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왜’의 함정에 같이 빠진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 걸까? 너는 왜 나를 사랑해? 이런 질문들은 위험하다. 어떤 대답이든 그 반대 조건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명제에 A라는 이유가 생기는 순간 not A라는 가정이 시작된다. 내가 아름답지 않아도? 늙어도? 돈을 못 벌어도? 불치병에 걸려도? 우리는 그래도 서로를 사랑할까? 가정은 끝없이 늘어날 수 있고 그렇다는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사랑의 완전함에는 금이 간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명확한 설명은 곤란을 유발한다. 확실한 이유를 가져오는 순간 사랑의 낭만과 신비는 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어떤 논리로도 말끔하게 환원되지 않는 영역은 언제나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 해명되기를 원한..

11월의 설악산 단풍을 담은 사진을 받아보았다. 독일에선 볼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화려한 색조다. 독일의 11월은 비, 바람 그리고 어두움이 가득 찬 시간의 시작이다. 뛰어난 토목기사이자 시인인 하인리히 자이델은 시 ‘11월’에서 “이런 달을 정말 칭찬해야 한다/ 아무도 이처럼 날뛰지 않는다/ 아무도 이처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햇살도 없이/ 아무도 이처럼 구름 속에서 시끄럽게 굴지 않는다/ 아무도 이처럼 폭풍으로 으스스하게 만들지 않는다/ 모든 것을 얼마나 축축하게 만드는지/ 그렇다, 정말 굉장하다”라고 독일의 11월 날씨를 저주했다. 작년 여름 포르투갈의 따뜻한 해변마을로 이주하기 전까지 아침 운동 때 나는 거의 매일 이 시인이 누워있는 공동묘지 옆을 지났다. 힘을 잃어가는 햇살이 젖은 ..
사회 주요 분야 참여 인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여성할당제는 1970년대 북유럽 국가들이 정치분야에서 여성 의석을 40~50%까지 의무화하며 시작됐다. 곧이어 세계 각국으로 확산돼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인 후 2000년대 초부터는 기업 등 민간영역으로 넘어왔다. 2003년 노르웨이가 공기업과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최소 40%로 의무화하는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한 게 시작이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 기업 내 여성이사 비율을 30~40%까지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도 ‘이사회 다양성 연합체(ABD)’를 설립하고, 캘리포니아주는 상장회사가 여성이사를 두도록 법제화했다. 이스라엘·인도·캐나다 퀘벡주 등에서도 여성임원할당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남녀 격차가 ..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에 들었다. 정말 길이 책 속에 있을까? 책과 함께, 책과 더불어, 책을 통해. 이 어려운 시기를 빠져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이 말속에 다 들어 있다. 해리 포터가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9번과 10번 사이의 벽으로 난 길을 통해 호그와트로 들어가듯! 바깥 외출이 여의치 않아 산에 가지 못하고 옛날에 산에 갔던 기억이나 불러내어 되새김질하는 토요일 오후. 방구석에서 스킨답서스가 책으로 가득한 벽을 넌출넌출 기어오른다. 식물과 책, 책장과 유리창. 그중에서 줄기와 잎사귀를 쪽배처럼 타고 강원도의 산으로 빠져나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곳은 삼척의 덕항산. 기암절벽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중국의 이런저런 산들에 견주어 그 경치와 형세가 하나 꿇리지 않는 산이다. 환선..
미국 대선을 눈여겨봤다.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포퓰리즘의 미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가이기에 대선의 결과가 포퓰리즘의 미래를 엿보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국가적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것이기에 대선의 결과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를 전망하게 할 것이라고 역시 생각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하여. 선거 직전 나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그럭저럭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아주 팽팽했다. 바이든 후보와 트럼프 후보 모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7000만표 이상 획득했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이념적·인종적·지역적·종교적 균열이 너무도 분명했다. 미국은, 영국 정치가 벤저..

‘정리해고’의 대명사와도 같은 두 사업장이 있었다. 2009년 976명을 정리해고한 쌍용자동차, 2011년 290명을 정리해고 한 한진중공업이다. 많은 눈물과 아픔, 죽음이 있었다. 끈질긴 투쟁 끝에 해고자들은 하나 둘씩 공장으로 돌아갔다. 지난 5월, 쌍용자동차의 ‘마지막 해고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11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갔다. 171일 동안 평택공장 앞 송전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며 굳게 닫힌 공장문을 바라만 보았던 한 전 위원장은 비로소 그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훈훈한 결말’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35년 동안 복직투쟁 중이다. 김 지도위원의 309일 크레인 고공농성은 시민들의 폭발적 연대인 ‘..
일에 빠져 살던 예전의 직장인과 달리 요즘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행이나 독서를 넘어서 취미도 다양해졌고 동호회도 많다. 춤바람이 불어서 춤을 배우러 다니거나 중년의 나이에 생전 처음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꽤 있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을 위해 주제별로 책을 큐레이팅해주고 동호인을 모아서 연결해주는 스타트업 기업도 출현했다. 이런 전문 독서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은 틈날 때 책을 골라 읽는 정도가 아니라 주제별로 함께 읽고 주제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서 토론을 벌인다. 취미로 노래를 하고 곡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도 많다.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아마추어 작곡가나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전문가에게 보내서 평을 받고 싶어하고, 어느 경지에 이르면 아예 본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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