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눈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위로 오르면서 촘촘하지만 더 가는 줄기를 가진 느티나무를 보며 나는 뿌리에서 물관을 거쳐 비상하는 물을 상상한다. 물이 줄기의 가장 높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로 오를수록 점점 더 커지는 물관의 저항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무는 줄기와 물관의 표면적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본줄기의 단면적과 거기서 갈린 두 줄기 단면의 면적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느티나무 형상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뒤집어 보면 목 아래 기관에서 갈라지는 기관지 모습이 떠오른다. 기관은 지름이 약 1.5㎝이며 후두 아래로 10㎝ 정도를 내려간 다음 좌우 기관지로 갈라진다. 그 기관지는 15~23차례 더 나뉘다가 포도송이 모양의 작은 폐포에 연결된다. 

대략 1.1㎏인 허파에는 3억개 정도의 폐포가 있으며 이들 내부의 전체 표면적은 얼추 25평이 넘는다. 놀랄 만큼 넓다. 소화된 음식물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소장의 표면적은 이보다 더 넓어서 테니스장 크기에 이른다고 한다. 먹는 일이나 숨 쉬는 일 그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을 쉬는 까닭은 무엇일까? 심장이나 혈관과 같은 중간 기착지를 지난 공기, 특히 산소는 세포 안으로 들어와서 물질대사의 마무리 작업에 착수한다. 쉼 없이 영양소인 탄수화물이나 지방을 태우는 것이다. 그러한 느린 연소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은 공교롭게도 물이다. 이것저것 중간 단계를 다 떼고 결론만 말하면 우리의 허파가 1분에 약 16번 산소를 들이마시는 이유는 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그 사이사이 에너지 통화인 ATP와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허파로 들어온 기체 형태의 산소는 혈액이라는 액체 매질을 통해 전신의 세포에 전달된다. 하지만 공기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산소만이 아니다. 그냥 ‘아이쇼핑’하는 무심한 손님처럼 지나가는 질소도 있다. 미세먼지도 자주 들어온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중을 떠도는 세균이나 미생물들도 숨을 들이켤 때마다 우리 몸 안으로 침투한다. 이때 기도의 상피는 점막을 잔뜩 만들어 끈끈이주걱처럼 먼지나 미생물을 붙들었다가 밖으로 내보낸다. 섬모라는 세포 표면의 기관이 1초에 약 16차례 격렬하게 움직인 결과이다. 이러한 일은 평소에도 벌어지지만 호흡기 계통에 화학적 혹은 물리적 자극이 오면 보다 극적으로 호흡 과정이 달라진다. 방어적 반사(reflux)작용이라고 칭하는 기침이 바로 그런 행위이다. 물이 더러우면 잠시 공기의 순환을 멈추고 아가미에 낀 불순물을 밖으로 뿜어내는 물고기조차도 기침을 한다 하니 대부분의 포유동물이 기침을 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흔히 사용하는 실험동물인 쥐는 기침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쥐는 뭔가 다른 방식으로 폐로 들어오는 입자들을 제거하리라고 과학자들은 짐작한다.

사실 기침은 크게 세 가지 동작으로 구성된다. 먼저 숨을 들이마신다. 효과적으로 기침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다음은 후두를 닫아걸고 흉강과 횡격막 그리고 복막을 수축시켜서 흉강 내부 압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마지막으로 통로를 열고 큰 소리와 함께 공기를 몸 밖으로 내보낸다. 여러 종류의 근육을 동원해서 우리 신체는 흉강 내부의 압력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인다. 그 압력이 충분히 높아야 기관지 상피에 붙은 점액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격하게 기침할 때 분출되는 공기는 비행기보다 더 빨리 날아간다. 무려 시속 800㎞이다. 그렇기에 근육의 힘이 부족하거나 오랜 천식으로 기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기침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과학자들의 부단한 연구 덕에 우리는 기침 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다.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우연히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화학물질 또는 미생물 감염에 의해 생체 내부에서 만들어진 물질에 반응한다. 알싸한 고추를 먹고 기침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화학물질 외에도 소화계에 가해지는 물리적 자극에도 우리는 기침을 한다.

