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다. 파리 아우스터리츠역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다시 기차역에서 갈아탄 자동차로 30분을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마을이다. 하루에 버스가 세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의 서너 곳 남짓했던 소박한 호텔들은 대개 문을 닫고 이젠 하나만 남았다. 사실 지난봄에도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올라 격자무늬 창이 있는 객실에서 일주일을 지냈었다. 얼굴만큼 꽃송이가 큰 달리아가 활짝 피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일주일을 묵기로 했다. 이처럼 허름한 호텔에 일주일씩이나 머무는 까닭은 길 건너에 있는 마을을 산책하기 위함이다. 그 마을은 사람 대신 ‘기억하라’는 프랑스어(Souviens-toi)와 영어(Remember) 문구와 ‘침묵(Silence)’이라는 팻말이 낯선 이를 맞이하는 곳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마을의 옛 이름은 ‘오라두르 쉬르 글랑(Oradour-sur-Glane)’이며 토요일이던 1944년 6월10일 오후, 마을을 지나다니던 전차의 기적소리와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멎었고, 성당의 종소리와 대장장이의 망치소리조차 자취를 감췄다. 당시 마을에 살던 이들은 650여명이었으나 그날 대부분의 주민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는 아이와 여자들이 갇혀 있던 성당에 폭탄이 터지기 직전 3m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린 마담 루팡쉬와 남자 다섯 명을 합하여 여섯이 전부이다. 남자들은 로디의 헛간에 갇혔다가 도망쳤는데 그 헛간에서만 60여명의 남자들이 학살당했다. 그 외 어린아이 205명과 여자들을 포함한 나머지 주민들은 앞에 말한 성당이나 농가의 헛간에 갇힌 채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단 몇 시간 만에 1000년이 넘게 주민들이 살아온 평화로운 마을 하나가 통째 사라지는 터무니없이 잔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주민들을 학살한 이들은 연이어 마을의 그 어느 것도 남겨 놓지 않겠다는 듯이 불을 질렀으며 마을의 그 어느 한곳도 불길이 닿지 않은 곳 없이 깡그리 타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참혹한 학살극을 벌인 이들은 나치친위대 소속의 제2 기갑사단인 ‘다스 라이히(Das Reich)’였다. 그중에서도 기갑사단 기계화 보병연대의 제1대대 지휘관이었던 소령 아돌프 오토 딕만(1914~1944)이 마을에 주둔했던 독일군 중 가장 계급이 높았으며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일을 저지른 3주 후 노르망디에서 전사했지만 그가 남긴 보고서는 더욱 분노를 자아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을 주민들이 집집마다 폭탄을 감춰 두었는가 하면, 독일군을 자동차에 묶어서 처참하게 죽였고, 마을 우물에는 독일군의 시체가 즐비했으며 레지스탕스들이 성당의 지붕에 폭탄을 감춰 두었다가 마을에 불이 나자 터져서 주민들이 몰살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전후에 거짓임이 밝혀졌다. 

전쟁이 끝나자 샤를 드골 장군(1890~1970)은 오라두르 쉬르 글랑을 순교자의 마을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로 했으며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돌로 지은 집은 거뭇하게 그을음이 내려앉고, 씽씽 달려서 왕진을 온 의사의 푸조 자동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며 마을을 상징하고 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주던 주유기나 건물들도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전차가 다니던 철로 위로는 애자에 감긴 전선이 어지러이 얽혀 있고 전기도 흐르지 않는 전선을 감고 있는 전봇대가 외롭다, 후에 집집마다 그곳에 살았던 이의 직업이며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붙여 놓았는데 더러 허물어진 집 안에 사진을 남겨 놓은 집도 있다. 어떤 집에는 갓난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사진이 있어 함께 살던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양장점과 주점 그리고 마차를 수리하는 이의 작업장과 철공소, 이발소와 미용실, 전차역과 바로 이웃한 우체국, 전차역 앞 전봇대에 매달린 공중전화, 녹슨 철공소와 차량정비소, 성당 앞의 와인바와 호텔 건물까지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마을 모습은 내가 태어난 후 처음 대한 엄청난 풍경이다. 

마을을 둘러보며 누구 하나 얼굴에 웃음기를 띤 사람들이 없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다. 모두 처연한 표정으로 망연히 집들과 가재도구나 농기구들을 조심조심 바라보다가 짙은 탄식을 쏟아내거나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을 뿐이다. 나 또한 처음 텅 빈 마을과 맞닥뜨렸을 때 상상을 뛰어넘는 풍경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음은 물론 불현듯 솟구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았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사진기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장면들이 내 속에 새겨졌다. 그것은 현상되지 않은 채 잠상(潛像)으로 남아 있으며, 그 스멀거리는 기억 때문에 오늘 다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이 마을을 찾겠지만 2013년 9월4일에는 특별한 사람이 찾아왔다. 비록 상징적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당시 독일의 대통령 요하힘 가우크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피해자들로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독일의 다른 정치인들이 나치 수용소와 같은 장소를 방문해 참회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가 마을에 오자 학살 당시 살아남아 어느덧 89세의 노인이 된 장 마르셀 다트아웃은 “프랑스 대통령은 자주 만났지만 독일 대통령은 언제 오려나 기다렸다. 이야기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는 말로 그를 맞이했다. 

독일은 이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인류의 보편적 사고에 있어 큰 잘못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가 만족하지는 못할 테지만 되풀이하여 참회하며 다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가해자의 본분이다. 그러곤 자신들에게 드리워졌던 그늘을 벗겨내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과거를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인간 일반 누구나 삶을 사는 동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국가라고 해서 다를까. 요즈음의 일본이 더욱 안타까운 까닭이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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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해상에 있는 하시마라는 섬은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이 섬은 강제노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숨긴 채 2015년 7월 일본의 23개 근대산업시설 중 하나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 군함도 강제노역의 생존자 한국인 4명은 1997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만 패소한다. 이분들은 2005년 한국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와 2018년 대법원에서 마침내 원고승소 확정판결을 받는다. 보상 원천인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을 빌미 삼은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과의 경제전쟁을 선포한다.

