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성공 여부를 확정하기 이르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코로나19에 대한 ‘K방역’이 성공적이라 평가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렇다. 외신들은 한국의 사례를 자국에 소개하며 성공 요인을 분석한다.

꼽힌 여러 요인 중에 공동체주의가 있다. 마스크 ‘강요’를 조롱하며 마스크 중앙에 큰 구멍을 뚫어 착용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나라. 자가격리에 저항하며 총을 들고 (마스크 없이) 집회에 떼로 나오는 (그러다 집단감염되면 어쩌려고!) 나라. 이 나라의 언론은 공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가격리하는 한국의 시민의식을 본받자고 한다. 적어도 재난 상황에서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나만 해도 그랬다. ‘내가 아플까봐’보다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칠까봐’ 더욱 조심했다. 외출을 자제하고, 피치 못할 외출 시에는 강박적으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물론 이타적 동기만 있던 건 아니다. 동선 공개에 대한 거부감도 컸다. 본래 취지보다 광장에 효수하는 형벌로서의 기능이 커져버린,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공공에 전시하는 확진자 동선 공개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민들은 눈치 보며 조심했고, 이는 ‘K방역’의 성공 배경이 됐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눈치 보기’로만 발현된 건 아니다. 힘을 모아 이 국면을 헤쳐가자는 마음. 함께 살자는 마음. 이렇게 모인 마음은 감동적인 일화를 도출했다. 이 중 어느 건물주에 대한 기사는 심금을 울렸다. 고강도 거리 두기 기간, 거리는 한산했고 가게는 텅 비었다. 자영업자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 방역당국이 지정한 ‘운영제한 업종’은 수입이 0이어도 견뎌야 했다. 이런 상황을 헤아린 건물주는 임차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걱정이 많으시지요. 저희도 자영업을 해본지라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한 달 월세를 받지 않겠습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덧붙였다. “자영업 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지금 상황을 대입해보니 너무 끔찍해요. (…) 그냥 단순히 생각했어요. ‘내가 이 상황에 월세를 받는 게 맞는 건가.’ 임차인들만 손해를 감수할 순 없는 거잖아요. 같이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요.”

문제는 이런 건물주가 소수라는 거다. 주간경향이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추산한 결과 ‘착한 임대인’의 효과를 누리는 소상공인은 1% 남짓. 그야말로 재난 국면에서,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임대료를 그대로 받는 건물주가 99%에 가깝다는 뜻이다.

세입자와 건물주를 선악 구도로 나누려는 것이 아니다. 건물주마다 인성도 경제 상황도 다르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건물주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매출이 50% 이상 하락하거나, 수익이 아예 없는 세입자에게 기존 임대료의 100%를 받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며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 재난 상황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건물주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신체의 자유, 집회의 자유, 프라이버시가 재산권만큼이나 소중한데, 왜 건물주의 재산권만 신성불가침 영역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임대료 감액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세입자의 경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을 때 월세를 감액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상가임대차법 조항에 있다. 다만 건물주에게 밉보일까 걱정되는 세입자가 이를 언급하지 못하고, 요구한다 해도 건물주가 묵살할 수 있어 문제다. 이에 법학계는, 세입자는 청구 시 간단한 입증자료만 내면 되고, 건물주가 거절하려면 법원에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팬데믹 선포 시 임대인의 차임감액청구권 수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명시하자는 아이디어도 그럴 듯해 보인다. 남은 건 21대 국회의 몫이다. 2차 대유행이 오기 전에 서두르자.

<최서윤 작가 monthlyingye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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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래전에 쥐 실험을 할 때였다. 배고픈 쥐에게 먹이를 25%, 50%, 75%, 100% 중 하나의 확률로 주면서 확률적인 보상의 학습에서 도파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보상이 100%로 주어질 때면 쥐는 다소 느긋하게 먹이를 즐기곤 했다. 특히 쥐가 고개를 살짝 들고 오물오물 씹는 모습을 보노라면, 쥐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쥐에게 표정이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쥐의 표정을 측정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과학에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주장하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또 표정은 사회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쥐의 사회성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쥐가 다른 쥐의 행동을 보고 학습할 수 있다거나, 낯선 쥐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려 애쓴다는 등의 연구 결과는 최근에 축적되었다. 

지금은 쥐의 표정을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사진 속의 물체를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인식할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에는 쥐의 표정을 비롯한 온갖 움직임을 예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과학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지난달에는 생쥐의 감정이 어떻게 표정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돌린직(Dolensek) 등의 연구도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은 생쥐가 감정적인 사건들을 경험하는 동안, 생쥐의 얼굴을 촬영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 감정을 담은 표정

연구자들은 생쥐의 머리가 고정된 상태에서 꼬리에 전기 쇼크를 주거나, 달콤한 설탕물을 주거나, 쓴 액체를 주거나, 진정제 계열의 약물을 투여해 아프고 무기력한 느낌을 주었다. 또 쥐가 떨거나 도망치려 하는 시점도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생쥐의 표정을 분석한 결과, 생쥐의 표정이 사건별로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생쥐의 표정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후, 생쥐의 표정만으로 어떤 감정 사건을 겪고 있을지 알아맞히게 했더니 90% 이상 정확도가 나왔다. 이 결과는 감정 사건과 표정 사이에 일대일에 가까운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위 결과만으로는 생쥐의 표정이 생쥐의 감정을 드러낸다고 보기 어렵다. 생쥐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무릎 반사처럼 단순한 반사에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생쥐의 표정이 감정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반영하는지 실험해 보았다. 먼저 감정에는 강도가 있다. 연구자들은 설탕물이 달콤할수록 생쥐의 표정이 단맛을 느낄 때의 전형적인 표정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쓴 용액과 전기 쇼크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는 감정처럼 표정에도 강도가 있음을 암시한다. 

또 감정에는 좋고 싫음이 있다. 염분은 신체에 적절히 필요하므로 설치류는 약한 농도의 염분은 좋아하지만 고농도의 염분은 싫어한다. 연구자들은 소금물이 연할 때는 생쥐의 표정이 단맛을 느낄 때의 즐거운 표정에 가까운 반면, 소금물의 농도가 진할 때는 쓴맛을 느낄 때의 역겨운 표정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표정이 대상(이 경우 소금)의 특징 때문이 아니라 좋고 싫음에 따라 일반화됨을 뜻한다. 

감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신체 상태를 비롯한 내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감정은 생존을 위해 행동, 호르몬, 자율신경 등이 반응하는 패턴으로서, 외부 정보와 신체의 신호, 인지 처리가 역동적으로 통합되어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생쥐가 목이 마른 상황과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물을 마실 때의 표정을 비교한 결과, 목마른 상황에서 물을 마실 때 즐거운 표정에 더 가까웠다. 

