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농번기다. 이맘때면 농촌에서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일손 찾기가 어렵다. 영농인력 부족 현상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요즘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65세 이상 고령농가가 전체 농가의 62%에 달할 만큼, 농촌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또한 농업소득 성장의 한계로 도농 간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도시가구 대비 농가소득 비율이 1995년 96%에서 지난해 약 62% 수준까지 하락했다. 농업·농촌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5월11일 농협은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특별한 계기를 마련했다. 더 나은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범농협 비전 2025’를 선포한 것이다. ‘농업이 대우받고 농촌이 희망이며 농업인이 존경받는 함께하는 100년 농협’이라는 새로운 비전은 농협이 추구하는 농업·농촌의 미래상, 새로운 100년을 향한 성장 의지, 그리고 ‘함께’라는 포용과 상생의 가치를 담고 있다. 

농협은 이 새로운 각오를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수립해 실현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자 한다. 우선 농업인과 소비자가 모두 만족하는 유통 혁신을 반드시 이루어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합장, 유통전문가, 농업인 단체로 구성된 ‘올바른 유통위원회’를 발족해 운영에 들어갔다. 또한 농가소득에 중요한 10대 작물에 대한 수급예측 정보시스템 구축과 채소가격안정제 활성화를 통해 가격 급등락 문제도 해소해나가기로 했다. 더불어 온라인농산물거래소를 구축해 생산자와 소비지 유통주체가 직접 거래하게 함으로써 유통비용을 최대한 줄여나갈 예정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40세 미만 농가 경영주는 전체 농가의 0.7%에 불과하다. 농업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귀농이 절실한 이유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을 둔 스마트농업이 확산되고 있다. 드론으로 방제를 하고 앱 등을 통해 농사를 짓는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농협은 이에 대비해 스마트농업에 방점을 두고 농촌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생각이다. 또한 청년농 유입 등 농업·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가 디지털농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전담조직을 신설해 농협형 스마트팜 사업모델을 확립하는 것이다. 아울러 스마트농업 전문인력을 양성할 교육담당 조직을 만드는 등 농업의 디지털 혁신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농협의 근본적인 목적은 농업인의 실익을 증진하고 국민들에게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농협다운 농협으로 그 정체성이 바로 서야 한다. 동시에 경영체로서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농협은 농업인과 소비자, 농축협 중심으로 사업체계를 재편하고, 사업 경쟁력과 재무구조의 건전성 강화 등 조직 운영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유통 혁신, 디지털 혁신, 조직 운영 혁신의 세 가지 과제만큼은 4년간의 임기 중에 반드시 성과를 내고자 한다. 농업이 대우받는 산업으로 각광받고,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희망의 농촌을 만들고자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아무쪼록 농협이 그려갈 새로운 비전 프로젝트에 국민들이 성원해주시길 기대한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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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를 신청하러 갔던 A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신청하면서 몹시 화가 났다고 했다. 담당자와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니까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에 고통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평소 예민한 성격인 그가 무엇에 불편을 느꼈나, 우선 들어나 보기로 했다.

A는 자신이 찍었다는 신청서 양식의 사진을 보내면서 나에게 잘못된 부분을 찾아보라고 했다. 신청서에는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서’라는 제목이 있고, 그 밑에 세대주 정보와 가족사항을 적는 난이 있고, 신청사유 ‘코로나19로 인한 생계 위기’라고 적혀 있고, 타 제도의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표시하는 난이 있었다. 어디 오타라도 있나, 띄어쓰기라도 잘못되었나 하고 살펴보다가 도무지 찾기 어려워서 “아니, 선생님, 그래서 뭐가 문제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가족사항란(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했다.

