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과는 ‘농활’이라는 인연이 있다. 도시 학생들에게 농촌에 대한 경험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깊게 하는 데에는 농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뉴스에 익산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들려온 익산의 소식은 ‘장점마을’이었다.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비료는 크게 유기질비료와 무기질비료로 나누는데 유기질비료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유박’이나 생선을 가공하고 남은 ‘어박’ 등이 들어간다. 금강농산에서 생산하는 비료는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원료로 쓰던 유기질비료였다. 퇴비로만 허용된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온 동네에 유해가스를 내뿜었고 장점마을 주민들은 익산시와 전북도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수요일에 KT&G 본사 앞에 장점마을 주민들이 섰다. 그냥 피워도 사람 몸에 해롭다는 담배인데 그 찌꺼기를 태웠으니 빤한 결론 아닌가. 이 사태에 KT&G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언론들도 이 사태에 관심을 가지면서 최근의 일인 것 같지만 주민들은 ‘18년간의 싸움’이라 한다. 담당 공무원은 ‘유기농비료’여서 문제가 있을 줄 몰랐다거나 시찰을 나갔었노라 발뺌하느라 바빴다. 그간 부실하게 이루어진 환경조사로 많은 주민들이 원인이 특정되기도 전에 고통 속에 유명을 달리했다. 

‘장점마을’ 사건은 그나마 주민들끼리 반목하지 않고 지역의 시민사회가 손을 잡고 함께 싸우고 있다. 농촌 환경오염 문제의 대명사인 경북 봉화군의 ‘석포제련소’는 영풍문고로 유명한 영풍의 업력 50년의 아연제련공장이다. 그간 카드뮴을 비롯해 각종 환경오염을 일으켜 왔다. 안동MBC는 꾸준한 기획보도로 석포제련소 문제를 농촌지역의 문제이자, 낙동강을 식수로 쓰는 영남권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취재진은 침묵하거나 취재를 막는 지역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금강농산의 비료공장은 소규모 업체지만, 석포제련소는 대형 사업장이다 보니 여기에 생계를 건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활권이 겹치는 강원 태백시는 태백시의 생존권 문제라며 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뜻이었을까. 

농촌에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제천시 송학면 인근의 주민들은 광부도 아닌 농부였지만 진폐증을 앓았다. ‘아세아시멘트공장’에서 내뿜는 분진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일은 시멘트공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웃들과의 반목과 마을 공동체의 파괴라고 말한다. 2012년 충주MBC에서 이 문제를 <투구꽃 그 마을>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담았고, 해외에서 상까지 받았어도 정작 시멘트 회사의 노조원들과 지역민들은 다큐멘터리 상영을 막아서기도 했다. 

대도시에는 감히 들어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유해시설들은 자본 유치와 고용 창출이라는 명분과 함께 농어촌으로 흘러들어간다. 농촌 곳곳마다 폐기물시설이나 공장이 들어서려 할 때마다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지만 싸울 사람이 원체 적고 근력 달리는 노인들이 다수이니 매번 지고 만다. 농사에는 비료가 꼭 필요하지만 결국 농촌 주민들의 몸을 갉아먹었다. 어디 비료뿐이겠는가. 지금도 농촌에서는 무언가가 태워지고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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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인 휴가차 가족과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골든 서클’ 일일투어를 도와주는 현지 남성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곧바로 이렇게 응답했다. “제가 며칠 전 BBC 뉴스에서 여성 K팝 가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구하라였다. 자신은 K팝을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기사를 보니 이 여성 가수가 스캔들에 휘말리고 사건을 공론화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분에게 또 다른 K팝 여성 가수인 설리의 안타까운 죽음 사건도 설명하면서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악성댓글과 불법 동영상 촬영이 얼마나 만연해 있고, 가해자 처벌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알려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BBC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제목은 “구하라와 남한의 불법촬영 희생자들의 트라우마”였다. 기사는 먼저 가명으로 처리된 은주라는 여성이 당한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가해자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 남성 동료였다. 그는 여성 탈의실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불법으로 카메라를 설치한 후 옷을 갈아입는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촬영했다. 이 남성은 나중에 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경찰에 체포됐고, 그의 휴대폰에서 불법으로 촬영된 여성 피해자들의 영상이 나왔다. 은주씨도 그들 피해자 중 하나였다. 은주씨 부모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사건이 있고 난 후 딸은 악몽에 시달렸고,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럼에도 직장 주변에서 누구도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 은주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사는 불법촬영 범행을 한 가해 남성에게 2년을 구형하고, 재판부는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BBC 기사는 구하라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계기가 단지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의 성관계 불법촬영 및 유출 협박과 폭행 때문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실질적인 원인은 법의 정의에 호소했던 마지막 희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오모 부장판사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가부장적인 태도, 피해여성이 느끼는 고통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판결문, 가해자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결과, 그 상황을 가십성으로 보도하는 언론과 대중들의 악성댓글이 아마도 구하라를 죽음으로 몰고 간 더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BBC 뉴스의 핵심 논조이다. 한국 언론들은 이러한 해외 언론의 문제의식에 비해 얼마나 이 사건을 진지하게 다루었는지 의문이다. 

BBC 기사는 은주씨 부모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라는 문장을 기사 중간의 소제목으로 달았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아마도 지금도 여성을 불법촬영하거나, 불법촬영된 영상을 보고 있는 남성들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불법촬영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알고도 모른 체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동료들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건의 진실보다는 가십성 뒷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는 기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도 소속된 연예인이 불법촬영 피해를 입어도 별일 아닌 걸로 무마하려는 기획사 대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 상대 불법촬영과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남성 가부장 의식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사법부일 수도 있다.

지난 2년간 한국에서 불법촬영 신고가 1만1200건에 달하지만 대부분 판결은 무죄 아니면 벌금형이다. 실형을 사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에 조사한 ‘불법촬영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 2000여명 중 23%가 자살을 고려했고, 16%가 자살 계획을 세웠고, 이 중 23명의 여성이 실제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불법촬영 처벌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는 안이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 메릴랜드주 법원은 수영장 파티를 열고 미성년자를 불러 탈의실을 불법촬영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여성들에게 더 고통스러운 것은 2차 피해를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직장, 언론, 연예계, 학계, 사법부에서 행해지는 잔인한 2차 가해. 과연 누가 구하라를 죽였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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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보편적 이론도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를 되짚는 것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과거에서 참고해 취할 덕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 한명기가 최근 평전(<최명길 평전>, 보리출판사)을 통해 ‘주화파 최명길’을 불러낸 뜻에 공감한다. 병자호란 당시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 협상을 주도한 외교관, 후손들에게 ‘매국노의 후예’라는 굴레가 씌워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었던 최명길.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한반도를 엄습하는 이때 명·청 교체기 조선의 형세와 그 난국을 타개하고자 고군분투한 최명길을 떠올린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최명길은 단순히 실리만을 추구하여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외교관이 아니었다. 그는 인조반정 일등 공신 10명 중 한 사람으로 시대에 순응하며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공신의 길을 마다하고 내정개혁을 주장하며 실용 노선의 외교안보 전략가를 자임했다. 그가 명·청 교체기 대륙의 정세를 조망하면서 외교정책을 준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광해군 시절 함경도 관찰사 등으로 변방을 지키던 장인(장만)과 그 부하 무장들로부터 외교·국방과 관련한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양명학을 공부해 지배층의 이념인 주자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도 유연한 외교관(觀)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 최명길이 ‘주전 95 대 주화 5’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론 지형에서도 화친을 주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최명길에게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파를 뛰어넘는 태도이다. 그는 반정 직후 광해군의 총신이었던 평안도관찰사 박엽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박엽을 처단하려는 공신 김류에게 “박엽은 후금(청)으로부터의 환난을 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며 “그를 죽이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장성을 허무는 일과 같다”고 설파했다. 박엽은 그 성정이 잔인해 세평이 좋지 않았음에도 청나라를 상대하는 데는 그만한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살려두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명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두 차례의 호란을 통해 그의 우려는 고스란히 입증됐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무인지경을 달리듯 5일 만에 서울에 당도했다. 

