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대 영상, 어느 쪽이 더 사랑받나. 수십년의 달리기 시합을 되짚어 보자. 지난주 “오래전 ‘이날’”에 소개된 경향신문의 옛 기사가 흥미로웠다. 1970년대 후반부터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며 한동안 영상이 앞서나간다. 그런데 1990년 3월30일자 경향신문은 “라디오의 인기가 되살아난다”고 보도했다. 그 무렵 ‘손수운전자’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그 뒤로 30년은 엎치락뒤치락이다. MP3플레이어와 팟캐스트(소리)가 유행했고, 스마트폰과 유튜브(영상)가 인기이며, 인공지능 스피커(소리)가 관심을 끈다.

소리냐 영상이냐, 대중없어 보이지만 일관된 흐름이 있다. 우리가 갈수록 바빠진다는 이야기를 나는 하고 싶다. 옛날에 컬러텔레비전이란 일가족이 의식을 치르듯 모여 앉아 시청하는 물건이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일과 중 따로 마련한 집이 많았다. 그 후에 어찌 되었나. 우리는 운전하는 시간에 라디오를 들었고, 일하는 시간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차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유튜브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를 한다. 소리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내내 우리는 뭔가 할 일이 있다.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모컨이 보급되기 전에는 가족 중 ‘서열’이 낮은 사람이 달려가 가부장의 취향에 맞춰 채널을 돌리곤 했다. 만화영화를 보고 싶은데 아빠 때문에 프로야구를 틀어야 했다는 슬픈 경험담을 종종 듣는다. 지금은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으니 이런 점은 좋다. 바쁜 중에도 소리나 영상을 즐긴다는 점도 괜찮다. 하지만 너무 바쁘게 사는 점은 문제다. 저녁 무렵이면 힘이 쏙 빠진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사람은 한줄한줄 주석을 찾아가며 책과 씨름하기 어렵다. 그럴 시간도 힘도 없다. 요즘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는 추세가 있다. 소리는 백색소음, 영상은 ASMR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풀벌레가 찌르륵찌르륵, 시냇물이 졸졸, 모닥불이 자작자작, 보일러가 웅웅, 도미노가 차르르, 슬라임이 꿀렁꿀렁. 넋 놓은 채 틀어놓으라는 소리와 영상이다. 외국에선 새티스파잉 비디오(satisfying video, 기분 좋아지는 영상)라고도 부른다. 유튜브 소개를 보니 공부할 때 집중을 돕고 잠잘 때 푹 자게 해준다고 돼 있었다. 요즘 우리가 어찌나 바쁜지, 책을 읽을 때나 잠을 잘 때에야 영상을 즐길 틈이 난다는 얘기 같다. 나는 허허 웃었다. 물론 나도 새티스파잉 비디오의 팬이다. 이래 봬도 나 역시 바쁜 사람인 것이다. 바쁘다고 옛날보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마스크를 쓰고 도심을 걸으며 안내문을 하나씩 읽었다. 거의 모든 곳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주로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시간을 단축한다는 내용이었고, 경영 악화로 폐업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미술관과 도서관엔 휴관, 병원엔 면회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문장은 짧고 간결했지만 문장 뒤 상황은 간결하지 않을 것이다. 생활이 조금 불편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삶이 무너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안내문 뒤에 감춰져 있을 사연과 풍경이 모두 합쳐졌을 때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생각해본다. 변화로 인한 충격은 바닥에서부터, 가장 약한 부분부터 올 것이다.

지난주에 개강을 했지만 등교를 못 하고 화상채팅 앱을 이용하여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을 듣기에 무리는 없었지만 화상채팅 특성상 개인 공간이 공개되는 게 불편했고, 눈이 피곤하여 집중하기가 다소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느낀 지점들이 누군가에겐 수업받기가 불가능한 이유가 될 것이다. 입술 모양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화상채팅으로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수업을 듣기 어렵다. 실시간이라 자막도 없다.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그럭저럭 간신히 유지되었던 것들이 비상 상황에서는 제일 먼저 불가능해지고 무너진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 요양병원 환자들이 집단감염에 먼저 노출되었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무료급식은 중단되었다. 바로 지금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그동안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 사회에서 약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계기로, 보수하고 더욱 탄탄하게 만들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백신이 만들어지고 이 상황이 종식된다고 해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안내문을 하나씩 읽어나가며 생각해본다.