다시 살펴보다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A가 평소에 유별난 성격이기는 하지만 이건 잘못된 것이 맞았다. 내가 “야, 이게 잘못된 거네”라고 말하려는데, A는 “내가 1990년대면 이해하겠는데 2020년에도 세대주는 무조건 남성일 것이라고 적어둔 공문서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넌 이게 안 보이냐”라며, 나의 무지몽매함을 비판했다. 그러고는 내가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시 이어서, “이건 코로나 때문에 지급하는 지원금에 대한 신청서니까 2020년에 새롭게 만든 문서일 거란 말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적어둔 건 정말 잘못된 거잖아”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1990년대든 2020년이든 여전히 남성이 세대주로 되어 있는 집이 상대적으로 많겠으나, A부부처럼 여성이 세대주로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서에는 그들이 이름을 적을 곳이 없는 것이다.

A가 담당 공무원에게 “저어, 이건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하고 묻자, 그 담당자는 웃으면서 “옛날엔 당연하게 다 그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그런가 보네, 허허허” 했다고 한다. A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처’라는 글자를 지우고 ‘부’라는 글자를 새로 적고, 거기에 자신의 남편 이름을 넣었다. 어쩌면 이 역시 재난이다. 2020년에도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적을 데가 없는 A와 같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사람은 자신을 규정할 언어를 필요로 한다. A 역시 누군가의 ‘처’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주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다. 그러한 삶을 서울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단단하게 규정해야 하고, 적어도 무너뜨리지는 않아야 한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지금도 ‘○○신청서’와 같은 문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쩌면 별 문제 없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가장 간편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 양식과 언어들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계속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찾은 공공기관에서 다시 한 번 일상의 재난을 경험해야 하는 A들의 자리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xmasnig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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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강원 태백시의 카드형 지역화폐인 ‘탄탄페이’. 연합뉴스

1983년 캐나다 코목스밸리 마을. 공군 기지가 이전하고 목재산업이 침체해 극심한 불황이 닥쳤다. 실업률이 18%에 달했다. 현금 없는 실업자들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당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주민 마이클 린턴이 ‘녹색달러’라는 지역화폐를 만든 뒤 주민들 간에 노동력과 물품을 교환하게 하고 거래 내역을 컴퓨터에 기록했다. 공동체 신뢰를 기반으로 녹색달러를 통한 상품·서비스 거래가 이뤄지면서 마을은 불황을 극복해 나갔다. 현대 지역화폐 시스템의 시초였다.

지역화폐 사용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호주다. 카툼바 지역의 ‘에코(Eco)’가 특히 유명하다. 일본 도쿄의 다카다노바바 지역 상점에선 만화 주인공 아톰이 그려진 ‘아톰 통화’가 2004년부터 통용된다. 영국 남부 도시 브리스틀에서는 2012년부터 ‘브리스틀 파운드’를 발행했는데 시장 월급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지역화폐 개념은 1996년 계간지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후 1998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미래 화폐’를 선보였고 대전의 ‘두루’, 서울의 ‘e품앗이’ 등으로 이어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곳은 204곳으로 84%에 달한다. 소상공인 지원 명목으로 2017년부터 본격 발행되고 국비 지원이 따르면서 부쩍 늘었다. 대전시는 14일 ‘온통대전’(On通대전)을 새로 내놓으며 “모두에게 통하는 큰돈이자 소통의 매개체라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지역화폐 이름은 지역명을 앞세운 ‘○○사랑상품권’이 대다수인데, 지역 특색과 취지를 잘 살린 이름도 눈에 띈다. 동백전(부산)·e음(인천)·여민전(세종)·하머니(하남)·양평통보(양평)·오색전(오산)·시루(시흥)·탄탄페이(태백)·별빛고운카드(영월) 등이다. 지역 이름과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지역화폐라 쓰면서도 절로 미소가 떠오를 만하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중 하나가 지역화폐의 쓰임새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면서 취지가 더욱 알려졌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야 우리 동네, 또 골목상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지역화폐는 품앗이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공동체 화폐이자 상생의 화폐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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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이 도지는 일요일 자정,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누구보다 빨리, 이미 내일의 출근을 해버린 사람들의 소리가 조용한 골목길을 덮는다. 대형 트럭의 하차 소리, 짐을 옮기는 소리, 합을 맞추기 위해 기합을 넣는 소리 말이다. 청소노동자가 야밤에 우리의 쓰레기를 치운다. 다음날 출근할 때에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가 말끔히 치워져 있다. 당신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작년 말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카판노리에 다녀왔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다른 어디에도 소각장은 안 된다는 마음으로 20년 전 ‘쓰레기 제로 마을’로 전환한 곳이다. 우유를 자기 용기에 리필하는 우유 ATM, 1년 동안 배출한 쓰레기양을 기록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쓰레기 제로 가족’ 프로그램, 천 기저귀에 붙는 지자체 보조금, 한 장에 만원이나 하는 종량제 봉투…. 유럽 최초의 쓰레기 제로 마을인 카판노리시는 재활용률 90% 이상을 달성하며 소각장을 짓지 않고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 선례를 보여준다.

