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자신의 성폭력 범죄를 인정하며 전격 사퇴했다. 오거돈 성폭력 사건은 고위공직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질문은 사라졌고 피해자와 지원기관에 대한 음해와 공격은 도를 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은 피해자 개인이 겪는 고통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여성 검사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검사인 그녀가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인지 몰라서 공론화하는 데 8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을까? 아니다. 그녀는 사건이 알려지는 순간 쏟아질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그녀와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이 위험한 이유는 성폭력 피해를 안전하게 드러내고 사법적 해결로 나아갈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데 있다.

특히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은 공론화하기 더욱 어렵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비례하는 2차 피해를,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쪽에서 만들어질지 모르는 정치적 음해까지 각오해야 한다.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는 예외 없이 음모론이 등장했다. 문제는 음모론이 겨냥하는 것이 피해자라는 점이다. 일견 가해자나 상대 정치세력에 대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음모론은 성폭력 피해자를 ‘진짜’와 ‘가짜’, ‘순수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로 구분하며 음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악의적인 프레임에 갇힌 피해자는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되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은 정당화된다. 사건마다 정치적 이해득실의 결과는 다르지만 일관되게 강화된 것은 피해자다움의 강요와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그릇된 통념과 편견이다. 피해자는 숨게 하고 범죄는 은폐되는 성폭력의 구조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공간에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위치하게 하는 부당한 일이 오거돈 성폭력 사건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치공세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이 누구인지, 그것이 만드는 효과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성폭력을 근절하자는 대응이 또 다른 피해자의 입을 막아 성폭력 범죄를 더욱 은폐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누군가는 정치적 우위를 차지할지 모르지만 그것의 대가로 만들어질 미래는 정말 위험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성폭력 없는 세상이라면 피해자와 지원기관에 대한 음해와 공격을 멈춰야 한다. 만일 중단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피해자를 숨게 하여 범죄를 은폐하는 성폭력 구조의 공모자일 뿐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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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 세계를 휩쓰는 한류에 또 하나의 아이템이 합류했다. 전염병 대응의 모범으로 떠오른 한국식 방역. 거기에는 재빨리 ‘K방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검사, 격리, 치료의 노하우를 구하는 요청이 쇄도한다. 진단키트, 방호복과 글러브 등 국산 의료용품의 수출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이 모두가 사태 수습에 앞장선 영웅들 덕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질병관리본부, 앞을 내다보고 미리 진단키트를 개발한 의료벤처, 환자들의 치료를 맡은 우수한 의료진, 살인적 초과노동을 견딘 헌신적 공무원들, 수습의 사령탑 역할을 한 정부. 드높은 시민의식으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실천한 국민들. 모두 박수를 받을 만하다.

우리가 신규 확진자 수 0에 접근해 가는 지금, 그동안 우리가 ‘선진국’이라 불러왔던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매일 엄청난 수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방호복이 떨어져 대신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쓰고 치료에 임하는 그곳 의료진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선진국이라기보다는 ‘제3세계’라 불리던 개발도상국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서구인도 마스크와 생활용품 사재기를 한다. 아시아인을 향해서는 인종주의 폭력을 가한다. 그런가 하면 사육제 전에 한껏 술과 고기를 즐겼던 중세인들처럼 봉쇄령 시행 전날 집단으로 모여 축하 파티를 연다. 그들이 자랑하던 ‘합리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당연히 이제 ‘서구 콤플렉스’를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방역 성공에 대한 자부심이 ‘국뽕’으로 흐르는 조짐도 보인다. 누구보다 ‘열등하다’ 혹은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실은 병적 현상이다. 그 감정만 버리면 그저 남이 우리에게 배울 수 있는 점과 우리가 남에게 배워야 할 점이 남을 뿐이다. 일본이 우리의 성공에서 배우기를 애써 사양하는 것은 그 부정적 감정과 관련이 있을 게다.


모범으로 떠오른 한국 방역 

세계 휩쓴 한류에 ‘하나 더’ 

자부심 왜곡되면 ‘국뽕’으로

‘K방역’에서 얻은 자신감

‘안전한 나라 만들기’ 승화를


한편 우리의 성취에 대한 냉정한 시각도 필요하다. 아직 이유는 모르지만 감염폭발은 주로 서구에서 일어났고, 아시아에서는 감염이 비교적 억제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서구보다 나은 시스템을 가진 것은 아닐 게다. 고로 우리의 성과는 서구가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야 한다. 

또 한국에서 가능한 것이 모든 곳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령 감염경로 추적에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서구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이를 ‘개인’의 인권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과도한 정보 제공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사례가 있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게다. 

프랑스의 어느 매체에 한국이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감시국가라며 비난하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다. 개인정보의 공개를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감시자인 국가를 감시하는 시스템만 있다면, 디지털 시대에 굳이 정보통신기술의 이용을 포기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 사회가 ‘개인’의 권리문제에 다소 소홀했던 것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사재기가 없었던 것은 유럽에 없는 택배문화 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염폭발로 인한 도시 봉쇄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크의 경우 우리도 ‘대란’을 겪었다. 인종주의 차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중국인과 중국 국적 동포에 대한 노골적 혐오가 있었고, 지식인들이 나서서 대구지역에 차별 발언을 퍼붓는 일까지 있었다. 

이 모든 유보에도 불구하고 K방역의 성취는 놀라운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스와 메르스의 경험에서 뭔가를 배웠고, 그로써 사회를 더 낫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 소중한 성과를 ‘국뽕’의 재료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아직 우리는 더 배워야 한다. 제천 화재를 겪고도 이천 화재를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5~6차례 위험을 경고했다지만 재해를 막지 못했다.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방역에서 얻은 자신감을 이제 다른 분야로 확장시켜야 한다. 여전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 방역에 들인 투자와 관심과 협력의 절반만 들여도,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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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들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다행히 지금은 약국에서 쉽게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게 됐고, 온라인개학으로 학교가 아닌 집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 또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익숙한 이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이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고,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 바로 출생 미등록 아동들이다.

혼인신고가 안된 상태에서 아빠가 된 ㄱ씨는 11개월 된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어렵게 두드린 가정법원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미혼부라는 이유 때문이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동보육비, 아동수당 등 ㄱ씨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전혀 없었다. 버스를 운행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ㄱ씨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ㄱ씨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근 ㄱ씨의 아이는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거나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받아 가까스로 일부 지원을 받게 됐다. 그렇다고 아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큰돈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필수로 맞아야 하는 소아 예방접종도 20가지가 넘는데,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출생등록이 힘든 건 ㄱ씨와 같은 미혼부뿐만이 아니다. 현행법상 청소년 부모의 아동이나 무국적 아동 또한 출생등록을 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누구나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제도권 밖 아이들은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아동학대나 유기, 불법 입양에 노출될 위험이 높으며 의료, 교육 등 공적 지원을 받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작년 5월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출생통보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의료기관이 출생하는 모든 아동을 누락 없이 국가기관 등에 통보, 위기 아동 발굴 및 보호체계를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껏 출생통보제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사이 불이익은 고스란히 아동 몫이 되고 있다. 

