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홈리스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을까?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5월9일과 10일 이틀 동안 진행한 102명의 설문조사 결과 다수의 응답자는 신청 과정, 지급 수단 등의 문제로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거나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본인 인증에 어려움을 겪거나 지급받을 수단이 없거나, 지급받더라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신청을 위해선 휴대전화나 신용카드가 있어야 한다. 응답자 중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은 21%에 불과했다. 사용 가능한 통장과 카드를 소지한 사람은 각각 34%, 24%뿐이었다.

신청 장소도 문제다. 온라인 접근이 떨어지는 홈리스의 경우 찾아가서 신청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조사 참여자의 41%는 주소지가 서울이 아니었다. 김포에 마지막 주소지가 있는 응답자는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한 번 더 타야 주민센터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차비가 없어 이미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신청을 포기한 바 있다.

마지막 주소지가 전주에 있는 한 노숙인 역시 전주와 전북도의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신청을 한들 지역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전주에 머무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가구를 단위로 세대주가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세대주가 아닌 경우에도 이의신청을 통해 재난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혼’ 증명을 위해 가족 두 명의 서명을 요구하는 등 현실에 맞지 않다. 가족과 연락하지 않지만 건강보험상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는 홈리스, 시설 이용 경험이 없는 가정폭력 피해자와 19세 미만의 청소년 홈리스는 별도 가구 이의신청을 위한 입증이 어렵다.

방법은 있다. 노숙인 이용 시설과 거리에서 직접 재난지원금 신청을 받으면 된다. ‘찾아가는 신청’이다. 신분증이나 지문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하고, 거리생활을 근거로 가구를 분리해 별도 가구로 신청을 받는다. 사용 가능한 통장이 있을 경우에는 계좌이체, 아닌 경우에는 수령 확인을 통해 현금으로 지급하면 된다. 현금 지급이 중요한 이유는 선불카드나 상품권으로는 휴대폰 요금이나 방세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노숙인의 50%는 현재 가장 필요한 지출로 주거비를 꼽았다.

재난지원금을 3개월간 신청하지 않으면 기부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거리 홈리스의 재난지원금도 기부되는 것일까? 거리에 살기 때문에, 신분증·휴대전화·통장·카드 혹은 차비조차 없어서, 따로 사는 가족과 연락할 수 없어서 미신청자가 된다면 미신청 사유는 가난이 될 것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 가장 가난한 이들을 버리고 가지 말라. 방역만큼이나 면밀하고 적확한 대응이 사회보장에도 절실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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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5월11일 (출처:경향신문DB)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강도 높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종료되고 완화된 단계인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시작되자마자 5월8일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신규 확진자가 두 자릿수 인원을 넘어섰다. K방역은 다시금 광범위한 검사를 통해 신규 확진자를 줄여나가고 있다. 방역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2차 유행’이 가을 혹은 이른 겨울 온다면 상황이 더 악화될지도 모르겠다.

클럽과 주점을 돌아다니는 청년들을 향한 꾸짖음이 많다. 방역 당국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좋은 상황을 겨우 만들었는데, 청년들의 방종으로 이 꼴이 났다는 것. 젊고 건강한 이들의 혈기로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


전염병 방역 목소리 정당하지만

거리 두기의 지루함은 긴장 상태

소비 살아나야 시민들도 살아가

경제·사회 방역 병행될 수밖에

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은 경계를


대학가 맛집 거리를 저녁마다 다녀봤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청년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마스크 프리존’이라고 했다. 무리 중 모두 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식당으로 향했을 때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각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손님도 빽빽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 실천으로 갑갑하게 보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방역의 목소리는 정당성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이며, 게다가 밀폐된 공간이라면 약간의 비말을 통해서도 전파가 가능한 이 병에 대해 전염을 유발하는 모든 행동을 삼가라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정당성이 얼마나 힘이 있을지에 대해 주저하게 된다. 나들이를 가기에 날씨가 좋다. 온라인 자아가 비대해진 사회지만,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 몇몇은 만나야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모임에서 또래 집단과 선후배를 만나는 것이 대학 강의와 일만큼 중요한 청춘들에게 집 안에 가만히 있는 일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경제·사회 방역도 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살리려면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오프라인 지역사회 소비용으로 설계된 긴급재난지원금이 많이 쓰이는 부분은 ‘먹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모여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방역은 역설 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

