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334건

  1. 2019.12.09 강물에 띄운 편지
  2. 2019.12.02 말의 뒤편
  3. 2019.11.25 외로운 별은 너의 것이 아니다
  4. 2019.11.18 귀가
  5. 2019.11.11 물이 마르는 동안
  6. 2019.11.04 꽃씨처럼
  7. 2019.10.28 바라보다가 문득
  8. 2019.10.21
  9. 2019.10.15 자연법
  10. 2019.10.07 살얼음에 대하여
  11. 2019.09.30 술배소리
  12. 2019.09.23 전화를 걸고 있는 중
  13. 2019.09.16 자화상
  14. 2019.09.09 스틸
  15. 2019.09.02 솜반천길
  16. 2019.08.26 따스한 것을 노래함
  17. 2019.08.19 초식동물
  18. 2019.08.12 여름비 한단
  19. 2019.08.05 좋은 날
  20. 2019.07.29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 41

흐르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달무리가 곱게 피어났다고 첫줄을 쓴다.


어디선가 요정들의 아름다운 군무가 그치지 않으리니


이런 밤은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고 쓴다.


저 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도무지 당신의 마음도 알 수 없다고 쓴다.


이곳에 나와 앉은 지 백 년,


저 강물은 백 년 전의 그것이 아니라고 쓴다.


마음을 벨 듯하던 격렬한 상처는


어느 때인가는 모두 다 아물어 잊히리라 쓴다.


그럼에도 어떤 일은 잊히지 않으니


몇날며칠 같은 꿈을 꾸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쓴다.


알 수 없는 게 그것뿐이 아니지만


어떤 하나의 물음이


꼭 하나의 답만 있는 게 아니기에


저물어 어두워가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그러나 강물에 띄운 편지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


이학성(196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물은 멀리 흘러간다. 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길고 큰 강을 시간에 빗대기도 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도 장강(長江)과 유사하다. 휘돌아가는 물굽이가 있다. 앞뒤 사정이 많다. 그 시간의 강물 위에 시인은 편지를 써서 띄운다. 달의 언저리에 월훈(月暈)이 곱다고 쓰며 누군가를 생각한다.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해 생각한다. 바뀌고 달라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난해해서 도무지 풀이할 수 없는 삶의 질문들을 생각한다. 그 질문들에 꼭 정해진 답은 없다. 누구도 하나의 마음이 아니기에. 시인은 반성과 살핌의 긴 편지를 써서 강물에 띄운다. 그러나 이 편지는 꼭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수심(水深)이 깊은 자신의 마음에게 띄우는 서신이기도 하다. 내가 써서 내가 받아보는 편지도 의미가 크다. 따뜻한 말로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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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 말하려는데

왜 목메는지


목메는데 왜

말은 역류하는지


말을 물고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밤


밤이 바람을 뱉는다

구름이 반달을 뱉는다


반달이 절반만 말한다

해에게 빌린 말


빛 없는 말은

달 뒤편에 있다


윤병무(196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말을 뱉기도 하고 삼키기도 한다. 절반은 발설하고 절반은 억지로 참는다. 마치 반달이 반쯤만 빛을 뱉듯이. 달의 앞쪽과 뒤편이 있듯이. 빛과 어둠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의존하듯이.

삼키고 참은 말은 기다리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도 내심(內心)이 있다. 발화하지 않은 말의 속마음을 알기는 참 어렵지만, 상대방의 사정이나 형편을 어림잡아 헤아리면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좋은 이해는 일어난 것의 그 너머를 보는 것일 테다. 별똥이 떨어진, 산등성이 너머를 가늠하듯이. 

