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DB)

고위공직자 3명 중 1명은 다주택 보유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재산 공개를 한 정부 고위공직자 750명 중 248명(33.1%)이 다주택자이고, 3주택 이상 보유자도 52명에 달했다. 청와대에선 비서관급 이상 49명 중 16명(32.6%), 국회의원 287명 중 100명(34.8%)도 다주택자였다. 청와대·정부·국회 예외 없이 다주택자가 3분의 1인 것이 공교롭다. 해마다 사람이 바뀌었지만, 2018년 30.1%이던 다주택 고위공직자 비율은 2019년 26.8%로 줄었다가 다시 늘었다. 석달 전 고강도의 12·16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후 청와대-경제부총리-국토부 장관-여당 원내대표가 쏟아낸 ‘고위공직자 1주택 보유’ 권고가 모두 무색해진 상황이다. 

유독 눈총을 받는 곳은 청와대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수도권 내 2채 이상 보유한 수석·비서관에게 ‘이른 시일 내 1채만 남기고 팔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지목된 11명 중 7명은 지금도 수도권 내 2주택자, 9명은 수도권·투기과열지구에 2주택자로 남아 있다. 공직 기강을 감독하는 김조원 민정수석도 본인·부인 명의로 강남구 도곡동·송파구 잠실동에 아파트 2채를 신고했다. 처분 권고 닷새 전엔 청와대 참모 65명의 부동산 가격이 3년 새 3억2000만원이나 올랐다는 시민단체 발표가 있었다. 여론은 들끓고 청 내부적으로 승진·임용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엄포도 놨지만 공염불이 된 것이다. 김현미 장관이 “1채만 남기고 팔라”고 권고한 국토부와 산하기관에서도 고위공직자 12명(36%)이 다주택자였다. 최창학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은 서울 마포·대구·대전에 4채를 보유했다. 주택정책을 지휘할 청와대와 국토부로선 ‘말이나 하지 말지’ 소리를 들어도 얼굴을 들 수 없게 됐다. 

아무리 공직자라고 해도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집을 팔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청와대가 ‘솔선수범’을 권고하고, 홍남기 부총리도 “공직사회에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는 게 맞다”고 호응했을 것이다. 노부모 봉양을 이유로 댄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 다주택자는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부 의지와 따로 움직였다. 공직자의 신뢰가 정책의 신뢰도를 가르는 세상이다. 다급할 때 내뱉은 대통령비서실장의 말이 허언이 되어선 안된다. 집을 재산증식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정부의 약속과 다주택 처분 권고는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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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3월27일 (출처:경향신문DB)

미래통합당의 공천이 끝내 막장 드라마로 대미를 장식했다. 통합당은 25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4개 지역구에 대한 공천을 무효 처리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의견은 손바닥 뒤집듯 무시됐다. 교체된 자리에는 컷오프(공천배제)된 TK·친박계 의원에게 부활의 기회를 줬다. 공관위가 청년 후보로 내세운 경기 의왕·과천과 화성을 2곳은 친황(황교안)계 후보들로 채워졌다. 당 안팎에선 총선 이후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친황계의 되치기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후보 등록일 하루 전 공천 결과가 완전히 뒤집힌 상황을 놓고 ‘호떡 공천’이란 말이 나온다. ‘청년 공천’ 대신 ‘중년 공천’이라고도 한다. 이석연 공관위원장 권한대행은 “이런 당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에 더 보탤 게 없다. 

더 가관인 것은 민경욱 의원의 생환이다. 그는 20대 국회 최악의 막말 정치인으로 꼽힐 만큼 지탄을 받았던 인사다. 세월호 참사, 헝가리 선박사고, 강원 산불, 노회찬 전 의원 사망, 대통령 모친상까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일삼았다. 공관위의 거듭된 공천 취소 결정을 최고위는 번번이 뒤집었다. 그는 황교안 대표의 대변인을 지낸 ‘황교안의 사람’이다. 아무리 자기 사람 챙기기가 우선이라 해도 유권자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공천(公薦)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명백한 사천(私薦)이다. 이럴 거면 공관위는 뭐하러 만들었나. 

