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 기고


영화 <벌새>의 한 장면.

“너네 싸우지 좀 마.”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가 오빠 대훈이 자신을 때렸다고 힘겹게 고백하자, 엄마가 던진 말이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대훈 역시 또다시 넘어간 상황에 안심하고 밥을 먹는다. 언니 수희만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 허망한 눈길로 은희를 바라본다.

내 주변의 여성들은 n번방 사건을 겪으며, 모두 몸의 통증을 호소한다. 한국에서 살며, 자신이 겪은 크고 작은 성폭력의 기억이 몸에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절망 속에서 말을 한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그러자 말들이 튀어나온다. “이 사건으로 남녀 대결이 되면 안된다. 대책을 논의해야지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남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이 말들을 들으며 <벌새>의 바로 저 식사 장면이 떠올랐다.

여성을 향한 남성 폭력이라는 명백한 사건을 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이 유령 같은 언어들은 어디서 왔을까. 그 말의 발화자들은 갑질을 하는 상사로 인해 괴로워하는 회사원에게 상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 노예제 폐지를 위해 투쟁하는 흑인들을 향해, 백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는가. 군대 내 폭력을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선임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니, 선임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는가.

여성들이 분노할 때 이 사회는 종종 ‘감정적이지 말라’는 말을 한다. 백인들 역시 흑인들에게 ‘성난 흑인 여자/남자’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하지만 여성들이 감정적인가. 우리는 ‘홧김에’ ‘안 만나줘서’라는 제목이 붙은 여성을 향한 남성 강력범죄 기사들을 너무나 자주 본다. 여성들은 지금 ‘홧김에’가 아니라, 자신의 생을 걸고 이야기한다. 여성들에게 이 사건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관계, 몸의 안전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을 두고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은 이제껏 여성들이 살아내야 했던 현실을 부정한다. 공중화장실 곳곳에 불법촬영 방지 캠페인이 이뤄진다. 소수가 범죄를 저질러서는 일어나지 않을 대대적 캠페인이다. 

한국의 거리에서는 너무나 쉽게 ‘아가씨 항시 대기’ 등의 간판들을 본다. 이 간판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여성이 상품이라는 거듭되는 메시지다. 이 사회가 남성들이 룸살롱에서 고액의 불법 성구매를 하는 것을 ‘비즈니스’라고 호명할 때, 여성들은 스타벅스의 커피만 마셔도 ‘된장녀’가 됐다. 소라넷·버닝썬·웹하드·다크웹의 가해자들이 기이하게 ‘관대한’ 처벌을 받을 동안, ‘된장녀’라 호명됐던 여성들은 이제 ‘맘충’으로 불리게 됐다. n번방의 가해자들은 갑자기 한국 땅에 불시착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남성 공동체가 즐기고, 방관하고, 외면한 ‘강간문화’와 ‘여성혐오’의 비극적인 결과다.

남자들은 또래 남자들의, 남자 선배들의,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남성성을 습득한다. 남자들은 주변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자신의 남성성 놀이를 배워간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지만,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이제 여성 청소년들에게 남자를 조심하라는 교육 대신, 남성 청소년들에게 여성을 착취 도구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라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는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이 불안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카메라가 무서워 공중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그 처참한 불안을.

n번방 사건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녀 갈등’이 아니다. 흑인들이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시작했을 때, 백인들은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로 고쳐 부르곤 했다.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휴머니즘으로 고쳐 부르려 한다. 권력자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거듭해서 잘못 호명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면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직면은 고통스럽고 그렇기에 큰 저항을 부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피해자 지원 그리고 남성 공동체의 자기 직면과 여성의 고통에 대한 경청이다. 이 ‘강간문화’는 끝나야 한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않은가.

<김보라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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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운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1일 타다 서비스가 종료된다. 이재웅씨는 자신이 명명한 타다금지법이 통과되기 직전, 페이스북에 ‘1만명의 드라이버는 갈 곳이 없다’라고 썼다. 법이 통과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일자리를 잃은 드라이버들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쳤다.  

보통 1만2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장님이 폐업을 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물론 대표가 사죄한다. 이재웅씨는 혁신적으로 국회와 국가 탓을 했다. 더 황당한 것은 통보 방식이다. 과거에는 문자해고가 문제가 됐는데, 오늘날 혁신가들은 페이스북으로 폐업과 해고 통보를 한다. 대표의 페친이 아니라면, 회사가 망했는지도 알기 힘들다.  