“올해만 있냐”는 반문도 옳다. 그러나 통신망 빅데이터가 보여주듯 한국인들은 3~4월 강도 높은 거리 두기를 실천해 왔다. 이제 지긋지긋해진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초인이 되라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감염되지 않을 확률이 감염될 확률보다 높다는 것에 기대어, 사람들은 사회적 인간의 본성 대로 ‘사회적 관계 맺기’를 늘려갈 것이다. 이태원과 홍대는 징후일 따름이다.

전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와, 물리적 거리 두기에 대한 시민들의 지루함은 긴장 상태다. 자극이 전해질 때마다 평형은 깨지고 방역에는 과부하가 걸리고 시민들의 불만은 늘 수밖에 없다. 강제력을 동원해 미국과 유럽 혹은 중국 우한처럼 ‘봉쇄’를 선택하거나, 많은 처벌 규정을 늘려 물리적 거리 두기를 강제할 경우 한국이 자랑한 ‘K방역’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이라는 가치에 반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여전히 기댈 것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의 헌신밖에 없다. 정부는 백신 개발과 치료제 개발에 총력을 다하라고 주장하지만, 신약 개발은 높은 수준의 기술축적이 필요한 데다 원하는 결과를 들인 시간에 비례해 나오지 않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여전히 부분적이다.

그사이, 사회는 멈춤 없이 재편되고 있다. 사회의 약한 고리가 드러나는 것에 맞춰 긴급재난지원금, 소상공인 긴급 대출,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된다. 당분간 지속될 언택트 사회의 특성, 전염병이 생태계 변화가 유발한 문제라는 진단에 착안하여 일자리 창출과 산업의 미래 먹거리 개척을 위한 뉴딜이 기획되고 있다. 시민들은 화상 모임과 마스크와 주먹 인사를 통해 언택트 사회에 맞는 어울림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코로나19와 함께’ 한동안 지루하게 살아야만 한다. 전염병 방역과 경제·사회 방역은 병행될 수밖에 없고, 과단성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의 약한 고리에 대한 지원뿐이다.

