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이야기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다가오던 어느 날, 나는 인사동에서 지인을 만난 후 즐겁게 쇼핑을 하고 귀가 중이었다. 인사동 가게들에서는 수공의 장신구, 수제 옷 등을 팔고 있어서 쉽게 발길을 멈추게 된다. 그날 안국역에서 3호선을 탄 다음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사당역으로 향했다. 강남 어귀에서 사는 나는 동선이 좋은 지하철 4호선을 타곤 한다. 그런데 사당에서 내릴 무렵, 있어야 할 귀걸이 한 쪽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신없이 지하철을 갈아타느라 귀걸이가 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실은 귀에 구멍을 뚫지 않아서 부착하는 귀걸이를 하다보니 언제라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승객들 사이로 내가 서 있었던 지하철 공간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귀걸이는 아무 데도 없었다. 하릴없이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내리자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었는지, 계단은 그야말로 인간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도 그 귀걸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다시 돌아섰다.

그 귀걸이로 말할 것 같으면 하얀 돌에 검은 두 줄의 선이 그어진 돌에 아주 빨간 대리석 질감의 다른 돌을 깎아 붙여 만든 것으로서, 그것을 구입했던 뮤지엄 가게 분의 말에 따르면 티베트에서 유래한 그 돌이 영적인 물건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리 고가는 아니었다. 나는 그 귀걸이를 매우 좋아해서 특별한 날에만 골라서 하곤 하였는데, 하필 그날 그 복잡한 지하철에서 잃어버렸던 것이다. 잠시 집으로 돌아가는 계단과 반대편 승강장 사이를 오가며 망설이다가 반대편 승강장의 지하철을 타버렸다. 잘 생각해 보니, 안국역에서 3호선을 탔을 때만 해도 귀걸이를 확인했던 것 같다. 그러면 아마도 3호선에서 내릴 때거나 4호선을 탈 즈음에 없어졌을 것 같았다. 즉, 충무로역이 핵심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충무로역에 간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충무로역에서 조그만 귀걸이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찾아보지도 않고 포기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무작정 충무로역으로 향했다. 

충무로역에서 내린 뒤 내가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눈을 바닥에 고정한 채 귀걸이를 찾아보았다. 역 바닥은 참으로 깨끗하였다. 무언가 떨어져 있는 물건이라도 있다면 사람들의 눈과 발에 즉시 걸릴 듯이 바닥은 반들반들한 인조 대리석이거나 타일로 되어 있었다. 몇 번을 걷다보니 환경미화원도 만났다. 그에게 다른 한 쪽의 귀걸이를 보여주면서 혹시 이런 것을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청각장애인으로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대충은 이해하면서, 그런 물건을 보지 못했고 ‘지금 막 다 청소를 마쳤다’고 표현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어깨를 치면서 분주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이제 어리석은 탐색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4호선 지하철을 탔던 승강장에 다가서는 순간, 내 생각보다 두 칸쯤 밑에서 탔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 아래로 가보니, 과연 미끄럼 방지를 위해 올록볼록한 블록처럼 생긴 노란 방지턱 사이에 그 ‘귀걸이’가 살포시 끼어있는 것 아닌가. 

마침 지하철이 미끄러지듯이 들어오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방지턱 사이에서 그 아이를 우아하게 구출해서 지하철을 탔다. 그사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귀걸이를 밟고 지나갔을까. 하지만 방지턱의 파인 부분에 자리 잡은 덕분인지 귀걸이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다만 돌을 연결하는 철제 부분이 약간 휘어져 오늘날까지 그날의 상흔을 증언하고 있다. 귀걸이를 발견한 순간 너무 좋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거기까지 가도록 부른 것이 바로 이 물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건에도 영혼이 있을까. 적어도 이것을 만든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혼과 기억이 들어가 있을 터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통영에 갈 때마다 너무나 재미있고 우아한 자개 상품이며 누비 제품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자개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지 않아서 요즘 물건이 옛날 물건만 못한 것 같고,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해도 매우 고가여서 자개를 사랑하는 나의 지인들은 중고매장을 누비고 다닌다. 누비는 매우 가볍고도 견고하며 천의 특성에 따라 아름답게 변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도 누비를 새롭게 접근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육성되는 것 같지 않다. 

나는 루이뷔통을 능가하는 통영 누비의 명품성을 상상해 본다. 왜 이런 ‘전통’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고 새롭게 해석하는 데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일까. 왜 흥미진진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상품개발 콘테스트 같은 것을 대대적으로 벌이지 않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혹은 열리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인가). 

영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애정을 불러들여서 사람들 사이에도 다리를 놓을 것이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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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마피아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마피아들이 관리하는 지역에 새 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 식당 주인은 조직에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그는 마피아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자릿세를 뜯겨선 안된다고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다닌다. 조직에 이 식당 주인은 점점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결국 행동대장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있는 보스에게 다가가 식당 주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보스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알아서 해.” 행동대장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리를 뜬다. 얼마 후 갑자기 자취를 감춘 식당 주인은 한 달쯤 뒤 인근의 강에서 시신으로 떠오른다. 

다행히도 정의로운 검사가 식당 주인 사망 사건을 끈질기게 수사해 행동대장을 법정에 세운다. 검사는 행동대장이 독단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 뒤, 살인사건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보스까지 잡아들이려 한다. 

보스의 변호인들은 무죄를 주장한다. 보스는 식당 주인을 살해하라는 명확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스가 ‘알아서 해’라고 하긴 했지만, 그 말이 곧 살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저 원만한 해결책을 지시했을 뿐인데 행동대장이 제멋대로 식당 주인을 죽였다”는 것이 변호인들의 논리다. 

조직의 ‘꼬리 자르기’와 보스의 비겁함에 발끈한 행동대장이 적극적으로 증언하기 시작한다. 행동대장은 보스가 구체적으로 ‘살인’을 지시한 적은 없지만, 조직에서 ‘알아서 해’라는 말은 당연히 살인을 뜻한다고 항변한다. 아울러 지금까지 보스가 자신의 행동을 질책하거나 말린 적도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보스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알아서’ 처리해온 자신의 서열을 높여줬다고 증언한다. 판결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쯤되면 검사가 보스와 행동대장의 공범 관계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실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폭력 조직에 대한 영화가 그토록 많은 이유는, 폭력 조직의 행태가 사회 구성 원리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가상의 마피아 영화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기업이든 학교든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대법관을 눈앞에 둔 전도유망한 법관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금 구속 상태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의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관철시키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구미에 맞게 ‘재판 개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임 전 차장은 혐의를 철저히 부인한다. 일선 판사들이 재판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공했을 뿐, 재판에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조직이었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내려오는 위계질서는 3000여명 가까운 전국 판사들의 머리에 선명히 그려져 있을 것이다. 일선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료를 ‘참고’만 할 수 있었을까. 법원행정처의 ‘자료’란 마피아 보스의 “알아서 해”라는 말과 비슷한 효과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재판에서 직권남용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양승태·임종헌 두 전직 고위 법관은 한때 까마득한 후배였던 판사들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당당하게 반박하고, 직권남용에 대한 복잡하고 치열한 법리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법정에 선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어떤 판결을 받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향후 드러날 유·무죄 여부를 떠나, 권력자의 자세와 처신에 대해서는 지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의 선의를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믿어보자. 마피아 보스가 “알아서 해”라고 한 것은 식당 주인과 대화해 원만한 합의점을 찾으라는 지시였고, 법원행정처의 ‘자료’란 일선 판사들의 충실한 재판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믿어보기로 하자. 그렇다 해도 권력자의 ‘선의’는 조직 내에서 손실 없이 전달되긴 어렵다. 권력은 인간관계를 굴절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의 고위 임원이 있다. 회의를 앞두고 얼마전 들은 농담을 던졌더니 주변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유머 감각에 자신감이 생긴 임원은 그날 저녁 동창 모임에서 같은 농담을 했다.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임원이 조금이라도 현명했다면 깨달았을 것이다. 부하 직원들은 임원의 농담이 웃겨서 웃은 것이 아니라, 그가 상관이었기 때문에 웃었다. 