이쯤 되면 경영상 위기를 핑계로 정리해고를 하는 대기업이 착하게 보인다. 전통적 기업들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퇴직금이라도 쥐여주고 내보낸다. 게다가 노동법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려면 50일 전에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하고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다금지법이라는 말도 일방적 주장이다. 여객운송사업법은 빌린 차로 돈 벌지 말라고 못 박아 놓았다. 다만, 가족단위로 놀러 가면 택시를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11~15인승 승합차는 예외로 했다. 타다는 이 빈틈을 근거로 11인승 카니발과 운전기사를 빌려주면서 1~2명의 손님을 태우는 비효율적인 콜택시를 탄생시켰다. 택시는 면허수량을 제한받지만 렌터카는 규제가 없다. 렌터카로 콜택시를 하는 걸 허용하면 도로는 카니발로 점령될 것이다. 꼼수로 시작한 사업이, 언제든지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을 대표가 몰랐을 리 없다.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았다면 투자자들과 1만2000 드라이버들을 기망한 것이다. 국가는 기여금을 내고 사업을 지속해보자고 했지만, 이재웅씨는 여기서 혁신을 멈춘다라는 엉뚱한 말을 하고는 회사를 나와 버렸다. 

사업가가 위험(risk)을 무릅쓰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패에 대한 책임이다. 타다가 무책임하게 도망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타다 드라이버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사와 타다 사이에 중간관리업체를 둬 책임을 피했다. 용역계약과 간접고용이 합쳐진 최악의 형태다. 노동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 사장은 일하는 사람을 맘대로 쓰고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승객이 사랑한 타다의 혁신은 프리랜서로 불리는 드라이버들이 근로자처럼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사들이 출퇴근을 정확하게 하고,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승차 거부를 하지 않은 것은 타다의 업무지시를 준수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고정급 1만원의 비밀이 있다. 타다가 난폭운전을 하지 않고, 택시는 가지 않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간 이유도 많은 승객을 정신없이 태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 타다 기사들이 받은 시간당 1만원은 최저임금 위반이다. 이들이 근로자였다면, 주휴수당, 연장, 야간, 휴일, 연차 수당과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다. 타다 기사들도 알고 있었다. 지난 3월25일 박재욱 대표를 만나기 위해 VCNC를 찾은 타다비상대책위 소속 드라이버는 ‘최저임금 위반이라는 걸 알았지만, 타다와 함께하고 싶어서 참고 일했다’고 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대표들이 페이스북 대신 자신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이 주식시장 상장, 매각, 합병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을 엑시트라 부른다.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되면서 5조원짜리 엑시트를 보여줬다면, 타다는 성공적인 폐업의 엑시트를 보여준다. 만약 타다가 1만2000명의 드라이버에 대한 책임은커녕 진지한 대화 한 번 없이 사업을 종료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방치한다면, ‘잘되면 배민이고 못 돼도 타다’라는 신념을 가진 창업가들이 양산될 것이다. 이것이 스타트업이 말하는 혁신의 슬로건이 아니길 바란다. 사람은 필요할 때 빌려 쓰고, 필요 없으면 버려도 되는 렌터카가 아니다.

<박정훈 |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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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4월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고 더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잘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우리는 투표 전에 공개되어 있거나 접근할 수 있는 신상정보, 이력, 관련 뉴스 등 후보자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 누가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예전에는 선거관리위원회 공인 후보자에 대한 자료들과 주요 언론을 통해서만 이러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중화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 획득이 가능하다. 다양한 포털사이트, 유튜브, 카카오톡, 라인, 페이스북, 링크드인, 트위터, 위챗, 와츠앱 등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인터넷과 SNS 서비스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가 흐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정보 중에 상당한 양의 가짜뉴스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는 공간의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 이러한 가짜뉴스가 급속도로 다시 퍼져 나간다.  