또 감정적인 반응은 경험에 따라 변한다. 먹고 체했던 음식이 싫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설탕물을 마신 생쥐에게 일시적으로 몸을 아프게 하는 약물을 주입하면 생쥐도 설탕물을 싫어하게 되는데, 이런 감정적인 변화가 표정에서도 확인되었다. 약물을 주입하기 전에는 설탕물을 마실 때 즐거운 표정을 짓던 생쥐가, 약물을 주입한 후에는 설탕물을 마시고 역겨운 표정을 보였다.  

끝으로 감정은 감정을 유발한 사건이 끝난 뒤에도 지속될 수 있는데, 연구자들은 생쥐의 표정이 감정적 사건이 지난 뒤에도 지속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감정 사건은 대개 2초간 제시되었음에도, 표정은 15초 이상 지속되는 사례가 17%에 달했다. 이상의 결과들은 생쥐의 표정이 감정의 핵심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감정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섬엽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즐겁거나 역겨운 표정과 관련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 타인의 감정

생쥐의 표정이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처럼 많은 실험이 필요한 이유는, 행동과 표정은 객관적으로 관측할 수 있지만, 감정은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주관성은 아직 과학조차 모르는 영역이다. 간혹 다른 사람의 생각(깊이 반성한다거나, 싫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좋아한다거나)을 자기가 안다고 단정하는 경우를 본다. 단정을 했더라도 이후에 관측된 사실이 단정과 다르다면 단정을 멈춰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 경우들을 본다. 하물며 생쥐의 표정을 추정하는 것조차 저토록 조심스러웠는데, 타인의 감정을 확언할 수 없음을 배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ryung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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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한 분들은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를 잊지 못한다. 실향민들이 즐겨 먹다가 1990년대 들어 국밥집 간판에 떳떳이 걸리게 되었다. 지역마다 순대 종류가 다르고 국밥도 차이가 제법 있다. 어버이날 아바이 순대를 먹으면서 철조망 건너편 아슴아슴한 고향을 생각하리라. 고향에 두고 온 일가친척. 입맛은 그리움의 진한 냄새이고 단단한 끌텅이다. 

돼지의 창자에 담긴 것은 양념만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다. 순대를 채우던 아바이와 순대를 써시던 오마니, 맴소(염소)와 새지(송아지)가 울던 초저녁 그늘. 백두산에는 호개(호랑이)가 뛰댕기고 메구락지(개구리)는 논에서 뛰댕기는 늦봄 어느 날들이 아른거리리라.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평화가 무르익으면 원조 아바이 순대를 원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게다.

긴 날 해외를 떠돌 때 순대국밥 생각이 문득문득 혀를 간질이곤 했다. 술국으로 후후 불어 떠먹다가 한잔 반주를 곁들이면 부러울 게 세상에 없을 국밥. 배가 불러야 잠도 오는 것이다. 낯선 타국에서 춥고 배고프면 상거지 신세. 순대 한 접시가 천장을 빙빙 맴돌곤 한다. 

이곳 담양에도 순대국밥 골목이 있는데 가끔 들러서 한 그릇 사갖고 온다. 먹다가 질리면 개랑 나눠먹기도 하는데, 전에 살던 차우차우는 유전자에 흐르는 북녘땅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일찍 찾아온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국밥을 먹는다. 이것은 국밥이 아니라 겨레의 수수만년을 나누는 성찬식이다.  

변고를 바라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자들이 바라는 세상엔 아바이 순대의 맛난 냄새는 없다. 고약한 화약 냄새뿐이다. 고작 햄버거를 씹어 먹으면서 졸부의 우위를 뽐낸들 어디에 그리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있겠는가. 길을 끊고, 길을 막아 세우면서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대는 스테이크에 과연 행복한 배부름이 생겨날까. 아버지가 젊어서 이북 땅을 떠돌며 드셨다던 음식. 아버지 청춘이 문득 그리워질 때 아바이 순대집이 어디 있는지 검색해보곤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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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대부분 ‘미친개’나 ‘싸이코’로 불리는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악당교사의 별명도 대부분 똑같다. 나는 저 작명이 참으로 진부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다닌 중학교 학생주임의 별명이 저 두 단어를 합친 ‘개싸이코’였던 것을 떠올리며 클리셰가 아닌 현실반영의 차원에서 이해하기로 했다. 

그 선생님은 정말 ‘개싸이코’라는 단어 외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졸업여행 때였다. 나와 함께 놀던 열 명 정도 되는 친구들은 점호 뒤 어수선한 시간을 틈타 유스호스텔 뒷마당 구석에 있던 작은 정자에 모였다. 무리 중 절반이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기에 우리는 그 작별의 슬픔을 나눌 예정이었다. 물론 몰래 숨겨온 술을 한잔씩 마시겠다는 계획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손전등도 없이 안광만으로 우리를 찾아낸 ‘개싸이코’ 선생님의 조기 난입으로,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우리는 소주의 병뚜껑도 따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엎드려뻗쳐’를 해야만 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그냥 학생들의 일탈을 제어하는 선생님의 평범한 선도 같지만, 그의 광기는 우리들 중 특목고로 진학할 학생, 반장을 맡고 있는 학생, 성적이 좋은 학생을 차례로 열외시키면서부터 발휘되는 것이었다. “착한 애가 괜히 양아치들한테 휩쓸려서” “실업계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지능과 행실로 고등학교나 제대로 졸업하겠나” “먼저 인간이 돼라”…. 당구 큐대가 엉덩이 사이에 있는 꼬리뼈만을 노리고 타작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때 들었던 노골적인 차별과 흉악한 폭언만큼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가 떠난 뒤 두 편으로 쪼개진 우리는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여행을 마쳐야만 했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했다. 왜 선생님을 말리지 못했을까? 왜 대들지 않았을까? 그전까지 스스로 정의로운 인간이라 굳게 믿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자신의 비겁함을 깨닫고 자책을 했다. 그날 밤에 겪은 일과 상처를 대충 덮어버린 우리들은 상한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고 그대로 졸업식을 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점점 멀어지다 영영 소식을 모르는 남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번이 ‘나는 정의로운 사람인가?’라는 의심을 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이 그날 밤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받는 처벌이라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지난달 29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인간수업>은 학교 안과 밖의 경계를 지워 청소년 성범죄에 연루된 10대들이 과연 어디에서 인간다움을 배우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중 주인공이자 가해자인 인물에게 부여된 과도한 서사 때문에 메시지가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교육기관과 어른들에 의해 대학입시가 최상위 가치가 되어버린 10대들의 세계를 비추며 그 질서에서 낙오되거나 계급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미성숙한 어른들 밑에서 자란 10대 청소년에게 정의란 어떻게 형성되며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답한다.