이처럼 기침의 생리학적 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왜 기침을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기침을 억제하는 약물이 염증성 질환을 더 오래 지속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얼핏 기침은 인간에게 이로운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식이나 상기도 감염 증상인 백일해처럼 기침으로 인한 과도한 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부 진화생물학자들은 우리 인간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자신이 살아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숙주를 ‘조종’하여 기침을 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가 잘 움직이고 자주 기침을 해 자신의 분신이 섞인 비말을 주변에 많이 퍼뜨릴수록 감기 바이러스가 살아남을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은연중일망정 바이러스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인간의 약점 몇 가지를 최대한 이용한다. 시간당 평균 16번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인간의 습관도 그중 하나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리디아 보로이바는 강하게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할 때 비말이 무려 8m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목청껏 소리 높여 수다스럽게 말을 하면 입을 통해 나오는 비말의 수가 50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작년에 나왔다. 기침 한 번 하기 쉽지 않은 요즈음이다. 앞다퉈 꽃은 피는데 올봄은 유난히 더디 온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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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약들이랑 있으면 하루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는데… 저것들이 없으면 내가 아파서 잘 수가 없다고….”     

최은미의 장편소설 <아홉 번째 파도>(문학동네, 2017)에서 보건소 약무주사보인 송인화는 방문 복약 상담을 위해 독거노인의 방을 찾아다닌다. 방에 홀로 있던 작고 마른 노인이 내놓은 약상자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과 부작용이 심해서 판매 금지된 치료제가 수두룩하다. 

아픈 노인은 자신의 유일한 위안인 약을 빼앗길까봐 송인화에 대한 경계의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혈압약의 경우에는 꼭 하루에 한 번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냐는 송인화의 말에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거 몰라. 그냥 아플 때마다 먹어.”

<아홉 번째 파도>는 동해안의 ‘척주’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핵발전소 유치, 석회광산과 시멘트회사, ‘사이비’ 종교집단 약왕성도회 사이의 역학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이 요즘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이유는 물론 코로나19와 신천지 때문이다. 마약성 진통제인 멕소닐을 20년 가까이 밀수하면서 몸이 아픈 지역 주민들을 유혹하는 약왕성도회는 고통받는 취약층에게 구원을 약속하며 조직적인 착취를 일삼는 신천지를 떠올리게 한다. 유통기한도 부작용도 개의치 않고 아플 때면 아무 때나 약을 먹는다는 노인의 목소리는 손쉬운 구원에 의존하는 신천지 교인들의 상황과 겹치며 섬뜩하게 들린다.      

그런데 고통을 없애주고 안락을 보장한다는 달콤한 약의 유혹은 ‘사이비’ 종교의 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코로나19 사태는 인재(人災)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최초로 발생한 후에 각국의 방역체계를 뚫고 감염자가 확산되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과정에서 온갖 혐오와 차별의 기제가 작동,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코로나19 사태가 유발하는 공포의 핵심은 호흡기로 곧장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통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비가시적인 형태로 기생하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정확한 메커니즘을 예측하거나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중요하다.

문제는 ‘통제 불가능한 위험에 대한 공포’가 ‘통제 가능한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쉽사리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서구권에서 아시아인들이 극심한 인종차별을 당하고, 확진자의 감염경로와 사적 정보가 공개되면서 특정한 지역, 세대, 성향을 겨냥한 조롱이 집단적인 놀이로 전화되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실제 확진 여부와 무관하게 바이러스의 이미지는 더럽고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라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엉겨 붙는다. 

약자에 대한 혐오는 재난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는 일시적인 효능감을 제공한다.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직접적인 힘을 가할 수 있는 약자에게 귀속시키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를 복용하면서 고통을 마취하는 셈이다. 고통을 없애주겠다면서 극적인 효과를 약속하는 구원의 진통제와 다르지 않다.

약자 혐오를 통해 통제 불가능한 문제에 대한 일시적인 효능감을 충족할 때,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려지고 상황은 악화된다. 약자에 대한 제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은 손쉽게 권력과 유착되고 처방에 대한 의존을 심화하기도 한다. 

<아홉 번째 파도>에서 약왕성도회가 밀수하여 신도들에게 나누어준 진통제는 결국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하며 약에 길들여진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을 길들이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 그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우리는 혐오를 “그냥 아플 때마다 먹”을 수는 없다.

