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한 달 동안은 서울에 두 차례 다녀온 것 말고는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다니거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았던 까닭은 인터넷을 통하여 날마다 새롭게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진이 직업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비 칼보는 자전거 타기와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의 앨범 대부분은 거친 들과 험한 산 그리고 도시를 가리지 않고 자전거 타는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3월14일부터 그의 자전거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설사 나간다 하더라도 쳇바퀴 돌듯 바르셀로나의 도심지 일대를 배회할 뿐이었다. 코로나19 경보가 발령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곤 52일이 지난 5월4일이 되자 마을의 작은 이발소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과 함께 마스크를 쓴 이발사가 역시 마스크를 쓴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사진을 올렸다. 조심스러운 일상의 회복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진이었다. 

파리에 사는 디프레자는 3월17일 정오 이후의 파리 사진을 250장 가까이 올렸다. 그날은 프랑스가 국민의 이동을 통제하기 시작한 날이다. 검문하는 경찰의 모습, 텅 빈 거리와 지하철, 적막한 미술관과 광장의 모습은 바르셀로나의 풍경과 흡사했다. 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 대처하는 서로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미처 내가 보지 못한 것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실시간 공유도 엄청날 것이다. 지금도 그 기록은 진행형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은 미래를 위한 추억 이상의 소중한 자원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조선 후기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1798년 겨울부터 1799년 봄까지 심한 독감이 나라 안에 퍼졌는데 돌림감기라는 뜻으로 윤감(輪感)이라고도 했다. 당시의 기록을 찾아보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1798년 12월부터 1799년 1월 사이 항재 홍낙성, 백눌 이민보, 몽오 김종수, 번암 채제공 등 영·정조 시대의 명신들이 모두 독감으로 숨졌다. 그러니 백성들은 어땠을까. <정조실록>에 따르면 전국에서 12만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다급했던 모양이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머물던 황해도 곡산에서 이미 죽었지만 매장을 못하는 이가 있으면 관에서 비용을 대라고 했다. 더불어 백성들 중 부자들에게 재정지원을 받아서 우선 매장하게 하고 후에 그들에게 벼슬로 사례를 했다는 기록이 <목민심서> ‘애민’편에 남아 있다. 무명자 윤기는 ‘무오년 독감’이라는 시를 써서 당시의 일을 기록했다. 그 시를 통해 열흘 만에 온 나라에 독감이 퍼졌고, 장례에 사용할 삼베나 관 같은 것이 동이 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독감은 3개월 만에 비로소 수그러졌는데 그는 독감이 ‘전쟁보다 참혹하고 역병보다 흉악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시인이 쓴 것일지라도 기록은 소중하다. 보통 사람들의 일기도 마찬가지다. 이십여 년 전, 해남에서 만났던 채씨 할아버지의 가계부 같은 일기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마을의 주둔군이 밤낮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낮에는 경찰이나 국군에게, 밤에는 ‘빨갱이’에게 번갈아 가면서 밥을 해줘야 했던 일이 투박한 언어로 남아 있었다. 또 전쟁 직후 장에 가서 사 온 큰딸의 ‘빤쓰 고무줄’이나 ‘흰 고무신’ 또는 ‘파리 약’ 값이 얼마라는 사소한 내용까지도 남아 있었다. 

아직 괴산에서 약방을 운영하는 신씨 할아버지는 박정희를 신봉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일기엔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가 마을 전체에 사태의 내용을 알리는 방송을 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얼마간 마을 확성기를 통해 계몽적인 방송을 했다면서 방송 원고가 적혀있는 일기장을 내놓았는데 대단한 기록이었다. 

