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친구 모임에서는 꼭 ‘농활’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풋풋했던 시절의 가장 끈끈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어서다. 방학을 맞으면 품삯이라도 벌충하길 바라던 부모님 뜻을 거스르고 굳이 농활을 가서 남의 밭을 매곤 했다. 덕분에 영호남 두루 다녀보았고 이는 공부의 자산이 되었다. 도시내기 친구들도 텔레비전에서 농활 지역 이야기가 나오면 눈길이 간다고 말한다. 정서적 연고가 생긴 셈이다. 

도시민 10명 중 3명은 은퇴 후 농촌에 내려가서 살 의향이 있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고 싶은 농촌은 소멸 위기다. 농어촌 지역의 43% 정도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고, 지방재정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곳도 많다. 이런 도농 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 농어촌 생존에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울 방법으로 고안된 제도가 ‘고향세’다. 이는 수도권 주민들이 일정 금액을 농어촌 지자체에 기부하고, 세금 공제를 받는 제도다. 이에 대한 답례로 지자체는 지역의 특산물로 기부자에게 답례품을 제공할 수도 있다. 

‘고향세’는 2008년 일본에서 먼저 도입되었다. 농어촌 과소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최근 고향세 납부의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답례품 경쟁이 과열되면서 제도적 보완에 들어갈 정도로 고향세는 인기다. 한국은 2008년 당시 문국현 대선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다. 고향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60% 정도의 찬성률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정치권의 이해득실이 남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농어촌 기반의 국회의원들은 빠른 도입을 촉구하고 있지만, 대도시 국회의원들은 세수가 유출될까 봐 소극적이거나 반대 입장이다. 결국 아직까지도 고향세 도입 논의는 표류 중이다. 

고향세가 도입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향에 기부하겠다. 도시 태생의 시민들은 여행을 가서 위로를 받은 지역에 할 수도 있고, 대학 시절 다녀온 농활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고향세 도입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 홍보 부족과 집행의 투명성 미비 때문이다. 따라서 농어촌 주민들의 실질적인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용처가 분명히 정해져야 한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니 답례품의 형평성도 맞출 필요가 있다. 어찌 됐든 제도적 장치만 섬세하게 마련된다면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근래 지방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긍정적이었던 마음이 차갑게 식는다. 예천군의원들 해외연수 추태와 자리 보존을 하는 뻔뻔함을 보자면 말이다. 예천군 농산물 불매 움직임까지 나왔을 정도로 시민들의 분노가 크다. 사과로 유명한 예천군은 이번 설날 대목장 주문이 급감해 생산자들이 타격을 받았다. 지방의원들이 지역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것이다. 급한 마음에 예천군수가 농산물 구입을 호소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는 전형적인 ‘오너리스크’다. 외식 프랜차이즈 오너들의 갑질과 추태에 결국 등 터지는 것은 가맹점주들인 것처럼 예천군민들 등만 터져나갔다.

‘고향사랑기부제’든 ‘고향세’든 세금이 움직이는 일이고, 세금 배치는 정치의 문제다. 그런데 농촌에 숨통이 트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정 기부한 돈이 저 정도 수준의 정치인들의 손에 놀아날까 봐 망설여진다. 예천의 사과는 달고 맛있다. 사과는 죄가 없다. 다만 사람이 죄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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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시아의 에너지전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가하느라 도쿄에 다녀왔다. 거리의 차들을 보니 경차가 많고 경유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요즘 미세먼지 탓에 다른 나라에 가면 대기질에 민감해진다. 도쿄의 공기는 서울보다 한결 좋았다. 과거에는 나빴다가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확연히 개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5년부터 PM10 기준 25㎍/㎥ 이하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찬자리에서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의 “노(No) 디젤카” 정책을 지목했다. 한·일관계나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경유차 그을음을 페트병에 넣어 다니면서 유해성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중앙정부보다 앞서 신차에만 적용되던 배출가스 규제기준 미충족 경유차를 아예 운행하지 못하게 하면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비용을 지원하고 대중교통 시설을 확충했다.

당시에도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보다 낮았지만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차가 제작·시판되는 시기와 맞물려 연료비 절감을 위해 굳이 경유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의 휘발유가격 대 경유가격은 100 대 84로 100 대 86인 우리보다 약간 더 낮다. 게다가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경유 승용차를 만들지 않아 국산차를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외제차인 경유차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강력한 정책과 기술 발전, 시민 인식과 소비자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금의 우린 어떨까? 한국에서도 경유차는 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원천이다. 2015년 기준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원의 22%는 경유차로 비중이 가장 높다. 게다가 경유차 미세먼지는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이동하는 생활공간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의 경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 우려가 심각한데도 2018년 12월 말 현재 국내 경유차 등록대수는 993만대로 전체 차량 2320만대 가운데 42.8%였다. 역대 최고치다. 1년 만에 무려 35만대가 늘었다. 경유차 중 화물차 비중은 33.8%인 데 비해 승용차가 58.1%에 달한다. 연료로서 경유 제조단가가 높음에도 휘발유보다 상대가격을 낮춘 건 경유차가 대부분인 화물차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용차, 특히 SUV 차량 비중이 더 높아져 버렸다. 화물차의 경우, 경유 이외 대안이 별로 없다. 소형 화물차는 LPG 차량이 시판되고 있고 전기차도 일부 있지만 중대형 화물차를 대체하기 위해선 기술발전을 얼마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승용차는 굳이 경유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휘발유차가 있고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대중교통이란 대안도 있다. 2018년 이런 친환경차는 46만대, 총차량의 2.0%로 전년 대비 12만대가 늘었을 뿐이다.

15일부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약칭 미세먼지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같은 법 10조에 따라 미세먼지특별위원회가 이날 자로 출범한다. 정부가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의 신뢰를 높이면서 다양한 정책을 집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시민인식도 함께 가야 한다. 경유차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다. 내가 모는 경유차가 시민 건강을 해친다면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경유의 상대가격을 조정해야겠지만 그 이전에도 취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있다.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과 도보를, 자가용을 몰아야 할 상황이라면 작은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미세먼지 해결은 시민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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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고위 공무원이며 현재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파견되어 있는 한민호 사무처장이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 윤철호 회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7일 윤철호 회장은 문체부가 작년 12월31일 발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이 불공정하고 불철저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윤태용 한국저작권보호원장과 한민호 사무처장의 실명을 거론했는데, 후자가 자신의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며 고소·고발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6년 8월, 당시 한민호는 문체부 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SNS상의 댓글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고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책입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상응하는 책을 ‘해당 출판사가’ 내야 하거늘” 운운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자발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하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의심이 든다. 더구나 출협 회장의 성명은 당시의 담당 과장은 수사의뢰를 하면서 그 상급자였던 한민호에 대해 아무 조치가 없는 명백한 모순을 지적했을 뿐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경과를 잠깐 되돌아보자. 2017년 7월 문체부 산하 민관합동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공동위원장은 신학철 화백, 도종환 문체부 장관)가 출범하여 1년 가까이 활동한 후, 2018년 6월 권고안을 제출하여 관련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31명(수사의뢰 26명, 징계 105명)의 책임규명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문체부가 9월에 발표한 이행계획은 검토 대상 68명(수사의뢰 24명, 징계 44명) 중 수사의뢰 7명, 주의 조치 12명에 그쳤다. 