<정은 소설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후보(미래통합당)의 일련의 발언들은 실수가 아니다. 전편과 속편이 온전한 극(劇)이다. 그의 프리퀄은 공안 검사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그의 발언은 세계관의 본격적 분출이다. 아들 취직 자랑, 육포 사건,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다”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 발언, 키 작은 사람의 ‘투표 걱정’….

압권, 아니 공포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관한 입장이다. 그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양형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범죄 가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호기심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양형 기준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강력한 범행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같은 당 이준석 후보가 “기술적 이해 부족”이라며 두둔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컴맹’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일반론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n번방’에서 벌어지고 있던 폭력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와 동일시하고 있는가”이다. 누구를 걱정하고, 누구를 무서워하는가. 호기심? 많은 여성 연구자들에게 성착취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은 상황과 마주하는 데서 오는 고통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고통을 느끼는데, 어떤 사람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까지’ 걱정하나?

황 후보처럼 ‘n번방’의 존재와 내용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보다 분노와 공포를 느끼는 국민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동일시한 호기심‘만’ 가진 사람의 인권 누락 가능성이 더 걱정이었고, 이는 양형 공정성 주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현행법 체제 안에서 최대한의 형량을 요구하지만, 요지는 이 사건에 대한 사법 운용자들의 인식이다. 형량은 그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맡았다가 40만명이 넘는 국민청원으로 교체된 오덕식 판사는 고 장자연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물이다. 이후에는 고 구하라씨를 상습적으로 구타하고(상해·협박·재물손괴) 불법촬영(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한, 최종범씨에 대해 전자에는 무죄, 후자에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 자신은 불법촬영물을 관람했다. 

범인의 성별과 인종에 대한 감정과 이해(理解)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 법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법 감정 이론대로라면, 오덕식 판사는 시민의 안전보다는 가해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굳이 불법촬영물을 관람한 이유도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폭력 영상물에 대한 인식은 성별 제도와 큰 관련이 있다. 남녀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얘기다. ‘n번방’ 사건은 신종 성폭력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성산업도 다양해진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여성의 얼굴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첩이 되어 군부대, 교도소, 대학가 등지에서 ‘눈요기’용으로 팔린다. 내가 아는 한, 이 제작자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쉽게 돈을 버는 경로가 있다. 

현행 성매매방지법의 규제 영역은 오래된 집결지(집창촌)였고, 이는 전체 성산업의 5%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와 남성 문화의 결합은 여성노동을 성애화하고 성애(sexuality)의 매춘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남성 문화에서 성 구매와 성폭력은 사소한 문제로 간주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성들이 좌절하고 공동체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검찰’의 진짜 성격은 이번 사건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심각한’ 성범죄 사건이 보도가 되면 남성 문화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나는 아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관심이다. 전자는 가해자와 선 긋기, 후자는 무의식적 옹호이다. 두 가지 모두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그들이 지은 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 여성 살해 장면을 촬영하는 스너프(snuff) 필름을 다룬 조엘 슈마허 감독의 <8MM>에서, 범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 괴물 아니에요. 어릴 적 트라우마?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좋은 교육 받은 사람입니다.”

<정희진 여성학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코로나19가 지구적 문제가 되었다. 이미 수만명이 사망했고 그 끝이 어디인지 예측 불가능하다. 백악관 질병관리 책임자가 미국에서만 10만~24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할 정도이니 상당한 기간을 더 견뎌야 할 것이다.

