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참으로 밋밋한 행성일세!” 만일 20억년 전쯤에 지구를 둘러본 외계인이 있었다면, 그의 일기장에는 이처럼 씌어있을지 모른다. 그런 그가 타임머신을 타고 10억년 전쯤으로 다시 왔다면? 형형색색의 화려한 지구를 보고는 깜짝 놀랐을 게다. 대체 지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로 성(sex)의 출현이다. 생명이 출현하고 23억년이 지나도록 지구에는 무성생식(유전자세트를 자식 세대에 그대로 물려주는 방식)을 하는 생명체밖에 없었다. 복제 오류가 발생해야만 조상과 후손의 유전자세트가 달라지는 세상이었으니 다양성은 미미했다. 이런 밋밋한 지구를 화려한 행성으로 변모시킨 터보 엔진이 바로 성(性)이다. 

유성생식(부모의 유전자세트를 섞어 자손을 만드는 방식)이 왜 진화했는가는 진화학계의 가장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다. 대답은 미생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성은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미생물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생명이 만든 필살기였기 때문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경우 치명적 미생물이 한번 침입하면 후대마저도 멸절에 이를 수 있다. 유전적으로 대항할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15억년 전쯤 생명은 유전자 칵테일 기법을 통해 조상 세대에는 치명적이었더라도 후대에는 그렇지 않게 만들 비책을 진화시켰다(연애 시 ‘밀당’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성의 탄생을 통한 유전적 다양성 전략이다.

코로나19에 인류의 ‘신체’는 지금 속수무책이다. 이 바이러스의 항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현재 인류의 유전자 저장고 안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백신이나 치료제가 제때 개발되지 않고, 코로나19의 항체 형성 유전자가 인류의 유전자풀에서 유성생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출현하지 않는다면, 이 바이러스는 77억 인류의 난적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도 코로나19 면역을 위한 비책이요, 인류의 희망인 셈이다. 

그렇다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 비책은 무엇인가? 여기서도 다양성의 증진이 최고의 진화 전략일까? 언뜻 보면 그 반대인 것 같다. 타집단에 대한 경계는 미덕이 되었고, 타인의 고통은 못 본 척을 해도 되는 분위기다. 학교도, 상점도, 우리의 마음도 문을 닫고 있다. 이것은 분명 다양성을 줄이는 행동이다. 

사실 병원체와 감염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우리의 본성이다. 썩고 냄새나는 이상한 뭔가를 좋아하던 조상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혐오와 회피 행동이 진화했다는 사실은 우리 몸의 면역 작용만으로는 불충분했음을 말해준다. 신체 면역과 같은 사후 관리 체계와 더불어 사전 관리 체계도 필요했던 것이다. 진화학자들은 이 체계를 ‘행동면역계’라고 부른다. 이것은 감염의심 상태와 행동을 감지한 후 자동적 회피 및 혐오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팬데믹 상황에서 각 개인의 행동면역계는 자동적으로 다양성을 차단한다. 

이런 자동적 행동면역계에는 잘못이 없다. 이성이라는 수동 모드를 켜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니 내게도 이런 부정적 감정이 이는구나’라고 성찰하면 된다. 문제는 공포와 혐오 감정이 빠르게 전염되는 ‘집단적 역동’ 메커니즘에 있다.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전염병 위협 상황에서 사람들은 노인, 외국인, 신체장애인, 심지어 비만인 사람에 대해서까지 혐오감을 드러낸다. 조금 다르게 생기거나 다른 처지에 있거나 다른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병원체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동면역계의 이런 민감한 작동이 동조 메커니즘을 통해 집단적으로 전염되는 현상인데, 이는 국가주의로 비화되기도 한다. 경제대국이 마스크를 해적질하고 품격 높은 나라의 전문가들이 아프리카를 백신 실험장으로 쓰자고 맞장구를 친다. 평상시 같았으면 서로 조심하고 배려했을 텐데 팬데믹이 오니 행동면역계에 고삐가 풀린 것이다. 중국인을 비하하는 “짱깨”라는 표현이 온라인에 급증한 것도 같은 현상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혐오가 아니라 혐오의 집단적 동조다. 이런 부정적 감정의 집단전염을 ‘이모데믹(emotion+epidemic)’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모데믹은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지구촌 사회에서는 재앙이다.

