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다. 파리 아우스터리츠역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다시 기차역에서 갈아탄 자동차로 30분을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마을이다. 하루에 버스가 세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의 서너 곳 남짓했던 소박한 호텔들은 대개 문을 닫고 이젠 하나만 남았다. 사실 지난봄에도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올라 격자무늬 창이 있는 객실에서 일주일을 지냈었다. 얼굴만큼 꽃송이가 큰 달리아가 활짝 피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일주일을 묵기로 했다. 이처럼 허름한 호텔에 일주일씩이나 머무는 까닭은 길 건너에 있는 마을을 산책하기 위함이다. 그 마을은 사람 대신 ‘기억하라’는 프랑스어(Souviens-toi)와 영어(Remember) 문구와 ‘침묵(Silence)’이라는 팻말이 낯선 이를 맞이하는 곳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마을의 옛 이름은 ‘오라두르 쉬르 글랑(Oradour-sur-Glane)’이며 토요일이던 1944년 6월10일 오후, 마을을 지나다니던 전차의 기적소리와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멎었고, 성당의 종소리와 대장장이의 망치소리조차 자취를 감췄다. 당시 마을에 살던 이들은 650여명이었으나 그날 대부분의 주민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는 아이와 여자들이 갇혀 있던 성당에 폭탄이 터지기 직전 3m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린 마담 루팡쉬와 남자 다섯 명을 합하여 여섯이 전부이다. 남자들은 로디의 헛간에 갇혔다가 도망쳤는데 그 헛간에서만 60여명의 남자들이 학살당했다. 그 외 어린아이 205명과 여자들을 포함한 나머지 주민들은 앞에 말한 성당이나 농가의 헛간에 갇힌 채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단 몇 시간 만에 1000년이 넘게 주민들이 살아온 평화로운 마을 하나가 통째 사라지는 터무니없이 잔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주민들을 학살한 이들은 연이어 마을의 그 어느 것도 남겨 놓지 않겠다는 듯이 불을 질렀으며 마을의 그 어느 한곳도 불길이 닿지 않은 곳 없이 깡그리 타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참혹한 학살극을 벌인 이들은 나치친위대 소속의 제2 기갑사단인 ‘다스 라이히(Das Reich)’였다. 그중에서도 기갑사단 기계화 보병연대의 제1대대 지휘관이었던 소령 아돌프 오토 딕만(1914~1944)이 마을에 주둔했던 독일군 중 가장 계급이 높았으며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일을 저지른 3주 후 노르망디에서 전사했지만 그가 남긴 보고서는 더욱 분노를 자아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을 주민들이 집집마다 폭탄을 감춰 두었는가 하면, 독일군을 자동차에 묶어서 처참하게 죽였고, 마을 우물에는 독일군의 시체가 즐비했으며 레지스탕스들이 성당의 지붕에 폭탄을 감춰 두었다가 마을에 불이 나자 터져서 주민들이 몰살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전후에 거짓임이 밝혀졌다. 

전쟁이 끝나자 샤를 드골 장군(1890~1970)은 오라두르 쉬르 글랑을 순교자의 마을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로 했으며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돌로 지은 집은 거뭇하게 그을음이 내려앉고, 씽씽 달려서 왕진을 온 의사의 푸조 자동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며 마을을 상징하고 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주던 주유기나 건물들도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전차가 다니던 철로 위로는 애자에 감긴 전선이 어지러이 얽혀 있고 전기도 흐르지 않는 전선을 감고 있는 전봇대가 외롭다, 후에 집집마다 그곳에 살았던 이의 직업이며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붙여 놓았는데 더러 허물어진 집 안에 사진을 남겨 놓은 집도 있다. 어떤 집에는 갓난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사진이 있어 함께 살던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양장점과 주점 그리고 마차를 수리하는 이의 작업장과 철공소, 이발소와 미용실, 전차역과 바로 이웃한 우체국, 전차역 앞 전봇대에 매달린 공중전화, 녹슨 철공소와 차량정비소, 성당 앞의 와인바와 호텔 건물까지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마을 모습은 내가 태어난 후 처음 대한 엄청난 풍경이다. 

마을을 둘러보며 누구 하나 얼굴에 웃음기를 띤 사람들이 없다.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다. 모두 처연한 표정으로 망연히 집들과 가재도구나 농기구들을 조심조심 바라보다가 짙은 탄식을 쏟아내거나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을 뿐이다. 나 또한 처음 텅 빈 마을과 맞닥뜨렸을 때 상상을 뛰어넘는 풍경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음은 물론 불현듯 솟구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았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사진기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장면들이 내 속에 새겨졌다. 그것은 현상되지 않은 채 잠상(潛像)으로 남아 있으며, 그 스멀거리는 기억 때문에 오늘 다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이 마을을 찾겠지만 2013년 9월4일에는 특별한 사람이 찾아왔다. 비록 상징적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당시 독일의 대통령 요하힘 가우크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피해자들로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독일의 다른 정치인들이 나치 수용소와 같은 장소를 방문해 참회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가 마을에 오자 학살 당시 살아남아 어느덧 89세의 노인이 된 장 마르셀 다트아웃은 “프랑스 대통령은 자주 만났지만 독일 대통령은 언제 오려나 기다렸다. 이야기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는 말로 그를 맞이했다. 

독일은 이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인류의 보편적 사고에 있어 큰 잘못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가 만족하지는 못할 테지만 되풀이하여 참회하며 다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가해자의 본분이다. 그러곤 자신들에게 드리워졌던 그늘을 벗겨내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과거를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인간 일반 누구나 삶을 사는 동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국가라고 해서 다를까. 요즈음의 일본이 더욱 안타까운 까닭이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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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해상에 있는 하시마라는 섬은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이 섬은 강제노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숨긴 채 2015년 7월 일본의 23개 근대산업시설 중 하나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 군함도 강제노역의 생존자 한국인 4명은 1997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만 패소한다. 이분들은 2005년 한국법원으로 이 문제를 가져와 2018년 대법원에서 마침내 원고승소 확정판결을 받는다. 보상 원천인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을 빌미 삼은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과의 경제전쟁을 선포한다.

