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일이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온 남자아이가 놀림을 받았다. 분홍색을 입었다는 이유로, 여자 색깔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아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사흘간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가 분홍색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날,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각자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말해볼까요?” 치킨을 말한 아이, 김치를 외친 아이, 수줍게 빵이라고 대답한 아이도 있었다. “나도 빵 좋아하는데.” 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웅성임이 시작되었다. “각자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말해볼까요?” 이어진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의 입에서 좋아하는 빵의 이름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크림빵, 크로켓, 단팥빵, 카스텔라 등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다. 그때 한 아..
한동훈 법무장관 딸 문제 덕분에 깊고 넓은 교육 불평등과 세밀하게 등급 매겨진 한국인 삶의 계급적 양식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작용하는 구조화된 ‘외부’의 힘은 ‘글로벌’이며 미국이다. 한국 최상층계급은 완전히 글로벌화된 경제와 문화정치의 꼭대기에서, ‘미국’과 ‘영어’를 마음껏 동원하여 지위를 얻고 기득권을 세습한다. 그 자녀들은 이중국적 취득, 영어 유치원, 국제학교, 조기유학, 미국 최상위 랭킹 대학 진학 등의 과정을 밟는다. 아이비리그의 학부, 로스쿨 혹은 메디컬스쿨 등이 단기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 드는 돈과 이용되는 사회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보통사람들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 바로 아래의 상층계급은 최상층을 흉내내거나 자식을 그렇게 만들려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

꽃밭이 소란스럽길래 물을 뿌렸다. 잠잠할까 싶었으나 웬걸 물 머금고 배나 더 웅성거림. 요샌 장미의 계절이야. 밥상처럼 수북하게 차려진 장미 넝쿨. 큼직한 장미꽃은 보리와 쌀이 반반 섞인 고봉밥을 닮았다. 저마다 한 공기씩 꿰차고서 옛 시절 토방에 앉아 밥을 먹을 때 장미꽃 냄새가 밥 냄새에 섞여 밥을 먹는지 꽃을 먹는지 모를 때가 있었지. 아버지는 목사관에 꽃밭을 배나 넓히고 계절마다 꽃을 보며 즐기셨다. 덕분에 식구들은 꽃구경을 원 없이 했고, 본받아 나도 꽃밭 가꾸기를 좋아하면서 이때껏 살고 있다. 부모가 무얼 좋아하는지에 따라 자녀 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 맹자 어머니 말씀이 하나 틀린 말 아니야. 부모님은 동산에다 염소와 토끼, 닭도 길렀다. 닭은 알을 낳아주었는데, 답례로 퇴비 거름더미를..

코로나19로 인한 극장가 침체에도 흥행한 마블영화 에선 ‘멀티버스’(다중우주)라는 개념이 나온다.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여러 개의 우주가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다른 우주에 분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분신의 성격과 환경, 선택은 다르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를 보면서 직업병이 도졌다. 실제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면 그곳의 정치권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봤다. 영화 속 다른 차원이 실제와 달랐듯 다른 차원의 정치권 모습도 현실과 다르지 않을까. #인재를 널리 구한 윤 대통령 예컨대 다른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신중하다. ‘요리하는 남자’인 윤 대통령은 국정이 고난도 요리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요리에서 그랬듯 국정에서도 손맛을 발휘하겠다고 다짐한다. 온도, 습도, 불의 세기 등..
얼마 전 딸아이가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기다렸던 일이라 기쁘지만 얼떨떨하기도 하다. 이제 할아버지가 되면 노년에 확실하게 입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돌봄의 무게가 가중되는 것이 더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다가올 듯하다. 손주를 키우는 일은 큰 즐거움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고역이 된다. 주변에는 조부모가 ‘독박’으로 육아를 하면서 사실상 ‘조손 가정’으로 지내는 집이 적지 않고, 그 경우 양육 방식을 둘러싸고 아이 부모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조카가 자기 친구의 경험이라면서 들려준 이야기인데, 친정어머니에게 맡긴 아이의 언어 발달이 너무 늦었다고 한다. 웬일인가 들여다보니, 어머니는 식사와 기저귀 갈이 등 최소한의 보살핌만 해주었을 뿐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상호작용은..
그날 저녁답에 낯선 손님이 찾아와 아무개는 흰쌀밥을 지었어요. 평소처럼 사랑채 닫힌 문 앞에 밥상을 올린 뒤돌아 나왔습니다. 며칠 전 날실을 감은 도투머리를 베틀에 얹어놓아 마음이 급했지요. 날실에 물을 축이고 바디를 몇 번 쳤는데, 갑자기 사랑으로 들어오라는 시아버지 말씀이 있었습니다. 허리에 동여맨 부티를 끄르며 아무개는 밥에서 돌가루라도 나왔는가 겁이 났어요. 시집온 뒤 처음으로 사랑방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아버지가 같이 밥을 먹자 했습니다. 상머리에 앉기도 처음이었어요. 늘 정지에 홀로 앉아 남은 찬에 식은밥으로 끼니를 때웠거든요. 아무개는 차마 숟가락도 들지 못한 채 몸을 떨며 앉아 있었지요. 밥상 앞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덜컥덜컥 소리가 들려요. 무슨 소린가 물었더니, 며느리가 베 짜는 소..
지난 3월 지방자치단체에서 1년 동안 빌려주는 도시 텃밭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대기번호 473번. 시 외곽 텃밭 단지 2곳에서 3평(9.9㎡)짜리 텃밭 630구좌를 분양하는 데 무려 4000여명이 몰렸다. 지난해 용케 텃밭을 분양받아 아이와 함께 토마토, 상추, 당근, 배추 따위를 심었는데, 그런 행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됐다. 텃밭을 하겠다는 사람은 수천명이나 되는데, 정작 서울 인근의 이 도시에서는 텃밭이 사라지고 있다. 집 근처 야산에 있던 지자체 텃밭 단지는 아파트 단지 조성 계획으로 지난해 폐쇄됐고 지금은 그 자리에 ‘대토보상 상담’ 현수막만 어지럽게 걸려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지자체 텃밭 단지에도 최근 아파트 단지 개발 승인이 떨어졌다. 시 외곽에 민간이 운영하는 텃밭 농장과 친환경..
코로나19 팬데믹이 저무는 이즈음에 감염병 국가 재난 극복을 반기는 마음보다 지방의료원장으로서 앞으로 닥쳐올 경영 어려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 초기에는 힘들었지만, ‘덕분에 캠페인’으로 격려도 받았고 공공의료 중요성을 사회가 높게 인정하는 현상을 체험하며 지방의료원의 미래에 희망을 품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 환자 수가 격감하는 속도에 비해 일반 진료량은 훨씬 더디게 회복되면서, 이 격차로 인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얼마나 큰 적자를 감당해야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적자 경영이 직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면서 유능한 직원들이 떠나는 악순환 고리까지 형성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인식한 지방정부들은 시립병원 추가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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