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페미니즘·인권 동아리 중심의 제2회 마녀행진 기획단이 7일 서울 마포구 에브리타임 본사 앞에서 에브리타임의 여성혐오 게시물·n번방 2차가해를 비판하고 윤리규정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에브리타임은 약 44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학생 커뮤니티 서비스다. 우철훈 기자

기본적으로 엄벌주의에 반대하지만, 성착취 범죄에 대해서는 좀 더 무거운 형량 부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이 지면에 쓴 적 있다. 형량이 낮아서 생기는 사회적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이었다. 불법촬영물 유포자와 웹하드 업체, 심지어 영상물 삭제 업체까지 공생 관계로 엮여 있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였다. 덕분에 디지털 성착취 산업의 면면이 널리 알려졌다.

무지해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혹은 사회와 문화에서 익힌 것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한 죄악에 대해 개인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성착취 범죄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화제를 모은 방송프로그램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을 장식하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숱한 기사들, 관련 문제를 다룬 스테디셀러 서적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의 비윤리성을 학습할 기회는 차고 넘쳤다. 한사코 귀 막으며 배울 기회를 거부해 온 개인은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텔레그램의 성착취 범죄방 운영자뿐만 아니라 돈을 내고 ‘즐긴’ 사람들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 기사를 접했을 때, 내용의 참혹성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훼손된 느낌이었다. 그 뒤 소셜미디어에서 ‘한강 5부제’라는 ‘패드립(패륜적 농담)’을 봐도 눈살 찌푸리지 않게 되었다. n번방의 소비자들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으니 한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편을 추천하는데, 가급적 수질오염이 덜 되게 공적마스크 판매시스템처럼 생년에 따라 요일별로 나눠 뛰어들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아이디어였다. 죽음을 소재로 한 농담에도 죄의식이나 불편을 느끼는 본능이 정지한 까닭은, 분노가 온몸을 장악한 것일 테다.

이 분노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분노는 더욱 커졌다. 방어적 태도를 앞세우는 일부 남성들이다. 크게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적은 숫자에 집착하는 유형. 텔레그램 성착취방 이용자수로 흔히 추산되는 26만은 절대 가능하지 않고, 1만 정도일 거라는 주장을 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한국남자 중 ‘그런’ 녀석들이 많지 않음을 입증하고픈 욕망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스스로가 (굳이) 그런 범죄자들과 다르다는 걸 드러내고 싶다면 숫자를 축소하는 데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갖지 않는 편이 나을 텐데. 공감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굉장히 수상쩍거든. 

둘째로, 피해자 가운데 ‘일탈계’나 돈을 바라고 덫에 걸려든 경우는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웅얼대는 유형이다. 시작이 그러면, 협박과 강간이라는 범죄에 대한 피해가 없던 일이 되나? 돈과 선물이라는 미끼로 유입된 청소년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은 오히려 범죄의 악랄함을 방증하는 것 아냐? 역시나 공감능력 부족해 보이고 굉장히 수상쩍다. 

정서적·경제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처한 여성 청소년에게 나쁜 손길을 뻗은 어른들을 생각하면 화를 참을 수 없다. 그리고 기사에 공개된 조주빈의 문자들. 그 현란한 가스라이팅(타인을 조종하는 정신적 학대) 기술은 어른인 내가 봐도 숨이 막히는데, 청소년 피해자들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쯤 되면 경이롭다. 사건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공감보다 자신이 속한(다고 믿는) 집단의 방어가 앞서는 사람들이.

나는 피해자의 회복과 우리 사회의 유구한 성착취 문화 근절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문화가 바뀌기 위해서는 성범죄의 양형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됐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은 계속됐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웹하드에서 텔레그램으로, 범죄 내용은 좀 더 끔찍하게. ‘유출’ 동영상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밝히며 공유를 부탁하는 문화도,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일부’ 남자들의 시선과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관습도, 제발 지금부터라도, 제발.

<최서윤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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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체분절적으로 사고한다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발전된 과학에 개체분절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과학에 익숙한 현대인들도 개체분절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의 한 예가 뇌와 관련된 증상의 원인을 뇌에서만 찾는 것이다. 뇌는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노폐물을 처리하며, 외부 환경과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신체의 나머지 부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뇌의 노화에서도 신체 다른 부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노년의 피 vs 젊은 피 

19세기에 젊은 개체와 나이 든 개체 사이에 피를 교환하는, 약간은 잔인한 수술 기법이 도입되었다. 혈액 속에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있어서 뇌를 비롯한 신체 장기들이 몸 전체로 신호를 전달하고 정보를 통합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나이에 따른 피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젊은 개체의 피를 나이 든 개체에 주입하면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이 촉진되고, 시냅스를 구성하는 핵심적 구조물인 스파인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마는 사건과 지식을 기억하고 공간을 탐색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부위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을 때 두드러지게 손상되는 대표적인 부위다. 반대로 나이 든 개체의 피를 젊은 개체에 주입했더니 해마에서의 신경세포 생성이 줄어들고, 학습과 기억 능력이 저하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나이에 따라 혈액을 순환하는 단백질의 양과 종류가 변하기 때문이다. 혈액에 있는 3000여개의 단백질을 조사한 르할리에(Lehalli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노화와 관련된 단백질들은 만 34세까지 늘어났다가 한동안 줄어든 뒤, 만 60세 전후로 다시 조금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만 78세까지 크게 높아졌다. 청년, 중년, 노년기에 혈관을 순환하는 단백질의 종류는 많이 겹쳤으나, 완전히 겹치지는 않았고 발현되는 양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어떤 장기에서 어떤 원리로 어떤 단백질들이 생기는지, 이 단백질들이 뇌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조금 살펴보자. 

■ 운동하는 근육이 보내는 신호

근육은 운동을 하는 동안, 여러 종류의 단백질과 대사 부산물을 내보낸다. 이렇게 분비된 물질들 중에는 가까운 거리를 잠시 이동하는 것도 있지만, 혈액을 따라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운동한 다음날 근육통을 일으키는 젖산(락트산)이다. 락트산은 해마를 비롯한 뇌의 각 부위에서 혈관의 형성을 촉진하여 에너지와 물질의 공급을 돕는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과 신체 활동량이 줄어드는데, 이런 변화는 인지 능력의 감퇴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운동 후에는 FNDC5라는 단백질이 쪼개지면서 해마의 성장인자를 조절하는 물질이 생긴다.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해마와 뇌척수액에는 FNDC5의 양이 적다고 한다. 반면 알츠하이머병의 모델 생쥐에서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약물을 주입하여 FNDC5의 양을 늘리면 인지 능력이 향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상의 연구들은 운동이 건강한 뇌 활동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식습관과 수면

