이는 이 봄에 청도 미나리도 씹겠다.

<고영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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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비상행동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1대 총선 정당 기후위기 평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 탄소배출 억제 정책, 탈탄소 사회 전환을 위한 예산 편성 등에 대해 각 정당의 입장을 물었다. 이들은 “국회 다수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기후위기 대응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날마다 살얼음판이다. 이 전쟁의 주범은 누구인가? 박쥐인가 우한인가 신천지인가.

과거 전 세계를 떨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 탄저병 그리고 코로나19 등등 각종 전염병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고 폴 엡스타인 박사는 2011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lt;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Changing planet, changing health)&gt;에서 지금 우리를 떨게 하는 코로나19 같은 역병의 주범이 무엇인가를 방대한 연구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풍토병인데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모기가 급증했고 결국 남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인간에게 1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기와 해충의 세계에서는 0.1도도 엄청난 변화라서 기후변화 때문에 모기가 ‘좀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박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아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에선 에볼라 바이러스로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가뭄 때문이었다. 지독한 가뭄으로 먹을 것을 찾아 야생동물을 사냥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 2016년 시베리아 지역에선 75년 만에 탄저병이 발병하였다. 수십년 전 탄저균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지구 온난화로 해동되면서, 탄저균 포자가 지면 위로 노출된 탓이다. 북극의 동토 아래 어떤 숲속의 마녀가 잠자고 있는지, 언제 깨어나 발톱을 세울지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폴 엡스타인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재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데, 동식물은 고통받지만 사람은 안 그럴 것이고, 피해를 보더라도 가난한 개도국 주민들일 거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 부부도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NBA 리그도 전면 중단됐다. 선진국은 우수한 과학기술과 청결한 환경, 넉넉한 자본으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한국 역시 그 편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앞에서는 국경이 없음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재난이 일상화되어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환경단체들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언급한 건 1990년대부터다. 그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 최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난한 나라와 말 못하는 동식물들만 고통받았지만, 머잖아 우리 모두 희귀 바이러스, 식량부족, 기상이변 같은 기후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환경단체가 아닌 미국 의학협회마저 “기온이 0.5도만 상승해도 우리에겐 참혹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가장 보수적이라는 과학자들도 함께 나선 마당이다.

코로나19의 창궐 앞에서 모두 애태우고 있다. 병든 뿌리를 두고 이파리에 약 바른들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폴 엡스타인의 책은 절판되었지만, 모든 재난의 뿌리, 기후변화를 더 염려하고 대비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선거가 코앞인데 거대 정당들의 기후정책은 애매하기 짝이 없고 기후리더는 정녕 어디 따로 숨긴 것 같다. <재정의>에서 저자 한근태 박사는 정치인을 ‘표식(票食)주의자’라 재정의하였다. 우리 목숨값, 알고 드시는지….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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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코리아빌딩 인근에 위치한 지하철 1·2호선 환승역인 신도림역에서 11일 오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승강장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우철훈 기자

1974년 8월15일. 국내에 지하철·전철이 처음 생겼다. 서울역~청량리역 간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에서 인천과 수원을 잇는 수도권 전철이 함께 개통했다. 기본요금 30원. 전기로 움직이고 지하로도 달리는 ‘전동차’를 마주한 시민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자동문은 문화충격이었다. 전동차 문이 자동으로 30초 동안만 열렸다 닫히니 어물대다가는 승차도 못하겠다고 걱정이 많았다. 당일자 경향신문은 “수도권 교통혁명 발차”라는 제목 아래 수도권 반경 45㎞ 지역이 1시간 생활권에 들었다고 대서특필했다. 서울 교통망의 주축으로 시민들을 교통지옥에서 해방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서울 북쪽으로 의정부·동두천까지, 남쪽으로 평택·아산까지 이어진 이 노선은 2000년부터 수도권·국철이라는 말 대신 ‘1호선’이라는 명칭으로 정리됐다.