SNS 서비스 제공자는 인공지능과 여러 알고리즘을 사용해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골라서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제품들을 팔 때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을 만한 것을 노출시키는 전략으로 활용된다. 뉴스나 정보의 경우 비슷한 철학과 생각을 가진 SNS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뉴스와 정보에 더욱 자주 노출되게 된다. 즉 알고리즘이 추천한 뉴스를 팩트체크 없이 받아들이고 끼리끼리 공감한다. 유튜브의 경우 평소 자신이 관심 있게 보던 영상과 관련된 영상들이 초기화면에 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신문이나 TV를 통하지 않고 SNS만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상황이어서 가짜뉴스와 가짜정보들에만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9월 미국 휴스턴대학교 생물학과 알렉산더 스튜어트 교수와 MIT, 영국 옥스퍼드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은 ‘정보 게리맨더링과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게리맨더링은 어떤 특정 후보자나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가 자기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구획했는데 그 나눈 모양이 타오르는 불속에서 산다는 상상의 괴물인 셀러맨더와 비슷하다고 하여 주지사의 성인 게리와 괴물의 맨더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SNS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의 특징은 철학과 생각, 관심 분야, 좋아하는 것 등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2520명을 대상으로 게임이론을 적용해 그들의 행동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네이처에 나온 논문 내용을 연예인 인기투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연예인 A와 B 중 더 인기 있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투표를 하고 맞힌 사람에게는 경품을 준다고 하자. 다만 투표 결과 비기게 되면 아무도 경품을 못 받는 상황이다. 연예인 A를 좋아하는 10명과 연예인 B를 좋아하는 10명이 있고, 이들은 SNS에서 각각 4명씩과 연결되어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약 연예인 A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연결되어 있다면 모두가 A에 대한 이야기와 뉴스를 주로 접하며 “나는 이번에 A에게 투표할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기투표 시 자기 주변은 모두가 A에게 투표한다고 하니 “분명히 A가 이길 것이야”라고 믿고 투표하게 될 것이다. 이는 B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SNS 연결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A를 좋아하는 사람과 연결된 사람들 중 3명이 B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하면 이 사람들은 “대세가 B인가 보다”라고 잘못 판단하게 된다. 이 경우 A에게 투표하면 자신의 선택이 무위로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A를 포기하고 B를 선택하게 된다. 즉 SNS상에서의 연결 방식 조작으로 정보의 흐름과 그로 인한 판단 및 결정에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이는 누군가가 나쁜 마음으로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SNS 제공자가 운영하는 시스템상에서 점점 더 고도의 수준으로 활용되는 기계학습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고 하겠다. 현재와 같이 인터넷 정보와 SNS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위적 댓글조작 사건도 결국 여론을 왜곡하기 위한 또 다른 정보 게리맨더링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짜뉴스, 익명성을 악용해서 막말을 쏟아내는 악플 등과 더불어 인터넷과 SNS 이용에서 근절되어야 할 사회악이다. 예전 신문, TV, 라디오 뉴스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비해 규제를 덜 받거나 거의 안 받는 인터넷과 SNS 정보와 행위들에 대해 적정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포털은 지난달 19일부터 모든 뉴스 댓글 작성자의 댓글이력이 모두 공개되도록 했다. 앞으로 다른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서도 유사한 조치들이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시스템적으로 정보 게리맨더링이 근절되기 전까지 우리는 정보 게리맨더링에 당하지 말고 다양한 정보들을 잘 분석해 대응하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4월15일에는 자신만의 정보 분석 기법들을 잘 활용해 우리나라를 위해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잘 뽑아야겠다.

<이상엽 |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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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문중원 기수의 발인식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소속 조교사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ㄱ씨에게 외상 등 타살 흔적은 없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부검 결과 ㄱ씨에 대해 타살점이 없다며 변사처리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 2일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개인의 극단적 선택에 의한 죽음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단순 자살로 치부하기에는 멈칫거려진다. ㄱ씨의 죽음을 놓고 노조와 시민단체가 나선 이유다.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난해까지 기수 4명, 마필관리사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교사의 사망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29일, 7번째로 숨진 기수 문중원씨의 유서를 통해 경마장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문씨는 유서에서 7년 전에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마방배정 심사에서 번번이 떨어졌다며 마사회의 갑질과 부조리를 고발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책임을 개인마주제로 돌렸다. 개인마주제란 마주와 조교사가 위탁계약을 맺은 뒤, 조교사는 말 관리사를 고용하며 기수와 기승(騎乘)계약을 맺어 경마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피라미드형 위계 관계에 있는 조교사와 기수·마필관리사가 경마의 실질 운영자이지만, 조교사 면허 교부와 마방배정 심사권은 마사회가 갖고 있다. 