이모데믹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성 증진이 신체 면역의 최고 전략이듯이 이모데믹의 최고 면역법도 다양성 추구다. 이성을 활용해 ‘역지사지’를 하고 정서적으로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혐오에서 공감으로 나아갈 수 있다. 확진자, 의료진, 독거노인, 방치된 아이들, 외국인, 의료체계가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함께 느끼고 돕는 행동을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광주의 의료진이 대구를 지원하고 광주 시민들이 대구에 장어 도시락을 전달한 ‘달빛동맹’ 사례를 보라. 이들의 행동은 다른 집단(가치)을 포용하는 공감이었다. 이러한 다양성 전략은 궁극적으로는 인류애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강조하고 있다. 모임을 자제하자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지만, ‘사회적’이라는 단어 선정이 매우 아쉽다. 

사실 ‘사회적 거리’는 원래 관심의 반경을 뜻하는 용어이고 대개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모데믹을 극복하려면 오히려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만 할 것 같다고 느낀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더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리적 거리는 넓히면서 사회적(심리적) 거리는 좁히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다. 우리는 문명을 이룩할 만큼의 공감력과 과학·의료 기술을 가진 유일한 종이지 않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고통을 함께할 수 있고,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가까이서 돌볼 수도 있다. 심지어 뉴스만으로도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함께 느낄 수도 있다.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침팬지도 흉내조차 못 내는 일이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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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나눔문화 사무처장. 이상훈 기자

‘봄의 전위’처럼 진달래가 피면 떠오르는 하나의 선언이 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의 대학 거부 선언.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2010년 3월10일 아침,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던 김예슬은 교정에 자퇴를 선언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1인 시위를 했다. 꾹꾹 눌러쓴 그 선언문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되살아난다.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은 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당시 그의 이야기가 각종 언론매체를 장식하자 이어진 격렬한 반응들. “이것은 내 이야기다” “글을 읽다 끝내 울어버렸다” “부끄럽고 고맙다”라는 공감 그리고 “명문대니까 주목받지” “저러다 정치하겠지”라는 냉소가 쏟아졌다. 그랬다. 우리 시대 고통과 모순의 급소를 찌른 것이다. 

김예슬을 처음 본 것은 2005년 ‘대학생나눔문화’에서였다. ‘청년은 지성과 행동의 두 발로 선다’는 모토 아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청년모임이었다. 고전을 읽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는 현장에 달려나가고, 여름이면 농촌에서 일손을 나누는 씩씩하고 진지한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김예슬들’의 편이 아니었다. “너 아직도 그런 거 하냐, 데모?”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 그러나 다른 길을 찾기 위한 치열한 물음은 이어졌다. “대학, 국가, 시장으로부터 학습된 두려움은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모든 상상력과 용기를 잠식해왔다. 생활 전반이 화폐화, 시장화되자 한 존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거의 사라져버렸다. 돈에 대한 완벽한 의존의 시대, 삶의 자율에 대한 완벽한 상실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가 던진 이야기는 지금 더욱 새롭다. 국가의 ‘의무교육 시스템’이 멈추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할지 당혹스러운 요즘, 그의 글을 곱씹으며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는 대학생활 내내 빼곡히 적어둔 고민을 모아 책 <김예슬 선언>을 펴냈다. 그 후, 강의와 인터뷰 요청, 정치권 등의 제안이 많았으나 책에 쓴 것처럼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가겠다”며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꾸는 꿈,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에 흐뭇한 기대가 피어오른다.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발목이 시리도록 대지를 걷고 야생 자연을 탐험한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시를 낭송하고 손글씨를 쓰고 고전을 읽고 삶에 적용시켜 나간다. 호미와 삽을 들고 농사를 짓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나눔농부가 된다. 봄싹이 트고 꽃이 피고 눈 내리는 날은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뛰어논다. 이런 빛나는 삶의 대학 하나 세워가는 꿈을 꾼다.” 

학교가 닫힌 요즘, 아이와 청년들이 이런 배움을 익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의 멋진 배움터에서 자유롭게 계절을 만끽하며 함께 웃을 날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나만의 길을 걷는 또 다른 ‘김예슬들’을 응원하며 기다려본다.