이에 21개 아동권리옹호단체는 정부의 출생통보제 도입 우선 확립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설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 △병원 내 출생통보 의무화 △아동의 지위와 관계없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시행의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10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를 통해 보편적 아동등록제를 도입하라는 권고사항을 정부에 전달한 바 있다.

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굿네이버스는 출생미등록 아동을 지원하고, 보편적 출생등록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권리를 침해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동의 권리 보장과 행복을 위해 아동 한 명 한 명의 존재부터 차별 없이 인정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한다.

<고완석 |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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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대상의 긴급재난지원금이 결정된 후 3차 추경을 통한 ‘한국형 뉴딜’이 발표되자, 기획재정부는 곧바로 ‘원격의료’를 들고나왔다. 코로나19와 원격의료가 도무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두가 궁금해할 때, 한 언론이 찾은 것은 장관의 ‘개인적 관심’이었다.

“원격의료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홍 부총리가 기재부 국장 시절 주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원격의료 이슈로 발목이 잡혀 9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연합뉴스)

한국이 과감하고 선제적인 방역으로 세계적 모델이 되고 있는 사이에, 경제대응은 소극적이고 느려 터졌다는 지적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여야 정치권과 지방정부의 줄기찬 문제제기, 청와대의 거듭된 재고 요청에도 기재부는 70% 주장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다시 이런 상황이 와도 전 국민 지급에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당당히 과시했다. ‘국가부채비율 40%’라는 기준이 경제학 이론에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고, 다만 기재부가 자체적으로 주장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기재부가 ‘나라는 우리가 다스린다’는 자신감, 그리고 거기에 도전하는 어떤 권력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오만함을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누군가가 국민에 의해 선거로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황에서도 제 고집대로만 나라를 통치할 수는 없다. 하물며 관료는 말할 것도 없다. 관료가 실질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관료지배라고 할 뿐,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2016년 촛불은 국민주권을 실현시킨 사건이었다. 헌법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되어 있지만, 로크의 아픈 지적대로 우리 국민은 몇 년에 한번 선거에 참여할 권리만 가질 뿐 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국민은 스스로 선출한 권력을 스스로 끌어내림으로써 헌법을 구현했다. 소수 엘리트가 독점했던 ‘정치주권’을 되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그동안 우리 경제주권은 소수의 경제관료에게 있었다. 그런 경제관료 입장에서 지난 두 달 동안 긴급재난지원금이 결정되는 과정은 수치스럽고 어리둥절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재난소득에 대해 기재부가 안된다고 하고, 보수언론이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국민들이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 안된다고 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촛불로 정치주권을 찾아온 국민들이 이제 경제주권을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곳간지기가 곳간주인 노릇 하던 시대는 지났다. 나라의 주인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해 곳간지기가 곳간주인 노릇까지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대통령과 한줌의 권력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시대가 지난 것처럼, 경제권력을 경제관료가 독점하던 때도 지났다. 총선 결과를 보면서도 기재부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연대, 공동체성이 가진 힘이었다. 거기서 교훈을 얻었다면, 한국형 뉴딜의 문을 열면서 공공의료 뉴딜, 그린 뉴딜, 산업안전 뉴딜, 사회보험 뉴딜을 제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기재부가 가져온 것은 원격의료 뉴딜, 규제완화 뉴딜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네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안 맞는’ 상황이다. 

20세기 후반 유행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사실상 종식시킨 것은 전염병이 초래한 팬데믹이라고 역사엔 기록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인류는 기후변화와 인간존엄,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 기회를 틈 타 기재부가 하고 싶은 건 ‘컨택트 신자유주의’에서 ‘언택트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었나 보다. 과거라면 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기재부가 빨리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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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쓰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건배사를 소환했다. 2000년 8월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에 취임하자 여론은 “3김 시대를 청산한다면서 왜 DJ(김대중 전 대통령) 임명장을 받았나”라고 비판했다. 고심하던 노 전 대통령은 한 지인의 말에 무릎을 쳤다. “노무현이 DJ 차세대로 성장하는 자체가 청산 아닙니까. ‘청산하는 중입니다’라고 하면 되지요.” 노 전 대통령은 밝아진 얼굴로 건배사를 외쳤다. ‘청산하는 중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는 27년, 경북은 23년 만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의원을 처음 배출했다. 박정희 신화의 자장 지역인 구미에서도 민주당 시장이 당선됐다. 당시 ‘(지역주의를) 청산하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뒤 나는 소망했다. 2020년 총선을 평가할 땐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쓸 수 있기를.

21대 총선이 끝났다. 민주당 압승, 주류 교체, 보수 궤멸로 평가된다. 그러나 2년 전 기대했던 칼럼 제목을 쓰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대구·경북(TK) 선거 결과 때문이다.

지역주의(영남의 경우)는 감정(DJ는 못 믿어), 정당 일체감(우리가 남이가), 이념의 내면화(빨갱이 정부는 안돼)라는 단계를 거치며 작동한다. 미래통합당은 TK에서 지역주의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냈다. 정당의 동원 논리로 보면 지역주의가 공고해진 게 맞다. “통합당이 앞서면 TK는 가을에 감 따면서 까치가 먹을 거 남겨놓듯 민주당 후보 한두 명쯤 당선시킨다. 까치밥 이론이지. 이번엔 달랐다. 통합당은 지역주의 공식에 코로나 색깔론까지 제공하며 지역과 정당을 일체화했다.”(김태일 영남대 교수)

지역주의를 정당에 대한 보상 심리, 시민의 이익(집권 가능성) 관점에서 볼 땐 얘기가 달라진다. TK 시민들이 통합당을 집권 가능한 정당으로 보고 투표했을까. 민주당 후보들이 대구 전체 12곳 중 11명이 20% 이상 득표한 사실은 이 가정을 뒤집는다. 또, 지역주의가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경쟁지인 호남의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싹쓸이했지만 호남 시민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여권 거물들을 모조리 끌어내렸다.

이번 총선은 도대체 뭔가. 지역주의 부활일까, 특수한 지역주의일까, 아니면 지역주의가 아닌 다른 현상일까.

경북 포항에서 25년간 민주당 후보로 6번 도전했지만 전패한 허대만 후보를 만났다. “다른 견해를 배척하는 현상은 약해졌다. 다만 TK는 권력을 자신들이 주도하지 않는 한 주류가 바뀌고 사회가 변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전 국민의 80%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의했는데도 선거 내내 ‘박근혜 대통령 풀어줘야 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TK만 거꾸로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전 과는 달리 TK의 고립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역주의를 끊기 위해 몸부림쳐온 것이 내 정치역정’이라고 했던 김부겸 의원도 최근 언어가 달라졌다. “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도 나를 보고 뽑아달라”고 하더니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이 방법이 낫지 않겠습니까라는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전자가 TK의 눈치를 보면서 지역주의에 영합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어떤 세력이 변화를 주도하는지 평가받겠다는 정공법이라 할 수 있다. 30년 넘게 패권과 균열의 무기였던 지역주의를 가치의 문제로 극복하겠다는 각오로 이해했다.

