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의 사무실에 계란이 투척됐다. 김 후보에 따르면 24일 밤 40대 남성이 김 후보의 지역구 내 선거 사무실에 계란을 던지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의 종이를 붙인 뒤 달아났다고 한다. A4용지 크기의 종이에는 “문재인 폐렴 대구 초토화 민주당 OUT” “신적폐 국정농단 혁명 문재인을 가두자”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야만적 작태가 벌어지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심야 계란 투척도 어이없지만, ‘문재인 폐렴’ ‘대구 초토화’란 극단적 혐오 표현을 갖다 붙인 것은 더 고약하다. 지금 대구·경북 주민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느 지역보다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때 터무니없는 자극적 표현으로 정부와 시민을 이간시키고, 지역 분열을 부추기려 했다는 데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얻는 정치적 이득은 무엇인가. 이는 ‘힘내라 대구’를 외치며 아픔을 함께하고 사랑을 나누는 온 국민의 성원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선거기간 중 폭력과 혐오 표현 등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는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지방선거 유세를 나섰다가 괴한에게 문구용 칼로 오른쪽 뺨을 찢기는 테러를 당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엔 서울 지하철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민중당 예비후보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후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의 침해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이번 사건은 미리 비난 문구를 준비해온 것을 보면 우발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범인은 하루만에 붙잡혔다. 경찰은 그가,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런 선거가 폭력과 혐오를 배설하는 난장판으로 변한다면 민주주의가 온전할 수 없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이자 선거판을 망치는 행동이다. 앞으로 전국 곳곳에서 4·15 총선 유세와 토론회가 본격화된다. 이번 총선은 사상 처음으로 만 18세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는 등 의미가 각별하다. 증오를 부추기는 반민주적 도발이 더는 발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텔레그램 등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 불법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조주빈씨가 25일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를 구성하고 TF 총괄팀장 산하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이 사건을 배당했다. 경찰청도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이날부터 열었다. 검경이 조씨가 주도한 이른바 ‘박사방’을 포함해 ‘텔레그램 n번방’ 수사를 본격화한 것이다. 검경은 무관용 원칙에 따라 대화방 개설·운영자는 물론이고 시청·공유한 이용자까지 전원 수사해 엄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반인간적·반사회적인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단죄가 막 시작된 것이다. 

수사당국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첫째, 익명성·보안성이 강화된 디지털기술 속으로 숨어드는 유사 범죄자들을 계속 찾아내는 일이다. 경찰조사 결과 조씨는 법망의 추적을 피하고자 가상통화로 입장료를 받는 수법을 썼다. 보안이 철저하다는 텔레그램에 불안을 감지한 이들은 이미 또 다른 해외 서버 메신저로 옮겨가기도 했다. 제2, 제3의 ‘n번방’이 언제든 횡행할 형국이다. 둘째, 2차 피해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 조씨 검거 이후 규모는 줄었으나 여전히 온라인 대화방을 통한 성착취 불법 영상물 거래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대피소’로 이름 붙인 새 대화방에 5000명이 모였다고 한다. 심지어 “경찰에 잡혀간 텔레그램 유명인들을 추모한다”는 ‘추모방’까지 나왔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리를 면밀히 검토하고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다. 검찰은 조씨 사건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추가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유사 사건에 내린 처분들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한다고 한다. 사이버 성범죄 관련 처벌법을 따로 제정해 강력 처벌하자는 취지의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엊그제 하루 만에 10만명이 동의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뽑기는커녕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수사 당국은 엄중히 새겨야 한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성착취 불법 영상물이 유포·공유된 텔레그램 대화방 가입자 26만명 전원에 대한 조사와 신상공개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단순 이용자라도 일벌백계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재차 확인한 것이다. 관련 당국은 이런 자세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부가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개학을 2주일 더 연기하기로 발표한 17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파장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교사들이 신입생들을 위해 준비한 교과서와 선물 등을 정리하고 있다. 수원 _ 연합뉴스

코로나19 몸살을 앓는 한국 사회가 예의주시하는 날이 있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개학일로 잡아놓은 4월6일이다. 방역당국은 25일 “현시점에선 속단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교육부는 확진자 발생 추이, 학교 내 집단감염의 통제 능력, 방역 매뉴얼·인력·물자의 준비 정도를 보면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개학을 한다는 것은 코로나19 대응 방식이 장기적인 생활방역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반대로 등교·등원할 604만명의 학생과 가족·학교의 불안감이 크다면 개학을 강행하기도 어렵다. 세번이나 늦춘 개학을 예정대로 진행하느냐, 다시 연기하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생활 전반과 경제·교육·방역도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된다.

