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귀족적이요 부르주아적이라 할 것 같으면 참외는 평민적이요 프롤레타리아적이다.”

1928년 7월 발간된 ‘별건곤’ 제14호를 넘기다 웃음이 터졌다. 여름이면 무더기로 쌓이는 과채에 무슨 이런 어마어마한 소리람. 꼭지의 제목은 게다가 ‘참외로맨스’. 이에 따르면 참외는 과채의 ‘왕’이다. 역대 문헌을 펴면, 그렇게 쓸만해서 썼음이 여실하다. 한국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 기자 우스다 잔운(1877~1956)은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연중 가장 즐겨 먹고 무섭게 먹어대는 것은 참외이다. (중략) 길을 걸으면서도 먹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먹는다. 참외는 시중 어디서나 판다. 조선인은 여름에 참외로 살아가는 것이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 1629~1714)은 사당에 올릴 여름 제물로 앵두·보리·수박·참외를 손꼽았다.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일찍이 참외(眞瓜)의 ‘참(眞)’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가슴 씻는 시원함, 금빛 속살, 꿀 같은 단맛의 매력을 노래했다. 여름철의 진짜배기란 뜻이다.

다시 ‘참외로맨스’에 따르면 그때는 뚝섬·시흥·과천·송추 골짜기의 참외가 서울로 몰려들었다. 성환·춘천·횡성·양양의 참외, 평양과 가까운 강서의 참외도 좋았다. 압록강을 바라보는 벽동의 참외는 어찌나 맛이 좋은지 그곳 아리랑에는 “시집을 못 가면 나 못 갔지 참외 안 먹고는 못 가겠네” 하는 구절이 있다. 무등산도 참외가 대단해서 “만일 광주의 참외가 좋지 못하다면 김덕령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것보다 더 억울하다”고 했다. 품종도 다양했다. 겉이 얼룩덜룩한 개구리참외, 노란 꾀꼬리참외, 검은 먹통참외, 속 빨간 감참외, 더 빨간 별자감참외, 몸통 긴 술통참외, 배꼽 나온 배꼽참외, 몸통 둥근 수박참외가 시장에 나왔다. 들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노란 쥐방울참외(쥐똥참외)가 자랐다. 사과처럼 달다고 ‘왜사과’로 불린 일본발 새 품종도 유통됐다. 이때에도 서울 사람들은 맛에 앞서 빛깔과 외형 좋은 참외부터 찾았다니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성주는? 섭섭해 마시라. 단성·경산·울산·밀양이 당시 경상도의 참외 산지였다. 오늘날 참외의 주산지로는 성주를 필두로 칠곡·김천·달성·함안·고령을 빼놓을 수 없다. 성주는 유구한 참외 문화사를 이어받아 1950년대 이래 독농가, 농민, 국가가 서로 손잡고 가장 먼저 한반도 참외농사를 갱신한 곳이다. 이제 두 번째 갱신을 볼 수 있을지, 글쓴이는 두근두근 지켜보고 있다. 지속 가능성과 시설농업의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 달라진 음식문화에 발맞춘 다양한 품종 육성에 이르는 과제가 눈앞의 현안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kini.thescre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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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한국의 직업은 1만6891개로 파악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8일 국내 일자리를 집대성해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5판’에 실린 숫자다. 1986년 첫 직업사전에 실린 1만600개보다는 6291개 늘었고, 2012년 4판이 나온 뒤로는 5236개 많아졌다. 34년간 늘어난 직업의 83%가 최근 8년간에 몰려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 등장한 직업은 8년 새 270개이고, 나머지는 ‘관련직업’이거나 기존에 있다가 새로 발굴된 직업들이다. 

신생 직업은 네 묶음으로 분류된다. 4차 산업혁명 속에서 빅데이터전문가, 드론조종사, 블록체인개발자, 크라우드펀딩마케터, 인공지능(AI)엔지니어, 디지털장의사,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 스마트팜컨설턴트가 새로 생겼다.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유품정리사, 애완동물행동교정사, 임신육아출산코치가 등장했다. 삶의 질과 세태가 달라지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모유수유전문가, 공유사무실매니저, 온라인평판관리원, 산림치유지도사, 도시마케터, 범죄피해자상담원, 스포츠심리상담사가 출현했다. 달라진 정부 정책을 따라 탄소배출권거래컨설턴트, 사회적경제활동가, 도시재생코디네이터도 신종 직업에 더해졌다. 

종사자가 없어진 직업은 18개였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영화를 찍으면서 필름영화자막제작자나 필름색보정기사가 사라졌고, TV 디스플레이로 쓰이다 2014년 생산이 중단된 플라즈마영상패널(PDP) 연관 직업들도 빠졌다. 한국엔 없지만 해외에서 주목받은 신종 직업도 있다. 벨기에의 괴롭힘방지조언사, 미국의 약물남용상담사와 수중골프공수색원, 일본의 냄새판별사, 인도의 귀지청소전문가 등이 그것이다. 머잖아 한국 직업사전에도 오를 수 있는 직업들이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1·2·3차 산업혁명이 상용화될 때까지 증기기관은 80년, 전기는 40년, 인터넷은 20년이 걸렸다. AI는 향후 10년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20년대 직업 변천의 폭이 더 커질 것이란 뜻이다. AI시대에 걱정할 것은 명멸하는 직업 종류보다 내리막길로 갈 수 있는 취업자 수이다. 로봇세나 기본소득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움트는 이유다. 코로나19는 그 속도를 앞당기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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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한 28일 오후 경기 부천시 중동 부천시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으려고 거리를 둔 채 길게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다. 신규 확진자가 그제 40명대를 기록한 데 이어 28일엔 79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수위를 다시 높이는 등 방역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한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70명을 넘은 것은 지난달 5일(81명) 이후 53일 만이다. 4월 말부터 2주간 4%였던 감염경로 미확인 확진자는 최근 2주간 7.6%까지 올라갔다. 방역당국이 지난 6일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하면서 스스로 밝혔던 ‘일평균 신규 확진자 50명, 감염경로 미확인 사례 5% 이내’ 기준을 넘어섰다. 감염경로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면 조용하고 빠른 n차 감염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거리 두기 강화를 적극 검토해야 하며, 위험도가 높은 시설에 대해선 특히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증상 확진 비율도 높은 만큼 학생들의 등교도 재고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는 있지만 당장 방역체계 수위를 높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지역 공공시설 운영 중단 등 방역은 강화하되, 생활방역체계와 등교개학 방침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확진자 50명 추세가 일주일 이상 계속될 경우가 거리 두기 강화로 전환될 수 있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인천 학원강사의 경우 최초 확진 판정 이후 19일 만에 7차 전파까지 확인됐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는 지난 23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28일 오전 현재 확진자 80명을 넘겼고 직원과 접촉한 가족·지인들의 확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중구 KB생명 콜센터에서도 사흘 만에 8명이 확진되는 등 곳곳에서 조용한 집단감염이 진행 중이다. 빠른 감염속도를 감안하면 결정의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 