필요한 것은 정책 당국의 ‘절제되고 조심스러운 말’이다.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은 불확실성을 일으키고 경제 방역, 사회 방역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전염병 방역을 넘어 경제 방역 단계에 왔다는 이행설, 학교가 대면 학기 준비가 잘되었다는 과신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청년들의 혈기는 그런 분위기에서 튀어나왔다. 메시지를 단속하고 다양한 현안을 차근차근 조율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방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야 청년에 대한 비난과 소수자 혐오 등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포스트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도 덧나지 않게 구성될 수 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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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은 ‘세계박물관의날’이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이 기간을 전후해 각종 행사와 축제, 학술대회를 실시해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5월 초부터 제한적으로 문을 열고 있지만 소위 선진국의 유명 박물관들은 여전히 개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박물관의날을 맞이해, 올해 국제박물관협회(ICOM)가 제기한 ‘평등을 위한 박물관: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글로벌화로 세계는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문화 배경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고, 효율성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계층 간 차이는 더 심화되었다. 결국 공동체 내에서 소외의 문제를 어떻게 완화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가 인간의 가치를 신장하는 지고의 명제가 되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세상이 좁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연결돼 살아본 적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바로 그러한 문명의 그늘 속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를 인간성 회복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성찰하는 역설적 기회로 만드는 것이 코로나19라는 숙명적 팬데믹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박물관은 원래 한 공동체 내 대화의 장소이자 지혜의 원천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보편적 고뇌가 시작될 때 박물관에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이유가 있다. 박물관이야말로 과거 인간의 모든 것의 집합, 즉 클라우드 시스템인 동시에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세계박물관의날 주제는 의미심장하다. 박물관에선 오랫동안 그러한 고민을 해왔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엔 명쾌히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하고, 기술적으로나 공감대의 범위에서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전 세계 박물관들은 온라인으로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문화 생산 주체로서 역할을 다했다. 디지털 기술이 첨단화돼 그 전달력이 고도화되었음을 체감하고, 실제 현장과는 다른 의미의 감성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식이나 정보를 골고루 전달하고,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해, 국민 모두의 문화 향유권을 미래지향적으로 신장하기 위해선 박물관의 스마트한 온라인 시스템 구축에 획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화유산의 디지털 콘텐츠를 수집하고 그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러한 결과물을 활용해 문화산업을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박물관에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것이야말로 미래 사회의 번영을 위해 지금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선 문화예술 영역의 젊은이들이 클라우드 워킹을 통해 거대 문화 콘텐츠 집합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반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각 박물관은 디지털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해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사용하는 곳이 되도록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고 미래 사회의 행복을 약속받는 길이자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상받는 방법이 아닐까.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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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따뜻한 겨울이었다. 도시가스비 고지서에서 전년 대비 사용량을 보니 난방비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과 칩거하다 보니 여느 때보다 가스불로 밥도 많이 지었는데 말이다. 지난겨울에는 눈도 거의 내리지 않은 데다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은 습한 겨울이었다. 시설재배 농가에서는 겨울 난방비를 조금 절약하기도 했지만 노지 작물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병해충들이 이르게 활동해 작물을 망칠까 싶어서였고, 과일나무나 두릅나무 같은 임산물에 너무 일찍 물이 올라 느닷없이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그대로 꽃이 얼어버릴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난달 4일부터 6일 사이에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을 정도로 추웠다. 예년보다 과일나무 꽃들은 일찍 피었고 인공수분을 해야 할 계절도 앞당겨졌건만 야속하게 때맞춰 영하로 기온이 떨어졌다. 특히 배, 복숭아, 사과 주산지의 피해가 크다. 과수의 냉해는 올해뿐 아니라 그 이듬해까지 봐야 한다. 수분·수정 불량으로 생육 부진이 오면 착과율이 떨어지고 내년 개화에도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많은 과수농가들이 2년 전에도 냉해를 입었고 올해 겨우 회복기에 접어들다가 또 꽃이 얼어터져 버린 것이다. 

듣기 좋으라고 기후변화지 농촌에서는 기후재앙이 반복된다. 내겐 두꺼운 패딩 점퍼 대신 경량 패딩 점퍼로 한겨울 날 수 있겠구나 정도의 체감이지만 농어민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씨 변화로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가축들 건사도 어렵다. 60년간 농사를 지은 팔순의 한 여성 농민은 내게 “농사 모르겠다”고 한다. 

하루이틀 노력으로 온난화를 해결할 수 없어도 제도적 해결은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영농비를 확보하게 하고 영농 의지를 완전히 꺾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제도가 농업보험이다. 농업보험은 크게 농업인안전보험, 농업재해보험, 농기계보험이 있으며,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는 정책보험이다. 그중에서도 농작물재해보험은 NH손해보험(농협)이 독점 운용한다. 농업보험은 민간 보험회사에서 상품 출시를 꺼려서 국가가 나선 것이기도 하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국비와 지자체 보조가 80%, 농민 자부담이 20% 내외다. 주계약은 풍수해이고 특약조항이었던 냉해도 2019년부터 주계약 항목이다. 공공보조가 있는 만큼 위험에 대비해 가입하라고 나도 주변 농민들에게 권유하곤 했다.

