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주변이 미성년자의 범죄를 다룬 드라마로 시끌벅적하다. 모범생 주인공이 이리저리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범죄 관련 작품들로 시끄러운 이유는 해당 작품이 n번방 사건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만들고, 나아가 해당 작품의 주인공이 자칫 n번방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그럴듯한 서사로서 변명을 만들어준다는 우려 때문이리라.

창작품에서 범죄자에게 서사를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는 창작자와 독자, 비평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논의되었다. 조너선 갓셜의 책 <스토리텔링 애니멀>에 나오는 일화다. 심리학자 마르쿠스 아펠이 2008년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하나 발표했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사람들이 정의를 믿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부조리한 탓에 드라마와 코미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와 뉴스를 즐겨 보는 사람들에 비해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는 비율이 높았다.

이것은 우리가 접하는 창작물에 ‘서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재나 배경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제는 작품의 서사에서 나온다. 인물과 사건이 갈등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편집되어 전달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대중문화가 아니다. 대중문화는 결국 대중의 인식과 요구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대중문화는 결국 범죄자에게 부여되는 서사들, 그리고 훈장처럼 주어지는 수식어가 만연한 현실을 뚜렷이 비추고 있을 뿐이다.

최근 신상공개가 줄줄이 이어지는 흉악범죄자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자. 흉악범죄자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고, 문예부장을 했으며, 모범생이었다는 수사가 넘쳐난다.    

그러한 수사는 왜 만들어지는가? 해당 수사는 범죄자의 일상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이만 한 범죄를 저질렀어. 놀랍지?’라고 소식 전달 과정에서 감정적 충격을 주어 청자로 하여금 감정적 동요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그러한 충격은 낯선 간극을 만들어낸다. 범죄자들이 ‘천재적’이거나 ‘악마’가 되고, 일상의 우리와는 마치 다른 종인 것처럼 여겨진다. ‘평범했다’ ‘모범생이었다’ 같은 수사는 범죄자를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범죄자를 개성화한다. 결국 수사는 범죄자를 ‘서사’라는 감옥으로 일상에서 배제한다.

창작품은 우리의 공포감을 가상의 적, 이미지너리 에너미(imaginary enemy)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바이러스와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좀비’라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앞서 상술한 실험처럼 해피엔딩은 오히려 정의의 승리를 보여준다. 최근 유행하는 히어로물의 영웅들이 끝끝내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하지만 일상은 그렇게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지 않고, 프롤로그와 엔딩도 명확하지 않다. 피해자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며 범죄자들에 대한 처단 역시 단시간에 깔끔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죗값은 명사의 형태가 아니라 동사의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둘의 범죄자를 단죄한다고 해서 그 범죄가 일어나는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이 세상에서 똑같은 범죄는 언제나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수식어를 통한 범죄자의 배제작업은 기사를 보는 사람들에게 거짓 안도감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일상은 어떠한가. 범죄는 아직 만연하고 범죄자는 우리 근처에 있다. ‘악마 같은, 천재적인, 모범생이었던, 가난한 삶을 살았던,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이렇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부여되었던 수식어들을 들어내면 범죄자가 남는다. 그 깔끔함이 우리가 현실의 사건과 사람을 더 올바르게 바라보게 만들고 ‘그다음’으로 넘어갈 힘을 만든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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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늦잠에서 눈을 떠 일어나 커튼을 젖힌다. 눈부신 햇살이 틈새로 쏟아져 들어오면,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작은 먼지들의 경이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헤엄치듯 부유하며 햇빛에 반짝이는 먼지들의 멋진 운동을 넋 놓고 바라본다. 빛이 만들어낸 길의 밖으로 나간 먼지 입자는 감쪽같이 사라져 보이지 않고, 거꾸로 밖에서 들어온 입자는 이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있던 먼지가 갑자기 소멸한 것도, 없던 먼지가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다. 틈새와 균열을 통해 들어온 빛은 있지만 몰랐던 작은 존재들을 비춘다. 