코로나19 새 확진자는 25일에도 100명이 추가됐다. 절반이 넘는 51명이 해외 입국자이거나 접촉자였다. 국내의 집단감염도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다중이용시설에서 새로 발생할 위험도 상존한다. 방역 전문가들은 생활방역 전환 시점을 ‘현재의 의료·방역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한 자릿수 확진자’를 기준 삼기도 하고, 더 넓혀 ‘감염경로의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범위’로 잡기도 한다. 어느 잣대로든 장기전은 불가피하며, 열흘 뒤에는 개학을 두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개학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로 결정돼야 한다. 개학이 사회에 미칠 파급력은 클 수밖에 없다. 돌봄과도 맞물려 있고, 학원·종교·프로스포츠협회가 활동 재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도 개학이다. 신음하는 경제를 오래 방치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도 무시할 수 없다. 반대로 개학했다가 확진자가 나오면 학교를 폐쇄해야 하는 혼선과 수업결손 피해가 뒤따른다. 방역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질 시점이 개학인 셈이다. 아직도 법정 수업일수에 9일의 여유가 남아 있다. 입시·학사 일정을 손대면 2주 더 개학을 늦출 수도 있다. 결국 코로나19의 잔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학을 할지, 한다면 개학 후 어느 정도의 확진자 숫자를 용인하고, 사회활동 제약과 방역 수위는 어떻게 유지할지, 경제적 유불리는 어떻게 볼지 사회 전체가 논의하고 크게 합의할 시점이 됐다. 시간에 쫓겨 벼랑 끝에서 정치적으로 결단할 문제가 아니다. 방역당국이 전문가·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준비하는 이유도 그것일 테다.

4월6일은 정부의 목표치에 가깝다. 그새 수업·급식을 학년별로 달리할 준비를 하고, 가능한 곳은 2부제 수업도 모색하고, 온라인 수업 역량도 키워야 한다. 개학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뒤 온 사회가 참여하는 성숙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길 기대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이 김형, 이리로 오라니까.” 우형이 나의 옷깃을 당기며 넌지시 말한다. 김형,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다. 평론가님, 작가님, 선생님, 형, 오빠, 김작…. 살면서 참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지만 성이 김씨라는 것 외에는 어떤 정보값도 없는 호칭, 김형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사는 게 힘들어졌다. 상반기 강연과 행사가 쓰나미처럼 휩쓸려 나갔다. 글값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하기 곤란하다. 음악이나 미디어 업계에 있는 지인들에게 일감 좀 없냐고 손을 벌려볼까 생각했다. 이내 관뒀다. 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공연과 행사가 다 취소돼 있는 직원도 줄여야 할 판이다. 이런저런 대출을 알아봤지만 근로소득세, 사업소득세를 내지 않는 프리랜서를 위한 대출은 없다. 기타소득세 3.3%만 내는 세입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 보인다. 어쩌겠는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용직의 삶을 시작했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수도권에 있는 물류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었던 새벽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됐다. 오전 5시 반쯤 일어나 6시에 집을 나선다. 6시3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물류 센터에 도착하면 오전 7시20분. 서울과 수도권 여기저기에서 출발한 셔틀버스에서 수백명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양떼가 우리에 들어가듯 하나뿐인 입구로 줄을 서서 들어간다. 열외 없이 마스크를 쓰고 열감지기를 통과한 후 사물함에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짐을 보관한 후 각자의 작업장으로 향한다. 이름은 사라진다. 휴대폰 번호 8자리로 만든 바코드를 찍고 일에 투입된다. 창고의 물건을 집품하거나 포장하거나 분류한다. 하루 종일 PDA로 물건마다, 그 물건들을 담는 박스마다 박혀 있는 바코드를 찍으면서 일을 한다. 누군가와 대화는커녕, 인사를 나눌 틈도 없다. 바코드로 인식되고 바코드를 찍는 사람들은 아직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는 부품이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로 인간이 부품화된 현대사회를 풍자한 영화를 찍은 게 1936년,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따라 물건을 담고, 포장하고, 재고파악을 하고, 분류하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별별 물건들을 주문하고 소비하는 게 자못 신기하기도 하다. 시간의 상대성을 절실히 깨달을 때도 있고, 편의와 환경은 필연적으로 반비례 관계임을 체감하기도 한다. 마스크와 목장갑을 착용하고 보내는 침묵의 하루들을 모으면 책 한 권은 금세 쓸 수 있을 듯싶다.

