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귀족적이요 부르주아적이라 할 것 같으면 참외는 평민적이요 프롤레타리아적이다.”

1928년 7월 발간된 ‘별건곤’ 제14호를 넘기다 웃음이 터졌다. 여름이면 무더기로 쌓이는 과채에 무슨 이런 어마어마한 소리람. 꼭지의 제목은 게다가 ‘참외로맨스’. 이에 따르면 참외는 과채의 ‘왕’이다. 역대 문헌을 펴면, 그렇게 쓸만해서 썼음이 여실하다. 한국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 기자 우스다 잔운(1877~1956)은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연중 가장 즐겨 먹고 무섭게 먹어대는 것은 참외이다. (중략) 길을 걸으면서도 먹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먹는다. 참외는 시중 어디서나 판다. 조선인은 여름에 참외로 살아가는 것이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 1629~1714)은 사당에 올릴 여름 제물로 앵두·보리·수박·참외를 손꼽았다.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일찍이 참외(眞瓜)의 ‘참(眞)’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가슴 씻는 시원함, 금빛 속살, 꿀 같은 단맛의 매력을 노래했다. 여름철의 진짜배기란 뜻이다.

다시 ‘참외로맨스’에 따르면 그때는 뚝섬·시흥·과천·송추 골짜기의 참외가 서울로 몰려들었다. 성환·춘천·횡성·양양의 참외, 평양과 가까운 강서의 참외도 좋았다. 압록강을 바라보는 벽동의 참외는 어찌나 맛이 좋은지 그곳 아리랑에는 “시집을 못 가면 나 못 갔지 참외 안 먹고는 못 가겠네” 하는 구절이 있다. 무등산도 참외가 대단해서 “만일 광주의 참외가 좋지 못하다면 김덕령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것보다 더 억울하다”고 했다. 품종도 다양했다. 겉이 얼룩덜룩한 개구리참외, 노란 꾀꼬리참외, 검은 먹통참외, 속 빨간 감참외, 더 빨간 별자감참외, 몸통 긴 술통참외, 배꼽 나온 배꼽참외, 몸통 둥근 수박참외가 시장에 나왔다. 들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노란 쥐방울참외(쥐똥참외)가 자랐다. 사과처럼 달다고 ‘왜사과’로 불린 일본발 새 품종도 유통됐다. 이때에도 서울 사람들은 맛에 앞서 빛깔과 외형 좋은 참외부터 찾았다니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성주는? 섭섭해 마시라. 단성·경산·울산·밀양이 당시 경상도의 참외 산지였다. 오늘날 참외의 주산지로는 성주를 필두로 칠곡·김천·달성·함안·고령을 빼놓을 수 없다. 성주는 유구한 참외 문화사를 이어받아 1950년대 이래 독농가, 농민, 국가가 서로 손잡고 가장 먼저 한반도 참외농사를 갱신한 곳이다. 이제 두 번째 갱신을 볼 수 있을지, 글쓴이는 두근두근 지켜보고 있다. 지속 가능성과 시설농업의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 달라진 음식문화에 발맞춘 다양한 품종 육성에 이르는 과제가 눈앞의 현안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kini.thescre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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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 한국에서 남반구 호주까지는 비행기로 10시간 걸린다. 지리적으로 먼 나라다. 국토 면적 등은 차이가 크지만 경제규모는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7일 발표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은 10위(1조6421억달러), 호주는 11위(1조4210억달러)였다. 국제정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닮았다. 최근 필사적으로 맞붙고 있는 미·중 갈등을 지켜보는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호주는 미국과 전통적 동맹관계이다. 미국·영국·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의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일본·인도 등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호주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의 30%에 이를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매여 있다 보니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강화,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요즘 미·중 양쪽으로 시달린다. 중국은 최근 호주산 보리에 73.6%의 반덤핑 관세, 6.9%의 반보조금 관세를 5년간 부과하기로 했다. 호주 총리가 지난달 코로나19 발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지지한 것을 문제 삼은 보복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호주 빅토리아주가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참여를 강행하려 하자, “우리의 안보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그냥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백악관이 지난 21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미·중은 신냉전 단계에 접어들었다. 리처드 닉슨(37대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44대 대통령)까지 공화당·민주당 출신 정당에 관계없이 이어진 미·중 협력 기조가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미·중관계 개선을 주도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이름을 딴, 이른바 ‘키신저 질서’도 끝났다.

물론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이 전혀 느닷없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세계 최강국 지위를 노리는 중국과, 기어오르지 못하게 짓누르는 미국의 갈등은 무역을 넘어 외교·군사 등 전방위에서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미·중이 ‘홍콩 이슈’로 격하게 대립하겠지만 이 또한 갈등의 한 양상일 뿐이다. 21세기 글로벌 패권 다툼은 누가 이길지, 승자는 있을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코로나19 와중에 불거진 미·중 간 대치는 세계질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부실한 방역 대응으로 내부에서도 혼란상을 키웠고, 중국은 발병 초기 투명하지 못한 태도로 국제사회에서 미운털이 박혔다.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코로나19 국면에선 세계 리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에, 중국은 미국에 맞서줄 ‘믿을 수 있는 국가들’을 모으는 데 부산하다. 

한국도 배타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 주도의 탈(脫)중국 글로벌 생산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문제도 그중 하나다. 한국 입장에선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보다 ‘동맹’인 미국을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웃국인 중국에 구조적으로 의지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 입장에 서왔다. 실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지워버리는 적대적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국제정치의 격변 상황에서 일관된 원칙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통해 미·중 갈등의 파장이 한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줄이고,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개방형, 신뢰, 투명성, 민주주의 질서 등을 주요 가치로 제시했다.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기조를 외교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신남방정책, 중견국 외교 등에 속도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명확해야 한다. 북한 문제가 미·중에는 정책적 우선순위에선 차이가 날지언정, 모두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중국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원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배척할 수 없지만 그 중심은 한국이 잡아나가야 한다. 미·중에 휘둘릴 사안이 아니다. 한반도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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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한국의 직업은 1만6891개로 파악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8일 국내 일자리를 집대성해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5판’에 실린 숫자다. 1986년 첫 직업사전에 실린 1만600개보다는 6291개 늘었고, 2012년 4판이 나온 뒤로는 5236개 많아졌다. 34년간 늘어난 직업의 83%가 최근 8년간에 몰려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 등장한 직업은 8년 새 270개이고, 나머지는 ‘관련직업’이거나 기존에 있다가 새로 발굴된 직업들이다. 

신생 직업은 네 묶음으로 분류된다. 4차 산업혁명 속에서 빅데이터전문가, 드론조종사, 블록체인개발자, 크라우드펀딩마케터, 인공지능(AI)엔지니어, 디지털장의사,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 스마트팜컨설턴트가 새로 생겼다.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유품정리사, 애완동물행동교정사, 임신육아출산코치가 등장했다. 삶의 질과 세태가 달라지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모유수유전문가, 공유사무실매니저, 온라인평판관리원, 산림치유지도사, 도시마케터, 범죄피해자상담원, 스포츠심리상담사가 출현했다. 달라진 정부 정책을 따라 탄소배출권거래컨설턴트, 사회적경제활동가, 도시재생코디네이터도 신종 직업에 더해졌다. 