하지만 많은 농가에서는 농업재해보험에 회의적이다. 막상 재해가 터지면 손해사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다. 제대로 열매를 맺지도 못할 꽃이 나무에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 산정에서 빠진다거나 ‘냉해’면 확실하게 모두 얼어버려야 하는데 꽃 몇 송이가 눈치 없이(?) 말갛게 살아남으면 손해사정사들에게는 그 꽃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피해 보상률이 80%에서 50%로 하향조정되었다. 예외로 지난 3년간 피해가 없어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다면 70%까지 피해 보상을 해주지만 농사지으면서 풍수해를 3년 동안 피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물론 100% 외부 피해가 인정될 때나 해당하는 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은 농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피해를 과장하는 데다 보험금 지급이 과하게 증가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어차피 당사자 돈은 20%만 들어갈 뿐이고 적은 보험금이라도 타면 이득이지 않으냐며 힐난도 한다. 그런데 20%의 자부담이 정말 부담스러워 보험에 못 드는 농민들도 많다. 농협빚 독촉을 받고 사는 처지에 농협에 가서 보험 드는 일이 어디 쉬운가. 영농비 한 푼이 아쉬워서 소멸성인 그 20%의 자부담도 버겁다. 보험사기꾼이 아닌 다음에야 알량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생존의 터전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비록 폭락장이어도 사과 한 알, 포도 한 송이라도 공판장에 보내려고 오늘도 애쓰는 중일 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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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작가 스티브 커츠(Steve Cutts)가 2012년 12월21일 유튜브에 올린 <Man>은 한 남자 인간이 딱정벌레를 밟아 죽이고 손을 번쩍 들며 “앗싸”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지나가던 뱀 두 마리를 잡아 가죽구두를 만들어 신은 그는 닭을 잡아 살을 부풀려 튀겨 먹고 양의 다리도 분질러 먹는다. 총을 들고 나타난 그는 물개를 잡아 코트를 만들어 입고 거대한 곰을 죽여 박제시키고 코끼리 상아로 피아노 키보드를 만들어 연주하는 고상한 교양인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양의 종이를 찍어내느라 우거진 삼림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빌딩 숲을 이룬 거대 도시는 밤낮없이 에너지를 태우며 탄소를 배출한다. 거대 축산 농장과 유전자 조작 농작물 가공소가 곳곳에 들어서고 온갖 생체 실험이 자행되면서 생태계 균형은 깨져간다. 쓰레기 더미 지구 꼭대기 왕좌에 오른 이 남자는 스스로 왕관을 쓰고 흐뭇해하며 시가를 피운다. 이때 우주선을 타고 도착한 눈이 몇 개 달린 외계인들이 그를 기이하게 여기며 왕좌에서 끌어내 밟아 버린다. 그리고 “Welcome!”이라는 팻말을 남기고 지구를 떠난다. 


코로나19로 자중의 시간 지나자

위기의 진단·처방 작업 들어가

성공적 방역국가로 자부심도

새 시대 맞는 ‘온라인 실험’ 착착

그러나 소외된 사람들은 늘 있어

스스로 낯선 자리에서 성찰해야


이 천재 애니메이터가 2020년 4월26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튜브에 <Man 2020> 속편을 올려주었다. 자가격리로 인간들이 사라진 도심에 숨어 있던 생명체들이 진출해 활보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눈이 세 개 달린 외계인은 오지 않았지만 기후변화로 홍수와 가뭄, 산불 등 재앙을 겪던 인간 포식자들은 이런 영상을 보면서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 드디어 자중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일까? 침몰하는 타이태닉호의 시간이 이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살겠다고 밀치고 아우성치는 사람, 평화롭게 죽어가겠다고 갑판에서 숨을 고르며 바이올린 합주를 준비하는 사람, 그 와중에도 짙은 사랑을 하는 사람, 모든 것을 모른 척하려는 사람들. 이런 침몰을 일찍이 감지해 ‘헬 (조선)’을 말하던 대한민국 청년들은 서구 선진 제국들이 위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방역을 잘해내고 있는 한국(조선)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군사주의와 과학기술주의에 바탕을 둔 ‘문명국’ 서구는 19세기와 20세기 초 ‘벨 에포크(가장 아름다운 시대)’를 찍은 후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기보다 제국주의적 확장을 통해 꽃을 피운 서구발 자본주의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것이다. 서구 근대 문명에 물든 지구인들이 <자본론>과 <종의 기원>만이 아니라 아나키스트로 분류되어온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도 열심히 읽었다면 상황은 좀 달라져 있을까? ‘생존 투쟁’ 못지않게 ‘상호 부조’의 법칙이 종의 진화의 법칙임을 인정했다면 인류사의 방향은 달라졌을까?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까지도 사냥꾼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이 파괴적 역사의 끝은 어디일까?