이제 막 중학교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정의로움과 용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의 청소년들은 일찍부터 그런 가치를 우선으로 삼아 혼란에 빠지지 않고 명확한 답을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재난으로 인한 장기 휴교가 끝나고 드디어 개학일이 결정됐다. 나는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통해 어른으로서의 첫 번째 역할을 해보려 한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b@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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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위법적인 경영권 승계 의혹과 무노조 경영, 시민사회와의 불통 등 자신과 삼성의 과오에 대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직접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면서 “법을 어기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삼성그룹 사업장에서 창업 후 82년간 유지해온 ‘무노조 경영’을 종식하고,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한 후 5년 만에 다시 국민을 향해 잘못된 경영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이번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3월11일 이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반성·사과하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포기도 직접 밝히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의 권고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의 주문에 따라 글로벌 대기업의 총수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는 삼성과 이 부회장이 자초한 일이다. 

이 부회장의 사과는 형식과 내용에서 삼성에 쏟아진 비판과 질책을 대체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한다. 입장문으로 갈음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경영권 승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한 것은 파격적이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불행의 사슬을 끊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이 선언을 반드시 지켜 총수 자리를 세습하면서 각종 ‘오너 리스크’를 유발해온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노총은 이 부회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했다. 그동안 삼성이 저지른 각종 불법행위와 외부 비판에 귀를 닫아온 ‘불통’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어떤 환골탈태의 다짐도 실현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삼성에 대한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을 씻고 이 부회장이 천명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삼성의 전 임직원은 약속을 천금같이 여기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 부회장은 현재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고, 삼성노조 와해 혐의 재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재판도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의 이날 사과가 재판과 수사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려는 방편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될 만하다. 이 부회장의 사과가 곧 면죄부는 아니다. 법원과 검찰은 이 부회장의 사과와 무관하게 수사와 재판에 더욱 엄정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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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혐오 표현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가해지고 있다. 또 스쿨존 내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민식이법’ 제정을 이끈 김민식군 부모도 악성댓글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민식이법이 무서워’라는 조롱성 휴대폰 게임까지 등장해 유족을 괴롭혔다.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잃어 상심한 유족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2차 가해나 다름없는 혐오 표현을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6일 이천 참사 소식 관련 인터넷 기사들에는 “떼쓰지 말아라” “돈 줄 사람 오라는 것이냐” 등 유족들을 겨냥한 악성댓글이 쏟아졌다. 전날 합동분향소를 찾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대책이 없느냐”는 유족들의 항의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한 계기가 되었다. 며칠 전부터 기사엔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내려고 하느냐” “리본을 만들고, 광화문에 천막을 치라” 등 유족들을 모욕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급기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5일 악성댓글이 달린 해당 포털사이트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 댓글 게시자 신원을 파악하겠다며 엄중 처벌 방침을 밝혔다. 

몇년 전부터 비극적 사건을 겪은 유족들을 향한 혐오가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끈질긴 비방과 인신공격, 백남기 농민 유가족들을 겨냥한 모욕 등 비슷한 유형의 공격이 반복되고 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이천 참사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또다시 희생자나 희생자 가족에 대한 모욕과 폄훼가 있을까 두렵다”고 보호를 당부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건전한 토론과 의견 개진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비판적인 혐오 표현은 해법 찾기를 방해할 뿐 아니라 유족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나아가 공동체까지 파괴한다. 유족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혐오 표현은 빠르게 전염되면서 공존의 가치를 흔든다는 점에서 바이러스보다 위험하다. 온 사회가 나서 유족을 향한 반사회적 혐오 표현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가해자들을 찾아내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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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KT는 케이뱅크 대주주가 될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같은 날 정부는 ‘10대 산업분야 65개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첫번째 과제는 개인정보 활용 활성화였다. 사상·신념, 정치적 견해, 민감한 의료데이터 등 개인정보를 가명정보로 처리할 경우 기업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 명분으로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활력 제고를 내세웠다. 전례없는 재난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지만, 자칫 시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은 누가 봐도 KT에 대한 특혜이다. 대주주 자격기준은 모든 금융회사에 공통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은 혁신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확대를 위해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한 것도 모자라 인터넷은행만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어도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자격기준을 완화했다. 어떤 이유로도 수긍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활용 확대는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가명정보는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삭제·대체 처리된 정보다. 하지만 추가정보나 여러 가명정보가 결합되면 사람 특정이 가능해진다. 국민의 사생활 침해가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런 식의 규제완화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율·세부담 상한을 높여 집값 안정과 조세정의 실현을 목표로 추진됐던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은 ‘실수요자 세부담 완화’ 주장에 밀려 20대 국회 처리가 어려워졌다. 여당 내에서 무기명채권 허용 주장도 나왔다. 국가채무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지만 이는 상속·증여세 회피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명백한 부자감세 방안이다. 원격의료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야 하는데, 시장에선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받아들인다. 경영계는 ‘쉬운 해고’ ‘주 52시간제 완화’ ‘법인·상속세 인하’ 등 반사회적·반노동적 요구를 대놓고 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꺼내든 ‘한국판 뉴딜’ 역시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자리 깔기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잘못된 규제는 경제를 위해서나 기업·국민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필요한 규제까지 풀 경우, 피해는 크고 그 부담은 국민들이 지게 된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국민 기본권과 안전판, 법 정의까지 무너뜨리는 규제 풀기를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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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얼굴이 공개된 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DB)

ㄱ양(14)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알게 된 ㄴ씨의 제안으로 ‘조건만남’을 가졌다. ㄴ씨는 성관계 중 ‘바로 지우겠다’며 동영상을 찍더니 ‘가족, 지인, 학교에 보내겠다’ ‘SNS에 올리겠다’며 ㄱ양을 협박했다.

지난달 20일 기자가 쓴 “성매매라는 이유로…‘보호받지 못하는’ 성착취 피해자들”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는 ‘쓰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의 사연이 덜 비극적으로 끝날 기회가 분명 있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진작 개정됐더라면 말이다.

현행법은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 일부를 ‘대상 아동’ ‘대상 청소년’이라 규정한다. 성매매의 ‘대상’이 된 아동이나 청소년이 강제로 성매매에 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 아동’ ‘피해 청소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대신 성매매 시 아동의 자발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본인 성을 판매한 범죄자로 분류돼 소년원 송치 등 사실상 형사처분인 보호처분을 받는다. 

시민단체들은 ‘대상 아동·청소년’ 규정이 ‘독소조항’이라 주장해왔다. 성매매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려던 아동·청소년이 보호처분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게 되고, 성매수자들은 이를 악용해 미성년자 성착취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8년부터 한국 정부에 성착취 피해 미성년자가 처벌받지 않도록 법 개정을 권고했다. 지난해 10월 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에서도 ‘대상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을 폐지하라고 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016년 ‘대상 아동·청소년’ 규정 삭제를 골자로 아청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4년 가까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법무부 반대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지난해 제5·6차 심의에서 법무부 관계자가 ‘국민적 의견 통일이 안돼서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불과 한 달여 전인 지난 3월30일 경향신문이 아청법 개정 등에 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법무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법무부가 검토를 말한 그즈음 텔레그램 ‘박사방’ 피해자 일부가 언론에 공개됐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74명 가운데 16명이 미성년자였다. 가해자들은 주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성년 피해자에게 접근해 고액 아르바이트를 시켜주겠다며 신상정보를 알아낸 뒤 성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했다.