그런데 어떤 정책이 가장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의외의 장면이 떠올랐다. ‘밀라노 패션’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돌아다니던 청소 트럭과 아담한 쓰레기 봉투였다. 청소차는 햇빛에 반짝였고 쓰레기봉투는 적당해 보였다. 이탈리아엔 70ℓ가 넘는 쓰레기봉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서울 마포구엔 종종 터질 듯한 100ℓ짜리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다. 자기 몸통보다 큰 봉투를 들어 올리느라 청소노동자의 몸엔 요추염좌, 추간판탈출증 등이 찾아든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마포구 청소노동자 혼자 하루에 3t이 넘는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이는 5분에 쌀 한 가마니(80㎏)를 들어 올리는 양이다. 게다가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요인이다. 국내 청소노동자의 야간노동 비율은 62%다. 깜깜한 밤 청소차 뒤편에서 청소노동자가 떨어지고 깔리고 뭉개진다. 공공 노동 가운데 가장 위험한 업종이 바로 청소업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는 어업이나 임업보다 오히려 청소업에서 다치는 노동자 비율이 더 높다. 

작년에 환경부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지침’을 통해 변화를 도모했지만, 청소업무는 지자체 소관이라 속도가 더디다.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뜻 맞는 사람들끼리 자기가 사는 곳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청소일 낮에 하면 안 돼요? 광주는 100ℓ 종량제 봉투를 금지했는데 우리는요? 그 결과 서울 서대문구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남겼고 경기 성남시는 주간에 시범운영 중인 청소차 사진을 보내왔다. 생애 첫 민원에 답을 받아 감개무량하다는 반응, 민원은 못 넣었지만 쓰레기봉투에 감사 문구를 써서 내놓은 사연, 관리인께 고구마를 구워드린 이야기가 넘실댔다.

다정한 사람들의 힘으로 다정한 제도를 만들면 좋겠다. 계산대 노동자를 위한 의자 캠페인 청소노동자를 위한 샤워실 설치 국민청원, 쓰레기봉투 크기를 제한하자는 주민의 목소리. 힘없는 사람들의 쫀쫀한 연대가 퍽퍽한 현실을 바꿔낼 수 있다. 존 버거의 말처럼 천국에는 연대가 필요 없어요, 연대는 지옥에서나 필요할 뿐. 100ℓ 봉투를 금지한 지자체는 광주 광산구와 동구, 부산 해운대구, 경기 성남·용인·고양·부천시다. 당신은 어디 살고 계신가요?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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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용충격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주위에 문을 닫은 식당이 보이고, 가게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도 눈에 띈다. 아마도 잠시 쉬거나 휴직한 것 같다. 그런데 지난 4월 취업자 수가 47만6000명이나 줄어 3월보다 더 안 좋아졌다. 일시·휴직자(148만명)와 일자리 찾기를 단념한 사람(240만명)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취약계층에 덮친 ‘코로나19 고용쇼크’로 불릴 만하다. 통계상 실업자가 줄고, ‘그냥 쉬었다’는 비경제활동인구가 급증한 것은 더 심각한 신호다. 

