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고산 침엽수의 멸종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녹색연합은 지리산, 덕유산, 계방산 등 백두대간 핵심 지역 해발 1600m 전후 아고산대 가문비나무의 집단 고사를 확인했다. 수분 부족으로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선 채로 앙상히 말라가면서 봄철 강풍에 뿌리째 뽑힌 모습이었다. 한라산 성판악 진달래대피소와 영실 윗세오름의 구상나무 군락도 비극적 상황이다. 한반도 백두대간 생태계의 상징적 존재인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가 차례차례 멸종의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한반도 숲 생태계는 이제,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고산 침엽수의 멸종은 우리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코로나19는 현재 209개국에서 감염자가 확인되었고, 전 지구적 재난으로 확산 중이다. 코로나19, 사스, 메르스, 에볼라, 니파 바이러스의 숙주는 야생 박쥐였고, 박쥐와 접촉한 천산갑, 낙타, 원숭이, 사향고양이, 돼지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된 것이다. 이러한 인수공통감염병이 창궐한 이유는 산림 파괴, 밀림 벌채 등 난개발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사라지고, 무분별한 식용과 약재 거래, 공장식 밀집 사육 등 야생동물과 인간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졌기 때문이다. 산불, 홍수, 가뭄, 강설 등 기후위기의 징후들은 생태계의 단절과 훼손, 바이러스의 창궐 빈도를 높이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을 경험하고서야 우리는, 인간 건강은 건강한 ‘생물다양성’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세기 감염병의 7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야생 상태의 ‘바이러스 X’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 질병 X’로 전환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다. 우리 인간은 생물다양성과 인간의 상호 건강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고도 성장을 외치며 경계를 넘어섰다. 야생은 개발과 통제가 가능하다는 생각과 과학기술 만능주의는 코로나19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1.5도의 경고를 무시한 ‘기후위기 팬데믹 쓰나미’는 현실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정신 차리고, ‘기후정의’에 응답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생물다양성의 위기이며, 이는 곧 인간 생존의 위기를 부른다. 위기는 깊고 넓게 곪아간다. 근대의 정치, 경제, 사회는 생물다양성, 사회다양성, 정치다양성을 보전, 확대, 보장하지 않고 ‘유일하게’ 내가 정답이라는, 나만 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 사고에 사로잡혔다. 극단적 환원주의는 파시즘처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파괴한다. 한국의 거대정당 독점정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생물다양성과 기후위기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인과 정당은 인수공통감염병의 동조자일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재난에도 ‘물리적 거리 두기’가 무색하게 선거운동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기후악당, 기후파쇼’가 아닌 기후정의에 투표한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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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례가 한 달 만에 돌아오니, 재난기본소득을 이야기한 지도 딱 한 달이다. 그때만 해도 기획재정부는 일언지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주일 뒤에는 ‘도입이 어렵다’고 했다. 다시 일주일 뒤에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 정부는 소득 하위 70%에 대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추경 때도 마찬가지였다. 2월 중순에 김부겸 의원 등이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추경을 주장했을 때 기재부는 코웃음을 쳤다. 지난해 12월에 예산안을 통과시켜 놓고 2월에 무슨 추경이냐는 원칙론만 내세웠다. 하지만 불과 2주 뒤 추경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지난 한 달간 재난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칼 슈미트를 떠올렸다. 정치의 본질은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그의 정의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그의 또 다른 주장에는 늘 공감해왔다. 종종 독재를 옹호하는 근거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 주장은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같은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자들’이라면 누구나 전제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건국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매디슨의 말을 일부 인용해보자면, 인간이 천사가 아닌 이상 정치에서 예외상태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핵심은 그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여기서 곧바로 무력을 가진 독재자를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을 생각해보면, 그 예외상태의 주권자는 대체로 다수의 사람이었다. 나는 이것이 아렌트가 말한, 거리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라는 예외상태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누구인가? 지난 두 달 동안 다수의 국민은 누구와 그 자리를 다투었는가? 대통령인가, 국회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아무도 아니었다. 베버가 옳았다. 예외상태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사실상 압도하고 있는 것은 관료지배였다. 

몇 가지 솔직하게 말해보자. 소득 하위 70%건, 중위소득 150%건 그렇게 딱 정해서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다. 우리는 독일처럼 모든 국민의 소득을 실시간으로 알지 못한다. 소득 하위 70%와, 중위소득 150%와, 그에 대한 건강보험 데이터는 서로 아무것도 일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국가로부터 직접적인 복지혜택을 받고 있지 않은 차상위 이상 계층에 대해, 통계는 갖고 있지만 그 대상을 알지는 못한다. 시간적 간극은 더욱 커서 건보 지역가입자의 데이터는 심지어 재작년 기준이다.