1970년 12월7일, 브란트 서독 총리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숨진 바르샤바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는다. 2013년 8월20일, 메르켈 총리는 나치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나치 잔혹 범죄에 관한 독일의 책임이 절대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2019년 8월1일, 독일 외무장관 하이코는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독일인의 이름으로 저지른 만행에 대해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 독일의 역사 참회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1993년 8월4일, 일본 관방장관 고노는 일본군 성노예의 강제성 및 일본 정부 관여를 인정한 담화를 발표한다. 1995년 8월15일, 총리 무라야마는 일본의 전쟁 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다. 2005년 7월15일. 총리 고이즈미는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 계승 의지를 밝힌다. 2012년 아베 총리 취임과 동시에 “침략의 정의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부정한다. 2018년 10월18일, 일본 여야 국회의원 70여명은 전쟁 주범의 혼령을 모아 둔 야스쿠니신사에 머리를 조아린다. 역사를 부정한 채 전쟁이 가능한 나라, 새로운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운동 경축사에서 친일 척결과 독립운동 예우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 했다. 전쟁 후 프랑스는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알베르 카뮈와 민족반역자 척결을 내세운 샤를 드골 대통령을 등에 업고, 나치에 부역한 이들을 모조리 단죄함으로써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백범 김구 선생에 비해 국내 정치기반이 약한 이승만이 권력의 핵심에 친일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올바른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친일 척결은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친일파의 후손은 경제계, 사법계, 학계 전 영역에 걸쳐 대한민국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다.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자손들의 삶은 어떠한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반영된 실제 삶을 살고 있다. 국내는 물론 중국의 랴오닝, 지린 및 헤이룽장성 등에는 아직도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한국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서울시가 올해 광복절을 맞아 물질적으로 미약한 지원이지만,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 및 지원강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작은 위로가 된다.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고,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오류와 상처를 반복할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단순한 궤도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국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역사의 영웅에서 끌어내렸다. 기득권의 반발은 진실 앞에서 무너졌다. 다음의 광복절에는 한 단계 나아간 친일 척결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셨던 그 후손들의 행복과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역사 바로 보기가 실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치용 |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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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지도자와 선수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의 책략적 요소가 있긴 해도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땀방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국내외의 각종 선발 대회 및 출전권 획득의 과정이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고 절차인 바, 이것이 모두 종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1년 후의 무대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올림픽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보이콧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 흔히 올림픽을 ‘세계인의 한마당’이요 ‘우애와 친선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장내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연의 일이다. 장외에서는 온갖 스포츠 정치가 난무하고 글로벌 기업과 스포츠 권력이 충돌한다. 이를 분간해야 한다. 선수들의 땀방울에는 성원을 보내되 경기장 밖의 혈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시각으로 스포츠 권력과 일본 정치 책략과 글로벌 자본의 ‘각축전’을 비판하고 개입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시피 아베 정부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일본 사회 통합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제고 정도가 아니라 보수적인 야욕의 경기장으로 확연해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를 올림픽의 축포로 덮으려는 시도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성화의 첫 봉송지 결정은, 1964 도쿄 올림픽을 상기할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에 성화는 지금처럼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를 전국으로 봉송하여 일종의 올림픽 스펙터클 문화 선전의 장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였다. 히틀러로서는 성화를 아테네에서 개최 도시 베를린으로 직배송하기보다는 독일 전역의 도시를 순회하게 함으로써 파시즘과 올림픽의 이중 변주곡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를 고도의 전략으로 구사한 것이 1964 도쿄 올림픽이다. 이 대회의 성화 첫 봉송지는 오키나와. 성화는 오키나와의 주요 전적지를 순회하였으며 특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히미유리노탑에서 전쟁고아가 성화를 높이 들었다. 그렇게 출발한 성화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거쳐 도쿄에 입성하였고 히로시마 피폭 2세로 ‘원자 소년’이라 불린 청년이 최종 점화자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본은, 전쟁에 단지 패했을 뿐이며 원폭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임에도 세계 평화에 나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연출한 것이다. 

이 국가적 기획에 일본 전후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적극 동참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여러 경기장을 취재하면서 인간 신체에 대한 찬사와 올림픽에 대한 헌사를 쏟아냈다. 반면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히로시마 일대를 취재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올림픽이 극심했던 안보투쟁과 전공투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자민당 등 일본 우파 정치의 문화적 책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마무리된 폐막식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전 세계 인간이 이렇게 손을 잡고 원을 이뤄 춤추는 감동”이라고 썼고, 오에 겐자부로는 무질서하면서도 자유롭게 들어선 외국 선수단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입장한 자국 선수단에 대해 “꽤나 쌩뚱맞은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올림픽 폐막 3년 후에 스포츠 스펙터클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뒤엉킨 사태를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 묘사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올림픽 기간 중에 격앙된 ‘애국심 따위는 TV 스위치가 꺼지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나, 일본 우파는 무려 50여년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윽고 아베 정부에 이르러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헌법 개정, 경제보복, 후쿠시마 사태의 미봉과 정치 선전으로서의 ‘부흥’ 등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면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2020 도쿄 올림픽이 갖는 아베 정부의 정치외교적인 책략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낫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편 장외에서는 올림픽에 노골적으로 스며드는 아베 정부의 반평화적인 측면을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지도에 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었는가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하며 후쿠시마는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평화, 환경, 스포츠 단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가 도쿄 올림픽의 여러 문화 행사와 장치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수많은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베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와 비판의 관점을 지닌 수많은 일본 시민들과 만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올림픽의 장외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애의 행진을 해야 한다. 올림픽이 진실을 감추고 야욕을 펼쳐내는 장이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이며 그저 구호일 뿐인 ‘세계인의 축제’를 진정한 평화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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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러 부모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링크 하나가 공유됐다. 딸아이를 입학시키지 않고 홈스쿨링한 엄마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최근 기사였다.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집에서 직접 가르친 이 엄마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한 정황은 없었으나, 판사는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생활로 아이의 복지를 저해했다”며 아동복지법 위반(아동 유기, 방임)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채팅방의 홈스쿨러 부모들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불안해했다. 간혹 비정상적인 부모의 아동학대가 기사화되며, 홈스쿨링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례적인 이번 판결은 개인에게 교육의 선택권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홈스쿨링은 1990년대 말 시작된 대안교육운동과 그 흐름을 함께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안학교와 함께 입시와 경쟁 중심의 공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활기를 띠었다. 당시 귀농·귀촌 운동과도 맞물리면서 가족 모두가 시골로 이주해 홈스쿨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일을 돕거나 시골생활을 함께 꾸리며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했다.

최근에는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안’ 가기보다는 ‘못’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러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를 도시 속에서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모는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아이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의무교육은 ‘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교육인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 혹은 ‘학업 중단 학생’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홈스쿨러를 구분하는 경계 또한 모호해졌다. 한 홈스쿨러는 ‘혼자 집에 갇힌’ 듯한 용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세상에서 배우는 자, 로드스쿨러라고 칭하기도 했다. 일부 부모는 학습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특별 교육으로 홈스쿨링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홈스쿨링은 미국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합법이고, 아시아·아프리카까지 이를 허용하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가 도처에 널린 세상에, 학교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일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다양한 교육의 형태를 허용해 오히려 공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지평을 넓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일찍이 홈스쿨링을 합법화한 미국에서는 홈스쿨러들이 혼자 하기 어려운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수업을 공교육에서 함께 듣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듣는 수업을 줄이고 개인의 진도와 관심에 따른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하이브리드 스쿨도 미래 교육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법으로 처벌할 게 아니라 홈스쿨링의 장점을 살리되 그 개별화가 각자도생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그 개별화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된다. 의무교육 기간이 연장된다고, 한 해 5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20만명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제대로 풀어갈 ‘실력’일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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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체육대회를 할 때면 늘 고사를 먼저 지냈습니다. 고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역시 돼지머리입니다. 입이 귀에 걸린 놈으로 사 와 콧구멍 귓구멍에 지폐 꽂고 고사 잘 지냈습니다(요즘은 혐오감 줄이고 뒤처리도 곤란치 않게 돼지저금통, 가짜 돼지머리 등으로 대신하는 추세입니다). 대회 치르는 동안 뒤풀이 조는 솥에 돼지머리 넣고 한 번 더 삶습니다. 끓는 물 밖으로 귀가 비죽 솟아서 숟가락 나눠 쥐고 뜨거운 김 참으며 꾹 누르고 있자니 시골 출신 선배가 그럽니다. “야야, 놔둬. 귀는 저절로 익어.” 아! 그렇게 하나 배웠습니다. 뱀에게 물려도 끄떡없는 두꺼운 비곗살이라도 귀는 얇으니 덜 잠겼다고 덜 익진 않을 테죠.