시인은 시 ‘달 이불’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도 달빛 덮고 잠들어요/ 오늘은 반달이에요/ 달도 반은 자야 하니까요/ 저도 반만 잘게요” 달빛을 이불로 덮고 자되, 만월(滿月)의 절반인 반달과 더불어 잔다고 썼다. 반쪽과 반쪽이 의지하고, 뒷받침을 하고, 어울리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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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잎을 보며 슬퍼하지 마라


외로운 별 그 안에 와서


사람들마저


잠시 머물다 돌아가지 않더냐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것이든 사라져 가는 것을


탓하지 마라


아침이 오고 저녁 또한 사라져 가더라도


흘러가는 냇물에게 그러하듯


기꺼이 전별하라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사람들


네 마음속에


영원을 네 것인 양 붙들지 마라


사람 사는 곳의 아침이면 아침


저녁이면 저녁


그 빈 허공의 시간 속에서


잠시 안식하라


찰나 속에서 서로 사랑하라


외로운 별은 너의 것이 아니다


반짝 빛나는 그 허공의 시간을


네 것인 사랑으로 채우다 가라



김종해(194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낙엽이 나뒹군다. 바람에 한쪽 구석으로 몰리면서. 저 낙엽은 한때 새잎으로 돋았고, 너르고 둥글고 푸른 잎사귀였으며, 오색(五色)의 단풍이었다. 아침과 저녁이 살았고, 네 계절이 살았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냇물처럼 흘러 멀리 가듯이 저 낙엽의 모든 시간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그 시간들과 작별하지 않을 수 없다. 열흘 붉은 꽃은 없듯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 뿐이다.

시인은 시 ‘푸른 별에서의 하루’에서 지구를 작고 아름다운 푸른 별이라며 “만리 바깥을 보지 말라던/ 앞선 사람들의 유훈을 깜빡 잊어버렸다/ (…)/ 푸른 별은 언제나 나의 일상 속에 있다”라고 썼다. 아침에는 아침의 시간을 살고, 저녁에는 저녁의 시간을 살고, 거기에 안식하고, 거기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 일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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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날 추워지니

쓸쓸한 짐승이 자꾸 기어 나온다

음식 쓰레기 버리러 가면

검은 길고양이 얼어붙은 채 서 있고

나는 겨울이 싫은 거다

오직 생계만 남은 생계가 두려운 게다

그래도 가끔 밥 한술 나눌 친구들이 있어

외투도 없이 술 취한 거리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서 있는 거다

시간은 얼음벽을 지나가고

하필이면 누추한 계절에 실직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막막하게 눈물이 솟는 게다

차창 밖으로 눈발 쏟아지는 꿈을 꾸다

문득 깨어보면 버스는 어느새 종점에 와 있고

나는 길고양이들이 서럽게 우는 것이 무서워

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소리를 죽이는 거다

어디 빈 우체통 속에라도 들어가 오는 소식들을 듣고 싶은 게다

삭풍처럼 야위는 시간에 빈 잎사귀라도 달고 싶은 것이다


오민석(195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느덧 추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한기가 돈다. 시인은 생활의 곳곳에서 이 추위를 발견한다. 마음속에는 쓸쓸함이라는 웅크린 짐승이 살고, 집 주변 길고양이는 한곳에 고드름처럼 얼어붙어 있다. 살아나갈, 살아남을 방도만을 찾는 계절이 겨울이다. 시인은 또 어느 날 실직한 친구를 만나 막막한 사연을 듣고 눈물을 쏟는다. 삭풍의 시간인 겨울은 일상을 문득 막다른 종점에 내려놓기도 한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면 ‘한월(寒月)’을 생각한다. 겨울의 달은 마냥 차가워 보인다. 달은 본래 밝고 깨끗한 빛이지만 우리의 처지가 한파 속에 있는 까닭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동천(冬天)에 높게 솟은 한월을 정신의 높이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한다. 서리가 내리는 밤의 차가워 보이는 달처럼, 상월(霜月)처럼 매섭고 곧은 정신은 추위의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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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한 장

한지를 한 장


겹겹으로 널어둔 그 집 마당은

고서(古書)의 책갈피처럼 고요했네


바람만이 집중해서

뜻 모를 글귀를 적어가고 있었네


종이가 마르는 동안

할머니의 눈꺼풀이 얇아지는 동안


마당 한쪽의 감나무는

그림자를 살짝 비켜주었네


길상호(1973~)


