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페미니즘·인권 동아리 중심의 제2회 마녀행진 기획단이 7일 서울 마포구 에브리타임 본사 앞에서 에브리타임의 여성혐오 게시물·n번방 2차가해를 비판하고 윤리규정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에브리타임은 약 44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학생 커뮤니티 서비스다. 우철훈 기자

기본적으로 엄벌주의에 반대하지만, 성착취 범죄에 대해서는 좀 더 무거운 형량 부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이 지면에 쓴 적 있다. 형량이 낮아서 생기는 사회적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이었다. 불법촬영물 유포자와 웹하드 업체, 심지어 영상물 삭제 업체까지 공생 관계로 엮여 있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였다. 덕분에 디지털 성착취 산업의 면면이 널리 알려졌다.

무지해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혹은 사회와 문화에서 익힌 것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한 죄악에 대해 개인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성착취 범죄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화제를 모은 방송프로그램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을 장식하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숱한 기사들, 관련 문제를 다룬 스테디셀러 서적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의 비윤리성을 학습할 기회는 차고 넘쳤다. 한사코 귀 막으며 배울 기회를 거부해 온 개인은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텔레그램의 성착취 범죄방 운영자뿐만 아니라 돈을 내고 ‘즐긴’ 사람들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 기사를 접했을 때, 내용의 참혹성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훼손된 느낌이었다. 그 뒤 소셜미디어에서 ‘한강 5부제’라는 ‘패드립(패륜적 농담)’을 봐도 눈살 찌푸리지 않게 되었다. n번방의 소비자들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으니 한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편을 추천하는데, 가급적 수질오염이 덜 되게 공적마스크 판매시스템처럼 생년에 따라 요일별로 나눠 뛰어들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아이디어였다. 죽음을 소재로 한 농담에도 죄의식이나 불편을 느끼는 본능이 정지한 까닭은, 분노가 온몸을 장악한 것일 테다.

이 분노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분노는 더욱 커졌다. 방어적 태도를 앞세우는 일부 남성들이다. 크게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적은 숫자에 집착하는 유형. 텔레그램 성착취방 이용자수로 흔히 추산되는 26만은 절대 가능하지 않고, 1만 정도일 거라는 주장을 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한국남자 중 ‘그런’ 녀석들이 많지 않음을 입증하고픈 욕망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스스로가 (굳이) 그런 범죄자들과 다르다는 걸 드러내고 싶다면 숫자를 축소하는 데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갖지 않는 편이 나을 텐데. 공감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굉장히 수상쩍거든. 

둘째로, 피해자 가운데 ‘일탈계’나 돈을 바라고 덫에 걸려든 경우는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웅얼대는 유형이다. 시작이 그러면, 협박과 강간이라는 범죄에 대한 피해가 없던 일이 되나? 돈과 선물이라는 미끼로 유입된 청소년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은 오히려 범죄의 악랄함을 방증하는 것 아냐? 역시나 공감능력 부족해 보이고 굉장히 수상쩍다. 

정서적·경제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처한 여성 청소년에게 나쁜 손길을 뻗은 어른들을 생각하면 화를 참을 수 없다. 그리고 기사에 공개된 조주빈의 문자들. 그 현란한 가스라이팅(타인을 조종하는 정신적 학대) 기술은 어른인 내가 봐도 숨이 막히는데, 청소년 피해자들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쯤 되면 경이롭다. 사건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공감보다 자신이 속한(다고 믿는) 집단의 방어가 앞서는 사람들이.

나는 피해자의 회복과 우리 사회의 유구한 성착취 문화 근절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문화가 바뀌기 위해서는 성범죄의 양형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됐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은 계속됐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웹하드에서 텔레그램으로, 범죄 내용은 좀 더 끔찍하게. ‘유출’ 동영상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밝히며 공유를 부탁하는 문화도,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일부’ 남자들의 시선과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관습도, 제발 지금부터라도, 제발.