주민등록과 건강보험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사는 배우자와 자녀는 한 가구로 치고, 부모님은 다른 가구로 보기로 했다. 급하니 정한, 그저 편의적인 기준이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이 아닌 ‘임의적 가구’를 복지의 단위로 본다는 것 자체가 21세기에 황당무계한 일이다.

아예 안 주겠다면 모를까 주기로 한 마당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현재 진행형인데 굳이 과거의 기준으로 국민을 나누겠다는 발상은, 다 주지는 않겠다는 기재부의 알량한 자존심 세우기가 아니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보편적 지급을 이야기한 모든 사람들은 선별적 환수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기재부는 왜 꼭 그걸 지금 해야 한다고 우기는지 모르겠다. 같은 수준으로 선별하더라도, 과거가 아니라 올해 말로 기준을 삼아야 코로나19로 인해 누가 피해를 보고 안 봤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것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내가 지은 밥이 아니니 재나 뿌리고 가겠다는 심보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세상에 불 끄는 데 물값 계산하고 있는 사람이 어딨나? 왜 지금 대상을 선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기재부가 하나만 대면 좋겠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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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선거 서울 종로에서 대결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왼쪽)가 주말인 4일 명륜동의 한 골목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재동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최악의 선거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갈릴 뿐, 이번 총선이 1987년 이후 최악의 선거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한답시고 도입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내세운 거대양당들의 꼼수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유권자들은 지역구만이 아니라 이제 정당투표에서마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가는 것이 정치다. ‘87년 체제’는 청산은커녕 외려 더 강화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한동안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지역대결과 이념대립 역시 다시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들은 편으로 갈려 패싸움을 벌이다가 ‘성공의 비결은 역시 반칙과 꼼수에 있다’는 삶의 지혜(?)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 이번 선거를 ‘한·일전’으로 규정하자, 다른 쪽에서는 ‘한·중전’으로 규정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엉뚱하게 중·일전쟁이 재연된 셈이다. 도대체 이 시점에 80년 전의 전쟁을 재연하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싸움의 당사자들은 자못 진지하다. 난무하는 선동 속에서 그들은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며 진심으로 ‘증오’한다.

이낙연 후보가 뜬금없이 “황교안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증오의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모양이다. 이에 황교안 후보는 눈치 없이 “이들을 미워한다.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대꾸했다. 두 대권주자 사이에 벌어진 이 유치한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움’이라는 감정이 정치적 의제로 떠올랐다는 점이리라.


양자택일 강요받는 최악 선거 

상대를 적으로, 증오하는 정치 

유세 중에 돌 던지고 폭행하고 

선거 곳곳 ‘증오 범죄’ 행위들 

이긴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지만, 그 사랑보다 강한 것은 증오의 감정이다. ‘증오’의 정치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중은 머리로 이해하기 힘든 고통의 ‘원인’ 대신에 당장 눈에 띄는 그 고통의 ‘범인’을 찾아 가슴으로 증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던 이 증오가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오프라인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모양이다. 지난 2일 화성병 지역구에서 통합당 후보의 유세방해 사건이 벌어졌다. 40대의 남성이 후보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신체적 위협을 가하며, 연설원의 마이크를 빼앗고, 차량발전기 문을 열어 스위치를 내리려 하는 등 유세를 방해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에는 남양주시에 출마한 통합당 후보의 머리 위로 벽돌 두 개가 날아오는 아찔한 사건도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누군가 건물 위에서 의도적으로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구에서는 누군가 민주당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계란을 투척했다.

만만한 소수정당의 후보들도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정의당 후보와 선거운동원이 서울 노원병에서 유세를 하던 중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폭행을 당한 바 있다. 같은 달 5일에는 성북구에 출마한 민중당 후보가 1인 선거운동을 하던 중 행인에게 얼굴을 폭행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일에는 마포구 홍대입구 역에서 유세 중이던 여성의당 후보에게 돌이 날아와 자원봉사자가 상해를 입었다. 돌이 날아온 곳에는 2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있었다니, 여성혐오 범죄로 보인다. 최근 젊은 남성들의 상당수가 페미니즘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좌절과 분노의 표적이 된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원래 물리적 갈등과 신체적 충돌을, 의회 안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그런데 정당정치가 외려 지지자들을 증오와 폭력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정치폭력은 주로 권력의 사주를 받은 이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반면, 우리가 보는 것은 대중의 자발적 폭력이다.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민들이 혐오의 정치에 빠져드는 것은, 고통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심리적으로 ‘해소’라도 하기 위해서다. 시민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라고 할 때, 혐오의 정치가 난무한다는 것은 곧 우리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 실패에서 비롯된 대중의 좌절과 분노를, 정당들은 다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어느 쪽 증오에 표를 줘야 할까? 도대체 ‘이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는 선거. 이번 총선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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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 역병이 다국적 도시 ‘지구촌’을 뒤덮었다. 차이나타운의 어느 시장에서 탄생한 코로나19라는 이 병은 코리아타운을 훑고 유럽타운을 폐허로 만들었다. 도시의 최대 세력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아메리카타운도 제물이 됐다. 역병은 곧 일본촌에서도 대폭발할 것이다. 사람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면서도 ‘역병 이후의 세상’에 대해 불안해한다. 여러 불길한 징후들을 봤기 때문이다.

