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확산에 큰 우려를 표명하며 인종차별 금지 법제화 등을 한국 정부에 거듭 권고했다. 한국의 인종차별 현실과 갈등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동안 둔감하게 지나쳤던 국내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깨우친 계기였다. 이에 국가인권회가 2019년 4월부터 6개월간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19일 발표된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 사회 내 인종차별이 엄연한 현실로 입증됐다. 

이주민 310명을 상대로 심층 면접조사한 결과 68.4%가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10명 중 7명꼴이다. 차별 사유로는 “한국어 능력”이 첫손에 꼽혔고, “한국인이 아니라서”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차별 유형은 다양하고 실태는 적나라하다. 언어적 비하(반말·욕·조롱)를 겪었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물어본다,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본다, 일터에서 불이익(승진·임금·작업배치)을 받거나 채용 거부당했다, 없는 사람 취급한다 등이다. 이들이 털어놓은 사례를 들어보면 더 기가 막힌다. 매번 “난민 왔어”라고 낄낄거리며 웃는 관공서 직원, 길거리나 마트에서 불쑥 히잡을 벗기는 행인,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욕을 하는 공장장, 말로 놀리다 얼굴 꼬집고 만지는 동료 직원 등 낯부끄러운 사례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100만명에 가까운 이주민들이 이번 정부의 마스크 지급대상에서 배제되었다고 한다. 

국내 인종차별은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외국에 비해 인종차별 정도가 심하지 않고, 강력범죄가 적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있다. 차별은 외국과 비교할 일이 아니다. 살인과 테러가 아니라도 차별은 범죄가 될 수 있다. 혐오 발언도 혐오 범죄에 속한다. 그간 한국과 관련한 외국의 인종차별 사례가 나오면 편견과 우월주의에 빠진 행태라 단호하게 비판했다. 이제 우리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은 인종차별이 심한데 더 큰 문제는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뼈아프다. 

인권위는 한국인 중심주의, 한국인 우월주의에 기반해 이주민의 차별적 지위 부여를 당연하게 인식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라고 했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돌아보며 우리 안의 부끄러운 인종차별을 각성해야 한다. 3월21일은 1966년 유엔이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시위 희생자를 기리며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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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나온 것으로 알려진 대구시 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줄어드는 듯하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닷새 만에 다시 세 자릿수로 돌아섰다. 19일 감염자가 전날보다 152명 증가해 누적 확진자가 8565명이 됐다. 대구시가 진행 중인 요양병원 등 고위험 시설 전수조사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는 것이 증가세의 주요인이다. 요양병원은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층이 집단생활을 하는 곳인 데다 한번 감염이 시작되면 지역사회 확산으로 번지는 불씨가 될 수 있다. 방역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취약시설 방역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대구시가 사회복지시설과 요양병원 등 고위험 집단시설 397곳을 상대로 실시한 전수조사 결과는 상당히 우려스럽다. 전날 한사랑요양병원 등 요양병원 5곳에서 87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더니 19일에도 요양병원 5곳에서 7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더구나 한사랑요양병원에서는 일주일 전 증상이 나타난 확진자들이 계속 병원에서 근무하는 바람에 오히려 환자들에게 병을 옮겼다. 대구시도 첫 확진자를 확인한 후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태를 확산시켰다. 아직도 이렇게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전국에는 1470곳의 요양병원이 있으며, 의료 인력과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 종사자도 20만명에 달한다. 전국의 요양병원과 요양시설들은 일찌감치 집단감염의 취약지대로 지목돼왔다. 부산과 봉화, 부천 등지에서도 이미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치명률이 1%대에 진입한 것도 요양시설 등의 집단감염과 무관치 않다. 치명률은 80세 이상이 9.7%, 70대 6.1%, 60대 1.6%, 50대 0.4% 등 고령층일수록 높다. 전국적으로 고위험 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를 서둘러 피해를 줄여야 한다. 