종사자가 없어진 직업은 18개였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영화를 찍으면서 필름영화자막제작자나 필름색보정기사가 사라졌고, TV 디스플레이로 쓰이다 2014년 생산이 중단된 플라즈마영상패널(PDP) 연관 직업들도 빠졌다. 한국엔 없지만 해외에서 주목받은 신종 직업도 있다. 벨기에의 괴롭힘방지조언사, 미국의 약물남용상담사와 수중골프공수색원, 일본의 냄새판별사, 인도의 귀지청소전문가 등이 그것이다. 머잖아 한국 직업사전에도 오를 수 있는 직업들이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1·2·3차 산업혁명이 상용화될 때까지 증기기관은 80년, 전기는 40년, 인터넷은 20년이 걸렸다. AI는 향후 10년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20년대 직업 변천의 폭이 더 커질 것이란 뜻이다. AI시대에 걱정할 것은 명멸하는 직업 종류보다 내리막길로 갈 수 있는 취업자 수이다. 로봇세나 기본소득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움트는 이유다. 코로나19는 그 속도를 앞당기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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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날씨는 ‘반짝반짝’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가운데), 미래통합당 주호영(오른쪽) 원내대표와 오찬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28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는 예정보다 1시간 이상 길어진 2시간36분간 오찬과 산책을 함께하며 의견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 21대 국회의 정상적 개원과 3차 추가경정예산안 등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했고, 주 원내대표도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비록 합의문은 내놓지 못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례없는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야 원내 사령탑이 한자리에 모여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회동 테이블에는 국정현안 대부분이 올랐다. 미·중 신냉전, 탈원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재정건전성, 고용보험, 위안부 문제 등 쟁점들이 망라됐다. 주 원내대표는 당의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도 성의 있게 답변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가 ‘정무장관 신설’을 제안하자 배석한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의논해보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여야 대표회담이 있었지만 숱한 약속들이 흐지부지 사라졌던 게 사실이다. 2018년에는 여·야·정 상설협의체도 만들었지만 가동조차 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20대 국회도 협치와 통합을 표방했으나 실제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고 했다. 이런 기조를 잘 살려가면 그동안 말만 무성하고 진척이 없었던 협치의 불씨를 살리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현재의 위기 국면을 “(1930년대) 세계적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수출에 의존하고 글로벌 공급망에 엮여 있는 한국 경제가 받는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이 와중에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19 사태는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도 경제적·사회적 후유증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다운 정치가 절실하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국난극복 대책을 선제적으로,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일단 소통의 첫 단추는 잘 끼웠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속도이다. 지금 국회에는 경제활력 제고, 산업계 지원 강화, 일자리 지키기 등을 위한 입법이 산적해 있다. 회동 한번으로 상생과 협치가 완성될 리 만무하다. 문 대통령도 “협치의 쉬운 길은 대통령과 여야가 자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여야 간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번 회동이 시민이 간절하게 바라는 소통과 협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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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한 28일 오후 경기 부천시 중동 부천시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으려고 거리를 둔 채 길게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다. 신규 확진자가 그제 40명대를 기록한 데 이어 28일엔 79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수위를 다시 높이는 등 방역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한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70명을 넘은 것은 지난달 5일(81명) 이후 53일 만이다. 4월 말부터 2주간 4%였던 감염경로 미확인 확진자는 최근 2주간 7.6%까지 올라갔다. 방역당국이 지난 6일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하면서 스스로 밝혔던 ‘일평균 신규 확진자 50명, 감염경로 미확인 사례 5% 이내’ 기준을 넘어섰다. 감염경로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면 조용하고 빠른 n차 감염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거리 두기 강화를 적극 검토해야 하며, 위험도가 높은 시설에 대해선 특히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증상 확진 비율도 높은 만큼 학생들의 등교도 재고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는 있지만 당장 방역체계 수위를 높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지역 공공시설 운영 중단 등 방역은 강화하되, 생활방역체계와 등교개학 방침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확진자 50명 추세가 일주일 이상 계속될 경우가 거리 두기 강화로 전환될 수 있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인천 학원강사의 경우 최초 확진 판정 이후 19일 만에 7차 전파까지 확인됐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는 지난 23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28일 오전 현재 확진자 80명을 넘겼고 직원과 접촉한 가족·지인들의 확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중구 KB생명 콜센터에서도 사흘 만에 8명이 확진되는 등 곳곳에서 조용한 집단감염이 진행 중이다. 빠른 감염속도를 감안하면 결정의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 

학교 상황도 불안하다. 2차 등교개학 이틀째인 28일 하루 새 277곳이 늘어난 838개교가 등교를 연기하거나 중지했다. 전문가들은 등교 중지 학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달엔 더 많은 학년의 3, 4차 등교개학이 기다리고 있다. 안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유연한 등교대책이 필요하다. 안전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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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대한 처방만 있고 원인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 대책을 보고 난 느낌이다. 정부의 구상은 코로나19 재난으로 생긴 경제 침체를 ‘한국판 뉴딜’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침체는 재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재난의 결과에 대한 적기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재난의 근원을 놓고 사회 전반을 반성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아쉽게도 정부의 구상에서 자연의 지속적 파괴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하는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진솔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 사업만 무성하고 성찰이 없다.

사회 일각의 비판 때문인지, 막판에 ‘그린 뉴딜’을 추가한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과 ‘그린’으로 정리되었다. 급히 불려온 그린 뉴딜이 과연 한국판 뉴딜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답은 뉴딜을 위한 그린인지, 그린을 위한 뉴딜인지에 달렸다. 다음의 질문으로 그린 뉴딜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정부는 그린의 관점에서 지금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사업을 철회하거나 전면 재검토할 것인가? 삼척에서 건설 중인 2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일방적·짬짜미 공론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린 뉴딜을 다짐하는 정부가 그린을 부정하는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법이다.