지난달 30일 아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 법안은 ‘대상 아동·청소년’ 규정을 지우고 성매매 대상이 된 모든 아동과 청소년을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했다. 이들에 대한 보호처분을 없애고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지원하는 내용도 담았다. 중요한 변화이다. 하지만 많이 늦었다. ㄱ양도, 박사방의 16명도 그사이 피해를 입었다. 

이들의 기사는 ‘쓰이지’ 않았어야 했다.

<조문희 사회부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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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총선 결과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엊그제는 국회 입법조사처가 집계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두 거대정당의 새 국회 점유율이 발표됐다. 민주당 180석, 통합당 103석 등 두 당의 의석이 283석으로 전체 의석 점유율이 무려 94.3%이다. 의원 100명 중 6명만 두 당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유율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실시된 총선 결과 중 가장 높다. 13대 국회 62.9%와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차이가 크고, 지난 20대 때 81.7%와 비교해도 편중의 정도가 심각하다. 가뜩이나 당론에 의원들의 손발이 묶이고, 다양성이 떨어지는 여의도에서 다른 목소리는 더욱 듣기 어렵게 되었다. 

총선 후 두 당의 지역구 득표율(민주당 49.9% 대 통합당 41.5%)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다. 박빙 지역구에서 거의 모두 이겨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눈에는 승리라는 결과만 보이는 듯하다. 과거 열린우리당 때 과반을 얻고도 개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교훈을 새긴다면서도 이런 결과를 낳은 선거제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통합당에서도 선거 직후의 충격과 다른 흐름이 읽힌다. 한쪽에서 자성의 소리도 들리지만 다른 쪽에서 낙망만 할 게 아니라는 기류가 강화되고 있다. 41.5%(의석수에서 41 대 8로 진 서울에서는 27.5% 대 21.5%)의 득표율에 은근히 고무된 채 다음 판에서 조금 더 잘해서 되갚아주자는 논리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21대 국회의 미래는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통합당 의원들은 개원 전부터 대여 투쟁의지를 다지고 있다. 한 통합당 당선인은 의정 활동에 대한 계획을 묻자마자 “아스팔트 위에서 살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수적으로 대적이 안되니 길거리투쟁밖에 길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여야 대립으로 인한 입법교착이나 대치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도리 없이 극렬한 대결 중심의 정치를 보게 생겼다. 총선 전 사표를 줄이면서 소수의견을 반영하고, 그래서 양당 위주의 대결 정치를 불식하자는 취지로 선거구제 개혁을 시도한 것이 무색하다. 

보수 쪽은 거대 여당이 개헌을 추진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민주당 180석에 지레 겁먹은 것이다. 하지만 개헌은 대선이 치러지는 2년 뒤에나, 그것도 여건이 갖춰진 후 시도할 일이다. 정치권이 지금 관심을 둬야 할 것은 개헌이 아니다. 선거제 개혁이다. 두 당은 이미 총선 전부터 선거법 개정을 약속했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할 이유는 선거 결과만 제대로 읽어도 나온다. 우선 민주당도, 통합당도 다음 선거에서 소선거구제에서 재미를 본다는 보장이 없다. 두 당이 기대하는 지역주의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퇴조하고 있음이 이번 선거에서 확인되었다. 다음 선거 때는 텃밭에서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두 당의 의원들은 셈법을 달리해야 한다. 승산이 불투명한 통합당 입장에서는 당장 41.5%만큼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찰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사실 한국처럼 선거제 개혁과 선거구 획정을 당사자인 정치인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나라는 없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선거제를 결정할 때가 왔다. 관련 법안은 입법권이 있는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키더라도 선거제도 자체를 결정하는 것은 시민이어야 한다. 다행히 여론조사 결과 연동형 비례제를 폐지하기보다 수정할 것을 지지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선관위가 연동형 비례제를 제안했듯, 국회 입법조사처도 비례대표 강화를 제안했다. 비례대표 확대는 필연적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여야가 함께 추진한다면 이것도 넘지 못할 장애는 아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시민들이라면 의원 정수 확대도 무작정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도가 늘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에 관한 한 제도가 만능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총선을 통해 절감했다. 시민들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대의체제를 완비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정치개혁이다. 선거제 개혁은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180석, 그리고 정의당 6석이 우선 할 일은 이런 시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시간을 끌다 막판에 졸속으로 선거구제 협상을 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해도 결코 빠르지 않다. 일본은 투표 연령 18세 하향만 놓고 3년을 준비했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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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반인은 해오던 대로 안주하려 하고 지식인은 자신이 아는 것에만 빠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존의 규범을 지킬 줄만 알 뿐, 그 규범을 벗어나서 논의할 줄은 모릅니다. 하(夏)·은(殷)·주(周) 삼대는 예가 서로 달랐지만 각기 왕업을 성취했고, 다섯 제후는 법이 서로 달랐지만 각기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예를 만들지만 어리석은 자는 예에 얽매이며, 훌륭한 자는 법을 바꾸지만 모자란 자는 법에 붙들립니다.” 기존 규범의 고수를 주장하는 대신들과 논쟁하며 공손앙이 한 말이다.

통용되는 규범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지금이나 2400년 전이나 다르지 않다. 익숙한 규범에 따라서 잘 운영하는 편이 안전하지 혁신은 혼란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 당시 진나라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감룡, 두지 등의 반대 논리였다. 오늘날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규범을 바꾸려 할 때도 비슷한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일상으로 굳어진 규범의 내부에 갇히면 그 규범을 바라볼 수도 없고, 그것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도 없다. 규범을 보려면 규범 바깥의 자리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단절은,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그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거기서 우리는 정상적인 규범으로 여겨온 것들이 과연 언제부터 그래왔고 영원히 그럴 것인지 묻게 된다. ‘넥스트 노멀’이라는 신생 어휘를 빌리지 않더라도, 이 팬데믹을 이겨내면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회와 경제의 구조로부터 교육의 형식과 내용, 여가생활과 술자리 문화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해 왔는지, 꼭 그러해야 하는지를 성찰할 시간이다.

생존 자체가 걸린 엄혹한 현실에서 성찰이라는 말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성찰인지 모른다. 공손앙의 말을 받아들인 효공은 진(秦)나라를 혁신하여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다. 공손앙 자신은 상군의 지위에 올랐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진나라가 훗날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혁신 덕분이다. 그 혁신은 ‘완벽한 옛 법’으로 여겨진 규범이 ‘그 시대에 통용된 법’일 뿐임을 보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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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개막일인 5일 SK와 한화의 경기가 열리는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외야에 팬들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과 무를 그려 만든 ‘무 관중’ 캐릭터를 내걸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석우 기자

“한국 프로야구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복귀한 전 세계 최초의 주요 프로 스포츠리그 중 하나가 됐다.” 5일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은 한국 프로야구 개막 소식을 홈페이지 머리기사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ESPN은 ‘각 팀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등 10여 꼭지의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NC 개막전을 생중계했다. 일본의 유무선플랫폼 스포존도 ESPN과 함께 매일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생중계한다. 이날 각 구단 개막전 현장에는 미국·일본·중국·프랑스·카타르 등의 20여개 유력 언론사가 찾아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무키 베츠(LA 다저스)는 “KBO가 돌아왔다”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보영상을 올렸다.