일정하게 자중의 기간을 지낸 영리한 포식자, 인간들은 이제 자신들이 창조해낸 사이버스페이스로 나와 위기 진단과 처방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장주의와 과학기술주의 프레임에서, 선진국 타령에서, 객관주의와 절대 보편원리를 향한 거대담론의 위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두가 다시 이론가와 전문가가 되려는 지금, 그냥 힘 빼고 소박하게 둘러앉자는 말을 하고 싶다. 마스크를 쓰고, 또는 모니터 앞에서 서로 돕고자 하는 이들과 둘러앉아서 난감한 시대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자고 제안하고 싶다. 어쩌면 이야기의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아독존적 태도를 버리고 만나는 것 자체가, 다른 세대, 다른 계급,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이 만나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새로운 시작일 테니까 말이다.

온라인 토론과 실험들이 가져올 폭발적 잠재력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실천적 지식인 로버트 라이시가 분류한 계급 중 가장 위에 속하는 ‘원격근무가 가능한 계급(the remoters)’만이 이 실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하자. ‘필수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the Essentials)’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 노동자(the Unpaid)’와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 계급이 공동운명체임을 간과하는 연구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니까 말이다. 같은 나라의 일원을 떨구어낼 때, 종의 일원을 떨구어내기 시작할 때 그 국가는, 그 종은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자리를 낯설게 보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찰하는 것, 이것이 전환기 전문가의 기본 자격이 아닐까 싶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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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앞에 전시된 전두환 단죄 동상. 강윤중 기자

“위민위향(爲民爲鄕), 국민을 위하고 고향을 위한다.”

충북 청주시 청남대에 있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동상 옆 표지석에 새겨진 글귀다. 동상은 ‘전두환 대통령길’ 산책로 중간에 있다. 청남대 대통령기념관 안에는 전씨 찬양 일색의 기록화도 있다. ‘결단력 있는 리더’로 미화된 그림이다.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거짓과 후안무치의 흔적이다. 청남대를 관리하는 충북도가 이를 없애기로 결정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충북도는 조만간 동상을 철거하고, 산책로 이름을 바꾸고, 기록물을 폐기하기로 했다.