문화예술계는 사실상 징계가 전혀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11월3일 문화예술인들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9시간 이상 걸려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항의 행진했으며, 11월8일 청와대 앞에서 이용선 시민사회수석을 만나 철저한 책임규명 대책수립을 요구했다. 이 수석은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전달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12월31일 문체부는 관련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0명을 수사의뢰, 68명을 징계와 주의 조치(문체부 소속 징계대상자는 단 1명!)하는 최종 이행계획을 내놓고 장관과 간부들의 2차 대국민 사과로 마무리하려 들었다.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내세우지만 이 최종 대책도 턱없이 부족하여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출협 회장의 성명에 민·형사상의 명예훼손을 걸어오다니 도대체 무슨 짓인가. 말문이 막힐 지경이지만, 두 가지만 강조한다.

첫째, 블랙리스트 관련 기소는 형법 123조 공무원의 직권 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죄를 근거로 하지만, 이런 형사재판이 초유의 일이라 확립된 판례가 없어 이미 재판 중인 피고인들은 법의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가려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설령 관련 법률이 미비하더라도 검찰과 사법부는 우리 헌법의 정신과 함께 제22조 1항(“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등 관련 조항을 명심해야 한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 헌법적 의무이다. 따라서 검찰은 문체부가 넘긴 수사대상자에 국한하지 말고 철저하고 광범위한 수사를 해야 한다. 사법부 또한 숱한 촛불들이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헌법과 법률이 지켜지는 국가를 요구한 시대정신에 맞는 판례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블랙리스트 관련자 처벌이야말로 정부 안의 수많은 양심적이고 유능한 공무원들을 살리는 길이다. 상급자의 지시를 어기기 어렵다는 핑계, 과거의 공로, 다른 사안과의 형평성 등을 명분으로 처벌을 흐지부지한다면,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다 고초를 겪은 공직자는 물론이고 양심과 원칙을 지키려고 남몰래 애쓰며 고통을 당한 더 많은 이들은 대체 뭐가 되는가. 엄정한 처벌만이 나라 운영의 중추인 공무원 사회를 구한다.

끝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이해찬 대표에게 호소한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말바꾸기와 꼼수에 매달리지 말고 하루속히 자유한국당 아닌 야당들과 흔쾌히 합의해야 한다. 당신들이 기득권에 눈멀어 머뭇거리는 와중에 적폐 관료마저 털끝만 한 반성 없이 적반하장의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감히 5·18을 폄훼하는 배짱은 또 어디서 나오겠는가. 내년 4월 총선에서 집권당의 승리와 함께 촛불혁명의 진전을 위한 발판을 놓을 시한, 즉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야 할 시한이 불과 보름도 남지 않았다. 집권당이 주저하면 대통령이라도 직접 나서야 한다. ‘촛불정부’는 국민의 뜻을 외면한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없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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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풀 도입과 광주형 일자리가 세간의 관심사다. 양쪽 다 산업과 지역의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제시된 것인데 찬반 논란이 많다. 두 사례의 시사점은 하나다. 어떤 정책과 사업의 실행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을 배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편리함과 효율성만 강조해서도, 산업경제만 강조해서도 안됨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까. 아마도 중앙정부나 많은 지자체들은 또 다른 광주형 일자리에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 그러나 보다 혁신적인 모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관련해 세 가지 아이디어를 꺼내 보고자 한다.

첫째, 광주형 일자리에서 고민하지 못한 ‘노동의 인간화’ 모델까지 논의해 보자. 앞으로 제조업 생산라인은 디지털화 과정에서 생산성 논쟁이 노사 간 쟁점이 될 것 같다. 이때 노사 상생의 대안적 공장(볼보, 폭스바겐)을 모색하면 좋겠다. 총체적 학습과 자율성이 확보된 ‘보람 있는 일터’를 만들고자 노사가 함께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위한 기업과 정부의 투자 확대가 핵심이다. 과거처럼 공모 사업으로 운영하는 정부의 일회성 사업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역 맞춤형 일자리나 특별회계 포괄보조금 사업 중에는 실효성이 불확실한 사업이 많다. 오히려 기업의 장기투자를 증대시키기 위한 인센티브 구조개편이 필요하다. 제조업 공장만이 아닌 도심 서비스 일자리도 중요한데, 이탈리아 밀라노시의 디지털 경제 모델을 참조할 만하다. 이 모델은 기업 투자를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지역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다. 대학과 학생도 참여한다. 도시의 맞춤형 일자리 창출이 목표이지만 ‘노동의 권리’가 행동 계획에 주요한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다.

둘째,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도심 일자리를 모색하면 어떨까. 청년들이 일하고자 하는 기업은 꼭 주거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노동시장의 이동성과 수요공급 불일치 해소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 간 협력 사업, 즉 행정구역을 벗어난 ‘도시권 일자리 프로젝트’를 모색할 수 있다. 하나의 지역이 아닌 몇 개의 지자체가 권역을 형성, 공동으로 지원된 ‘새 일자리 루트’를 만드는 것이다. 

