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초, 노동부는 2019년 산재사고 사망자가 2018년에 비해 116명이나 감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1999년 사고사망자 통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감소 규모라고 밝혔다. 특히 건설업 사망자 수가 485명에서 428명으로 57명이나 감소했고, 이는 선택과 집중 방식의 사업장 관리감독, 발로 뛰는 현장행정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4월27일 노동부가 공개한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의 분석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건설업에서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 수)은 1.65명에서 1.72명으로 늘었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2019년 건설경기가 나빠 건설업 노동자가 줄어서 사망사고도 줄어 보였던 것뿐이다.

2018년 수준의 사망률만 유지됐어도, 건설 사고사망자는 410명이다. 죽지 않았을 노동자 18명이 더 죽은 것이다. 이 18명 중에 이천 물류창고 참사 피해자처럼 일 배우러 나간 20대도 있고, 머나먼 곳에 고향을 두고 일하던 이주노동자도 있고, 결혼식을 기다리던 30대도 있을 것이다.

노동부와 안전공단, 국토교통부까지 나서 ‘건설현장 사망사고’ 예방에 집중하는 전략 자체가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노동안전 수준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 건설현장 사망사고 예방이 집중과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안전인력으로 큰 현장을 순회점검하고, 시스템 비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산재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부족하다.

코로나19는 잘 막아내는 정부가 산업재해는 왜 막아내지 못하냐며, 정부를 달래거나 규탄하는 말도 넘친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산재사망사고는 다르다. 

이윤을 중심으로 설계하고 계획하는 관행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기업들의 ‘경영’ 방침이다. 노동자는 생산의 한 요소일 뿐이라는 사고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켜켜이 녹아들어 있다. 일시적으로 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서 물량전으로 제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17개 하청업체에 공사 기한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닦달하던 이천 물류창고 건설 원청 책임자는 위험 상황을 ‘의도’하거나, 안전수칙과 공사 기한 준수를 견준 후 공사 기한 준수를 ‘선택’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납기일을 지키고, 생산량을 맞추고, 공사 기간을 지키고 심지어 단축하는 것은 당연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사고는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 자체를 수정해야 하는 중요한 사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다시 주장하는 이유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의 원청과 발주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산재사망사고가 완벽하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크게 다치고 사망하는 사고에 대해 실제 이윤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산재 사고를 ‘안타깝지만 있을 수도 있는 일’로 생각하는 한국사회 관행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충격이 될 수 있다. 

“처벌받는 것이 두렵다면 기획과 설계에서부터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하라”고 법으로 정해두는 것은 기업 경영의 목표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두게 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 피해자들을 기억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든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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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성 안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로 사람들을 나눈 성곽 도시 시대가 있었다. 그때, 성 안 사람들을 부르던 말이 부르주아다. 핏줄로 권력을 이어받던 절대왕정이 시민혁명으로 무너진 뒤, 부르주아는 지난 250년 동안 세계사의 주역이었다.

헨리 키신저가 ‘성곽 도시’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을 때, 이 시대가 사람, 돈, 상품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막는 성벽은 이미 해체됐다고 전제하고 있다.

정말 성벽이 없어졌을까? 눈에 보이는 장벽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은 더 높아졌다. 하나의 장벽이 아니라 겹겹이 서 있는 벽이고, 성문은 점점 작아졌다. 돈은 성 안으로 흘러들어가 성 안 사람들에게 몰리게 돼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부에도 여러 벽이 있다. 기업 간에는 원청과 하청과 재하청이 있고,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계약직, 임시직이 있다. 서울의 건설 현장과 식당, 충청도의 딸기 농장, 강원도의 시래기 공장, 양계·양돈 농장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최첨단 제품을 만들던 나라들이 마스크 하나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했지만, 한국 사회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다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신분사회, 계급사회만큼 우리 사회도 계층이 구획되어 있다.