그린 뉴딜에 관여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내면은 그린인가? 그린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는가? 녹색이 내면에 스며들면 자족, 절제, 검약, 단순과 같은 태도가 자라난다. 삶에서 소유보다 존재, 경쟁과 지배보다 협력과 공존, 효율과 이윤보다 안전과 생명, 성장과 독점보다 분배와 공유가 훨씬 중요함을 깨친다. 우리 안에 그린이 없으면, 그린 뉴딜에도 그린은 없다. 그린 뉴딜은 그린이 아니라 ‘그리드’(탐욕)에 끌려다니게 된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법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 안 된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하고 불평등한지, 현재의 경제가 얼마나 자멸적인지 낱낱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성장 패러다임에 매여 있다. 한국판 뉴딜의 일부로 편입된 그린 뉴딜이 이 강고한 패러다임을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속하려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우리는 기후위기가 경고해온 성장의 한계와 그 운명을 조금은 앞당겨 실감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자. 코로나19 감염으로 세상이 강제로 멈추었을 때 우리는 당혹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변화의 가능성도 보았다. 사라졌던 소중한 것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맛보며 ‘또 다른 세상’이 아직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하며 옥죄어온 성장 ‘이데올로기’다. 한번 자문해보자.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세상’에서 편안했나? 만족했나? 행복했나?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 바로 전환의 때다. 성장은 결국 절대다수의 삶과 자연을 먹이로 삼아 소수의 탐욕에 이바지한 주문이었음을 깨닫고 과감히 전환의 길을 선택할 때, 코로나19는 우리를 주술에서 풀어주는 ‘아픈’ 축복이 될 것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 대표 hyunchul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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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0대 전문직 여성 사이에서 인사처럼 묻는 말이 “난자 냉동해놨어?”다.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했더라도 일 때문에 출산을 늦추는 이가 그만큼 많다. 합계출산율 0.92명, 세계 유일 ‘출산율 0명대’ 나라가 대한민국 현주소다. 신생아 수가 줄어들면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빨라진다. 생산인구가 줄어드니 세수가 감소하고, 경제에 활력이 떨어져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는 지난해 5185만1427명을 정점으로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함께 올해부터 연평균 33만명씩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든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세대가 은퇴할 무렵인 206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2.5%까지 늘어난다. 신입사원은 뽑지 않고 간부만 늘어나는 회사와 비슷하다. 부양인구는 느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총 부양비가 증가한다. 생산인구 한 명당 부양인구가 2017년 0.37명에서 2067년 1.27명이니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스웨덴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젊은층이 이민을 떠나고, 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두려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스웨덴 정부는 출산율 감소를 ‘국가 단위의 자살’이라고까지 보았다.

당시 집권했던 사민당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훗날 각각 노벨 경제학상과 평화상을 수상한 뮈르달 부부에게 연구를 맡겼다. 400쪽에 이르는 <인구문제의 위기> 정책 보고서에서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은 저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통계, 이론을 다뤘고 사회학자인 알바 뮈르달은 달라진 여성의 인생관, 사회정책의 제약에 대해 언급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고용안정과 육아 지원 정책을 대책으로 내놨다. 보고서에 있는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열악한 환경에 미래마저 불안한 젊은 부부가 출산을 결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90년 전 스웨덴과 오늘의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930년대부터 스웨덴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스웨덴식 인구위기 해법은 아이를 낳으면 무엇을 주겠다는 식의 인센티브가 아닌 디센티브를 제거하는 방식에 가깝다. ‘얼마를 주면 아이를 낳을까’가 아닌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경력단절의 위협인지, 양육비인지, 혹은 믿을 만한 어린이집이 없어서인지 출산·육아에 디센티브가 될 만한 요소를 줄여 나갔다. 스웨덴 정부는 경력단절 염려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공공어린이집을 확대했으며,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하되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정책을 폈다. 현재 스웨덴 출산율은 1.9명에 이르고 지난 50년간 1.5명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금부터 5년 후인 2025년,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스웨덴은 이미 2014년 65세 인구가 전체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금은 한국이 스웨덴보다 젊은 사회지만 20년 후에는 두 나라의 지위가 역전된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40년 스웨덴은 네 명 중 한 명이, 한국은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다.

스웨덴에는 3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미래위원회가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국가지도자가 수장을 맡는다. 인구문제를 중심으로 노동환경, 에너지 공급, 사회통합, 민주주의, 평등, 가치관, 지속가능발전, 기술변화, 국가경쟁력 등 분야를 망라해 연구하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낸다. 한국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아이를 낳지 않는 첫번째 이유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는 세대에게 숙제까지 잔뜩 남기고 갈 수는 없지 않나.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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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넌… 날 어떻게 생각해?”

진만이 유정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생각해?”

유정은 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을 우물거리면서 진만을 바라보았다.

“그게… 왜 우리… 예전엔 좀 그랬잖아….”

진만은 유정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물컵을 들어 올렸다. 귓불에서 맥박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귓불아, 나대지 마라. 괜찮다, 괜찮아…. 

“뭘 그랬다고 그래, 우리가?”

유정이 밥주발 뚜껑에 앙상한 게 껍데기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왜 학교 다닐 때 같이 밥도 먹고… 도서관도 가고… 자취방까지 내가 바래다주기도 하고 그랬잖아….”

진만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목까지 홧홧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려운 고백을 이제 막 마친 기분이었다.

카드회사에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40만원이 충전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진만이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운동화도, 소고기도 아닌, 대학 동기인 유정이었다. 왜 뜬금없이 유정이 떠올랐을까? 따지고 보면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진만은 시시때때로 유정을 생각했다. 말하자면 혼자 김밥천국에서 참치김밥을 먹을 때나 알바 끝내고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 진만은 유정을 생각했고 그때마다 카톡을 열어 유정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두 번인가, 진만은 유정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잘 지내니? 그냥 갑자기 네 생각 나서….’ 유정도 진만의 메시지에 대꾸해주었다. 언제 한번 보자. 맥주나 한잔하지 뭐. 진만은 유정이 보내온 메시지를 자주 열어보았다. 하지만 다시 유정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지는 못했다. 이유? 이유는 서른아홉 가지 정도 들 수 있겠으나, 역시나 가장 첫 번째엔 돈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얼굴 보면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할 텐데… 알바 대타 뛸 사람도 구해야 하고… 그러자면 하루 일당이… 매번 그런 생각 끝에 휴대폰을 치우고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알바를 그만둔 뒤로는 아예 접고 말았다. 썸도 연애도, 마치 무슨 알바 시급처럼 숫자로 계산되었다가, 숫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 감정이 긴급재난지원금과 함께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진만은 유정과 모교 정문 앞에서 만났다. 그들의 모교는 진만이 사는 광역시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떨어진 중소도시에 있었는데, 유정은 아직도 그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세 시. 흰색 마스크를 쓴 유정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와, 진짜 왔네? 유정은 진만의 팔꿈치를 툭툭 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거의 사 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머리가 좀 길어진 거 빼곤 변한 게 거의 없어 보였다. 뭐 돈 꾸러 온 건 아니지? 유정은 그 말을 하면서 마스크를 벗었는데, 그러곤 혀를 장난스럽게 삐쭉 내밀기도 했다. 그 바람에 진만은 긴장이 풀리게 되었다. 마치 예전 대학교에 다닐 때처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아아, 좋구나. 정부가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구나, 이런 데 쓰라고 긴급재난지원금도 주는 거구나…. 진만은 유정과 함께 천천히 캠퍼스 안을 걸었다. 캠퍼스는 썰렁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더 어떤 무대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뭐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마련된 장소구나. 진만은 무덤덤하게 서 있는 플라타너스에도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거야 네가 불쌍해 보여서 그랬지….”

유정은 다시 젓가락으로 잡채를 집어 들며 말했다. 큰맘 먹고 들어온 학교 앞 돼지갈빗집에도 손님은 없었다. 사장은 카운터에 앉아 멀거니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네가 그때 친구도 한 명 없었잖아?”

“그게 전부야…?”

진만의 말에 유정이 “그럼 뭐가 더 있어?”라고 되물었다. 

“그럼 지금은? 지금도… 그래 보여?”

진만이 그렇게 묻자 유정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지금은 뭐… 나도 불쌍한 처지니까.”