한편 영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를 위한 ‘5-3-1 캠페인’(Five three one campaign)은 참고할 만하다. 기술투자와 교육훈련 등 사용자가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청년들의 잠재력 실현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긍정적 성과 세 가지 이유, 그리고 한 가지 긍정적인 결과물. 바로 지역경제 성장과 취업 증진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공공정책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지원하고자 하는 기술 활용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의 삶과 제도의 패러다임이 혁신적으로 변화될 시기가 된 것 같다. 이제 공공부문에서 직접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앞으로 기존의 정형화된 풀타임 일자리는 더욱 힘들다. 그간 많은 지자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자리 질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95만개나 되는 재정지원 일자리들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시민활동 일자리 계좌제’를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시민활동 계좌제는 지역에서 ‘일 경험’과 ‘유급 일자리 형태’를 융합한 새로운 모델이다. 지역에서 주 15시간에서 25시간 내외의 활동을 하고, 보상 성격으로 활동 시간이 계좌에 적립되어 본인이 필요할 때 유급으로 인출하는 것이다. 다양한 시민활동 참여자들은 활동계좌를 만들고, 직장을 잃거나 직업훈련 등 필요할 때 계좌에서 시간당 금액을 인출하여 사용하자는 것이다. 국내 몇몇 지자체에서도 실험적 논의가 제시되고 있지만 행정과 관습에 발목 잡혀 단 한 발짝도 진척을 못하고 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 국제노동기구(ILO)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을 제시하면서 인간 중심의 노동 10대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개인역량과 제도 및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위한 투자확대였다. 과연 새로운 대안적 일자리 실험은 우리 사회에서 가능할까.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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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초청, 이들의 어려움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니 다소 의외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카드사들의 높은 문턱 때문에 수수료 인하 효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제로페이는 홍보 부족과 사용의 어려움으로 무용지물에 가깝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요건을 갖추기 어려워 신청도 못한다” 등의 어려움을 하소연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7조원 규모의 금융지원과 카드수수료 인하, 상가임대차보호 확대 등이 추진됐지만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기대 이하였던 셈이다. 해당 부처 장관 등은 문제해결을 약속했고, 문 대통령도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 직접 설명까지 했다고 하니, 뒤늦게라도 잘못이 바로잡히길 기대한다. 이 자리에선 최저임금 동결 주문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결정 과정에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으나 결국은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속도는 조절하겠으나 정부정책의 일관성은 지켜나가겠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자영업·소상공인과 대화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마친뒤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만남은 중소·벤처기업, 대·중견기업, 혁신벤처기업에 이은 경제계와의 4번째 소통자리로 소상공인연합회 등 36개 관련 단체와 자영업자 등 총 16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영업자의 고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는 670여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10곳 중 7곳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게 현실이다. 자영업자 대출은 600조원이 넘고, 증가율도 가파르다. 생존하더라도 대출금·임대료·인건비 부담 때문에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00만~200만원 수준이다. 말이 좋아 ‘사장님’이지 실상은 ‘질 낮은 노동 현장의 저임금 노동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를 자영업자의 형편이 나아지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18조원 규모의 전용상품권 발행, 30곳의 구도심 상권개발, 전통시장 주차장 보급률 100% 확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등도 약속했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은 보호와 지원 등 전 부문에 걸쳐 망라돼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없으면 공염불이다. 정조 임금은 “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의 목숨이 달려있는 사안이라면 잠시라도 중단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들도 자영업자 대책에 모자란 것은 없는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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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14일 중앙윤리위원회를 열어 ‘5·18 망언’을 한 세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내놨다. 이종명 의원은 제명하기로 했는데,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를 유보했다. ‘전당대회 후보자는 후보 등록이 끝난 때부터 당선인 공고까지 윤리위 회부 및 징계를 유예받는다’는 당 선출 규정에 따른 조치라고 당은 설명했다. 두 김 의원이 오는 27일 치러지는 전당대회에 각각 당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로 등록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와야 징계한다는 것이다. 피 흘려 민주주의를 사수한 시민을 모독한 의원들에 대해 당규를 내세워 보호막을 치다니 너무나 안일하다. 진정성 없는 ‘징계쇼’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의원에 대한 제명은 당 징계위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징계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징계는 당 소속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해야 효력이 생긴다. 그런데 이 의원에 대한 당내 동정론이 만만치 않아 가결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이 의원은 당에서 제명되더라도 의원직을 유지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두 김 의원에 대한 징계 유예는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당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징계위에 회부했다면 한심하다. 알았다면 후보로 등록할 때까지 이들에 대한 징계를 늦춰 빠져나갈 기회를 줬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이들이 당선되어도 문제다. 한국당은 과연 제명 처분 대상자를 당 대표나 최고위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15일 (출처:경향신문DB)

더욱 경악할 일은 이들 징계에 대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당 내부의 인식이다. 김 위원장은 징계유예를 비판하자 “국민의 대표인 의원에 대한 징계는 명확한 사실관계를 신중하고 엄격하게 따져가며 처리해야 한다”면서 “인민재판식으로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반박했다. 망언 파동 초반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더니 끝까지 시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당 의원 상당수가 당의 단합을 거론하면서 이번 징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망언 파문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것을 보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태도가 공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시민들은 5·18 망언을 보면서 한국당을 향해 민주정당으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당이 진정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세 의원 모두 깨끗이 제명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 퇴출에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동참하는 게 맞다. 제1야당이 5·18 망언 의원들을 감싸면서 정권을 달라고 하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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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경찰제가 올해 서울·세종·제주 등 5곳에서 시범실시하고 2021년 전국으로 확대된다. 당·정·청은 14일 국가경찰 4만3000명을 자치경찰로 이관하는 자치경찰제 전면 도입안을 발표했다. 각 시·도에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 해당하는 자치경찰본부와 자치경찰대를 신설하고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등 주민밀착형 민생치안 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자치경찰에 성폭력, 학교폭력, 교통사고, 음주운전과 공무집행방해 등 일부 범죄 수사권을 주기로 했다.

자치경찰제는 중앙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역 경찰이 주민들의 민주적 통제하에 주민 친화적인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 중이다. 우리는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논의만 무성했는데, 이제 전면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치경찰제가 실시되면 경찰을 지역 주민의 삶에 밀착시킴으로써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치안 정책을 기대할 수 있다.

자치경찰제의 성패는 정치적 중립 보장과 이원화 체제에서 치안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시·도지사가 인사권을 갖게 된 만큼 자칫 자치경찰이 지방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지자체장·지방의회 의원들의 수준 낮은 처신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자치경찰과 지방토호세력의 유착 가능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국가경찰의 견제 등 엄격한 감시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시민의 관심사는 경찰의 소속 변경이 아니라 인권과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느냐에 있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 혼선을 막기 위해 112상황실에서 합동근무한다고 하지만, 국가범죄와 지방범죄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업무 중복으로 인한 충돌과 떠넘기기 같은 부작용으로 치안의 질이 떨어진다면 새 제도는 도입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성폭력 같은 예민한 수사는 오랜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데, 부실수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여당은 올 상반기 중 경찰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곧바로 시행할 계획이다.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전에 허점과 혼선을 막기 위해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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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많은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뇌에 대한 기초과학 연구 성과와 뇌과학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술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뿐만 아니라 산업, 제도, 철학, 윤리 등 여러 측면에서 미래 사회를 바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캐나다, 호주, 한국, 일본에서 뇌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다.

■ 과학 프로젝트 사례

대규모 뇌과학 프로젝트는 제도, 윤리, 철학, 과학 대중화, 기술,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사회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유럽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통해 이 상호작용을 살펴보자. 

2013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2023년까지 10년간 총 12억달러가 투자될 예정이다. 뇌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위해 신경 정보를 분석하며, 신경계를 모방한 컴퓨팅과 로봇공학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빅데이터 기술과 제도, 인간 의식에 대한 이해의 진전, 슈퍼 컴퓨팅 기술, 로봇공학, 신경모방 기술 등에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원래부터 관련된 분야가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규모의 미국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목표는 뇌 속의 개별 세포와 신경 네트워크의 역동적인 활동을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촉진함으로써 뇌 연구를 진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계의 활동을 세포 수준, 회로 수준 등 여러 수준에서 정밀하게 관측하고 조절하는 기술, 사람의 뇌 활동을 비침습적으로 관측하는 기술, 마음의 생물학적 기반을 이해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술들은 향후 치료를 비롯한 다른 목적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와는 미묘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다. 