아무도 수습하지 않는다. 이 도시의 ‘넘버1’ 아메리카타운은 바닥을 드러냈다. 혼란이 발생할 때마다 중심을 잡았던 과거는 옛말이 됐다. 집 장사로 재물을 쌓아온 ‘보스’ 도널드 트럼프는 중소촌락으로부터 ‘보호세’를 뜯는 데만 열중했다. 아메리카타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괜찮다”고 큰소리만 쳤을 뿐이다. 그렇게 보호세를 걷더니, 정작 어려움을 겪는 다른 촌락들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병은 아메리카타운도 집어삼켰다. 트럼프는 허둥댄다. 독일과 프랑스촌이 구매계약을 맺은 차이나타운 마스크 수백만장을 웃돈을 주고 가로채기까지 했다.

책임지지 않는다. ‘넘버2’ 차이나타운은 역병을 은폐해 화를 키웠음에도, 미안해하기는커녕 큰소리를 친다. 보스 시진핑은 “바이러스의 근원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를 밝히라”고 했고, 행동대장들은 앞다퉈 “우리가 발원지가 아닐 수 있다” “역병과 싸우면서 다른 구역들이 대비할 시간을 벌어줬다”고 우겨댄다.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는 욕심도 드러냈다. 어려움을 겪는 촌락들에 의료진과 방역물자를 지원해 역병 발원지 이미지를 세탁하고, 아메리카타운의 부재와 무능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이다.

인도주의 따위는 개나 줘버렷! 아메리카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 일본촌의 얌체 본성도 확인됐다. 보스 아베 신조는 여름 축제 흥행에만 정신을 팔았다. 타 촌락의 유람선이 일본촌 내 항구에 정박하려 했지만, 감염자들이 있다며 하선을 막았다. 오랜 이웃 코리아타운이 어려움을 겪자 사전예고 없이 ‘한국인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었다. 무리수를 남발하던 아베는 축제가 1년 미뤄진 뒤에야 대폭발이 임박했음을 인정했다. 어려울 때마다 기댔던 큰형님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답이 없다. 나중에 돌아 온 문자메시지. “동생, 내 코가 석자일세.” 

남의 불행은 나의 기회다. ‘거리의 파이터’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이 오랫동안 보스로 있는 러시아타운은 넘버1, 넘버2의 빈자리를 거칠게 파고들다 구설에 올랐다. 이탈리아촌에 소독, 방역용 장비들을 보냈다고 선전했지만, 이탈리아촌 사람들은 “ ‘정치쇼’ 하지 마. 우리는 산소호흡기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라며 화를 냈다. 러시아타운은 아메리카타운에 산소호흡기와 마스크를 보냈다. 그런데 상표를 뜯어보니, 아메리카타운 제재대상에 오른 회사 제품들이다. “의도가 뭐냐”고 하자, 러시아타운은 “필요 없어? 도로 가져간다”고 큰소리를 친다. 푸틴의 목적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영향력 확대였다.

역병과 맨 앞에서 싸워야 할 WHO는 헛발질을 했다.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질 때도 팬데믹 선언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와 “죽도록 바이러스와 싸워야 한다”고 뒷북을 친다. 사람들은 WHO가 차이나타운 뒷돈을 받고,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수군거린다.