구름 잔뜩 낀 날 비가 그치면,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름 사이의 틈을 뚫고 땅을 비추는 햇빛의 기둥이 갑자기 등장할 때가 있다. 산꼭대기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본 이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척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힘든 지상에서 고개를 들면, 때 묻지 않은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보인다. 많은 종교에서, 죽으면 간다는 장소인 천당의 지정학적 위치로 ‘하늘’을 지목한 이유다. 비가 그쳐 맑아진 대기를 뚫고 저 멀리 보이는 햇빛의 기둥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현실의 세상과 사후의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처럼 말이다. 여러 종교화에 표현된 승천의 이미지, 빛의 기둥을 따라 외계인의 우주선이 위로 올라가는 SF영화의 장면도, 비슷한 광경을 묘사한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빛은 직진해 경로 중간에 놓인 입자들을 만난다. 입자마다 모양도 방향도 제각각이니, 입자에 부딪힌 빛은 사방팔방으로 난반사한다. 온갖 방향의 반사광 중, 어쩌다 우리 눈의 방향을 향한 빛의 일부가 눈 속 망막에 도달한다. 그러고는 시각을 담당하는 세포에 전기신호를 만들고, 그 신호가 뇌에 전달되어 모이면, 우리 뇌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늘 일어나는 과정이다. 창틈으로 들어온 빛의 경로가 경로 옆에 비켜선 우리 눈에 보이려면, 빛을 난반사하는 입자들이 있어야 한다. 구름 사이를 뚫고 진행하는 빛의 기둥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 위, 흰 구름 떠다니는 하늘도, 우리가 사는 지상의 세상처럼 햇빛을 난반사하는 온갖 것들이 있는 불완전한 세상이다. 구름 사이를 뚫고 땅으로 내려오는 햇빛의 광선은 티 없이 완전한 하늘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저 위 하늘과 우리 사는 땅 사이에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있지만 보지 못했던 온갖 티끌의 존재를 알려준다.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함들의 전투 장면이 담긴 SF영화들이 있다. 전함이 파괴되어 폭발할 때, 효과음을 들려주는 것은 과학적인 오류다. 우주 공간에는 공기가 없으니 소리가 전달될 수 없다. 효과음뿐 아니라, 광선무기가 발사되어 적을 공격하는 영화 장면도 오류다. 진공인 우주 공간에는 빛을 난반사할 입자가 없으니, 빛의 경로에서 벗어난 관찰자는 레이저 광선을 볼 수 없다. 과학적 오류가 없는 영화라면 우주 전함에서 발사한 레이저 무기의 광선을 관객은 볼 수 없다. 두 전함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챌 수 없는데 갑자기 한 전함이 소리 없이 폭발하거나 파괴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무리 치열한 전투도 좀 싱겁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오류인지는 잘 알지만, ‘콰쾅’ 효과음과 함께 멋진 레이저 광선을 ‘숑숑’ 교환하는 영화 속 전투 장면을 필자는 더 좋아한다.

