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부 시인은 ‘봄’이란 시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했던가. 대학의 봄은 개나리가 아닌 신입생과 함께 온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된 개강은 그마저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그 봄은 요원하기만 하다. 

개강 후 한 주 지났을 때 입학식이 취소돼 얼굴도 본 적 없는 한 신입생에게서 면담하고 싶다는 e메일이 왔다. 무슨 사정일까 궁금했는데 뜻밖에도 자퇴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어렵게 들어온 로스쿨인데 제대로 시작도 안 해 보고 자퇴라니…. 

장학금 수혜 대상자인 K군의 사정은 이랬다. 지방 소도시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부모님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두 달간 수입이 거의 없어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며, 중소기업에 다니는 동생은 최근 무급 강제휴직을 당했다고 한다. 조부모까지 함께 사는데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원룸 월세, 식비, 책값 등 최소 월 120만원을 부모님께 지원받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K군의 진정한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지난 2월 대학 졸업 후 약사 자격증을 갖게 된 K군은 당장이라도 응급실에 취업하면 가계를 돌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로스쿨에 다닌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퇴하고 가족을 돌볼 것인가, 이를 외면하고 로스쿨에 다닐 것인가로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K군을 붙잡고 싶었다. 이런 학생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률가 상이 아닐까 생각해서다. 하루만 더 고민해보자고 한 후,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면 도울 길을 찾아보겠다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안 돼 행정실에서 자퇴서를 받아갔다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자퇴를 막기 위해서는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순간 두 사람이 떠올랐다(둘 다 변호사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돕겠다고 했다. 한 사람은 30만원을 더해 월 150만원을, 그것도 3년치를 일시불로 지원하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K군이 미안해하지 않도록 적절한 일감을 주겠다는 배려까지 했다. 월 270만원이라는 든든한 지원금을 확보한 나는 K군에게 바로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약속한 다음 날 K군에게서 온 e메일은 나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다. K군은 “270만원은 사회초년생들의 월 평균 수입을 넘는 큰돈입니다. 스스로 경제적 부양 능력이 있음에도 교수님께 먼저 사정을 알렸다는 이유만으로 더 어려운 학우에게 돌아가야 할 호의를 가져가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일입니다”라며 사양했다. 그는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며 법률가의 길을 재도전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을 때 백양로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로 맺었다.

든든한 후원자가 생겨 K군은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고 로스쿨에 다닐 수 있게 됐는데…. 기대와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나의 생각은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K군의 어른스러움 앞에 유치한 계산이 되고 말았다. 

K군을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다만 회신에서 짧은 만남이었지만 K군을 제자로 생각하고 싶다고 썼다. 이어서 K군의 사정을 듣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바로 돕겠다고 나선 두 변호사에게도 하루 사이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감사를 전했다. K군의 말처럼 이 세상이 따뜻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으니 그들은 기부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새 신입생이 아니게 됐지만 K군은 코로나를 뚫고 온 새봄이었다.

<남형두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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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김치 한 사발이 간절한 즈음이다. 짭짤하면 짭짤한 대로 삼삼하면 삼삼한 대로 김칫국물 한 사발을 목구멍에 왈칵 넘기고 나면, 그 기분 좋게 쩡한 간질임에 사람의 오감이 새로워질 것만 같다. 처지고 쭈그러졌던 몸과 마음이 주저앉은 자리를 그대로 박차고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 물김치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켜고서 ‘세상의 나쁜 기운아 물렀거라, 내가 간다!’ 소리라도 한번 지르고 싶다. 

조선의 문인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일찍이 새봄에 무와 움에서 움튼 무순으로 담근 물김치의 관능을 이렇게 말했다. “(주재료에다) 파와 고추로 담근 물김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봄기운을 일깨운다(令人頓生春意).” 처음부터 의도해 담근 물김치나, 결과적으로 새콤하면서 달큼한 김칫국물이 넉넉히 남아 물김치 노릇까지 하게 된 경우나, 이어지고 서로 통하는 관능이 있다. 앞서 ‘문득 봄기운을 일깨운다’라고 했지만, 그 봄기운을 보다 구체적인 관능과 풍미의 표현으로 바꾸면 역시 쩡함, 산뜻함, 개운함, 시원함 등에 다다를 테다. 

1777년 북경을 다녀온 이갑(李𡊠 ·1737~1795)의 기록도 재미있다. 이갑은 오늘날의 중국 랴오닝성에서 허베이성으로 접어드는 길에서 뜻밖에 중국인이 담근 곤쟁이젓(甘同醢)·배추김치·동치미 등을 맛볼 수 있었다. 조선 사람과 교류가 잦은 중국인은 어느새 조선의 젓갈과 김치, 물김치에 입맛 들이게 되었고, 랴오닝과 허베이 지역의 농수산물로 조선 음식을 해 먹는 데 이른 것이다. 그 맛이 조선 사람의 입에 다 맛난 건 아니었으나 바탕이 되는 감각은 한결같았다. 

이갑은 이렇게 썼다. “동치미만큼은 중국 역관들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담근 덕분에 한번 마셔보면 그래도 산뜻함을 느낄 수 있다(一噉亦足醒胃矣).” 어디 18세기만의 감각이랴. 글쓴이는 동치미·미나리물김치·나박김치·산갓물김치·돌나물물김치·참나물물김치·봄배추물김치 등등의 뒤를 밟다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며 이갑의 <연행기사> 등에 다다랐다. 이윽고 물김치의 관능이 ‘봄기운’이라든지 ‘산뜻함’으로 드러난 데서 빙그레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이 김치와 물김치에 바라는 바가 있다. 더구나 새봄에는 더하다. 오감을 일깨우는 부드러운 자극, 개운한 풍미가 주는 상쾌함, 후련함과 시원함을 바라는 마음들이 물김치에 가닿는다. 춘래불사춘, 봄마저 역사상 최악인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감각을 마냥 주저앉히기는 싫다. 암만해도 물김치는 좀 담가야겠다. 시장 나가 봄 얼갈이든, 알배추든, 산갓이든, 미나리든 손에 걸리는 대로 장을 보아야겠다. 덕분에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봄기운 솟는지, 한번 시험하겠다. 

 <고영 |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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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작가가 서울 용산에 있는 작업실에서 인형을 제작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뭐라고? 벌써 어느 어린이집으로 갈지 정해졌단 말이야?” “여기요. 난 어린이이고 여기는 내 집이에요. 그러니까 이 집은 어린이집이죠.” 이 엉뚱한 대화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긴 양말의 삐삐)>의 주인공 삐삐가 보호기관에 보내려고 집에 찾아온 경찰들에게 한 말이다. 

두 갈래 빨간 머리에 주근깨투성이 얼굴, 짝짝이 긴 양말과 찌그러진 구두를 신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금화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소녀. 도둑도 한 손으로 번쩍 드는 괴력의 고아 삐삐가 뒤죽박죽 별장에서 학교도 가지 않고 신나게 노는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한국에선 1980년대 초 <말괄량이 삐삐>란 제목의 TV드라마로 인기리에 방영됐다. 

작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이 낯선 이름이 최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림책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 덕분이다. 상금이 500만스웨덴크로나(약 6억원)나 된다. 

