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309건

  1. 2019.06.17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2. 2019.06.10 아무도 모르게
  3. 2019.06.03 옛 우물
  4. 2019.05.27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5. 2019.05.20 연두
  6. 2019.05.13 이생
  7. 2019.05.07 오래 한 생각
  8. 2019.04.29 제왕나비 - 아내에게
  9. 2019.04.22 풀씨
  10. 2019.04.15 그가 지나갔다
  11. 2019.04.08 건들대봐
  12. 2019.04.01 이불 비가
  13. 2019.03.25 아픈 새를 위하여
  14. 2019.03.18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15. 2019.03.11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16. 2019.03.04 돌을 집다
  17. 2019.02.25 다음에
  18. 2019.02.18 선잠
  19. 2019.02.11 세수
  20. 2019.01.28

잣눈을 지고도 끄떡없는,

더 새파란 그늘을 펼친 주목 옆에

고사목 하나


모가지 부서지고

어깨가 깨졌지만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죽음 속에서

죽음을 넘어

마지막 큰 가지를 북대 쪽으로

가라, 

너는 네 길을 가라

혼자서 가라, 거기에 아무것 없을지라도


굶주린 멧돼지와

피투성이 삵과

통곡하듯 번쩍이는 빙벽들의 그믐밤을 부르며


전동균(196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잣눈은 척설(尺雪)과 같은 뜻이다. 많이 쌓인 눈을 일컫는다. 말라서 죽은 나무 위에 눈이 한가득 쌓였다. 그러나 나무는 꿋꿋하게 섰다. 이 가지 저 가지가 군데군데 꺾였으나 위를 향해 곧게 섰다. 의연한 기품으로. 새파랗게 그늘을 펼치며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 흔들림이 없이 반듯하게 섰다. 시인은 이 고사목으로부터 기개를 본다. 굽히지 않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립하는 지조를 본다. ‘북대’는 신성하고 고고한 정신의 거처일 테다. 울음과 허기와 피투성이의 계곡 너머에 있는, 차디찬 빙산 그 너머에 우뚝 솟아 있는, 영적인 그런 곳일 테다. 무엇에도 기죽지 말고, 비록 종국에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 일을 생각해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0) 2019.06.17
아무도 모르게  (0) 2019.06.10
옛 우물  (0) 2019.06.03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당신 방에 앉아 침대 옆에 놓인 시집을 읽습니다

당신이 비운 집

한쪽에 놔둔 식물에 물을 주라 하였기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도 봅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 한 병 꺼내 마셔도 좋다 하였기에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 희미한 삶의 냄새

이 삶은 달걀을 어디에 칠까요

무엇에 부딪쳐 삶을 깨뜨릴까요


이병률(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집을 비운 사람의 방에 잠시 들른 사람이 있다. 집을 비운 사람과 그 집을 방문한 사람은 서로 일상에서 친하게 교유(交遊)하는 사이. 메마른 화분에 물을 줘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러 가서 그이처럼, 그이가 읽던 시집을 읽고, 그이의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을 꺼내기도 한다. 그이가 되어본다. 그럴 때 시인은 책을 펼치고, 눕고, 혼자 먹는 이 일이 다름 아닌 삶의 희미한 냄새라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이가 매일매일을 사는 공간에서 우연히 그이가 되어봄으로써 그이의 생활과 마음 안쪽으로 들어가 보게도 된다. 그이 일상의 모래알 같은, 부서진 조각을 봄으로써 그이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도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씨와 작은 움직임 등을 읽음으로써 그이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물로 샘 전체의 물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0) 2019.06.17
아무도 모르게  (0) 2019.06.10
옛 우물  (0) 2019.06.03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무 그림자 일렁이는 우물에