예기치 않은 전염병으로 거의 모든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중교통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발병이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시내버스 이용객은 25~35% 줄었고,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60~70%나 감소했다. 과거에도 사스, 메르스가 발생해 운송업에 타격을 준 적이 있지만 감소폭이 이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대중교통의 흔들림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버스 운행 감축에서부터 휴업 등 다양한 일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근로자의 임금 삭감과 실직 등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운송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증가할 것이다. 이용객 감소로 인한 손실이 워낙 커 당장 다음달 임금 체불을 걱정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시민의 발인 대중교통이 붕괴되지 않도록 생명줄을 지켜줘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긴급지원기금을 마련하면 좋겠으나 이것이 안된다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직간접적으로 도울 필요가 있다. 실제로 농어촌 지역의 수많은 영세 버스업체들은 담보능력이 없어 당장 급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버스업체가 승객 감소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도록 관련 규정을 한시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 운수사업법은 승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운행 횟수와 대수를 20~40%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평균 이용객 감소폭이 60~70%, 지역에 따라 90% 이상 감소한 현실에는 충분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현지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업체도 위기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 민영으로 운영되는 버스뿐만 아니라 준공영제를 채택 중인 서울·부산 등 6대 도시의 버스업체들도 비용절감 노력을 해야 한다. 이용객 감소로 수입이 크게 줄어들어 이미 책정된 준공영제 예산은 8~9월이면 고갈될 수 있다. 업체는 추경 등을 통한 정부의 경영 손실 보전 지원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겪으면서 더 급한 곳의 재정수요가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 ‘대중교통의 위생과 방역’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던졌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운송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대중교통이 바이러스 전파와 감염의 주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음도 이번에 알았다. 우선은 현장의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대중교통의 산업 위기와 위생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성낙문 | 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본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 그라피티 예술가 제프 세인트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의 한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동료 예술가 라이언 맥피와의 공동 작업인 이 벽화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둘러싸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눈동자가 그려졌다. 하지만 결국 바이러스가 꽃으로 변해 희망을 선사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AP연합뉴스

세상 종말을 다룬 영화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원인도 가지가지다. 이들 중에서 소행성 충돌이나 외계침공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구급증, 환경오염, 자원고갈, 식량부족, 생태계 변화, 전염병 창궐, 좀비, 문명붕괴 등. 그리고 이런 재앙들은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사태도 이런 재앙의 연쇄고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인구증가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지구의 인구는 20억명을 약간 웃돌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77억명이 되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개발주의는 땅을 점령하고 자원을 소비하며 야생 생태계를 갈아엎었다. 질병생태학자 피터 다작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재앙은 신의 장난이 아니다. 환경에 대해 인간이 도전한 결과이다.” 지구상에는 170만가지 이상의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이 야생동물을 숙주로 생존하는데, 인간의 개발욕구가 생태계적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침범하는 순간 일부 바이러스가 인간계로 넘어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건 바이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끝없는 소비욕구, 지구착취와 환경변화 등 세상종말을 향해 연쇄적으로 움직이는 시곗바늘이다. 인간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시곗바늘은 지금도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고, 단계별로 하나씩 새로운 위기상황의 카드를 꺼낸다. 우리가 타고 있는 뗏목을 잘라 연료로 삼으면서도 그 뗏목이 침몰할 수 있다는 걸 모두 모른 척했다.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설정하고,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산이 녹아내렸지만 우리는 그저 남의 일로 여겼다. 적어도 코로나19가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동안 위험한 줄도 모르고 방치해왔던 위기상황들에 눈떠야 한다. 울리히 벡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그 위험은 역설적이게도 성공적인 근대화의 과정에서 인간 스스로 초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의 산물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산업강국이 되는 과정에서도 매년 산업재해로 거의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회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국민 4분의 1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 매년 1만2000여명이 자살한다. 10대 자살자 숫자만도 200명을 넘는다. 학교가 진원지다. 사회가 만든 전염병들 속에서도 ‘물리적 거리 두기’같은 연대와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터널을 빠져나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를 넓고 밝게 바라봐야 한다. 코앞만 보던 시야를 넓혀 조망의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가 안 팔리고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코로나19는 미친 듯이 소비하고 퍼먹던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몇 주 동안의 칩거가 고통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나를 이해하는 틈새를 선물한다.

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이 바뀌어도 좋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사회적 실험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본도 멈춰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가스실’ 뉴델리 하늘색이 달라졌다. 말로만 듣던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있다. 재택근무도 나쁘지 않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개학이 관습적 학교의 판도를 바꾼다. 원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변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2020년 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간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긴 교훈을 이제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데 적용해 본다. 치솟는 확진자 커브의 기울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그대로 파멸로 치닫던 개발주의의 속도를 늦추는 데 적용한다.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물리적 거리 두기’라는 작은 결단과 행동이 코로나19를 이기는 힘인 것처럼, 대한민국과 지구의 미래를 살리는 첫걸음도 작은 결단과 행동이다. 