<전염병의 세계사>의 저자 윌리엄 맥닐은 인간의 삶이 미시기생과 거시기생 사이에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미시기생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인간 숙주에 기생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생명체는 종의 번식을 목표로 한다. 독성이 강해 숙주가 빨리 죽어버리면 바이러스도 사멸할 수밖에 없고, 너무 약하면 인간의 면역력에 의해 기생체가 죽을 수 있다. 기생체의 입장에서는 보균자로 살아남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거시기생은 인간사회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구조를 기생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피지배자가 몰락하면 지배자들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다. 맥닐은 전염병의 발생이 사회변혁의 변곡점이 됐다고 본다. 전염병으로 인구가 격감하거나 경제가 망가지면 지배계층과 사회구조가 무너졌다. 맥닐의 ‘거시기생’이란 말이 적확한 표현인가는 숙고해봐야 할 문제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 시스템을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공정한 몫이 돌아가지 않고, 특정 국가와 계층에 유리하도록 돼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富)는 성 안으로 흘러가게 돼 있는 것이다.

중산층까지도 푸드뱅크에 줄을 서고, 몇 주간의 봉쇄도 견디기 어렵다며 총기시위를 하는 미국이나, 쓰레기봉지를 뒤집어쓰고 환자를 돌보는 유럽과 일본을 보면서 사람들은 강대국들의 체제도 엉망이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인류는 그동안 많은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고치며 써왔지만, 지금 체제를 조금 더 보완한다고 해도 세상이 잘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사람들은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문제는 성 안 사람들이 앞장서 풀어야 할 숙제다.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코로나19 사태로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것이 아니다. 힘들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죽을 지경이라고 수없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물론 정부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보완장치들을 확대해왔다. 한데 큰 틀에서 보면 성문을 활짝 열거나, 장벽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많이 놓아 계층 유동성을 확장시킨 시스템은 결코 아니었다. 위기가 닥쳐오면 가장 먼저 여러 겹의 성 밖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우리는 지금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위기의 맨 앞줄에서 쓰러져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다음은? 성 안 사람, 즉 중산층과 중상위층이 될 것이다. 외환위기가 엄청난 충격을 준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와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분만 떨어져 나갔다. 기업이 도산하고, 중산층이 흔들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성의 가장 안쪽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겐 재산증식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아시아 개도국들의 위기였고,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는 유럽과 중국 등 다른 지역의 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에 비유될 정도다. 대공황 후 어떤 세계 경제 위기보다 더 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왕과 귀족이 국민의 1%도 되지 않았던 절대왕정 시절에는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gt;에서 “민주화 이후 질적으로 한국 사회가 나빠졌다고 본다”고 썼던 것이 15년 전인 2005년이다. 지금 성 안 사람은 절대왕정 시대의 귀족이나 군사정권 시대의 소수 부역자와는 다르다. 이들은 노예상인이나 악덕 지주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사다리가 많아 개천에서도 용 나던 시절에 공부하고 일해 성공했을 것이다. 1980년대에는 대학과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3년 전에는 광화문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을 것이다. 그때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성문이 활짝 열려 있던 시대였으니 가능했다. 그들이 지금 자신의 출발점에 다시 선다면, 현재의 계층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이제 사다리는 치워졌고, 성문이 닫혔다. 지금 성 안 사람을 중상위층으로 비유해본다면 <20 vs 80의 사회>의 리처드 리브스는 20%, 미국의 사회학 교과서 &lt;소사이어티인 포커스&gt;와 <세습 중산층 사회&gt;의 조귀동은 10~15%로 본다. 땅을 밟지 않고서 빌딩을 세울 수 없듯이, 서민층이란 토대 없이는 그들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이선균)은 탐욕에 찌든 사람이 아니라 IT 기업의 ‘점잖은’ 최고경영자(CEO)다. 대신 그는 성문을 닫아 걸고 있다. “내가 선을 넘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성 안과 밖 사람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문을 열거나 사다리를 놓아 같이 살 것인가, 아니면 같이 죽을 것인가?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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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스위치용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 에디션이 인기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집콕 인구’가 많은 데다 ‘힐링게임’이라고 알려지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구매 열풍이 일고 있다. 요즘은 품귀현상으로 구입 자체가 쉽지 않아 웃돈을 주고 사는 형편이다.