다시 한번 방역의 사각지대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요양병원·시설은 더욱 철저히 감염 관리를 하고, 정부와 지자체, 방역당국은 이들 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요양병원뿐 아니라 노래방, PC방, 콜센터, 클럽, 운동시설, 대형학원 등 다중이용 시설들에 대한 방역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개인 위생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코로나19 증가세가 진정세에 있다고 안주하면 2차 감염사태가 올 수 있다. 방역 당국과 지자체들은 안심하지 말고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계속 취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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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연합뉴스

한 사람을 두고 세 번째 글을 쓸 줄은 몰랐다. 그것도 4년 주기로. 2012년 2월 ‘권력을 좇는 자유인, 김종인’을 썼다. 대선주자 박근혜를 택해 새누리당 정강에 경제민주화 그림을 입힐 때였다. 2016년 1월 ‘김종인의 리턴매치’를 썼다. 국민의당이 떨어져나간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무와 선거를 이끌던 시절이다. 대선주자 문재인과 손잡은 선 굵은 월경이었다. 2020년 봄 그가 여의도를 향해 다시 움직였다. 미래통합당의 총선 선대위 ‘원톱’ 자리를 달라고 했다. 또 몰고올 바람과 구름이 있나 싶었다. 보수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황교안이 주도한 18일간의 영입드라마는 불발됐다. 그도 “도와줄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돌아섰다. 다시 한번 권력자 옆에서 펼쳐보려던 80세 노정객의 꿈과 길은 그렇게 끊겼다.

또 그랬다. 세 번째도 그는 총선 앞의 난세를 정치복귀 무대로 택했고, 시작부터 풍파가 일었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찔러가는 직설은 그대로였다. 좌장, 전권, 1인자와의 독대·담판을 요구하는 김종인표 정치도 변함없었다. 그는 막강한 상임선대위원장을 원했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지역구(강남갑) 공천을 반대했고, 몇몇 공천자의 교체 권한을 요구했다. “그래야 당을 움직일 수 있다”고, “안 하면 그만”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두 번은 통했다. 8년 전 MB의 새누리당 탈당에 불을 지피고 진보 헌법재판관을 홀로 찬성한 그는 따져 물으려는 의원총회 소환에 불응했다. ‘친문’ 이해찬을 낙천시킨 4년 전엔 비례대표 2번을 셀프공천하고 노욕(老慾) 소리가 나오자 칩거했다. 누구라도 초장에 기를 꺾고 시작하려는 생각이었을 테다. 세 번째 판은 달랐다. 갈라진 당 지도부는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그의 몸값을 낮췄고, 태영호는 끝까지 사과를 요구했다. “공천에 관여하지 않겠다.” 김종인의 카리스마와 뚝심도 예전과는 달랐다. 돌이켜보면, 하고 싶다는 신호였다. 한발 물러선 김종인은 그를 부른 당 대표가 약속을 깨고, 선대위 원톱 자리가 무산된 날 판을 접었다. 속이 쓰렸을 게다. 자존심이 센 그는 사람 잘못 봤단 말은 바로 하지 않는다. 정치로부터의 칩거와 침묵은 8년 전, 4년 전에도 그렇게 시작됐다.

첫 손뼉은 마주 쳤을 게다. 황교안에겐 김종인이 여러모로 덧셈일 수 있다. 그의 야인·중도 색깔이 보수통합의 외곽선을 넓히고, 그의 회군이 총선에서 천군만마가 되길 내심 바랐을 게다. 민심을 보는 촉이 있고, 여야를 두루 알고, 정곡 찌르는 헤드라인도 잘 뽑는 정치 베테랑의 경륜이 탐나지 않았을까. 김종인은 그 맘을 보고, 또 한번 자기부정을 하며, 금의환향할 초대장을 구했다. 멀리는 대선주자들이 못 나서는 7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까지 시야에 뒀을 수도 있다. 내가 읽는 황·김의 독심법은 그렇다. 그 의기투합을 받치기에 황교안의 힘과 리더십이 약했던 셈이다. 김종인의 눈에도 8년 전 박근혜, 4년 전 문재인과 그를 버린 황교안은 다르게 남았을 테다. 

아프게 곱씹을 것은 따로 있다. 김종인이 또 소환된 정치다. 2020년 총선은 정책과 비전이 사라졌다. 무상급식·경제민주화·복지 경쟁이 붙은 2012년, 청년·비정규직·규제완화가 불거진 2016년보다도 선거의 질은 퇴행했다. 작금의 비례대표 꼼수 선거판은 누가누가 못하나 지켜보기도 괴롭다. 이 난장판에 김종인이 늑장 호출된 것이다. 그는 2012년 총선 106일 전, 2016년엔 90일 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합류했다. 올핸 30일 전 총선을 접었다. 미래통합당 공약·공천은 마무리된 뒤였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도 황교안의 ‘민부론’ 앞에선 길이 없다. 상속·법인세 인하, 일감몰아주기 완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삭제까지 민부론엔 친재벌·반노동 노선이 선연하다. 그가 가려 한 당엔 ‘줄푸세’ 신봉자가 득실하다. 그렇다고 김종인이 황교안에게 약속받았다고 내놓은 정책도 없었다. 얼굴마담과 허깨비만 찾는 정치가 8년째 김종인과 경제민주화를 불렀다 팽(烹)시키고 있는 셈이다.

