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중국 경극의 독특한 얼굴 화장을 화검이나 검보라고 한다. 그런데 화검은 ‘상처 자국 또는 반점이 있는 얼굴’을 뜻하는 화면(花面)이라는 단어와 같이 쓰인다. 화면은 곧이곧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러나 반어적으로도 쓰이는데 <임하필기>에 보면 ‘천연두가 심하여 얼굴에 마맛자국이 생긴 것을 일컫는다’고 되어 있다. 원나라 사람들 중 불화(不花)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유난히 많은데 불화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꽃이 피지 않는 장소가 화단이나 정원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이의 얼굴이다. 천연두를 많이 앓았던 원나라와 금나라 사람들이 이름 자체에 부적의 의미를 담아 화면이 되지 않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천연두가 창궐했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역병의 시대를 어떻게 넘겼을까. 당시는 지금처럼 한순간 일어났다가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잦거나 반복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전국으로 번진 마마는 지금의 ‘코로나19’처럼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사대부들은 우선 발병 지역을 피하고 봤다. 미수 허목은 경기도 연천의 은거당에 머물렀는데 1678년 낭선군 이우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머물던 마을에 역병이 돌아 10여명이 죽으니 하릴없이 궁벽한 산골짜기로 몸을 피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거처를 급히 옮기느라 읽던 책은 물론 필연조차 챙겨오지 못해 심사를 달랠 소일거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보다 12년 뒤인 1690년 3월에는 전남 나주의 회진마을에 살던 창계 임영이 세 살배기 아들을 품에 안고 10여명의 식솔들과 함께 부랴부랴 마을을 떠났다. 마마가 덮쳤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피한 곳은 둘째 형님인 임정이 살던 영산강 하구의 강마을인 무안군 일로읍 사교마을이었으니 그곳까지 1박2일의 뱃길이었다.

명재 윤증은 1708년 3월 역질이 번지자 충남 예산의 선영과 마주 보는 곳에 있던 사찰인 정수사로 거처를 옮겼다. 정수사는 중종과 문정왕후의 3녀인 인순공주의 원당이었지만 후에 윤증 집안이 분암으로 삼아서 종회를 열기도 하고 가문의 강학 장소로 사용하기도 한 곳이다. 윤증은 몸을 피해 ‘정수사에서 역질을 피하다’라는 시를 지었는데 종일 말 한마디 나눌 사람조차 없는 외로움을 토로했다. 

동계 정온은 온 집안이 역병에 걸려 큰아들인 정창시의 장례를 여섯 달이 지나서야 치렀으며, 목재 홍여하는 1664년에 종조숙부인 합강정 홍호약의 제문을 썼는데 홍호약이 숨을 거둔 지 열두 달이 지나서 장례를 치른다며 애통해한다. 홍호약이 역병으로 숨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숨을 거둘 당시 역병이 돌아 누구 하나 모이질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너무도 슬프고 죄를 지었다며 글을 시작한다.

성리학자인 녹문 임성주는 1784년 7월, 셋째 아우인 운호 임정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딸의 혼례를 치른 후 잔치에 모였던 손님들이 돌아가자 아들이 갑자기 역병 의심증세를 보였다며 한탄한다. 이에 아들을 기거하던 집에 둔 채 가족들과 자신은 집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또 하나의 집을 구해 형과 어머니가 간호를 했는데 두려움이 컸다고 고백한다. 그런가하면 옥담 이응희는 1623년 4월 처와 자식이 모두 염질에 걸렸다. 이에 함께 살던 어머니를 모시고 집을 떠났다가 석 달이 지나서야 돌아왔다고 하니 남거나 떠났던 이 모두 두려움에 떨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또 무명자 윤기는 ‘협리한화’라는 글에서 생필품이 동난 것에 대해 말한다. 1815년 지금의 양평으로 잠시 거처를 옮겼는데 기근과 역병으로 인해 소금·젓갈·땔나무·생선·신발 같은 것들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고 물가가 몇 곱절이나 뛰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 역병이 번지면 모두 살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앞에 말한 임성주가 아우에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에 “목숨을 건지느라 겨를이 없다”고 썼을까. 

그 와중에 지금의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역병이 창궐한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중요한 강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대부도 있었다. 그는 대산 이상정으로 1729년 고재 이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퇴계 이황을 배향한 여강서원에서의 강회가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묻는다. 그러곤 강회에 참석자들이 모두 역병을 꺼리는데 자신의 거처가 역병 창궐 지역에 있어 강회에 참석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말 것만 같아 행장을 꾸려 출발하려다 스스로 멈췄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선조들은 나름대로 굳건하게 견디고 이겨냈으며 역병은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삼국유사>의 처용도 그렇거니와 962년인 고려 광종 13년에는 쇠로 만든 당간이 용두사에 세워졌다. 청주의 향리 김예종이 역병인 염질에 걸린 후 쾌차를 바라면서 시주해 건립된 것인데 국보 제41호 용두사지철당간이 그것이다. 조선에서는 역병이 창궐하던 17~18세기에 마을과 사찰 어귀에 역병을 물리치기 위한 장승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길가에 서서 이정표 노릇을 하던 장승이 주로 남도지방 마을과 사찰 어귀의 지킴이로 변신을 시작한 것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려 갖가지 지혜를 짜내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이처럼 하나의 문화로도 남는다. 