최명길이 좌절당하는 과정도 너무나 낯익다. 인조는 반정 1년 후 벌어진 이괄의 난으로 정권의 안위를 크게 위협받은 후부터 오로지 국내 정치에 매달렸다. 변방을 지킬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후금 정벌’을 공언했다. 반정으로 잡은 정권의 정통성을 명나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것이었다. 변방의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기찰을 강화하는 바람에 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집권층인 서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청나라와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맞서 싸울 힘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정신승리’를 외쳤다. 그리고 척화파들은 청에 항복한 뒤에는 최명길이 만들어 놓은 문으로 나가 목숨을 부지했으면서 그를 만고의 역적, 매국노라고 매도했다. 

한명기 교수는 최명길을 ‘선택적 원칙주의자’라고 정의했지만 나는 그를 ‘경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계인은 누구 편에도 서지 않는다. 한쪽에 서면 대립적인 두 당사자를 동시에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자 최진석은 “경계에 서는 것은 한쪽에 수동적으로 갇히는 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쇠락해가는 명과 떠오르는 청을 냉철히 관찰하면서 선택적으로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나간 최명길이야말로 진정한 ‘경계인’이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썩 미덥지 못하다. ‘경계’에 서고자 하는 의욕은 느껴지지만 그 전략을 실천할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면서도 전 정권에서 중용된 관료들을 내치고 있다. 균형자 역할도, 촉진자 역할도 다 좋다. 하지만 실천할 역량은 갖추지 못하면서 말로만 이상론을 편다면 또 다른 명분론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파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 이외엔 다른 길이 없는 양 부르짖은 척화대신들처럼 한·미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신봉하고 있다. 한국이 이미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여 있는데도(양국 간 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애써 이를 부정하고 있다. 명분론이 외교안보 담론을 덮는 한 냉철하고 유연한 사고는 어렵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한국이 과거 명·청 교체기의 조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홀로 한국의 길을 갈 힘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자문한다. 우리는 과연 경계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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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 처리를 두고 또다시 극한대치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회 본회의 패스트트랙 법안 일괄 상정 방침’을 12일 공식화했다. 자유한국당은 결사 저지를 외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이다. 민주당은 “이제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하고, 한국당은 “우리를 밟고 가라”고 한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보며 돌진하는 형국이다. 이러다간 지난 4월에 이어 제2의 패스트트랙 대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악의 국회’란 오명을 뒤집어쓴 20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추태를 보이는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건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내걸고 장외투쟁, 삭발, 단식을 반복하며 국회를 무력화한 한국당의 책임이 크다. 한국당은 그동안 제대로 된 법안 심사나 대안 제시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외쳐왔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생결단식 정치는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시민을 대의하는 국회에 한국당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인 입법 절차를 방해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옳다. 민주당도 수적 우세만 믿고 밀어붙이는 건 바람직한 집권여당의 자세라 할 수 없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인 만큼 여야 합의 처리가 최선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 협상이 이뤄진 적은 없다. 일방적으로 선거제도가 변경된다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불복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야말로 파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미하게나마 협상론이 흘러나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끝까지 협상의 문을 열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도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신속 처리’와 ‘결사 저지’를 천명한 뒤에 달라붙은 레토릭(수사)일망정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유독 더 크게 들린다. 따지고 보면 절충의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선거법의 경우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 안에 연동형 비례대표 비율을 얼마로 할지가 관건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도 정치적 중립 방안을 보완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협상으로 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활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며칠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결정적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야는 마지막까지 합의 처리를 위해 더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게 대다수 시민의 바람이다. 대타협을 희망하는 기대가 무모하거나 허망한 꿈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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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다. 올해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이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었다는 선정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후에 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기후 관련 담론도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도 이런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들로부터 기후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2년 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노후석탄화력발전소 4기 감축과 2022년까지 6기 감축 계획을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발표했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의 추가 건설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내게는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을 향해 반복해 외쳤던 “How dare you?”라는 날선 비판이 ‘올해의 말’로 남는다. 영상에서 본 툰베리의 눈빛과 표정과 억양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절박함,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세계에 대한 원망과 분노, 반드시 변화를 만들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빼앗지 말라며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멸종위기’를 외치는 현실이 보여주듯,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대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늘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뿌리인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자는 생각과 의지는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시사주간 타임이 지난 11일 공개한 타임 표지. AFP연합뉴스

온실가스를 에너지 쓰레기로 보면, 우리는 자원의 한계 이전에 자원을 소비한 결과인 쓰레기의 한계에 먼저 봉착한 것이다. 온실가스만 한계가 아니다. ‘5초-20분-500년’ 1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의 평균 생산-사용-분해시간을 상징하는 숫자다. 플라스틱 제품은 20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니, 우리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소각된 것을 제외하면 지구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것이다. 코카콜라 회사가 매년 생산하는 플라스틱 병만으로도 지구를 700번 감을 수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 형성된 쓰레기 더미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여, ‘GPGP’라는 태평양의 쓰레기 더미는 그 크기가 한반도의 6배가 넘는다. 핵발전소의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를 쌓아온 핵발전소의 임시저장소 포화율은 평균 90%다. 조만간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할 곳이 없는 핵발전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핵발전에 대한 근원적 고민은 없고, 임시저장소를 늘릴 생각만 한다. 쓰레기의 근원인 ‘소비주의’ 생활양식은 바뀔 기미가 없다. 생산과 소비는 진작되어야 하고,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쓰레기의 경고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더 이상, 이렇게 갈 수 없다.” 이런 규모의 쓰레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생산과 소비,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아니, 인류의 존속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조만간 기후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은 허황된 위협이 아니라, 오랜 연구 결과에 근거한 과학적 경고다. 우리의 문제는 놀랍게 진보한 기술의 결과라는 사실은 기술의 진보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극히 비현실적임을 보여준다. 이 길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호소와 주장이 현실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도 기술의 진보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새해에는 이 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마음을 청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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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을 바꾼 지 4년 남짓 된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9월18일을 공식 생일로 삼는다. 올해도 9월18일 창당 64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의 보수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 등 반이승만 세력이 모여 1955년 9월18일 창당한 민주당을 ‘뿌리’로 삼는 것이다. 민주당-민중당-신민당-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간단없는 이합집산 속에서 뼈대를 이뤄온 정당만 나열해도 숨가쁠 지경이다. 현란한 당명의 변주에도 새정치국민회의와 열린우리당을 제외하면, ‘민주’만은 지키고 있다. ‘민주당’ 계열로 한국 정당사의 한 축이 정리된다.