학교 상황도 불안하다. 2차 등교개학 이틀째인 28일 하루 새 277곳이 늘어난 838개교가 등교를 연기하거나 중지했다. 전문가들은 등교 중지 학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달엔 더 많은 학년의 3, 4차 등교개학이 기다리고 있다. 안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유연한 등교대책이 필요하다. 안전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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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0대 전문직 여성 사이에서 인사처럼 묻는 말이 “난자 냉동해놨어?”다.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했더라도 일 때문에 출산을 늦추는 이가 그만큼 많다. 합계출산율 0.92명, 세계 유일 ‘출산율 0명대’ 나라가 대한민국 현주소다. 신생아 수가 줄어들면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빨라진다. 생산인구가 줄어드니 세수가 감소하고, 경제에 활력이 떨어져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는 지난해 5185만1427명을 정점으로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함께 올해부터 연평균 33만명씩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든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세대가 은퇴할 무렵인 206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2.5%까지 늘어난다. 신입사원은 뽑지 않고 간부만 늘어나는 회사와 비슷하다. 부양인구는 느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총 부양비가 증가한다. 생산인구 한 명당 부양인구가 2017년 0.37명에서 2067년 1.27명이니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스웨덴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젊은층이 이민을 떠나고, 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두려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스웨덴 정부는 출산율 감소를 ‘국가 단위의 자살’이라고까지 보았다.

당시 집권했던 사민당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훗날 각각 노벨 경제학상과 평화상을 수상한 뮈르달 부부에게 연구를 맡겼다. 400쪽에 이르는 <인구문제의 위기> 정책 보고서에서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은 저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통계, 이론을 다뤘고 사회학자인 알바 뮈르달은 달라진 여성의 인생관, 사회정책의 제약에 대해 언급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고용안정과 육아 지원 정책을 대책으로 내놨다. 보고서에 있는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열악한 환경에 미래마저 불안한 젊은 부부가 출산을 결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90년 전 스웨덴과 오늘의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930년대부터 스웨덴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스웨덴식 인구위기 해법은 아이를 낳으면 무엇을 주겠다는 식의 인센티브가 아닌 디센티브를 제거하는 방식에 가깝다. ‘얼마를 주면 아이를 낳을까’가 아닌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경력단절의 위협인지, 양육비인지, 혹은 믿을 만한 어린이집이 없어서인지 출산·육아에 디센티브가 될 만한 요소를 줄여 나갔다. 스웨덴 정부는 경력단절 염려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공공어린이집을 확대했으며,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하되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정책을 폈다. 현재 스웨덴 출산율은 1.9명에 이르고 지난 50년간 1.5명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금부터 5년 후인 2025년,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스웨덴은 이미 2014년 65세 인구가 전체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금은 한국이 스웨덴보다 젊은 사회지만 20년 후에는 두 나라의 지위가 역전된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40년 스웨덴은 네 명 중 한 명이, 한국은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다.

스웨덴에는 3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미래위원회가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국가지도자가 수장을 맡는다. 인구문제를 중심으로 노동환경, 에너지 공급, 사회통합, 민주주의, 평등, 가치관, 지속가능발전, 기술변화, 국가경쟁력 등 분야를 망라해 연구하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낸다. 한국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아이를 낳지 않는 첫번째 이유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라는 세대에게 숙제까지 잔뜩 남기고 갈 수는 없지 않나.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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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28일 31주년을 맞았다. 1989년 ‘참교육’을 내걸고 결성된 전교조의 역사는 ‘선생님’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사였다. 노태우 정권은 공안기관을 동원해 전교조 교사 수천명을 구속·징계했지만 전교조는 살아남았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합법화됐다. 하지만 정권의 탄압은 끝나지 않았다. 2013년 10월24일 박근혜 정부는 전체 6만 조합원 중 9명이 해직교사라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전교조 창립 31주년인 이날 정부는 고용노동부 장관 명의로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추진하면서 퇴직교원도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법외노조 통보가 시행령에 근거를 둔 만큼 행정부가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대선 후보 시절 “우선적으로 법외노조 조치를 해결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법 개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사이 전교조가 ‘법외노조’ 굴레를 쓴 지 7년이 다 돼간다.

지난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관들은 행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사법부와 입법부에 떠넘긴다고 꾸짖었다. 이기택 대법관은 “정상적인 정부라면 스스로 법을 해석·집행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 조치가 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 국민이 있으면 사후적으로 사법부 통제를 받는 것”이라며 “현행법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정부 스스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해놓고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게 올바른 태도냐”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합작품인 법외노조 조치는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교조는 여전히 2013년 10월24일의 굴레에 갇혀 있다.”(전교조 31주년 성명) 내년 이맘땐 ‘선생님’도 온전한 ‘노동자’가 돼 있을까.

<정대연 | 정책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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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가 일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 모습. 사건 이틀 뒤인 12일 사진기자가 찾아갔을 때 화장실 변기 위에 커피포트와 전자레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권도현 기자

멸시당하거나 위험하거나 고단한 노동은 늘 우리 주위에 있다.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컨베이어 벨트에 머리가 끼여 사망한 삼표시멘트 노동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돌연사한 광주의 택배 노동자. 이런 노동은 늘 있지만, 이 노동자들이 처한 곤경은 또 늘 무시된다. 화장실 변기 바로 위 선반에 전자레인지와 주전자를 두는 노동환경은 우리의 추모식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100층짜리 집이라고 가정하자. 각 층에 인구의 1%를 거주시키되 1층에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을, 층이 높아질수록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식으로 거주시킨다. 9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을 5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부유한 사람이 얼마나 부유한가를, 5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을 10층 최고 소득자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한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이 두 개의 지표를 계산하면 한국은, 전자는 8위이고 후자는 1위이다. 즉 한국은 OECD 국가 중 부자에게 경제력이 집중된 정도도 높은 편이지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정도는 가장 심하다.

부유한 사람이 매우 부유할 때, 정의 문제가 발생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특별히 더 잘난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부유한가를 우리는 문제 삼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매우 가난할 때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 가난은 멸시와 위험과 고단함이 지나친 반인권적 노동을 거부할 수 없게 한다. 정의보다는 인권, 또는 기본권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사람에게 기본권이 절실한 것은 사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기본권이 필요하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동물도 기본권이 필요하다. 지금 농장 또는 실험실에 2억마리의 동물이 있다. 가난한 사람이 지상 저층민이라면 그 고통의 정도에 의해 이들은 지하층민이다. 이들의 고통이 당연하지 않음을 ‘새벽이(동물권단체가 구조한 아기 돼지)’가 보여준다. 지하층민에게도 기본권은 절실한 문제이다.