유정은 며칠 전부터 인강으로 다시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거기에 썼다고 했다. 집에서 그걸 혼자 듣고 있자니, 자기가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야야, 밥이나 먹자. 그런 얘기 해서 뭐 하니?”

유정은 말을 끊었다.

진만은 유정과 헤어져 다시 버스를 타고 광역시로 돌아오면서 계속 유정의 말을 떠올렸다. 불쌍해 보여서, 불쌍해 보여서…. 그러면서도 한편 진만은 계속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왜 문자가 안 오는 거지? 긴급재난지원금을 쓰면 문자가 오는데… 왜 돼지갈빗집에서 쓴 6만원은 안 오는 거지? 이게 혹시 거주지 밖에서 써서 그런 건가? 그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유정의 말이 떠오르고… 그러면서도 또 휴대폰을 바라보고…. 진만은 둘 중 뭐가 더 서글픈지 알 수 없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antig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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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28일 31주년을 맞았다. 1989년 ‘참교육’을 내걸고 결성된 전교조의 역사는 ‘선생님’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사였다. 노태우 정권은 공안기관을 동원해 전교조 교사 수천명을 구속·징계했지만 전교조는 살아남았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합법화됐다. 하지만 정권의 탄압은 끝나지 않았다. 2013년 10월24일 박근혜 정부는 전체 6만 조합원 중 9명이 해직교사라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전교조 창립 31주년인 이날 정부는 고용노동부 장관 명의로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추진하면서 퇴직교원도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법외노조 통보가 시행령에 근거를 둔 만큼 행정부가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대선 후보 시절 “우선적으로 법외노조 조치를 해결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법 개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사이 전교조가 ‘법외노조’ 굴레를 쓴 지 7년이 다 돼간다.

지난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관들은 행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사법부와 입법부에 떠넘긴다고 꾸짖었다. 이기택 대법관은 “정상적인 정부라면 스스로 법을 해석·집행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 조치가 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 국민이 있으면 사후적으로 사법부 통제를 받는 것”이라며 “현행법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정부 스스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해놓고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게 올바른 태도냐”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합작품인 법외노조 조치는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교조는 여전히 2013년 10월24일의 굴레에 갇혀 있다.”(전교조 31주년 성명) 내년 이맘땐 ‘선생님’도 온전한 ‘노동자’가 돼 있을까.

<정대연 | 정책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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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가 일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 모습. 사건 이틀 뒤인 12일 사진기자가 찾아갔을 때 화장실 변기 위에 커피포트와 전자레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권도현 기자

멸시당하거나 위험하거나 고단한 노동은 늘 우리 주위에 있다.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컨베이어 벨트에 머리가 끼여 사망한 삼표시멘트 노동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돌연사한 광주의 택배 노동자. 이런 노동은 늘 있지만, 이 노동자들이 처한 곤경은 또 늘 무시된다. 화장실 변기 바로 위 선반에 전자레인지와 주전자를 두는 노동환경은 우리의 추모식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100층짜리 집이라고 가정하자. 각 층에 인구의 1%를 거주시키되 1층에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을, 층이 높아질수록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식으로 거주시킨다. 9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을 5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부유한 사람이 얼마나 부유한가를, 5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을 1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한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이 두 개의 지표를 계산하면 한국은, 전자는 8위이고 후자는 1위이다. 즉 한국은 OECD 국가 중 부자에게 경제력이 집중된 정도도 높은 편이지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정도는 가장 심하다.

부유한 사람이 매우 부유할 때, 정의 문제가 발생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특별히 더 잘난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부유한가를 우리는 문제 삼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매우 가난할 때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 가난은 멸시와 위험과 고단함이 지나친 반인권적 노동을 거부할 수 없게 한다. 정의보다는 인권, 또는 기본권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사람에게 기본권이 절실한 것은 사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기본권이 필요하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동물도 기본권이 필요하다. 지금 농장 또는 실험실에 2억마리의 동물이 있다. 가난한 사람이 지상 저층민이라면 그 고통의 정도에 의해 이들은 지하층민이다. 이들의 고통이 당연하지 않음을 ‘새벽이(동물권단체가 구조한 아기 돼지)’가 보여준다. 지하층민에게도 기본권은 절실한 문제이다.

동물보호 활동이나 동물해방 운동을 두고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이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월 OECD가 발표한 구매력평가(PPP)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1001달러(2017년 기준, 약 4890만원)를 기록했다. 중위소득 60% 이하 소득자를 빈곤계층으로 본다면 한국 국민의 77%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다. 저층민이 먹고살기 힘든 것은 지하층민을 돕기 때문이 아니라 77%의 사람이 저층과 지하층에 있는 존재의 고통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저층민과 지하층민은 정치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사회구조와 충돌하는 일이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복음).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65%나 되는 상황에서 충돌과 분열을 일으킬 정부·여당은 없다. 그렇다면 저층민과 지하층민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반영되어야 할까? 저층민을 반영하고자 하는 정당은 있다. 지하층민을 반영하고자 하는 정당은 곧 나타날 듯하다. 두 정당은 각각 인권과 동물권이라는 기본권을 정말로 실현하고자 한다. 이들의 헌신을 토대로 정의와 녹색을 비롯한 다양한 진보적 정치관을 가진 세력이 힘을 얻는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에서 이 길이 유일한지, 최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볼 만한 길이다.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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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 담장에 운영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지난달 8일 이후 49일 만인 27일 다시 40명대로 치솟았다. 온라인쇼핑 사이트인 쿠팡의 경기 부천시 물류센터 관련 확진자가 이날 밤까지 60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해당 물류센터는 첫 확진자 발생 후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평소 노동환경도 감염에 취약해 피해를 키웠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조용하게 진행되던 코로나19 확산이 쿠팡이라는 온상을 만나 폭발한 셈이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재확산 고리를 신속하게 차단해 추가 확산을 막아야 한다. 

쿠팡의 집단감염 사태는 안이한 작업장 관리가 초래한 결과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물류센터의 ‘지표 환자’(초발 환자) ㄱ씨가 지난 9일 이태원 클럽 관련 감염지인 부천의 뷔페를 방문한 이후 지난 13일 첫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했다. ㄱ씨는 지난 12일과 13일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고, 23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직원들에 따르면 작업장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수천명이 일하는 곳인데 엘리베이터는 두 대뿐이고, 100여명이 붙어 앉아 식사를 하고, 회사 제공 방한복도 돌려 입는 등 작업환경이 감염에 취약했다고 한다. 미흡한 사후 대응도 피해를 키웠다. 회사는 직원들의 빗발치는 문의에 확진자 동선 등을 알리기는커녕 업무를 강행한 뒤 25일 저녁에야 센터 폐쇄 결정을 내렸다. 

