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술이란 걸 빚어봤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것도 넉넉히 마시는 걸 좋아하거니와 코로나19 시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 시국에도 술은 사다가 마시면 그만이다. 나는 혼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사람들과 만나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때때로 피로가 쌓이는 일이기도 하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은 쓸쓸한 일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피로를 푸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시절에는 딱히 쓸쓸히 여길 일도 없다. 혼자 술을 마시며 홀로 피로를 푸는 일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을 하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침 지인에게서 누룩을 얻었다. 누룩이란 게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런 것으로 술이 만들어지고, 그런 술로 사람이 취하기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누룩과 함께 술 빚는 법을 얻어들었고, 집에 와서 어딘가 틀어박혀 있던 단지만 한 항아리를 꺼내 씻었고, 찹쌀을 주문했다. 술이란 것이 넉넉히 빚어져 넉넉히 익어야 할 것이겠으나, 가지고 있는 찜솥이며 항아리며 모든 게 다 조막만 한 것들이라 술밥을 짓다 말고 쌀을 나눠 다시 찌고, 누룩과 물을 섞다 말고 다시 있는 대로 유리병들을 꺼내 옮겨 담고, 그러느라 이게 과연 술이 되기나 하겠는가 싶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효모가 발효도 되기 전에 그만 됐다, 하며 지쳐 나자빠져버릴 것 같았다.

1.5㎏의 누룩을 고두밥 지은 것과 섞어 항아리 하나와 꽃병으로 쓰던 큰 유리병 하나에 담아 발효를 시작했다. 누룩을 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해놓고 하루에 한두 번씩 저어주면 닷새쯤 후에는 술이 되어 있을 거라 했다. 그 닷새가 황홀했다. 술 익는 것이 향기로만 나는 게 아니라 소리로도 나고 눈으로도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부터 저어주는데, 어느 날 아침에는 술항아리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사사사, 사사사사…. 노래하는 것 같았다.


누룩을 얻어 처음 빚어 본 술

어느 날 아침에 ‘사사사사…’

술항아리서 노래하는 소리가

코로나와 싸울 때 혐오는 빼야

다시 한번 마음 가다듬을 시점


난생처음 누룩이란 걸 보고 온갖 잘못된 과정을 거쳐 빚은 내 술이란 것의 맛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술맛을 예찬하려는 게 아니다. 술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술을 몹시 싫어하기도 하니 음주를 예찬하려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술을 그냥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맛있게 마시는 사람도 있고 멋있게 마시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에 가까워서, 그러니까 그냥 마시는 사람에 가까워서 술 한번 빚었다고 뭔가를 예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술이 익어가면서 내는 소리, 그냥 소리도 아니고 향기를 풍기면서 내는 그 소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보골보골이라 하기도 하는 그 소리가 내게는 사사사사, 로 들렸다. 누군가는 기포가 끓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할 그 소리가 내게는 말을 거는 소리처럼 들렸다. 술을 빚어 마시기도 전에 취한 셈이다. 익어가는 술에 홀딱 취해버린 셈이다.

취했으니 주사가 있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 배 반쯤에서 두 배쯤으로 과장되는 것. 기쁨이나 슬픔이나 유쾌함이나 괴로움, 그 모든 것들이 제각각 증폭되는 것. 그러니 술 익는 소리도 과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술 익는 소리가 내게 일깨우는 모든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부터 내게는 이런 소리가 없구나 생각한다면 이건 쓸쓸한 감정의 과장이라 하겠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말을 건네려고 하면 아직 귀를 기울이기는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자아에 대한 과장된 도취쯤이라 하겠다. 다행히 익어가는 술의 취기는 그리 깊지 않다. 주사로 이어지기 전에 끝을 내기로 한다. 항아리에 다시 면보를 덮고 아침 창밖을 내다본다. 봄의 아침은 맑은 햇살과 함께 밝아오고 꽃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색깔들로 피어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소리를 낼 듯이 맑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에 여전히 코로나19는 진행 중이다.

한동안은 시간을 기다려가며 확인하곤 했던 뉴스가 하루 동안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는가였다. 최근 얼마 동안은 하루 동안 확진자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확인하려고 발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마음이 사뭇 두근두근하기까지 했다. 다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을 때, 그걸 상심이라고 해야 할지, 우려라고 해야 할지,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지, 모두의 마음이 다를 바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마음도 코로나와는 관계없는 것의 혐오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싸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인내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앞으로는 세상이 AC(After Corona)와 BC(Before Corona)로 나뉠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신조어에 놀라곤 한다. 정말이지, 어쩌면, 아주아주 긴 싸움이 될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인가 보다. 아직은 끝이 아닌 것이다. 실은 끝의 가까이에도 가지 못한 것일지 모르겠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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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지난주 코로나19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경제 혁신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의 3대 프로젝트를 제출했다. 한국판 뉴딜, 그 어디에도 기후위기, ‘그린’은 없었다.