동물보호 활동이나 동물해방 운동을 두고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이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월 OECD가 발표한 구매력평가(PPP)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1001달러(2017년 기준, 약 4890만원)를 기록했다. 중위소득 60% 이하 소득자를 빈곤계층으로 본다면 한국 국민의 77%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다. 저층민이 먹고살기 힘든 것은 지하층민을 돕기 때문이 아니라 77%의 사람이 저층과 지하층에 있는 존재의 고통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저층민과 지하층민은 정치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사회구조와 충돌하는 일이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복음).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65%나 되는 상황에서 충돌과 분열을 일으킬 정부·여당은 없다. 그렇다면 저층민과 지하층민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반영되어야 할까? 저층민을 반영하고자 하는 정당은 있다. 지하층민을 반영하고자 하는 정당은 곧 나타날 듯하다. 두 정당은 각각 인권과 동물권이라는 기본권을 정말로 실현하고자 한다. 이들의 헌신을 토대로 정의와 녹색을 비롯한 다양한 진보적 정치관을 가진 세력이 힘을 얻는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에서 이 길이 유일한지, 최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볼 만한 길이다.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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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 담장에 운영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지난달 8일 이후 49일 만인 27일 다시 40명대로 치솟았다. 온라인쇼핑 사이트인 쿠팡의 경기 부천시 물류센터 관련 확진자가 이날 밤까지 60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해당 물류센터는 첫 확진자 발생 후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평소 노동환경도 감염에 취약해 피해를 키웠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조용하게 진행되던 코로나19 확산이 쿠팡이라는 온상을 만나 폭발한 셈이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재확산 고리를 신속하게 차단해 추가 확산을 막아야 한다. 

쿠팡의 집단감염 사태는 안이한 작업장 관리가 초래한 결과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물류센터의 ‘지표 환자’(초발 환자) ㄱ씨가 지난 9일 이태원 클럽 관련 감염지인 부천의 뷔페를 방문한 이후 지난 13일 첫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했다. ㄱ씨는 지난 12일과 13일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고, 23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직원들에 따르면 작업장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수천명이 일하는 곳인데 엘리베이터는 두 대뿐이고, 100여명이 붙어 앉아 식사를 하고, 회사 제공 방한복도 돌려 입는 등 작업환경이 감염에 취약했다고 한다. 미흡한 사후 대응도 피해를 키웠다. 회사는 직원들의 빗발치는 문의에 확진자 동선 등을 알리기는커녕 업무를 강행한 뒤 25일 저녁에야 센터 폐쇄 결정을 내렸다. 

한국이 사재기 없이 코로나19 위기를 질서 있게 넘긴 이유 중 하나로 원활한 택배 덕분이란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총알배송, 로켓배송의 이면에 방역 취약 지대에서 일하는 배송기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생활방역 5대 행동수칙 중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이다. 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한 코로나19 방역상의 허점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택배 주문이 몰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들이 과로사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택배사 등 직장에서 방역수칙을 지키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물류센터 사태로 부천시는 다시 거리 두기 체제로 복귀했다. 고3을 제외한 모든 학년의 등교수업이 당분간 연기됐다. 물류센터 접촉자 최소 4000여명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약한 고리에서 소규모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사회 전체가 멈추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27일엔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2차 등교개학까지 이뤄지며 지역사회 감염 확산의 위험요소가 더욱 높아졌다. 물류센터 감염에 총력 대응함으로써 쿠팡 같은 또 다른 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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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행진곡이다. 역사를 전진하게 하고 그 자신도 거듭나는 노래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된 정재일 편곡 버전을, 훗날 고전이 될 작품의 초연 현장에 있는 기분으로 들었다. 원곡의 멜로디를 장조로 바꿔 부른 에필로그 파트에서 정훈희의 목소리로 박창학의 가사가 노래될 때는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탁월한 예술가들 덕분에 새삼 이 노래에 대해 생각했다. 한자어 ‘존재’가 ‘있는 자’이면서 ‘있음’ 자체이기도 하듯이, 우리말 ‘임’도 ‘있는 자’로서의 ‘당신’을 뜻하면서 ‘~이다’의 명사형인 ‘임(있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당신’을 위한 것이자 ‘있음’에 대한 것이기도 하리라. ‘어떻게 있을(살) 것인가’에 관한 노래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노래는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1982년 2월20일)을 기리기 위해 그로부터 몇 달 후 제작된 노래극 <넋풀이>의 마지막 곡이다. 함께 이승을 떠나는 두 영혼이 산 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의 ‘가나니’가 구전 과정에서 ‘나가니’로 바뀌었다. 한 논문이 지적한 대로 이 변화는 “노래의 주체 변화”를 가져왔다(정근식, ‘임을 위한 행진곡-1980년대 비판적 감성의 대전환’). 이제 이 곡은 ‘가는 자’를 보내며 투쟁의 길로 ‘나가는 자’의 노래,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이들에게 “산 자여 따르라”라고 호소하는 노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세 개의 ‘임(있음)’의 형식이 여기에 담겼다. 가는 자(죽는 자), 나가는 자(싸우는 자), 산 자(따르는 자).

첫째, 가는 자의 삶의 형식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다. 사랑이 사적 영역에서 추구될 만한 행복이라면, 명예는 공적 영역에서의 성공일 것이다. 둘 다 포기했으면 됐지, (명예에 이미 포함돼 있는) 이름은 왜 또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의 완전한 말소까지 각오하겠다는 뜻이었겠으나 이 구절은 훗날 기괴한 방식으로 실현된 예언이기도 했다. 5월의 현장에 있었던 평범한 시민들이 2015년 이후 제 이름 대신 북한군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광수’라고 불리는 일도 생겼으니까 말이다. 다른 층위의 사례지만, 19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목숨을 걸고 마지막 마이크를 잡았던 박영순씨도 명예는커녕 오해와 낙인을 피하기 위해 본명을 감춘 채 살아온 터다. 

둘째, 나가는 자의 삶의 형식은 두 구절에 분산돼 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나부끼는 깃발 앞은 죽음의 앞이고 내 죽음의 가능성도 지척에 있다. ‘흔들리지 말자’고 말해야만 했던 것은 모두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산천은 역사의 준엄함이고, 역사는 사실의 두려움이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질문이자 압력이 된다. 이때의 깨어남이란 그 질문과 압력을 외면할 수 없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요컨대 저 두 구절에서 나가는(싸우는) 자의 주체성은 흔들림과 깨어남의 반복이다. 수시로 흔들리면서도 매번 깨어나야 하는 삶,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있다.

셋째, 산 자의 삶의 형식은 마지막 구절이 알려준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는 ‘따르는’ 자다.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자극한 구절이고, 따라 부를 때마다 ‘싸우는 자’를 ‘따르는 자’라도 되자고 자신을 다그쳐야만 했으리라. 40년이 지난 이제 ‘산 자’들이 따라야 할 것은 새삼 진실이다. 40년 전 광주의 진실과 그 가치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있다. 아는 자는 기억함으로써 살리는 자가 되고, 모르는 자는 왜곡함으로써 죽이는 자가 된다. 광주를 죽이는 자들이 괴물(사이코패스)인지 환자(망상증)인지 나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의 창궐을 막아내는 것이 산 자들의 책무라는 것이다.  

