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318건

  1. 2019.08.19 초식동물
  2. 2019.08.12 여름비 한단
  3. 2019.08.05 좋은 날
  4. 2019.07.29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 41
  5. 2019.07.22 예순이 왔다
  6. 2019.07.15 동백숲길에서
  7. 2019.07.08 여름
  8. 2019.07.01 염천
  9. 2019.06.24 새벽 고요는
  10. 2019.06.17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11. 2019.06.10 아무도 모르게
  12. 2019.06.03 옛 우물
  13. 2019.05.27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
  14. 2019.05.20 연두
  15. 2019.05.13 이생
  16. 2019.05.07 오래 한 생각
  17. 2019.04.29 제왕나비 - 아내에게
  18. 2019.04.22 풀씨
  19. 2019.04.15 그가 지나갔다
  20. 2019.04.08 건들대봐

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고증식(1959~)

 

날이 저물고 장사를 마친 부부가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탁주도 한 잔 곁들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의 온순한 성품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죽을 내놓으면서 만난 소박하고, 자상하고, 명랑하고,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들의 됨됨이에 대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평원(平原)의 고귀한,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늙은 염소처럼 순한 부부가 살아가는 훈훈한 삶의 풍경이다.

고증식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을 펴내며 “아홉 살짜리 두고 아버지 떠나시던 그해가 지금의 딱 이 나이다. 아버지 못 가보신 길을 이제부터 시작한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우짜든지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라고 썼다. 희로애락을 살아도, 곡절이 많더라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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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앉아 여름비를 본다


발밑이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단

열무 한단

부추, 시금치 한단 같은


그리움 한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놓은

내 손 한묶음의

크기


고영민(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박용래 시인은 억수 같은 장대비의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는 누군가 자신을 목놓아 부르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장대비 빗줄기를 “상아(象牙)빛 채찍”이라고 해 영혼의 고독과 불안과 통증을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여름비를 대파의 하얀 뿌리 같다고 썼다. 여름비를 보면서 대파며 열무며 부추며 시금치 한단을 묶는 것을 상상한다. 기른 것의 싱싱한 한단을 묶는 일을 상상한다. 또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싱그러운 생각도 한다.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은 풍경을 바깥에 서서 평면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풍경의 공간 내부로 한걸음 들어간 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빗속으로 들어가 빗줄기를 한묶음씩 묶는 상상을 함으로써 그 풍경은 사건적 풍경으로 거듭난다. 하나의 풍경에 노동과 삶의 기억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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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간 엄마는 잘 안 오시는 것이다 우리 엄마 안 오시네 엄마처럼 기다리는 것이다 배추를 팔아 신발을 사 오실 엄마


엄마는 신발을 잊고 엄마는 빨랫비누만 소금 됫박이나 사 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좋은 날이란 신발은 오지 않고 좋은 날만 따라왔던 것이다


언 발로 사위를 찍고 사라진 고라니의 겨울 산정도 신발처럼 저 너머에 솟아 있었던 것이다 고라니는 떠나가고 좋은 날은 혼자 남아 기다렸던 것이다 고라니도 신발을 깜빡했다고 들켜주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좋은 날은 어디선가 제 신발을 찾아 신고 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정윤천(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엄마는 장에 가시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배추를 팔러 장에 가시고, 장에 간 엄마가 새 신발을 사서 오시길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그러나 엄마는 빨랫비누와 소금만을 사서 돌아오시고, 아이의 신발을 사서 오시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잊으신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생필품만을 살 수밖에 없으셨겠지만.) 아이는 응석을 부리며 엉엉대며 울었을 것이다. 엄마는 다음 장날에는 꼭 신발을 사다 주겠노라고 달랬을 것이다. 흰 종이 위에 아이의 작은 발을 올려놓고 본을 떠서 가겠노라고 엄마는 약속을 했을 것이다. 아이는 겨울 산꼭대기 하얀 눈밭에 찍혀 있는 고라니의 신발 없는, 맨발의 발자국과 고라니의 언 발을 생각한다. 언젠가 좋은 날이 새 신발을 신고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젊은 엄마가 계셨던 옛 시간과 백설(白雪)이 깨끗하게 눈부시던 높은 산정(山頂)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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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흰 눈발로 차마 붐비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차마 흰 눈발의 무릿매 맞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차마 흰 눈발의 유성우(流星雨) 속에 잠드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흰 눈발의 고요에 차마 가슴 데는 사랑이