흔히 ‘삐삐’의 작가로 알려졌지만, 린드그렌은 세계 아동문학사와 아동인권에 보기 드문 족적을 남겼다. 1907년 스웨덴의 가난한 남부 스몰란드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미혼모로 대도시에 살면서 아픈 딸아이에게 매일 저녁 들려준 이야기가 전쟁(2차 세계대전) 통에 삐삐로 탄생했다. 책의 파장은 컸다. 버릇없는 주인공들의 언행이 아이들을 망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독립적이면서도 기존 질서에 반항하고, 약한 자들을 돕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통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웨덴 사회가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도록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린드그렌은 평생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썼고, 9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린드그렌이 문학상 시상식에서 한 발언으로 법 제정 운동이 시작돼 스웨덴은 1979년 가정 내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최초의 나라가 됐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양육과 아동복지 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도 꼽힌다. 생전에 “금세기 가장 사랑받는 스웨덴인”으로 불린 린드그렌의 얼굴은 스웨덴 지폐에도 들어가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때 백 작가의 개가가 더욱 반갑다. 린드그렌 정신도 함께 알려지기 바란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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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에게 중대한 공중보건 대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경제·사회·발전적 차원을 포함한 우리 미래의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대응은 긴급하고, 치밀하게 계획되어야 하며, 전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즉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일터로부터 기업,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까지, 이 사태의 극복은 정부와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사회적 대화에 달려 있다. 이를 통해 2020년대에 1930년대의 대공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번 팬데믹은 노동시장의 깊은 결함을 무자비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업들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이미 운영을 중단하고 근무시간을 단축시켰으며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상점과 식당이 문을 닫고, 항공편과 호텔 예약이 취소되고, 재택근무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기업이 파산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가장 먼저 실직하는 사람들은 판매원, 웨이터, 주방 직원, 수하물 담당자, 청소부 등 이미 고용이 불안정했던 사람들이다.

5명 중 1명만이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해고는 수백만 가정의 재앙을 의미한다. 우리가 현재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간병인과 택배 배달원은 유급 병가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몸이 아프더라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도급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비공식 부문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로 생계유지를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로 인해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늘릴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의 사이클을 극적으로 증폭시킬 것이다.

만약 각국 정부가 업무의 지속성을 보장하고 대량 해고를 막으며 취약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단력 있게 행동한다면, 수백만의 일자리와 기업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오늘 정부가 내린 결정이 향후 우리 사회와 경제의 건강 상태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례 없는 규모의 확장적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은 현재의 급격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정부는 국민들이 한 주 한 주 버틸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 이는 수백만 노동자의 소득의 원천인 기업들이 급격한 경기 하강에도 파산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하고, 나중에 상황이 개선되면 바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 시간제 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등 실업급여와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포함한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매일 자신의 건강을 걸고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는 수백만명의 의료인과 간병인들(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또한 의료 장비와 기타 생필품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와 선원들을 적절히 보호해주어야 한다. 재택근무는 노동자들에게는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사용자들에게는 위기 시에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들의 자녀들과 아픈 사람이나 고령자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돌봐야 하는 다른 책임과 적절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수의 국가들은 이미 경제와 사회를 보호하고 노동자들과 기업들의 현금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는 노사단체와 협력하여 사람들을 안전하게 하면서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는 소득 지원, 임금 보조, 휴직급여 및 자영업자 대상 세액공제, 기업들을 위한 재정 지원 등이 포함된다. 또한 강력한 국내 정책과 더불어 결단력 있는 다자간 협력 조치가 전 세계적 과제에 대한 글로벌 대응의 핵심임이 틀림없다.

지금과 같이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ILO 헌장에 명시된 원칙을 되새겨 본다. “어느 한 곳의 가난은 모든 곳의 번영에 위협이 된다.” 이 원칙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실질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여러 정책의 효과는 단지 재정 투입의 규모와 속도, 회복 곡선이 완만한지, 가파른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에 의해 미래에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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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어느새 일상어가 되었다. 거리 두기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국경의 빗장을 잠그는 등 문단속에 들어간 나라가 벌써 여럿이다. 국가 간 거리 두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공간의 압축을 추구하며 고도의 교통·통신 기술로 세계 전체를 빠르고 긴밀하게 연결해온 세계화인 듯하다. 국제적 거리 두기는 세계화와 정반대 움직임을 뜻한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항공, 여행, 관광, 숙박, 식당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파편이 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실물경제가 출렁대니 금융경제도 휘청댄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찰스 페로가 주창한 개념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를 떠올린다. 정상 사고는 “상호작용의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가리킨다. 시스템 속성상 예상할 수는 없어도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정상적인 사고다. 세계화의 전형적 속성이 고도의 상호작용과 긴밀한 연계성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재난은 세계화의 현실에서 불가피한, 일어나는 것이 정상인 그런 사고다.  

정상 사고는 사소한 발단으로 시작되어 거대한 사태로 내달린다. 코로나19가 어떻게든 인간에게 옮아간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우연히 일어난 나비효과가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비효과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꼭 발단일 필요도 없다. 정상 사고는 안전장치로 막을 수 없다. 안전장치를 설치할수록 복잡성과 연계성이 늘어나 사고 발생의 가능성만 높아진다. 답은 긴밀한 연계를 느슨한 연계로 바꾸는 근본적 전환이다. 세계화에 코로나19가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세계화 체제에서 세계적 재난은 불가피하다. 대책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세계화가 벗어나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할 길은 ‘지역화’다. 세계화로 가장 세계화된 것은 자본의 전 세계 이동이 자유로워진 경제다. 자본의 논리를 구현하는 최적의 환경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노동환경은 혹독해졌고 자연환경은 황폐해졌다. 세계화 경제는 지역 생산이 가능한 것도 이익만 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수입하는 ‘미친’ 교역도 불사해왔다. 일정 수준의 자급자족을 기초로 하는 지역화는 불필요한 국제 교역을 없앨 것이다. 지역화로 상호의존의 규모가 세계에서 지역으로 줄어들고 긴밀한 연계가 느슨한 연계로 바뀌면 도미노로 인한 세계적 재난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지역화는 경쟁과 지배가 아닌 협력과 연대를 우선적 가치로 삼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 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연결 통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동물의 개체수를 변화시켜 감염병 발생에 영향을 준다.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다른 곳에서 온 바이러스가 쉽게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도 병원균의 번식에 적합한 온상을 마련한다. 세계화 경제는 지역 환경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만, 지역화 경제는 그렇지 않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거리 두기를 세계화를 지역화로 바꾸는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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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대가 위태롭다. 20대는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다. 전체 확진자의 29%나 된다(질병관리본부, 확진환자 7755명 분석 결과). 인구 대비 20대 비율이 13%인 점을 감안하면 감염률은 다른 연령대보다 2배 이상 높다. 감염병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로는 청년들의 활동적이고 개방적인 태도가 꼽힌다. 감염되지 않은 20대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대학생은 캠퍼스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졸업생은 채용 인원 감축, 시험 연기 등으로 취업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운 좋게 취업했다 하더라도 인턴, 계약직 등 비정규직인 경우가 적지 않다. 

