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가동 초기이던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광저우와 선전을 시찰했다. 1979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괄목상대하게 성장한 선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개발국의 경제특구는 초기 노동집약적 위탁가공업에서 시작해 기술집약적 산업을 거쳐 하이테크 산업으로 옮겨 가는데 선전이 그 대표 사례다. 선전과 개성은 닮은 점이 많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이 초기 화상(華商)자본으로 성장했듯 개성공단도 남한 기업들 투자가 자양분이다. 홍콩에서 관광객들이 버스로 1시간 거리의 선전을 찾는데, 서울 은평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개성도 관광 여건이 그 못지않다. 김정일 위원장이 초기에 북측 노동자들의 급여를 월 50달러만 받겠다고 한 것은 개성공단의 먼 미래를 내다본 결정이었을 것이다. 남북관..
북한이 한·미가 동의하는 수준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제공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사안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럼에도 야당 대표는 원자로 제공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이를 이적행위로 단죄했다. 정치 편작(扁鵲)의 명백한 오진이었다. 마찬가지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법적 조치 운운은 하수(下手)였다.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야당의 기를 꺾어놓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일이 편할 수 없으리라는 정치적 계산이 한몫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정치력 부재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여야 간 지루한 정치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국가의 최고 목표 중 하나는 부국강병을 통한 생존이며, 국가는 홀로 생존할 수가 없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작을 때 처리하지 않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큰 힘을 들여야 해결됨을 이르는 말이다. 뒤늦게 가래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지금은 가래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논란과 파장이 걷잡을 수 없다. 미적대다가 때를 놓치고 사태를 수습하려다 거짓말까지 들통나 정의와 신뢰의 상징이어야 할 사법부 수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법원 내부의 불만도 만만찮다. 대법원장 사퇴하라는 야권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거짓 해명보다 미온적인 태도가 더 문제다. 사직을 받아주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탄핵감이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탄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바깥에서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소극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시민사회와 국회..

느긋한 휴일 아침, 눈이 몹시 내렸다. 이 기세라면 알록달록한 문명을 제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이대로 사흘만 쏟아져도 서울은 아득한 태곳적 서라벌로 변하고 남산은 그야말로 우뚝 돌발한 눈탑. 하지만 아무리 과장법을 동원하려고 해도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의 여운을 찾아 남산터널 지나 인사동으로 나섰다. 아직 토막난 골목이 군데군데 숨어 있는 곳. 발자국을 몇 개 찍으며 늘샘 김영택 화백의 전시회를 보았다. 그야말로 수십만 획의 섬세한 선들이 지배(紙背)를 뚫을 듯 은모래처럼 반짝거리는 펜화. 안타깝게도 작가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유고전이 되고 말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소란스러운 인사동을 빠져나와 걸음을 옮긴다. 북망산으로 가는 듯 종로 지나..
설이 코앞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1박 이상 고향을 찾을’ 사람은 12%, ‘따로 사는 가족·친척을 만나겠다’는 사람은 33%로 나왔다. 귀성은 넉달 전 추석 기록(16%)도 다시 깼다. 옛 시구를 빗대면, ‘설래불사(來不似)설’이다. 가족·친구끼리도 시차를 두며 둘·셋·넷이 만나자는 설이다. 그 밥상·술상 얘깃거리로 코로나19를 앞설 게 없다. 그리고 늘 그렇듯 꽤 많은 자리에서 설 대화에 정치가 더해질 것이다. 코로나가 이리 길지 몰랐다. 이토록 자영업자에 가혹할지도 6년 전의 짧은 메르스 땐 몰랐다. 이젠 사람들도 백신 집단면역은 11월에 생기고, 올핸 마스크를 벗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곤 묻는다. “다음 세상은 어디로 가느냐”고…. 역사는 공교롭다. 코로나 너머가 바로 대선(2022년..

저널리즘스쿨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쓰지 말아야 할 문장으로 법원 판결문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명문도 더러 있지만 상당수는 복문과 중문이 반복돼 이해하기도 어렵다.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생기는 증상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형부를 멀리하라’고 강조하는데, 판결문에는 형용사·부사투성이 문장도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 주문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그러나 파면의 주체가 헌재인 점은 유감이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 300명 중 234명이 찬성한 탄핵소추안을 헌재가 어떻게 결정할지 전 국민이 노심초사했는데, 임명직 재판관 9명이 최종결정을 하는 게 민주적인가? 헌재는 탄핵소추안이 법적 요건에 맞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된다. 대통령 탄핵은..
코로나19로 이전과 어떻게 일상이 달라졌느냐 묻는다면 역시 답은 ‘단절’일 테다. 표정도 알 수 없게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은 마스크, 서로 만나 대화하지 못하고 줌(Zoom)으로만 안부를 묻는 사람들. “밥이나 한번 먹자”라는 제안조차 더는 가볍지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단절과 고독을 체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나는 그나마 고독하지 않은 편이다. 회사도 다니고 있으니, 좋든 싫든 사람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기적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 회사도, 얼굴 보며 밥 먹을 식구도 없이 혼자 온전히 하루를 지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내가 사는 아파트 뒤의 체육문화센터는 벌써 6개월이 넘도록 무기한 휴관 중이다. 오후 시간이면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이던 아이들과 아이 보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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