‘전두환 흔적 지우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국가보훈처는 1985년 전씨 글씨로 새긴 국립대전현충원의 ‘현충문’ 현판을 안중근 의사의 서체로 교체하기로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이 잠든 현충원에 내란죄로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당한 자의 필적은 가당치 않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1988년 남극 세종기지 준공 당시 붙인 ‘세종’ 동판도 같은 이유로 32년 만에 떼어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해양수산부에 철거를 요청했다고 한다. 전북 장수군 주민들은 ‘1999년 전두환’ 이름이 함께 쓰인 논개 생가터 정자 ‘단아정’ 현판을 뗐다. 백담사는 지난해 12월 전씨 부부가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2년여 동안 생활하며 사용했던 물품을 모두 치웠다. 의류·이불·화장대·요강·세숫대야 등을 30년 가까이 전시하다 5·18기념재단의 철거 요청을 뒤늦게 받아들였다.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잔재는 아직도 많다. 경기 포천시 43번 국도변의 ‘호국로’ 표지석, 인천 흥륜사의 ‘정토원’ 현판, 전남 장성군 상무대 법당의 ‘전두환 범종’ 등이 우선 꼽힌다. ‘대통령 전두환’이 새겨진 범종은 전씨가 5·18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1년 광주를 방문해 기증한 것이라 한다.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기념석,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념석에도 남아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는 이를 위해 몸 바친 희생자들의 피와 땀 덕분이다. 5·18민주화운동 40년이 되도록 전씨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잔재를 모두 찾아내 청산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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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포크 가수이자 작곡가인 제니스 이언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한 가지 멋진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지난 4월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에 감염되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미국의 전설적인 포크 가수 존 프라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져 있던 중, 집에서 세탁기를 돌리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멜로디가 떠올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2시간 만에 곡을 하나 만들었다. 멜로디와 가사를 완성한 뒤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폰을 움켜쥐고 무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녹음실에서 녹음한 것이 아니다 보니 중간에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그대로 담겼다. 그렇게 급 탄생한 노래의 제목은 ‘Better Times Will come’. 우리말로 번역하면 ‘더 좋은 날이 온다’이다.

그는 이후 녹음 파일과 악보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면서, 코로나19로 모든 공연이 취소되어 집에 머물고 있는 동료 음악가들에게 각자 스타일에 따라 ‘집에서 만들어 본’ - 더 좋은 날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집에 격리된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모두 집에 ‘갇혀 있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결국은 언젠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응원의 마음을 담은 프로젝트다. 

유명한 포크 음악가 존 고카를 시작으로 프랭크 터너, 에릭 비브, 스티브 바우프먼, 나일 머피 등 여러 뮤지션들이 그의 제안에 공감하여 멋지게 스타일을 바꾼 노래들로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다케나카 에리는 원곡 가사를 일본어로 번안해 부르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뮤지션의 참여는 없는 듯하다.

그의 노랫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세상이 하나로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래, 더 좋은 날이 올 거야.”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를 지나오면서 “온 세상이 하나로 사는 법”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고리타분하게 여겨졌던 식상한 이야기가 막상 현실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경험을 했다. 소중한 깨달음도 얻었다.

차별과 혐오는 공동체를 병들게 할 뿐이었다. 성소수자,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 대한 부당한 낙인과 혐오는 오히려 공동체를 더욱 위험하게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배제와 혐오가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가 아니다)을 포함한 충분한 공공보건 시스템과 성적지향은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 존중해주는 성숙한 행정제도가 공동체를 안전하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 가장 약한 사람까지 안전해야 모두가 안전하다. 코로나19가 벗겨낸 우리 사회 민낯은 취약한 사람들일수록 재난에 무방비 상태라는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쪽방촌에 살고 있는 도시 빈민, 장애인, 구치소에 수감된 재소자,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갑자기 찾아온 재난에서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없거나 충분치 않았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세상이 하나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운다면, 반드시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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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어젖혔어, 사랑을, 색소폰처럼


불어젖혔지, 불멸의

색소폰을


온몸의 뼈다귀들이 필라멘트처럼 빛을 낼 때까지


불어젖혔어

당신을


불다 불다 내 머리통까지

불어 날렸어


사랑은 방사성

폐기 물질


반감기가 오기까지

45억 년이

걸리지


김언희(195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의 행위는 사랑을 연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역의 색소폰을 연주하듯이. 숨을 잔뜩 불어넣으며, 그래서 온몸이 필라멘트처럼 백열하면서 사랑의 음(音)을 연주한다. 

입김을 내어 바람을 일으키느라 불고 불어서 머리조차 날아갈 정도로 열렬하게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언젠가 위기를 맞고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고, 우리가 함께 주고받았던 사랑이 방사성 폐기 물질을 내뿜는 일과도 같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처럼 맹렬했기에 이 치명적인 사랑이, 사랑의 기억이 우리의 내면에서 반쯤 줄어들기까지에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라늄 238의 경우 방사성 원소의 수가 반으로 줄 때까지 45억년이 걸리듯이.