<최서윤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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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체분절적으로 사고한다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발전된 과학에 개체분절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과학에 익숙한 현대인들도 개체분절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의 한 예가 뇌와 관련된 증상의 원인을 뇌에서만 찾는 것이다. 뇌는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노폐물을 처리하며, 외부 환경과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신체의 나머지 부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뇌의 노화에서도 신체 다른 부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노년의 피 vs 젊은 피 

19세기에 젊은 개체와 나이 든 개체 사이에 피를 교환하는, 약간은 잔인한 수술 기법이 도입되었다. 혈액 속에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있어서 뇌를 비롯한 신체 장기들이 몸 전체로 신호를 전달하고 정보를 통합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나이에 따른 피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젊은 개체의 피를 나이 든 개체에 주입하면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이 촉진되고, 시냅스를 구성하는 핵심적 구조물인 스파인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마는 사건과 지식을 기억하고 공간을 탐색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부위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을 때 두드러지게 손상되는 대표적인 부위다. 반대로 나이 든 개체의 피를 젊은 개체에 주입했더니 해마에서의 신경세포 생성이 줄어들고, 학습과 기억 능력이 저하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나이에 따라 혈액을 순환하는 단백질의 양과 종류가 변하기 때문이다. 혈액에 있는 3000여개의 단백질을 조사한 르할리에(Lehalli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노화와 관련된 단백질들은 만 34세까지 늘어났다가 한동안 줄어든 뒤, 만 60세 전후로 다시 조금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만 78세까지 크게 높아졌다. 청년, 중년, 노년기에 혈관을 순환하는 단백질의 종류는 많이 겹쳤으나, 완전히 겹치지는 않았고 발현되는 양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어떤 장기에서 어떤 원리로 어떤 단백질들이 생기는지, 이 단백질들이 뇌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조금 살펴보자. 

■ 운동하는 근육이 보내는 신호

근육은 운동을 하는 동안, 여러 종류의 단백질과 대사 부산물을 내보낸다. 이렇게 분비된 물질들 중에는 가까운 거리를 잠시 이동하는 것도 있지만, 혈액을 따라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운동한 다음날 근육통을 일으키는 젖산(락트산)이다. 락트산은 해마를 비롯한 뇌의 각 부위에서 혈관의 형성을 촉진하여 에너지와 물질의 공급을 돕는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과 신체 활동량이 줄어드는데, 이런 변화는 인지 능력의 감퇴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운동 후에는 FNDC5라는 단백질이 쪼개지면서 해마의 성장인자를 조절하는 물질이 생긴다.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해마와 뇌척수액에는 FNDC5의 양이 적다고 한다. 반면 알츠하이머병의 모델 생쥐에서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약물을 주입하여 FNDC5의 양을 늘리면 인지 능력이 향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상의 연구들은 운동이 건강한 뇌 활동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식습관과 수면

뇌가 원활하게 동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공급이 매우 중요하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밖에 되지 않지만, 몸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0%나 소비한다. 뇌는 글루코스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글루코스가 부족할 때는 케톤체도 사용한다. 케톤체는 단식(예: 저녁 식사 후 다음날 아침 식사까지 12시간 동안의 단식) 기간 동안 간에서 생성된다. 케톤체는 오랫동안 굶은 후나,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인슐린 저항성을 가진 경우에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무지카-파로디(Mujica-Parodi) 등의 연구에 따르면, 밤 동안 단식을 한 사람이나 케톤 이스터(체내 케톤체 농도를 높여주는 물질)를 섭취한 사람들의 뇌에서는 서로 다른 뇌 부위들 간의 소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통상적인 식사를 하고 케톤 이스터를 섭취한 사람들의 뇌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관찰되었다. 서로 다른 뇌 부위들 간의 안정적인 소통은 뇌의 노화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야식하지 않는 식습관도 뇌의 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노폐물 제거도 중요하다. 노폐물을 담고 있는 뇌 구석구석의 액체(간질액)는 뇌동맥의 맥박에 힘입어 뇌척수액으로 들어가고, 뇌척수액을 통해 노폐물이 뇌 밖으로 나간다. 나이가 들면 맥박의 힘이 약해지면서 간질액이 뇌척수액으로 들어가는 효율이 떨어진다. 뇌척수액을 통해 노폐물이 청소되는 과정은 잠을 잘 때 활발하다. 그래서 간헐적인 수면 부족과 불규칙적인 수면은 인지 능력의 저하를 부추기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 생활습관과 뇌의 노화

