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대선이 한창 정점으로 치닫던 2월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끝까지 완주하겠다며 거리유세에 나섰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단일화에 대해서만 질문했다. 결렬을 분명히 선언한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 안 후보는 “사람들은 선거할 때마다 (내가) 도중에 그만뒀고, 철수했다고 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매번 ‘철수’한다는 왜곡된 이미지가 덧씌워졌을 뿐,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양보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철수’는 진정한 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을 불과 엿새 앞두고 안 후보는 가장 극적인 ‘철수 드라마’를 만들었다. 항간에서는 이를 두고 4번째 철수라고 했는데, 역대 철수 중 가장 강력한 반응을 불러..
2016년의 미국 대선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의외의 결과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똑소리나게 지적인 힐러리 대신 정반대의 트럼프를 선택했다. 나는 그때 이런 승리가 되풀이된다는 상상을 했다. 스티븐슨을 누른 아이젠하워, 고어와 존 케리를 차례로 이긴 조지 W 부시의 승리가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하버드로 대표되는 엘리트 지상주의와는 상반되는 어떤 의외성이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하자면 ‘반지성의 승리’랄까. 아이젠하워의 군인정신에 입각한 근본주의적 반지성, 악의 축을 들먹이며 마니교적 원시성을 드러내는 부시의 반지성은 자신의 물질적 성공을 당당하게 강조하는 트럼프의 속물적 반지성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반지성주의’는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미국의 역사를 개척시대와 실용주..
한 소설가가 카페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제 소설에는 ‘한 방’이 없다고 하잖아요.” 비판을 의식해 자기 소설을 방어하려는 모양이다. 그래, 결정적인 한 장면, 에피파니, 와우 포인트가 없으면 소설 쓰는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곤 하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한 방’일 때가 많으니까. 그런데 소설가는 일부러 그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씌어진 것 같잖아요. (…) 모든 자잘함을 지우며 홀로 우뚝 선 한순간을 지지하는 것에 찜찜함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유난스러워보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찬양하고 드높이기 위해 다른 하나를 배제하는 것. 한 부분만 돋보이..
텔레비전에서 영양이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보면 약육강식은 자연의 법칙처럼 보인다.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적자생존’ 따위를 배운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인간사회도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는다. 학교에서 배운 인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자 약육강식의 역사로 보인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권력자들이 핵폭탄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일 것이다. 국가들이 앞다퉈 무력을 증강하듯이 개인들도 저마다 좀 더 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부와 권력을 손에 넣고자 기를 쓴다. 하다못해 주먹힘이라도 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교육 또한 이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학교교육의 기본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름 아닌 ‘필승’일 것이다. ‘홍익인간’은 교과서에나 나오..
모로코에서 5세 소년 라얀이 32m 깊이 우물에 빠졌을 때 전 세계 소셜미디어에서는 ‘라얀 구하기’(#Save Rayan) 운동이 펼쳐졌다. 구출 작업 상황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고, 그걸 지켜보던 누리꾼들은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나흘 만에 구조된 라얀이 결국 숨을 거두자, 세계 각국 정상과 대사관들은 일제히 애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불과 몇 주 전의 일이다. 한 소년의 생명 앞에 전 세계가 한마음이 됐던 그때와 지금은 과연 같은 세상이 맞을까. 전쟁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지만, 한 아이의 생명 무게는 전쟁 전에 비해 0.001g도 더 가벼워지지 않았다. 불과 몇 주 만에 이 세계는 우크라이나에서 꺼져간 수백 명의 어린 생명과, 가족과 생이별한 채 낯선 나..
내가 사는 동네의 전세 시세를 보면 이중가격이 확연하다. 대략 2억~4억원대 보증금에서 1억원 이상의 가격 차이가 눈에 띈다. 계약갱신권을 가진 세입자는 기존 가격 수준에서, 새로 계약한 세입자는 이보다 많은 보증금을 냈다는 의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들어가 보니 이중가격 격차가 수억원에 달하는 곳도 많다. 올해 8월이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권이 시행된 지 2년이다. 지난번에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이번에 신규 계약을 해야 하므로 자기 동네에서 계속 살려면 추가 전세금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실하게 지난 2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없는 세입자, 무주택자가 당하는 날벼락이자 설움이다. 1가구 1주택자는 상황이 다르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
내가 사는 동네의 전세 시세를 보면 이중가격이 확연하다. 대략 2억~4억원대 보증금에서 1억원 이상의 가격 차이가 눈에 띈다. 계약갱신권을 가진 세입자는 기존 가격 수준에서, 새로 계약한 세입자는 이보다 많은 보증금을 냈다는 의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들어가 보니 이중가격 격차가 수억원에 달하는 곳도 많다. 올해 8월이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권이 시행된 지 2년이다. 지난번에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이번에 신규 계약을 해야 하므로 자기 동네에서 계속 살려면 추가 전세금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실하게 지난 2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없는 세입자, 무주택자가 당하는 날벼락이자 설움이다. 1가구 1주택자는 상황이 다르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
대학원 시절 내 별명은 ‘백구’였다. 그런 별명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어느 독일 교수님이 초청 강연 일정으로 방한하셨을 때다. 우리 지도교수님의 막역한 동료이자 연구실 선배의 유학 시절 은사이셨던 터라, 추억으로 간직할 만한 일상문화 경험을 그분께 만들어 드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노래방 방문’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후, 연구실 선후배들과 우르르 학교 후문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어쩌지 했던 우려가 무색하게 그 독일 교수님은 흥겨워하며 팝송을 두 곡이나 부르셨다. 후배의 3단 고음 열창과 선배들의 ‘말 달리자’ 합창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각자 돌아가며 한 곡씩은 불러야 할 듯해 나도 예약 버튼을 눌렀다. 예약된 곡 제목이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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