속담에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핵심을 먼저 처리하면 부수적인 건 저절로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 역시 숨겨진 맥락이 있습니다. ‘머리’를 조직의 ‘윗대가리’로 보면 ‘삶다’는 ‘구워삶다’(여러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들다)가 됩니다. 그러면 ‘귀’는 ‘귀퉁이’ ‘끄트머리’ ‘말단’을 뜻하고 ‘익다’는 ‘안면을 트다’ ‘얼굴을 익히다’가 됩니다. 다시 말해 윗선을 구워삶으면 그 라인에 딸린 하급자들과도 쉽게 안면을 익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형님아우 하는 ‘빽’이나 돈다발 들이밀 ‘뒷구멍’만 있으면 일 번거롭게 할 거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는 법이지요.

급하다고 아무리 우는소리 해도 실무자가 안 된다고, 법규가 그렇다고, 절차가 있고 순서가 있다며 우직하거나 융통성 없이 뻗대면 보통 사람은 마냥 기다리며 동동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큰일을 먼저 보라, 그럼 작은 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비웃으며 구린 돈과 지린 접대로 ‘하이패스’하는 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돼지머리 썰 때는 꼭 귀부터 썰립디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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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운세를 살필 만큼 그리 고급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되는대로 밀고 나아갔다. 뒤늦게나마 날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의 훈련’을 소화한 아이가 대청도로 배치된 것이다. 스포츠뉴스가 끝나면 백령도가 표기된 지도가 떴다. 최북단 섬의 근황을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상냥한 음성이 몹시도 반가웠다. 첫 면회를 갔을 때 고독한 섬의 생태계도 염두에 두었지만 꽃보다는 쫄병이었다. 군인에서 아들로 돌아와 모처럼 시름을 잊고 동생과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2분3초’의 외박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해병 대신 꽃 보러 가는 길. 꽃산행을 응원하듯 배 이름도 하모니플라워다. 대청도에 내리니 5년 전의 생생한 추억이 땅보다 단단했다. 웬만한 지역은 일몰 이전에는 접근에 제한이 없었다. 대청도로 우편엽서를 제법 보낸 터라 이 지역의 주소는 지금도 훤히 왼다. 까나리액젓 담그는 통이 즐비한 옥죽동을 지나 모래사막 근처 용머리 해안을 탐사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흔한 순비기나무의 꽃, 해당화의 열매들이 한창이다. 

여름 바닷가에서는 벌거벗는 게 상책이다. 피서객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침내 그것과 만났다. 꽃에 입문했을 때, 오후 3시에 정확하게 꽃봉오리가 터진다는 말을 듣고 퍽 신기해했던 대청부채였다. 날카로운 칼 같은 잎이 서로 얼싸안으며 부챗살처럼 퍼진다. 나사처럼 배배 꼬인 채 지고 있는 꽃 옆에 피기 일보 직전의 꽃봉오리가 있다. 동영상 모드로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멀리 끊임없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짐작도 못할 저 바다의 깊이를 아들은 가슴에 들어앉혔을까, 생각하는 순간 꽃봉오리 하나가 확, 세상 구경을 하였다. 꽃잎 벌어지는 소리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렸나, 안 들렸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청도에서 대청부채를 보았다는 건 곡부에서 논어를, 달에서 이태백의 시를 읽은 셈에 비견할 수 있을 듯! 

제대 특명을 받고 하모니플라워를 탄 기분을 가늠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물에 뜬 배처럼 나의 기분도 파도 마루에 높게높게 걸리었다. 대청부채,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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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의 일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가족과 함께 집 근처 나들이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인천 계양산 자락에 예쁜 정원이 갖춰진 카페가 있었다. 열 살 난 딸과 아내랑 함께 바람이나 쐴 겸 향했다. 카페는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북적였다. 갑자기 딸이 “아빠! 여긴 내가 못 들어가는 곳이야. 여기 ‘노키즈존’이라 13세 미만 어린이는 들어갈 수 없대”라고 한다. 검색할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입구에 정말 그런 푯말이 서 있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을 찾아갔다. 아이에게 코코아 한 잔을 사주며 차별당하고 거절당한 기분에 대해 물어봤다.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기분이 어때?”라고 묻자, 아이는 “아빠, 엄마랑 오랜만에 바람 쐬러 나왔는데 나 때문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한다. 혹시 ‘여자’라서 차별당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만약 네가 한국 사람이어서 또는 피부색이 달라서 차별당한다면 어떨까?” 하고 물었더니 정말 불쾌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며 평등권을 기본적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건 없는 평등이 민주주의와 근대 인권의 핵심 개념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어느새 12년이나 경과했지만, 지금까지 이 법이 제정되지 못한 까닭은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은 일부 보수개신교와 출신국가와 성별 등으로 노동조건을 차별하는 재계의 반대, 그리고 이에 동조하거나 눈치를 보아 온 정부와 국회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차별과 혐오 정서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우리는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국가이지만, 지난해 제주 난민 사태가 보여주듯 난민 혐오 정서가 강한 사회이다. 3·1운동 100주년이라지만, 과거 우리도 나라를 잃고 세계 곳곳을 떠돌던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연세대학교에서는 이번 학기부터 실시하기로 한 보편적 인권교육에 대해 일부 세력이 ‘기독교정신에 반하는 인권교육’이라거나, ‘강제적 인권교육으로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각종 차별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참여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2017년 대선 때는 ‘국가인권위원회 법이 존재하므로 불필요하다’며 공약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했다. 이후 유엔에서 수차례에 걸쳐 우리 정부에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ILO 핵심협약 비준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우리에게 차별금지법과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한 이유는 작게는 공동체 내부의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과 혐오가 죄라는 사실을 널리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더 넓게 보면 조건 없는 환대(hospitality)라는 인류 보편의 정의를 위한 것이다. 환대는 공동체 안에 이미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배제되고 소외된 자에 대한 환대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마음을 울리는 경축사와 선언을 들려주었고, 시민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땅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위한 정부와 대통령의 의미 있는 실천이 보고 싶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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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4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3개월 만에 장외투쟁 재개를 선언한 황교안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장외투쟁을 지속해서 열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국민의 경고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가 지난 14일 대국민담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며 경고한 ‘특단의 대책’이 고작 장외투쟁이라니 명분과 실효를 운운하기에도 낯뜨겁다. 무엇보다 황 대표 스스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서, 국회에서 초당적인 대책과 해법 마련에 천착하지 못할망정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겠다니 무책임한 처사다. 정녕 실력과 열정이 있다면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는 국회라는 마당에서도 능히 가능하다. 더욱이 그 견제와 비판의 ‘운동장’이라 할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와 주요당직자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6일 오후 '긴급 국가안보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부터 세번째)가 16일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에서 개최한 ‘긴급 국가안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사