<임소희 | 나눔문화 이사장·도서출판 느린걸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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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피는 제주의 봄은 바닷속에도 온다. 바위에 붙은 초록의 해초들이 물살에 팔랑거리고, 바위틈에 숨었던 해삼들도 봄볕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 해녀들의 일상도 이때부터 바빠진다. 사철 바다에서 사는 해녀들이지만 3월 미역 채취를 시작으로 4월부터 본격적인 물질에 나선다. 해변 곳곳에서 테왁(해녀들의 몸을 띄워주는 두렁박)이 떠다니고, 가끔씩 물 밖으로 나오는 해녀들의 “호오~이” 하는 숨비소리가 들린다. 초보인 하군(똥군) 해녀들은 3~4m의 얕은 바다에서 일하지만 상군들은 10m도 넘는 깊은 바다로 잠수한다. 오후 들어 하나둘 밖으로 나오는 해녀들의 망사리에는 홍해삼과 전복, 돌멍게가 가득하다. 

해녀와 더불어 제주 바다의 명물이 돌고래다. 해안에서 쉽게 관찰되는 남방큰돌고래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제주 남서쪽 코발트색 바다에서 수면 위로 떼를 지어 뛰어오르는 돌고래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카페들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해녀들에게는 돌고래는 낭만적인 존재가 아니다. 해녀를 놀라게 하고 때로는 잡은 해산물을 낚아채기도 하는 훼방꾼들이다. “해녀 모두가 ‘배알로, 배알로’ 하며 동시에 외친다. 주위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돌고래 떼가 해녀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배알로’라는 말은 (제주어로) 물 위에 떠 있는 해녀들의 ‘배 아래로’ 지나가라는 뜻이다. … 돌고래가 사라지자 잠수회장님의 지시로 다 함께 물 밖으로 이동했다. 돌고래가 지나간 바다는 물건이 없고, 상어가 올 수 있으니 대비해야 된다고 하셨다.” 제주에 정착해 해녀가 된 김은주씨가 수필집 <명랑해녀>에서 해녀와 돌고래의 만남을 묘사한 대목이다. 

해녀와 돌고래 모두에게 제주 앞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지난달부터 제주 두 명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실험이 시작됐다. 제주 서귀포시 모슬포수협과 무릉리 어촌계,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테왁 망사리에 돌고래가 싫어하는 음파를 내보내는 장치를 부착함으로써 돌고래를 회피하는 실험에 들어간 것이다. 해녀들은 인어공주처럼 물질을 하고, 돌고래는 자유롭게 헤엄치는 공생의 제주 바다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다.

<박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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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하는 동안 ‘확 찐 자’가 되어 ‘살천지’가 되어가고 있다. 비상이다! 예전에 마라톤을 준비하며 읽었던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를 다시 꺼냈다. 

독일 환경부 장관이었던 피셔는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음식에 의존해 112㎏ 뚱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에 빠졌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되었다. 더 이상 욕망에 끌려다니는 파괴적인 생활 방식으로 살 수 없다고 결심한 그는 매일 달리기 시작했다. 75㎏의 날씬해진 외모 변화와 함께 달리기로 내적인 평온을 찾으며 삶의 스타일까지 모두 바뀌었다.

풀코스 마라토너는 30㎞쯤 지날 때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 이때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며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낀다고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희열을 느끼는 역설이 일어나며 점점 결승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또한 마라톤은 함께 참여한 사람들에게 일체감과 동료애를 느끼게 하고 생에 감사하게 만든다.

마라톤 대회는 참가자의 탈진을 막기 위해 5㎞마다 물에 적신 스펀지와 바나나, 물컵 등을 준비한 급수대가 마련된다. 마라토너가 달리면서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고 길가에 종이컵과 껍질을 던지면 봉사자들이 치워준다. 많은 인원이 급수대에 몰리게 되면 그냥 통과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다음 급수대가 나타날 때까지 꼼짝없이 버텨야 한다. 나 역시 속도 조절을 못해 지나쳤는데 다른 참가자가 스펀지와 물을 챙겨주었다. 고마운 일은 더 있었다. 마라톤 베테랑들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며 기록을 앞당길 수 있도록 참가자들을 돕는다. 3:30이 쓰인 풍선을 매단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면 결승선에 3시간30분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페이스메이커를 놓치고 정신마저 희미해지며 포기할까 싶을 때는 길가에서 응원하는 시민들의 힘찬 목소리에 기운을 얻어 완주할 수 있었다. 