노동시장의 가장 큰 타격은 사회적 취약층에 집중되었다. 해고가 비교적 쉬운 터라 코로나19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는 서비스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코로나19는 여성, 청년, 임시일용직에게 직격탄이었다. 일터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경제적 약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직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줄고, 혼자 겨우 버티는 자영업자, 이른바 ‘나홀로 사장님’은 1년 전보다 10만7000명 증가했다. 취업자 수가 이렇게 줄어든 건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문제는 앞으로 고용상황이 더 나빠질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접하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한 번의 파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어떠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 아니라 지금이 바로 위기 상황이다. 현재는 국민을 보호하고, 향후 경제회복을 도와야 할 시점이다. 그와 동시에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제도적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일자리에서 밀린 취약층의 고용보험 개편이다.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는 취업자 10명 중 4명(48.4%)에 불과하다. 1995년 제정된 고용보험은 ‘실업·구직급여, 상병수당’ ‘직업능력개발사업’ ‘육아휴직·출산전후급여’를 보장한다. 고용보험은 직업훈련, 고용촉진 그리고 실업 등 노동시장 위험 예방 효과를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특히 실업급여는 실직자의 생활안정 및 재취업 준비에 큰 도움이 된다.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을, 정부와 사회가 함께 부담하는 취지가 담긴 것이다.

현재의 고용보험은 ‘정규직’을 주요 대상으로 설계되었기에 미취업 청년, 자발적 퇴사자, 아르바이트, 예술인,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은 배제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다수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헌법적 권리로 규정하고 거의 대부분 적용받도록 보완해왔다. 사실 미국의 뉴딜(New Deal) 정책은 공공근로와 제도개혁이 같이 진행되었다. 대공황 시기 뉴딜 정책은 미국 경제의 황금기를 만든 배경이며,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고 노동기본권 보장의 토대였다. 우리도 코로나19 시기에 고용유지와 일자리 창출만이 아니라, 고용보험 제도개혁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토마 피케티나 마이클 샌델도 ‘더 공정한 세상 만들 기회’나 ‘정당하게 보상하는 안전한 세상’ 등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미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전 국민 고용보험 기초를 놓겠다”고 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이 복지국가 핵심으로, 21대 국회 1호 법안이 돼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고용보험 미가입자(13.8%)만이 아니라, 적용제외 대상(31.4%)까지 포괄하는 고용보험 필요성이 힘을 받고 있다.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고용보험 모델은 덴마크와 프랑스다. 이들 국가는 조세에 기반한 사회적 보호 차원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새로운 규범과 표준(New normal)이 아니라, 더 나은 규범과 표준(Better normal)이어야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sadae1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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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는 불확실성의 위기다.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될지, 사망자는 얼마나 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백신과 치료제 개발시기는 언제일지 모두가 안갯속이다. 큰 파도가 휩쓸고 간 후 잔해들을 들춰보고 난 뒤에나 평가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경제적 파장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쏟아졌다. ‘V자 반등’부터 ‘U자 회복’, ‘L자 침체’까지 세칭 전문가들의 전망들이 나왔다. 지금까지 대체로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 후유증이 단기간에 그치고 ‘V자’ 반등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는 주장은 자취를 감추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시간싸움이다. 감염병의 영향을 예측하는 방법은 과거 유사 사례와 비교하는 것이다. 코로나19와 비교되는 스페인독감은 3차례에 걸쳐 대유행했다. 1918년 봄, 1918년 9월~1919년 1월, 1919년 2~12월 전 세계를 누비며 5000만명의 희생자를 남겼다. 그런데 더욱 암울한 소식이 들렸다.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가 토착 풍토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확산과 감소를 반복하면서 장기간 인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싸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내심은 고갈된다. 관심과 배려, 존중, 보호와 같은 공동체의 덕목은 사라지고 배타, 혐오, 따돌림, 증오가 자리를 잡는다. 시간이 지나 피해가 커지면 사태를 단순화하면서 비난할 개인이나 집단을 찾는다. 의사이자 보건학 교수인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 이를 인간의 ‘비난 본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전염병이 발생하면)비난할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외국인이 병을 옮겼다면 그 사람이 속한 나라를 통째로 비난한다”고 말했다. 물론 자세한 조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상황과 유사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국가는 다른 나라와의 장벽을 높이고 각자 제 살길 찾기에 나선다. 1720년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 프랑스 마르세유에는 극단적인 여행금지조치가 내렸다. 군대가 동원됐고 2m에 달하는 장벽이 세워진 바 있다. 전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번 코로나19의 창궐로 ‘21세기 버전’으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각국은 여행객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국경봉쇄에 나섰다. 그러면서 자국만 살겠다고 나서는 경제민족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벌어진 ‘마스크 쟁탈전’은 세계가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었다. 각국은 마스크를 한 장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전통적인 선린 우호관계는 평화 시에 건네는 입에 발린 외교적 언사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보호무역과 국수주의로 흐르는 길을 더욱 넓혀 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선 미국은 팬데믹 이후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코로나19의 진원지라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태세다.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에 국내로 돌아오라고 회유하고 있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나라들도 하나둘 ‘차이나 엑소더스’를 밝히고 있다.