황 대표는 “당 대표로서 권한을 내려놓고 공관위가 자율적으로 공천을 해달라고 당부했다”며 “그런데 잘못된, 국민이 수용하기 어려운 결정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간 통합당은 ‘김형오 공관위’ 출범 이후 혁신 공천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한데 이제 와선 공관위 판단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 입맛에 따라 공천의 성패를 가르는 식이다. 앞서 황 대표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공천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자, 한국당 지도부와 공관위를 전원 교체하기도 했다. 지지율이 좀 나아졌다 싶으니 다시 제 잇속 챙기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통합당은 혁신 공천을 통해 보수쇄신과 세대교체를 이루겠다고 했다. 결과는 잡음과 혼란만 난무했을 뿐 쇄신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기득권을 지키고, 총선 후 대선 주자 경쟁을 위한 지분 챙기기로 마무리됐다. 이 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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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TV 모니터를 활용해 주요 20개국(G20) 정상들과 특별화상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26일 특별화상정상회의를 열고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 방안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정상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면서 “세계적 대유행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연대의 정신에 입각해 투명하고, 강건하며, 조정된, 대규모의, 그리고 과학에 기반한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공동의 위협에 대항하여 연합된 태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요국 정상들이 팔을 걷고 나선 만큼 이번 공동선언이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상들은 세계적 대유행에 대응함에 있어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역학 및 임상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G20 정상들이 확진자가 50만명에 이를 정도로 팬데믹 단계에 접어든 코로나19의 대응법을 봉쇄가 아닌 연대에서 찾은 것은 무엇보다 환영할 일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금 바이러스의 전파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완전한 봉쇄는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도 코로나19 청정지역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공동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치료 능력이 부족한 저개발국가들에 대한 진단시약과 의료장비, 의료인력의 지원은 절실하다. 인도주의 실현뿐 아니라 개별 국가의 방역을 위해서도 지원은 시급하다.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제조·유통을 위한 공조 강화도 약속했다. 또 국제기구와 협력을 약속한 것은 이에 대한 실효성을 담보하는 조치로 평가한다. 

정상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성장을 회복하는 데 공동대응하기로 한 것도 바람직하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방역만큼이나 세계 경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협력은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국가 간 무역 장벽을 높이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정상들의 약속은 특히 눈에 띈다. 글로벌 공급 체인 붕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특별정상회의가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성사된 점은 평가할 대목이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방역으로 모범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방역 물품 지원을 요청한 것은 상징적이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한국을 모델로 삼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정상회의에서 방역과 치료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임상 데이터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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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제자와 공유하는 단톡방에서 카톡이 울린다. 40대 후반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한 대학원 여제자다.

“모두 잘 계시나요? 저는 코로나 땜에 무서운 게 아니라 삼시세끼 밥 땜에 무서워요. 친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나갈 데도 없고, 책도 못 보고 논문도 손도 못 대고 답답해요.” 킥킥 웃을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여제자가 메시지를 보낸다. “저는 바깥 코로나가 무서운 게 아니라 집에서 밥 달라는 코로나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습니다. 얼른 친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비슷한 글이 연이어 달린다. 

보다 못해 나도 한마디 덧붙인다. “죄송합니다. 성장이 멈춰 혼자 밥상 못 차리는 어린아이라서.” 키득키득 이모티콘이 따라붙더니, 이내 묻는다. “자발적일까요? 비자발적일까요? 남편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코로나19의 전파를 막기 위해 전 사회적으로 펼치는 이방인 사이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엉뚱하게도 가족 사이의 ‘사회적 거리 없애기’로 나타나고 있다.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나 재택근무 중인 직장인이나 개학이 미뤄진 아이나 모두 나갈 데가 없어 종일 집 안에서만 북적댄다. TV만 틀면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먹방은 식도락을 강제하지만, 삼시세끼 식구 밥상 차리는 전담자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밥상 차리는 걸 두고 말다툼이 일어나고 급기야 폭력이 발생한다. 어느새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 가족 성원인데도 친밀한 사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통하지 않는다. 

