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가격리 대상인 해외 입국자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KTX 전용칸에 한 해외 입국자가 홀로 앉아 있다. 코레일은 해외 입국자와 일반 승객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용칸과 일반칸 사이의 한 칸은 빈 객실로 운영한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자가격리자의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정부가 위치 확인용 손목밴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상황이 방역에 중대한 고비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어렵사리 통제를 유지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손목밴드는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서 쉽게 용인해서는 안된다.  위반자에게 법과 규정에 근거한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격리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단다는 것은 이들을 모두 잠재적 위반자로 간주하는 명백한 차별이다.  

바이러스를 막는 것만이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유일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인권과 자유, 법치를 지키는 것도 방역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같은 시민사회의 가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과 무수한 희생을 통해 인류가 이뤄낸 업적이다. 방역을 이유로 이 같은 가치에 역행하는 조치를 쉽게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국민들에 대한 통제를 최소화하고 개방을 유지하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신속하게 감염자를 치료하는 기조를 유지해왔으며 이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국적 자유주의 모델’을 통해 입증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기시하던 국가통제, 공적영역의 확대, 전자 프라이버시 침해 등이 일상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방역정책에는 이미 다른 나라들이 참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통제와 감시가 포함돼 있다. 또한 한국의 상황이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만큼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격리자가 될 수 있다. 언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단절되고 고통스러운 2주를 보내야 할지 모른다. 격리자들은 ‘바이러스 숙주’가 아니라 같은 사회구성원들이며 피해자들이다. 

이들에게 손목밴드를 채워 일탈을 막으려는 차별적 발상보다 격리기간을 잘 견뎌내도록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는 것이 위기 극복에 필요한 성숙한 시민의식일 것이다.

<유신모 정치부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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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식되던 시절, ‘미감아’란 말이 있었다. 한센인들의 자녀들은 아직 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로 불렸다. 유전병이 아님에도 이들은 언젠가 걸릴 아이들이었다. 한센인들은 한국전쟁 시기 불안과 공포 속에서 공동체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집단학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소록도에서 여성이 임신을 하면 섬을 나가거나, 낙태를 선택해야 했다. 말이 선택이지 병든 만삭의 여인이 섬을 떠나 홀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기에, 상당수는 낙태를 선택했다. 식민지 시기 도입돼 전염병을 범죄화했던 조선나예방령은 해방 이후 법 자체가 개정되었어도, 곳곳에 궤적으로 남아 한센인들을 격리하게 했다. 한번 만들어진 통제의 법과 장치, 낙인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발생할 경우, 사회는 희생양을 찾았다. 공포·혐오의 대상과 그 해결방식은 중국인 입국 통제 논란으로 시작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다.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더욱 강력한 통제기술을 원한다. 어느새 당국은 자가격리 중 발생하는 이탈자 관리를 위해 전자팔찌 도입 논의를 진행 중이다.

시민들이 전자팔찌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니 손목밴드로 용어를 듣기 좋게 바꿨다. 지난 8일 현재 자가격리 중인 사람은 5만1836명, 그중 무단이탈로 사법처리가 진행 중인 사람은 75명이다. 0.14% 남짓의 일탈적 행위로 절대다수의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로 취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절대다수의 격리자들은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혹은 해외에서 귀국해, 감염의 가능성만으로 본인들의 일상을 기꺼이 포기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격리하는 분들이다. 신속한 진단과 시민들의 철저한 자가격리로 1인당 전염률을 떨어뜨려 우리는 봉쇄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촛불로 만들어진 민주사회는 또 다른 미감인들을 만들어내며, 이들에 대해 정보기술에 의거한 격리와 준범죄화를 준비하고 있다. 전염병,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는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권보호일 것이다. 그러기에 평시에는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정책과 기술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명목으로 도입된다. 하지만 유엔의 시라쿠사 원칙은 재난 등 긴급 상황에서 자유를 제한할 경우조차 법에 근거하고 있는지, 불가피한지,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수정 가능한 것인지, 차별적이지 않은지, 한시적으로만 실행되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 사회가 자랑하는 민주사회의 투명성, 개방성은 과학적 근거와 원칙, 시민의 신뢰와 참여를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시민을 미감인으로 몰고 준범죄자화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과 지속 가능한 방역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자가격리자 8만~9만명에게 누가 일일이 직접 접촉하면서 전자팔찌를 채울까?