<인아영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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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3월의 바람 속에 1


어디선지 몰래 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 송이 피워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 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 시집 <시간의 얼굴>에서


3월의 바람 속에 2


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열까 말까 망설이며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쌀쌀하고도 어여쁜 3월의 바람

바람과 함께 

나도 다시 일어서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 시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에서



경칩이 지나고 나니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이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살구꽃나무 위로 새들이 즐겁게 날아다니고 꽃들 주변으로 흰 나비들이 찾아오는데 꽃과 나비를 보는 제 마음도 요즘은 웃음기 없이 울적하기만 합니다. 평소에 나물 캐기 좋아하는 어느 선배수녀님이 수녀원 밭에서 뜯어 온 냉이로 국을 끓여 먹고 쑥으로 튀김을 해서 먹으며 “식탁에도 이렇게 봄이 올라와 있는데 계절의 봄과 달리 우리의 진정한 봄은 언제나 올까요?” “요즘은 신문 보기도 겁이 나요.”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건데 걱정만 앞서고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 때문에 마음까지 멀어지면 곤란한데?” “너무도 당연히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을 이젠 기적처럼 그리워하게 되는군요.”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국민이 좀 더 성숙하고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수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건넵니다.

우울한 시기를 잘 극복하라고 맛있는 쑥찰떡을 150인분이나 만들어 보낸 해운대의 문인, 마스크 몇 개 경비실에 두고 간다며 문자를 보내온 우리 동네 빵집 사장님께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평일미사에도 객실에도 일체 외부인이 오질 않으니 수녀원이 세상과 격리된 하나의 외딴 섬이 된 것 같습니다. 가끔 만나서 책방도 가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해주던 예쁜 독자의 딸이 확진판정을 받고 의료원에 있다니 걱정입니다. 성당에서의 공동기도지향에도 식당에서의 독서시간에도 온통 코로나19 관련 소식뿐인데 원장수녀는 거의 매일 이런저런 공지를 해 줍니다. 홀로 어르신들께 드릴 반찬 준비를 비롯해 구청 보건소 직원들에게 드릴 편지와 간식준비에 대한 것 등등. 여러 종류의 부탁과 협조를 구해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다 함께 절감하는 것 중 하나는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를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 말은 따뜻하게 행동은 성실하게 공동선을 향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다 할 때만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곧잘 짜증과 푸념으로 우울을 전염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이 고난의 시기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으로 일어서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3월의 연둣빛 바람이 재촉하는 속삭임을 들으며 가만히 두 손 모읍니다.

<이해인 |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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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답답한 일이 생기면 바다에 성큼 가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바닷소리가 좋더라. 음반더미 속에 파묻혀 살며 지내지만, 미안하게도 내 영혼을 씻겨주는 바닷소리만 못하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부터 하려들 것이 아니다.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보여주어라.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면 기꺼이 배를 만드는 데 손을 거들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잠언이다. 바다를 깊이 만난 사람과 만나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말꼬리 잡길 좋아하고 비뚤어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배배 꼬여서 동의하지 않고 어깃장을 놓을 게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에게 바다를 소개하는 말은 이처럼 설명 불가. 바다를 만나고 파도에 몸을 맡겨 헤엄쳐본 사람, 뱃고동 소리와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의 찰싹대는 소리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어려서 배를 한 척 갖고 싶었다. 선착장에 묶여 있던, 배라고 할 것도 없는 뗏목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또래 동무와 그놈을 끌어내 바다로 진출해보았다. 항해는 한 시간도 채 못돼 어선에 발각되어 끌려왔다. 성공했다면 시방 신문에 표류기를 연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착장과 멀어지면서 들리던 바닷소리는 매우 고요했다. 동무도 순간 겁을 먹었는지 낯빛이 하얘졌다. 그때 구출하러 온 뱃고동 소리가 수차례 들렸다. 불가에서는 해조음이라 하여 바다에 감긴 모든 소리를 염불이라 한다던데, 자비로 가득한 염불의 공덕을 만났던 장면이다. 

겁이 없는 자들이 꼭 문제를 일으킨다. 이웃과의 관계를 고려치 않은 안하무인 제멋대로가 큰 사달을 낸다. 제 말만 고집하는 요란한 세상에 굽히고 따르는 나직한 말, 경외심과 겸손이 묻은 말을 사모해야 한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찬송을 부르면서 바다로 예배를 드리러 가자. 신의 음성을 듣기엔 사실 예배당은 좁아터진 데다 상업 광고가 너무도 많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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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가장 큰 시장인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됐는데 옛 이름은 대구장이다. 조선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였다. 대구읍성 북문 밖에 있던 장터가 1920년대 대구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서남쪽의 현재 위치로 이동해 서문시장으로 불리게 됐다. 약 2만7000㎡ 대지에 점포 4000여개가 들어서 있다. 원단시장이 유명하지만 한복, 의류, 그릇, 청과, 건어물 등 없는 게 없다. 시장골목 한복판에 있는 먹거리 좌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칼국수와 ‘납짝만두’(납작만두·토박이들은 ‘납딱만두’라고도 부른다)는 추천 메뉴다. 2016년 여름부터는 야시장을 개장해 밤마다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서문시장은 대선, 총선 때마다 대구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후인 2016년 12월 화재 피해를 위로한다며 이곳을 찾았다가 싸늘한 민심에 10분 만에 돌아나왔다. 