조교사 ㄱ씨는 숨지기 사흘 전인 지난달 말 문중원씨 사망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문씨보다 조교사 면허 취득이 늦었지만, 마방배정 심사는 먼저 통과했다. ㄱ씨가 문씨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경찰 조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강압수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현재로서 ㄱ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밝히긴 쉽지 않다. 하지만 경마공원 한 곳에서 8명이나 목숨을 끊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달 9일, 문중원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100일이나 장례가 늦춰진 것은 마사회가 문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장례 이틀 뒤 마사회와 공공운수노조는 ‘사망사고 재발방지 합의서’에 공증을 했다. 합의서에는 책임자 처벌, 조교사 심사비리 근절, 과도한 경쟁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합의가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또 한 명이 숨지고, 다시 대책위가 꾸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 것인가? 마사회가 답해야 한다. 조교사 ㄱ씨의 죽음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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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1일 오후 서울 인의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이 종로구 후보자들의 선거벽보를 정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4·15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여야 후보들은 투표 전날인 14일 자정까지 13일간 유세, 토론회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한 표를 호소할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차갑다. 거대 양당은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한 선거법 개정 취지를 무시한 채 앞다퉈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위성정당에 의원을 꿔주는가 하면 엄연히 법적으로 독립된 모정당의 대표가 위성정당의 공천 결과를 한방에 뒤집는 불법과 편법이 이어졌다. 

온갖 꼼수가 난무하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정책과 비전 경쟁은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대체, 기본소득 60만원 지급 등 급조 공약을 내놨다가 급하게 거둬들였다. 급기야 모정당인 민주당의 정책을 복사해서 10대 정책이라고 내놨다. 미래통합당은 공식 유튜브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임기가 끝나면 교도소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이면 된다”고 막말을 했다가 이를 삭제하고 공동선대위원장이 사과했다. 어느 총선에서도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무책임하게 정치혐오를 키우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낯으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는 것인가. 코로나19 감염 공포가 겹치면서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당과 정치인들이 실망스럽다고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치혐오로는 나쁜 정치를 바로잡을 수 없다. 청년실업에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투표는 외면한 채 기득권 정치를 비난해봐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최선의 후보가 없으면 차선을 찾고, 차선도 없다면 차악이라도 고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투표권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최고의 무기다. TV토론과 공보물 등을 참고해 각당의 정책과 후보자들의 면면을 꼼꼼히 따져보고 대표를 선출하자. 정당의 이념과 정책은 의원의 의정 활동으로 이어진다. 자질 없는 후보자가 당선되면 저질국회는 반복된다. 반노동·반평화 정치를 끝내려면 노동과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유권자의 참여만이 잘못된 정치와 정치혐오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나쁜 정치인은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고 했다. 투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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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인천국제공항과 영종도를 특별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공항 및 항만 노동자들에 대한 한시적 해고 금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지난달 계약직 노동자 50여명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감염병 검체를 채취하는 임상병리사 10여명, 간호조무사 20여명, 조리원 21명에게 4월에 계약이 끝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병원 측은 “노동법과 관행에 따라 한달 전 계약 만료를 알린 것”이라며 휴업 중인 조리원들에겐 월급 70%를 지급해왔다고 밝혔다. 자체 수입은 없고, 정부가 이달 중 주겠다고 한 ‘손실 보상’도 구체적인 공문은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주름 깊어진 경영의 직격탄을 밑바닥 계약직들이 먼저 맞은 셈이다. 방호복 입고 땀 흘리던 그들이 받았을 허탈감, 비슷한 처지의 병원 비정규직들이 삭일 아픔이 작지 않을 터다. 그러지 않아도 의료진은 지금 지쳐가고 있다. 병원 측이 1일 노조와의 협상 끝에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에 약속한 손실 보상을 서두르고, 병원은 고용 유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1일 ‘코로나19 피해 상담 사례’를 공개하는 자리에서도 다급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항공 수하물을 분류하는 하청회사 노동자는 지난 보름 새 ‘급여 70%를 주는 6개월 유급휴직’→희망퇴직 신청→‘4월만 유급휴직, 5월부터 무기한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통지가 이어졌다고 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코로나19보다 생계 위협이 더 무섭다. 코로나 걸려서 자가격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가격리돼 생계지원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서로 눈물나는 얘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하물 노동자는 정부 근로감독을 바랐고, 특수고용노동자는 법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실물경제 한파에 후행하는 게 고용위기다. 코로나19가 번지는 미국에선 3월 둘째주 28만명이던 실업수당 신청자가 셋째주 328만명으로 12배 늘었다. 미국보다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도 2월 실직자는 29%나 급증했다. 4월 중에 발표될 3월 숫자는 전문가들도 얼마나 더 치솟을지 가늠키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도 저생산-고실업-저소비의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휴업수당 상향, 4대 보험료 감면 식의 응급처방을 넘어 엄습해오는 해고 한파를 막는 데 선제적 대책과 재정을 집중할 때가 됐다. 