예로부터 마마를 큰손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결국 돌아갈 손님이지만 그가 어떤 상처와 문화를 남기고 물러갈 것인지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보다 더 현명하고 배려 깊은 대처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지금이다. 모두 강건하고 지혜롭게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며 ‘코로나19’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 견디기를 응원한다.

<이지누 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한 이후 더 적극적인 주주 권한 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올해 주총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본질과 절차에 대한 오해로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반대하는 측이 내세우는 가장 큰 논거는 대부분의 주요 기업에서 대주주 지위를 점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독립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정부 또는 일부 이해관계자 집단의 영향력에 좌우되어 왜곡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타당성을 따져보기 위해선 먼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관련 의사결정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구조를 보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주주권 행사의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지침으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가 구체적인 사안을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국민연금이 내리는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객관성 부족에 대한 우려는 구체적인 증거에 의거하기보다는 주주권 행사 관련 기구의 구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의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관련 정부 부처 차관이 위원으로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는 주주권 행사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간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별 기업의 경영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우려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주주권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침에 따른 일상적인 의결권 행사를 제외한 모든 주주권 행사와 관련되는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기구이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전문가 중 근로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단체가 각각 3인씩 추천해 9인으로 구성된다. 이와 같이 이해관계자를 중심으로 구성원이 균형 있게 안분되어 있어 상호견제 및 감시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외압’을 성공시키려면 이렇게 스펙트럼이 다양한 위원 9명 중 과반인 5명을 포섭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부에선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의 전문성 부족을 우려하지만 이는 동의할 수 없는 지적이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들은 법률, 경제, 경영, 금융, 자산운용 등 관련 분야에서 적어도 5년 이상 연구를 수행하거나 실무에 직접 종사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위원들은 기금운용본부와 의안 분석 자문기관의 분석 내용 등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전문적 식견에 따라 자신을 추천한 기관의 간여 없이 독립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것은 이 위원회의 구성이 위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존재 목적을 부정하는 처사일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에 취약한 측면이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부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활용해 현재 구조의 취약점을 보완함으로써 기금 가치 극대화라는 목적 추구에 적극 임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다.

<박창균 |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손꼽아 세어보니 열 번이 넘는다. 아파트 출입문을 열 때 여섯 번, 집 안으로 들어설 때 또 여섯 번 번호판을 눌러야 한다. 2층에 살아서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배달음식이나 택배가 오면 또 긴장한다. 배달하는 분이 마스크를 썼는지 즉각 확인하고 얼른 물건을 받아드는데 그때마다 손잡이 부분이 신경 쓰인다.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마다 예민해진다. 손잡이를 잡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코로나19 사태가 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일상적 삶은 다름 아닌 손을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절감한다. 사회생활이란 수많은 문을 드나드는 것이고, 그 문은 매번 손을 써야 여닫을 수 있다. 과학기술이 진전하면서 손의 역할은 크게 줄었지만, 손이 하는 일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손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연결한다.

어디 손뿐이랴. 신종 감염병이 낯익었던 모든 것을 낯설게 한다. 그중 하나가 사회적 거리다. 다른 사람과 1~2m 간격을 두라는 것인데, 이 범세계적 캠페인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말(飛沫)을 공유하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집과 일터를 비롯해 학교, 대중교통, 극장, 거리에서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신다. 내 날숨이 누군가의 폐로 들어가고, 누군가의 날숨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과 새, 사람과 나무도 다르지 않다. 뭇생명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신종 감염병은 기왕의 체제와 시스템의 이면을 노출시켰다. 자본주의 경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시민들(소비자)이 이동을 멈추자 시장이 얼어버린 것이다. 개별 국가의 안이한 대처도 동시다발로 노출됐다. 대부분 국가가 관성에 젖어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했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공공의료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의료는 전적으로 정치 문제라는 사실이 또 한 번 판명됐다.

신종 감염병이 ‘세계적 대유행’ 단계로 접어들자 지구촌 곳곳에서 또 다른 민낯이 목격됐다.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선언하고 나선 유럽에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관용(포용)의 문화가 혐오를 넘어 적대로 증폭됐다. 아시아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화장지와 식료품을 사재기하고,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맨얼굴로 거리를 활보했다. 물론 그곳에도 ‘선한 사람들’이 있어 자가격리 중인 이웃을 찾아 위로하고, 봉쇄된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는 합창 무대가 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신종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장기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재난이 일상화할 것이라는 예측은 기후학자들이 벌써부터 제기해왔다. 지구 평균 기온이 급상승할 경우 우리가 감수해야 할 재앙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후위기에 견주면 이번 사태는 일시적으로 보인다. 신종 바이러스는 언젠가 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개인, 지역, 국가, 세계의 대응이 근시안적이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내 눈길을 붙잡은 것이 있다. ‘국민 모두가 방역의 개인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저마다 방역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손을 자주 씻고, 외출을 삼가며,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매 순간 내가 나를 관찰해야 한다. 무의식적 행동을 매 순간 의식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위빠사나(마음챙김) 같은 종교 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또 이렇게 같은 시간대에, 그것도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펴보게 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우리가 저마다 진정한 방역의 주체가 된다면, 그래서 2주 가까이 자신의 일상을 깊이 성찰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사태를 극복하고 돌아가고 싶은 일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 코로나19 이전의 ‘나’로 돌아가면 그만인가.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정상화’가 예전과 다름없는 삶과 사회, 예전과 똑같은 국가와 문명인가. 의철학자 조르주 캉길렘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은 원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방역을 하면서 원상회복이 아니라 다른 미래를 설계하는 주체가 바로 ‘전환의 주체’다. 이번에 우리가 전환의 주체로 재탄생할 수 있다면 또 다가올 전염병은 물론 기후위기를 비롯한 장기 비상사태에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TV 시청 시간이 늘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를 찾아보게 된다. 밤사이 확진자 추이와 일별 확진자 수는 어떤지,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상황은 어떤지, 경제활동 등 삶의 조건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불안과 두려운 마음으로 자꾸 뉴스를 보게 된다. 우리의 생존과 안전이라는 당면한 과제 앞에 각종 리얼리티 예능은 그 관심과 흥미가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것 같다. 정말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 매일 펼쳐지고 있는데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도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주는 것은 이웃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모아 파출소 입구에 두고 간 장애인의 기사를 보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코로나19로 기다렸던 콘서트가 취소되자 환불받은 티켓값을 기부하는 BTS 팬클럽 ‘아미’를 보면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작은 액수나마 동참할 수 있었다. 하루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이탈리아에서 집안에 격리돼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 베란다에 나와 서로를 격려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때, 경제적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난 가운데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서로에 대한 지지와 돌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감염의 위험과 가족들의 염려를 뒤로하고 재난 현장으로 달려가는 의료인들을 볼 때면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게 된다고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재기에 나설 것인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함께 나누고 배려할 것인가? 감염환자를 바이러스 취급하며 혐오하고 배제하며 분리의 벽을 높이 쌓을 것인가?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이웃으로 보고 연대하고 협력할 것인가? 

