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생인 나는 작년에 나와는 10살 차이인 90년대생, 70년대생 두 사람과 독특한 인연으로 만났다. 그들과 적당히 친해지고서는 언젠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이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것이 ‘2002년 월드컵’이었다고 덧붙였다. 2002년에 나는 스무 살이었다. 태극기를 들고 신촌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무척 행복했다. 사실 나에게 그 거리는 전경과 대학생이 아니면 서 있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최루탄 때문에 손수건을 항상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2002년에 아, 이렇게 거리에 함께 모여도 되는구나, 그리고 멋진 일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을 얻었다. 내가 한 개인이자 청년으로서 대한민국의 몇몇 현대사의 순간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용기도 그때 내 몸에 새겨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답을 짐작해 보았는데, 1970년대생은 IMF를, 90년대생은 최근의 촛불집회를 각각 말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정확히 20살 차이가 나는 둘은 동시에 같은 답을 했다. 그러니까, 2014년 4월16일, ‘세월호’였다. 그 이유도 거의 비슷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저의 아이가 거기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했어요.”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나는 2014년에 막 서른이 넘은 참이었다.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일들이 밀려들었던 때다. 나뿐 아니라 83년생인 주변의 친구들 모두가 비슷하게 순탄하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주변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서른 즈음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월호의 뱃머리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먹먹하기는 했으나 ‘내가 저기에 있다면’ 혹은 ‘나의 아이가 저기에 있다면’ 하는 데까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나의 공감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도 있겠고 출산과 육아라는 미션을 수행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70년대생과 90년대생의 몸에 세월호라는 재난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재난으로 깊게 새겨져 있었다.

개인과 동시하는 역사는 그들의 몸과 사유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재난이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서해훼리호의 침몰을 지켜보았다. 그 잔상이 내 몸 여기저기에 여전히 묻어 있다. 그러나 재난보다도 오히려 그 재난을 극복하는 방식이 그것을 목도하고 자기화한 이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게 된다. 잘 극복된 재난은 그 이후의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다시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반면 잘 극복되지 않은 재난은 오히려 그 이후를 더욱 참혹하게 만든다. ‘어떻게 구조했는가’만큼이나 ‘어떻게 사과했는가’ ‘어떻게 진상을 규명했는가’ ‘어떻게 책임졌는가’ ‘어떻게 위로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왜?”라는 여러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재난 이후의 재난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세월호를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규정한 90년대생과 70년대생 두 사람은, 하나의 공통점을 더 드러냈다. ‘나의 아이들을 외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것과 ‘기회가 되면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70년대생은 지금 한국에 없다. 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라는 그의 능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세월호 이후, 이민이 삶의 한 명제이자 목표가 된 어느 세대들이 탄생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개인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몸에는 이미 그 단어가 새겨지고 말았다. 80년대생들이 갖고 있는 ‘탈조선’이라는 해묵은 유행어와는 그 차원 역시 다르다. 이 자체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대한민국이 직면한 거대한 재난이다. 

그들의 마음을 구조하는 데는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현재진행형인 재난이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를 내가 만난 70년대생과 90년대생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 5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겨움을 호소하기에는 오히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몇 주기라는 기억의 순환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세월호라는 재난을, 그 재난 이후의 재난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남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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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피어난 수수꽃다리 꽃에 앉아 날개를 접고 꿈을 꾸는 나비는 태양에서 날아온 광자(photon)에 흠뻑 취해 있다. 이런 나른하고 이완된 기운은 금방이라도 나까지 엄습할 듯하다.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유독 봄에 피곤하고 무기력한 증상을 우리는 춘곤증이라고 부른다. 낮이 길어지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 북반구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긴 겨울 동안은 햇빛이 내리쬐는 낮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우리 몸속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재고가 바닥난다. 이에 반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춘곤증이 생긴다는 가설도 있다. 또는 기온이 올라가 혈관이 이완되고 혈압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증세가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춘곤증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균 시간만큼 잠을 자지 못해서 잠의 고리(高利) ‘빚’에 시달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기네스북에서조차 ‘잠 안 자고 버티기’ 기록 분야를 폐지했을 만큼 과학자들은 부족한 잠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했다. 너무 많이 자도 좋을 것은 없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인들은 세탁기나 냉장고 혹은 휴대폰과 같은 ‘시간 절약 기계’ 살 돈을 버느라 잠잘 시간을 앗기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수면 부족은 우리 몸 곳곳에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그래서 수면과학자들은 평균 수면 시간보다 잠을 적게 자는 행위가 빚을 지는 일이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 사실 평생 지속되는 인간의 행동 중 잠이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운동하거나 밥을 먹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동물의 몸속에 수면을 유도하는 기구(machinery)를 켜고 끄는 스위치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주로 초파리를 사용한다. 포도 껍질에 몰려드는 자그마한 곤충 말이다. 생긴 것은 보잘것없지만 이들의 유전체는 인간의 그것과 비슷하고 기능적인 면에서도 흡사한 부분들이 많다. 초파리들도 잠을 설치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수명도 줄어든다. 하지만 남들보다 적게 자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있는 까닭에 동물의 수면을 조절하는 유전적 소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2005년 위스콘신 대학의 토노니 교수는 9000종의 초파리 돌연변이체를 조사한 뒤 칼륨 채널을 암호화하는 셰이커(shaker)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으면 잠을 적게 잔다고 보고했다. 뒤이어 수면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항균 작용을 하는 유전자도 알려졌다. 잠을 자는 일이 곧 면역계를 강화시킨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잠 역시 관장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잠을 자지 않으며 공부하면 학습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잠을 잘 때 활발하게 일하는 한 무리의 신경세포들이 초파리 뇌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세포들이 밤에 일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포가 일을 잘하도록 수면 환경을 조성하면 곧 불면증을 치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생명체가 잠에 들 수 있게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하는 일이 초파리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면 잠은 결국 동물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잠의 기능을 일반적으로 뇌와 근육에 휴식 시간을 주거나 손상을 회복하는 일, 포식자를 피하는 일,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 정보 처리와 저장 등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효과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연구 결과가 올해 3월 ‘네이처’에 보고되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잠은 체내에 누적된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생체 내 에너지 상태를 재정비한 후 다음날을 대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산소와 함께 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산화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한다. 음식물에서 채굴한 전자가 간혹 부적절하게 산소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녹슨 쇠도 ‘화학적’으로 산화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보면 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산소를 다루어야 한다. 우리 세포 안의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산소가 없으면 에너지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처럼 주저앉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산스레 산소를 써서 에너지를 만들어야만 간신히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천형처럼 산소와 함께 사는 동안 동물은 잠을 자야만 한다. 내려오다 만 모래시계를 뒤집듯 잠을 설친 뒤 활성산소를 이고 진 채로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의 어깨는 축 처질 수밖에 없다. 비단 인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포분열 시간이 불과 30분이 안되는 대장균도 어떤 식으로든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이다. 또한 행동을 기준으로 봤을 때 잠을 자지 않는다고 알려진 귀뚜라미나 얼룩물고기 또는 개구리도 반드시 잠을 자야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어떻게 잠을 자는지 우리가 아직 자세히 모를 뿐이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먼저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운동이나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를 허물어뜨릴 단백질의 손상이 수면을 관장하는 신경세포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만약 다른 어떤 생리학적 과정보다도 수면이 질병을 치유하는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잠을 잘 자는 행위는 곧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일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면서 서로 잠을 권해야 하지 않겠는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어쨌든 꽃은 피는 게고 솟아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우리도 나른한 나비의 꿈을 한번 꾸어봄직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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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을 해도 자꾸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라는 소리. 시골에 산다고 다짜고짜 노인 취급을 한다. 아버니임~으로부터 시작되는 코맹맹이 소리. 죄송합니다, 라고 전화를 서둘러 끊으면 재차 또 걸려오곤 한다. 짜증이 욱 올라온다. 태양광 소리만 들어도 이젠 뒷골이 땅길 지경이다. 탈곡기를 사라는 전화도 온다. 마을 전화부를 어떻게 알고 이런 전화를 다 하나 싶다. 손전화기로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도 두어 번 받아보았다. 귀하의 은행정보가 털렸다고 하길래 은행에 저축한 돈이 없는데 괜찮다고 했더니 딱 끊는다. 좀 더 전화를 해도 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 언젠가는 대출을 해준대서 이미 콩팥 장기까지 팔았다고 했더니 딸칵 끊더라. 

