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327건

  1. 2019.10.21
  2. 2019.10.15 자연법
  3. 2019.10.07 살얼음에 대하여
  4. 2019.09.30 술배소리
  5. 2019.09.23 전화를 걸고 있는 중
  6. 2019.09.16 자화상
  7. 2019.09.09 스틸
  8. 2019.09.02 솜반천길
  9. 2019.08.26 따스한 것을 노래함
  10. 2019.08.19 초식동물
  11. 2019.08.12 여름비 한단
  12. 2019.08.05 좋은 날
  13. 2019.07.29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 41
  14. 2019.07.22 예순이 왔다
  15. 2019.07.15 동백숲길에서
  16. 2019.07.08 여름
  17. 2019.07.01 염천
  18. 2019.06.24 새벽 고요는
  19. 2019.06.17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20. 2019.06.10 아무도 모르게

일반 칼럼/경향시선

어느날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의 반만큼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말의

성찬이나 말의 홍수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말이 고팠다

고픈 말을 움켜쥐고 말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쉬운 말들과 놀고 싶어서 말의

공터를 한번 힐끗 본다

참말은 문득 예리한 혀끝으로

잘려나가고 씨가 된 말이

땅끝으로 날아다닌다

말이 꽃을 피운다면 기쁘리. 말이

길을 낸다면 웃으리. 말은

누구에겐들 업(業)이 아니리


모든 말이 허망하여도 말의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냐

우리는 누구나

쌓인 말의 나무 밑으로 돌아간다.


천양희(19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나치게 많은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낸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홍수를 이룬 말들 속에서 오히려 말의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말에도 때가 있고, 말에도 공터가 있다. “말의 공터”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 말의 비어 있는 땅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말은 나직하고 신중하고 고상하다. 여지를 두는 말, 에둘러 해서 듣는 이가 짐작하게 하는 말이 좋은 말이다. 그런 말은 세상에 꽃을 피우고, 세상에 길을 낸다.

그러나 이 세상엔 창처럼 찌르는 말이 넘쳐난다.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이 넘쳐난다.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는 말이 넘쳐난다. 불 같은 말은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다치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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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을 앞세우고 간다.

여울물을 기어오르는 피라미처럼

공기주머니 하나 달랑 차고

소유한 게 적어도 물 따라 산다.


풀잎에 알을 낳는 풀벌레처럼

주어진 시간 그대로,

청설모가 굴밤 한 톨 물고 가듯

가랑잎 같은 시를

소중히 갈무리하고 산다.


소슬한 가을바람 따라 산다.

새빨갛게 익은 석류가

저절로 팍, 하고 깨어지듯

작은 소리를 알아듣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산다.


권달웅(194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자연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운다고 말한다. 여울물에 밝게 뜬 편월(片月)을 앞세우고 헤엄치는 피라미는 가진 것이 없어도 물의 흐름에 맞춰서 산다. 풀벌레가 풀잎에 알을 낳고 사는 것을 받아들이고, 청설모가 졸참나무의 열매 한 톨에 만족하듯이 시인은 가랑잎 같은 시 한 편을 짓고 사는 일 외엔 더 바라는 게 없다.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소리와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 잘 알아들으면서 살고자 한다.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그런 가을바람에 어울려 살고자 한다.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호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나란히 살고자 한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잔물결 같은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자연의 현덕(玄德)을 따라 사는 일일 테다. 나무가 너무 뻣뻣하면 꺾어지고, 소나기가 종일 쏟아지는 법은 없다는 지혜를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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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난 게 아니라

도착한 거예요.

추운 생명으로 왔지요.

추운 몸으로 왔어요.

그때가 아마 늦은 밤이었지.

북극의 생모(生母)가 찾아왔어요.

눈 포대기에서 보채는 

동생들을 안고 얼음을 짜 먹이며

얼음의 말로 말을 가르치듯.

이 밤 어느 웅덩이에 고여 있을 

그대들.

수없는 밤 고여 있었을 그대들.

머리맡에 밤바람이 

주저리주저리 한 말.

그 밑바닥 말.

바닥에 가 닿은 말.