지난주 학교에 나가서 4월6일 개학 준비 회의를 했다. 등교 시간 교문에서 발열 체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수업 시간 아이들 자리 배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안전한 급식 방법, 마스크 쓰고 생활하기 등에 대한 구체적 준비를 협의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가능하겠는가? 정답을 갖고 있지 않은 초유의 상황에서 서로의 지혜를 모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이제 예정된 개학일까지 2주 남짓 남았다. 2주 동안 우리가 자신과 전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대로 해서 확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고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받는지 매 순간 확인한다. ‘함께’가 아니면 결코 헤쳐나갈 수 없는 이 시련에 대한 해법 중 하나가 ‘사회적 거리두기’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반 칼럼/직설

거울을 잘 보지 않던 아이가 문득 몹시 골똘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는 날이 있다. 10대들의 교실에서 글쓰기 교사로 일하다 보면 그런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별 관심 없던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아이는 이제 자의식의 축복과 저주 속에서 한층 더 복잡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내 모습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신경 쓰며,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를 수없이 느끼며 자라날 것이다. 누구도 그 변화를 늦추거나 멈출 수 없다. 

글쓰기 교사인 나는 아이가 자기 몸을 최대한 덜 미워하기를 혹은 아무래도 좋다고 느끼기를 소망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거울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자주 건네는 건 몸의 느낌에 관한 질문이다. 지난주의 키와 이번 주의 키가 다른 그들은 최근의 자기 모습과 감각을 기억하며 글을 쓴다. 

열네 살 김시후는 이렇게 썼다. ‘그림을 그리다가 화장실에 가서 불을 켰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낯설어서 흠칫했다. 3초 정도 멈춰 있다가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몸이 뻐근하고 뭔가 척추뼈가 지그재그로 흩어진 기분이 든다.’ 

자기 신체가 새삼스러운 건 김시후뿐만이 아니다. 열다섯 살 양휘모는 앱 카메라 속 자기 얼굴을 이렇게 증언한다. ‘어느 날 페이스북을 보다가 ‘트루 미러’라는 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의 진짜 얼굴! 아직도 모르십니까?’라고 써있길래 호기심에 바로 깔았다. 앱에 들어가니 좌우반전이 된 카메라가 켜졌고 ‘이것이 다른 사람이 보는 당신입니다’라고 써 있었다. 트루 미러 속 내 얼굴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좌우가 바뀌었을 뿐인데 훨씬 못생겼고 마치 다른 사람과 영상통화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좌우가 뒤바뀐 내 얼굴도 낯설지만 녹음해서 다시 듣는 내 목소리도 낯설기 마련이다. 열두 살의 김지온은 이렇게 썼다. ‘내 목소리가 녹음기로 들어가면 조금 이상해진다. 막막한 느낌이 든다. 녹음기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별로 듣기가 싫다. 내가 아닌 것 같다.’

한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내 몸에서 나올 때도 있다. 열세 살 기세화는 이렇게 썼다. ‘수학 시간에 다들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모두 날 쳐다보며 웃었다. 내 옆자리에 있던 지윤이가 왜 소리를 질렀냐고 물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서 그냥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기세화의 당황은 원고지에서도 역력하다. 그는 궁금하다. ‘내가 왜 갑자기 소리를 질렀지?’

이들의 글을 보며 나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를 떠올린다. 한 남자가 10대부터 80대까지 자기 몸의 감각을 기록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문장은 신체의 성장과 노화와 고통과 쾌감에 특별히 집중하며 쓰여졌다. 소설 속에서 하루 종일 거울 속 자신을 남처럼 노려 보던 유년의 아이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넌 미친 게 아니야, 넌 네 느낌과 놀고 있는 거야. 넌 네 느낌에게 질문을 던지지. 아마 끝없이 계속 물을 거다. 어른이 돼서도, 아주 늙어서까지도. 잘 기억해두렴. 우린 평생 동안 우리의 감각을 믿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단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평생 길고 긴 몸의 일기를 쓰게 된다. 쓰는 동안 그는 어색한 친구와 차차 친해지듯이 스스로에게 적응해간다. 

