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코 가쿠타니는 영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서평가로 꼽힌다. 1979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타임스에 서평을 썼고, 1998년엔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텔레비전 시리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는 도도한 주인공 캐리가 책을 낸 뒤 가쿠타니의 서평을 받고 기뻐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써온 가쿠타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은 단 두 권이다. 1989년에 낸 인터뷰집 <피아노 앞 시인>과 뉴욕타임스 퇴직 후인 2018년 낸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돌베개)다. <진실 따위는…>에서 가쿠타니는 전공인 서평이 아니라 정치·사회 비평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전 손태그의 글에 신랄한 비평을 가했던 가쿠타니는 이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시대를 타격 목표로 삼는다. 트럼프는 한 개인이지만, 그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사회 현상이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거나, 미국 경제가 사상 최고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소독제에 약하다고 하니, 확진자 몸에 소독제를 주입하면 어떻겠냐고 공개 석상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대체 이런 거짓말쟁이, 허풍선이, 무식쟁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책의 원제대로 왜 ‘진실의 죽음’(The Death of Truth)이 일어났나.

가쿠타니는 ‘정보 선택의 자유’를 그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개인과 매체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무슬림 종교 의식을 치렀다거나, 힐러리 클린턴이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너무 황당해 믿기 어려운 이런 주장들은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흐려진 틈을 타 스멀스멀 퍼졌다. 한국에선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민경욱 의원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우파논객 조갑제씨조차 부정하는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이 이런 사례다. 터무니없는 주장들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주류 언론들조차 ‘거짓 등가성’(false equivalence)의 함정에 빠져 이런 주장들을 다루곤 한다. 소수의 그릇된 견해에 어울리지 않게 큰 관심을 주는 것이다. 마치 과학시간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가짜뉴스는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작성하지 않는다. 음모론에 빠진 열정적인 시민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퍼뜨린다. 가쿠타니는 이를 ‘열정의 비대칭성’이라고 표현한다. 돌아보면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의혹을 두고도 양측의 열정적인 시민들이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여론전을 펼쳤다.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 제약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조 전 장관 일가가 특권을 누린 것도 사실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침묵했다.