모동숲 세계에는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이 살 수 있다. 나무를 키워 열매를 얻고 물고기를 잡으며 땅에서는 광물을 캐낼 수 있다. 내집 마련의 꿈도 100% 가능하다. 처음엔 물론 대출을 받아야 한다. 자연에서 수확한 것을 팔아 돈을 마련해 갚고, 남는 돈으로 세간살이도 장만한다. 살다가 더 큰 집을 짓고 싶거나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또 대출을 받으면 된다.

주위에는 마음씨 착하고 나와 얘기하길 좋아하는 동물 이웃들이 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변가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섬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힐링게임으로 불린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얘기는 다르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고 푸념한다. ‘노오력’에 배신하지 않는 가상 공간 덕분에 집을 불려나가는 재미가 크지만 큰돈을 대출받는 바람에 쉴 새 없이 나무를 심고 물고기 잡고 땅을 파느라 재미와 힐링은 뒷전이란다. 모동숲을 즐기는 한 20대 청년은 “현실에서 벗어나 대리만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게임)인데도 왠지 쫓기듯 집 늘리고 돈 버느라 바쁘다”면서 “한국인들의 게임 진행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빨라 닌텐도 측에서도 놀라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여유롭게 즐기라고 나온 게임에서도 왜 정신없이 쫓기는 것일까.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강력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다. 여전히 지켜야 할 제1수칙은 ‘아프면 집에 머물며 3~4일간 쉬기’다. 잠재된 전염병의 위험성 때문에 ‘아프면 쉬기’가 강조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아플 때 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동안 우리는 아파도 참으면서 일하고 또 일하고, 학교에 갔다는 얘기다.

학창 시절 ‘개근상’은 ‘우등상’에 버금갔다. 특히 초등학교 개근상은 6년간 단 하루도 결석을 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는 상이어서 지금 생각해도 ‘넘사벽’이다. 초·중·고 때 개근상을 모두 받은 남편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성실함, 강인한 정신력을 개근상 수상으로 내세우곤 했다. 문제는 개인의 빛나는 수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같은 잣대로 강요한다는 데 있다.

그 탓에 아이들이 아플 때 자주 갈등을 빚었다. 남편의 주장은 아파도 일단은 등교해 양호실에 누워 있거나 참기 힘들 때 조퇴하면 된다는 거였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두통이나 생리통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아픈데 선생님 말씀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고 반듯이 앉아 있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이후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1~2교시에 가지 않거나 학원을 빼먹을 때면 ‘나약하게 잘못 키웠나’ 후회하기도 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오랜 시대정신이 무언의 조바심으로 여전히 작동한 것이다.

직장에서도 비슷하다. 아파서 결근할 때면 눈치가 보이고, 특히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거나 집에서 돌봐야 할 때도 말을 꺼내기 쉽지가 않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더 공감하지 않을까. ‘애가 아프다’는 이유 대신 ‘집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차라리 낫게 생각된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공유하게 된 ‘가족돌봄휴가’의 경험은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어느 직장에서든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긴 방학을 보낸 아이들의 등교가 곧 시작된다. 재택근무에서 돌아온 직장인들로 출퇴근 지하철이 다시 만원이다. 멈춘 시계로 누가 어디서 더 불편하고 힘들며 고통받는지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가만히 머물러 보는 것이 뭔지도 느끼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상이 화두다. 개근상에 보내는 박수 뒤에 역차별은 없었는지,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해야 할지, 코로나19 이후 요구되는 공동체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모동숲에서도 아플 땐 쉬고 놀면서.