올바른 처방은 재앙의 성격을 분명히 진단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코로나19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판 뉴딜’을 보면, 이 정부가 진단한 재앙의 원인은 사람 사이의 대면 접촉이며, 처방은 ‘비대면’과 ‘디지털 전환’이다. 오프라인에서 서로 마주 보는 것이 문제였다니 아연실색할 뿐이다. 파리협약 선도국과 세계의 석학들이 물리적 백신보다 ‘녹색 혁명’ ‘생태 백신’을 처방한 것은 전 지구적 차원의 착취적 만남을 끝내자는 제안이다. 이제 살아남고 싶다면 ‘서로 잘 만나는’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와 고도성장에 고름이 찼고 응어리가 터졌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서식지 거리가 줄고 접촉이 늘었다. 자연을 착취하면서 야생동물 감염병이 인간에게 전파되었다.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곧바로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잠식했다. 그러하기에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뉴딜은 경기 부양, 규제 완화, 기업 중심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일시적 경제 재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화석연료의 시대를 비로소 마감하고, 고도성장에 질문을 던지고, 지속 가능한 삶의 전환을 절실히 요청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몇 가지 갈림길에서 우리는, 인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창궐한 인수공통 감염병 팬데믹, 심각한 환경파괴,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삼중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솔루션은 무엇인가. 최근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전환의 관점으로 ‘그린칼라 이코노미’ ‘그린 딜(Green Deal)’ ‘탈성장’이 논의되고 있다. 화석연료의 폐기와 재생에너지 전환, 블루칼라 노동자의 녹색일자리 전환, 기업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와 생태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주요 내용이다. 코로나19 재앙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하는 천박한 성장주의도 경계한다. 세계는 하나(One World)이고 사람·동물·환경의 건강도 하나(One Health)라는 원칙을 채택한다.

한국판 뉴딜? 한국 정부는 이토록 무지하거나 혹은 무관심할 수 있는가. 재앙의 진단과 처방 모두 틀렸다. 공공보건, 사회적 약자와 생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희생자가 또 희생되는 구조를 생산했다. 기후위기와 감염병의 시대, 국가경영의 지향점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행정 각료들은 국정 지지율, 기업 이윤 대신에 위기의 지구를 보라. 밀실행정을 벗어나 전 지구적 흐름을 읽고, 기후위기와 생태 전환의 가치에 집중하라.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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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뜬금없이 시를 읊은 것은, 그렇다, 은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야말로 은유의 대표적 예문 아닌가. 은유는 “시만큼 오래된 정신작용이며, 과학적 지식과 표현력을 포함해 각종 이해 방식을 낳는 기초”(수전 손태그)이다. 은유가 없었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물론이고 이해력도 그만큼 제한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은유는 익숙한 것을 통해 낯선 것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편견을 재생산하거나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인 코로나19와 함께 난무하는 은유가 염려되는 이유다. 낯선 것을 이해할 새로운 관점을 찾지 못한다면, 잘못된 답 속에서 헤매기 쉽다.

관습적인 은유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바이러스의 공격” “이것은 전쟁” 같은 표현을 보면서였다. 과연 우리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가? 그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인 ‘사스코브2(코로나19)’를 들쑤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초래한 것은 인간 아닌가.

보건복지 전문가 리 험버는 “질병을 바이러스와 면역력 사이의, 그리고 바이러스의 진화와 인간의 백신 생산 능력 사이의 전투로 여기는 태도는 제약회사나 좋아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제약회사는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백신을 개발하지 않는다. 

이어서 31번 확진자가 등장했다. 스스로 재생산하지 않고 어딘가에 잠입하여 기생하다 기어코 숙주를 잡아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사이비. ‘신천지’와 바이러스 사이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동형성이 신천지에 대한 ‘이단 공격’을 더욱 쉽게 만들었다. 바이러스는 ‘추수꾼’을 설명하기 위한 은유적 거점이 되었다. 이 부정적 이미지들 사이에 일어난 상호작용의 안무는 강력한 낙인으로 이어졌다. “신천지는 바이러스고, 감염자는 신천지 교인이다.”

최근엔 “게임은 코로나 시대의 미래 먹거리”라는 말이 나왔다. 대표적인 언택트 산업으로 게임을 육성하겠다는 정세균 국무총리였다. 그는 “과감한 규제혁신으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재난을 계기로 규제를 완화하는 자본 중심적 정책에 ‘먹거리’와 ‘생태계’ 은유는 적절하지 않다.