뇌가 원활하게 동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공급이 매우 중요하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밖에 되지 않지만, 몸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0%나 소비한다. 뇌는 글루코스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글루코스가 부족할 때는 케톤체도 사용한다. 케톤체는 단식(예: 저녁 식사 후 다음날 아침 식사까지 12시간 동안의 단식) 기간 동안 간에서 생성된다. 케톤체는 오랫동안 굶은 후나,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인슐린 저항성을 가진 경우에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무지카-파로디(Mujica-Parodi) 등의 연구에 따르면, 밤 동안 단식을 한 사람이나 케톤 이스터(체내 케톤체 농도를 높여주는 물질)를 섭취한 사람들의 뇌에서는 서로 다른 뇌 부위들 간의 소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통상적인 식사를 하고 케톤 이스터를 섭취한 사람들의 뇌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관찰되었다. 서로 다른 뇌 부위들 간의 안정적인 소통은 뇌의 노화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야식하지 않는 식습관도 뇌의 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노폐물 제거도 중요하다. 노폐물을 담고 있는 뇌 구석구석의 액체(간질액)는 뇌동맥의 맥박에 힘입어 뇌척수액으로 들어가고, 뇌척수액을 통해 노폐물이 뇌 밖으로 나간다. 나이가 들면 맥박의 힘이 약해지면서 간질액이 뇌척수액으로 들어가는 효율이 떨어진다. 뇌척수액을 통해 노폐물이 청소되는 과정은 잠을 잘 때 활발하다. 그래서 간헐적인 수면 부족과 불규칙적인 수면은 인지 능력의 저하를 부추기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 생활습관과 뇌의 노화

이상의 연구들은, 뇌의 노화라는 게 뇌만 늙는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뇌의 노화는 몸 전체의 노화와 얽힌 현상이며 평소 먹고 자고 운동하는 생활습관과 긴밀히 상호작용한다. 노파심에 보태자면, 이 글을 읽고 케톤 이스터를 먹거나, FNDC5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다소 이를지도 모르겠다. 완경기 후에 약으로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이는 것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는 것처럼 위 물질들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액 속의 모든 단백질을 정교하게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고, 임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져서 수십년 안에는 좋은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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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으로 이송돼 치료중인 중증장애인 5명을 돌보는 유은희 간호사가 음압병상으로 올라 가기위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다. 이석우 기자

KBS가 2013년 만들고 미국 ABC방송과 일본 후지TV가 리메이크한 드라마가 있다. 똑같은 이름으로 히트한 <굿 닥터>이다. 주인공은 모두 자폐증을 앓으며 힘든 가정환경을 딛고 자란 천재 레지던트이다. 무대만 소아외과(한·일)와 종합병원(미국)으로 나뉠 뿐이다. 드라마엔 생명을 살려내는 의술, 피 말리는 임기응변, 의사들의 헌신·성장과 사랑, 진실되고 따스하게 환자·가족을 대하는 맘 씀씀이가 그려진다. 의사 앞에 ‘굿(Good)’을 붙이는 이유는 또 있다. 3국의 병원·의료보험 체계가 다르지만, 돈벌이보다 사람을 우선하고 병원 문턱이 낮은 점이다.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유독 흥미롭게 이어본 의학 드라마였다.

좋은 의료시스템은 공통점이 있다. 의료진 실력이 받쳐주고, 과잉진료가 없으며, 싸고 접근하기 편해야 한다. 친절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나라마다 코로나19와 싸우며 절감하는 굿병원·굿닥터의 교범일 테다. 국내에서도 이 담론은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험지로 달려간 의료진 봉사는 이미 세계가 칭송하고 있다. 여기에 사람을 넘어서 커져가는 의제가 있다. 무서운 감염병을 겪으며 그 존재감을 곱씹는 공공병원이다. 비용·위험을 따지는 민간병원으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힘이 부치고, 재난 대응의 허점도 목도한 까닭이다. 진주의료원이 문 닫은 서부경남에서 공공병원이 총선 이슈가 된 것도 사회안전망의 빈자리가 크다는 방증이다. 

광주시가 8일 음압병상을 충분히 갖춘 광주의료원을 2024년까지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갓 출발한 공공의료지원단도 상주시키는 ‘감염병 특화병원’이다. 인천시는 영종도 인천공항 옆에 감염병 전문 종합병원을 짓겠다고 했고, 대전시는 대전의료원 예비타당성조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광주·대전시는 처음 세우는 공공병원부터 감염병 컨트롤타워로 구상한 셈이다. 현재 국내 공공병원은 200개가 넘는다. 국립대·보건복지부·근로복지공단·국방부·국가보훈처·경찰청·지방정부에 속한 공공의료기관을 합친 숫자다. 다시 확인된 공공의료 장점은 살리고, 따로국밥처럼 운영한 시스템은 효율성을 높일 때가 됐다. 코로나19가 크게 바꿀 세상, 공공병원도 더 협업하고 촘촘해져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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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가게들이 어렵고 지갑이 홀쭉한 시대다. 한 젊은이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어리숙한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찾아갔다. 물건을 쪼끔 사고 5만원짜리 위조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삐뚤빼뚤 4만원이라 적힌 지폐를 꺼내더니 거스름돈이라며 내밀더란다.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면 큰코다친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만 봐도 단톡방에 이모티콘을 자유자재 구사하고 장남이 가짜뉴스 올리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 꾸짖기도….

엊그제 일이다. 국수가게에서 친구랑 밥을 먹고 나왔는데 우체국에서 택배 계산을 하려다보니 지갑이 주머니에 없다. 혹시나 해서 국수가게에 전화했더니 테이블에 그대로 있다는 거다. 지갑에 명함이라도 넣어두어야 하는데, 수염 얼굴이 명함인 뉴욕 노숙인 스타일. 돈도 좀 들어 있었다면 지갑을 못 찾았을까. 우리나라 사람들 정직하고 도덕성도 높은 편이다. 일부 때문에 전부를 비하해선 곤란하다. 해외를 여행해보면 안다. 손에서 떠난 물건은 남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눈앞에서도 돌려주지 않는다. 가난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든다. 가난이 폭발하면 유혈 충돌이 일어난다.

홀쭉 지갑을 불룩 지갑으로 만들 마술이 시방 필요하다. 임대료가 밀리고 쌀이 떨어진 집들이 있다. 재난소득은 무차별로 나누되 넉넉한 집안에선 기부를 하는 문화가 정착했으면 싶다. 장차는 기본소득의 시대가 와야 한다. 한 해 농사 지어봤자 약값, 입원비 충당하느라 ‘쌤쌤’인 농민들을 봐도 그렇다. 쌀과 배추와 양파, 고추와 무와 마늘이 없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까. 예술가들도 그래. 우리 사는 골목에 집을 둔 예술가들이 없다면 마을살이가 얼마나 밋밋할까. 대다수 예술가들은 그러나 궁핍하다. 글로 벌어먹고 사는 작가들은 정말 열 손가락 안. 예술가들의 삶이 안정될 수 있는 정책이 뒤따라야 하겠다.

