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지인과 직접 만나서 식사를 하기보다는 안부 전화를 주로 걸게 된다. 어제 연락한 지인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피부과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병원이 여전히 붐비는지 넌지시 물었다. 생존이 더 우선시되는 시대에는 피부과 시술을 받을 생각이 들지 않거나 병원 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아 지인의 일자리가 염려되었다.

지인은 새로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적어지긴 했지만 크게 차이는 없다고 하면서 덧붙였다. 억울하고 서러운 분들,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피부과 시술을 받으러 오는데, 그 수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는다고. 돈이 많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피부과 시술을 받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기에 다소 의아했다.

지인의 경험으로는 피부과 상담실장의 주 업무는 시술을 받도록 설득하기보다는 서러운 사연을 그저 들어주는 것에 가깝다고 했다. 보통 자신의 얼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무언가를 고쳐보려고 피부과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열심히 모은 돈을 들고 방문하는데, 상담을 하다 보면 왜 시술을 받기로 했는지 서러운 사연을 털어놓기 마련이고, 그러면 상담실장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 얘기를 열심히 들어줄 수밖에 없다. 오죽 말할 곳이 없으면 여기서 사연을 털어놓을까 싶어서 가능한 한 열심히 다 들어준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 얘길 들어줘야 할 테고 이분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최대치가 피부과 상담실일 테니. 물론 들어준다고 수술로 제거하듯 서러움이 단박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테니까.

전화를 끊고 길을 걷는데 수많은 병원 간판들이 보였다. 아픔을 호소하며 병원 문을 여는 사람들과 그들을 맞이할 병원 종사자분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픈 걸 고친다는 의미가 무언지 종일 곱씹었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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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획재정부 관리들은 자부심과 결속력이 매우 강하다. ‘모피아’란 말이 나온 이유다. 지난해 초, 재경원 출입기자 시절부터 알던 전직 금융위원장을 문상하러 갔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역시 문상 온 현직 차관을 비롯한 기재부 고위관리들이 선배인 전직들에게 ‘야단’을 맞는 게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국가채무에 관한 성토였다. 

상당수 기재부 관리의 균형재정 집착은, 신재민 전 사무관이 보여주었듯이, 거의 종교 수준이다. 재정건전성 유지는 좋은 정책목표지만, 긴급상황에서도 복지지출에 인색한 관성은 큰 문제다. 기재부 정책기조는 집권당보다 선거에 패배한 보수야당의 정책에 가깝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에 근접한 것을 두고 보수언론과 야당이 재정파탄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 떨 때 기재부도 동조했다.

대통령이 첫 비상경제회의에서 “국민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게 최우선”이라고 ‘읍소’했을 때도 기재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긴급재난지원금도 소득 하위 70% 지급을 고집했다. 여당의 방침이 보도돼도 기재부 관리들은 ‘우리는 합의한 바 없다’고 버텼고, 홍남기 부총리는 “반대 의견을 기록으로라도 회의록에 남겨달라”고 했다. 예산권을 쥔 부처의 할거주의와 보신주의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처사다. 

가구마다 최대 100만원까지 재난지원금을 주는데, 국민은 73%가 ‘잘한 일’이라 평가했다. 주인이 ‘곳간을 열라’는데 청지기가 거부한 셈이었다. 3차 추경까지 하면 채무비율이 40% 중반으로 오른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높은 수준이 아닐뿐더러 보유과세를 강화하면 오름폭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은 생계·고용지원과 경기부양을 위해 4000조원, 독일은 중소기업에만 1090조원을 푼다. OECD 선진국은 채무비율이 2018년 기준 평균 109%인데도 과감히 돈을 풀고 있다. 이들은 대개 내각제 국가이고 장관이 정치인 출신이어서 관료의 저항이 약한 편이다. 미국도 재무장관은 재무부 출신보다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하는 정치인이나 월가 출신이 주로 발탁된다.

우리는 진보정권 초기에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지만 타협하지 않으면 관료에게 밀려나는 전철을 밟는다. 김태동·이정우·장하성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산통인 김동연·홍남기를 부총리로 발탁하고 경제비서관도 경제기획국장을 계속 임명해 기재부 영향력을 키워줬다. 국회에서도 기재부 출신 보수 성향 김진표 의원이 의장후보로 뛰고 있다. 