재난이 장기화되며 모든 국가가 코로나19 마라톤을 벌이고 있고 우리나라는 스마트한 대응으로 전 세계의 페이스메이커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생활 반경을 최소한으로 좁히고 재난기본소득을 나누며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코로나19가 만든 어두운 터널의 어디쯤을 지나는지 현재 우리는 알지 못한다. 코로나19와 마라톤은 다르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의 삶에 몰입하는 것이다. 

42.195㎞를 완주하려면 숨을 헐떡이고 몸이 천근만근일수록 오직 이 순간, 호흡 한 번, 뜀걸음 한 번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면 무뎠던 말단세포의 감각이 살아나고, 군더더기 많던 내면이 필수적인 것만 남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주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며 삶의 질서가 재편되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자신과의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 자아의 성장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만난 날 엄청나게 쏟아낼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깨달음과 성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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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많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발표되었다. 정부는 다층적이고 시급한 지원을 이유로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하여, 소득 하위 70%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줘야 할 이유도, 주지 않아야 할 이유도 차고 넘친다. 지원의 액수와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의사결정의 문제다. 정부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어떤 방법을 내놓았어도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정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는다. 

일단 다 주었으면 한다. 정부는 스스로 ‘시급한 지원’이 이유라서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득 하위 70%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파악하고,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항의를 듣고 조정하는 등 시간과 비용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할 것 없이 일단 다 주는 것이 가장 빠르다. 다층적인 지원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조정해도 늦지 않는다. 상위 소득자에게는 올해 소득을 신고할 때 환급받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줬다 뺏으면 반발을 사기 쉬울 것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지만 연말정산의 환급 등에서 조정한다면 반발을 줄일 수 있다. 급한 상황이니 일단 지급하고, 연말정산을 할 때까지, 더 멀게는 종합소득세 신고 시점까지 다층적 지원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민하면 된다. 

소득 상위 30%를 배제하는 명분도 서민들의 인식과 괴리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연말정산 파동을 생각해보자. 그 당시 정부는 소득세 증가의 기준점을 3450만원으로 정했다. 사실 통계적으로 봤을 때는 적정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연봉이 3450만원인 사람이 스스로를 상위 30%라고 생각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연말정산 후 서민들의 반발이 폭증하자 유례없는 소급입법으로 기준을 조정했으며 연봉 7000만원까지 세부담을 완화해주었다. 

현재 나온 건강보험료의 기준을 역산해보면 1인 가구는 연봉 3200만원, 2인 가구는 연봉 5400만원, 3인 가구는 연봉 7000만원 정도가 기준이 될 것 같다. 이는 통계적인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민들은 그것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유사한 급여 수준에서 자신이 상위 30%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오히려 하위 30%를 지원한다면 이해하겠지만, 자신이 상위 30%라는 것은 믿을 수 없어 한다. 

다층적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관계부처에 국세청이 제외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건강보험료 기준과 함께 국세청의 소득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건강보험료는 보수월액 이외의 소득이 있어도 연간 3400만원이 넘지 않으면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직장가입자의 경우 자산가여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지역가입자는 그러지 못한다. 자산이 많지만 직장에서 적은 월급을 받는 사람을 선별지원에서 굳이 포함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이러한 예외는 말 그대로 예외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애매한 범주로 선별지원을 하여 이러한 논란을 만들 이유도 없다.

굳이 선별지원을 하겠다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개인사업자들은 2020년의 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에 국세청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선별해야 한다. 카드 사용 비중이 많이 높아진 만큼 국세청이 매출의 감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소득의 감소 역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영세한 개인사업자들에게도 1분기 부가세 신고를 요구하면 된다. 이 정보와 전년도 부가세 신고 정보를 비교해 매출이 급격히 감소한 사람에게 지원한다면 시급성과 필요성이 인정될 것이다.

이는 정답이 없는 정책 결정의 문제다. 따라서 비난보다는 조언이, 뚝심보다는 유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모두 머리를 모아 슬기롭게 헤쳐 나갔으면 한다.

<이총희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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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등 봄을 상징하는 꽃들이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어디를 가든 꽃대궐이다. 이들 봄꽃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지난겨울을 잘 이겨냈기 때문이다. 개나리·진달래·목련 등 대부분의 봄꽃은 추운 겨울을 나야 고운 꽃을 피운다. 이를 춘화현상이라 부른다.