4월15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투표라는 작은 결단과 행동을 통해 ‘지구를 살리는 슈퍼맨’이 되어 보자. 관습이나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적 가치를 찾아 투표하자. 위기를 관리하며 먼 항해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어떤 정당과 후보가 그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을까?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3일 서울 도봉구에서 손자와 둘이 사는 이순자 할머니가 학교에서 보내온 온라인개학 안내 문자를 보며 “온라인 클래스가 뭔지, 어떻게 가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역사상 최초의 온라인개학이 다가왔다. 아직 개학 전이지만 이미 학교마다 여러 방법으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혼돈이다.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이 없어 현재의 온라인개학은 사용 가능한 모든 포털 사이트에서 내 준 한 칸 교실을 요령껏 잡아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마저 학습터에 입장하지 못하는가 하면 교사의 학습 영상과 자료가 사라지는 상황도 생긴다. 학부모에게 전달되는 공지와 안내도 백지에 가깝다. 겨우 안내받은 시간표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똑같은 시간표에 형식만 온라인수업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6, 7교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하루 종일 스마트기기만 마주하고 앉아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수업시수를 줄이고 강의와 과제 제출 등 여러 형식을 섞은 시간표는 불가능했던 걸까 싶지만 짧은 시간 안에 온라인수업을 준비해야 했던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만큼도 버거운 일이었겠다. 

그래서 아쉬운 건 교육부의 늑장 대처다. 온라인개학을 발표하면서 사전에 여러 상황을 검토하고 준비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불과 그 며칠 전에 온라인기기 현황을 조사하는 설문을 받은지라 믿기 어렵다. 지금 교육부가 말하는 원격수업에 대한 여러 일정과 계획도 어느 정도 즉흥적이고 일정부분 상황 모면적일 거라 의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온라인개학을 찬성한다. 뒤늦게 바이러스가 상륙한 미국은 시스템이라는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혼돈에 빠졌는데, 그 와중에도 교육부의 대처 능력만큼은 눈에 띄었다. 스쿨버스를 이용하여 취약계층 아동들이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학교를 통제하는 대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반면 그때까지도 우리나라는 ‘개학 연기’와 ‘수업일수 조정’ ‘수능 연기’가 교육 대처의 거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2주마다 연장, 심지어 정책 설문도 아닌 찬반 설문으로 결과를 정하는 무책임을 보였다. 교육 공백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어떤 안도 듣기 어려워서 답답했다. 이제 온라인으로나마 문을 열었으니 교육 문제에도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싶다. 

무엇보다도 온라인개학이 모든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가 있고, 원격수업이 불가능한 여러 계층의 학생들에 대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스마트기기는 이미 학교에서 대여가 가능하고, 데이터 사용에 대한 지원도 발표되었다. 어리거나 여타한 이유로 혼자 원격수업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돌봄이 필요하다. 이들을 양육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지원하는 것도 재난소득 이상의 대책이 될 터이다. 어쨌거나 기간 동안 가정 내에서 교육 지원이 이루어지는 만큼 학부모들에게도 과정에 대한 정확한 공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 문제가 있고, 여러 해결안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다양한 교육 소외의 문제가 쏟아지는 것도, 어쨌거나 교육부가 교육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형식으로나마 교육이 재개되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교육 사각지대가 발생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에 놀라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부디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해나가길 바란다. 공교육이 교육에 대해 어떤 순간에서도 책임과 의무를 가질 때 교육 바깥의 교육 불평등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예측 불가한 재난 상황에서 평등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현재의 혼란은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탈리아의 밀라노 지역 교민과 주재원 등이 전세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6, 7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나란히 47명을 기록했다. 하루 확진자 발생이 생활방역이 가능한 수준인 50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해외 유입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수도권 병원을 중심으로 소규모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감염이 폭발하면 유럽과 같은 확산세가 닥칠 수 있다. 