■ 과학 프로젝트와 사회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초안 단계에서부터 이 프로젝트의 진행과 성과가 다양한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논제를 던져줄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전체 예산의 4%를 투자해서 잠재적인 기회와 위험, 윤리적인 문제들을 확인하고, 과학자, 시민, 사회학자, 철학자, 정책 관계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며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흔히들 윤리와 규제는 기술 발전 속도를 저해하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의 사례를 보면, 연구·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융합학문을 창발시키고, 관련된 기술을 마련하며, 제도를 실험해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런지 살펴보자.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뇌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연구실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한 연구 데이터들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모은 방대한 데이터를 적절히 분류해 메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했다. 특히 공유된 데이터가 개인의 뇌와 관련되는 만큼, 개인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이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의 생산에서 분류, 폐기에 이르는 빅데이터 기술과 데이터를 공유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개발되고, 이에 걸맞은 제도가 연구되고, 제도와 기술이 실험되었다. 이렇게 마련된 기술과 제도는 나중에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와 다른 기술들이 협력해 길을 내고, 실험하면서, 사회의 다른 영역도 준비시키는 효과를 낸 셈이다.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신경계를 모방해서 만든 하드웨어로 구현하는 과정은 뇌를 연구하는 데 유용한 가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된 뇌나, 뇌를 모방해서 만든 하드웨어에서 의식이 생겨나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염려도 생겨났다. 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의식을 측정할 수 있을까?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별하는 특징은 무엇인가?’와 같은 학술 연구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연구 주제들은 철학과 뇌과학 등 여러 학문들을 융합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로봇 윤리 등 기술 변화가 초래할 혼란에 시민사회를 준비시키는 효과를 낸다. 만일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 경기를 하기 전에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시민들이 받았던 충격이 훨씬 더 적지 않았을까?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한 풍부한 과학픽션(SF) 작품들이 생겨나는 한편, 변화에 대비하여 준비하기에도 유리하지 않았을까? 

■ 국제 협력

과학은 예술과 스포츠처럼 국경이 없는 분야이다. 다른 연구자들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과학과 기술 연구의 특성상 국경을 넘는 협력과 공유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과 기술 지식의 악용은 한 국경 안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규모 뇌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여러 국가들이 뇌과학 연구 성과의 윤리적인 활용을 도모하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작년 대구에서 이 학술회의가 열려,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할 만한 신경윤리적인 문제가 논의됐다. 

현대 과학은 연구 단계에서부터 경제만이 아닌 사회 제도와 철학, 문화,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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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홀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확고한 신념을 좇은 결과는 아니다. 앞으로 겪게 될,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로 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삶의 추이를 보면 앞으로도 웬만하면 쭉 1인 가구로 살겠거니 한다. 그러니 일단 이 삶의 형식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가꾸는 데 집중할 수밖에. 이 점은 나도, 그들도 같다. 차이점은 고양이 유무랄까? 나의 집에만 고양이가 없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1인 가구 모임을 가질 때, 깔깔 웃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깊어지면 어두운 주제가 튀어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깔깔 웃다가 어두운 이야기도 농담처럼 툭 던진다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계속 웃게 된다. 심지어 죽음을 말할 때도. 고양이 집사들의 고양이 사랑에 크게 감탄하는 때이기도 하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지만 약을 먹으며 계속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 A는 예전에 본 뉴스를 말하며 운을 뗐다. ‘1고양이 1인 가구’의 인간이 집에서 급사했고 며칠 지나 시신이 발견됐는데, 고양이가 시신의 얼굴 부분을 먹어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애도 그러면 다행이겠다, 굶을 일 없을 테니’ 생각부터 했다는 말을 하며 보살같이 웃었다. 친구 B는 유기농 보살이었다. 한 술 더 떠, 우리 애에게 나쁜 것을 먹이면 안 되니까 언제라도 비상식량이 될지 모를 스스로에게 늘 유기농만, 좋은 것만 공급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돈 벌고 운동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C는 가급적 밖에서 급사하고 싶다 했다. 시신 발견이 빠를 테고, 신분증을 확인하자마자 부모님께 연락 취할 테고, 그만큼 고양이에게 결핍의 시간은 짧을 테니.

사랑하는 ‘우리 애’ 자랑을 하는 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제 눈에 안경이다. 내 눈에도 웬만한 인간보다 고양이가 더 귀엽긴 하지만 심장이 아프고 막 그럴 정도는 아니던데. 친구들이 소셜미디어에 고양이 사진 올린 게 눈에 띄면 무덤덤한 얼굴로 ‘좋아요’ 누르고 금세 잊곤 했다. 굳이 같이 살 정도로 마음 움직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수입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로서, 스스로를 책임지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늘 있어 고양이에게 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살핌이 있어야만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여린 생명체의 보호자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다부진 책임감과 넉넉한 인내심, 무엇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반려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백만원 턱턱 내는 능력자들을 보며 ‘리스펙트’ 했다. 훗날 나는 나를 위해 그 정도의 치료비를 팍팍 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나 하나 적당히 추스르며 후회 없이 살다 가급적 지구에 해악 덜 끼치고 소멸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도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점 하나 보태고픈 시민적 욕망은 있다. 얼마나 시민의식이 투철한지, 급사 뒤 내 시체가 오래 방치되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까 봐, 썩는 냄새에 이웃이 고통받을까 봐 사서 걱정한다. 그래서 빠른 시체 수습을 위해 사적 장치를 마련했다. ‘고독한 생존방’이 그것이다. 다른 말은 쓰지 않고 ‘ㅅㅈ(생존)’만 쓰는 채팅방이다. 게시판에 구성원의 주소가 등록되어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수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안에 생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들도 이 방에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홀로’들은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며,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한다. 이게 우리에겐 일상인데, 사회에서는 아직도 1인 가구를 ‘현상’ 취급하는 모양이다. 명절 뒤의 들썩임을 보고 새삼 환기했다. 결혼 ‘못’한다며 인격모독까지 당했다는 증언들이 숱하게 쏟아진 것이다. ‘미혼’과 ‘저출산’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논조도 지속되고 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애나 개랑 살든, 혹은 고양이랑 살든, 그도 아니면 오롯이 혼자이든. 책임지기만 한다면, 구성원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고자 택한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 더 나아가 제도적 모색도 함께하는 동료 시민을 기대하면… 기대가 너무 큰 걸까?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제도로는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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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얘기에 뭐 그리들 조심스러운지. 속 시원히 말하지만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 차 뒷자리에서 죽은 여자의 수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보다 많습니다.” 2017년 개봉된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는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영국의 사학자 데이비드 어윙(티모시 스폴 분)의 연설로 시작한다. 그는 “히틀러의 부관 루돌프 헤스는 독일의 영웅이자 순교자이고, 아우슈비츠엔 가스실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정론’은 실화를 옮긴 <나는 부정한다>의 ‘데자뷔’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우파는 5·18 문제만 나오면 꼬리를 내린다. 힘 모아 투쟁하자”고 했다. 이종명 의원은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고,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으로 세금을 축낸다. 명단을 공개하라”고 말했다. 하나같이 역사를 비틀려는 망언들이다. 극우논객 지만원씨는 “전두환은 영웅이다. 5·18은 북한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다”라는 궤변을 쏟아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다양성의 일환이다”라는 한국당 지도부의 두둔 발언도 이어졌다. 이 정도면 ‘5·18 부정론’은 고개를 든 수준이 아닌, 대놓고 부정하겠다는 ‘시위’ 수준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이들은 부정의 근거로 “북한 인민군의 최근 사진 속 인물들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과 일치한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발포명령을 한 바 없다” 등 주장을 편다. 이는 “히틀러의 유대인 몰살 명령서는 없다” “가스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이 지어낸 괴담으로 보상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다” 등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늘 하던 말이다. “국가나 군이 ‘위안부’ 제도에 관여했다고 증명할 문서 기록이 없으므로 일본군 위안부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일본 부정론자들의 주장도 다를 바 없다.

