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큰일을 맡길 때에는 그 몸을 수고롭게 하거늘 필시 천명(天命)을 받음일 것이다. 붓을 들면 비와 바람이 숨을 죽였지만 길 위에 서야 했다. 길에서는 묘수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이 없다. 백기완 선생. 그는 평생을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서러운 곳에 있었다. 고문을 당해 육신이 으스러졌어도 포효했다. 시위 현장마다 선생의 백발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우리 시대 아주 익숙한 삽화였다. 많은 이들이 영웅적 서사로 선생의 투쟁을 감싸지만 거리의 투사는 지독하게 고독했을 것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을 떨쳐낼 수 있지만 무작정 저항하는 맨 용기였다면 한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아야 했다. 날마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퇴로를 끊었다. 선생은 스스로를 다스렸..
무언가를 쓰고 말하며 먹고살다 보니, 무언가를 입에 넣을 때 간혹 그 먹거리가 만들어져 나에게까지 온 거리를 생각하곤 한다. 플랫폼이니 머신러닝이니 무언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우리는 손쉽게 먹거리라고 부르곤 하지만, 진짜 입에 넣는 그 먹거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좀 더 원론적으로 생각하자면, 그 모든 것들의 기원은 넉넉한 식량 생산이다. 먹고 남을 만큼 만든 농부의 거래는 다른 이로 하여금 먹고사는 것 이상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사회에 제공한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의 상거래와 유통, 교환의 장은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활동의 근본이 어디인지를 잊게 만든다. 2020년 출시된 게임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겉보기엔 평범한 액션 게임이다. ‘슈퍼마리오’처럼 점프하며 던전 안의..
재난지원금 관련, 논의가 다양하다. 그 핵심 하나는 선별지원이냐, 보편지원이냐다. 실은, 이것만도 우리 시민사회 수준이 꽤 높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시장경제’에선 국가의 계획적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우를 떠나, 국가의 지원·통제가 없는 시장경제는 실존하기 어려움을 안다. 시장·국가 간 대립은 이론일 뿐, 현실은 둘의 융합이다. 좌우파의 입장 차이조차 대개 ‘정도 차이’일 뿐이다. 나라 살림을 총책임지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코로나19 위기로 어려움에 빠진 상공인을 국가가 지원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미 “매출 10억원 이하 소상공인, 4차 재난지원금 지급 검토” 중이라고 국회에서 밝혔다. 나아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손실보상제’ 도입까..
지난해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Unheard Voices)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음악·사운드를 다루는 아트 인큐베이터의 페스티벌 ‘ATM2020: 메가폰’에서였다. 제목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여기서 다룬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시가 열렸던 문화비축기지에는 자연, 동물, 기계소리, 인간의 귀로 듣지 못하는 저주파와 고주파, 필드 레코딩, 상상의 소리 풍경을 다룬 작업이 한데 모였다. 전시 목적은 음악 바깥, 그리고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하고 상상하는 작업을 함께 들어보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에게만 특권적으로 부여된 목소리라는 개념을 다른 주체에 적용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모든 참여작이 탈인간중심적 사고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이에 관해 고민해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
오디오로만 소통하는 클럽하우스가 인기입니다. 특정 운영체제에서만 사용 가능하고 초대장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기에 ‘인싸들의 SNS’라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개발사가 한 가지 운영체제로 개발하는 애플리케이션들은 꽤 많았고 초대장 가입 방식은 구글의 G메일도 십수년도 전에 쓴 방식이며 성공한 SNS는 대부분 트렌디한 사용자들로 출발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관심을 끈 것은 아이언맨의 현실판이라 불리는 외국의 유명 CEO가 가입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해외 주식 열풍에 그가 만든 회사의 주식을 잔뜩 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 애플리케이션이 알려진 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들이 참여하며 가입자가 폭증하자 우리 사회에도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싸이월드에서 ..
몇 년 전 ‘매력 자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이 쓴 책 의 한국어판 제목이기도 하다. 하킴은 돈, 교육, 인맥으로 대표되는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뿐 아니라 개인의 매력도 중요한 자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매력 자본을 다시 여섯 종류로 나눠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한 신체,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대인관계 능력과 재치, 패션감각, 이성을 대하는 기술을 꼽았다. “얼마면 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과시하며 남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요즘은 장래희망으로 건물주를 꼽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니 경제력이 매력이라는 명제에 마음으로 반대할지는 몰라도 인정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과..

다육 한 점이 꽃을 피웠다. 아무도 몰래 살며시 이틀 잎을 열었다 다시 닫아버렸다.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천 년 비바람과 일억 광년 빛이 섞였던 것,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갔는지 알 수 없다. 누구에게나 ‘그대’는 지울 수 없는 상흔. 이 넓은 우주에서 이 짧은 찰나에 우리 이렇게 만났다 다시 처음처럼 헤어진 것만으로 기적이고 황홀이다. 정한용(1958~) 오늘 “꽃을 피”운 “다육 한 점”을 지긋이 바라보던 시인은 ‘지극’과 ‘정성’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름 모를 다육은 오래전에 그리운 곳을 떠났지만, 흔들림 없이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과 달리 고향에 가고 싶다거나, 배가 고프다거나, 아프다고 칭얼대지 않는다. 햇빛 잘 드는 창가에 두고 겨우 일주일에 한 번 ..
“노예제는 미합중국의 사법권이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12월1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한 수정헌법 제13조의 내용이다. 이로써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흑인 노예를 사고파는 방식의 전통적인 거래는 사라졌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는 이후에도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특히 여성과 아동, 이주노동자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온 국제사회는 결국 2000년 11월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합의에 이른다. ‘인신매매, 특히 여성 및 아동의 인신매매 예방·억제·처벌을 위한 의정서’라 불리는 ‘유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가 세계 159..
- Total
- 5,690,970
- Today
- 189
- Yesterday
- 1,066
- 문재인 정부
- 국정농단
- 검찰
- 헌법재판소
- 촛불
- 탄핵
- 북한
- 박근혜
- 성폭력
- 북핵
- 교육부
- 박정희
- 문재인 대통령
- 사법부
- 정유라
- 코로나19
- 자유한국당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황교안
- 촛불집회
- 최순실
- 우병우
- 미세먼지
- 김기춘
- 새누리당
- 세월호
- 청와대
- 문재인
- 블랙리스트
- 양승태 전 대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