김언희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에서 새벽이면 강으로 나가 김소희의 구음(口音)을 12분24초 동안 듣는다고 썼다. “강폭이 가장 넓은 곳에 서서 직벽을 마주하고” 듣는다고 썼다. 아마도 혼이 필라멘트처럼 빛을 냈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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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혼자서 5·18민주묘역을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광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영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영국 여행이었건만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노팅힐도, 템스강도 아닌, 기내에서의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 별 생각 없이 들고 간 책 한 권이었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이제 막 출발한 참이었지만 앞으로의 여행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태어나 한번도 광주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광주에도 가지 않은 내가 런던에 간다니. 때아닌 자책감마저 밀려들었다. 

2017년 5월 말, 뒤늦게 찾은 광주는 무척 더웠다. 1980년 5월의 광주도 그렇게 더웠다고 한다. ‘518버스’를 타고 도착한 국립5·18민주묘지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군데군데 놓인 꽃다발들은 봄과 어울리지 않는 뙤약볕 아래 벌써부터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각 묘지 앞에 세워진 묘비의 앞면에는 안장된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유족들이 남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전할 수 없지만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보니, 작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 여백을 찾기 힘든 묘비가 많았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돌아올 줄 알고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는데 정말 갔느냐, 막둥아.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머니 부르며 오는 것만 같구나. 못다 핀 인생, 하늘나라에 가서 장미꽃처럼 영원히 이여다오.”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여전히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전두환이가 우리 대학생들 다 죽인다고 집을 나와 시민군에 가입해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5월18일 나가서 5월27일까지 열심히 용감히 싸웠음.” 죽은 이의 희생이 얼마나 의로웠는지 기리고 싶은 가족의 마음. 

“가난하고 세상 보는 눈은 좁지만 참되고 바르게 살리라.” 떠나간 이의 유지를 받들어 살겠다는 굳은 각오. 

“가는 이 말이 없고 사는 이 고통과 번뇌로 만신창이가 되었네. 나 또한 지쳐 쉬고 싶노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평생 회한 속에 살아온 남겨진 자의 슬픔….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발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비문들을 읽고 있노라니, 11살 어린 나이에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의 묘비가 궁금해졌다. 1980년 5월24일 동네 뒷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던 전군은 총소리에 놀라 뿔뿔이 도망치던 중 고무신이 벗겨져 주으러 돌아섰다가 총에 맞았다. 사인은 우측 늑골 하부에서 좌측 늑골 하부로 관통 총상. 전군이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끝까지 챙겨가려 했던 고무신은 며칠 전 부모님이 주신 생일선물이었다. 그 가족들이 남긴 비문은 얼마나 절절하고 애끊는 사연일 것인가.

하지만 전재수군의 묘비 뒷면을 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문에 적힌 글은 아버지가 남긴 고작 여섯 글자뿐이었다.

“고이 잠들어라.”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삶을 기리기에는 생이 너무 짧았고, 슬픔을 나열하기에는 몇 뼘 되지 않는 묘비의 크기가 너무나 작다. 자식이 죽고 나서 엄마도 시름시름 앓다가 4년 후 아들 곁으로 갔다고 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비문들을 읽어가다 보면 ‘역사의 비극’이라는 말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개별적인 비통함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단 하나의 비문에 담긴 애통함과 슬픔의 무게조차 가늠할 길이 없는데, 그것들이 쌓인 ‘역사의 비극’이란 도대체 어떠한 무게란 말인가. 

오늘은 5·18민주화운동 40년인 날이다. 40년이 흘렀지만 실종자들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고, 헬기사격의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광주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전두환은 지금까지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산 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1980년 5월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눈을 뜨고 응시하는 것이다.  