작은 새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간다

희미한 낮달도 얼굴 비쳐보다 간다


이제 아무도 두레박질을 하지 않는 우물을

하늘이 언제나 내려다본다

내가 들여다보면

나무 그림자와 안 보이는

새 그림자와 지워진 낮달이 나를 쳐다본다


흐르는 구름에 내 얼굴이 포개진다

옛날 두레박으로 길어 마시던 물맛이

괸 물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이태수(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레박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맑고 차고 푸른 우물물을 길어 올리던 때가 있었다. 어릴 적에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면에 내 작고 동그란 얼굴이 비치던 우물이다. 윤동주 시인이 시 ‘자화상’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고 노래한 그 우물이다. 시인은 옛 우물에 나무 그림자와 작은 새의 그림자와 희미한 낮달이 비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옛 우물을 들여다본다. 과거의 시간과 존재와 옛일이 수면에서 지금의 시인을 올려다본다. 나무 그림자와 새 그림자와 낮달도 시인을 쳐다본다. 우물은 거울과도 같다. 나의 내면을 비춰보는, 세계가 있는 그대로 비춰지는 물거울이기도 하다. 시인이 기억하는 옛 그 물맛이 우물의 고요함과 괴괴함을 흔들어 깨운다. 잠에서 깨어나듯 우물이 깨어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0) 2019.06.17
아무도 모르게  (0) 2019.06.10
옛 우물  (0) 2019.06.03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보려고 지금은 앓고 있는 중이지

이승하(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두 다 고통의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물의 푸른 덩굴이 팔을 뻗어 위쪽을 향해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수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만큼에는 이르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존재들이 곤란을 견디고 있다. 고통 없이는 빛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반짝이는 별의 배경은 긴 밤이요, 캄캄한 어둠이다. 꽃도 나비도 살아 있음을 아픔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가고 싶어”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처럼 넓고 큰 세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승하 시인은 시 ‘시원하게’에서 “내 한 생을 살면서/ 물 한 모금 달라고 애걸하는 누군가를 위해/ 시원한 물의 시 못 보여 준다면/ 밥 먹는 일이 무슨 의미 있는가”라고 썼다. 시인이 “시원한 물의 시”를 얻는 일에도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앓는 시간을, 통증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모르게  (0) 2019.06.10
옛 우물  (0) 2019.06.03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꽃 진 자리

어린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정희성(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연두는 새로 갓 나온 잎의 빛깔이다. 연한 초록의 빛깔이다. 맑은 초록 혹은 조금은 덜 짙은 초록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은 당신의 봄이 연둣빛 거기까지만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산홍이 아직 피지 않은, 진달래꽃이 겨우 막 피는 그 봄의 첫머리까지만 닿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와 그 범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연두의 빛깔 거기까지만 당신의 봄을 펼치려는 것일까. 아마도 이 연두의 빛깔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설레고,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속되지 않고, 마음이 맑고 신선한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은 들떠 두근거리고, 일렁거리고, 조심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의 자세가 연두의 속뜻일 것이다. 우리 본래의 마음 그 어귀가 바로 이 연두의 빛깔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우물  (0) 2019.06.03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엄마가 나 되고

내가 엄마 되면

그 자장가 불러줄게

엄마가 한 번도 안 불러준

엄마가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자장가 불러줄게


내가 엄마 되고

엄마가 나 되면

예쁜 엄마 도시락 싸

시 지으러 가는 백일장에

구름처럼 흰 레이스 원피스

며칠 전날 밤부터 머리맡에 걸어둘게


나는 엄마 되고

엄마는 나 되어서

둥실


하재연(197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재연 시인은 시 ‘하나의 사람’에서 우리 개개인의 단독적인 존재를 빗대어서 “희고 차가운 빙하의 껍질 위에/ 대고 있는/ 나의 빨간/ 두 개의 발바닥”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우리는 외롭고 추운 존재이다. 

그러나 엄마가 있고, 엄마가 있어서 엄마는 딸과 아들을 품속에서 기른다. 낮고 고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잠을 재우고, 도시락을 싸서 쥐여주고, 원피스를 사서 입힌다. 누워 곤히 잠이 든 아이의 머리맡에 당신이 애써 마련한 것들을 가만히 놓아둔다. 아이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로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풍선처럼, 흰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도록. 그러나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엄마의 어린 딸도 미래에는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엄마, 하고 불러본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0) 2019.05.27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풀씨  (0) 2019.04.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느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김용택(1948~) 


우리의 살림은 산 아래 혹은 물가에서 이뤄진다. 그 공간에서 세간을 갖추고 한집안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다. 기쁜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다. 보람이 있어서 여한이 없다고 여길 때도 있고, 회한이 남을 때도 있다.