나 또한 일기 쓰기를 즐긴다. 시대가 바뀐 지금은 휴대전화 안에 6년 치 일기가 들어 있다. 그 이전 종이에 쓴 것까지 합치면 일기 쓰기 버릇은 제법 오래되었다. 그런데 일기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부마민주항쟁과 연이어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근무지는 경기도 연천의 전곡으로, 낡은 흑백 TV로 당시의 일들을 보곤 했다. 그러나 간혹 면회를 오는 친구들의 얘기는 TV에서 말하는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긴급조치 시대를 겪은 나로서는 당연히 친구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현실과 맞닥뜨린 내적 갈등은 상당히 깊었다. 그러한 심리상태는 일기에 낱낱이 적혔다. 인조가죽 표지에 지퍼까지 달려 있던 그 일기에는 20대의 내가 군 생활을 하며 겪은 무수히 많은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였다.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 상급부대의 관리자에게 일기의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보급 담당 행정요원이어서 책상 서랍에 일기장을 두었는데 외관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일기는 빼앗겼고 내용이 문제가 되어 영창까지 다녀와야 했다. 영창에서 돌아와 일기를 돌려 달라고 했지만 군대에서는 개인의 기록이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제대를 한 직후에도 부대의 지휘자를 찾아가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잊어버리라는 대답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어언 40년이 지났으니 그 일기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선명치 않다. 그렇게 나의 32개월 24일은 사라지고 말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문득 잃어버린 나의 기록에 대한 아쉬움과 귀하게 남아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에 대한 감사함이 교차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이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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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인류는 물에서 태어나 물과 함께 번영했다. 물을 이용하는 법을 깨우친 인류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 사이, 나일강과 인더스강 주변에서 관개 영농을 시작하면서 문명을 탄생시켰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물을 이용하고 통제함으로써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개발 중심의 가치관은 산과 들을 도시와 공장지대로 바꾸었고, 에너지 소비 증가는 기후변화를 불러왔다. 인구가 늘면서 물 수요가 늘었고, 이는 다시 오수의 배출로 이어졌다. 도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였으며, 풀이나 나무가 자랄 곳은 사라져갔다. 빗물은 땅속으로 스미는 대신 한꺼번에 유출되어, 하수관거나 처리시설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최근 빈발하는 도심 침수, 도시 하천 범람, 하수 월류 등이 이를 말해준다. 강수량이 적어도 문제다. 지하수 저장량이 부족해 지하수 고갈, 하천 건천화가 발생하고, 가뭄이나 물 부족이 심화된다. 증발산이 줄어들면서 도시 열섬, 열대야 등의 현상도 나타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국지적 집중호우와 가뭄, 기온 상승 등은 이 같은 문제를 증폭시킨다.

최근 한국은 저영향개발(LID·Low Impact Development) 기법을 도입한 ‘물순환 도시’에서 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자연의 자정력을 이용하여 수질오염과 기후변화에 강한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자연이 가진 수질 정화기능과 수량 조절기능을 되살려 기존의 하수관거와 수처리장치 등 인프라 시설이 맡았던 역할을 일부 대신하게 한다. 빗물을 소규모로 분산해 저류, 침투, 증산, 발산시켜 자연의 물순환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그린 인프라 조성, 빗물 유출 제로화, 물순환 선도도시 조성 등도 그 일환이다. 하수처리장을 중상류에 분산 설치해 건천화를 예방하고, 유출 지하수 저감 등을 통해 도시공간의 친환경성을 높인다.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도 이미 저영향개발 기법을 도입해 수질 개선, 빗물 유출 저감, 열섬 완화 등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수량·수질·생태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 관점의 협의체계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도시 물순환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일부 도시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취약도시를 선정하고, 통합적 관점에서 물순환 도시를 확대해야 한다. 법적·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아울러 국정과제인 부산EDC 스마트시티와 송산그린시티 사업에서 물순환 도시 모델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물 공급 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과 저영향개발 기법을 적용해 물순환, 수질, 수생태, 친수공간, 수방재 능력을 최적화한 스마트 물관리 체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도시와 도시를 연계하는 스마트 워터벨트로, 나아가 유역 차원까지 확장한다면 유역 중심의 통합 물관리의 완성도와 기후변화 대응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질 높고 지속 가능한 시민 생활이 가능하려면 건강한 생태계와 아름다운 경관이 살아 있는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 물순환 도시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생활의 편리함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살아 숨쉬고 공생하는 쾌적함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선조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려 자연을 품은 최첨단 도시를 만들고 또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박재현 |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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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주말 별마당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서울 삼성역 가까이에 있는데요,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가보니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특히 바닥에서 천장 높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10층 건물 높이쯤 되어 보였습니다. 높이는 깊이의 다른 말이겠지요. 포괄적인 넓이만큼 심층적인 깊이 또한 절실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이와 깊이가 교차하는 십자가 같은 걸 떠올려 보았습니다. 