우리는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낮은 40% 수준인데도 마치 38도선을 지나 휴전선이라도 넘어가는 것처럼 경계한다. 가계부채는 박근혜 정부 때 400조원이나 증가해 그 비율이 100%에 육박하는데도, 기재부는 소 닭 보듯 해왔다. 유효수요를 창출하더라도 지금은 토건사업 확대 같은 케인스 우파정책에 매달리지 말고, 부실한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고치면서 복지지출을 늘리는 케인스 좌파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갈 때다. 

관료가 정치에 맞서는 장면은 기재부에서만 목격되는 게 아니다. 촛불혁명은 언론과 검찰을 최우선 개혁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검찰청은 요지부동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였던 이효성씨와 민언련 대표였던 한상혁씨가 방통위원장이 된 뒤에도 방송개혁이 지지부진한 건 왜일까? 나는 그들이 방통위 관료에게 포획됐다고 본다. 관료들은 보수신문에 종편을 4개나 나눠준 뒤 그걸 살리려고 온갖 특혜를 베푼 ‘종편의 수호자’다. 그들이 정권 바뀌었다고 안면을 몰수할까? 정파적·선정적 방송으로 재승인 요건에 미달해도 조건부 승인을 해준 주체가 그들이다. 부처 통폐합이나 인사교류를 통해 인적쇄신을 하지 않으면 종편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영원할 것 같다. 

윤석열 검찰이 대통령 뜻까지 거스르고 수사권·기소권 남용 등 인권침해를 해온 것은 촛불시민이 목격한 바와 같다. 윤 총장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말이 ‘조직에 충성하겠다’는 뜻임을 이젠 알게 됐다. 검찰권 행사는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국회선진화법 위반 사건 등을 다루는 걸 보면 검찰이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야당을 두둔하는 것 같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이 견제하지 않으면, 선거도 정치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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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대표(오른쪽)가 12일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배진교 당선인에게 꽃다발을 주며 축하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벌써부터, 정의당이 보이지 않는다. 의석 분포가 질적으로 달라진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깃털처럼 가볍다. 진보정당의 공간은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가장 협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독자적으로 패스트트랙이 가능한 절대 의석을 확보했고, 미래통합당은 야당 지위를 독점했다. 두 당의 의석을 더하면 전체 의석의 94%로 역대 최대치다. 20대 국회에서는 6석의 정의당이 법안 심의와 협상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성과를 낼 수도 있었지만, 21대 국회의 6석짜리 정의당에는 그럴 여지가 ‘전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6석의 성적표는 초라하지만, 21대 총선은 진보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혹은 강제하는 ‘정초(定礎) 선거’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진보진영의 선거강령이 된 ‘민주대연합’의 폐기 속에서 치러진 첫 선거였기 때문이다. 애초 정의당에 ‘치명적’ 타격을 전제하는 민주당의 비례정당 창당은 ‘민주대연합’의 잔도를 불태운 것이다. 정의당의 비례정당 참여 거부는 퇴로가 봉쇄된 상황에서 나온 외통수 선택일 뿐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경남 창원성산 선거구에서 ‘미래통합당에 내줘도 좋지만 (정의당과) 단일화는 안 된다’는 민주당의 대응이 가리키는 바는 선명하다. ‘민주대연합’이란 한 시기가 끝났다. 민주당은 혼자서 보수세력(미래통합당)을 상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자, 미련 없이 진보정당과의 연합 고리를 끊었다. 지역구에서 단일화하고, 비례투표에서 ‘교차투표’를 통해 외연 확대를 꾀하는 지난 10년의 진보정당운동은 그리 허망하게 끝을 봤다.