물리학의 발전 역사 곳곳에 ‘틈새’가 등장한다. 가는 틈새로 입사한 빛을 프리즘으로 굴절시켜 색색의 무지개 빛깔로 분해한 뉴턴의 광학실험도 유명하다. 색이 없는 햇빛이 다양한 색을 가진 여러 빛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명확히 보인 실험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나의 인생 책이다. 동명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한다. 작은 틈으로 들어온 햇빛을 프리즘으로 굴절시켜 분해해 커다란 방 어두운 방바닥에 넓게 펼친 장면이다. 길게 바닥에 펼쳐진 빛의 스펙트럼에서 방바닥 중간의 일부에서만 무지개 색깔이 보인다. 이렇게 좁은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난 곳에도 분명히 도달하는 전자기파가 있는데 우리는 전혀 보지 못한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빛이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이전의 세상에 비해 과연 달라질지, 달라진다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달라질지, 어느 누구도 아직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우리 사회의 균열과 틈새는 이전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모든 면에서 본받아야 할 것으로만 보였던 서구 선진국의 맨얼굴에 실망하기도 했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많이 지치고 여전히 힘들지만, 매일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일상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의 우렁찬 함성, 콘서트홀에서 직접 듣는 생생한 음악이 그립다. 친한 친구 여럿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나누던 왁자지껄한 대화, 동네 헬스클럽에서 땀 흘린 뒤의 샤워도 생각난다. 샤워하려고 운동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일상의 경험이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생생한 질문도, 수업 중 몰래 휴대폰으로 딴짓하던 모습도, 수업이 재미없는지 강의실을 살짝 빠져나가던 학생과 눈이 마주쳤을 때의 입가의 어색한 미소도, 무척이나 그리운 일상이다. 틈새로 들어온 빛은, 있는데 잊었던 작은 것들을 비춘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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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도 ‘음모론’이 있다. 1997년 8월14일, 볼티모어 ‘고의 정전설’이다. 시애틀과의 야간 경기가 조명 문제로 취소됐는데, 멀쩡한 조명을 일부러 고장냈다는 게 음모론의 주장이다. 볼티모어를 대표하는 칼 립켄 주니어의 별명은 ‘철인(Iron man)’이다. 메이저리그 최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2632경기)을 세웠다. 만약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이 깨지면 티켓 판매량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조명을 고장냈다는 것이다.

칼 립켄 주니어는 배우 케빈 코스트너와 절친으로 유명했다. 1997년 코스트너는 영화 <포스트맨> 촬영이 끝나고 쉬는 동안 칼 립켄 주니어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그리고 운명의 8월14일, 칼 립켄 주니어가 야구장으로 출근했다가 뭔가를 깜빡 잊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코스트너가 칼 립켄 주니어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게 음모론의 내용이다. 칼 립켄 주니어가 코스트너를 두들겨 팼고, 그 바람에 야구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연속 경기 출전 기록 유지를 위해 구단은 조명을 고장냈다는 내용. 코스트너가 하도 세게 두들겨 맞아서 이후 3주 동안 공개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근거가 더해진다.

모든 음모론은 ‘서사’를 동반한다. ‘모범생’ 칼 립켄과, ‘바람둥이’ 코스트너의 이미지가 어우러진다. 연속 기록과, 조명의 고장 사이에는 ‘입장 수입’이라는 퍼즐이 끼어든다. 칼 립켄 주니어가 이후 20여년 동안 줄곧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음모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코스트너라면 그러고도 남아.” 

‘공인구 음모론’도 오랜 역사를 지녔다. 1990년대 중반 홈런 수가 증가하자 ‘메이저리그가 흥행을 위해 공인구를 더 잘 날아가게 만들었다’는 게 골자다. 2000년에는 짐 셔우드 교수가 롤링스 공장 시설을 조사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2018년에는 일리노이대 물리학 명예교수 앨런 네이선 위원장을 중심으로 과학자 10명의 조사위원회를 꾸려 1년 가까이 분석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공에 대한 물리적 변화도, 제조 공정의 차이도 없지만 공이 멀리 날아가고 있고, 이유는 알 수 없다’는 게 석학들의 연구 결과다. 공기 저항 등을 연구하는 유체역학은 물리학에서 여전히 난제인 영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홈런 숫자와 관중 숫자는 관계가 없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홈런이 늘었지만, 관중도 시청률도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은 여전하다. 심지어 한 투수는 “내 생각에 주말에 쓰는 공이 달라지는 것 같다. 관중 많을 때 홈런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반발계수와 모양을 바꾸지 않은 채 공의 비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면, 노벨 물리학상이 가까워지지 않을까.

재미로 즐길 때까지는 물론 괜찮다. 코스트너는 바람둥이고, 칼 립켄 주니어가 두들겨 팼고, 실제 조명을 고장냈고, 홈런 숫자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까지는 즐길거리이자, 오락의 단계다. 