진실과 거짓 구분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는 되지 말되 

무엇에도 확신하지 않는 

회의주의자 되기

‘탈진실 시대’의 세상은 

그런 저널리즘을 받아들일까


마음에 드는 뉴스를 골라주는 검색엔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묶어주는 소셜미디어는 시민들을 ‘편파적 저장탑’에 몰아넣었다. 평소 생각과는 다르지만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견해들은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기존 견해를 강화하는 정보만을 흡수한다. 그리고 기존 견해를 한층 강화한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씨가 이 책의 해제를 썼다. 첫 문장은 흥미롭게도 “나는 이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이다. 가쿠타니가 모더니스트의 자세로 세상 어딘가에 있는 진실을 추구한다면, 정희진씨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방법론으로 “언어의 의미는 진위가 아니라 경합의 과정에서 생성”된다고 말한다. 정희진씨는 ‘하나의 진실’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동반될 수 있는 피와 폭력을 우려한다.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고 폭로하기보다는 ‘트럼프의 목소리를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가쿠타니는 “어디서든 뉴스를 알리려 애쓰는 저널리스트들”에게 이 책을 바쳤다. 현재 한국 사회 속 언론의 위상을 생각하면 생각하기 어려운 헌사다. 남은 방법은 가쿠타니·정희진의 절충일 수밖에 없다. 진실에 근접하려 애쓰되, 복수의 진실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기.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는 되지 말되, 무엇에도 확신하지 않는 회의주의자가 되기. 세상은 그런 저널리즘을 받아들일까. 받아들이지 않아도 할 수 없다. 그런 세상도 세상이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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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많은 도시에서 자동차를 위한 공간의 상당 부분을 보행자를 위해 바꾸고 있다. 뉴욕의 타임스스퀘어가 보행자 광장으로, 자동차의 물결로 가득하던 파리의 강변도로가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뀐 것은 이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승용차들이 도심에 진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구역을 설정하거나, 차로를 줄여 보행공간과 자전거도로를 마련하는 것도 많은 도시에서 일상이 되고 있다. 그 현상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어 왔으나, 왜 그렇게 도시를 바꿔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족하다. 기존의 도시를 바꾸는 일은 힘들고 반대가 많은 일인데 그를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2월19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 장관급 회의에서는 2030년까지의 국제적인 정책목표를 설정하는 스톡홀름 선언이 발표됐다. 유엔의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SDG)를 달성하는 데 있어 도로, 토지이용, 가로설계, 교통체계 등이 통합적으로 개선돼야 하며,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적극 보호함으로써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도로교통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더 안전하고 에너지 효율적이면서 저렴한 교통수단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스톡홀름 선언이 보행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증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 새로운 에너지 정책, 효율적인 교통체계, 도시공간의 활성화, 삶의 질과 형평성 등 도시정책 전반에 걸친 의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20일로 ‘서울로7017’ 개장 3년이 됐다. 서울로 조성 과정이나, 공간 요소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 이전에 서울로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와 정책적인 함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동차의 소통만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을 보행자만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도 된다는 것을 전달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자동차는 도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보행자와 다른 이용자들을 위한 공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은 단순히 도시의 기능적 효율성 논의를 넘어 지속 가능성과 형평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서울로는 수직적으로 한정된 보행공간을 조성했지만, 주변의 길을 바꿨고 인접한 건물들도 변화했으며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유발하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체험을 통해 새로운 서울로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축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지적인 장소의 효과에 만족하며 서울로가 담을 수 있는 더 넓은 정책적 목표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서울로라는 허공 속에 높이 솟은 구조물은 근미래의 도시가 당면하게 될 의제들에 대응하는 새로운 도시정책의 방향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한계를 품고 있기도 하다. 서울로가 획득하게 된 정책적인 상징성을 여러 도시정책 부문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보행자, 자전거의 치열한 경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길과 장소에 대한 정책적 견해를 재고해야 한다. 길과 장소에 대한 논의는 기후위기나 인구 축소와 같은 새로운 도시문제 대응 방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울로에 대한 논의는 이제 서울로 이후의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오성훈 |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도시설계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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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병간호차 병원 5인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병실 생활은 심란한 일이지만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을 사람들과 한 공간을 써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연히 잠시 만난 사람들의 위로 공동체다.

식사 시간이 되자 한 간병인이 밥을 남길 것 같으면 미리 덜어서 달라고 부탁했고, 환자들은 매번 환자식을 미리 조금씩 덜어 그 간병인에게 모아주었다. 딱 보기에도 많아서 남기는 밥이 아니었다. 누군가 밥 굶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간병인들은 병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식당에 간다고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고, 병원 일반식을 매번 사 먹기는 힘들 것이다. 누군가 도시락을 매번 싸다 주기도 어렵다. 전국의 수많은 간병인이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돌봄노동은 중요하지만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고 그 일을 하는 것은 대개 중년 여성이다.

이 간병인이 돌보고 계신 할머니는 97세이신데, 당뇨합병증으로 다리 수술을 하셨고 치매를 앓고 계셨다. 수녀님이 찾아오셔서 할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속삭였다. 기도해 주고 가신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따님이셨다. 아픈 내색을 안 보이시던 할머니가 따님이 가고 나자 간병인에게 왼쪽 발의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하셨다. 당뇨합병증으로 절단 수술을 받은 발이었다. 이미 상실된 것은 치료할 수가 없다. 없는 발의 통증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도, 그걸 듣는 사람도 난처하다. 하지만 통증을 호소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인 것이다. 그 아픔을 같이 잠시 공유하고 위로를 드릴 수가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권장되는 공간인 병원의 존재가 문득 감사했다.

할머니는 또 환자복에는 없는 주머니도 계속 찾으셨다. 없는 주머니를 왜 찾으시냐고 여쭙자, 주머니에 묵주를 넣고 기도하러 성당에 가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97세 할머니의 기도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조차 안 가지만, 그 기도가 이뤄지시길 병실에 있는 모두가 속으로 대신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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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야스퍼스는 그 시대에 주목했다. 중국에서 공자·노자·묵자가, 인도에서 우파니샤드의 현자 야지나발키아와 붓다가, 페르시아에서 자라투스트라가, 팔레스타인에서 엘리야·예레미야·이사야가, 그리스에서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동시에 등장했던 그 독특한 시대 말이다. 그는 이 동시성의 특별함에 주목하여 ‘축의 시대’라 명명했다. ‘축의 시대’를 살았던 당시 사람들은 이 동시성을 알지 못했다. 중국과 페르시아는 서로 분리된 별도의 세계라 할 만큼 왕래가 없었다.