장 폴 미라 파리 코친병원 집중치료실장(오른쪽)이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뉴스방송채널 LCI의 토론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에서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에이즈 시약 연구를 한 사례가 있다”며 “마스크, 의약품, 집중치료실이 없는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 백신 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카밀 로히트 프랑스 국립보건연구소장도 맞장구를 쳤고, 이들의 제안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LCI 방송화면 갈무리

도시 분위기는 험악하다. “XX 때문에”라고 외치는 인종주의자들이 판치고 있다. 프랑스촌에선 위험한 백신 실험을 아프리카촌에서 하자는 말도 나왔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역병으로 멈춰 선 경제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넘버1, 2는 바이러스 출처를 놓고 멱살잡이를 한다. 고래 싸움으로 새우 등 터질 날도 머지않았다. 트럼프는 ‘보호세’를 더 뜯어내려 할 것이고, 시진핑은 “아메리카냐. 우리냐”며 양자택일을 강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병 이후를 걱정한다.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고, 불신은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고 했고, 아메리카타운의 저명한 외교전문가 헨리 키신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정치적·경제적 대격변은 수세대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우리 자신뿐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역병과 싸우는 과정에서, 대단치 않아 보였던 우리 주변의 자산과 제도들이 썩 괜찮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하여, 우리의 자산에 단단히 발을 딛고, 우리끼리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역병 이후의 세상과 맞서야 한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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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글 쓰는 게 직업인지라 가능했지만, 강연 수입이 없으면 굶어 죽으니 육지로 자주 올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한 달에 최소 세 번은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일정이 취소되면서 적응할 필요도 없이 원래 섬에 살던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누구는 코로나19 덕분에 집필에 집중한다지만 배부른 소리다. 당장의 생활비가 없으면 원래의 궤도는 뒤틀린다. 아이들마저 장기 칩거 중이니 현금은 더 필요하다. 원고 청탁을 거절할 수가 없다. 두 달 사이 다섯 권의 추천사를 작성했고 이런저런 잡지에도 기고했다. 책도 몇 권 계약했다. 100만~200만원의 선금이 꽤나 무게감이 있는 시기라 별수 없다. 원래 써야 할 글에다가 추가된 작업까지 있으니 하루에 15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서 생활한다. 무릎 질환이 더 악화되는 과로 덕택에 두 달은 어떻게든 버텼다.

하지만 건강보험료 36만원과 국민연금 30만원이 부담이다. 지역가입자이기에 받은 돈에서 자동으로 공제되는 것도 아니고 없는 돈을 마련해서 입금한다. 납부가 아니라 징수 혹은 표현이 그렇지만 상납의 느낌이다. 20만원 정도일 때까지는 사회공공성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정신무장을 했지만 소득이 찔끔 오를 때마다 금액은 펄쩍 뛰어오르니 환장할 지경이다. 그만큼 버니까 당연하다고? 아니올시다.

나는 도시 근로가구 소득 기준치보다 더 벌면 자동으로 퇴거되는 임대아파트에서 9년을 살았다. 스스로 나갈 때까지 별 문제 없었으니 적당히 벌었나 보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소득기준에서 나는 전체 97등급 중 43등급(높을수록 고소득)이다. 연소득 4890만~5190만원에 해당한다. 재산은 1~60등급 중 12등급이다. 보유차량은 기준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36만원이다. 소득의 9%가 매달 나가는 셈이다. 참고로 부양가족 등의 조건이 같은 연봉 1억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액은 27만원이다.

물론 직장가입자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임금노동자가 많을수록 나라 경제가 안정적인 건 분명하니 프리랜서가 좀 많이 내는 게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상위 30%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조급한 정부가 큰 착각을 했다. 지역가입자도 상위 30%로 대강 끊으면 관료사회에서의 상층부처럼 선명하게 구분되는 줄 알았나 보다. 1년에 5000만원 버는 사람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는 것인가?

후유증이 없겠는가. 인간관계는 틀어진다. 나는 못 받는데 3억에 산 집이 8억이 되었다는 내 친구는 받는다. 나는 그에게 양심이 있냐고 따질 것이고 친구는 나에게 돈도 잘 벌면서 서민 흉내를 냈냐면서 빈정거릴 것이다. 꼼수도 창궐한다. 다가올 5월은 개인사업자의 소득신고 기간이다. 여태 국세청 홈택스만 믿고 내라는 대로 냈다. 이제는 모르겠다. 어떻게든 소득을 줄이고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탈세를 절세처럼 말하는 용한 세무사 사무실에 노크를 할지 누가 알겠는가. 아, 비루하다. 돈 좀 받으려고 사생활까지 까는 팔자도 모자라 개인의 도덕성이 무너질 수 있다면서 국가를 협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돈 좀 주면 어디 덧나나. 초유의 사태라면서.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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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축구장서 치러진 ‘야외 필기시험’. 연합뉴스

옛날 과거시험은 청년인재 등용문이었다. 입신양명의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 저마다 간절한 소망으로 산 넘고 물 건너 시험장으로 향했다. 천민과 중범죄자를 빼고는 응시자격 제한이 없었다 하니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졌다. 시험 성적 우선으로 당락을 가르는 요즘의 공채 시험과 비슷하다. 고려 광종 때 시작된 과거제도는 조선 고종 때까지 930년간 이어졌다. 응시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바람에 특별시험이 잦아지고 부정이 급증한 폐단 때문에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됐다.