잠깐 지갑을 잃어버렸던 국수거리에 꽃들이 만개했다. 지갑이 꽃송이로 불룩해지는 상상을 했다. 꽃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꽃잎 한 장 두 장 지폐 삼아 국수를 사먹는 꿈을 꾸어본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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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3월31일 (출처:경향신문DB)

시인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단락은 강렬하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중략)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시인은 세계대전 후 유럽의 황폐한 상황을 그린 것이나, 내게는 감추고 싶은 것들이 드러났을 때의 심정을 이야기한 것으로 읽힌다. 그 4월이 왔다. 선거의 달이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열기는 예년 같지 않다. ‘일시멈춤’ ‘거리 두기’ 등으로 국민은 불편하고, 경제도 어렵다. 이 와중에도 뜨거운 이름들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의 홍역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검찰은 ‘피의사실 유포’ ‘별건수사’ 등의 비난에도 그야말로 탈탈 터는 수사로 조 전 장관은 물론 부인, 동생, 조카 등을 법정에 세웠다. 검찰 수사가 얼마나 공포스러웠으면 “무소불위 검찰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여론이 드세지면서, 되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개혁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기도 했다. 반면, 국민들은 힘센 자들이 공유해온 권력의 대물림 과정을 보고 분노했다. 주거니 받거니, 자녀의 ‘스펙 쌓기’가 그렇게 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경악했다. 누군가는 감춰졌으면 했던 일들일 것이다. 이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 ‘윤석열 검찰’에 지지와 응원이 이어졌다.  

‘조국 사태’는 진보의 균열도 불렀다. 과도한 ‘조국 구하기’에 실망한 이들이 하나둘 ‘진영의 담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덕적 흠결이 분명한 상황에서 ‘조국 수호’에 몰입하는 듯한 정권의 모습에 실망한 결과일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저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를 통해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선 핵심에 집중하는 최소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 교수는 “최소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e메일로 답했다. “검찰개혁에 동의할 사람이 절대다수임에도 특정 인물을 내세워 그 사람이 아니면 검찰개혁을 못한다는 식의 접근법은 최소주의와는 거리가 먼 도발적 여론몰이다. 진영 간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에 집중하라”는 주문이다.    

윤 총장에게도 ‘4월’이 왔다. 선거를 앞두고 장모와 부인 비리 의혹이 터지고, 최측근 현직 검사장이 언론과 유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야당은 연일 “윤석열 때리기” “민주당이 조국 살리기에 나섰다”며 비판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조국 사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표심을 얻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들은 하나같이 사안이 중하다. ‘300억원대 사문서 위조·행사’ ‘동업자의 수익 가로채기’ 등 보통사람이라면 꿈도 못 꿀 일들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늑장수사’ 의혹 등은 사실이라면 조국 사태 때 국민적 분노를 샀던 ‘합법을 가장한 특권의 향유’와 다를 바 없다. 조국 사태 내내 의심받아온 검찰과 특정 언론의 유착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야당이나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정치적 프레임’으로 폄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들 사건을 대하는 윤 총장의 태도는 석연찮다. 그는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한 대검 감찰본부장의 감찰 개시 요구에 반대했다. 시민단체의 고발까지 있는 사안이 아닌가. 그렇다면 감찰은 수사에 앞서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신중론을 폈다. 가뜩이나 윤 총장 가족 관련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장모에 대한 기소는 사건 발생 7년 만에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연루 의혹이 제기된 윤 총장 부인은 검찰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100명의 검사·수사관을 동원, 70여곳을 압수수색하며 밀어붙이던 조국 수사와는 사뭇 다르다. 급기야 검찰 수사관이 내부통신망에 수사 공정성을 이유로 윤 총장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윤 총장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정농단 수사 등을 통해 보여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함’ ‘권력에 굴하지 않는 수사’는 국민 모두가 아는 ‘윤석열의 원칙’이다. 대통령에 대한 ‘충심(忠心)’ 발언을 통해 “대통령 측근 비리는 읍참마속하기 어려워, 정확하게 수사해서 도려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검찰’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측근 비리는 도려내야 한다. 그게 검찰이 지켜내야 할 ‘윤석열의 원칙’이다. 

시인 신동엽의 4월은 ‘또 다른 4월’이다.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거짓과 불의를 벗어던지고, 정의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윤 총장의 4월은 엘리엇의 4월이 아닌, 신동엽의 4월이 돼야 한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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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인 지혜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다. 지혜는 학교에서 온라인개학에 대한 아무런 공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권호욱 기자

아이는 누워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이라고 했는데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싶게 작은 체구였다. 조막만 한 얼굴의 절반 이상은 인공호흡기가 덮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출퇴근길에만 마스크를 써도 코 옆에 자국이 생기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렇게 24시간 호흡기를 끼고 생활하고 있다.

골형성 부전증과 러셀실버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는 3년 전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만난 건 온라인개학 이후 교육격차가 더 커질 취약계층의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장애학생에게 절실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아이는 3년째 화상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방문교육을 통해서라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친구들이 소풍을 갈 때 근처에서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교는 지침과 안전을 이유로 그 어떤 대면접촉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는 책 읽기나 카카오톡 메신저 등이다. 그날도 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누운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세워져 있는 책을 읽어내려가는 식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도 꿈이 있어요. 누워 있고 아픈 아이라고 꿈이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두어 달 전에 만났던 50대 어머니가 떠올랐다. 경기도의 한 반지하에 살고 있는 한부모가정으로, 아이 다섯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습기로 눅눅한데 3~4년 전 폭우로 하수구가 역류하면서 부엌 장판 등은 볼썽사납게 우글거렸다. 침수로 물이 스며들어, 썩어 무너져내린 장롱을 버리고 플라스틱 서랍장을 구해왔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분이었다.

취재 말미에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직까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한껏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이라며 낯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처럼 망설였다. 그러고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대신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졸업하면 군대를 바로 갔다와 돈을 벌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두 만남이 머릿속에서 겹쳐진 것은 우리 사회가 과연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곳인가라는 물음에서다. 

꿈은 앞으로 언젠가는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희망을 담는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더라도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동기로 작용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꿈은 곧 앞날을 뜻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살아갈 날이 있다고 항변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미처 앞날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고된 삶을 고백했다. 아프다고, 가난하다고 꿈이 없겠는가.

아이의 꿈은 작가라고 했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느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띄엄띄엄 학교에 가더라도 세상과 연대하고 어울리며 살고 싶은 이유다. 반지하에 사는 어머니도, 그의 아들도 꿈꾸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생계에 치여 미뤄두거나 잊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이 품은 꿈을 지켜줄 수 있을까. 꿈꾸는 일이 꿈같은 일이 된 사회, 2020년 우리의 모습이다.

<이성희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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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LG 셰이커스의 강을준 감독은 강한 경상도 억양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니갱망(니가 갱기(경기)를 망치고 있어)” “헤이~ 쌰랍!” “니들이 스타야?” 같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는 경기 중간 긴박한 작전타임에도 선수들을 앞에 두고 강렬한 말 한마디를 꼭 하는 감독이었고 그런 모습은 농구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영웅이 필요 없어! 승리할 때 영웅이 나타나!”이다.