강단에 서보니 돔구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강연 주제는 ‘관계’로 정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오두막에 있었다는 의자 세 개를 매개로 삼아 ‘나’를 둘러싼 관계를 성찰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소로는 친구가 찾아오면 의자 두 개를 내놓았고 나그네들이 방문하면 의자 세 개를 내놓았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의자가 하나만 필요했겠지요. 소로의 의자는 각각 자기 성찰, 우정, 환대를 의미합니다. 저 세 관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좋은 삶, 좋은 사회’가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19세기 후반 소로의 의자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만,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의자가 두 개 더 필요합니다. 기계와 천지자연이 앉을 의자 말입니다. 인공지능(AI)이 이끌어가는 과학기술 혁명, 그리고 기후재앙으로 대표되는 생태 환경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인간관계는 무너지고 맙니다. 인간과 기계, 인류와 지구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사라지고 맙니다.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반드시 전환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과 다른 생각, 지금과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지 않는 성찰은 진정한 성찰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이웃, 이방인, 인류세까지 두루 살펴보다 보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삶이 왜 이토록 작아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자존감, 존엄, 평등, 자유, 영혼과 같은 말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다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환대의 의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피부와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낯선 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개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과 다른 가치관을 수립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긴급한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별마당도서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바꾸자. 오늘의 나, 지금 여기의 우리를 만들어온 이야기를 뒤집어보자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바뀌어야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신화, 전설, 민담, 노래… 우리 마음 안에서 척도 역할을 하는 이야기에 일정한 거리를 둘 때입니다. 그 거리에서 다른 생각이 탄생합니다. 관점 이동과 경청을 통해 공감능력 키우기. 이 태도만 갖춰도 우리는 다른 미래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제가 중얼거리는 짧은 시가 있습니다. 귀에 익은 동요를 뒤집은 것인데요,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생님이 치는 종소리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학교는 국가가 개입하는 공적 제도입니다. 제가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가보세/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네.’ 일대 전환입니다. 학생들이 종을 칩니다. 이제 학교와 사회가 ‘미래를 빼앗긴’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심청에게도 감정을 이입해 보았습니다. ‘심청이/ 아빠에게/ 공양미 삼백 석 영수증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엔/ 아빠가 빠져.’ 저는 심청의 저 ‘무서운 한마디’가 미래 앞에서 막막해하는 청년세대의 분노를 대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대 간 갈등은 기후위기에 버금가는 지구적 난제 중 하나입니다. 미래세대와 은퇴세대가 연금제도를 놓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공감능력이 관건입니다. 별마당도서관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미래의 문 앞에서 스러지는 ‘최후의 인간’이라면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고, 우리가 미래의 문을 열어젖히는 ‘최초의 인간’이라면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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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초등부 글쓰기 수업을 마치며 나는 칠판에 숙제를 적었다. 숙제의 글감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어떤 면모를 좋거나 나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하는 글감이었다. 일주일 뒤 아이들은 숙제를 제출했다. 아홉 살의 이안이는 자신의 친구 제하를 좋은 놈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썼다. “제하는 필요한 게 있으면 빌려주고 칭찬을 잘 해준다.” 반면 나쁜 놈으로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악당 볼드모트를 골랐다. “그는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준다.” 이상한 놈으로는 에릭이라는 인물을 골랐다. 이안이가 좋아하는 책 <조지의 우주를 여는 비밀 열쇠>에 등장하는 천재 과학자다. 이안이가 쓰길 “내가 생각하는 이상한 놈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보통 사람이란 무엇일까? 다르다는 게 꼭 이상한 것일까?” 이안이가 대답했다. “엄청 심하게 다르면 이상해요. 예를 들어 우주에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을 만큼 다른 사람 있잖아요.” 그는 다시 책에 눈을 돌리고 에릭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안이에게 에릭은 달라서 싫은 사람이 아니고 달라서 매혹적인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그 다름에 ‘이상한’보다 더 좋은 형용사를 붙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아홉 살의 이와는 요즘 심취해서 읽고 있는 어린이용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의 캐릭터들에 관해 썼다. 좋은 놈으로는 헤스티아 신을 꼽고, 나쁜 놈으로는 아폴론 신을 꼽으며 이렇게 썼다. “아폴론은 동생 아르테미스가 사랑하는 오리온을 직접 죽이게 했다.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와가 신화 속 캐릭터에 집중할 때 열두 살 서현이는 동시대 뉴스 속 사람들을 원고지에 데려왔다. “좋은 놈은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더 퍼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지만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그렇다. 나쁜 놈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다. 코로나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상한 놈은 코로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조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노력해서 코로나가 끝나면 다 같이 편하게 지낼 텐데 지금 자신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마음대로 하다니 정말 이상하다.”

이 숙제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과 도덕 관념을 드러낸다. 숙제 속에서 좋은 놈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한편 아홉 살 제하는 다르게 접근한다. 제하의 원고지에는 오직 두 명만이 등장하는데 그는 두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아빠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일단 맛있는 온소바를 해줘서 좋은 놈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했을 땐 버럭 화를 낸다. 그럴 땐 나쁜 놈이다. 그리고 아빠는 자기가 사실 이순신이라면서 장난을 친다. 이상한 놈이다. 좋고, 나쁘고, 이상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잘해준다. 예를 들면 휴대폰의 ‘Siri’처럼 나한테 설명을 잘해준다. 그럴 땐 좋은 놈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나쁜 놈이다. 왜냐하면 나한테 가끔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는 이상할 정도로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 점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다.”