21세기의 감염병은 인간의 식품 생산 방식이 초래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특히 공장식 축산과 야생동물을 먹는 식문화, 그리고 코로나19 사이의 관계를 지적한다. 돼지와 가금류 등의 목장이 원시림으로 확장되고 야생동물 포획자들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서 신종 병원체와의 접촉면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먹거리에 대한 탐욕이 팬데믹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식량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한 농가 피해 대책과 농산물 가격 보장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뒤로한 채 게임·먹거리 운운이라니. 4차 산업혁명이 위대하다 한들, 게임을 파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용인 66번 확진자와 함께 또 다른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가 방문한 곳이 주로 성소수자들이 찾는 클럽이라는 점이 타깃이 됐다. 한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났다. 동성애를 계속 공격해 온 이 신문은 HIV·AIDS를 이용해 온 것처럼 코로나19 역시 도구로 삼는다. 그들은 익숙한 오염의 이미지들과 오래된 가짜뉴스를 활용하면서 동성애와 바이러스를 연결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코로나19 환자는 환자일 뿐”이다. 질본은 질병으로부터 이야기와 이미지, 그리고 낙인으로 이어지는 은유의 습관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낙인은 방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X를 Y라고 말하지 말라.” <은유로서의 질병>을 쓴 수전 손태그의 말이다. 코로나19를 다른 무엇이 아닌 인재(人災) 그 자체로 보고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편견으로 빚어낸 은유는 잠시 넣어두는 것이 어떨까.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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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청소년을 설명하는 범죄학 용어 중 하나가 길이 구부러지거나 꺾여 돌아간 자리, 변두리나 구석진 곳을 뜻하는 ‘길모퉁이’ 소년이다. 대체로 결손가정 출신이거나 학교 밖 청소년인 길모퉁이 소년은 차량을 빌려서 무면허로 운전하다 사고를 내고, 가출하여 비행친구들과 모텔에서 합숙하며 생활비 마련을 위한 절도를 모의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다닌 후배를 불러 폭행하기도 한다.

비행청소년의 범죄 원인을 설명하는 또 다른 용어는 ‘비행적 하위문화’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일탈한 비행청소년은 대학 진학에 매진하는 보편적인 청소년의 주류문화로부터 소외된다. 소외는 대체로 부모의 이혼·사망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경제적 궁핍과 가정폭력 등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또래관계에 애착을 가지며 주류의 가치체계와는 반대되는 ‘비행적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공유한다.

입시 대비 위주의 공교육은 이들을 선도하거나 이들에게 개성을 존중하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여유가 없다. 학교에 부적응하거나 학교를 그만둔 비행청소년은 학교 밖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오토바이 배달이나 휴대폰 판매, 식당일을 해서 생활비와 용돈을 충당하거나, 건설현장과 택배 물류센터 같은 곳에서 일용노동이나 중노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어른들의 부당한 처우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부딪혀 박탈감과 좌절감을 경험하기 쉽다.

아이들의 범죄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언론 사회면에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10대들의 범죄에 대해 어른들은 분노와 냉소, 응보주의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며 문제를 외면한다. 그 결과 소년범죄에 대한 대응은 소년 강력범죄가 발생했을 때 형사 미성년자 연령 하향 등 국민의 일시적 법 감정을 충족시키는 미봉책에 국한되어 왔다.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실질적·구체적 대안 마련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

법무부는 지난 4월 말, 학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 등 폭넓은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소년보호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간의 소년사법정책은 큰 사건이 불거지면 단기 문제 해결식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출범한 혁신위원회에서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범죄 발생 이전 단계부터 개입하고, 발생한 범죄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마련할 것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혁신위원회의 논의 결과와 정책 제안을 받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 정책에 반영하고 국민들에게 알릴 것이다. 길모퉁이 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지지이기 때문이다.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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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5 총선의 결과를 놓고 한 달 가까이 선거부정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사전투표함 바꿔치기와 득표수 전산조작이다. 선거사무와 선거소송에 여러 번 관여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

우선 사전투표지를 구한다. 사전투표지는 투표소에서 본인 확인 후 투표용지발급기로 즉석에서 인쇄되는 데다 일련번호가 새겨진 QR코드가 있어서 위조는 불가능하다. 도리 없이 투표용지발급기와 투표지 원고, 각 지역구 선관위의 청인과 전국 사전투표소의 투표관리관 사인을 비밀리에 확보했다가 투표일 전에 대량으로 출력해서 은밀하게 보관하고, 거사에 앞서 각 선거구에 보내야 한다. 이 정도 일엔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무슨 수로든 동조자를 구한다.

투표지를 어설프게 위조했다간 곧 들통난다. 투표지는 개표장의 개함점검부와 심사부 소속 개표사무원들과 책임자가 차례로 보고, 이어 선관위 사무국장과 선관위원들이 후보자별 정당별 100장 묶음의 표다발을 이 잡듯 검사하고, 최후로 부장판사인 위원장이 세어본다. 이들로부터 미리 양해를 얻어 두는 게 좋다.