한국 프로야구가 지각 개막, 사상 첫 무관중 경기에도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수시로 코로나19 대응 개막 준비 사항을 문의해왔다”고 전했다. 프로야구에 관한 한 한참 앞선 그들도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한국이 마냥 부럽고 궁금했던 모양이다. ‘K방역’의 성공이 글로벌 콘텐츠로서의 ‘K야구’로 이어지는 것 같아 더욱 반갑다.

잔인한 4월을 보낸 야구팬들의 즐거움 또한 남달랐다. 비록 ‘방구석 응원’이었지만 팬들은 다양한 화상서비스, 실시간 채팅 등을 통해 마치 야구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 속에 랜선(온라인) 응원전을 펼쳤다. 대형 투명 워킹볼에 화상 시구와 같은 신기술을 이용한 볼거리, 대구시의사회장과 세뱃돈을 모아 마스크 등을 기부한 어린이 등 ‘코로나와의 전쟁’ 영웅들이 각 구장의 시구자로 나서 의미를 더했다.

KBO는 이달 중에는 ‘관중이 함께하는 프로야구’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온라인 단일판매’ ‘분리 입·퇴장’ ‘조용한 응원’ 등을 전제로 관중 수를 늘려가면서 팬 입장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수조원에 달하는 경제효과가 아니더라도 프로야구의 시작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으로의 완전한 복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때문일 것이다. 프로야구 개막을 시작으로 모든 스포츠,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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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친구의 푸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부모 노릇 하기가 어렵구나.” 나의 대답이다. “여섯 살 된 우리 큰애한테 색칠하기 책을 사줬어. 좋아서 칠하다 막 서럽게 울어. 왜 우나 보니까, 종이에 색칠한 걸 어떻게 지울지 당황했더라고. 아이패드 색칠하기 앱은 ‘언두(undo)’가 되는데 책은 안 되니까.” “ㅋㅋㅋ.” 친구는 웃었다. 마음 편한 웃음만은 아니었다.

‘언두’란 실행취소 명령이다. Ctrl-Z랑 같다. 색을 칠하고 마음에 안 들면 언두를 눌러 색칠 전 상황으로 되돌린다. 빨강이며 파랑이며 마음에 들 때까지 칠해볼 수 있다. 이 방법이 손에 익은 여섯 살배기 디지털 원주민에게, 색을 선택할 때마다 루비콘 강을 건너듯 결단을 요구하는 종이책의 비가역성이란 잔혹한 것이다. 다른 친구의 넋두리다. “삶도 언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책 한 권도 모자랄 주제련만, 지금은 창작 이야기로 돌아오자.

디지털 시대의 창작은 이전과 다르다. 옛날에는 망설임 없는 시원시원한 붓질이나 호쾌한 물감 뿌리기 같은 솜씨가 존경받았다. 초심자는 따라 할 엄두조차 못 내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살짝만 빗나가도 그림을 망치기 때문.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생초보도 자신 있게 붓질을 한다. 망쳐도 되니 그렇다. 언두 기능이 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언두를 거듭하면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는다. 언두가 창작을 바꾼 예다.

그런데 창작자는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할 수 있게 되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언두 덕분에 이제 다들 하잖아, 그러니 나는 안 할 거야.” 아이러니한 일이다. 음악은 어떨까. 과거에 음정과 박자를 정확히 맞추는 솜씨는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요즘은 음악을 들을 때 (라이브의 경우를 빼면) 음정과 박자를 옛날만큼 따지지 않는다.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녹음해 놓고 기계로 만졌겠지, 뭐.” 장르 불문하고 비슷한 사례가 많다.

기술이 발전하면 창작자는 편해질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취향 역시 변하기 때문에 적응이 힘들다. 반평생 갈고닦은 기량을 더는 쓰지 못하는 일도 잦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없다. 미래를 대비해 창작자로서 어떤 전략을 짜야 할까? 내가 자신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아이에게 스마트 기기를 쥐여줘도 될까? 종이책만 보게 하라는 충고도 자주 듣는데, 헷갈린다. 아이가 장차 어른이 될 때 매체의 표준이 종이책일까, 아이패드 비슷한 무엇일까? 일단 책도 태블릿도 쥐여준 채 나는 지켜본다. 창작의 미래에 대해 아이가 나를 가르치겠지 기대한다. 나와는 달리 디지털 원주민이니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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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선생은 ‘젊은 사람을 젊은이라고 하듯이 나이가 어린 사람도 어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여 ‘어린이’라는 용어를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썼다. ‘어린이’라는 단어에는 어리다라는 뜻에 ‘이’자를 더해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한 날이지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365일 모든 날이 어린이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이였을 적에 나를 기쁘게 했던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인형도 있었고, 자전거도 있었고, 극장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봤던 기억도 떠오른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님의 지인 댁에 방문했을 때 그분이 내게 존댓말을 하며 아름다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어른들과 똑같이 내 몫의 음식을 내주었던 기억이다. 그릇의 아름다움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하지만 그보다 강렬했던 것은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어른들의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반쪽짜리 인간이나 0.5인분의 깍두기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고 존중받는 느낌. 그때의 뿌듯함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남아있다. 그때 존중받은 기억이 오래된 뼈처럼 내 의식 어딘가에 단단히 박혀서 어른이 된 나를 지탱하고 있다. 2020년의 어린이들이 받고 싶은, 받아야 할 선물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132명이 사망했고, 작년 아동학대 사례는 2만4000건이다. 어린이날이 사라지고 365일이 어린이날이어야 하는 것처럼, 아동학대란 단어가 사라지길 바란다. 어린이는 어른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고 어른의 소유물도 아니다. 어린이도 고유한 생각이 있고 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싶어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결코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새로운 사람들, 어린이들이 마땅히 존중받길 원한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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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4월,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 사업안을 부동의(不同意) 처리했다. 사업자 측이 환경영향평가 전문 기관의 재검토 의견을 고의로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뉴오션타운은 중국 자본인 신해원유한회사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주변에 총사업비 3700억원을 투자해 461실 규모의 호텔 2개와 캠핑장, 상업시설을 짓는 대규모 관광 사업이다(4월29일자 경향신문, “이 멋진 제주 송악산에 대규모 호텔 짓겠다고?” 기사 참조). 