축의 시대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전 세계적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수십억의 사람이 지구적 동시성을 공포로 감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우리의 공포는 나의 문제만도,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문제만도, 내게 국적을 부여한 국민국가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류는 물론 전쟁에서도 대규모의 동시적 운명에 빠져본 적 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전쟁은 지역의 성격을 벗어나 지구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코로나19는 동시적 공포 감지라는 점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동시성의 시대를 열었다. 1873년 세계일주를 하는 데 80일이면 가능하다는,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쥘 베른은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담았다. 2020년 2월12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정식명칭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불과 약 한 달 후인 3월13일 WHO는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유행, 즉 팬데믹을 선언했다. 바이러스는 한 달 만에 세계일주를 해낸 것이다. 1873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을 읽었다.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미국 군인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은 전쟁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각자 무엇인가를 가지고 다니는 군인을 묘사한다. 군인들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것들 이외에 무엇인가를 별도로 가지고 다닌다.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은 의미 있는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그 무엇이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것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지미 크로스 중위는 한 소녀의 편지를, 노먼 보커는 일기장을, 기관총수 헨리 도빈스는 전투식량을, 위생병 랫 카일리는 만화책을, 카이오와는 신약성경과 사냥용 손도끼를, 겁이 많았던 테드 라벤더는 진정제를, 무전병 미첼 센더스는 콘돔을 가지고 다녔다. 오브라이언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짊어진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 행위에는 부담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내가 가지고 다녔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숙주 인간과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 바이러스는 외계 침략자도 아니고 적군도 아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바이러스는 우리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다. 단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속할 뿐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이후 우리가 흔히 관광이라고 부르는 공간 이동은 흔해졌다. 관광이라는 시각적 쾌락을 위해 우리는 이동하고, 필요한 물건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우리가 가지고 다닌 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다닌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증명했다.

우리가 가지고 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이동은 중단되었다. 이동이 중단된 지금, 여행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가지고 다녔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바이러스 말고도 또 무엇을 가지고 다녔던 것일까?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본다. 당신들이 여행지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나는 알아본다는 우쭐함, 국경을 넘을 때마다 국민국가 간 평균소득 차이에서 비롯된 물가의 차이를 통해 마치 부자가 된 듯한 착시적 우월감, 한국에서 비싼 물건을 현지에서 싸게 샀다는 다소 속물적인 쾌감,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내가 여행이라는 이동을 하며 가지고 다녔던 것들 중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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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실 등 의혹이 연일 불거지는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빗방울이 맺혀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에 따라 회계부실로 시작한 의혹이 안성 쉼터 고가 매입 및 헐값 매각, 아파트 매입 자금 논란 등 개인 비리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윤 당선인의 앞뒤 안 맞는 해명과 입장 번복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윤 당선인의 ‘위안부 운동’ 30년 헌신을 고려하면 이런 사태 자체가 안타깝다. 그렇다고 도덕적, 법적 잣대를 피할 수는 없다. 세계 여성인권 운동으로 확장된 위안부 운동의 위상과 대의에 걸맞게 엄정해야 한다. 특히 회계 투명성과 비리 의혹에는 진영이 없어야 한다. 현실 정치에 연동된 무차별 흠집내기도 문제지만 온정주의도 타당하지 않다. 철저히 검증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이와 별개로 이용수 할머니의 진의가 묻히는 것은 우려스럽다. 할머니가 요구한 것은 기왕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과 연대였다. 그러나 현실은 분열과 비난으로 치닫고 있다. 위안부 운동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비리 공방만 난무하는 이유다. 이런 틈을 타 이른바 ‘전직 고위외교당국자’들이 익명의 그늘에 숨어 ‘사전 인지설’과 ‘회유설’을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 외교부 인사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주장은 내용이 고약하고 악의적이다.