5월 광주에서의 자신을 증언하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누구라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자신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는 말. 제 허물을 용서하기 위해 인간 전체를 용서해버리는 사람도 많은데, 그분들은 자신이 도달한 숭고함을 인간성 그 자체에 헌정하고 있었다. 많은 학자들의 말대로 ‘오월 공동체’는 개별성에서 연대성으로 도약하는 인간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죽고 싸우고 따르는, 그런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지고한 경지 하나를 재현하는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國歌)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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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19라는 유례가 없던 큰 위기에 잠시 가려 있지만 미세먼지는 인류 건강에 큰 위협이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크기가 10㎛(1㎛는 1000분의 1㎜)보다 작은 물질을 PM10(PM은 particulate matter의 약자)이라 한다. 워낙 크기가 작아 우리 호흡통로에서 잘 걸러지지 않고 호흡기 깊숙이 침투해 호흡기질환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뇌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PM10 중에서도 2.5㎛ 이하의 PM2.5는 초미세먼지로 불리며 폐의 더 깊은 부분까지 침투해 우리 건강에 더욱 위협적이다. 

정부는 2020~2024년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을 확정하고 2016년 대비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를 1㎥당 26㎍에서 16㎍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2019년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당 23㎍으로 줄어든 것은 긍정적이지만 16㎍이나 그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사전예방정책으로 수송 분야에서는 노후 경유차 감축과 저공해차 보급 확대, 발전 분야에서는 노후 석탄발전소 폐지 등이 추진되어 왔다. 산업 생산시설, 선박과 항만 관련 시설에서의 미세먼지 발생 저감, 농업·산림 분야에서의 미세먼지 발생 저감 등도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장작이나 화목보일러, 농업 잔여물을 태우는 것뿐 아니라 최근 크게 발생했던 산불 등도 미세먼지 발생의 큰 요인이므로 방지대책이 필요하다. 

미세먼지는 발전소·산업 생산시설·폐기물 처리시설 등 고정된 장소와 자동차·비행기·선박 등 이동체의 연소시스템 사용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탄소화합물과 금속 등 1차 미세먼지, 그리고 가스 상태로 나온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휘발성 유기화합물, 암모니아 등이 대기 중에서 반응 등을 거쳐 입자화되어 만들어지는 2차 미세먼지가 있다. 

이들 중 질소산화물은 고온의 연소 과정, 황산화물은 화석연료의 연소 과정,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연소 과정 및 산업 공정 등 다양한 곳, 암모니아는 비료 등의 사용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화석연료 등의 사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미세먼지 저감과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한 해결책이며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확대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도 전기가 어디서 생산되는지 잘 봐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전기의 3분의 2는 석탄, 가스, 원유 등 화석연료로 만드는데, 친환경 전기차에 공급되는 전기가 화석연료나 우드펠릿 등 목재를 태워 얻은 것이라면 오히려 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술 개발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생산단가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전 세계 평균적으로는 태양광발전의 경우 MWh(MWh는 100만Wh)당 생산단가가 2010년 약 350달러였던 것이 2018년 80달러로 많이 낮아졌으며, 올해는 60달러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송수단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문제뿐만 아니라 지난 5월3일 418.12PPM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말해주듯이 온실가스 저감도 시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은 바이오 기반 친환경 화학산업으로의 재편을 통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이 가능하다. 

미세먼지의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생성기작을 파악하고 관측체계를 도입해 발생 현황 파악뿐 아니라 발생 예측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정형 미세먼지 센서에 더하여 이동식 센서들을 도입하면 우리 전 국토의 미세먼지 발생 현황 및 요인을 보다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집 등 건물 내부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는 것을 감안해 건물 내부와 외부를 나누어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도 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오염 발생 원인 장소에서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기술들도 다수 개발되고 있다. 질소산화물은 선택적 촉매환원 반응을 통해 제거할 수 있는데, 문제는 같이 존재하는 황산화물과 반응해 만들어지는 황산암모늄이 촉매의 활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황산화물을 먼저 제거한 후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게 된다. 중공사막 등의 고면적 접촉시스템을 이용한 액상흡수제와의 접촉을 통해 황산화물을 제거할 수 있다. 

이미 발생해 우리 대기를 뿌옇게 만든 1차 및 2차 미세먼지들은 제거 방법이 마땅치 않다. 우리 집 안과 건물 내에서 가동하는 공기청정기와 같은 개념을 열린 넓은 공간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씻어 내리는 기술도 시도되고 있는데, 지구의 기후환경 차원에서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기는 전 지구 차원에서 순환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저감과 제거를 위한 외교적 노력과 과학기술 협업이 필수적이다. 

결국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미세먼지 발생 원인 자체를 줄이고, 생산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때는 발생원에서 바로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소비 생활방식을 미세먼지 저감의 방향으로 바꿔나가며,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신기술의 개발·적용이 필요하다. 전 지구인이 공동으로 노력하면 자연 대기순환 시스템 자체로도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해롭지 않은 수준까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leesy@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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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주문한 탕수육 배달을 위해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은 홀 손님과 밀린 주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바쁜 배달기사를 붙잡아두는 게 미안했던지 사장님은 튀기고 있던 탕수육 한 조각을 빼서 달콤한 소스를 쓱쓱 묻히고는 내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따뜻한 참사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라이더를 챙기는 아름다운 마음,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 뱉었을 때의 어색한 상황 등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뒤섞였다. 

지난해 가을, 살처분 영상을 본 게 화근이었다. 산 채로 포클레인에 들려 구덩이로 던져지는 돼지들과 살기 위해 흙을 파고 올라온 돼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즈음 동물해방운동단체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를 알았다. DxE에 따르면, 돼지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힌다. 인간들이 싫어하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다. 돼지와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육장에 갇힌 채 자라서 수개월 만에 도살당한다. 수컷 병아리는 그 짧은 삶도 살지 못하고,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온몸이 찢긴다. 

공장식 축산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학살을 보니, 내가 사는 세상이 달리 보였다. 삼겹살이 아니라 돼지의 살점이, 쇠고기가 아니라 소의 몸과 창자가 부위별로 찢겨 도시의 구석구석에 걸려 있었다. 채식은 자신이 없었고, 눈에 보이는 고기라도 먹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어설프고 위선적인 채식이라도 막상 실천하려니 쉽지 않았다. 

김밥집에 가서 햄을 빼달라고 하면, 보란 듯이 햄이 나온다. 게임을 하듯 햄을 일일이 빼내는데 어른들이 보기라도 하면 깨작깨작 먹는다고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하다. 단체 회식은 보통 고깃집으로 가는데,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기 힘들다. 고기 없는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마침 연장자와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몸에 밴 습관처럼 고깃덩이를 굽다가 현타가 와서 집게를 놓고 말았다. 버릇없어 보이더라도 사장님을 불러 공깃밥과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된장찌개를 시켜 홀로 먹었다. 모든 순간이 투쟁과 불편함의 연속이다. 

과거에 개인적 실천은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뭐라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응원은 못할망정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 취급을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환경을 위해 열심히 싸운 것도 아닌데, 지구가 들었다면 혀를 끌끌 찼을 것 같다. 막상 해보니 데모보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게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변화도 있다.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은 쇠고깃국을 먹지 않자 따로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40~50대 남성들이 주축인 조합원들은 위원장이 고기를 먹지 않자 백반집과 해산물집을 찾는다. 위계에 따른 갑질인지 모르겠으나, 기분 좋은 변화다. 