이 시의 풍경은 매우 고요하다. 마당에 환하게 밝은 햇볕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종이를 떠서 널어 말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햇살은 내리고, 그 햇살에 종이를 널어 말리고 있는 이 집의 마당은 마치 오래된 책의 낱장과 낱장 사이처럼 조용하고 잠잠하다. 속껍질처럼 희고 깨끗하다. 한 자락의 바람만이 은은하게 불어와서 백지 위에 어떤 구절을 써놓고 가는 것만 같다. 감나무의 그림자마저도 비켜서는 이토록 명명(明明)한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청천백일(靑天白日)이라고 했으니 하늘이 맑게 갠 대낮을 요즘은 더러 볼 수 있다. 가을이 짧은 게 아쉽지만, 가쁜 숨을 좀 내려놓고 말없이 가만하게 앉아 소란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기도 할 일이다. 호수를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도 수면이 참으로 잔잔한 호수가 잠시 동안이라도 될 수 있기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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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누구나 홀로 와선

제 그림자 거두어 저물어 가는 것


빛나던 날의 향기도, 쓰라린 고통의 순간들도

오직 한 알 씨앗으로 여물어 남는 것


바람 크게 맞고

비에 더 얼크러지고

햇볕에 더 깊이 익어


너는 지금 내 손바닥에 고여 있고

나는 또 누군가의 손바닥 안에서

생의 젖은 날개 파닥파닥 말리며

꼭꼭 여물어, 까맣게 남는 것


배창환(1955~) 


가을에 거둬들인 씨앗이 있다. 이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자라서 펼쳐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여물고, 다시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씨앗은 혼자 어두운 땅속에서 잘 준비되어 마침내 빼주룩이 움트겠지만 이후에는 돌풍과 궂은비와 땡볕을 만나고, 또 개화(開花)라는 환호의 때를 만나고, 가을의 끝까지 무르익을 것이다. 그리고 한 톨의 까만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이 경과는 씨앗의 일인데, 이 일은 사람의 일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의 작은 씨앗 속에 이처럼 많은 극적인 일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조그마한 감씨 속에 마당가의 감나무가 들어 있고, 얇은 해바라기씨 속에 태양을 흠모하는 해바라기가 들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도 하나의 씨앗이다. 행복한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마음의 씨앗으로부터 일어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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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이 흰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새 날아간 자리 가지처럼 파르르 눈동자 떨리던 사람

바스락거리는 별을 끌어다가 반짝, 담배에 불붙이던 사람

산등에 걸린 달을 눈으로 담은 사람

흙 파인 돌계단에 앉아 찬찬히 처마의 달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 뒹구는 바람을 끌어다가

옷깃 안으로 여미던 사람

문득, 돌아선 곳에서 나를 달빛 든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


그 사람


바라보다가 고라니 까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잡으려 하니

그 자리에 별이 스러졌다


박경희(1974~)

어떤 것은 눈에 들어오고 또 무엇과는 눈길이 마주친다. 시인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고 그 사람이 만나고 바라보고 있는, 접촉하고 있는 것들을 함께 감각한다. 그 사람은 갈바람, 별, 달과 달 그늘, 바람 등을 느끼고, 시인도 함께 이것들을 감각한다. 그러나 시인이 그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그 사람은 형체가 차차 희미해지며 없어진다. 아마도 그 사람은 옛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했던 과거의 어떤 한 행위를 통해서 혹은 되풀이한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옷매무새와 손동작과 특유의 억양과 말투, 그리고 쓸쓸한 시간 속에 있을 때의 뒷모습 등으로 그 사람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했던 행위를 기억해내는 일은 그 사람의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하고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달빛 든 눈”과 “고라니 까만 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은 이 가을에 물들어가는 잎사귀를 가만히 바라보고 싶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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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어느날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의 반만큼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말의