사전 인지설은 윤 당선인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합의 내용을 사전에 외교부로부터 전해들었으면서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외교부가 ‘사전 설명’한 것은 전체 합의에서 ‘소녀상 철거 노력’ ‘최종적·불가역한 해결’ 등 굴욕적인 3개항이 빠진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피해 할머니들과 협의가 불가능한 저녁 시간에, 그것도 시민사회가 반발할 게 분명한 핵심 조항을 숨긴 채 전하고는 마치 전체 내용을 알려준 것인 양 꾸민 것이다. 정부의 피해자 의견수렴을 중간에서 막았다고 덮어씌우는 이간책이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이를 1907년 들불처럼 타오르던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일제 탄압 방식에 연결했다. 의연금 수납처인 신문사 간부들을 의연금 유용혐의를 뒤집어씌워 체포함으로써 열기를 꺾은 수법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훼손하는 수법이다.

일본이 제공한 10억엔을 할머니들이 받지 말도록 회유했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정의연이 할머니들에게 수령 여부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피해 할머니들을 회유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거출금 수령을 거부하는 할머니들을 비밀리에 찾아가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그 책임으로 10억엔을 지원했다”며 돈을 받으라고 권유한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이 증인이다. 김 이사장은 할머니들의 고령을 거론하며 “살아계실 때 돈을 받고 사과받았다고 생각하시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굴욕적 합의를 해놓고 국민적 반발이 일자 명분 확보를 위해 할머니들을 공략한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시민사회는 물론 정작 박근혜 외교부조차 존중하지 않았다. 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고 선언, ‘조치의 착실한 이행’이란 합의 조건을 심각하게 위반했는데도 문제 삼지 않은 데서 확인된다. 합의를 무겁게 여겼다면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합의 무효를 선언했어야 했다. 아베 총리는 이후에도 사과한 게 아니라 ‘사과 표명’만 한 것으로 의심되는 행태를 이어갔다. 일본이 자행한 모욕과 무례는 놔둔 채 위안부 운동가들에게만 쌍심지를 켜는 외교부 당국자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다. 성찰은 위안부 활동가들의 몫만은 아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폐해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아예 해결할 길을 막아버린 데 있다. 형식논리이지만 ‘합의 했다’는 기록은 새로운 합의를 시작할 수조차 없게 만든다. 양국 간 갈등의 더께는 전보다 훨씬 두꺼워졌다. 이런 절벽 같은 현실을 극복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전직 외교당국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제 18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진실규명과는 별개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외침도 그것이다. 길은 첩첩산중인데 시간은 많지 않다.

<조호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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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글씨를 볼펜으로 쓰는 것도 선망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연필로 써야 좋은 글씨체를 갖출 수 있다며 볼펜을 못 쓰게 했지만, 어린이는 잘못 쓰는 일이 많으므로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써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한 것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이유가 사랑의 실패를 경험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잘못 써서 지워야 할 일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연필을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기곤 한다. 그럴수록 모르는 것, 잘못한 것이 있음을 인정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석사과정에 재학할 때 일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이 문제는 일단 궐해 두세”라고 하셨다. 미심쩍은 것은 제쳐둔다는 뜻의 ‘궐의(闕疑)’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학계의 권위 있는 원로로 추앙되던 선생님이셨기에, “모르는 것으로 인정하고 남겨두자”는 의외의 말씀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 보잘것없는 실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자세가 되었다.

‘궐의’는 묻지 말고 영영 덮어두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판단 내리는 행위를 우선 멈추고 계속 물음을 던지라는 뜻이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관점이 나뉘어서 합리적 의심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회의(懷疑)를 지속해야지 섣부르게 답을 정하려 들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판단 중지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포케(epoche)’가 방법으로서의 회의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것처럼, 공자(孔子)는 ‘궐의’의 전제로 ‘다문(多聞)’을 말했다. 끊임없는 질문과 광범위한 정보 수집을 병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궐의’를 말할 수 있다.

간편하게 접근 가능한 정보의 양이 넘쳐나면서, 자신 있는 판단의 말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그러나 같은 사안을 두고 매우 다른, 심지어 상반되는 의견들이 확신에 찬 언어로 난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더 추가할 질문은 없는지, 내가 가진 정보의 질과 양은 과연 충분한지 살펴볼 일이다. 모르는 것, 잘못한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멈춰 설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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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강남역 인근 삼성타운에는 다른 재벌그룹 사옥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발견된다. 바로 여러 이유로 장기농성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사안으로 일시적인 농성을 하는 일은 제법 있지만 이 같은 경우는 삼성을 빼고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해고노동자 김용희의 고공농성은 여러 보도를 통해 이미 유명해졌다. 그밖에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보암모)과 과천철거민대책위원회(과천철대위)도 있다. 김용희의 고공농성은 5월20일로 346일이 됐고, 2018년 초 첫 집회를 한 보암모는 암환자 6명이 삼성생명 2층에서 128일째 점거농성 중이다. 또 16년 전 결성된 과천철대위는 2009년 삼성물산 앞에서 시작한 농성만 쳐도 11년째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오랜 기간 끈질기게 싸우는 것일까? 심지어 병원에 있어야 할 암환자조차 말이다. 답은 이들의 고집과 인내보다 삼성에서 찾아야 한다.