1970년 12월7일, 브란트 서독 총리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숨진 바르샤바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는다. 2013년 8월20일, 메르켈 총리는 나치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나치 잔혹 범죄에 관한 독일의 책임이 절대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2019년 8월1일, 독일 외무장관 하이코는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독일인의 이름으로 저지른 만행에 대해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 독일의 역사 참회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1993년 8월4일, 일본 관방장관 고노는 일본군 성노예의 강제성 및 일본 정부 관여를 인정한 담화를 발표한다. 1995년 8월15일, 총리 무라야마는 일본의 전쟁 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다. 2005년 7월15일. 총리 고이즈미는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 계승 의지를 밝힌다. 2012년 아베 총리 취임과 동시에 “침략의 정의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부정한다. 2018년 10월18일, 일본 여야 국회의원 70여명은 전쟁 주범의 혼령을 모아 둔 야스쿠니신사에 머리를 조아린다. 역사를 부정한 채 전쟁이 가능한 나라, 새로운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운동 경축사에서 친일 척결과 독립운동 예우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 했다. 전쟁 후 프랑스는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알베르 카뮈와 민족반역자 척결을 내세운 샤를 드골 대통령을 등에 업고, 나치에 부역한 이들을 모조리 단죄함으로써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백범 김구 선생에 비해 국내 정치기반이 약한 이승만이 권력의 핵심에 친일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올바른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친일 척결은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친일파의 후손은 경제계, 사법계, 학계 전 영역에 걸쳐 대한민국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다.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자손들의 삶은 어떠한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반영된 실제 삶을 살고 있다. 국내는 물론 중국의 랴오닝, 지린 및 헤이룽장성 등에는 아직도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한국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서울시가 올해 광복절을 맞아 물질적으로 미약한 지원이지만,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로,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 및 지원강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작은 위로가 된다.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고, 아픔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역사는 오류와 상처를 반복할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단순한 궤도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국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역사의 영웅에서 끌어내렸다. 기득권의 반발은 진실 앞에서 무너졌다. 다음의 광복절에는 한 단계 나아간 친일 척결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셨던 그 후손들의 행복과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역사 바로 보기가 실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치용 |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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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체육대회를 할 때면 늘 고사를 먼저 지냈습니다. 고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역시 돼지머리입니다. 입이 귀에 걸린 놈으로 사 와 콧구멍 귓구멍에 지폐 꽂고 고사 잘 지냈습니다(요즘은 혐오감 줄이고 뒤처리도 곤란치 않게 돼지저금통, 가짜 돼지머리 등으로 대신하는 추세입니다). 대회 치르는 동안 뒤풀이 조는 솥에 돼지머리 넣고 한 번 더 삶습니다. 끓는 물 밖으로 귀가 비죽 솟아서 숟가락 나눠 쥐고 뜨거운 김 참으며 꾹 누르고 있자니 시골 출신 선배가 그럽니다. “야야, 놔둬. 귀는 저절로 익어.” 아! 그렇게 하나 배웠습니다. 뱀에게 물려도 끄떡없는 두꺼운 비곗살이라도 귀는 얇으니 덜 잠겼다고 덜 익진 않을 테죠.

속담에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핵심을 먼저 처리하면 부수적인 건 저절로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 역시 숨겨진 맥락이 있습니다. ‘머리’를 조직의 ‘윗대가리’로 보면 ‘삶다’는 ‘구워삶다’(여러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들다)가 됩니다. 그러면 ‘귀’는 ‘귀퉁이’ ‘끄트머리’ ‘말단’을 뜻하고 ‘익다’는 ‘안면을 트다’ ‘얼굴을 익히다’가 됩니다. 다시 말해 윗선을 구워삶으면 그 라인에 딸린 하급자들과도 쉽게 안면을 익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형님아우 하는 ‘빽’이나 돈다발 들이밀 ‘뒷구멍’만 있으면 일 번거롭게 할 거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는 법이지요.

급하다고 아무리 우는소리 해도 실무자가 안 된다고, 법규가 그렇다고, 절차가 있고 순서가 있다며 우직하거나 융통성 없이 뻗대면 보통 사람은 마냥 기다리며 동동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큰일을 먼저 보라, 그럼 작은 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비웃으며 구린 돈과 지린 접대로 ‘하이패스’하는 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돼지머리 썰 때는 꼭 귀부터 썰립디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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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운세를 살필 만큼 그리 고급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되는대로 밀고 나아갔다. 뒤늦게나마 날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의 훈련’을 소화한 아이가 대청도로 배치된 것이다. 스포츠뉴스가 끝나면 백령도가 표기된 지도가 떴다. 최북단 섬의 근황을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상냥한 음성이 몹시도 반가웠다. 첫 면회를 갔을 때 고독한 섬의 생태계도 염두에 두었지만 꽃보다는 쫄병이었다. 군인에서 아들로 돌아와 모처럼 시름을 잊고 동생과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2분3초’의 외박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해병 대신 꽃 보러 가는 길. 꽃산행을 응원하듯 배 이름도 하모니플라워다. 대청도에 내리니 5년 전의 생생한 추억이 땅보다 단단했다. 웬만한 지역은 일몰 이전에는 접근에 제한이 없었다. 대청도로 우편엽서를 제법 보낸 터라 이 지역의 주소는 지금도 훤히 왼다. 까나리액젓 담그는 통이 즐비한 옥죽동을 지나 모래사막 근처 용머리 해안을 탐사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흔한 순비기나무의 꽃, 해당화의 열매들이 한창이다. 

여름 바닷가에서는 벌거벗는 게 상책이다. 피서객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침내 그것과 만났다. 꽃에 입문했을 때, 오후 3시에 정확하게 꽃봉오리가 터진다는 말을 듣고 퍽 신기해했던 대청부채였다. 날카로운 칼 같은 잎이 서로 얼싸안으며 부챗살처럼 퍼진다. 나사처럼 배배 꼬인 채 지고 있는 꽃 옆에 피기 일보 직전의 꽃봉오리가 있다. 동영상 모드로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멀리 끊임없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짐작도 못할 저 바다의 깊이를 아들은 가슴에 들어앉혔을까, 생각하는 순간 꽃봉오리 하나가 확, 세상 구경을 하였다. 꽃잎 벌어지는 소리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렸나, 안 들렸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청도에서 대청부채를 보았다는 건 곡부에서 논어를, 달에서 이태백의 시를 읽은 셈에 비견할 수 있을 듯! 