자연의 화려한 꽃이 그러하듯이 인생의 눈부신 꽃도 시련을 거친 뒤에야 피기 마련이다. 또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보다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량이 훨씬 더 많다. 인생의 열매 또한 혹한을 견뎌야 더 풍성해지는 법이다.

코로나19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냉기가 뼈를 시리게 한다. 하지만 이 엄혹한 시절을 견뎌 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우뚝 설 것이다.

한편 요즘 들어 ‘역유입된 코로나19 확진자’ 따위처럼 코로나19와 관련해 ‘역유입’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역유입’은 옳지 않은 말이다. ‘앞서 우리나라가 해외로 코로나19를 퍼트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역유입’이 아니라 그냥 ‘해외 유입’이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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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국제대회를 앞두고 한국 야구대표팀을 취재할 때였다. ㄱ선수가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대표팀 고참 선수가 대표팀 전원에게 선물한 것으로, ㄱ선수 말에 따르면 개당 80만원가량의 고가 제품이었다.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28명이었다.

기자들은 고참 선수의 씀씀이에 놀라면서도 그 선수의 지난 몇 년간 연봉이 합계 수십억원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그런 선물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ㄱ선수는 손사래를 치며 “많이 번다고 다 그렇게 베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만 모든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은 아니며, 곳간 문을 열라고 타인이 강요할 수도 없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의료진과 코로나19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각종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프로야구 텍사스의 추신수가 이 행렬에 동참했다. 추신수는 개막이 연기돼 생활고를 겪고 있는 텍사스 소속 마이너리거 191명 전원에게 1인당 1000달러(약 12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재난소득’을 주겠다는 것인데 근래 들어본 기부 소식 중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신한 기부 방식이다. 텍사스 마이너리거들이 추신수를 ‘일류(first class)’라고 칭송하며 감사를 표한 것도 지나친 일이 아니었다.

기부 방식이 창의적이기로는 피츠버그 선수들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피츠버그 선수들은 홈구장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 인근에 있는 피자 전문점 2곳에서 피자 400여판을 구입해 지역 종합병원 의료진에게 보냈다.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동시에, 매출이 크게 감소한 지역 상인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선수들은 지역사회에서 받았던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 같은 일석이조의 기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처럼 곳간을 여는 스포츠 스타들은 자신들의 부와 명성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팬과 지역사회를 존중할 때 자신도 존중받고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고민하고 실천했다. 난세가 스포츠 스타들의 품격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미국 육상 높이뛰기 국가대표 숀티 로위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유럽에서 시행 중인 자택 대기 조치를 ‘각자 고립돼 지냄으로써 세계가 하나 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웃과 국가, 세계의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자택 대기령을 기꺼이 따르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코로나19 발생이 두 달을 넘어가면서 일상 복귀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도 점점 더 간절해지고 있다. 해외 유입 감염 사례가 늘어 잔불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2주 자가격리를 위반하는 몰지각한 행태에 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가격리처럼 기본적인 수칙을 위반하는 것은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웃과 국가, 세계의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때다. 곳간을 열어 통 크게 기부하는 것만큼 큰 결단이 필요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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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

산에 갔다 내려올 때 외딴 동네에서 빈집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인적 끊긴 빈집은 오랜 시간 홀로 견딘 자취도 아주 늙었다. 내려앉는 지붕 아래 온기 없는 방. 마당은 시무룩한 풀들의 차지다. 비딱한 마당 입구에서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자가 있으니 수도다. 나는 수도꼭지를 보면 틀고 싶어진다. 과연 물은 나올까. 낮은 기대로 손잡이를 돌리면, 놀라워라, 물이 나온다! 수도의 목구멍까지 진출한 뒤 하염없이 대기하다 어렵게 지나가던 이를 불러 콸콸콸 쏟아지는 물. 마른 땅 시든 풀잎을 적시고 힐끗 뒤돌아보며 달아나는 물을 보며 마이크 앞의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지금 어떤 종류의 말을 입에서 꺼내 세상으로 흘려보내고 있는가.