1호선은 예나 지금이나 수도권 서민들의 귀중한 발이자 동맥이다. 서울을 오가는 가장 빠른 대중교통 수단이기에 아무리 붐비고 부대껴도 힘으로 버티고 탔다. ‘지옥철’의 시작이 여기였다. 객실 1량에 정원의 4~5배인 500~600명씩 들어차 아우성치던 시절도 있었다. 1990년대에는 승강장에서 승객을 밀어넣는 ‘푸시맨’이 맹활약했다. 1984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개통과 함께 신도림역이 새로 생기면서 혼잡이 극에 달했다. 환승통로에서도 사람들은 떼밀리듯 물결처럼 흘러간다. 1호선과 2호선을 갈아타는 신도림역은 서울에서 인천·수원으로 갈라지는 구로역과 더불어 지금은 곳곳에 많아진 환승역의 효시다.

신도림역·구로역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구로구 신도림 콜센터 직원 대다수가 이곳을 통해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송인원 기준으로 하루 평균 이용객이 신도림역 9만299명, 구로역 2만523명에 이른다고 한다. 2m 안전거리를 두고 싶어도 둘 수 없는 지경이다. 코로나 불안을 줄이는 자구책으로 마스크 2장을 덧대 쓰고 다니는 이들이 요즘 신도림역·구로역에서 부쩍 눈에 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역·구로역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서민들이 하루속히 불안 없는 일상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옥철 일상’이라 해도.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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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새로운 질병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벌써 많은 분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인과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질병과 싸우시는 분들과 그 주변 분들도 용기를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힘든 싸움에서 앞장서고 계신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소방대원 등 사회 안녕을 책임지는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스크를 나누는 이웃, 힘들어도 힘을 모으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 보여주시는 용기와 헌신에 저 또한 큰 힘을 얻습니다. 곧 총선이 다가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정치적 의지를 표현하는 기회입니다. 꼭 선거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걱정과 의견을 후보들에게 전달하십시오. 이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와 또 다가올 위기를 대비할 혜안도 이들과 나누어주십시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정치적 지지를 떠나 지금 이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보태주십시오. 이 위기가 끝나는 날 밝은 얼굴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요즘 같은 때 전직 대통령이 발표할 만한 글입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중 누구도 간단한 격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박근혜의 ‘옥중서신’을 받았죠. 그 편지는 정적에 대한 적대감과 꺾이지 않는 권력욕을 잘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기존 거대 야당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치라며 미래통합당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를 전달한 유영하 변호사는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입당했죠. 당장 황교안 대표는 입장문을 내며 반색했습니다.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 편에 서지 않았던 이들의 입장에서 면죄부와 현실정치의 인정을 동시에 받은 셈이니까요. 조원진 의원의 자유공화당은 섭섭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태극기집회를 주도하며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해온 일등 공신이 이들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야말로 박근혜 말처럼 “배신의 정치”가 아닐까요.