가장 어려운 우정은 자기 자신과의 우정일지도 모른다. 몸의 감각에 대한 글쓰기는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다니엘 페나크는 그 일기가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몸의 온갖 신호로부터 상상력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자고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달라져 있어서 당황스러운 10대들과 함께 나는 몸의 일기를 쓴다. 때때로 몸의 일기가 마음의 일기보다 더 확실하고 부드럽게 몸과 마음을 연동시키기 때문이다.

<이슬아‘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다가 보여준 ‘폐업 엑시트’  (0) 2020.04.02
모든 투표는 계산된다  (0) 2020.03.31
몸의 일기  (0) 2020.03.24
혐오를 복용하는 사회  (0) 2020.03.19
교육은 공공재여야만 한다  (0) 2020.03.17
빼앗긴 겸상에도 봄은 오는가  (0) 2020.03.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전국 곳곳에서 개화 소식이 들린다. 이제 곧 개나리도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노란 꽃잎이 화사한 개나리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하지만 이름만 놓고 보면 참 못난 꽃이다. 우리말에서 접두사 ‘개’는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등의 뜻을 나타낸다. ‘개나리’도 백합 같은 나리꽃 가운데 가장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나쁜 의미의 ‘개’와 대립하는 말은 ‘진’이다. ‘들에 피는 달래보다 더 좋은 꽃’이 ‘진달래’다.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달래는 ‘참꽃’으로도 불린다.

진달래와 함께 우리 산과 들을 붉게 물들이는 꽃으로 흔히 ‘연산홍’으로 불리는 것도 있다. 하지만 ‘연산홍’은 잘못된 이름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이 꽃이 ‘영산홍(연산홍)’으로 올라 있어 ‘영산홍’과 ‘연산홍’이 모두 바른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산을 붉게 비치게 한다’는 한자말 ‘영산홍(映山紅)’이 바른 이름이다. 이 꽃을 ‘왜철쭉’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철쭉’은 독성이 있어 사람이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달리 부르는 말이 ‘개꽃’이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동과 청소년 등을 협박해 성착취 불법 동영상을 찍게 하고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20대 남성 조모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들끓고 있다. 취약한 처지의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후폭풍이다. 23일 오후 7시 현재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청원에 235만여명이 동의했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에도 165만여명이 동참했다. 합쳐서 400만명을 넘어섰다.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강한 모바일 메신저다. 성착취 범죄자들은 이곳에 비밀 대화방을 개설하고 영상물을 유포했다. ‘갓갓’이라는 운영자(미체포)가 1~8번 대화방을 운영하며 ‘n번방 사건’이란 명칭이 생겼다. 이후 유사 대화방이 여러 개 등장했는데, ‘박사’라 불린 20대 조모씨가 만든 ‘박사방’이 가장 악질로 꼽혀왔다. 박사방의 실체는 최근 조씨가 구속되며 드러났다. 조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여성들을 유인해 신체 사진을 받아낸 뒤 신상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성착취물 촬영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만 74명, 이 중 16명이 미성년자다. 피해자들은 박사방 내에서 ‘노예’로 불렸다. 조씨는 유료 대화방을 단계별로 구축해 영상을 뿌렸다. 1단계 20만~25만원, 2단계 70만원, 3단계는 150만원을 받았다. 성착취물 내용은 차마 지면에 옮기기 어렵다.

소라넷, 웹하드, 다크웹(특수한 브라우저를 통해야 접근 가능한 웹),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는 공권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대만 옮기며 계속되고 있다. 범죄의 양태는 갈수록 추악하고 잔인해진다. 국회와 법원·검찰의 책임이 크다. 

지난 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 속기록을 보자. 쟁점은 ‘반포(유포) 목적이 아니어도 딥페이크(원본에 다른 이미지를 더해 가공의 영상을 만드는 기술) 영상물 제작을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나 혼자 즐긴다 이것까지 (처벌로) 갈 거냐”고 했다.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청소년들이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김오수 법무부 차관) “나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 없다”(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발언이 이어졌다. 모두 법조인들이다. 한국 사회 주류의 저열한 젠더감수성, 뿌리 깊은 ‘가해자 중심주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일단 유포된 영상물은 매우 빠른 속도로, 엄청난 확산성을 갖고 퍼져나간다. 피해자 상당수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다. 죽음으로 항변한 이의 영상조차 ‘유작’으로 불리며 소비된다. 한 판사는 “디지털 성범죄를 강간·강제추행 등 직접 접촉 성범죄보다 가벼운 성범죄로 생각하는 경향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성범죄는 (영상물) 제작 즉시 피해가 완료되는 범죄가 아니다”라며 “제작·유포·소지 모두 피해자 인격에 심대한 상처를 주는 개별적이고 새로운 가해행위로 봐야 한다”고 했다.

박사방의 동시 접속인원은 최대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박사방은 수많은 n번방의 하나일 뿐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n번방 60여곳의 참여자 수를 총 26만명으로 추산한다. ‘과장’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곳에 중복 접속했을 것이라는 게 근거다.

또 다른 가능성은 없나. 여러 명이 입장료를 n분의 1로 나눠 부담하고 계정을 공유한 사례도 있지 않을까. 넷플릭스 계정도 월 1만4500원에 4인이 공유하는 게 트렌드다. 지난 주말에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텔레그램 탈퇴’가 오르기도 했다.