‘연합을 통한 확장’에 매달려온 정의당에 돌연한 ‘홀로서기’ 상황은 재앙에 가까웠다. ‘민주당 2중대’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노선과 정체성에서도, 정책 메시지에서도, 진보 의제에서도 민주당과 질적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정의당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민주당이 ‘재난수당 70%’를 얘기할 때 100%를 주장하는 정도다. 한마디로 미래통합당을 심판하기 위해 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에 투표해야 할 이유를 하나도 제공하지 못했다. 비례위성정당 변수가 개입된 비례대표는 차치하고라도, 지역구 선거에서 진전은커녕 오히려 후퇴한 결과가 말해준다. 253개 선거구 가운데 75곳밖에 후보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생환자는 1명(심상정)뿐이고, 정당득표율(9.67%)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도 5명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이념으로서 진보가 아닌) 진보의 ‘프레임’을 전유하고 싶어한다.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유권자 지형을 감안하면, 진보의 공간이 민주당 왼쪽에 들어서는 것을 극력 경계할 터이다. 미래통합당이 확 찌그러진 상황에서, 진짜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보수성을 도드라지게 만들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민주당은 통합당 못지않게 진보정당(정의당)의 의석 확대를 싫어한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이번 총선과 마찬가지로 정의당과의 연대를 배제할 공산이 크다.

정의당은 6석과 함께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 오랫동안 적응해온 정치행로와의 작별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의 개혁에 보조를 맞추며 제한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실리도 챙기는 틈새정당으로 더는 생존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정의당 배제’ 전략으로 그 일말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진보정당의 본령에 입각하는 ‘독자 노선’은 필연이다. 의회 내 입지는 좁아졌지만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희망의 근거도 확인했다. 정의당은 비례정당 참여 거부로 민주당과 선을 그은 상태에서 10%에 가까운 정당득표율을 기록했다. 10명 중 1명, 진보 독자파 성향이 강한 순도 높은 지지층으로 볼 수 있다.

“집권여당의 개혁을 견인하겠다”(심상정 대표)는 식의 미망을 버리고, 이제 진보정당 본연의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불평등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추동하는 것이다. ‘진보적 대안’으로 거듭나기 위해 정의당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벼릴 것인가. 민주당 아류에서 벗어나야 하고, 무너진 진보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진보야당’의 길을 가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17대 국회에서 10석의 민주노동당은 ‘거대한 소수’의 힘을 보여줬다.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 광범위한 대중운동에 기초함으로써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다. 정의당도 ‘6411번 버스’, 그 가난한 이들의 거리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양권모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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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뉴욕 양키스 포수 요기 베라. 로이터 연합뉴스

어지간한 야구팬이라면 요기 베라(1925~2015)를 모를 리 없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포수이자 감독,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10개, 뉴욕 양키스의 등번호 ‘8번’ 영구결번…. 요기 베라를 모르는 사람도 이 말은 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의 이름보다 유명한, 그가 남긴 명언이다. 뉴욕 메츠 감독이던 1973년 여름, 팀 성적이 꼴찌로 처져 잘릴 위기에 처한 그에게 리포터가 “다 끝난 것 아니냐”고 묻자 그가 했다는 말이다. 이후 메츠는 거짓말처럼 승승장구해 9.5경기차 열세를 뒤집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거머쥐었다. 

본명은 로런스 피터 베라인데, 어린 시절 단짝 친구가 인도 영화에서 본 요가 수행자와 닮았다며 붙인 별명 ‘요기’(Yogi)를 이름으로 삼았다. 그라운드의 수다쟁이이자 언변의 마술사로 통한 요기는 재기 넘치는 명언들을 남겼다. 그의 촌철살인 어록을 ‘요기즘’(Yogi-ism)으로 칭할 정도이다. 동어반복·모순 어법으로 역설과 유머를 전하는 게 요기즘의 특징이다. 

요기즘의 통찰은 코로나19 시대도 꿰뚫고 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특별연설에 등장한 “(방역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발언은 물론이다. 요기 베라는 “다가올 미래는 예전에 있었던 미래가 아니다” “데자뷔(기시감)가 다시 오고 있다” “어디로 가는 줄 모르면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으니 조심하라” “똑같이 할 수 없다면 따라 하지도 마라”라는 말도 했다. 요즘 상황에 대입해도 딱 들어맞는다. “야구의 90%는 멘털”이고 “기록은 깨질 때까지 존재한다”는 요기즘은 끊임없는 긴장과 정신력을 일깨운다. “다른 사람 장례식에 꼭 가라, 안 그러면 그들이 당신 장례식에 안 온다”는 말은 대표적인 유머다. 