박근혜는 늘 절대적 충성을 요구해왔습니다. 최순실부터 경북의 지지자, 태극기부대는 그 요구에 충실하게 따랐죠. 개인적 울분, 과거에의 향수, 정치적 성향, 그 어떤 것이었든 박근혜를 통해 정치판으로, 광장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들은 사실과 이성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최순실의 태블릿PC는 조작이라고 “믿고” 박근혜는 억울하다고 “믿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빨갱이이고 한국의 공산화를 꿈꾼다고 “믿습니다”. 증거, 검찰 조사, 법원 판단으로 드러난 사실은 무시합니다. 문재인 정책은 중도 우파이고, 그의 비전도 그쯤 된다는 사실도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박근혜와 이들의 측근이 내려준 교시에 충실할 뿐이죠. 딱 종교의 모습입니다. 박근혜 자신은 어떤가요. 공익과 선의를 가장해 사리사욕만 채우며 거짓과 기만으로 추종자를 조종합니다. 사회와 나라는 뒷전이고 교세 확장에만 집중하죠. 이를 위해 나라 전체의 번영과 안정도 뒤흔들어버립니다. 종교지도자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한국은 종교 분쟁이 없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박근혜교는 민주체제를 위협했고 남북관계를 구렁텅이에 빠뜨렸습니다. 그 여진은 아직도 한국을 흔들고 있죠.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장로, 이승만 장로가 있고, 이들은 박근혜교 신자의 우상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들은 공산주의를 상대로 상상의 성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슷한 종교세력이 자라날 토양도 커갔습니다. 신천지가 그렇고 구원파가 그랬죠. 보통 사람들에게 생소한 교회들이 큰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게 우연일까요. 이들을 이단이라고 부르지만, 기존의 교회들은 얼마나 다를까요. 종교적 맹신과 집단적 사고 또한 이번 위기를 통해 돌아봐야 할 우리 안의 숙제 중 하나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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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가운데) 등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것이 멈춰 서고 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 수준의 총체적 경제위기로 전이 중이다. 세계 경제의 신경망 같은 역할을 하는 미국 금융시장은 완벽한 패닉 상황에 빠져들고 있고, 중국을 축으로 하는 전 세계 생산공급망은 당분간 위기 이전으로 복구되기 힘든 상황이다. 무역의존도가 GDP의 70% 육박하는 우리로선, 공급과 수요 모두에 걸쳐 미증유의 복합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단은 방역이 최선의 경제안정책이긴 하다. 하지만 현재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전 세계 코로나19 확산 추세를 보면, 사회적 이동을 멈춤으로써 그 전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단기간 내에 치료제 및 백신이 개발되기는 어려운 국면이다. 위기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최악의 위기를 상정하고 가용한 모든 재정·금융정책 수단을 동원해 선제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쓰나미가 몰려오면 오히려 그 방향으로 담대하게 노를 저어 나아가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책 조치들의 곁가지 단점들이 아니라 큰 장점을 보고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르핀은 아편의 일종이지만 잘 쓰면 사람을 살린다. 그런 면에서 정치권의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시의적절하고 또 긴요하다.

사실 우리의 고용구조는 내외부 경제충격에 대단히 취약한 구조다. 같은 경제수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 비율이 현격히 높다. 2017년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36.8%에 해당하는 636만명이 소상공인으로 분류된다. 이들 중 291만명이 자영업자이고 무급 가족종사자가 70만명에 육박한다. 업종별로는 절반이 넘는 인원이 도소매업 (161만명), 숙박 및 음식점업(136만명)에 종사한다.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의 숫자도 230만명을 상회한다. 이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가장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으리라는 건 명약관화하다. 이미 지난 2월의 실업급여 청구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제위기는 아직 그 시작단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다행히 여야 정치권에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결국은 포퓰리즘, 매표행위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상황이긴 한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적기다. 재원마련 및 지급방식 등에 대해 여야 정치권이 더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해서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방식이 된다면 이보다 더 민주적일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실기하게 된다. 다가올 총선과 이후 21대 국회 개원 때까지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 그사이 세계 경제는 팬데믹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21대 국회에서도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재원마련과 관련해서는 한국은행이 일정량의 정부채권을 매입해 주는 방안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 및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은 정부채권을 직접 매입해 주는 양적완화 정책을 적극 실시해 왔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아직 양적완화 정책을 취해 오지 않았다.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재정승수(fiscal multiplier)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병행되어야 하겠지만, 일본처럼 만성적이지 않고, 한시적인 조치라면 분명 실보다 득이지 않나 싶다.  

미국 연준의 경우엔 2008년 금융위기 시, 미정부채권 구매 및 유동성 공급을 위해 편법까지 동원했었다. 연준이 이자율이 제로에 가까운 자금을 월가 금융기관들에 빌려주고, 이 월가 금융기관들이 평균이자율 3%가 넘는 미정부채권을 매입하도록 유도해서, 그 이자차익만으로 무려 7조달러가 넘는 자금이 월가 금융기관들에 돌아가도록 한 선례도 있다. 물론 연준이 직접 매입한 미국채액만도 2조달러어치를 상회했다. 

비상상황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실제 우리 정부도 1997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당시 금융권 부실해소 및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32%에 해당하는 공적자금(168조원)을 투입했고, 작년 말까지 70% 정도가 회수됐다. 2019년의 경제규모로 환산하면 60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여한 것이다. 당시 조세부담 인상으로 이어진다며 강한 저항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미래로부터 돈을 빌려와 투입한 건 실보다 득이 더 컸다.