26만명보다 적다고 치자. 2만6000명, 아니 2600명이면 눈감아도 괜찮은가? 인간의 존엄은 숫자로 따질 수 없다.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놀이’로 즐긴 사람은 모두 공범이다. 경찰도 “박사방 유료회원은 전부 수사선상에 놓고, 인적사항이 특정되는 대로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박사’ 조씨의 이름·나이·얼굴 등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조씨의 신상정보는 공개해야 한다. n번방 참여자도 모두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 호기심으로 ‘눈팅(지켜보기)’만 했다고 면죄부를 줘선 안된다. 

n번방이야말로 반(反)사회적 바이러스다. 영화 <벌새> 감독 김보라의 말을 빌리면 “지금 한국의 성범죄에는 ‘팬데믹’ 선언이 필요하다.” 감염병 피해자인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도 공개하는 시대다. 성착취 바이러스는 박멸하고 가해자는 응징하라.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멀리 꽃산행 가서 아침을 때울 때 콩나물국밥은 흔한 메뉴 중의 하나다. 지역색이 물씬한 식당들은 그릇도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가격은 비슷하고 모두 콩나물을 듬뿍 넣어준다. 구례공영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첫 국물을 뜨자 혀가 장구를 쳤다. 이제껏 먹은 것 중 최고라고 덕담을 건넸더니 뿌듯한 기분을 감추지 않으셨다. 그 바람에 덩달아 즐거워지며 맛에 풍미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소라도 되어 우둑우둑 여물 씹는 기분으로 먹으면 더욱 좋아지는 콩나물국밥. 이번에도 턱밑에서 워낭소리 울리며 마지막 국물까지 핥아먹었다.

순천 외곽의 상검마을을 지날 때 그간 잊고 지냈으나 내 기억의 골짜기에 오래 달착지근하게 붙어 있던 냄새가 났다. 그것은 마을 끝에 있는 축사에서 소와 송아지 일가가 나에게 한 움큼 선물하는 것이었다. 아침의 그 통통했던 콩나물 줄기를 다시 꺼내 되새김질하면서 축사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상검마을 골짜기는 봄꽃들의 잔치판이었다. 꿩의바람꽃, 얼레지, 만주바람꽃, 현호색이 활짝 피었다. 골짜기가 깊어서 꽃들의 씨앗이 무척 굵었다. 꼴을 많이 베어 망태가 무겁듯 좋은 사진을 흡족하게 찍어 카메라도 무척 무거워졌나. 흔들흔들 내려오는 길. 소들의 집 앞에 다시 섰다. 식구들이 제법 되는 대가족이다. 이름이 따로 없기에 그저 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놈! 으로 통하는 소의 식구들.

갇혀 있는 건 소만일까.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처럼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들. 소들도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았다. 숫제 웬 놈이냐며 싱숭생숭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소는 무슨 전해줄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을 씰룩거리기도 한다. 그이들의 사전에 저 낮은 신음밖에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나를 지나 소들이 늘 바라보는 곳으로 눈을 돌린다. 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늙은 소에서 송아지까지, 소들의 시선이 한결같이 모이는 곳이 있다. 매화가 잔뜩 피어 있는 밭 가, 그 밭 사이로 말라버린 개울, 그 건너 저편, 피안의 언덕인 듯 봄햇살이 자글자글 끓고 있는 아늑한 무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낚시제비꽃  (0) 2020.04.07
미선나무  (0) 2020.03.31
순천 상검마을 축사 근처 매실나무밭 풍경  (0) 2020.03.24
동강할미꽃  (0) 2020.03.17
영월 동강의 갯버들  (0) 2020.03.10
철원 도피안사에서 나무공부  (0) 2020.02.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 어떤 모습이라도 일상은 나를 이루는 터전이다. 특별한 것 없지만 늘 항상 그러한 것. 바로 거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나타나면서.

아이의 개학이 몇번 미뤄지고 보육을 위해 연차를 냈다. 사람이 가득찬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동료들과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쇼핑은 가능하면 온라인을 이용한다. 운동을 하러 가지 않는다. 가능하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외식을 줄인다. 퇴근 후 영화 한 편, 맥주 한 잔도 바이바이. 바로 지금 휴대폰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긴급재난문자’가 울린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직장인 지침. 유증상 시 재택근무, 직장 내 2m 거리 두기, 마주 보지 않고 식사, 다중공간 사용 않기, 퇴근 후 바로 귀가하기.” 일상이 어그러지면서 불안해지고, 불안하니까 움츠러든다. 견고한 일상에 발을 딛고 ‘나’와 ‘내 주변’ 너머를 살피던 사람들이 점점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상을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게 되자 타인의 일상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특히 일상이 남들보다 더 위태롭고 팍팍했던 이들, 균열로 인한 흔들림의 강도는 더 셀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일상이 그렇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주문과 택배 배송이 늘어나는 가운데 40대 비정규직 배송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회사 측은 배송 물량이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현장의 말은 이와 다르다. 플랫폼 노동이나 배달 시장이 코로나19 와중에 그나마 버티는 시장이라지만, 종사자에 대한 처우나 안전은 늘어나는 물량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한 사업장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하거나 지급받더라도 방한대였다고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1급 방진마스크를 받았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답답한 콜센터에서 여전히 전화를 받는 업무를 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전화를 받아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 있어 죄송하다”고 하면서.