4·15 총선이 남긴 유일한 쟁점, 지역주의. 여전히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분명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남겼다. TK를 제외하면 전국이 접전지가 됐고, 접전지 후보들의 당락 차이도 크지 않았고, 일당 독점 체제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한 지역만 죽어도 놓지 못하겠다고 붙들고 있는 걸 ‘(지역)주의’라고 할 순 없다. 누군가는 TK의 패거리주의라고 규정했지만 그렇게 단언하면 지역의 50대 이하 젊은 유권자들은 억울한 일이다.

전통적 의미의 지역주의는 ‘청산 당했다’. 민주당 패장들은 TK의 고립을 걱정하며, 가치 투쟁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당을 비롯한 지역 보수 세력은 청산 당한 과거를 붙들고 지금도 항전 중이다. 온갖 코로나 허위 정보로 시민들을 옭아매더니 선거가 끝나고 나선 중앙 정부가 외면하면 안된다고 하고, 대구가 코로나 방역의 세계적 모범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TK를 ‘청산 당한’ 낡은 지역주의로 계속 옭아매려 한다면 다음은 통합당이 ‘청산 당할’ 차례다.

<구혜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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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곳곳이 쓰레기로 넘쳐나는 상황을 학생들이 불편함만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가볍게 강의시간에 다룬 바 있다. 그때 누군가의 당당한 말이 10년이 지나서도 기억난다. “수요와 공급이잖아요. 현재 급여로도 하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저 사람들 말을 학교가 들어줄 필요가 없죠.” 대학의 분위기는 오래전부터 이랬다. 돈이 안된다는 학문은 무시당했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학과만 몸집이 커졌다. 구성원의 성분이 편향적이니, 여기서는 의견을 모은 들 비용절감, 이윤증가의 법칙만이 부유한다. 시장경제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교수들이 많은 곳에서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노동을 수요와 공급이라는 말장난 안에서만 이해한다. 왜 양질의 일자리가 줄었는지, 왜 양질이 아닌 일자리에도 사람이 몰리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이런 사람들이 회사에 모여 고민을 한다.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여기는 이들끼리의 집단지성은 끔찍하다.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낼수록 노동자의 존엄성은 짓밟힌다. 다급한 사람의 약점을 이용한 묘수는 참담하다. 삶을 포기하면 최저임금보다는 더 벌 수 있고 여기에 목숨까지 걸면 한 달에 200만원은 가능한 걸 상생처럼 포장한다. 비판을 하면,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하지만 결국엔 수요와 공급이다.

X축 Y축 어딘가에 점으로 찍혀 위험한 일도 ‘하려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은 ‘안 죽으면 다행’인 일터로 나간다. 어제 별일 없었으니 오늘도 괜찮을 거라고 믿어야 하는 공간에서 저번에 문제없었으니 이번에도 무탈할 거라고 체념하는 시간을 10시간 버티며 받는 10만원에 감지덕지한다. 9만원에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기에, 안전 따위는 아껴야 하는 비용으로 여기는 소굴에 별 수 없이 발을 딛는다. 업체는 이들을 좋아한다. 일용직이고 노조를 만들 낌새도 없다. 수일에 나눠서 할 일을 하루에 몰아도 군말 없고, 동시에 작업하면 안되는 사람들끼리 엉킨들 어떻게든 움직인다. 이때부터 매뉴얼은 쓸데없는 규제가 된다.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화재가 났고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코로나19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다며 여기저기서 으쓱하기 바쁜 가운데, 마치 ‘이 나라가 선진국이라고?’라고 말해주는 참사였다. 여러 원인이 추정되고 있지만 무엇이든 빌어먹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기에 더 끔찍하다. 최저가로 하겠다는 업체가 있었고 그 최저가에 맞추기 위해 줄어든 공사기간에 수긍하는 하청업체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급구’라는 공지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이건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참혹한 결과지, 그래프를 그려가며 설명될 성질이 아니다.

방역에 성공했듯, 노동을 대하면 된다. 뉴스 상단엔 ‘오늘의 산재사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는가’를 논의하자. 코로나19의 입장도 이해하자, 바이러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냐 따위 말은 하지 말자.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지자체에선 단속하고 벌금 물리고 소송도 불사하자. 나쁜 기업을 발견하면 역학조사해 그딴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한 이론을 찾아내자. 그렇게 안 했으니 죽은 거다. 안 하면 또 죽을 거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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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임시페쇄되었던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이 1일부터 야외 시설에 대하여 부분 개장 하였다.초여름 날씨를 보인 3일 시원 복장으로 아들을 무등태우고 동물원 나들이에 나선 시민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KBS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에 ‘생활의 발견’이란 코너가 있었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끌었다. 이 코너에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바보 연기나 과장된 몸짓이 없었다. 이별, 사랑, 연애 등의 심각한 주제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장소에서 풀어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엉뚱한’ 장소는 바로 미용실, 오락실, 횟집, 치과의원, 찜질방, 편의점, 포장마차, 야구장, 지하철, 호프집 등 일상의 공간이었다. ‘생활의 발견’은 곧 일상의 삶과 공간의 재발견이었다.

삶은 거창하지 않다. 일상이 모여 삶을 이룬다. 일상은 잠에서 깨어나 세수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쉬고, 퇴근하고 잠자는 모든 시간이다. 편의점, 미용실, 오락실, 횟집, 치과를 찾는 행위이다. 일상은 대부분 목적과 계획보다는 무의식, 관습, 집단문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상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다. 프랑스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일상은 도망간다”고 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일상이다. 물과 공기와 같아 평상시에는 그 가치와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코로나19가 일상을 앗아갔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 시작되면서 종교활동, 집회, 모임이 제한을 받았다. PC방, 체육시설, 학원, 술집, 클럽 등 다중이용 시설은 운영을 중단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은 온라인을 이용한 원격수업을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외출, 여행 대신 스스로 ‘자가 격리’를 선택했다. 거리 두기는 ‘언택트(비대면)’ 등 새 세상에 눈을 뜨게도 했다. 마스크를 쓰고, 손씻기를 하면서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기대하면 안되는지를 생각했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생활의 발견’이다.

오는 6일부터 ‘물리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생활방역’체제로 돌입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현격히 줄면서 ‘코로나 이후’ 채비에 나선 것이다. 시민들의 모임·행사가 허용되고 미술관·박물관 등이 문을 연다. 방역은 계속된다. 주체가 정부에서 개인으로 바뀌고, 방식이 ‘물리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옮겨갈 뿐이다.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았다. 방역과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뉴노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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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흙으로 거위를 만들었다

꺼욱 꺼욱,

목청 좋게 울라고

목을 더 길게 만들었다


흙이 마른 다음

주둥이와 다리와 물갈퀴에는 노란 물감을 칠하고

몸통과 날개는 흰 물감을 입혀

연못가에 세워 놓았다


이튿날 새벽, 요란하게

거위 우는 소릴 들려

나가 보니

찰흙 거위는 벌써 온데간데없었다


연못에 사는 거위들이

같이 놀자고 데려간 것 같았다


 송찬호(1959~)


시인은 찰흙으로 목청 좋게 우는 거위를 빚는다. 찰흙으로 생명을 빚는다. 노란 물감과 흰 물감을 칠해서 거위들이 사는 연못가에 놓아둔다. 밤이 지나고 연못가에 나가보니 놓아둔 찰흙 거위가 사라졌다. 연못에 살던 거위들이 같이 놀자고 데려갔기에. 연못에서 놀고 있을 찰흙 거위를 상상해보자.