시인은 그 옛일들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산처럼 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산등성이가 부드럽게 뻗어 내리는 산처럼 온순하게 살고자 바라고, 스스로 낮추면서 모든 것을 이롭게 하는 물처럼 선하게 살고자 바란다. 그리고 쓴 시(詩)들이 바람처럼 쉬웠으면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불어오고 불어가는 줄을 느낄 수 있는 한 줄기 맑고 시원한 바람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자연과 더불어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 크고 너그러운 안목을 오늘은 오래 생각해보아야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두  (0) 2019.05.20
이생  (0) 2019.05.13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풀씨  (0) 2019.04.22
그가 지나갔다  (0) 2019.04.1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파도 위로 호랑무늬 깃을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대양 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잠 자며


고치에서 부활하는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최동호(194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제왕나비는 캐나다 남부, 미국 대륙, 중앙아메리카에 주로 사는 왕나비류의 하나로 꽃가루 매개종이다. 아메리카의 제왕나비는 매년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에 캐나다를 출발해 장장 5000㎞를 날아가서 멕시코의 고산지대에서 겨울을 난다. 숲의 나무에는 수천만 마리의 나비들이 날아와 열매처럼 매달리는데, 이 시기를 사람들은 망자(亡子)를 기리는 기간으로 여긴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나비와 함께 찾아온다고 믿는 것이다. 저편으로부터 이쪽으로 멀고 먼 거리를 날아오는, 막막하게 넓고 깊은 바다를 건너 날아오는 놀랍고 신기한 이 일은 관계의 이끌림과 맺음, 그리고 모든 생명 존재들 사이의 숭고한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난관과 장애를 넘어서서 이어지는, 영속적인 인연을 생각하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망자의 영혼인 듯 나비가 날아와, 신생의 알을 낳고 스스로는 죽음을 맞는 이 일은 강물처럼 도도(滔滔)하게 흐르는 우주의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생  (0) 2019.05.13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풀씨  (0) 2019.04.22
그가 지나갔다  (0) 2019.04.15
건들대봐  (0) 2019.04.0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풀씨는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난다


날다가 물에 뜨면


물 타고 가고


담 넘어 어느 집 뜨락


혹은 다람쥐 고라니 산새


깃들여 사는 산야(山野)


철조망 넘어 북에도 남에도


거침없이 날아가 앉는다


막힘이 없다


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더럽히지 말라


이 맑은 물 맑은 공기


맑은 마음


 강민(193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풀씨는 어디에라도 날아간다. 바람에 실려, 물에 떠서 걸림도 막힘도 없이 날아간다. 어느 집 조용한 뜨락에 내려앉고, 산과 들에 내려앉는다. 산과 들에 사뿐히 내려앉아 다람쥐, 고라니, 산새와 함께 사는 자연이 된다. 풀씨는 철조망을 넘어서 날아간다. 풀씨에게 막힌 통로란 없다. 풀씨는 누구와도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시인은 시 ‘동오리 15’에서 “그대 바람으로 떠나요/ 떠난 김에 훨훨 날아/ 산 넘고 물 건너/ 이 봄의 씨앗 실어다/ 거기에도 뿌려줘요/ 샘물가 돌 틈에도/ 뒤울안 툇마루 주춧돌 사이에도/ 정자나무 그늘에 쉬는/ 그이들의 마음밭에도/ 뿌려줘요, 봄의 씨앗”이라고 썼다. 봄바람을 타고 풀씨가 더 멀리 나아갔으면 한다. 벽을 허물 듯이 벽을 넘어, 높은 산맥을 넘어, 저 먼 산하(山河)까지 날아갔으면 한다. 날아가 앉아 푸른 싹을 틔워 곳곳의 들풀들과 하나의 자연이 되었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 한 생각  (0) 2019.05.07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풀씨  (0) 2019.04.22
그가 지나갔다  (0) 2019.04.15
건들대봐  (0) 2019.04.08
이불 비가  (0) 2019.04.0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 여자가 동백나무 그늘의 끝을 막 지나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참새 몇 마리가 은행나무 이파리 사이에 숨어 뭐라 뭐라 떠들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은회색 승용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갈 때

그가 지나갔다


노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동네를 돌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왕개미 한 마리가 제 몸만 한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힘겹게 보도블록 가장자리를 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세상에!