과천철대위는 농성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갈 기회가 두 차례 있었다. 과천시 공무원을 매개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진 협상에서 삼성이 제시한 보상액을 철대위가 수용했다. 하지만 과천철대위에 따르면 그 뒤 삼성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가 2017년경 다시 나타났다. 이때는 과천시 공무원을 통해 의견을 전달했고 그나마도 협상 도중에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보암모의 경우 금융감독원의 지급 권고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중재기구를 통한 협상을 제안했다. 상품별로 계약 조건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일괄협상을 통해 지급액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보암모 환자들이 외치는 “약관대로 지급하라”는 구호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김용희의 경우는 지난 15일, 4월 말부터 진행된 삼성과의 협상 과정이 낱낱이 공개됐다. 삼성은 삼성의 안을 김용희 측이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문 작성을 일주일 뒤로 미뤘다. ‘조율할 내용이 더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25m 상공 0.5평의 쇠바구니 안에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보내는 사람에게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삼성이 이들에게 보인 것은 진정성 없는 태도와 무시다. 진정성 없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협상 제안, 위기를 넘긴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는 방식이었다. 기껏해야 한두 달, 또는 1~2년 싸우면 되겠지 했던 사람들이 인생을 온통 삼성과의 싸움에 쏟아붓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삼성타운 주변의 전선에서 가해자 삼성과 피해자들이 대치하고 있다면, 인근 서초법원에는 삼성을 둘러싼 또 다른 전선이 있다. 그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심판받게 하려는 검찰과 재판부 사이의 전선이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최순실과 박근혜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017년 기소됐다.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파기환송심의 양형 판단만 남아 있다.

그런데 서초법원의 전선에는 삼성타운과 달리 제3자인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있다. 문제는 준감위가 삼성의 돈으로 운영되는 사실상의 내부기구이자 위원장이 김지형 전 대법관이라는 데 있다. 삼성은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준법감시위를 출범시켰다. 과연 이 준법감시위가 독립적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해 내세운 것은 아닐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김지형 위원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의 대법원 주심판사로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의 길을 터준 전력이 있다. 준감위는 이 부회장의 지난 6일 대국민 사과에 대해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제시를 삼성 측에 권고했다.

최근 유명가수 두 명이 집단성폭행으로 2심에서 징역 5년과 2년6개월을 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줄어든 것은 반성 또는 피해자와의 합의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반성’에 해당하고 준감위가 요구한 ‘실천 방안’은 피해자와의 합의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재판부는 준감위에 판사의 재량인 작량감경의 권한을 위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준감위는 이 부회장의 진정성 없는 사과를 수용했듯이 삼성이 제시한 실천 방안을 ‘합의’로 간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성이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까지 무시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반성과 피해자 합의, 모두 준감위가 아닌 재판부가 판단해야 한다. 재판권은 사법부에 있지 피고의 대리인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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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최근 이태원 클럽 코로나 확산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진 ‘코로나 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내 생애 최초로 레즈비언과 게이 친구를 만난 것은 서른네 살이 되던 해인 2000년이었다. 6개국에서 모인 기자 18명이 1년간 미국 중부의 한 대학에서 연수를 하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성소수자에 대한 나의 이해는 책과 영화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레즈비언인 데비는 걸프전 종군기자, 백악관 출입기자, USA투데이의 워싱턴 지국장을 지낸 베테랑 정치부 기자였다. 가족 동반이 가능했던 프로그램에 데비는 자신의 반려인 신디와 함께 왔다. 신디는 IT 전문가였다. “우리 지난 5월에 오리건주 해변에서 결혼했어”라고 두 사람이 말했을 때, 나는 ‘결혼(marriage)’이라는 단어를 처음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헌’으로 판결한 것이 2015년이니, 두 사람은 한참 앞서 있었던 셈이다. 연수 프로그램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친구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두 딸을 낳았다. 얼마 전 데비는 페이스북에 큰아이의 열여덟 살 생일을 축하하는 커다란 풍선사진과 함께 “다 컸어. 이제 얘도 곧 유권자가 되겠네. 시간이 쏜살같아”라는 포스팅을 올렸다.