한국이 사재기 없이 코로나19 위기를 질서 있게 넘긴 이유 중 하나로 원활한 택배 덕분이란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총알배송, 로켓배송의 이면에 방역 취약 지대에서 일하는 배송기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생활방역 5대 행동수칙 중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이다. 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한 코로나19 방역상의 허점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택배 주문이 몰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들이 과로사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택배사 등 직장에서 방역수칙을 지키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물류센터 사태로 부천시는 다시 거리 두기 체제로 복귀했다. 고3을 제외한 모든 학년의 등교수업이 당분간 연기됐다. 물류센터 접촉자 최소 4000여명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약한 고리에서 소규모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사회 전체가 멈추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27일엔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2차 등교개학까지 이뤄지며 지역사회 감염 확산의 위험요소가 더욱 높아졌다. 물류센터 감염에 총력 대응함으로써 쿠팡 같은 또 다른 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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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행진곡이다. 역사를 전진하게 하고 그 자신도 거듭나는 노래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된 정재일 편곡 버전을, 훗날 고전이 될 작품의 초연 현장에 있는 기분으로 들었다. 원곡의 멜로디를 장조로 바꿔 부른 에필로그 파트에서 정훈희의 목소리로 박창학의 가사가 노래될 때는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탁월한 예술가들 덕분에 새삼 이 노래에 대해 생각했다. 한자어 ‘존재’가 ‘있는 자’이면서 ‘있음’ 자체이기도 하듯이, 우리말 ‘임’도 ‘있는 자’로서의 ‘당신’을 뜻하면서 ‘~이다’의 명사형인 ‘임(있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당신’을 위한 것이자 ‘있음’에 대한 것이기도 하리라. ‘어떻게 있을(살) 것인가’에 관한 노래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노래는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1982년 2월20일)을 기리기 위해 그로부터 몇 달 후 제작된 노래극 <넋풀이>의 마지막 곡이다. 함께 이승을 떠나는 두 영혼이 산 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의 ‘가나니’가 구전 과정에서 ‘나가니’로 바뀌었다. 한 논문이 지적한 대로 이 변화는 “노래의 주체 변화”를 가져왔다(정근식, ‘임을 위한 행진곡-1980년대 비판적 감성의 대전환’). 이제 이 곡은 ‘가는 자’를 보내며 투쟁의 길로 ‘나가는 자’의 노래,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이들에게 “산 자여 따르라”라고 호소하는 노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세 개의 ‘임(있음)’의 형식이 여기에 담겼다. 가는 자(죽는 자), 나가는 자(싸우는 자), 산 자(따르는 자).

첫째, 가는 자의 삶의 형식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다. 사랑이 사적 영역에서 추구될 만한 행복이라면, 명예는 공적 영역에서의 성공일 것이다. 둘 다 포기했으면 됐지, (명예에 이미 포함돼 있는) 이름은 왜 또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의 완전한 말소까지 각오하겠다는 뜻이었겠으나 이 구절은 훗날 기괴한 방식으로 실현된 예언이기도 했다. 5월의 현장에 있었던 평범한 시민들이 2015년 이후 제 이름 대신 북한군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광수’라고 불리는 일도 생겼으니까 말이다. 다른 층위의 사례지만, 19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목숨을 걸고 마지막 마이크를 잡았던 박영순씨도 명예는커녕 오해와 낙인을 피하기 위해 본명을 감춘 채 살아온 터다. 

둘째, 나가는 자의 삶의 형식은 두 구절에 분산돼 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나부끼는 깃발 앞은 죽음의 앞이고 내 죽음의 가능성도 지척에 있다. ‘흔들리지 말자’고 말해야만 했던 것은 모두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산천은 역사의 준엄함이고, 역사는 사실의 두려움이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질문이자 압력이 된다. 이때의 깨어남이란 그 질문과 압력을 외면할 수 없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요컨대 저 두 구절에서 나가는(싸우는) 자의 주체성은 흔들림과 깨어남의 반복이다. 수시로 흔들리면서도 매번 깨어나야 하는 삶,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있다.

셋째, 산 자의 삶의 형식은 마지막 구절이 알려준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는 ‘따르는’ 자다.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자극한 구절이고, 따라 부를 때마다 ‘싸우는 자’를 ‘따르는 자’라도 되자고 자신을 다그쳐야만 했으리라. 40년이 지난 이제 ‘산 자’들이 따라야 할 것은 새삼 진실이다. 40년 전 광주의 진실과 그 가치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있다. 아는 자는 기억함으로써 살리는 자가 되고, 모르는 자는 왜곡함으로써 죽이는 자가 된다. 광주를 죽이는 자들이 괴물(사이코패스)인지 환자(망상증)인지 나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의 창궐을 막아내는 것이 산 자들의 책무라는 것이다.  

5월 광주에서의 자신을 증언하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누구라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자신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는 말. 제 허물을 용서하기 위해 인간 전체를 용서해버리는 사람도 많은데, 그분들은 자신이 도달한 숭고함을 인간성 그 자체에 헌정하고 있었다. 많은 학자들의 말대로 ‘오월 공동체’는 개별성에서 연대성으로 도약하는 인간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죽고 싸우고 따르는, 그런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지고한 경지 하나를 재현하는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國歌)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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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19라는 유례가 없던 큰 위기에 잠시 가려 있지만 미세먼지는 인류 건강에 큰 위협이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크기가 10㎛(1㎛는 1000분의 1㎜)보다 작은 물질을 PM10(PM은 particulate matter의 약자)이라 한다. 워낙 크기가 작아 우리 호흡통로에서 잘 걸러지지 않고 호흡기 깊숙이 침투해 호흡기질환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뇌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PM10 중에서도 2.5㎛ 이하의 PM2.5는 초미세먼지로 불리며 폐의 더 깊은 부분까지 침투해 우리 건강에 더욱 위협적이다. 

정부는 2020~2024년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을 확정하고 2016년 대비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를 1㎥당 26㎍에서 16㎍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2019년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당 23㎍으로 줄어든 것은 긍정적이지만 16㎍이나 그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사전예방정책으로 수송 분야에서는 노후 경유차 감축과 저공해차 보급 확대, 발전 분야에서는 노후 석탄발전소 폐지 등이 추진되어 왔다. 산업 생산시설, 선박과 항만 관련 시설에서의 미세먼지 발생 저감, 농업·산림 분야에서의 미세먼지 발생 저감 등도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장작이나 화목보일러, 농업 잔여물을 태우는 것뿐 아니라 최근 크게 발생했던 산불 등도 미세먼지 발생의 큰 요인이므로 방지대책이 필요하다. 

미세먼지는 발전소·산업 생산시설·폐기물 처리시설 등 고정된 장소와 자동차·비행기·선박 등 이동체의 연소시스템 사용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탄소화합물과 금속 등 1차 미세먼지, 그리고 가스 상태로 나온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휘발성 유기화합물, 암모니아 등이 대기 중에서 반응 등을 거쳐 입자화되어 만들어지는 2차 미세먼지가 있다. 

이들 중 질소산화물은 고온의 연소 과정, 황산화물은 화석연료의 연소 과정,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연소 과정 및 산업 공정 등 다양한 곳, 암모니아는 비료 등의 사용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화석연료 등의 사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미세먼지 저감과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한 해결책이며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확대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도 전기가 어디서 생산되는지 잘 봐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전기의 3분의 2는 석탄, 가스, 원유 등 화석연료로 만드는데, 친환경 전기차에 공급되는 전기가 화석연료나 우드펠릿 등 목재를 태워 얻은 것이라면 오히려 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술 개발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생산단가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전 세계 평균적으로는 태양광발전의 경우 MWh(MWh는 100만Wh)당 생산단가가 2010년 약 350달러였던 것이 2018년 80달러로 많이 낮아졌으며, 올해는 60달러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송수단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문제뿐만 아니라 지난 5월3일 418.12PPM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말해주듯이 온실가스 저감도 시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은 바이오 기반 친환경 화학산업으로의 재편을 통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이 가능하다. 