서문시장 역시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다. 대구가 코로나19 환자 최다 발생 지역이 되면서 붐비던 인파는 썰물처럼 빠지고 떠들썩하던 흥정 소리도 사라졌다. 대구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2월25일부터 3월1일까지 아예 휴장을 했다. 6·25전쟁 통에도 문을 닫은 적 없고, 2005년 6개 지구 중 가장 큰 2개 지구가 전소되는 대형 화재도 견딘 시장이 멈춘 것이다. 1주일 휴장은 서문시장 500년 역사상 처음이었다. 미국 ABC 기자는 휴장 첫날 텅 빈 서문시장을 비추며 “절제심, 강한 침착함 그리고 고요함이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친 지 한 달을 맞은 18일, 서문시장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상인들은 하나둘 매대 덮개를 걷어내고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김영오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은 매장의 80% 정도가 영업을 재개했다고 전했다. 매출은 예년의 30% 수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시장을 이미 5번 소독하고, 오는 일요일에 다시 하루 동안 전체 매장을 닫고 방역할 예정이다. 서문시장의 활기 회복은 대구의 코로나19 극복을 보여주는 상징일 수 있다. 서문시장 골목마다 흥정 소리로 넘쳐나는 봄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박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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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환경은 그야말로 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보면 된다. 그 안에서 끊이지 않는 콜을 받으면 금세 목이 건조해져서 따갑다.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지 못할 만큼 옆 사람과 거리는 턱없이 좁아서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전염되기 쉽다.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하다가 겨우 나았는데 주위 직원들이 그대로 옮아 굉장히 미안했던 적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계속 앉아 있다 보니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상담원이 많다. 통화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거북목이라 조금 웃기면서도 슬프다. 늘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안구건조증은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먹고 바로 앉아 있으니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몸보다 더 아픈 게 마음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퇴사하는 동료를 종종 본다. 친한 선배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전화를 받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든다고 한다. 병원을 다녀도 쉽게 낫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폭식증 등 식이장애에 시달리고 심각한 불면증에 걸리는 동료도 있다.” 얼마 전 읽은 에세이집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애플북스)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의 저자 박주운씨는 5년간 콜센터 직원으로 일한 경험을 꼼꼼히 기록해 최근 책으로 냈다. ‘보통 주 6일 근무, 하루 70콜 이상, 적어도 한 달에 1500콜’이란 고통스러운 일상을 ‘글쓰기’에 기대 견뎠다고 한다. 

최근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상담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다시 주목받았다. 위에 인용한 대목에서 ‘독감’을 ‘코로나19’로 바꾸기만 하면 이번 집단감염의 원인이 손쉽게 설명된다. ‘외출을 줄이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는’ 등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 된 시대지만 콜센터 상담원들은 그 어느 것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박주운씨의 에세이는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기록이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으면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다.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생활인’의 에세이를 연달아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라이킷)은 장수연 라디오PD가 썼고, <제법 안온한 날들>(문학동네)은 남궁인 응급의학전문의의 글이다.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푸른숲)의 작가는 김성광 인터넷서점 MD다. 

처음에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단상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박주운씨의 책을 계기로 다시 살펴보니 이들의 글은 모두 현장의 소중한 기록이기도 했다. 장수연 PD의 글에는 방송환경의 변화와 MBC 파업의 영향이, 남궁인 전문의의 글에는 가난과 질병의 상관관계가, 김성광 MD의 글에는 출판산업의 변화와 육아의 어려움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모두가 고통스럽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번거롭겠지만 자신의 일기장이든, 소셜미디어든 지금의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기록해두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아니 조만간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간 뒤 과거를 다시 뒤적이면서, ‘그때는 그랬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들이 묶여 책으로 나오면 더 좋고.