대학생인 아들이랑 통화를 하다보면 ‘이 녀석이 요새 돈이 없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술값이 없든지 책값이 없든지 아니면 데이트 비용이 없든지 셋 중 하나일 테다. 사내아이는 보이스. 낚시는 피싱. 대부분의 부모는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산다. 해준 것 없는 아비에게 마음을 내는 걸 보면 나로선 감사한 일. 적은 돈이지만 잘 받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마음에 저장해둔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낙들 둘이서 자식 걱정을 했다. 한 아낙 왈 “대학교 댕기는 아들이 만날 돈만 부쳐달라는데, 도대체 무슨 학생이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학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푸념을 늘어놓자, 듣고 있던 다른 아낙 왈. “차라리 그렇다면 속이나 편하겠네요. 우리 딸은 돈을 달란 소리를 전혀 안 해요.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 옷 사고 가방 사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빼앗기는(?) 편이 낫다 싶기도. 

몽글몽글 구름이 피어나더니 서산을 넘는다. 어떤 날은 전화가 하도 많이 걸려와 소동에 가까운 날이 있고, 어떤 날은 공치는 심심한 날도 있다. 번호부를 뒤지면 얼굴조차 희미한 사람. 인연이 다한 사람. 아쉽지만 가벼워지고 싶어 ‘삭제’를 누른다. 오래전 죽은 사람이지만 기억하고 싶어 저장해 둔 이름도 있다. 그리운 노란 리본의 이름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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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노래 속 ‘잡초’는 이름도, 꽃도, 향기도, 손도, 발도 없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존재다. 여자농구 청주 KB스타즈를 우승으로 이끈 안덕수 감독은 ‘잡초’라 불렸다.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갖고 있는 걸 잘 몰라서다. 한국 사회에서 인물을 평가하는 첫번째 요소인 ‘학연’과 ‘지연’을 갖추지 못했다.

경기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덩치가 컸다. 주변의 권유로 농구공을 잡았다. 매산초등학교와 삼일중을 거쳤다. 중3 시절 전국대회에서 펄펄 날았고 우승을 따냈다. 안 감독은 “옛날 기억은 항상 좋은 일만 남기지만 같은 학년에서 우리 친구들을 이길 선수는 없었다. 다 한 수 아래였다”고 했다. 같은 학년 동기들은 얼마 뒤 불기 시작한 ‘농구대잔치 열풍’의 주인공이 됐다. 전희철과 김병철이 한 학년 위, 양희승과 서장훈, 추승균 등이 동기였다. 

우승 뒤 일본으로 친선경기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일본 고교(하쓰시바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농구공은 잘 다뤘지만 일본어는 몰랐다. 이미 같은 재단의 삼일상고 진학이 예정돼 있던 터였다. 농사짓던 아버지가 말했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1989년 당시 일본과의 경제적 격차는 상당했다. 운동 선수에게 짐 싸는 일은 익숙했지만, 말 한마디도 안 통하는 곳은 낯설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첫 반년 동안 죽도록 고생했다. 말이 안 통하니 그곳에서야 말로 ‘잡초’였다. 안 감독은 “그래도 나중에는 일본 후배들이 형제처럼 잘 따랐다”고 했다.

고교 졸업 뒤 일본의 규슈산업대에서 월 10만엔씩 장학금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대학 졸업 무렵, 한국에도 ‘프로농구’가 생겼다. 삼성에 입단했지만 그를 위한 자리는 넓지 않았다. 습관성 어깨 탈구도 발목을 잡았다. 선수생활이 일찍 끝났다.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을 지내다 2007년 일본 여자프로농구 샹송화장품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다. 당시 일본 여자 농구는 한국 농구에 뒤져 있었다.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낯선 곳을 향한 또 한 번의 도전이었다. 9년 동안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일본 농구는 한국 농구에 역전했다. 그사이 안 감독도 일본 농구가 가진 시스템의 힘을 온몸으로 배웠다.

2016년 초 KB스타즈의 감독 자리가 비어 있었다. 많은 ‘국내 농구인’들이 그 자리를 노렸다. 학연·지연은 물론 여러 가지 ‘인연’을 동원해 관심과 욕심을 전했다. 안 감독은 여기저기 줄을 대는 대신 당시 챔피언이었던 우리은행의 챔프전 경기를 보러 다녔다. 안 감독은 “경기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았다”고 했다. KB스타즈는 팀 분위기 쇄신을 원했다. WKBL 출범 뒤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인연이 없는 ‘잡초’가 적격이라는 판단이었다. 구단 관계자가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샹송화장품을 설득했다. 감독직을 고사했던 안 감독은 “3년을 기다려달라는 게 내 수락 조건이었다”고 했다.

감독 첫해 드래프트에서 박지수를 지명할 수 있었던 것은 운명 같은 행운이었다. ‘잡초’로 지낸 지난 세월은 소통 능력을 키웠다. 일본어 한 글자를 모르고도 살아남았다.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뜻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선수들은 “감정 표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게 오히려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긴박한 순간 복잡한 언어보다 솔직한 표정이 더 정확하게 뜻을 전하기 마련이다. 화려한 꽃과 향기로 속이는 대신 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잡초의 힘이다. 한국 여자 농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던 정선민을 FA로 데려오고도 하지 못했던 우승을 약속했던 3년 만에 결국 해냈다.

중3 때 일본을 가지 않았더라면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을지 모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안 감독은 “그래도 일본으로 갔을 것”이라고 했다. “온실 속 화초는 보는 사람이 즐겁지만 끈질긴 잡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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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추진돼온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이 좌절됐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7일 “녹지병원 측이 현행 의료법에서 정한 3개월의 기한을 넘겨서도 개원하지 않았고 개원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도 없었다”며 의료법에 따라 개설허가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녹지병원 설립 취소는 지난해 12월5일 제주도가 허가한 지 4개월 만이다. 영리병원이란 성격과 병원 설립 과정에서의 잡음과 의혹, 반대 여론에 비춰볼 때 제주도의 허가 취소는 당연하다. 