부장의 ‘권유’는 때로 직원에게 ‘강요’가 된다. 교수가 ‘무심코’ 던진 말에 학생은 종일 안절부절못할 수도 있다. 한줌의 권력이라도 가졌다면 쉼없이 자신의 자리를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그건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같은 죄를 벌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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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5월에는 아동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새겨보는 각종 행사와 모임이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어린이와 가정이 이런 따뜻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가정의 힘만으로 보호될 수 없는 아동들은 아름다운 오월의 무대 뒤에서 미래의 주인공이 돼볼 수 있는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다.

관련 통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가정의달을 축하하는 것 자체가 겸연쩍어진다. 전국에서 한 해에 2만 건이 넘는 아동학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매년 4000명이 넘는 아동들이 빈곤, 학대, 유기, 미혼모 출산 등의 이유로 가정에서 벗어나 있다. 약 1만3000명의 아동들이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라고 있고, 그와 비슷한 수의 아동들이 위탁가정에서 보호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대부분은 만 18세로 성인이 될 때까지 시설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공공의 책무성이 그간 너무 허술하게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되었을 때, 그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보고,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이가 누구인지부터 불분명하다. 현행법상 책임의 주체인 지자체에서는 늘 그렇듯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민간 기관들에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아동이 민간 입양기관에 맡겨지면 입양 가정에서, 양육시설에 맡겨지면 시설에서 자라나게 된다. 아동의 운명이 최초로 맡겨진 민간 기관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는 셈이다.

더구나 아동복지시설,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 등에 있는 아동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국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아동들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통합 데이터베이스(DB)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아동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면 아동복지법에 의해 아동학대로 신고될 법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이들을 그렇게 방치해오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포용국가의 안전망이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에게도 미쳐야 한다. 다행히 변화 조짐은 보인다.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그간 분절적으로 이뤄져 왔던 아동보호체계가 보다 통합적으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앙입양원을 비롯한 아동 보호를 위한 8개의 기관이 통합돼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될 것이다. 이제 통합 기관의 탄생과 더불어, 그간 미흡했던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아동보호체계를 촘촘하게 확충하고, 모든 단계에서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을 보다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출생에서부터 보호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출생등록제를 도입하고, 학대 위기 아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예방할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동들의 경우도 될 수 있는 대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원가정 지원 서비스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동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동복지에 대한 투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아동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우려가 그동안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가가 아동의 확실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 최고결정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2019년이 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킨 원년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봉주 |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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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 한쪽에 쇠붙이로 된 활자를 하나하나 채자하던 이들이 사라진 뒤 등장한 것은 사진식자기라는 기계였다. 문자를 렌즈로 찍어 출력해내는 이 기계는 대개 책상만 했다. 남쪽 촌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곧바로 학원에 들어가 사진식자기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그가 다루는 사진식자기는 일본어와 중국어까지 뽑아내는 거라서 아주 컸다. 다행히 그는 덩치가 꽤 커서 거대한 기계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글자를 찍어냈다.

그의 실력으로 보자면 손바닥만 한 인쇄기획실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출근 첫날부터 마치 오랫동안 일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고, 틈틈이 커피를 타서 동료들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는 사진식자기 일을 하는 이들은 까다롭고 고약하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줬다. 동료들은 금방 그를 좋아했고, 온종일 얼굴 찌푸린 채 직원들을 다그치는 게 일인 사장도 그에게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등 너머로 편집 일을 배워서 툭하면 출력된 용지를 찢어먹던 나한테 그는 구세주며 원더우먼이었다. 그는 일이 서툴러서 허구한 날 밤 늦게까지 일하던 나를 늘 기다려주며 풀칠까지 해줬다. 어느 날 함께 야근하고 나와 맥줏집에 앉아서 그가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첫 직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쇄소였고, 그곳에서 노조 활동을 했다는 그는 내게 은밀하게 말했다. “사실은 그때 내가 앞장서서 다른 데 취직을 못해. 그래도 싸우면서 내가 처음으로 누군지 알았어.”

그는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노동자라는 게 얼마나 힘이 솟는 말인지를 알았다고 했다. 온종일 그가 뽑아준 문자를 꼬물꼬물 붙이고 앉아 있던 나는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며칠 전 ‘작가도 노동자인데, 그리 인식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오래전 내 친구가 생각났다. 노동자라면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알고, 부당한 일에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그의 말을 나는 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의 친구, 나의 원더우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립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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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총선 때 민주당 의원과 점심을 먹었어. 그는 민주당 의원 중 3대 경제통, 총선 본부 정책 책임자. 나는 당시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민주당에 굴러들어온 외부자. 내가 말했어. 최저임금 공약 문제 있어요. 한국엔 자영업자가 25%가 넘어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네 번째로 많아요. 

그의 눈빛이 흔들리던 걸, 나는 알아차려 버렸어. 그가 처음 들어본 얘기라는 걸. 오히려 나에게 물었어. 한국보다 많은 나라가 어디에요? 아 그건요 그리스, 터키, 칠레…. 

외눈박이들에게 이론을 제공한 사람은 누구? 청와대 정책실장 하던 장하성 교수. 그는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그래서 재벌 개혁운동 선구자. <한국 자본주의>로 기업의 양극화 고발, <왜 분노해야 하는가>로 노동의 양극화 고발. 기업이 양극화되어 있으니, 노동도 양극화된다는 얘기. 이론적으로 양극화 입증, 정치적으로 민주당 입당. 

그의 이론에서 뭐가 빠졌게? 아예 고용 안된 사람들, 기업의 밖에 있는 자영업자들, 자영업자에게 고용된 사람들…. 그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 100% 자신. 나는 그가 이 사람들 걱정 1도 안 했다고 확신. 

2018년 최저임금 시원하게 16% 올렸지. 그런데 1분기 저소득층 소득이 줄었단 통계가 나왔지. 대통령은 “그래도 90%는 좋아졌다”고 말했어. 기자들 청와대에 질문, 그 근거가 뭔가요? 홍장표 경제수석 답변, 이 자료를 보세요. 그런데 ‘국민’의 90%가 소득이 늘었단 자료가 아니네? 그 대신 ‘근로자’의 90%가 소득이 늘었단 자료네? 근로에서 탈락해서 물에 빠진 사람들이 걱정되는데, 계속 배에 잘 타고 있는 사람 통계를 보여준 거야. 스스로 외눈박이임을, 불현듯 자백한 거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장면 둘, 산업정책. 2015년 국회에서 토론회가 있었어. 유명한 진보 경제학자들이 모였어. 토론회 말미에 내가 물었지. 현대차가 좋든 싫든 국민기업이잖아요. 전기차다 자율주행이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데, 산업정책이 필요하지 않나요. 탈핵도 재생에너지도 제대로 해내려면, 산업정책이 필요하지 않나요. 

발제하던 사람 말씀인즉, 산업정책은 개발독재의 산물. 이제 정부가 그런 거 하면 금물. 정부가 산업을 이래라 저래라 끌고 가면 안됨. 민주당도 집권해서 그렇게 하면 안됨. 옆에 있던 장하성 교수는 적극 동조. 그 옆에 있던 김상조 교수는 침묵. 이제 알겠지? 왜 장하성 정책실장이 물러나고 나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정책 꺼내들었는지. 왜 탈핵 논쟁에서 밀렸는지, 왜 갑자기 수소차가 튀어 나왔는지. 

장면 셋, 부동산. 2017년 8·2 대책, 잘했어. 다주택자 양도세 대폭 높였지. 2018년 9·13 대책, 좋았어. 대출 조여 투기심리 확 꺾었지. 한데 이 둘 사이에 폭탄이 하나 껴 있었어. 임대업자 특혜정책이 슬쩍 놓였어. 8년 넘게만 보유하세요~ 양도세 대폭 깎아드려요~ 다들 앞다퉈 집 사서 임대사업자 등록했지. 서울 집값이 보란 듯 폭등했지. 누가 이 정책을 추진했을까? 김수현 당시 청와대 사회수석. 