설경(舌耕)이란 말이 있다. ‘강연이나 변호 따위와 같이 말을 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음’이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이미 배운 바 있으니 혀로 농사짓는다는 뜻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오늘도 컴퓨터 모니터 안을 쏘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밀봉한 봉투처럼 살고 싶었는데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그만 너덜너덜해진 쏘가리의 입이 된 것만 같다. 자극적인 미끼를 던진 제목에 낚이기가 여러 번이다. 눈만 버린 사진, 생각을 어지럽히는 말이나 글도 많다. 글 읽고 나서는 대개 글쓴이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그들의 빙그레 웃는 얼굴에서 빈집의 수도꼭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 입술에 걸린 낚싯바늘 같은 제목과 글들과 함께.  

요즘 산에 가면 제비꽃이 많다. 종류도 다양한 제비꽃 하나 없다면 그 산은 이미 빈집처럼 허물어지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중 낚시제비꽃은 남쪽 지방에 흔하다. 그제 부산의 꽃동무께서 앞산에서 찍었다며 보내주어 옛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땅에서 바로 꽃줄기가 올라오고 낚싯바늘처럼 고개가 바짝 구부러지는 낚시제비꽃. 빈집에서 물을 참고 있는 수도처럼 비탈에서 불쑥 솟은 가느다란 꽃대와 그 끝의 묵묵한 꽃잎. 낚시제비꽃,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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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계적 재난도 견디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터진 반인륜적 범죄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를 고립시키더니 퍼질 대로 퍼져버린 반인권적 범죄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선언한 헌법국가에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조두순’을 넘어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까지 끊이지 않는 추악한 범죄가 이제 음지로 파고들었다. 아동 성폭행범의 대명사 ‘조두순’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성폭행·강제추행이라는 전통적 젠더폭력에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통·소지하는 새로운 젠더폭력으로 양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 성폭행범죄가 연속적으로 발생하자 정부와 정치권은 성폭력범죄 처벌 및 예방을 강화한 대책과 법안으로 성범죄자 신상정보 인터넷 공개, 전자발찌 부착 기간 연장, 성충동약물치료법, 성범죄자 등 흉악범 DNA 정보법, 공소시효 폐지 등을 내놓았다. 자유형의 상한도 15년에서 30년으로 상향하고 성범죄 양형기준도 높였다. 성범죄는 안전의 척도가 되는 위험인지의 징후범죄가 되었고 성형법 강화는 형사정책의 슬로건이 되었다.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자신도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응보감정이 살아나 괴물 같은 범죄자를 오래 가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한 형벌이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엄벌주의 형사정책을 부추긴다. 여기에 국가는 형벌권과 형사입법권으로 무력시위를 한다. 그러나 효과 없음은 날로 증가하는 범죄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성폭력범죄가 10년 만에 거의 2배나 증가하였다. 조두순을 대체할 자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중형주의 형사정책만으로는 성범죄율을 낮추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법정형뿐만 아니라 실제 선고형도 어마어마한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교도소가 포화상태라는 뉴스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당정이 내놓은 대책도 강성화 형사정책 일변도다. 형의 하한 설정 및 공소시효 폐지, 처벌 법정형 상한 확대, 재범의 경우 가중처벌 및 상한선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n번방 재발 방지 3법(형법,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 및 청소년성보호법 등 법개정과 피해자 보호 대책이다. 조두순 사건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다짐했지만 선거가 코앞이라 내놓은 소리로 들린다. 돈과 시간이 드는 근본적인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에도 미국보다 법정형이 턱없이 약하다거나 법원의 선고형량이 물러터졌다는 얘기뿐이다. 정치권의 이해가 딱 그 지점에서 맞아떨어져 돈이 들지 않는 법정형의 강화와 양형기준의 상향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처벌 입법의 공백을 메우고 일벌백계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성범죄가 중범죄임을 법전에 적어 놓는다고 단숨에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엄벌주의는 처벌의 확실성이 보여야 효과적이다. 법망을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범죄유혹을 떨치게 한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엄한 처벌에 겁먹을 자들이 아니다. 접속이 어려운 온라인 공간으로 숨어들면 처벌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적발하여 처벌하는 것에 그치면 수많은 ‘박사’의 후예들은 깊고 깊은 다크웹을 찾아 들어갈 것이다. 