지난 4월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항의해 두 달 넘게 전국을 돌며 장외투쟁을 벌여 국회 기능을 마비시켰던 한국당이다. 미뤄진 민생 현안과 일본의 경제보복, 미·중 무역분쟁,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따른 대책과 입법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또다시 장외로 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력한 투쟁”을 하겠다니 한국당은 대체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생과 안보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정부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꾀하고 지지층 결집에 골몰하는 것은 ‘황교안 대권놀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황 대표는 당과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돌파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 장외투쟁 카드를 꺼냈을 터이다. 당내에서 나온 지적처럼 “거리투쟁 이외엔 다른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외 대표의 한계”다. 한국당 지지율이 황 대표 취임 직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지난번 장외투쟁 와중에 ‘맛본’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이 어른거릴지 모른다. 자극적인 색깔론과 ‘반문 깃발’에 목매는 장외투쟁으로 일시적이나마 지지층을 결집시켜 상승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3개월도 못 가 주저앉은 지지율이 징표다. 정책 대안과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투쟁’만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낡은 장외투쟁은 황 대표의 대권놀음에는 잠시 마취효과가 있을지언정, 수권정당으로서 한국당에 대한 한 가닥 남은 기대마저 접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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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지시를 다 지키고 죽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19일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24세 비정규직 김용균씨 사고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4개월간 1만여 노동자에게 묻고, 현장과 서류를 들여다본 진상조사의 답이 그날의 죽음은 김씨 책임이 아니라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익히 짚어진 ‘2인1조 근무 위반’식의 표상적 지적을 넘어 그 죽음의 끝에는 민영화·외주화의 허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억울함이 풀렸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누구나 아들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간에는 단서가, 증거가 없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해 말 김용균법 국회 처리를 위해 온몸을 던진 그로선 8개월 만에 받아든 특조위 보고서의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특조위는 이날 사고가 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진상보고서는 이라크전쟁 희생자보다도 한 해 더 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산업재해를 실증적으로 그려냈다. 손상·중독 경험 비율은 발전사보다 자회사 노동자가 7.1배 높고, 협력사는 8.9배까지 치솟았다. 석탄발전소에 협력사 노동자가 1명 증가하면 연간 작업 손상이 0.75회 늘어난다는 수식도 도출됐다. 발전사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자회사 정비는 77, 협력사 연료운전은 53, 2차 협력사 노동자는 31을 받는 것으로 비교됐다. 국가가 인건비를 따로 지급하는 계획정비공사도 노임으로는 3~25%만 지급됐다. 업주들만 땅 짚고 헤엄치고, 노동자 주머니를 향한 세금은 중간에 흩어진 것이다. 보고서는 발전5사 분할이 외주화 속도를 높이고, 하청 노동자 확대로 갔다고 짚었다. 기술 향상과 원가 절감을 경쟁시키겠다던 민영화 구호는 바래고, 발전사가 단기·미숙련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공기업이 됐다는 냉정한 평가다. 굳이 발전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얘기다.

안전 잣대에서, 특조위 권고는 구체적이고 궁극적이다. 김용균씨가 속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직접고용하고, 임원진에 안전보건담당이사를 두고, 노동안전 문제는 원·하청이 공동교섭하도록 했다. 법·제도적으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담겼다. 특조위를 이끈 김지형 전 대법관은 “노동안전을 한 발자국이라도 앞당기게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번 보고서가 대한민국을 돌아보는 거울, 변화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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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체육분야 구조 혁신을 목표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5월7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5차례 권고를 발표했다. 1차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권고는 인권침해를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스포츠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할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은 체육계 내부와 분리되지 않아 제 기능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1차 권고의 핵심은 체육계 내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성, 자율성, 신뢰성’를 갖춘 ‘스포츠 인권보호기구 설립’이다.

2차 권고는 학교 스포츠 정상화로 학생 선수 학습권과 일반 학생 신체 활동을 증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합숙소 전면 폐지 실현’이다. 폐쇄적인 성과 중심의 훈련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합숙소는 운동이 끝난 후에도 훈련과 통제가 이어지게 한다. 훈련소 자체가 스포츠의 성격을 스포츠의 정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순이다. 주거 공간이 되어 쉴 수 없는 일의 연장, 사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간인 합숙소를 유지하게 하는 성과 중심의 훈련이 문제다.