근대에 태동한 인권의 잣대는 때로는 초유의 생체적 재난과 디지털 감시사회 앞에서 무력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문명사회라면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마지막 보루는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는 혐오, 두려움에 기반한 감시기술의 삶을 택할지, 혹은 냉철한 이성에 기반해 따뜻하고 창의적인 연대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현재의 선택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뉴노멀이 될 것이다.

<주윤정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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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슈트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매진 않았지만 가죽 재질로 된 백팩을 메고 있었고, 구두도 깨끗했다. 회사에서 막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았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햇빛 한번 쐬지 못한 사람처럼 피부가 희멀겋다. 남자는 한참 동안 편의점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캔 커피 하나를 골라 카운터에 내밀었다. 정용은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포스기를 찍었다.

“이거 원 플러스 원인데요. 하나 더 가져오셔도….”

남자는 정용의 말에 다시 느리게 캔 커피 하나를 더 가져왔다.

“이건 그쪽이 드세요.”

정용은 남자가 내미는 캔 커피를 받고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남자는 편의점 내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면서 캔 커피를 마셨다.

정용은 캔 커피를 무연히 바라보았다. 입맛이 쓰고, 약간 현기증도 느껴졌다. 오전 10시부터 근무했으니까 꼬박 12시간째였다. 정용은 원래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만 일했다. 오전 근무자가 있었는데, 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오십 대에 접어든 점장은 그 시간대 알바를 바로 뽑지 않았다.

“내가 하지 뭐. 장사도 안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점장은 자주 정용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른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고, 세무서에 다녀와야 한다고,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다며, 계속 정용에게 대타를 부탁했다. 정용은 그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하지 못했다. 알바들의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PC방들은 문 닫은 곳이 더 많았고, 카페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극장에서 한꺼번에 밀려난 사람들도 대거 알바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전염병의 나날. 고용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알바들의 고통은 더 분절된 형태로 오는 것 같았다. 고통도 시급으로 왔다.

정용은 남자가 건넨 캔 커피를 따 한 모금 마셨다. 남자는 정용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는 견고한 직장인. 지금 시간 말고, 지금까지 쌓아온 나머지 시간으로 급여가 결정되는 삶이란 무엇일까? 정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정용과 남자의 시간의 크기는 엄연히 달라 보였다. 

두 명의 여고생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여고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정용에겐 또 낯설어 보였다. 요샌 다들 학교에 안 가지 않나? 여고생들은 한참을 컵라면 코너 앞에 서 있다가 불닭볶음면 두 개를 들고 카운터 앞으로 왔다. “미친!” “이게 웬 개고생이야.” 여고생들은 카운터 앞에 서서도 계속 투덜거렸다. 무언가 약속이 어긋난 듯 보였다. “우리 팔자에 무슨 알바라고.” “내 말이.” 둘은 그렇게 인상을 쓰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테이블에 컵라면을 올려놓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난 있지, 학교 안 가니까 몸무게가 더 빠진 거 있지?” “당연하지. 네가 그동안 매점에서 처먹은 걸 생각해봐.” “어휴, 그럼 난 몸무게 생각해서 이 기회에 자퇴해야 하나?” “너, 그러면 완전 영양실조 올걸?” 둘은 그렇게 까르르 웃어댔고, 그러면서도 또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열라, 열 받다가 먹으니까 제대로 열 오르네.”