와이파이를 잡으려 화장실에 쪼그려 앉은 영화 <기생충> 속 기우·기정처럼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책상과 휴대용 스탠드를 메고 와이파이를 찾아 산에 올라 인터넷 수업을 들어야 했던 한 중국 중학생의 이야기는 디지털 격차를 보여준다. 대학 강의들이 화상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수화나 자막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학습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균열은 오히려 일상을 고스란히 들춰냈다.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일상. 코로나19 이전에도 비정규직들은 계속 차별철폐를 외쳐왔고, 플랫폼 노동자들은 형태가 녹아내려버린 노동을 담을 틀을 요구해왔으며, 디지털 격차와 장애인 학습권은 오래됐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은 이슈였다.

일상의 균열이 생길 때 비로소 드러나지 않던 이들의 일상이 드러난다는 점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제 그 아이러니를 조화로 바꿀 수 있을까. 서로가 거리를 두고,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으니 협력과 연대의 둘러보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던 코로나19가 부각한 상처들을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올해는 봄이 오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와도 더디 오리라 믿었다. 그런데 성큼 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이, 코로나19 속에서도 봄은 어김이 없었다. 봄은 여러 빛깔로 다가왔다. 화엄사의 홍매화가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자, 한양도성 성곽길의 산수유가 질투하듯 노란 봄소식을 전했다. 서촌 한옥 마당의 키 큰 목련은 하얀 꽃송이를 주렁주렁 내걸었다. 남녘에서는 벌써 꽃 잔치가 시작됐다. 구례 산동의 산수유 마을은 온 동네가 노랗다. 제주 시내 벚나무 가로수는 모두 연분홍으로 변했다. 곧 개나리·진달래가 산하를 물들일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봄이다.

봄꽃이 피면 사람들은 꽃구경에 나선다. 봄을 즐기는 상춘 나들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30년 전 벼슬을 던지고 낙향한 정극인은 <상춘곡>에서 봄날의 흥겨움을 노래했다. 그뿐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춘기(春氣)을 떨쳐내지 못해 꽃을 찾아나섰다. 조선시대 탐화(探花)·상화(賞花)의 기록은 적지 않다. 왕조실록 1792년 3월20일조에는 정조 임금이 인왕산의 상춘 행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풍속지 <열양세시기>는 한양의 상춘 명소로 남산의 잠두봉, 인왕산의 필운대와 세심대를 꼽았다.

지난주 매화꽃이 만발한 광양 매화마을에는 상춘객 수십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구례 산동에도 산수유꽃을 보려는 인파로 북적댔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매화축제·산수유 축제를 취소했는데도 상춘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문제는 상춘인파가 또 하나의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산수유 마을을 찾았던 60대 3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추가 감염이 우려되는 속에서 경남 창원시가 이번 주말 예정된 군항제를 전면 취소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속속 봄꽃축제를 접고 있다.

상춘을 탓할 수는 없다. 봄꽃 나들이는 감염병으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인파 밀집장소는 피해야 한다. 굳이 봄꽃 명소를 찾는다면 거리 두기를 한 채 걷자. 자동차를 탄 채 즐기는 ‘드라이브 스루’ 상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명소보다는 집 주변에서 소소한 봄꽃을 즐기는 일이다. 찾아보면 숨어 있는 상춘 명소는 얼마든지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 사람의 시간을 셈한다. 몇 번이나 세었을까. 오늘이 한달이다, 오십일이다, 백일이다, 이백일이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곧 삼백일이 된다. 강남역 철탑 위,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의 시간이다. 1990년대 삼성항공(테크윈)에 입사해 노조설립을 주도하다 해고당한 그는 노조탄압과 부당해고에 대한 삼성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작년 6월 철탑에 올랐다. ‘무노조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시도했던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비노조 경영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그룹노사전략’을 수립하고 에버랜드 내 상황실을 설치하여 노조설립을 시도하는 근로자들을 상당 기간 감시하면서 그들의 사생활 비밀을 함부로 빼내고, 징계사유를 억지로 찾아내어 징계하여 회사에서 내쫓으려 하거나 급여를 깎아 경제적 압박을 가하게 만들고,…노조 활동을 한 근로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 내에서 적대시되고 그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삼성 에버랜드 노조와해 사건 판결문의 일부다. 김용희에게 일어난 것도 이러한 일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삼성 경영진의 인식을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에 등장하는 산업도시 코크타운의 공장주에 비유했다. 이 19세기적 노동탄압 사건은 작년 12월 7년 만에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사건을 주도했던 관련자들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삼성의 조직적인 노조파괴 행위는 김용희 같은 피해 노동자들의 끈질긴 증언과 투쟁이 없었다면 세상에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스페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이 ‘코로나 파업’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감염 위험에도 작업을 강행하거나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는 회사에 항의하고 대책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파업을 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위기를 막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60일간 해고를 금지하고 덴마크 정부는 임금 보전을 요구하는데, 한국에선 ‘기업의 위기를 막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코로나19 사태는 동물들이 위험에 처한 곳에서는 인간도 안전할 수 없고, 노동자가 아픈 곳에서는 다른 시민들도 건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안전망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안전망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하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쿠팡맨이 쓰러져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고 콜센터 노동자들이 집단감염되는 이 현실도 끝나지 않는다. 김용희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 및 횡령 사건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삼성준법감시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지난 3월11일, 이 기구는 삼성그룹이 과거의 노조와해공작 등 노동탄압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삼성이 정말로 반성의 의지를 보이려면, 제일 먼저 김용희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는 삼성에 의해 파괴당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상징하며, 노동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김용희의 삼백일은, 삼성이 침묵한 삼백일이다. 김용희의 철탑 위 시간이 길어질수록 삼성의 죄도 그만큼 무거워진다. 사태를 묵인하고 방관한 정부와 여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의 2대주주다. 의지만 있다면 구할 수 있다. ‘국민’의 한 사람인 노동자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며 버티고 있다. 그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언제까지 그의 사위어가는 몸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4월4일, 삼백일이 된다. 이제 응답하라. 김용희가 철탑 위에 있는 한, 삼성의 노조파괴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채효정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원들이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사 협력사 및 하청업체 직원들이 무급휴직 혹은 정리해고를 강요받고 있다”며 “인천공항 및 영종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인천공항 전체 노동자에 대한 한시적 해고금지를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 공포가 커지면서 고용시장에서 대량해고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의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이미 도·소매업 취업자수가 10만6000명 감소했다. 취업자 중 일시 휴직자는 14만2000명 증가했다. 10년 사이 가장 큰 증가폭으로, 휴업·휴직·실직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이달 셋째주 코로나19 관련 해고·권고사직 제보 건수가 첫 주에 비해 3.2배 증가했다. 시장에선 6조5000여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4월 위기설’까지 나돈다. 소비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 중 자금사정이 나쁜 기업들이 ‘돈맥경화’로 줄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재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의 법인·상속세율을 내리고, 노동자 해고 요건은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노동자와 함께 이겨나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기업 먼저 살겠다는 발상이 유감스럽다. 하지만 그 위기감과 절박감에는 공감한다. 한시가 급한데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니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지난 며칠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를 보면 소극적 자세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휴업수당이나 재난기본소득 도입 등 지원 논의가 더디기 짝이 없다. 현장에서는 벌써 아우성인데 여전히 재정건전성 타령을 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9%로 독일의 5분의 1 수준, 미국의 절반도 안된다. 프랑스·스웨덴 등이 유급휴가 비용을 정부가 보장하고, 미국은 630여조원을 국민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균형 재정을 고집해온 독일도 20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준비 중이다. 해외 주요국이 사태 해결을 위해 중장비를 총동원하는데 우리 당국은 삽질만 하는 격이다. 