2017년 8월, 녹지그룹이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때부터 논란이 거셌다. 녹지그룹은 중국 부동산개발회사로, 영리병원 신청에 앞서 제주 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에 개발업자로 참여했다. 시민단체는 일찍부터 부동산개발업체가 영리병원에 뛰어든 사실을 주목하며 병원 운영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부실한 사업계획서도 도마에 올랐다. 반대 여론이 커지면서 제주도가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통해 여론 수렴에 나섰고 ‘허가 반대’가 58.9%로 찬성 비율(38.9%)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그러나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의 결론을 뒤엎고 행정의 신뢰성, 대외 신인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이후 녹지병원 측이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제한’ 방침에 반발하면서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17일 오전 제주도청에서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추진되던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 취소와 관련된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제주 영리병원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녹지병원 측은 지난 2월 제주도의 조건부 개원허가를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또 이번 설립허가 취소에 대해서도 법에 호소할 수 있다. 제주 시민사회는 녹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녹지병원 측의 반대로 쉽지는 않다.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송도에 세우려다 백지화됐고, 2014년에는 중국 싼얼병원의 영리병원 진출을 논란 끝에 불허했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병원이 고급화하고 의료서비스가 향상된다는 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진료비 상승으로 의료의 질이 양극화되고 건강보험 중심의 공공의료 체제를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 정부는 더 이상 영리병원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자체들도 지역발전을 앞세워 의료공공성을 외면하는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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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새벽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안모씨(42)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70대 남성과 60대 여성 등 5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안씨는 유일한 대피로인 계단 2~4층을 오가며 무방비 상태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상처를 입혔다. 사망자 중에는 12세 여자 초등학생과 18세 여고생도 포함돼 있다.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수사 당국은 엄중한 수사와 처벌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씨는 폭력 전과와 함께 치료감호소에서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아파트에 살면서 평소에도 이웃집·승강기에 인분 등을 뿌리는가 하면 욕설과 폭행 등으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숨진 여고생은 안씨가 따라다니며 괴롭히기까지 해, 가족들이 지난달 집 앞에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올 들어 안씨의 행패·폭행과 관련해 경찰에 신고된 것만 7차례나 됐다. 이런 사정을 보면, 안씨의 방화·살인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법무부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안씨 출소 후 조현병 치료와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경찰이 적극적인 범죄예방조치를 시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7일 오전 방화·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소방차 너머로 불에 검게 그을려 있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전체 살인사건에서 사회 불만에 따른 우발적 살인 비중은 2015년 38%, 2016년 39%, 2017년 42%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 들어서도 ‘성신여대역 행인상대 칼부림사건’ ‘부산 범천동 고시텔 방화사건’ ‘진주 70대 노인 무차별 폭행사건’ ‘부산 대학생 피습사건’ 등 충동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10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국회는 법·제도의 정비에 나서야 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죄 우려자에 대한 등록의무화와 정보의 공유·치료가 우선 시급하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전체 중증정신질환 환자 중 정신보건시설 등에 등록한 사람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스토킹범죄 처벌법’ 등의 시행도 서둘러야 하고, 경찰청 예규에만 언급된 ‘우범자 관리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임세원법’ 시행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보연계·외래치료명령 등이 가능해지지만 본인 동의가 없으면 강제 치료나 관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우리 사회의 부조리, 불평등, 빈부격차와 함께 성별·이념·계층·세대 간 갈등 치유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묻지마 범죄’에 의한 사회적 약자의 허망한 죽음을 일부라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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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큰 물줄기가 만나고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 역사의 큰 스승이며 주자를 뛰어넘는 조선후기 최고의 학자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고 묻혀 계신 곳이다.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선생은 1822년 임오년 회갑을 맞아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쓴다. 그 첫머리에 “이 무덤은 열수(洌水) 정약용의 묘이다. 본 이름은 약용(若鏞)이요, 자(字)는 미용 또는 용보라고도 했으며, 호는 사암(俟菴)이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조심하고, 이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쓴다. 이 글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열수라는 호를 즐겨 썼다는 것이다. 이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선생은 그의 모든 저서에 ‘열수 정약용이 쓰다’라고 적어 넣음으로써 한강변 마재마을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표현한다. 학문적 사유의 시작과 완성이 이곳에서 이뤄졌음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선생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 국민은 선생을 다산이라 부른다. 다산(茶山)은 야생차가 많이 나는 전남 강진군 귤동마을 뒷산의 이름으로 유배 당시 10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1930년대 정인보·안재홍 등 ‘조선학운동’의 주역들이 “선생께서는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야 할 도리와 백성들을 잘살게 할 개혁안을 500여권의 책에 담아낸 다산초당에서의 업적이 너무 훌륭하므로 ‘정다산’으로 불리는 것이 맞다”며 붙여준 호이다. 이제 다산을 열수로 바꿔 부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열수의 의미를 알리고, 이곳 마재마을이 강진의 다산과 함께 잘 알려지기를 바란다. 

둘째, 선생이 가장 불리기를 원했던 호는 사암이다. 이는 <중용> 29장인 ‘왕천하(王天下·천하를 다스림) 장(章)’에 나오는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에서 가져온 것으로, 뒷날 나타날 성인(聖人)으로부터도 학문적으로나 살아온 행적에 대해 질책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배어있는 가장 선생다운 아호(雅號)이다. 유학자인 선생은 내세가 아닌 살아있는 현세에서 성인이 되는 게 학문을 하는 목표였다. 선생은 ‘자찬묘지명’에 “알아주는 이는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이 허락해주지 않는 것으로 여겨 불에 태워버려도 괜찮다”라고 적으며 당대에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평가받지 못함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후세에는 반드시 본인의 뜻을 알아주는 세상이 올 것임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선생을 사암이라 부르기를 주저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셋째, 여유당이란 당호에선 선생의 불우했던 정치적 환경을 엿볼 수 있다. 여유당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로 ‘여’는 머뭇거리기를 겨울의 냇가를 건너듯이 하고, ‘유’는 망설이기를 사방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여유당이라는 당호에선 당시의 정치적 시류와 타협하지 않으나 경계하려는 선생의 의지와 함께 노자가 생각하는 도인의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선생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는 20일부터 21일까지 남양주시는 ‘정약용을 생각하자’라는 주제로 정약용 사색의 길 걷기와 문화제를 개최한다. 팔당에서 마재마을까지 한강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열수 길을 걸으며 선생을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김남기 | 정약용문화교육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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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도시에서 만난 그는 10여년 전쯤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으레 ‘순’이나 ‘숙’을 이름 끝에 붙여야 하는 줄 알았던 시절을 얘기했다. 나도 그와 같은 시절을 살았으니 뻔히 아는 일이었다. 교실에는 늘 앞 글자만 다른 ‘숙’들이 대여섯씩 꼭 앉아 있었고, ‘숙’들과 혼동하기 쉬운 ‘순’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나야? 너야?” 하던 때가 있었다. ‘숙’이나 ‘순’들은 드라마 주인공으로나 나올 것 같은 도회적인 이름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도 자라는 내내 자신의 이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은 순할 ‘순’을 떼어버리고 개명했다. 어쩌면 매사 소극적이었던 게 이름 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름을 바꾼 뒤 정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여자라면 순하고 착해야 세상 살기 좋을 거라고 믿었던 과거에서 그는 스스로 걸어 나온 셈이었다. 

그와 함께 나온 길에는 흰 벚꽃이 눈처럼 난분분 흩날리고 있었다. 길 양쪽으로 밑동이 꽤 두꺼운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옛날 이 길의 이름은 전군가도였다. 일제강점기 때 놓인 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다. ‘숙’과 ‘순’이 많았던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은 일제가 길을 내줬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는 이 길을 닦느라 땅을 억지로 내놓아야 했던 이들의 눈물도, 붙잡힌 의병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한 일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일제가 이 길로 우리 쌀을 실어 날라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수탈의 길’이었던 길은 1970년대에 오로지 번영만 외치던 세태를 반영해 ‘번영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어쩌면 세월이 흐른 뒤 이 길은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될지 모른다.