20대는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프리케리아트(precariat: 위태로운 노동자층)다. 감염병에 취약하고 사회 면역력은 더더욱 없다. 대학진학률이 70%인 현실에서 20대는 대부분 학생이거나 취업준비생,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불황이 계속되면서 청년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주거는 불안정하다.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는 계속 늘고 있다.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출생자가 사망자를 밑도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20대를 비롯한 청년들이 사회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위계문화 때문일 수 있고, 일부의 주장처럼 586세대(60년도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50대)가 세대의 이익을 독점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젊은 정치세력 부재가 청년을 더욱 불평등 세대로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청년을 배제시켰다. 청년은 기성세대의 들러리였거나 잉여에 불과했다. 역대 청년 국회의원 수가 증명한다. 20대 총선만 봐도 20~30대 의원은 고작 1%(3명)였다. 피선거권을 가진 25~39세는 인구의 약 27%다. 인구 비례대로라면 이 연령대에서 81명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 세계 각국 의회에서 20~30대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3%에 달한다. 북유럽 3국은 20대 의원 비율만 10%를 넘는다.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말 34세 여성정치인이 총리로 선출됐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될 때의 나이는 39세였다. 

최근 정치권이 청년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데다 세대 간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인식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지난해 국회는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청년의 권익 옹호를 명문화한 청년기본법도 제정했다. 21대 4·15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각 정당이 청년일자리 확대, 주거 개선 등 공약을 쏟아냈다.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청년 인재를 영입하겠다고도 했다. 결과는 속 빈 강정이었다. 18세에 투표권을 부여했지만, 정작 학교 선거교육을 불허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 청년 인재 영입은 보여주기식 선거전략으로 드러났다. 4·15 총선 등록 결과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정의당 등 주요 3당의 20~30대 지역구 후보는 28명으로 4.7%에 그쳤다. 3당 비례대표 후보자 115명 가운데 당선 안정권에 배치된 청년 후보는 10명도 안된다. 반면 50~60대 지역구 후보는 4년 전보다 늘었다. 청년층의 21대 국회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다.  

현실정치에서 기성세대는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들은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젊은세대는 부모보다 못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회학자 이철승 교수가 <불평등의 세대>에서 지적한 대로 기성 정치세대는 계속 자신들이 구축한 ‘정치·경제적 이익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며 청년들을 배제할 것이다. 물론 청년 몇 사람이 국회에 진출한다고 해서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기득권 세대가 주도하는 거대 양당체제에서 청년 의원 몇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층의 자유로운 국회 진출을 위해 청년 공천할당제 도입, 선거기탁금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선거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정치잉여로 남을 수는 없다. 청년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번 4·15 총선에 참여하는 청년 유권자는 어느 때보다 많다. 새로 투표권을 부여받은 만 18세(53만명)를 포함하면 10~30대는 1500만명을 헤아린다. 과대 대표된 거대 양당을 심판하고 청년을 대표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찾아야 한다. 가장 불평등한 세대이지만, 청년에게는 평등한 한 표가 있다. 그 한 표가 암울한 세계에 맞설 무기다.

<조운찬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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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 외교관과 오랜만에 만났다. 예정되어 있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본국에 한국의 상황과 대응에 대한 보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단다. 국경 봉쇄, 입국 금지, 인도적 지원 등 나라별 코로나19 대응에 따라 외교관계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 불확실성의 연속이라고 했다. 한국처럼 초기부터 증상자 전원을 대상으로 진단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확진자가 집중된 도시를 봉쇄하지 않고 시민 각자가 도시 간 이동을 자제하는 자발성에 감동했다고,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은 점도 놀랍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의견이 같았는데 마스크에서 달랐다. 많은 전문가가 마스크가 코로나19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며 자국에서도 아픈 사람이 아니면 쓸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단다. 유럽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병에 걸린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감염 경로가 침방울인데 마스크 착용이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도 마스크가 침방울을 막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코로나19는 잠복기 증상이 가벼워 걸린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도 있으니 마스크는 타인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답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마스크 쓰기를 권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일상인 한국엔 수백개의 생산업체가 있지만 유럽엔 생산시설 자체가 없는 곳이 많다. 한국처럼 비교적 마스크 공급이 안정적인 곳에서도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는데 구하기도 어려운 곳에서 마스크 착용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간 혼란을 넘어 마스크를 향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곳곳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나 정작 필요한 의료현장에 공급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산업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유럽은 이미 고부가가치 고차 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해 막상 제조시설이 없는 곳이 많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스웨덴 약국에 해열제 등 비상약이 씨가 말랐다. 스웨덴에는 굴지의 제약회사가 있지만 공장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명품 그룹사 루이뷔통모에헤네시는 향수 공장을 재빠르게 손소독제 생산라인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마스크는 중국 공장에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제조사가 본국에 있는 독일의 폭스바겐은 자동차를 만들 때 사용하는 3D 프린터로 인공호흡기를 제작하고 미국의 랠프로런은 생산라인을 바꿔 마스크와 의료용 가운 공급에 나섰다.

고차 산업을 지향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각 나라 상황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은 1차부터 4차까지 단계별 산업이 공존하고 있다. 위기상황에서 각각의 산업은 나름의 역할을 한다. 4차산업 덕에 마스크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고, 3차산업 덕에 나가지 않고도 배송을 받을 수 있다. 2차산업이 있어 마스크 수급이 원활하다. 더 큰 위기가 닥친다면 1차산업이 가장 중요해질 것이다. BBC는 최근 코로나19로 흔들리기 시작한 식량 주권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나면 앞으로 더한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무엇이 우선 필요할지, 최악의 경우 일정 기간 나라 전체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어떤 자원과 제조업을 전략적으로 가져갈지 산업의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스웨덴 뉴스를 보는데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기온이 0.5도씩 상승할 때마다 경작지가 얼마나 늘고 그로 인한 식량 생산량이 얼마나 증가하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있었다. 스웨덴은 기후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나라인데도 플랜B를 준비하는 게 인상 깊었다. 대한민국도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과 복안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획재정부는 다 계획이 있을 것이다.

<하수정 |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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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4월 2일 (출처:경향신문DB)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텔레그램 n번방 관련 ‘호기심’ 발언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황 대표는 엊그제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호기심으로 n번방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해 비난에 직면했다. 반인간적 성착취 범죄로 밝혀진 n번방 사건을 호기심 차원으로 바라보고, 호기심 핑계를 대는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4·15 총선 여성 후보 49명은 2일 “n번방에 가입한 26만명의 변호인인가”라며 황 대표의 발언을 규탄하고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황 대표는 “법리적 차원의 일반론적 답변”이라고 해명했다. 당에서는 “텔레그램과 암호화폐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실수”라며 거들었다. 하지만 ‘호기심’ 발언은 단순한 실언으로 지나칠 수 없다. 시민단체가 26만명으로 추산한 n번방 참여자는 그곳에서 성착취 불법촬영물이 다량 유포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가상통화 등 입장료를 기꺼이 내기도 한 이들이다. 고의성 없이 호기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황 대표는 이런 사실을 잘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분명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n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처벌을 청하는 국민청원에 수백만명이 동의한 사실도 몰랐다고 할 것인가. 