신규 확진자가 줄면서 방역의 초점은 자가격리자 관리로 옮아가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자가격리자는 총 4만6000여명이다. 지난 1일부터 모든 해외입국자에 대해 2주간 격리가 의무화되면서 자가격리자는 매일 수천명씩 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자가격리자는 최대 9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자가격리는 정부가 추진하는 강도 높은 거리 두기 대책의 하나다. 그러나 격리 대상자가 크게 늘면서 자가격리자 관리는 이제 방역의 최대 변수가 됐다. 

방역당국은 모든 해외입국자의 휴대전화에 자가진단 앱을 설치해 격리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발생 자가격리자는 앱 설치율이 60%에 그쳐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격리자 중에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외출하는 사례도 있어 온전한 모니터링이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피로감이 쌓이면서 자가격리 지침 위반자가 속출하고 있다. 자칫 감시망을 흩트릴 수 있는 아찔한 사례들이다. 답답하다며 산책하러 나갔는가 하면, 지하철을 타고 다닌 격리자도 있었다. 경남에서는 외출한 뒤 친구들과 식당에서 어울린 확진자가 경찰에 입건됐다. 이렇게 지침 위반으로 입건된 자가격리자는 75명이나 된다. 

정부가 모든 자가격리 대상자에게 전자팔찌(손목밴드)를 착용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팔찌 착용은 자가격리자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홍콩에서는 유사한 방법을 도입·시행 중이다. 그러나 전자팔찌 착용은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하다. 일부 이탈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자가격리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기조로 한 정부의 방역정책과도 배치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7일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은 챔피언”이라고 극찬했다.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은 정부의 민주적 방역체계와 시민들의 동참이 일궈낸 성과다. 자가격리자도 이에 걸맞게 수칙을 지켜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1차 TV토론회가 6일 열렸다. 경제위기 극복 방안과 복지정책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원내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정당은 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민생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패널들은 긴급재난지원금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거대 양당이 빠진 토론회는 아무래도 정치적 무게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크게 줄어들면서 TV토론회는 그나마 유권자들이 각 정당의 정책과 공약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여당과 제1 야당의 불참으로 이마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꼼수 위성정당의 폐해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거대 양당과 위성정당들의 ‘따로 또 같이’ 선거운동은 더 가관이다. 민주당과 더시민은 공동 출정식에 이어 쌍둥이 유세 버스까지 동원했다가 선관위로부터 저지당했다.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이 강조된 두 당의 버스는 디자인, 문구, 서체까지 똑같고 당명만 다르다. ‘4월15일’이라는 글자 중 1과 5만 유독 크게 부각시켰다. 민주당과 더시민의 정당 기호인 1번과 5번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다. 그런데도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선관위의 지적에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되레 반발하기도 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통합당과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통합당 선거 유세에 동행하는 한국당 인사들은 통합당의 상징색인 핑크색 점퍼를 뒤집어 입거나 기호만 가리는 꼼수로 둘이 한 몸임을 강조한다. 아예 기호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도 등장했다. 