<홍진수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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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교민과 그 가족, 주재원 80명이 18일 오후(현지시간) 테헤란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에서 주이란 한국 대사관의 안내에 따라 출국 수속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국내 신규 확진자는 18일 0시 기준으로 93명 늘어나 나흘 연속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이날 추가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지만 뚜렷한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대신 조금씩 늘어나는 해외 유입 확진자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날 0시 현재 해외 유입 추정 확진자는 65명이다. 하루 전보다 2명 늘어났다. 그중 유럽발 확진자(32명)가 중국(16명)보다 두 배 많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유럽이 중국을 넘어 새로운 코로나19의 주무대로 떠오르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유럽발 입국자를 철저히 관리하지 못할 경우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정부가 코로나19 역유입 차단에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중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해 온 특별입국절차를 19일 0시부터 전 세계 국가에서 입국하는 모든 내·외국인으로 확대한 것은 적절하고도 바람직해 보인다. 하루 약 1만3000명에 이르는 입국자를 일대일 발열 검사, 특별검역신고서 제출, 개인 연락처 확인, 모바일 자가진단앱 설치 등을 통해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해외 유입 추정 확진자 65명 중 공항 검역에서 걸러진 숫자는 11명에 불과하다. 기존 특별관리 대상자 중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도 10% 정도 된다고 한다. 입국자에 대한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추가 확산을 막도록 관련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외로부터 역유입 차단 못지않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재외국민과 여행객들에 대한 안전이다. 이날 오전 9시 현재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는 48개국에 이른다. 전면 입국 금지국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항공편이 없어 귀국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실제 남미 페루에는 한국인 관광객 150명의 발이 묶여 있다.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의 온상이 된 이탈리아의 교민들은 귀국 전세기 수요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 정부는 루손섬 봉쇄 후 72시간(19일 자정까지)만 외국인의 출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전격 철회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정부는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영사 업무 지원을 최대한 확대해 불편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임시 항공편 마련 등 귀국 방안을 찾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존 여행경보 조치를 상향 조정해 국민이 해외에서 겪을 불편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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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을 방문해 코로나19 대응에 분투 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18일 11조7000억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남은 것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집행이다. 이번 추경은 감염병 대응 인프라 확충과 재난지역의 소상공인 부담경감, 저소득·취약계층 지원이 골자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재정지출을 늘렸다고 하지만, 코로나19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예산은 3조여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저소득·노인층 지원이 대부분으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자영업자·비정규직 등에 대한 직접지원은 빠졌다. 추경 규모는 턱없이 적고, 지원 대상은 포괄적이지 못하다. 

눈에 띄는 것은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지자체들의 발빠른 지원대책이다. 지난주 전주시가 맨 먼저 취약계층 5만명에게 52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하자 강원도가 도내 소상공인 등 30만명에게 40만원씩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18일에는 서울시가 중위소득 100% 이하 가운데 정부지원을 받는 73만가구를 제외한 117만가구에 30만~50만원씩 ‘재난 긴급생활비’를 지원한다는 코로나19 대책을 발표했다. 제주도 역시 선별적 지원 형태이지만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급 형태와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재난기본소득’은 지자체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이제 중앙정부가 재난기본소득 지원을 적극 검토할 때다. 지금껏 정부는 재원 마련과 효율성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제도의 합리성과 공감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홍남기 부총리)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피해는 특정 지역·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온 나라의 경제와 민생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감염병이 장기화하면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추경만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렵다. 비상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식어가는 경제를 살리고 생계절벽에 맞닥뜨린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비상한 처방이 될 수 있다. 관성적인 시각에서 따지기보다 재난 상황을 극복하는 게 먼저다. 오죽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미국인들에게 현금 1000달러 지급 방안을 제시하고, 홍콩에 이어 일본까지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재난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동의했다. 19일 열리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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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친문재인 그룹이 주축이 된 ‘시민을위하여’와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을 구성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당초 시민사회계 원로들이 만든 정치개혁연합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비례대표 정당 연합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파트너를 바꾼 것은 목소리가 큰 시민사회계 원로들보다 이쪽이 컨트롤하기 쉽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 등과 비례연합정당을 만들기로 협약했다. 모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정당들이다. 가자환경당은 시민단체인 페트병살리기운동본부가 주도해 지난달 만든 정당이다. 가자평화인권당은 2016년 총선 직전 만들어졌지만, 그해 총선 정당득표율은 0.1%에 그쳤다. 존재감이 희미한 무늬뿐인 정당들이다. 결국 민주당이 좌지우지할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민주당의 말 따로, 행동 따로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민주당은 보수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비난해오다 선거가 불리해지자 똑같이 그 길을 갔다. 그러면서 “원외 소수정당의 국회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플랫폼도, 참여 정당도 자기 입맛대로 골랐다. 진보·개혁 진영의 제 정당이 참여한다는 비례연합정당의 명분마저 팽개치고 소수정당을 의석 확보의 수단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 와중에 윤호중 사무총장은 성소수자를 비례후보로 배정한 녹색당 등을 겨냥해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의 연합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를 고작 ‘소모적 논쟁’으로 치부하는 인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비례정당을 둘러싼 꼼수와 반칙, 편법이 21대 총선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인물도, 정책도, 메시지도 찾아볼 수 없다. 미래통합당과 그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 명단을 놓고 연일 갈등을 빚고 있다. 법률상으로 엄연히 독립된 별개의 정당끼리 공천에 간섭하고 싸움을 벌이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제 민주당은 통합당의 전철을 밟아 비례연합정당 기호를 앞 순위로 당기기 위한 ‘의원 꿔주기’도 결행할 것이다. 선거 후엔 비례의원들을 각당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또 다른 편법이 동원될 게 뻔하다. 