투표용지·투표함 바꿔치기에

개표·득표상황 발표 조작까지

총선 뒤에 제기된 ‘음모론’들

현실 제도선 ‘불가능한 임무’

보수의 현실 도피·위안일 뿐


투표지를 위조했다고 다 된 게 아니다. 관외투표에서는 사전투표지가 회송용 봉투에 봉인되어 등기우편으로 각 지역선관위로 배달되고, 정당추천위원이 보는 앞에서 사전투표함에 투입된다. 그러니 먼저 관외투표를 한 사람이 몇 명인지를 알아내서 그 수에 맞추어 회송용 봉투를 만든다. 봉투엔 등기번호와 우체국 소인 따위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한다. 하면 다 된다.

이제 위조 투표지를 진짜 투표지와 바꿔치거나 아예 투표함 자체를 바꿔칠 차례다. 그런데 투표함의 투표지 수와 명부상의 사전투표자 수가 일치해야 개표장에서 탄로가 나지 않을 것이니, 무엇보다 투표구별로 몇 명이 사전투표를 했는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귀신도 모르게 선거인명부를 해킹하면 된다. 다음엔 후보자별로 적절한 득표수를 정해 투표지를 만든다. 내 편의 표가 너무 많으면 들통나기 쉽고 너무 적으면 고생한 보람이 없으니, 이 점 유념할 일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전투표함은 정당 추천위원이나 참관인이 서명한 특수봉인지로 봉인되어 있으니, 이들을 모두 매수하거나 서명을 감쪽같이 위조한다. 특수봉인지도 남몰래 확보한다. 사전투표함이 선관위 사무소까지 이동하는 과정에는 참관인들과 경찰관이 따라가고, 보관소에 넣은 후엔 자물쇠로 봉인한 곳에 정당 추천위원들이 서명한다. 보관소에서 사전투표함은 24시간 폐쇄회로(CC)TV로 감시되고 이것이 시·도 선관위와 중앙선관위에도 연결되어 있다. 개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도 어김없이 참관인들이 따라붙는다. 이러니 투표함이든 내용물이든, 바꿔치기엔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보인 기량 정도는 못 되더라도 고난도의 기술과 배짱이 필요하다. 톰 크루즈를 구해 보고, 안 되면 부득이 해당 선관위 직원의 협조를 얻는다. 이런 난관을 모두 극복해도, 투표함이나 보관소는 한번 개봉되면 그 흔적이 남게 장치가 되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한다.

어느 보수 유튜버는 미래통합당이 74석을 도둑맞았다고 하고 다른 유튜버는 210만표 이상의 득표수가 바뀌었다고 하니, 투표함 바꿔치기 수법으로 그 정도 규모의 협잡질을 벌이는 것은 아무래도 하책이다. 

득표수 조작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건 더 어렵겠다. 개표장에서 투표구별 득표수가 차례로 나오면 그때마다 위원장은 마이크에 대고 공표한 후 투표구별 개표상황표를 벽에 붙인다. 복사본도 기자들에게 나눠준다. 그 순간 참관인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진을 찍고 소속 정당에 전송하느라 바쁘다. 위원장은 개표상황표를 팩스와 전산망으로 상급선관위에 보고한다. 전국에서 보고되는 개표상황은 실시간으로 정당과 언론사에 공유된다. 어디에다 손을 써야 하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별 득표수와 당락은 지역구 선관위가 마지막 투표구 득표상황을 공표하는 순간 결판난다. 당선자 결정도 지역구 선관위의 권한사항이고 그 선관위가 한다. 본래부터 상급 선관위가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수 역시 각급 선관위에서 개표상황표에 따라 실시간으로 공표하므로 사후에 조작할 길이 없다. 설령 전산으로 결과를 조작하려 해도, 실물 투표지와 개표상황표가 따로 있어 대조가 가능하므로 조작 시도는 망상이다.

선거부정 음모론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거짓된 위안일 뿐이다. 선거부정을 운위하며 미국 백악관에 진상조사나 청원하고 포퓰리즘의 자위에 빠져 있는 한, 보수의 재건은 멀고도 멀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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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재임 시절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2013년 3월21일 KBS1 라디오와 교통방송 등을 통한 라디오 연설에선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고까지 했다. 형을 포함한 측근들의 부정부패, 용산참사, 4대강 파헤치기 등 바람 잘 날 없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통령이 라디오 전파를 이용해 국정을 홍보하는 행태 자체가 낡은 시대 유물 아니던가. 국격 상승은 우리가 주장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때부터 ‘국격’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겼다.

그런데 국제뉴스를 다루면서 국격이라는 단어를 예기치 않게 자주 접하게 된다. 국내 환자 수가 확연하게 줄고, 유럽과 미국의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 ‘3월 중순’ 즈음부터 한국 대응을 모범적 방역사례로 칭찬하는 해외뉴스들이 들려왔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국제뉴스는 온통 우울하다. 늘어나는 각국 사망자, 세계 곳곳의 텅 빈 거리 사진, 멈춰선 경제와 실업자 등 암울한 소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방역 성공이 부각된 것이다. 외신들은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진단키트 등 기술 역량, 지역폐쇄 등 극단 조치 없는 방역 성공 등을 칭찬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미국 CNN은 8일(현지시간) 한국 사례를 거론하며 “광범위한 검사와 공격적인 접촉자 추적, 공공보건 대책, 전면적 봉쇄 없이 확산을 억제한 디지털 기술의 조합이 이를 뒷받침했다”고 했다. 방역의 성공은 대한민국 의료체계 선진성을 부각시켰다. 사실 외국 생활을 잠시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 등 한국만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고 손쉽게 받을 수 있는 나라가 흔치 않다는 것을.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제도의 우수성이 재조명됐을 뿐이다.