제하는 형용사에 따라 여러 사람을 분류하는 대신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여러 형용사를 짚어낸다. 부모란 좋았다가도 나빴다가도 이상한 대상이라고 묘사하며, 내가 내준 글감을 창의적으로 버무린다. 제하의 글에서 아빠와 엄마는 앞면과 옆면과 뒷면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다. 제하는 아는 듯하다.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하거나 이상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걸. 다들 좋은 놈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을 자기 안에 데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변화무쌍하며 결코 고정적일 수 없는 그들을 설명하려면 ‘좋은, 나쁜, 이상한’보다 더 세세하고 정확한 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우리는 풍부한 사람을 위한 풍부한 언어를 찾아나간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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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상이론처럼, 이태원에서 시작된 감염으로 기다렸던 전국 초·중·고의 개학이 다시 연기되었다.

그동안 확진자의 동선 공개로 누구나 바이러스의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고, 동일한 정보가 동시에 공유된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같은 시스템 안에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했다. 이것이 시민들의 광범위한 신뢰와 협력으로 이어져 사회적 보건을 지키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신천지,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분리된 장기 입원 병동, 성소수자와 관련된 일부 클럽 등을 중심으로 전파되면서 그동안 종종 무관심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 사회의 외진 곳을 계속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어떤 측면에선 사회적 실천이나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나 거부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발본색원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식의 혐오와 공격이 이어지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욕구나 이단으로 불리는 종교집단, 성적 소수자 등은 어느 시대나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 사회의 일부로 공존하고 있다. 마치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도 취약함, 불합리함, 다양한 욕구들이 수시로 충돌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을 불온한 시선으로만 바라본다면, 나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우리가 일상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단절과 불화의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이와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일어난 상황에 대해 우리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상황 그 자체보다는 우리 각자가 보이는 반응들이 그다음에 일어날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지금 상황’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며 또 매 순간 ‘다음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테렌스 아파르가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바이러스는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들이 통로가 되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것이다. 또 사회적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정보를 취합하고 공유할 수도 있다. 정보가 공유될수록 개인의 사회적 책임도 높아지겠지만 동시에 개인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우리가 겪고 있는 ‘공동의 고통’을 통해, 우리의 분리된 마음들을 이어줄 수 있는 ‘공동의 마음’도 생겨날 수 있을까? 정보뿐만 아니라 서로의 ‘다름’도 공유되고 각자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의미들도 더 많이 공유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취약함이 손을 맞잡고, 서로를 돌보며 다 같이 풍성함을 누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꿈을 함께 꿀 수 있으면 좋겠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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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를 제외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결혼이다. 하지만 정작 부부가 된 후에는 많은 갈등을 겪는다. 서로에게 ‘이 인간아~’ 또는 ‘이 여편네야’처럼 상대를 낮잡아 이르는 말도 서슴없이 쓴다. 연애 시절 그 누구보다 사랑했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으며, 세상 무엇보다 귀한 아들딸들의 아버지요, 어머니인 사람에게는 절대 써서는 안 될 말이다.

또 일상생활에서 아내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남편을 가리켜 ‘우리 신랑’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신혼 때라면 괜찮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편의 직함을 붙여 ‘우리 부장’ 등으로 지칭해서도 안 된다.

남편이 친구에게 자기 아내를 가리키면서 흔히 쓰는 ‘(우리) 마누라’도 바른 지칭이 아니다. 하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안식구’와 ‘내자’는 오늘날 거의 쓰이지 않고, 앞으로 더욱 쓰이지 않을 말이기에 이 역시 적합하지 않다. 오늘날 젊은층에서 많이 쓰는 ‘와이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국립국어원은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부인’과 ‘어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므로 자신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는 쓸 수 없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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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거절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안 된다는 답을 들으니 속이 쓰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기다려봅니다. 청하고 거절당하고 기다리고……. 이것이 지난 몇년 동안 제가 인터뷰를 하며 반복해온 일상입니다. 

토요판팀에서 일하며 48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누군가를 만나 묻고 듣는 것이지만, ‘인터뷰’는 한 인물의 생각과 삶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취재와 조금 다른 노력과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누구를 만날까 정하는 일입니다. 토요판팀의 인터뷰는 적게는 한 면에서 많게는 두 면 반 분량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비중으로 소개할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저는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알려졌더라도 이번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을 찾는 편입니다.

누구를 만날까만큼 중요한 건 사실, ‘누구를 만날 수 있느냐’입니다. 이때부터 지난한 섭외 과정이 시작됩니다. 전화, e메일, 찾아가기,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기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봅니다.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인터뷰 요청 편지에 가장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거절의 분위기가 풍길 때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신발 한쪽을 들이미는 심정으로 “일단 한번 읽어봐주세요!”라며 붙잡습니다. 그러곤 절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이유를 적습니다. 