제대 특명을 받고 하모니플라워를 탄 기분을 가늠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물에 뜬 배처럼 나의 기분도 파도 마루에 높게높게 걸리었다. 대청부채,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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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의 일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가족과 함께 집 근처 나들이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인천 계양산 자락에 예쁜 정원이 갖춰진 카페가 있었다. 열 살 난 딸과 아내랑 함께 바람이나 쐴 겸 향했다. 카페는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북적였다. 갑자기 딸이 “아빠! 여긴 내가 못 들어가는 곳이야. 여기 ‘노키즈존’이라 13세 미만 어린이는 들어갈 수 없대”라고 한다. 검색할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입구에 정말 그런 푯말이 서 있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을 찾아갔다. 아이에게 코코아 한 잔을 사주며 차별당하고 거절당한 기분에 대해 물어봤다.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기분이 어때?”라고 묻자, 아이는 “아빠, 엄마랑 오랜만에 바람 쐬러 나왔는데 나 때문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한다. 혹시 ‘여자’라서 차별당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만약 네가 한국 사람이어서 또는 피부색이 달라서 차별당한다면 어떨까?” 하고 물었더니 정말 불쾌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며 평등권을 기본적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건 없는 평등이 민주주의와 근대 인권의 핵심 개념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어느새 12년이나 경과했지만, 지금까지 이 법이 제정되지 못한 까닭은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은 일부 보수개신교와 출신국가와 성별 등으로 노동조건을 차별하는 재계의 반대, 그리고 이에 동조하거나 눈치를 보아 온 정부와 국회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차별과 혐오 정서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우리는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국가이지만, 지난해 제주 난민 사태가 보여주듯 난민 혐오 정서가 강한 사회이다. 3·1운동 100주년이라지만, 과거 우리도 나라를 잃고 세계 곳곳을 떠돌던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연세대학교에서는 이번 학기부터 실시하기로 한 보편적 인권교육에 대해 일부 세력이 ‘기독교정신에 반하는 인권교육’이라거나, ‘강제적 인권교육으로 학생의 교육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각종 차별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참여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2017년 대선 때는 ‘국가인권위원회 법이 존재하므로 불필요하다’며 공약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했다. 이후 유엔에서 수차례에 걸쳐 우리 정부에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ILO 핵심협약 비준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우리에게 차별금지법과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한 이유는 작게는 공동체 내부의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과 혐오가 죄라는 사실을 널리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더 넓게 보면 조건 없는 환대(hospitality)라는 인류 보편의 정의를 위한 것이다. 환대는 공동체 안에 이미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배제되고 소외된 자에 대한 환대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함께 잘사는 나라’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마음을 울리는 경축사와 선언을 들려주었고, 시민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땅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위한 정부와 대통령의 의미 있는 실천이 보고 싶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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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지시를 다 지키고 죽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19일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24세 비정규직 김용균씨 사고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다. 4개월간 1만여 노동자에게 묻고, 현장과 서류를 들여다본 진상조사의 답이 그날의 죽음은 김씨 책임이 아니라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익히 짚어진 ‘2인1조 근무 위반’식의 표상적 지적을 넘어 그 죽음의 끝에는 민영화·외주화의 허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억울함이 풀렸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누구나 아들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간에는 단서가, 증거가 없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해 말 김용균법 국회 처리를 위해 온몸을 던진 그로선 8개월 만에 받아든 특조위 보고서의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특조위는 이날 사고가 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진상보고서는 이라크전쟁 희생자보다도 한 해 더 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산업재해를 실증적으로 그려냈다. 손상·중독 경험 비율은 발전사보다 자회사 노동자가 7.1배 높고, 협력사는 8.9배까지 치솟았다. 석탄발전소에 협력사 노동자가 1명 증가하면 연간 작업 손상이 0.75회 늘어난다는 수식도 도출됐다. 발전사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자회사 정비는 77, 협력사 연료운전은 53, 2차 협력사 노동자는 31을 받는 것으로 비교됐다. 국가가 인건비를 따로 지급하는 계획정비공사도 노임으로는 3~25%만 지급됐다. 업주들만 땅 짚고 헤엄치고, 노동자 주머니를 향한 세금은 중간에 흩어진 것이다. 보고서는 발전5사 분할이 외주화 속도를 높이고, 하청 노동자 확대로 갔다고 짚었다. 기술 향상과 원가 절감을 경쟁시키겠다던 민영화 구호는 바래고, 발전사가 단기·미숙련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공기업이 됐다는 냉정한 평가다. 굳이 발전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얘기다.

안전 잣대에서, 특조위 권고는 구체적이고 궁극적이다. 김용균씨가 속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직접고용하고, 임원진에 안전보건담당이사를 두고, 노동안전 문제는 원·하청이 공동교섭하도록 했다. 법·제도적으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담겼다. 특조위를 이끈 김지형 전 대법관은 “노동안전을 한 발자국이라도 앞당기게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번 보고서가 대한민국을 돌아보는 거울, 변화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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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고증식(1959~)

 

날이 저물고 장사를 마친 부부가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탁주도 한 잔 곁들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의 온순한 성품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죽을 내놓으면서 만난 소박하고, 자상하고, 명랑하고,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들의 됨됨이에 대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평원(平原)의 고귀한,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늙은 염소처럼 순한 부부가 살아가는 훈훈한 삶의 풍경이다.

고증식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을 펴내며 “아홉 살짜리 두고 아버지 떠나시던 그해가 지금의 딱 이 나이다. 아버지 못 가보신 길을 이제부터 시작한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우짜든지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라고 썼다. 희로애락을 살아도, 곡절이 많더라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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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크기가 그리 심하지 않은 나라를 찾아가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그 비결을 묻는 시사프로의 한 장면이다.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게 된 이유를 알려달라는 말에, 자국의 복지체계 자랑을 밤새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답변이 이렇다. “그건 모르겠고요. 아직 이 사회에는 문제점이 많아요. 제가 할 일은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은 조금이라도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복지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제도를 정비하려는 걸 방해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고정관념도 깨야 해요. 그게 제 의무예요.”

과시를 해도 될 상황에서, 아직도 곳곳이 엉망이라 갈 길이 멀다는 태도를 보인다. 좋은 사회는 이처럼 ‘나쁜 사회’의 모습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야지만 가능하다. 사회가 아름다운 수식어로만 꾸며지면 분명히 존재하는 비상식적인 모습들이 쉽사리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는 사람들이 맹목적 긍지로만 뭉쳐 “이 나라는 완벽해요! 차별과 혐오는 생각도 할 수 없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회에서는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항의가 ‘객관적으로 나아진 현실을 부정하는 배배 꼬인 생각’이라는 냉소에 막혀버린다. 한국처럼 말이다. 새마을 운동, 한강의 기적,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단군의 후예, 열정과 성실로 무장한 국민정서 등등, ‘찬란한 역사에 자긍심을 지니자’는 무한 긍정의 강요 속에 듣기 좋은 말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했던가. 이런 노출에 단련된 대중은 이렇게 내뱉는다. “그 덕에 우리가 잘살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이 나라에 감사하자!”