얼굴도 없이

이경림(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 여자와 참새 몇 마리, 승용차, 아이들, 왕개미가 각각 활동할 때 얼굴도 없는 그가 지나갔다고 한다. 그는 누구일까. 그가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이 아닐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냇물 위에 떠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종이배 같은 시간이 아닐까. 혹은 매일매일에 늘 나의 심중(心中)에 살고 있는, 그리운 사람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보든 함께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비록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일지라도. 이도 아니면 내가 신앙하는 ‘님’이 아닐까. 이도 아니면 소소하지만 스스로 빛나는 일상의 순간이 아닐까. 여럿의 주체들이 각자 힘껏 살고 있음에도 그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하고, 놓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스침과 사라짐에 빗댄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지낸 하루가 나는 좋았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왕나비 - 아내에게  (0) 2019.04.29
풀씨  (0) 2019.04.22
그가 지나갔다  (0) 2019.04.15
건들대봐  (0) 2019.04.08
이불 비가  (0) 2019.04.01
아픈 새를 위하여  (0) 2019.03.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뭇잎은 흥에 겨워

건들대는 거야.

천성이 그래,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비 내리면 비와 함께

새들이 노래하면

새들의 날개에 얹혀

같이 날아보는 거야.


그런 게 즐거움 아니냐고

너도 건들대보라고,

죽기 전에 후회 없이

한번 건들대보라고. 

김형영(1944~)


건들대는 것은 몸과 마음에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일 테다. 언덕을 넘어서오며 버드나무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가만가만 흔들어놓는 봄바람처럼. 조금은 들떠서 조금은 신이 나서 흥에 겨워 살아도 좋겠다. 바람이 저편으로 가면 바람을 따라서가고, 비가 오면 빗방울처럼 수면 위를 뛰고, 새들이 울면 새들의 악보에 맞춰 노래를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 너무 무겁고 딱딱하게 살지 않고,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고. 살구꽃이 피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고, 보리밭이 넘실넘실하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형영 시인은 시 ‘화살시편 29 - 봄을 믿어봐’에서 “봄바람 마신 새들/ 노랫소리 들리지?/ 감기 든 목소리가 아니야/ 목청이 탁 트였어// 믿을 건 봄뿐이야”라고 썼다. 봄바람을 마신 새처럼 봄을 흥얼거리면서 살아도 좋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씨  (0) 2019.04.22
그가 지나갔다  (0) 2019.04.15
건들대봐  (0) 2019.04.08
이불 비가  (0) 2019.04.01
아픈 새를 위하여  (0) 2019.03.25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3.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밤마다 쓰러지는 것을