인터뷰가 확정되면, 그 사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자료가 많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더듬더듬 퍼즐 맞추기 같은 작업을 할 때도 있습니다. 질문지도 준비하지만, 준비해간 대로 진행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언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될지, 서로 어느만큼 마음의 문을 열게 될지 그건 오직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텐데, 내가 부족해서 이 정도밖에 못했구나 자책할 때도 많습니다. 

최근에 쓴 조경가 정영선씨의 인터뷰는 지난해 겨울부터 기다려 5개월 만에 진행했습니다. 서슬퍼런 개발공화국 속에서 꿋꿋이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얘기해온 그는 한국 조경의 길을 연 대가입니다. 80세에 호미와 삽을 들고 현장을 누비는 그는 신신당부했습니다. “제발 나를 미화시키지 말아요.” 사실, 인터뷰하며 제일 경계해야 하고 어려운 일이 그겁니다. 보통 멋진 분들은 멋진 일을 해놓고도 잘 드러내질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죠. 인터뷰 기사가 나온 날 아침,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대청소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그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인물의 생애사와 현대사를 잇는 인터뷰 작업은 어렵지만 매력적입니다. 잠시 그 인물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살아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지난주엔 두 명에게 인터뷰를 거절당했습니다. 네, 사실 이 글은 그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합니다. 그러니 한번만 다시 생각해봐주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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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비가 좀 뜸하긴 해도 경자년에 들어서 가뭄이 좀 심했다. 그 좋아하는 눈도 올해는 예년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덕분에 낙엽의 비명은 더 커지고 마른 먼지가 콧구멍으로 마구 들이닥쳤다. 뜻밖의 코로나19에 발목이 붙들려 문지방이나 지키다가 5월에 들면서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 기후가 달라지고 시절을 아는 고마운 비가 드문드문 내린다. 

빗소리를 인수분해하면 물과 소리이다. 물은 공중에서 떨어지고, 소리는 지상에서 나온다. 세상의 만물은 어찌할 수 없는 기쁨과 서러움을 아무도 몰래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가 보다. 하늘이 손을 길게 뻗어 툭툭툭 건드려주면 저렇게 화들짝 놀라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비 오는 보성의 대원사 계곡. 잠깐이 아니라 아예 작정을 하고 비와 함께 한나절을 섞여야 하는지라 우산 대신 우의를 걸쳤다. 비가 비닐에 부딪히자 조금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소리가 났다. 양철 지붕을 두드릴 때의 그 경쾌하던 소리는 내 머리통을 때릴 땐 그저 밋밋하고 둔탁할 뿐. 다만 아주 오래전, 선배의 자취집 냉장고 문짝의 메모지에서 본 이래 한 시절 동무해준 시 한 편을 호출해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산중에 내리는 비는 그래도 운이 좋다. 같은 먹구름에서 출발했더라도 저 멀리 바다에 바로 떨어지는 비도 있을 것이다. 이렇다 할 꽃은 거의 없는 풍경에서 비에 젖는 나뭇잎들이 눈을 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당단풍나무의 잎들. 봄잎에 가을의 단풍 들 듯 불그스름한 빛이 감돈다. 공구통에서 떨어져 팽그르르 도는 나사처럼 현란한 잎사귀들. 장마가 오고 태풍이 지나가도 맨 마지막에 오는 빗방울은 저렇게 따로따로 홀로 떨어진다. 숲에서 뛰쳐나왔다가 주춤거리는 어느 순한 짐승의 앞발 같은 당단풍나무의 잎. 그 끝에 눈물처럼 매달린 빗방울, 빗방울, 빗방울.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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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비스 이용시 필요한 공인인증서 로그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3~2014년 방영된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얘기할 때 ‘천송이 코트’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천송이(전지현)가 입고 나온 코트다. 종영 직후인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언급하며 유명해졌다. 중국 시청자들이 ‘천송이 코트’를 사려고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하는데 한국에서만 요구하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구매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공인인증서 폐지안을 곧바로 내놓았고 2015년 3월 관련 규정을 고쳐 인터넷 뱅킹·쇼핑 때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없앴다.