생원·진사를 뽑는 1차 시험인 향시(소과)는 지방 곳곳에서 열렸고, 급제자를 뽑는 대과는 서울에서 치러졌다. 과거시험 응시자들은 여섯 자(약 1.8m) 간격을 두고 앉았다고 한다. ‘커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감독관이 곳곳에 배치돼 매의 눈으로 감시에 나섰으나 다양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고 한다. 답안지를 일부러 땅에 떨어뜨려 보여주는 낙지(落地), 옆 사람과 얘기하는 설화(說話)는 기본이다. 시험장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수종협책(隨從挾冊)뿐 아니라 커닝페이퍼를 콧구멍 속에 숨기는 의영고(義盈庫), 붓 속에 숨기는 협서(狹書)도 적발됐다. 대리시험은 차술차작(借述借作), 미응시자가 시험장에 몰래 드나드는 것을 입문유린(入門蹂躪)이라 했다.

과거시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야외 필기시험이 지난 주말 치러졌다. 역사 재현 이벤트가 아니라 공기업의 실제 공채시험이었다. 안산도시공사가 상반기 공채 서류 통과자 139명을 대상으로 축구장인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시험을 진행했다. 천연잔디 그라운드 안에 책상과 의자가 널찍이 줄 맞춰 배치됐고 마스크를 쓴 수험생들이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수험생 간 간격은 5m나 됐다. 부정행위를 막으려는 조치가 아니었다. 코로나19의 위험을 떨쳐내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를 적용한 것이다. 코로나 위험 탓에 실내 시험은 치를 수 없는데 공채 일정을 더 미루기도 어렵다고 판단한 공사 측에서 짜낸 고육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위기에서 빛을 발한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덕에 취업준비생들은 언제 시험을 치를지 모를 답답함을 털어냈다. 코로나19로 꽉 막혀보이는 상황에도 헤쳐나갈 길은 어딘가 있지 않을까.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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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담담해지고 싶다


말은 담박하게 삭이고

물 흐르듯이 걸어가고 싶다


지나가는 건 지나가게 두고

떠나가는 것들은 그냥 떠나보내고


이 괴로움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두 팔로 오롯이 그러안으며


모두 다독여 앉혀놓고 싶다

이슬처럼, 물방울처럼


잠깐 꾸는 꿈같이 이태수(1947~)


바다의 일로 치자면 우리 내면에 일어나는 하나의 감정은 하나의 파도이다. 괴로움과 외로움과 그리움도 하나의 파도이다. 시인은 이 감정들이 가라앉기를 희망한다. 마치 풍랑이 지나고 다시 날이 화사해져서 바다가 잠잠해지듯이. 차분하고 평온하게, 말에도 허사(虛辭)를 줄이고, 걸음은 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듯이 자연스럽게, 잊을 일은 잊고서, 무엇에도 지나치게 끌리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쇠나 돌과 같은 서진(書鎭)으로 종이를 눌러놓듯이 거친 감정들을 다독여 앉혀놓고 살 일이다. 마치 영롱한 이슬이 풀잎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아침을 맞듯이. 시인이 시 ‘당신과 나’에서 “당신이 여기 있어 나도 여기 있네/ 그러므로 이젠 더 바랄 것이 없네/ 당신이 빚으면 내가 듣는 이 고요”라고 썼을 때처럼 다만 고요하게. 내면이 깊고 넓은 호수가 되어 그렇게 담담하게 살 일을 생각해본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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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검사로 임관했으니 어느새 20년이 되었습니다. 새내기들이 그렇듯, 저 역시 검찰의 흑역사는 옛날이야기이고, 선배들 말은 모두 금과옥조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지요. 검찰이 비판받을 때면 제가 찔린 듯 고통스럽고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기라성 같은 줄 알았던 선배들 중 범죄자나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람들도 적지 않고, 그런 이들이 걸러지지 않고 승진하는 인사시스템 결함을 깨닫는 데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더군요. 검찰의 속병이 깊어가는 걸 내부에서 지켜보는 건 너무도 고통스럽지요. 검찰에 뿌리내린 제 영혼도 같이 말라갑니다.