친밀성이란 뭔가? 차가운 근대 개인주의 정서에 맞선 따뜻한 집단주의 정서다. 최근까지도 친밀성은 이성 간 낭만적 사랑을 통해 구성된 근대 핵가족을 모델로 논의돼 왔다. 근대 핵가족은 남녀 간 낭만적 사랑을 고리로 해서 형성된다. 남녀는 서로 신체적·정신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 서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통해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혼해서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자녀를 출산하고 사랑으로 돌보고 온전한 성인으로 사회화시키면서 가족 사이의 친밀성은 더욱 강화된다. 가족은 냉혹한 근대성에 맞서 살아갈 정서적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렇듯 친밀성을 차가운 근대성에 대한 치유책으로 이상화하게 되면 그 뒤쪽 어두운 면을 못 보게 된다. 친밀한 사이에서는 근대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여성이 돌봄 전담자가 되어 남편과 아이를 돌보다가 정작 자신의 자아를 돌보지 못해 황폐해진다. 근대 핵가족이 성 불평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한번 결혼하면 남성가부장의 경제적 부양능력과 전업주부의 정서적 지원능력이 결합해서 평생의 애착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는 제대로 된 경제적 부양능력이 없는, 설사 있다 해도 소통능력을 상실한 ‘자발적 어린아이’를 돌보고 출산하고 육아하고 살림하느라 여성은 자아를 잃어버린다. 무엇보다 가족성원으로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탓이다.

사람은 어느 장소에 있든 자신의 공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인격적 공간’을 지녀야 한다. 어떤 누구도 이 인격적 공간을 침해당하면 고유의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 자신의 인격적 공간을 침해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과 사회적 공간을 공유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 겹치는 사회적 공간에서 나의 인격적 공간은 물론 상대방의 인격적 공간도 보호하려고 호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근대 민주주의 사회적 공간의 특성이다. 친밀성의 공간으로 이상화된 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공공장소의 사회적 거리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에 더해 집에서 여성의 인격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도 벌여야 한다.

<최종렬 |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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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저작권보호원과 함께 2030년까지 저작권 분야의 성과 목표와 추진 과제를 담은 ‘저작권 비전 2030-문화가 경제가 되는 저작권 강국’을 발표했다. 동시에 문체부는 저작권법 전면 개정 추진도 천명했다. 이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 실현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문화를 경제 아래 종속시키는 고질적 근시안이 부제에서 감지되듯이, 청사진을 읽고 나면 우려가 앞선다. 문화예술계, 학계, 출판계 등 민간의 이해 당사자와 함께하는 민관 협치가 있어야 저작권법 전면 개정과 내실 있는 저작권 보호 사업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빠져 있다.

문체부가 정말 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가다듬었다면 코로나19가 초래한 세계적 위기 속에 불거지는 저작권 문제에 대해 더 민첩하고 세심한 대응책이 마땅히 나와야 했다. 그러나 각 대학을 통해 개별 교수들에게 전달된 지침은 눈앞의 위기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대학가 신학기 출판물 불법복제 예방 협조 요청’(3월18일)이라는 문체부 공문은 실효성도 떨어지는 불법복제 예방활동을 예년처럼 강조하는 선에서 멈추고 말았다.

현재 우리의 고등교육기관이 모두 감염병 차단을 위해 비대면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거나 화상회의 앱을 이용해 온라인 강의를 진행한다. 이를 위한 교재 스캔 파일이나 파워포인트 자료 탓에 저자와 출판사의 피해가 심각하다. 평소에도 사이버대학이나 원격교육원 강의에서 저작권 침해가 비일비재했는데, 비상시국을 명분으로 교재의 본문 편집파일에 대한 무상 제공 요청까지 출판사에 들어온다고 한다. 대학과 교수부터 저작권 인식이 희박하며, 급변하는 기술적 환경에 맞춘 제도 개선은 더욱 미흡하다.