무심히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이 길을 걸었을 수많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지키며 살았을까? 벚나무 밑동이 굵어지는 동안 보굿처럼 거친 손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다 꽃잎처럼 사라진 이름들,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이름들. 그들의 봄날 어느 하루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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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시냇물 하나 이렇게 흘려 놓으셨나요.’ 

송창식의 ‘사랑이야’ 노랫말(2절)이다. 여기서 ‘당신’은 누구일까. 사랑은 짧다. 연인일 가능성이 가장 작다. ‘당신’에 정체성, 적, 상처, 습관, 질병… 어떤 단어를 대입해도 말이 된다. ‘당신’은 내 몸에 들어와 나가지 않는 평생의 화두가 아닐까. 득도하지 않고서야 ‘당신’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인생이요, 역사다. 인생고(人生苦)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알아도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지 고민이 멈추지 않는 상태다. 

트럼프를 보면서 ‘한반도의 당신’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1866년 조선은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號)를, 1871년 강화도에서 미군을 물리쳤다. 당시 삼화현감 이기조는 미 군함 세난도호 함장 피비거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들은 우리 강토와 백성들을 차지하려는가, 아니면 우호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가, 그대의 소원을 말하고 아무것도 감추지 말라.”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무것도 감추지 말고 원하는 것을 말하라? 미국이 속마음을 말하겠는가. 조선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가. 알 수 없는 열강 앞에 무력한 모습.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미국에 묻고 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반미, 친미, 비미(批美), 용미(用美), 숭미(崇美), 모미(慕美), 탈미(脫美)…. 이 언설의 경합은 우리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반영한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현대사에서 미 군정기 3년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본다. 최초의 미군 범죄는 1945년 9월8일, 미군이 인천항에 도착한 바로, 그날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미군을 환영하러 나온 조선인 두 명을 총살했고, 미군은 이에 감사했다. 환영 인파는 흩어졌다. 미군은 일본의 보호 속에 등장했다. 몇 시간 후 환영차 인천항에 나온 조병옥, 장택상, 정일형 등 연합국환영위원회 대표들에게도 미군은 총을 겨누고 접근을 막았다. 미군과 조선의 첫 만남은 살상과 무시였다. 

그 뒤로도 미국은 떠나지 않았고 군부 독재 세력은 미국을 뒷배 삼았다. 한국인들은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조금씩 ‘당신’, 미국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과 동화되어 가고 있다. ‘미국병’은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미국은 ‘친밀한 적’ ‘짝사랑하는 적’ ‘욕망하는 적’이다. 우리는 문화적, 심리적, 지적으로 개성보다 뉴욕을 훨씬 가깝게 느낀다. 아직도 미국의 주(州)가 남한을 포함하여 51개인 줄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이루어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트럼프 관련 뉴스가 피곤하다. 그가 주도하는 ‘밀당’, 아니 강대국의 농간(‘전략’)이 지겹다. 지난 15일에도 북측이 밝힌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트럼프는 “대화는 좋은 것”이라고 반복하면서도 “그러나 빨리 가고 싶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좋은 관계다, 대북 제재도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1960년 8월,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썼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 하루바삐 나가다오. … ” 그의 지친 분노가 들리는 듯하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이처럼 다른 시각과 캐릭터의 지도자가 함께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다름이 바로 기회요, 힘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책임이나 탓의 차원이 아니다. 북한이나 미국은 어쩔 수 없는 ‘그들’이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아무리 지정학이 문제라고 하지만, 약소국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의 2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땅조차 둘로 갈라졌지만, 약자 필패가 필연은 아니다. 중국을 이고 사는 베트남은 약소국이 강대국을 슬기롭게 대처한 좋은 사례다.

반미와 친미의 이분법을 넘어 ‘우리 안의 미국’을 뒤돌아볼 시기다. 

그런데, 새로운 미국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 나타났다. 이언주 의원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죽음은 문재인 정권의 책임이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셨겠는가. 계급혁명에 빠진 좌파 운동권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계속되는 그의 몰상식이 원래 사고방식인지 선거 전략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조 회장의 사인은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사망했으니 신미(信美), 미국을 믿으라고 해야 할까.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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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천문기술 발전과 제도혁신을 도모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임신한 여자노비에게 산전휴가 30일과 출산휴가 100일, 남편에게는 출산휴가 30일을 주어 당시의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소개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 설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왕조실록과 역사연구 등에 의하면, 조선 태종 대에 설립된 명통시라는 장애인단체가 있었는데, 이는 독경사(경전을 읽고 외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나라가 설립한 조직이었다. 명통시에 소속된 시각장애인 독경사들은 국가행사에서 독경을 담당하고 대가로 쌀과 베를 지급받았다고 한다. 

평생 척추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장애의 벽을 넘어 명성을 떨치며 귀감이 된 허조라는 분이 있다. 그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개국 후 네 임금(태조·정종·태종·세종)을 섬기며 법전을 편수하고 예악제도를 정비한 인물로, 세종 때에는 예조판서·이조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지내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정창권 교수의 저서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에 의하면, 세종 때 관현맹인(관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던 시각장애인)에게 장악원의 일반 악공에 준하는 직책과 녹봉을 주었다고 한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 전기의 음률가인 박연은 관현맹인들을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조 때에는 신체활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도록 오늘날의 근로지원인과 같은 부양자를 지원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장애인 제도는 양반사회라는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오늘날의 장애인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이 장애로 인한 어려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그간 정부는 7·9급 공채의 장애인 구분모집제도, 중증장애인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공직 내 장애인 채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확대독서기와 점자프린터,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수작업의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증폭장치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로 인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 공무원에게 근로지원인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사정 때문에 공급상황이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공직 채용을 확대하고 근무지원사업을 늘려가야 한다. 공공분야이건 민간분야이건 장애인이 자립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노력이 배가되어 진정한 포용사회가 하루속히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김판석 | 연세대 교수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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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내 주변에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키우고 있는 녀석들 사진을 교환해서 보기도 한다. 나 역시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들 사진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지인이 ‘맘에 상처받을 일은 없겠다’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왔다. 자식이든 손주이든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는데 강아지들은 그럴 일이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같이 있으면 행복감과 편안함을 느낄까? 그것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여길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녀관계가 가장 좋으면서도 또 가장 불안한 관계인 이유는 늘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상대의 평가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참으로 오묘한 존재이다. 혼자 있고 싶어하면서 또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면서 또 같이 있기를 싫어한다. 나를 주장하고 싶어하면서 또 나를 주장하기를 두려워하고, 상대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평가를 신경 쓰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정신적 건강함이란 이 모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축이 잘 버텨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축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대의 평가에 흔들린다는 것은 나의 축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출처:pixabay