일으키고 끌어올리고 또 잡아 세운다

일으키는 창유리의 아침이 눈부시지 않으면

물렁뼈로 엎디이고 말리


허기처럼 질긴 습관과 밥알처럼 끈덕진 관성이

뼈대를 세우고

호두알 깨뜨리는 책임과 밤껍질 발라내는 의무가

근육을 굴리나

때로는 널푸른 공중 그네를 매달고 싶었으리


쓰러지는 밤이 우물 속처럼 아득하더라도

무릎 당겨 세운 침대가 되는 꿈은 꾸지 말기를

어느 날 하늘을 날게 된 양탄자는

태생이 배를 깐 바닥이었으니

바닥을 타는 법을 터득해야

바람의 행간을 타고 날 수 있으리 

- 이선영(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절망의 계곡과도 같은 검은 밤이 있지만, 다시 산봉우리를 넘어오며 빛나는 새날 또한 있다. 환한 유리창으로 새날이 들어온다. 바닥을 밝히면서. 바닥에 누운 것들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새날이 와서 우리는 우물 속처럼 깊고 아득한 밤을 비로소 벗는다. 덮고 있던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다. 시인은 밤의 바닥으로부터 일어서는 일을 양탄자의 일에 비유한다. 바닥에 배를 깔고 늘펀하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양탄자가 바람을 타며 하늘을 날게 된 일에 비유한다. 양탄자처럼 바닥으로부터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를 바라면서. 한편, 시인은 시 ‘나는 직립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등 대고 있던 바닥을 딛고 일어설 때, 일어서려 할 때/ 비로소 아기는 제 안에서 움틀거리는 인간을 느끼리라.” 자신을 곧추 세우려는, 꿈틀거리는, 내면의 힘을 느껴볼 일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가 지나갔다  (0) 2019.04.15
건들대봐  (0) 2019.04.08
이불 비가  (0) 2019.04.01
아픈 새를 위하여  (0) 2019.03.25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3.18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9.03.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속삭임이라도 꺼내봐

미소라도 날려봐


조금은 가벼워도 괜찮아

순결하지 않아도 괜찮아

노래가 아니어도 괜찮아


아픈 것이 부끄러움은 아니니

깃털 속에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을 믿어봐


너 없는 공중은

투명한 폐허일 뿐이야


여긴 병원이 아니라

나는 너를 치료할 수 없지만


입을 맞춰줄게

부력을 채워줄게


너의 근력을 믿어봐

너의 의지를 믿어봐


고영(1966~)


아픈 새가 있다. 예전엔 공중을 투명하고 비옥한 영토로 만들던 새였다. 시인은 아픈 새에게 공중의 높이와 공중의 쾌청함을 돌려주고자 한다. 새가 없다면 공중은 황무지에 불과하기에. 몽골의 시인 롭상도르찌 을지터그스가 “풀은 모두 나무/ 돌마다 산/ 넓은 이 세상/ 사물은 모두 중심// 깃은 모두 새/ 새마다 하늘/ 풍요로운 이 삶의/ 모든 날들이 새롭다”라고 노래했듯이 새가 곧 하늘의 중심이요, 새가 곧 높고 맑은 하늘이기에. 시인은 새의 비상과 새의 자유를 위하여 심장의 박동과 근력과 의지를 스스로 신뢰하라고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흡족하지 않고 모자람이 있고 순탄하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다시 한번 더 하늘을 향해 떠오르자고 격려한다. 마음도 기운도 꺾이지 말라고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에게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내일의 벽공(碧空)이 기다리고 있기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들대봐  (0) 2019.04.08
이불 비가  (0) 2019.04.01
아픈 새를 위하여  (0) 2019.03.25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3.18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9.03.11
돌을 집다  (0) 2019.03.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1939~)

떨어진 공은 바닥을 탕, 탕 치며 다시 튀어 오른다. 용수철처럼 튀어 가볍게 떠오른다. 빠르게 그리고 힘이 넘치면서. 둥근 공은 쓰러져 몸져눕지 않는다. 늘 금방이라도 활동하겠다는 태세다. 어떠한 삶의 파도에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자세다. 생명의 불을 꺼뜨리는 일이 없다.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동력을 잃지 않는다. 둥근 공의 빛나는, 충만한,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상찬하면서 시인은 공을 “탄력의 나라의/ 왕자”라고 멋지게 명명한다. 우리의 마음도 이 “탄력의 나라”에 살았으면 한다.