내일은 어린이날이다. 송찬호 시인의 동시에는 어린이의 재미있고, 신기하고,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이 들어 있다. 겁이 아주 많은 늑대는 양을 만날까 두려워 멀리 피해 다니고 그래서 양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그 무서움을 이겨내느라 이빨이 뾰족해지고 발톱이 날카로워진다. 다리가 여덟 개인 거미는 은행에 취직해서 돈을 참 잘 센다. 까마귀는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큰 소리로 읽고, 당나귀는 TV 드라마를 보면서 프로야구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송찬호 시인은 세 번째 동시집을 펴내면서 “자연과 문명이 서로 다투지 않고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곤충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바란다고 썼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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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생명의 서’). 2013년 2월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바꾸려다 좌절하고 정직 4월 강제휴가에 들어갈 때, 읊조렸던 시구절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회성 항명인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과는 달리, 징계취소소송은 조직과의 장기전이라 보복이 두려웠지만, 고민 끝에 결행했습니다. 위법한 지시를 한 간부가 아니라, 법대로 한 검사가 징계받는 악선례를 남길 수 없으니까요. 척박한 검찰에 검사로서의 양심을 지켜줄 버팀목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 싶었습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그리움’). 5년에 걸친 징계취소소송 끝에 징계를 취소하긴 했는데, 검찰은 까딱 않더군요. 위법한 지시를 하고 징계권을 오남용한 간부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었습니다만, 대검은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며 징계를 거부했습니다. 지시가 위법하다는 판결도 검찰공화국 성벽을 감히 넘어서지 못합니다. 궁리를 거듭했지요. 무엇을 해야 하는가. 5개년 계획을 다시 수립했습니다. 위법한 지시를 한 간부, 지시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른 검사를 처벌한 선례를 만들어보기로. 상명하복에 주눅 든 검사의 용기를 받쳐줄 지지대 하나 세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싶더군요.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시구절을 읊조리며 결기를 다졌습니다.

수사지휘권과 기소독점권은 검찰의 ‘절대반지’입니다. 수사하지 않으면 증거가 없어 기소할 수 없고, 증거가 있어도 못 본 척하면 그만이니, 검찰은 치외법권이지요. 예외적으로 법원이 기소를 명령하는 재정신청 제도가 있긴 한데, 기소명령을 이끌어낼 증거를 검찰은 찾지 않을 테고, 경찰은 검찰 방해로 찾을 수 없을 테니, 웬만해선 재정신청 해봐야 소용없지요. 하여, 저는 사실관계가 대부분 드러나, 증거가 아니라 법리가 주된 쟁점인 사례를 골라 고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검찰이 검사들의 공연한 범죄를 요란하게 덮어버린 사건 중 외력에 떠밀려 뒤늦게 기소한 사건들이 마침 있었지요.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서울남부지검 김모, 진모가, 시민단체 고발로 공문서 등을 위조한 부산지검 윤모가 뒤늦게 법정에 세워져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당시 사실관계를 다 조사하고도 징계와 형사처벌 없이 명예퇴직과 의원면직을 허락했음은 유죄판결 기록에서 드러났으니, 징계와 형사입건하지 않은 검찰 조치의 적법성 여부가 쟁점인 사안. 징계와 형사입건 기준은 법령과 행정규칙에 상세히 나와 있고, 전직 대법원장, 민정수석, 경찰, 교장 등 여타 직업군들의 유사사례를 처벌한 실무례가 쌓여있지요. 하늘이 검찰을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싶어 고발장을 작성하며 감사했습니다.

너무도 뻔한 사건이지만 무소불위 검찰이라, 2018년 5월 전직 검찰총장 등을 고발하며 수사결과를 예상했었습니다. 속칭 ‘정책미제’로 검사실 캐비닛에 방치되어 있다가 공소시효 완성되기 직전 불기소할 테니 2020년 4월쯤 재정신청할 거란 걸. 까마득하게 보이던 2년이 쏜살같이 지났네요. 지난달 말, 뉴스로 불기소 결정을 접했는데, 이유를 바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추한 민낯을 보고 싶지 않은, 내부자로서의 슬픈 방어기제지요. 결국 확인했고, 예상대로 고통스러웠습니다. 2013년 6월 친고죄 폐지 후 무관용 원칙에 따라 성폭력사범들을 엄벌해온 검찰이 정작 내부 성폭력에 대하여는 “친고죄 폐지는 피해자 보호 취지를 반영한 것일 뿐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의무적으로 형사입건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우기고, “검찰 수뇌부가 피해자 의사 존중 원칙, 2차 피해 우려 등을 감안하여 가해자들의 형사입건 및 감찰을 하지 않은 것이니 정당하다” 등의 궤변으로 가득 찬 불기소 이유를 읽고 있자니, 검찰을 되살릴 수 있을지 아득하고 막막해집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2019년 8월 울산으로 부임한 후 매달 우체국에 들러 참고자료를 발송했습니다. 수사의지 없는 검찰이라, 탐문수사와 법리 검토는 제 몫이지요. 결국 검찰이 불기소했기에, 지난주 계획했던 대로 우체국에 들러 검찰을 되살릴 생명의 서, 재정신청서를 띄웠습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새로이 펼쳐진 길,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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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인근 야산이 이틀 전 발생한 화재로 인해 검게 타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일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12시간 만에 진화됐다. 오후 8시대에 발화한 산불의 중심이 이튿날 오전 8시 무렵 잡혔다. 지난해 4월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지역에서 동시 발생한 산불이 이틀 이상 번져나갔던 것에 비하면 신속한 수습이 이뤄진 것이다. 그 덕에 피해 규모도 작았다. 인명피해는 없었고 전소된 주택은 1채뿐이었다. 산림 피해 면적은 85㏊에 그쳤다.