다른 축인 보수정당의 변천은 이승만·박정희 장기집권 덕(?)에 상대적으로 간명하다.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독재와 정변의 그늘 때문에 ‘자유’와 ‘공화’가 밀려나고 나서 한국, 한나라, 새누리 등으로 보수정당을 포장했다. 자유한국당으로 ‘자유’가 복귀하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특이한 건 ‘보수’가 당명에 쓰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격변의 현대사에서 ‘보수’는 매력 없는 기치였던 셈이다.

양대 정당의 틈새에서 생존 공간을 찾아 헤매다 명멸해간 제3당의 당명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로 한정해도 통일국민당, 신정치개혁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신당, 국민통합21, 창조한국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당명만으론 이념이나 정체성을 헤아리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인물 중심이거나 소지역주의에 기대 급조된 경우가 태반인 탓이다. 그중에서도 한 정치인의 친분을 공공연히 내세운 ‘친박연대’는 압권이다.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주축의 ‘변화와 혁신’이 신당명을 ‘새로운보수당’으로 확정했다. ‘보수’를 간판에 내건 첫 정당이다.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보수’의 지평을 열어갈 지는 봐야겠지만, 여하튼 당명에 ‘보수’가 호명된 것부터가 무너진 보수의 재건이 시대적 화두로 대두했음을 증거하는 것일 터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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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중심부 아웃백에서 나와 또 다른 인적 드문 오지, 이름조차 오지라는 힌터랜드(Hinter Land)에 당도했다. 이곳 글래스 하우스 마운틴스 국립공원엔 산봉우리 밑으로 원주민 ‘거비거비’ 부족이 모여 살았다.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엔 11개의 우뚝한 봉우리가 특별하다. 평야에 화산활동으로 솟은 기괴한 바위 산들. 늪에는 악어, 숲에는 코알라와 캥거루가 산다.

길에서 원주민 아저씨를 한 분 만났는데 기다란 통나무 악기 디저리두를 들고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디저리두는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든다. 흰개미들이 속을 파먹은 나무를 구해 검불을 모아 불을 내고 구멍을 더 뚫은 뒤 사람 키보다 조금 작게 자른다. 혀와 입을 움직여 온갖 동물들 울음소리와 강물소리, 바람소리를 닮은 소리를 낸다.

쿠노린 산에서 의식을 치른 뒤 원주민들은 멀리 울루루까지 금성 샛별을 보며 장장 6개월 맨발로 걸어 순례를 했다. 순례자 그룹의 리더였던 빌린빌린의 손자 디자이를 우연찮게 만났다. 빌리빌리 동네에 살았던 빌린빌린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말라차!’, 헤어질 땐 ‘나니 니즌’. 나니(보다), 니즌(새롭게), 그래서 ‘새롭게 봅시다’라는 뜻. 새롭게 보면 쉬이 늙고, 병들어 죽고,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게다.

디저리두 소리처럼 대지에 가득했다가 다시 새롭게 사람의 숨으로 들어와 입구멍에서 노래가 되는 신비. 나이 들지 않는 이들을 그럽(Grup)족이라 부른다. 연속극 &lt;스타트랙&gt;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만 사는 별에 착륙하게 되는데, Grown up의 줄임말로 그 부족을 ‘그럽’이라 한 데서 유래. 그럽족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을 즐긴다. 그리고 햇볕과 여행을 사랑한다. 이곳 원주민 거비거비는 햇볕에 타서 다른 어떤 원주민보다 검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원주민들은 “당신은 옥수수를 자라게 하는 햇볕 같아요. 나와 같이 옥수수를 자라게 합시다.” 이렇게 긴 말로 프러포즈를 한다. 이곳 거비거비는 “나랑 같이 낮엔 캥거루처럼 걷고, 밤엔 코알라처럼 잠을 잡시다”라는 말로 프러포즈를 한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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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7일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인류사회에 미치는 파괴적 혁신의 영향력’을 주제로 강의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자율주행, 정밀의료, 유전체공학 등 떠오르는 기술들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우리 삶의 모든 면에 미칠 파괴적 영향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볼 수 있었던 이 명강의는 4차 산업혁명의 신호탄이었다. 그 후 아부다비에서의 글로벌어젠다카운슬 서밋을 거쳐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의 주제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7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레지디오 지역에 세계경제포럼의 4차산업혁명센터가 설립되어 떠오르는 기술들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장점과 위협요인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특히 정책, 표준화, 인센티브 등을 설계함으로써 위협요인들은 최소화하고 장점들은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7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켜 다양한 연구를 해 왔으며, 지난 10월에 그 결과물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산업 변화, 요구되는 인재상, 데이터 자산 확보와 가치화, 스마트 자본으로 대변되는 질적 자본 등에 대한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또한 조력자로서 정부의 역할을 제시했으며 각 세부 분야별 대정부 권고안도 발표했다. 획일적 주 52시간제의 적용이 가져오는 문제, 대학의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는 등의 교육혁신, 혁신적 포용사회 구축, 바이오헬스·제조·금융·물류 등 각 산업별 권고, 인공지능과 데이터, 사이버 보안, 블록체인, 스타트업 생태계 등 지능화시대 혁신 기반에 대한 권고 등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이러한 권고사항들부터라도 정부가 신속히 추진하면 좋겠다.