흰 눈발처럼 쉬지 못하고 차마 에도는 사랑이,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오태환(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눈보라가 치는 내면이 있다. 내면의 공간에 온통 눈보라가 벌떼처럼 붐비는 이가 있다. 시인은 사랑을 겪는 이의 속마음을 눈보라 치는 공간에 빗댄다. 그리고 그 눈보라를 돌팔매 혹은 몰매,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 외면하는 듯 고요하거나 무심한 감정 등으로 이해한다. 사랑을 겪는 이의 심정은 순간순간 격렬하고, 빛나고, 놀라고, 마음이 상하고, 배회하는 심정일 테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럿의 감정이 함께 사는 내면의 공간은 큰 파도와 잠잠한 해수면이 수시로 교차하는, 깊고 광활한 바다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태환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봄이 와서 허천나게 꽃이 피면, 벌서듯이 서서 그대를 생각하는, 수척한 사랑이 있었네”라거나 “늘 그대 등 뒤에서 환한 섬들 같은 사랑이 있었네”라고 노래해서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앓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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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늘 잠이 모자랐다

학교 늦을라, 흔들어 깨우는

엄마가 미웠다 군용 모포 끌어당기는

기상나팔도 출근 재촉하는

알람도 싫었다 더 자고 싶었다

아예 깨고 싶지 않은 꽃잠도 있었다

꿈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꽃잎도 사금파리도 아스라한 별똥별인데

속절없이 깨어나 은하의 기슭

뒤척이는 날이 많아졌다 어쩌다 돋는

꿈 한 촉도 오래 정박하지 못했다

꿈의 잔해가 부스럭거렸다



굽 낮은 튜바의 음색이었다


장문석(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리고 젊은 나이에는 잠이 많아 늘 잠이 부족했는데 예순이 되니 잠이 없어졌다고 시인은 말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이 새벽이면 일어나 “은하의 기슭”을 이리저리 헤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예순의 나이는 장중한 저음(低音)을 내는 금관악기인 튜바의 음색이라고 소회를 밝힌다. 예순이 와서 잠은 사라졌지만 뭔가 이승에서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또 말씨와 행동이 정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예순 살이 되니 “산등성을 물들이는 노을빛이 고즈넉했다”라고 느끼게 되었고, 또 “삶이란 더불어 밥 먹을 인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라고 알게 되었다고 썼다.

공자는 예순 살을 ‘이순(耳順)’이라고 불렀다. 귀가 순해지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져 들으면 곧 이해가 되는 때가 예순의 때라고 했다.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고 속이 깊고 조용한 때라는 뜻일 게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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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꽃들이

사방에서 지펴진다면

알전구처럼 밝혀준다면


그 길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섧디설운

이름 하나

기억 하나

돌아오겠지요.


노향림(19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동백나무들이 빗살처럼 촘촘하게 늘어선 숲길이 있다. 그 숲길을 걸으며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그이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시인은 그 숲길에서 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글이글하는 불과도 같은 붉은 동백꽃들이 피는 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동백꽃들이 알전구처럼 환하게 피어나면 시간의 미로 속으로 사라졌던 그이의 이름과 얼굴과 기억이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그리워하면 동백숲길은 우리의 잃어버린, 부서진 옛 시간을 되찾아주고 회복시켜줄 것이기에. 아주 잊히는 것은 없고, 그리워하면 저 먼 곳에서 다시 봄처럼 옛사랑의 기억은 돌아올 것이기에. 