지금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n번방 피해자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발언이라는 점에서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피해자 인격을 말살한 채 놀잇감 취급하며 조롱을 일삼은 가해자들을 호기심 가득한 구경꾼쯤으로 봤다니 어이가 없다. ‘나 말고도 많은데, 나는 구경만 할 뿐인데’라며 죄의식 없이 이용자로 가담한 가해자들이 n번방을 키워나간 주범이다. 그들은 제2, 제3의 n번방을 계속 청했고 입장료로 양분을 공급했다. 이런 면에서 ‘호기심’ 발언은 실언이 아니라 막말이다. 법무부 n번방 사건 태스크포스에 합류한 서지현 검사는 “호기심은 위험하다”며 “호기심에 그랬다는 범죄자는 ‘사이코패스’로 달리 판단한다”고 황 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번 발언도 막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황 대표는 지난해 민경욱 대변인의 ‘천렵질 논평’ 등이 막말 논란을 빚었을 때 “아무것이나 막말이라고 하는 그 말이 막말”이라고 했다. ‘호기심’ 발언이 막말인지 아닌지는 유권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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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에게 1000만~3000만원을 연 1.5%로 빌려주는 ‘소상공인 초저금리 대출’ 신청이 전국 62곳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지역센터와 전국 기업은행, 14개 시중은행에서 1일부터 시작됐다. 소진공 센터에서만 실시해오던 소상공인 긴급 정책자금 대출이 신청 폭주로 ‘병목현상’이 빚어지자 창구를 기업은행과 시중은행으로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소상공인 신청자 상당수가 새벽부터 줄을 섰다가 접수마감으로 허탕치며 돌아서는 일이 되풀이됐다.

서울지역 한 소진공 센터에서는 이날 오전 6시30분 현재 소상공인이 50명 넘게 대기했지만 이들 중 20명은 센터가 문을 열기도 전에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당일 현장접수 선착순 30명’ 안에 들지 못했던 탓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지역센터를 찾았다가 허탕친 소상공인들의 항의가 종일 이어졌다는 보도도 나온다. 반면, 신용등급이 1~6등급으로 비교적 높은 소상공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의 대출창구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정부는 소상공인 대출신청의 병목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소진공 지역센터의 대출신청 접수를 2부제로 운영토록 했지만 상황은 별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 소상공인들은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곳이 소진공 한 곳뿐이다. 하지만 소진공 직원은 전체 62개 센터에 600여명에 불과해 몰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소상공인들이 매출 격감으로 가게 임대료조차 내기 어려운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 고비를 넘기려면 급전이 필요한데 소진공 지역센터당 현장접수 여력이 30명 안팎에 불과하니 하루에 2000명이 채 안되는 이들만 대출신청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라면 저신용 소상공인들의 대출 병목현상이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추가 보완책을 서둘러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신용이 낮은 소상공인들도 시중은행과 기업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4개 시중은행들은 은행별로 수백개의 전국 지점망을 갖추고 있다. 6대 시중은행 점포만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5300여개에 달한다. 소상공인들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병목현상은 쉽게 해소될 것이다. 저신용 소상공인들이 우선 은행에서 시장금리로 대출을 받은 뒤 이자 차액을 정부가 대신 내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면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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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 기고


영화 <벌새>의 한 장면.

“너네 싸우지 좀 마.”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가 오빠 대훈이 자신을 때렸다고 힘겹게 고백하자, 엄마가 던진 말이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대훈 역시 또다시 넘어간 상황에 안심하고 밥을 먹는다. 언니 수희만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 허망한 눈길로 은희를 바라본다.

내 주변의 여성들은 n번방 사건을 겪으며, 모두 몸의 통증을 호소한다. 한국에서 살며, 자신이 겪은 크고 작은 성폭력의 기억이 몸에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절망 속에서 말을 한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그러자 말들이 튀어나온다. “이 사건으로 남녀 대결이 되면 안된다. 대책을 논의해야지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남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이 말들을 들으며 <벌새>의 바로 저 식사 장면이 떠올랐다.

여성을 향한 남성 폭력이라는 명백한 사건을 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이 유령 같은 언어들은 어디서 왔을까. 그 말의 발화자들은 갑질을 하는 상사로 인해 괴로워하는 회사원에게 상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 노예제 폐지를 위해 투쟁하는 흑인들을 향해, 백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는가. 군대 내 폭력을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선임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니, 선임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수 있는가.

여성들이 분노할 때 이 사회는 종종 ‘감정적이지 말라’는 말을 한다. 백인들 역시 흑인들에게 ‘성난 흑인 여자/남자’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하지만 여성들이 감정적인가. 우리는 ‘홧김에’ ‘안 만나줘서’라는 제목이 붙은 여성을 향한 남성 강력범죄 기사들을 너무나 자주 본다. 여성들은 지금 ‘홧김에’가 아니라, 자신의 생을 걸고 이야기한다. 여성들에게 이 사건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관계, 몸의 안전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을 두고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은 이제껏 여성들이 살아내야 했던 현실을 부정한다. 공중화장실 곳곳에 불법촬영 방지 캠페인이 이뤄진다. 소수가 범죄를 저질러서는 일어나지 않을 대대적 캠페인이다. 

한국의 거리에서는 너무나 쉽게 ‘아가씨 항시 대기’ 등의 간판들을 본다. 이 간판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여성이 상품이라는 거듭되는 메시지다. 이 사회가 남성들이 룸살롱에서 고액의 불법 성구매를 하는 것을 ‘비즈니스’라고 호명할 때, 여성들은 스타벅스의 커피만 마셔도 ‘된장녀’가 됐다. 소라넷·버닝썬·웹하드·다크웹의 가해자들이 기이하게 ‘관대한’ 처벌을 받을 동안, ‘된장녀’라 호명됐던 여성들은 이제 ‘맘충’으로 불리게 됐다. n번방의 가해자들은 갑자기 한국 땅에 불시착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남성 공동체가 즐기고, 방관하고, 외면한 ‘강간문화’와 ‘여성혐오’의 비극적인 결과다.

남자들은 또래 남자들의, 남자 선배들의,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남성성을 습득한다. 남자들은 주변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자신의 남성성 놀이를 배워간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지만,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이제 여성 청소년들에게 남자를 조심하라는 교육 대신, 남성 청소년들에게 여성을 착취 도구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라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는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이 불안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카메라가 무서워 공중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그 처참한 불안을.

n번방 사건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녀 갈등’이 아니다. 흑인들이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시작했을 때, 백인들은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로 고쳐 부르곤 했다.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휴머니즘으로 고쳐 부르려 한다. 권력자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거듭해서 잘못 호명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면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직면은 고통스럽고 그렇기에 큰 저항을 부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피해자 지원 그리고 남성 공동체의 자기 직면과 여성의 고통에 대한 경청이다. 이 ‘강간문화’는 끝나야 한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않은가.

<김보라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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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운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1일 타다 서비스가 종료된다. 이재웅씨는 자신이 명명한 타다금지법이 통과되기 직전, 페이스북에 ‘1만명의 드라이버는 갈 곳이 없다’라고 썼다. 법이 통과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일자리를 잃은 드라이버들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쳤다.  