동물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분쇄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휴대폰을 만들다 시력을 잃은 청년이 있는가 하면, 배를 만들다, 아파트를 짓다, 배달하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는다.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우리가 이용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보인다면 우리는 맨 정신으로 소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삼겹살집 간판에 웃음 짓는 돼지가 있듯, 산재 기업의 광고에 웃음 짓는 연예인이 있다. 

DxE는 돼지 한 마리를 구조하고 새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새벽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진흙에서 행복하게 뒹구는 새벽이를 보면서 족발을 떠올리긴 힘들다.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동물을 구조해, 그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생추어리’라 한다. 생추어리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공장과 일터에서 동물과 사람이 죽고 감염병에 걸리는 이유는 같다. 우리 사회 곳곳에 생추어리가 건설될 수 있도록 불편함의 연대, 비용의 연대가 필요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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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 중에 제일 동냥이 귀동냥이야. 옛사람들은 책도 드물고 인터넷이 아예 없던 시절, 귀동냥으로 공부들을 했어. 당신이 시방 하는 말도 귀동냥으로 배운 거고, 나도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걸로 보통 ‘썰’을 풀고 댕긴다네. 말을 재밌게 하려면 귀동냥을 잘해야 한다. 가끔 어디라도 배움이 있으면 앉아 있곤 하는데, 조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재미가 없으면 요샌 자동으로 눈이 감긴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한 청년이 꾸벅꾸벅 졸더란다. 곁에 있던 할머니에게 깨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 왈 “재우기는 자기가 재워놓고 날더러 깨우라고 그라시요잉.” 투덜댔다던가. 청중이 졸지 않도록 말을 재미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시골에선 사투리를 보통 듣고 살아가는데, 전라도 오지 섬보다 광주 시민들이 훨씬 억양이 세고 진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젊은이들이 말줄임표 신조어까지 동원하여 사투리를 사용하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애들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산골로 돌아와 전화상으로 실습도 해본다.

“휘적휘적 사라지던 뒷모습만큼이나 앞모습도 보기 꽤 괜찮았고 잘생긴 얼굴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사투리가 더 매력이었어. 나는 그때 이미 사투리가 오히려 어색하게 들렸는데, 근이는 전혀 고치지 않았어. 그 후의 직업 선택을 생각하면 근이야말로 사투리를 일찍 고쳤어야 했는데 말이지. 근이는 뭘 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어.” 정세랑의 소설 &lt;효진&gt;에 나오는 풍경이다. 근이처럼 말투를 고치지 못하고 나도 살아간다. 그래도 재밌는 말, 살아 숨 쉬는 말은 가슴을 트이게 만든다. 귀에 시멘트를 바르고, 혀가 보도블록처럼 굳어 도통 소통하지 않으면 암만 좋은 뜻이라도 다음 세대로까지 귀한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점잖은 말, 에둘러 하는 말, 기름칠한 말잔치. 아니면 악다구니를 쓰고 버럭버럭 화내는 말들. 따지고 캐고 쪼고 쥐 잡듯 쫓으며 괴롭히는 말잔치. 자연스럽게 삶과 생각을 풀어내는 친구랑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귀동냥도 맘껏 하고파라.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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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 거리에 퓨마,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앞 코요테,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에는 자칼 떼….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나온 외신 사진들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지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산업활동 제약 덕에 대기도 맑아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약 300만년 전 살았다는 인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후손들이 77억명이나 지구를 뒤덮었다. 남극, 북극, 적도, 사막, 밀림, 고산지대 가릴 것 없이 점령한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위대한 인류”라고 자화자찬해야 할까. 그 대가는 신종 바이러스의 잇단 출현이다. 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면 잠자던 고대 바이러스까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자본주의는 결국 태생적 특성인 과잉생산·과소소비 때문에 파국을 맞을 것이라들 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자본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마구 찍어내고 대충 쓰다 버린다. 지구엔 생채기가 났다. 

잡식동물 인간은 과도한 육식을 즐긴다. 주위에도 1주일에 며칠씩 고기를 굽는 이들이 있다. 이미 기름진 배에 고기를 더 대느라 아마존 등지의 나무는 베어져 사료용 초지나 목장으로 전락한다. 축산분뇨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은 더 늘었다. 본능 탓에 육식을 금할 수 없다면 이제 대체육이나 인공육 같은 신기술 발전이 절실하다. 이미 인공육은 서구에선 화두로 떠올랐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는 비교우위론으로 국제교역의 이점을 설파했다. 그러나 이런 교역이 자연을 파괴하고 과잉 분업체제를 양산한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지역에서 최대한 자체 조달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같은 지나친 보호주의는 경계해야겠지만,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은 배울 점들이 있다.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해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철책 너머 북녘에 기회의 장이 열릴 수 있다.

기존 질서가 해체, 재정립되는 세상이 다가온다. 더 줄이고 흩어져야 한다. 흑사병으로 불린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한 17세기. 어떤 지역은 인구의 4분의 3까지 사망했다고 추산된다. 그 여파는 중세질서의 붕괴로 르네상스를 불렀다.

우리에게 친숙한 아이작 뉴턴(1642~1727)의 ‘만유인력 법칙의 사과’도 페스트 아래 등장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다니던 뉴턴은 1665~1666년 고향인 잉글랜드 링컨셔주 울즈소프에 내려가야 했다. 페스트로 학교가 문을 닫아서다.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에서 그의 주요 발견이 고향에 머물 때 나왔단다. 요즘 같았으면 온라인 강의를 받느라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테다. 21세기 인류에게도 ‘정신적 낙향’이 필요해 보인다. 한 발자국 물러선 가운데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아이디어가 싹틀 것이다.

요즘 세간에는 이런 말들이 나돈다. ‘거주불능 지구’ ‘최후의 인류’ ‘22세기는 없다’ 등이다. 인류의 미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집 앞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있다.

<전병역 산업부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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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내가 지나는 출근길 옆의 카페는 꽤 이른 시각부터 문을 연다. 카페 바깥 테이블에는 거의 매일 그 시간에 앉아 책을 읽는 손님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서양 노인인지라 매번 눈길이 가곤 했다. 쌀쌀하거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눈비만 내리지 않으면 늘 그를 볼 수 있었다. 은퇴한 교수일까? 사제? 아니면 선교사? 괜한 호기심으로 한번은 그가 읽는 두꺼운 책의 제목을 눈여겨보고 검색을 한 적도 있다. 지도로 보는 서양사에 관한 책이었는데, 이미 번역 출간된 책이라 출판인으로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노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아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아픈 걸까? 혹시 본국으로 돌아가셨나? 먼 이국땅에서 노년을 보내던 그는 누구이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회사 근처에는 내가 이틀에 한번쯤은 꼭 들르는 편의점이 있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점원으로 일하는데, 음료수와 담배 등속을 사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곤 한다. 한번은 근처의 다른 편의점에 들렀다가 또 그를 마주쳤다. “여기서도 일하세요?” 하는 물음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저쪽 편의점은 우리 언니예요. 둘이 비슷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며칠 후 그 편의점에서 “저쪽 편의점 언니는 잘 지내죠?” 하고 인사 삼아 물었더니, 그가 막 웃으며 답하는 것이었다. “제가 언니예요. 둘이 바꿔서 일할 때도 많아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하며 돌아서는 내 뒤에 “하하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출근길에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아파트 단지의 입구 동에서 일하는 경비원인데, 볼 때마다 늘 내게 인사를 건넨다. 멀리 떨어진 동이라 얼굴을 잘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청소를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안녕하세요!” 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한다. 우리 동의 경비원도 잘 모르는데, 그분의 이름이며 나이를 알 턱이 없다. 엉겁결에 꾸벅 답례를 하고 지나치지만 아침마다 기분이 활짝 갠다.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의 거리공원 정류장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 첫차가 달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고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남긴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라는 연설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이 버스의 진풍경을 소개하면서, 그 버스에는 매일 5시 반까지 강남에 가서 빌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탄다고 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은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으로 불릴 뿐 투명인간과도 같다고 했다. 누가 그 빌딩을 청소하고 유지하는지 아무도 의식하지 않으며, 존재하되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사람들.

