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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4)
사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의 가감 없는 표현이다. 나의 얼굴, 몸가짐, 내가 처한 환경과 운명은 내 생각 그대로의 표현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내 생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 미래는 마치 조각가 앞에 놓여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최초의 커다란 돌덩이다. 나는 형태가 없는 돌덩이와 같은 미래를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두 손에 정과 망치를 들고 마음속에 그려놓은 생각을 조각하기 위해, 쓸데없는 군더더기 돌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정교하게 쪼아내기 시작한다. ‘나의 미래’라는 조각품은 남들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을 때 빛이 날 것이다. 생각은 내 손에 쥐여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5. 27. 12:00
인내

자기 분야에서 존경받는 일인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행복한 임무를 발견하고 정진할 때, 우리를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 임계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 재능이면서, 결심이자 단호한 의지다. 이것은 소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구분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즐기는 사람만이 건너갈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바로 인내(忍耐)다. 거의 30년 전 나는 한 언어에 매료되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를 기록한 고전 히브리어다. 나는 그 당시 어두운 숲속을 헤매며 한 줄기 빛을 찾고 있었다. 내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 송두리째 앗아갈 정도로 매력적인 그 무엇. 그것이 바로 고전 히..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5. 12. 21:00
[배철현의 심연]오만(傲慢)

나는 내 자신을 가만히 관조하며 내가 가야 할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그러나 내가 그 거룩한 여정으로 떠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것이 있다. 내가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나에게 겹겹이 달라붙는다. 이 괴물의 이름은 오만(傲慢)이다. 오만은 자신에게 유일한 최선의 삶을 구가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기원전 16세기, 그리스 남동쪽 에게해의 섬 테라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이 발생했다. 수백m 화산재가 쌓이고 해일이 발생해 미노스 섬과 미케네 섬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이 자취를 감췄다. 이때 생긴 섬이 휴양지로 유명한 산토리니다.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는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생산해 정교한 해상무역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대규모 화산 폭발로..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3. 31. 21:00
[배철현의 심연]순간(瞬間)

이른 아침에 갓 뽑은 따끈한 에티오피아산 커피는 나를 잠에서 서서히 깨운다. 그러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는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이내 식는다. 사람은 늙기 마련이고 영원할 것 같은 저 하늘의 별들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장렬히 빛을 내뿜으며 사라질 것이다. 우주 안에 괴물 중 괴물이 하나 있다. ‘시간’이다. 이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은 날아간 화살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쏜살처럼 다가오는 미래를 추호도 모르면서 무방비상태로 매 순간 진입한다. 나에게 남겨진 것, 아니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과거’라는 기억뿐이다. 이 ‘과거’라는 기억은 20년 전이나 20분 전이나 현재의 시점에서 ‘순간’이란 점이 경이롭다. 워싱턴 어빙의 소설 에서 주인공 립 반 윙클은 아내..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3. 23. 21:00
멘토

내가 오늘 걷는 이 발걸음이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상에 있는가? 이 길은 나의 숭고한 여정의 필수불가결한 단계인가? 나는 아침마다 내가 디디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거룩한 과정이며 동시에 목적지이길 기도한다. 스승이란 인생의 길 위에서 나의 최선을 촉구하는 존재다. 스승은 인격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그 길을 이미 묵묵히 걷고 있는 도반(道伴)이자 선각자다. 서양에선 스승을 ‘멘토(mentor)’라고 부른다. ‘멘토’라는 영어 단어는 1750년경부터 문학 작품에 등장해 오늘날까지 ‘스승, 조언자’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멘토’는 인도유럽어권에서 ‘생각하다’라는 의미인 ‘만(man)’의 사역형인 ‘멘(men)’에 ‘~하는 사람’이란 뜻의 어미인 tor를 첨가한 것이다. ‘..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3. 3. 21:00
일본의 신화 속 물고기 ‘고이’ 이야기

자신에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신나는 삶의 여정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과거는 나를 안정과 편안으로 유혹하는 달콤한 구속복이다. 이 옷을 벗어 던지기 위해선 불편한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진입시켜야 한다. 어제 있는 그 상태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이탈시키는 행위를 ‘엑스터시(ecstasy)’라고 부른다. ‘엑스터시’는 보통 무당이 경험하는 입신의 경지를 이르거나 마약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 그 원래 의미는 ‘자신의 과거나 사회가 부여한 수동적인 상태(state)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투쟁’이다. 광고 자신에게 유일한 길을 가려고 결심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이 결심을 단단하게 여며주고 상기시켜주는 효과적인 도우미가 있다. 육체적 운동이다. 나는 28년 전, 한 멘토를 만..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2. 18. 21:00
또 다른 나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두 눈을 가지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인간은 응시의 대상인 ‘밖’을 파편적이며 왜곡된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시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불어나 자신을 지배하는 괴물이 된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괴물의 하수인이 되어 세상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힌다. 이 순간 응시의 대상은 ‘있는 그대로의 나’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덤덤하게 보는 것’이다. 그 대상을 자신의 구태의연함으로 보지 않고 생경하게 바라보기를 연습해야 한다. 일상과 구별된 나만의 시공간에서 나를 멀찌감치에서 관찰하기를 수련하다 보면, 그런 나를 적나라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행위가 회심(回心)이다. 내 안에는 ‘과거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가 고착화되고 있는 ‘현재의 ..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2. 4. 21:00
몫

‘몫’이란 단어는 신비하다. 내게 맡겨진 절체절명의 임무이자 나만이 할 수 있고, 나의 개성이 마음껏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글자 모양으로 보아, 한글인 것 같고 추측하자면 ‘목숨’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한 말인 것 같다. ‘몫’이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추적해보고, 만일 그것을 발견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과업이 아닐까? 나의 몫은 무엇인가? 내게 맡겨진 고유한 몫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유일한 몫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힘으로 사고할 능력이 생기면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배움의 길에 들어선다. 학교에선 우리하곤 상관..

=====지난 칼럼=====/배철현의 심연 2016. 1. 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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