일이 익숙해지니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휴학생이나 주부이다. 자주 나와 얼굴을 익힌 또래 사람들끼리 그룹을 지어 점심을 먹고 휴식 시간을 보낸다. 내 또래 남자들도 가끔 보인다. 흡연실에서 한두 명씩 얼굴을 익히다 보니 넉살 좋은 누군가 먼저 말을 건다. 그룹이 된다.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3.3%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타를 맞은 업종에 있다는 것. 이벤트 회사에 다니던 사람, 영화판에 있는 사람, 지역축제를 기획하는 회사에 있는 사람…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폭탄을 맞아 일거리를 구걸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통성명을 하지만 이름은 기억하지 않는다. ‘실장’ ‘대표’ ‘팀장’ 등 원래 직함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김형’ ‘최형’으로 부르며 각자의 ‘본캐’를 지킨다. 이것은 원래 우리의 삶이 아니라는 무의식적 담합의 호칭 같다. 점심을 먹은 후 그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15분 남짓한 시간을 보낸다. 다시 오후의 일을 시작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들과도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인사는 “내일 봅시다”가 아니다. “빨리 여기서 안 봐야 할 텐데”다. 3.3% 인생들이 본래의 하루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김작가 | 대중음악 평론가>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 인생  (0) 2020.03.26
다독이는 안녕  (0) 2020.03.19
바이러스와 정치  (0) 2020.03.05
한번은, 그리고 지금은  (0) 2020.02.20
계획대로 되고 있어  (0) 2020.02.13
고양이는 진리다  (0) 2020.02.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출처:경향신문DB)

마스크 5부제로 정점을 찍었던 ‘마스크 대란’의 먼지가 차츰 가라앉고 있다. 연일 ‘마스크’가 넘쳐났던 신문과 방송 헤드라인에서 마스크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된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만 유독 모든 관심을 빨아들였던 ‘마스크 블랙홀 현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개인이든 사회든 ‘오답노트’가 중요하다. 대란이 잦아들고 있는 이때, 다음을 위해서라도 주요 플레이어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오답노트를 한번 만들어 보자.

정부 측면에선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 분명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점이 뼈아픈 실책이다. 감염병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의 공식입장은 줄곧 ‘일반인에겐 필요 없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이나 노약자들의 의료기관 방문 시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월 ‘감염예방을 위해 KF94, KF99 등급 마스크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했다가, 지난달엔 KF80으로 기준을 낮추고, 일반 시민은 혼잡하지 않은 곳에선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했다. 지방 정부도 엇박자를 내긴 마찬가지였다. 가령 경향신문사엔 손씻기와 기침예절 등을 강조하는 질본의 예방수칙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필자의 아파트엔 ‘대중교통 이용, 공공장소 방문 시 필수’라는 단서하에, 마스크 착용을 제1 수칙으로 당부한 서울시의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으라’는 구청의 안내방송도 하루 2번씩 나온다. ‘건강한 시민엔 필요 없다’는 질본의 원칙이 무색하게도,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마스크를 쓰고 회의하거나 외부행사 현장을 방문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모습도 ‘무조건 마스크’ 메시지를 각인시켰다. 물론 마스크 대란의 최대 실책은 현장 수급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끝내 대통령 사과까지 부른 경제부처의 헛발질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문가 집단은 또 어땠나. 코로나19는 공기 전파가 안되므로, 세균 접촉 가능성이 높은 손씻기가 가장 중요하고, 손으로 눈·코·입과 얼굴을 만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 미 질병통제센터(CDC), 대만과 싱가포르 방역당국, 질본 등의 일관된 의견이다. 대한감염학회와 대한예방의학회 등은 이를 따라 권고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부터 마스크 착용을 도드라지게 강조했다. 지난 12일엔 아예 정부 방침과 반대로, 면 마스크 사용, 보건용 마스크 재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마스크 부족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사흘 만에 “안 쓰는 것보단 면 마스크라도, 일회용 재사용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다시 내기도 했다. 불안한 시민들에게 차분히 설명하기보다 정부 비판에 골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이 가장 문제였다. 풍랑에 휩싸일 때 냉정히 사태를 분석하고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일 텐데, 혼란을 방치하고 불안을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주무 부처, 지방정부의 마스크 착용 권고가 다른지, 한국·외국의 상황과 마스크 착용 기준이 과학적으로 다른 것인지를 질문하고 통일된 의견을 주문했어야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에 확진자 수나 동선을 공개하는 대신 모든 언론이 공통의 생활수칙을 반복해서 알렸다면 어땠을까. 특히 보수언론들은 대만의 배급제를 부러워하다가, 막상 마스크 5부제를 시작하니 사회주의라고 공격하는가 하면, ‘마스크가 손씻기의 면죄부가 될까 두렵다. 마스크 쓰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하더니, ‘마스크 문제도 해결 못하는 정부’라며 마스크 대란을 부채질하는 이중 잣대를 드러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국내외 상황에서 언론은 공동체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나.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우리 사회는 뭘 잃고 얻었나. 마스크만 문제없이 공급됐다면 재난상황은 크게 줄었을까. 감염의 80%를 차지하는 콜센터, 요양시설, 종교시설 등의 집단감염을 마스크로 막을 수 있었을까.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 다른 이의 건강이 나의 건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마스크 대란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제 역할을 잘했다면, 현명한 시민들은 과도한 마스크 집착 대신 마스크 양보하기, 아파도 쉴 수 없는 사회적 약자 돌아보기 등에 진작 눈을 돌려 스스로 희망의 싹을 틔웠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쯤 조금은 덜 불안하고, 좀 더 뿌듯했을 것 같다.