4차 권고는 평등정책 부재를 비판한다.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여 ‘인간의 몸의 자유 실현 및 신체적, 정신적 복지 증진을 위한 삶의 중요한 행위양식’으로 스포츠를 정의하고, 모든 사람의 ‘스포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스포츠 인권 개념을 아동·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원주민, 성소수자 등 인구 집단 및 계층별로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체육진흥법 1조(목적)는 “나아가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이다. 국가가 추구하는 정상 신체들의 단련은 다양한 몸의 자유와 신체 활동을 스포츠를 통해 보장하기 어려웠다. 혁신위는 국가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국위 선양을 목표로 하였던 국가주의 체육정책을 스포츠 인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권고가 잘 이행되도록 정부와 국회의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의 2018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3.8%로 낮았다. 장애인은 재활체육에 비해 생활체육에 대한 접근성과 정보가 많지 않다. 치료 목적의 운동이나 2차 장애 예방은 권장되지만 장애를 가진 몸이 운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이 개입된다. 평창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선수들을 감동의 영웅으로 등장시켰지만, 정작 올림픽 중계방송 접근권, 시설 접근권 등은 확보되지 않았다. ‘장애를 극복한’ 영웅을 비추던 모니터 밖의 수많은 날글엔 관심이 없다. 생활체육 기반의 낮은 접근성, 장애학생에 대한 스포츠 교육의 다양성 부재와 같은 구조적 열악함은 장애인 스포츠계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또 장애로 인해 훈련 전후 과정에서 신변 보조, 이동과 의사소통 등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는데, 이때 신체적 접촉이나 사생활의 개입에 대한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가 공정함의 상징으로 보이지만, 운동장 밖의 일상의 불평등한 룰(차별)들은 운동장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다시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것으로 운동장뿐만 아니라 몸과 스포츠를 가져와야 한다. 스포츠(운동)에 인권 ‘운동’이 필요한 때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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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근무 시절, 칠판에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라고 써 놓은 일이 있었다. 방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그걸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판사는 대쪽 같은 소신을 가져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니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판사가 한번 소신이라는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그것만큼 고약한 일이 없다. 소신이라는 이름 아래 사건을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보게 될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나 납세자가 세무서를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 어느 일방이 늘 잘못을 저지르거나 나쁘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판사가 사건의 결론을 낸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너는 보수냐, 진보냐?” 글쎄, 그런 단선적 질문에 단순한 답을 내놓기에는 내 머리가 좀 복잡하다. 아니다, 고쳐 말해서 이 시대의 현실이 지독하게 복잡하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을 정의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곤란하다. 우선 북쪽에 왕정의 변종에 가까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내 보기에는 그들이야말로 보수적이고 때로 반동적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말이 내포하는 복잡성과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누가 내 견해에 찬성하겠는가. 이런 분석은 어떨까. 정치학 원론의 풀이에 따라 박정희의 이념적 성향을 보면, 그는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개입에 의한 급진적 개혁을 꾀하였으니 진보적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견해에 동조할 사람도 많지는 않을 듯싶다.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회의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세력이 정치사상사에서 좌파로 분류된다면, 선뜻 이해가 되겠는가. 이렇게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단순명료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보수나 진보라는 낱말을 쓸 때, 그것은 당장의 편의를 고려한 것일 뿐이다. 어느 누구의 특정 문제에 대한 견해나 행위가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를 가르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라고 규정짓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그를 어느 개념의 범주에 넣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나 타인을 한쪽으로 밀어넣고, 거기에서 연역하여 자기의 말과 행동을 결정짓거나 남의 말과 행동을 평가한다면 과연 그게 옳을까. 더욱이 우리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을 생각하면, 누군가를 좌파나 우파로 일컫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좌파란 말은 해방정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연상시키고, 그에 이어지는 한국전쟁이라는 처절한 비극과 이에 대한 책임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빨갱이’는 물론이고 좌파라고만 불려도 벌써 안전치 않은 것이다. 반대로 엄혹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에게, 우파란 말은 사실 여하를 차치하고 독재에 부역하거나 동조한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진영논리란 바로 자신이든 남이든 누군가를 이런 분류방식에 따라 규정짓는 태도다. 그 태도는 무지스럽다. 한·일 경제전쟁에서 일본이 도발해 오기 전 대일청구권 문제에 관한 정부의 조치가 미숙했다는 견해에 동조하면 보수적이고, 반대하면 진보적인가. 거꾸로, 이 문제를 놓고 보수주의자라면 정부를 비난해야 하고 진보주의자라면 정부를 옹호해야 하는가. 대북관계, 경제정책, 노동문제, 교육정책 등의 모든 이슈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고유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이것을 보수와 진보의 틀로만 이해하거나 결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종북좌빨이니 강남좌파니 극우꼴통이니 하는 말을 동원하며, 그 말을 듣는 본인이 수긍하지 않을 분류법을 남에게 들씌우는 사람들의 의도는 뭘까. 특히나 강남좌파라는 말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백인을 ‘니거러버(‘깜둥이를 좋아하는 자’라는 뜻의 비칭)라고 부르며 빈정대던 인종주의자들의 음험한 악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유의 악성은 오늘날 상당수 인터넷 댓글의 무지막지한 파당성에도 나타난다.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의 댓글이 북한 언론매체의 말투를 닮아 있어 실소하였던 일도 있다. 그렇게 양쪽의 댓글들은 상대 진영의 흠집 내기와 욕설로 가득 차 있다. 진영논리란 그런 것이다. 스스로의 정견과 양식을 부정한다. 그 근저에는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증오심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정작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 보수주의자 됨의 뜻도 모를 것 같은 자들이 보수적 견해라면서 무식한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모습이 그렇다. 자기희생이나 공적 책임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스러움이 보수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삐뚤어진 냉소주의와 증오심에 빠져 있거나 싸가지 없고 부도덕한 자가 진보를 자처하는 모습도 한심하긴 매일반이다. 병역을 면한 이유가 아무리 보아도 수상쩍은 자가 보수라며 설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우습게 아는 자가 진보라고 나서는 현실을 보라.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지지층의 결집이나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다. 그리하여 허튼 말만 제멋대로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세상엔 회색지대의 지성과 양심이 있음을 기억하라. 정치적 성향에서의 연역적 사고를 버리자. 인간과 사회와 문명은 단순하지 않다. 생긴 대로 보라. 덧붙이건대, 어느 쪽이든 이념적 증오는 반지성적이다. 그리고 악이다. 증오는 개인과 사회를 모두 소진케 한다. 그러기에는 오늘 우리의 처지가 너무 절박하지 않은가.

<정인진 |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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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못할까. 이런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독일의 사례가 불려 나온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반성하고, 교과서에 낱낱이 기록해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를 역사 기억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모셔놓고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고 있다. 이 극단의 대비가 주는 인지적 충격은 꽤 크다.

그런데 독일이 처음부터 순순히 과오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전후의 폐허에서 패전국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물리적 생존과 정신적 회복이었다. 이윽고 전범 재판이 열렸을 때 독일은 범죄 내용을 최소화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최호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검사 측이 제출한 기소 항목에 있던 ‘제노사이드 범죄’ 부분이 심리에서 빠졌다. 몇 년 뒤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범 재판에서는 기소 항목에서 ‘반인도 범죄’가 독립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고 전쟁범죄 항목에 예속됨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독일보다는 낫다”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조성했다. 이 과정까지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게 된 것일까. 196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이후부터 기류가 달라졌다. 독일 국민은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가 지극히 평범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이 ‘악의 평범성’ 앞에서 비로소 책임은 몇몇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자각이 싹텄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더욱 현실적인 여건이 존재했다. 독일에선 전범세력과 전후 집권세력 간의 단호한 단절이 가능했다. 사실 히틀러는 바이마르공화국 정치 엘리트 입장에서 보자면 ‘듣보잡’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일탈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당시 서독과 동독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히틀러와 그의 세력을 죄악시하고 바이마르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성행했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집단은 전통 사무라이 계급의 후손들이었다. 처음엔 일본 또한 광적인 군인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떠안겨보려 했지만, 이 쇼와 육군은 극소수만 처형되었을 뿐, 대부분 전후에도 살아남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는 복역을 마치고 나와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지정학적 이유다.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의 품에 안겨 아시아 대륙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미국의 품에서 미국몽을 꾸다가 한국에 전쟁이 나자 잠시 일어나 미국의 손을 잡고 외화벌이를 해서 돌아왔다. 한일협정 때 한국이 받았다는 그 3억달러에 해당하는 10년 할부 생산물과 용역보다 수십배는 더 달콤했을 그 돈을 기반으로 일본은 다시 일어섰다. 그 뒤로는 경제성공의 신화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반성할 이유가 없었고 요구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가라타니 고진은 ‘아(亞)주변’이라는 개념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고유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원인을 설명했다. 조선은 중국과 붙어 있어 ‘주변’이 되어 중심국의 지배원리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은 시쳇말로 사정거리 밖에 있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구조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독일을 보자.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등이 국경을 맞댄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조건이다. 프란치스카 세라핌 보스턴대 교수는 “무엇보다 독일은 전후 재건에서 프랑스, 벨기에와의 국경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먼저 화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1949년 이후 미국이 신생국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독일이 1953년부터 대규모 배상 지급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맥락”이 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불가피하고도 자발적인 방식으로 아시아 대륙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는 끝까지 요구해야 하고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 청산의 정치는 향후에도 양국의 외교적 중심 의제에서 멀어지기 힘들다. 다만, 양심에 따른 반성과 사과에서 이제 일본은 너무 멀어졌다는 판단이다. 최근 방한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와다 하루키의 인터뷰에서 반성의 동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유독 나뿐일까. 평론가 이명원이 말했듯,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야기한 문제는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라는 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경제학적이고 문화적인 힘과 상황의 논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비록 가까운 시일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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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되었습니다. 통장에 남은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세요.” 2년 전 이맘때 한국의 부품 제조 공장에서 하루 2교대로 1년7개월을 일하며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27세 네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이주노동자 단체가 그가 남긴 유서를 한국말로 번역해 공개하면서 죽음이 알려졌다. 게시글 제목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다”였다.