그가 쓴 부동산 책이 있다. 2012년에 나온 <부동산은 끝났다>. 공공임대주택, 늘려야 한대.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대. 그래서 민간임대주택, 늘려야 한대. 공공이 어려우니 민간에서라도 공급해야 한대. 그래서 임대업자에게 특혜를 주다니? 금리 1%대인 역사적인 저금리 시대에? 너도나도 갭투자 달려드는 시절에? 

장면 넷, 대입. 김상곤 교육부 장관 되자마자 수능 절대평가 추진했잖아. 과목별로 90점 이상이면 1등급 주자는 거잖아.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겠지? “등급만 주면 정시에서 동점자가 속출할 텐데 합격자는 어떻게 가려요?” 이건 수능이 좋냐 학종이 좋냐는 얘기가 아니잖아. 누구나 품을 만한 상식적인 의문이잖아. 

여기에 답할 방법이 세 가지. 첫째, 면접 허용. 본고사로 비화될 걱정이 있지만 어쨌든 가능. 둘째, 내신 합산. 내신성적을 조금만 섞으면 변별력 생겨. 셋째, 원점수 활용. 우리 대학 공대는 등급으로 동점자 나오면 1순위로 수학 원점수, 2순위로 과학 원점수 깐다는 식으로…. 대선캠프에 첫째, 둘째, 셋째 정리해놓은 보고서도 있었어.

나중에야 알게 됐지, 장관이 아무 생각이 없었단 걸. 국무총리한테 ‘쫑코’ 먹을 때까지, 그저 수수방관했단 걸. 급히 마련한 1안은 절반은 절대평가, 절반은 상대평가. 2안은 대선 공약대로 전 과목 절대평가. 다들 1안이 들러리인 줄 알았지? 사실 2안이 들러리였던 거야. 기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안 만들어 놓았다가, 비판 받으니까 족보도 없는 1안을 급조한 거야. 스텝이 꼬였지. 여론이 폭발했지. 결국 1년 연기하고, 공론화로 갔지. 그 길로 현 정부 대입개혁, 안드로메다로 갔지. 

원리주의, 환원주의, 끼리끼리, 외눈박이. 정당정치나 국가정책에서는, 금물 아니겠어? 그런 의미에서 홍준연 대구시 구의원 제명, 적신호 아니겠어?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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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던 목련이 이파리를 떨구고 샛노란 개나리가 초록으로 덮이는가 싶더니만, 벚나무와 복숭아나무가 희고 붉은 망울을 터뜨리고, 진달래에 이어 철쭉이 언덕을 뒤덮는다. 풀숲 사이로 고개 내민 제비꽃, 할미꽃을 살피며 걷는 사이, 상큼한 라일락 향이 코끝을 스친다. “꽃길만 걷자”는 말이 온몸으로 실감나는 계절이다. 인생이 늘 꽃길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느끼며 사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복되고 기쁜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일 뿐, 힘겹고 불만스러운 날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초연(超然)’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다는 뜻이다. 눈앞의 현실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도심의 안락한 환경을 즐기던 소식이 어느 날 궁핍하고 불편한 시골 수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고생이 많겠다며 위로하기 급급한데, 그 동생 소철은 형이 즐겨 오르는 누대에 ‘초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느 곳에 가든 느긋하게 즐길 줄 아는 형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소식은 어떤 수련을 닦았기에 초연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까? 시골 수령 생활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연이은 가뭄과 메뚜기 떼로 인해 백성은 굶주리고 도적이 들끓었다. 1년 넘게 동분서주하며 구휼과 치안에 힘쓴 끝에야 다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든 어느 구석인가는 볼만한 점이 있기 마련이며, 그렇다면 나름대로 즐길 만하기도 하다는 게 소식의 생각이었다. 공기 좋은 곳에선 산나물에 된장도 별미이고, 멋진 이들과 함께라면 싸구려 술로도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이게 소식이 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소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앙을 구하고 복은 버리는 길을 간다고 했다. 왜 그럴까. 대상에 갇혀 지내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대상이라 해도 그 안에 갇혀서 바라보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다. 즐거움과 근심,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오로지 자신을 압도하는 대상에 달려 있다면, 이건 시작도 하기 전에 진 게임이다. 우리가 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꽃이라는 대상 바깥에서 바라보기에 가능하다. 대상에 갇히지 않기를 경계할 일이다. 초연한 자가 꽃길을 걷는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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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포용  (0)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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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법원행정처에서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는 재판과 관련된 다양한 통계가 실린다. 수많은 통계 가운데 언론이 즐겨 다루는 소재가 ‘이혼’이다. 2017년 이혼한 전체 부부 가운데 3만3124쌍(31.2%)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헤어진 경우(2018년 사법연감)였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2010년 처음 3만건을 넘어선 황혼이혼은 해마다 늘어나 2017년 3만3000건대에 진입했다. 황혼이혼은 기대수명 증가로 인한 고령화사회의 한 단면이다. 결혼 이후 부부가 함께 지내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에는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재산분할이나 미혼 자녀의 출가 같은 일들이다. 이런 문제로 망설이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졸혼(卒婚)’이다. 문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다. 2004년 일본 에세이스트 스기야마 유미코가 펴낸 &lt;졸혼을 권함&gt;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법적 혼인 상태는 지속하되,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별거하거나 생활공간을 분리하되, 대부분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유지한다. 가족 해체에 따르는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펴낸 ‘2018 은퇴백서’를 보면, 조사 대상인 25~74세 2453명 가운데 남성은 22%, 여성은 33%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해 전 배우 백일섭씨(75)는 방송에 출연해 졸혼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소설가 이외수씨(73) 부부도 결혼 43년 만에 졸혼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성지 우먼센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별거에 들어간 이씨 부부는 이혼을 논의하다 최근 졸혼으로 합의했다. 헌신적 내조로 잘 알려진 부인 전영자씨(67)는 “제 인생이 참 괴롭고 고단했다. 더 늙기 전에 집을 나와 무언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강원 화천에, 전씨는 춘천에 거주하고 있다.

결혼식 주례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졸혼이든 해혼(解婚)이든 휴혼(休婚)이든 선택지는 다양하다. 부부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만 전제된다면.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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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와 강릉·동해 산불은 매서운 바람을 타고 시간당 무려 약 5.1㎞의 속도로 산림을 집어삼켰다. 강풍 속에서 쉴 새 없이 산림청 헬기가 물을 뿌리고 산불 특수진화대원들이 불타고 있는 산림에 뛰어들어 주불을 잡고, 국군 병사들은 갈퀴나 등짐펌프로 잔불을 잡아냈다. 소방대원들은 산불로부터 주택과 시설물을 보호하는 데 힘썼다. 산림과 인명, 재산 피해가 컸지만, 산불 관계기관이 ‘협업’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한 결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유관기관이 협업으로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예측분석센터’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강한 바람에도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드론은 정밀 열화상 탐지장치를 장착하여 화선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산불 진행방향 및 산불 강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파악된 산불 상황은 국가위기관리센터, 행정안전부 등과 실시간 공유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대책본부는 진화인력, 진화장비, 소방장비 등을 적재적소에 투입한다. 이러한 과학적 시스템이 있었기에 불시에 발생하고 확산속도가 빨랐던 이번 산불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산불의 적기 진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산불 발생 상황을 분석하고 산불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종, 산지지형, 풍향 및 풍속 등에 대한 기초 자료가 축척되어야 하며,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최근 기후변화 현상과 산림조건의 급격한 변화는 산불 환경을 악조건으로 내몰고 있다. 따라서 빈번히 발생하는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항구적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 산불 발생에는 크게 기상, 지형, 산림(연료)의 세 가지 요소가 관여하는데, 이 중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요소는 산림뿐이다. 즉 산불 발생 이전에 산림 관리를 통해 탈 수 있는 물질 자체를 잘 관리하는 게 가장 확실한 산불 대응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건강한 숲을 가꾸는 것에서부터 산불 대응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으며, 지속적인 산불 조심 계도, 과학적인 예측과 발생 시 대처 방안, 산불 이후의 피해조사와 복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산림을 잘 알고 연구해온 산림과학자들의 노하우와 과학기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이번 산불 이후 국립산림과학원은 아리랑 위성에서 촬영한 산불 피해지 영상을 통해 산불 피해면적과 특성을 상세히 파악하였고, 자체 개발한 드론으로 10㎝급의 정밀한 영상 정보를 취득하였다. 이러한 피해지 정보는 정부 합동조사단에 제공되어 올바른 산림 복구계획을 수립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앞서 1996년 발생한 고성 산불 피해지와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지를 20년 이상 모니터링한 자료는 이번 산불 피해지의 향후 산림생태계 및 자연환경, 지역 주민의 여건을 반영한 산림 복원계획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불의 방제, 예측 및 산림 복원까지 아우르는 산림과학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충원과 산불 예측 및 진화에 특화된 장비의 도입을 위한 적정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또한 산림의 조성·관리부터 시작하는 예방 활동, 진화체계 구축 및 산림 복구의 전 과정이 일원화된 형태로 통합관리되어야 한다.