요기즘은 ‘허허실실’이다. 곱씹어보면 코로나를 이겨낼 지혜를 떠올릴 만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세우며, 늘 긴장하고, 정신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게 요기즘이 코로나시대에 울림을 주는 메시지다. 유머는 부록이다. 그는 “요기즘 하나 만들어달라”는 친구들 청에 “난 몰라. 그런 적 없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또 하나의 명언을 낳았다. “정말로, 내가 했다는 말을 다 내가 하진 않았어.”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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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자동차산업협회에서 국내 완성차 및 부품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성 장관은 “과거 와이어링 하니스(자동차용 배선뭉치) 수급 차질 사례에서 보듯 한두 곳의 부품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동차 생산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된다”며 “정부는 자동차 부품기업들을 최대한 활용해 위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완성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2만개 정도로, 베어링에서부터 작은 나사까지 수많은 부품이 모여 완성차를 만든다. 그런데 이런 부품들은 구리, 아연, 니켈 등의 광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한국은 해외로부터 주요 광물을 수입해 자동차, 조선,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기차 배터리 등 전지부문이 강세다. 작년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 경쟁에서는 중국, 일본에 밀리며 잠시 주춤했지만, 막대한 수주량을 바탕으로 역전을 노릴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양산한 경험이 있는 국가는 한·중·일 3개국뿐이다.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을 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지속 가능한 자원확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원개발은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자원확보를 위해 국가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자원개발은 리스크가 큰 데다 탐사에서 개발, 생산까지 최소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자원개발 공기업이 갖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성패는 10년쯤 뒤에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맞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자원개발 실패”는 정략적 접근보다 냉철하게 전문가에 의해 따져 봐야 할 문제다.

물론, 자원개발 추진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철저히 따져야 할 것이다. 자원확보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5월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서 유전과 광물을 공동 개발키로 하는 외교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자원외교가 중심이다”라며 “앞으로 자원외교를 할 국가는 많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신년사에서 “참여정부는 자원정책을 안정적 도입에서 자주개발로 확대하여 17개국을 대상으로 자원 정상외교를 펼쳐 석유·가스 자원확보량을 52억배럴에서 140억배럴로 2.7배 확대하고 해외자원개발 예산은 2002년 2800억원에서 2007년 9200억원으로 3배 이상 확대했다”고 밝혔다. 자원개발은 당장 손실이 난다고 손을 떼면 전문 인력도 노하우도 다 없어진다. 한국에 있어 자원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강천구 |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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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는 좋은 지식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일깨운다. 수만 시민의 목숨이 한 나라의 정부, 전문가 집단, 언론이 지식정보를 제대로 다룰 책임성과 능력이 있는가에 달려있다. 또한 물론 시민대중 스스로가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어떤 지식정보를 택하고 수용할 지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중차대하다. 이 같은 지식권력, 대중지성, 과학과 전문가주의 등의 차원들은, 아무 말이나 쏟아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트럼프의 미국이나 검열과 통계 조작을 일삼는다는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실로 시민의 힘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코로나19 사태는 사적 소유와 불평등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으며, 공공성과 공유의 문제를 첨예한 공통 의제로 떠올리게 한다. 지식정보 또한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중대한 공적 자원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번 위기에서 지식정보와 관련해 지키고 밀고 나가야 할 원칙은 두 가지가 아닐까? 객관적이고 공공적인 지식정보는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 정보는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견지에서 볼 때 ‘K방역’에 나타난 한국의 지식정보 문화는 무결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학교와 공공 도서관 등이 문을 닫자 유수 외국의 대학이나 공공 기관에서 보유한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서비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한국의 공공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은 강도 높게 70여일간 셧다운했다가 최근 부분 개관했다. 많은 대학과 공공 도서관이 폐쇄돼 학생과 시민들이 학습권과 자료 접근권을 침해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공공 기관들이 문을 걸어닫는 일 외엔 할 일이 없었을까? 좋은 지식정보와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제공키 위한 더 적극적 기획과 실행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국립중앙도서관은 5월6일부터 온라인 서비스 확대를 위한 저작권 동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다. 바람직하지만 늦었다. 아마도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공공 기관이 옹호·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시민들의 학문과 탐구에 대한 권리다. 그런데 왠지 한국 사회 일각과 정부는 사기업과 자본의 권리에 대해서만 민감해 미증유 위기 상황에서도 많은 일이 경제적 자유주의와 ‘재난 자본주의’ 방식으로 처리된다. 