전면 개정의 필요성을 문체부도 인정한 저작권법뿐 아니라 현장의 지침 또한 저작권 보호에 무력하다. 저작권법상의 수업목적 보상금제도 운영의 심각한 부실은 차치하더라도, 2015년에 만든 수업목적 저작물 지침은 학술서적이나 대학교재를 활용하여 만들어지는 파워포인트 교안에 대해 “일부분의 이용”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한다. 이는 저작권 선진국의 학교 수업용 복제 지침이 허용 가능한 복제 범위와 분량을 상세하게 정한 것과 대비된다. 그러니 국내 불법 복제물 시장이 수천억원 규모라지만 실질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위기 극복을 돕기 위해 유명한 해외 출판사가 일부 교재를 잠시 온라인에서 무료 제공하는 일도 있지만, 이런 결정도 철저한 저작권 보호 위에서만 가능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체부의 계획이 이해 당사자와 함께하는 민관 협치의 비전을 결여한 탓에 빚어지는 심각한 한계 중에서 두 가지만 지적하자.

첫째, ‘저작권 비전 2030’에는 문학과 예술을 중심에 둔 장기적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핵심 저작권산업’ ‘저작권 수출’ ‘저작권 무역수지 흑자’ 등의 표현 앞에서 특허권, 상표권 등의 지적재산권을 관할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와 다른 문체부만의 비전이 궁금하다. 최근 ‘한류’의 선봉에 선 몇몇 대중문화 장르가 성취한 저작권 무역수지 흑자에 고무된 기색은 역력하지만, 모든 창조적 문화 활동의 밑거름임에도 종종 돈과는 거리가 먼 문학과 예술 분야의 창작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비전은 부재하다. 교육부가 관여된 학술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둘째, 이처럼 기초적인 인식과 비전이 탄탄하지 못한 탓에 정책 방향이 자꾸 이해관계를 왜곡한다. 가령 최근 일부 문학 출판사의 불투명한 경영으로 인한 부당한 저작권 침해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자 문체부는 저자와 출판사의 대립구도를 전제한 피상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불법 복제 등 저작권 침해가 벌어지면 당연히 저작자와 출판사에 똑같이 피해가 간다. 저자와 출판사의 대립만 부각시키면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게 되고, 공공대출권 도입, 수업목적보상금 제도 개선 등 저자와 출판계가 함께 요구하는 현안은 쉽게 외면당한다.

합당한 저작권 보호를 통해 저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으면 창조적인 정신 활동은 위축되게 마련이며, 사회 전반의 지적 빈곤, 학문과 문화의 쇠퇴로 이어진다. 또 저작권은 작가의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수단이며, 저작권이 짓밟히면 결국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어 민주주의마저 쉽게 훼손된다. 민관 협치를 통한 저작권법 전면 개정과 관련 제도의 정비만이 저작자, 출판계, 대학, 공공도서관, 독서운동 등 학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이 상생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가는 길이다.

<김명환 |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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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반칙, 편법, 후안무치, 요지경, 도박판, 개싸움…. 21대 총선 공천 과정을 특징짓는 단어들은 험악하다. 물론 ‘진박 감별사’가 설치던 4년 전 총선 공천도 난장판이란 소리를 들었고, 그 앞선 총선도 시끄럽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희한한 선거가 있었을까 싶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 중진 의원의 용퇴 선언이 혁신으로 얘기되기도 했지만 스쳐지나가는 일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그 중심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다. 여야가 공직선거법을 주무르는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장벽을 낮춰 국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은 허점을 공략했다. 비례대표 전담 위성정당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한 미래통합당이 비례정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는 설마 했지만 눈앞의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거대 정당은 기득권의 일부라도 소수정당에 떼어주기는커녕, 한 석이라도 더 긁어모으기 위해 혈안이다. 기득권 챙기기에 관해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연비제 도입을 두고 으르렁댔다. 미래한국당이 가시화하자 “국민 투표권을 침해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해찬 대표)이라던 민주당도 장난질에 가세했다. “(통합당의 꼼수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울 뿐”(이인영 원내대표)이라는 대리 사과는 비난으로 돌아왔다. 서로가 상대를 향해 꼼수라고 비난하고, 자신은 정당방위라고 강변하지만 결국엔 한배를 탄 셈이 됐다. 위성정당 문제에선 ‘적인 듯, 적 아닌’ 사이다. 의원 1명이라도 더 제명시켜 위성정당에 보내려는 꿔주기 경쟁은 비례후보 등록 직전까지 이어질 참이다. 유권자들은 원내 1당인 민주당과 2당인 통합당 이름이 사라진 정당투표 용지를 받게 된다.