많은 일을 보고 듣고 겪었습니다. 검사로서 수사하여 범죄자를 처벌하면서도, 정작 저와 제 동료들이 상관들에게 더러 당하는 성폭력 등 각종 봉변이나, 상급자들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휘와 업무처리를 보며 뒤에서 수군거릴 뿐 어찌할 바를 몰라 침묵했지요. 최상급 수사기관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틀어쥔 검찰은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처럼 부실수사로 범죄를 덮을 수도, KBS 정연주 사장 배임 사건처럼 찍어내기 기소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제기해봐야 상급자에 대한 감찰과 수사가 제대로 될지 의심스럽고, 괜히 찍혀 보복만 당할 듯하니 주저할밖에요.

2012년 12월,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어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에 항명하여 감찰과정에서 무엇이 옳은지 따지기로 작심한 후 ‘징계 청원’이란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리고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을 강행했습니다. “통제받지 않는 검찰권은 흉기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부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조직원으로서의 도리다” 등의 비난 댓글을 읽으며, 외로웠습니다. 무법천지 검찰에 지옥으로 내몰린 건 과거사 재심사건 피고인과 유족인데, 법대로 한 제가 오히려 통제받지 않은 흉기인 양 비난하니 얼마나 억울하던지요. 검사는 상사의 명령이 아니라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대명제를 잊은 동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국회로 가서 법과 제도를 바꾸라는 충고도 제법 들었습니다만, 처벌규정이 없어서 검사들이 뇌물받고 추행하는 게 아닙니다. 법과 제도에 틈이 있기도 하지만, 검찰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어 사실관계와 법률 해석을 늘리거나 잘라 맞춤형 결론을 도출해 버리니, 실세 검찰간부들의 일탈이나 검찰의 조직적 일탈은 대개 수사성역이 되지요. 성역을 스스로 만든 검찰이 다른 사건인들 공정하게 처리하겠으며, 내부 부조리에 침묵하거나 방관한 검사들이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에 이의제기할까요.

검찰을 바로잡으려면, 법과 제도를 더욱 촘촘히 만드는 것과 아울러 장식품이었던 처벌규정에 생명을 불어넣을 필요도 있지요. 하여, 검찰의 조직적 일탈에 가담하면 검사도 처벌받는다는 선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2015년 서울남부지검 성폭력사건을 은폐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을 고발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검찰이 성폭력사범들을 뒤늦게 기소한 이상, 검찰이 제 고발사건을 수사해주지 않더라도 “당시 대검 감찰1과 등에서 피해자들을 조사하고도, 성폭력사범들에게 명퇴금 등을 쥐여주며 무사히 퇴직시켜 사건을 은폐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 고발인인 제가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2018년 5월, 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습니다. 앞으로의 일들이 그려지더군요. 우리 검찰은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불기소를 결정할 테고, 재정신청은 2020년 4월쯤 해야겠구나…. 20년 차 검사의 슬픈 관록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언론을 통해 중앙지검의 불기소 결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중단으로 전 민정수석 등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한 게 불과 얼마 전이라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검찰의 이중잣대는 거침없습니다. 감찰권밖에 없는 민정수석은 그러면 안되지만, 수사권과 감찰권을 가진 검찰은 마음대로 덮어도 된다는 말이라, 예상하였으면서도 참담하네요.

검찰이 아무리 틀어막아도 진실과 정의는 오늘도 나아가고 있고, 검찰 역시 역사의 심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저는 고발합니다. 이중잣대와 선택적 수사로 정의를 왜곡시킨 검찰을 고발합니다. 이런 검찰이라면 막중한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검찰총장 윤석열과 중앙지검장 이성윤을 고발합니다. 검사의 사명을 망각하고 검찰의 조직적 일탈에 면죄부를 준 그들은 검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검찰권을 검찰에 위임한 주권자 국민 여러분들이 고발인의 고발내용을 판단해 주십시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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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서울 여의도 윤중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벚꽃 개화 시기에 상춘객이 몰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는 10일까지 윤중로 벚꽃길을 폐쇄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정부가 ‘강화된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를 2주간 연장해 오는 19일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지난달 22일부터 보름간 실시한 거리 두기를 연장한 것은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해외 유입 사례는 최근 전체 감염의 절반 수준으로 높아졌다. 병원·종교시설 중심의 소규모 집단감염도 이어지고 있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코로나19는 장기화로 치달을 것이다. 정부의 ‘거리 두기’ 연장은 적절하고 당연한 조치로 보인다. 