성찬이나 말의 홍수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말이 고팠다

고픈 말을 움켜쥐고 말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쉬운 말들과 놀고 싶어서 말의

공터를 한번 힐끗 본다

참말은 문득 예리한 혀끝으로

잘려나가고 씨가 된 말이

땅끝으로 날아다닌다

말이 꽃을 피운다면 기쁘리. 말이

길을 낸다면 웃으리. 말은

누구에겐들 업(業)이 아니리


모든 말이 허망하여도 말의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냐

우리는 누구나

쌓인 말의 나무 밑으로 돌아간다.


천양희(19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나치게 많은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낸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홍수를 이룬 말들 속에서 오히려 말의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말에도 때가 있고, 말에도 공터가 있다. “말의 공터”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 말의 비어 있는 땅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말은 나직하고 신중하고 고상하다. 여지를 두는 말, 에둘러 해서 듣는 이가 짐작하게 하는 말이 좋은 말이다. 그런 말은 세상에 꽃을 피우고, 세상에 길을 낸다.

그러나 이 세상엔 창처럼 찌르는 말이 넘쳐난다.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이 넘쳐난다.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는 말이 넘쳐난다. 불 같은 말은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다치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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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을 앞세우고 간다.

여울물을 기어오르는 피라미처럼

공기주머니 하나 달랑 차고

소유한 게 적어도 물 따라 산다.


풀잎에 알을 낳는 풀벌레처럼

주어진 시간 그대로,

청설모가 굴밤 한 톨 물고 가듯

가랑잎 같은 시를

소중히 갈무리하고 산다.


소슬한 가을바람 따라 산다.

새빨갛게 익은 석류가

저절로 팍, 하고 깨어지듯

작은 소리를 알아듣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산다.


권달웅(194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자연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운다고 말한다. 여울물에 밝게 뜬 편월(片月)을 앞세우고 헤엄치는 피라미는 가진 것이 없어도 물의 흐름에 맞춰서 산다. 풀벌레가 풀잎에 알을 낳고 사는 것을 받아들이고, 청설모가 졸참나무의 열매 한 톨에 만족하듯이 시인은 가랑잎 같은 시 한 편을 짓고 사는 일 외엔 더 바라는 게 없다.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소리와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 잘 알아들으면서 살고자 한다.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그런 가을바람에 어울려 살고자 한다.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호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나란히 살고자 한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잔물결 같은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자연의 현덕(玄德)을 따라 사는 일일 테다. 나무가 너무 뻣뻣하면 꺾어지고, 소나기가 종일 쏟아지는 법은 없다는 지혜를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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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난 게 아니라

도착한 거예요.

추운 생명으로 왔지요.

추운 몸으로 왔어요.

그때가 아마 늦은 밤이었지.

북극의 생모(生母)가 찾아왔어요.

눈 포대기에서 보채는 

동생들을 안고 얼음을 짜 먹이며

얼음의 말로 말을 가르치듯.

이 밤 어느 웅덩이에 고여 있을 

그대들.

수없는 밤 고여 있었을 그대들.

머리맡에 밤바람이 

주저리주저리 한 말.

그 밑바닥 말.

바닥에 가 닿은 말.

그대를 잉태했던 북극의 어머니가 

평생 물걸레질한 그 얼음 바닥의 

무늬가 손금에 박힌 것처럼.

굴복할 수 없는 무의 물결처럼.

궁핍처럼 스스로를 더 강하게 

얼려야 하는 얼음처럼.