이상의 연구들은, 뇌의 노화라는 게 뇌만 늙는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뇌의 노화는 몸 전체의 노화와 얽힌 현상이며 평소 먹고 자고 운동하는 생활습관과 긴밀히 상호작용한다. 노파심에 보태자면, 이 글을 읽고 케톤 이스터를 먹거나, FNDC5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다소 이를지도 모르겠다. 완경기 후에 약으로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이는 것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는 것처럼 위 물질들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액 속의 모든 단백질을 정교하게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고, 임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져서 수십년 안에는 좋은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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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으로 이송돼 치료중인 중증장애인 5명을 돌보는 유은희 간호사가 음압병상으로 올라 가기위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다. 이석우 기자

KBS가 2013년 만들고 미국 ABC방송과 일본 후지TV가 리메이크한 드라마가 있다. 똑같은 이름으로 히트한 <굿 닥터>이다. 주인공은 모두 자폐증을 앓으며 힘든 가정환경을 딛고 자란 천재 레지던트이다. 무대만 소아외과(한·일)와 종합병원(미국)으로 나뉠 뿐이다. 드라마엔 생명을 살려내는 의술, 피 말리는 임기응변, 의사들의 헌신·성장과 사랑, 진실되고 따스하게 환자·가족을 대하는 맘 씀씀이가 그려진다. 의사 앞에 ‘굿(Good)’을 붙이는 이유는 또 있다. 3국의 병원·의료보험 체계가 다르지만, 돈벌이보다 사람을 우선하고 병원 문턱이 낮은 점이다.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유독 흥미롭게 이어본 의학 드라마였다.

좋은 의료시스템은 공통점이 있다. 의료진 실력이 받쳐주고, 과잉진료가 없으며, 싸고 접근하기 편해야 한다. 친절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나라마다 코로나19와 싸우며 절감하는 굿병원·굿닥터의 교범일 테다. 국내에서도 이 담론은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험지로 달려간 의료진 봉사는 이미 세계가 칭송하고 있다. 여기에 사람을 넘어서 커져가는 의제가 있다. 무서운 감염병을 겪으며 그 존재감을 곱씹는 공공병원이다. 비용·위험을 따지는 민간병원으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힘이 부치고, 재난 대응의 허점도 목도한 까닭이다. 진주의료원이 문 닫은 서부경남에서 공공병원이 총선 이슈가 된 것도 사회안전망의 빈자리가 크다는 방증이다. 

광주시가 8일 음압병상을 충분히 갖춘 광주의료원을 2024년까지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갓 출발한 공공의료지원단도 상주시키는 ‘감염병 특화병원’이다. 인천시는 영종도 인천공항 옆에 감염병 전문 종합병원을 짓겠다고 했고, 대전시는 대전의료원 예비타당성조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광주·대전시는 처음 세우는 공공병원부터 감염병 컨트롤타워로 구상한 셈이다. 현재 국내 공공병원은 200개가 넘는다. 국립대·보건복지부·근로복지공단·국방부·국가보훈처·경찰청·지방정부에 속한 공공의료기관을 합친 숫자다. 다시 확인된 공공의료 장점은 살리고, 따로국밥처럼 운영한 시스템은 효율성을 높일 때가 됐다. 코로나19가 크게 바꿀 세상, 공공병원도 더 협업하고 촘촘해져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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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가게들이 어렵고 지갑이 홀쭉한 시대다. 한 젊은이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어리숙한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찾아갔다. 물건을 쪼끔 사고 5만원짜리 위조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삐뚤빼뚤 4만원이라 적힌 지폐를 꺼내더니 거스름돈이라며 내밀더란다.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면 큰코다친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만 봐도 단톡방에 이모티콘을 자유자재 구사하고 장남이 가짜뉴스 올리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 꾸짖기도….