역사적 진실을 폄훼하는 부정론은 왜 제기되는 걸까. 최근 <기억 전쟁>을 펴낸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역사적 진실이라는 기억에 흠집을 내려는 ‘기억 정치’”라며 “부정론자들은 자신의 말이 틀리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혐의를 진실에 덧씌우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부정한다>로 다시 돌아가보자. 어윙은 “나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 언급, 모욕했다”며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레이철 바이스 분)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다. 이후 4년간 32차례의 법정다툼이 벌어진다. 어윙의 역사 부정은 변호사 리처드 램프턴(톰 윌킨슨 분)에 의해 차례차례 허물어진다. “가스실에 구멍이 없으니 아우슈비츠에는 가스실이 없다”는 주장은 “가스실은 영안실과 나치 친위대 대피소였다”는 어빙 자신의 비논리적 진술로 무너진다. 일기에 적은 ‘난 유대인도 혼혈도 아닌 아리아인 아기. 유인원이나 흑인과는 결혼할 생각 없네’라는 어린 딸의 시 내용 때문에 어윙이 인종주의자,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도 들통난다. 램프턴은 어윙이 저지른 25개 이상의 역사왜곡 사실을 들어 고소의 부당함을 지적했고, “어윙은 고의적으로 증거를 왜곡하고 조작했다”는 역사적 판결에 다다른다.

법정공방의 결론으로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사법적으로 단죄됐다는 점은 통렬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 도중 판사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때문에 고심하는 것에서 확인되듯, 학문의 영역 내에 있어야 할 역사적 주의·주장을 사법적으로 정의했다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어윙이 법원 판결 직후 TV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마치 승리자인 양 말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부정론자들은 혐의 덧씌우기와 법정다툼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흠집을 내는 데 성공했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여기에 ‘5·18 부정론’을 마주한 한국 사회의 해법이 존재한다. ‘5·18은 전두환 등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벌인 민주화운동’이라는 진실은 변할 수 없다. 북한군 개입설은 국방부도 “근거가 없다”고 부인한 사실이다. 부정론자들의 의도대로 ‘5·18’을 다시 법정에 세우려 한다거나, 또 다른 혐의를 덧씌우려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더디더라도 학계에서 걸러지도록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편견과 폭력을 부추기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 포괄적으로 다루면 될 일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다.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해서 그들의 원통함을 달래야 한다”는 것이 &lt;기억 전쟁&gt;의 결어다. 곧 활동을 시작할 ‘5·18 진상규명특별위원회’는 물론 살아 있는 우리 국민 모두가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광주시민의 ‘목소리’에 응답할 때인 것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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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노래 가운데 ‘예순네 살이 되었을 때’가 있다. 웬 아임 식스티 포. “시간이 흘러간 뒤에 머리숱도 없어지고, 나이는 지긋해져도, 밸런타인데이 때나 아니면 생일날 내게 와인과 엽서를 보내주고 그러실 거죠? 당신은 따뜻한 난롯불 곁에서 스웨터를 짜세요. 일요일 아침이면 드라이브도 같이 가요. 꽃 마당을 돌보며 잡초도 뽑을게요. 예순네 살 때에도 당신에게 나는 필요한 존재겠죠? 근검절약하다 보면 여름마다 흰 섬에 유람도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예순 살 넘어서까지 다투지 않고 함께 여행 다닐 친구가 있다면 행운아. 나이 들면 부인이 남편을 보통 이겨먹게 된다. 옆집 영감들은 다들 죽어 산에 누워 자는데 아직도 방에서 자고 일어나 귀찮게 구느냐며 타박도 듣겠지. 그러기 전에 적당할 때 알아서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여자가 남자보다 수명이 좀 더 길다고 한다.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할 시간을 특별히 주신 거겠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예쁜 것은 눈에 콩깍지가 낀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선물처럼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사이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오래도록 눈을 마주친다. 사랑하는 사이엔 보고픔이 더 커서 시선에 민망함이 없다. 요새 아이들은 앞에 친구를 두고도 휴대폰만 만지작댄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사랑한다고 노래할 수 있으랴. 수십 년 된 사이들을 보면 아직도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한다. 되레 정성을 더 쏟으면 쏟았지 소홀하게 굴지 않는다. 주기보다 받기를 바라면서 변덕이 죽 끓는 사람에겐 예순네 살의 친구란 그림의 떡이겠다. “짜라빠빠 그대는 아름다워.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당신은 믿음직해.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수줍어하지 말고.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즐겁게 노래해요. 짜라짜라 빠빠빠.” 늙어 죽을 때까지 짜라빠빠 노래하고, 누군가의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성공한 인생.

티베트 속담에 “서두르면 라싸에 도착하기 어렵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닿게 된다”는 말이 있다. 짜라빠빠 주문을 외우며 오늘부터 천천히, 일단은 예순네 살까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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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사람을 ‘선비’라 부르고, 결혼한 남자에게 ‘서방(書房)’이라는 우아한 호칭을 부여한 것은 글 읽는 일을 높게 치는 유교 사회의 영향이다. 그러나 선비가 독서인의 정체성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추위는 독서의 가장 큰 훼방꾼이었다. 이덕무가 ‘<논어> 한 질은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쌓아 놓고 <한서>는 나란히 잇대어 이불로 덮고서 글을 읽었다’(‘이목구심서’)거나, 남산골 딸깍발이가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이희승, ‘딸깍발이’)고 별렀다는 이야기는 겨울 독서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최근 서울대 노조의 ‘도서관 난방 중단’ 파업을 놓고 말이 많았던 것은 유교의 숭문(崇文) 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냉골 도서관’이라는 용어는 산골의 겨울바람만큼이나 몸을 오싹하게 한다. ‘냉골 학생회관’ ‘냉골 체육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장소가 서울대의 도서관이라는 점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파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공부해 들어간 대학인데, 도서관 난방을 중단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터이다. 서울대생,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는 특별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민의식도 한몫했다. 서울대생을 ‘미래 인재’라며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마저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이번 서울대 파업은 우리 사회의 금기마저 짓밟는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했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의 인식은 그 정점이다. 