그대를 잉태했던 북극의 어머니가 

평생 물걸레질한 그 얼음 바닥의 

무늬가 손금에 박힌 것처럼.

굴복할 수 없는 무의 물결처럼.

궁핍처럼 스스로를 더 강하게 

얼려야 하는 얼음처럼.

조정권(1949~201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정권 시인은 세속의 시를 고독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 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라고 쓴 시 ‘산정묘지 1’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일생(一生)의 시편들은 속악한 물신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정신의 드높음을 노래했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인간 본래의 가난함을 노래한다. 우리 존재가 “추운 생명”이요, “추운 몸”이라고 말한다. 말함으로써 우리 본래의 외로움과 적막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격조, 고고함, 염결(廉潔), 견딤, 정신의 고요하고 청빈한 산정(山頂)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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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야 갈치야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에야 술배야

가거도 어부들의 고기 잡는 소리를

밥상머리에서 환청으로 듣곤 한다


벼야 조야 배추야 시금치야

콩아 닭아 김아 마늘아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놓인 밥과 반찬에 따라 가사를 바꿔 부르며

숟가락 젓가락을 들곤 한다


그토록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소화가 되겠느냐 핀잔하는 이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이에게 권하고 싶다

술배소리 음미하며 한 끼 먹어보라고

그래야 음식마다 맛이 새롭고


먹고사는 일이 더욱 생생하게 소중해지므로


최두석(1955~)


시인은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어부들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던져서 먹을 것을 얻으려 할 때 부르는 소리를 소개한다. 시인은 바다에서 난 것을 밥상머리에서 먹을 때 이 술배소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들판과 자연의 것으로 한 끼의 밥과 찬을 마련해 한 숟가락 떠먹을 때 술배소리의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먹는 것이다. 먹어야 살 수 있다.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 우리는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지탱할 수 없다. 우리의 한 끼는 다른 생명에게서 얻어 온, 거룩한 한 끼이다. 흰 밥과 따끈따끈한 국과 서너 가지의 찬을 받을 적에는 두 손으로 겸허하게 받아야 한다. 그러면 다른 목숨의 희생으로 장만된 음식 앞에 엄숙해지고, 또 그 희생 덕에 살고 있는 내 목숨이 간절해진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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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이면

전화를 걸고 싶다

하늘 맑고 구름 높이 뜬 날이면

더욱 전화를 걸고 싶다


전화 가운데서도 핸드폰으로

멀리, 멀리 있는 사람에게

오래, 오래 잊고 살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을 찾아내어


잘 있느냐고

잘 있었다고

잘 있으라고

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은가보다

가볍고 가벼운 전화 음성이 되고 싶은가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끌고

개울 길을 따라가면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다.


나태주(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개울이 흘러가는 걸 보고 따라가면서, 자전거를 끌고 홀로 가면서 누군가를 떠올려 전화를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한참을 잊고 살았던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의 일을 묻고, 오늘의 안부를 전하고, 내일의 안녕을 기원한다. 따뜻하고 밝고 경쾌한 음색으로. 착하고 어진 성품에서 생겨난 전화 음색으로.

나태주 시인은 자신이 쓴 글에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선량함을 꼽는다. “시인들은 겸손해야 하고 늘 자기만의 문제나 느낌, 생각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성정은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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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1917~1945)


한 사나이는 산기슭의 불룩하게 나온 귀퉁이를 돌아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는 우물을 찾아간다. 우물의 저 깊은 수면에는 달과 구름과 하늘의 움직임이 비치었고, 맑은 바람이 돌고, 선선한 가을이 있다. 그리고 거울 같은 우물물에 비친 한 사나이의 얼굴이 있다. 시인은 이 우물물 속 사나이를 보고선 뜻이 맞지 않고 초라한 몰골에 밉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머잖아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다. 우물물에 비친 사나이는 시인의 자화상인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자괴의 탄식과 딱하게 여기는 연민이 교차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39년에 발표되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고뇌와 고독이 담겨 있다. 스스로 자신을 바로 보아 양심에 거리끼고 떳떳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큰 용기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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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입술을 빠져나온

