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고립시키는 자본주의 그리고 불안에 사로잡힌 영혼… 곳곳이 장벽으로 막힌 사회 정말 필요한 건 연대의 용기 생과 사의 경계선을 상정하고 살지만 삶은 언제나 그러한 인간의 가정을 배신하곤 한다. 느닷없이 닥쳐온 별리의 아픔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삶의 의미를 물어올 때면 그저 가슴만 먹먹해진다. 나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쓸쓸함, 분주하게 살고는 있지만 실상은 지향을 잃고 맴돌고 있다는 자각이 찾아올 때면 돌연 세상은 낯선 곳으로 변하고 만다. 자신의 존재를 문제로 파악하는 인간은, 부여받은 삶의 언저리를 맴돌며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바장인다. 다른 이들은 다 자기 삶에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데, 홀로 무의미의 심연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은 아뜩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
드라마 속 주인공 오미주(신세경)의 직업은 외화 번역가이다. 번역을 위해 같은 장면을 수없이 ‘되감기’해야 하는 직업이다. 언젠가 지인에게서 언어를 번역하는 일이란, 언어와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기에 그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단어, 행간, 공기 등을 곱씹는 과정 즉 되감기가 중요하다. 그의 이름이 하필 ‘미주’인 것도 흥미롭다. 챕터나 문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몰아서 주석을 다는 방식을 미주(尾註)라 한다. 미주는 언어나 상황의 의미를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돕되, 본래의 것보다 앞서서 독해를 방해하지 않도록 문서의 뒤에 놓인다. 물론 미주는 각주보다 느리고 불편하다. 미주를 참고하기 위해서는 책의 맨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의 직..
한달 전에 읽은 감동적인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의 제목은 ‘2020 고단 3057·4634(병합)’. 울산지방법원 형사2단독 유정우 판사가 쓴 판결문이다. 그는 작년 6월 울산시 울주군 앞바다에서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선장 2명과 선원 7명에게 징역 2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기존 판결보다 형량이 꽤 높다. 근거는 판결문에 있다. 전체 26쪽 중 6쪽을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에 할애했다. “고래는 포유류에 속하는 바다상의 거대동물로서 약 2500만년 전에 인간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하였고(현생인류는 20만년 전 출현),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흔히 생태계 정점에 있는 최고 포식자는 약육강식 원리에 따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잡아먹기만..
‘집에 머물라’ ‘외출을 삼가라’ ‘거리 두기를 하라’류의 코로나19 방역지침은 홈리스들에겐 애초에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최우선이라고 했지만, 노숙인들은 지난 한해 방은 고사하고 밥도 의료도 일자리도 더 엉망이 되었다. 재난지원금 건은 심리적으로 최악이었지 싶다. 당사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이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했건만, 홈리스 인권단체에서 파악한 바로는 국민 99.5%가 받은 그 돈을 최빈층인 노숙인 중 절반 이상이 받지 못했다. 국민에서 제외한 행정 때문이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소리가 다시 나오는 요즈음 옆에 있는 내가 미리 신경질이 날 지경이다. 그간 ‘홈리스행동’은 희망지원센터같이 서울시가 위탁운영하는 응급 잠자리의 감염확산 위험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해고 기간은 35년, 정년을 맞는 올해 36년차에 접어든다. 그 해고를 청산하기 위해 34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왔다. 목적지는 청와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다. 왜 한 노동자의 해고 청산에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가. 그의 해고에 국가폭력이 개입해 있어서다. 그의 복직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제다. 사측이 밝힌 김진숙의 해고사유는 무단결근. 무단결근의 이유는 대공분실에 무단으로 잡혀갔기 때문이다. 잡혀간 이유는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홍보물을 뿌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1986년 독재정권 말기였다. 김진숙이 고문을 받았던 곳에서 대학생들이 죽어 나왔다. 영도조선소 앞에 살았던 서울대생 박종철도 그중 한 사람. 민주화가 되자 함께 싸웠던..

명절 때면 어머니는 팔남매 자식들 봉다리 봉다리 챙겨주기 바쁘다 큰아그는 자식들 많항께 쌀도 두 차뎅이는 가져가그라 제찬 남은 것도 떡 쪼가리도 여덟 개로 나누어 왁자한 명절 끝에 내 집에 오는 날엔 여섯째인 내게도 서너 개의 봉다리가 주어진다 본가에 갈 때마다 달라붙는 봉다리 때문에 나는 빈 봉지 모아 어머니께 드리지만 어머니의 손을 거친 봉다리들은 어김없이 배가 불러 돌아온다 몇달에 한 번쯤 뵈는 어머니의 얼굴 날이 다르게 검버섯이 늘어난다 어머니의 늘어가는 검버섯 자식들에게 퍼주던 것들 봉다리 봉다리 들어낸 자죽이다 이대흠(1967~) 팔남매 중 여섯째인 시인의 나이는 쉰넷. 그 시절에는 자식을 많이 낳았다. 보통 한 집에 대여섯명, 어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큰애가 작은애를 업어 키웠다. 집안의..
지인이 시골에서 칼국수 가게를 열었다. 코로나19 시국에 먹는장사를 결심한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걱정 반, 응원 반의 심정으로 방문했다. 주방은 아내가, 홀은 아들이, 카운터는 지인이 담당했다. 가족 종사자의 노동이 결합된 대한민국 자영업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점심때만 돕는 딸까지 포함하면 가족 회사나 다름없었다. 직원 채용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은 가진 것을 다 털었지만 겨우 살얼음판 위에서 버티고 있다. 절규하는 자영업자들이 뉴스에 연일 등장하는데, 잘못되면 가족 전부가 어그러질 수 있는 무모한 결정을 왜 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절벽 앞까지 내밀렸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수년 전에 퇴직한 지인은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고 공연장 무대 및 조명을..
전환기의 급류에 휩쓸린 사람은 그 사태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싸이거나 어제까지 단단하던 대지가 불현듯 출렁이는 데서 오는 현기증을 느낄 뿐이다. 세상이 바뀔 거라는 예감은 뚜렷한데 변화의 실체와 방향은 흐릿할 때, 그 틈을 메우는 것이 불안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심층심리는 ‘불안’이다. 불안은 방어적 심리이고, 사람은 방어적일 때 공격적이 된다. 각자도생을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불안과 증오는 거리가 멀지 않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공동체를 깨뜨린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바뀌는 중이다. 교육을 예로 들자. 예비 고3인 딸아이는 지난해 학교에 가는 둥 마는 둥 했고, 지금도 그렇다. 비대면 수업은 한 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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