<전범권 | 국립산림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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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에서는 ‘혁명-이후’를 다루지 않을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처럼 노골적인 혁명 서사를 보고 난 후에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건 무한동력엔진을 장착한 윌포드 트레인에 올라탄 사람과 생명체들뿐이다. 영화에서 멈추지 않는 기차는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었다. 기차에서의 삶이 철저하게 구획된 계급사회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화 <설국열차> 촬영현장에 선 봉준호 감독. 모호필름 제공

영화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혁명을 따라간다. 하나는 ‘엔진 칸’을 탈취하려는 ‘꼬리 칸’ 빈곤계급의 봉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기차 옆구리를 터트려 기차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반체제 혁명이다. 꼬리 칸 사람들은 기차 외부로 나가면 얼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옆구리를 터뜨리고자 하는 이들은 바깥세상, 즉 자본주의의 외부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공간이라 믿는다.

영화의 끝에 기차는 전복되고, 어린 소녀와 소년만이 살아남아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북극곰을 발견한다. 이제 설국의 시대는 끝났다. 이브와 아담은 자본주의-이후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대중은 그들이 북극곰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라는 농담을 퍼뜨렸고, 한 평론가는 북극곰은 소녀의 환각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들은 결국 기차 밖에서 얼어 죽었을 거란 말이다. 이런 낄낄거림은 혁명의 불가능성을 맹신하는 시대의 좌절과 냉소를 잘 보여준다.

나는 좀 다른 이유에서 <설국열차>의 해피엔딩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영화는 혁명이 성공하고 체제가 내파된다면 우리가 ‘순백의 공간’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영화 '설국열차'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엇보다 생존자가 소녀와 소년, 둘뿐이라는 결론은 안일하다. 도끼와 총을 가진 자는 물론이거니와, 기술이나 정보를 가진 자, 야비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등, 다양한 존재가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기차의 내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생존자들 사이의 분배 투쟁일 터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설국열차에서처럼 생각하고 욕망하고 행동한다면, 이 싸움이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되지 않겠는가? 

대중영화가 혁명까지의 과정을 묘사하기는 쉽지만, 그다음을 설득해내기 어려운 건 아마도 이 탓일 것이다. 이런 상상력 안에서 혁명은 그저 스펙터클로 소비되어 휘발될 뿐이다.

사실 영화를 에둘러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겐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 최고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혁명’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촛불혁명 후, 세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먹고사니즘’과 ‘내로남불’ 운운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선거제 개편 등 중요한 개혁 의제를 삼켜버린 것은 일상을 지탱하는 습(習)이 그토록 무서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습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지속되는 과정으로서의 혁명이자 혁명-이후다.

헌법재판소가 7년 만에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 환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다행히도 혁명-이후를 보여주는 빛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66년 만의 낙태죄 폐지도 그중 하나다.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선고는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시민이 함께 이룩해온 사회의 질적 변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습의 전환’이다. 여성을 자궁으로 치환하여 국민 재생산의 메커니즘 아래 복속시키고, 생명을 우생학적 관점에서 등급을 매겨 관리했던 오래된 관습은 이제 역사의 뒤안으로 떠밀려 내려가고 있다. 

주수에 집중해서 “허락할 낙태와 불허할 낙태”를 법으로 정하려는 움직임은 낙태죄 위헌 선고를 ‘혁명’이라는 스펙터클로 박제하여 그 생명력을 박탈하는 효과를 초래할 뿐이다. 혁명-이후를 그리지 못하는 영화처럼 되지 않기 위해 이제 한국 사회가 해야 할 것은, 낙태죄 폐지 운동의 성과와 의의를 일상의 습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손희정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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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바쁜 시간들로 살다 보니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할 일이 점점 적어집니다. 그래도 어쩌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을 때가 생깁니다. 하지만 식구들 표정은 데면데면합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낯선 탓도 있지만, 또 ‘밥상머리 교육’이 있을까 싶어 얼른 먹고 일어날 궁리를 하기도 하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요즘 뭐 하느라 바빠서 가족끼리 밥 한 끼를 못하냐?” 옆에서 눈치를 주면 “지금 아니면 언제 본다고. 모처럼 모였을 때 얘기 좀 하자는데, 그게 뭐 잘못됐어?”-이럴 때 아니면 언제, 라면서 꼭 텔레비전 틀어놓습니다. 들리는 뉴스 소리에 또 “저 놈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돌아다보는 시선 피하며 거칠게 밥만 욱여넣습니다.

흔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합니다. 밥 먹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맛 뚝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먹은 것 얹히고 신물까지 올라오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조상들께선 밥상에서의 언동 역시 조심하라 일렀습니다. 착하고 고분고분한 개도 밥 먹는데 건드리면 으릉! 합니다. 이때는 식욕이란 본능이 앞서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요. “감히 이놈이 주인한테!” 홧김에 손을 올렸다간 바로 왁! 하고 물릴 수 있습니다. 편하게 먹어라, 먹을 땐 웬만하면 안 건드리는 게 상책입니다.

식욕을 채우는데 심기 건드리면 더 큰 스트레스와 짜증을 유발합니다. 친구 아닌 다음에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한마디 못하고 맛도 모른 채 꾸역꾸역 삼키겠죠.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어색한 침묵이 식탁 위에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윗사람 먼저 말 꺼내진 맙시다. 나 빼고 다 떠들라 하고 “으흠~ 맛있네 맛있어!” 분위기만 살려주십시오. 어쩌다 숟가락 내밀면 반찬 같은 말씀만 가만 얹어주시고요. 억지로 떠먹이는 밥은 피와 살로 못 가고 식탁만 해체합니다. 겪어봤잖습니까.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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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인 한 회사 후배와 대화를 하다 흠칫 놀란 적이 있다. “저는 영화 잘 안 봐요. 유튜브에 가면 짧게 짧게 설명해 놓은 영상들 있어서 그걸 봐요. 몇 시간 동안 어떻게 봐요.” ‘아 그렇구나!’


입사 16년차인 나에게 그는 ‘요즘 후배’의 기준이다. 그는 센스 있고 합리적으로 일하며 제 몫을 해낸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지만 선이 확실하고 끈적한 관계보단 산뜻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개인차는 있겠으나 대체로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겐 비슷한 특징이 엿보인다.