하지만 정신 승리를 위한 ‘닥치고 음모론’은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아니면 말고’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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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TJB 대전방송 오후 8시 뉴스 스튜디오. 키가 1m55쯤인 로봇 ‘휴보(HUBO)’가 앵커로 나왔다.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국내 첫 인간형 로봇이다. 출연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기분이 짱입니다”라고 답한 휴보는 리포트 2개를 단독 진행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요즘 저 같은 로봇들이 대활약하고 있습니다. 감염 걱정이 없기 때문인데, 맛있는 커피를 타기도 하고, 음식을 서빙하고, 수술까지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체했던 분야부터 감성적인 영역까지 우리 로봇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기자가 보도합니다.” 

휴보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언택트) 사회로 변화한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바리스타 로봇, 서빙 로봇 등을 소개했다. 로봇의 도전과 활약상을 로봇이 전한 이 장면은 코로나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코로나19는 ‘생활 로봇’ 시대를 열었다. 비대면 일상문화뿐 아니라 코로나가 빚은 일손 부족도 변수로 작용했다. 호텔·음식점의 서빙·배달 로봇부터 진료 현장의 방역·간호 로봇, 산업 부문의 작업·업무 로봇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배달 로봇이 주목받는다. 애리조나주의 한 피자 프랜차이즈는 지난달 초 자율주행 배달 로봇 11대를 도입했다. 매장 내 식사가 전면 중단되고 배달 수요가 급증했는데 배달원 구하기도 꽉 막혀서다. 국내에서는 호텔 룸서비스 로봇과 식당 서빙 로봇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3일 자율주행 배달 로봇과 공원 순찰 로봇의 운행을 허가했다.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돼 인도나 횡단보도를 다닐 수 없고, 공원녹지법상 30㎏ 이상 동력장치에 해당해 공원 출입이 불가능했던 규제를 푼 것이다.

코로나19 진료 현장의 로봇은 중국에서 먼저 쓰였다. 의료진 감염이 많았던 초기 일부 병원에서 간호 보조 로봇을 격리병동에 배치해 간단한 소독과 배식 일을 맡겼다. 검체 채취 로봇도 개발됐다. 미국에선 선별진료소 대기자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화상 문진을 하는 로봇 개 ‘스팟’을 선보였다. 병원과 다중이용시설에서 소독제를 뿌리는 방역 로봇도 국내외에서 두루 쓰인다. 농업 로봇 ‘타이탄’은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멕시코 노동자를 대신해 잡초를 뽑고 수확도 한다. 국내 한 택배사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상자를 옮기는 상하차 작업도 로봇이 대신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새 로봇이 인간 곁에 바짝 다가오면서 로봇과 인간의 일자리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시대 로봇은 존재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사람이 없는 곳, 위험해서 못 가는 곳에서도 사람이 할 일을 사람만큼 또는 사람보다 낫게 감당하고 있어서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현장에서 로봇이 유효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소외가 심화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로봇에도 밀려 되돌아갈 길조차 막힌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 연구의 석학인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제시한 코로나시대 4개 계급 중에서 ‘원격근무 가능 노동자’를 제외한 ‘필수 현장 노동자’, ‘해고·휴직 노동자’, ‘잊혀진 노동자’들은 로봇과도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대량실업 이상의 위기가 예상된다. 낙관론도 있다. 로봇 등 신기술 발전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정서적인 영역에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식의 장밋빛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시대를 겪은 정부와 기업들이 효율을 앞세워 로봇·인공지능 등 신기술과 비대면 노동·산업 부문에 투자를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람의 미래를 도외시한 채 기술 발전만 앞세우면 심각한 사회 불균형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자각해야 한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로보타’(robota)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작업장에서 사람만큼이나 그 이상 일은 하지만 생각이나 감정은 없는, 즉 ‘사람 닮은 기계’를 칭했다. 요즘의 로봇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겉모습에 상관없이 점점 더 사람 같은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코로나는 로봇시대를 앞당겼다. 이제는 로봇을 사람 일을 대신하는 기계로만 여겨선 안 된다. 지금의 로봇시대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이 주도하는 세상의 종말을 고심해야 할 때다. 이것이 코로나가 시간을 앞당겨 우리에게 던진 숙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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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묵힌 산밭을 갈아엎고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심자 곧바로 하늘에서 단비 대령. 하느님과 합작 농사.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이웃들 농사는 대기업(?) 수준이랄까. 흉내는 물론이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고난도 기술 보유자들, 게다가 넓은 경작지. 여기서 나만의 틈새 농법은, 하늘에 매달리는 기도뿐이다. 월마트 건물 한쪽에 구멍가게를 낸 사람이 하도 장사가 안되자 현수막을 하나 달았는데 그날로 대박이 났단다. “출입구. 이쪽입니다.” 인생마다 ‘출입구’라고 현수막을 매달면 복이 요쪽으로 쏠쏠 들어올까. 하늘이 도와주면 조무래기라도 킹왕짱 인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이렷다. 