우리는 새봄의 계절에 다시 피어난 산수유나무 노란 꽃들을 보면서 강한 탄력을 느낀다. 봄은 살아 숨쉬고, 얼굴에 몸에 의지에 활기가 돌고, 탄력이 좋다. 쇠하거나 새들새들해지는 법이 없다. 김이 식는 법이 없다. 봄이 곳곳에서 공처럼 튀어 오르고 있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봄을 보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불 비가  (0) 2019.04.01
아픈 새를 위하여  (0) 2019.03.25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3.18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9.03.11
돌을 집다  (0) 2019.03.04
다음에  (0) 2019.02.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이상국(194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면 벌여 놓거나 차려 놓은 것을 안으로 거둬들이게 된다. 비를 맞으면 안되는 것들은 치우거나 덮는다. 널어놓은 빨래는 거둬 안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잠시 일손을 놓는다. 누군가는 우산을 펼쳐 들고 식구를 마중 나가기도 한다. 비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벌판을 지나 벌떼처럼 온다. 와서 새잎들을 두드리고, 연못을 두드리고, 장독을 두드리고, 지붕을 두드리고, 사람의 애틋한 심사(心思)를 두드린다. 봄비가 좀 넉넉하게 왔으면 좋겠다. 나도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고 싶다. 이따금 생각도 쉬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던 비 그치면 봄 하늘이 보리밭처럼 푸르게 드러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픈 새를 위하여  (0) 2019.03.25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3.18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9.03.11
돌을 집다  (0) 2019.03.04
다음에  (0) 2019.02.25
선잠  (0) 2019.02.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돌 하나를 집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돌 하나 밑에 돌의 그림자 하나가 생겼다


돌의 그림자 하나는 얇다 돌 하나에 눌린 돌의 그림자 하나가 오목해지면서 오그라든다


오그라든 돌의 그림자 하나가 돌 하나를 감쌌다


돌 하나를 감싼 돌의 그림자 하나가 있고, 돌 하나의 그림자에 감싸인 돌 하나가 있고,


돌과 그림자는 각각이고 돌 하나를 감싼 적막과 돌의 그림자 하나를 감싼 적막이 각각이다


돌과 그림자와 적막은 겹겹이고 적막은 몇 겹을 겹쳐도 투명하다


- 위선환(194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위선환 시인은 최근에 새로운 시집을 펴내면서 이렇게 썼다. “사물은 낱이고 자체(自體)다. 언어는 사물을 드러낸다. 사물을 드러내는 언어와 언어가 드러내는 사물은 하나다. 언어는 사물이다.”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라고 했다.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이다. 돌, 그림자, 적막은 각각 독립적이고 고유하고 온전하다. 그리고 저마다 살아 있고, 움직인다. 심지어 돌에서 태어난 돌의 그림자는 돌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도 의지적으로 오히려 돌을 감싼다. 적막을 하나의 사물로, 하나의 존재로 보는 시각도 새롭고 이채롭다. 이런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대립은 사라지고 원융(圓融)의 세상이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0) 2019.03.18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9.03.11
돌을 집다  (0) 2019.03.04
다음에  (0) 2019.02.25
선잠  (0) 2019.02.18
세수  (0) 2019.02.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 박소란(198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언젠가, 나중에 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이번 차례가 아니라 뒤에 하자는 이 말은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이 말이 꼭 빈말만은 아니어서 기대가 생긴다. 더욱이 사랑의 감정이 있는 사이에 오간다면 설렘이 있다. 설렘이 있어서 마음은 뒷날의 시간으로 먼저 가서 살게 된다. 비록 이미 해놓은 그 약속이 오늘 지켜지지 않고 다시 미뤄지더라도, 늘 다음이 또 오더라도, 저 백반집에 가서 한 끼의 밥을 먹는 일이 또 연기되더라도 마음은 후일의 때로 먼저 가서 살게 된다. ‘다음에’라는 말은 “공연히 기다리는 이의 마음이” 되게 하는 말이 아닐지. 사랑의 언덕 위를 불어가는 봄바람 같은 말쯤이 아닐지.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0) 2019.03.11
돌을 집다  (0) 2019.03.04
다음에  (0) 2019.02.25
선잠  (0) 2019.02.18
세수  (0) 2019.02.11
  (0) 2019.01.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박준(198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옛 시간에 엉성했고 서툴렀던 사랑이 가슴에 살았다. 음식을 나눠 먹었고, 또 나른하고 보드라운 시간이 좋았다. 남들만큼 잘살고 싶었다.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소소한 몸놀림만으로도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서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노래와도 같은 빛이 있었다. 새 촉이 나듯이 새로이 올 내일이 있었다. 깊이 들지 못하는 선잠 같았던, 곧 깨고 말았지만 지금은 그리워하게 된 옛사랑의 시간이 있었다. 허름했고, 격랑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수두룩했지만, 어설펐지만, 사랑의 느낌이 마음의 탁자 위에 꽃병처럼 놓여 있었다.