미세먼지의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생성기작을 파악하고 관측체계를 도입해 발생 현황 파악뿐 아니라 발생 예측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정형 미세먼지 센서에 더하여 이동식 센서들을 도입하면 우리 전 국토의 미세먼지 발생 현황 및 요인을 보다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집 등 건물 내부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는 것을 감안해 건물 내부와 외부를 나누어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도 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오염 발생 원인 장소에서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기술들도 다수 개발되고 있다. 질소산화물은 선택적 촉매환원 반응을 통해 제거할 수 있는데, 문제는 같이 존재하는 황산화물과 반응해 만들어지는 황산암모늄이 촉매의 활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황산화물을 먼저 제거한 후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게 된다. 중공사막 등의 고면적 접촉시스템을 이용한 액상흡수제와의 접촉을 통해 황산화물을 제거할 수 있다. 

이미 발생해 우리 대기를 뿌옇게 만든 1차 및 2차 미세먼지들은 제거 방법이 마땅치 않다. 우리 집 안과 건물 내에서 가동하는 공기청정기와 같은 개념을 열린 넓은 공간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씻어 내리는 기술도 시도되고 있는데, 지구의 기후환경 차원에서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기는 전 지구 차원에서 순환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저감과 제거를 위한 외교적 노력과 과학기술 협업이 필수적이다. 

결국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미세먼지 발생 원인 자체를 줄이고, 생산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때는 발생원에서 바로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소비 생활방식을 미세먼지 저감의 방향으로 바꿔나가며,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신기술의 개발·적용이 필요하다. 전 지구인이 공동으로 노력하면 자연 대기순환 시스템 자체로도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해롭지 않은 수준까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leesy@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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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주문한 탕수육 배달을 위해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은 홀 손님과 밀린 주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바쁜 배달기사를 붙잡아두는 게 미안했던지 사장님은 튀기고 있던 탕수육 한 조각을 빼서 달콤한 소스를 쓱쓱 묻히고는 내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따뜻한 참사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라이더를 챙기는 아름다운 마음,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 뱉었을 때의 어색한 상황 등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뒤섞였다. 

지난해 가을, 살처분 영상을 본 게 화근이었다. 산 채로 포클레인에 들려 구덩이로 던져지는 돼지들과 살기 위해 흙을 파고 올라온 돼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즈음 동물해방운동단체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를 알았다. DxE에 따르면, 돼지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힌다. 인간들이 싫어하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다. 돼지와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육장에 갇힌 채 자라서 수개월 만에 도살당한다. 수컷 병아리는 그 짧은 삶도 살지 못하고,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온몸이 찢긴다. 

공장식 축산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학살을 보니, 내가 사는 세상이 달리 보였다. 삼겹살이 아니라 돼지의 살점이, 쇠고기가 아니라 소의 몸과 창자가 부위별로 찢겨 도시의 구석구석에 걸려 있었다. 채식은 자신이 없었고, 눈에 보이는 고기라도 먹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어설프고 위선적인 채식이라도 막상 실천하려니 쉽지 않았다. 

김밥집에 가서 햄을 빼달라고 하면, 보란 듯이 햄이 나온다. 게임을 하듯 햄을 일일이 빼내는데 어른들이 보기라도 하면 깨작깨작 먹는다고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하다. 단체 회식은 보통 고깃집으로 가는데,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기 힘들다. 고기 없는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마침 연장자와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몸에 밴 습관처럼 고깃덩이를 굽다가 현타가 와서 집게를 놓고 말았다. 버릇없어 보이더라도 사장님을 불러 공깃밥과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된장찌개를 시켜 홀로 먹었다. 모든 순간이 투쟁과 불편함의 연속이다. 

과거에 개인적 실천은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뭐라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응원은 못할망정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 취급을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환경을 위해 열심히 싸운 것도 아닌데, 지구가 들었다면 혀를 끌끌 찼을 것 같다. 막상 해보니 데모보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게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변화도 있다.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은 쇠고깃국을 먹지 않자 따로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40~50대 남성들이 주축인 조합원들은 위원장이 고기를 먹지 않자 백반집과 해산물집을 찾는다. 위계에 따른 갑질인지 모르겠으나, 기분 좋은 변화다. 

동물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분쇄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휴대폰을 만들다 시력을 잃은 청년이 있는가 하면, 배를 만들다, 아파트를 짓다, 배달하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는다.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우리가 이용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보인다면 우리는 맨 정신으로 소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삼겹살집 간판에 웃음 짓는 돼지가 있듯, 산재 기업의 광고에 웃음 짓는 연예인이 있다. 

DxE는 돼지 한 마리를 구조하고 새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새벽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진흙에서 행복하게 뒹구는 새벽이를 보면서 족발을 떠올리긴 힘들다.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동물을 구조해, 그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생추어리’라 한다. 생추어리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공장과 일터에서 동물과 사람이 죽고 감염병에 걸리는 이유는 같다. 우리 사회 곳곳에 생추어리가 건설될 수 있도록 불편함의 연대, 비용의 연대가 필요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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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 중에 제일 동냥이 귀동냥이야. 옛사람들은 책도 드물고 인터넷이 아예 없던 시절, 귀동냥으로 공부들을 했어. 당신이 시방 하는 말도 귀동냥으로 배운 거고, 나도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걸로 보통 ‘썰’을 풀고 댕긴다네. 말을 재밌게 하려면 귀동냥을 잘해야 한다. 가끔 어디라도 배움이 있으면 앉아 있곤 하는데, 조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재미가 없으면 요샌 자동으로 눈이 감긴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한 청년이 꾸벅꾸벅 졸더란다. 곁에 있던 할머니에게 깨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 왈 “재우기는 자기가 재워놓고 날더러 깨우라고 그라시요잉.” 투덜댔다던가. 청중이 졸지 않도록 말을 재미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시골에선 사투리를 보통 듣고 살아가는데, 전라도 오지 섬보다 광주 시민들이 훨씬 억양이 세고 진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젊은이들이 말줄임표 신조어까지 동원하여 사투리를 사용하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애들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산골로 돌아와 전화상으로 실습도 해본다.