이런 90년대생이 한꺼번에 우리 팀에 몰려왔다. 영상 제작을 함께할 인턴PD가 합류한 것이다. 앞으로 이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이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258쪽에 나온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트위터 멘션. “망연자실한 리서치 결과 십대들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로 두 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놔야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영화의 적이 휴대폰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16년 전엔 나도 신입이었다. 입사 2년차쯤, 당시 15년차였던 한 선배가 신입인 나에게 적잖이 당황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거침없고 직선적이었다고. 이제 추억을 곱씹는 선배가 됐지만 말이다. 앞에 언급한 책에 채현국 선생님(효암학원 이사장)의 발언도 인용되는데, 채현국 선생님은 2014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가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라고 했다. 나이가 들고 ‘아비’가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거늘 이런 가차 없는 말씀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런데 잠깐 뒤집어 보면 그리 섭섭할 일은 아니다. ‘아비’는 이미 많이 누리고 많이 가졌다. 많이 도전했고, 실패했으며 성공했다. 연륜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생겨나는 사이에 어쩌면 현실에 만족하며 변화에 소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썩는다’는 채현국 선생님의 표현을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아비’가 되는 것. 어쩌면 ‘아비’로 생존하는 것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어쩐지 선배 세대가 억울하다고? 아니다. 90년대생도 언젠가 ‘아비’가 된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어른됨을 고민하다가 생각의 끝은 신문에 이른다. 신문은 올드 미디어다. 레거시 미디어, 트래디셔널 미디어 등 올드 미디어를 부르는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어쨌든 뉴미디어는 아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고 유튜브를 위시한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에도 달리고 있지만 어느새 늙어버렸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잠깐 뒤집어 보면 레거시 미디어는 이미 많이 누리고 많이 가졌다. 많이 도전했고, 실패했으며 성공했다. 노하우가 축적되는 사이 지금의 방식에 안주하게 되고 도전정신은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올드 미디어에 쏟아지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치 있는 언론으로 남는 것은 미디어 스타트업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의 시대에 신문은 ‘아비’가 아니라 다시 태어난 ‘아들’을 자처하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혁신이 그렇게 쉽냐고? 아니다. 그렇지만 변화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고민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이미 미디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정답을 제시해 줄 초인은 없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아비’와 ‘아들’이 함께 만들어갈 뿐이다. 이제 90년대생 인턴들이 쓴 뼈 때리는 콘텐츠 분석 보고서를 더 읽어 봐야겠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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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하면) 신고한다. 불법인 거 알지?” KBS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약속하고 결혼했다. 예정에 없던 아이가 생기자 아내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려 한다. 병원에 나타난 남편은 아내가 뜻을 굽히지 않자 협박한다. (2018년 1월)

# “(낙태하려는 여성은)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공개변론을 앞두고 법무부가 낸 변론서다. 법무부는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5월)

#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고 ‘형법 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공포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수술 파업’을 선언했다. (2018년 8월)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270조 1항(의사낙태죄)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내년 말까지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2년 합헌 선고 이후 7년 만이다. 과정을 모르는 이들은 때가 되어 결정이 내려졌겠거니 여길 법하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두레박이 떨어진 게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공영방송에서 남편이 낙태죄를 빌미로 아내를 협박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정부 부처는 낙태죄를 존치하거나 외려 강화하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낙태죄 헌법불합치는 수많은 여성이 땀과 눈물, 이론과 실천으로 일궈낸 ‘혁명’이다.

낙태죄 반대를 주장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뒤 기자회견을 마치며 '낙태죄 위헌'이란 문구가 새겨진 손팻말을 날려 보내는 상징 의식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0~30대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해 9월 보건복지부가 낙태 시술 의사 처벌 강화 방침을 밝히며 낙태죄 논란이 확산됐다.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벤치마킹한 임신중지(낙태) 합법화 시위가 시작됐다. 2017년 23개 여성·인권·의료·노동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이 출범했다.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은 23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2018년 들어 미투 운동과 불법촬영 규탄시위 등 거세진 페미니즘 흐름도 힘을 보탰다. 

낙태죄 폐지 운동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온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법적 흐름에 사회운동적 흐름이 교차하며 이번 결과가 나왔다”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은 10대, 성소수자, 저소득층 등 여성들의 차이에 주목하며 의미 있는 담론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낙태죄 폐지운동을 주도해온 ‘모낙폐’의 이유림 집행위원(32)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젊은 여성들의 당사자 운동이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페미니즘 대중화라는 흐름이 큰 힘이 됐다. 2012년 합헌 결정 때보다 대중을 믿고 적극적으로 이 사안을 끌고 갈 수 있었다.”

- 낙태죄 헌법불합치는 최근 대중운동이 거둔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될 것 같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낙태죄를 폐지하고 모두가 자신의 재생산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주어’ 자리에 국가를 적어넣는 일이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슬로건을 외친 이유다. 국가와 정부는 인권, 특히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주체인데 망각해왔다. 아이 낳을 조건은 마련하지 않으면서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처벌하는 건 국가의 책임 회피다. 국가의 역할은 시민의 판단을 의심하고, 폄훼하며, 징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가가 책임을 저버린 자리에 국가를 기입했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국가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사회적·제도적 개선 노력은 하지 못하면서 형법적 제재 및 이에 따른 형벌의 위하(으르고 협박함)로써 임신한 여성에 대해 전면적·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고 국가의 책임을 지적했다.

책임을 방기해온 국가에 제자리를 일러준 여성들 앞에 과제는 산적해 있다. 후속 입법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합헌 쪽에 섰던 헌법재판관 2인(조용호·이종석)의 반대의견은 시사적이다.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그 결과인 임신·출산에 책임져야 한다. 우리 세대가 시류에 편승해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훗날 우리조차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대상이 될 수도 있다.” 남성에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만 형사책임을 지우겠다는 차별적 인식, 낙태 합법화에서 고려장을 연상하는 ‘상상력 과잉’이 비단 헌재 내부에만 존재하지는 않을 터다. 