지금 사랑의 시간을 살고 있다면, 허밍처럼 즐겁고 상쾌하게 사랑의 시간만을 살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을 집다  (0) 2019.03.04
다음에  (0) 2019.02.25
선잠  (0) 2019.02.18
세수  (0) 2019.02.11
  (0) 2019.01.28
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 -연남동 4  (0) 2019.01.2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두 손을 모아 강물을 받아요

그 물로 얼굴을 비벼요

물고기 냄새와 달빛 냄새가

나네요

아침 해가 강물에게 들려준

얘기를 느낄 수 있어요

 

손에서 얼굴 냄새가 나요

평생 화장수 한번

바르지 않았죠

슬픈 날은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나요

반짝반짝 흘러내리는 별

내 몸 어딘가 이리 많은 별이

있었다니 신비해요

별이 있어 세월 내내

행복했지요

별이 있어 해와 달도

외롭지 않았지요

 

슬플 때면 강으로 가요

쭈그리고 앉아

강물로 얼굴을 비벼요

얼굴이 환해지니

그리운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곽재구(195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깨끗한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했으면 좋겠다. 물고기들의 집인 강물을 떠서. 초승달과 만월의 빛이 밤새 하얗게 내린 강물을 떠서.

그렇게 강물로 얼굴을 감쌌으면 한다. 슬픈 날엔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외롭고 쓸쓸하고 어두운 시간과 장소에 별이 살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별은 스스로 빛을 모아 빛나면서 슬픔을 견뎌내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도 강에 대해 노래했다. ‘물고기와 나’에서는 “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라고 썼고, ‘강물’에서는 “물을 보면 좋아요/ 종일 노래 불러요”라고 썼다. 강물에서 춤과 노래를 발견했다. 우리의 일상을 강물처럼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한다면 우리도 보다 다양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음에  (0) 2019.02.25
선잠  (0) 2019.02.18
세수  (0) 2019.02.11
  (0) 2019.01.28
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 -연남동 4  (0) 2019.01.21
이 겨울밤  (0) 2019.01.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반 칼럼/경향시선

아직 던져지지 않은 돌

아직 부서지지 않은 돌

 

아직 정을 맞지 않은 돌

 

아직 푸른 이끼를

천사의 옷처럼 두르고 있는 돌

 

아직 말하여지지 않은 돌

아직 침묵을 수업 중인 돌

 

아직 이슬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돌

 

그리고 잠시 손에 쥐었다

내려놓은 돌

 

아직 조금 빛을 품고 있는 돌

 

유강희(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곳에 가만히 앉은 돌멩이가 하나 있다. 햇살 아래 잠든 듯이. 아직은 생김새가 태어난 모양 그대로인 돌멩이다. 손을 타지 않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채로. 푸른 이끼도 입고 있다. 날개를 접은 채. 태어나지 않은 언어를 갖고 있는 돌멩이. 내내 잠잠하게 있는 돌멩이. 아침이면 부시고 맑은 이슬이 이마에 데구루루 구르는 돌멩이. 그리고 한 번 나의 옷깃을 스쳐간 돌멩이. 내면에는 순수와 사랑과 빛을 하얀 새알처럼 품고 있는 돌.

시인은 시 ‘돌아’에서 이렇게 또 썼다. “돌아/ 너무 맑은 날 아침은/ 네 가난한 거죽에도/ 새 옷 한 벌 해주고 싶어// 어느 영원의 반짝이는 개울 하나/ 너랑 손잡고 건너고 싶어”

돌은 작고 고유한 존재요, 하나의 우주요, 돌은 못된 생각이 없는 착한 성격이요, 돌은 우리가 더욱더 가꾸어야 할 그 어떤 반짝임과 밝음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잠  (0) 2019.02.18
세수  (0) 2019.02.11
  (0) 2019.01.28
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 -연남동 4  (0) 2019.01.21
이 겨울밤  (0) 2019.01.14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0) 2019.01.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