주요국들의 실패도 대조가 됐다. 안일한 대처로 감염폭발을 초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중국 탓을 하며 책임론을 피하려 한다. 중국은 정보를 제때 공개하지 않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초래했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받고 있다. 도쿄 올림픽을 의식해 바이러스를 방치했던 일본에선 뒤늦게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독일을 제외한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강국들은 휘청거린다.

속단은 금물이지만, 지금까지 성공적 대응은 과소평가할 것이 아니다. 이전의 한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인상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적 부를 창출한 강소국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대처하고 정상생활을 모색하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됐다. 일상의 생활방역, 먼저 시작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까지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가 주목한다.

분명 ‘코로나 이전의 한국’과 ‘코로나 이후의 한국’의 위상은 달라졌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27일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 자유를 일정 부분 양보한 한국과 대만 등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범적 통치모델로 꼽기도 했다. 이런 뉴스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들으면서 그렇게 듣기 싫었던 국격이란 말에 가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다만 세계의 찬사를 자랑스러워하되, 취하지는 말자. 난관들이 많이 남았다.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에서 보듯 방심하면 코로나19는 금세 창궐한다. 전 세계적 경제불황을 우리만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높아진 국가적 이미지를 경제·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코로나19의 재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 강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집권세력에 180석을 몰아준 것도, 국정에서 성과를 내라는 무언의 압력일 수 있다.

각 개인이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자. 우리가 잘 버틴 것은 모두의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료나 가족 등 주변 사람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거나, 여의치 않으면 주먹이라도 맞대어보자. 앞으로 어려움도 함께 이겨나가자며. 

시인 나희덕은 녹색평론 172호에 실린 ‘코로나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땅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싶다가도, 사회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평범한 이들의 비범한 지혜와 공동체적 연대가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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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에 답이 있다.” 재생시대를 살면서 늘 마음에 두고 주문 외우듯 되새기는 말이다. 간절한 염원은 내 명함에도 담았다. 이름과 연락처 위에 ‘소다연강미(小多連强美)’ 다섯 한자를 새겨둔 지 오래다. ‘작아도 많고 이어지면 강하고 아름답다’라는 우리말 풀이도 함께 적었다. 에른스트 슈마허가 1973년에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책 제목을 재생시대 우리 현실에 맞게 고친 것이다. 큰 것들만 살아남는 약육강식 시장경제 틈바구니에서 작은 것들이 아름답기는커녕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의구심이 솟겠지만 다행히도 희망은 있다. 작은 것들을 연결해 강하고 아름답게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곳곳에 등장하는 ‘마을호텔’에서 본다.

‘커뮤니티 호텔’ 또는 ‘수평적 호텔’로도 불리는 마을호텔이 늘고 있다. 호텔이라면 보통 도심부의 높고 큰 건물 안에 숙박과 서비스 시설을 갖춘 걸 말한다. 이와 달리 수직적 단일건물이 아닌 마을 안의 여러 건물들이 수평으로 펼쳐져 호텔의 기능을 나누어 맡는 형태를 마을호텔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마을호텔의 원조는 2013년에 서울 서교동에서 시작된 ‘로컬스티치’가 아닐까 싶다. 옛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작은 골목호텔을 열고 숙소 가까운 동네 식당과 세탁소, 카페들을 하나로 묶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지금은 호텔보다 공유주거와 공유사무실에 치중하고 있지만 회사 이름처럼 마을의 작은 공간들을 잇고 엮어 지혜롭게 공유하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마을호텔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공주에 가보시라. 구도심 봉황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중심으로 동네식당, 카페, 사진관, 갤러리, 책방, 공방이 서로 연결되어 찾아온 손님들에게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민천과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 독특한 한옥카페 ‘루치아의 뜰’도 가까이 있다. 봉황동 자영업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공부도 하며 마을호텔을 단단히 키울 꿈도 함께 꾼다. 공주만이 아니다. 정선군 고한읍 18번가, 전주시 노송동과 군산시 원도심, 부산시 초량동 이바구길에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호텔을 만날 수 있다.

소멸 위기의 원도심과 활력을 잃어가는 오래된 동네로 사람을 초대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사람들이 머물고 들른 곳마다 활기를 불어넣는 마을호텔은 도시재생의 묘약이다. 수직으로 쌓아올린 호텔에서 거둔 수익은 본사가 쏙 뽑아가겠지만, 수평으로 펼쳐놓은 마을호텔의 수익은 마을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마을과 사람을 키울 것이다.