브라질에서 온 환경과학 전문기자 에두아르도가 어느 날 “나 게이야”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이제 여행 다니면 방을 같이 써도 되겠구나”라며 함께 웃었다. 그는 그때까지 고향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낯선 곳에 와서 비로소 자신을 터놓을 수 있게 된 에두아르도는 내게 조심스럽게 새로 시작한 연애 상담을 해왔다.

또 다른 게이 친구였던 C-스팬의 기자 덕은 열렬한 아이스하키 팬이자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말하는 걸 그냥 받아 적어서 옮기면 한 편의 해설기사가 될 거라고 다들 혀를 내두를 만큼 조리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달변가이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 동성의 배우자를 만나 지금은 워싱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제는 페이스북으로나 가끔 소식을 나누는 이 오래된 친구들을 요즘 자주 떠올린다. 내가 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생애 최초의 성소수자 친구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한 언론인들이었고, 삶의 크고 작은 기쁨을 가꿀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즐거웠고 충만했다. 이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나는 어떤 사람을 성 정체성으로 규정된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얼굴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의 역학조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신분노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거듭 강조되는 것을 보며 나는 언제쯤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될까를 생각했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IT 전문가, 기자, 의사나 교사, 예술가, 기업체의 직원, 법조인 등 그 어떤 모습으로든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일 수 있으며 각자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데 자기 몫을 다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 정체성 하나만 부각되어, 각자의 고유성은 다 지워진 채 획일적으로 인식될 존재가 아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분명히 실재하고 있음에도 덜 가시화되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수면 위로 떠올리고 있다. 내가 잘 알든 모르든, 나와는 다르지만 여기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은,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새롭게 맺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내게는 성소수자 제자들은 있지만, 한국인 성소수자 친구는 아직 없다. 어쩌면 내가 ‘있는’ 사람들을 ‘없다’고 여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오랜 친구들이 그렇듯이 한국의 성소수자들도 다채롭게 자기 몫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잘 알든 모르든 모두 여기, 있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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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사진 오른쪽)가 19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국회를 방문한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왼쪽 사진 왼쪽),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 사진 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0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노사정 대화엔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대표자가 참여한다. 양대 노총 모두가 참여하는 노사정 대화는 외환위기 후 20여년 만이다. 이번 대화는 민주노총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비상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의하고 한국노총이 화답하면서 이뤄졌다. 상설 기구인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하지 않은 임시 방편으로 대화가 이뤄진 것은 아쉽지만,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경사노위는 지난 3월6일 발표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선언했다. 이번 노사정 대화는 선언적 합의를 넘어 코로나19 위기의 해법을 찾는 대타협의 자리다. 일자리 위기는 코로나19 위기의 꼭대기에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두 달 동안 감소한 취업자 수는 102만명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10만명이 많았다. 노사 양측 모두 사회적 대화의 목표가 고용위기 해결에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해법에서는 견해가 갈린다. 노동계는 고용유지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내세우는 반면, 경영계는 정부의 법인세 인하와 규제개혁, 협력적 노사관계 정립 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좁히는가에 어렵게 마주한 노사정 대화의 성패가 달려있다. 

노사가 맞서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과 지원은 중요하다. 정 총리는 노사정 대화 시작을 알리면서 “이견이 있는 당면 현안과제들은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대안을 찾겠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의지를 밝혔다. 앞서 정부는 고용안전망 확대 방안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와 한국형 실업부조제 도입을 약속했다. 정부는 노사 양측에 일자리 유지와 기금 지원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며 중재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이 다소 어렵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나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총고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동계도 ‘전면 해고 금지’를 외치기보다는 일자리 유지 방안을 함께 찾아나서야 한다. 