<김희연 소통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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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들이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퇴출’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석탄화력발전소는 30일 삼천포 1·2호기 폐쇄 후에도 58개가 남고, 7개가 추가 건설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마을엔 교황 특사로 알타미라노 추기경이 도착한다. 추기경의 임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 영토분쟁을 잘 중재해 교황청의 권위를 지키는 것. 양국 경계선에 사는 과라니족과 예수회 선교 사제들을 철수시켜야 했다. 각국 장수들과 추기경은 테이블 위에 지도를 놓고 머리를 맞대 경계선을 완성했고 만족한 듯 박수 친다. 영화의 다음 장면은 침략자들에게 학살당하는 원주민들의 참혹한 광경. 영화 <미션>의 이 장면은 음악과 함께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담론이 한창이다. 정부도 기업도 시민사회도 팬데믹의 아픔을 잊지 않고 전환점으로 삼으려고 안간힘이다. 특히 정부는 대규모 재정투자와 제도개선 병행을 통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해 융·복합 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제왕적인 권위하에 짓눌려 살아와서 그런지, 관이 민을 보살펴 주겠다고 하고 앞장서서 혁신하겠다고 하는데, 이 당연한 것들이 아직은 어색하고 낯설다. 해외동포들에게도 구호품이 전달되고, 한국계 입양인들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이 전해졌다고 하니 안도감이 든다.

우리 정부가 뉴딜을 하겠다니 쌍수 들고 환영한다. 다만 혁신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법인데 과연 한국판 뉴딜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야 할까? <2050 거주불능 지구>가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 데이비드 월럿 웰즈는 찬찬하게 팩트를 들어 기후변화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라고 정의한다.

너무 빨리 더워져서 예측 따위가 소용없는 살인적 폭염, 농산물 생산량 저하로 인한 빈곤과 굶주림, 지도를 바꿀 정도로 녹아내리는 빙하, 지금의 화재는 불장난 수준이 될 산불. 게다가 대가뭄으로 인한 수자원의 약탈과 전쟁, 마실 수 없는 공기, 코로나19보다도 전염성이 더 강하고 빨라질 바이러스들의 출현은 대침체나 대공황을 넘어서는 대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하고 나니 과장이 아니라 현실감으로 떨게 된다. 이런 대목을 보자. “많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가 산업혁명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쌓였다가 이제야 갚을 때가 된 도덕적 경제적 부채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30년 사이에 배출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구의 운명에 그리고 인류의 삶과 문명을 지탱하는 지구의 능력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는지 계산해 보면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을 출간한 이후의 피해가 지난 수백수천년 동안의 피해만큼이나 막대하다는 뜻이다.”

엊그제도 여러 가지 뉴딜을 이야기하는 토론장에 다녀왔다. 많이 부족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 혁신은 공무원들의 책상에서 나와선 안 된다는 것, 우리 영토 안에서만 이뤄져서도 안 된다는 것, 토목공사 따위로는 더더군다나 어림없다는 것!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언명한 대로 인류가 금세기 안에 멸종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확실하고도 무시무시한 기후재난을 앞두고 있다. 한국판 뉴딜의 중점과제엔 아직 기후재난 대비가 그림자도 안 보인다. 기후변화 대비는 다른 게 아니다. 살려달라는 거다. 이런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지금 누가 어느 책상 모서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나!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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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백작을 아십니까. 1970년대에 방영된 로봇 만화의 등장인물입니다. 악당 중간보스로 남자, 여자 몸을 반반씩 붙여 만든 충격적 비주얼이었죠. 음식으로 치면 짬짜면쯤 될까요. 요즘 한국은 이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BBC도 산케이도 ‘한국 다시 봤다’ ‘K방역’ 호평 기사 5000건” “24개국에서 文에 쏟아진 K방역 러브콜, 국가위상 달라졌다.” 제목만 봐도 뿌듯합니다. 과장도 아닙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까지 내려가고 사회는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개막, 등교개학, 해외에서 보는 한국은 그저 부러울 뿐이죠. 선진국이란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정작 선진국에서는 코로나19 위기가 이어지고 있죠. 특히 미국 사정은 심각합니다.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셋 중 하나가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방과 책임 전가에 여념이 없습니다. 11월 대선 승리를 위해 벌써 경기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일본도 정부 실수로 온 나라가 위기를 겪고 있죠. 독일을 제외한 서구 선진국 거의 다 코로나19 위기를 호되게 겪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을 보는 세계의 눈이 다를 수밖에요. 자긍심이 자연 솟구칩니다.