세계경제포럼의 4차산업혁명센터에서는 9가지의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 첫째로 인공지능 분야는 공공 분야에의 인공지능 적용,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공지능 표준, 인공지능에 필수적인 데이터의 시장, 인공지능 윤리, 안면인식기술의 책임감 있는 한계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두 번째는 자율 및 도시 이동기술 분야이다. 안전규제, 사회적 이익, 평등과 접근, 기반시스템, 그리고 데이터 거버넌스와 보안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 또는 계획되고 있다. 세 번째는 블록체인 분야인데 공급사슬에서의 블록체인을 활용한 신뢰받는 새로운 디자인, 블록체인 시대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정부 투명성의 증대, 데이터 소유권과 토큰경제에서의 경제모델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네 번째는 데이터 정책이다.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데이터 3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듯이, 데이터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공통의 가치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데이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한 데이터 호환 프레임워크 설계, 정밀의학에서의 데이터 문제, 인공지능 시대의 데이터 정책, 그리고 데이터최고책임자(Chief Data Officer)의 필요성과 역할 등에 대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다섯 번째는 디지털 교역인데 현찰 없이 지불하기, 블록체인을 이용한 글로벌 교역, 3D프린팅과 교역 물류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여섯 번째는 드론과 미래 항공기술인데 드론 규제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드론 배달, 하늘을 나는 개인 이동수단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일곱 번째는 지구를 위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인데 지속 가능한 수산업, 블록체인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의 스케일업, 복원을 위한 환경데이터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여덟 번째는 사물인터넷, 로보틱스, 그리고 스마트시티인데 안전한 사물인터넷 구현을 위한 시장 인센티브 고안, 사물인터넷 기술의 영향력 가속화 전략, 소비자 사물인터넷에서의 신뢰 구축, 사물인터넷을 통해 얻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을 공통의 가치 구현에 활용하는 전략, 스마트시티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마지막 아홉 번째는 정밀의학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맞춤형으로 보다 더 효율적인 진단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정밀의학은 특히 데이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의료데이터의 장벽 제거, 정밀의학의 더 큰 발전 전략, 임상시험의 새로운 전략, 의료비와 의료보험의 혁신적 재설계, 정밀병리학과 차세대 진단, 병원에서의 유전체학 적용 확대 전략 등을 다룬다. 내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정밀의학카운슬에서는 위 내용에 추가로 윤리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상의 많은 떠오르는 기술들에 대한 글로벌 정책과 표준화 설계는 많은 나라들의 협업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므로 일본, 중국, 인도에는 세계경제포럼 4차산업혁명센터의 자매센터를 공식으로 출범시켰으며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다수의 국가에는 부속 센터들을 설립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세계경제포럼의 자매센터나 부속센터 설치는 못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의 노력으로 세계경제포럼 4차산업혁명센터와 협력하기로 하고 한국4차산업혁명정책센터를 카이스트에 설치하고 지난 10일 개소식을 했다. 우리나라 정부 출연연구소들과 대학, 기업 등 관련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센터는 세계경제포럼과 블록체인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협력을 하며, 정밀의학과 인공지능 분야 협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앞으로 세계경제포럼과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정책과 표준화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시민단체 등 많은 이해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분야 기술뿐 아니라 산업 발전과 건강한 사회 구현에 앞장서 나가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발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기술들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이 모두에게 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책과 전략 수립에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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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떡국, 이 조촐하고 우아한 음식이 언제부터 한국인의 새해 명절에 깃들었을까. 알 길이 없다. 문헌을 뒤지면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lt;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gt;며 홍석모(洪錫謨,1781~1857)의 &lt;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gt; 속에 오늘날과 비슷한 떡국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 문인들이 기록한 소고기 바탕의 장국에 끓인 떡국은 방신영이나 조자호 등 식민지 시기에 활동한 음식 연구자들의 음식책 속에서도 이어졌다.

서울 중심 기록 밖의 떡국은 더욱 다양하다. 지역마다 떡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고,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떡국에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쓰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성의 조랭이떡국은 어슷썬 떡이 아니라 누에고치 모양으로 가운데가 들어가도록 만든 떡을 쓴다. 떡의 모양도, 식감도 재미나다. 경주 쪽에는 옹근 원형으로 떡을 썰어 끓이기도 한다. 굴이나 조개가 많이 나는 데서는 굴과 조개가 떡국의 바탕이 된다. 전남 해안의 매생이떡국도 별미이다. 마침 굴과 매생이는 나는 철도 비슷하고 서로 맛의 조화도 뛰어나다. 굴과 매생이가 다 잘 나는 지역에는 당연히 굴매생이떡국이 있다. 충북 바다 쪽에서는 미역떡국을 끓였고, 경남 해안에는 물메기떡국도 있었다. 1960년대 이후 멸치가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육수거리가 되면서는 당연히 멸치떡국이 등장했다. 강원도의 황태떡국은 더 설명할 것도 없겠다. 다슬기가 잘 잡히는 호서 내륙에선 다슬기 육수에 된장 간을 해 다슬기떡국을 해 먹기도 했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 내륙에는 닭고기장조림인 ‘닭장’을 바탕으로 한 닭장떡국이 있다. 고기는 물론 뼈에서 우러난 닭의 풍미와 완성된 장조림의 감칠맛이 흰떡과 어울린 닭장떡국 또한 한 번 맛을 보면 잊을 수 없는 별미다.

일본에서도 새해에 떡국을 먹는다. 오조니(お煮)가 그것이다. 오조니는 멥쌀떡이 아니라 찹쌀떡(もち) 떡국이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 먹는 점은 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보다는 큰 떡덩이를 쓰는데, 떡을 국물에 얹기도, 국물을 떡에 끼얹기도 한다. 떡을 구워 쓰기도 한다. 떡 모양은 사각형, 원형, 타원형으로 크게 나뉜다. 집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도쿄 쪽에선 사각형 떡이 간장 또는 소금으로 간한 맑은 국물에 어울린 모습이다. 교토 쪽에선 원형 떡이 일식 된장, 특히 흰 미소에 어울린 모습이다. 지역에 따라, 가정에 따라 팥죽에 흰떡을 넣기도 하고, 팥소 넣은 떡을 쓰기도 한다.

어떻든 공통점은 떡이다. 중국 대륙의 강남, 벼농사 문화권에서는 연고(年 ), 곧 말 그대로 ‘설떡’을 먹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새해를 맞아 짭짤하거나 기름지거나 달콤한 설떡을 해 먹으며 한 해를 맞는다. 예전에 떡이란 벼농사를 잘 지어, 수확과 보관까지 잘해 드디어 공동체가 연말연시에 한 번 해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벼농사 지어 살아온 민족과 지역의 문화 속에서 떡은, 더구나 흰떡은 한 해를 잘 살아온 끝에 다시 한 해의 시작을 맞았음을 환기하는 음식이다. 이를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 대륙의 벼농사 지역에서나 저마다 다른 문화적 토양 위에서 다양하게 먹어온 것이다.

떡국도 간편식의 물결을 타고 다양한 용기와 포장으로 나오고 있다. 포장만 뜯어 데우면, 또는 용기에 끓는 물만 부으면 언제든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시대이다. 얼른 먹는 한 끼니로 소용되는 셈인데, 이 간편식이 오로지 어슷썬 얇은 가래떡에 진한 사골 국물 일색인 점은 아쉽다. 기계 사출로 가래떡을 뽑기 전엔 떡매질의 온기가 남은 흰떡 덩이를 손으로 비벼 늘여 뽑았다. 쌀의 입자는 오늘날보다 더 잘 살아 있게 마련이다. 떡국은 끓여야 하고 떡매질할 틈이 없다면 쌀가루를 익반죽해 생떡국을 끓이기도 했다. 떡의 굵기, 모양, 입자, 제법, 장국의 바탕에 이르기까지 지역마다 집집마다 무수한 조합이 있었다.

이 다채롭고 다양한 떡국의 방식에서 또 다른 매력을 새로이 발견할 길은 없을까. 시장에서 매력을 뽐내 소비자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산업에서마저 그저 서울식 하나구나, 떡국마저 그렇구나, 새삼스럽다. 조선 후기에 이어 오늘까지, 떡국도 서울이 다 먹어치웠다. 서울뿐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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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신용문객잔&gt;. 모래와 칼이 날리고 지사들의 의기와 애달픈 서사가 날카롭던 오래된 무협영화이다.