2003~2006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여러 차례 단식과 시위, 도롱뇽이 원고가 된 소송을 벌였던 지율 스님의 지난한 투쟁은 환경운동사의 논쟁으로 남았다. 그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31㎏까지 내려간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리고 ‘수도자’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의 ‘비타협적’ 투쟁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송악산 기사를 보고 그의 투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율 스님은 통도사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천성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2001년 4월 천성산을 파헤치는 공사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지율 스님은 충격을 받았고 환경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나는 육지 사람이지만, 송악산 근처에서 6개월을 지낸 적이 있다. 평소에도 제주에 갈 때는 ‘큰 돈(택시비)’을 들여 송악산에 꼭 간다. 올레 10코스의 일부인 산방산 아래의 산방연대(煙臺)-사계리 해안도로-송악산에 이르는 길은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 <페이스메이커>를 비롯, 각종 광고의 배경 화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너무나 아름답다. 사계리(沙溪里) 해변은, 글자 그대로, 모래사장에서 바다까지 거리가 길고 깨끗하다.

기본적으로 개발(파괴)은 인간이 자신을 자연에 포함시키지 않는, 자연에 대한 대상화이다. 나처럼 짧은 시간이나마 혹은 지율 스님처럼 늘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된 경험이 있다면, 호텔은 내 몸을 짓밟고 세워지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설정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의 투쟁은 ‘죽음을 무릅쓴 행동’이 아니다. 천성산, 내성천, 도롱뇽과 하나이기에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

모두가 뉴 노멀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개발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악산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도의회가 절차 문제로 제동을 걸었지만, 비슷한 상황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서귀포시 강정동이 미군기지 후보지로 지정되기 훨씬 전인 1988년 미국은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대체지로 송악산 군사기지를 지목했다. 일제 때나 지금이나 ‘외세’에게 제주는 중요한 곳이다. 여기에 자본이 결합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무능했다. 무지와 굴종으로 우왕좌왕하면서 자연(‘영토’)을 지키려는 주민을 탄압했다.

그간 환경영향평가와 주민투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식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의하지 않는 주민에게 공권력을 동원했다. 코로나19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주민투표는 주민들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사례가 많다. 주민투표 결과는 무조건 민주주의일까.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 오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가치의 문제다. 오히려 공청회나 투표는 문제의 책임을 주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일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다수결이 아니었듯 환경영향평가나 주민투표와 무관하게,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무조건 진리인가? 전문성, 공정성, 끊임없는 뇌물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그 결과가 개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영향평가에서 승인 결정이 났다고 해서, 백록담에 호텔을 지을 것인가. 이제 개발주의 자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K방역’이 성공한 이유는 똑똑한 리더십과 공동체의 생사를 위해 시민들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송악산 개발은 한반도와 지구 이슈다. 주민들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처럼 글로벌 생태계 관점에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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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은 지금도 유효하다. 푸코가 교실 모습을 감옥에 비유했던 것처럼, 많은 비판론자는 여전히 학교가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묶어두고 지식을 주입하기에 딱 맞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규범과 감시가 최적화된 공간통제와 시간통제를 통해 학생을 장악하며 반 편성, 시간표 편성, 출석점호 등은 그런 구조를 유지케 한다. 

특히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은 1인당 2㎡가 안된다. 작년 법원은 교도소 수용거실 면적이 1인당 2㎡보다 작은 것은 위법한 과밀수용이며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학교 전체로 보면 이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지만 학교생활의 시간통제로 인해 대부분 좁은 교실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형편이고 보면 이 비유가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성인이었으면 당연히 저항했을 환경을 아이들이기 때문에 묵묵히 참아내고 있다.

그런데 왜 행복해야 할 학교가 규율과 감시 중심으로 편제되었을까? 여기에는 학교가 공장모형을 본떠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매우 유력하다. 교사들은 1교시, 2교시 등의 작업시간에 맞추어 1반, 2반 등 분업장 안에서 획일적으로 수업한다. 연령별 표준에 맞추어 학습하며, 시험은 학생들의 능력을 생산품처럼 검사한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었지만 학교는 여전히 효율성과 감시라는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의 유령을 버리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학교를 단번에 해체해 버렸다. ‘거리 두기’를 위해서 아이들을 가두어 두던 물리적 통제는 중단되었고, 교사들이 가졌던 교육의 주도권은 단번에 학생들 손으로 넘어갔다. 오히려 민망하게도 교사들이 수업하는 ‘비밀의 정원’이 고스란히 학부모들에게 노출되는 부산물도 생겼다. 그 와중에도 학교는 카톡으로 출석을 부르고 교단에 서서 수업하는 등 여전히 오프라인수업 방식을 온라인수업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 가운데 특별히 주목할 점은 바로 온라인개학이 편안한 집과 공부하는 학교의 두 가지 다른 이미지를 교차하는 새로운 혼종성의 시공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학습은 반드시 1인당 2㎡의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교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만이 아니며, 학교도 얼마든지 새로운 포맷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틈새를 보여주었다.

이제 곧 생활방역과 함께 온라인개학이 ‘정상적인 개학’으로 대체된다. 온라인개학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한국의 창의적 발상이었지만, 여전히 시민들 마음속에는 ‘비정상적 개학’으로 읽힌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지금까지의 학교는 과연 정상이었던 걸까? 온라인개학 속에 잠시 맛본 것들이 정상이었고 지금껏 아이들을 가두어 두었던 공간이 비정상이었던 건 아닐까?

학교는 학습공간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다. 인간임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여유가 부정된 공간은 인권이 침해된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업교실 외에도 휴식과 개별활동이 가능하도록 훨씬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공간은 지자체가 함께하면 훨씬 넓어진다. 경기 화성시의 이음터는 한 가지 모델을 제공한다. 학교 부근에 지자체 학습공간을 짓고 낮에는 학교가 사용하고 방과 후에는 지역 성인들이 사용하도록 디자인한다. 예전에 제시된 또 다른 방안은 운동장을 변형하는 것이다. 군대 연병장을 연상시키는 운동장에 체육관을 포함한 복합 건물을 지어서 학생들의 다면적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학교가 지금처럼 전일제 단독공간에서 교사주도의 수업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관점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되었다. 팀프로젝트, 자기주도학습 혹은 공강까지도 시간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산업 4.0시대의 ‘플랫폼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교도 ‘플랫폼 학습체계’가 돼야 할지 모른다. 강의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이미 상당한 수업에서 유튜브, EBS, 아이스크림 등 지식 플랫폼의 프로그램들이 활용되고 있다. 수업의 20% 정도는 온라인수업을 병행할 수도 있다. 피터 센게는 20년 전 벌써 학교를 교수 중심이 아닌 시스템학습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권했다.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 통제로 학생들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다양한 혁신의 길이 보인다. 