“휘적휘적 사라지던 뒷모습만큼이나 앞모습도 보기 꽤 괜찮았고 잘생긴 얼굴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사투리가 더 매력이었어. 나는 그때 이미 사투리가 오히려 어색하게 들렸는데, 근이는 전혀 고치지 않았어. 그 후의 직업 선택을 생각하면 근이야말로 사투리를 일찍 고쳤어야 했는데 말이지. 근이는 뭘 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어.” 정세랑의 소설 &lt;효진&gt;에 나오는 풍경이다. 근이처럼 말투를 고치지 못하고 나도 살아간다. 그래도 재밌는 말, 살아 숨 쉬는 말은 가슴을 트이게 만든다. 귀에 시멘트를 바르고, 혀가 보도블록처럼 굳어 도통 소통하지 않으면 암만 좋은 뜻이라도 다음 세대로까지 귀한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점잖은 말, 에둘러 하는 말, 기름칠한 말잔치. 아니면 악다구니를 쓰고 버럭버럭 화내는 말들. 따지고 캐고 쪼고 쥐 잡듯 쫓으며 괴롭히는 말잔치. 자연스럽게 삶과 생각을 풀어내는 친구랑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귀동냥도 맘껏 하고파라.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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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 거리에 퓨마,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앞 코요테,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에는 자칼 떼….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나온 외신 사진들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지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산업활동 제약 덕에 대기도 맑아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약 300만년 전 살았다는 인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후손들이 77억명이나 지구를 뒤덮었다. 남극, 북극, 적도, 사막, 밀림, 고산지대 가릴 것 없이 점령한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위대한 인류”라고 자화자찬해야 할까. 그 대가는 신종 바이러스의 잇단 출현이다. 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면 잠자던 고대 바이러스까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자본주의는 결국 태생적 특성인 과잉생산·과소소비 때문에 파국을 맞을 것이라들 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자본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마구 찍어내고 대충 쓰다 버린다. 지구엔 생채기가 났다. 

잡식동물 인간은 과도한 육식을 즐긴다. 주위에도 1주일에 며칠씩 고기를 굽는 이들이 있다. 이미 기름진 배에 고기를 더 대느라 아마존 등지의 나무는 베어져 사료용 초지나 목장으로 전락한다. 축산분뇨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은 더 늘었다. 본능 탓에 육식을 금할 수 없다면 이제 대체육이나 인공육 같은 신기술 발전이 절실하다. 이미 인공육은 서구에선 화두로 떠올랐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는 비교우위론으로 국제교역의 이점을 설파했다. 그러나 이런 교역이 자연을 파괴하고 과잉 분업체제를 양산한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지역에서 최대한 자체 조달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같은 지나친 보호주의는 경계해야겠지만,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은 배울 점들이 있다.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해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철책 너머 북녘에 기회의 장이 열릴 수 있다.

기존 질서가 해체, 재정립되는 세상이 다가온다. 더 줄이고 흩어져야 한다. 흑사병으로 불린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한 17세기. 어떤 지역은 인구의 4분의 3까지 사망했다고 추산된다. 그 여파는 중세질서의 붕괴로 르네상스를 불렀다.

우리에게 친숙한 아이작 뉴턴(1642~1727)의 ‘만유인력 법칙의 사과’도 페스트 아래 등장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다니던 뉴턴은 1665~1666년 고향인 잉글랜드 링컨셔주 울즈소프에 내려가야 했다. 페스트로 학교가 문을 닫아서다.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에서 그의 주요 발견이 고향에 머물 때 나왔단다. 요즘 같았으면 온라인 강의를 받느라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테다. 21세기 인류에게도 ‘정신적 낙향’이 필요해 보인다. 한 발자국 물러선 가운데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아이디어가 싹틀 것이다.

요즘 세간에는 이런 말들이 나돈다. ‘거주불능 지구’ ‘최후의 인류’ ‘22세기는 없다’ 등이다. 인류의 미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집 앞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있다.

<전병역 산업부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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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내가 지나는 출근길 옆의 카페는 꽤 이른 시각부터 문을 연다. 카페 바깥 테이블에는 거의 매일 그 시간에 앉아 책을 읽는 손님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서양 노인인지라 매번 눈길이 가곤 했다. 쌀쌀하거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눈비만 내리지 않으면 늘 그를 볼 수 있었다. 은퇴한 교수일까? 사제? 아니면 선교사? 괜한 호기심으로 한번은 그가 읽는 두꺼운 책의 제목을 눈여겨보고 검색을 한 적도 있다. 지도로 보는 서양사에 관한 책이었는데, 이미 번역 출간된 책이라 출판인으로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노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아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아픈 걸까? 혹시 본국으로 돌아가셨나? 먼 이국땅에서 노년을 보내던 그는 누구이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회사 근처에는 내가 이틀에 한번쯤은 꼭 들르는 편의점이 있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점원으로 일하는데, 음료수와 담배 등속을 사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곤 한다. 한번은 근처의 다른 편의점에 들렀다가 또 그를 마주쳤다. “여기서도 일하세요?” 하는 물음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저쪽 편의점은 우리 언니예요. 둘이 비슷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며칠 후 그 편의점에서 “저쪽 편의점 언니는 잘 지내죠?” 하고 인사 삼아 물었더니, 그가 막 웃으며 답하는 것이었다. “제가 언니예요. 둘이 바꿔서 일할 때도 많아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하며 돌아서는 내 뒤에 “하하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출근길에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아파트 단지의 입구 동에서 일하는 경비원인데, 볼 때마다 늘 내게 인사를 건넨다. 멀리 떨어진 동이라 얼굴을 잘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청소를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안녕하세요!” 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한다. 우리 동의 경비원도 잘 모르는데, 그분의 이름이며 나이를 알 턱이 없다. 엉겁결에 꾸벅 답례를 하고 지나치지만 아침마다 기분이 활짝 갠다.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의 거리공원 정류장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 첫차가 달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고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남긴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라는 연설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이 버스의 진풍경을 소개하면서, 그 버스에는 매일 5시 반까지 강남에 가서 빌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탄다고 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은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으로 불릴 뿐 투명인간과도 같다고 했다. 누가 그 빌딩을 청소하고 유지하는지 아무도 의식하지 않으며, 존재하되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사람들.

12일 오전 이틀 전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한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에 그가 작성한 근무일지가 놓여있다. 권도현 기자

얼마 전 있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아직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 경비원으로 경험한 일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으로 써낸 조정진씨는 TV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갑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갑질’이라는 말은 결국 사건의 원인을, 한 아파트 입주자의 개인적이자 인격적인 일탈로 돌리는 데 그친다는 얘기였다. 경비원의 죽음 뒤에는 그런 일탈이 가능하도록 방조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용역업체, 입주자대표회의가 있고, 무엇보다 분리수거가 엉망이고 화단이 지저분하다고 쉽게 짜증을 토하는 나 같은 입주자들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새삼 분노를 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가 상실하고 있는 어떤 ‘감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 인간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필요한 법인데,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거의 잊고 산다. 