대다수 개인 학술 저작권자들은 지적 지대에 대한 탐욕스러운 추구자가 아니며, 외려 개인들의 저작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이는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심각하다. 논문 같은 고급 학술정보는 지적 축적과 사회적 협업을 바탕으로 생산된 건데, 저작권을 양도받은 학회들이나 그것을 돈으로 구입한 사기업이 무책임하게 다루고 거래한다.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매매한다 해서 오래전부터 악명 높은 거래사이트에선, 오늘도 학술논문이 건당 평균 6000원씩에 판매되고 있다. 그중엔 정식 발간되지도 않은 학술대회 발표문, 토론문 같은 것도 포함돼 있다. 이런 일은 학회가 콘텐츠를 통으로 학술정보 사기업에 넘기고, 그들이 다시 통으로 대학생 리포트 거래 장터에 팔았기에 생기는 일일 것이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연구자들이 학회에 저작권을 무조건 양도하고, 또 학회와 사기업이 그것을 이윤논리에 따라 마구 거래하는 일은 합당한가? 

근래 코로나19 사태에 관해 급박하게 생산되는 지식과 논문조차 예외가 아니다. 건당 몇 천원씩 사기업이 중개매매하는 지식정보의 원 판매자 중에는, 정부 출연 연구소와 참여연대 같은 진보적 시민단체도 포함돼 있다. 이런 거래 관행과 저작권 신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공공 기관의 지식정보 제공 플랫폼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학술정보를 제공하는 한국연구재단의 KCI,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RISS는 상당히 부실하다. 국립중앙도서관 또한 학술지 원문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데 소극적이다. 거액의 국민 혈세를 쓰면서 사기업보다 못한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이런 부실은 하루빨리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두번째는 연구자 자신들의 각성과 행동이다.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자기 권리를 지키는 데나, 연구자로서의 공동성·공공성을 실천하는 데나 무능하다. 애써 쓴 자기 논문이 어떻게 유통되는지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학술 유통의 구조와 현상을 반성하고 인문·사회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오픈액세스(OA) 등 지식공유 운동이 절실하다. 이는 연구자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한국 인문·사회과학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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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산책길에 다시 아이와 함께한 가족들이 보인다. 매연에 묻혔던 히말라야는 조심스럽게 자태를 드러냈고, 멸종 위기의 거북이들이 부화했다고도 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황폐해진 암회색의 지구에 빛이 깃들며 대자연의 초록이 서서히 드러나는, SF 영화의 장면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활동을 멈춘 지 불과 2~3개월 만이다. 일상과 환경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하며,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만행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무성하다. 

그토록 자만하는 문화와 문명 역시 그저 자연의 변주이거나 표절 혹은 적응일 뿐임을 깨닫는다.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들은 식량을 상호 안전하게 획득·분배하는 방법론이다. 종교와 의술은 죽음과 질병, 고립의 두려움을 대면하거나 위로하는 방편이고, 교양이란 무리를 확장·유지하는 기술이다. 예술과 철학은 어떤가. 볕 좋은 곳에서 인상파가 태동하고, 숲이 가까우면 자연주의가 움트고, 음울한 곳에선 사색이 깊어진다. 인간은 단 한 걸음도 자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천문과 지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과 상식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수많은 국기엔 해와 달과 별이 있다’고 기술한다. 자연을 두려워하며 점성술이나 신비주의에 기대어 살던 시대를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주와 연결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공감한다. 별이 50개나 있는 미국 외에도 중국, 이스라엘 등 별이 있는 나라는 대단히 많다. 이슬람권은 마호메트의 전설과 관련되어 달과 별이 함께하는 월성기가 많고, 뉴질랜드와 파푸아뉴기니 등 남태평양의 나라들엔 남십자성이 자주 등장한다. 대한민국과 인도는 우주 원리를 상징하는 태극과 법륜 문양을 사용하고, 브라질 국기엔 천구가, 대만과 일본을 비롯한 또 다른 많은 국기에는 태양이 있다.