동그라미 담배 연기처럼

뜨거운 목구멍 문양으로

쓰라린 목젖 문양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한 코 한 코 엮어

태피스트리를 짠 사람이 있다


호시탐탐 달아나는 바람의 코를 꿰어

벽에 걸어놓고야 말겠다고


핏빛 노을 번져드는 사막에

웅크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던 사람

그가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


셀 수 없는 정지화면이

모여 한 생애가 되고


한 번 멈춰두고 영원히 잊어버린

영화의 한 컷처럼 나는

지직거린다


한 코만 놓치면

주르륵 풀어져버리는

마음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정채원(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태피스트리는 여러 가지의 색실로 그림을 짜서 넣은 직물을 뜻한다고 한다. 한 코 한 코를 서로 끼워서 뜨개 옷이 되듯이 하나하나의 색실을 엮어서 면직물이나 모직물 등을 만드는 것일 테다. 

시인은 우리의 생애도 씨실 혹은 날실과 같은 수많은 정지화면이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경우라면 한 장면의 사진, 즉 스틸이 모이고 모여서 영화의 필름을 완성하듯이. 

그러나 우리의 삶의 시간은 연기와 같고, 한줄기의 바람과도 같아서 이내 뿔뿔이 흩어지고 잊히기 쉽다. 우리의 마음 또한 코와도 같은 하나의 실마리에 의해 풀어져버리기 쉽다. 

물론 가뭇없이 사라지는 시간들 속에 강렬한 기억의 한 순간이 있다. 한 번 세차게 쏟아진 소나기와도 같은 정지화면의 시간이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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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


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현택훈(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솜반천은 제주의 도심 속에 있는 생태하천이자 천지연 폭포의 상류에 있는 물줄기이다.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솜반천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중에 만난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말한다. 시인은 신앙, 매일매일 이어지는 생활의 곤란,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동심 등등을 만나고 본다. 그리고 솜반천이 푸른 바다로 나아가는 길에 만든 우묵한 물웅덩이들을 주목한다. 그 물웅덩이들에게 방언으로 특별하게 이름을 부여한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도 읽는다. 이 모두는 솜반천 천변의 시간과 풍경,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이며, 평범하고 반복되고 세세해보이지만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아침의 선선해진 공기, 귀뚜라미 울음소리, 밝은 달, 햇사과 등이 9월의 가을을 이루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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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개의


돌복숭아가 익듯이


아무렇지 않게 열(熱)한 땅 기운


그 끝없이 더운


크고 따스한 가슴…


늘 사람이 지닌


엷게 열(熱)한 꿈으로 하여


새로운 비극(悲劇)을 빚지 말자.


자연(自然)처럼 믿을 수 있는


다만 한오리 인류(人類)의 체온(體溫)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에


의지하라.


의지하여 너그러이 살아 보아라.


박목월(1915~197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땅의 기운이 없으면 무엇도 위쪽으로 자라날 수 없다. 뜨거운 땅의 기운이 있어서 한 알의 돌복숭아도 계절에 맞춰 익는다. 시인은 하나의 성숙과 무르익음을 가능하게 하는 그 근거를 “크고 따스한 가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인류에게도 땅처럼 견고하고 큰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인류의 체온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이 있음을 잊지 않아서 늘 너그럽게 살자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에는 관대한 성품의 넓은 영지(領地)가 있다. 그러므로 음성도 눈빛도 표정도 부드럽고 순하고 서글서글하게 할 일이다. 작고 사소하고 낮은 그 모든 것들에게도 유심하게 넉넉하게 할 일이다. 박목월 시인이 시 ‘내리막길의 기도’에서 “어질게 하옵소서/ 사람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수록/ 안으로 환하게/ 눈뜨게 하옵소서”라고 기원했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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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고증식(1959~)

 

날이 저물고 장사를 마친 부부가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탁주도 한 잔 곁들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의 온순한 성품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죽을 내놓으면서 만난 소박하고, 자상하고, 명랑하고,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들의 됨됨이에 대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평원(平原)의 고귀한,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늙은 염소처럼 순한 부부가 살아가는 훈훈한 삶의 풍경이다.