그러나 한국을 선진국이라 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최근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였습니다. 우레탄폼과 용접 작업을 동시에 하면 안 된다는 고용노동부 지침을 어기며 작업을 강행했습니다. 안전관리 책임자도 현장에 없었죠. 희생자 대부분이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이었기에 피해보상이 미미할 우려도 제기됩니다. 경영책임자에게 노동자의 안전의무를 광범위하게 부여하고, 어기면 강력히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017년 상정됐지만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될 듯합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경계하는 외침이 끊이지 않지만, 정규직이라고 꽃길을 걷는 게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노후를 준비해도, 노년층은 결국은 일용직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란 말이 그 참담함을 잘 드러냅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노조 설립마저 쉽지 않죠. 이런 권리마저 법적으로 잃어버린 노동자도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코로나19 위기는 전 국민의 위기였습니다. 무게를 똑같이 느끼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온전히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 사람에의 위협은 내 것이기도 했고, 내 문제는 나만이 것이 아니었죠. 대구로 지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물리적 거리 두기가 잘 실천된 이유였습니다. 한 회사나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닌, 나라가 부도날 위기에 처했을 때 온 국민이 뭉쳤던 예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문제에서는 이해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대기업은 작은 기업을 쥐어짜죠. 그 밑에서 하청업체는 얼마 남지 않은 이윤을 놓고 노동자와 맞섭니다. 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에 자본과 손을 잡죠. 외국인 노동자는 사회적, 관습적 보호마저 누리기 힘듭니다. 정년을 늘리면 청년이 반대하고, 청년주거를 늘리면 동네가 들고일어납니다. 저 사람에의 위협은 내 이익이고, 내 문제는 나만의 것이니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끝없는 사투를 벌이는 정글과도 같죠.

이 투쟁은 끝이 없습니다. 청년은 결국 노인이 되죠. 비정규직을 벗어나도 정규직으로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회사를 차려도 더 큰 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으로 기껏 키워도 대기업을 상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노동문제도 코로나19 위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구도 온전히 피할 수 없는, 전 국민의 위기인 것이죠. 모두가 같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착각도 교정해야 합니다. 노동의 위기는 사실 노동만의 문제가 아닌, 문화·도덕·정치·환경·사회 전반을 가로지르는 용마루이기 때문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TXNAM@salisbur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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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할까? 코로나19발 방역과 경제위기는 이 고전적 질문을 재소환하고 있다. 온통 불확실한 것 천지인 상황은 더 ‘큰 정부’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가 장기화된다고 할 경우, 세계질서 또한 그 이전보다 더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국면에선 큰 정부가 아니라 외려 무능한 정부가 문제다. ‘한국판 뉴딜’을 천명한 배경이 아닌가 싶다.

뉴딜(New Deal, 1933~1937)은 분명 참고할 만한 역사적 선례다. 1929년 대공황에 대응해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전체주의로 흐르지도 않고, 소련식의 사회주의로 나아가지도 않으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성공적 모델이기 때문이다. 물론 뉴딜의 경제적 성공 여부에 대한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뉴딜을 통해 미국사회의 노동, 금융, 복지 관련 주요 제도들의 원형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몇 가지만 꼽아봐도,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실업보험, 과당경쟁 방지를 위한 공정거래제도, 빈민구제제도, 연금 등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가 법제화돼서 오늘에까지 이른다. 당시 설립된 기구들 중 현존하는 것 또한 즐비하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증권위원회(SEC), 전국산업노조(CIO), 연방주택공사(FHA), 연방곡물보험공사(FCIC) 등등. ‘작은정부’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의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의 일이다.

뉴딜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신속성이다. 주요 15개 입법조치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단 100일 만에 이루어졌다. 1929년 10월에 시작된 대공황 위기가 3년이 넘도록 악화 상태여서 절박하기도 했다. 실제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던 해 실업률이 25%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모아 브레인집단(Brain Trust)을 만들어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뉴딜러라고 불리는 이들의 회고록을 보면 자기 생에서 가장 열심히, 또 가장 행복하게 일했다는 기록이 많다. 신명나게 일했다는 얘기다. 그 신명이 사회분위기를 공포에서 희망으로 바꿔냈던 것이다.