당장 강력한 수사와 처벌로 급한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범죄 대책은 망라적이어야 한다. 제재수단만 총망라해서는 안된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가장 좋은 사회·복지·교육 정책이 가장 좋은 범죄정책이다. 중형주의 형사정책 일변도에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하지 못하는 사회,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왜곡된 성문화,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남녀불평등 사회에서는 지배와 권력의 과시로 표출되는 성폭력범죄, 성착취범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을 개인정보 보호와 익명성 보장이라는 선한 수단이 아니라 돈벌이의 악한 수단으로 악용할 기회는 열려있다. 거기에 남녀차별과 성 불평등의 사회구조가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성화 형사정책만 동원하는 정치, 법만 뚝딱 만들고 손 터는 정치가 아니라 누구나 존엄성과 존중의 대상으로 인정받는 사회, 성차별과 혐오가 없는 평등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로 바꿔나갈 정치다. 더디지만 긴 앞날을 내다보는 정치가 필요하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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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4월 7일 (출처:경향신문DB)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6일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지역·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엿새 전 정부가 소득하위 70% 가구에 최대 100만원을 주기로 한 재난지원금을 국민 전체로 확대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도 “당내에서 논의했고 정부에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전날 전 국민에게 1인당 현금 50만원을 지급하자고 말했다. 정의당도 1인당 10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긴급재난지원금을 ‘매표 행위’ ‘퍼주기 추경’이라고 공격한 제1야당이 180도 방향을 틀고, 70% 선별지원으로 조율한 여당도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자고 손뼉을 마주친 것이다. 지급 범위·금액과 시점은 4·15 총선 직후 국회에서 시작될 2차 추경 논의 때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긴급재난지원은 고려할 게 많은 종합행정일 수밖에 없다. 당초 정부가 구상한 ‘소득하위 50% 지급안’을 당·정·청 회의에서 중산층 70%까지 넓힌 것은 소비 진작을 위해서였다. 사용기간이 제한된 지역상품권과 선불카드를 지급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정부가 투입할 7조1000억원은 올 예산부터 구조조정해 짜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 비축을 이유로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사람들의 양보와 이해를 구한 경계선이 70%였던 셈이다. 반대로 여야에서 다시 100% 재난기본소득 제안이 나온 것도 그 70%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잣대로 삼은 건강보험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를 2018년 자료로 판단하고, 소득·재산·부양가족·맞벌이 여부를 복합적으로 따지며 형평성 시비가 일었다. 증빙 자료를 내면 수용키로 했지만, 하나하나 가부를 따지는 혼선과 조사시간 지연이 불가피하다. 이런 고민이 중첩되면서 여야 공히 전 국민에게 주자고 ‘합창’을 한 셈이다. 파당적 이해를 넘어, 빨리 지급해야 효과가 큰 ‘긴급성’과 국민 모두 피해자인 ‘재난지원’ 취지를 살려 백지에서 재검토해볼 만한 사안이다.

코로나19의 경제 충격파가 얼마나 크고 길지 가늠하기 어렵다. 취약계층과 흑자도산 기업의 현금성 지원이 한두번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살필 게 재정 여력이다. 긴급재난지원은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집행해야 한다. 전 국민 기본소득으로 시작한 재난지원금은 2·3차엔 힘들고 긴급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도 있다. 필요하면 SOC와 국방 예산까지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여권은 국민·야당과 소통하는 큰 리더십으로, 전시에 준하는 비상하고 창조적인 발상으로 이 위기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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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종암중등학교에서 교사가 온라인 원격수업을 하고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상 초유의 ‘온라인개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9일 고3·중3 학생들을 시작으로 20일 초등 저학년까지 순차적으로 원격수업이 시행된다. 그런데 6일 학교별로 시스템을 점검한 결과 곳곳에서 원격수업 준비 미비가 확인됐다. 처음 있는 일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학교 문을 연 후 이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새 교육방식으로 인한 교육격차 등 예상되는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6일 원격수업 준비 점검과정에선 적지 않은 문제가 노정됐다. 이날 오전 원격수업 지원 사이트인 ‘EBS 온라인 클래스’의 서버가 먹통이 됐다. 교육부 장관이 주재한 ‘온라인개학 지원 1만 커뮤니티 원격교육 선도교원 임명식’ 현장조차 통신 두절로 수분 동안 화면 멈춤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지원하는 ‘e학습터’는 지난 주말 서버 증설 작업 도중 작업자 실수로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올려둔 하루치 수업자료가 삭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육당국이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학습공백을 줄이겠다며 EBS 온라인 실시간 특강을 시작한 지난달 23일에도 접속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불통사태가 벌어졌다. 온라인수업을 위해 가장 기본으로 갖춰야 할 안정적인 서버마저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패드, 스마트폰 중 1개도 없는 스마트기기 미보유 학생은 22만3000명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중3·고3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스마트기기 대여를 7일까지 완료하기로 한 만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기기가 없어 수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차별 논란이 불가피하다. 