이번 산불은 예년과 거의 같은 양상이었다. 올해도 건조주의보·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1년 전 발화지의 4㎞ 인근 지점에서 불이 났고, 초속 10~18m의 국지성 강풍인 ‘양간지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다. 2005년 낙산사를 태운 양양 산불도 이 돌풍이 키웠다. 지난해 고성·속초 산불 때에는 2명이 숨지고 4000여명이 대피했고 1267㏊의 산림 피해를 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화마가 닥치는 상황에서 올해 산불이 일찌감치 잡힌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이번 산불 진화에는 정부·소방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돋보였다. 산림청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는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를 ‘심각’ 수준으로 신속히 상향 발령했고, 소방청은 비상대응 최고 단계로 전국동원령을 내렸다. 정부는 산불 진화에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도록 긴급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소방 인력 5000여명이 투입돼 진화를 펼쳤고, 산림청·국방부·소방 헬기 39대는 항공 진화에 집중했다. 비상 단계별 출동 인력을 미리 편성해놓은 매뉴얼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 신속 대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소방청은 지난해 고성 산불 당시보다 출동이 최대 1시간 반 정도 단축됐다고 밝혔다. 올해 4월 이뤄진 소방관 국가직 전환도 조기 진화에 한몫했다. 이전에는 불이 난 시·도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소방청장이 국가적 차원에서 지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봄철에 강원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나지 않는 건 2015년, 2018년 두 차례뿐이었다. 거의 연례행사식으로 산불이 일어난 것이다. 자연 재해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민관이 긴밀히 협력하고 정부·소방당국이 빈틈없이 움직인다면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다. 이번 산불의 성공적 진화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면 어떤 재난 상황도 조기 대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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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노동절인 지난 1일 평안남도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2일 보도했다. 영상에 비친 김 위원장은 직접 준공식 테이프를 잘랐고, 손뼉을 치거나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일간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든 ‘건강 이상’ ‘사망’ 등 온갖 가짜뉴스를 일거에 날려버린 셈이다. 이로써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대북관과 ‘아니면 말고’식 북한뉴스 유통 행태는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려운 과제로 떠올랐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이후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추자 중병설, 수술설, 심지어 사망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장과 풍설이 춤을 췄다. 정부는 초기부터 ‘특이동향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반북 유튜버, 보수 전문가, 탈북인 출신 인사들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퍼나르기에 바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 연합뉴스


그중에서도 탈북 정치인인 태영호 미래통합당·지성호 미래한국당 국회의원 당선인의 무책임한 언동은 압권이었다. 태 당선인은 외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나거나 걷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지 당선인은 한술 더 떠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며 “지난 주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고까지 했다. 김 위원장의 건재가 확인된 뒤에도 “속단 말고 지켜보자” “20일 동안 김정은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일까” 운운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자칭 탈북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새로운 통일담론과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허무맹랑한 발언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분명하게 사과해야 한다. 그냥 두면 앞으로 또 어떤 요설로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지 모를 일이다. 통합당은 “정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누가 누구에게 신뢰를 주문하는 건가.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궤변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잠시나마 시민들을 혼란과 불안에 빠뜨린 데 대해 고개부터 숙여야 한다.


일부 보수언론들도 ‘아니면 말고’식 태도로 근거 없는 주장들을 증폭시키는 구태를 되풀이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사실 검증 없이 따옴표를 쳐 책임을 회피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 이번 사태만큼 꼭 들어맞은 예도 드물 것이다. ‘김일성 사망’(1986년) 오보 등 북한관련 가짜뉴스들이 난무했던 냉전시대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간다면 같은 일이 또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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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일 21대 총선 전체 지역구의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을 공개했다. 주목되는 정당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득표는 269만7956표(9.67%)로 2016년 총선 때보다 97만여표(2.44%포인트) 늘어났다. 전국 17개 시·도 모든 지역에서 득표율이 올랐다. 서울에서 12만여표, 경기에서 28만여표 더 받았다. ‘민심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충청권에서의 선전은 특히 눈에 띈다. 충북에서는 14개 시·군·구 중 12곳, 충남 16개 중 10곳에서 득표수가 두배 이상 늘어났다. 전북과 경남에서도 6개 시·군·구의 득표수가 100% 이상 높아졌다. 민주노동당 바람을 일으켰던 2004년 17대 총선의 277만4061표(13.03%) 다음으로 두번째 많은 득표수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 등 6석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역대 최다 의석(13석)을 차지했던 2012년 총선 219만8405표보다도 많은 표를 얻었지만, 의석수는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거대양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 꼼수에 막혔기 때문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성사될 때만 해도 진보정당 최초 교섭단체를 전망했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의석수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총선에 비해 정의당을 찍은 유권자의 증가세는 뚜렷하다. 전국에서 고루 표가 늘어난 것도 의미 있다. 그 표에는 기득권 정치에 대한 실망과 정의당에 대한 변함없는 기대가 담겨 있다. 정의당이 제3정당으로 제자리를 잡아야 거대양당의 대결정치에서 벗어나 다원적 정당체제를 만들 수 있다. 거대정당이 품지 못하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고, 진보적 의제를 선도해 한국 정치의 이념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정의당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고 유권자들도 이를 인정했다. 

정의당은 지지 않았다.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자면 돌아봐야 할 대목도 있다. 우선 ‘민주당 2중대’란 지적에서 벗어나고, 과거에 비해 존재감이 줄어든 현실에 대해 냉철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대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서푼짜리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진보정당만의 의제를 앞세우길 바란다. 불평등, 기후변화, 젠더 이슈를 주도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진보적 대안정당이 되어야 한다. 노회찬·심상정 시대를 넘어 세대교체도 이뤄야 한다. 그러면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 ‘거대한 소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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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구성된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이 지난 1일 대전MBC의 채용 성차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2018년 MBC의 주요 뉴스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진행하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회자된 적이 있다. 한국의 지상파 방송 역사상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것이 최초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지만, “전문성 있어 보이는 남성 아나운서를 보조하고 뉴스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여성 아나운서”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은 여성 아나운서의 복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하여 생계를 영위할 권리까지 위협한다. 인간이 젊음과 외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여성 아나운서에게는 비현실적인 외모 기준이 요구되어 왔다. 방송국들이 취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여성 아나운서에게 유통기한 라벨을 붙이는 것이다. 유통기한이라는 표현이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이보다 적절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여성 아나운서가 40대에 들어서면 서서히 메인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방송 시간이 줄어든다. 방송사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오랫동안 공통적으로 벌어진 현상이고, 지역방송국처럼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더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전MBC 채용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2019년 기준 남성 아나운서는 2명으로 정규직인데, 여성 아나운서 3명은 모두 프리랜서이다. 남성의 신규채용은 각각 2000년 초반에 1명, 2~3년 전에 한 명인데 비해 여성 프리랜서는 2~3년 간격으로 진행되었다. 정규직 자리는 채용 기회가 가끔 열리지만 모두 남성에게 돌아가고, 여성 아나운서 자리는 2~3년 간격을 두고 자주 교체되는 것이다. 방송업계에서는 ‘프리랜서가 수입도 더 많고, 임신 출산 시기에 자유로운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선호한 결과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 지역방송국 여성 아나운서 지원자에게는 정규직 자리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만약 방송국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임신, 출산으로 인해 데스크를 비우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적절하지 않다’라고 주장한다면, 사회적 공기인 방송국이 할 말은 아니다. 어떤 이는 정규직 공채에서 여성의 지원자격을 제한한 것은 아니니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1990년대 후반 이래로 대전MBC의 정규직 아나운서 자리에 남성만 채용된 것은 우연일까. 20년의 세월 동안 유능한 여성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남성만 채용된 것일까. 촛불혁명과 미투운동을 겪은 한국의 여성들은 방송업계의 합리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한다.

미투운동 이후 미국에서는 #SeeHer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데, 뉴스, 광고를 망라한 미디어에서 여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이다. 또한 2019년 뉴욕방송국을 대상으로 40~60대인 5명의 여성 뉴스 앵커가 방송 출연시간을 줄인 것에 대해 성차별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용감하게 제기한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4월27일 채용 성차별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제는 MBC가 유지은 아나운서와 국가인권위, 여성 노동자에게 답할 시간이다. 성별 고정관념과 차별을 관행이라고 변명하는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 방송산업의 차별적인 고용구조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화와 성찰, 행동을 주도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중년 여성 아나운서를, 방송인을 미디어에서 보고 싶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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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날, 진만은 PC방에 있었다.