2004년 8월17일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소위 3D 국내 사업장에 합법적으로 외국인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해 준 제도다. 중소제조업과 건설업, 일부 서비스업, 어업, 농축산업 등 5개 업종에 한해 양해각서를 맺은 16개국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외국인력을 ‘초청’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자들(대졸 이상 74.5%)로, ‘코리안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열악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업장을 옮길 자유가 없다. 폐업이나 반복적인 임금체불 등의 경우에만 아주 예외적으로 이동이 허용되지만, 이때도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최대 이동 횟수도 3회뿐이다. 불안한 상황을 악용한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에도 참고, 불법이 발생해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

각종 사고의 끝자락에서 ‘위험의 외주화’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마주한다. 가축 분뇨에 질식해 숨지거나, 저류소 물에 휩쓸리고 공사장에서 추락해 사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들의 산업재해 건수는 내국인의 6배에 달한다. 참다못해 사업장을 무단이탈하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10년 가까이 국내에 체류할 수 있지만 가족들과 살 수 있는 기본권도 누리지 못한다.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18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고용허가제 시행 15년’을 맞아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요구는 매년 한결같다. ‘사업장 이동권 달라.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이들의 당연한 요구에, 우리가 필요해서 부른 이들의 착취 수준의 노동권 침해에 더는 귀 막고 눈감지 말아야 한다. 현실적인 고용허가제 개선책이 필요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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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고증식(1959~)

 

날이 저물고 장사를 마친 부부가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탁주도 한 잔 곁들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의 온순한 성품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죽을 내놓으면서 만난 소박하고, 자상하고, 명랑하고,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들의 됨됨이에 대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평원(平原)의 고귀한,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늙은 염소처럼 순한 부부가 살아가는 훈훈한 삶의 풍경이다.

고증식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을 펴내며 “아홉 살짜리 두고 아버지 떠나시던 그해가 지금의 딱 이 나이다. 아버지 못 가보신 길을 이제부터 시작한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우짜든지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라고 썼다. 희로애락을 살아도, 곡절이 많더라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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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크기가 그리 심하지 않은 나라를 찾아가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그 비결을 묻는 시사프로의 한 장면이다.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게 된 이유를 알려달라는 말에, 자국의 복지체계 자랑을 밤새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답변이 이렇다. “그건 모르겠고요. 아직 이 사회에는 문제점이 많아요. 제가 할 일은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은 조금이라도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복지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제도를 정비하려는 걸 방해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고정관념도 깨야 해요. 그게 제 의무예요.”

과시를 해도 될 상황에서, 아직도 곳곳이 엉망이라 갈 길이 멀다는 태도를 보인다. 좋은 사회는 이처럼 ‘나쁜 사회’의 모습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야지만 가능하다. 사회가 아름다운 수식어로만 꾸며지면 분명히 존재하는 비상식적인 모습들이 쉽사리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는 사람들이 맹목적 긍지로만 뭉쳐 “이 나라는 완벽해요! 차별과 혐오는 생각도 할 수 없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회에서는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항의가 ‘객관적으로 나아진 현실을 부정하는 배배 꼬인 생각’이라는 냉소에 막혀버린다. 한국처럼 말이다. 새마을 운동, 한강의 기적,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단군의 후예, 열정과 성실로 무장한 국민정서 등등, ‘찬란한 역사에 자긍심을 지니자’는 무한 긍정의 강요 속에 듣기 좋은 말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했던가. 이런 노출에 단련된 대중은 이렇게 내뱉는다. “그 덕에 우리가 잘살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이 나라에 감사하자!”

팩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순간에도 불평등에 노출되어 삶이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후자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그 방향성이 유지된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의 불평등조차 낙관하라는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지금 아파하는 사람을 보며 한 사회의 불평등을 탓하는 건 확증편향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걸 무시하고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망상에 빠지는 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착각이다.

곳곳에 첨단 시설이 즐비해졌다는 팩트는 아무리 더워도 휴게실에 창문 하나 낼 수 없어 생을 마감한 ‘그’ 노동자의 비극을 덮을 수 없다. 손가락 절단 사고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허술한 안전장치 때문에 끔찍하게 죽는 ‘그’ 노동자의 불행이 기쁨으로 둔갑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배달되기에 개인들의 편리가 증가했다는 사실이 하루 열다섯 시간을 일하는 ‘그’ 사람의 고충을 해결하지 않는다. 여성도 차별 없이 교육받는다는 변화된 통계자료가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 당사자의 오늘 불안한 마음을 줄여주지 않는다. 인류가 전염병을 극복하고 평균수명이 증가했다는 좋은 뉴스가 비만 오면 똥물이 역류하는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 겪는 서러움을 치유해줄 리 만무하다. 재래식 화장실이 사라졌다고 해서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주변의 차별 때문에 ‘오늘’ 느낀 수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낙관주의자들은 ‘왜 세상이 좋아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한 적 없다. 다만, 좋은 세상은 긍정의 자세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 평등한 세상은 ‘더’ 불평등한 세상을 찾아야지만 가능하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끝없이 의심하는 비관적 자세는 결과를 낙관적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부정하는 건 세상의 변화를 원치 않는 기득권의 익숙한 습관일 뿐이다.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하나의 팩트만이 부유하면, ‘그때 그 시절 덕택에’ 집집마다 자동차 굴리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등장한다. 군부독재를 긍정하고 나아가 일제강점기도 다르게 해석하는 놀라운 사람이 이 땅에 있는 이유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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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은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전범 기업 대부분을 변호한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해외 먹튀 사건, 쌍용차 회계조작 사건에서 각각 옥시, 론스타, 쌍용차 등을 대리했다. 자본과 기업 편이다. 국적을, 애국을 따져 물을 일도 아니다. 돈만 벌면 된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이다.