호텔에 없는 게 마을호텔에는 있다. 호텔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을 마을호텔에서 만끽할 수 있다. 멋지게 고친 옛집에서 달게 자고 일어나 천천히 걸어 골목길 안 숨은 맛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진관 앞을 거닐다 찻집에 들러 강의도 듣고 공방에 가서 손수 무언가를 만든 뒤 동네목욕탕에서 피로를 풀며 추억에 잠긴다. 마을의 역사를 절로 알게 될 것이고, 이사 오고 싶은 마음까지 덤으로 받게 될지 모른다. 하나하나는 비록 작을지라도 연결로 힘을 키워 아름답게 되살아난 마을호텔을 보며 다시 주문을 외운다. 

“소다연강미! 연결에 답이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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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CENTER width=700 graphic=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20/05/10/l_2020051101001057800079181.jpg width=7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

7일(현지시간)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 주 비사카파트남의 화학공장 가스 누출 사고로 부상한 여성을 주민들이 옮기고 있다. AP 연합뉴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정체불명의 흰 가스가 도시를 덮쳤다. 눈이 타들어가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도시를 벗어나려는 안간힘도 소용이 없었다. 거리에는 이내 독가스에 중독돼 토하고 쓰러진 사람들의 시신이 넘쳤다. 단 몇 시간 동안의 가스 누출로 최소 3700명에서 최대 2만명이 숨졌다. 50여만명은 극심한 고통과 후유증을 겪었다. 1984년 12월3일 새벽 인도 중부 보팔에 있는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에서 일어난 가스 누출 사고다. 세계 최악의 산업 재해로 불리는 ‘보팔 참사’의 정확한 사상자 수와 참사 원인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보팔 참사는 안전 불감증이 부른 대표적인 인재였다. 미국 공장보다 못한 안전기준, 제대로 안 이뤄진 시설 유지 및 보수, 미흡한 경보체계의 합작품이었다. 유독물질로 인한 산업재해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린 이 사고는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지역주민에게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피해자 보상 측면에서는 실패였다. 유니언카바이드는 1989년 인도 최고법원의 화해조정으로 인도 정부에 보상금 4억7000만달러를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사망자 1명이 받은 배상금은 10만루피(약 162만원)에 불과했다. 대신 회사 측은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받았다. 터무니없는 피해보상 탓에 아직도 관련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36년 전 악몽을 떠올리는 사고가 지난 7일 LG화학 인도공장(LG폴리머스)에서 일어났다. 식품 보관 용기 제조 등에 쓰이는 유독가스 스티렌모노머 누출이 원인이었다. 10일 현재 12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치료를 받았다. 피해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한밤중, 외국기업의 공장, 주변 마을을 덮친 점’이 보팔 참사와 비슷하다. 사고는 코로나19 소식을 밀어낼 정도로 인도에서 관심거리가 됐다. 총리는 국가재난 회의를 소집했다. LG화학은 사고 직후 CEO인 신학철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 부회장의 현장 방문도 추진 중이라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는 철저히 하되, 희생자에 대한 적극적인 피해보상과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글로벌기업의 책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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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구상(1919~2004)


구상 시인은 2004년 5월11일에 작고했다. 한국전쟁의 체험을 다룬 연작시 ‘초토의 시’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화가 이중섭과는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중섭은 청빈한 구도자였던 구상 시인의 인품을 높이 사서 자신보다 연하(年下)이지만 구상 시인을 ‘형’으로 불렀다.

구상 시인은 한 문예지에서 기획한 미리 쓰는 가상 유언장에서 “오늘이 영원 속의 한 표현이고, 부분이고, 한 과정일 뿐”이라면서 “오늘에서부터 영원을 살자”라고 썼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오늘의 시간을 “신비한 샘”에 비유하면서,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란 마음을 비우고, 허욕(虛慾)이 없이 마음을 스스로 가난하게 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을 신앙했지만 불교를 함께 공부하는 등 시인의 시는 넓고 큰 정신의 영역을 향해 늘 열려 있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흔쾌히 사재(私財)를 내놓았던 당대의 어른이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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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그린뉴딜경제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제 한국에서도 누구나 루스벨트의 뉴딜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민주주의자 행세를 할 때가 민주주의가 가장 위기에 빠졌을 때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뉴딜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다음의 3가지를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급진적’ 생태 뉴딜주의자 루스벨트에게는 생태보전이 최대 목표이고 경제 회복은 2차 목표에 불과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토건과 성장주의 시대 기준으로만 보면 루스벨트는 미국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열렬한 생태보전주의자였고 이를 위한 규제 강화론자였다. 오죽하면 경제 대공황의 한복판에서도 그의 국내 1순위 어젠다가 생태보전이었다. 그리고 그간 미국 학계에서 다소 저평가된 ‘시민 환경 보전단’ 등을 통해 7년간 300만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했다. 루스벨트보다 더 비타협적 ‘생태 전사’인 해롤드 이키스 핵심 참모는 수시로 본인의 사직을 내세워 루스벨트를 압박했다. 앞서간 생태철학자의 면모를 지닌 엘리노어 루스벨트와 이키스 등 백악관의 멋진 팀워크가 생태 친화적이면서도 경제적 풍요를 이룬 뉴딜을 성취해냈다. 