어린아이일 때 우리는 연약할 수밖에 없다. 아직 나의 축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는 자기 이미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남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사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지를 안다. 다행히 부모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그러한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수용해주면 아이들은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린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는 경험에 직면한다. 할 수 있다는 격려보다는 “안돼”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추구하는 게 좋은 것인지,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다.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더 커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스스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더 커진다.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이 보는 나보다는 내가 보는 나의 영역이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건강해야 한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죽는 날까지 나와 같이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므로 그런 나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다음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 인생의 리더는 바로 나 자신이므로 나의 변화를 주도할 사람도 바로 나라는 생각이야말로 흔들림 많은 인생에서 나를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팀목은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토양에서 싹튼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나의 친구이고 내 인생의 리더는 바로 나이며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주체도 바로 나라는 생각의 통합이다. 그런 통합을 가질 때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처럼 소중한 나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나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실제로 우리가 여러 소소한 부분에서 자신에게 얼마나 야박한지를 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통합을 이루려면 일단 먼저 나 한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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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픈 ‘기억의 꽃’이 영그는 4월, 그 16일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이를 이유도 모른 채 떠나보낸 유족, 갑작스레 닥친 참사에 영문도 모르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삭이기는커녕 갈수록 선명해지는 그날이다. 올해도 서울과 안산, 진도 등에서 추모와 애도의 노란리본이 물결치고,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5년 전의 다짐과 약속을 되새겼다. ‘진실규명’의 외침을 멈추지 않았던 유족과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한국 사회는 세월호와 그 교훈을 잊지 않았다. 한편으로 지난 5년은 안전보다 이윤을, 생명보다 효율을 중시해 생때같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와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확인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 아픈 4월이 오면, 어김없이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을 욕보이고 조롱하는 야만이 공론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참담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자유한국당 경기 부천소사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차명진 전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세월호 유가족을 욕보이고 조롱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피해자의 고통을 모욕하고 제압할 대상으로만 대해온 박근혜 정부와 한국당의 병든 유전자의 재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체 팔이’ ‘죽음의 굿판’ 같은 짐승의 언어로 자식 잃은 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더니, 아직도 이런 몰상식한 폭언을 지껄일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문제는 차명진과 같은 패륜의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버젓이 국회의원인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16일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라며 “세월호 그만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안상수 의원은 “불쌍한 아이들 욕보이는 짓들이죠”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날이 오면’, 차마 잊힐 리야 잊힐 리 없는 아픔에 무너지는 유가족들에게 위로는 못할망정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 있는가.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세월호와 관련된 부적절하며 국민정서에 어긋난 의견표명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께 당 대표로서 진심 어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들의 세월호 유가족 모욕과 조롱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만행이다. 우리 사회가 수용할 한계를 넘어섰다. 황 대표의 사과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당사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 물리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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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굽어보는 국립현충원에 봄이 가득하다. 하얀 목련이 고결한 자태를 뽐내고, 홍매화의 핏빛이 영롱하다. 호국영령들의 단심(丹心)을 상징하는 듯하다. 충무정 주변에 핀 벚꽃이 공원을 방불케 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언뜻 충무공의 고뇌를 그린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 첫 구절이 떠올랐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시편도 내 뇌리를 맴돈다. 

지난 12일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서는 3·1운동의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49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바로 전날은 1세기 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지난주 그 무렵, 워싱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평양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시 추대되었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100돌을 맞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부터 생각해 보자.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은 독립국이고 조선인은 자주국민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지 불과 한 달 열흘 뒤 제국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백성의 나라, 민국(民國)의 시대를 새로 연 것은 엄청난 역사적 진전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잿더미 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50-30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나는 2016년 9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한국의 동반성장’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국은 인구가 5000만명이 넘으면서 동시에 1인당 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6개 나라에 가장 근접해 있다. 따라서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다음의 세계 7대 경제강국은 코리아”라고 주장했다. 비록 비공식 통계이기는 하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한국도 2016년 이미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그곳 교수들의 반론이 잇따랐다. “캐나다는 G7 국가다” “중국은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G2 아니냐”.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캐나다는 1인당 소득이 4만5000달러를 상회하지만 인구는 3400만명 정도밖에 안되고, 중국은 인구로는 초대국이지만 1인당 소득은 1만달러 내외이므로 내 기준으로는 한국이 내실 있는 7대 경제대국이라고 했다.

영어 표현으로 5000만 인구에 1인당 3만달러 소득을 뜻하는 50-30클럽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분류도, 실제로 존재하는 기구도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같은 신흥경제국이 쟁취한 50-30클럽 멤버십은 밤낮없이 돌아가는 산업현장에서, 열사의 건설현장에서, 전쟁터와 다름없는 수출전선에서 5000만 국민이 피와 땀과 눈물로 쌓아올린 금자탑임에 틀림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반세기 동안 대호황을 구가하던 세계경제는 19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았다. 더 이상의 독주가 어렵게 되자 미국은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와 더불어 경제정책의 보조를 맞추자며 G7을 창설했다. 1990년대에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G8을 만들더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한국 등 12개국을 추가하여 G20이 탄생하였다.

한국을 경제강국으로 성장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교육 및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다. 두 번째 요인은 “하면 된다”는 과감한 도전정신이었다.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더 나은 미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에 강력한 공동체의식이 생겨났다. 희망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요인이 많이 소진되어 어느덧 저성장이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고, 불균형성장 정책의 결과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우리 사회에 “경제하려는 의지”를 북돋우고 기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워 전자(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등 전통적 핵심 제조업을 중요한 산업정책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단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구체적 내용은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말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창의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원자율화가 시급하다. 또한 ‘함께 가자’는 동반성장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도 시급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사회를 공동체정신으로 되살리자는 것이다.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은 ‘새날은 언제 어떻게 오는가’라는 글에서 이런 일화를 들려준다. 

옛날 인도의 한 성자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새날이 온 것을 어떻게 아느냐?” 제자들의 중구난방식 답변이 이어졌다. 묵묵히 듣고 있던 스승은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좌중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날이 밝아 너희들이 밖을 내다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너희 형제들로 보이면, 그때 비로소 새날이 온 것이니라.”

내 이웃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고통과 아픔을 내 형제들과 똑같은 것으로 느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조석으로 혈전을 벌이는 정치권도, 갑과 을이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산업현장도 다를 바 없다. 남·남 갈등과 남북 분단의 해법도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나 한·미관계는 자존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1953년 휴전협정 조인식에는 대한민국 대표의 자리가 없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남·북·미 3자 정상회담으로 바꾸어 상징성과 실효성을 고양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한 토대 위에, 남북한과 지구상에 퍼져 있는 한민족을 하나로 통합한 8000만 한민족경제공동체를 건설해야 우리가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다. 이것이 선열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시대적 사명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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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중에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인 카산드라에게 자주 매료된다. 예지력을 얻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설득력이 없는 그녀는 닥쳐오는 미래를 거듭 예언하나 파국을 막지 못한다. 아폴론에게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녀는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으면 안 된다고 절규하지만, 사람들은 외면한다. 앞으로 전개될 일이 뻔히 보이는데도 설득하지 못할 때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까.