당신은 주변의 누구를 기억하는가? 나의 평온하고 편리하고 깨끗한 일상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감각을 이미 잃은 게 아닌지, 나는 그게 두려울 뿐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heegone@aprilbook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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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이나 웹으로 지시·통제를 받아 일하는 것을 ‘플랫폼노동’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퀵서비스나 택배, 대리운전, 가사도우미·간병, 웹소설·웹툰, 소프트웨어(SW) 개발, 이사, 통·번역, 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 입력, 포털 속 유해물을 걸러내는 일들이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개인사업자로 플랫폼 업체와 계약하는 이들에겐 일터와 시급,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다. 4대보험과 연차·유급휴가·퇴직금도 따로 없다. 하루하루 일감 단위로 매겨지는 월수입은 대개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거나 약간 웃돈다. 사무실·공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전통적 노동자 지위나 근로기준법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플랫폼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첫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가 27일 정보기술(IT)·SW 분야의 플랫폼경제 활성화와 종사자 보호를 위한 합의문을 내놓았다. 노사정이 최대 30만명으로 추산되는 IT·SW 분야 프리랜서들에게 적용할 자율규범을 만든 것이다. 여기엔 표준계약서 작성과 대금 체불 방지, 성별·나이·학력의 차별 방지, ‘벌점’ 제도의 공정한 운영, 기업 수수료의 투명한 공개 방침이 담겼다. 프리랜서들이 플랫폼 업체의 일방적 처우나 갑질에 시달리고, 일상적인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표출했던 사안들이다. 대표적인 국내 IT 플랫폼 업체 3곳(이랜서·위시켓·프리모아)은 이 규범을 지키겠다고 공개 서약했다. 이 자리에서 노사정은 오는 10월까지 최대 10만명으로 추산되는 배달노동자의 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 문제를 논의할 별도의 협의체도 출범시켰다. 자율규범과 협의체 단계지만, 플랫폼노동의 보호장치를 만드는 첫발을 뗀 셈이다.

‘디지털 특고’로도 불리는 플랫폼노동 종사자는 일과 쉼의 경계가 없고 사회안전망도 헐거운 저임금 노동의 축이 됐다. 정부 추계 55만명에 달하지만, 아직 공식 통계조차 없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플랫폼노동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직종이 더 분화됐고, 디지털·비대면 중심의 ‘한국판 뉴딜’까지 본격화하면 그 비중이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플랫폼노동의 실태조사부터 서둘러야 한다. 휴직·실업자의 교육훈련 체계를 재정비하고, 고용보험망 확충도 속도를 내야 한다. 자율규범으로 시작된 노사정 합의는 희망의 단초만 놓았을 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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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제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27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당선인 대회를 가졌다. 윤미향 당선인은 참석하지 않아 이름표가 책상 위에 남아 있다. 김영민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의혹의 당사자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27일 민주당 당선인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은 지난 18일 CBS 인터뷰에서 사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이후 잠행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진상규명이 우선이란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입을 닫고 있는 사이에 30여년을 이어온 위안부운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은 정의연 사무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부실회계와 윤 당선인 자산형성 과정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25일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정대협이 위안부를 30년이나 이용했다”고 작심 비판했다. 정의연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배제하는 운동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표방한 정의연이 사실은 조직을 위한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논란을 틈타 극우세력의 위안부 희생자 폄훼와 모욕이 자행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정의연 활동을 인정받아 비례대표로 뽑혔다. 그가 위안부운동의 정당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현 상황을 방치하는 건 무책임하다.  

검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후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다. 의혹만으로 국회의원 당선인의 거취를 결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맞다. 신속한 수사와 진상규명이 있어야 논란을 정리할 수 있다. 

그에 앞서 윤 당선인은 하루빨리 공개석상에 나와 본인을 둘러싼 의혹과 정의연의 운동방식에 대해 성실히 소명해야 한다. 시민이 의문을 품고 있는 데 대해 진실하게 설명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어서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는 말은 형식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윤 당선인과 정의연에 대한 의혹과 불신만 커질 뿐이다. 리얼미터가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4%는 윤 당선인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윤 당선인이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있게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입장 표명은 21대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30일 이전에 하는 게 맞다. 혹시라도 의원이 된 후 거대여당의 엄호를 받아가며 여론 동향을 살피려는 계산이라면 당장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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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에 관한 기사가 폭주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혐의가 확실한’ 윤 당선인과 여당 공격에 여념이 없고, 범진보 세력은 “보수의 준동”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그들의 대립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이다. 여당은 “마녀사냥, 윤씨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말하면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야당과 보수 언론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타깃’이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주장은 “정대협 비판은 일본 우익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말이다. 이번 사안은 철저히 진보 진영 ‘내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다. 

한편 여당과 어쩌면 정의연 지도부까지도,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 사안을 윤 당선인 개인의 비리로 축소하여 자신들과 선을 긋고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피해자와 희생양은 다른 개념이지만, 둘 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동원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역할’은 같다. 여야 모두 이번 사태를 ‘개인의 돈 문제’로 국한하려는 이유다. 거듭 말하건대, 젠더 체제를 기반으로 한 한·일관계의 모순이 집약된 군 위안부 운동의 난제는, “회계 부실”이 아니다. 돈 문제는 드러나기 쉽다. 이번 사태에서 ‘돈’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끝자락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상황을 집약한 말이, “터질 것이 터졌다”이다. 지난 월요일 이용수님의 2차 기자회견 내용대로 ‘돈’ 문제는 검찰이 맡으면 된다. 

1990년대 초반, 열악했던 활동 시기를 거쳐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까지 군 위안부 운동은 피해 당사자, 여성운동가의 노력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의제화한 모범국이었고,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15년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쌍방 간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불가역적 합의’ 이후부터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와 더불어 전후 피해에 대한 한국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식민지 희생자인 ‘군 위안부’의 수치심과 고통을 극복하고 국가의 자존감을 찾자는 의식이 고양되었다. 일명, 젊은 보수 ‘태극기 세대’의 부대가 등장했고, 한편에서는 반일을 넘어 극일을 하자는 쿨한 신민족주의자들이 진보를 자처했다. 이러한 기류는 대중화된 군 위안부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위안부 소재 영화의 선택적 흥행, 전국적인 소녀상 건립 운동 등이 그것이다. 소녀상 건립과 지킴이 운동에는 입시 스펙을 쌓으려는 학생, 학부모도 동참했다. 

군 위안부 의제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지만, 정작 정부는 이 사안을 자신의 의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는 비정부기구(NGO)가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많은 NGO들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탄압을 받아가며 대신해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군 위안부 운동의 국제화, 일본 진보 세력과의 네트워크, 할머니들의 생계와 복지, 장례까지 이 문제를 도맡아온 정대협의 위상은 높아졌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문제’가 ‘남성이 다루어야 할 큰 정치’로 이동하면 돈과 사람, 자원이 모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전에는 여성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각 분야의 남성 연구자들이 몰려들었고 ‘자리’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운동으로서 군 위안부 운동의 변질은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겠다. 

앞서 말한 대로 돈 문제는 검경이, 비리 보도는 언론이 할 일이다. 다만, 나는 정대협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훌륭한 할머니’와 ‘그렇지 않은 할머니’로 구분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에게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분들의 생애가 가슴 아프다. 

운동 초기와는 달리, ‘대중화’ 이후 군 위안부 운동은 후퇴했다. 그 결정적 장면은 윤 당선인의 선거 포스터 구호 “총선은 한·일전이다”처럼, 국가주의 프레임을 여성운동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용수님의 핵심적 문제제기라 생각한다. 이번 일이 단순 횡령 사건을 넘어, 피해자가 진영의 필요에 따라 희생양이나 ‘간판’이 되는 사회운동 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이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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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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