보통 1만2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장님이 폐업을 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물론 대표가 사죄한다. 이재웅씨는 혁신적으로 국회와 국가 탓을 했다. 더 황당한 것은 통보 방식이다. 과거에는 문자해고가 문제가 됐는데, 오늘날 혁신가들은 페이스북으로 폐업과 해고 통보를 한다. 대표의 페친이 아니라면, 회사가 망했는지도 알기 힘들다.  

이쯤 되면 경영상 위기를 핑계로 정리해고를 하는 대기업이 착하게 보인다. 전통적 기업들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퇴직금이라도 쥐여주고 내보낸다. 게다가 노동법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려면 50일 전에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하고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다금지법이라는 말도 일방적 주장이다. 여객운송사업법은 빌린 차로 돈 벌지 말라고 못 박아 놓았다. 다만, 가족단위로 놀러 가면 택시를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11~15인승 승합차는 예외로 했다. 타다는 이 빈틈을 근거로 11인승 카니발과 운전기사를 빌려주면서 1~2명의 손님을 태우는 비효율적인 콜택시를 탄생시켰다. 택시는 면허수량을 제한받지만 렌터카는 규제가 없다. 렌터카로 콜택시를 하는 걸 허용하면 도로는 카니발로 점령될 것이다. 꼼수로 시작한 사업이, 언제든지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을 대표가 몰랐을 리 없다.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았다면 투자자들과 1만2000 드라이버들을 기망한 것이다. 국가는 기여금을 내고 사업을 지속해보자고 했지만, 이재웅씨는 여기서 혁신을 멈춘다라는 엉뚱한 말을 하고는 회사를 나와 버렸다. 

사업가가 위험(risk)을 무릅쓰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패에 대한 책임이다. 타다가 무책임하게 도망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타다 드라이버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사와 타다 사이에 중간관리업체를 둬 책임을 피했다. 용역계약과 간접고용이 합쳐진 최악의 형태다. 노동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 사장은 일하는 사람을 맘대로 쓰고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승객이 사랑한 타다의 혁신은 프리랜서로 불리는 드라이버들이 근로자처럼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사들이 출퇴근을 정확하게 하고,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승차 거부를 하지 않은 것은 타다의 업무지시를 준수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고정급 1만원의 비밀이 있다. 타다가 난폭운전을 하지 않고, 택시는 가지 않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간 이유도 많은 승객을 정신없이 태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 타다 기사들이 받은 시간당 1만원은 최저임금 위반이다. 이들이 근로자였다면, 주휴수당, 연장, 야간, 휴일, 연차 수당과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다. 타다 기사들도 알고 있었다. 지난 3월25일 박재욱 대표를 만나기 위해 VCNC를 찾은 타다비상대책위 소속 드라이버는 ‘최저임금 위반이라는 걸 알았지만, 타다와 함께하고 싶어서 참고 일했다’고 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대표들이 페이스북 대신 자신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이 주식시장 상장, 매각, 합병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을 엑시트라 부른다.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되면서 5조원짜리 엑시트를 보여줬다면, 타다는 성공적인 폐업의 엑시트를 보여준다. 만약 타다가 1만2000명의 드라이버에 대한 책임은커녕 진지한 대화 한 번 없이 사업을 종료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방치한다면, ‘잘되면 배민이고 못 돼도 타다’라는 신념을 가진 창업가들이 양산될 것이다. 이것이 스타트업이 말하는 혁신의 슬로건이 아니길 바란다. 사람은 필요할 때 빌려 쓰고, 필요 없으면 버려도 되는 렌터카가 아니다.

<박정훈 |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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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4월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고 더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잘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우리는 투표 전에 공개되어 있거나 접근할 수 있는 신상정보, 이력, 관련 뉴스 등 후보자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 누가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예전에는 선거관리위원회 공인 후보자에 대한 자료들과 주요 언론을 통해서만 이러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중화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 획득이 가능하다. 다양한 포털사이트, 유튜브, 카카오톡, 라인, 페이스북, 링크드인, 트위터, 위챗, 와츠앱 등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인터넷과 SNS 서비스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가 흐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정보 중에 상당한 양의 가짜뉴스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는 공간의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 이러한 가짜뉴스가 급속도로 다시 퍼져 나간다.  

SNS 서비스 제공자는 인공지능과 여러 알고리즘을 사용해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골라서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제품들을 팔 때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을 만한 것을 노출시키는 전략으로 활용된다. 뉴스나 정보의 경우 비슷한 철학과 생각을 가진 SNS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뉴스와 정보에 더욱 자주 노출되게 된다. 즉 알고리즘이 추천한 뉴스를 팩트체크 없이 받아들이고 끼리끼리 공감한다. 유튜브의 경우 평소 자신이 관심 있게 보던 영상과 관련된 영상들이 초기화면에 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신문이나 TV를 통하지 않고 SNS만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상황이어서 가짜뉴스와 가짜정보들에만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9월 미국 휴스턴대학교 생물학과 알렉산더 스튜어트 교수와 MIT, 영국 옥스퍼드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은 ‘정보 게리맨더링과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게리맨더링은 어떤 특정 후보자나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가 자기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구획했는데 그 나눈 모양이 타오르는 불속에서 산다는 상상의 괴물인 셀러맨더와 비슷하다고 하여 주지사의 성인 게리와 괴물의 맨더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SNS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의 특징은 철학과 생각, 관심 분야, 좋아하는 것 등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2520명을 대상으로 게임이론을 적용해 그들의 행동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네이처에 나온 논문 내용을 연예인 인기투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연예인 A와 B 중 더 인기 있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투표를 하고 맞힌 사람에게는 경품을 준다고 하자. 다만 투표 결과 비기게 되면 아무도 경품을 못 받는 상황이다. 연예인 A를 좋아하는 10명과 연예인 B를 좋아하는 10명이 있고, 이들은 SNS에서 각각 4명씩과 연결되어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약 연예인 A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연결되어 있다면 모두가 A에 대한 이야기와 뉴스를 주로 접하며 “나는 이번에 A에게 투표할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기투표 시 자기 주변은 모두가 A에게 투표한다고 하니 “분명히 A가 이길 것이야”라고 믿고 투표하게 될 것이다. 이는 B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SNS 연결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A를 좋아하는 사람과 연결된 사람들 중 3명이 B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하면 이 사람들은 “대세가 B인가 보다”라고 잘못 판단하게 된다. 이 경우 A에게 투표하면 자신의 선택이 무위로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A를 포기하고 B를 선택하게 된다. 즉 SNS상에서의 연결 방식 조작으로 정보의 흐름과 그로 인한 판단 및 결정에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이는 누군가가 나쁜 마음으로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SNS 제공자가 운영하는 시스템상에서 점점 더 고도의 수준으로 활용되는 기계학습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고 하겠다. 현재와 같이 인터넷 정보와 SNS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위적 댓글조작 사건도 결국 여론을 왜곡하기 위한 또 다른 정보 게리맨더링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짜뉴스, 익명성을 악용해서 막말을 쏟아내는 악플 등과 더불어 인터넷과 SNS 이용에서 근절되어야 할 사회악이다. 예전 신문, TV, 라디오 뉴스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비해 규제를 덜 받거나 거의 안 받는 인터넷과 SNS 정보와 행위들에 대해 적정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포털은 지난달 19일부터 모든 뉴스 댓글 작성자의 댓글이력이 모두 공개되도록 했다. 앞으로 다른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서도 유사한 조치들이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시스템적으로 정보 게리맨더링이 근절되기 전까지 우리는 정보 게리맨더링에 당하지 말고 다양한 정보들을 잘 분석해 대응하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4월15일에는 자신만의 정보 분석 기법들을 잘 활용해 우리나라를 위해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잘 뽑아야겠다.