다시, 국가의 책무를 물을 때다. 국회와 정부는 특정 주수(週數)를 기준으로 낙태를 제한하는 식의 협소한 논의가 아닌,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등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의 포괄적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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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1004라는 숫자가 돋보인다. 일공공사가 아니라 천사로 읽고 天使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의 크고 작은 섬을 통칭하여 1004개라는 것. 그래서 이곳은 천하에서 유일한 천사의 섬이라는 것. 최근에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뭍에 직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제 목포에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저 천사들의 발치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의 추위가 산하를 휩쓸고 있다. 식물에 각별한 애정과 깊은 안목을 지닌 분들과 봄맞이 꽃산행에 나섰다. 무안 톱머리해변에서 일박하고 김대중대교-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두봉산에 올랐다. 최근 뭍의 산에서는 진달래(너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더냐,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꽃이 없었는데, 섬의 산은 올해의 봄을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꽃에 취하려는데 한술 더 뜬다. 하늘에서 부드러운 사신이 도착한 것이다. 객쩍은 환영사도 작성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텅 빈 줄로 알았는데/쌓인 말이 저리도 많았구나//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두봉산을 종주하고 내려오니 벚나무가 활짝 피었다. 그 아래 작은 정자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때는 마침 점심 무렵이라 하루 중에서 가장 긴요한 시간대이다. 허기를 달래는 사람, 젖은 몸을 말리는 사람, 등산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동무들을 찾는 사람. 마치 산중에 도깨비시장이라도 반짝 열린 듯하다. 벚나무 꽃잎에 폭 싸인 저 알록달록한 풍경을 세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묘사해 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는 구르고 흘러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벚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 꽃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졌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간다. 착륙하는 빗방울과 흩날리는 꽃잎의 중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그대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에 머무르다 또 어디로 가는가.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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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22일 국내 최대 사립유치원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지난달 초 한유총 소속 유치원들이 개학연기를 강행하자 사단법인 설립허가 취소절차에 들어간 지 50일 만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저버리고 불법과 비리를 자행해온 한유총에 대한 설립허가 취소는 당연하다. 한유총으로서는 자업자득이요, 자승자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이 공익을 크게 해쳤고 사단법인 목적 이외의 사업을 수행했다며 법인 취소처분 이유를 밝혔다. 교육청은 한유총이 지난달 4일 유치원 개학연기를 강행하면서 어린이의 학습권, 학부모의 교육권뿐 아니라 사회질서를 심대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한유총이 수년 동안 어린이와 학부모를 볼모로 집단 휴·폐원을 주도하면서 사회불안을 조성했다고 덧붙였다. 교육청은 이와 함께 한유총이 정관을 임의로 고쳐 모금한 특별회비를 궐기대회 등 집단행위 경비에 유용하는 등 목적 이외의 사업을 수행했다고 지적했다.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무실에서 이정숙 서울시교육청 주무관(왼쪽)이 김철 한유총 사무국장(오른쪽)에게 한유총 법인 설립허가 취소 통보서를 전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교육청이 지적한 법인 허가취소 이유 이외에 한유총이 저지른 비리와 불법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비리 유치원 1878곳의 명단을 공개한 이후 국민은 한유총의 추악한 얼굴을 똑똑히 지켜봤다. 한유총은 ‘유치원 3법’을 막기 위해 궐기대회를 열면서 회원 유치원들을 강제동원하고, 법안 반대 의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회원 단체 대화방에 의원 후원 계좌번호를 올렸다. 자신들의 비리를 캐낸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에 대한 공무원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까지 받고 있다. 유치원 교육 단체가 했다고 믿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법인 허가 취소 처분으로 1995년 설립한 사단법인 한유총은 24년 만에 법인 자격을 상실했다. 이로써 유치원 교육 정상화를 위한 걸림돌은 제거됐다. 이제 교육당국은 유아교육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유치원을 확충해 유아교육의 안정성·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국회는 ‘유치원 3법’ 통과에 힘을 모아야 한다. 한유총은 유치원 교육단체로서 대표성을 잃었지만, 이익단체로 계속 활동할 수 있다. 문제는 한유총의 적반하장식 태도다. 한유총은 법인 설립허가 취소처분 직후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법정에서 대표성 여부를 다툴 심산이겠지만, 명분 없는 소송은 회원 유치원까지 잃게 할 수 있다.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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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밝다와 붉다는 모두 ‘불’에서 파생한 말이다. 불은 자체로 빛이자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핵심 물질이었다. 붉은색은 태양의 색이자 피의 색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붉은색에 광명, 희망, 생명, 권위 등의 의미를 부여했다. 아시아에서든 유럽에서든 붉은색 옷은 왕과 귀족들만 입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붉은색 관복은 정3품 당상관 이상에게만 허용되었다. 이에 따라 붉은색에는 고귀함이라는 의미도 따라붙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파리의 군중은 청·백·적 삼색의 표지를 모자에 붙이고 자유·평등·박애를 외쳤다. 이 혁명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 현재 프랑스의 국기로서, 청색은 자유, 백색은 평등, 적색은 박애를 의미한다. 이후 민주공화정으로 체제를 바꾸는 데 성공한 많은 나라가 삼색을 국기에 채용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삼색기의 붉은색은 대체로 박애·정열·애국 등을 표상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직후, 김두봉은 상해 청년들에게 태극기의 색깔에 대해 “청색은 자유와 힘을 상징하며, 적색은 평등과 사랑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적색에 평등의 의미가 있다고 본 이유는, 1917년 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러시아의 국기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터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프랑스혁명 당시 붉은색의 또 다른 의미는 계엄이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유혈사태’를 경고하는 의미에서 붉은 기를 썼다. 그러나 시민들은 정부의 논리를 전복하여 붉은 기를 혁명의 깃발로 바꿨다. 그들은 반역자는 부르봉 왕조이며, 계엄의 주체는 시민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국기가 삼색기로 바뀐 뒤인 1848년 2월,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파는 삼색기에 대항하여 붉은 기=적기(赤旗)를 자기들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이후 1871년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 적기는 혁명파의 보편적 상징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혁명이란 본래 ‘천명(天命)이 바뀌는 것’, 즉 왕조 교체를 의미했다. 민중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싹튼 것은 19세기 최말기였고, 1919년 3·1운동 전후에야 민국(民國)에 대한 지향이 지식인들의 의식 안에 뿌리내렸다. 왕조 권력이나 제국주의 권력을 타도하고 민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혁명이라는 생각도 이 무렵부터 확산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혁명파의 상징은 적색, 왕당파의 상징은 백색이었다. 러시아인뿐 아니라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백계와 적계로 나뉘었다. 한국인들도 이때부터 적색에 혁명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변화에는 언제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1921년, 혁명을 지향하는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흑풍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단체의 상징색은 흑색이었다. 2년 뒤 이 단체는 공산주의자들의 북성회와 무정부주의자들의 흑풍회로 분열했다. 북성회는 적색을, 흑풍회는 흑색을 각각 상징색으로 삼았다.

1926년,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제정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근대법의 대원칙을 묵살한 법령이었다. 이로써 행위 없이 생각만으로,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처벌받는 ‘사상범’이라는 범죄(자)가 생겼다. 총독부 관계자는 이 법령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회주의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폭력혁명론과 의회주의를 구분하겠다는 취지였으나 탄압은 무차별이었다. 1929년 세계대공황을 겪으면서 한반도에서도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 농민운동이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는 만주 일대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반만항일운동(反滿抗日運動)이 고조되었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생겨 사상범과 동의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34년 무렵이었다.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노랭이’에 이어 사람의 성향을 색깔로 표현한 두 번째 단어였다. 둘의 공통점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불리는 이름이라는 점뿐이었다. 노랭이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으나, 빨갱이는 중세의 ‘대역죄인’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중세의 대역죄가 의심받는 것만으로 죄였듯이, 근대의 빨갱이도 의심받는 것만으로 죄였다.

일제는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제정하고 1938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을 조직하여 ‘빨갱이’들을 늘 감시하고 강제 전향시키는 체제를 갖췄다. 해방 후 극심한 이념대립과 전쟁, 분단을 거치면서 이 체제는 법과 제도의 차원을 넘어 관행과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공산주의자, 그들의 가족·친척·친구는 물론 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지목되어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빨갱이는 죽여도 돼”는 시대 정신이 되었고, 빨갱이로 지목된다는 것은 곧 ‘생의 종말’을 의미했다. 한국전쟁 후 발급된 도민증 중에는 사상 기재란을 둔 것도 있었다. 여기에 ‘좌(左)’라는 글자가 새겨진 사람은 사실상 산 사람이 아니었다. 빨갱이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일상적으로, 공공연히 표출하는 것은 빨갱이로 지목되지 않는 데 유효한 수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을 희생양 삼아 사익을 챙기려는 사악한 욕망이 분출했다. 남을 빨갱이로 지목하는 데에는 작은 트집거리 하나만 있으면 되었으나, 지목된 사람은 ‘빨갱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이 불공평한 관계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빨갱이를 식별하는 방법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불의에 대한 항의를 잠재우는 마법의 언어가 ‘말 많으면 빨갱이’였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혁명의 시대’는 반세기 전에 끝났다. 하지만 한국에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이 많다. 문제는 불의한 권력이 빨갱이의 범주를 필요에 따라 확장해 온 역사 때문에, 그들 스스로 ‘빨갱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묻지마 살인’의 충동은, 아무에게나 빨갱이 낙인을 찍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도 도사리고 있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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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뮤니티에 노인은 젊을 때가 좋았다고, 퇴사를 한 중년은 일할 때가 좋았다고, 일하는 청년은 학생일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한다며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좋은 때에 있다고 응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감동을 받았다거나 위로가 된다는 호응의 물결을 기대했겠지만 댓글은 냉소로 가득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은 힘들어진다는 거잖아요’라는 역설적인 댓글에 수많은 추천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저 말이 맞다고 낄낄댔지만 자조적인 웃음 속에선 정곡을 찔려 아픈 내색만 보일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요즘 무너져가는 일상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하나뿐인 집을 팔아 전세를 들어 살 집을 구해야 하고, 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일을 그만두려던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자연스레 복학을 예정했던 학교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삶이 조금 버거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하나씩 다가올 예정된 불행이 떠올라 모든 의욕이 꺾이고야 말았다. 그럴 때면 타인의 불행과 비교해가며 내 처지를 위로하진 말겠다는 다짐도 무너졌다. 고작 이런 불행 앞에서도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다들 어떻게 참고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기대할 것 없는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이어질 때마다 다르게 사는 법을 상상했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자가에 사는 4인 가족의 화목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이것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확신이 간절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치유와 위로의 문장보다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내 삶을 인정해주는 언어였다.