게임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구인 사이트를 둘러보기 위해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냥 게임만 하고 말았다. 일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 영업직이나 경력직뿐이었다. 십 분이나 둘러봤을까, 진만은 그냥 롤에 접속하고 말았다. PC방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었는데, 서너 명씩 같이 온 일행으로 보였다. 몇몇은 대학생인 듯 온라인 강의 창을 열어둔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 이러면서 게임하니까 뭔가 졸라 보람찬 일을 하는 거 같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친구들이 낄낄거리면서 “너, 조심해라, 그러다가 인생 최초로 A+ 받을라?” 되받아치기도 했다. 전염병이 돌든 실직자가 늘든 밖에 비가 내리든 말든, PC방 안은 안온하고 말랑말랑하고 안전해 보였다. 그게 진만을 조금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진만은 지금 실직 중이었으니까. 이곳에서 들을 강의도 없었으니까.

그 할머니가 PC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진만은 그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진만뿐만 아니라 이곳 근처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할머니였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때타월이나 수세미, 면봉 같은 것을 파는 할머니. 허리는 잔뜩 굽었고, 하얗게 센 파마머리에 언제나 삼선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 할머니는 다짜고짜 남의 영업집 안으로 들어가 그곳 손님들에게 물건을 내밀며 또 다른 영업을 했는데, 물건값이 예상보다 좀 비쌌다. 진만도 두 번 김밥천국에 앉아 있다가 할머니가 내민 면봉을 얼떨결에 받아 들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오천 원을 달라고 했다. 편의점에선 천 원에 파는 건데… 진만이 어어, 거리며 망설이자 할머니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사지도 않을 거 번거롭게 구네….” 할머니는 그렇게 작게 투덜거렸다. 진만은 기분이 나빠졌다. “잘했어요.” 할머니가 나가자마자 김밥천국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저, 할머니, 아주 상습범이라니까요. 갑부라는 소문도 있고… 그렇게 사주지 말아야 정신을 차리지.” 진만은 아무 말 없이 삼천오백 원짜리 떡라면을 먹었다.

PC방으로 들어온 할머니는 좌석마다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젊은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모니터만 노려보았다. 할머니는 굴하지 않고 한 명 한 명 찾아다녔다. 이윽고 할머니는 진만에게도 다가왔다. 진만은 슬쩍 할머니가 내민 검은 비닐봉지 안을 바라보았다. 고사리였다. 줄기가 길고 맥이 없는, 누군가의 주름 같은 갈색 고사리. 훅 비린내와 함께 농약 냄새가 퍼졌다. 할머니는 그것 역시 오천 원에 팔고 있었다. 진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쉬이 포기하지 않고 재차 검은 비닐봉지를 진만의 얼굴 앞으로 더 가까이 내밀었다. “아이, 진짜!” 순간적으로 진만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진만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몇몇 남자들이 모니터 너머로 진만을 바라보았다. 알바생도 진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진만의 짜증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진만의 어떤 감정선을 건드렸다. ‘왜 자꾸 이러는 거예요, 할머니… 할머니 이러고 다니는 거 모두 다 불편해 한다고요! 할머니만 어려운 거 아니고, 나도 힘들다고요! 고사리가 지금 여기서 말이 되냐고요, 말이….’ 진만은 그 말들을 모두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러나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대신 그는 화난 표정으로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할머니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진만의 모니터 옆에 고사리를 놓아두고 뒤돌아섰다. 터덜터덜, 할머니가 끄는 슬리퍼 소리가 진만의 귓가에 오래 남았다. 모니터에선 비린내가 났다.

“그게 뭐야?”

자취방으로 돌아온 진만을 보며 정용이 물었다.

진만은 아무 말 없이 고사리를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다. 

“뭐야, 고사리네. 쓸데없이 이걸 왜 샀어…?”

정용이 묻자, 진만은 침대에 누우면서 말했다. 피곤이 몰려왔다.

“그냥… PC방에서 샀어.”

“PC방에서? 고사리를? 이게 무슨… 아이템이냐?”

그러게. 생각해보니 그게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시절이니까.

“라면에 넣어 먹으면 맛있대.”

진만은 귀찮은 듯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라면에?”

정용이 고사리와 진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야, 이거 다 먹으려면 한 박스는 있어야겠는데….”

진만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 광주대 교수 antig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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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치레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럴 때, ‘병’은 타성에 젖은 삶을 깨우는 죽비다. 코로나19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항공기, 기차, 자동차의 움직임이 줄고 공장이 멈추자, 자연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 하늘은 가고 파란 하늘이 돌아왔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는 히말라야 경관이 돌아왔다. 우리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니 무슨 짓을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이 변화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장을 한다고 자연생태계를 계속 파괴하면, 바이러스 감염과 재난은 더 자주 더 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 전환이 절박하다.

사회적 전환을 위해 정부와 여당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첫째, 재난의 최전선이다. 그리 가서, 들으라. 재난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거기에 답을 가져다주지 말고, 거기에서 답을 구하라. 답은 현장에 있다. 이번에 바이러스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취약 고리를 직면해야 한다. 특히 우리 노동인구의 절반이 되는 각종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야 한다. 재난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이 자기 체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재난의 뿌리다. 그리 가서, 보라. 지금까지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본이 어디서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해왔다. 세계화는 최소의 비용으로 인간과 자연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최적화된 ‘긴밀한 연계’를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의 눈으로 보면 세계화는 세상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생태적 연결은 배타적 이윤을 주된 목표로 하는 ‘긴밀한 연계’와 그 성격이 판이하다. 모든 것을 잇고 있는 ‘근원적 유대’는 인간 서로에게 존엄과 평등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중과 돌봄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느슨한 연계’다. 우리가 만든 ‘긴밀한 연계’를 자연의 ‘느슨한 연계’에 부합하게 바꿔야 한다.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법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외쳐온 우리에게 코로나19는 ‘천천히, 적절하게’를 주문한다.

재난에 대비한 사회적 체력 강화에 ‘먹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한때였지만, 우리도 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었다. 그때 마스크가 아니라 식량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 몇몇 식량 수출국이 쌀 수출을 금지했던 일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가 간 단절과 고립은 이번보다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 기후변화도 세계의 농사에 중대한 위험 요소다. 다수의 악재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 들이닥칠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4차 산업이 급하다는 우리에게 코로나19는 ‘농업’이 급하다고 주문한다.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K방역’으로 방역의 새 길을 열었다. 우리 정치는 ‘K전환’이라는 새 길을 열 수 있을까? 정부와 ‘거대’ 여당의 실력을 기대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hyunchul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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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인대학 기후변화연구센터가 작성한 세계 열지도.

가정집 싱크대에 두었던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했다. 전철역 스크린도어 유리벽이 열기를 이기지 못해 박살났다. 모기도 말라죽어 확 줄었다. 집집마다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가 날아왔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6년 여름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6년은 이전까지 가장 더웠던 1994년과 엇비슷했다.