때는 명나라 경태제 시기, 주원장의 기상은 서리를 맞은 노각 꼬리처럼 쭈그러든 지 오래였고, 토목의 변으로 정통 황제가 사라진 혼란의 시기였다. 정치와 행정을 장악한 환관들의 전횡은 극에 달했고, 환관들의 시녀 노릇이나 하는 문무대신과 행정 6부는 노루 꼬리보다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 나라의 기강은 개족보가 되어 일개 환관이 상서나 대장군을 개 부르듯 오라 가라 할 정도가 되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성이 온 천하를 뒤덮었으나 몇 자 되지 않는 궁궐의 담은 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귀 같은 환관들은 동창이라는 정보경찰을 만들어 온 나라를 사찰하고 감시했다. 게슈타포나 KGB와 같은 정보경찰인 동창은 민정을 감시하고 반대파의 약점을 수집하며 필요한 경우 암살도 서슴지 않았다. 동창은 그 대가로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요즘 같으면 하명수사하고 출세와 공천을 얻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듯 명나라 때 환관의 발호는 극심했다. 위충현이라는 환관은 황제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다. 심지어 그가 행차할 때면 많은 문사들과 언관들이 앞장서 구천세를 외쳤고 살아있는 위충현을 기리는 사당도 만들었다. 권력남용을 견제해야 하는 대간과 청요직마저 위충현의 조카, 아들을 자처했다고 한다. 환관에게 아들이라니 짚신에 구슬 감기요, 돼지 발톱에 봉숭아물이지만 그 덕분에 환관이 던져주는 관직을 얻어먹고 살았다. 하지만 나라의 기강이 떨어지면 장마철 호박꽃처럼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는 법이다.

영화 속에서 동창의 수괴 조소흠은 병부상서 양원이 병권을 내놓지 않자 그를 체포한다. 사법부까지 장악하였기에 엉뚱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것은 일도 아니다. 결국 황제를 배반했다는 누명을 씌워 양원을 죽인다. 예나 지금이나 도둑이 매 드는 것은 변함이 없다.

환관들은 양원의 병사들이 충직한 주회안 장군을 중심으로 뭉쳐 봉기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주회안을 유인하여 죽이기로 하고, 양원의 어린 자식들을 서역 변방으로 끌고 간다. 조소흠은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검은 화살단을 이끌고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이를 간파한 주회안은 애인 구모언으로 하여금 이들을 구출하게 하고, 구모언으로 등장하는 임청하는 ‘동방불패’급의 천상계 검술로 검은 화살단을 한칼에 도륙한다. 일휘소탕 혈염산하가 이런 모습이리라. 양원의 자식들을 구한 구모언은 주회안과 만나기로 한 용문객잔에 먼저 도착한다. 용문객잔의 주인은 금양옥인데, 그녀는 인육만두를 만들어 팔거나 망명자들을 등쳐먹는 도적패의 우두머리다. 장만옥이 연기한 금양옥은 어떤 남자라도 유혹할 수 있는 천하절색인 데다 전치화살이라는 표창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무공 고수이기도 하다.

야심한 시각 주회안이 객잔으로 깃들이고, 장만옥은 그 주회안에게 매료되어 전치화살 대신 유혹의 눈빛을 던지지만, 정작 주회안은 유혹하지 못하고 애먼 조선 청년들의 심쿵사만 유발했다. 때마침 고수들로 구성된 동창의 선발대가 도착하여 주회안 일행의 도주를 막는다. 뜬금없이 서역 사막에 집중 호우가 쏟아지고, 어수룩하고 탐욕스러운 성문지기와 부하들까지 끼어들면서 객잔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살기가 흐른다. 드디어 동창 본대를 이끌고 조소흠이 도달하고, 주회안 일행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조소흠과 주회안, 구모언, 금양옥 간의 결투로 장식된다. 모래바람이 화면 가득 채우는 가운데, 날카로운 칼날들이 마치 휘파람처럼 날린다. 수십 합이 흐르고 점차 주회안 일행은 절대고수 조소흠에게 밀려 위기를 맞이한다. 결국 구모언은 주회안을 대신하여 조소흠의 칼을 맞고 유사에 빠져 죽는다. 물론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는 늘 악당이 패퇴하니 크게 상심할 것은 아니다. 느닷없이 토둔술을 구사하며 나타난 객잔의 주방장이 조소흠을 공격한다. 조소흠은 인육만두나 만들던 주방장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죽는다. 갑분싸 상황이나, 개미가 둑 무너뜨리고, 굼벵이가 담장 뚫는다고 압제는 늘 가장 낮은 보통의 존재들이 쓰러뜨리는 것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주회안 장군은 쓸쓸히 사막으로 떠난다. 장만옥은 용문객잔에 불을 놓으면서 자신의 모든 것과 과거를 버린 후 주회안을 따라 사막으로 향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고 그들의 뒷이야기는 알 수 없다. 아마 주회안은 쓸쓸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평생 풍찬노숙 속에서 쫓기다 현상금 몇 푼에 팔린 추적자의 칼에 맞아 모래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 권세에 도전하면 죽음뿐이 아니겠는가.

주회안 장군은 어찌하여 죽는 길을 택했을까? 금주령에 누룩장사 같은 등신 천치일지도 모른다. 다른 대신들처럼 동창에 복종하고 피아 구분을 잘했다면 물에 든 해파리처럼 어느 세파에도 늘 잘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샘은 천 길 바위에서도 솟는 법이고, 개와 달리 늑대는 사료를 먹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남기는 것은 이름뿐이다.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검사내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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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은 “중국 공산당은 법을 통해서 통치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지도자가 교체된다고 해서 바뀌면 안된다”고 했다. 중국은 수차례 헌법개정을 통해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특권을 갖지 못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확립했다.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민법과 상법도 정비됐다. 중국 공산당이 법치주의를 강화한 이유는 해외투자 유치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경제성장의 마중물인 외국인 투자유치에 필수적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법치주의 강화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가족농 중심의 포전담당책임제 등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4년 기업소법과 농장법을 개정했다. 특히 2014년 개정된 기업소법은 기업에 생산조직권, 노력조절권, 품질관리권, 무역·합영합작권, 재정관리권, 가격제정권·판매권 등을 부여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민간기업과 거의 같은 수준의 경영자율권을 보장한 것이다.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관련 법들이 정착되면 법률서비스 수요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북한에서 로펌의 등장은 법률서비스 시장이 북한 내에서도 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11일 로펌 ‘룡남산법률사무소’가 최근 홈페이지를 개설했다면서 “기관, 기업소, 단체들과 개별적 공민 또는 외국법인·외국인의 재산상, 인신상 분쟁과 관련해 민사소송이나 국가중재 및 국제중재 대리 업무를 진행한다”고 업무를 소개했다. 이 중 개별적 공민의 재산상 분쟁과 관련한 민사소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시장경제 발전에 따라 재산권 분쟁사례가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우리나라를,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는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법치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덩샤오핑을 떠올리게 한다. 비핵화 협상, 대북제재 같은 키워드만으로는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검색’할 수 없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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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 엄마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울었는지 퉁퉁 부어 있더니 어느 날은 며칠 새 바짝 말라 있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힘겹게 버티며 살아내는 표정, 둘 다 그랬다.