지금 미국의 경제위기는 1929년 대공황급 위기가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3월 중순 이후 단 6주 만에 30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1000만명이 넘는 기그(gig)경제 종사자들의 실업까지를 고려하면 실업률은 이미 20%를 훌쩍 넘는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고용이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다르지만, 미국의 대규모 실업사태가 한국에서도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상정하고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나 싶다. 

한편 속도 못지않게 방향성도 중요하다. 뉴딜은 저소득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노동과 복지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사회주의라고 비판을 받고, 국가재건청(NRA)이 연방대법원에서 위헌으로 판정되어 2년 만에 폐지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을 보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려 했다. 일례로 뉴딜 시기 최고소득세율은 79%까지 올라서 1980년대 초까지 7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사실 뉴딜의 사회보장, 공적부조 등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인사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대 뉴욕 최고의 정치가문 출신이었지만 대통령이 되기 12년 전인 39세 때부터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마비돼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사회의 주류 중 주류로 살았지만 가장 취약한 비주류 계층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 그는 자기계급에 대한 “반역자”로 불렸다.

또한 주목할 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독한 실용주의 정치다. 특정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이상적 아이디어와 정치현실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예컨대, 인종차별 문제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 가장 큰 분파를 형성하던 남부 17개주는 백인우월주의가 강고했다. 인종차별 문제를 눈감아주고, 뉴딜 관련 주요 법안들을 맞바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결과적으로 흑인 및 소수 인종을 포함해 국민 전체가 정부 혜택을 받는 길이 열렸다. 

뉴딜 기간에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과 의회권력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뉴딜 시행 2년 후인 1935년 선거에선 더 큰 압승을 거둔다. 경제가 별로 나아지지도 않았는데, 유권자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에 투표한 것이다. 한국도 현재 비슷한 상황이다. 21대 국회 100일을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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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재난.산재 피해가족 및 사회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안전한 나라를 위한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재난·산재·안전 사고 피해 유가족들이 7일 청와대 앞에 모여 “안전 문제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펼침막을 들었다. 회견엔 35개 모임·단체가 나섰다. 세월호·가습기살균제·석면·어린이교통사고 피해자와 산재를 입은 김용균재단·반올림·노동건강연대 피해자들이 함께했다. 참사가 날 때마다 빈소로 달려와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연대성명도 내온 사람들이다. 이 땅의 중대재해 피해자들이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참사 뒤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을 앞두고 다 모인 셈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대통령에게 띄운 공개 서신에서 “다시는 다른 국민이 우리와 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면담에 나선 청와대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에겐 “정부가 21대 국회와 함께 해법을 모색해달라”며 생명·안전을 위한 17가지 정책 제안서를 전달했다. 제안서엔 생명과 안전은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보호받도록 명시한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고, 재난·산재를 조사할 독립적인 상설기구를 만들어 피해자들에게도 조사 참여권을 달라고 했다. 생활·일터 안전을 위해서는 원청 사업자와 공무원 책임을 엄히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한 해 2400명의 산재 피해자를 낳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생활화학제품 피해 예방과 집단소송제 도입을 요구했다. 또 과로사 예방법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간 재해 현장에서 숱하게 제기해온, 새로울 것 없는 요구들이다. 불의의 참사를 몸소 겪고 부딪쳐본 사람들이 재난에 헐거운 세상을 언제까지 방치할 거냐고 물으며 사회적 결단을 구한 것이다.