기록상 가장 더운 여름은 2018년이었다. 여름 최고기온 41도, 평균기온 25.4도, 폭염 일수 31.4일, 열대야 일수 17.7일. 모두 역대 1위를 갈아치우며 ‘폭염 4관왕’에 올랐다. 그해에는 대전 부근 경부선 철도 레일이 엿가락처럼 휘고, 전남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 아스팔트가 갈라지며 들떴다. 대구의 백화점에서는 외부 유리천장이 뜨거워져 이를 화재로 감지한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물벼락을 맞는 일도 벌어졌다. 전국 응급실에 신고된 온열 환자가 4000명을 넘었다. ‘초열대야’ ‘지옥불반도’라는 말도 나왔다.

해가 갈수록 더워지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2016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더웠던 해로 기록됐다. 한국의 연평균 기온이 2016년 13.6도, 2019년 13.5도였다. 연평균 기온이 높은 상위 10개 연도 중 7개가 2000년대 이후였다. 찜통더위가 반복되자 언제 어디서든 손에 들고 다니는 ‘1인 1선풍기’나 교차로·버스정류장의 그늘막·얼음 쉼터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더위를 피하고 이기는 게 머리 아픈 숙제가 됐다.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 기상학자들은 올여름이 역대 가장 무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번 황금연휴 동안 일부 지역에서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를 보인 게 그 징조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은 올해가 1880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을 74.7%로 예측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시 멈춤’도 지구를 식히는 데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폭염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후재난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너무 빨리 더워지니 예측 따위가 소용없다”고 했다. 올여름 ‘역대급’ 찜통더위를 용케 지내도 내년·내후년에 그 이상의 폭염이 닥칠 수 있다는 말이다. 뜨거운 게 아니라 오싹한 일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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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20세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일어난 기근 사례를 통해 도출한 결론이다. 

1983~1985년 아프리카에서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다.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 주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곡물 가격이 평년의 3배로 폭등했고, 100만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시기 에티오피아는 전체적으로 곡물 생산량에 큰 변화가 없었다. 사태 직전 1982년 에티오피아 곡물 생산량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1983년과 1984년 곡물 생산도 평년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가와 관료들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출신 대통령은 국내총생산의 46%를 군사비로 지출하면서도 가난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국민들을 구제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같은 시기 아프리카 중부 보츠와나에서도 식량난이 발생했다. 곡물 생산이 평년의 25% 수준으로 격감했다. 에티오피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하지만 민주정부가 수립된 보츠와나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일자리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농업 생산력이 미약하던 시대에는 가뭄이 불가항력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재(人災)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대기근과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국제 분업 시스템이 붕괴되고 글로벌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기업 부도와 노동자 해고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소·중견 기업은 물론이고 수출 대기업과 거대 항공사까지 경영난에 봉착했다. 식당과 마트, 노래방, PC방, 헬스클럽, 미용실 등 거의 모든 자영업자가 고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감이 끊긴 여행업계 종사자, 문화예술계 프리랜서 등은 이미 극한의 생활고를 겪고 있다. 운 좋게 직장에 붙어 있는 노동자들도 정규직은 3명 중 1명, 비정규직은 3명 중 2명의 급여가 줄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 전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은 이제 시작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쯤 전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코로나19가 대유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려면 앞으로 1년은 더 걸린다고 한다. 코로나19에서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짐작조차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힘들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처지라 결혼이나 출산, 자식 교육 등 미래 설계는 꿈도 꾸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통치’(에이브러햄 링컨)라면,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데이비드 이스턴)이다. 둘을 합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시민의 뜻을 받들어 시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벼랑에 내몰린 시민들을 살려야 한다. 국회도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주기 위해 12조2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남긴 명언이 있다.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어린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일이다.” 우유 회사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처칠의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우유’라는 값진 자원을 ‘어린이’라는 미래 세대에 배정한다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른들이 힘들면 아이들은 더 힘들다. 경제난에 가정이 붕괴되면서 아이들이 버려지고,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아동학대와 자녀살해가 빈발하고 있다.

며칠 지나면 어린이날이다. 단 한 명의 어린이도 울게 해서는 안된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마음껏 꿈꾸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 배분에는 그 사회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비전과 철학을 담아야 한다. 국가 예산은 어린이를 보살피고 가르치는 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배정해야 한다.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글은 유규오 교육방송 PD가 쓴 <민주주의-세계적인 석학들의 민주주의 강의>를 참고해 작성했다.

<오창민 사회에디터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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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째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갖은 억측과 풍설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 영상을 합성한 ‘김정은 사망’ 가짜뉴스가 나도는가 하면 일부 보수 전문가들과 보수언론들은 후계구도까지 전망하고 있다. 이 ‘억측 대열’에 정치인들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목불인견이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최근 미국 CNN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나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설명 외엔 뚜렷한 근거를 내놓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는 게 전부다. 그는 국내 언론을 상대로 김 위원장의 후계구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거론하기도 했다. 북한 지도부의 많은 인사들과 김평일이 학교 동문이라면서 “김평일도 향후 북한 체제변화에서 변수로 나타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북한의 권력구도를 아는 전문가들이 보기엔 난센스에 가까운 분석이다. 

태 당선인은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이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접근할 만큼의 정보력은 없다. 스스로도 페이스북에 “김정은 일가의 동선은 최고위층 간부들도 모를 정도로 극비사항”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 마나 한 발언은 삼가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억측은 한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설일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의 설명을 믿고 지켜보는 게 합리적인 태도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지방에 체류 중이고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건강이상설을 뒷받침할 만한 특이동향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의 설명은 국내 정보기관이 수집한 모든 정보를 토대로 한 종합평가다. 그 이상의 정보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예단이나 억측은 삼가는 것이 옳다. 

태 당선인은 총선에 출마하면서 “남과 북의 진정한 평화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통일정책이 입안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사려 깊고 신중한 언행이 필요할 것이다. 북이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최고지도자의 신상을 놓고 가벼운 언행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평화통일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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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파에 일본과 미국이 있다면, 한국 좌파에는 서유럽과 북유럽이 있다. 보수라 불리는 우파는 전기, 가스, 상수도, 병원까지 민영화하자고 주장했다. 진보라 불리는 좌파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 예를 들며 주거, 의료, 교육 등 다방면으로 복지를 늘리자고 했다. (세금을 올리자는 말은 없었다.) 치고받으며 싸우는 동안 대통령 선거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국정 철학도 정권에 따라 달라져 개혁을 했다가 돌아갔다가, 풀었다가 줄였다가,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기워 만든 조각보 같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제도로 무슨 모델이라고 말하기도 어중간한 그야말로 한국형이었다.

건강보험 없이 코로나19 치료를 받으면 최소 5000만원이 든다는 미국식 모델은 애초에 갈 길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막상 스웨덴에 살 때 가장 불편한 점이 도무지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운 병원이었던 터라 스웨덴 모델로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한국에 와있는 미국인 의사 친구는 한국의 의료제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모델이라고 했다. 민간영역으로 두고 경쟁하며 영리를 추구하지만 규제가 많아 공공성이 있고 건강보험 덕분에 미국과 비교해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정쩡한 한국형 모델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같은 시스템이라도 메르스 때는 지금과 달랐으니 단지 제도나 관료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때의 경험에 정치적 결단력, 중앙집권적 통치체계, 높은 시민의식과 창의성, 약간의 유난스러움이 고루 결합해 좌파와 우파가 찬양해 마지않던 어떤 나라보다도 이 고약한 바이러스를 잘 막아냈다.