팩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순간에도 불평등에 노출되어 삶이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후자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그 방향성이 유지된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의 불평등조차 낙관하라는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지금 아파하는 사람을 보며 한 사회의 불평등을 탓하는 건 확증편향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걸 무시하고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망상에 빠지는 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착각이다.

곳곳에 첨단 시설이 즐비해졌다는 팩트는 아무리 더워도 휴게실에 창문 하나 낼 수 없어 생을 마감한 ‘그’ 노동자의 비극을 덮을 수 없다. 손가락 절단 사고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허술한 안전장치 때문에 끔찍하게 죽는 ‘그’ 노동자의 불행이 기쁨으로 둔갑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배달되기에 개인들의 편리가 증가했다는 사실이 하루 열다섯 시간을 일하는 ‘그’ 사람의 고충을 해결하지 않는다. 여성도 차별 없이 교육받는다는 변화된 통계자료가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 당사자의 오늘 불안한 마음을 줄여주지 않는다. 인류가 전염병을 극복하고 평균수명이 증가했다는 좋은 뉴스가 비만 오면 똥물이 역류하는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 겪는 서러움을 치유해줄 리 만무하다. 재래식 화장실이 사라졌다고 해서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주변의 차별 때문에 ‘오늘’ 느낀 수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낙관주의자들은 ‘왜 세상이 좋아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한 적 없다. 다만, 좋은 세상은 긍정의 자세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 평등한 세상은 ‘더’ 불평등한 세상을 찾아야지만 가능하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끝없이 의심하는 비관적 자세는 결과를 낙관적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부정하는 건 세상의 변화를 원치 않는 기득권의 익숙한 습관일 뿐이다.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하나의 팩트만이 부유하면, ‘그때 그 시절 덕택에’ 집집마다 자동차 굴리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등장한다. 군부독재를 긍정하고 나아가 일제강점기도 다르게 해석하는 놀라운 사람이 이 땅에 있는 이유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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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412호 법정.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했다고 허위 답변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곳은 좌석이 30개 정도밖에 안되는 소법정이다. 기자는 사전에 취재용 방청권을 받아 법정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청권이 없어 법정에 들어오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법정 경위들과 다투고 있다고 했다.

“김기춘 나와라!” “방청 못하게 하는 판사 각성하라!” 유가족들 항의는 형사30부 권희 재판장이 선고문을 낭독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누군가는 법정 문을 쿵쿵 두드렸고 그 과정에서 고성과 격한 단어도 나왔다. 권 재판장 목소리가 묻히거나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했다. 법정 경위를 향해 한 차례 “해결이 안돼요?”라고 물은 권 재판장은 계속 선고를 진행했다. 

법정 문은 꽉 닫혀 있었다. 36도의 기온에 환기도, 냉방도 안되는 소법정에서 1시간가량 선고가 이어졌다. 이마엔 땀이 줄줄 흘렀고, 법정 밖에선 유가족들의 분노 섞인 호소가 들려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선고문 낭독을 듣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꼭 이렇게 선고를 해야 했을까. 법원은 청사에 입간판 형태로 ‘재판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한다’고 공지했다 한다. 법원 청사를 자주 드나들지 않는 시민에게는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홈페이지에 공지글을 올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과도 다르다. 

권 재판장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법정에는 여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그곳에 서서 방청하도록 할 수도 있다. 다른 재판에서도 방청을 원하는 시민이 많은 경우 서서 선고를 듣게 하거나, 아예 법정 문을 열어놓기도 한다. 상황을 진정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잠시 휴정하거나 유가족들에게 법정에 들어오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뒤 선고를 이어갈 수도 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방청객이 많을 것을 예측하고 애초에 더 큰 법정에서 선고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핵심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다. 재판 진행은 재판장 재량이고, 김 전 실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허위공문서 작성과 행사죄다. 엄밀히 말하면 유가족들이 ‘범죄 피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책임 회피로 진상규명이 지연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가족들이 입었다. 실질적인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피해자로 명시한 세월호특별법도 있다. 가해자에게 어떤 판결이 선고되는지는 피해자의 알권리에 속한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사건을 심리한 판사들이 발간한 백서를 보면 충격이나 슬픔에 찬 유가족들의 격앙된 반응을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해하고, 제어만 하기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 달래는 방법을 고민한 내용이 나온다.

유가족들이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던 그 시각, 같은 법원의 417호 대법정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법정은 공간이 넓고 냉방도 잘된다. 방청객은 그다지 없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대법정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묻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나, 법원은 꼭 그렇게 선고를 해야 했나.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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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국무위원들의 유고로 정치에 뜻이 없던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참에 살펴보니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몇 번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황 대행님’으로 불렸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서열은 정부조직법에 정해져 있다. 총리가 1위이다. 2위는 기획재정부, 3위는 교육부다. 모두 부총리급의 국무위원이기 때문에 서열이 높다. 이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의 순서다. 내가 의외라 느낀 것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서열이 생각보다(?) 높아서다. 드라마에서 권한대행을 맡게 된 환경부 장관보다 3계단이나 위인 열한 번째다. 

이번 개각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포함된다. 장관 후보자는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임명된다면 조직 내 승진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권의 발탁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사실 김현수 차관이 농식품부 장관으로 지명되리라는 건 농업계에선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가장 늦게 임명된 장관도 농식품부였다. 당시 농업계에서는 만약에 기재부나 교육부 장관이 이렇게 늦게 임명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자조를 섞기도 했다. 농식품부 장관 청문회 때마다 장관 후보자들은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다고 당당하게 대답했어도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김영록 전 농식품부 장관이 도지사 선거에 나가면서 7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고, 현 이개호 장관도 총선 출마 의지를 처음부터 밝혔다. 이개호 장관은 1년짜리 장관직을 수행하고 정치적 고향으로 돌아간다.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세 번째 농식품부 장관 후보가 지명된 것이다. 

지난 7월부터 진보진영의 농민단체에서는 적폐청산의 대상인 전 정권의 관료를 농식품부의 수장으로 앉히는 것을 반대한다고 천명해왔다. 이와는 반대로 며칠 전 김현수 장관 후보 추천을 환영한다는 성명서가 이례적으로 몇몇 농민생산자단체에서 나왔다. 농식품부 장관 후보를 두고 찬성과 반대가 극과 극으로 맞서는 상황이지만 대체로 농업계 안에서의 소란일 뿐이다. 이번 개각의 국민적 관심사는 단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해서는 연일 수천개의 찬반 양론 댓글들이 달리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농식품부 장관에 대한 기사는 배포된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수준이다. 예측컨대 농식품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않을 것이고 무난하게 임명될 것이다. 