최근에 새 시집을 펴낸 노향림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누가 그랬던가, 시의 씨앗을 사람들 마음 안에 다 틔워주는 일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시간 속에서 잊혀가고 소외된 시의 본적지로 나는 오늘밤도 푸른 편지를 쓰리”라고 적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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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속에 구름이 살고 있었다

자신이 쏟아부었던 분량의 소나기

그다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무거운 지게를 지고 살았으면

소금쟁이가 됐을까

1초에 자기 몸길이 백배나 되는 거리의 물위를

가볍게 걸어다니는 소금쟁이가

물속에 사는 구름의 생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풀섶에서 쓰르라미가 울었다

종일 두 앞발을 비비며 우는 소리

흐르는 시냇물에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여름 한철 온 생을 빌고 있다



그림자 한 점 없는 뙤약볕 시골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루나무 꼭대기

파란 연못에 내 전생이 환하게 보이다

까무룩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시골길

너무 환한 생의 정면과 적막이 무서워 울었다


권대웅(1962~)


연못의 수면에 구름이 비치었다. 활발한 구름은 한 차례 소낙비를 뿌렸다. 연못의 수면에 소금쟁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연못의 수면과 연못의 수면에 비친 구름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구름도 소금쟁이도 지금의 시간 이전에는 무거운 생(生)을 짊어지고 살았다. 이제는 무게를 덜고 한결 경쾌해졌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수풀에서는 쓰르람쓰르람 쓰르라미가 울었다. 찌는 듯한 더위의 대낮에 시인은 시골길을 걷다 하얀 적막을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올려다본, 훤칠한 미루나무 끝 하늘에서 전생의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벽과도 같은, 깎아 세운 것 같은 적막과 딱 맞닥뜨리는 순간 생의 비의(秘義)를 보았다. 생명이 힘차고 왕성하게 자라지만 때때로 적막 산중 같기도 한 여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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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


- 정끝별(1964~)


여름이 오고 능소화가 피었다.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능소화가 피었다. 여름 내내 능소화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다. 달군 솥처럼 뜨거운 하늘 아래에 열정적으로 꽃을 피운다. 그처럼 옛집 담벼락에도 능소화가 여름을 살다 갔다. 옛집 골목과 담 아래에는 노래와 이야기와 달콤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 옛집 담벼락에 능소화도 다 졌지만.

시인은 시 ‘나침바늘을 보다’에서 “낮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물을 켜야 한다고/ 밤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불을 켜야 한다고”라고 썼다. 우리의 낮과 밤이 삶이라는 꽃의 개화를 돕던 시절이 있었다. 화관을 쓴 듯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 빠진 듯이, 염천처럼 뜨겁기만 하다면 꽃은 언제든지 필 것이다. 여름날의 능소화처럼 우리의 담벼락에 “뚜뚜랄라 따따룰루/ 명랑한 열망”으로 피어 함께 삶을 합주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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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그릇이 아니어서 물에 헹구거나 부실 일도 없다


다만 바람이 들어 와

그의 등짝을 어루만지고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추썩거리기도 한다.


또 아랫마을 개 짖는 소리가 와 들썩들썩 들쑤시지만 꼼짝을 않는다.


일체가 변하지만 변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은 변할 리 없다고 

시름이 홀로 깨어 먹 갈고

반야경이나 베껴 쓰는


그 곁에

이 새벽녘 고요는 뼈나 근육도 없이

그냥 그대로 그린 듯 앉아 있다.


홍신선(194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새벽녘에 깨어 홀로 고요와 마주한다. 고요는 한 사람처럼 시인의 방에 앉아 있다. 물론 고요는 조용하고 잠잠한, 하나의 상태일 뿐이지만.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나 개 짖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고요는 고요를 유지한다. 그것들이 고요를 깨트릴 수 없다는 것은 새벽녘의 이 고요가 얼마나 깊고 견고한 고요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시인은 고요 곁에서 경전을 베껴 쓴다. 스스로 고요한 심경에 이르기 위해서. 시인은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고요를 앞에 하다 보면 마치 비 갠 아침 녘 사물처럼 내가, 내 둘레가 한결 선명하게 보인다”라고 썼다. 큰 바람과도 같은 소란이 잦아들도록 하는 것이, 내면의 평온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팔풍(八風)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유리하고 불리한 것,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 칭찬을 받음, 속임을 당함, 고통을 겪음, 즐거운 일 등에 흔들리지 않을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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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눈을 지고도 끄떡없는,