‘냉골 도서관’이 간과한 것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이다.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임금 현실화,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난방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는 설득력이 있었고, 파업은 적법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노조의 파업 이유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대신 ‘냉골 도서관’을 앞세우며 학습권 침해를 강조했다. 파업이 이어지면서 노동권에 눈을 떴고, 노동권과 학습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다행히 난방 파업은 닷새 만에 끝이 났다. 옛날 글만 읽던 선비는 자신의 사랑방에 군불을 땠던 누군가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보게 됐다. ‘냉골 도서관’ 덕분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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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첫번째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투자)가 소득 없이 끝났다. 한진그룹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대한항공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3월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이 이사 연임에 나설 경우 반대표 정도는 던질 수 있겠지만 이건 예전부터 해온 일이다.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선 이사 해임 규정과 관련한 정관변경을 추진키로 했는데, 이 역시 총수 일가 지분이 30%에 달하는 한진칼에서 국민연금 의도대로 정관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의 범법행위에 책임을 묻겠다”고 독려했지만 결과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적어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정치적 독립성에 문제가 없음이 확인됐으니 반겨야 할 일일까.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일 강경 발언을 통해 국민들의 눈높이를 올려놓은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애초에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을 응징하는 ‘정의구현’에 나서겠다는 발상부터 무리수였다. 범죄와 일탈을 일삼는 재벌들을 응징하는 것은 법의 몫이지 국민연금이 할 일은 아니다. 주식을 사고팔아 연금 재정을 늘려야 하는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는 양날의 칼이다. 예컨대 가만히 있으면 주식으로 100원을 벌 수 있는 기업에 스튜어드십 코드로 경영참여에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경영참여로 회사가 나아져 100원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오히려 100원보다 더 못한 수익이 돌아올 걱정을 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소득 없이 끝난 가장 큰 이유다.

적어도 정의구현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번 사안에서 찾아야 하는 첫번째 교훈이다. 연금으로 경영참여까지 갔을 때 장기적으로 재정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객관적 자료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논의에 참여했던 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은 “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회의자료로 만들어 온 200페이지 분량 자료 중 150페이지가량이 증권사 리포트였다”고 한탄했다. 재벌 눈치를 보는 증권사 리포트가 위원들에게 제대로 된 기업분석 자료를 제공했을 리 없다. 상근직도 아닌 전문위원들이 이렇게 급조된 티가 팍팍 나는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참여에 나서자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번엔 왜 못했냐고 타박할 것도 없다. 연금의 기존 주식관리업무만으로도 정신없는데, 객관적인 리포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 단계부터 문제제기 됐던 부분이다. 필요하다면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서라도 보다 양질의 분석자료를 만들어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위를 지원해야 한다.

두번째 교훈은, 예상대로 ‘재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금의 경영참여 여부 논의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말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을 만나 입장을 물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수년째 ‘1000원 배당’으로 유명한 남양유업은 국민연금이 배당확대를 요구하자 곧바로 “싫다”고 응수했다. 총수들이 대차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들이 지분을 틀어쥔 채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스튜어드십 코드로 뭘 하든 별 힘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튜어드십 코드 하나 갖고는 안된다. 재벌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처벌하는 법을 더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1년 넘게 잠들어 있는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역시 국회에 제출된 상태인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과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현 정부의 ‘공정경제’를 실현하기엔 턱없이 함량미달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공정거래법 개정안 작업을 주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 몇 안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적극적인’ 찬성론자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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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이에게 관용어의 사용은 대체로 피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사유와 반성을 거치지 않고 습관적으로 구사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용어의 예는 무수히 많겠지만 세간에서 논란이 되었던 표현을 언급하고 싶다. 그중 하나는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인데 보통 부정적이고 희화화된 느낌을 준다. 

좀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지역의 의회에서 이 관용어를 추방하자는 결의서를 채택한 적이 있다. 그 결의서에서 언급되었던 한 선배 소설가가 관용적으로 사용했을 뿐인데 비난받는 게 부당하다면서 투덜대던 게 기억이 난다. 다른 하나는 ‘소설 쓴다’는 말이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나 터무니없는 일 등을 가리키는데 그냥 소설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언젠가 온라인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소설가 사이에 잠시 다툼이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뉴스란 사실에 기반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때 사용된 소설은 거짓말, 왜곡 등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한 소설가가 불쾌하다고 반응했고 청와대 대변인은 관용적 표현일 뿐인데 웬 시비냐고 응수했다. 관용어라 해도 누군가는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고 그런 의도 없이 사용한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을 향한 비난이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삼천포와 관련된 논란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갈 일이 있었다. 내게도 삼천포는 이 표현으로 익숙한 지역이었지 실제로 가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삼천포에 머무는 동안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워서였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글에서나 말에서나 단 한 번도 ‘삼천포로 빠진다’는 표현을 써 본 적이 없다. 이 관용어가 무심코 튀어나오려 해도 내게 깊이 각인되었던 삼천포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스스로 사유하고 반성하며 다른 표현을 찾아내도록 나를 격려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지역 의회에서 이 관용어를 추방하자는 결의서 대신에 ‘우리 동네에 놀러오세요’라는 결의서를 채택했다면 어땠을까. 

청와대 대변인과 소설가의 다툼을 보면서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만약 그 대변인이 소설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면, 소설이 그의 내면을 뒤흔들어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는 떨림과 속울음으로 남는 경험을 했더라면, 거짓말을 소설로 치환하는 문장 앞에서 아마도 머뭇거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소설의 관용적 표현이 거슬렸다면 불쾌하다고 투덜대는 것보다 위대한 문학에 고양되어 본 적 없는 쓸쓸한 마음에 아름다운 소설 한 편을 권유하는 게 진정으로 다정한 일이었을 것이다. 

관용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사유와 반성 없이 관용어를 쓰는 습관에 있다. 