민주당 주변에는 두 개의 위성정당이 돌고 있다. 민주당의 공식 ‘형제정당’은 더불어시민당이다. 민주당은 범진보·개혁 세력의 비례연합정당을 운운하더니 그냥 민주당 색깔로 만들어버렸다. 소수정당을 배려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난데없이 열린민주당이 끼어들면서 여권의 구도가 복잡해졌다. ‘친문재인·친조국’ 선명성을 앞세운 이들이 선거에 뛰어들면 적어도 5석은 얻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열린민주당 지지율이 오르는 만큼 더불어시민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민주당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더불어시민당의 당선권 후순위에 배치해놨던 민주당 영입인사들의 당선에 먹구름이 끼었다. 열린민주당은 ‘우리는 한 가족’이라며 총선 끝나고 뭉치자는데, 민주당은 ‘통합은 없다’고 자른다. 이해찬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참칭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총선 이후엔 최소한 연합은 해야 한다니, 관계 설정이 미묘하다.

거대 정당 사이에 낀 소수정당들은 씁쓸하다. 선거전이 여러 정당들의 다양성 경쟁이 아니라 양강 구도로 흘러갈수록, 위성정당들의 위력이 커질수록 소수정당의 존재감은 작아질 수 있다. 범여권 비례정당에 불참한 정의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그럴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거판이 기형적으로 짜이면서 소수정당엔 국회 진입 장벽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거대 정당들이 감히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원래 지지층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터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 뻔히 보이는 반칙에도 역풍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유권자를 얕잡아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인 만큼 정부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정책과 비전이 이렇게 사라져도 되는 것일까. 역대 최악이라는 20대 국회, 그 바통을 넘겨받을 21대 국회에 어떤 기대를 가지라는 것인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에 비유된다. 18세 눈에도 그렇게 비칠까.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2002년 4월16일 이전에 태어난 고등학교 3학년, 대략 14만명이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됐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어져 마음이 어수선할 터인데 ‘선거라는 게 이런 거였어’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거대 양당이 기득권 확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이라면 학생들에게 성적지상주의를 요구하는 것과 다른 게 뭔가. 이런 식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지는 총선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총선의 ‘뉴 노멀’이 되어선 안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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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잠식한 피눈물 나는 현실 속에서도 역설적이게 매년 이맘때 뉴스를 달구던, 우리 사회의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고질적 문제 하나가 사라졌다. 교통량 감소로 이산화질소 배출이 줄어드니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그간 유행처럼 나타난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저감정책이 얼마나 엉뚱한 것이었는지 돌아보자. 

2017년 5월30일 산림청은 ‘도시숲은 미세먼지 잡아먹는 하마’라는 제목으로 도시숲이 미세먼지를 40.9%나 저감시킨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숲이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하다고 호도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다. 정작 숲을 얼마나 만들어야 40%를 줄여주는지에 대한 기초적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은 엉성하기 그지없는 보도자료 하나로 말이다.