김종인은 전무후무할 정치 궤적을 지녔다. 한 번도 힘들다는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을 했다. 박정희부터 문재인까지 YS·MB를 뺀 일곱 대통령과 정치·정책의 연을 맺었다. 하늘색(민주정의당)-남색(민주자유당)-청록색(새천년민주당)-빨간색(새누리당)-파란색(더불어민주당)이 거쳐간 당 색깔이고, 6번째 핑크색 앞에서 그의 정치시계가 멈췄다. 정치는 생물이지만, 다시 돌아간 보수에서 ‘뒷방 늙은이’ 소리까지 들은 그의 선택지는 협소해졌다. 태영호 소동은 표면적이고, 본질은 피로감이다. 그도 알 것이다. 어지러이 40년을 달려온 ‘자유인 김종인’의 마지막 우회전은 가볍고 허망했다. 2022년 대선 앞에도 김종인표 정치가 등장할까. 나는 ‘X표’를 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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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첫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1호 조치로 ‘50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9개 패키지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집중 지원하고, 주식·채권시장을 안정시켜 기업의 경영난을 더는 것이 골자다. 중기·소상공인에게 자금을 제공해 위기상황을 견디게 하는 한편 실물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방화벽을 세우는 방식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절반이 매출 급감으로 도산위기에 내몰린 상황을 감안한 비상경제회의 1호 조치는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중기·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5개 지원방안부터 내놓은 것은 옳은 선택이다. 긴급한 지원을 기다리는 취약계층 및 그 가족이 국민의 절반이 넘는다. 긴급 경영자금 12조여원을 연리 1.5% 수준으로 공급, 이자 부담을 덜기로 한 것이나 8조5000억원 규모의 특례·전액보증은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의 숨통이 트이게 할 것이다. 이번 위기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노래방, PC방 3곳 중 1곳은 이미 휴·폐업 상태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위기에 처한 서민과 기업을 위한 추가 조치도 계속 마련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날 금융시장은 다시 추락했다. 코스피는 10년8개월 만에 1500선이 무너졌고, 코스닥까지 서킷브레이커에 사이드카가 동시에 발동됐다. 원·달러 환율이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1300원대 진입을 위협하자 외국인 자금 이탈로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국제유가 역시 18년 만에 최저인 20달러에 근접, 실물경기에 대한 우려를 대변했다. 세계 증시도 최근 한 달간 30% 안팎 떨어졌다. 비교적 안전자산인 국채·금까지 팔아치우고 있다. 믿을 건 현금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불안감이 크다. 엄중하다는 말로 표현하지 못 할 만큼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렵다. “웬만한 대응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시장 주문이다.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정부가 이날 세부적인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시장은 끝 모르게 추락하는데 대책이 이렇게 굼떠서는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은 전시체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 매주 한 차례 개최키로 한 비상경제회의도 수시로 열면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대책도 적기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금만 낭비할 수 있다. 과감한 대책을 마련해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집행해야 이 위기를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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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해한 학술용어 가운데 ‘유행어’를 하나 고르라면 단연 ‘확증편향’일 것이다. 학자들이나 조금씩 쓰던 것이 지금은 웬만한 정치분석 글은 물론 일반인들 입에서도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지난해 ‘조국 정국’에서 증폭된 뒤 ‘코로나19’와 4·15 총선 국면을 타고 폭발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보호구역을 벗어나 일상으로 침투한 이 말은 ‘정치적 의견의 양극화’와 동의어 정도로 변이되어 말 그대로 ‘창궐’ 중이다.

흥미로운 건 ‘확증편향’이 또 다른 ‘확증편향’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이다. 확증편향 속에 있는 이들은 마음속 그 바이러스를 좀체 알아채지 못한다. 오직 진영 건너편의 확증편향만을 본다. 그 점에서 ‘내로남불’과 불가분이다. 그 결과 가짜뉴스가 쉽게 맹신되고, ‘정치적 프레임’의 선동효과는 극대화된다. ‘확증편향’은 우리 사회 분열과 병든 공론의 상징어처럼 됐다.