여고생들 뒤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콜라 한 캔을 더 사면서 바나나우유 두 개도 더 계산했다. 그러더니 그걸 여고생들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시 자기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앉았다. 여고생들은 가만히 바나나우유를 바라보다가 저희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같이 등 돌려 남자를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남자는 살짝 한 번 웃기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고생들이 다 먹고 편의점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고생들은 밖으로 나갈 때도 남자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간은 이제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곧 점장이 교대해주러 올 시간이었다. 정용은 자취방으로 돌아가면서 샌드위치를 먹을 작정이었다. 폐기 시간이 지난 샌드위치는 이미 가방 안에 챙겨둔 터였다. 인터넷도 안 하고 바로 씻고 잘 작정이었다. 그만큼 정용의 몸은 마치 우그러진 캔처럼 어떤 부분은 날카롭고 또 어떤 부분은 납작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정용은 조금 전에, 남자가 테이블 아래로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여고생들의 뒤편에 앉아서 그 행동을 두세 번 반복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한 행동이었고, 명백하게 어떤 의도를 가진 손동작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잡아뗀다면? 괜한 사람을 의심한다고 오히려 화를 내고 항의한다면? 또 핸드폰에서 바로 삭제를 한다면? 정용은 혼자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내 정용은 자신의 마음이 실은 교대시간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감으면, 못 본 척하면, 갈등도 딱 그 시급만큼만 찾아왔다가 사라질 것 같았다.

정용은 카운터에서 나와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사진 지워요.”

남자는 무덤덤한 얼굴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무슨…?

“저 다 봤어요. 얼른 지워요. 제가 보는 앞에서.”

정용은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밝은 편의점 조명 아래 남자의 피부는 더 깨끗하고 투명해 보였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들고 있던 핸드폰을 재킷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백팩을 메고 냅킨으로 테이블까지 쓱쓱 문지르고 나더니 뒤돌아 편의점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 정용은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정용은 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용은 남자의 뒤로 다가가 그의 백팩을 세게 잡아당겼다.

“너지, 이 새끼야! 네가 애들도 일부러 불러낸 거지!”

정용의 목소리가 편의점 안을 가득 메웠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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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간 아버지와 국제전화를 나눌 일이 아주 가끔 있었다. 긴요한 연락은 어른의 몫이었지만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내게도 귀한 전화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그 시간을 먹먹한 메아리로 기억한다. 말을 하면 전송시간 차이 때문에 한참 뒤에야 아버지의 대답과 뒤섞인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함께 울렸다. 몇 초만 흘러도 요금이 무섭게 올라갔고 연결 상태가 나쁜 날은 “여보세요?”만 되풀이하다가 끊어져버리기도 해서 “잘 있니?” “건강하지?” “그럼요” 정도의 소식만 전해도 성공이었다. 하루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 잊어버리는 바람에 “네”만 하고 끊은 적도 있다. 그렇더라도 머나먼 나라에서 날아온 음성을 듣는 건 뭉클한 일이었다. 서로 거기는 무사할까 근심을 달고 살았다. 그 무렵 많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가족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장시간 격리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비싼 전화보다는 편지가 안부의 수단이었다. 거실 서랍에는 하늘색 항공우편용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쓰고 접어서 모서리에 풀칠을 하면 봉투처럼 마감이 됐다. 한 장의 종이에 글씨의 무게만 더해지는 이 가벼운 연락수단은 비교적 경제적이고 신속했다. 동생과 땀이 찬 손으로 연필을 쥐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던 장면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걱정하지 않도록 좋은 얘기만 써야 할 것 같아서 신나는 일화를 생각하려 애썼는데 조금 자란 뒤에는 그렇게 쓰는 말들이 거짓 같아서 슬슬 손을 놓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변함없이 이국의 우표가 붙은 엽서를 보내왔고 그 엽서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엽서를 받은 날만큼은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 같았고 따뜻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봉쇄와 격리가 일상화되어 우편물조차 원활하지 않다. 대신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며칠 전 각각 집에서 온라인에 접속해 슈만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의 2중주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감상했다. 코로나19로 격리된 두 사람은 732㎞ 떨어져 있었지만 베를린과 잘츠부르크의 거리는 무난하게 극복되었다. 작가 제시카 러브가 집에만 갇혀 있는 어린이 독자를 위해 휴대폰으로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를 읽어주던 날에는 태평양 건너 사는 번역자인 나도 낭독을 즐겼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상황 속에 세계는 디지털의 힘을 빌려서 소통의 거리 줄이기를 다양하게 실험 중이다. 강의를 위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끊김을 겪다가 상대와 말이 겹치고 메아리가 울리던 수십년 전의 열악한 국제전화 환경이 떠올랐다. 물론 파일의 양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강의실의 온기가 있지만 2020년의 세계 시민들은 디지털적인 따뜻함(digital warmth)에 기대어 초유의 시기를 견뎌 나가는 중이다.