지금 청와대와 민주당이 뉴딜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 담대한 목표와 결기가 있어야 한다. 디지털과 경제회복은 더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과 다가올 생태 파국 방지를 위한 수단이지 그 역이 아니다. ‘생명의 정치’를 위한 절체절명의 순간, 그게 코로나19 사태의 교훈 아닌가? 자연을 가슴 속 깊이 사랑하는 문재인 대통령이기에 진정한 뉴딜의 정수를 제기하길 기대한다.

둘째, 진보 시대를 열어간 루스벨트는 사실은 이재명과 이낙연의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루스벨트는 이재명 지사와 같은 실용주의적 진보의 DNA가 강한 사람이다. 관념적 진보가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 작동하는 진보 말이다. 그리고 둘 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기득권에 정면 도전한 좋은 의미의 ‘포퓰리스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귀족적 출신답게 안정론자이기도 하다. 이낙연 의원 같은 탁월한 관리형 리더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잠시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치다가 곧 균형 예산으로 돌아가 경기 불황을 노정해야 했던 그 소심한 루스벨트이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강자 사이의 극단적 불평등을 담대하게 재조정할 것이냐 아니면 일부 안전망의 확대 정도이냐 말이다. 만약 전자를 선택한다면 민주당 내 실용적 진보주의자와 정의당 등이 주도하는 ‘재난 뉴딜 다수 정치연합’이 가능하고 이는 향후 최소 12년의 정치질서 전환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후자를 선택해도 어느 시점엔 또 다른 정계개편이 발생할 것이다. 루스벨트 뉴딜이 바로 그러했듯이 문재인 행정부의 성공은 진보 정치세력들과의 연합 및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에 달려있다.

셋째, 전환적 리더십의 루스벨트이지만 안타깝게도 뉴딜 성과의 발전적인 제도화에 대해서는 한계를 노정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흔히 뉴딜에 대한 찬사만 접했던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가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모든 시민들의 일자리, 품위 있는 삶, 주거, 교육, 건강 등의 존엄한 권리를 헌법에 보장하는 2차 ‘권리장전’ 캠페인에서 실패했다. 이후 레이건 보수주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제도화 기반이 취약한 뉴딜은 서서히 퇴조해갔다. 특히 정치 불안정성이 강한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재난 뉴딜 정치연합은 어떠한 한국형 권리장전을 구축할지 단계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사실 루스벨트는 항상 성공한 건 아니다. 대법원 판사 숫자를 늘려 퇴행적 대법원 체제를 극복하고자 한 싸움에서 그는 패배했다. 하지만 예일대 애커만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판 촛불 시민들은 선거 대승을 비롯한 강력한 시민주권 행동으로 뉴딜을 구했다. 그토록 완강하게 뉴딜에 저항했던 수구적 대법원조차도 2차 뉴딜의 핵심 어젠다들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청와대와 정당, 법원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촛불 시민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이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이번에 다행히 당선된 훌륭한 생태주의 초선 의원들이 가장 중시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당적을 넘어 강력한 ‘재난과 생태 뉴딜’ 그룹을 만들어 기존의 지혜로운 정치가들 및 촛불 시민과 함께 비상조치 시대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기원한다. 촛불 ‘혁명’으로 2016년 시작된 정계개편의 막이 이제 서서히 오르려고 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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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라고 밝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찾고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다. 국제적으로 호평받는 방역 성과를 넘어 경제도, 고용안전망과 공공의료도, 생명·안전을 위한 국제협력과 남북관계 발전도 선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놓은 것이다. 22분간의 연설에서 언급된 단어는 ‘경제’가 19차례로 가장 많고, 위기(15차례)·선도(8차례)·방역(5차례)이 뒤따랐다. 집권 4년차 국정 구상과 각오, 대국민 호소를 코로나19에 집중한 특별연설이었다.