두 엄마는 모두 자식을 잃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내걸고 거리로 나왔다. 엄마를 떠난 두 아들의 이름 뒤에는 ‘법’이 따라다닌다. 김용균법과 민식이법. 사람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각각 그렇게 부른다. 지난 9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군의 엄마 박초희씨는 “그렇게 쓰라고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라며 울었다.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엄마 김미숙씨는 ‘세상을 좋게 하고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는 뜻이라던 아들의 이름을 그냥 쓴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우연히 본 두 엄마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은 내게도 아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고 김민식군과 같은 9살로, 고 김용균씨처럼 엄마와 셀카 찍기를 좋아한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엄마의 애끊는 심정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무심한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그렇게 한들 뭐가 달라지겠냐고.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잃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아이의 학교 앞 횡단보도에도 신호등이 없다. 1년 새 정규직이 35만명 줄고 비정규직은 86만여명이나 증가하는 노동현실에서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두 엄마 모두 처참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았을 우리 이웃이며, 또 우리다.

고 김용균씨의 엄마는 한 기자회견에서 “자식 죽은 부모가 나서지 않으면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 이만큼 힘들고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해야 국민이 알아주고 조금이라고 귀 기울여준다”고 했다. 슬픔을 가누기도 전에 일어섰던 것은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내년부터 원청업체 책임을 강화하는 김용균법이 시행되지만, 고 김용균씨가 일하던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인 하청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을 맡을 수 있다. 민식이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차량을 어린이 통학차량으로 관리하는 ‘태호·유찬이법’과 안전사고 때 응급처치를 의무화하는 ‘해인이법’ 등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은 많다.

엄마들은 ‘투사’가 되어가고 있다. 고 김용균씨의 엄마는 아들의 1주기 추모대회에서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다. 이제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가겠다”고 했다. 고 김민식군의 엄마는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른 아이들이라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돌아보면 우리의 역사에서 자식의 이름을 내걸고 거리에 나선 엄마들이 많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두 어머니는 자식 이름과 함께 일생을 살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며 세상을 바꾸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엄마에게 아이 이름은 내 이름과도 같다. 아이를 낳고 줄곧 직장생활을 한 나도 ‘OO엄마’라고 불릴 때가 많다. 아예 아이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자식의 이름을 앞세워 세상에 나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엄마는 자식의 죽음을 곱씹고 곱씹을 것이며, 그때마다 속은 까맣게 문드러질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두 엄마의 용기와 희생에 고개를 숙인다.

<이성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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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사회가 꽉 막혀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 장 남은 달력.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할 시점인데, 여기저기가 파헤쳐 놓은 공사판이다. 답답함의 근원은 최근 뉴스에서 불쑥불쑥 마주치는 ‘불신’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깊지 싶다.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가 연일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신뢰한다고 말한 지 3주가 지났을 뿐이다. ‘신뢰’의 무게란 얼마쯤일지 생각하게 된다. 하명수사 의혹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은 ‘불신의 끝판왕’이다. 사망한 수사관의 휴대전화 쟁탈전이 벌어지고, 서로를 못 믿겠다며 기초적인 조사에도 응하지 않는다.

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선 지난달 말 교육부의 대입 개편안 발표가 당황스러웠다. 지난해 온 사회의 숙의 끝 결정된 기본틀을 설마 흔들지 않겠지 생각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1년도 안돼 뚜렷한 근거도, 명분도 없이 뒤집을 수 있는 건가. 배신감이 들었다. ‘유치원 3법’ ‘어린이생명안전법’ 등 민생입법에 대해선 아예 말문이 막힌다. 들끓는 여론 속에 만들어져 당장이라도 시민 삶을 바꿀 줄 알았던 법안들이 국회 파행 속에 흥정과 거래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그래놓고 시한 넘긴 예산안은 속기록, 브리핑도 없이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잘 심사했으니 믿어달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나. 믿을 사람이 없고, 입법·사법·행정부 모두를, 이 나라의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믿을 수 없다. 이러니 새해엔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도 없다. 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 신뢰의 붕괴, 신뢰 실종이라고 쓰려다 멈칫했다. 신뢰라는 것이 애초 있기나 했을까.

생각해 보면 법과 제도는 교과서에서나 지키라고 배운 것이었다. 실생활에선 그대로 지키면 나만 손해본다는 생각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뼈저린 ‘삶의 교훈’이다. 불법주차,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계약서 등 불법과 탈법, 합법의 칸막이가 얼마나 낮은가. 반칙을 위한 촌지와 뇌물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정작 수많은 위법사안에서 피라미만 걸리고, ‘큰 도둑’들은 활개치는 장면들을 수없이 목격하며 불신은 커져 갔다. 며칠 전만 해도 1년 넘게 2억원 이상 국세 고액·상습체납자들 체납액이 5조4000억여원에 이르고, 이들 상당수가 재산을 숨기고 호화 해외여행까지 한다는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lt;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gt;의 저자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불신은 과거의 경험, 특히 제도나 시스템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경험에서 온다”고 했다. 우리의 저신뢰는 심각한 상황이다. 영국의 유명한 싱크 탱크인 ‘레가툼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19 세계번영지수’에서 한국의 종합순위는 상위권(29위)이었지만, 사회자본(공적·사적 관계, 제도에 대한 신뢰, 규범, 참여 등)은 167개국 중 142위로 바닥권이었다. 튀니지, 우간다, 벨라루스 등과 비슷하고, 카메룬, 베네수엘라보다 낮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신뢰 상위국가들처럼 감히 반칙을 생각할 수 없는 엄격한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열 교수는 미국의 정치학자 셰보르스키의 말을 인용해 ‘민주주의는 불신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도록 시스템으로 권력을 분산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권력분산의 룰 대부분이 국회에서 결정되고, 그 열쇠를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20대 마지막 국회에선 어린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눈물을 계속 봐야 했다. 애원하고 무릎 꿇고 빌며 아이 이름을 건 어린이안전법안들의 통과를 바라던 눈물이,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결정으로 법안 무산 위기에 처한 직후엔 “우리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라” “이게 대한민국 정치 현실이라니 이 나라가 진짜 싫다”는 절규로 변했다. 민식이·하준이 법이 그제 겨우 통과했을 뿐, 부모들은 또 눈물을 삼킨다. 자녀들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부모들은 진실만이라도 밝혀달라 애원했지만 국회가 두 번 바뀌도록 진척된 건 거의 없다.