요즘 영웅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35%의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의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 우승자 이름이 임영웅이었고, NCT 127이 최근에 낸 노래의 제목 또한 ‘영웅(Kick it)’이었으며 쏟아지는 속보 속 사투를 펼치는 의료진을 향해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영웅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추적단 불꽃’이라는 새로운 영웅이 생겼다. ‘n번방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 결국 수면 위로 올리고 성범죄 집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들은 조주빈이 검거되기 전까지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진정한 영웅은 모든 것이 해결된 뒤 저절로 등장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992년 첫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한국에서 가장 저명하고 오래된 시사 프로그램이다. 문제적 사회 이슈에 대한 과감한 접근과 용감한 취재,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한 다층적인 분석, 책임감 있는 보도와 새로운 대안의 모색까지 튼튼한 구조의 에피소드들이 매주 방송된다. 거기에 매회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서스펜스 가득한 연출과 남성 진행자들의 연극적인 모놀로그가 더해져 30년 가까이 한결같은 포맷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가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에피소드 ‘악마의 시그니처’를 시작으로 나는 이 방송을 더 이상 전과 같은 마음으로 애청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정황을 생생하게 되짚는 진행자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목소리는 서스펜스보다는 위화감이 느껴졌고, 범죄자를 ‘악마’로 규정한 뒤, 그의 생애와 주변을 신비롭게 추적하고, 살인수법을 낱낱이 분석하는 결말은 시청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된 ‘벗방 카르텔’ 편에서는 해당 불법 행위의 가담자를 제보자로 등장시켰고, ‘n번방 사건’ 편에서는 검거된 범죄자를 ‘괴물’로 표현하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사건을 탐사의 관점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 에피소드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장면은 ‘벗방’의 장소를 세트로 구현하고 그 안에서 마치 쇼를 하듯 피해자가 존재하는 화면 너머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진행자의 불필요한 퍼포먼스였다. 사안의 심각성을 위협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피해자들이 소재로만 이용된다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여성들의 공론화가 없었다면 범죄로 인식조차 되지 못했을 ‘n번방 사건’을 통해 각 언론사는 저마다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보도원칙을 만들어 실행 중이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자극적 보도와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서술을 지양해 2차 가해를 경계하고, 피해자들을 향한 연대 및 사회적인 위로를 촉구하며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인 근절을 위한 기획 보도 또한 쏟아진다. 실제로 일어난 범죄 사실을 다룬다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범죄를 해석하고 그들이 이 사회에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여론의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당연한 합의가 지금의 흐름대로 꾸준히 정착되길 희망한다. 세상에는 극적인 반전과 스릴, 영웅의 화려한 활약이 필요 없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제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기법을 따르지 않아도 분노하고, 연대하는 타이밍과 방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복길 |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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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8일 클럽과 룸살롱, 콜라텍 등 유흥업소 400여곳에 대해 오는 19일까지 사실상 영업 중단 명령을 내렸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유흥업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유흥업소발 집단감염 우려가 현실화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최근 사흘 연속 50명 안팎을 유지하며 안정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급증하는 ‘제2차 파도’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업소들이 코로나19 확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며, 당국은 마지막 불씨까지 차단해야 한다. 

서울시가 이날 영업 중인 422개 유흥업소에 대해 집합금지 명령을 내린 배경은 이해가 된다. 유흥업소는 영업 특성상 공간이 폐쇄적이고 밀집도도 높아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의 강남 유흥업소에서는 이미 종업원과 손님 등 100여명이 접촉자로 분류됐고 일주일 새 3차 감염까지 이뤄졌다. 클럽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물리적인 거리 두기는커녕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고성을 질러 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부 젊은이들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무분별한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할 만하다. 서울시의 조치는 정부가 고강도 거리 두기를 19일까지 연장한 것과도 맞다. 정부는 이 기간 실내 체육시설과 유흥시설, 종교시설, PC방, 노래방, 학원 등엔 운영 중단을 권고하고, 불가피하게 운영할 경우 철저한 예방수칙을 지키도록 했다. 서울시 유흥업소 2146곳 중 80%도 이미 휴업 중이다. 

전문가들은 증상이 미약한 젊은이들이 감염 사실도 모른 채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조용한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던 당초 판단과 달리 최근엔 해외에서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젊은이들도 감염 후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노인에 비해 사망 확률이 낮아도 면역반응이 무너지면 급속히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야 한다.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협조뿐만 아니라 정부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유흥업소 관리는 지자체에 맡겨져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통일된 대책이 필요하다.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많은 업종이 휴업하며 코로나19 극복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유흥업소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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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과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초기 상담과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7일 코로나19의 노동 부문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로 전 세계 노동자 33억명 가운데 81%인 약 27억명이 해고, 임금 삭감, 노동시간 단축 등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ILO는 올해 2분기 전 세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6.7% 줄어들 것이라며, 이는 1억9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ILO의 경고는 대공황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상황은 예측보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ILO는 지난달 발표한 올 세계 평균 실업자 2500만명보다 더 늘어난 예측치를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ILO의 분석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후반 2주 사이에 약 1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같은 기간 프랑스에서는 400만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영국의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최근 몇 주 사이 10배로 늘었다. 서구 경제가 고용 빙하기에 들어선 형국이다. ILO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실업대란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다음주부터 직원 70%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무급휴직을 실시한다. 이스타항공은 직원 300명을 구조조정키로 했다. 여행, 숙박, 제조업에서도 구조조정이 거론되고 있다. 직장갑질119에는 3월 이후 해고·권고사직 사례 신고가 크게 늘고 있다. 해고를 막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에는 하루 2000건 안팎으로 신청이 폭증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여파로 지원금 규모를 크게 늘렸으나 신청자의 요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고용지원금이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에 국한돼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정 대책이 필요하다.