디지털 세계에는 끔찍한 어둠도 많다.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성착취 문화가 환경을 옮겨 활개 치는 것일 뿐 미디어 때문에 이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범죄 자체가 문제이며 그 어둠의 실체를 단호히 찾아 척결하고 끝까지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환한 기억과 경험을 이 공간으로 더 많이 불러와야 한다. 편지 쓰기, 노래하기, 책 읽기와 같은 고전적인 활동은 어쩌면 격리된 시간에 더 잘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가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떨어져 있지만 불의와 싸우고 연대할 수도 있다. 

누구와도 만나기 힘든 고립의 시간들을 이겨내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함께할 수 있는 밝은 일들이 당신과 가까운 어딘가 있다.

<김지은 |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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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영국시인 T S 엘리엇이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스페인독감’(1918~1920)으로 죽은 자들을 묻으며 맞는 4월의 처연한 슬픔을 표현한 첫 구절이다. 당시 세계인구 5000만명 이상이 죽었고 그도 부인과 함께 독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다.

한 세기가 지난 2020년 4월. 세계는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2%에 해당하는 72억명이 사회적 이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한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최소 1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이 10만명이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유럽은 사망자 수가 이미 5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예외주의’ 의식이 초기 선제방역을 소홀히 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바이러스엔 경계와 구분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분명 성공적인 방역을 해오고 있다. 초기 중국발 입국자 차단 관련 논란이 있지만, 올림픽을 이유로 검사 자체를 어렵게 한 일본이나 발병 초기 정보를 은폐한 중국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생활방역으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싶다. 이젠 사람을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그 절박한 심정으로 경제위기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사실 자부심이나 자신감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나라에 있어서나. 지금과 같이 미증유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소중하다. 희망만 있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한 것이 인간의 역사 아니던가!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유동성을 더 공급하고 확대재정 정책을 실시하는 일련의 그 모든 조치들은, 결국 경제 관련 심리에 긍정적인 변화를 미쳐야만 효과가 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정부의 경제위기 대처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경기부양책 규모도 작고 집행도 더디다. 지난 3월17일 통과된 추경예산이 11조7000억원인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0.6%에 불과하다. 24일 결정된 비상금융조치 100조원을 합쳐도 GDP의 5.8%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들과 미국은 고용유지, 긴급재난지원 및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GDP의 10%에서 30%에 이르는 초유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켜 이미 집행에 들어간 상태다. 초기 선제방역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정치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그만큼 현 경제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균형재정의 오랜 전통을 깨고 GDP 30%에 달하는 1조1000억유로(약 1500조원)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집행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선 지급, 후 처리’라는 원칙 아래 단 3일 만에 독일 내에서 경제활동하는 모든 내·외국인에게 긴급재난자금을 지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재정건전성 신화가 강고하다. 이해는 된다. 국가재정법에서도 재정건전성은 제1의 원칙이다. 또 가깝게는 총선이 있고, 1997년 외환위기부터 1960~1980년대에는 외국 차관에 의존해서 경제성장을 일궈오다 보니 국가부채 관련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난 1월 말 기준 1283조원 규모의 국고채 시장 상장총액 대비 외국인 비중은 7%에 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한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단기 순대외채권은 4400억달러에 육박한다. 상당 기간 정부부채 누적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국내 금융권의 국고채 추가매입 능력도 충분해 보인다.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2019년 말 예금은행의 총예금이 1600조원에 달하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만 900조원가량 늘었다.