요컨대 교사가 주인인 교실수업형 학교 공간은 하루빨리 학생이 주인인 학습생활형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탈근대적 해방이 요구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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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하늘과 땅이 차례차례 막히더니 급기야 전 세계 어디든 재난 지역 아닌 곳이 없고 그리하여 명령이나 강제 조치 없이도 이동이 제한된 상태에 놓였다는 걸 깨닫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비약하면 폐소(閉所)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건 사실 우스운 일이었는데, 우습다고 말하는 건 가사 노동자이자 재택근무 글쓰기 노동자인 나의 생활반경은 원래도 대부분이 집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멀리 움직인다 한들 시장이나 마트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 달리 극단의 이동제한 조치가 없으니 마스크와 소독제만 철저히 준비하면 시장이나 마트는 지금도 갈 수 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와 모든 시간 및 장소를 공유해야 하고 그로 인해 부가적으로 발생한 돌봄의 시간은 예외적인 어려움이지만 방역의 최전선에서 고생하고, 이 사태로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이들에 비할 수도, 비교해서도 안되는 예외다. 그러하니 생각해보면 아, 어디로 떠나고 싶다, 는 바람이나 이곳이 아닌 저곳에 닿아보겠다는 작정 하나를 품을 수 없게 된 것뿐인데, 그 마음 하나가 그렇게 크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삶이 닿을 수 있는 구획이 이전보다 좁아졌으니 폐소는 폐소다. 

그런데 이 폐소는 한편으로는 열려 있는 폐소다. 물리적으로는 이동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다. 전 세계가 통신망으로 연결된 건 코로나19 이전의 일이지만 그 영향력을 어느 때보다 실감하는 건 요즘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집 안에 격리되어)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소식과 정보가 단절과 추측의 형태로 전달된다. 어느 때보다 가짜뉴스와 추측이 더하여 음모론이 난무한다. 랜선으로 가능한 소통에는 한계가 있고, 소통이 사라진 자리에 설득이 있을 수 없어 각자가 믿는 것이 각자의 세계가 된다. 그저 한 사람이 한 세계다. 코로나19가 끝난 이후 그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거리에 나오게 될까. 각자의 신념을 갑옷처럼 두른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사회를 상상하면 답답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오래전 영화를 찾아 보고, 책꽂이를 정리한다. 잘 견디고 있다는 답장을 읽으며 안도하고,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를 보며 상상한다. 다시 그 풍경에 닿을 수 있을까. 마스크를 벗고 대화할 날이 올까.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던, 그리하여 세상 끝에 선  기분이던 어느 날, 장은진의 소설 &lt;외진 곳&gt;을 읽었다. 중심가에서 밀려나 아홉 개의 셋방이 모여 있는 변두리 집에 이사와 절망하던 화자는 모두가 소란하고 떠들썩한 축제를 찾아 중심가로 떠난 크리스마스에 아홉 개의 방 모두에 환하게 켜진 불을 보고 생각한다. 당신이 오늘 이보다 더 바깥으로, “크리스마스마저 없는 곳”으로 멀리 밀려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 말이 내게 묘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저마다의 세계에 갇혔다고는 했지만 사실 저마다 갇힌 구획의 크기는  다르다. 물리적인 의미로든, 심리적인 의미로든 그러하다. 당연히 견뎌야 할 삶의 크기도 다르다. 갇힐 곳도 없는, 거리에 방치되어 보호받지 못한 삶도 있었다. 무너지는 삶을 위해 손 내밀어줄 이웃도 자가격리의 상태인 셈이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 알지 못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제 어렵게 생활방역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것이 바이러스의 종료를 알리는 것은 아니다. 이 바이러스가 끝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여전히 격리되고 떨어지고 수시로 갇혀야겠지만 그러나 이제는 내 곁의 이웃이 더 바깥으로 밀려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보는 방법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럴 수 있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어디에 있든, 얼마나 외지든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불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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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29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어린이날 기념 영상메시지를 촬영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어제는 제98회 어린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청와대 가상공간’에서 블록 장난감 캐릭터로 등장해 어린이들에게 청와대를 소개했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글을 올려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20대 국회의 아동 관련 법안 처리 상황은 우리 사회 아동권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의 삶과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칠 법안들이 기약 없이 뒷전으로 밀려 있다. 

5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서 ‘아동’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총 256개 법안 중 처리된 것은 80개에 불과했다. 176개 법안이 계류 중인데 20대 국회 폐회와 함께 자동폐기된다. 20대 국회가 풀지 못한 아동복지법의 내용을 보면 어린이 복지 실태는 심각하다. 전체 성범죄 중 11.3%를 차지하는 친족에 의한 성범죄 은폐를 막을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학대피해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간 후 학대 재발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법안도 논의가 중단된 지 오래다. 2018년 폭염 속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방치된 4세 아동의 사망으로 들끓었던 차량방치 관련 법안도 개념 정의 등 논란으로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외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법’과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문 대통령의 ‘아동인권법 제정’ 공약도 길을 잃은 상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놀 권리’ 등에 대한 국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대한민국 보고서에서 재차 지적된 한국 어린이들의 과도한 학습노동 현실은 국제사회도 우려할 정도다. 

아동복지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적극적 옹호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성매수 범죄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 아동, 청소년’으로만 규정하도록 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유엔이 권고한 지 무려 12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사이 없었어도 될 피해자들이 양산됐다. 

시민단체·유관기관 연대체인 ‘대한민국 아동·청소년정책연대’는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아동기본법 제정 등 8가지 공약과제 제안서를 정당들에 제출해 상당 부분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 이제 아동·청소년 권익을 위해 사회 전체가 적극적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아동을 대하는 방식만큼 그 사회의 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언제까지나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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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숙소에서 잠들기전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다. 강윤중기자

오늘부터 일상적인 사회·경제활동을 하면서 방역수칙을 실천하는 ‘생활방역’체계가 시행된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한 지 45일 만이다. 생활방역체계로의 전환은 신규 확진자 수가 한 달 가까이 50명 미만으로 줄어드는 등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시민들은 거리 두기의 핵심인 다중 행사나 모임 참석 자제, 재택근무 등으로부터 벗어나 예전의 일상으로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개인이 방역의 주체가 되고, 여전히 취약집단이나 방역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생활방역체계에 돌입함에 따라 코로나19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숨어 있는 감염원을 찾아내 검사를 진행하는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 39만명을 포함해 약 130만명에 이른다. 누구보다도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기 쉽다. 이들은 공적 마스크 구매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더욱이 국민 누구나 받는 기본재난지원금의 수혜 대상도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 2월 정부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치료비 전액 부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신고 불이익 면제 조치를 취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 소홀이 가져올 파장은 싱가포르 사례가 잘 보여준다. 지난 3월 중순까지 방역 모범국으로 분류된 싱가포르는 섣부른 등교개학을 한 탓에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확진자 1만7000여명 가운데 75%가 이주노동자이다. 정부도 싱가포르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생활방역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주노동자 방역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일정 기간 단속 유예와 코로나19 검진을 받은 불법체류자 고용주에게 향후 범칙금 감면, 휴가 등으로 일시적으로 출국했다 귀국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자가격리 장소 제공 등이다. 아무리 좋은 대책도 수요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되면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대책이 잘 이행되는지 관리·감독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생활방역이 성공을 거두어야만 현재 가장 높은 ‘심각’ 단계인 감염병 위기경보의 하향 조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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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원내대표 후보자들이 4·15 총선 ‘사전투표 조작설’을 해소하라고 선관위에 요구하고 나섰다. 주호영 의원은 지난 3일 “좀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며 “관계당국이 선거 신뢰와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작설은 “많은 국민들의 의문”이라고 했다. 김태흠 의원도 4일 당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선거 패배 불복이 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관위나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고 빨리 매듭지어달라”고 했다. 두 중진의 말은 지난달 22일과 3일 선관위가 보수 일각에서 제기한 투표 조작설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 나왔다. 무슨 의혹이 남았는지 특정하지 않고, 실체도 분명치 않은 ‘많은 국민’을 앞세워 당은 나설 수 없으니 선관위가 의혹을 다 풀라고 한 것이다. 말려도 모자랄 판에 제1야당을 이끌겠다는 사람들이 보수 유튜버나 극우 인사들에게 끌려다니며 할 말인가. 가볍고 무책임하다.