공인인증서는 온라인상에서 신원을 확인하거나 문서의 위·변조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전자서명을 생성하는 일종의 전자신분증이자 전자상거래용 인감증명서다. 국가에서 지정한 ‘공인’ 인증기관이 발급한다. 1999년 전자서명법이 시행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뱅킹·증권·보험, 전자입찰, 인터넷 결제·납부, 주택 청약 등 생활 전반으로 확산돼 있다.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민원 서류를 발급받거나 국세청 자료를 검색할 때도 필요하다. 긴급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도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국내 공인인증서 발급 건수는 4108만여건에 달한다. 쓰이는 곳이 많아지며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공인인증서는 도입 초기에는 전자상거래 활성화에 기여했으나 갈수록 불편과 번거로움의 대명사가 됐다.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본인 인증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 독점을 초래하고 전자서명 기술·서비스 발전을 저해한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인인증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정부는 2018년 9월 공인인증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전자서명 수단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년째 논의되던 이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20일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 21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린 공인인증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속 터지는 공인인증서가 떠난 자리에 지문인식·블록체인 등 간편하고 안전한 인증 방식이 대를 잇기를 기대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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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갈림길에 서있다. 세 가지가 겹쳐서 그렇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이했고, 사상 최고의 지지율 및 사상 최대의 슈퍼 여당과 함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집권 후반기를 열어나갈 것이다. 둘째, 21대 국회의 출범이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조차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위험할 정도의 거대 여당이 되었고, 야당은 지리멸렬이다. 셋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막이다. 코로나19는 게임체인저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금까지 통용되었던 성장, 무역, 안보, 복지, 정치, 인간관계, 정부운용 원리, 민주주의의 전망까지 모두 리셋이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오늘의 선택은 향후 수십 년, 한 시대를 결정할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게임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의 게임을 진취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과학 기반 복지국가’라 생각한다. 과학 기반 복지국가는 정부의 예산과 조직이 커지는 큰 정부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입각해 정부의 기능이 커지는 나라다. 복지수급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된다. 복지국가는 규모팽창을 최소화하면서 훨씬 효율적이고 유능해질 수 있다. 과학의 도움으로 복지국가는 스마트해질 수 있다.

제조업 기반 복지국가는 산업적으로는 제조업 팽창기의 산물이고, 역사적으로는 서구 역사의 산물이다. 산업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우리가 잘하기는 무척 어려운 종목이다. 그러나 제조업 기반 복지국가의 끝자리가 아니라 과학 기반 복지국가의 앞자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과학은 양궁이나 골프처럼 우리가 유난히 잘하는 종목이고, 코로나19는 그것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의료진을 비롯한 우리의 과학자들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압도하는 방역과 치료와 과학 기반 정책을 제공해주었다. 과학과 의료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인력확충, 생태계 조성과 전 국민 과학교육의 제고가 필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K방역, K외교처럼 앞에 K자를 붙이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한 시대를 규정할 수 있는 기회이다.

복지국가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투입된 재정이 회수되어야 한다. 제조업 기반 복지국가에서 그것은 주로 가족과 노동에 투자한 돈이 세금을 내는 경제활동인구를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어 세금을 내기까지 투자회수기간이 길게는 20년쯤 된다. 과학 기반 복지국가는 이보다 훨씬 짧은 회수기간을 만들 수 있다. 복지에 대한 투자가 곧 거대한 공공조달 시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혁신기업은 이 시장을 테스트베드로 삼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발판을 만들 수 있다. 복지지출이 곧 성장을 위한 투자가 된다. 우리의 낮은 출생률과 빠른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과학 기반 복지국가의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빅 브러더의 가능성이다. 우리는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전자감시사회의 방식이라 했지만 서구의 기준으로는 우리 방식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감시적 요소를 가진다. 과학 기반 복지국가에서도 빅 브러더가 등장할 수 없게 하는 안전장치(safeguard)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전망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삼권분립과 대의민주주의는 더 이상 금과옥조가 아닐지도 모른다. 몇몇 나라에서 이미 실험 중인 것처럼 정보와 권력을 철저히 분산하는 블록체인 민주주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안전장치를 찾아내지 못하면 이 길을 갈 수 없고, 그러면 다시 기회의 창은 닫힌다. 정치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정부조직도 달라져야 한다.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과학기술부총리의 3부총리 체제로 만들고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솥발과 같이 안정적으로 서야 한다. 3부총리 체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전례가 있고, 이제는 교육부 장관이 아니라 복지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맡는 것이 시대변화에 걸맞다. 기재부의 재정건전성 수호 기능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재정지출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정책을 통한 파급효과의 손익계산을 거쳐야 하고, 과기정통부는 이 모든 것의 동력이 되는 과학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담보해야 한다. 