감염병위기는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경제위기는 고용위기를 부른다. 그러나 노동자 해고가 위기 극복의 해법은 아니다. 일자리가 유지될 때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어떻게든 해고는 막아야 한다. 정부의 통 큰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ILO는 보고서에서 경제위기 대책으로 노사정 대화를 통한 해결을 제안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서구와 달리 손쓸 여력이 충분하다. 정부는 적극적 고용안정책을 통해 해고 방지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최대한 해고 회피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자는 해고를 막기 위해서라면 급여 삭감, 순환 휴직제 등을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노사정이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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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4월 9일 (출처:경향신문DB)


정말 저질이다. 경기 부천병에 출마한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가 “2018년 5월에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건 아세요”라며 이런 말을 했다. 차마 옮기기 힘든 표현이다. 그가 언급한 기사는 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제1야당의 후보가 아무 근거도, 확인도 없이 이런 황당한 얘기를 TV 후보토론회에서 버젓이 내뱉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있는 때다.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지난해 4월엔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징하게 해 처먹는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가운데)이 9일 오전 국회에서 같은 당 김대호·차명진 후보의 막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당은 여론이 심상치 않자 8일 차 후보를 제명키로 했다. 제명이 확정되면 후보 자격이 박탈된다. 통합당은 이날 오전엔 ‘세대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대호 후보(서울 관악갑)를 제명했다. 그는 “3040은 무지” “나이 들면 다 장애인”이라고 특정 세대를 돌아가며 비하했다.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막말을 이유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제명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으로 하루에 두 명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서둘러 비판여론을 잠재우려는 심산일 테지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다. 차 후보 같은 사람에게 공천장을 준 것부터 그간 그가 내뱉었던 숱한 세월호 유족 모독 발언들에 대해 당이 면죄부를 준 거나 다름없다. 당 지도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통합당의 막말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유독 이 당에 막말과 설화가 줄을 잇는 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 출마한 민경욱 후보는 20대 국회 최악의 막말 정치인으로 지탄받았지만, 공천관리위원회의 거듭된 반대에도 결국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막말 전력자를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했으나 다 빈소리였다. 황교안 대표 등 당 지도부까지 걸핏하면 막말 퍼레이드에 가세하는 판이니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없는 분위기도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언어는 공공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다른 어느 곳보다 품위를 갖추고 절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저질들은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이 못한다면 유권자가 가려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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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대 영상, 어느 쪽이 더 사랑받나. 수십년의 달리기 시합을 되짚어 보자. 지난주 “오래전 ‘이날’”에 소개된 경향신문의 옛 기사가 흥미로웠다. 1970년대 후반부터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며 한동안 영상이 앞서나간다. 그런데 1990년 3월30일자 경향신문은 “라디오의 인기가 되살아난다”고 보도했다. 그 무렵 ‘손수운전자’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그 뒤로 30년은 엎치락뒤치락이다. MP3플레이어와 팟캐스트(소리)가 유행했고, 스마트폰과 유튜브(영상)가 인기이며, 인공지능 스피커(소리)가 관심을 끈다.

소리냐 영상이냐, 대중없어 보이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다. 우리가 갈수록 바빠진다는 이야기를 나는 하고 싶다. 옛날에 컬러텔레비전이란 일가족이 의식을 치르듯 모여 앉아 시청하는 물건이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일과 중 따로 마련한 집이 많았다. 그 후에 어찌 되었나. 우리는 운전하는 시간에 라디오를 들었고, 일하는 시간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차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유튜브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를 한다. 소리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내내 우리는 뭔가 할 일이 있다.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모컨이 보급되기 전에는 가족 중 ‘서열’이 낮은 사람이 달려가 가부장의 취향에 맞춰 채널을 돌리곤 했다. 만화영화를 보고 싶은데 아빠 때문에 프로야구를 틀어야 했다는 슬픈 경험담을 종종 듣는다. 지금은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으니 이런 점은 좋다. 바쁜 중에도 소리나 영상을 즐긴다는 점도 괜찮다. 하지만 너무 바쁘게 사는 점은 문제다. 저녁 무렵이면 힘이 쏙 빠진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사람은 한줄한줄 주석을 찾아가며 책과 씨름하기 어렵다. 그럴 시간도 힘도 없다. 요즘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는 추세가 있다. 소리는 백색소음, 영상은 ASMR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풀벌레가 찌르륵찌르륵, 시냇물이 졸졸, 모닥불이 자작자작, 보일러가 웅웅, 도미노가 차르르, 슬라임이 꿀렁꿀렁. 넋 놓은 채 틀어놓으라는 소리와 영상이다. 외국에선 새티스파잉 비디오(satisfying video, 기분 좋아지는 영상)라고도 부른다. 유튜브 소개를 보니 공부할 때 집중을 돕고 잠잘 때 푹 자게 해준다고 돼 있었다. 요즘 우리가 어찌나 바쁜지, 책을 읽을 때나 잠을 잘 때에야 영상을 즐길 틈이 난다는 얘기 같다. 나는 허허 웃었다. 물론 나도 새티스파잉 비디오의 팬이다. 이래 봬도 나 역시 바쁜 사람인 것이다. 바쁘다고 옛날보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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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마스크를 쓰고 도심을 걸으며 안내문을 하나씩 읽었다. 거의 모든 곳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주로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시간을 단축한다는 내용이었고, 경영 악화로 폐업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미술관과 도서관엔 휴관, 병원엔 면회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문장은 짧고 간결했지만 문장 뒤 상황은 간결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이 조금 불편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삶이 무너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안내문 뒤에 감춰져 있을 사연과 풍경이 모두 합쳐졌을 때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생각해본다. 변화로 인한 충격은 바닥에서부터, 가장 약한 부분부터 올 것이다.

지난주에 개강을 했지만 등교를 못 하고 화상채팅 앱을 이용하여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을 듣기에 무리는 없었지만 화상채팅 특성상 개인 공간이 공개되는 게 불편했고, 눈이 피곤하여 집중하기가 다소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느낀 지점들이 누군가에겐 수업받기가 불가능한 이유가 될 것이다. 입술 모양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화상채팅으로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수업을 듣기 어렵다. 실시간이라 자막도 없다.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그럭저럭 간신히 유지되었던 것들이 비상 상황에서는 제일 먼저 불가능해지고 무너진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 요양병원 환자들이 집단감염에 먼저 노출되었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무료급식은 중단되었다. 바로 지금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그동안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 사회에서 약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계기로, 보수하고 더욱 탄탄하게 만들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백신이 만들어지고 이 상황이 종식된다고 해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안내문을 하나씩 읽어나가며 생각해본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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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후보(미래통합당)의 일련의 발언들은 실수가 아니다. 전편과 속편이 온전한 극(劇)이다. 그의 프리퀄은 공안 검사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그의 발언은 세계관의 본격적 분출이다. 아들 취직 자랑, 육포 사건,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다”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 발언, 키 작은 사람의 ‘투표 걱정’….

압권, 아니 공포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관한 입장이다. 그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양형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범죄 가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호기심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양형 기준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강력한 범행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같은 당 이준석 후보가 “기술적 이해 부족”이라며 두둔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컴맹’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일반론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n번방’에서 벌어지고 있던 폭력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와 동일시하고 있는가”이다. 누구를 걱정하고, 누구를 무서워하는가. 호기심? 많은 여성 연구자들에게 성착취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은 상황과 마주하는 데서 오는 고통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고통을 느끼는데, 어떤 사람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까지’ 걱정하나?

황 후보처럼 ‘n번방’의 존재와 내용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보다 분노와 공포를 느끼는 국민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동일시한 호기심‘만’ 가진 사람의 인권 누락 가능성이 더 걱정이었고, 이는 양형 공정성 주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현행법 체제 안에서 최대한의 형량을 요구하지만, 요지는 이 사건에 대한 사법 운용자들의 인식이다. 형량은 그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맡았다가 40만명이 넘는 국민청원으로 교체된 오덕식 판사는 고 장자연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물이다. 이후에는 고 구하라씨를 상습적으로 구타하고(상해·협박·재물손괴) 불법촬영(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한, 최종범씨에 대해 전자에는 무죄, 후자에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 자신은 불법촬영물을 관람했다. 