“(시민군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lt;소년이 온다&gt; 중)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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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한 유족이 광주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아들의 묘비를 쓰다듬고 있다. 강윤중 기자

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명확하다. 불의한 국가권력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저항은 숭고하고 정의로운 항쟁이었다. 5·18은 1995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고, 19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5·18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 우리 헌법에 담아야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아직도 미완이다. 계엄군의 최초 발포와 집단 발포 책임자는 누구인지, 헬기사격은 누구의 명령으로 어떤 절차에 의해 이뤄졌는지 등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모두 찾아내고, 5·18 진실 은폐·왜곡 공작의 실상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시작으로 각종 조사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많은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학살 주범 전두환씨는 사죄의 말 한마디 없이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 40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공인한 진상규명 보고서조차 없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12일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십년간 묻혀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사위는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전력하기 바란다. 5·18을 둘러싼 허망한 갈등과 분열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로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이다. 진실의 토대 위에 설 때 진정한 통합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이제는 보수진영도 역사적 통합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당 일각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모욕하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있어왔다”면서 “5·18 희생자와 유가족, 상심하셨던 국민들께 매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사과했다. “5·18 폭동” “5·18 유공자 괴물” 등의 망언에 대한 사죄다. 그는 광주에서 열리는 4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통합당의 전향적인 자세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번 사과가 단지 5·18 국면을 모면하기 위한 구두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당내의 5·18 왜곡·폄훼 발언에 대해서는 강력한 징계로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진상규명 작업에 적극 협력하고, ‘5·18 민주유공자 예우법’ 등 관련 법안 처리에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진실 보도를 외면한 언론도 5·18의 진실을 흐리게 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경향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경향신문이 1980년 5월18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부터 5월 말까지 13일간 내보낸 5·18 관련 보도 108건 중 계엄군의 폭력진압 등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알린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늦었지만 경향신문은 5·18연구소와 5·18기념재단의 감수를 받아 과거 보도를 바로잡기로 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그날의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고, 정의가 바로 서고,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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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의 등교수업을 당초 예정보다 일주일씩 연기한 11일 서울 송파구 영동일고등학교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교육부가 오는 20일 고3 학생 등교개학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이에 따라 고3생을 시작으로 초·중·고 학생들이 개학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등교수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등교 결정은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감염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내 코로나19 신규 발생이 10명대로 떨어져 수업과 방역의 병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고3생의 경우 더 이상 개학을 연기하면 수능 등 학사 일정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정부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순발력 있게 대응하겠다며 여지를 남겼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등교 결정은 코로나19가 진정세에 들어섰다는 명시적인 신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고 백신·치료제마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개학은 불안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국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10명대로 줄었다고 하지만 확산세가 차단된 것은 아니다. 특히 3·4차로 이어지는 이른바 ‘n차 감염’은 더욱 우려스럽다. 17일 낮 12시 기준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 168명 가운데 클럽 방문자(89명)는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79명)는 전부 ‘n차 감염자’들이었다. 확진자 접촉을 통한 2·3차 감염이 대부분이지만, 코인 노래방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옮아온 4차 감염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태원 집단감염자 대부분이 20대이고, 이들 가운데 30%가 진단 당시 무증상 상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조용한 전파자’가 곳곳에 잠복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개학 연기’를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2만명을 넘어선 것도 이런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등교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44만여명에 달하는 고3생이 일제히 교실 수업에 들어간다. 방심하다가는 자칫 싱가포르처럼 학교가 새로운 지역사회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 ‘불안한 개학’이 성공하려면 당국의 철저한 학생 관리와 방역이 뒤따라야 한다. 교직원과 학생의 방역수칙 준수는 필수 사항이다. 실내 다중시설 이용을 자제하고 손 씻기, 마스크 쓰기만 제대로 실천해도 바이러스 감염을 피할 수 있다. 학생들의 집단 등교는 코로나19 사태 들어 가장 중요한 변수다. 그 성공 여부는 오로지 기본 수칙의 준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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