엊그제 일이다. 국수가게에서 친구랑 밥을 먹고 나왔는데 우체국에서 택배 계산을 하려다보니 지갑이 주머니에 없다. 혹시나 해서 국수가게에 전화했더니 테이블에 그대로 있다는 거다. 지갑에 명함이라도 넣어두어야 하는데, 수염 얼굴이 명함인 뉴욕 노숙인 스타일. 돈도 좀 들어 있었다면 지갑을 못 찾았을까. 우리나라 사람들 정직하고 도덕성도 높은 편이다. 일부 때문에 전부를 비하해선 곤란하다. 해외를 여행해보면 안다. 손에서 떠난 물건은 남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눈앞에서도 돌려주지 않는다. 가난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든다. 가난이 폭발하면 유혈 충돌이 일어난다.

홀쭉 지갑을 불룩 지갑으로 만들 마술이 시방 필요하다. 임대료가 밀리고 쌀이 떨어진 집들이 있다. 재난소득은 무차별로 나누되 넉넉한 집안에선 기부를 하는 문화가 정착했으면 싶다. 장차는 기본소득의 시대가 와야 한다. 한 해 농사 지어봤자 약값, 입원비 충당하느라 ‘쌤쌤’인 농민들을 봐도 그렇다. 쌀과 배추와 양파, 고추와 무와 마늘이 없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까. 예술가들도 그래. 우리 사는 골목에 집을 둔 예술가들이 없다면 마을살이가 얼마나 밋밋할까. 대다수 예술가들은 그러나 궁핍하다. 글로 벌어먹고 사는 작가들은 정말 열 손가락 안. 예술가들의 삶이 안정될 수 있는 정책이 뒤따라야 하겠다.

잠깐 지갑을 잃어버렸던 국수거리에 꽃들이 만개했다. 지갑이 꽃송이로 불룩해지는 상상을 했다. 꽃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꽃잎 한 장 두 장 지폐 삼아 국수를 사먹는 꿈을 꾸어본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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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3월31일 (출처:경향신문DB)

시인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단락은 강렬하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중략)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시인은 세계대전 후 유럽의 황폐한 상황을 그린 것이나, 내게는 감추고 싶은 것들이 드러났을 때의 심정을 이야기한 것으로 읽힌다. 그 4월이 왔다. 선거의 달이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열기는 예년 같지 않다. ‘일시멈춤’ ‘거리 두기’ 등으로 국민은 불편하고, 경제도 어렵다. 이 와중에도 뜨거운 이름들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의 홍역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검찰은 ‘피의사실 유포’ ‘별건수사’ 등의 비난에도 그야말로 탈탈 터는 수사로 조 전 장관은 물론 부인, 동생, 조카 등을 법정에 세웠다. 검찰 수사가 얼마나 공포스러웠으면 “무소불위 검찰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여론이 드세지면서, 되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개혁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기도 했다. 반면, 국민들은 힘센 자들이 공유해온 권력의 대물림 과정을 보고 분노했다. 주거니 받거니, 자녀의 ‘스펙 쌓기’가 그렇게 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경악했다. 누군가는 감춰졌으면 했던 일들일 것이다. 이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 ‘윤석열 검찰’에 지지와 응원이 이어졌다.  

‘조국 사태’는 진보의 균열도 불렀다. 과도한 ‘조국 구하기’에 실망한 이들이 하나둘 ‘진영의 담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덕적 흠결이 분명한 상황에서 ‘조국 수호’에 몰입하는 듯한 정권의 모습에 실망한 결과일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저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를 통해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선 핵심에 집중하는 최소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 교수는 “최소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e메일로 답했다. “검찰개혁에 동의할 사람이 절대다수임에도 특정 인물을 내세워 그 사람이 아니면 검찰개혁을 못한다는 식의 접근법은 최소주의와는 거리가 먼 도발적 여론몰이다. 진영 간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에 집중하라”는 주문이다.    