누군가는 국적과 애국을 내세운다. 갑질과 불공정 행위로 악명 높던 이랜드는 애국 마케팅 홍보에 들어갔다. ‘태극 물결 챌린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태극기 게양 사진을 올리면 건당 815원을 독립유공자유족회에 기부하는 이벤트다.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 기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는 공덕역 부근 경의선 용지 상업 개발을 포기하는 ‘좋은 일’을 할 리도 없다. OK저축은행은 ‘OK대박통장815’ 특판 상품을 내놓았다. 한국 금융자본주의는 광복절을 연계한 ‘대박’도 판매한다.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이분법을 강조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가족의 사모펀드 논란에서도 지극히 한국적인 자본주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본다.

다국적기업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 결정 전후 애국의 최전선에 선 기업이 됐다. 소설 &lt;토정비결&gt; 작가 이재운은 “한·미·일·중 4국이 펼치는 반도체 세계대전에서 우리 한국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우리가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제독을 먼저 떠올리듯 백년이 지난 어느 자리에선가 누가 21세기 초의 반도체 전쟁을 이겼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삼성과 하이닉스를 말할 것”이라고 썼다. 지금 한·일 갈등이 ‘반도체 전쟁’이라면,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3개국의 삼성전자 공장은 노동 착취와 노조 파괴가 벌어지는 군수 공장일 것이다.

여야와 이른바 ‘진보’와 ‘보수’ 진영이 싸우는 듯하지만 의견 일치를 본 게 있다. 보수 쪽은 이참에 ‘기초체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를 주문한다. 정부도 이번 사태가 ‘재난’에 준한다며 특별연장근로 방안을 내놓는다. 신규 화학물질의 신속한 출시나 인허가 기간 단축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 소유 통신사는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가 낸 보고서를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어려운 이유는 불산공장 환경규제 때문’이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낸다. 불산 때문에 노동자들이 숨진 사건은 망각된다.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배상 문제로 불거진 한·일 경제 갈등인데 정작 노동은 뒤로 밀려난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일본의 야만적 제국주의 피해자이면서 착취와 수탈의 자본주의 피해자였다. 지금 여기의 노동자들은 어떤가.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산재 사고 사망자와 질병 사망자는 2142명, 산재를 당한 전체 노동자는 10만2305명이다. 정부가 실태 조사로 파악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수는 14만8961명이다. 매년 산재 희생 노동자가 일제강점기 전체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 수의 70%에 육박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인 오민규는 최근 프레시안 기고에서 1999년에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 결말을 소개한다. “이렇게 비참한 조건에서 일본의 민간기업을 위해 대규모 노동력 징집이 벌어진 것은 협약을 위반한 것이다.” 일본 오사카 특수영어교사노조가 1995년 ILO에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를 진정해 나온 결론이다. 오민규는 이 연대를 전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정당성을 굳건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도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비롯한 ILO 핵심협약을 즉각 비준”하라고 말한다. 일본 도로지바 국제연대위원회는 ‘개헌-전쟁을 향한 아베 정권 타도! 대한국 수출제한을 즉시 철회하라!’에서 “노조 존재 그 자체를 근절하려는 공격이 국가주의-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아베 정권의 노동 탄압을 전했다.

민족이 실재하는 것인지, 상상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다. 애국이나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보편의 가치를 뒷전으로 밀쳐내 위험하다는 건 분명하다. 난세니 토착왜구니 오랑캐니 하는 말의 범람 속에 부쩍 잦아진 ‘우리’란 말도 톺아봐야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힘세며, 용감하고 재능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나’ 대신 ‘우리’를 대입하면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갈채한다. 그 말을 한 이를 애국자라 부른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한 스님의 이 같은 말을 전하며 “이런 난센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수록 평화에 대한 위협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이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점을 경고했다.

‘국민’이든 ‘민족’이든 ‘우리’를 앞세우는 세상은 위험하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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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공화당이야 현직 대통령이 후보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민주당은 사정이 다르다. 내년 2월부터 시작될 당내 경선에 참여를 선언한 후보는 2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서 1, 2차 텔레비전 토론에 참여한 후보는 20명이고, 두어 달 후에는 10여 명 수준으로 추려질 전망이다. 현재 민주당 후보 중 지지율 선두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지도도 만만치 않다. 이 셋은 모두 중앙 정치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오랫동안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로 여겨져 왔다. 또 하나 공통점은 모두 70대라는 점이다. 바이든과 샌더스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중 80세를 넘기게 된다.

미국 역사상 만 70세 이상으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사람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70회 생일에서 두 주가 모자랄 때 대통령에 취임했다. 민주당의 세 주요 후보 중 하나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두 번째 70대 대통령이 되는 셈이고,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무후무한 70대끼리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6월 말의 TV 토론 이후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바이든의 상품성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그를 지지하던 ‘온건한’ 민주당원들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대안으로 밀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샌더스나 워런을 지지하던 ‘좌파’ 민주당원들은 정치 신인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이나 사업가 앤드루 양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54세, 개버드는 38세, 양은 44세이다. 이 밖에도 만만치 않은 지지율을 기록 중인 피트 부티지지 후보는 37세, 훌리앙 카스트로 후보는 44세, 베토 오루크 후보는 46세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나이를 중요 변수로 여기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이들 젊은 후보는 70을 넘긴 트럼프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일 수 있다. 50세의 클린턴이 73세의 돌을 꺾은 1992년 선거나 47세의 오바마가 72세의 매케인을 상대했던 2008년 선거 양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다. 배경도 생각도 기존의 질서와는 판이하다. 해리스는 자메이카와 인도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유색 인종 여성이며, 개버드는 사모아 혈통의 힌두교도이자 이라크전에도 참전했던 현직 여성 군인이다. 양은 대만 이민 2세의 벤처 기업가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어 화제가 되었다. 부티지지는 공개 동성애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의 남성 배우자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치판에는 이런 ‘젊은 피’들이 끊임없이 수혈된다. 이 다양한 배경의 에너지 넘치고 비전 분명한 신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에서 개버드나 양, 부티지지 같은 대통령 후보가 나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50세 미만의 당선자가 53명(17%)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정치의 노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은 청년 후보를 찾는다고 분주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젊은 유권자들의 대표자를 만들겠다는 발상인데, 생물학적 나이가 어려야 청년을 대변하는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자란 생각이거니와 젊은 정치인을 청년 대표로만 소비하다 보면 오바마 같은 ‘모두를 위한 젊은 정치인’은 탄생하기 어렵다.