가계와 기업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점증할수록 현금 및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 확보에 더 몰두하게 된다. 가계자산의 75%, 국부의 90%에 육박하는 비유동자산인 부동산의 비율이 현격히 높은 한국의 경우엔 위기가 시작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초기에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산정된 공적자금 40조원의 4배가 넘는 자금이 투여됐다. 초기의 과감한 재정투입이 그나마 최종 경제비용을 줄인다.

대공황급 위기는 이미 와 있다. 이 위기는 한국 내 정치일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그러했듯. 이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셈이다. 보다 강력한 선제대응으로 방역 성공의 자부심을 경제위기 극복으로 이어가게 되길 바란다.

<강명구 |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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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 후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종편 ‘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협박성 취재를 했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대검찰청 인권부에 맡겨졌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다. 인권부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막말이나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부서다. 기자와 검사장 간 유착 의혹을 밝혀내는 조사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 윤 총장은 대검 감찰본부가 ‘검언(檢言) 유착’ 의혹에 대한 감찰 계획을 보고하자 “추가 조사가 더 필요하다”며 이를 반대했다. 검찰 비위 전담기구인 감찰본부의 감찰은 못하게 하고, 고유업무와 동떨어진 인권부에 진상규명을 맡긴 것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현재 대검 감찰본부장은 판사 출신 외부인사가 맡고 있고, 인권부장은 현직 검사장이다. 외부인사가 수장인 감찰본부의 감찰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란 의심을 피할 수 없다. 

MBC 보도에 따르면 채널A 기자는 전 신라젠 대표 측근에게 현직 검사장과 통화한 음성파일과 녹취록을 보여주며 압박·회유한 정황이 뚜렷하다. 녹취록에서 현직 검사장은 기자에게 “(전 신라젠 대표) 이야기 들어봐. 그리고 나한테 알려줘. 대검 범정(범죄정보기획관실) 연결해줄게. 그리고 수사팀에도 다 얘기해줄게”라고 말한 걸로 돼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기자와 검찰 간 유착은 단순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범죄행위에 가깝다. 이 검사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거론된 검사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지만, 검찰이 당사자의 얘기만 듣고 사건을 끝내는 곳은 아니지 않는가. 

윤석열 검찰은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를 겨냥해 석 달이 넘게 ‘먼지떨이식 수사’를 벌인 바 있다. 그리고 조 전 장관 부인을 딸의 대학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현직 검사장이 기자와 공모해 옥중에 있는 취재원을 협박해 특정인을 겨냥한 정보를 캐내려 했다면, 이보다 중하면 중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건의 중대성을 생각하면 특수부 검사를 총동원해 파헤쳐도 모자랄 판이다. 이런 사건을 감찰본부도 아닌 인권부에 맡겼다니, 도대체 누가 인권침해를 당했단 말인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7일 기자와 검사장을 협박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이 들어온 이상 수사는 피할 수 없다. 검찰이 제 식구에 대해서도 ‘조국일가’와 똑같은 잣대로 수사를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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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아무리 중요해도 민주체제의 최소 장치일 뿐입니다. 이 기본만큼은 건전하게 유지돼야 민주체제라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죠. 지금 한국 선거는 그 기본은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선거는 민의를 모아 밝히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발전 대 민주화라는 대결 구도는 허물어진 지 오래됐습니다. 사회적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기존 거대 양당이 담을 수 없게 됐죠. 달라진 세상에 맞는 정치개혁, 이 숙제를 지난해 말 선거법 개정으로 겨우 첫발을 뗐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신설해 민심을 제대로 의석에 반영하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 명령대로 의석이 크게 줄어드는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고 선거개혁의 길에 나섰습니다.” 작년 12월25일 이인영 원내대표의 글입니다. 개혁안을 지난 20대 총선에 적용해보면 군소정당의 약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덕분에 21대 총선에서 정치 판도가 바뀌리라는 기대가 높았죠.