<송현숙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 꼬마가 엄마에게 그랬다. “엄마! 나 사랑하면 소원하나 들어줘잉.” “엄마는 널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버리고, 또 어떤 것이라도 가져다줄게.” 그러자 꼬마가 속삭였다. “그럼 아빠를 버리고 마트 아저씨랑 결혼해줘요. 과자를 정말 맘껏 먹고 싶엉.” 요 맹랑한 것.

아이들이 긴긴 방학을 보내고 있다. 밥해서 먹이느라고 젊은 엄마 아빠들이 고생 많으시겠다. 과자도 많이 먹을 텐데, 봄에 이빨이 썩으면 치과 병원은 가을에 추수를 하겠지. 이빨이 빨리 썩으면 새 이빨이 얼른 나겠다. 뭐든지 좋게 생각하기. 하루는 지나가던 아재가 그만 새똥 벼락을 맞았다. “에잇 더러워. 저눔의 새 똥구멍을 그냥~.”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여보! 얼마나 다행인가요. 황소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생각해봐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우왕. 그랬담 세상이 똥바다 됐겠네. 오랜 날 행복하게 사는 부부를 만나보면 공통된 모습이 있단다. 한쪽에서 말을 많이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말을 열심히 듣는 편이란다. 다만 듣는 쪽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공통된 답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흘려듣는 것. 삭아서 담을 게 없는 사그랑주머니를 갖고 살면 앙금이 하나도 없이 평안 모드. 지저분하고 모진 말을 가슴에 쌓아두면 똥이 되고 독이 된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확신하며 살자. 그러려면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비뚤어지거나 잘못된 길을 가려 하면 꿈에서라도 나타나 뜯어말릴 것. 하느님이 몰래 우리나라에 찾아와 길을 걷는데, 햇볕이 따가워서 ‘갓’을 쓰고 다녔단다. 그러다 어떤 충청도 양반을 만나게 되었다. “저기 아저씨. 길 좀 물어 볼라는데요.” “갓 불렀어유?” 허걱~ “갓 블레스 유, 신의 가호를 빕니다.” 정체가 탄로나 버렸네. 그래서 한국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셨다는 싱거운 얘기. 우리는 서로를 축복한다. 이 어렵고 추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반드시 있길. 갓 불렀어유?

<임의진 |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쭉 지갑  (0) 2020.04.09
‘오지’의 마법사  (0) 2020.04.02
불렀어유?  (0) 2020.03.26
신의 음성  (0) 2020.03.19
블루진 청바지  (0) 2020.03.12
이미자  (0) 2020.03.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신 재밌는 얘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한 일꾼이 하루 품삯을 묻는 만석꾼 고용인에게 첫날 딱 쌀알 한 톨을 달라고 했다. 이튿날에는 하루 전 품삯의 두 배인 쌀알 두 톨, 다음날은 마찬가지로 전날 품삯의 두 배인 네 톨. 몇 번 손가락을 꼽아보던 만석꾼은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동의한다. 일주일 지나도 하루 품삯으로 채 한 숟가락에도 못 미치는 쌀알을 달라고 하니, 아주 멍청한 일꾼이라고 생각하면서.