눈물을 걷고 독해져야 한다. 각종 약속들을 독하게, 끈질기게 지켜보고, 약속을 어겼을 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독하게 처벌하고 심판해야 한다. 불신이 갉아먹은 사회자본만큼 가중처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의 싹을 틔울 수 있다. 선거의 해. 여야를 막론하고 더 이상 악어의 눈물, 참회와 반성에 속으면 안된다. 새해엔 독한 시민이 되자. 고비마다 대한민국 사회를 이만큼 굴려온 99%는 약하지만 강한, ‘시민들의 힘’이었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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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간, 음악평론가로서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토크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최근엔 정말 많은 음악인들이 토크가 연계된 콘서트를 진행하고, 미술인들 역시 전시장에서 수많은 전시 연계 토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자리에서 나는 주로 사회자 또는 음악평론가로 참여해 질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작업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등 그간 창작자에게 궁금했던 것을 공론장에서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이 토크의 현장은 일종의 비평 ‘현장실습’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경험상 이런 자리는 ‘대화 그 자체’를 위해 마련되었다. 어떤 특정 해답을 도출하려는 의도 없이 일단 유연하고 풍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좋은 대화가 가장 중요한 이 자리에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고, 그에 맞는 적절한,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질문을 던질 것이 요구되었다. 말과 글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으나 나는 예술가들과 이런 토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와 혼자 평론을 쓸 때의 태도에 그리 큰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에서 나는 음악 혹은 음악가의 말을 듣고 ‘질문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론이 질문하는 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거시적 차원에서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촉구한다. 혹자는 현장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이제까지의 일들을 솎아내 무엇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소개하기도 한다. 모두가 무심했던 곳 어딘가에 숨어있던 문제적 상황을 예리한 눈으로 포착해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필자도 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평론가의 위치는 저 높은 곳에서 현장을 관망하며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을 수도, 모두가 떠난 자리를 주의 깊게 되돌아보는 시점에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치 토크의 현장에서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차를 공유하며 지금의 일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다. 내가 음악을 듣고 떠오른 생각을 굳이 글로 정리해 내보내는 이유는 나의 ‘질문’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늘 자문자답을 하거나 의문으로 글을 끝맺게 되어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유연한 태도로 대화의 가능성을 잠재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입장을 지향하고 있다. 좋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청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평론이 갖추어야 할 동일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비평문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글인 만큼 어떤 의견을 정리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건넬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이 모든 일이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상정하고, 대화자 없이도 좋은 대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론가라는 말을 가끔 ‘질문자’ 혹은 ‘대화자’라는 말로 바꾸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평론가라는 직업에 부여된 과업이 ‘평가하여 논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창작자들에게 ‘좋은 질문을 건네는 일’로 탈바꿈하는 것 같다.

평론가라는 직함에는 어딘가 날선 느낌이 있다. 물론 평론가는 자신의 위치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무디지 않은 시선으로 엄중히 고민하며 글을 써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라면 평론가는 실제로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벼려진 칼끝이 더 자주 겨냥해야 하는 것은 음악보다는 평론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타인의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론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영향력을 가질지 재고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다듬어나가고 싶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드는 반성의 시선, 그리고 평가자가 아닌 ‘대화자’의 자리에서 음악과 음악가들에게 질문하는 태도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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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새해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299인 중소기업에 대해 1년간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11일 발표했다. 사실상 제도 시행을 1년 늦추고, 내년 12월까지 단속·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도 고쳐 특별연장근로 사유에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와 연구·개발 등도 추가하겠다고 했다. 기존 특별연장근로는 재해·재난 등이 있는 사업장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해온 제도다. 두 방향의 땜질은 문재인 대통령이 두 달 전 ‘국회의 탄력근로제 보완 입법’과 ‘행정부의 보완대책’을 주문했을 때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우려한 ‘최악의 종착지’에 가깝다. 10일 끝난 정기국회 본회의 239개 안건에는 환노위에서 보름 전 논의가 멈춰 선 탄력근로제 보완책이 빠졌다. 지난해 3월 주 52시간제 입법 후 22개월이나 직무유기한 정부와 국회는 입이 열개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장 ‘경영상 사유’가 확장된 특별연장근로는 오·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자 동의를 받도록 했지만, 노조조직률이 100~299인 기업은 14.9%, 소기업은 3.5%에 그쳐 유명무실하다. ‘늘어난 업무량’이나 ‘단기간 초래될 지장·손해’를 기업주가 편의적으로 적용할 위험성이 상존하는 셈이다. 2015~2017년 매년 4~15건에 그쳤던 특별연장근로 인가는 대기업 주 52시간제가 시작된 지난해 204건으로 급증하고, 올핸 10월까지 787건이 승인됐다. 두 달간 주 82시간까지 연장노동을 시킨 기업도 있었다. 새로 바뀌는 시행규칙은 대기업에도 적용된다. 감독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임시방편적 행정조치로 시작한 주 52시간제 보완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될 중소사업장은 2만7000여곳이다.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과로사회의 답도, 성패도 중소기업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3개월 전 준비가 안됐다던 ‘40%’는 11일 이 장관 발표 때도 그대로였다. 제자리걸음은 일찌감치 시행유예를 예고한 부메랑일 테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이 들쭉날쭉하고 인건비 부담이 크다는 중소기업의 현실과 하소연이 1년 후라고 크게 바뀔까. 노사정의 특단의 대책·의지·소통이 없으면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채용·노임 기준이 될 업종별 표준계약서나 적정 공기(工期)부터 확립하고, 인센티브·스마트공장 지원 속도를 높여야 한다. 1년을 또 미룬 주 52시간제, 조기 정착에 노동장관 직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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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무려 4년 만의 일이다. 그사이 전교조는 ‘법 밖의 노조’였다. 30년간 이어온 ‘참교육운동’은 정상 작동이 불가능했고, 노조 전임자 상당수는 해고와 직위 해제 등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법원의 정의로운 판단을 기대한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내린 행정처분 때문이다. 교원노조법에 따라 해직 교사도 조합원인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노조 할 권리는 국민 기본권이다. 이를 국가가 제한할 때는 ‘목적은 정당하고, 수단은 적합하고, 침해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과잉금지의 원칙)’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그런데 6만 조합원 중 해직교사가 9명뿐인 전교조에 팩스 공문 1장으로 노조문을 닫으라고 강제했다. 이는 상위법에 근거도 없는 행정명령이었다. 행정권 발동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법률유보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가 취소 소송을 내자 ‘양승태 대법원’과 ‘거래’해 재판을 연기했다. 이런 위헌적 요소, 부당한 사법거래가 확인되면서 이번에 대법원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결단 등 중요 사안을 다루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이다.

사실 전교조 합법화는 법원 판단까지 구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정부의 직권 취소나 국회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합법화에 뒷짐 지는 태도를 보여왔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지난해 ‘법외노조 처분 직권 취소’ 등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해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한 ILO 핵심협약 국회 비준에 따른 법 개정만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ILO 핵심협약 국회 비준은 자유한국당 등이 강력 반대하고 있어 성사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새 정부가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정권 출범 직후엔 ‘10대 촛불개혁과제’로 전교조 합법화를 꼽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야 간 이견으로 언제 이뤄질지 모를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만을 해법으로 고집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정부는 당장 전교조 합법화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그것이 ‘노동 존중’을 강조해온 촛불정권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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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내년도 예산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거쳐 512조3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심의과정을 거치면서 당초 정부안(513조5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 줄었지만 올해 본예산보다 42조7000억원(약 9%) 늘었다.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산업·중소·에너지(26.4%), 환경(22%), 사회간접자본(SOC·17.6%) 관련 예산도 크게 늘었다. 일부 야당의 ‘대폭 삭감’ 주장은 허언에 그쳤고 대부분 정부 원안대로 통과됐다.