노사정 대화에서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취약 노동계층에 대한 보호방안이 집중 논의돼야 한다. 특히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노동·프리랜서 등 특수고용직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지난주 국회 환노위에서 고용보험법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특고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일은 지극히 유감스럽다. 미증유의 위기에는 과거와 다른 책임감으로 대처해야 한다. 노사정 대표들은 서로 한발씩 양보하며 일자리를 지키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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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자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쓴 경향신문 기자의 급여 가압류를 신청했다. 지난 2월26일 경향신문에 실린 ‘KT&G 신약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 기사는 KT&G가 2016년 자회사(KLS)가 개발한 신약물질에서 독성성분이 확인돼 영진약품 관계자들이 반대했음에도 두 회사 합병을 밀어붙인 의혹을 제기했다. 이틀 뒤 KT&G는 경향신문과 편집국장·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2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고, 기자에겐 제세공과금을 제외한 급여 절반을 2억원에 이를 때까지 가압류 절차를 밟아달라고 해 받아냈다. 언론중재위 제소와 민사소송을 동시에 낸 것도 통상적이지 않고, 기자 급여를 가압류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언론 5단체는 18일 ‘새로운 유형의 재갈 물리기’라고 일제히 규탄했다. 기자협회는 “기자 개인의 생계를 어렵게 해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고 동료 기자들에게 심리적 위축을 주려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도 공동성명에서 “영업이익만 연 1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기자 밥줄이나 다름없는 월급을 가압류하려는 의도는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14차례의 경향신문 탐사보도가 금융감독원의 KT&G 감리에 영향을 끼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3~8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KT&G의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인수 과정에서 벌어진 회계분식 의혹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지난 3월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KT&G에 검찰 통보와 임원해임 권고 등 중징계 내용을 사전통지했다. 언론 5단체가 이 소송을 ‘돈으로 입을 막으려 한 명백한 언론탄압’으로 규정짓고 공동 대응한 이유이다. 

국가와 기업이 소송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슬랩(SLAPP) 퇴치법을 둔 나라가 많다. 슬랩은 공공의 참여를 막으려는 전략적 소송을 뜻한다. 미 대법원은 “머리에 총 겨누는 걸 제외하고 이 소송보다 표현의 자유에 더 위협이 되는 것은 없다”고 판결했다. “공공 이슈를 제기한 사람이 보복을 겪거나 목격하면 장래에 침묵을 선택하기 쉽다”고 본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1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다투며 ‘국가는 명예훼손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례가 나왔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언론을 상대로 소송의 날을 곧추세우고 있다. 사회 투명성은 언론 자유와 권력 비판이 보장될 때 높아진다. 국회는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KT&G는 소송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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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뿜고 있는 공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후변화 국제단체들이 잇따라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고 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환경책임경제연합·기후변화투자자그룹 등 6개 단체가 공동으로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0년 배출량 대비 20% 이하로 줄이는 것에 불과하므로 더 전향적인 목표 수립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2015년에 한국이 정해놓은 2030년 배출량 목표치 5억3600만t으로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로 한 파리협정을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독일 환경단체 클라이밋애널리틱스도 한국의 감축 목표가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하며 감축 목표를 2배 이상 강화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국제단체의 압박이 이어지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한국 대응이 미흡하다는 명백한 반증이다. 그린피스는 최근 문 대통령에게 그린뉴딜을 경기 부양책의 핵심 과제로 추진해달라는 서한을 전하면서 이에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 중인 부처들을 비판했다. 내연기관차·정유·항공 등 화석연료 의존형 업종을 기간산업으로 정한 산업부, 석탄화력발전 퇴출 계획을 늦춘 환경부 등을 거론했다.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은 기후위기 관련 조사에서 번번이 최하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가 전체 61개국 중 58위였다. 지난 17일 세계경제포럼(WEF)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지수’도 WEF가 정한 선진국 32개국 중 그리스에만 앞선 31위였다. 

5년 주기 이행점검을 규정한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올해 안에 이전보다 진전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장기 저탄소발전전략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국가별 감축 목표에는 지속적·점진적으로 강화하는 ‘진전 원칙’이 적용된다. 전보다 강화된 목표를 제출하는 게 원칙이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미온적인 데다 감축 목표마저 강화할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국제사회의 권고를 적극 수용해 2030년 목표를 높여야 한다. 만약 제자리걸음 목표치를 제출한다면 기후 악당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적으로 이끌겠다고 한 정부의 약속과도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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