지금처럼 정책과 비전이 사라지고 꼼수 대결만 난무하는 선거전은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키우고 민의를 왜곡할 뿐이다. 투표일까지는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선관위는 남은 기간에라도 엄격한 잣대로 거대 양당의 편법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 같은 혼란은 개정 선거법의 허점을 비집고 위성정당을 창당할 때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정도(正道)정치를 기대할 수 없는 거대 양당의 민낯을 확인한 만큼 총선 후에는 누더기 선거법을 반드시 손봐야 한다. 위성정당 창당을 막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정치가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주일 후 실시되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4년 전 또는 8년 전 총선처럼 이번 선거 결과도 다음 총선 즈음에는 우리 뇌리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대신 이번 선거는 ‘비례 꼼수 총선’ 또는 ‘코로나 총선’으로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례 꼼수’의 구구한 내용은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한다고 나서더니 이내 본전 생각에 50%만 득표율과 연계시키는 준연동제로 돌아섰다. 그것도 모자라 연동 비례대표 의석을 30석으로 제한했다. 뒤이어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초유의 비례·위성 정당을 만든 뒤부터는 아예 고삐가 풀렸다. 꼼수는 또 다른 꼼수를 낳았고, 편법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이 과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누명을 쓴 것이다. 비례성을 확충한다는 당초 취지는 사라지고 선거판을 어지럽힌 천하의 몹쓸 제도로 눈총받고 있다. 비례대표제 논란을 부른 것은 정치인들인데 죄는 제도에 뒤집어씌웠다. 특히 미래통합당은 이 제도가 다소 복잡하고 생소한 것을 빌미 삼아 잘못된 정보를 던지며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엊그제에도 “선거가 끝나면 이번 혼란을 일으킨 비례대표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비례제를 유린한 것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또다시 비례제를 희생양 삼으려는 것이다. 그나마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제마저 없었던 일로 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선거법 개정은 ‘공중부양’ ‘축지법’을 쓴다는 허경영씨 당에 국고보조금 8억4000만원을 한입에 털어넣어준 그런 허망한 규정을 고치는 것이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제는 통합당의 주장처럼 대통령제와는 맞지 않느니 또는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제도니 하는 요설로 치부될 게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1개국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 없이 전체를 비례대표로만 뽑는 나라가 25개국, 우리처럼 지역구와 비례제를 절충하는 나라가 6개국이다. 각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것, 즉 비례성을 강화하는 일은 세계적인 흐름이자 대세이다. 이는 또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도입을 제안·권고한 제도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4년 전 총선에서 득표율 25.5%를 기록한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41%를, 33.5%를 얻은 자유한국당이 40.7%를 가져간 것과 같은 불합리한 일은 시정되어야 한다. 표를 얻은 만큼만 목소리를 내고 힘을 갖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26.7%와 7.2%를 득표하고도 의석수는 12.7%, 2.0%밖에 얻지 못한 모순도 해결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소선거제 이점을 이용해 계속 힘을 가지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사회의 다양한 주장을 국가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 작은 소리도 외면하지 말자는 취지의 제도가 뒤로 밀려서는 안된다. 그것에 반대하는 주장이야말로 반문명적이다. 국민총화·일사불란의 시대 군소정당을 그저 혼란의 대명사로 간주하던 발상과 다름없다. 맘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차선 또는 차악을 내 손으로 직접 뽑아 여의도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재고할 때가 되었다. 한국처럼 좁은 지역에서 반드시 지역구 대표를 뽑는 것이 민주주의 구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거대 양당 지지자들의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일부 빠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정당 투표에 고민하는 유권자가 많다는 뜻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두 장 있다. 한 장으로는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으면 된다. 그러나 나머지 한 장 비례표는 반드시 비례대표제의 정신에 부합하게 행사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투표할 필요가 있다.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대표제 취지를 훼손한 당에 비례표를 던지는 행위는 이율배반이다. 이런 행태에 눈을 감는다면 꼼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향후 선거법 개정 논의를 위해서라도 비례제 훼손 행위를 심판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처음 원내에 진출했을 때 국회가 달라진 풍경을 기억한다. 메기 한 마리가 미꾸라지들을 긴장시켜 생기를 유지하게 하듯 참신한 소수의 목소리가 여의도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혹여 거대 정당들이 외면하는 기후변화나 차별금지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책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오는 15일, 그 일념과 기대를 갖고 나는 투표장에 들어설 것이다.

<이중근 논설실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침상에 쑥국이 올라왔다. 향긋한 쑥 내음이 입맛을 돋운다. 쑥국은 예전부터 가족, 친지와 함께하는 봄나들이 음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항복은 형제들과 어울리며 즐거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 밑에서 묵은 쑥 뿌리 싹트려 할 때면/ 향긋한 쑥국 작은 모임에 봄기운 가득했지”라고 노래했다. 조경은 “부엌 사람 쑥을 캐어 쑥국 끓이니/ 수저 가는 반찬마다 향기롭구나”라며 그 옛날 태평성대의 백성처럼 흥에 겨워 배를 두드린다고 하였다. 화창한 봄날의 행복한 정경이다.