동독의 소설가 크리스타 볼프는 1983년 신화 카산드라를 재해석한 소설 <카산드라>를 발표한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멸망 후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되고, 아가멤논이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죽임을 당할 때 같이 살해당한다. 볼프는 카산드라의 마지막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처절했던 일생을 회상하게 한다. 볼프는 집권 통일사회당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했지만, 동독을 비판한 작품들로 인해 당국의 문책을 받았다고 한다. 볼프가 이 소설을 쓴 것은 몰락해가는 동독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파국으로 치닫는 트로이를 바라보는 카산드라의 심정이나, 동독의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는 볼프만큼은 전혀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씁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 성향에 따라 씁쓸함의 이유와 느낌은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함선이 제대로 항해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 

익숙한 패턴이 머리에 떠오른다. “화려한 출범, 높은 지지, 일정한 성과의 실현,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의문, 지리멸렬 그리고 쓸쓸한 퇴장.” 이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떤 정부에도 불가능한 것일까. 탁구공이 오가는 것처럼 정권이 교체될 뿐, 함선은 제대로 된 항로에 들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우선 정부의 능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정부는 그 지향과 능력에 따라 함선의 방향을 조금 바꾸고 조금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으나, 갑자기 하늘을 날아 목표인 항구에 도달하게 할 수는 없다. 아니 여태껏 달리던 속도에서 조금만 가속해도 배가 휘청거린다. 게다가 선의만으로 성과를 내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다. 믿을 수 있고 윤리적이고 유능한 내 편은 너무나 적다. 민주주의 원리상 야당을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여론은 변덕스럽고, 야속한 언론은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이 본래의 임무다.

그런데 집권을 위한 선거전에선 장밋빛 약속이 필요했다. 유권자는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경청하며 신중하게 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줄 만큼 느긋하지 않다. 정직하게 캠페인을 할수록 불리하며, 호언장담의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정치인만의 탓도, 유권자만의 탓도 아니다. 정치인과 유권자와 언론이 연주하는 삼중주다. 

실제로 기성 정당은 정부의 운영보다는 캠페인에 최적화되어 있다. 공장의 생산성과 상품의 품질은 부족한데, 영업과 광고 부문은 전문성이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지 못하면 포부를 펼칠 기회도 없고 선거에서는 마케팅이 당락을 좌우하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랬던 국민과 언론이 생산성과 품질을 요구한다. 부풀린 약속은 당연히 지킬 수 없다. 그런데 해낼 수 있는 약속조차 막상 그것을 실행할 자원은 부족하고, 우군은 줄어든다. 어느 정부든 쓸쓸한 퇴장이라는 귀결을 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친 정도가 아니라 배반을 일삼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한다면, 이 정부는 분명히 진일보했고, 정상적인 정부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큰 잘못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실망을 극복할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쟁자들은 은근히 상황을 즐기고, 유권자와 언론은 점점 가혹해진다. 이것은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속성이고, 시효를 다해가는 낡은 정치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다. 상대편을 향한 프로파간다 능력의 우위가 선거의 성패를 좌우하는 정치체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승자의 저주’와 같은 패턴을 피할 수 없다.

정치를 내전의 축소판으로만 다루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구조는 어떠한가. 과거 같으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했을 다양한 세력들을 의사당에 모아놓은 것이 정치이기는 하다.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유혈사태가 없을 뿐 내전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아무리 불의하게 보여도, 적이 아무리 위선적으로 보여도,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답을 찾고 설득하는 정치를 원한다. 그런데 근거 없이 자극적인 비난을 일삼는 사람과 세력이 인지도를 높이고 정치적 이익을 얻는다.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을 양손에 들고 싸움터에 나선 사람들이 앞장서는 상황에서는, 어느 편이든 집권할 수는 있지만 국정운영의 성공은 요원하다. 자신과 남에게 고른 잣대를 들이대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탐구하는 사람들이 밀려나는 구조에서는 결국 모두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그래도 이 세상은 신화의 세계와 다르기에, 나는 카산드라와 달리 낙관한다. 바람에 못 미치지만, 세상은 점점 나아진다. 불행해지거나 뒤처지는 영역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계속 발전한다. 유예되는 개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정치가 정체되고 심지어 뒷걸음쳐도 역사는 꾸준히 갈 길을 간다. 굶는 사람은 줄고, 전쟁은 드물어진다. 암은 퇴치되고 수명은 늘어날 것이다. 기술과 과학 그리고 그에 기반한 문제 해결 능력이 발전하는 한, 경제도 정치도 그에 걸맞은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주에는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이 있었고, 블랙홀의 사진이 공개됐다. 나는 역사 발전에 대한 낙관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기대보다 더딘 것에는 더 너그러워질 생각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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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5년이 흘렀다. 당시 나는 미디어를 통해 전원 구조 속보를 접한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가 나자마자 재빨리 대처해 승객을 구해내는 ‘그런 나라’에 산다는 사실에 우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전원이 구조되었다가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이 순식간에 실종자 상태가 되었다. 사는 곳과 상관없이 우리는 한동안 팽목항에 마음을 보냈다.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 통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오히려 비탄이나 통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놀람은 어처구니없음으로, 무기력은 분노로 바뀌었다. 비탄은 어이없음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슬픔과 다르다. 아직까지 비탄이 가시지 않은 데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폐쇄회로(CC)TV 관련 증거자료가 조작·편집된 정황을 밝히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안산에 있는 4·16 기억저장소에서 유가족들은 아직도 울고 있다. 참사 당시와 진상규명 투쟁을 할 때보다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애써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상실감은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사람의 속에 있다가 느닷없이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길 가다 거센 바람이 불 때, 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 무슨 징조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손바닥 위에 떨어질 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은 망연해진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조성된 ‘세월호 기억의 벽. 서성일 기자

그러므로 어떤 감정 앞에서는 “지겹다”고 말하면 안 된다. 슬픔이나 괴로움 앞에서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자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정은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지만, 반대로 밀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한없이 빽빽해져서 그 감정 이외의 다른 감정을 일상에 불러들일 의욕을 잃게 만든다. 코미디를 보며 웃기도 하고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더 큰 슬픔이 된다. 내가 웃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것에 신기해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움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영화 <생일>을 보았다. ‘생일 시’를 읽는 후반부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없이 울었다. 생일 시는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애간장을 저미는 편지 같았다. 이 시는 실제로 정혜신·이명수씨 부부가 기획한 세월호 유가족 생일 모임에서 낭독되었는데, 생일 시들은 한데 묶여 <엄마. 나야.>(난다, 2015)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시들은 학생의 육성을 통해 생생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이 책의 저자가 시인이 아닌 서른네 명의 단원고 아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 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선명해져서 섣불리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기억이라도 남아 있어서 살아갈 최소한의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남은 자는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갠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아파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김상혁의 시 ‘길은 어떻게든 다시’(<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현대문학, 2019)를 읽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길은 어떻게든 다시/ 소리…… 침묵…… 소리로 이어져 형은 다시/ 동생의 손을 잡고 개는 최고로 주인을 사랑하고/ 모든 자동차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다시 살고 있다. 어김없는 일들 사이에서 더 이상 같지 않은 일을 헤아리며 길 위에 소리와 침묵으로 이뤄진 발자국을 찍고 있다.