조정권(1949~201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정권 시인은 세속의 시를 고독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 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라고 쓴 시 ‘산정묘지 1’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일생(一生)의 시편들은 속악한 물신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정신의 드높음을 노래했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인간 본래의 가난함을 노래한다. 우리 존재가 “추운 생명”이요, “추운 몸”이라고 말한다. 말함으로써 우리 본래의 외로움과 적막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격조, 고고함, 염결(廉潔), 견딤, 정신의 고요하고 청빈한 산정(山頂)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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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야 갈치야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에야 술배야

가거도 어부들의 고기 잡는 소리를

밥상머리에서 환청으로 듣곤 한다


벼야 조야 배추야 시금치야

콩아 닭아 김아 마늘아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놓인 밥과 반찬에 따라 가사를 바꿔 부르며

숟가락 젓가락을 들곤 한다


그토록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소화가 되겠느냐 핀잔하는 이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이에게 권하고 싶다

술배소리 음미하며 한 끼 먹어보라고

그래야 음식마다 맛이 새롭고


먹고사는 일이 더욱 생생하게 소중해지므로


최두석(1955~)


시인은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어부들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던져서 먹을 것을 얻으려 할 때 부르는 소리를 소개한다. 시인은 바다에서 난 것을 밥상머리에서 먹을 때 이 술배소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들판과 자연의 것으로 한 끼의 밥과 찬을 마련해 한 숟가락 떠먹을 때 술배소리의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먹는 것이다. 먹어야 살 수 있다.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 우리는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지탱할 수 없다. 우리의 한 끼는 다른 생명에게서 얻어 온, 거룩한 한 끼이다. 흰 밥과 따끈따끈한 국과 서너 가지의 찬을 받을 적에는 두 손으로 겸허하게 받아야 한다. 그러면 다른 목숨의 희생으로 장만된 음식 앞에 엄숙해지고, 또 그 희생 덕에 살고 있는 내 목숨이 간절해진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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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이면

전화를 걸고 싶다

하늘 맑고 구름 높이 뜬 날이면

더욱 전화를 걸고 싶다


전화 가운데서도 핸드폰으로

멀리, 멀리 있는 사람에게

오래, 오래 잊고 살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을 찾아내어


잘 있느냐고

잘 있었다고

잘 있으라고

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은가보다

가볍고 가벼운 전화 음성이 되고 싶은가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끌고

개울 길을 따라가면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다.


나태주(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개울이 흘러가는 걸 보고 따라가면서, 자전거를 끌고 홀로 가면서 누군가를 떠올려 전화를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한참을 잊고 살았던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의 일을 묻고, 오늘의 안부를 전하고, 내일의 안녕을 기원한다. 따뜻하고 밝고 경쾌한 음색으로. 착하고 어진 성품에서 생겨난 전화 음색으로.

나태주 시인은 자신이 쓴 글에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선량함을 꼽는다. “시인들은 겸손해야 하고 늘 자기만의 문제나 느낌, 생각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성정은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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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1917~1945)


한 사나이는 산기슭의 불룩하게 나온 귀퉁이를 돌아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는 우물을 찾아간다. 우물의 저 깊은 수면에는 달과 구름과 하늘의 움직임이 비치었고, 맑은 바람이 돌고, 선선한 가을이 있다. 그리고 거울 같은 우물물에 비친 한 사나이의 얼굴이 있다. 시인은 이 우물물 속 사나이를 보고선 뜻이 맞지 않고 초라한 몰골에 밉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머잖아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다. 우물물에 비친 사나이는 시인의 자화상인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자괴의 탄식과 딱하게 여기는 연민이 교차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39년에 발표되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고뇌와 고독이 담겨 있다. 스스로 자신을 바로 보아 양심에 거리끼고 떳떳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큰 용기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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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입술을 빠져나온

동그라미 담배 연기처럼

뜨거운 목구멍 문양으로

쓰라린 목젖 문양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한 코 한 코 엮어

태피스트리를 짠 사람이 있다


호시탐탐 달아나는 바람의 코를 꿰어

벽에 걸어놓고야 말겠다고


핏빛 노을 번져드는 사막에

웅크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던 사람

그가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


셀 수 없는 정지화면이

모여 한 생애가 되고


한 번 멈춰두고 영원히 잊어버린

영화의 한 컷처럼 나는

지직거린다


한 코만 놓치면

주르륵 풀어져버리는

마음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정채원(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태피스트리는 여러 가지의 색실로 그림을 짜서 넣은 직물을 뜻한다고 한다. 한 코 한 코를 서로 끼워서 뜨개 옷이 되듯이 하나하나의 색실을 엮어서 면직물이나 모직물 등을 만드는 것일 테다. 