12일 오전 이틀 전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한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에 그가 작성한 근무일지가 놓여있다. 권도현 기자

얼마 전 있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아직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 경비원으로 경험한 일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으로 써낸 조정진씨는 TV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갑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갑질’이라는 말은 결국 사건의 원인을, 한 아파트 입주자의 개인적이자 인격적인 일탈로 돌리는 데 그친다는 얘기였다. 경비원의 죽음 뒤에는 그런 일탈이 가능하도록 방조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용역업체, 입주자대표회의가 있고, 무엇보다 분리수거가 엉망이고 화단이 지저분하다고 쉽게 짜증을 토하는 나 같은 입주자들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새삼 분노를 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가 상실하고 있는 어떤 ‘감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 인간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필요한 법인데,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거의 잊고 산다. 

당신은 주변의 누구를 기억하는가? 나의 평온하고 편리하고 깨끗한 일상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감각을 이미 잃은 게 아닌지, 나는 그게 두려울 뿐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heegone@aprilbook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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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에 관한 기사가 폭주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혐의가 확실한’ 윤 당선인과 여당 공격에 여념이 없고, 범진보 세력은 “보수의 준동”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그들의 대립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이다. 여당은 “마녀사냥, 윤씨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말하면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야당과 보수 언론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타깃’이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주장은 “정대협 비판은 일본 우익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말이다. 이번 사안은 철저히 진보 진영 ‘내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다. 

한편 여당과 어쩌면 정의연 지도부까지도,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 사안을 윤 당선인 개인의 비리로 축소하여 자신들과 선을 긋고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피해자와 희생양은 다른 개념이지만, 둘 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동원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역할’은 같다. 여야 모두 이번 사태를 ‘개인의 돈 문제’로 국한하려는 이유다. 거듭 말하건대, 젠더 체제를 기반으로 한 한·일관계의 모순이 집약된 군 위안부 운동의 난제는, “회계 부실”이 아니다. 돈 문제는 드러나기 쉽다. 이번 사태에서 ‘돈’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끝자락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상황을 집약한 말이, “터질 것이 터졌다”이다. 지난 월요일 이용수님의 2차 기자회견 내용대로 ‘돈’ 문제는 검찰이 맡으면 된다. 

1990년대 초반, 열악했던 활동 시기를 거쳐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까지 군 위안부 운동은 피해 당사자, 여성운동가의 노력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의제화한 모범국이었고,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15년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쌍방 간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불가역적 합의’ 이후부터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와 더불어 전후 피해에 대한 한국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식민지 희생자인 ‘군 위안부’의 수치심과 고통을 극복하고 국가의 자존감을 찾자는 의식이 고양되었다. 일명, 젊은 보수 ‘태극기 세대’의 부대가 등장했고, 한편에서는 반일을 넘어 극일을 하자는 쿨한 신민족주의자들이 진보를 자처했다. 이러한 기류는 대중화된 군 위안부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위안부 소재 영화의 선택적 흥행, 전국적인 소녀상 건립 운동 등이 그것이다. 소녀상 건립과 지킴이 운동에는 입시 스펙을 쌓으려는 학생, 학부모도 동참했다. 

군 위안부 의제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지만, 정작 정부는 이 사안을 자신의 의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는 비정부기구(NGO)가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많은 NGO들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탄압을 받아가며 대신해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군 위안부 운동의 국제화, 일본 진보 세력과의 네트워크, 할머니들의 생계와 복지, 장례까지 이 문제를 도맡아온 정대협의 위상은 높아졌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문제’가 ‘남성이 다루어야 할 큰 정치’로 이동하면 돈과 사람, 자원이 모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전에는 여성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각 분야의 남성 연구자들이 몰려들었고 ‘자리’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운동으로서 군 위안부 운동의 변질은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겠다. 

앞서 말한 대로 돈 문제는 검경이, 비리 보도는 언론이 할 일이다. 다만, 나는 정대협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훌륭한 할머니’와 ‘그렇지 않은 할머니’로 구분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에게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분들의 생애가 가슴 아프다. 

운동 초기와는 달리, ‘대중화’ 이후 군 위안부 운동은 후퇴했다. 그 결정적 장면은 윤 당선인의 선거 포스터 구호 “총선은 한·일전이다”처럼, 국가주의 프레임을 여성운동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용수님의 핵심적 문제제기라 생각한다. 이번 일이 단순 횡령 사건을 넘어, 피해자가 진영의 필요에 따라 희생양이나 ‘간판’이 되는 사회운동 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이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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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로만 여겼다. 쓰레기봉지로 만든 방호복 말이다. 지난해 여름 재난탈출액션을 표방하며 개봉한 <엑시트>에서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하기 위해 주인공 조정석과 임윤아는 쓰레기봉지로 온몸을 싸맸다. 영화에서 코믹적 요소였을 ‘쓰레기봉지 방호복’이 현실에서, 그것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코로나19에 맞서는 의료진의 동아줄이 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미국에서는 방호복이 없어 쓰레기봉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던 간호사가 사망하기도 했다.

근대 이후 줄곧 선망의 대상이던 선진국들이 코로나19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등 한국의 방역 모델을 외신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한국의 프로야구가 미국 TV에 생중계되고, 국내 기업의 진단키트가 120여개국에 수출된다는 뉴스도 나왔다.

그렇게 ‘코로나발(發) 국뽕’ 분위기가 달아오를 즈음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가 터졌다. 38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죽었다. 후진적 사고의 전형이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안전수칙은 무시됐고, 값싸다는 이유로 사고에 취약한 건설자재를 사용했다. 2008년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창고 사고와 판박이였다. 희생자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적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과거와 비교해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민주당은 덩치 커진 것 빼고는

코로나 이전과 대동소이하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에 가려졌던 한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우리의 현실은 과거와 비교해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사람보다는 이윤이 먼저였다. 아파트 경비원은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돈도 힘도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또 잊혀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김광규 시 ‘안개의 나라’ 중)

비극은 우리 가까이서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었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에도 일자리는 줄어들고 성장동력은 약해졌다. 소득계층 간 불평등은 심해졌고, 집값은 미친 듯이 뛰었다. 코로나19는 그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임시·일용직이 많은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는 올해 1~3월 유일하게 소득이 감소한 계층이다.