산림청은 자신들이 만든 제목 하나만으로 이듬해부터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미세먼지 저감 명목의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단초를, 그것도 가장 신뢰해야만 하는 정부가 제공한 것이니 이 보도자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자료를 보면 이 40%의 수치는 단순히 서울 동대문구 도심 한가운데와 홍릉숲 한가운데에서 각각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의 차이를 비교한 것에 불과하다. 숲속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숲이 미세먼지를 저감시킨다고 발표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냐고? 숲에는 미세먼지 발생원이 없지 않은가? 사막에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모래가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하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함께 배포한 첨부자료로 이 자료가 얼마나 허황된 보도자료인지 확인할 수 있다. 첨부된 자료에는 ‘1㏊의 숲은 연간 총 168㎏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한다고 했다. 이 수치만 보면, 일반 성인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양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교할 수치가 없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비교할 데이터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총 대기오염물질량과 비교해보자. 국가미세먼지정보센터에 따르면 2016년에 우리나라가 배출한 대표적 대기오염물질 8종류의 총합은 무려 470만t에 달한다. 비교할 수치가 생겼으니 이제 숲을 만들어 대기오염물질 저감효과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국토에서 산림과 녹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68%이고 경작지가 21%이다. 초지와 습지, 하천이 약 5%가 조금 넘으니, 국토 중 녹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면적은 6%가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건물과 도로로 개발된 지역이다. 자 그렇다면 국토 전체를 숲으로 만든다면? 이렇게 해도 오염물질 총량이 그대로라고 전제한다면 2% 정도의 대기오염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2019년 사업비 600억원을 들여 만든 숲은 약 60㏊이다. 계산하면 약 10t의 대기오염물질을 추가로 흡수할 수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총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의 0.0002%가 된다. 대기오염물질 개선이 획기적인가? 1000년을 투자해도 정밀 측정기 오차범위 이내이다.

차라리 지금도 잘려지는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면? 정말 미세먼지 저감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심에서 간벌이라는 명목으로 나무를 잘라내는 사업부터 하지 않는 게 우선 아닐까? 예산을 쓰지 않으면 대기오염물질은 훨씬 더 많이 줄어든다. 잘못된 정보로 세금을 쓰기 위한 사업을 만들지는 말자.

<홍석환 |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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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많은 젊은이가 공무원을 꿈꾼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문은 닫았지만, 공무원 고시학원은 여전하다. 수험생들 열기는 늘 뜨겁다. 다들 열심이다. 공무원의 높은 인기는 신분 보장 때문이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헌법 사항이다. 최고위 규범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고용 안전을 보장한다. 게다가 급여도 안정적이다. 연금도 꽤 쏠쏠하다. 사회복지 분야처럼 힘든 업무를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직사회가 업무 효율을 주로 따지는 곳은 아니어서 노동조건은 대개 안정적이다. ‘격무와 박봉’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공무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고 먹고살 만한 급여에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연금까지 두루 보장하는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헌법 제7조의 규정처럼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며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다. 지금 당장의 사태가 그렇다. 공무원들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을 거다. 해외가 주목하고 칭찬할 정도로 한국의 공무원들은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바로 공무원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가끔은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기보다는 공무원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자신의 잇속만 챙길 때는 특히 그렇다. 

국가보훈처 공무원들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독립기념관, 88관광개발(골프장) 등 보훈처 관할 기관 종사자들과 함께 ‘나라사랑공제회’를 만들었다. 2012년, 보훈처 설립 50주년을 기념했단다. 정관에 밝힌 설립 목적이다. “국가보훈 업무에 헌신하는 소속 회원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일깨우는 사회공헌과 보훈행정에 기여함.” 얼핏 보면 나라 사랑, 곧 국가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된 분들을 위한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독립, 호국, 민주화 분야의 국가유공자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냥 보훈처와 공단 직원들의 잇속을 챙기는 게 전부다. 

설립 과정도 부적절했다. 행사 기획사, 여행사, 인쇄업체 등 보훈처 납품업체들에서 재단 출연금을 거뒀다. 출연금을 낸 업체들은 그만큼 혜택을 받았다. 2011년 보훈처 관련 매출이 전혀 없던 여행사는 2012년에만 2억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출연금만이 아니다. 보훈처는 업체들과 사업을 하면서 얻은 수익의 일정 비율을 공제회에 납부하게 했다. 이렇게 거둬들인 돈은 모두 3억5000만원이었다. 

나라사랑공제회가 집중한 사업은 부동산 투자였다. 2015년 11월엔 경기도 성남, 다음해 3월엔 강원도 춘천에 있는 빌딩을 샀다. 각각 86억원, 128억원짜리였다. 공제회의 투자, 곧 보훈처 공무원들의 욕망은 촛불에도 정권교체에도 굴하지 않았다. 2017년 9월에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으로 진출해 170억원짜리 빌딩을 샀다. 건물 매입비용은 모두 은행 대출을 통해 조달했다. 땅을 담보로 빚을 내어 건물을 사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런 투자를 바탕으로 회원들에게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사실상 제로금리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급여 이자율은 4.25%다. 2016년 12월까지는 연 5.75%의 확정금리를 적용했다. 회원 자격이 없는 퇴직자에게도 자금 예탁을 통한 재산 증식의 기회를 준다. 5000만원까지 연복리 2.75%의 이자를 준다.