미 동부 애팔래치아산맥 정상을 따라 755㎞의 ‘블루리지’ 산악도로가 놓여 있다. 환상적인 드라이브·관광 코스가 된 이 길은 1930년대 실직 노동자들이 닦았다. 대공황을 넘긴 뉴딜의 중심에 사람과 일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켜야 경기 회복도 빨라진다. 정부도 기업도 이 경험칙과 해법을 새기며 코로나19 역경을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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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방울토마토를 심어야겠다 싶어 장에 나갔는데, 모종이 야물어 보이지 않아 한 주 거르기로 했다. 더운 날 방울방울 영근 토마토를 보면 잠시 행복해지겠다. 

아이가 어릴 때 교회 마당에서 방울방울 비눗방울을 날리곤 했다. 어른들은 딱딱한 장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릴 때, 하느님은 그 시간 누구랑 함께 웃고 놀았을까. 주디 갈런드가 부른 노래 ‘오버 더 레인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귀여운 강아지 토토에게 불러주던 노래. “무지개 너머 어딘가 높다란 곳엔 어릴 적 자장가에서 들었던 세상이 있어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이 맑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그곳에 있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요. 구름 따라 흘러갔다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요. 걱정 근심이 굴뚝 꼭대기에 걸려 있다가 레몬 즙처럼 방울방울 녹아버릴 그곳요. 그곳에서 날 찾게 될 거예요.”

온가족이 집에 머무는 요즘, 아빠가 붓글씨로 가훈을 적었다. “하면 된다!” 아이가 양면테이프로 벽에 붙이자 엄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빠 보고 다시 쓰시라 해라.” 아빠와 아이가 동시에 엄마를 바라봤다. “되면 한다!” 엄마는 이 한마디와 함께 쓸던 빗자루를 집어던짐. 헉~ 살얼음이 잠시 쫘악. 아빠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붓을 접었다던가. 

‘하면 된다!’의 세계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하면 된다!’의 세계는 왠지 불편하고 숨이 막힌다. 내가 이룬 마법은 야생초 꽃밭을 가꾸거나 산밭에 매실나무를 데려다가 꽃을 본 일. 나무아미 시불시불~ 염불 같은 시를 쓴 일. 거창하고 거대한 꿈과 성공은 양보하며 살아왔다. 오지에서 세상을 살리는 마법들을 펼쳐온 사람들. 변두리 생활이 피차 불편하고 고달파도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오지의 마법사들. 나누고 돌보며 살아가는 마법사들의 마을. 눈물을 흘린 뒤 무지개가 뜬 당신의 두 눈. 오버 더 레인보를 부르며 강물 따라 걷는 당신의 두 발.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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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설악산 흔들바위가 등장했다. 만우절 단골 메뉴다.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이 1일 오후 한동안 포털사이트의 급상승 검색어 1위였다. 외국인 관광객 11명이 호기심에 흔들바위를 밀어 떨어뜨려 입건됐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이내 공식 페이스북에 “안심하세요. 흔들바위는 건재합니다”라는 공지를 올리며 유머로 받아넘겼다.