그런데 정희득은 쑥국 끓이는 것을 보며 탄식한다. “여러 어르신들 물가에 모이셨고/ 지는 해는 저녁밥 지어라 재촉했지/ 작년 이맘때 즐기던 일 기억에 또렷한데/ 하늘 끝 먼 땅에서 눈물 쏟으며 쑥을 캐네.” 그는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 땅까지 끌려갔다. 겨울에 시작된 억류 생활이 해를 넘겨 음력 3월1일이 되던 날, 하인이 쑥을 뜯어온 것을 보고 지은 시이다. 포로가 될 때 모친과 아내는 바다에 몸을 던졌고, 부친과 아이들은 조선에 남겨졌다. 낯선 땅에도 봄은 오고 쑥이 돋는다. 하지만 쑥국을 나눌 가족은 곁에 없다.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이 며칠 전 지났다. 중국 시인 두목(杜牧)이 “술집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목동은 저기 살구꽃 마을을 가리키네”라고 낭만적으로 읊은 날이 청명이다. 하지만 정희성 시인은 유신 치하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황하도 맑아진다는 청명날/ 강 머리에 나가 술을 마신다/ 봄도 오면 무엇하리 /온 나라 저무느니.” 더없이 맑은 하늘이 이어지는 봄날,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어버린 오늘을 암울하게 떠올리게 한다.

단군신화의 웅녀가 격리를 견디며 마늘과 함께 먹었다는 것이 쑥이다. 한방에서 쑥은 매우 다양하게 쓰이는데, 특히 봄철에 유행하는 역병에 복용하는 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청명의 절기 음식인 쑥국과 쑥떡은 제철에 맞는 약이기도 한 셈이다. 정희성 시인의 시 <청명>은 이렇게 끝난다. “저물어 깊어 가는 강물 위엔/ 아련하여라 술 취한 눈에도/ 물 머금어 일렁이는 불빛.” 가족과 함께하는 쑥국 한 그릇에 일렁이며 빛나는 한 가닥 희망을 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규범이 보이는 자리  (0) 2020.05.06
어쩔 수 없는 멈춤  (0) 2020.04.22
쑥국을 먹으며  (0) 2020.04.08
용서가 허용되지 않는 이유  (0) 2020.03.25
매화를 만나다  (0) 2020.03.11
포용과 돌봄이 필요한 때  (0) 2020.02.2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경희궁에 핀 산수유. 권호욱 선임기자

북위 78도, 노르웨이 북쪽 스발바르 제도. 사람이 사는 지구의 최북단 지역이다. 북극 가까운 이곳에 2008년 국제종자저장고가 세워졌다. 식물 멸종에 대비해 종자를 저장·보존하는 시설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맡긴 종자 100만개가 보관돼 있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빗대 ‘씨앗 방주’로 불린다. 천재지변이나 전쟁·핵폭발 같은 대재앙에도 씨앗을 지키는 보루로 남을 수 있어 ‘인류 최후의 날 저장소’라고도 한다. 영하 18도를 유지하는 길이 120m·깊이 50m의 땅굴 기지인 이 저장고는 소행성 충돌에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내진 설계로 지어졌다.

한국에도 씨앗을 영구 보존하는 시설이 있다. 2017년부터 가동된 산림청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 종자보관소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있다. 영하 20도·습도 40% 이하를 항상 유지하는 지하터널로 지어진 점은 노르웨이 국제종자저장고와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식물 종자도 보관한다. 씨앗 금고라는 뜻의 ‘시드 볼트(seed vault)’가 공식 명칭인데 한국판 ‘씨앗 방주’라 할 수 있다. 2023년까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씨앗 30만개를 수집할 계획이다.

한국의 ‘씨앗 방주’에 중요한 종자가 새로 들어갔다. 전남 구례의 국내 최장수 산수유 시목(始木)의 씨앗이 엊그제부터 영구저장됐다. 지난가을 열매에서 확보해 말려둔 씨앗이다. 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에 있는 이 나무는 수령이 최소 수백년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구례군에 따르면 1000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는데 확인되지는 않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한 마을의 전설과 사연을 담고 있는 오랜 거목의 종자를 보존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산수유는 봄의 전령이다. 온 산이 노랗게 물든 구례 산수유마을 풍경은 봄의 상징이다. 소설가 김훈은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고 했다. 올봄에도 산수유는 흐드러졌지만 산수유꽃 축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마음이 불안하니 길을 선뜻 나서기가 어려워졌다. 씨앗을 방주 속에 고이 간직했으므로 산수유는 세세만년 만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올봄 꽃구경 못 간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차준철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