정부의 거리 두기 강화방침에 따라 교회 등 종교시설과 무도장·체력단련장 등 실내 체육시설, 클럽·콜라텍 등 유흥시설에 대해 운영 제한 조치가 다시 2주간 연장된다. 특히 줌바댄스와 같은 실내의 강습이나 운동프로그램 진행은 일절 금지된다. 불가피하게 시설을 운영할 경우에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1~2m 거리 두기, 실내 소독 및 환기 등 방역 준수사항을 따라야 한다. 확진자 및 접촉자 격리, 개학 연기 등과 같은 의료·교육 분야의 거리 두기도 계속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실천은 증상자 자가격리, 병원 방문 자제, 외출 최소화와 같은 개인 차원의 거리 두기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여 감염병 전파를 줄이는 통제 전략이다. 지난 2주간 실시된 고강도 거리 두기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거리 두기 이후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사례는 물론 교회와 어린이집 등 밀집시설에서의 집단발생이 크게 줄었다. 하루 수백명에 달했던 신규 확진자는 100명 안팎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분명 고강도 거리 두기가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의 하루 확진자가 50명, 감염경로 미확인율이 5% 아래로 떨어져야 평상시 의료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일상방역’ 단계로 나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목표는 코로나19 감염규모를 ‘생활방역’ 수준으로 낮추는 일이다. 

지난 2주간의 고강도 거리 두기로 시민들의 피로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견디다 못한 시민들은 봄꽃을 구경하러 유원지로 몰리고 있다. 체육·유흥시설 운영자들은 생계가 막막하다며 다시 문을 열고 있다.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 두기를 풀 때가 아니다. 방심하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감염병이 폭증하고 있는 유럽·미국도 한국을 배우자며 거리 두기에 나서는 상황이다. 감염 확산 이후의 혼란보다는 지금 인내하는 게 낫다. 힘들어도 감염병 차단을 위해 거리 두기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나와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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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연일 종합부동산세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한 토론회에서 1가구1주택자나 실소유자에게 종부세는 고통이란 말을 더러 듣는다며 현실을 감안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5일엔 민주당 지도부와 종부세 관련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 강남 3구 등 고가 아파트 밀집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도 종부세 완화를 공약했다. 이 위원장은 보유세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지난해 12·16 부동산대책 수립을 총괄한 국무총리였다. 자신의 책임하에 마련한 정책을 몇 달 만에 뒤집겠다니 의아할 뿐이다. 국민의 1%에 해당하는 종부세 납세자들의 표를 겨냥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의 한마디로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여당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신뢰 추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권자의 표를 노린 ‘아니면고’식 공약 남발은 이번 총선에서도 여전하다. 여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핵심 공약을 신고했지만 재원마련 등 구체적 실현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은 어르신 건강스포츠 이용권 제공 등을 공약했지만 재원조달 방법으로는 예산 증가분을 활용하겠다고만 밝혔다. 법인세 인하 등 통합당의 각종 감세 정책들도 추가 재원이 필요한 공약들과 모순된다. 일부 군소정당들의 ‘묻지마 공약’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공화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석방, 공화당은 핵무장, 민중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를 공약했고, 국가혁명배당금당은 18세 이상에게 긴급생계지원금으로 1억원씩 주겠다고 했다. 유권자를 바보로 여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공약이다. 

장밋빛 개발 공약들도 문제다. KBS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21대 총선 지역구 후보자 405명 공약의 소요 예산을 합했더니 국가 예산의 8배가 넘는 4399조원에 달했다. 상당수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20대 의원 244명의 공약을 평가했더니 이행률은 46.80%에 그쳤다. 보류·폐기된 대부분은 개발·건설 공약이었다. 현 공직선거법에서 재원조달 방안을 명기한 선거공약서 의무제출 대상에 국회의원은 빠져 있다. 그러니 헛공약이 난무하는 것이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 유권자들도 공약에 대해 재원조달은 실현 가능한지, 재탕·삼탕 포장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사탕발림에 놀아나지 않는 유권자의 혜안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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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 앱 아이콘

국내 1위 배달앱 사업자 ‘배달의민족(배민)’이 이달부터 수수료 체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건당 5.8%)로 개편하자 영세 음식업주들이 ‘꼼수 인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매출부진에 수수료 부담까지 곱절로 늘자 업주들 사이에선 “코로나보다 배민이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다.

배민은 지난 1일부터 앱 화면 상단에 3개만 노출해온 오픈서비스를 무제한 배치하고 수수료를 6.8%에서 5.8%로 1%포인트 내렸다. 또 월 8만8000원의 정액 광고료를 내는 울트라콜 사용을 3건으로 제한했다. 배민 측은 이번 개편으로 자금력 있는 음식점주가 여러 개의 울트라콜을 앱 화면에 중복 노출시키면서 주문을 독점하는 폐단이 사라지고, 소규모 자영업자가 요금제 개편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배민을 이용하는 자영업자들은 그동안 정액제 서비스(울트라콜)만 이용해도 되던 것을 건당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정률제로 바뀌면서 부담이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오픈서비스를 앱 화면에 무제한 노출시키면 그 하단에 위치하는 울트라콜의 광고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업주들은 건당 수수료를 떼는 오픈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매출에 연동해 수수료 부담도 커지게 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월 매출 3000만원 정도인 치킨집의 경우 기존 정액제에서는 매달 3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냈지만, 바뀐 요금제에서는 최대 170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배민의 새 요금제가 소상공인들에게는 ‘제2의 임대료’로 불리는 이유다. 