‘-빠’ 현상과 이에 대한 태도들이 단적인 사례다. ‘조국수호당’은 확증편향으로 무장한 정치적 팬덤의 광기가 얼마나 희극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빠니까’라는 한마디는 그 반대편이 상대를 모멸하고 자신의 확증편향을 은폐하는 데 쓰는 손쉬운 무기다. 모두 성찰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빠’는 이런 불성실을 스스로에게 용인하는 변명거리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확연하다. 우리 사회 상당수는 코로나를 빌려 ‘진영 싸움’에 더 골몰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를 이기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내내 일부 언론과 정치적 여론의 기준은 ‘정부 대응의 부실 여부’에 맞춰졌고, 막 뒤엔 4·15 총선이 어른거렸다. 그 극단적 모습은 대통령 ‘탄핵’ 청원과 응원으로 나뉘어 무의미한 숫자 대결을 벌이는 코미디다.

감염병 대응은 수많은 변수들을 살펴야 하는 예민한 문제다. 그러나 과학적·의학적 분석보다는 ‘중국인 입국 제한’이 맞느니 아니니 같은 ‘오, 엑스’식 주장만 난무한다. 일도양단의 ‘전문가(?)’들이 지금 너무 많다. 물론 신천지교로 인한 국내 확산 이후 ‘중국인 입국 제한’ 주장은 슬그머니 ‘중국발 입국 제한’으로 바뀌었다. ‘코로나의 정치화’라 할 이런 현상을 더 들어가보면 자신의 선택을 강변하는 ‘정치적 확증편향’이 보인다.

확증편향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요약하면 ‘거봐, 내 말이 맞잖아’다. 우리 사회는 이 ‘내 말이 맞잖아’에 목숨 걸 듯한다.

이미 인이 박인 확증편향을 틀렸다고 해본들 소용없는 일이다. 그저 ‘왜 그럴까’ 더듬어 보다 보면 혹 조그만 실마리쯤은 찾아지지 않을까. 극단이 힘을 얻는 ‘적대적 공생’의 정치 환경, 이념적 양극화를 가속하는 디지털 정보화의 역습, 권력을 추구하는 언론 등 눈에 도드라지는 요인들이 많지만, 보다 개인의 차원, 심리 차원에서 그 뿌리는 없을까 싶다. 정말 우리 안의 ‘당파성 DNA’ 때문일까.

살아온 과정을 생각해보면 ‘확증편향’이 그리 낯설지도 않다. ‘거봐 내 말이 맞지’를 체질화하도록 길러졌다. 첫 짜장면을 먹을 때, 대략 유치원 무렵으로 성년이 돼 기억할 수 있는 한계쯤부터선 ‘틀려선 안된다’는 세뇌를 받는다. 5지선다, 4지선다는 물론 ‘오·엑스’ 정답 고르기가 연속이다. 학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다. 25개 문항 정도 시험을 보면 전부 다 맞으면 ‘만족스러워’하고, 하나 틀리면 ‘나쁘지 않네’, 두 개쯤 틀리면 ‘긴장’하고, 세 개부터서는 ‘실망’한다. 그게 우리 경쟁의 환경이었다.

목숨 걸듯 ‘내가 맞아’를 우기는 것도 좀 이해가 되지 않는가. 틀린 선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혹여 내가 틀리지 않았을까’ 성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은 ‘내가 맞아’를 증명하는 데만 몰두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배가 산으로 가듯 전혀 엉뚱한 지점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확증편향’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 사람들을 분노에 감염시키고 한 사회의 건강성을 무너트리는 지금 필요한 치료제는 무엇일까. 결국 ‘나도 틀릴 수 있다’, 더 나아가 ‘내가 틀렸다’는 걸 선선히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조금은 틀려도 괜찮은 거 아닌가’. 그런다고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그렇게 ‘틀려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며, 다치고 소심해진 우리 마음의 상처도 달래고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관대해야 ‘다름’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확증편향의 소음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하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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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면서 내 용기를 내밀었다. 직원은 ‘이거 실화냐’는 얼굴로 반찬통에 케이크 담을 거냐고 확인한다. 넣기 편하라고 입구가 큰 용기로 준비했지만 진상 손님이 된 것 같다.

플라스틱 프리 실천은 용기를 싸들고 다니는 노가다를 필두로 신속·민첩함까지 갖춰야 한다. 미리 체크카드를 꺼내 만발의 준비를 했건만 하필 잔액 부족으로 다른 카드라도 찾는 순간, 이미 비닐봉지에 젓가락과 냅킨과 플라스틱 숟가락이 담겨 나온다. 