천문학자는 우주를 이야기했지만, ‘모든 국기엔 자연물이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푸른색은 하늘이나 바다를, 노란색은 태양과 풍요로운 곡식을, 초록이나 붉은색, 검은색, 흰색 역시 자연과 사람, 광물 자원 등을 상징하는 것이 대다수다. 구체적 형태가 있는 경우, 용이나 사자, 조류 같은 동물이나 단풍, 삼나무, 보리수, 올리브 등 식물이 많다. 때로 박애, 평등 같은 추상적인 가치도 담겨있지만, 그 본래적 의미는 공평한 자원 나눔과 더 안전한 동굴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장서서 자연을 파괴한 권력자나 재력가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습게도 그들이 누리고자 하는 것은 다시 자연이다. 지중해의 바닷가나 카리브해의 고요한 섬,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곳에 친환경적인 주택을 소유하고 청정한 공기를 음미하는 것. 세련된 요트를 사용해 언제든 바다를 달리며 더 싱싱한 음식을 즐기는 것. 국민에게 격리를 호소하면서도 코로나19를 피해 별장이나 리조트에 은거한 이들이 트럼프 일가만은 아니다. 영화 &lt;기생충&gt;은 무심히 내리는 비도 누군가에겐 낭만이고, 누군가에겐 재앙이라는 것. 하늘에 떠 있는 태양조차 누릴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 권력이란 더 많은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힘이고, 약자들일수록 자연과 멀어진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훌륭한 녹지는 용산 미군기지였다. 

코로나19의 원인이 자연의 역습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바이러스는 정보기술(IT)강국인 대한민국에 다소 너그러웠지만, 역설적으로 기반 시설에 타격을 주는 환경, 기후재난 앞에선 가장 위험성이 큰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도 동시에 경고한다. 잠시 운이 좋았을 뿐 언제까지나 함께할 행운이란 없다. 이전과 같은 성장정책은 결국 공멸을 자초할 것임이 분명하고, 그 시작은 서민들일 수밖에 없다. 자연이라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잔재주에 도취된 손오공에서 깨어날 때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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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이틀 전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한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에 그가 작성한 근무일지가 놓여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경비원이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저 억울해요. 제 결백을 밝혀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겼다. CCTV에 찍힌 폭행은 19일 전 지상주차장에 평행주차된 입주민 차량을 경비원이 밀어 옮기다 시작됐다. 한번 시작된 입주민의 폭행은 경비원을 사각지대로 끌고 가서도 이어졌고, “당장 관두라”는 협박과 욕설도 계속됐다. 비극은 경비원의 힘든 상황을 알게 된 주민들이 법적 대응과 치료를 돕던 중에 일어났다. 경비원은 숨지기 전 가족에게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때린 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듣고 싶다”고 했다. 최소한의 인격과 노동자 권리도 참고 버텨보려 한 약자의 고통이 전해진다.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타살’이다. 

얼마 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이 나왔다. 60세 공기업 퇴직자가 3년간 경비직 시급노동을 하며 쓴 노동일지를 모은 책이다. 임계장은 ‘임시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고, 저자는 경비원의 별칭이 ‘고다자(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고)’라고 전했다. 경비직은 용역업체에서 1·2년 단위로 계약을 승계받는 고령자가 많다보니 상시적으로 고용 불안과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내몰려 있다는 것이다. 갑질과 경비 외 업무에 시달려도 실직 두려움에 억울함을 호소하기 쉽지 않고, 노동청·구청에 신고해도 아파트 눈치부터 살피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임시직이고, 용역업체 지휘를 받고, 입주자 한 명 한 명이 사용자가 되는 3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경비원 폭력은 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18년 층간소음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70대 경비원을 때려 사망케 한 주민이 있었고, 지난해 2월엔 차량 진입 차단봉을 늦게 열었다고 폭행한 사건도 일어났다. 주택관리공단 통계로만 지난 5년간 3000건에 육박하는 갑질폭행이 신고됐다. 공동체 생활을 돕는 동료이자 노동자로 보지 않고, 사적 고용인으로 착각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후진국형 비극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 외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게 한 공동주택관리법과 초단기 계약이 남용되는 근로기준법의 미비점을 촘촘히 보완하기 바란다. 12일 장례식에 앞서 고인의 유족들은 강북구 아파트 경비실을 찾았다. 얼마나 서럽고 하고픈 말이 많았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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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얘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1대 국회 원구성을 앞두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이 또다시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일하는 국회에 장애가 될 것 같다면 굳이 야당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면서 16대 국회까지는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사위를 게이트키퍼 수단으로 활용하는 악습을 끊을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없으면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늘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맡았다”고 강조했다. 법사위원장은 제1야당이 맡는 게 17대 국회 이후의 관행이며, 법사위의 권한도 유지돼야 한다는 게 통합당의 입장이다.