곧 인정의 언어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불행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정확한 언어를 찾아 모두와 공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사람의 모습으로. 그래서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은 대안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동으로 옮겨 작고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 그 자체였다. 그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면 몇 번의 절망에도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며 얻은 낯선 감각이 내 삶을 구했다는 것을. 커다란 사고 앞에서 개인은 나약하지 않고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덕분에 절망이 회복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정도로 찾아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 큰 무력감에 빠지기 전에 되도록이면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아직 자기 삶의 언어를 찾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살로 느끼는 부당한 일상,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의 공존 가능성과 공동체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공간을 마련했다. 5월부터 수요일 저녁마다 참여연대에서 모일 예정이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영광만 돌아보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우리가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 싶겠지만 우리가 달라진다. 이건 지금으로서 충분치 않은 삶의 의미를 찾아 다시 한 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용감한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자 추천사다.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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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가장 왕성할 때는 첫술을 떴을 때다. 눈과 코와 귀로 간접적인 맛을 느끼다가, 비로소 혀의 돌기에 닿아 몸이 바삐 돌아가기 시작할 때. 씹고 빨고 삼키면서 하나의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의 순간. 갈급과 충족이 시소를 타며, 먹으면서도 배가 고픈 시간.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식욕은 그보다 먼저 발동한다.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 무슨 음식을 만들지, 무엇으로 어떻게 조합하고 조리해서 어디에 어떻게 담아낼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시간. 그때가 바로 첫술의 시간, 왕성한 식욕의 시간이다. 그래서 장을 볼 때는 배를 채우고 가야 한다. 

대부분의 다른 일들도 그러하다. 글에 대한 탐닉은 독서에서도 오지만 서점을 둘러보고 책을 고르는 시간에 더 강렬해진다. 정말 맛있을 것 같아, 몸에 좀 좋을 것 같아, 아주 새로울 것 같아. 독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강조부사가 붙는다. 그래서 내 책장에는 사 놓고 채 못 읽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이미 다 맛본 음식 같아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시간은 얼마나 황홀한가. 막 도착한 여행지의 터미널은 얼마나 두렵고 신선한가. 등산로 입구의 팻말은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소설 쓰기의 첫 문장은 그렇게나 뜸을 들여서야 나오나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너무나 왕성하기에.

어떤 일에 마침표를 찍고 난 후 되돌아보면 일을 하는 동안의 고난과 즐거움도 떠오르지만, 바로 그 ‘첫’의 기억만큼은 심장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강력하게 출몰한다. 처음 잡았던 그 사람 손이 따뜻했는지 축축했는지, 언제 깍지를 꼈다 풀었는지, 그때 바람이 불었는지 낙엽이 졌는지. 그 첫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은 갔어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식당을 접고 나서도 그와 관련된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들은 그대로 두었다. 무언가 다른 방식을 도모하기 위해서였기도 했고, 이전의 존재까지 사라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곳에서는 깨끗이 비운 접시가 여전히 손님을 맞고 보낸다. 그 탓인지 아직까지도 예약 메시지가 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 시간을 톺아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테이블 냅킨이나,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평생 써도 못 쓸 것 같은 업소용 랩 따위의, 정리하고 난 후에 남은 물건들을 볼 때에도 그렇다. 찾아가지 않은 열두 개의 크고 작은 우산, 상표가 인쇄된 와인잔이나 맥주잔 같은 것들.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많이 샀나, 비올 때 왔다가 비 그친 후 돌아간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수많은 사람과 오만감정이 널을 뛴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윽고 식당을 준비하던 시절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 이르면 사방이 고요해지며 묘한 황홀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 봄에서 여름. 나는 마드리드의 어느 시장에 있는 요리학원에 다녔다. 대단할 것 없는 과정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고 솜털을 돋운다. 수강생 대부분은 취업이나 개업을 목적으로 단시간에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로, 시장에서 공수한 재료로 하루 세 가지 요리를 만들고 함께 시식하고 남은 것은 각자 도시락에 싸 가는 방식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음식을 보관용기에 먼저 담아 놓고 남은 것으로 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가져다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각자 몫으로 가져가는 음식을 처치할 방도로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밥을 포기하거나 내가 만든 음식을 버려야만 했는데, 때마침 버스정류장에서 구걸하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건넸다. 그는 흔쾌히 받아주었으며, 다음날 맛있었다며 손등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만든 음식을 모르는 이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내가 한 음식을 먹어준 사람은 셋이었다. 버스정류장 할아버지. 그는 늘 술병과 바게트를 끌어안고 잔다. 시장 입구에서 여행용 티슈를 팔며 구걸도 하는 알제리 총각. 여행용 티슈는 얼마나 오래 주물럭거렸는지 포장이 이미 해지고 더러워진 상태다. 판매보다는 구걸이 주목적. 마지막은 기숙사 근처 공원에서 노숙을 하는 인도 여인. 나무 그늘에 기대앉아 천천히 힘겹게 빵을 씹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가끔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주고받으며 안면은 있었지만, 문득 내민 도시락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아무래도 잘못한 게야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 내 앞을 막아선 그녀의 남편. 너 어제 먹을 거 주고 간, 걔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어, 그런 음식 처음 먹어봐, 아내가 지금 다른 데 있어, 인사를 꼭 하라고 해서, 그래서 기다렸어. 그런 말은 어찌 그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그 자리에 서서 울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그 여름의 일상이 되었다. 요리를 배우고 도시락을 싸서 건네주고 시식평을 듣고. 어쩐지 순정했던 것만 같던 그 여름. 오늘은 뭐 배웠어? 너 요리 많이 늘었더라? 어제 돼지고기는 내 입맛엔 별로였지만, 내 친구는 맛있었대. 식당을 열기 직전, 그 여름의 임시개업 시절. 첫술의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목소리.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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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8일 법원은 병원에서 잠든 아들의 목을 졸라 죽인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사건 내용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죽인 어머니에게 고작 집행유예형이라니. 그런데 그 아들이 중증장애인이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피살자에서 살인자에게로 옮겨간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실제로 사건 내막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짐작하는 ‘오죽했으면’이 맞다. 죽은 아들은 41세였는데 세 살 때 자폐 판정을 받았다. 초보적인 수준의 언어소통만 가능했으며 나이 들어서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20세가 넘어서는 증세가 심해져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매번 소란을 일으켜 입원 연장이 거부되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날’도 아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주먹으로 벽을 두드려서 진정제를 투약했다고 한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는 아들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없고 자신에게 더 이상 돌볼 기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함께 죽자는 심정으로 잠든 아들의 목을 조르고 자기 입에도 신경안정제를 잔뜩 집어넣었다.

이같은 비극적 사건은 최근 보도된 것만 해도 여럿이다. 2015년에는 서울에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쳐 죽였고, 2016년에는 전주의 어느 아버지, 여주의 어느 어머니가 각각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다. 그러니까 2018년 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난 이번 비극은 장소와 인물만 다를 뿐 똑같은 사건이다.

동일한 유형의 살인이 이렇게 단기간 반복되었다면 보통은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을 것이다. 살인자가 모두 피살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살해 후 한결같이 자살을 시도했다면 엑소시즘 영화처럼 마귀라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찰도 없고 퇴마의식을 거행하는 사제도 없다. 그 대신 수만명의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어머님, 일면식도 없지만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것이 추천순위 1위 댓글이고 다음이 2위 댓글이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부모도 자식도 고생 많으셨네요. 다음 생이 있다면 건강하게 다시 만나서 평범한 부모 자식으로 사시길.”