이 경우는 그나마 낫다. 마스크가 품절되는 속도로 재빠르게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내 용기를 내밀면 쓰레기가 안 나온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밥을 해 먹는 편인데 유럽에선 늘 감탄한다. 마늘 1통, 양파 2개, 감자 3개 등 웬만한 채소와 과일을 죄다 낱개로 판다. 심지어 호박을 원하는 무게만큼 잘라준다. 딸기와 블루베리처럼 무르기 쉬운 과일은 종이계란판 상자에 담겨 있다. 거기서도 세제, 화장품 등 공산품은 플라스틱통에 담기지만, 농산물은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파는 경우가 흔하다.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구입할 수 있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국내에선 노가다와 신속·민첩함으로 아무리 ‘노오력’해도 쓰레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농산물이 비닐에 싸여 있거나 몇 개씩 묶음포장돼 있다. 브로콜리는 랩에 싸여 있고 다 못 먹고 냉장고에서 썩어갈 가지가 5개씩 비닐봉지에 담긴 식이다. 먹고 사는 자체가 지구에 민폐랄까.

그래서 ‘쓰레기 덕후’들이 모였다. 약 20일간 40여명의 쓰레기 덕후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대형마트부터 전통시장까지 총 64곳에서 농축수산물의 포장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대상은 쌀, 양파, 당근, 파, 돼지고기, 고등어 등 보편적인 식재료 40품목, 총 2560개 제품이다. 조사 결과 무포장 제품이 포장된 제품보다 많은 경우는 17.5%로 감자, 당근, 무, 시금치, 고구마, 오렌지, 바나나뿐이었다. 대다수 품목인 82.5%에서 포장된 제품이 더 많았다. 과일 중에서는 오로지 외국산 품목에서만 무포장이 더 많았다. 조사자는 “외국산을 사야 제로 웨이스트 할 수 있는 아이러니”라고 통탄했다.

무포장 제품이 가장 많은 유형은 전통시장, 체인화된 슈퍼마켓, 대형마트, 기업형 SSM, 유기농 매장 순이었다. 전통시장은 무포장 품목이 86%로 가장 많았으나, 가게별로 천차만별이라 실제 포장재 없이 구입하려면 상품별로 다른 가게들을 찾아 헤매야 한다. 역설적으로 유기농 매장에서 포장제품 비율이 가장 높았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쓰레기 문제가 상충하다니! 유기농 직거래를 선택하려니 플라스틱 포장재가 나오고, 플라스틱 통을 거절하려니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사야 산다.

대형마트 중에서는 하나로클럽,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순으로 무포장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무포장 점수가 가장 높은 하나로클럽도 포장제품이 약 60%를 차지한다. 해외 대형마트는 소비자가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면 제품을 담아가도록 하고, 영국의 테스코는 묶음포장된 참치캔, 수프 등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발 농산물이라도 비닐 없이 알맹이만 팔면 안될까? 우리에게 포장을 거절할 권리를 달라.

<고금숙 |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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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원생이던 2010년 즈음에, 학과의 남자 후배 몇이 도움을 얻으러 온 일이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무언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들에게 “괜찮으면 언제 술 한잔 같이해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네 선배, 같이 커피 한 잔 마셔요”하고 답했다. 단호하고도 세련된 방식의 거절이었다. 나는 그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대학원생이 학부생을 괜히 부담스럽게 했나’하고 몹시 외로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나에게 “우리 커피 언제 마실까요?”하고 찾아왔다. 나중에 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나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1980년대생인 나와 1990년대생인 그들의 언어가 달랐던 것이다. 술과 커피, 이 알코올과 카페인 음료가 가진 서로의 거리만큼 그들과 나 사이는 멀었다.

83년생인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주로 술자리에서 만났고, 이름, 나이, 고향, 학교 등을 직설적으로 서로 묻고 답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서열을 정리하고 친해질 구실도 찾는 것이다. 도저히 맞는 게 없으면 혈액형이나 별자리나 좋아하는 숫자까지 맞추어 가다가 어느 순간 비슷한 게 나오면 그제서야 ‘아이고,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었군요, 좀 더 친해질 수 있겠습니다’하고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곤 했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그런 삶을 살지 않은 80년대생들도 많겠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만남들이 익숙했다.

