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툰작가 기안84의 사회적 약자·소수자 혐오 표현 논란에서 중요하게 부상한 맥락은 동료 창작자들의 발언일 것이다.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가 네이버 웹툰 연재 중지와 소수자 보호 규정 의무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에 대해 “투쟁해서 쟁취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거꾸로 돌리는” “가장 잔인하고 나쁜 검열”(원수연)이라거나, 최근의 분위기로 인해 “서로 검열하는 시민 독재는 더 심해질 것”이며 “창작자들의 의욕이 꺾이는 것 같다”(주호민)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혐오 표현에 대한 대중의 거부가 창작에 대한 검열과 곧장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사태의 핵심을 흐린다. 과거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과 오늘날 예술의 질적 수준에 대한 논의를 등치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대 ‘정치적 ..

지금 유럽은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전쟁 중에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바로 음모론과의 싸움이다. 유럽연합은 웹사이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가짜 정보와의 싸움이라는 페이지를 설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을 어떻게 구별하며 온라인 매체에 떠다니는 각종 음모설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은 반드시 그 배후의 비밀스러운 힘으로 조직된다고 믿는 음모론은 우선 세계를 선과 악의 세계로 가려서 본다. 이어서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악의 화신으로 지목하고 이를 집중 공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중국이 우한에 있는 한 실험실에서 의도적으로 배양해 세계에 퍼뜨렸다거나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통해..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다시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로는 올해 1~8월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6% 증가했다. 단속 기준을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일명 윤창호법)이 지난해 6월 적용됐지만 반짝 효과에 그치는 분위기다. 법규를 강화하거나 단속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음주운전을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음주운전은 재범률이 높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음주운전 재범률이 지난해 43.7%에서 올 상반기 46.4%로 올랐다. 지난해 마약범죄 재범률(35.6%)보다도 높은 것이다. “음주운전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이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IID)’이다. 술을 마신 경우에는 차에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대다..

나는 거창 출신이다. 빨갛게 익은 거창사과를 옆구리에 붙인 채 달리는 버스를 경부고속도로에서 만나면 힘껏 쫓아간다. 험상궂은 옆차들이 끼어들어 우리 사이를 훼방 놓을 때까지. 작년 봄 거제도로 특산식물을 조사하러 가는 길이었다. 늑골 사이 묵은 먼지를 긁어내는 윤윤석의 아쟁산조가 끝나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시작될 무렵 인삼랜드 휴게소에 닿았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불에 구운 흰 가래떡을 입에 물고 내 자리를 찾아가는데 방금 도착한 거창여객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같은 햇볕을 쬐고 비슷한 성분의 물을 먹어서인가. 한 골짜기에서 뒹구는 돌멩이처럼 다들 닮은 인상이다. 아버지 모시고 갈 때 인삼랜드, 어머니 업고 갈 때 인삼랜드. 그 언젠가 이 휴게소에서 나만 못 내리는 상황이 오겠지. 그런 날도 가늠..
A씨(47)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다.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항해사인 그는 지난 16일 전남 목포항에서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출항 닷새 만인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 하루 뒤인 22일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황해남도 강령군 앞바다에서 표류하던 그를 발견했다. A씨는 작은 부유물에 간신히 의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북측은 그를 구조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A씨는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졌다(이후 북측이 시신을 훼손했다는 게 국방부 발표다. 북측은 부유물만 소각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사건 전말을 공개한 다음날(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통지문을 보내 “대단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날 10·4 남북공동선언 13주년 기념 토론회를 진행하던 유시민..
코로나19 탓에 자가격리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여럿 보았다. 자녀 결혼이나 대학의 중요한 국제협력 프로젝트 때문에 불가피하게 출국했던 경우다. 일상이 무너졌다는 사람도, 새로운 충전의 시간이었다는 사람도 있다. 격리는 하던 일을 멈추는 비생산적인 시간인 것일까. 요즘 웬만한 분야는 대단히 전문화되어서, 내부의 세부 분야에 따라 전문성이 다르다. 그래서 특정 진료 분야를 오랫동안 다룬 의사도 자신의 세부 분야를 조금 벗어난 질병엔 조언하기를 꺼린다. 수학에서도 대수학을 전공한 수학자가 요즘 기하학에서 이슈가 되는 논문을 읽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잡다하게 여러 분야를 건드리기보다는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중세 르네상스를 풍미했던 보편 지식인의 꿈은 이제는 신기루 같다...
비대면 강의로만 진행된 한 학기를 마치고, 새로 시작된 2학기. 제한적이나마 대면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3년 동안 강의했던 경험을 생각해보건대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자신도 있었다. 2020학번 1학년 첫 대면 강의를 하러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소위 ‘멘붕’이 왔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멀뚱멀뚱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처음 본 친구에게 비말이 튈까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출석을 부르며, 침묵 속에서 학생들의 숫자를 헤아리는 데도 등허리에 땀이 흘렀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지침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질문에 대답하고 대화에 응하는 몇 명의 학생을 확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뭔가를 써보라는 과업을 주고 학생들을 ..

살면서 피하고 싶은 것을 한 가지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무엇을 골라야 하나. 질병을, 부도를, 노화를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다. 사건 지원을 위해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의외로 자주 듣는 대답이 있다. “그날이오. 되돌아가서 그날을 인생에서 지우고 싶어요.” 아무도 범죄 피해를 원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만 듣던 일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일은 매일 일어난다. 지금도. 술자리를 마친 후 직장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A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존경하는 상사였기에 더 충격이 컸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A씨를 짓눌러 몹시 힘들다고 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지내던 A씨를 처음 만난 날, 나는 A씨에게 무엇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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