범인의 성별과 인종에 대한 감정과 이해(理解)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 법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법 감정 이론대로라면, 오덕식 판사는 시민의 안전보다는 가해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굳이 불법촬영물을 관람한 이유도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폭력 영상물에 대한 인식은 성별 제도와 큰 관련이 있다. 남녀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얘기다. ‘n번방’ 사건은 신종 성폭력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성산업도 다양해진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여성의 얼굴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첩이 되어 군부대, 교도소, 대학가 등지에서 ‘눈요기’용으로 팔린다. 내가 아는 한, 이 제작자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쉽게 돈을 버는 경로가 있다. 

현행 성매매방지법의 규제 영역은 오래된 집결지(집창촌)였고, 이는 전체 성산업의 5%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와 남성 문화의 결합은 여성노동을 성애화하고 성애(sexuality)의 매춘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남성 문화에서 성 구매와 성폭력은 사소한 문제로 간주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성들이 좌절하고 공동체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검찰’의 진짜 성격은 이번 사건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심각한’ 성범죄 사건이 보도가 되면 남성 문화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나는 아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관심이다. 전자는 가해자와 선 긋기, 후자는 무의식적 옹호이다. 두 가지 모두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그들이 지은 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 여성 살해 장면을 촬영하는 스너프(snuff) 필름을 다룬 조엘 슈마허 감독의 <8MM>에서, 범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 괴물 아니에요. 어릴 적 트라우마?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좋은 교육 받은 사람입니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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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코로나19가 지구적 문제가 되었다. 이미 수만명이 사망했고 그 끝이 어디인지 예측 불가능하다. 백악관 질병관리 책임자가 미국에서만 10만~24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할 정도이니 상당한 기간을 더 견뎌야 할 것이다.

예기치 않은 전염병으로 거의 모든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중교통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발병이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시내버스 이용객은 25~35% 줄었고,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60~70%나 감소했다. 과거에도 사스, 메르스가 발생해 운송업에 타격을 준 적이 있지만 감소폭이 이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대중교통의 흔들림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버스 운행 감축에서부터 휴업 등 다양한 일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근로자의 임금 삭감과 실직 등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운송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증가할 것이다. 이용객 감소로 인한 손실이 워낙 커 당장 다음달 임금 체불을 걱정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시민의 발인 대중교통이 붕괴되지 않도록 생명줄을 지켜줘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긴급지원기금을 마련하면 좋겠으나 이것이 안된다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직간접적으로 도울 필요가 있다. 실제로 농어촌 지역의 수많은 영세 버스업체들은 담보능력이 없어 당장 급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버스업체가 승객 감소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도록 관련 규정을 한시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 운수사업법은 승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운행 횟수와 대수를 20~40%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평균 이용객 감소폭이 60~70%, 지역에 따라 90% 이상 감소한 현실에는 충분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현지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업체도 위기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 민영으로 운영되는 버스뿐만 아니라 준공영제를 채택 중인 서울·부산 등 6대 도시의 버스업체들도 비용절감 노력을 해야 한다. 이용객 감소로 수입이 크게 줄어들어 이미 책정된 준공영제 예산은 8~9월이면 고갈될 수 있다. 업체는 추경 등을 통한 정부의 경영 손실 보전 지원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겪으면서 더 급한 곳의 재정수요가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 ‘대중교통의 위생과 방역’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던졌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운송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대중교통이 바이러스 전파와 감염의 주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음도 이번에 알았다. 우선은 현장의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대중교통의 산업 위기와 위생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성낙문 | 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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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라피티 예술가 제프 세인트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의 한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동료 예술가 라이언 맥피와의 공동 작업인 이 벽화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둘러싸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눈동자가 그려졌다. 하지만 결국 바이러스가 꽃으로 변해 희망을 선사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AP연합뉴스

세상 종말을 다룬 영화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원인도 가지가지다. 이들 중에서 소행성 충돌이나 외계침공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구급증, 환경오염, 자원고갈, 식량부족, 생태계 변화, 전염병 창궐, 좀비, 문명붕괴 등. 그리고 이런 재앙들은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사태도 이런 재앙의 연쇄고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인구증가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지구의 인구는 20억명을 약간 웃돌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77억명이 되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개발주의는 땅을 점령하고 자원을 소비하며 야생 생태계를 갈아엎었다. 질병생태학자 피터 다작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재앙은 신의 장난이 아니다. 환경에 대해 인간이 도전한 결과이다.” 지구상에는 170만가지 이상의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이 야생동물을 숙주로 생존하는데, 인간의 개발욕구가 생태계적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침범하는 순간 일부 바이러스가 인간계로 넘어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건 바이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끝없는 소비욕구, 지구착취와 환경변화 등 세상종말을 향해 연쇄적으로 움직이는 시곗바늘이다. 인간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시곗바늘은 지금도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고, 단계별로 하나씩 새로운 위기상황의 카드를 꺼낸다. 우리가 타고 있는 뗏목을 잘라 연료로 삼으면서도 그 뗏목이 침몰할 수 있다는 걸 모두 모른 척했다.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설정하고,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산이 녹아내렸지만 우리는 그저 남의 일로 여겼다. 적어도 코로나19가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동안 위험한 줄도 모르고 방치해왔던 위기상황들에 눈떠야 한다. 울리히 벡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그 위험은 역설적이게도 성공적인 근대화의 과정에서 인간 스스로 초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의 산물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산업강국이 되는 과정에서도 매년 산업재해로 거의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회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국민 4분의 1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 매년 1만2000여명이 자살한다. 10대 자살자 숫자만도 200명을 넘는다. 학교가 진원지다. 사회가 만든 전염병들 속에서도 ‘물리적 거리 두기’같은 연대와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터널을 빠져나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를 넓고 밝게 바라봐야 한다. 코앞만 보던 시야를 넓혀 조망의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가 안 팔리고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코로나19는 미친 듯이 소비하고 퍼먹던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몇 주 동안의 칩거가 고통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나를 이해하는 틈새를 선물한다.

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이 바뀌어도 좋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사회적 실험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본도 멈춰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가스실’ 뉴델리 하늘색이 달라졌다. 말로만 듣던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있다. 재택근무도 나쁘지 않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개학이 관습적 학교의 판도를 바꾼다. 원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변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2020년 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간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긴 교훈을 이제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데 적용해 본다. 치솟는 확진자 커브의 기울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그대로 파멸로 치닫던 개발주의의 속도를 늦추는 데 적용한다.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물리적 거리 두기’라는 작은 결단과 행동이 코로나19를 이기는 힘인 것처럼, 대한민국과 지구의 미래를 살리는 첫걸음도 작은 결단과 행동이다. 