문제는 노령화의 문제가 여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에서도, 학교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심지어 친목 모임에서도 ‘젊은’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40대는 젊고 50대는 늙었다고 무 자르듯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젊은이 못지않게 창의적이고 도발적이며 힘이 넘치는 60대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젊은 60대’보다 ‘늙은 40대’가 더 많은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닐지. 몸도 마음도 ‘젊은’ 지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세대론과 세대 갈등이 중요한 사회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소위 ‘586세대’의 권력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언젠가부터 ‘5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민폐’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논리적 반박의 여지가 많은 감정적 수사라는 판단도 들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면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젊은 지도자’의 대명사였지만, 혁신은 미미하고 성취는 빈약했다. 무엇보다, 아래 세대에게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개버드와 양이 등장하지 못한 것은 30, 40대의 문제가 아니라 50, 60대의 책임일 확률이 더 높다. 몸도 마음도 ‘늙은’ 지도자들이 주책맞게 나서지 않는 것이 먼저다. 자리를 비워두면, 어디에선가 젊은 지도자들이 튀어나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지금보다 나은 방식으로.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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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가족 재산에 얽힌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2017년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 두 달 뒤 부인과 자녀가 10억5000만원을 투자한 사모펀드가 첫 입방아에 오르더니 실소유 관계가 불분명한 가족 간 부동산 거래, 부친 소유 사학재단의 빚을 털고 채권은 챙기려는 동생 부부의 ‘위장 이혼, 위장 소송’ 의혹까지 불거졌다. 직계존비속이 민감하게 맞물려 있는 돈거래지만, 조 후보자가 어디까지 알고 간여했는지 법을 지켰는지는 물음표 영역에 있다. 8·9개각 인사청문회에 ‘조국 블랙홀’이  먼저 열리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세간의 시선은 상식적·합리적 의문에서 시작한다. 사정당국 최정점에 있는 민정수석 가족이 투자·운용 모두 베일에 가려진 사모펀드에 거액을 맡긴 것부터 뒷말을 낳는다. 이 펀드가 투자한 중소기업은 관급 가로등 공사를 한 사실도 알려졌다. 조 후보자 쪽에선 펀드 투자는 합법이고 어디에 투자할지 모르는 ‘블라인드 펀드’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 투자액이 80%나 차지하고 자녀 증여·상속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사모펀드는 투자실적 보고서도 정기적으로 가족에게 보냈을 테다. 신생 사모펀드 투자 배경과 운용에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중소 건설사를 운영한 조 후보자 동생이 2013년 숨진 부친의 사학재단에 물려 있던 연대보증 빚 42억원을 피하고, 공사대금 51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아내가 함께 새 건설회사를 세워 ‘위장 소송’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 후보자는 당시 변론 없이 패소한 사학재단 이사여서 가족들의 이익을 묵인·방조했는지 답할 위치다. 2017년 11월 조 후보자 아내가 부산 아파트 전세금을 동생 전처 명의의 빌라 구입 자금으로 댄 것도 부동산 명의신탁 여부가 규명돼야 한다. 10년 전 이혼했다는 동생 부부는 최근까지 함께 살았다는 목격자도 나와 ‘위장 이혼’ 시비에 휩싸여 있다.

조 후보자와 가족의 재산 의혹은 세금 늑장 신고나 색깔론 시비가 인 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 전력과는 결이 다르다. 사실관계가 미궁인 까닭이다. 조 후보자도 왜 파장이 부푸는지 직감할 터다. 그의 과거가 공직자를 검증한 민정수석이었고, 지금 향하는 곳이 누구보다 법의 잣대가 엄중해야 할 법무장관이다. 조 후보자 쪽에선 18일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청문회에서 모두 소명하겠다고 했다. 그전이라도 물증 제시나 소명은 명명백백히 빠를수록 좋다. 국민은 알권리가 있고, 그 눈높이에서 공직자는 검증대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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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은 18일 문희상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5당 대표들이 국립현충원에서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문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양국관계의 해법과 미래비전을 제시했다”며 “우리 국민은 능동적이고 당당하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한목소리로 한·일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킨 김 전 대통령의 통찰과 용기를 기렸다. 여야 정치권의 이런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정치권의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한·일관계가 최악일 때 추진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 이후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다 급기야 YS 퇴임 한 달 전 일본 정부는 어업협정 파기를 일방 통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DJ는 취임하자마자 외환위기 극복과 북한 핵·미사일 문제 대응을 위해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이어받아 양국은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노력했다. 오부치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해 최초로 공식 외교문서에 명시했고, DJ는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마침내 1998년 10월8일 김 전 대통령은 일본 의회에서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그는 당시 왜색문화가 판친다는 반대에 맞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함께 선언했다. 이는 양국 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한류 바람으로 이어졌다. 한·일 양국은 이 과정을 진지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작금의 한·일관계 악화는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일본에 기본적 책임이 있다.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라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한국 정부가 막지 않았다며 책임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한·일관계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위에서만 재출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한·일 간 문제는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풀 수 없다. 오는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등 난제가 닥쳐 있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은 한·일관계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통찰, 용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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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난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412호 법정.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했다고 허위 답변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곳은 좌석이 30개 정도밖에 안되는 소법정이다. 기자는 사전에 취재용 방청권을 받아 법정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청권이 없어 법정에 들어오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법정 경위들과 다투고 있다고 했다.

“김기춘 나와라!” “방청 못하게 하는 판사 각성하라!” 유가족들 항의는 형사30부 권희 재판장이 선고문을 낭독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누군가는 법정 문을 쿵쿵 두드렸고 그 과정에서 고성과 격한 단어도 나왔다. 권 재판장 목소리가 묻히거나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했다. 법정 경위를 향해 한 차례 “해결이 안돼요?”라고 물은 권 재판장은 계속 선고를 진행했다. 

법정 문은 꽉 닫혀 있었다. 36도의 기온에 환기도, 냉방도 안되는 소법정에서 1시간가량 선고가 이어졌다. 이마엔 땀이 줄줄 흘렀고, 법정 밖에선 유가족들의 분노 섞인 호소가 들려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선고문 낭독을 듣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꼭 이렇게 선고를 해야 했을까. 법원은 청사에 입간판 형태로 ‘재판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한다’고 공지했다 한다. 법원 청사를 자주 드나들지 않는 시민에게는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홈페이지에 공지글을 올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과도 다르다. 

권 재판장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법정에는 여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그곳에 서서 방청하도록 할 수도 있다. 다른 재판에서도 방청을 원하는 시민이 많은 경우 서서 선고를 듣게 하거나, 아예 법정 문을 열어놓기도 한다. 상황을 진정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잠시 휴정하거나 유가족들에게 법정에 들어오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뒤 선고를 이어갈 수도 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방청객이 많을 것을 예측하고 애초에 더 큰 법정에서 선고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핵심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다. 재판 진행은 재판장 재량이고, 김 전 실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허위공문서 작성과 행사죄다. 엄밀히 말하면 유가족들이 ‘범죄 피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책임 회피로 진상규명이 지연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가족들이 입었다. 실질적인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피해자로 명시한 세월호특별법도 있다. 가해자에게 어떤 판결이 선고되는지는 피해자의 알권리에 속한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사건을 심리한 판사들이 발간한 백서를 보면 충격이나 슬픔에 찬 유가족들의 격앙된 반응을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해하고, 제어만 하기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 달래는 방법을 고민한 내용이 나온다.

유가족들이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던 그 시각, 같은 법원의 417호 대법정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법정은 공간이 넓고 냉방도 잘된다. 방청객은 그다지 없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대법정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묻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나, 법원은 꼭 그렇게 선고를 해야 했나.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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