윤 총장에게도 ‘4월’이 왔다. 선거를 앞두고 장모와 부인 비리 의혹이 터지고, 최측근 현직 검사장이 언론과 유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야당은 연일 “윤석열 때리기” “민주당이 조국 살리기에 나섰다”며 비판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조국 사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표심을 얻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들은 하나같이 사안이 중하다. ‘300억원대 사문서 위조·행사’ ‘동업자의 수익 가로채기’ 등 보통사람이라면 꿈도 못 꿀 일들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늑장수사’ 의혹 등은 사실이라면 조국 사태 때 국민적 분노를 샀던 ‘합법을 가장한 특권의 향유’와 다를 바 없다. 조국 사태 내내 의심받아온 검찰과 특정 언론의 유착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야당이나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정치적 프레임’으로 폄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들 사건을 대하는 윤 총장의 태도는 석연찮다. 그는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한 대검 감찰본부장의 감찰 개시 요구에 반대했다. 시민단체의 고발까지 있는 사안이 아닌가. 그렇다면 감찰은 수사에 앞서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신중론을 폈다. 가뜩이나 윤 총장 가족 관련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장모에 대한 기소는 사건 발생 7년 만에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연루 의혹이 제기된 윤 총장 부인은 검찰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100명의 검사·수사관을 동원, 70여곳을 압수수색하며 밀어붙이던 조국 수사와는 사뭇 다르다. 급기야 검찰 수사관이 내부통신망에 수사 공정성을 이유로 윤 총장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윤 총장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정농단 수사 등을 통해 보여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함’ ‘권력에 굴하지 않는 수사’는 국민 모두가 아는 ‘윤석열의 원칙’이다. 대통령에 대한 ‘충심(忠心)’ 발언을 통해 “대통령 측근 비리는 읍참마속하기 어려워, 정확하게 수사해서 도려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검찰’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측근 비리는 도려내야 한다. 그게 검찰이 지켜내야 할 ‘윤석열의 원칙’이다. 

시인 신동엽의 4월은 ‘또 다른 4월’이다.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거짓과 불의를 벗어던지고, 정의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윤 총장의 4월은 엘리엇의 4월이 아닌, 신동엽의 4월이 돼야 한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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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인 지혜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다. 지혜는 학교에서 온라인개학에 대한 아무런 공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권호욱 기자

아이는 누워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이라고 했는데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싶게 작은 체구였다. 조막만 한 얼굴의 절반 이상은 인공호흡기가 덮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출퇴근길에만 마스크를 써도 코 옆에 자국이 생기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렇게 24시간 호흡기를 끼고 생활하고 있다.

골형성 부전증과 러셀실버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는 3년 전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만난 건 온라인개학 이후 교육격차가 더 커질 취약계층의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장애학생에게 절실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아이는 3년째 화상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방문교육을 통해서라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친구들이 소풍을 갈 때 근처에서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교는 지침과 안전을 이유로 그 어떤 대면접촉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는 책 읽기나 카카오톡 메신저 등이다. 그날도 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누운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세워져 있는 책을 읽어내려가는 식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도 꿈이 있어요. 누워 있고 아픈 아이라고 꿈이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두어 달 전에 만났던 50대 어머니가 떠올랐다. 경기도의 한 반지하에 살고 있는 한부모가정으로, 아이 다섯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습기로 눅눅한데 3~4년 전 폭우로 하수구가 역류하면서 부엌 장판 등은 볼썽사납게 우글거렸다. 침수로 물이 스며들어, 썩어 무너져내린 장롱을 버리고 플라스틱 서랍장을 구해왔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분이었다.

취재 말미에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직까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한껏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이라며 낯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처럼 망설였다. 그러고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대신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졸업하면 군대를 바로 갔다와 돈을 벌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두 만남이 머릿속에서 겹쳐진 것은 우리 사회가 과연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곳인가라는 물음에서다. 

꿈은 앞으로 언젠가는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희망을 담는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더라도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동기로 작용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꿈은 곧 앞날을 뜻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살아갈 날이 있다고 항변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미처 앞날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고된 삶을 고백했다. 아프다고, 가난하다고 꿈이 없겠는가.

아이의 꿈은 작가라고 했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느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띄엄띄엄 학교에 가더라도 세상과 연대하고 어울리며 살고 싶은 이유다. 반지하에 사는 어머니도, 그의 아들도 꿈꾸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생계에 치여 미뤄두거나 잊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이 품은 꿈을 지켜줄 수 있을까. 꿈꾸는 일이 꿈같은 일이 된 사회, 2020년 우리의 모습이다.

<이성희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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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LG 셰이커스의 강을준 감독은 강한 경상도 억양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니갱망(니가 갱기(경기)를 망치고 있어)” “헤이~ 쌰랍!” “니들이 스타야?” 같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는 경기 중간 긴박한 작전타임에도 선수들을 앞에 두고 강렬한 말 한마디를 꼭 하는 감독이었고 그런 모습은 농구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영웅이 필요 없어! 승리할 때 영웅이 나타나!”이다.