‘지정생존자’의 서열은 의외로 높은 농식품부지만 그만큼의 중량감은 없다. 서열을 올린다 한들 이 사회에서 농업·농촌·농민의 문제가 중심의제로 다뤄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서글프지만 익숙하다. ‘사람 중심의 농정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와 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농식품부 김현수 장관 후보자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이길 바란다. 정권 3년간 벌써 세 명의 농식품부 수장을 맞이하는 심정이 허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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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본 관객이라면 다섯 살짜리 유키가 그 작은 발로 깡충깡충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났던 ‘삑삑~’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유키는 그날 행복했다. 열두 살인 큰오빠 아키라와 언니 교코, 작은오빠 시게루와 함께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외출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발에선 삑삑 소리가 났다. 앙증맞던 그 소리는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민 작은 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유키의 엄마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어린 남매들을 놔두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맏이 아키라는 사회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 동생들과 함께 굶주리며 유령 인간처럼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유키는 병을 얻었고 결국 언니·오빠와 작별하고 하늘로 떠난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장면

1988년 도쿄에서 실제 일어난 어린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 고립된 채 고통을 겪는 아이들, 약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2005년 국내 개봉된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장면은 남은 아이들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성장과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지만 극장 밖 세상에선 더욱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병든 몸으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2014년 벌어졌고, 지난해 ‘증평 모녀 사건’ ‘구미 부자 사건’ 등에 이어 올 초 ‘망우동 모녀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육체적·정신적 고통 등이 수년간 지속되며 낳은 비극이다. 급기야는 며칠 전 영화 속 유키처럼 앙증맞은 신발을 신었을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북한이탈주민인 40대 엄마와 함께 굶어죽은 채 발견됐다. 사람이 아사(餓死)한 것이다.

모자의 죽음은 수도검침원이 이들이 살고 있는 한 임대아파트에 직접 찾아가면서 알려지게 됐다. 몇 달째 요금미납으로 단수조치가 된 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경찰은 시신 부패 등 정황을 볼 때 모자가 두 달여 전 죽음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견 당시 냉장고는 텅 빈 채 먹을 것이라곤 고춧가루뿐 아무것도 없었고, 엄마의 통장 잔액은 지난 5월 3858원을 인출한 후 0원 상태였다. 방문에는 아이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철없는 낙서가 쓸쓸히 남아 있었을 뿐이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차마 믿기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굶어서 죽나. 전쟁통도 아니고 2019년 대한민국 서울에서다. 나는 이렇게 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 살고 있었나, 정말 사람 옆에 사람이 없었나….

이들이 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렀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탈주민 가정이라는 특수성이 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15일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실시한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로 미취학 자녀가 있는 가구 28%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응답자의 경우 가난해서 끼니를 굶어본 적 있다는 응답도 4.5%에 이르렀다.

탈북민 모자는 18개월간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것은 물론 수개월간 단전·단수 상태에 있었지만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아가는 발굴 시스템을 가동하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시스템적으로 부족한 면을 느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부모가정은 독거노인에 비해 어린아이가 있어 더 제도적으로 점검될 수 있고 당사자들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구해 그나마 덜 위험하다고 믿어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당황스럽다”고 했다.

소외된 약자들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를 보완해온 것이 사실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이후 빅데이터를 통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고 현장에서 위기가구를 적극 발굴하는 프로그램도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 모자의 죽음은 현재의 시스템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시스템을 마련할 때 복지 서비스 제공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몸을 더 낮은 곳으로 낮춰 바라보고 더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제도가 발전할지라도 점점 더 개인화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복지 시스템’에도 공들여야 한다.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탈북민 모자의 여섯 살 난 아이도 영화 속 유키처럼 분명 세상을 향해 도움의 마지막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김희연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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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에서 독일 청년 3명의 여행기가 전파를 탔다. 이들이 스스로 정한 행선지 중 한 곳은 서대문형무소였다. 이들이 전한 생생한 느낌과 한국 역사에 대한 공감, 독일의 역사교육 이야기는 꽤 신선했고, 호평이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대문형무소는 우리에게 수난과 치욕, 부정적인 기억의 장소다. 이른바 ‘네거티브 유산’이다.

근래 들어선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거티브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9·11테러 발생지인 뉴욕의 그라운드제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등이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이다. 우리 사회에선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며 ‘네거티브 유산 논란’이 불붙었다. 최근엔 사안에 따라 보존 여부와 방식을 신중하게 찾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인천 부평구에선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으로 꼽힐 만한 ‘미쓰비시 줄사택’ 철거 논란이 뜨겁다. 이곳은 1938년 일본군 무기를 만드는 조병창의 하청업체인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됐던 노동자들의 합숙소였다. 집들이 줄세운 것처럼 나란히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서 이렇게 불렸다. 1000여가구가 있었지만 수십 채가량만 남은 이곳은 사실상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강제노동자 합숙소다. 당시 주거 현실을 볼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지만 9개 동의 줄사택 중 3개 동이 이미 철거됐고 추가로 2개 동도 철거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 공동이용시설과 주차장 등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남은 줄사택 보존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일제 군수기지의 흔적이 남았던 미쓰비시 강철 공장은 이미 철거돼 공원으로 바뀌었다.  

식민지 문제와 관련해 인적 청산은 철저히 하되, 물적 청산은 하지 않고 교훈의 현장으로 남기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다.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가뜩이나 일본은 위안부 등 있는 사실도 부정하고 있는데, 침략과 수탈의 증거마저 스스로 없앨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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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탈북 여성이 6세 아들과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의 통장은 지난 5월 3858원이 인출된 이후 줄곧 잔액이 0이었고, 집 안에는 고춧가루 외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수돗물마저 끊긴 집에 사망 후 두 달여 만에 미납 수도요금을 받기 위해 들른 검침원과 아파트 관리인이 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참으로 참담한 죽음이다.

2009년 탈북한 이 여성은 중국동포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병을 앓던 아들과 단둘이 살게 됐다고 한다. 5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각종 대책이 이어졌지만, 이 모자에게 생명줄은 닿지 않았다. 지난해 ‘충북 증평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29종의 정보를 분석해 위기가 예상되는 가구를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복지 위기가구’ 지원 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탈북민 모자는 전기·수도·가스요금을 1년 이상 연체했는데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체납 사실을 통보했지만, 복지 당국에 정보가 넘어오지 않았고, 전기·수도요금은 아파트 통합관리비에 들어 있어 단전·단수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혼 후 이 여성은 기초수급자로 월 87만여원의 생계비를 받거나 탈북민 관련 재단에서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외부와 단절된 모자의 삶에 이런 정보는 너무 멀었다.