광주를 폄하하고 5·18을 왜곡하는 자들은 예전부터 보아왔으므로 지겹도록 익숙한 자들이다. 그들이 쓰는 말 역시 진부하기 이를 데 없어 하나의 관용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들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이 낡아빠진 관용어를 진실처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건 혐오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혐오는 나와 다르다고 내가 알지 못한다고 간주하는 것들을 향한다. 혐오를 넘어서려면 나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해야 하고 진실로 알아야 한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고 오래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까 광주와 5·18을 왜곡하고 모욕한 자들은 사실 광주와 5·18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고백한 셈이다.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절망과 공포와 굴욕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용기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사람들의 육성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왜 아름다운지 왜 그토록 숭고한지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한 번도 민주주의에 감동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모독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며 민주주의를 알고 싶지도 않다는 속내를 들킨 것일 뿐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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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13일 ‘2019년 1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월 취업자 수는 2623만2000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9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수는 재작년 30만명 수준의 증가에서 지난해 10만명 정도로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올해 15만명 증가를 목표로 했는데, 첫 달부터 암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연히 실업자 증가와 실업률 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실업자는 20만명 이상 급격히 늘면서 122만4000명에 달해 2000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1월 기준)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4.5%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취업자 수가 크게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에, 노인일자리사업 조기실시에 따른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고용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는 모습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한국 경제의 ‘허리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와 40대의 고용 악화다. 경제 버팀목들의 실업이 늘어나는 것은 가계를 불안하게 하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악재다. 이번에 청년층의 실업률 하락이란 긍정적 지표도 나왔지만 허리층 붕괴의 충격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제조업 분야의 취업자 수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4월 감소로 전환된 뒤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올 1월에는 취업자 수가 17만명 줄어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작금의 국내외 경제 여건으로 볼 때 조기에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고용정보원은 올해 실업률이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실업률 4%를 면하기 힘들게 된다. 홍남기 부총리는 일자리 사정 악화가 엄중한 상황임을 피력하면서 “일자리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일자리 창출을 위해 산업별 경쟁력 제고방안과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정부가 일자리위원회까지 만들어 최우선으로 일자리 늘리기를 추진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면서 혁신성장 정책을 통해 성장과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해를 넘겨서도 성장과 일자리 지표 모두 역주행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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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뒤늦게 사과와 함께 ‘5·18 망언’ 3인방을 당 윤리위에 회부해 뒷북 징계 수순에 들어갔지만, 사과의 진정성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과연 반헌법적 망언의 무게에 걸맞은 강력한 징계를 결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데다 당사자들의 적반하장 행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5·18 망언을 쏟아낸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은 사죄는커녕 ‘허위 유공자’ ‘북한군 개입’을 들먹이며 망발을 이어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이 의원은 ‘북한군 개입 검증’과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조건으로 의원직 사퇴를 운위했다. 5·18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매도했던 김순례 의원은 ‘사과문’이란 걸 내면서 “허위 유공자를 걸러내야 한다”고 또다시 희생자들을 욕보였다. ‘5·18청문회’를 주선한 김진태 의원는 “진의가 왜곡됐다”면서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듭 주장했다. 사과 같지 않은 사과 모양새를 취하면서 북한군 개입설과 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론, 5·18민주화운동을 끝까지 폄훼하려는 망동이다. 어느 한구석 반성의 기미조차 찾을 수 없는 파렴치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가운데)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을 모독하는 이런 만행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준엄한 단죄가 수반되어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조사 결과, 5·18 망언을 한 세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찬성하는 여론이 64.3%로 압도적이었다. 한국당이 오매불망하는 대구·경북에서도 제명 찬성이 57.6%에 달했다. 앞서 260개 보수단체들이 “반국가적 행위”라고 규탄할 만큼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옹호한 이들의 행각은 진보, 보수를 떠나 용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당은 13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도 당사로 몰려가 ‘징계 반대’ 시위를 벌인 태극기부대 등 극렬층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터이다. 김병준 위원장은 이들의 5·18 망언이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 존중’을 규정한 당 강령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당을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책임도 크다. 출당 등 중징계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물타기식 솜방망이 징계에 머물 경우 분노한 민심은 한국당을 직격하게 될 것이다. 여야 4당은 지난 12일 세 의원의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의원직 제명’ 추진을 천명했다. 광주영령 앞에 무릎 꿇고 속죄하기는커녕, 아직도 궤변으로 5·18 폄훼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신분은 가당치 않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추방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왜곡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제2, 제3의 준동을 막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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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의 유명한 컨설팅 회사인 Sigmaxyz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이 회사는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로 일본 내에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반나절 정도를 보내면서 일본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스마트폰 사용 예절이었다. 100여명의 직원들이 개방된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마트폰 사용조차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여 일하는 시간에는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회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2시간 정도 회의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하고 상대가 말하는 내용은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는다. 이렇게 집중해서 일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 한 명 한 명이 일본 경제를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스마트폰 사용에 너무나 관대하다. 올바른 스마트폰 사용 에티켓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대화는 이어지지만 다들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기 바쁘다. 일터에서도 스마트폰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일한다. 혹시나 카톡 메시지를 놓칠세라 틈틈이 휴대폰을 체크한다. 일의 흐름이 깨지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스마트폰이 전달해주는 지인들의 실시간 이야기만 궁금할 뿐이다. 회의 시간이나 교육 시간에도 틈틈이 스마트폰을 본다. 심지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본다. 다들 그렇게 행동하니 마치 그러한 것이 당연한 행위처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음성과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2세대 이동통신을 사용하던 1990년 이후 20년 동안 우리에게는 그나마 휴대폰 사용 예절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는 진동 모드로 사용하고 전화벨이 울리면 예의 없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기술이 점진적으로 우리 삶에 퍼지다 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화를 형성해나갈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스마트폰이라 불리며 등장한 3세대 이동통신은 10년이라는 단기간에 우리 삶 속 깊이 침투해버렸다.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스마트폰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2018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스마트폰 단말기 회선수는 5068만개로 통계청에서 제시한 2019년 우리나라 추계인구수 5181만명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조사 대상 39개국 중 한국이 스마트폰 보급률 1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에 걸맞은 스마트폰 사용 예절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심각해지는 스마트폰 중독 문제에 대해서 고심하기 바쁜가? 우리나라 청소년 30% 이상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라고 하니 좀 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 올바른 스마트폰 사용 문화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 조직, 가정의 3박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가족끼리 모여서도 각자의 스마트폰만 보는 문화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하태호 | KAIST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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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백화점이 있고, 서울로 가는 전철이 있는 도시로 전학 갔다. 같은 날 광주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반에 배정받아서 내내 붙어 다녔다. 하나는 말이 느린 데다 툭하면 ‘기야?’라고 되물어 반 아이들을 배꼽 빠지게 했고, 하나는 저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서 튀어나올까 봐 우물댔다. 그래서 둘이 따로 점심을 먹었고, 고향이 그리울 적마다 빈 운동장에 나란히 앉아 훌쩍였다.