문 대통령은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말했다. 취업자의 49.4%(1352만명)에 그쳐 있는 고용보험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혀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영세사업장·비정규직 미가입자(456만명)의 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하며, 자영업자 가입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전 국민 단일 고용보험제’는 재원과 기존 가입자와의 형평성, 자영업자의 자발적 참여와 소득 파악 등이 난제로 걸려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절실함이 커진 고용안전망을 법·제도로 받쳐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다만, 전 국민으로 넓히는 방향과 로드맵은 분명히 하고, 청년·영세자영업자 등에게 직업훈련·취업·구직수당을 지원하는 실업부조형 국민취업지원제는 서둘러 시행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세계가 안심투자처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은 절호의 기회”라며 선도형 경제를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이 되고, 디지털·바이오·비대면 산업 인프라와 일자리를 키우는 ‘한국판 뉴딜’을 미래 먹거리로 설정한 것이다. 그 속에서 개인정보보호와 의료·교육 공공성은 충분히 지켜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정보노출 피해자는 없도록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K방역을 이끌어온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고, 보건복지부에 보건 담당 복수차관제를 두며, 감염병 전문병원·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공공의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문 대통령의 특별연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경제·사회상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강국과 고용안전망이 ‘쌍끌이’하는 국가를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구상은 법·제도와 사회적 합의, 예산으로 받쳐져야 할 게 많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하나하나 메꾸고 질병관리청을 출범시키고, 비대면 산업을 키우면서 의료 공공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조화시키는 것도 법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시민들은 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정부는 더 상세한 청사진을 내놓고, 여야는 21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코로나19 입법 공백’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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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신규 확진자가 28일만에 30명을 넘긴 10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 앞에 코로나 바이러스 검진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클럽을 다녀간 경기 용인시 66번 환자가 지난 6일 확진 판정을 받은 지 나흘 만인 10일(낮 12시 기준) 관련 환자 수는 54명으로 늘었다. 10일 신규 확진자 수는 34명으로 한 달 만에 다시 30명대로 올라섰다. 지역감염이 거의 사라지며 코로나 대응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한숨을 돌리자마자 다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방역 태세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클럽발 코로나19 확산세는 조용한 전파의 위험을 실감케 한다. 우선 확진자들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 제주 등 전국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 의료기관과 백화점, 콜센터 등 대규모 감염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국방부 청사 내 사이버사령부 근무자도 확진됐다.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가 최소한 100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 3차 감염 가능성이다. 클럽 방문 확진자의 가족, 확진자와 같은 헬스장을 이용한 이들이 잇달아 확진됐다.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선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근무자와 접촉한 군인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 54명 중 무증상 상태에서 진단받은 이들이 30%가량이다. 용인 66번 환자가 클럽을 방문한 지난 2일 전후 이태원 유흥업소 등 동선이 겹친 조사대상자는 6000~7000명에 달한다. 무증상 상태에서 조용한 대규모 확산이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역의 성패는 조기 차단에 달려 있다. 위험요소가 있는 접촉자들을 빨리 찾아내 지역 전파를 멈추는 게 급선무다. 당국은 이태원 클럽 방문자 전수조사에 들어갔지만 인적사항을 허위로 기재한 경우가 있는 데다 외국인들도 포함돼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클럽 방문자 5517명 중 2000명가량이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는데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잇따라 관내 클럽과 룸살롱 등 모든 유흥시설에 대해 무기한 또는 2주간 집합금지명령을 발동한 것은 적절했다. 그런데 서울시의 집합금지명령 뒤에도 강남과 홍대앞 일대에서 클럽들이 불야성을 이뤘다고 한다. 유흥시설뿐 아니라 위험요소가 높은 다른 다중이용 시설들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일부터 생활방역체제로 전환하면서 시민들 사이에 방역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당국은 차제에 방역 정책에 허점은 없었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발표한 등교개학 방침을 되돌릴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안전과 방역이 최우선인 만큼 일정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높은 시민의식과 의료진의 헌신, 적절한 정부 대책 등 삼각연대로 이 위기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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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사실이 밝혀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클럽 골목이 10일 한산하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계기로 성소수자 혐오가 다시 번지고 있다. 경기 용인 66번 확진자가 성소수자들 출입이 많은 클럽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게이 클럽’ 등 관련 어휘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가 하면 소셜미디어 등에서 성소수자 전체를 향한 비난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가까스로 안정세를 찾은 코로나19 사태가 성소수자 집단 때문에 다시 확산한다는 ‘마녀사냥’식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그 자체로 온당치 않을 뿐 아니라 방역에도 도움이 안 된다.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일부 언론 보도가 66번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들의 성격을 부각한 것도 유감스럽다. 언론 규범뿐 아니라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2월 마련한 ‘코로나19 보도준칙’에도 어긋난다. 보도준칙은 인권침해 및 사회적 혐오·불안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 및 방송을 자제하도록 했다. 성적 지향은 질병과 아무 상관 없는 정보이다. 이를 부각시키는 것은 성소수자들로 하여금 검사를 기피하고 방역망 바깥으로 숨도록 만들 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공개 방식도 보완이 필요하다. 사태 초기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제기되자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확진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정보공개 기간도 제한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개하는 정보만으로도 당사자가 특정될 우려가 여전하다. 개인별 동선을 일일이 공개하는 대신 당일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거쳐 간 장소를 포괄적으로 공개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태원 클럽 감염 사태가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식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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