시인은 우리의 생애도 씨실 혹은 날실과 같은 수많은 정지화면이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경우라면 한 장면의 사진, 즉 스틸이 모이고 모여서 영화의 필름을 완성하듯이. 

그러나 우리의 삶의 시간은 연기와 같고, 한줄기의 바람과도 같아서 이내 뿔뿔이 흩어지고 잊히기 쉽다. 우리의 마음 또한 코와도 같은 하나의 실마리에 의해 풀어져버리기 쉽다. 

물론 가뭇없이 사라지는 시간들 속에 강렬한 기억의 한 순간이 있다. 한 번 세차게 쏟아진 소나기와도 같은 정지화면의 시간이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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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


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현택훈(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솜반천은 제주의 도심 속에 있는 생태하천이자 천지연 폭포의 상류에 있는 물줄기이다.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솜반천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중에 만난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말한다. 시인은 신앙, 매일매일 이어지는 생활의 곤란,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동심 등등을 만나고 본다. 그리고 솜반천이 푸른 바다로 나아가는 길에 만든 우묵한 물웅덩이들을 주목한다. 그 물웅덩이들에게 방언으로 특별하게 이름을 부여한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도 읽는다. 이 모두는 솜반천 천변의 시간과 풍경,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이며, 평범하고 반복되고 세세해보이지만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아침의 선선해진 공기, 귀뚜라미 울음소리, 밝은 달, 햇사과 등이 9월의 가을을 이루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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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개의


돌복숭아가 익듯이


아무렇지 않게 열(熱)한 땅 기운


그 끝없이 더운


크고 따스한 가슴…


늘 사람이 지닌


엷게 열(熱)한 꿈으로 하여


새로운 비극(悲劇)을 빚지 말자.


자연(自然)처럼 믿을 수 있는


다만 한오리 인류(人類)의 체온(體溫)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에


의지하라.


의지하여 너그러이 살아 보아라.


박목월(1915~197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땅의 기운이 없으면 무엇도 위쪽으로 자라날 수 없다. 뜨거운 땅의 기운이 있어서 한 알의 돌복숭아도 계절에 맞춰 익는다. 시인은 하나의 성숙과 무르익음을 가능하게 하는 그 근거를 “크고 따스한 가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인류에게도 땅처럼 견고하고 큰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인류의 체온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이 있음을 잊지 않아서 늘 너그럽게 살자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에는 관대한 성품의 넓은 영지(領地)가 있다. 그러므로 음성도 눈빛도 표정도 부드럽고 순하고 서글서글하게 할 일이다. 작고 사소하고 낮은 그 모든 것들에게도 유심하게 넉넉하게 할 일이다. 박목월 시인이 시 ‘내리막길의 기도’에서 “어질게 하옵소서/ 사람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수록/ 안으로 환하게/ 눈뜨게 하옵소서”라고 기원했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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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고증식(1959~)

 

날이 저물고 장사를 마친 부부가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탁주도 한 잔 곁들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의 온순한 성품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죽을 내놓으면서 만난 소박하고, 자상하고, 명랑하고,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들의 됨됨이에 대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평원(平原)의 고귀한,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늙은 염소처럼 순한 부부가 살아가는 훈훈한 삶의 풍경이다.