내년에도 4월16일이 올 것이다. 4월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여전히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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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애인이 생겼다 하면 다들 이죽거립니다. “어쭈, 짚신벌레도 짝이 있다더니!” 축하 반 놀림 반으로 하는 말이지요. 누구라도 자신에게 맞는 짝은 있는 법이라는 속담 ‘짚신도 짝이 있다’를 응용한 요즘 속담입니다(짚신벌레는 성별이 없지만 유전적으로 접합 가능한 개체가 정해져 있으니 분명 짝이 있습니다). 나막신도, 기차표 고무신도 다 짝이 있는데 아무렴 누군들 짝이 없겠습니까(사실 옛 신발은 좌우 구분 없이 만드는 대신 앞코에 여유 두어 신고 다니며 늘려 맞추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짚신은 애초에 짝이 없습니다. 무조건 짝 없이 만듭니다. 짚신 삼을 때 끼우는 신틀에 짝이 없으니까요. 짚은 신축성이 좋아 신고 다니다보면 마치 맞춘 것인 양 발가락과 발볼 맞춰 금세 착 들어맞습니다(특이한 발 모양 때문에 기성화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지요). 발 치수대로 다양하게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신데렐라 언니들이 신어도 다 맞는, 진정한 프리사이즈가 짚신입니다. 또한 짚신이란 게 대개 서민들이 신던 것이지요. 내구성 떨어지는 대신 싸고, 손재주 좀 있으면 직접 삼아 신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잘난 사람들만 짝 맞춰 시집·장가 가란 법 없듯, 짚신 삼는 가난뱅이 방자·향단이라도 배필 삼을 짝이란 꼭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나이, 몸, 돈, 처지에 낙심해 지레 마음 접지 말고 만남 속에 익숙해져 같이 짝을 맞춰 가라는 것이죠.

봄 춘, 팔짱 끼고 허리 감고 다니는 커플들 보면 외로워서 화가 날 이도 있을 겁니다. 기성품같이 고르자면 내 스타일 없습니다. 좀 안 맞을 성싶던 옷도 입다보면 몸에 맞듯, 성에 안 차더라도 신축성 있게 만나다보면 호감 생기고 좋아 죽는 커플이 됩니다. 여기 없으면 저기 있고 이짝저짝 없어도 어딘가는 제짝 있습니다. 사람은 알아가는 거고 사랑은 맞춰가는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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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고 물에 빠진 닭이 있다. 난처한 사정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닭백숙집에 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다. 상을 잇대어 붙이고 미팅 대열로 나란히 앉았다. 단순한 점심이 아닌지라 여러 사람들의 말로 일순 식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구규(九竅)는 몸에 뚫린 아홉 가지 구멍을 말한다. 구규가 있기에 인체는 외부와 소통하고 연락하면서 겨우 유지·건사한다. 

하부의 것은 그렇다 치고 상부에 난 건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눈 하나가 뒤통수에 달리면 사방을 두루 꿰지 않을까. 일견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그건 부작용이 많은 게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몰두하라는 함의로 나는 이해한다. 

한편 얼굴에 모인 일곱 개로 생각이 뻗어나가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해부학적으로 콧구멍은 겉으로만 두 개일 뿐 실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한다. 말하는 구멍과 먹는 구멍.

모처럼 소임을 만난 나의 입은 토실한 토종닭의 육질을 실컷 즐겼다. 다음은 또 다음의 기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저런 구규에 관한 실없는 생각과 함께하면서 점심을 끝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말은 먹이를 찾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먹을 게 떨어지면 대화도 금방 시들해진다. 이윽고 나는 섬을 퐁당퐁당 떠났다.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마당에서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

불룩한 배도 꺼줄 겸, 차를 버리고 심학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 너머 출판도시의 사무실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산 초입의 약천사 돌화단에 영산홍이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추위에 아직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다. 그 아래 누군가 나무팻말을 세워놓았다. 자세히 보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영산홍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용 나무다. 거룩한 불심을 보살피는 나무판으로 인해 오늘의 영산홍은 퍽 달리 보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을 세 번 외며 심학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영산홍, 진달래과의 반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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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사건이 있습니다. 그날도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보내고 따사로운 봄날을 맞을 생각에 가슴은 두근댔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날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 우리의 시각을 바꿀 중대한 사건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2014년 4월16일 수요일 아침. 

“그러면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내뱉는 이 말이 내 입에서도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뚫린 사회안전망의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온 오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주시했습니다.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이미 바다로, 항구로, 그리고 세월호 속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올해로 세월호 사건 5주기를 맞습니다.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참변을 당한 아이들도 이젠 하늘에서 바뀐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무던히 외쳐왔고, 끊임없이 호소했고, 속절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 외침의 의미를. 우리는 그 외침에 호응하지 못했습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아끼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면 슬픔이 바로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경황을 살피는 데 시간이 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또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집니다. 아끼던 사람이 베풀었던 친절이, 그 따스함이, 그 사람이 보여준 사랑이 떠오릅니다. 그 짓궂음이 그리워지고, 다시 티격태격 옥신각신하고 싶어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밀려오는 이 슬픔과 그리움은 줄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히려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아끼던 사람들을 공감해야 합니다. 끝까지 공감해야 합니다. 

지난 3월18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을 거뒀습니다. 그 자리의 의미를 새기는 공간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 같습니다. 광화문 거리를 거닐 때면 역사처럼 가슴에 스며든 아이들의 자취를 되새기고는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숨결을 여전히 느낄 수 있기에 진실을 찾는 작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시간을 잇는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연속하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작용하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가르쳐준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아이들이 알려준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스승 역할을 아이들이 대신 해줬습니다. 뒤늦게나마 우리는 그들이 알려준 희망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희망을 알려주고 가르쳤다는 증거는 세월호에서 나눈 아이들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운명을 예감하고도 사랑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말한 사랑에서 희망을 봤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끝까지 나눴습니다. 자기 것까지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에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4월을 맞아 윤동주 시인이 쓴 산문 한 구절과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일반은 현대 학생 도덕이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스승을 섬길 줄을 모른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나 이 결함을 괴로워하는 우리들 어깨에 지워 광야로 내쫓아버려야 하나요./ 우리들의 아픈 데를 알아주는 스승, 우리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세계가 있다면/ 박탈된 도덕일지언정 기울여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겠습니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 놓아 울겠습니다.”(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

“내 것 입어”/ “너는?”/ “나? 가져와야지.”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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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보고 외국인들이 많이 하던 말은 “빨리빨리!”였다고 한다. 동작도 빠르고, 성격도 급하고, 빨리 먹고 등등의 예시가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빨리빨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몸이 굼뜨거나 말이 느릴 때 혹은 밥을 천천히 먹는다고 “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서다.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느릿느릿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답답하다는 것은 뭘까? 국어사전에 ‘답답하다’를 표제어로 입력하면 “애가 타고 갑갑하다”와 “융통성이 없이 고지식하다”고 풀이한다. 애타는 데 답을 안 줄 때를 떠올리면 “속이 터진다” 혹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떠오른다. 빨리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사람을 떠올리면 뭔가 의견을 냈을 때, 절차를 지나치게 따지거나 안 되는 이유만 찾는 사람이 떠오른다. 결정 안 난 불안정한 상황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한국인은 드물다.

요컨대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말할 때는 ‘피드백’이 늦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드백은 “어떤 일로 인해 일어난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미치는 자동 제어 원리”라고 위키백과는 정의한다. 원래 과학기술 용어인데 회사 등에서 쓰면서 일상어가 됐다. 피드백이 늦다는 건 누군가의 요청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거다. 몸을 빨리 움직이든, 늦게 움직이든, 타이핑이 빠르든 느리든, 중요한 것은 요청과 질의가 왔을 때 뜸들이지 않고 어느 정도 더 ‘진전된’ 답을 내놓는 게 된다.