4월1일, 만우절은 가벼운 거짓말로 서로 속이며 즐거워하는 날로 통한다. 중세 유럽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프랑스 샤를 9세가 1564년에 1월1일을 새해 첫날로 선포했는데, 그 이후에도 바뀐 줄 모르고 종전 첫날인 4월1일에 새해를 기념하는 사람들을 놀린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다. 프랑스어로 만우절 거짓말을 뜻하는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은 직역하면 ‘4월의 물고기’다. “잘 낚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2020년 만우절은 여느 해 같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불안하고 슬프고 우울해서다. 시답잖은 농담·거짓말·장난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구글은 2000년부터 매년 선보인 ‘만우절 장난’을 올해에는 하지 않았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농담은 다음 4월로 미루자”고 했다. 그간 구글은 검색만으로 짝을 찾아준다는 ‘구글 로맨스’, 동물소리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서비스, 보물지도 이벤트 등을 펼쳤다. 최근 확진자가 부쩍 늘어난 독일에서는 “코로나는 장난이 아니다”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기발한 이벤트로 웃음을 줬던 영화관들이 올해 만우절은 건너뛰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청소년이라고 거짓말로 우기면 할인해주기, 팝콘 통과 음료수 컵 바꿔 담아주기 등이 영화관의 인기 이벤트였다. 또 코로나19와 n번방 관련 가짜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만우절 장난을 멈추자”는 목소리도 온·오프라인에서 높게 일었다.

이런 와중에 한 인기가수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 중”이라고 SNS에 공개했다가 50분 만에 “만우절 농담”이라고 밝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도를 넘은 거짓말이다. 만우절이라 해도 입에 담아선 안될 망발이다. “경각심을 주려 했다”는 핑계도 용납될 수 없다. 철없는 농담은 안 하는 게 낫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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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 문재인 대통령이 3월26일 청와대에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하며 코로나19 공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난달 24일 밤 두 정상의 통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의료장비 지원을 요청했다는 뉴스를 전달받은 김 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졌다는 소식에 자신이 문 대통령에게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보낸 게 불과 몇 주 전 일인데, “초대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남조선에 도움을 청했다고? 대남 무시 전략을 구사하며 북·미 정상 간 친분 관계 유지에만 신경써온 김 위원장도 내심 놀라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한국에 코로나19 물품 지원을 요청해온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까지 한국에 방역물품 공급을 정부 차원에서 요청한 나라는 81곳, 민간 부문까지 더하면 117개국에 달한다. 루마니아는 한국산 방호복과 진단키트를 긴급 수송하기 위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수송기까지 동원했고, 덴마크 보건당국은 한국 업체의 진단키트 구매 제안을 거절했다가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 역시 일찌감치 한국으로부터 마스크 등 의료용품을 지원받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앓는 상황에서 북한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밝히지 않고 있지만 수천명의 ‘의학적 감시 대상자’가 발생하고, 유치원과 초·중·고교 방학을 거듭 연장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 이용을 제한하는 등 초특급 방역에 나선 것을 보면 여타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근 북한은 중국·러시아·이란 등과 함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서방의 제재가 해제돼야 한다고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코로나19 대응을 명분 삼아 제재 완화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조성해보려는 목적일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민생과 경제에 역점을 두고 선대와는 차별화된 리더십을 보이고자 한다면 지름길을 두고 이렇게 돌아갈 일이 아니다.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대응은 엄밀히 별개 사안이며, 둘을 엮어본다한들 해결될 일도 아니다. 지금 김 위원장이 손을 내밀어야 할 곳은 자명하다. 이는 자존심 문제가 아니며, 국력이나 체제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생존과 안전을 위함이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 위원장에게 수모를 안긴 채 매몰차게 회담장을 떠났던, 늘 아쉬울 게 없어보이던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 내 코로나19 확산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동북아의 작은 나라에 SOS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과 보건 분야 공동협력을 바란다”며 감염병 확산에 대한 남북 공동대응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김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지금 김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여론과 미국을 문 대통령이 어떻게 설득하고 돌파해 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에 진정성과 역량이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로 삼아보라. 다시 실망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 비난 담화를 쏟아내도 늦지 않다.