고단하고 궁색한 현실이지만 민주당은 지난 4·15 총선에서 177석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시민들이 ‘극난 극복’을 앞세운 여당에 힘을 모아준 것이다. 여기에는 해외에서 호평받은 코로나19 방역 활동이 기반이 됐다. 실제로 총선을 앞두고서도 정부가 투명한 방역 활동을 뚜벅뚜벅 수행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총선 후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민심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덩치가 커진 것 빼고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대동소이하다. 승리의 나팔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오거돈 부산시장은 집무실에서 직원을 성추행해 ‘사퇴당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게 불과 2년 전이다. 후보자를 공천할 때 ‘실거주용 1주택 보유’라는 자격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에서는 4년 만에 재산이 44억원 늘어난 비례대표 후보자의 부동산실명제 위반과 명의신탁 의혹을 검증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회계처리 부실, 힐링센터 고가 매입 등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도 민주당은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두 번씩이나 열어 문제를 제기했어도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내 숙제를 남이 해주길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도적으로는 어떤가. 2016년 서울 ‘구의역 참사’,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에도 ‘2인1조 근무’는 정착되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이 같은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12·16 부동산 대책’의 핵심인 종합부동산세 강화는 여전히 입법화하지 못했다.

위에서 인용한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민주당은 시민과 여론을 경청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미뤄졌던 과제들을 매듭짓는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안개를 몰아내줄 것으로 기대한 거대여당이 벌써부터 제대로 듣지 못할까 우려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박재현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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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부터 농업·농촌 공익직불제(공익직불제)가 시작되어 지급 대상자들의 신청을 받고 있다. 공익직불제 시행까지 찬·반 논란이 많았으나 결국 시행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공익직불제 시행이 시대적으로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공익직불제는 농업·농촌정책을 생산 중심에서 생활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농산물 생산을 중요시하는 농업정책은 농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농산물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지만 생산과잉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규모가 큰 생산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가 있다. 반면 농촌의 공익적 가치 창출 기능은 농촌의 환경, 생태계, 문화, 그리고 식품안전 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농촌 고령화와 귀농·귀촌인의 증가는 농촌생활 환경 개선에 대한 수요를 확장시켰다.

둘째, 공익직불제는 정부와 시장의 경계선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농업정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정부는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 농산물 시장에 개입해왔는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테두리 안에서는 농가의 공공재 가치 창출을 지원하는 것이 시장개입보다 더욱 폭넓은 소득 향상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 쌀을 예로 들자면 정부는 쌀 농가를 위해 쌀 가격의 유지에 힘써왔는데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이 1.5㎏씩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WTO의 제약조건을 벗어나지 않고 쌀 가격을 지키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 이번에 공익직불제를 실시하여 직불제 혜택을 밭작물에도 확대하여 받을 수 있게 한 것은 그간 쌀 직불제에 의해 유발되던 농업인들의 쌀 생산 동기를 다른 작물로 유도함으로써 한계에 도달한 쌀 정책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농산물의 생산 동기가 시장에서 결정되게 함으로써 시장의 가격 안정 기능이 최대로 발휘되도록 하는 한편 본래의 기능인 공익적 기능 함양에 집중한다면 정부는 더욱 미래지향적인 농정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익직불제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직접적 이익을 농업·농촌인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첫째, 기존에 수령하던 다양한 직불금보다 수령액이 감소하지 않도록 지불액이 조정됐고, 밭작물 농가와 소규모 농가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둘째, 쌀 농가의 경우는 매년 불확실하게 수령하던 변동직불금의 평균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확실하게 고정적으로 수령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공익직불제는 그 가치와 양을 측정하기 어려운 공공재를 창출하는 대가로 농업·농촌인에게 직불금을 지불하는 것이므로 쉬운 정책이 아니다. 농업·농촌인들과 정부 간 신뢰가 없으면 작동하기 어렵다. 신뢰받는 정책은 정보와 경험의 축적으로 얻어진다. 유럽의 공익직불제도 정착 과정에서 수십년의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공익직불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농업·농촌인들 모두 당장의 이익이나 성과를 추구하기보다 차분하게 정보와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태호 |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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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의 작품을 읽은 글쓰기 선생님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물으셨고, 나는 인정했다. 사실은 그냥 분노 때문에 썼다고.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분노의 추동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다크 포스를 잘 다스리지 않으면 다스베이더가 된다고 하셨다. 분노 없이, 냉정하게, 쓰려고 하는 이야기를 명확히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를 돌아보니 딱히 이유도 없이 내내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 화가 그대로 글쓰기에 투영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고 한 친구가 감사일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감사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감사일기를 몇 달 쓰고나서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고 친구는 덧붙였다.

쓴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 일단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는데 하루에 5분 정도 투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쉽고 간단할 줄 알았는데, 쓰려고 보니 감사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음이 꼬여 있어감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예컨대 이런 식. “버스기사님이 승객들이 모두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과속도 안 하시고 안전운행하신 덕분에 지각해 감사하다.” “짜장 곱빼기를 시켰는데 그냥 짜장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 덕분에 적게 먹어 다이어트가 되어 감사하다.”

쓰면 쓸수록 더 화가 나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썼다. 쓰다보니 꼬인 마음이 점점 풀어지고 단순하게 감사한 일에 감사하다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었다.

2020년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화를 안 내기가 쉽지 않지만, 분노를 잘 조절하여 화낼 필요 없는 일에는 화내지 않고, 그 화를 잘 모아놓았다가 필요한 때에 적절히 분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칼럼 마감을 앞두고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감사일기 덕분에 칼럼 마감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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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어느덧 2개월째다. 몸은 강의실에 모여 있되 마음은 스마트폰 속 관계와 정보에 연연하는 학생들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은 자연스레 잊혔다. 몸은 흩어져 있지만 마음이 한곳에 집중하고 있는 반대 상황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평소 몸에 새겨지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교육자의 입장에서 접촉의 인간관계가 접속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 흐름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그 부분 또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화상수업의 긍정적 측면은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각자와 동등한 거리에서 만난다는 점이다. 앞줄을 텅 비워 놓고 중간쯤부터 앉는 학생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과제로 수행한 각자의 시각적 결과물을 누구나 자기 코앞에서 자세히 볼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대면 방식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문화예술교육계는 비대면 사회의 장기화로 인해 급하게 부여된 미션을 수행하느라 분주하다. 예산지원 사업의 조건이 달라지고, 관련 주체들의 자발적 시도들이 매우 활발하다. 특히 예술(학)계에선 저작권을 포기하고 온라인 전시, 공연을 선보이며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기회로 삼고 있으며, 나아가 온라인 콘텐츠이기에 가능한 고유의 가치와 지향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예기치 않게 잠시 멈춘 이 재난의 시기는 그간 쉼 없이 현장 중심으로 달려오면서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삶과 예술과 기술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실용적인 사유를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일상 속에서 넓게 활용되면서 육안으로 보는 세상보다 디지털 기술을 거쳐 접하는 세상이 더 스펙터클하고, 생생해 보이는 등 우리의 경험을 구성하는 통로들은 이미 많이 변해 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 또한 기존의 소통과 경험의 방식을 넘어서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앞으로는 몸이 직접 겪는 경험의 양보다 간접적 모의경험이 훨씬 많아질 것이기에, 이런 경험 방식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몸을 부딪치는 삶의 문제보다 정보기술 환경에서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년 5월 넷째 주는 201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한국이 제안해 세계에 선포되면서 시작된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다.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교육자와 관계자들이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삶에 대한 논의와 체험을 나누는 주간이다. 물론 올해는 지난해까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온라인에 접속해서 문화예술교육 현황과 미래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삶에 대한 관점과 철학이 필요해졌다. 삶에 대한 사유의 폭을 인간과 인간관계를 넘어서 인간과 기술, 인간과 생태로 확장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계의 모든 실행가, 전문가, 정책가들이 모여 고민해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정원철 | 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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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자 이 코너에 ‘코로나19 사태의 다섯 가지 사회적 코드’라는 칼럼을 썼다.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게 지난해12월31일이었으니 코로나19 사태가 시작한 지 70일쯤 지났을 때였다. 이후 유럽과 미국을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최근 라틴아메리카를 강타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19 폭풍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사태가 일어난 지 150일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 코로나19 사태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다시금 숙고해 보려고 한다.