요즘 영웅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35%의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의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 우승자 이름이 임영웅이었고, NCT 127이 최근에 낸 노래의 제목 또한 ‘영웅(Kick it)’이었으며 쏟아지는 속보 속 사투를 펼치는 의료진을 향해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영웅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추적단 불꽃’이라는 새로운 영웅이 생겼다. ‘n번방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 결국 수면 위로 올리고 성범죄 집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들은 조주빈이 검거되기 전까지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진정한 영웅은 모든 것이 해결된 뒤 저절로 등장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992년 첫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한국에서 가장 저명하고 오래된 시사 프로그램이다. 문제적 사회 이슈에 대한 과감한 접근과 용감한 취재,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한 다층적인 분석, 책임감 있는 보도와 새로운 대안의 모색까지 튼튼한 구조의 에피소드들이 매주 방송된다. 거기에 매회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서스펜스 가득한 연출과 남성 진행자들의 연극적인 모놀로그가 더해져 30년 가까이 한결같은 포맷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가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에피소드 ‘악마의 시그니처’를 시작으로 나는 이 방송을 더 이상 전과 같은 마음으로 애청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정황을 생생하게 되짚는 진행자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목소리는 서스펜스보다는 위화감이 느껴졌고, 범죄자를 ‘악마’로 규정한 뒤, 그의 생애와 주변을 신비롭게 추적하고, 살인수법을 낱낱이 분석하는 결말은 시청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된 ‘벗방 카르텔’ 편에서는 해당 불법 행위의 가담자를 제보자로 등장시켰고, ‘n번방 사건’ 편에서는 검거된 범죄자를 ‘괴물’로 표현하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사건을 탐사의 관점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 에피소드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장면은 ‘벗방’의 장소를 세트로 구현하고 그 안에서 마치 쇼를 하듯 피해자가 존재하는 화면 너머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진행자의 불필요한 퍼포먼스였다. 사안의 심각성을 위협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피해자들이 소재로만 이용된다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여성들의 공론화가 없었다면 범죄로 인식조차 되지 못했을 ‘n번방 사건’을 통해 각 언론사는 저마다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보도원칙을 만들어 실행 중이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자극적 보도와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서술을 지양해 2차 가해를 경계하고, 피해자들을 향한 연대 및 사회적인 위로를 촉구하며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인 근절을 위한 기획 보도 또한 쏟아진다. 실제로 일어난 범죄 사실을 다룬다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범죄를 해석하고 그들이 이 사회에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여론의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당연한 합의가 지금의 흐름대로 꾸준히 정착되길 희망한다. 세상에는 극적인 반전과 스릴, 영웅의 화려한 활약이 필요 없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제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기법을 따르지 않아도 분노하고, 연대하는 타이밍과 방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복길 |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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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8일 클럽과 룸살롱, 콜라텍 등 유흥업소 400여곳에 대해 오는 19일까지 사실상 영업 중단 명령을 내렸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유흥업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유흥업소발 집단감염 우려가 현실화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최근 사흘 연속 50명 안팎을 유지하며 안정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급증하는 ‘제2차 파도’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업소들이 코로나19 확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며, 당국은 마지막 불씨까지 차단해야 한다. 

서울시가 이날 영업 중인 422개 유흥업소에 대해 집합금지 명령을 내린 배경은 이해가 된다. 유흥업소는 영업 특성상 공간이 폐쇄적이고 밀집도도 높아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의 강남 유흥업소에서는 이미 종업원과 손님 등 100여명이 접촉자로 분류됐고 일주일 새 3차 감염까지 이뤄졌다. 클럽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물리적인 거리 두기는커녕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고성을 질러 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부 젊은이들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무분별한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할 만하다. 서울시의 조치는 정부가 고강도 거리 두기를 19일까지 연장한 것과도 맞다. 정부는 이 기간 실내 체육시설과 유흥시설, 종교시설, PC방, 노래방, 학원 등엔 운영 중단을 권고하고, 불가피하게 운영할 경우 철저한 예방수칙을 지키도록 했다. 서울시 유흥업소 2146곳 중 80%도 이미 휴업 중이다. 