사전투표 조작설은 민주당 득표율이 본투표보다 10.7%포인트 높게 나오고, 서울·경기·인천의 1·2당 득표만 비교하면 소수점 빼고 63 대 36으로 똑같이 나왔다며 시작됐다. 하지만 소수당·무소속 후보를 반영하면 양당 득표율은 달라진다. 앞서 19대 총선·대선에서도 사전투표 득표율은 민주당이 높고, 수도권 세 곳에서 비슷하게 나온 전례도 제시됐다. 조작설을 믿는 사람들은 투표함을 바꿔치기하거나 개표가 조작됐다면서도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번 둑이 열린 조작설은 ‘투표용지 QR코드에 유권자 추적 정보가 들어갔다’거나 ‘중국 화웨이 장비로 조작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선관위는 QR코드 일련번호 31자리에 개인정보는 없으며, 국가표준으로 제작된 사전투표 통신망은 유출·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의혹만 부풀리고 선관위 말은 귓등으로 흘리는 일이 반복되는 셈이다.

개표 부정설은 과거에도 불거졌지만 입증된 적이 없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쪽이 요구한 검표는 망신으로 끝났다. 2012년 대선 땐 문재인 후보 지지자 일부가 제기한 전자개표 의혹이 흐지부지됐다. 4·15 총선 조작설도 결과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의 확증편향으로 보인다. 문제는 극우 유튜버나 막말 정치인이 지핀 조작설을 공당이 방관·동조해 입증 책임을 선관위에 넘긴 것이다. 유권자 눈엔 반성도 질서도 없는 한심한 당으로 비친다. 참패한 제1야당이 증거도 없이 유령만 좇는 행태는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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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나는 큰 좌절감에 빠졌다. 중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었고 과학경시대회 수상자였던 나의 첫 시험 성적이 거의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 모든 고민은 ‘어떻게 해야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이 학교를 떠날 수 있을까’였다. 나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율학습을 마치고 체육관에 갔다. 거기에는 탁구대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몇 주가 지나자 더 이상 날 상대할 선수가 없었다. 중학생 시절 동네 탁구장에서 두 달간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덕이었다. ‘어라, 학교 다닐 만한데…’(체육고가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때부터 내 고등학교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이 먼저 다가왔고(오는 것 같았고), 공부도 다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능력이 전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다. “요즘처럼 국뽕이 차오른 적이 없다” “한국이 선진국인 것은 우리만 몰랐다”고들 한다. 사실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한국은 2년 전에 세계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에 가입했다. 우리는 196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범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최초이자 유일한 국가다. 이 성취는 민족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데 큰 기여를 했다. 

BTS를 대표로 하는 K팝은 문화적 측면에서도 한국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BTS는 다른 K팝 스타들이 넘사벽이라고 생각했던 북미와 유럽 시장을 확실히 뚫었고 전 세계 아미(팬클럽 이름)들의 행동을 동기화했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며칠을 줄지어 기다리는 서양 친구들을 화면으로 목격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손흥민은 세계 축구계의 블루칩으로 맹활약 중이다. 우리 어른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19 사태는 또 다른 영역의 자존감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꽤 좋다. 엊그제 정세균 총리는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됐다”고 선언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이 가진 세계적 표준은 단순히 방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라며 이른바 ‘브랜드K’가 세계를 이끌기 시작했다고 전망했다. 브랜드K는 이제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은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최고치다. 

왜 우리는 대한민국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할까?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동에는 몇 가지 심리적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집단 내에서 음식물을 획득하고 정보를 전달하며 아이를 양육하고 각종 위협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사회적 자본(사회적 네트워크)이 필요했다. 이에 소속감, 협력 의지, 충성심 등은 슬기로운 집단생활의 필수 심리로 진화했다. 

둘째, 집단에 소속함으로써 불확실성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줄일 수 있다. 불확실성이 크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집단성이 높은 집단을 더 강하게 동일시한다. 인생에 불안감이 몰려올 때 교회를 찾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 팬클럽에 가입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인의 자존감 상승을 잘 이해하려면 사회적 정체감 이론이 필요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은 자존감의 중요한 원천이다. 해외에서 한국 회사 제품의 광고를 보고 왠지 모를 뭉클함과 뿌듯함에 스스로 놀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지 한국 브랜드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다. 세월호 참사, n번방 사건, 각종 산업재해와 같은 국가적 비극과 수치를 겪을 때 국민 개인의 자존감이 추락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K방역을 외치는 지금 한국인의 자존감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몇 년 전 실패한 바로 그 영역(방역)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기에 우리의 자존감은 급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존감을 당장이라도 추락시킬 위협 요인들은 건재하다. 가령, 작년 경향신문이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라는 특집기사에서 보도했듯이, 산업 현장에서 안전비용 절감 등의 구조적 원인으로 사망하는 노동자 수가 하루 평균 3명이나 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다. 자살률도 1위다.

브라질은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5회 우승)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인들이 브라질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K팝, K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뜬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갑자기 행복한 국가로 승화되지는 않는다. 한국인의 자존감이 살짝 올라갈 뿐이다. 우리가 올려야 할 자존감의 영역은 우리 일상의 본질에 해당되는 부분이어야 한다. 삶의 현장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브랜드K’ 외침은 ‘자기기만’에 가깝다. 

우리 방역 시스템의 여태까지의 성공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줄 만하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과 같은 일상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탁월한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존감을 ‘K방역’이라고 꼬리표를 달아주고 홍보하는 쪽에 힘쓰기보다는 남아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심리적 동력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보다 이번 방역 문제를 잘 풀었으니(우쭐), 이제 우리를 좌절케 하는 고질적 문제들을 다시 천착해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난데없는 탁구 실력으로 자존감을 회복했다. 이 자존감은 내게 학습 동기를 불어넣었고, 내 성적은 두 달 만에 전교 3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물론 그 이후의 성적은 비밀이다. 자존감은 단지 쾌감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동력이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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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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