더 새파란 그늘을 펼친 주목 옆에

고사목 하나


모가지 부서지고

어깨가 깨졌지만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죽음 속에서

죽음을 넘어

마지막 큰 가지를 북대 쪽으로

가라, 

너는 네 길을 가라

혼자서 가라, 거기에 아무것 없을지라도


굶주린 멧돼지와

피투성이 삵과

통곡하듯 번쩍이는 빙벽들의 그믐밤을 부르며


전동균(196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잣눈은 척설(尺雪)과 같은 뜻이다. 많이 쌓인 눈을 일컫는다. 말라서 죽은 나무 위에 눈이 한가득 쌓였다. 그러나 나무는 꿋꿋하게 섰다. 이 가지 저 가지가 군데군데 꺾였으나 위를 향해 곧게 섰다. 의연한 기품으로. 새파랗게 그늘을 펼치며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 흔들림이 없이 반듯하게 섰다. 시인은 이 고사목으로부터 기개를 본다. 굽히지 않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립하는 지조를 본다. ‘북대’는 신성하고 고고한 정신의 거처일 테다. 울음과 허기와 피투성이의 계곡 너머에 있는, 차디찬 빙산 그 너머에 우뚝 솟아 있는, 영적인 그런 곳일 테다. 무엇에도 기죽지 말고, 비록 종국에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 일을 생각해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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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방에 앉아 침대 옆에 놓인 시집을 읽습니다

당신이 비운 집

한쪽에 놔둔 식물에 물을 주라 하였기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도 봅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 한 병 꺼내 마셔도 좋다 하였기에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 희미한 삶의 냄새

이 삶은 달걀을 어디에 칠까요

무엇에 부딪쳐 삶을 깨뜨릴까요


이병률(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집을 비운 사람의 방에 잠시 들른 사람이 있다. 집을 비운 사람과 그 집을 방문한 사람은 서로 일상에서 친하게 교유(交遊)하는 사이. 메마른 화분에 물을 줘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러 가서 그이처럼, 그이가 읽던 시집을 읽고, 그이의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을 꺼내기도 한다. 그이가 되어본다. 그럴 때 시인은 책을 펼치고, 눕고, 혼자 먹는 이 일이 다름 아닌 삶의 희미한 냄새라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이가 매일매일을 사는 공간에서 우연히 그이가 되어봄으로써 그이의 생활과 마음 안쪽으로 들어가 보게도 된다. 그이 일상의 모래알 같은, 부서진 조각을 봄으로써 그이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도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씨와 작은 움직임 등을 읽음으로써 그이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물로 샘 전체의 물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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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림자 일렁이는 우물에

작은 새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간다

희미한 낮달도 얼굴 비쳐보다 간다


이제 아무도 두레박질을 하지 않는 우물을

하늘이 언제나 내려다본다

내가 들여다보면

나무 그림자와 안 보이는

새 그림자와 지워진 낮달이 나를 쳐다본다


흐르는 구름에 내 얼굴이 포개진다

옛날 두레박으로 길어 마시던 물맛이

괸 물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이태수(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레박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맑고 차고 푸른 우물물을 길어 올리던 때가 있었다. 어릴 적에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면에 내 작고 동그란 얼굴이 비치던 우물이다. 윤동주 시인이 시 ‘자화상’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고 노래한 그 우물이다. 시인은 옛 우물에 나무 그림자와 작은 새의 그림자와 희미한 낮달이 비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옛 우물을 들여다본다. 과거의 시간과 존재와 옛일이 수면에서 지금의 시인을 올려다본다. 나무 그림자와 새 그림자와 낮달도 시인을 쳐다본다. 우물은 거울과도 같다. 나의 내면을 비춰보는, 세계가 있는 그대로 비춰지는 물거울이기도 하다. 시인이 기억하는 옛 그 물맛이 우물의 고요함과 괴괴함을 흔들어 깨운다. 잠에서 깨어나듯 우물이 깨어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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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 모래알이 많고 많아도

제 몸 태우면서 존재하는

저 별의 수보다 많으랴


백 년 전 혹은 천 년 전에도

저절로 피어난 꽃이 있었겠나

뜻 없이 죽어간 나비가 있었겠나


너도 나도 그래,

살고 싶어서 태어난 것

살아보려고 지금은 앓고 있는 중이지

이승하(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두 다 고통의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물의 푸른 덩굴이 팔을 뻗어 위쪽을 향해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수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만큼에는 이르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존재들이 곤란을 견디고 있다. 고통 없이는 빛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반짝이는 별의 배경은 긴 밤이요, 캄캄한 어둠이다. 꽃도 나비도 살아 있음을 아픔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가고 싶어”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처럼 넓고 큰 세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승하 시인은 시 ‘시원하게’에서 “내 한 생을 살면서/ 물 한 모금 달라고 애걸하는 누군가를 위해/ 시원한 물의 시 못 보여 준다면/ 밥 먹는 일이 무슨 의미 있는가”라고 썼다. 시인이 “시원한 물의 시”를 얻는 일에도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앓는 시간을, 통증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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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꽃 진 자리