하지만 개혁은 위성정당이란 꼼수 탓에 시작도 못 해보고 사장될 위기에 있습니다. 위성정당을 거느린 거대양당의 의석점유율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의 의석에 있어 국민 의사의 왜곡을 최소화”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어디다 버렸는지요. 물론 ‘쟤가 먼저 했어요’라는 변명을 합니다. ‘일단은 이겨야 하니까’라는 말도 덧붙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구차합니다. 선거가 이기고 지는 정치놀이에 불과하다는, 꽃은커녕 잡초보다 못하다는 인식의 고백이니까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따르는 ‘노짱’이라면 과연 남의 꼼수를 따라 하는 저급한 꼼수를 부렸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춘 위기상황입니다. 도시 전체가 숨을 죽인 판이죠. 그런데 선거는 멈추지 않습니다. 재외선거사무가 중단된 지역은 40개국 65개 공관이 됐고, 투표할 수 없는 재외선거인도 8만500명(20대 총선 세종시 남자 선거인 총수가 8만3507명), 자가격리자도 7만명이 예상되지만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집니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외치는 지도자들은 당 관계자들을 몰고 다니며 유권자와 껴안고 악수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면서 ‘난 안 할 거야’ 이죽거리는 어느 나라 대통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에게서 이 위기가 끝났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바꿀지 비전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미뤄야 할 것은 서두르는 이상한 형국이죠.

선거를 굳이 미루고 싶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이슈가 코로나19에 묻혀버렸으니까요. 코로나19 위기와 정부 대응, 재정지원의 크기와 확대 등을 놓고 맴맴 도는 두 정당의 고함뿐입니다. 다른 국가적 이슈에 깊이 있는 논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슈가 없으니 편 가르기가 편할 수밖에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선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죠. 정치인들을 위한 선거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당면한 위기에는 관심이 없고 편 가르기에만 바쁜 이들이 4년에 한 번, 딱 2주 얼굴도장 찍는, 그런 슬픈 코미디로 21대 총선은 전락했습니다. 원칙과 신념이 없어 원내에 진출하는 민주주의. 민주주의체제가 그만큼 약화한 것이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두기엔 너무 중요한 현실이 됐습니다. 정치인들이 개혁을 거부하니 우리라도 주장해야겠죠. 우선 국회 의석 일부라도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선출하면 어떨까요. 청년, 노인, 성소수자, 여성, 소상공인, 노동자, 노인 등이 국회에 진출할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정치신인의 등용문 역할도 할 겁니다. 정당 간 편 가르기도 완화될 테죠. 국회의원들의 권위도 약화할 겁니다. 이 위기에서 꼼수에 휘둘리는 선거법 개정이 아닌 전반적 국회개혁, 민주체제에의 전반적 고찰이 필요함을 우리는 배웁니다.