<이주영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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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고통의 차별이 있다. 차별의 고통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니다. 차별이 고통을 낳는데, 그 고통조차도 차별적으로 다뤄진다는 뜻이다. 고통의 차별이 차별의 고통을 완성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가 모든 고통에 차별 없이 감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개별 고통의 양을 최대한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의 높낮이를 정확히 잡아내는 절대음감처럼,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지하는 절대통감이라는 것을 갖추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상상을 조롱한다. 실제의 고통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평가되는 고통들이 있다. 몰랐던 것은 아닌데, 국민청원 게시글 하나가 새삼 이런 생각에 빠지게 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조주빈에게 살인을 청부한 공익근무요원이 죽이려고 한 대상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딸이다. 피해자인 여성 교사가 직접 글을 올렸다. 제자에게 9년 동안 스토킹을 당했다. 교무실에 칼을 들고 나타났고, 아파트에 살해 협박 낙서를 남겼으며, 메일을 해킹하여 타인에게 피해자를 사칭했다. 피해자는 여러 해를 고통받다가 2018년 가해자를 고소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복역 기간은 고작 1년2개월이었다. 피해자는 그사이 주민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직장과 거주지를 옮겼으나, 공익근무요원이 된 가해자는 피해자의 정보를 열람하고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조주빈과 모의했다. 그래서 피해자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글을 올렸다고 했다. 

이 고통은 정당하게 다루어졌는가. 이런 경우 피해자는 최소 세 단계의 고통 계량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첫째, 경찰. 경찰은 강력범죄를 처리하느라 언제나 바쁘다. 스토킹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은 범죄라고 생각하면 돌려보낼 수도 있다. 둘째, 검찰. 다행히 가해자를 기소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스토킹을 가볍게 여기는 현행법이 기다리고 있다. 법대로 구형된다고 해도 가해자에게는 복수심을 단련시키기에 좋은 기간 정도일 것이다. 셋째, 재판. 양형기준이라는 것이 있어 선고할 형량이 다시 조정되는데 여기서 가해자는 감경이라는 행운을 또 한 번 누릴 수 있다. 세 단계를 거치면서 피해자의 고통은 헐값이 된다. 그리고 이제 피해자는 가해자의 출소를 기다리며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세 단계의 과정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것은 고통의 사회적 위계다. 고통의 무게를 측정하는 권한은 대체로 다수 가해자의 성별과 같은 성별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왔다. 입법과 양형의 과정에서 그들은, 경험의 한계 때문이든 성의의 부족 때문이든, 피해자의 고통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 9년 동안의 지옥과 1년2개월의 징역이 같은 값이라고 주장하는 법의 수학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처벌의 정도는 고통의 양에 비례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법학 내재적 기준에 따르는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는 우기고 싶다. 성착취나 스토킹의 대상이 되는 것과 살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토록 다른 일인가? 피해자가 자살한다면 그것은 가해자의 살인 아닌가? 법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우리는 치가 떨린다. 

양심적 방관자들의 몫도 있다. 그들은 악(惡)과 추(醜)의 범주를 혼동한다. 악은 나쁜 것이니 싸워야 하고 추는 더러운 것이니 피해야 한다. 예컨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재난마저 이용하는 특정 언론사들이 추로 파악될 경우 혐오의 대상이 된다.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것이므로.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가? 마찬가지로 어떤 남성들이 성범죄 사건 앞에서 ‘나는 다르다’고 말할 때, 이는 그동안 자신이 악을 추로 분별해왔고, 더러운 놈들과의 ‘미학적 거리 두기’를 잘해왔다고 주장하는 일이 될 뿐이다. 선악 분별이 행해져야 할 곳에서 미추 분별이 행해지면, 피해자의 존재와 그들의 고통이 간과된다. 우리가 깨끗한 방관자가 되는 데 만족하는 동안 악은 점점 더 오만한 악이 될 것이다. 

아마도 2020년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른 해로 기억될 것이다. 끔찍한 전쟁 서사에서 가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때는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생명의 값이 똑같이 다루어질 때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고통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 일을 하기 위해 의료진과 공무원들이 달려갈 때, 그때만큼은 고통이 평등하게 느껴져 눈물이 난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전쟁은 고통의 오랜 차별 때문에 발발했다. 하나의 전쟁은 모두의 싸움이었지만 다른 전쟁은 절반만의 싸움이었다고 기록되어선 안 되리라. 두 전쟁은 결국 같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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