<이상엽 |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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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문중원 기수의 발인식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소속 조교사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ㄱ씨에게 외상 등 타살 흔적은 없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부검 결과 ㄱ씨에 대해 타살점이 없다며 변사처리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 2일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개인의 극단적 선택에 의한 죽음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단순 자살로 치부하기에는 멈칫거려진다. ㄱ씨의 죽음을 놓고 노조와 시민단체가 나선 이유다.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난해까지 기수 4명, 마필관리사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교사의 사망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29일, 7번째로 숨진 기수 문중원씨의 유서를 통해 경마장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문씨는 유서에서 7년 전에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마방배정 심사에서 번번이 떨어졌다며 마사회의 갑질과 부조리를 고발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책임을 개인마주제로 돌렸다. 개인마주제란 마주와 조교사가 위탁계약을 맺은 뒤, 조교사는 말 관리사를 고용하며 기수와 기승(騎乘)계약을 맺어 경마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피라미드형 위계 관계에 있는 조교사와 기수·마필관리사가 경마의 실질 운영자이지만, 조교사 면허 교부와 마방배정 심사권은 마사회가 갖고 있다. 

조교사 ㄱ씨는 숨지기 사흘 전인 지난달 말 문중원씨 사망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문씨보다 조교사 면허 취득이 늦었지만, 마방배정 심사는 먼저 통과했다. ㄱ씨가 문씨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경찰 조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강압수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현재로서 ㄱ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밝히긴 쉽지 않다. 하지만 경마공원 한 곳에서 8명이나 목숨을 끊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달 9일, 문중원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100일이나 장례가 늦춰진 것은 마사회가 문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장례 이틀 뒤 마사회와 공공운수노조는 ‘사망사고 재발방지 합의서’에 공증을 했다. 합의서에는 책임자 처벌, 조교사 심사비리 근절, 과도한 경쟁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합의가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또 한 명이 숨지고, 다시 대책위가 꾸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 것인가? 마사회가 답해야 한다. 조교사 ㄱ씨의 죽음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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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1일 오후 서울 인의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이 종로구 후보자들의 선거벽보를 정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4·15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여야 후보들은 투표 전날인 14일 자정까지 13일간 유세, 토론회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한 표를 호소할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차갑다. 거대 양당은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한 선거법 개정 취지를 무시한 채 앞다퉈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위성정당에 의원을 꿔주는가 하면 엄연히 법적으로 독립된 모정당의 대표가 위성정당의 공천 결과를 한방에 뒤집는 불법과 편법이 이어졌다. 

온갖 꼼수가 난무하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정책과 비전 경쟁은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대체, 기본소득 60만원 지급 등 급조 공약을 내놨다가 급하게 거둬들였다. 급기야 모정당인 민주당의 정책을 복사해서 10대 정책이라고 내놨다. 미래통합당은 공식 유튜브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임기가 끝나면 교도소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이면 된다”고 막말을 했다가 이를 삭제하고 공동선대위원장이 사과했다. 어느 총선에서도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무책임하게 정치혐오를 키우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낯으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는 것인가. 코로나19 감염 공포가 겹치면서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당과 정치인들이 실망스럽다고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치혐오로는 나쁜 정치를 바로잡을 수 없다. 청년실업에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투표는 외면한 채 기득권 정치를 비난해봐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최선의 후보가 없으면 차선을 찾고, 차선도 없다면 차악이라도 고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투표권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최고의 무기다. TV토론과 공보물 등을 참고해 각당의 정책과 후보자들의 면면을 꼼꼼히 따져보고 대표를 선출하자. 정당의 이념과 정책은 의원의 의정 활동으로 이어진다. 자질 없는 후보자가 당선되면 저질국회는 반복된다. 반노동·반평화 정치를 끝내려면 노동과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유권자의 참여만이 잘못된 정치와 정치혐오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나쁜 정치인은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고 했다. 투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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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인천국제공항과 영종도를 특별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공항 및 항만 노동자들에 대한 한시적 해고 금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지난달 계약직 노동자 50여명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감염병 검체를 채취하는 임상병리사 10여명, 간호조무사 20여명, 조리원 21명에게 4월에 계약이 끝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병원 측은 “노동법과 관행에 따라 한달 전 계약 만료를 알린 것”이라며 휴업 중인 조리원들에겐 월급 70%를 지급해왔다고 밝혔다. 자체 수입은 없고, 정부가 이달 중 주겠다고 한 ‘손실 보상’도 구체적인 공문은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주름 깊어진 경영의 직격탄을 밑바닥 계약직들이 먼저 맞은 셈이다. 방호복 입고 땀 흘리던 그들이 받았을 허탈감, 비슷한 처지의 병원 비정규직들이 삭일 아픔이 작지 않을 터다. 그러지 않아도 의료진은 지금 지쳐가고 있다. 병원 측이 1일 노조와의 협상 끝에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에 약속한 손실 보상을 서두르고, 병원은 고용 유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1일 ‘코로나19 피해 상담 사례’를 공개하는 자리에서도 다급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항공 수하물을 분류하는 하청회사 노동자는 지난 보름 새 ‘급여 70%를 주는 6개월 유급휴직’→희망퇴직 신청→‘4월만 유급휴직, 5월부터 무기한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통지가 이어졌다고 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코로나19보다 생계 위협이 더 무섭다. 코로나 걸려서 자가격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가격리돼 생계지원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서로 눈물나는 얘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하물 노동자는 정부 근로감독을 바랐고, 특수고용노동자는 법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실물경제 한파에 후행하는 게 고용위기다. 코로나19가 번지는 미국에선 3월 둘째주 28만명이던 실업수당 신청자가 셋째주 328만명으로 12배 늘었다. 미국보다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도 2월 실직자는 29%나 급증했다. 4월 중에 발표될 3월 숫자는 전문가들도 얼마나 더 치솟을지 가늠키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도 저생산-고실업-저소비의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휴업수당 상향, 4대 보험료 감면 식의 응급처방을 넘어 엄습해오는 해고 한파를 막는 데 선제적 대책과 재정을 집중할 때가 됐다. 

미 동부 애팔래치아산맥 정상을 따라 755㎞의 ‘블루리지’ 산악도로가 놓여 있다. 환상적인 드라이브·관광 코스가 된 이 길은 1930년대 실직 노동자들이 닦았다. 대공황을 넘긴 뉴딜의 중심에 사람과 일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켜야 경기 회복도 빨라진다. 정부도 기업도 이 경험칙과 해법을 새기며 코로나19 역경을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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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방울토마토를 심어야겠다 싶어 장에 나갔는데, 모종이 야물어 보이지 않아 한 주 거르기로 했다. 더운 날 방울방울 영근 토마토를 보면 잠시 행복해지겠다. 