4월15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투표라는 작은 결단과 행동을 통해 ‘지구를 살리는 슈퍼맨’이 되어 보자. 관습이나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적 가치를 찾아 투표하자. 위기를 관리하며 먼 항해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어떤 정당과 후보가 그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을까?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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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도봉구에서 손자와 둘이 사는 이순자 할머니가 학교에서 보내온 온라인개학 안내 문자를 보며 “온라인 클래스가 뭔지, 어떻게 가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역사상 최초의 온라인개학이 다가왔다. 아직 개학 전이지만 이미 학교마다 여러 방법으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혼돈이다.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이 없어 현재의 온라인개학은 사용 가능한 모든 포털 사이트에서 내 준 한 칸 교실을 요령껏 잡아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마저 학습터에 입장하지 못하는가 하면 교사의 학습 영상과 자료가 사라지는 상황도 생긴다.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공지와 안내도 백지에 가깝다. 겨우 안내받은 시간표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똑같은 시간표에 형식만 온라인수업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6, 7교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하루 종일 스마트기기만 마주하고 앉아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수업시수를 줄이고 강의와 과제 제출 등 여러 형식을 섞은 시간표는 불가능했던 걸까 싶지만 짧은 시간 안에 온라인수업을 준비해야 했던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만큼도 버거운 일이었겠다. 

그래서 아쉬운 건 교육부의 늑장 대처다. 온라인개학을 발표하면서 사전에 여러 상황을 검토하고 준비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불과 그 며칠 전에 온라인기기 현황을 조사하는 설문을 받은지라 믿기 어렵다. 지금 교육부가 말하는 원격수업에 대한 여러 일정과 계획도 어느 정도 즉흥적이고 일정부분 상황 모면적일 거라 의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온라인개학을 찬성한다. 뒤늦게 바이러스가 상륙한 미국은 시스템이라는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혼돈에 빠졌는데, 그 와중에도 교육부의 대처 능력만큼은 눈에 띄었다. 스쿨버스를 이용하여 취약계층 아동들이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학교를 통제하는 대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반면 그때까지도 우리나라는 ‘개학 연기’와 ‘수업일수 조정’ ‘수능 연기’가 교육 대처의 거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2주마다 연장, 심지어 정책 설문도 아닌 찬반 설문으로 결과를 정하는 무책임을 보였다. 교육 공백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어떤 안도 듣기 어려워서 답답했다. 이제 온라인으로나마 문을 열었으니 교육 문제에도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싶다. 

무엇보다도 온라인개학이 모든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가 있고, 원격수업이 불가능한 여러 계층의 학생들에 대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스마트기기는 이미 학교에서 대여가 가능하고, 데이터 사용에 대한 지원도 발표되었다. 어리거나 여타한 이유로 혼자 원격수업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돌봄이 필요하다. 이들을 양육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지원하는 것도 재난소득 이상의 대책이 될 터이다. 어쨌거나 기간 동안 가정 내에서 교육 지원이 이루어지는 만큼 학부모들에게도 과정에 대한 정확한 공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 문제가 있고, 여러 해결안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다양한 교육 소외의 문제가 쏟아지는 것도, 어쨌거나 교육부가 교육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형식으로나마 교육이 재개되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교육 사각지대가 발생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에 놀라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부디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해나가길 바란다. 공교육이 교육에 대해 어떤 순간에서도 책임과 의무를 가질 때 교육 바깥의 교육 불평등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예측 불가한 재난 상황에서 평등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현재의 혼란은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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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밀라노 지역 교민과 주재원 등이 전세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6, 7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나란히 47명을 기록했다. 하루 확진자 발생이 생활방역이 가능한 수준인 50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해외 유입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수도권 병원을 중심으로 소규모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감염이 폭발하면 유럽과 같은 확산세가 닥칠 수 있다. 

신규 확진자가 줄면서 방역의 초점은 자가격리자 관리로 옮아가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자가격리자는 총 4만6000여명이다. 지난 1일부터 모든 해외입국자에 대해 2주간 격리가 의무화되면서 자가격리자는 매일 수천명씩 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자가격리자는 최대 9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자가격리는 정부가 추진하는 강도 높은 거리 두기 대책의 하나다. 그러나 격리 대상자가 크게 늘면서 자가격리자 관리는 이제 방역의 최대 변수가 됐다. 

방역당국은 모든 해외입국자의 휴대전화에 자가진단 앱을 설치해 격리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발생 자가격리자는 앱 설치율이 60%에 그쳐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격리자 중에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외출하는 사례도 있어 온전한 모니터링이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피로감이 쌓이면서 자가격리 지침 위반자가 속출하고 있다. 자칫 감시망을 흩트릴 수 있는 아찔한 사례들이다. 답답하다며 산책하러 나갔는가 하면, 지하철을 타고 다닌 격리자도 있었다. 경남에서는 외출한 뒤 친구들과 식당에서 어울린 확진자가 경찰에 입건됐다. 이렇게 지침 위반으로 입건된 자가격리자는 75명이나 된다. 

정부가 모든 자가격리 대상자에게 전자팔찌(손목밴드)를 착용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팔찌 착용은 자가격리자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홍콩에서는 유사한 방법을 도입·시행 중이다. 그러나 전자팔찌 착용은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하다. 일부 이탈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자가격리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기조로 한 정부의 방역정책과도 배치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7일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은 챔피언”이라고 극찬했다.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은 정부의 민주적 방역체계와 시민들의 동참이 일궈낸 성과다. 자가격리자도 이에 걸맞게 수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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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1차 TV토론회가 6일 열렸다. 경제위기 극복 방안과 복지정책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원내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정당은 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패널들은 긴급재난지원금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거대 양당이 빠진 토론회는 아무래도 정치적 무게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크게 줄어들면서 TV토론회는 그나마 유권자들이 각 정당의 정책과 공약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여당과 제1 야당의 불참으로 이마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꼼수 위성정당의 폐해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거대 양당과 위성정당들의 ‘따로 또 같이’ 선거운동은 더 가관이다. 민주당과 더시민은 공동 출정식에 이어 쌍둥이 유세 버스까지 동원했다가 선관위로부터 저지당했다.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이 강조된 두 당의 버스는 디자인, 문구, 서체까지 똑같고 당명만 다르다. ‘4월15일’이라는 글자 중 1과 5만 유독 크게 부각시켰다. 민주당과 더시민의 정당 기호인 1번과 5번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다. 그런데도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선관위의 지적에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되레 반발하기도 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통합당과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통합당 선거 유세에 동행하는 한국당 인사들은 통합당의 상징색인 핑크색 점퍼를 뒤집어 입거나 기호만 가리는 꼼수로 둘이 한 몸임을 강조한다. 아예 기호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도 등장했다. 