전문가들은 증상이 미약한 젊은이들이 감염 사실도 모른 채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조용한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던 당초 판단과 달리 최근엔 해외에서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젊은이들도 감염 후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노인에 비해 사망 확률이 낮아도 면역반응이 무너지면 급속히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야 한다.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협조뿐만 아니라 정부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유흥업소 관리는 지자체에 맡겨져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통일된 대책이 필요하다.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많은 업종이 휴업하며 코로나19 극복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유흥업소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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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과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초기 상담과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7일 코로나19의 노동 부문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로 전 세계 노동자 33억명 가운데 81%인 약 27억명이 해고, 임금 삭감, 노동시간 단축 등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ILO는 올해 2분기 전 세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6.7% 줄어들 것이라며, 이는 1억9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ILO의 경고는 대공황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상황은 예측보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ILO는 지난달 발표한 올 세계 평균 실업자 2500만명보다 더 늘어난 예측치를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ILO의 분석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후반 2주 사이에 약 1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같은 기간 프랑스에서는 400만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영국의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최근 몇 주 사이 10배로 늘었다. 서구 경제가 고용 빙하기에 들어선 형국이다. ILO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실업대란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다음주부터 직원 70%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무급휴직을 실시한다. 이스타항공은 직원 300명을 구조조정키로 했다. 여행, 숙박, 제조업에서도 구조조정이 거론되고 있다. 직장갑질119에는 3월 이후 해고·권고사직 사례 신고가 크게 늘고 있다. 해고를 막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에는 하루 2000건 안팎으로 신청이 폭증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여파로 지원금 규모를 크게 늘렸으나 신청자의 요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고용지원금이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에 국한돼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정 대책이 필요하다.

감염병위기는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경제위기는 고용위기를 부른다. 그러나 노동자 해고가 위기 극복의 해법은 아니다. 일자리가 유지될 때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어떻게든 해고는 막아야 한다. 정부의 통 큰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ILO는 보고서에서 경제위기 대책으로 노사정 대화를 통한 해결을 제안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서구와 달리 손쓸 여력이 충분하다. 정부는 적극적 고용안정책을 통해 해고 방지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최대한 해고 회피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자는 해고를 막기 위해서라면 급여 삭감, 순환 휴직제 등을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노사정이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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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4월 9일 (출처:경향신문DB)


정말 저질이다. 경기 부천병에 출마한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가 “2018년 5월에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건 아세요”라며 이런 말을 했다. 차마 옮기기 힘든 표현이다. 그가 언급한 기사는 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제1야당의 후보가 아무 근거도, 확인도 없이 이런 황당한 얘기를 TV 후보토론회에서 버젓이 내뱉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있는 때다.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지난해 4월엔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징하게 해 처먹는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가운데)이 9일 오전 국회에서 같은 당 김대호·차명진 후보의 막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당은 여론이 심상치 않자 8일 차 후보를 제명키로 했다. 제명이 확정되면 후보 자격이 박탈된다. 통합당은 이날 오전엔 ‘세대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대호 후보(서울 관악갑)를 제명했다. 그는 “3040은 무지” “나이 들면 다 장애인”이라고 특정 세대를 돌아가며 비하했다.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막말을 이유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제명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으로 하루에 두 명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서둘러 비판여론을 잠재우려는 심산일 테지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다. 차 후보 같은 사람에게 공천장을 준 것부터 그간 그가 내뱉었던 숱한 세월호 유족 모독 발언들에 대해 당이 면죄부를 준 거나 다름없다. 당 지도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통합당의 막말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유독 이 당에 막말과 설화가 줄을 잇는 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 출마한 민경욱 후보는 20대 국회 최악의 막말 정치인으로 지탄받았지만, 공천관리위원회의 거듭된 반대에도 결국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막말 전력자를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했으나 다 빈소리였다. 황교안 대표 등 당 지도부까지 걸핏하면 막말 퍼레이드에 가세하는 판이니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없는 분위기도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언어는 공공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다른 어느 곳보다 품위를 갖추고 절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저질들은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이 못한다면 유권자가 가려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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