쌀 한 톨의 무게와 쌀 한 되의 무게를 비교해 계산하면, 16~17일이 지나면 하루 품삯이 쌀 한 되쯤 된다. 그리고 22일째가 되는 날 일꾼은 하루 품삯으로 쌀 한 가마니를 받는다. 다음날은 쌀 두 가마니, 그 다음날은 하루에 무려 쌀 네 가마니를 받는다. 만석꾼 부자 고용인이 한 해 수확인 만석 전체를 일꾼의 하루 품삯으로 지급해야 하는 날은 한 달하고 일주일쯤이 지난 뒤다. 멍청한 것은 일꾼이 아니었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며, 덥석 계약을 수락한 만석꾼이 멍청했다는 얘기다.

초등학생들을 위해 선생님이 만드신 것으로 보이는 이 재밌는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우리는 얘기를 더 이어갈 수 있다. 하루에 두 배씩 꾸준히 늘어나면 일 년 뒤 쌀알의 숫자는 약 10의 110승이 된다. 1뒤에 0을 110개를 붙여 적어야 하는 아주 큰 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의 전체 숫자가 이보다 훨씬 작은 10의 80승 정도이기 때문이다. 잠깐 계산해보니 관측 가능한 우주의 부피를 쌀알로 가득 채우려면 10의 88승개의 쌀알이 필요하다. 일 년이 지나면 우리가 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는 빈틈없이 쌀알로 가득 차고도 넘치고, 우리 우주와 같은 크기의 10의 22승개의 다른 우주도 쌀알로 빈틈없이 채울 수 있다. 

선생님 얘기의 쌀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몇 배’꼴로 늘어나는 것들이 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 혹은 지수함수적인 증가라고 부른다. 운이 좋아 일 년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10%를 유지하는 펀드에 가입했다면, 펀드의 적립액은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를 따라 늘어난다. 경제성장을 매년의 ‘성장률’로 측정하는 것도 이처럼 지수함수를 따라 경제가 성장한다는 ‘가정’에 따른 계산법이다. 기하급수와는 다르게 늘어나는 것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산술급수적인 증가이다. 오늘 한 톨이면, 내일은 두 톨, 다음날은 세 톨, 그리고 네 톨, 이렇게 두 날 사이에 늘어나는 양이 딱 정해져 일정한 방식이다. 연봉이 정해진 회사원의 일 년 동안 누적 수입은 일월, 이월, 삼월, 시간이 흐르면서 산술급수를 따라 늘어난다. 당연히 기하급수가 산술급수보다 훨씬 빨리 늘어난다. 어제보다 두 톨을 더 받는 일꾼과, 어제보다 두 배를 더 받는 일꾼이 있다고 하면, 며칠만 지나면 둘의 품삯 차이는 무지막지하게 커진다. 한 일꾼이 밥 한 숟가락의 쌀알을 받을 때, 다른 일꾼의 하루 품삯은 만석꾼의 땅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 

영국의 맬서스는 18세기 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식량의 생산으로 부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류의 암울한 빈곤의 미래를 예상했다. 그가 점쳤던 암울한 미래는 우리 후손들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한스 로슬링의 책 &lt;팩트풀니스&gt;에 의하면, 인구 증가는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인 규모로는 어린아이들의 숫자가 증가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보건과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예측 이후 인류가 걸어온 길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경제성장이 인구 증가보다 더 빠른 기하급수를 따랐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 상존하는 빈곤 문제는 인류의 총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배분의 문제다. 과식으로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려 헬스클럽에 가는 사람들과 하루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게 현대의 모습이다.

일꾼의 쌀알 품삯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쌀알 품삯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만석꾼의 파산으로 결국 멈춘다. 만석꾼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품삯을 계속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주에 존재하는 10의 80승의 원자로 10의 110승의 쌀알을 만들 수는 결코 없다는 자명한 진실이 더 이상의 증가를 가로막는다.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어 결국 멈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3월 하순,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지수함수를 따라 늘고 있다. 이런 증가의 양상이 결국 수그러들 것은 분명하다.

전염병의 전파에 대한 여러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 있다.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막는 강력한 제한은 단지 전염병의 대규모 확산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일관된 연구 결과다. 결국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염의 최종적인 규모는 그 나라의 방역 시스템이 결정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의 증가폭이 완화되는 시점이 나라마다 다른 이유다. 아무런 방역의 노력이 없다면, 수많은 확진자 중 상당수는 인체의 면역계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감염을 이겨내겠지만,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동반하게 된다.

늘어난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빠르게 늘어나는 것과 느리게 늘어나는 것의 차이는 정말 크다.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느리게 늘어나는 형태로 바꾸고 결국 늘어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 발병지가 어디인지를 따지며 외부를 비판하는 것은 비겁한 핑계 대기다. 혐오는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김범준 |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