있는 제도조차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이 더욱 뼈아프다. 더 중하고 덜 중한 목숨은 없다.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보다 촘촘한 안전망과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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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서 법원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에 대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판결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재판부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에게는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국민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 박 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침실 집무’와 ‘머리 손질’ ‘최순실 회동’까지 차마 믿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은 그런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는커녕, 사후에 7시간 행적을 조작하는 데 급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공문서를 조작해 국회에서 거짓답변하고, 국가재난 컨트롤타워를 청와대에서 안행부(현 행정안전부)로 무단 수정했다. 이들이 제대로 된 보고를 하고 적절한 조치를 했더라면 304명이 생목숨을 잃는 일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하고자 했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고령이나 증거부족 등 이유로 집유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 공문서를 조작했고, 위법한 방법으로 수정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입증·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은 앞뒤가 맞는 판결인가. 이번 판결은 국민 생명권 보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국가와 고위공무원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법관 상대 진정·청원 건수는 4600여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도 사실로 드러난 마당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근간도 흔들리게 된다. 아직 2심과 최종심이 남아 있다. 사법부는 법과 원칙, 상식에 맞는 판결로 깊어진 국민 불신에 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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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게 깨다. 깻대는 심을 때부터 목숨 줄이 간당간당하다. 겨우 살아남은 야문 무리가 솟구친다. 가장 덥고 습한 장마와 여름을 나게 된다. 베어지면 곧바로 햇볕에 바짝 눕게 된다. 가장 뜨거운 아스팔트나 마당에다가 넌다. 잘 마르면 다음 순서, 죽도록 두들겨 패기. 바깥주인이 때리고 안주인이 때리고 개가 밟고 지나가도 욕을 먹지 않는 게 깨 털기다. 뒤지도록 두들겨 맞는 도리깨질이 끝나도 수난은 더 이어진다. 이제는 까불기. 돌조각이라도 있을까봐 바람에 까분다. 더러 땅바닥에 동댕이질. 그러고 나면 가장 센 불에 올라가 볶임을 당할 차례. 기름이 되는 녀석들은 쥐여 짜는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고소한 참기름을 불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건 그러니까 참기름이 아니라 피눈물이렷다. 당신의 시골 어머니가 보내오는 참기름은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더운 날 다리 밑에서 천렵놀이. 뱃살 번진 아재들 사우디 건배사. ‘사’나이 ‘우’정 ‘디’질 때까지. 흥을 돋우면 아낙들도 이에 뒤질세라 아우디. ‘아’줌마 ‘우’정도 ‘디’질 때까지. 그러고는 뒤끝에 비빔밥을 쓱쓱 만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질긴 목숨의 참기름을 쭈욱 두른다. “요거이 차이나 아니여. 니뽕거 아니여. 국산 로컬이여.” “알았어 알어.” 박수들을 친다. 고소하고 맛나고 질긴 우정들아. 사랑들아.

엄마 냄새. 참기름 냄새. 아이들도 엄마표 비빔밥을 좋아해. 이 고소한 밥을 안 먹고 단것만 찾으면 저만 병나고 손해지. 언젠가 북청사자놀이를 현장에서 봤는데, 사자탈을 벗은 아재들이 구석지에서 참기름에 비빔밥을 말아먹는 풍경. 잊지 못한다. 큰 양푼에다가 같이들 우걱지걱 비벼 먹는 저 힘. 저 기운.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내는 신명이었다. 참깨 들깨 나누며 함께 견디고 함께 넘어온 아리랑 고개.

참깨 들깨 수확 철이다. 차를 몰다가도 마을길에 깻대가 널어져 있으면 조심조심. 두들겨 맞을 일을 생각하면 또 불쌍불쌍.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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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군산이지? 지난해 10월 장률 감독의 영화<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 시사회가 열린 날 입소문을 먼저 탄 것은 제목이었다. 무대는 짐작가지만, 군산과 거위를 묶은 착상은 곱씹어야 했다. 사업가부터 칼국숫집 주인, 조선족 가사도우미, ‘돌싱’까지…. 영화엔 언젠가 꿈이 있었고, 지금은 살맛을 잃거나 공허하게 하루를 때워가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 무기력한 처지를 감독은 자동차·배 공장이 떠나고 그 돈의 낙수(落水)가 뚝 끊긴 군산에서 그렸다. 인생과 도시의 부침을 다시 날고 싶은 ‘거위의 꿈’에 빗댄 것이다.

군산은 근현대사에서 롤러코스터 진폭이 가장 컸던 도시다. 1899년 문을 연 항구는 일제강점기 쌀의 최대 반출로였고, 만경 들녘의 미곡을 옮긴 전군가도(전주~군산)는 최초의 포장도로였다. 강제징용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도 실어낸 눈물의 항구는 해방 후 오랜 세월 인천항과 부산항의 뒷전으로 밀렸다. 롤러코스터는 1996년 대우차(GM대우)가 세워지며 다시 위로 향했다. 2008년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들어섰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전국 최고를 찍은 때다. 잔업·특근을 하는 20~40대 젊은 노동자들과 돈이 넘치는 도시. 일제의 적산가옥과 ‘전국구 맛집’까지 즐비한 군산은 관광지로도 떴다. 한때 날던 도시는 지금 빌딩의 4분의 1이 비고, 젊은이는 떠나고, 물산과 물동이 끊긴 자칭 ‘죽은 도시’가 됐다. 조선소가 문 닫은 2017년, 자동차 공장이 떠난 2018년 2단계 충격파가 드리워진 뒤다.