내가 친구 어머니의 김치를 아주 좋아하게 될 무렵, 친구는 은밀하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건 우리 아버지가 참말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너도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돼.” 그의 비밀은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에 대한 기억이었다. 광주 시내에 살았던 그는 총을 든 군인들이 군홧발로 안방까지 뛰어 들어왔으며, 그전에 그의 아버지는 용케 고등학생인 큰아들을 옥상 큰 빨간 ‘다라’ 안에 숨겨 놓는 것을 보았다고. 군인들은 청년들만 보이면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고.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온 식구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아마도 나는 그때 ‘기야?’ 대신 ‘왜’라고 물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왜? 내 친구는 소리 죽여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이 말을 하면 잡혀갈 거래. 국민에게 총을 발포하라고 명령한 장본인이 대통령이던 시절이었으니, 내 친구의 두려움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해 봄의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피의자들이 인정한 사실이 재판 판결문에 똑똑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두 눈으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1980년 5월에 내 친구와 같은 나이에 광주에 있었다는 이가 말했다. 그때 일을 말하면 집안이 망할 거라고 한 아버지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고. 그들은 의심했다. 과연 세상이 진실을 지켜줄 수 있는가를.

요즘 5·18민주화운동 망언들을 보면 허탈하다. 도대체 지난 30여년 동안 힘겹게 밝혀온 진실이 이리도 가벼운 것이었는가? 그들의 거짓을 망언으로만 규정하고 말 것인가? 그들을 진짜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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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여성’이라는 단어가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단어 그 자체로만 풀이한다면 직업을 갖고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단어는 엉뚱한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지금도 국어사전에서는 ‘직업여성’을 “주로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자가 직업이 있으면 유흥업 종사자라니 시대착오적이다.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직업여성’이라는 단어는 마땅히 사라져야 했다.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한때 자주 쓰였으나 사라진 단어를 더 찾아본다면, ‘고학생’도 빼놓을 수 없다. 학비를 벌며 고생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고학생’이라는 단어는 그 사람이 ‘학생’임을 강조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의 성격에 대한 질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생’을 강조하는 한, 그 사람은 학업을 마치면 노동도 그만두리라는 예측을 포함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고학생’, 대학 진학자가 매우 드물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단어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오르내리는 시대가 등장했고, ‘고학생’이라는 단어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아르바이트, 본래 독일어로 노동이라는 뜻이다. 어쩌다가 한국어에서 아르바이트가 생업이 아니라 부업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대 한국어에서 그런 의미로 통한다. 

밤에 비행기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한국의 풍경, 특히 서울의 풍경은 말 그대로 불야성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잠들지 않는 도시, 24시간 동안 움직이는 도시.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한국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자랑일까? 그저 특성을 묘사한 것일까? 아니면 숨겨진 부끄러움일까? 비행기가 고도를 점차 낮추면 밤이 없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교회의 붉은 십자가 사이에서 이 도시를 24시간 동안 잠들게 하지 않는 상점이 보인다. 교회만큼이나 많은 24시간 편의점과 편의점 사이에 ‘24H 맥도날드’가 있고, 24시간 영업하는 주유소와 김밥집이 있다. 도시를 잠들지 않게 하는 그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을 우리는 시간제 노동자라는 말보다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시간제 노동자로 부르냐,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냐는 단순한 호칭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가 부업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한, 아르바이트 노동에는 젊을 때 임시로 잠깐 하고 마는 일이라는 뉘앙스가 따라붙는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고학생의 이미지로 시간제 노동을 포장하면 마치 시간제 노동은 젊은 시절의 낭만인 듯한 착각을 유발한다.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고학생은 아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로 미화될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10대 청소년의 전단지 돌리기부터 60대 노인의 지하철 택배까지, 대학생과 주부의 파트타임 잡부터 정규직 노동자의 투잡과 해고 노동자의 생계 수단까지” “나이와 성별, 업무 성격”을 가리지 않는 노동에 의해 24시간 움직인다. 그 구체적인 노동을 아르바이트라는 부업의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부업으로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시간제 노동자에게 그 노동은 부업이 아니라 생업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그들의 노동을 아르바이트라 부른다.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현재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하는 일의 성격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고학생’이 사라졌고, 경력단절에 처한 고학력 여성 노동자가 시간제 노동으로만 재취업할 수 있고, 빈곤을 피하기 위해 형편없는 임금에라도 시간제 노동을 해야 하는 노인이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간제 노동을 본업으로 할 수밖에 없는 대졸자가 있는 현실을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담아낼 수 없다. 

아르바이트를 대신한 ‘알바’는 부업이라는 딱지, 젊어서 하는 임시 고생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현실을 반영하려는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민중언어’에 가깝다. 비록 ‘알바’는 ‘전문용어’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아르바이트라는 속임수 용어보다는 현실을 더 잘 표현한다. ‘전문용어’보다 ‘민중언어’는 세상의 변화를 더 빨리 포착한다. 정책언어는 때로 전문용어보다 오히려 민중언어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책이 사람을 배반하지 않으려면.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주 3일은 맥도날드와 우버이츠 라이더로 일하며 생계비를 벌고, ‘알바’노조 위원장이기도 했던 박정훈씨가 쓴 책이다. 그 책의 제목은 큼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묻는다.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그렇다. 생업으로 시간제 노동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음에도 왜 ‘알바’는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이들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노동 관련 법에 의해 보호해야 할 시민의 범주에서 제외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의 질문을 따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법정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주휴수당과 적정한 휴식시간을 제공하지 않으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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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3차례의 큰 산업혁명을 거쳤다. 산업혁명을 잘 활용한 나라들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국도 1차 산업혁명의 기회를 잡지 못해 일제 지배로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2차 산업혁명에 지혜롭게 대처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기회 앞에서 국가의 흥망이 달린 갈림길에 서 있다.

메가트랜드의 큰 흐름으로 보아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과학문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정서가 생활과학화되어야 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나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을 놀이동산처럼 여기며 찾는다. 박물관 측은 1차적으로 박물관을 시민들의 과학 관문이라 인식하여 아동들에게는 재미와 동기를 부여하고, 성인에게는 기초과학이나 원리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러한 선순환구조가 과학문화를 이끌어 냈고, 미국이 세계 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경제대국이 되는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다. 초등학생 때 단체로 박물관이나 과학관을 가끔 방문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박물관을 찾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설사 단체나 개인이 박물관을 찾아도 방문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활동지나 교육프로그램 수준은 지극히 얇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한국은 후보자 명단에도 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하지만 우리의 교육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방한 때 충고의 말을 한 지도 12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교육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 중 하나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공론과 중지를 모아야겠지만 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물관과 학교를 연계한 한국식 융합교육(STEAM)도 시급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과학관에서는 학교영역에서 할 수 없는 과학 교보재를 만들어 서로 공유하면서 과학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박물관과 과학관, 학교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가 달라 교육프로그램의 공유도 어렵다. 정부는 박물관 참관을 일반 관광의 성격이 아닌, 교육관광이 되도록 정책 마인드를 바꾸어야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 명소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교육관광이다. ‘박물관이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의 기회를 활용하여 미래 선진 강국의 대한민국을 만들자!

<박종락 | 한국전통창조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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