고증식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을 펴내며 “아홉 살짜리 두고 아버지 떠나시던 그해가 지금의 딱 이 나이다. 아버지 못 가보신 길을 이제부터 시작한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우짜든지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라고 썼다. 희로애락을 살아도, 곡절이 많더라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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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앉아 여름비를 본다


발밑이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단

열무 한단

부추, 시금치 한단 같은


그리움 한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놓은

내 손 한묶음의

크기


고영민(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박용래 시인은 억수 같은 장대비의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는 누군가 자신을 목놓아 부르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장대비 빗줄기를 “상아(象牙)빛 채찍”이라고 해 영혼의 고독과 불안과 통증을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여름비를 대파의 하얀 뿌리 같다고 썼다. 여름비를 보면서 대파며 열무며 부추며 시금치 한단을 묶는 것을 상상한다. 기른 것의 싱싱한 한단을 묶는 일을 상상한다. 또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싱그러운 생각도 한다.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은 풍경을 바깥에 서서 평면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풍경의 공간 내부로 한걸음 들어간 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빗속으로 들어가 빗줄기를 한묶음씩 묶는 상상을 함으로써 그 풍경은 사건적 풍경으로 거듭난다. 하나의 풍경에 노동과 삶의 기억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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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간 엄마는 잘 안 오시는 것이다 우리 엄마 안 오시네 엄마처럼 기다리는 것이다 배추를 팔아 신발을 사 오실 엄마


엄마는 신발을 잊고 엄마는 빨랫비누만 소금 됫박이나 사 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좋은 날이란 신발은 오지 않고 좋은 날만 따라왔던 것이다


언 발로 사위를 찍고 사라진 고라니의 겨울 산정도 신발처럼 저 너머에 솟아 있었던 것이다 고라니는 떠나가고 좋은 날은 혼자 남아 기다렸던 것이다 고라니도 신발을 깜빡했다고 들켜주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좋은 날은 어디선가 제 신발을 찾아 신고 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정윤천(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엄마는 장에 가시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배추를 팔러 장에 가시고, 장에 간 엄마가 새 신발을 사서 오시길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그러나 엄마는 빨랫비누와 소금만을 사서 돌아오시고, 아이의 신발을 사서 오시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잊으신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생필품만을 살 수밖에 없으셨겠지만.) 아이는 응석을 부리며 엉엉대며 울었을 것이다. 엄마는 다음 장날에는 꼭 신발을 사다 주겠노라고 달랬을 것이다. 흰 종이 위에 아이의 작은 발을 올려놓고 본을 떠서 가겠노라고 엄마는 약속을 했을 것이다. 아이는 겨울 산꼭대기 하얀 눈밭에 찍혀 있는 고라니의 신발 없는, 맨발의 발자국과 고라니의 언 발을 생각한다. 언젠가 좋은 날이 새 신발을 신고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젊은 엄마가 계셨던 옛 시간과 백설(白雪)이 깨끗하게 눈부시던 높은 산정(山頂)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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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흰 눈발로 차마 붐비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차마 흰 눈발의 무릿매 맞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차마 흰 눈발의 유성우(流星雨) 속에 잠드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흰 눈발의 고요에 차마 가슴 데는 사랑이


흰 눈발처럼 쉬지 못하고 차마 에도는 사랑이,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오태환(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눈보라가 치는 내면이 있다. 내면의 공간에 온통 눈보라가 벌떼처럼 붐비는 이가 있다. 시인은 사랑을 겪는 이의 속마음을 눈보라 치는 공간에 빗댄다. 그리고 그 눈보라를 돌팔매 혹은 몰매,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 외면하는 듯 고요하거나 무심한 감정 등으로 이해한다. 사랑을 겪는 이의 심정은 순간순간 격렬하고, 빛나고, 놀라고, 마음이 상하고, 배회하는 심정일 테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럿의 감정이 함께 사는 내면의 공간은 큰 파도와 잠잠한 해수면이 수시로 교차하는, 깊고 광활한 바다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태환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봄이 와서 허천나게 꽃이 피면, 벌서듯이 서서 그대를 생각하는, 수척한 사랑이 있었네”라거나 “늘 그대 등 뒤에서 환한 섬들 같은 사랑이 있었네”라고 노래해서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앓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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