이번의 경제위기는 내버려두면 시장이 알아서 오류를 시정하는 통상의 ‘시장실패’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담대한 발상으로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한시적 재난기본소득은 그 첫출발이 될 수 있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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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3월 13일 (출처:경향신문DB)

너나없이 힘든 코로나19 유행 속에서도 유독 눈에 밟히는 사람들이 있다. 잠시 멈출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버텨가는 생계형 노동자들이다. 구로 콜센터 확진자인 40대 여성은 오전 7시까지 여의도 전경련회관과 증권사 건물에서 녹즙 배달을 하던 ‘투잡’ 노동자였다. 새벽에 빈 건물을 오르내리며 배달하고, 좁고 밀폐된 콜센터로 옮겨 감정노동을 해왔다. 이 콜센터에선 오후 4시 몸에 이상을 느낀 직원도 업무 종료까지 참았다 퇴근했다. 95%가 하청업체에 외주화된 콜센터는 연차도 쓰기 힘들고 의심환자가 나와도 쌓인 일감으로 계속 돌아가는 ‘노동의 막장’이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간호조무사 중에는 평소에도 낮과 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뀌어 돌아가는 3교대 근무자가 많았다. 지난 3일 확진된 30대 게임회사 직원은 오전 10시 출근해 연이틀 자정 가까이 퇴근한 IT 노동자였고, 서울의 20대 대학원생은 증상을 느껴 병원 진료를 받은 다음날에도 밤 늦게까지 12시간 동안 연구실에서 보냈다. 작업장이 열악해도, 몸이 피곤해도, 감염자 접촉 위험이 있어도 생계에 쫓겨 일감을 찾아 뛰어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멈출 수가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그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 생계는 사업주 결정에 저당잡힐 때도 많다. 제주의 한 호텔은 “연차휴가를 쓰겠다”는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강제했다. 호텔이 고용지원업종이 돼 휴직자 인건비의 90%까지 지원받지만, 사업주가 인건비를 더 줄이는 강수를 둔 것이다. 사업주가 외면하면 정부대책도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이 되는 꼴이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12일 만났다. 13일에는 이 장관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회동이 예정돼 있다. 둘 다 의제는 코로나19 대책이다. 정부와 한국노총이 만난 자리에서는 12개 산별노조 노동자들의 각종 고충과 요구가 생생히 전달됐다. 정부는 원·하청 간 마스크 지급 차별을 못하게 하고, 매출액이 70%나 줄었다는 노선버스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추가 지정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노동부 장관과 처음으로 공식 면담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정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제안했다. 모처럼 물꼬를 튼 노·정 대화가 생계·방역 위험이 겹친 노동 약자들을 위한 보호대책을 속도감 있게 세워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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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제네바 _ AFP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공식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첫 발병한 지 70여일 만이다. 세계 110여개국에서 12만여명이 감염된(사망자 4300여명) 상황을 감안하면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가 더 이상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닌 지구촌의 최대 현안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공조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어서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코로나19가 세계에 미친 심리적·경제적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소비 심리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가 얼마나 심각하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 같은 상황을 상당기간 연장시킬 공산이 크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1년 내에 세계 전체 인구의 40~70%가 감염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팬데믹 공포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이라면 코로나19가 신종플루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보다 치사율이 높지 않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여러 나라가 이 바이러스는 통제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지만 집단감염이나 지역사회 감염을 겪은 국가들의 사례에서 지혜를 모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무엇보다도 팬데믹 공포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각국의 공격적인 조치와 함께 국제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절실하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국가 간 공조의 필요성에도 자국 내 확산 방지를 위한 입국 제한 조치에 치중해왔다. 일부 국가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와 정치적 판단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인류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 아래 전 국가가 글로벌 공중보건 협력 및 경제위기 방지책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공동 방역을 위해 감염 경로의 확인과 확산 차단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이 절실하다. 한국 등 감염사태를 먼저 겪은 국가의 경험이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공포심리를 해소하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방책인 양적완화 도입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국내 방역과 경제 활성화에 주력하면서 전 지구적인 해법 찾기에 동참하기 위해 정책을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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