<남태현 |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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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총선 사전투표 실시 하루 전인 9일 오전 광주 북구청 3층에 마련된 용봉동 사전투표소에서 북구청 보건소 방역요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15 총선 사전투표가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전국 3508개 투표소에서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사진이 있는 신분증만 가져가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든 사전신고 없이 투표를 할 수 있다. 15일 본투표에 참여하기 어려운 유권자들에게 사전투표는 더 없이 좋은 대안이다. 사전투표 제도가 실시된 이후 이를 활용하는 유권자들은 늘어나는 추세다. 4년 전 20대 총선 사전투표율은 12.19%였으나 2017년 대선에선 26.05%, 2018년 지방선거에선 20.14%를 기록했다. 전체 투표 참여자 3명 중 1명은 사전투표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사전투표가 당락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직장이나 집 근처의 사전투표소를 찾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나 하나쯤이야’ 하는 방심으로 최악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또다시 정치권을 비난하며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사전투표의 유용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에서 적극 투표 의사를 밝힌 유권자는 72.7%로 4년 전보다 높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변수로 높은 투표율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투표 의향은 있지만 감염 공포나 엄격한 방역 절차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이번 선거의 투표 절차는 예년에 비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1m 이상 거리를 두고 줄을 섰다가 발열 검사, 손 소독, 위생장갑 착용 절차를 거친 후 투표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전투표는 선거 당일의 혼잡을 피해 비교적 여유 있게 투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사전투표는 유권자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만큼 투표장의 물리적 거리 두기가 수월해지고 코로나19 감염 위험도 줄어든다. 사전투표는 방역과 투표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선관위는 유권자들이 안심하고 사전투표소를 찾을 수 있도록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최고의 방역이 최고의 투표율 제고 방안이다. 유권자들도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 등으로 안전한 투표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 당국은 감염 걱정 없는 안전한 투표 환경을 유지하고, 유권자들은 뜨거운 투표 열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코로나19 속에서 시민 의식과 공동체의 역량을 확인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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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인천 연수구 선학중학교에서 열린 온라인개학식에서 교사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의 고3과 중3 학생들이 9일 오전 일제히 사상 첫 온라인개학을 했다. 충실한 준비로 무난하게 수업을 진행한 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상당수는 처음 접하는 화상 원격수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혼란을 겪었다.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첫날 수업이었다. 

원격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화상 연결로 진행하는 ‘실시간 쌍방향형’, EBS 콘텐츠나 교사가 녹화한 동영상을 보고 토론하는 ‘콘텐츠 활용형’, 독후감 등 과제를 내주는 ‘과제 수행형’ 등 3가지 유형 중 교사가 선택할 수 있다. 촉박한 일정으로 대부분 수업이 EBS 강의 콘텐츠를 활용한 수능 특강으로 진행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EBS 온라인 클래스에서 발생한 접속지연 등 부작용과 혼란은 예상보다 컸다. 중학교용 사이트에서 처음부터 접속 시스템에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지난달 온라인 특강 때부터 문제를 드러냈는데 개학일까지도 보완되지 못한 것이다. 교사가 준비한 수업의 내용과 질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당장 학교별 학생부 기록 등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학교별 수업 수준 격차로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과 수업을 지켜본 부모들은 종일 수업에 따른 낮은 몰입도를 걱정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마련한 온라인 간담회에서는 “강의를 켜놓고 딴짓 한다” “원격수업으로 학력격차가 커지지 않을까” 등의 우려가 이어졌다. 이런 틈을 노려 일부 학원들이 학교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등 편법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회 때만 영상 연결로 확인하고 이후 수업은 과제만 내준 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과제를 끝내고 오후에는 학원에 가는 현상도 벌어졌다. 모두 온라인개학의 취지를 흐리는 행태로, 교육당국은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처음 시행하는 온라인개학과 원격수업인 만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책을 마련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루빨리 수업의 질을 높여 수업다운 수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오는 16일엔 중·고 1~2학년과 초등 고학년이, 20일엔 초등 저학년이 순차적으로 온라인개학을 한다. 전학년이 온라인개학을 하게 되면 인터넷 트래픽이 몇 배로 커지고 그만큼 접속 불편도 심해진다. 온라인개학의 성공 여부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현장의 만족도에 달렸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경청하면서 불편 사항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에 대비해 서둘러 원격수업을 안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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