2018년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는 보훈처장에게 나라사랑공제회 해산을 권고했다. 보훈처장이 설립 허가를 취소하라는 거다. 보훈처 공무원과 공단 직원들은 사영기업 노동자나 자영업자에 비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보훈섬김이 같은 무기계약직은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지만 회원 자격도 주지 않았다. 정작 복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정규직끼리만 혜택을 누리겠다는 폐쇄적 운영이다. 수익의 일부라도 국가유공자를 위해 내놓거나 국가의 기억사업이나 돌봄사업에 보태는 일도 전혀 없었다. 기부활동도 공적인 역할도 지금껏 전혀 없었다. 

나라사랑공제회는 정부의 설립 허가권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익을 내겠다며 부동산 투자만 반복하는 것도 이상하다.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매입하는 게 이익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원들의 조직이라면 달랐어야 했다. 

보훈처장은 권고를 수용했지만, 공무원들은 재산 처리를 위해 말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미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공제회 해산은 유야무야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이사장도 새로 뽑고 전국의 보훈청을 돌면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해산은커녕 몸집을 더 키우고 있다. 부동산 투자도 잘해서 이윤을 크게 내고 있으니 회원으로 참여해달라고 독려하고 있다. 

사실 부동산 투자는 보훈처 직원들만 벌인 일은 아니다. 법무부 직원들인 교정공무원들의 교정공제회는 아예 ‘부동산투자부’란 부서를 신설하고 매년 1000억원 안팎의 매물을 사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빌딩을 798억8000만원에 사들였다. 교정공제회는 교도관들의 회비만이 아니라 교도소 물품 납품을 독점해 수익을 올리는데, 역시 귀결은 부동산이었다. 경찰공제회,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등도 마찬가지였다. 콘도나 호텔, 또는 골프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각광받는 투자처는 역시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공직사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관련 장관들이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고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공무원 이익단체들은 수익용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시민들에게만 자제를 호소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무원이라고 희생만 강요당할 수는 없다. 그들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제 잇속만 차린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민주적 통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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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프리랜서’라는 외국어의 세련된 명칭이 영화 스태프의 직업을 규정하는 가장 그럴 듯한 말이라 생각했다. 현장의 많은 스태프들은 프리랜서로 불리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프리랜서의 이미지는 자유로운 활동과 고수익이었다.

그러나 촬영 일정은 제작사가 정한 대로 진행되었고 습관처럼 했던 24시간 촬영은 스태프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잊게 했다. 일을 하면서도 줄어드는 통장 잔액은 고수익으로 포장된 프리랜서를 달리 보게 했다. 영화 스태프들은 프리하게 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프리랜서로 ‘퉁쳐’졌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은커녕 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영화를 포함해 콘텐츠를 만드는 이른바 문화산업은 어찌됐건 버텨야 하는 일이 최선인 것으로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니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을 받아도, 24시간 일하는 것이 반복되어도, 쉬는 날이 없어도 감수해야 하는 일은 과연 내일도 모레도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현장 스태프들의 이런 회의와 달리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내해야 한다는 말에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책임론이 덧입혀지며 ‘프리랜서’라고 그럴싸하게 명칭되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특수한 존재로 차별되어 왔다. 종합소득세 신고 무렵에야 내가 낸 3.3%의 세금이 인적용역사업자에 해당되는 사업소득세임을 알게 되고,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부여된 사업자 지위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프리랜서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프리(free)하지 않은 현실이 가려졌다. 