첫째, 생태학적 관점. 생태학의 시각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문명의 성찰’을 요청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예견된 비극이다. 코로나19는 자연 파괴의 진행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해 발생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생물학자 최재천은 “예전 같으면 에피데믹(국지적 유행) 수준으로 끝났을 일을 사람이 팬데믹으로 만드는 거다”라고 일갈했다.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는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살인자 바이러스들이 비규칙적 폭풍으로 몰아쳐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임을 경고했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과 실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생태학’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 정치학적 관점.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의 귀환’을 알렸다. 지구화된 위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주체는 역시 일사불란한 관료제에 기반한 국가였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와 확진자 동선 공개 등을 앞세운 우리 정부의 방역 정책은 국가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히 증거한 사례다. 서구 일각에선 이런 국가의 귀환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나의 자유 못지않게 우리의 안전을 중시하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조화시키는 ‘공화주의적 상상력’이 새삼 소환되고 있다.

셋째, 경제학적 관점. 경제학적 측면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케인스주의의 복권’을 가져오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큰 정부로의 전환이 예견됐지만, 이미 공고화된 글로벌 가치 사슬에 일국적 케인스주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낳고 있는 경제 위기는 전방위적 뉴딜을 요구하고, 이에 각국 정부는 재정 확대로 경제 살리기에 분투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DT)이 가속화하는 제4차 산업혁명과 사회 양극화를 고려할 때, 케인스주의적 국가의 강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래지향적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구조화된 빈부 격차를 완화하는 데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강하고 유능한 정부’라 할 수 있다.

넷째, 사회학적 관점. 사회적 차원에서 코로나19는 ‘언택트사회의 도래’를 열었다. 온라인 학습·쇼핑·문화생활 등 정보사회의 만개가 바이러스 폭풍을 통해 예기치 않게 이뤄진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비대면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대면과 비대면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설정할 것인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던지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다. 개인적 자율과 협력적 연대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어 결합하는 ‘연대적 개인주의의 네트워크 문화’를 일구는 것이 그 방향일 것이다.

다섯째, 국제정치학적 관점. 지구적 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탈세계화의 촉진’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상호의존성의 증대로 경제적 세계화는 강화돼온 반면, 포퓰리즘의 분출로 정치적 세계화는 후퇴해 왔다. 코로나19 사태는 경제적 세계화에 제동을 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각국도생(各國圖生)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더욱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화된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훼손된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에 있다는 점이다.

문명의 성찰, 국가의 귀환, 케인스주의의 복권, 언택트사회의 도래, 탈세계화의 촉진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선 자리라면, 생존의 생태학, 공화주의적 상상력, 강하고 유능한 정부, 연대적 개인주의의 네트워크 문화,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은 그 갈 길일 것이다. 이 화두들을 붙들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는 전문가들과 집단지성의 노력 모두 중요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라고 말한 이는 철학자 헤겔이다. 비록 황혼 무렵에야 난다고 하더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탐구와 모색을 더욱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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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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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얼마나 큰지 함부로 가늠하긴 어렵다. 하지만 하루하루 근로계약서를 쓰는 노동자나 매출이 나날이 줄어드는 자영업자에게 그 위기는 구체적이다. 위기의 끝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들의 삶은 통째로 흔들린다. 가계부의 모든 수입 항목은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변함없이 예측할 수 있는 항목도 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월세 임대료나 상가 임대료다.

미국 UC버클리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미국인들을 4개 계급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 계급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위기 이전과 거의 동일한 임금을 받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이고, 두 번째는 일자리를 잃지는 않지만 간호사나 배달 노동자와 같이 코로나19 감염의 위험 부담이 따르는 ‘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집단이다.

경제적 위협을 먼저 직면하는 것은 그다음 계급부터다. 세 번째 계급은 소매점 등에서 일하거나 제조업체 직원들로 무급휴직 중이거나 직장을 잃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다. 한국의 경우 매출이 급감한 소매자영업자도 이에 속한다. 네 번째 계급은 ‘잊혀진 노동자’로 대다수 사람이 볼 수 없는 곳, 이를테면 감옥이나 노숙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고시원과 쪽방의 일부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산업이 무너지고 시민의 삶이 완전히 파괴됐을 때 그걸 회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겪었다. 경제위기에 대한 성공적 대응은 국내총생산(GDP)을 얼마나 서둘러 회복했는지가 아니라, 위기에 노출된 시민 수를 얼마나 줄였는지에 달렸음을 배웠다.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곳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잊혀진 노동자’의 약해진 삶이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며 매출이 급감한 상가의 임대료와 소득이 급감한 임차인의 주거임대료를 조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재난지원금은 한국사회에 이전엔 없었던 전향적인 노력이지만, 앞서 언급한 이들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매출과 소득이 생기면 뭐 하나, 수익은 모두 임대료로 나갈 텐데’라는 자영업자와 월세 세입자의 한탄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사회가 이 위기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지켜내고 있는 것이 누구의 이해관계인지를 말없이 알게 해준다.

현행 주택·상가임대차보호법은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해 기존에 계약한 임대료가 적절하지 않을 때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임대료의 조정이 한국사회에서 이제껏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못할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고정불변의 것은 ‘임대료’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다.

나는 어릴 적 과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다. 과학자라는 직업은 고정불변한 무언가를 탐구하고 쫓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최근 초등학생들이 장래 희망으로 가장 많이 희망한 직업은 건물주라고 한다. 건물주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진 못했지만, 무엇이 매력적이었을까 궁금하다. 재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지켜지는 권리, 그런 고정불변한 지위가 있다면 그것은 건물주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 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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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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