법사위는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권을 가진다. 원구성 때마다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체계·자구 심사는 상임위에서 만든 법안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다른 법률과 충돌되거나 조문 간 모순되는 게 없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사위는 모든 법안이 본회의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체계·자구 심사를 핑계 삼아 다른 상임위의 상전 노릇을 하고 있다. 법안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까지 좌지우지하고, 정치적 이유로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 월권 행사도 비일비재하다. 20대 국회에서도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 발목 잡힌 법안이 55건이나 된다. 법사위 갑질 관행이 국회 비효율의 한 원인이라는 비판이 많다. 게다가 제1야당에서 위원장을 맡는 게 관례가 되면서 법사위는 정부·여당 견제 수단으로 활용됐다. 법사위가 쟁점법안 통과를 위한 여야의 마지막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법률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장치가 여야 극한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규정은 법률 전문가가 부족하던 1951년 2대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회사무처로 기능 이전 등 다양한 대안도 나와 있다. 법사위의 기능을 정상화할 때가 됐다. 여야는 위원장 쟁탈전을 벌일 게 아니라 법사위의 상전 행세를 막을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민주당이 법사위의 법안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일하는 국회법’을 21대 국회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통합당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법사위 권한 축소가 번번이 무산된 것은 여야가 입장이 바뀔 때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번만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대의를 앞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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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5월11일 (출처:경향신문DB)

서울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감염자가 12일 100명을 넘었다. 지난 6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불과 엿새 만이다. 특히 기존 확진자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은 환자들이 나오고, 공중보건의로 밝혀진 확진자는 클럽 방문 이후에도 환자를 진료했던 것으로 파악돼 향후의 확산세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달 말부터 방역지침이 거듭 완화되면서 이완된 사회 분위기 속에 방역의 허점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단계별 방역지침 재정비에 나서 필요한 곳에서는 다시 방역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첫 환자가 클럽을 방문한 지난 2일은 ‘완화된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기간이었다. 정부는 3월22일부터 이어진 고강도 거리 두기 기간을 지난달 20일부터 완화해 종교·유흥·실내체육시설과 학원 등 4대 집단시설에 대한 ‘운영중단’ 권고를 ‘운영제한’ 권고로 낮췄다. 연휴가 끝난 지난 6일부터는 단계를 더 낮춰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연휴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완된 사회 분위기를 경고하는 기사들이 연일 이어졌다. 클럽은 밀폐된 공간에서 노래와 소리지르기, 밀접 접촉, 음식물 섭취 등이 이뤄지는 방역의 고난도 시설이다. 이런 위험지역을 방역수칙만 지키면 영업할 수 있도록 하고 감독까지 소홀히 했으니 바이러스 확산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방역당국은 환자 한 명이 아닌, 산발적인 전파 연결고리로 인한 집단감염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지역사회에서 조용히 퍼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연휴기간 클럽을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됐을 가능성도 있다. 방역당국은 당초 연휴 직전인 4월29일 밤부터 5월6일 새벽까지 클럽 방문자를 대상으로 신고와 진단검사를 요청했다가 지금은 검사 시점을 4월24일 방문자까지로 넓혔다.

서울시가 관내 모든 유흥시설에 대해 집합금지명령을 내린 데 이어 12일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12곳이 같은 행정명령을 내렸다. 클럽뿐 아니라 PC방이나 노래방, 체육시설 등 실내의 밀폐된 공간에 이용객이 밀집한 곳은 모두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확진자 중 3명 중 한 명 이상이 무증상 상태에서 진단받았다. 자신도 알지 못한 채 누구라도 조용한 전파자 혹은 조용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유사한 전파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시설별 위험도에 맞춰 규정을 보완하고 단계별로 운영하는 꼼꼼한 방역지침 점검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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