지금처럼 정책과 비전이 사라지고 꼼수 대결만 난무하는 선거전은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키우고 민의를 왜곡할 뿐이다. 투표일까지는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선관위는 남은 기간에라도 엄격한 잣대로 거대 양당의 편법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 같은 혼란은 개정 선거법의 허점을 비집고 위성정당을 창당할 때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정도(正道)정치를 기대할 수 없는 거대 양당의 민낯을 확인한 만큼 총선 후에는 누더기 선거법을 반드시 손봐야 한다. 위성정당 창당을 막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정치가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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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실시되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4년 전 또는 8년 전 총선처럼 이번 선거 결과도 다음 총선 즈음에는 우리 뇌리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대신 이번 선거는 ‘비례 꼼수 총선’ 또는 ‘코로나 총선’으로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례 꼼수’의 구구한 내용은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한다고 나서더니 이내 본전 생각에 50%만 득표율과 연계시키는 준연동제로 돌아섰다. 그것도 모자라 연동 비례대표 의석을 30석으로 제한했다. 뒤이어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초유의 비례·위성 정당을 만든 뒤부터는 아예 고삐가 풀렸다. 꼼수는 또 다른 꼼수를 낳았고, 편법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이 과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누명을 쓴 것이다. 비례성을 확충한다는 당초 취지는 사라지고 선거판을 어지럽힌 천하의 몹쓸 제도로 눈총받고 있다. 비례대표제 논란을 부른 것은 정치인들인데 죄는 제도에 뒤집어씌웠다. 특히 미래통합당은 이 제도가 다소 복잡하고 생소한 것을 빌미 삼아 잘못된 정보를 던지며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엊그제에도 “선거가 끝나면 이번 혼란을 일으킨 비례대표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비례제를 유린한 것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또다시 비례제를 희생양 삼으려는 것이다. 그나마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제마저 없었던 일로 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선거법 개정은 ‘공중부양’ ‘축지법’을 쓴다는 허경영씨 당에 국고보조금 8억4000만원을 한입에 털어넣어준 그런 허망한 규정을 고치는 것이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제는 통합당의 주장처럼 대통령제와는 맞지 않느니 또는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제도니 하는 요설로 치부될 게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1개국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 없이 전체를 비례대표로만 뽑는 나라가 25개국, 우리처럼 지역구와 비례제를 절충하는 나라가 6개국이다. 각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것, 즉 비례성을 강화하는 일은 세계적인 흐름이자 대세이다. 이는 또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도입을 제안·권고한 제도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4년 전 총선에서 득표율 25.5%를 기록한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41%를, 33.5%를 얻은 자유한국당이 40.7%를 가져간 것과 같은 불합리한 일은 시정되어야 한다. 표를 얻은 만큼만 목소리를 내고 힘을 갖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26.7%와 7.2%를 득표하고도 의석수는 12.7%, 2.0%밖에 얻지 못한 모순도 해결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소선거제 이점을 이용해 계속 힘을 가지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사회의 다양한 주장을 국가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 작은 소리도 외면하지 말자는 취지의 제도가 뒤로 밀려서는 안된다. 그것에 반대하는 주장이야말로 반문명적이다. 국민총화·일사불란의 시대 군소정당을 그저 혼란의 대명사로 간주하던 발상과 다름없다. 맘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차선 또는 차악을 내 손으로 직접 뽑아 여의도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재고할 때가 되었다. 한국처럼 좁은 지역에서 반드시 지역구 대표를 뽑는 것이 민주주의 구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거대 양당 지지자들의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일부 빠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정당 투표에 고민하는 유권자가 많다는 뜻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두 장 있다. 한 장으로는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으면 된다. 그러나 나머지 한 장 비례표는 반드시 비례대표제의 정신에 부합하게 행사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투표할 필요가 있다.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대표제 취지를 훼손한 당에 비례표를 던지는 행위는 이율배반이다. 이런 행태에 눈을 감는다면 꼼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향후 선거법 개정 논의를 위해서라도 비례제 훼손 행위를 심판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처음 원내에 진출했을 때 국회가 달라진 풍경을 기억한다. 메기 한 마리가 미꾸라지들을 긴장시켜 생기를 유지하게 하듯 참신한 소수의 목소리가 여의도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혹여 거대 정당들이 외면하는 기후변화나 차별금지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책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오는 15일, 그 일념과 기대를 갖고 나는 투표장에 들어설 것이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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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침상에 쑥국이 올라왔다. 향긋한 쑥 내음이 입맛을 돋운다. 쑥국은 예전부터 가족, 친지와 함께하는 봄나들이 음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항복은 형제들과 어울리며 즐거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 밑에서 묵은 쑥 뿌리 싹트려 할 때면/ 향긋한 쑥국 작은 모임에 봄기운 가득했지”라고 노래했다. 조경은 “부엌 사람 쑥을 캐어 쑥국 끓이니/ 수저 가는 반찬마다 향기롭구나”라며 그 옛날 태평성대의 백성처럼 흥에 겨워 배를 두드린다고 하였다. 화창한 봄날의 행복한 정경이다.

그런데 정희득은 쑥국 끓이는 것을 보며 탄식한다. “여러 어르신들 물가에 모이셨고/ 지는 해는 저녁밥 지어라 재촉했지/ 작년 이맘때 즐기던 일 기억에 또렷한데/ 하늘 끝 먼 땅에서 눈물 쏟으며 쑥을 캐네.” 그는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 땅까지 끌려갔다. 겨울에 시작된 억류 생활이 해를 넘겨 음력 3월1일이 되던 날, 하인이 쑥을 뜯어온 것을 보고 지은 시이다. 포로가 될 때 모친과 아내는 바다에 몸을 던졌고, 부친과 아이들은 조선에 남겨졌다. 낯선 땅에도 봄은 오고 쑥이 돋는다. 하지만 쑥국을 나눌 가족은 곁에 없다.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이 며칠 전 지났다. 중국 시인 두목(杜牧)이 “술집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목동은 저기 살구꽃 마을을 가리키네”라고 낭만적으로 읊은 날이 청명이다. 하지만 정희성 시인은 유신 치하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황하도 맑아진다는 청명날/ 강 머리에 나가 술을 마신다/ 봄도 오면 무엇하리 /온 나라 저무느니.” 더없이 맑은 하늘이 이어지는 봄날,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어버린 오늘을 암울하게 떠올리게 한다.

단군신화의 웅녀가 격리를 견디며 마늘과 함께 먹었다는 것이 쑥이다. 한방에서 쑥은 매우 다양하게 쓰이는데, 특히 봄철에 유행하는 역병에 복용하는 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청명의 절기 음식인 쑥국과 쑥떡은 제철에 맞는 약이기도 한 셈이다. 정희성 시인의 시 <청명>은 이렇게 끝난다. “저물어 깊어 가는 강물 위엔/ 아련하여라 술 취한 눈에도/ 물 머금어 일렁이는 불빛.” 가족과 함께하는 쑥국 한 그릇에 일렁이며 빛나는 한 가닥 희망을 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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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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