아이가 어릴 때 교회 마당에서 방울방울 비눗방울을 날리곤 했다. 어른들은 딱딱한 장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릴 때, 하느님은 그 시간 누구랑 함께 웃고 놀았을까. 주디 갈런드가 부른 노래 ‘오버 더 레인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귀여운 강아지 토토에게 불러주던 노래. “무지개 너머 어딘가 높다란 곳엔 어릴 적 자장가에서 들었던 세상이 있어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이 맑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그곳에 있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요. 구름 따라 흘러갔다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요. 걱정 근심이 굴뚝 꼭대기에 걸려 있다가 레몬 즙처럼 방울방울 녹아버릴 그곳요. 그곳에서 날 찾게 될 거예요.”

온가족이 집에 머무는 요즘, 아빠가 붓글씨로 가훈을 적었다. “하면 된다!” 아이가 양면테이프로 벽에 붙이자 엄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빠 보고 다시 쓰시라 해라.” 아빠와 아이가 동시에 엄마를 바라봤다. “되면 한다!” 엄마는 이 한마디와 함께 쓸던 빗자루를 집어던짐. 헉~ 살얼음이 잠시 쫘악. 아빠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붓을 접었다던가. 

‘하면 된다!’의 세계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하면 된다!’의 세계는 왠지 불편하고 숨이 막힌다. 내가 이룬 마법은 야생초 꽃밭을 가꾸거나 산밭에 매실나무를 데려다가 꽃을 본 일. 나무아미 시불시불~ 염불 같은 시를 쓴 일. 거창하고 거대한 꿈과 성공은 양보하며 살아왔다. 오지에서 세상을 살리는 마법들을 펼쳐온 사람들. 변두리 생활이 피차 불편하고 고달파도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오지의 마법사들. 나누고 돌보며 살아가는 마법사들의 마을. 눈물을 흘린 뒤 무지개가 뜬 당신의 두 눈. 오버 더 레인보를 부르며 강물 따라 걷는 당신의 두 발.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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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설악산 흔들바위가 등장했다. 만우절 단골 메뉴다.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이 1일 오후 한동안 포털사이트의 급상승 검색어 1위였다. 외국인 관광객 11명이 호기심에 흔들바위를 밀어 떨어뜨려 입건됐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이내 공식 페이스북에 “안심하세요. 흔들바위는 건재합니다”라는 공지를 올리며 유머로 받아넘겼다.

4월1일, 만우절은 가벼운 거짓말로 서로 속이며 즐거워하는 날로 통한다. 중세 유럽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프랑스 샤를 9세가 1564년에 1월1일을 새해 첫날로 선포했는데, 그 이후에도 바뀐 줄 모르고 종전 첫날인 4월1일에 새해를 기념하는 사람들을 놀린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다. 프랑스어로 만우절 거짓말을 뜻하는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은 직역하면 ‘4월의 물고기’다. “잘 낚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2020년 만우절은 여느 해 같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불안하고 슬프고 우울해서다. 시답잖은 농담·거짓말·장난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구글은 2000년부터 매년 선보인 ‘만우절 장난’을 올해에는 하지 않았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농담은 다음 4월로 미루자”고 했다. 그간 구글은 검색만으로 짝을 찾아준다는 ‘구글 로맨스’, 동물소리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서비스, 보물지도 이벤트 등을 펼쳤다. 최근 확진자가 부쩍 늘어난 독일에서는 “코로나는 장난이 아니다”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기발한 이벤트로 웃음을 줬던 영화관들이 올해 만우절은 건너뛰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청소년이라고 거짓말로 우기면 할인해주기, 팝콘 통과 음료수 컵 바꿔 담아주기 등이 영화관의 인기 이벤트였다. 또 코로나19와 n번방 관련 가짜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만우절 장난을 멈추자”는 목소리도 온·오프라인에서 높게 일었다.

이런 와중에 한 인기가수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 중”이라고 SNS에 공개했다가 50분 만에 “만우절 농담”이라고 밝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도를 넘은 거짓말이다. 만우절이라 해도 입에 담아선 안될 망발이다. “경각심을 주려 했다”는 핑계도 용납될 수 없다. 철없는 농담은 안 하는 게 낫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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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 문재인 대통령이 3월26일 청와대에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하며 코로나19 공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난달 24일 밤 두 정상의 통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의료장비 지원을 요청했다는 뉴스를 전달받은 김 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졌다는 소식에 자신이 문 대통령에게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보낸 게 불과 몇 주 전 일인데, “초대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남조선에 도움을 청했다고? 대남 무시 전략을 구사하며 북·미 정상 간 친분 관계 유지에만 신경써온 김 위원장도 내심 놀라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한국에 코로나19 물품 지원을 요청해온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까지 한국에 방역물품 공급을 정부 차원에서 요청한 나라는 81곳, 민간 부문까지 더하면 117개국에 달한다. 루마니아는 한국산 방호복과 진단키트를 긴급 수송하기 위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수송기까지 동원했고, 덴마크 보건당국은 한국 업체의 진단키트 구매 제안을 거절했다가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 역시 일찌감치 한국으로부터 마스크 등 의료용품을 지원받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앓는 상황에서 북한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밝히지 않고 있지만 수천명의 ‘의학적 감시 대상자’가 발생하고, 유치원과 초·중·고교 방학을 거듭 연장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 이용을 제한하는 등 초특급 방역에 나선 것을 보면 여타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근 북한은 중국·러시아·이란 등과 함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서방의 제재가 해제돼야 한다고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코로나19 대응을 명분 삼아 제재 완화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조성해보려는 목적일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민생과 경제에 역점을 두고 선대와는 차별화된 리더십을 보이고자 한다면 지름길을 두고 이렇게 돌아갈 일이 아니다.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대응은 엄밀히 별개 사안이며, 둘을 엮어본다한들 해결될 일도 아니다. 지금 김 위원장이 손을 내밀어야 할 곳은 자명하다. 이는 자존심 문제가 아니며, 국력이나 체제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생존과 안전을 위함이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 위원장에게 수모를 안긴 채 매몰차게 회담장을 떠났던, 늘 아쉬울 게 없어보이던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 내 코로나19 확산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동북아의 작은 나라에 SOS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과 보건 분야 공동협력을 바란다”며 감염병 확산에 대한 남북 공동대응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김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지금 김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여론과 미국을 문 대통령이 어떻게 설득하고 돌파해 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에 진정성과 역량이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로 삼아보라. 다시 실망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 비난 담화를 쏟아내도 늦지 않다.