유족들의 청와대 앞 회견에 함께한 김훈 작가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어디로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지 갈 길이 뻔한데도 그 길로 가지 않고 있다. 그 길로 지금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규명이 안 되니 제대로 된 피해 구제나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참사는 그 속에서 또 터지는 악순환을 지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 예방·구제에 미흡했다고 사과하며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중대재해 피해자들이 청와대 앞에 다시 모여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묻는 이유일 게다. 정부와 국회는 그 절규를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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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의 밑그림이 나왔다. 정부가 7일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후 내놓은 한국판 뉴딜 정책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비대면산업 육성, 안전·생활 SOC(사회간접자본) 디지털화 등 3대 기본방향에 집약돼 있다. 코로나19 위기 타개 과정에서 ‘갈 수밖에 없는 길’로 확인된 디지털 경제 촉진을 위한 대규모 사업을 추진, 일자리도 함께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 경제 가속화, 5세대 이동통신·인공지능(AI) 대중화, 원격교육을 포함한 비대면 서비스 확대 등 10대 중점과제를 추진키로 했다. 

디지털 경제의 기반이 되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우리의 강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대응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잘하는 곳에 정부의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면 민간 투자가 따라와 시너지 효과가 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대규모 토목사업 위주의 SOC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반갑다. 토건 중심의 구태의연한 경기부양은 이념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정책 추진이라는 뉴딜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런 처방만으로 코로나19 위기 극복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코로나19 위기는 어느 한 부분에만 충격을 줬던 과거와 달리 국민 삶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준 전례 없는 위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경제질서와 노동·복지 구조개편 등의 장·단기 대책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서 빠졌다. 그린 뉴딜(Green New Deal)로 대변되는 기후변화 대책도 없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과 분배의 형평성을 맞추자는 새로운 흐름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린 뉴딜은 전기자동차·빅데이터 등 디지털 뉴딜과의 시너지 효과도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다수가 코로나 이후의 경제 대책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정부의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새로운 감염병 공포가 일깨운 기후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기대할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대는 물론 국민 삶의 질과 환경까지 모두 회복할 때 가능해진다. 정부는 내달 초 ‘한국판 뉴딜 최종 추진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밑그림을 촘촘하게 보완해 한국판 뉴딜이 진정한 ‘위기가 기회가 되는 대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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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신임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로 7일 김태년 의원이 선출됐다. 그는 친문재인계 4선 의원이다. 문재인 정부 4년차를 맞아 당·청 협력을 강화하면서 개혁을 힘있게 추진하라는 의원들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에서 “통합의 리더십으로 당을 하나로 모으고, 당·정·청의 역량을 위기 극복에 집중시키겠다”고 했다. 그 다짐을 꼭 실천하기 바란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차지했다. 민심이 여당에 표를 몰아준 까닭은 코로나19로 대표되는 국난 극복에 힘을 쏟으라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돌보고, 개혁의 성과를 낼 각종 법안도 추진해야 한다. ‘슈퍼 여당’을 이끌 새 원내사령탑의 어깨가 무겁다. 

가장 시급한 임무는 경제위기 돌파다. 세계는 지금 대다수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해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다. 수출에 의존하고 글로벌 공급망에 엮여 있는 한국 경제가 받는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 생산·고용·소비·투자 등이 얼어붙는 건 시간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원활히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당·정·청 삼각 공조가 긴요하다. 정책위의장 출신인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일하는 국회는 두말할 나위 없다. 향후 1년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골든타임이다. 20대 국회는 여야 간 대립과 갈등으로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법안 처리율이 36%에 불과하다. 이런 식물국회·동물국회가 되풀이돼선 안된다. 새 원내대표가 뽑힐 때마다 으레 일하는 국회, 실용국회를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국회가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21대 국회 첫 과제로 상시국회 운영, 상임위와 소위 개회 의무화 등을 담은 ‘일하는 국회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 대해서도 ‘여의도 출장소’란 말을 듣지 않도록 건강하고 대등한 당·청 관계를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야당과의 협치다. 여당은 단독으로 원하는 입법을 뭐든 다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그래서 시민들은 정부·여당이 힘의 논리로 국정운영을 밀어붙이지 않을까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포용과 협치를 앞세우는 겸허한 자세로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 야당을 대화와 타협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건 여당의 몫이다. 더 이상 발목 잡는 야당을 탓할 수도 없고,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시민들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여당이 성원에 보답할 실력이 정말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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