최강국인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서면서 세계는 리더십 없이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10여년 전 금융위기 당시에는 주요 국가들이 소통하고 공동의 방안을 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경제는 공동의 계획을 가지고 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난파에 처한 배에 선장이 사라진 상태나 다름없다. 세계는 자유무역과 국제협력 대신 경제민족주의와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의 선택은 분명하다. 우리 앞에 놓인 숙제는 한 개의 국가 단위로 해결될 수 없다. 당장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지구차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이들 약품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사용하기까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더욱이 감염병 팬데믹은 이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추가로 발병해 연례행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뿐인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도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 간의 소통과 협력 없이는 해결 불가능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일에 매몰돼선 미래가 없다. 세계화로 인해 많은 상처가 났을지언정 그래도 각자도생, 국수주의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다. 유발 하라리의 지적대로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에 민족주의는 절대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마차가 끊기면 전차가 온다. 소통과 양보, 합의가 사라지면 전쟁이 찾아온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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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4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학원 등 다중이용시설 방역 강화를 위한 교육부·서울시·서울시교육청 긴급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유 부총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10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일 클럽 관련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1주일 지나 감염자가 130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에는 클럽 방문 후 확진 판정을 받은 학원강사로부터 2차 감염된 10대 학생들이 포함돼 있다. 클럽을 다녀온 고3생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집단감염이 학원·학교까지 파고들 기세다. 확산세를 막지 못하면 다음주 20일로 예정된 순차적 등교개학이 어려워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역사회 감염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인천 미추홀구 학원강사에 의한 집단감염이다. 이태원 클럽을 다녀온 뒤 확진판정을 받은 학원강사 ㄱ씨와 접촉해 감염된 사람은 14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9명이 학원 수강생인 10대이고 나머지는 수강생의 친구, 학부모 등이다. 이 과정에서 ‘3차 감염’까지 확인됐다. 이는 방역당국이 공식 확인한 이태원 클럽 관련 첫 3차 감염이다. 특히 ㄱ씨는 역학조사 과정에서 직업을 ‘무직’이라고 속여 방역당국이 접촉자를 파악하는 데 지장을 초래했다. 거짓진술·사실은폐로 방역에 혼선을 빚은 대표적 사례이다.