그런데 장애인 가정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가득한 댓글들이 우리 야학에서는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2016년 어느 겨울날 수업 준비를 하며 중증장애인 학생과 그해 일어난 사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반응을 보이며 그는 자기 목이 조이는 듯 오들오들 떨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 하는 사람의 비극성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 때의 공포를 떠올렸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며 단 댓글들을 중증장애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살인면허로 받아들인다. 부모에게 건네는 ‘당신은 죽일 만했습니다’라는 위로가 장애인에게는 ‘당신은 죽을 만합니다’로 읽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여기 실린 ‘죽음의 설교자들’이라는 글에 크게 공감했다. ‘죽음의 설교자들’이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직접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 세계’에서의 우리 삶이 죄와 고통, 불행으로 가득하다고 떠들어대며 천국은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에, ‘이번 생’이 아닌 ‘다음 생’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자라투스트라가 든 예는 이렇다. 아픈 사람을 보면 ‘저렇게 살아서 뭐할까’라고 말하는 사람들. ‘무엇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 할까, 불행한 아이가 태어날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 ‘네 처지를 받아들이고 운명을 받아들이면 삶을 옥죄는 끈이 조금은 느슨해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자라투스트라는 이들을 ‘존재의 한 면밖에 보지 못하는’ 편협한 인간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자신의 병든 시각을 아무에게나 투영해서 타인의 삶의 의지를 꺾는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자 한 학생이 ‘엄마’라고 답했다. 그 ‘엄마’는 내가 아는 한 수십년을 그에게 헌신해 온 사람이다.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구체적 사연을 알 수 없으나 죽음의 설교는 연민의 눈빛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죽음의 설교자로 지목된 그 ‘엄마’도 실은 매일 죽음의 설교를 듣는 사람이다. 불행한 아이를 낳았으니 처지를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다음 생에는 부디 ‘평범한’ 부모 자식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이런 설교를 계속 듣다보면 이 헌신적인 ‘엄마’도 언제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진짜 죽음의 설교자들을 빨리 잡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가 진짜 그들의 설교대로 되고 말 것이다. 법원은 지난달 선고문에 진범의 옷자락을 슬쩍 들추었다. 법률에 장애인과 그 가족의 보호와 지원 규정이 있음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충분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 모두가 장애인을 가두거나 죽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왜 살려는 사람을 죽이려 드는가. 자라투스트라는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고 싶으면 너나 죽으라고!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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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장길에 치통 때문에 고생을 했다. 난생처음 겪는 치통이었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를 외치던 진통제 광고 문구 때문에 익히 치통이라는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픈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 있는 산둥출판그룹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꽃다발까지 들고 마중을 나온 그쪽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진통제를 구해 달라고 부탁해서 범용 진통제를 얻었지만, 별달리 고통을 줄이진 못했다. 한시라도 빨리 말 통하는 한국으로 돌아가 치과에 가서 고통의 시간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중국을 방문한 일행들과 단체비자를 받아서 간 까닭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나라 숫자로 매기는 여권지수에서 세계 1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여권이지만 중국을 방문할 때는 비자가 있어야 한다. 중국 단체비자는 저렴하지만 명단의 한 명이라도 빠지면 출입국과 여행에 심각한 제한이 생긴다. 모든 일행이 모든 일정을 취소할 각오가 아니면 혼자 빠질 수는 없는 상황. 출입국 심사를 할 때, 군대에서 점호를 했던 이후 처음으로 번호를 맞춰 서서 차례로 출입국심사관을 만나야 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전에도 단체비자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배를 타고 산둥성 위하이(威海)를 갔다가 칭다오(靑島)에서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인천항을 출항한 후에 풍랑을 만나 배는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침대에 누우면 배가 기울어 굴러떨어지고 샤워를 하던 동료가 기우뚱하는 움직임에 부상을 입을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겁에 질린 일행 중에 비행기 편으로 귀국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단체비자의 덫에 걸려 모두 다시 배를 타야 했다.

단체비자에서 빠질 수 없어서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회의와 만찬. 아픔은 점점 올라왔지만, 중국 친구가 준 진통제를 4시간마다 먹으면서 참았다. 진통제가 효과가 있어서 그만큼이라도 버틴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 정도의 아픔이었는지 모르겠다. 지난은 타이산(泰山) 인근이고,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에서 가깝다. 더구나 지난은 중국에서 드물게 물이 풍부하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고장이다. 맑은 물이 끊임없이 샘솟는 표돌천이 지난에 있고 그 물들이 모여 대명호수를 이룬다. 물 좋은 마을에 명주가 있다. 공자 집안에서 빚는 술도 유명하지 않던가? 지난에는 이 동네 백주 맛을 즐기고 가리라고 호기롭게 갔건만, 냄새만 맡았다. 씹지도 못하니, 부드러운 만두만 몇 개 놓고 물만 마시면서 아픔을 견뎠다. 치통을 앓아본 사람들만이 정말 걱정을 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놀리진 않았지만, 내심 눈치는 치통 정도로 사내답지 못하게 엄살 떤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백주로 소독하라고 했던 친구들은 아마도 치통의 아픔을 겪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일행은 백주 스무 병을 비웠다. 나도 타인의 치통을 하찮게 여겼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안다. 나는 남들이 치통이라고 하면, 욱신거리는 정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아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치통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소주로 소독하라는 망발을 했던 기억도 있다. 이번에 치통을 겪으면서 크게 반성했다. 내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던 점을 후회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감각기관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개인과 개인들 사이에 아픔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체적 고통은 그것을 느끼는 개인이 그 신호에 반응해서 행동을 하라는 신호이다. 치통은 빨리 그곳의 염증에 관심을 가지고 조리를 하라는 뜻일 것이다.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맹수에게 치통은 먹지 못해 굶어 죽게 만들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일 수도 있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신경계를 개체 단위로 끊어 놓은 이유는 이 고통이 개체를 넘어 너무 넓게 연결되면 장기적인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종마다, 개체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다른 개체들의 아픔도 함께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은 해충이 자신을 갉아먹을 때, 신호를 내서 옆에 있는 다른 개체가 그 해충에게 소화가 잘되지 않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어떤 동물이든, 가족의 아픔에 마음으로 공감하고 함께 느낀다. 특히, 신경계가 개체에 한정되어 있는데도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종이 되었다. 자신의 고통에만 괴로워하고 남의 고통에는 무심해서는, 인간 정도의 실력으론 생존도 버겁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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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풀씨는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난다


날다가 물에 뜨면


물 타고 가고


담 넘어 어느 집 뜨락


혹은 다람쥐 고라니 산새


깃들여 사는 산야(山野)


철조망 넘어 북에도 남에도


거침없이 날아가 앉는다


막힘이 없다


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더럽히지 말라


이 맑은 물 맑은 공기


맑은 마음


 강민(193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풀씨는 어디에라도 날아간다. 바람에 실려, 물에 떠서 걸림도 막힘도 없이 날아간다. 어느 집 조용한 뜨락에 내려앉고, 산과 들에 내려앉는다. 산과 들에 사뿐히 내려앉아 다람쥐, 고라니, 산새와 함께 사는 자연이 된다. 풀씨는 철조망을 넘어서 날아간다. 풀씨에게 막힌 통로란 없다. 풀씨는 누구와도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시인은 시 ‘동오리 15’에서 “그대 바람으로 떠나요/ 떠난 김에 훨훨 날아/ 산 넘고 물 건너/ 이 봄의 씨앗 실어다/ 거기에도 뿌려줘요/ 샘물가 돌 틈에도/ 뒤울안 툇마루 주춧돌 사이에도/ 정자나무 그늘에 쉬는/ 그이들의 마음밭에도/ 뿌려줘요, 봄의 씨앗”이라고 썼다. 봄바람을 타고 풀씨가 더 멀리 나아갔으면 한다. 벽을 허물 듯이 벽을 넘어, 높은 산맥을 넘어, 저 먼 산하(山河)까지 날아갔으면 한다. 날아가 앉아 푸른 싹을 틔워 곳곳의 들풀들과 하나의 자연이 되었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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