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연휴가 끝날 즈음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냉이전과 당근라페였다. 냉이전은 말 그대로 냉이를 썰어 부침가루를 입혀 부친 것이다. 평소라면 부침가루를 알맞은 농도로 물에 개는 것이 귀찮고 어려워 엄두도 안 냈을 메뉴였다. 당근라페는 당근을 채썰어 소금에 절인 뒤 물기를 제거하고 올리브유·레몬즙 등과 섞어 한두시간 숙성한 뒤 먹는 음식이다. 이 역시 평소라면 ‘당근 채썰기’란 첫 단계부터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식단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 주변에서 찾아낸 입맛이 맞는 식당 두 곳에서 번갈아가며 음식을 사다 먹거나, 아주 간단한 레시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반복해서 해먹었을 뿐이다. 저음의 콘트라베이스 독주곡처럼 단조롭고 다소 음울한 식단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린 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 1970~1980년대 군사독재라는 우리의 상황과 관련, 나는 에 나오는 이 문장이 국민들에게 “나 자신과 가정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무슨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고 국가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느냐”는 소시민의식에 묶어두려는 지배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다. 요즈음 생각이 변했다. 연이은 공직자들의 이탈, 특히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그동안 ‘정의’를 외쳐온 문재인 정부라는 ‘자유주의적 개혁진영’과 정의당이라는 ‘진보진영’의 일탈을 보면서 ‘역시 고전은 옳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나 역시 에 나오듯이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살지는 않았고 ‘수신제가’에 성공했다고 자신할 수 없..

2월, 학년이 올라가고 교실을 이동하는 시기.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되는 슬픔이 왔다. 정든 짝꿍과 헤어지는 와중에 새 교과서를 받는 은밀한 즐거움도 있었으니 국영수는 뒤로 미루고 체육과 미술, 지리부도를 즐겨 보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각종 신기록의 육상선수들과 알타미라 동굴 벽화. 모든 학창 시절을 청산하고 넥타이 매고 사회로 진입할 땐 여기도 한 동굴이 아닐까, 아득하고 캄캄했다. 남산터널에 버스가 갇힐 때도 있었으니 시계를 보고 창밖을 더듬으면 차의 꽁무니가 휘갈긴 치졸한 낙서뿐이었다. 어느 해 여름휴가에 접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수승한 그림들. 이런저런 자료와 체험을 바탕으로 짧은 글을 끄적여 보았다. 한 줄기 빛이 찾아드는 순결한 동굴. 마지막 점을 찍은 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
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은 김수영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민주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김수영으로부터 결코 작지 않은 감성적·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바로 올해는 김수영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수영의 문학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나의 전공을 넘어서는 일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자유의 지식인’으로서의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다. 스스로 밝혔듯 김수영은 우파나 좌파가 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예민한 자의식은 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우파나 사회혁명을 강조하는 좌파와는 태생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웠다.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펼쳤던 1945년 광복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김수영은 우리 ..
지금 전국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3차 대유행 고비를 넘기는 듯하더니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대유행을 걱정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끝을 모르고 극성을 부리는 통에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진 또 다른 바이러스 전염병이 있다. 치사율이 100%에 가까워 돼지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다. 코로나19보다 4개월 먼저 국내에서 발생해 경기 북부지역 돼지를 거의 전멸시켰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폭풍처럼 몰아쳤던 ASF 바이러스가 이제는 강원지역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ASF는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철저한 방역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방역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ASF의 주 전염원은 야생 멧돼지다. 그래서 경기 북부지역..

사랑과 행복이 넘쳐납니다. 모든 것들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싹들이 돋아나고 새로운 색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난 할 수 있습니다. 난 잘할 수 있습니다. 난 잘해낼 것입니다. 이렇게 나에게 주문을 걸어 봅니다. 주문의 효력이 떨어지기 전에 어서 밖으로 나가서 새롭게 시작해야겠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생각그림]최신 글 더 보기
최근 아이폰 기반 애플리케이션 ‘클럽하우스’가 단연 화제다. 클럽하우스는 오로지 음성만을 기반으로 한 오픈 마이크 플랫폼으로 모더레이터가 방을 만들고 해당 방의 주제를 제시하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스피커로 올라와 발언하거나 리스너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라디오나 팟캐스트처럼 기존 미디어 중에도 음성을 기반으로 한 매체나 플랫폼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어째서 유독 클럽하우스만 이 정도로 화제가 될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며칠 동안 클럽하우스를 돌아다녔다. 며칠 둘러본 것만으로 클럽하우스가 왜 잘나가는지 그 이유를 거창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있었다. 사람들에게 질문이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질문에 답하고 싶은 사람 또한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유저(사용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에서 “미래의 문맹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1년 동안의 우리 학교를 떠올리면 먹먹해진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에 학생 간 학습 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한 교사들은 전체의 79% 정도였고, 그중 33%는 그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도 누구는 배우는 법을 배우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거다. 왜 이런 격차가 생긴 것일까? 집에 온라인 학습을 도와줄 어른이 없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고들 한다.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로 학력 저하가 일어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교사들의 응답은 사뭇 달랐다. 앞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의 65%는 학습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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