어린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정희성(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연두는 새로 갓 나온 잎의 빛깔이다. 연한 초록의 빛깔이다. 맑은 초록 혹은 조금은 덜 짙은 초록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은 당신의 봄이 연둣빛 거기까지만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산홍이 아직 피지 않은, 진달래꽃이 겨우 막 피는 그 봄의 첫머리까지만 닿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와 그 범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연두의 빛깔 거기까지만 당신의 봄을 펼치려는 것일까. 아마도 이 연두의 빛깔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설레고,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속되지 않고, 마음이 맑고 신선한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은 들떠 두근거리고, 일렁거리고, 조심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의 자세가 연두의 속뜻일 것이다. 우리 본래의 마음 그 어귀가 바로 이 연두의 빛깔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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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 되고

내가 엄마 되면

그 자장가 불러줄게

엄마가 한 번도 안 불러준

엄마가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자장가 불러줄게


내가 엄마 되고

엄마가 나 되면

예쁜 엄마 도시락 싸

시 지으러 가는 백일장에

구름처럼 흰 레이스 원피스

며칠 전날 밤부터 머리맡에 걸어둘게


나는 엄마 되고

엄마는 나 되어서

둥실


하재연(197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재연 시인은 시 ‘하나의 사람’에서 우리 개개인의 단독적인 존재를 빗대어서 “희고 차가운 빙하의 껍질 위에/ 대고 있는/ 나의 빨간/ 두 개의 발바닥”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우리는 외롭고 추운 존재이다. 

그러나 엄마가 있고, 엄마가 있어서 엄마는 딸과 아들을 품속에서 기른다. 낮고 고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잠을 재우고, 도시락을 싸서 쥐여주고, 원피스를 사서 입힌다. 누워 곤히 잠이 든 아이의 머리맡에 당신이 애써 마련한 것들을 가만히 놓아둔다. 아이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로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풍선처럼, 흰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도록. 그러나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고, 엄마의 어린 딸도 미래에는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엄마, 하고 불러본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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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김용택(1948~) 


우리의 살림은 산 아래 혹은 물가에서 이뤄진다. 그 공간에서 세간을 갖추고 한집안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다. 기쁜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다. 보람이 있어서 여한이 없다고 여길 때도 있고, 회한이 남을 때도 있다.

시인은 그 옛일들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산처럼 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산등성이가 부드럽게 뻗어 내리는 산처럼 온순하게 살고자 바라고, 스스로 낮추면서 모든 것을 이롭게 하는 물처럼 선하게 살고자 바란다. 그리고 쓴 시(詩)들이 바람처럼 쉬웠으면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불어오고 불어가는 줄을 느낄 수 있는 한 줄기 맑고 시원한 바람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자연과 더불어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 크고 너그러운 안목을 오늘은 오래 생각해보아야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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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위로 호랑무늬 깃을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대양 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잠 자며


고치에서 부활하는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최동호(194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제왕나비는 캐나다 남부, 미국 대륙, 중앙아메리카에 주로 사는 왕나비류의 하나로 꽃가루 매개종이다. 아메리카의 제왕나비는 매년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에 캐나다를 출발해 장장 5000㎞를 날아가서 멕시코의 고산지대에서 겨울을 난다. 숲의 나무에는 수천만 마리의 나비들이 날아와 열매처럼 매달리는데, 이 시기를 사람들은 망자(亡子)를 기리는 기간으로 여긴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나비와 함께 찾아온다고 믿는 것이다. 저편으로부터 이쪽으로 멀고 먼 거리를 날아오는, 막막하게 넓고 깊은 바다를 건너 날아오는 놀랍고 신기한 이 일은 관계의 이끌림과 맺음, 그리고 모든 생명 존재들 사이의 숭고한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난관과 장애를 넘어서서 이어지는, 영속적인 인연을 생각하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망자의 영혼인 듯 나비가 날아와, 신생의 알을 낳고 스스로는 죽음을 맞는 이 일은 강물처럼 도도(滔滔)하게 흐르는 우주의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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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풀씨는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난다