배민이 배달앱 서비스 시장을 개척하고 성장시킨 ‘혁신’을 이룬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수수료 체계 개편은 ‘혁신’이 아니라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다. 배민은 2, 3위 업체인 요기요와 배달통을 보유한 독일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와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 시장의 95%를 장악해온 세 업체의 합병이 외식업 자영업자와 배달 노동자, 소비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던 참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음식업주들의 배달앱 의존도가 커진 상황에서 배민이 수수료를 ‘꼼수인상’하자 “이제 정말로 ‘배 다른 민족’이 된 것이냐”는 말까지 나온다. 배민은 소상공인들을 울리는 수수료 개편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국은 배민의 수수료 체계 개편이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사례에 해당되는지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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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떠 있는 위성정당들 

정의당 홀로 탑승 거부 

지더라도 이기는 길 선택  

축제가 끝나면 더 단단해질 것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여의도 상공에는 위성정당(위성이란 용어가 점잖다. 어떤 이는 괴뢰라 칭한다)이 떠 있다. 위성정당에서 쏟아지는 요설(妖說)이 봄날을 어지럽힌다. 국민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정당정치는 십리나 후퇴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왜소해지고 있다. 군소정당과 함께 가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어내야 한다.  

금배지 달아보겠다고 허겁지겁 번호표 받아들고 위성정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인물들 참으로 없어 보인다. 누구는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삿된 것들을 물리치고 결국 승리했다. 김대중은 당시 대통령 노태우의 합당 권유를 뿌리쳐서 민의를 받들었고, 노무현 또한 3당 합당을 거부하고 꼬마민주당에 남아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비록 지더라도 역사에 길을 물었고, 그렇게 해서 ‘김대중’이 되고 ‘노무현’이 되었다. 

이런 혼탁한 정치판에서 그래도 돋보이는 것은 정의당이다. 양당의 추악한 싸움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심상정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명운을 걸었다. 거대 양당이 의회권력을 독점하는 수(數)의 정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어 노회찬이 소원했던 ‘50년 묵은 불판’을 갈아보고 싶었다.  

어쩌다 여당이 된 민주당이 ‘촛불동지’였기에 어쩌면 우군일 수 있었다. 그건 바람일 뿐 협상은 쉽지 않았다. 야당 반대는 예상했지만 여당도 딴전을 피우고 투정을 부렸다. 심상정은 양보를 거듭했다. 2중대 소리를 들으면서도 민주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결국 누더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띄웠다. 그러자 안팎에서 심상정을 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는 조국 대전에서 민주당 편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국 대전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반대편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진위를 떠나 ‘조국 쓰나미’는 국민들을 두 편으로 갈라놓았다. 정의당이 어떤 결정을 내렸어도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비례 의석수를 보장하겠다며 정의당에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라 강권했다. 심상정은 흔들렸지만 마침내 의연했다. 꼼수와 야합을 거부했다. 눈앞에 의석수가 어른거렸겠지만 원칙을 지켰다. 설사 지더라도 스스로에게 이기는 길을 택했다. 결국 진보정당의 자존심을 지켰고, 그렇게 해서 ‘정의당’이 되고 ‘심상정’이 되었다. 

나쁜 정치도 정치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우아하거나 고상할 수 없다. 김대중은 ‘정치란 심산유곡에 피어난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라고 했다. 심상정처럼 현실에 피를 대고 서민들과 교감하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많은 이들이 심상정 곁에 노회찬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그래도 심상정이 버티고 있음에 안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정치공학으로 접근하여 정의당의 퇴조를 예단하지만, 그들은 늘 틀렸다. 선거가 끝나면 축제마당에 악취가 진동하겠지만 정의당은 승패를 떠나 의연할 것이다.

진보정당 곁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먼발치서 지켜본 그들의 활약은 경이로웠다.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 국회에 입성한 의원(민주노동당)들은 의사당에 머물지 않았다.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갔고, 길 위에 섰다. 이름과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들 자신이 또 얼마나 울었는가. 사람들은 그 눈물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 보니 그들은 붙박이별이다. 오래 이 땅의 눈물과 아픔을 비출 것이라 믿는다. 안개가 걷히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정의당.

<김택근 |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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