요샌 “포도시 밥 묵고 살아라우” 말하는 분들이 많다. 포도시란 간신히, 쥐오줌만 한 물로 모내기를 하듯 팍팍한 살림살이. 어렵다고 들어앉아서 염불만 외면 더 어려워진다고 스님이 그러시더구먼. 탁발을 해야 쌀이 생기냐 했더니 그 정도로 어려우면 매력이 일도 없는 스님이니만큼 환속해야지, 말끝에 우린 웃었다. ‘포도시’라도 살길은 열리게 되어 있지. 언젠가 할머니 한 분이 기도를 해달라고 해서 “무슨 기도요?” 했더니 병원에 가봐싸도 당최 무르팍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킹왕짱 가마 타고 다니실 분인데, 늦게 태어나서 고생하신다고 그랬더니 흐흐 부끄럽게 웃으신다. 같은 말도 기분을 뭣같이 만드는 수가 있다. 가령 ‘인자 죽을 때가 안 되얏소?’라든가, ‘그라코롬 아프다가 죽는 거시재라이’라든가, ‘딸네들 뒀다가 뭐할라고 그라시요. 얼른 와보라 하쇼’라든가. 소가지 없는 소리로 염장을 지르는 치들이 있다. 

포도시 살지만, 기분 좋은 날은 킹왕짱이 된다. 역병으로 마스크 쓰고 살지만 미소는 잃지 말자. 찡그리고 기분 나쁜 날이 많으면 저만 손해지. 그걸 밖으로 꺼내 주변까지 울상을 오염시킨다. 낮엔 출입구처럼 입 벌리고 해시시 웃으며 살고, 밤엔 입 벌리고 웃고 자야 공기도 더 들이마실 수 있다. 당신 날마다 기분 좋기를. 그분이 좋고 이분도 좋고, 아! 그러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은 날.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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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20일 청와대 사랑채 스튜디오에서 민식이법 개정과 관련한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여년 전 인터넷도 포털도 없을 때다. “거기 신문사죠?” 편집국엔 밤마다 온갖 전화가 걸려 왔다. 주로 사회부·편집부 야근자가 받았다. 대통령 나이부터 도개걸윷모가 어떤 동물인지 묻고, 미 대선에서 공화당·민주당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이겼는지 즉답하기 힘든 질문도 있었다. 깔깔 소리가 들리면 십중팔구 술자리 내기였다. 편집국엔 “사람 싸운다” “불났다”는 전화가 왔고, 하소연·제보나 격정 토로도 이어졌다. 신문사는 모든 걸 알고, 어떤 얘기도 듣고 대처해주는 곳으로 아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방송사도 물론이다. 지금은 제보를 빼면, 신고는 112·119로, 지식은 포털 검색창으로, 하소연이나 격정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옮겨졌다. 억울하고 놀랍고 화난 세상 얘기는 이제 국민청원에 모이고 말을 낳고 기사로도 만들어지는 세상이 됐다. 