슈퍼 여당과 지리멸렬 야당이라는 구도의 21대 국회는 리셋되어야 한다. 여당의 독주와 야당의 결사항전, 그리고 정치의 퇴행은 이 대전환기에 우리 모두의 발목을 잡는다. 21대 국회의 경쟁은 과학 기반 복지국가로의 전환에 필요한 법률적·제도적 대안을 누가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리는 시점이다. 과학 기반 복지국가로 나아가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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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후원금 회계 처리 의혹이 제기 되고 있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39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논란이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의혹제기에서 시작된 기부금 사용처 논란이 회계처리 부실에 할머니들의 쉼터 매입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은 2012년 현대중공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10억원을 지정기탁하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를 매입해 운영했다. 2013년 경기 안성시 금광면의 2층 주택을 7억5000만원에 매입했는데 주변 시세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고 한다. 정의연은 이 쉼터를 지난달 매입가보다 3억원 싼 4억2000만원에 매각했다. 비싸게 사서 헐값에 판 셈이다.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은 18일 “10억원으로 마포의 어느 곳에서도 집을 살 수 없어 안성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쉼터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싸게 매입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시급해 세밀하게 검토 못했던 점은 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의 이런 해명은 의혹을 풀기에 미흡해 보인다. 2013년 부동산 시세를 보면 10억원이면 마포 일대에서 얼마든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더구나 쉼터 거래를 중개한 이는 윤 당선인의 지인인 이규민 안성신문 대표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건물을 비싸게 팔아 차익을 거둔 사람은 이 당선인의 지인이다. 무엇보다 엄격한 투명성을 요구받는 시민단체가 돈이 오가는 거래를 이토록 안이하게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주먹구구식 운영’의 오류 차원을 넘어 고의성이 의심될 정도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한다. 의혹은 풀리지 않고, 윤 당선인의 해명은 궁색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세계적인 여성인권 운동으로 성장시킨 성과가 빛이 바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윤 당선인 등을 검찰에 고발했으니 시시비비는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검찰수사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정의연과 윤 당선인은 그 전에 한국공인회계사회를 통한 검증이 의혹을 털어낼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피하지 말아야 한다. 명심할 것은 ‘위안부운동’이 정의연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에 의해 쌓아온 공동의 성과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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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학벌없는사회’란 단체 운동을 시작할 때 ‘여기는 학벌 좋은 사람들이 모여 학벌 없애는 운동을 한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주로 그런 식으로 공격했다. 그들의 비판은 문제를 지적해서 운동을 성찰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운동주체를 훼손함으로서 운동의 대의를 훼손하려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반론했다. “이 운동을 학벌 없는 사람이 하면 ‘열등감 때문에’ 한다고 하고, 학벌 있는 사람이 하면 ‘계급적 여유가 있으니’ 하는 거라고 비난하면 이 운동은 대체 누가 해야 합니까?” 

하지만 그런 비판이 꼭 보수우파 쪽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회원 중에는 평생 학벌 때문에 받은 서러움이 사무쳐서 단체에 가입한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런 분들의 입으로 저 말을 들을 때, 어떻게 대답했어야 할까? 우리는 조선일보에 돌려주는 대답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맞는 말이지만, 옳은 응답은 아니었다. 물음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응답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데 저런 질문으로 공격을 당하다 보니 억울해서 늘 항변이 앞섰다. 말하려고 했던 게 조선일보와 같은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물음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논박당한 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 선생님이 던진 물음 앞에서 같은 고민을 한다. 우리는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군위안부운동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운동, 이 운동이 던진 물음에 실천적으로 응답하려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수 선생님은 30년을 그 운동의 역사를 직접 목격해온 산증인이다.

그런 사람이 말하고자 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의미는 해석되지 않고 진위만 파헤쳐진다. 운동도 30년을 지나오면 관성이 생기고, 권력도 생긴다. 헌신적으로 이끌어온 사람은 운동의 상징이 되고, 상징자본을 얻는다. 수요시위와 모금에 대한 비판은 운동의 관성에 대한 제동이 아니었을까?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다는 말도, 사업방향과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 가선 안 된다는 말은 운동의 사유화에 대한 경계가 아니었을까? 지난 총선 당시 일본군위안부운동은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후보 전략에서 반일투쟁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정대협 윤미향은 알아도 국회의원 윤미향은 모른다는 말은 그런 우려와 불신을 표현한다. 