지난달 24~25일 군산에선 숙의형 대토론회가 열렸다. 노동자가 임금을 덜 받고 지자체가 복지를 더하는 ‘광주형’, 세금을 깎아주는 ‘구미형’에 이은 ‘군산형 일자리’가 화두였다. 전기차 클러스터로 가려는 군산형은 대기업이 아닌 중견·중소기업이 주축이고, 노사교섭도 지역단위로 해보려는 첫길이다. 주부는 “먹튀 대기업의 트라우마”를 말했고, 고교생 입에선 “정규직 많은 일터”가 앞섰다. 배·자동차의 2~4차 하청기지로 살다 벼랑에 선 도시의 아픔이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 후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기지로 키우려는 곳은 중소기업이다. “난 꿈이 있어요~”로 시작하는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이 일제 수탈사가 배어 있는 군산 거리에서 무르익길 기다린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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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히로뽕 수출 X나게 해가, 그 망할 놈의 원숭이 새끼들 다 뽕 쳐맞고 오줌 질질…. 애국이 별겁니까, 예? 우리가 일본을 뭐라도 이겨야 될 거 아닙니까.” 좀 거칠긴 해도, 이 대목에서 웃지 않은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이건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 히로뽕을 밀수출하려는 세관원 최익현의 말일 뿐이다. 현실에서 더한 일도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만주, 간도 등지에서 벌어졌다. 일본도에 죽어나거나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위안부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 대사는 그냥 개그일 뿐, 오히려 너무 싱겁게 느껴질 테다. 임진왜란 때는 어땠는가. “통석의 염” 같은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적어도 독일 수준 같은 반성과 사죄 위에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을 치유하지 않는 한 참된 ‘한·일 국교정상화’는 요원하다. 외교 수사로 아무리 꾸며봐야 공염불이다.

최근 일본의 잇단 수출규제 조치에 들불처럼 번지는 불매운동이 예사롭지 않다. 대체 어느 정도로 일본 제품이 사랑받는지 궁금했다. 한 날은 어느 고교생의 필통을 살펴봤다. 이름도 생소한 일본 볼펜이나 형광펜, 지우개까지 한 움큼이 나왔다. 3분의 2가 넘는다. 학생도 이번에야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생활 구석구석에 일제가 파고들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좋은 ‘샤프’는 늘 일제였다. 국산은 펜 끝이 흔들리곤 해서 툭하면 얇은 심이 부러졌다. 그러나 이젠 우리 경제가 일본의 꼬붕 노릇 하던 시절이 아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광주 광산구의 한 거리에 'NO! 아베, OK! 광복' 문구가 걸려 있다. 이 현수막은 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을 지역위원회가 시민들의 모금을 받아 내걸었다. 연합뉴스

일본의 수출규제는 역사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배경에는 급성장한 한국 경제에 대한 견제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 전자업체 이익을 더해도 삼성전자 하나보다 못한 처지다. 일본 기술자가 없으면 고장 난 제철소를 못 돌리던 시절도 아니다. 과거 브라운관 TV 때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제품을 우리는 못 만들 줄 알았다. 그러나 액정화면(LCD)으로 넘어오자 삼성, LG가 뒤엎어버렸다. 현대정공 시절 미쓰비시 차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껍데기 씌워서 팔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적어도 신차 품질로는 일본 도요타, 혼다 같은 대중 브랜드는 따라잡았다.

아직 곳곳에 일본 기술력은 탄탄해 보인다. 자전거 변속기만 봐도 시마노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카본 소재는 일본 도레이가 잡고 있다. 국내 굴지 대기업에 ‘국산 카본도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돈이 안된다”였다. 중요한 소재이지만 정작 뒤늦게 손대기에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드는 격이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시마노 뺨칠 변속기 하나 못 만들까. 결국 이런 건 강소기업들이 해내야 한다. 정부 지원은 물론 대·중소 협력체제를 통해 마중물을 부어야 할 때다.

무조건 반일, 극일이 현명한 해법은 아니다.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해서라면 어차피 일본과도 손잡아야 한다. ‘아시아의 패권자’가 될 가능성이 큰 중국을 어떻게 견제하느냐가 한국과 일본엔 향후 큰 숙제다. 과거 1000여년 역사에서 보듯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인 일본이 충돌했고, 그 완충지는 한국이었다. 청일전쟁에, 만주국의 오점까지 지닌 중국이 일본을 그냥 놔둘 리 없다. 이번 한·일 갈등의 뿌리는 대중 견제용 포석이란 해석까지 나온다. 일본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잘 보여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불타오른 반일감정은 그냥 내버려둬라. 어차피 한풀이 굿판은 1965년 억지 합의로 꿰맞춘 한·일이 치러야 할 대가다. 참된 해법은 그 뒤 자연스레 찾게 될 것이다. 그 대전제는 일본을 ‘정상국가’로 바로잡는 일이다. 징용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했건만 그런 기억조차 지워져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한 인간으로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유대인은 요즘도 나치를 찾아 단죄하기 위해 이런 팻말을 붙인다고 한다. ‘Spat, aber nicht zu spat(늦었지만 너무 늦진 않았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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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TV에 방영된 한 광고는 당시의 번화가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서 있는 ‘정신대’ 여성을 비춘다. 그러다 “역사는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브랜드의 로고가 등장하며 광고는 끝난다. 

비록 이 광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했지만, 고작 국산 운동화를 팔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은 지옥같은 경험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동원한 천박함은 나의 기억 속에 길이 남았다. 

내가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들에 냉담해진 것은 이런 기억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애국은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곳곳에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겠다는 악당들이 출몰해 웃기지도 않은 티셔츠를 팔거나, 인기를 얻으려 날뛰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데다, 국적이라는 것이 변경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누구나 쉽게 옷을 갈아입듯 국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와 나를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 것이 가능한 것도, 또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문제들은 일본과 전 정권들이 만들어 냈다. 더 깊이 기원을 따지자면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전후 냉전구도 속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원했던 미국의 압력이며,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길 원했던 독재정권의 협잡의 산물이다.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하고 힘과 돈의 흐름이 과거와 달라진 덕에 봉합되었던 문제가 마침내 파열음을 일으키며 튀어나왔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힘을 모으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 기준이 굴종이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와 대의명분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과열된 흐름과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지도층에서는 선언적이고 과격한 발언과 조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는 보수정당과 한국 극우들의 책동에는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 싸움에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지나치게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까지도 느낀다.

싸움을 안락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를 대비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들을 보면 모두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염두에 둔 것들뿐이다.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희생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벌과 국가의 책임을 시민들의 몫으로 돌리고, 개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정작 한국의 재벌과 고위층은 위기를 통해서도, 또 위기 극복을 통해서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부를 쌓았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이토록 낮은 것에는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 내내 국가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버림받았던 배신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파국은 공평하게 오지 않으며, 언제나 약자들의 삶을 먼저 집어삼킨다는 교훈을 한국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뼈아프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모든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격차가 발생한다. 이 격차가 불합리하고 클수록 그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해체된다. 격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모든 공동체가 맞이한, 그리고 어쩌면 그 공동체의 핵심을 결정하는 문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위기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부와 권력을 취할 생각에 들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이야말로 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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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의 차가 빠른 속도로 내 차를 앞질러 추월한다. 내가 보면 옆 차가 빨라 보이고, 옆 차의 운전자가 보면 내 차가 느려 보인다. 누구 얘기가 맞는지 다툴 일도 없다. 둘 다 맞다. 기준이 내 차인지 옆 차인지에 따라 같은 운동을 다르게 볼 뿐이다. 