그 국민청원에서 53만명이나 동의하며 공분한 글이 거짓으로 판명됐다. 지난 3월 ‘평택에 사는 두 딸아이 엄마’가 25개월 딸이 이웃의 초등 5학년생에게 성폭행당했다고 낸 청원이었다. 쇼킹한 글은 30대 초반인 필자의 가정 설정과 거주지만 사실이고, 이웃집 소년이나 성폭행, 병원진단은 다 가공된 얘기였다. 경범죄보다 중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5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로 입건됐다. 게시판엔 “소름 끼친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젠 증거 있는 것만 동의하겠다” “엄벌해달라”는 네 갈래 댓글이 이어진다. 왜 그랬을까. 사건이 커지자 경찰에 ‘허위’라고 말한 그는 아직도 거짓 글을 쓴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17년 8월19일 시작된 국민청원엔 하루 700개 안팎의 글이 오른다. 20만명 이상 동의해 공식 답변이 나온 163개 청원 중에 동의자 숫자 1위는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요구’ 글(271만건)이다. 평택 30대 엄마의 거짓 글은 15위였다. 지난해에도 ‘동거남’과 ‘동생 때린 또래 청소년들’을 처벌해달라는 가짜 청원이 있었지만, 파장은 53만명이 속은 이번 글만 못했다. 국민청원의 버팀목이자 순기능은 직접민주주의 보완과 소통이다. 반대로 자정할 것은 선 넘은 인신공격과 명예훼손, 장난 글이다. 평택 아이 엄마의 거짓 글은 청원이 모두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경각심을 하나 더했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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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으로 등교가 5차례 연기되며 80일 만에 등교 수업이 시작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의 한 담임선생님이 등교하는 학생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전국의 고3 학생 44만여명이 새학기 시작 80일 만인 20일 등교했다. 이 정도면 방역당국의 통제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등교 첫날 삼성서울병원과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 증가로 최근 10명 안팎이던 코로나 새 확진자가 근 열흘 만에 30명대로 올라섰다. 인천과 경기 안성시의 75개 고교에서는 학생들의 확진자 접촉 가능성 때문에 등교 중지 또는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 다른 지역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결석했고, 의심 증상으로 등교 직후 귀가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등교였다. 

등교 첫날 풍경에서 보듯 당분간 혼란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교육당국과 학교는 이날 상황을 참고해 향후 현장의 불안감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선 비상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보고와 협의, 결정의 컨트롤타워를 확실히 하고 교내 방역 기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날도 사전 배포된 매뉴얼에 따르면 확진자가 발생한 학교만 폐쇄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인근 지역 학교 전체를 한꺼번에 폐쇄했다. 앞으로 이보다 더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 분명한 만큼 방역·교육 당국은 현장의 물음에 즉각 답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향후 저학년들까지 다 등교하면 활동성이 강한 이들이 제대로 방역수칙을 지킬지, 또 물리적 거리 두기가 가능할지 등을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의 가장 큰 특징인 무증상 감염에 대해서도 특별히 유의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등교를 재개한 학교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지 못하면 지역사회로 번지기 쉽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가 200명에 육박한 상황에서 20일 3차, 4차 감염자가 각각 25명과 3명으로 늘었다. 경로를 모르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고3 학생의 등교를 결정한 것은 더 이상 학사일정을 미루면 입시 등을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과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이다. 프랑스는 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를 학교 내신 평가로 대체했다. 이외 여러 나라가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입시 기준을 변경했다. 교육당국과 학교는 방역과 수업에 최선을 다하되 상황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하면서 좀 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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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2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상고심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가 팩시밀리 한 장짜리 문서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조치가 적법했는지를 놓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본격적으로 따진 것이다. 사실 전교조 재합법화는 정부가 직권으로 법외노조 조치를 취소하면 해소될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전교조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집권 3년이 지나도록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대법원이 최종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늦게나마 대법원이 정의를 세울 기회가 왔다.