국회의 정부예산 심의는 세금이 낭비 없이 지출될 수 있도록 사전에 적정성을 따져보는 절차다.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심의의 실상은 ‘부실·날림’이 돼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SOC 예산 심의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전년보다 2조6000억원 늘어난 22조3000억원의 SOC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건설투자 부진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원인 중 하나로 부각되자 ‘생활형 SOC’ 등의 명분으로 투자확대에 나선 것이다. 이는 정부가 일본의 SOC 투자남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과 배치된다.

국회는 SOC 예산 가운데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받는 사업이 많은 만큼 철저히 심의해야 한다. 그래야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감시는커녕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삭감도 모자랄 판에 심의과정에서 정부안보다 9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확대한 예산은 대부분 당대표, 원내대표, 예결위원장, 예결위 간사 등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사업에 배정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동영 평화민주당 대표, 장병완 대안신당 대표, 김재원 예결위원장(한국당), 전해철 예결위 간사(민주당) 등이 이른바 ‘쪽지 예산’으로 수억~수십억원을 추가로 가져갔다. 지역민원성 예산 확보 앞에 ‘꼼꼼한 심의’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반면 취업성공 패키지,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노인요양시설 확충 등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조원이 깎였다. 지역 민원성 토목사업에 쓰기 위해 취약계층이나 일자리 예산을 줄인 것이나 다름없다.

새해 예산규모가 확대되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60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지금 빌려 쓰는 돈은 후대에 갚아야 할 빚이다. 그런데도 국회의 부실한 예산심의는 반복되고 있다. 국회 심의가 ‘쪽지 예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국회의원 자기 재산이라면 이렇게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 각성을 강력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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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몇 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흥미로웠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스태프들에게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알아낸 다음(성선설 쪽이 좀 더 많았다) 토론 후에 생각을 바꾸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일종의 룰이었다. 그런데 토론이 끝난 후에는 처음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출연자들의 개인적 재치와 말솜씨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스태프들은 마음을 바꿔 성악설을 주장한 쪽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인간 본성의 선악에 관한 논쟁은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저 하늘에 해와 달이 있고 하루 중에 낮과 밤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도 할 수 있다. 적막한 밤, 홀로 깨어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즉 대체로 나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때로는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사이코패스는 대뇌의 구조가 일반인들과 다르니 그들은 차치하고 말이다.

어느 정신의학자는 인간이 칭찬보다는 비판에 능하고 신뢰보다는 피해의식과 불신을 갖기 쉬운 이유를 우리의 뇌에 이미 입력된 기본적인 프로그램, 즉 집단 무의식과 연관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볼 수밖에 없으며, 상대가 나를 이롭게 할 것인지 아닌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예를 든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린 분노하는 법을 배우지 않지만 누구나 쉽게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를 참고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법정 스님도 ‘최고의 종교는 친절과 칭찬’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 이야기도 있다. 그를 존경하는 누군가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지혜에 대해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친절하고, 친절하고, 또 친절한 사람이 되어라.”

법정 스님과 헨리 제임스도 그것이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그런 식의 표현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앞서도 언급했듯이 화를 내는 것은 쉽다. 물론 상담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내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당사자 앞에서 바로 그 순간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것뿐이다. 혼자 있을 때는 당연히(!) 그 사람 욕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거나 해서 화난 것을 표현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도 나를 화나게 한 사람 앞에서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지 못했다는 분노의 감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나 화를 낼 만큼은 낸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상대가 받고 싶은 만큼 칭찬을 못해 줘 속상하다는 사람들은 만나기 힘들다. 물론 나도 그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중적인 속성에 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에 나의 그런 면에 대해서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으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두 마음 사이에서 균형과 상식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신과 수련의를 시작할 때는 ‘왜 우리가 상식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갖고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할수록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상식대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고 있다. 마치 시소가 올라가거나 내려가 있지 않고 평행을 이루는 순간이 아주 찰나인 것처럼 상식의 순간 역시 찰나에 머무르고 마는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소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칭찬과 친절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저무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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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이른바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이 예산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민주당은 ‘4+1 협의체’가 마련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 처리에 나섰다. 한국당은 ‘예산안 날치기’라며 반발했다. 최악의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변칙으로 얼룩진 꼴이다. 다만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민식이법 등 비쟁점 법안 16건을 처리한 게 그나마 소득이다. 여하튼 예산안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되는 유감스러운 사태가 빚어졌다. 예산안의 법정시한(2일)을 지키지 못한 국회가 예산결산특위를 패스해 ‘4+1 협의체’의 심사로 예산안을 확정한 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4+1’ 수정안이 동력을 얻게 된 것은 한국당 책임이다. 번번이 합의를 번복하면서 예산안을 볼모로 ‘유치원 3법’ 등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을 배제한 예산안 처리를 불러온 것은 ‘정략적’ 필리버스터로 국회를 마비시킨 한국당의 자업자득이다.

나라 살림살이인 예산안의 부실, 졸속, 깜깜이, 짬짜미 심사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야가 극한 대치로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마지막 하루 동안 벼락치기 증감액 조정을 벌였으나, 이마저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앞서 ‘4+1 협의체’의 예산 심사 역시 총선용 예산 담합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여야 3당의 막판 협의에서 총 삭감액 1조6000억원 수준의 합의가 진행되다 앞서 ‘4+1’이 만든 예산안의 증감액 내역을 보여달라는 한국당의 요구가 거절돼 최종 합의가 무산됐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4+1’의 예산 심사에서 정파적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발목잡기로 정상적 예산안 처리를 어렵게 만든 한국당의 책임이 크지만, 타협을 이루지 못한 집권여당의 정치력 부재도 지탄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11일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격돌이 더욱 우려된다.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마련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임시국회에 상정해 처리할 태세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 등을 총동원해 막겠다는 방침이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만이라도 막판까지 타협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응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당이 또다시 발목잡기와 시간끌기로 일관한다면 패스트트랙 법안을 국회법 절차대로 처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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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산하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등이 연루된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에는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담겨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기밀 유출 우려, 사생활 보호 등을 앞세워 이의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로 인해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돼도 국민은 물론 사건 관계인조차 ‘왜 죄가 안되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 반복됐다. 검찰이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어 따로 범죄 혐의자의 죄를 물을 방법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사법체계다. 개혁위의 권고는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개혁위는 누구든지 검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열람·검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제·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 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자치단체 정무직 공무원·판사와 검사·4급 이상 공무원 관련 사건과 사회적 이목을 끈 중대 사건 등이다. 개혁위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전관 특혜의 사법불신을 제거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며 “국민 알권리 보장, 제 식구 감싸기 방지 등도 기대된다”고 했다. 

불기소 결정문 비공개에 따른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관 특혜, 밀실·늑장·짬짜미·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으로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해도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재정신청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소송 비용과 시간 부담으로 대부분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 해 135만여건의 불기소 사건 중 ‘김학의 성폭행사건’처럼 검찰이 죄를 묻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검찰 설명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것이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등 전·현직 검사들의 내부고발을 보면 ‘상부의 지시’ 혹은 ‘수사를 안 해서’ 등 여러 이유로 불기소 처리되는 사건이 많다고 한다. 

중요 사건 불기소 결정문 공개는 이런 낡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다. 대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같은 취지로 판시하고, 권고한 바 있다. 대검찰청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이를 사법처리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3.5%만이 지지하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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