온라인개학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균질한 교육이다. 가정환경과 학교 상황, 교사의 준비도에 따라 온라인교육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최근 늘어가는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맞벌이가정 등의 경우 디지털기기가 있어도 교육환경이 갖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장애학생 중에선 온라인개학 안내조차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격교육이 교육격차를 벌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준비해야 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권고한 대로 교육격차 방지를 위해 EBS 등 원격수업용 프로그램을 수업에 활용하고 평가에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교육당국은 최대한 현장과 접촉하면서 문제점을 적극 보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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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들이 벌이는 ‘막장정치’가 가관이다. 최장집 교수의 주장대로 민주화 이후 정치 엘리트들은 마치 주식투자자들처럼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자산의 가치변동에만 관심이 있는 종자가 된 듯하다. 이들이 속한 정당들은 적당한 분화와 재편을 통해 양당 기득권을 유지·확장하고자 하는 좀비가 되어가고 있다. 유수의 정치학자들이 촛불 이후의 전망을 조금 더 예리하게 간파했었더라면 “촛불집회를 통한 정권교체는 광장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한 결과” “촛불혁명은 참여민주주의의 승리” “촛불혁명은 동아시아 최초의 명예혁명” 등 촛불시위의 신탁에 올린 상찬(賞讚)의 레토릭은 상당히 절제되고 순화되었으리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정당은 본질적으로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을 대변하고 드러나게 하면서 공익에 부합하는 정책대안들을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대중을 동원하는 조직이 정당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집권당이 되거나 반대당이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체제하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이러한 갈등을 완화 내지 통합하는 정치기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제가 바르게 작동되어야만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발전한다.

3년 전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촛불혁명’이 어쩌면 한국정치를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서 이후 전개될 정치에 실낱같은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장삼이사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 직접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라고 추켜세웠다. 당시 대통령의 메시지는 정치적 수사(修辭)라기보다는 협치의 틀을 실제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로 읽혔다.

돌이켜보면 협치는 한국정치의 토양 속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정치 아이템이다. 이젠 어느 당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곳곳에서 탐욕과 노욕을 주제로 막장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협치의 목소리가 이들에겐 우이독경(牛耳讀經)이겠다는 자괴감이 든다.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력(病歷)을 드러내고 치유하기는커녕 장막 뒤에서 이익의 공모(共謀)를 꾀하는 정치 엘리트들과 거기에 기생하는 사이비 정치‘꾼’들이 한국정치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불을 끄러가는 소방수의 절박함이란 찾을 수가 없다. 정치 엘리트들은 시간이 생명인 소방수가 마치 부잣집, 가난한 집들을 가려가면서 불을 끄는 것으로 믿는 외계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재난지원금을 갖고 ‘편가르기’를 할 수는 없다.

총선이 이대로 치러지면 그 후과는 ‘정치적 체르노빌’로 나타날 것이다. 첫째, 검증되지 않은 ‘불량품’들이 역대 어느 선거에서보다 많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각당 연동형 비례제 후보들의 경력을 보면 유권자들이 투표로 정치 엘리트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정언을 무색하게 만든다. 둘째, 코로나19 사태로 투표율이 낮을 것이기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대표성을 두고 계층·세대·지역 간 갈등이 깊어질 게 확실하다. 셋째, 대의정치의 어두운 그림자인 포퓰리즘의 빠른 확산이다. 위기 포착에 능한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만이 (낮은 투표율로 드러난) 침묵하는 다수를 대표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 후 한국정치는 이렇듯 정치 엘리트만의 리그로 고착화되고 부수적 피해를 일으키면서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해질 것이다. 작금의 한국정치에 분노한다면 ‘정치적 거리 두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심판해야 맞다. 정당이 아닌 ‘국가’를 지지하는 애국심을 간직한 정치의병(政治義兵)들이 정치좀비들을 방역할 때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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