어쩌면 이 모든 물음들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에 던져진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운동사회’라는 동질적 집단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키워간 우애가 관계자본이 되고, 정부 지원사업이나 프로젝트 수주에서 정보망과 지원망이 되기도 했다. 중간계급 시민의 과대대표성과 타협적 관성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협력관계는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점점 강화되었다. 밀착될수록 비판도 요구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선생님은 이 운동이 더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30년, 노동자 민중도 알게 된 것이 있다. 우파정권하에서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민주정권에서는 정권의 협력자가 되고, 똑같은 친재벌 반노동 정책을 계승해도 문재인 정부에는 침묵한다는 것. 예전에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김영삼이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 3분의 1이 떨어져 나갔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재야가 사라졌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다고. 이용수 선생님의 물음도 ‘남은 사람들’의 물음과 닿아있다. 이것은 운동의 주체와 방법과 방향을 멈춰 세워 성찰을 요청하는 소중한 물음이다. 운동 자체를 훼손하려는 우파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이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채효정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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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학생들의 등교수업을 이틀 앞둔 18일 서울 용산고 교실 책상들이 코로나19 예방수칙대로 간격을 넓혀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20일 고3 학생들을 시작으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등교수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등교는 코앞인데 일선 학교현장의 수업과 방역 준비는 턱없이 미흡하다.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청과 개별 학교 상황에 맞게 학생들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수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을 뿐이다. 보건교사조차 없는 곳이 부지기수다. 고3생 44만여명의 등교를 앞두고 방역의 최전방에 서게 된 개별 학교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18일 고3은 매일 등교하고, 고1·2학년생은 학년별 또는 학급별로 격주 등교, 중학교와 초등학교는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는 수업 운영방안을 내놨다. 교육부는 전날 지역·학교별 여건에 따라 격일·격주제 등교, 학년·요일별 등교 등의 여러 방안을 쏟아내고 자율적으로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 같은 권고는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전체 학생이 모두 등교하면 수업, 급식, 쉬는 시간에 물리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라는 주문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학생 수 30명이 넘는 과밀학급은 전체 학교의 9.8%에 이른다. 물에 들어가되 젖지 말라는 얘기와 한가지다. 

교사들에게 수업과 방역을 함께 맡으라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다. 이대로라면 교사들은 온·오프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하루 두 번 학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불필요한 이동을 금지시키고, 화장실 이용 인원을 제한하고,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계속 살피는 일 등을 모두 해야 한다. 이러다간 교사들이 과로로 먼저 쓰러지지 않겠는가. 교육부는 뒤늦게 보조인력 채용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방역에 필수적인 보건인력은 확보되지 않았다. 지난달 1일 기준 전체 학교의 약 15%에 보건교사가 따로 없다. 이러니 학부모들 사이 “꼭 등교를 해야 하느냐”는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개학 시기를 미뤄달라’는 내용에 23만명이 동의했다.

많은 학생들이 밀집돼 있는 학교는 집단감염 위험이 매우 높고, 지역사회 감염의 매개도 우려되는 곳이다. 지역별, 학교별로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교육당국은 학부모·교사·학생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일선 학교의 우려를 경청하고,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현장과의 신뢰가 방역 성공의 첫발이다. 등교개학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말이 나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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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당 쇄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혁신위는 2030세대 30% 이상, 여성 50% 이상 원칙에 따라 15명+α로 구성된다. 이들은 8월 말 당 대회 전까지 혁신안을 만들어 제출할 계획이다. 혁신안이 나오면 심상정 대표는 내년 7월 말까지인 임기를 단축해 조기에 물러나고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6석을 유지하는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거대양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란 ‘꼼수’ 때문이다. 그러나 패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정의당은 여당 ‘2중대’라 비판받았고,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진보정당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의당 싱크탱크 주최 토론회에서는 “새로운 의제와 담론으로 기성 정치를 깨우는 역할을 포기하고, 기득권 정당으로부터 지대를 할당받으려는 마름 정당이 됐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혁신위는 총선 이후 정의당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비판에 귀를 열고 근본적인 혁신안을 마련해야 한다. 거대양당보다 조금 나은 정당, 찍을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돌아보는 정당으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기성 정치를 대체할 대안세력으로 주목받는 젊고 매력적인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의 정체성부터 정책, 리더십까지 총체적인 성찰과 쇄신이 필요하다. 노동, 불평등, 기후변화, 젠더 이슈에서 시대에 부응하는 진보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한국 사회 개혁의 방향타를 잡아야 한다. 거대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알량한 이득을 취하려는 전략에서 벗어나 시민들 삶의 현장에서 진보적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 심상정 1인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리더십도 절실하다. ‘권영길·노회찬·심상정’의 시대를 이어갈 젊은 지도자를 발굴해 진보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진보정당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20년간 한국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무상급식, 아동수당, 기초 노령연금, 선거연령 18세 등은 진보정당이 선도해서 이뤄낸 성과들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당득표율 9.7%를 기록해 유권자 10명 중 1명은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정의당은 이제 과감한 혁신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회개혁을 주도하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정의당은 ‘2중대’ 오명을 벗고 ‘정의’를 되찾을 수 있다. 진보정치 계승을 넘어 확장으로 뻗어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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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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