지구에서 본 해, 해에서 본 지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제다. 지구에 붙박여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아침 해가 동쪽에서 떠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본다. 마치 해가 하루에 한 번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지구와 해를 함께 보는 이는 다르게 본다. 해가 지구 둘레를 하루에 한 번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팽이처럼 거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자전하는 것을 본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해가 돈다, 아니다, 지구가 돈다, 둘이 다투면, 멀리서 함께 볼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누구의 눈으로 보는지,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일이 있다 해서 모든 세상일이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해가 아니라 지구가 돈다.

처음 지구의 자전을 생각해낸 사람을 떠올리면 나는 늘 경이감을 느낀다. 주변을 보라. 집채만 한 바위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엄청난 크기의 땅 전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사실, 지구 자전에 반할 법한 일상의 경험이 많다. 앞으로 달려보라. 얼굴로 불어오는 시원한 맞바람이 땀을 식힌다.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면,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바람이 한쪽으로 끊임없이 마주 불어 선풍기 없이 더운 여름을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현실은 그렇지 않을까. 지구가 돌고 있다면, 내 손에서 놓은 물건이 지구 자전 반대방향으로 치우쳐 떨어지지 않고 왜 똑바로 내 발밑으로 떨어질까. 땅 전체가 움직인다고 처음 주장한 과거의 그 경이로운 사람은 당시에는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으리라. 독자도 가슴에 손을 얹고 위 얘기를 고민해보라.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학교에서 여러 번 배워 익숙한 지식일 뿐인지 말이다. 익숙함을 앎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구와 해의 운동, 그리고 내 차에서 본 옆 차의 움직임은 고전역학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이라 하면 누구나 아인슈타인을 떠올리지만, 사실 갈릴레오가 먼저다. 갈릴레오의 상대성과 뉴턴의 물리학만으로도 위에서 얘기한 것은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지구가 움직여도 맞바람이 불지 않는 이유는, 마찰력으로 말미암아 지구 위의 대기도 결국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땅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물 담긴 컵을 돌리면, 오래지 않아 컵 안 물이 컵과 함께 도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구가 자전하는데 물체가 발밑으로 수직으로 똑바로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동전을 떨어뜨려 보라.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도 동전은 내 발밑으로 떨어진다. 동전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기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차와 같은 처음 속도를 갖기 때문이다. 과학이 상식이 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던 현상이 이제 당연한 상식이 된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시속 100㎞로 달리는 기차에서 시속 100㎞로 야구공을 앞으로 던지면 땅 위에 멈춰 서 있는 사람은 시속 200㎞로 날아가는 야구공을 본다. 땅 위에서 본 공의 속도는 기차의 속도에 기차 안에서 본 공의 속도를 더해 얻어진다. ‘1+1=2’와 다를 바 없는 얘기다. 축구경기의 승부차기에서, 제자리에 멈춰 차지 않고 달려오다 공을 차는 선수는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를 이용하는 셈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빛의 속도로 공을 앞으로 던지면, 땅 위에 정지한 사람이 본 공의 속도는 얼마일까. 갈릴레오는 그 속도가 빛의 속도의 두 배라고 알려주지만, 아인슈타인의 결과는 다르다. 정지해 있는 사람도 공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 ‘1+1=1’이 되는 셈이다. 믿기 어려운 놀라운 결과지만, 현실의 많은 실험은 하나같이 갈릴레오가 아닌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준다. 물론, 물체가 빛의 속도에 육박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그렇다.

갈릴레오의 상대성이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든, 둘 모두, 누가 기준이냐에 따라 물체의 운동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얘기가 있다. 바로, “누가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 보여도, 결국 똑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거다. 옷차림이 달라져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인 것처럼, 상대성이론의 진정한 의미는, 달라 보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기준이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물리법칙이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는 “등속으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가 본 운동법칙은 같다”는 것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이 원리에 더해서 “등속으로 움직이는 관찰자라면, 빛의 속도는 누가 봐도 같다”를 보탠 얘기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은 ‘다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같음’에 대한 얘기다. 같은 법칙이 적용되지만, 기준이 달라지면, 각자가 보는 현상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확연히 달라 보이는 세상일이 많다. 같은 일을 어쩜 저렇게 정반대로 볼 수 있는지, 서로 상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지구에서 해를 보면서 해가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해에서 지구를 보면서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 있는 곳을 바꿔볼 일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멀리서 둘이 나란히 지구와 해를 함께 살필 일이다. 서로 다르게 본다고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일도 그렇다. 서 있는 곳이 달라도 여전히 유효한 보편법칙이 있다. 나는 요즘, 평화를 자주 떠올린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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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앞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했다. 대로변에 야자나무가 늘어선 LA를 가로질러 닿은 글렌데일은 조용한 도시였다. 특히 도서관 앞 공원은 한적했다. 노인 둘이 나무 그늘에 앉아 두런거렸고, 그들 뒤로 주먹을 단단히 쥔 소녀가 앞을 응시한 채 꼿꼿이 앉아 있었다. 

 글렌데일시는 2007년 7월30일 미국 하원이 만장일치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기념해 매년 7월30일을 ‘위안부의 날’로 지정했으며, 2013년에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이곳에 소녀상이 설 수 있었던 것은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려는 활동가들의 노력도 주요했겠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지지 덕분이라고 했다. 글렌데일 시민의 40%가 넘는 아르메니아계 시민들이 과거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쉽게 공감했다(<기억 전쟁>, 임지현, 휴머니스트)는 것이다.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것은 아픔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의 연대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시립도서관 1층 갤러리에선 ‘1N3 : SEXUAL VIOLENCE PANDEMIC’ 기획 전시가 열려 역사가 덮어온 여성들의 아픔을 그려낸 예술 작품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위안부의 아픔이 아시아에 있는 작은 나라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오랫동안 되풀이해온 폭력임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서 내가 한참 동안 바라본 것은 철판에 한글로 새긴 글씨였다. 들어봐… 들어봐….

들어봐! ‘평화의 소녀상’은 그들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의 할머니였으며, 어머니였으며, 누이였던 그들은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당신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지구에 산다면 누구든지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17년 일본 오사카시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피해자 기념비’가 서자 60년 동안 맺은 자매결연을 파기했다. 얼마 전 일본 나고야시에서는 전시회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일본은 소녀상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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