날다가 물에 뜨면


물 타고 가고


담 넘어 어느 집 뜨락


혹은 다람쥐 고라니 산새


깃들여 사는 산야(山野)


철조망 넘어 북에도 남에도


거침없이 날아가 앉는다


막힘이 없다


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더럽히지 말라


이 맑은 물 맑은 공기


맑은 마음


 강민(193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풀씨는 어디에라도 날아간다. 바람에 실려, 물에 떠서 걸림도 막힘도 없이 날아간다. 어느 집 조용한 뜨락에 내려앉고, 산과 들에 내려앉는다. 산과 들에 사뿐히 내려앉아 다람쥐, 고라니, 산새와 함께 사는 자연이 된다. 풀씨는 철조망을 넘어서 날아간다. 풀씨에게 막힌 통로란 없다. 풀씨는 누구와도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시인은 시 ‘동오리 15’에서 “그대 바람으로 떠나요/ 떠난 김에 훨훨 날아/ 산 넘고 물 건너/ 이 봄의 씨앗 실어다/ 거기에도 뿌려줘요/ 샘물가 돌 틈에도/ 뒤울안 툇마루 주춧돌 사이에도/ 정자나무 그늘에 쉬는/ 그이들의 마음밭에도/ 뿌려줘요, 봄의 씨앗”이라고 썼다. 봄바람을 타고 풀씨가 더 멀리 나아갔으면 한다. 벽을 허물 듯이 벽을 넘어, 높은 산맥을 넘어, 저 먼 산하(山河)까지 날아갔으면 한다. 날아가 앉아 푸른 싹을 틔워 곳곳의 들풀들과 하나의 자연이 되었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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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동백나무 그늘의 끝을 막 지나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참새 몇 마리가 은행나무 이파리 사이에 숨어 뭐라 뭐라 떠들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은회색 승용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갈 때

그가 지나갔다


노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동네를 돌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왕개미 한 마리가 제 몸만 한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힘겹게 보도블록 가장자리를 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세상에!

얼굴도 없이

이경림(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 여자와 참새 몇 마리, 승용차, 아이들, 왕개미가 각각 활동할 때 얼굴도 없는 그가 지나갔다고 한다. 그는 누구일까. 그가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이 아닐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냇물 위에 떠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종이배 같은 시간이 아닐까. 혹은 매일매일에 늘 나의 심중(心中)에 살고 있는, 그리운 사람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보든 함께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비록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일지라도. 이도 아니면 내가 신앙하는 ‘님’이 아닐까. 이도 아니면 소소하지만 스스로 빛나는 일상의 순간이 아닐까. 여럿의 주체들이 각자 힘껏 살고 있음에도 그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하고, 놓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스침과 사라짐에 빗댄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지낸 하루가 나는 좋았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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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흥에 겨워

건들대는 거야.

천성이 그래,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비 내리면 비와 함께

새들이 노래하면

새들의 날개에 얹혀

같이 날아보는 거야.


그런 게 즐거움 아니냐고

너도 건들대보라고,

죽기 전에 후회 없이

한번 건들대보라고. 

김형영(1944~)


건들대는 것은 몸과 마음에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일 테다. 언덕을 넘어서오며 버드나무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가만가만 흔들어놓는 봄바람처럼. 조금은 들떠서 조금은 신이 나서 흥에 겨워 살아도 좋겠다. 바람이 저편으로 가면 바람을 따라서가고, 비가 오면 빗방울처럼 수면 위를 뛰고, 새들이 울면 새들의 악보에 맞춰 노래를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 너무 무겁고 딱딱하게 살지 않고,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고. 살구꽃이 피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고, 보리밭이 넘실넘실하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형영 시인은 시 ‘화살시편 29 - 봄을 믿어봐’에서 “봄바람 마신 새들/ 노랫소리 들리지?/ 감기 든 목소리가 아니야/ 목청이 탁 트였어// 믿을 건 봄뿐이야”라고 썼다. 봄바람을 마신 새처럼 봄을 흥얼거리면서 살아도 좋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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