코로나19 공포는 소비·활동을 위축시켜 실물위기를 불렀고 금융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체결로 진정 기미를 보이던 금융시장이 23일 다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대량 실직이 현실화하면 피해는 예측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시장 안정대책과 함께 소비 자체가 어려운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실행 가능한 긴급복지지원제 확대는 물론 재난기본소득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일을 잠시 멈추어야 하는 노동자의 유급휴가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도 살 수 있다. 기존의 제도뿐 아니라 새로운 발상으로 대책을 내고 신속하게 집행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친 뒤 사후약방문을 들고 나서면 무슨 소용인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로나19 집단감염 방지를 위해 정부가 종교 집회 등 밀집 행사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22일 예배를 강행한 구로구 연세중앙교회 앞에서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23일 방역수칙도 무시하고 예배를 강행해온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 대해 집회금지 명령을 내렸다. 다음달 5일까지 예배·친목 행사를 금지시켜 사실상 교회 문을 닫게 한 것이다. 이 교회는 전날 오전 11시~오후 1시 2000여명이 밀집해 예배 보면서 신도 간 1~2m 거리 두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석자 명단 작성 수칙도 어겼고, 바짝 붙어 기도·찬송·율동을 하면서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에선 그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광훈 담임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도회를 평일에도 계속해왔다. 집회엔 전 목사가 이끌던 태극기집회 참석자들도 대거 가세했고, 그중 일부는 시정을 요구하는 구청 직원과 경찰관에게 “너희는 부모도 없느냐”며 폭언과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서울시는 집회금지 명령을 어긴 사람은 1인당 3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확진자 발생 시 구상권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합당한 조치다. 시민들의 안전은 아랑곳없이 안하무인 격으로 정치성 행사를 해온 교회로선 자업자득이다.

23일 교회 3185곳도 방역당국으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전국 교회 4만5420곳 중 7%가 방역수칙이 미흡한 채 일요 현장예배를 봤다가 적발된 것이다. 전체의 57.5%는 예배를 중단하거나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고, 나머지는 현장예배 시 방역수칙을 지켰다고 평가됐다. 정부가 22일부터 2주간 종교·실내체육·유흥시설 운영을 중단토록 요구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교회 다수가 협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적발된 3185곳은 지금까지 집단감염이 주로 일어난 중·소교회들이다. 정부는 감독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큰 숫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현장조사를 교회에 집중한 주말과 휴일, 서울 강남·이태원·홍대입구 일대에서는 문을 연 클럽들이 목격됐다. 입장 때 발열과 마스크 착용 여부를 확인했지만 내부에선 방역수칙이 무시됐다. 내달 6일 각급 학교 개학 전까지 펼쳐질 고강도 거리 두기는 코로나19 총력전의 핵심이다. 이 시기에 확진자 발생을 안정적으로 더 낮추고, 생활방역으로 전환할 준비도 마쳐야 한다. 언제까지 코로나19에 끌려갈 것인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게 해서도 안된다. 시민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하고, 정부는 행정명령을 비웃는 시설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을 유포한 ‘박사’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 촬영물을 불법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시민들이 공분하자 정치권이 앞다퉈 가해자 엄벌과 대책 마련을 약속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근본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운영자는 물론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절책 마련을 정부와 경찰에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20대 국회에서 불법촬영물 처벌 강화 내용 등을 담은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당과 민생당 등은 국제 공조 수사, 온라인상 성착취물 수사 전담기구 설치 추진 등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불관용원칙과 근절방안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민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제출했지만 의원들은 이 법안을 무시했다. 당시 청원인들은 해외 서버에 대한 경찰의 국제 공조 수사와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자 처벌 강화를 위한 양형기준 재조정 등을 요구했지만 의원들은 외면했다. 지난 3일 이 국회 청원을 논의한 국회 법사위 제1 소위원회 회의록 내용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n번방 사건을 잘 모르겠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갈 거냐”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 처벌할 수 없지 않나”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젠더와 인권에 무지·무감각한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들의 민낯에 기가 막힌다. 