학원 관련 집단감염이 현실화하자 당국은 급히 학원·독서실·PC방 등 학생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 강화에 나섰다. 학원에는 특별히 ‘원격수업’을 강력 권고했다. 그러면서도 오는 20일 고3 등교는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연휴기간 이태원·신촌 등 유흥가를 방문한 교직원은 900명에 달한다. 학생들의 숫자는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이왕 개학하기로 결정했다면 철저한 준비로 감염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개학까지 남은 기간 학원·독서실에 대한 방역과 함께 학생·교직원 관리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태원 관련 집단감염은 ‘K방역’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무대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등교개학을 포함한 ‘생활방역’ 체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때 수천명에 달했던 격리치료 확진자는 1000명 이하로 줄었다. 현 수준의 신규 확진자는 우리 의료체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2, 3차로 이어지는 지역사회 집단감염이다. 현재까지 이태원 클럽 이용자 5500여명 중 2000여명은 여전히 연락두절 상태다. 이태원 지역 방문자 가운데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태원이나 클럽 방문자는 지체 없이 진단검사에 응해야 한다. 빠른 신고와 검사만이 ‘N차 감염’을 통한 지역확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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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운동본부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등록금 반환소송 및 법안개정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전국 30여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이하 전대넷)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반환 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대넷은 “코로나19 상황 4개월째인 현재 전국 300만 대학생들은 등록금만큼의 교육권, 수업권 등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1학기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학도 고통을 분담하라는 것이다. 초유의 감염병으로 인한 불가피한 일이지만,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는 타당하다. 대학과 교육당국은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2020년 기준 연간 673만원 정도이고 의학계열은 976만원에 이른다. 액수도 고액이지만 상당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일부를 마련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최근 경기 침체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학생들은 강의실과 도서관 등 학교시설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카페나 독서실 등 다른 시설로 계속 옮겨가면서 겨우 학업을 이어가는 형편이라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부담까지 늘었다. 14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국민 4명 중 3명이 대학 등록금을 반환하거나 감면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도 이런 실태를 반영한 것이다. 전대넷의 지난달 조사에서는 학생 2만여명 중 99%가 넘는 응답자가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대넷은 소송인단을 모집해 6월 말 각 학교와 교육부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지난달부터 학생들의 계속되는 등록금 환불 요구에 “등록금 반환 문제는 대학 총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교육부는 뒷짐만 질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 정리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등록금 인상을 미룬 대학들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등록금을 그대로 다 받는 것은 명분이 없다. 어려운 시기에 짐을 나눠서 지는 게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제안대로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장학금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 코로나19 창궐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감안해 환경개선비와 학생역량강화 프로그램 등에 사용하도록 돼있는 7000억원가량의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장학금으로 돌려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정당국도 당초 목적과 쓰임새가 다르다고 반대만 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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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그린뉴딜’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마련하라고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에 지시했다. 그린뉴딜은 기후변화 대응·에너지 전환 등에 대한 투자로 경기부양과 고용촉진을 달성하는 정책이다. 그린뉴딜을 ‘포스트 코로나’의 주요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7일 내놓은 한국형 뉴딜이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비대면산업 육성, 생활SOC 디지털화 등에 머물러 환경적 비전이 결여됐던 점에 비추면 긍정적인 방향전환이다. 다만 문 대통령 발언을 보면 그린뉴딜의 개념이 모호하고, 의지도 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린뉴딜을 교통·건축 분야 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편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그린뉴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 과제이다. 온 세계가 합심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기후재앙이 인류를 덮칠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은 이미 그린뉴딜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GDP의 1.5%에 해당하는 330조원을 기후위기 대응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지난해 하원에서 그린뉴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한국은 ‘기후악당’ 국가로 꼽힐 정도로 기후대응에 미온적이었다. 유럽의 기후분석 전문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지난 13일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금보다 온실가스 감축을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린뉴딜로 경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은 시대적 책무다. 이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 에너지 전환과 자원순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수록 그에 따른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더욱 ‘기후악당’ 국가의 오명을 씻고 ‘탈탄소 사회’를 만드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그에 부합한다.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 추진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현재의 정책기조로 미뤄볼 때 추진의지를 미심쩍어하는 시각이 많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4일 한국의 경제·산업 부처에서 그린뉴딜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그린뉴딜’ 추진의지를 밝힌 이상 개념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설계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4개 부처의 합동 서면보고를 받는 데서 그칠 게 아니다. 범정부 추진기구를 구성하고 민간도 참여시켜 제대로 된 그린뉴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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