CJB청주방송의 고 이재학 PD 역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해 왔고 그 이름으로 가려진 차별과 혹사를 참고 견디다 못해 처우 개선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해고로 답했다. 이 PD는 부당한 해고였음에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고가 아니며 부당하지 않다는 주장에 맞서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송을 위해 꿈을 키워왔고 방송을 만드는 일을 즐겨 했던 그에게 더 이상 이 현장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더는 계속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회사는 책임을 피하고 아이템 선정, 섭외, 구성, 촬영, 편집 등 정규직 PD가 해왔던 일을 똑같이 해오면서 수십편의 프로그램을 만든 노동자에게 정규직의 대우는 없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방송에 매진했음에도 증명을 해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회사에 치가 떨렸을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로 취급당하며 최저임금도 못 받고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것이 서러웠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사용종속성’이라고 한다.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확인해내는 일이다. 자유롭지 않은 사정은 계약서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하고 있는 사정을 제대로 확인해야 얼마나 가려져 있었는지 알게 된다. 방송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사용종속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왔던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가려지고 특수할 것 없음에도 특수하다는 말로 은폐되어왔던 것을 드러내야 한다. 오랫동안의 꿈을 좇아 PD가 되었음에도 방송을 만드는 일을 더는 계속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더 이상 회사의 편리에 따라 쓰이고 버려지는 노동자가 존재해선 안된다. 우리의 노동은 하나도 특수할 것이 없다.

<안병호 |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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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 실물경제도 비상이라며, 경영계 요구를 담은 경제·노동 분야 40대 입법 개선과제를 국회에 제출했다. 

경제 분야 세부사항은 법인세 인하, 법인세 최저한세제 폐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및 온라인쇼핑 영업시간 제한의 폐지 및 완화, 기업 경영의 안정성과 영속성 확보를 위해 최대주주 의결권 확대, 상속세 최고세율 25%로 인하, 상속세 공제요건 완화 등이다. 노동 분야 세부사항은 탄력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개선, 연장근로 허용 사유 확대, 해고 요건 완화, 사업장 내 시설점거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전면 금지규정 삭제 등이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싸웠지만 계속 밀려온 노동권 관련 사안들 중 그나마 남아있는 조항들조차 코로나19를 핑계로 모두 없애버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나 더 공고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정부가 기업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며 위에 나열한 깨알 같은 조항들의 요약을 건의하면서, 삶의 바닥이 무너지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시급한 집행을 고대하는 재난소득지원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을 거라며 반대했다. 경총이 재난소득기금을 내겠다고 해야 할 판에, 이것이 인간(人間)인가?

지난달 칼럼 “코로나19, 미세먼지 ‘좋음’”에서 설명했듯 기후위기가 근본 원인인 코로나19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며, 이는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경제성장과 개발지상주의로 치달려온 경제정치체제와 그 운영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과가 체제 내 권력자들과 이에 빌붙은 전문가 집단들에게 집중되고, 생계와 가족에 발목 잡혀 성장에 동원된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는 제대로 분배되지 않은 채 불평등과 불공정이 대물림되어 왔다.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사회의 총체적 문제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니 바로잡으라는 생태적 경고다. ‘오로지 성장’이 핵심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막다른 절벽의 실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윤리 이전에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더 이상 ‘성장’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신성장’이니 ‘지속가능한 성장’ 따위 역시 이 절벽 앞에서 인간과 생태자원을 마지막까지 쥐어짜 이득을 챙겨보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이제는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구조적, 정책적, 문화적 차원에서 ‘탈성장’의 경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추어서는 안 된다. 탈성장에 관한 담론과 실천들은 국내외에서 오래전부터 축적되어 왔으며, 우리 사회에서 아직 힘 있는 세력으로 모아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겪고 있는 녹색당의 혼돈은 더없이 가슴 아프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대혼란을 통과하며 다급하게 실험하고 있는 공공적 집행과 자발적 실천들을 평가하고 정리하면서, 혼란 너머를 만들어내야 한다. 경제와 정치는 물론 과학기술과 여가문화와 일상생활 모두에서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실천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문제는 대전환을 책임지고 만들어나갈 정치세력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조차 ‘쟤네가 원조 도둑놈’이라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궁창에 빠뜨린 두 날강도 보수정치 패거리들에게는 기대하는 바 없다. 탈성장의 경로를 책임 있게 만들어나갈 생태적 관점의 진보정치와 시민의 힘을 고대한다.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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