각종 외신을 통해 쏟아지는 한국식 방역에 대한 찬사를 보며 명치끝부터 솟구치는 뿌듯함에 취하는 일이 코로나19 시기 유일한 낙인 듯 싶었다. 그 와중에 시기 어린 비난도 있었다. “모바일을 활용한 한국의 추적 방식은 사생활 침해” “한국은 군부 독재 경험해 순종적” 각각 프랑스와 네덜란드 매체에 실린 말이다. 언제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다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런 무례한 말을 할까 싶었지만 다시 보니 무너진 우월감을 감추기 위한 조바심으로 읽혔다.

한편 지향으로 삼던 여러 나라가 위기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갈피를 잃었다. 우리 것도 아닌 남의 모델을 두고 이 길이 맞네, 저 길은 막다른 길이네 하다가 내비게이션의 전원이 나가버린 격이다. 용케 중간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둘은 여전히 아웅다웅 중이다.

‘포린 폴리시’는 엊그제 “미래는 아시아-하지만 중국식은 아니다”라는 글을 내며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실었다. 처음 들은 칭찬에 우쭐대는 아이처럼,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토록 자신이 없었을까? 의도한 적은 없지만 한국의 어중간한 현재가 우리도 모르는 새 클린턴과 블레어가 추구했던 제3의 길, 루스벨트가 연구했던 스웨덴식 타협안(The middle way) 비슷한 무엇인가가 된 것은 아닌가?

북유럽의 아무리 좋은 제도도 한국에 가져오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역사와 문화,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수십년 가꾼 열매만 보는 것은 사과나무에 접붙여 오렌지를 맺길 바라는 격이다. 북유럽 모델이건, 미국 모델이건 총천연색 세상에서 흑백을 두고 다툴 이유가 무언가? 한국에 맞는 색과 농도를 취해 우리의 길을 가면 될 일이다.

어쩌다 보니 한국의 현재가 이번 위기를 대응하기에 적절했을 뿐, 오늘의 성과에 취해 있을 이유도 없다. 정치권이 여론을 좇아 100% 대 70% 줄다리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린뉴딜을 발표해 인프라를 정비하고, 고용유지 지원금을 내려 보내고, 해외자본의 기업사냥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낸 나라도 있다. K모델이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싸울 시간 없다. 2라운드는 경제회복이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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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코로나19가 엄습한 2020년을 ‘전염의 시대’로 규정했다. 한국도 ‘전염의 시대’다. 집단감염이 수그러들었을 뿐,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 올겨울 2차 대유행까지 예고된 상태다. 집단면역은 형성되지 않았고, 백신과 치료제의 생산은 요원하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울 무기는 없다. 도망치거나 함께 사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정부가 생활방역 수칙으로 제시한 ‘생활 속 거리 두기 세부지침’은 전염병 퇴치 방법이 아니다. ‘출구전략’과도 거리가 있다. 인간과 코로나바이러스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기술’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공동체를 해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병원과 직장, 지역사회 전체를 뒤흔든 슈퍼 전파자의 위력은 컸다. 감염바이러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을 마비시켰다. ‘전염의 시대’에 예외는 없었다. 동네, 도시, 지역뿐 아니라 지구촌이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관계는 단절됐다. 사람들은 고립감, 우울증, 공포감에 떨면서도 타인에게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거리 두기와 ‘언택트’(비대면)의 가치가 급부상했다. 코로나19는 이전과 다른 ‘포스트 코로나’를 선포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예절을 요구한다. 예절은 인간, 사회, 국가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태도와 가치이다. 3000년 전 주나라가 들어서자 <주례>가 만들어졌다. 주례는 국가 통치 질서, 인간관계를 규정한 도덕교과서이자 정치사상서다. 한나라 때는 <예기>가 만들어졌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사라진 전통의 질서, 가치 체계를 집대성한 예법서이다. <예기>는 유학을 국시로 내건 한 왕조를 뒷받침하면서 이후 2000년간 동양 질서의 표준이 되었다. <예기>는 자잘한 예절인 ‘곡례’가 3000가지나 된다고 적었다. 전통사회에도 지켜야 할 규범과 질서는 넘쳐났다. 

1530년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어린이들의 예절에 관하여>를 썼다. 귀족 자제의 행동거지, 표정, 의복 등 일상 예절과 함께 인사하는 법, 앉는 법 등 에티켓을 다룬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18세기까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어 130판이나 찍었다. 에티켓 모음집이 오래도록 인기를 끈 것은 중세 해체기에 접어든 유럽 사회가 새로운 예절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가 제시한 일상의례, 생활방식은 뒷날 서양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술잔과 나이프는 오른쪽에, 빵은 왼쪽에 놓는다’는 식사 에티켓도 이 책에 실려있다. 

실학자 이덕무의 <사소절>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널리 읽힌 ‘바른 생활’ 지침서이다. 유학의 도덕교과서인 <소학>과 비슷하지만,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선비, 부녀자, 어린이가 지켜야 할 생활 에티켓을 모은 게 특징이다. 이 책에는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지 말라’ ‘복어국을 먹지 말라’와 같은 개인 수칙이 들어있다. 18세기 말에 쓰인 <사소절>은 필사본, 활자본, 언해본으로 발간되어 20세기 초까지 읽혔다. 책이 호소력을 가진 것은 유교 이념을 탈피한 일상의 에티켓이 조선 해체기의 사회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가 예절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잘한 에티켓이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간염이 확산되면서 ‘공유문화’가 사라졌다. 간염 예방을 위해 더 이상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면도기나 수건도 함께 쓰지 않는다. 감염병이 생활을 바꾼 사례다. 코로나19 이후 악수하는 모습은 찾아 보기 어렵게 됐다. 마스크 쓰기·손 씻기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전염의 시대’의 새로운 일상이다. 방역당국이 권장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에는 아프면 집에서 쉬기, 변기 뚜껑을 닫고 물 내리기, 퇴근 후 일찍 귀가하기, 개인 접시에 음식 덜어먹기과 같은 다양한 수칙이 들어 있다. 산에서 ‘야호’ 소리를 외치지 말라는 권고도 있고, 장례식장에 30분 이상 머무르지 말라는 조항도 들어 있다. 대부분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에티켓들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에티켓 문화의 ‘뉴노멀’은 이미 시작됐다. 방역수칙만 준수해도 일상 예절의 대변동이 일어난다. 습여성성(習與性成)이다. 반복적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문화를 바꾼다. 에라스무스가 제시한 어린이 에티켓은 근대 서양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사소절’은 전체를 중시하는 유교사회에서 개인 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서양 에티켓의 진화가 문명화를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코로나19 방역은 거창하지 않다. 거리 두기·손 씻기처럼 소박하다. 작은 실천이 새로운 에티켓 문명을 만들어간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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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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