디지털 성범죄는 인격살인인 만큼 중대 범죄로 엄벌해야 한다. 또 디지털 성범죄는 일회성 처벌로 해결할 수 없다. 당초 문제를 일으킨 n번방이 단속을 받자 피의자들은 다른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이동해 방을 만들었다. 플랫폼만 바꿔가며 더욱 교묘하게 범죄를 이어가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사건의 주범 조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추가 피해와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선 범행을 주도한 인물들의 신상정보 공개는 당연하다. 불법영상물을 단순 열람하는 행위 등을 포함해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총선용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입법으로 응답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꼼수에 대해 민주당은 세 가지 선택지를 갖고 있었다. 최선은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고 미래통합당만 꼼수정당이라는 주홍글씨를 도드라지게 하고, 그럼으로써 집중적 응징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개정선거법의 가치와 집권여당의 명분을 챙기고, 동시에 선거에도 이길 수 있는 상책이다. 물론 위험이 따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래한국당이 훨씬 많은 비례의석을 가져갈 것처럼 나타나니 입이 마를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대세 물결을 타야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돌이켜보라.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선 투철한 신념이나 담대한 전략 중 최소한 하나는 갖고 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그렇지 못함이 드러났다.

차선은 진정한 의미의 연합비례정당을 창당하는 것이었다. 소수정당의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주고자 하는 개정선거법의 취지가 제1야당의 몰염치로 인해 훼손된 마당에 집권여당이 중심이 되어 소수정당을 포용하고 일부라도 그 취지를 되살려낸다면 충분히 박수 받을 수도 있었다. 그 대상은 반드시 정의당이나 진보정당으로 국한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소위 제3지대라고 불리던 중도정당까지 포괄할 수 있었다. 범여권 블록 내부의 합의정치를 실험할 수 있고 거기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회의 모습을 보인다면 개헌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중도정당을 포용함으로써 지지기반을 중도층으로 확장할 수도 있었다. 이것을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양보가 필요하다. 꼭 민주당 의석이 아니더라도 정책에 합의할 수 있는 정당이라면 연합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최악은 미래통합당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것이었다. 기존 선거법하에서 양대 거대정당은 소수정당의 몫까지 빼앗아 먹으면서 적대적 공생을 해왔는데, 이제는 1 대 1 적대가 아니라 2 대 2 적대가 되었다는 것 말고는 과거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정당이 원 플러스 원이라니. 정당이 편의점인가. 결정적으로 개정선거법의 정신을 집권여당이 스스로 부정했기에 모든 명분이 사라졌다. 이제는 야당이 ‘4+1’은 공수처법을 위한 꼼수였다고 비난해도, 개정선거법은 처음부터 괴물이었다고 궤변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는 근거를 스스로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창당의 파트너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급조된 친조국, 정확히 말하면 조국 전 장관을 팔아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섞여있는 정당들이다. 이제 서초동 대 광화문의 대결은 선거판으로 옮겨서 그대로 재연될 것이다. 

중도 및 소수 유권자는 정치적으로 대표될 나의 권리를 누가 훔쳐가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원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수파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전혀 대표될 수 없었던 소수의 의견이나 중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그런데 두 거대정당이 위장 계열사를 만들어서 골목식당의 먹거리를 싹쓸이해 가려 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위성정당은 소수의견이나 중도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의 권리를 훔쳐간다고도 할 수 있다.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고 했던가. 21대 국회는 그 이상을 보여줄 것임이 확실하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양대 정당만이 아니다. 관련된 개인도, 소수정당도 책임을 나눠 가지고 있다. 먼저 최악의 꼼수를 들이민 미래통합당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조직과 공천을 떡 주무르듯 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정당법, 선거법, 헌법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법조인 출신인 황교안 대표를 비롯하여 관련된 개인들의 도덕적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이 자신의 위성정당이 아니라고 하고 열린민주당은 맞다고 흘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으니 나중에 친자확인소송이라도 할 셈인가. 민주당에서 공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서초동 대 광화문 대결구도를 끝까지 우려먹겠다는 계산이라고 의심받는데, 사실이라면 이들은 사익을 위해 국민과 문재인 정부를 배신하는 셈이다. 신생정당이 워낙 많다보니 한꺼번에 묶어서 얘기하기 어렵지만,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었다. 원 플러스 원 적대의 구도가 짜인 지금 그들에게도 물어야 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될 거라는 점 말고, 창당할 때 내세웠던 가치 중에서 무엇을 실현했느냐고. 각 정당의 거물급 정치인들에게도 물어야 한다. 이 와중에 어느 신생정당과 손을 잡아야 나를 중심으로 판이 짜일지 계산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