공개변론의 쟁점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노동조합법 2조4항을 둘러싼 해석이다.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는 이 조항을 근거로 2013년 10월 당시 6만명 조합원에 해직교사 9명이 포함된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정부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정부 조치는 법률과 시행령이 정한 재량권 내에서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조치의 근거는 시행령에만 있고, 법률에는 없다. 노동조합법에 정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통고 절차 등이 없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된다. 이런 식의 조치가 허용되면 산업별노조나 지역노조 상당수가 법외노조로 전락할 수 있다. 이들 노조는 조합원이 수만~100만명에 달하는데 개별 기업 등에서 해고 등을 당해도 조합원 지위를 곧바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이런 일을 빌미로 노조를 불법화한다면 노조 활동은 상당히 침해될 수밖에 없다.

전교조 불법화 조치는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 등을 제한하는 명백한 국가폭력이다.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내외 노동단체가 한결같은 목소리로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이기택 대법관은 “정부 스스로 법 개정 노력을 하고 있다면 정부가 먼저 법외노조 효력을 없앨 용의는 없는가”라고 묻기까지 했다. 

공개변론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보통 3~6개월 정도 추가심리를 한 뒤 선고한다. 국가폭력을 바로잡을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한다. 아울러 전교조를 불법화한 독소조항 자체도 삭제되어야 한다. 이런 조항을 유지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잘못된 법 조항 개정에 즉시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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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0일 제20대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계류 중인 민생법안 등을 처리한 뒤 막을 내렸다. 회의에서는 여야가 합의한 코로나19 관련 법안, n번방 방지법 등 133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도 처리돼 형제복지원 사건 등 권위주의 정권 시절 빚어진 인권유린 사건들의 진실이 규명될 길이 열렸다. 현재 국회의원 290명 가운데 4·15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은 169명(58.2%)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들이 마지막까지 입법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 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4년 내내 허송세월하다 막판 벼락공부하듯 1분에 1건꼴로 일사천리로 법안을 처리한 걸 두고 ‘유종의 미’란 표현을 쓰기도 민망한 게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20대 국회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회도 드물다. 극한대결이 빚어낸 ‘동물국회’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식물국회’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경우가 많았다.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2만4000여건 중 처리된 법안은 8900건에 불과했다. 법안 처리율은 36.6%다. 그동안 역대 최저로 꼽혔던 19대 국회 법안처리율(41.7%)에도 못 미친 참담한 수준이다. 그중에는 졸속·과잉입법으로 신중히 심사할 법안도 있겠지만, 여야 이견 없는 시급한 민생법안이 수두룩하다. 국회가 법률을 만드는 공장이라 한다면 이런 기업은 열번도 넘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역대 최악의 국회’란 오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자동폐기돼 21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국회가 왜 필요한지, 놀고 먹는 국회의원들에 꼬박꼬박 세비를 줘야 하는지 시민들이 의문을 표시하는 건 당연하다. 제 할 일 못하는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이르렀다. 

21대 국회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반면교사 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여야 모두 새 국회의 첫 과제로 ‘일하는 국회’를 꼽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20대 국회도, 그전 국회도 출범하면서 ‘일하는 국회’ 슬로건을 내걸지 않은 적이 없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러자면 매월 임시회 소집 의무화, 자동 상임위 소집 등 의사일정과 개회 일시를 국회법에 명문화하는 게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최다선(6선)인 박병석 의원이 21대 국회 첫 국회의장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그는 총선 당선 직후 “21대 목표는 싸우지 않고 일하는 국회,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국회개혁이 목표”라고 했다. 시민들이 국회에 바라는 바도 다르지 않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면 협치와 대화, 타협은 자연히 뒤따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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