<이주영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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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고통의 차별이 있다. 차별의 고통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니다. 차별이 고통을 낳는데, 그 고통조차도 차별적으로 다뤄진다는 뜻이다. 고통의 차별이 차별의 고통을 완성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가 모든 고통에 차별 없이 감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개별 고통의 양을 최대한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의 높낮이를 정확히 잡아내는 절대음감처럼,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지하는 절대통감이라는 것을 갖추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상상을 조롱한다. 실제의 고통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평가되는 고통들이 있다. 몰랐던 것은 아닌데, 국민청원 게시글 하나가 새삼 이런 생각에 빠지게 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조주빈에게 살인을 청부한 공익근무요원이 죽이려고 한 대상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딸이다. 피해자인 여성 교사가 직접 글을 올렸다. 제자에게 9년 동안 스토킹을 당했다. 교무실에 칼을 들고 나타났고, 아파트에 살해 협박 낙서를 남겼으며, 메일을 해킹하여 타인에게 피해자를 사칭했다. 피해자는 여러 해를 고통받다가 2018년 가해자를 고소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복역 기간은 고작 1년2개월이었다. 피해자는 그사이 주민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직장과 거주지를 옮겼으나, 공익근무요원이 된 가해자는 피해자의 정보를 열람하고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조주빈과 모의했다. 그래서 피해자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글을 올렸다고 했다. 

이 고통은 정당하게 다루어졌는가. 이런 경우 피해자는 최소 세 단계의 고통 계량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첫째, 경찰. 경찰은 강력범죄를 처리하느라 언제나 바쁘다. 스토킹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은 범죄라고 생각하면 돌려보낼 수도 있다. 둘째, 검찰. 다행히 가해자를 기소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스토킹을 가볍게 여기는 현행법이 기다리고 있다. 법대로 구형된다고 해도 가해자에게는 복수심을 단련시키기에 좋은 기간 정도일 것이다. 셋째, 재판. 양형기준이라는 것이 있어 선고할 형량이 다시 조정되는데 여기서 가해자는 감경이라는 행운을 또 한 번 누릴 수 있다. 세 단계를 거치면서 피해자의 고통은 헐값이 된다. 그리고 이제 피해자는 가해자의 출소를 기다리며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세 단계의 과정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것은 고통의 사회적 위계다. 고통의 무게를 측정하는 권한은 대체로 다수 가해자의 성별과 같은 성별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왔다. 입법과 양형의 과정에서 그들은, 경험의 한계 때문이든 성의의 부족 때문이든, 피해자의 고통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 9년 동안의 지옥과 1년2개월의 징역이 같은 값이라고 주장하는 법의 수학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처벌의 정도는 고통의 양에 비례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법학 내재적 기준에 따르는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는 우기고 싶다. 성착취나 스토킹의 대상이 되는 것과 살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토록 다른 일인가? 피해자가 자살한다면 그것은 가해자의 살인 아닌가? 법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우리는 치가 떨린다. 

양심적 방관자들의 몫도 있다. 그들은 악(惡)과 추(醜)의 범주를 혼동한다. 악은 나쁜 것이니 싸워야 하고 추는 더러운 것이니 피해야 한다. 예컨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재난마저 이용하는 특정 언론사들이 추로 파악될 경우 혐오의 대상이 된다.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것이므로.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가? 마찬가지로 어떤 남성들이 성범죄 사건 앞에서 ‘나는 다르다’고 말할 때, 이는 그동안 자신이 악을 추로 분별해왔고, 더러운 놈들과의 ‘미학적 거리 두기’를 잘해왔다고 주장하는 일이 될 뿐이다. 선악 분별이 행해져야 할 곳에서 미추 분별이 행해지면, 피해자의 존재와 그들의 고통이 간과된다. 우리가 깨끗한 방관자가 되는 데 만족하는 동안 악은 점점 더 오만한 악이 될 것이다. 

아마도 2020년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른 해로 기억될 것이다. 끔찍한 전쟁 서사에서 가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때는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생명의 값이 똑같이 다루어질 때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고통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 일을 하기 위해 의료진과 공무원들이 달려갈 때, 그때만큼은 고통이 평등하게 느껴져 눈물이 난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전쟁은 고통의 오랜 차별 때문에 발발했다. 하나의 전쟁은 모두의 싸움이었지만 다른 전쟁은 절반만의 싸움이었다고 기록되어선 안 되리라. 두 전쟁은 결국 같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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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월28일자에 게재된 기고문 ‘아동음란물 정의 세분화해 양형기준 세워야’에 대한 반론을 쓰고자 한다. 기고문은 실존아동 성착취물에 대한 실제 형량이 낮은 이유로 ‘가상아동’을 대상으로 한 다수 음란물과 ‘실존아동’에 대한 성착취물이 동일하게 취급되니, 둘을 구분해 실존아동에 대한 성착취물 양형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착취물에 대한 형량 문제는 성착취물에 경각심 없는 사법체계의 관행을 고쳐야 할 문제지, 가상과 실존의 구분 문제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등으로 이뤄진 가상아동 성착취물은 온라인의 공유형태와 만나 실존아동에게 치명적 악영향을 끼친다. 온라인에서의 공유는 특정한 상황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해 콘텐츠와 관련된 인식 혹은 의식을 강화한다. 가상아동을 성적대상화하는 콘텐츠의 공유행위는 실제 피해 아동이 없어서 다행인 게 아니다. 실제 아동에 대한 성학대를 가정하는 데 쓰이며, 아동 착취를 쾌락으로 여기는 행위를 강화할 수 있어 해악을 끼친다.

‘n번방’ 사건을 보면 성착취에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자들을 초대하여 영입했는데, 초대조건 중 하나로 ‘일본 애니메이션 여아 사진으로 프로필을 변경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비누 사용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로 아동의 누드 그림을 불투명 형태로 비누 안에 넣어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듯 아동 성착취라는 행위에 가상아동은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실존아동을 다루는 것만이 성착취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가상아동을 다룬 음란물이 하위문화(서브컬처)로서 유행한 것은 커뮤니티 안에서만 통제가 되었기 때문이지만, 이것이 커뮤니티 밖으로 무절제하게 벗어난다면 범죄행위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음란물은 특정 소재를 감각적 쾌락수단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이기에 비판과 제한을 받아야 한다. 실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상아동을 성욕의 수단으로 삼아 쾌락의 소재로 쓰는 것이 아동의 존엄성이란 개념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명백하다.

가상아동과 실존아동을 구분하여 두 대상에 대한 처벌을 달리하자는 주장은 두 경우 다 성착취에 아동이 이용된다는 본질을 호도한다. 이렇게 양자에 대한 처벌을 구분하면 실존아동 성착취물 처벌 양형이 증가할 것이란 의견은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사회가 아동을 성인과의 성행위 상호합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아동을 다룬 음란물은 존재할 수 없다. 유엔아동인권이사회의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9월 성착취물의 규정에 가상아동과 실존아동을 같이 처리하는 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포르노그래피의 제작, 배급, 수출, 전송, 수입, 의도적 보유 및 광고를 전 세계적인 범죄로 다룰 것을 강조했다.

음란물의 대상이 가상아동이냐, 실존아동이냐에 따라 형량의 기준을 달리하자는 주장은 자칫 가상아동을 실존아동 성착취의 대안으로 취급할 수 있게 하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무엇보다 법 집행자들이 가상이든 실존이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가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심각한 범죄라는 것에 대한 인식부터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남명희 | 자유기고가·<팬픽션의 이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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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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