함께 관계를 지속하고 모임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90년대생이라는 새로운 세대는 느슨한 연결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이러한 방식의 느슨함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은 어렵게 쌓아 올린 합의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바이러스 방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한동안 과잉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그의 성별, 나이, 동선, 지역, 종교 등이 제공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 탐정이 되어 정보를 꿰맞추면서 그의 사생활을 재구성해 나간다. 

내가 가입한 동네 주민들의 단톡방에서도 확진자의 동선을 공유하면서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주로 방역과는 무관한 타인의 사생활들이었다. 사실 어디와 어디가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니 유의해 달라, 라는 정보만 전달되면 충분한 것이다. 타인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일상을 혐오하거나 동정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때 누군가가 그가 특정 주유소에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들른 것을 보고 “저기가 기름 맛집인가 봅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저기가 직영이라 싸서 저도 자주 들릅니다”하고 말했고, 몇몇이 그 주유소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저 순댓국집이 저만 아는 맛집인데 저분도 가셨네요. 아, 유명해지면 어쩌죠?”하고 말했다. 오래간만에 즐거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이 정도의 느슨함으로 그에 접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시국을 조금 더 즐겁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아니라 그 어떠한 사회적 위기를 맞이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느슨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팽팽하게 잡아당기거나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보다 오히려 힘든 일이다. 증오하고 혐오할 대상을 찾아나서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이 시국 이후에도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타인을 살피는 느슨한 연결의 감각을 회복해야만 하다.

<김민섭 |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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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질환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을 시작으로 장애인거주시설, 요양원, 요양병원 등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 이유로는 시설 거주자의 취약한 건강상태나 높은 밀집도가 거론된다. 과연 그럴까? 집단생활시설에서 생명 유린은 언제나 되풀이돼 왔고, 감염은 2020년 발생한 또 다른 유형의 참사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노령이나 장애 그리고 돌볼 가족이 없어 사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을 오래전부터 시설에 격리해 왔다. 그러나 시설은 학대, 착취, 성폭력, 운영비리 등 다채로운 오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 사육에 가까운 가혹행위로 수백명이 사망한 부산 형제복지원과 대구 희망원 그리고 화재로 집단 사망한 밀양과 장성의 요양병원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시설 거주가 선호되는 이유로, 흔히 부족한 예산을 말한다. 탈시설을 위한 정부 보조금과 인력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현재도 열악한 시설환경과 근로환경에 사회복지 종사자만 고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첫째, 복지시설의 사유화다.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복지시설은 전국에 약 6만개인데, 이 중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민간에 위탁한 시설은 약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 사업자가 소유하고 있다. 사유화된 복지시설의 관심은 정부로부터 나오는 재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정부는 한 해 사회서비스에 36조원 그리고 건강 및 요양 보험에 55조원을 지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요양병원 병상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10배나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청도 대남병원만 보더라도, 소유자 가족 구성원들이 부산과 대구 일대에 사회복지법인과 의료재단을 통해 노인요양시설과 정신요양병원 등 십수개의 시설을 운영해 온 거대 복지기업이다. 둘째, 포획된 정부다. 오랫동안 복지를 민간에 의존해온 정부, 특히 지방정부는 복지서비스에 무능으로 일관하고 있다. 돌봄과 보호 등 복지서비스의 정보 제공, 신청 접수, 이용자 선정, 서비스 결정을 민간 복지시설이 스스로 한다. 규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오히려 정부의 대리자 역할로 인정받고 여러 규제 정책이 그들의 이익에 맞게 설계된다. 관련 법령조차 기괴하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를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1970년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하고 있고, 현재도 이 법에 따라 개인 누구나 신고만 하면 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당초 법의 목적이 사업자의 공급 관점에서 마련되다 보니 복지 수급자의 사회적 권리와 존엄한 삶은 사업자의 사업성에 밀려 있다.

돌봄의 사회적 부담을 오로지 복지 사업자에게만 맡긴 집단적 무책임을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현재 시설 거주자들은 약 84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거주하는 시설은 복지 선진국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소규모 일반주택이 아니다. 예컨대 정신장애인시설은 평균 172.6명이 거주하는, 그야말로 거대 수용소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시설 입소를 줄이고 지역사회마다 탈시설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노인과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 공간을 마련하고, 개인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지원하며, 타인과 일상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사업성이 없기 때문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한다. 국민의 절반이 피부양 인구가 된다는 조만간 닥쳐올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탈시설은 서둘러야 하는 과제다. 우리는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김형용 |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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