국회는 군소정당의 사표(死票) 방지와 다당제 확립을 명분으로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게 시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이라고도 했다. 한데 시민에게 약속한 개혁과 쇄신은 오간 데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이미 사라졌다. 대신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한 온갖 당리당략만 난무하고 있다. 도박판의 ‘타짜’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정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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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여파로 거리에 사람이 없다. 산책할 때 종종 만나던 강아지도 언젠가부터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여름,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면 찰방찰방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도 잘 있겠지? 비를 흠뻑 맞은 나무에서 물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부디 어디에 있든 안녕하기를.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가 오늘 따라 유독 깊고 어두워 보인다. 말할 수 없는 처지와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바닥에 고여 있을 것만 같다.

재택근무를 독려해서인지 출퇴근 시간대에 특히 붐비던 카페와 식당도 한산하다. 단골 카페에 들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졌다. “안녕하세요.” 계산대에 맥없이 앉아 계시던 사장님이 벌떡 일어선다. “오전에 사람을 못 볼 줄 알았어요. 요새는 파리도 안 날려요. 파리마저.” 희미하게 웃었지만 사장님의 안색이 좋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지금 시기는 그야말로 곤혹일 것이다. 곤란한 일은 으레 예기치 않게 발생하고, 마음을 졸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가 많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넨 인사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안녕하지 않은 이에게 건네는 ‘안녕’은 오히려 안녕하지 못한 작금의 상황을 상기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안녕하세요”라는 말 속에 과도한 경쾌함이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위급할수록 평소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평소처럼 지내기에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저 사장님의 말에 “파리는 원래 여름에 많이 날리잖아요” 같은 몹쓸 농담을 던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프시케의숲, 2020)을 읽었다.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라는 부제답게 책 속엔 매일 가라앉았다가 솟아오르고, 옅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농밀해지고 있는 감정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이 실은 편견과 배제, 평가와 질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활동적인 노인들에게 쓰이곤 하는 ‘정정하다’라는 형용사에는 ‘내 눈에 보기 좋다’라는 평가와 함께 거기에서 발생하는 만족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안에 해당 노인의 고민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하는 ‘여전하다’라는 말 속에는 ‘여전해서 좋다’라는 흐뭇함이 담겨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너는 거기에 머무르고 있구나’라는 못마땅함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아프다더니 괜찮은가 보네?”라는 말에는 괜찮아서 다행이라는 의미와 함께 ‘환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이 묻어 있다. 덕담인지 책망인지 모를 이런 말들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아왔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내면에는 벽돌이 한 장씩 쌓인다. 누군가에게 쉽게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타인의 척도로 섣불리 평가받지 않기 위해.

책을 다 읽고 나니 헛헛해졌다. 책에 등장하는 뭇사람처럼 나 또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알고 보호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약한 점을 들추어내는 사람들 속에서 그것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존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감싸고 달래는 일, 그것은 비단 손윗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전주에 있는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만난 일곱 살배기 친구가 내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하게 “작가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는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것은 다독이는 안녕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인사가 힘이 됐어요. 안녕히 가세요.” 카페 밖으로 나오는데 등 뒤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소 곤란한 감정’이 잔뜩 넉넉한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웅덩이 바닥에서 가만가만, 하지만 분명히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봄이었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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