일상에서도 피드백이 중요해지는 상황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은 애인이나 상사와의 채팅창에서 1이 사라진 후 반응이 오는지로 초조해한다. ‘읽씹’(읽고 대꾸 안 함)은 고통이고 무례함이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교통카드가 안 찍힐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재빨리 자리를 비키곤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자리를 비켜주면서 “여기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능숙한 역무원은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부터 하고 개찰구로 다가와 문제를 해결한다. 시민들이 답답해하는 역무원은 느긋하게 걸어오는 역무원이 아니다. 버튼을 여러 번 누를 때까지 대답이 없는 승무원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도 피드백이 빠르다는 의미다. 상사나 동료가 물었을 때 완벽하게 대답하는 것도 좋지만, 파악할 수 있는 최대한을 통해 ‘진전된’ 답을 내놓는 것이 핵심이다. ‘진전된’ 답을 내놓으려면 일머리를 꿰고 있어야 한다. 일머리는 일의 내용, 방법, 절차를 의미한다. 매 시간 혹은 몇 시간마다 선배 기자에게 상황 보고를 해야 하는 신입기자의 수습과정이나, 군대에서 ‘중간보고’의 중요성을 신병에게 가르치는 교육 모두 그러한 일머리를 숙지시키는 훈련이다. 빽빽하게 짜인 ‘표준교범(FM)’은 보고를 거치는 동안 성과를 위한 융통성 앞에서 늘 조정될 수 있다.

빠른 피드백을 바라는 가치 지향은 조직문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특성 같아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답답한 일처리’로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서 출발했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았고 진전된 상황 처리를 하지 못했다. 믿을 수 있는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세워지지 않았고,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의사결정을 방기했다. 상황의 내용, 조치의 방법과 절차 파악은 때가 지난 후 지지부진하게 이뤄졌다. ‘답답해 미치는 상황’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반대로 얼마 전 강원 고성 산불 대응은 시민들이 정부에 기대했던 피드백이 잘 이뤄진 상황이었다.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상황상황마다 성가실 정도로 분명한 지침을 줬다. 집권하자마자 20만 이상의 시민이 민원을 제기했을 때 답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방’부터 개설한 정부의 돋보이는 대응이었다.

피드백이 빠른 사회, 피드백을 빨리 하길 바라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진상 소비자’나 ‘진상 민원인’의 갑질이 문제인 사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슈가 발생해 공론화되어 빠른 상황 파악, 빠른 조치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이 아닐 때도 많다. 심지어 과학기술자들의 기초연구마저 짧은 기간마다 ‘중간보고’를 해야 하다 보니 보고서만 쓰다 끝난다는 말도 나온다. 진득하니 앉아서 지루한 토론과 조심스러운 해법 제시가 필요한 순간, 미봉책만 세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에 늘 시급하고 중요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빠른 피드백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피드백을 빠르게 해야만 하는 세상을 어떤 사람들은 어질어질하고 피곤하다고 한다. 덜컹덜컹 시행착오를 겪으며 피드백을 통해 고쳐갈 거면, 애초에 찬찬히 잘 만드는 게 낫지 않냐는 말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문화와 행동양식을 쉽게 맘먹는다고 바꿀 수 있긴 한 걸까? 외려 피드백 사회의 특징들에 맞게끔 일하는 방식, 경영방식, 정치가 기민하게 대응해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한국 사회가 잘 온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산업계에서 한국이 제품 애프터서비스(A/S)의 최고 선진국이 되고, 신제품을 실험할 최고의 ‘테스트 베드’가 된 이유기도 하다. 이따금 관점을 달리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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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섬마다 산란 행렬이 시작된다. 먼바다에서 겨울을 보낸 참돔이 육지 가까이 떼 지어 들어온 것이다. 4월 이맘때, 수온이 16~18도로 오르면 제주 서남단 모슬포 앞바다, 가파도와 차귀도는 알을 품은 참돔으로 가득 찬다. 봄 바다가 요란스럽다. 어민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벚꽃 향 가득한 어린 참돔은 세대를 이어 어미와 같은 모습으로 모슬포 바다를 유영할 게다. 서해 칠산바다를 향하는 조기 떼의 울음은 모슬포를 기억할 것이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어린 실뱀장어의 3000㎞ 긴 여정도 모슬포에서 쉬어간다. 

음력 2월 제주도 영등할망의 눈물이 끝나야 비바람이 멈추고 비로소 육지의 봄이 솟구친다. 찬 북서풍이 한풀 꺾이고 따뜻한 남풍이 불어온다. 사람 키 몇 배씩 자라 바다 숲을 이뤘던 모자반과 감태 군락은 물결에 쓸려간다. 제주 농부들의 파종은 그때 시작된다. 가파도의 봄은 청보리 연초록으로 더욱 빛난다. 한평생 했던 물질이지만, 해녀의 굽은 허리는 놀랍게도 바다에서 펴진다. 갯무꽃의 보라와 유채꽃의 노랑이 엉켜 공동묘지조차 아름답다. 자연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한껏 존재를 뽐낸다. 우리는 그 존재로부터 상호 역동하는 거대한 생태 그물망을 알아차리고 겸손해진다. 단 한 번이라도 봄을 지긋이 지켜본 사람이라면 자연을 폭력적으로 다루진 않을 것이다. 

모슬포의 봄을 오롯이 느끼려면 서귀포 안덕에 위치한 군산오름에 올라도 좋다. 골 깊은 안덕계곡과 대평리 너른 땅, 박수 해안의 수직 절벽을 품 안에 담은 절경이다. 등 뒤로는 한라산의 위엄, 섶섬 문섬 범섬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중문 해안과 주상절리, 난드르의 평평한 들판, 범접하기 힘든 산방산의 기세, 형제섬을 품은 송악산 해역의 천연보호구역 ‘제주연안연산호군락’, 남방큰돌고래 바다와 푸른바다거북 산란지, 모슬포 앞 가파도와 마라도의 일몰, 한라산에서 화순으로 그리고 차귀도 바다를 감싼 숲 ‘한경-안덕 곶자왈’. 이들이 그곳에서 서로의 모습을 거침없이 뽐낼 때, 찬란한 봄은 비로소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그들이 살아갈 집이 필요하다. 참돔의 산란을 위한 집, 봄꽃이 자유롭게 피어날 집, 모슬포 대자연의 풍광을 담아낼 집, 강을 거슬러 오를 물고기의 길, 바람이 불어오고 갈 그런 공간. 그러나 지금, 자본의 문명은 사람의 집과 ‘자연의 집’을 폭력적으로 점거하고 있다. 연산호와 구럼비를 걷어낸 제주 해군기지, 원주민 토지를 강제수용한 예례 휴양단지, 비자림로 숲을 베어낸 직선의 도로, 송악산 경관을 독점하고 절단 낼 리조트 계획. 하루가 멀다고 집이 사라지는 위태로운 철거의 시대! ‘집을 지키는 것’은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 되었고, 집에서 쫓겨난 이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대자연의 반격은 재앙으로 돌아왔다.

집을 잃은 그들에게 마음도 몸도 회복되는 ‘모슬포의 봄 레시피’를 바친다. 마시면 쌉쌀하고도 비릿한 맛이 묘하게 바다 향을 닮은 쐐기풀을 넣었다. 해조류의 향이 입가에 남는다. 봄의 초록을 머금은 가파도 청보리도 말렸다. 곶자왈의 첫 번째 봄소식을 알린 쑥도 한 소쿠리 캤다. 미묘하게 혀를 자극하고 감각을 깨우는 동백동산 백서향도 구해 차를 우렸다. 그러니 그대,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고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봄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집을 잃지 않기를, 사라지지 않기를.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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