고증식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을 펴내며 “아홉 살짜리 두고 아버지 떠나시던 그해가 지금의 딱 이 나이다. 아버지 못 가보신 길을 이제부터 시작한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우짜든지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라고 썼다. 희로애락을 살아도, 곡절이 많더라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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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앉아 여름비를 본다


발밑이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단

열무 한단

부추, 시금치 한단 같은


그리움 한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놓은

내 손 한묶음의

크기


고영민(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박용래 시인은 억수 같은 장대비의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는 누군가 자신을 목놓아 부르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장대비 빗줄기를 “상아(象牙)빛 채찍”이라고 해 영혼의 고독과 불안과 통증을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여름비를 대파의 하얀 뿌리 같다고 썼다. 여름비를 보면서 대파며 열무며 부추며 시금치 한단을 묶는 것을 상상한다. 기른 것의 싱싱한 한단을 묶는 일을 상상한다. 또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싱그러운 생각도 한다.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은 풍경을 바깥에 서서 평면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풍경의 공간 내부로 한걸음 들어간 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빗속으로 들어가 빗줄기를 한묶음씩 묶는 상상을 함으로써 그 풍경은 사건적 풍경으로 거듭난다. 하나의 풍경에 노동과 삶의 기억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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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간 엄마는 잘 안 오시는 것이다 우리 엄마 안 오시네 엄마처럼 기다리는 것이다 배추를 팔아 신발을 사 오실 엄마


엄마는 신발을 잊고 엄마는 빨랫비누만 소금 됫박이나 사 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좋은 날이란 신발은 오지 않고 좋은 날만 따라왔던 것이다


언 발로 사위를 찍고 사라진 고라니의 겨울 산정도 신발처럼 저 너머에 솟아 있었던 것이다 고라니는 떠나가고 좋은 날은 혼자 남아 기다렸던 것이다 고라니도 신발을 깜빡했다고 들켜주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좋은 날은 어디선가 제 신발을 찾아 신고 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정윤천(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엄마는 장에 가시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배추를 팔러 장에 가시고, 장에 간 엄마가 새 신발을 사서 오시길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그러나 엄마는 빨랫비누와 소금만을 사서 돌아오시고, 아이의 신발을 사서 오시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잊으신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생필품만을 살 수밖에 없으셨겠지만.) 아이는 응석을 부리며 엉엉대며 울었을 것이다. 엄마는 다음 장날에는 꼭 신발을 사다 주겠노라고 달랬을 것이다. 흰 종이 위에 아이의 작은 발을 올려놓고 본을 떠서 가겠노라고 엄마는 약속을 했을 것이다. 아이는 겨울 산꼭대기 하얀 눈밭에 찍혀 있는 고라니의 신발 없는, 맨발의 발자국과 고라니의 언 발을 생각한다. 언젠가 좋은 날이 새 신발을 신고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젊은 엄마가 계셨던 옛 시간과 백설(白雪)이 깨끗하게 눈부시던 높은 산정(山頂)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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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흰 눈발로 차마 붐비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차마 흰 눈발의 무릿매 맞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차마 흰 눈발의 유성우(流星雨) 속에 잠드는 사랑이 있었네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흰 눈발의 고요에 차마 가슴 데는 사랑이


흰 눈발처럼 쉬지 못하고 차마 에도는 사랑이, 내 안에 저렇게 눈보라 쳐서


오태환(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눈보라가 치는 내면이 있다. 내면의 공간에 온통 눈보라가 벌떼처럼 붐비는 이가 있다. 시인은 사랑을 겪는 이의 속마음을 눈보라 치는 공간에 빗댄다. 그리고 그 눈보라를 돌팔매 혹은 몰매,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 외면하는 듯 고요하거나 무심한 감정 등으로 이해한다. 사랑을 겪는 이의 심정은 순간순간 격렬하고, 빛나고, 놀라고, 마음이 상하고, 배회하는 심정일 테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럿의 감정이 함께 사는 내면의 공간은 큰 파도와 잠잠한 해수면이 수시로 교차하는, 깊고 광활한 바다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태환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봄이 와서 허천나게 꽃이 피면, 벌서듯이 서서 그대를 생각하는, 수척한 사랑이 있었네”라거나 “늘 그대 등 뒤에서 환한 섬들 같은 사랑이 있었네”라고 노래해서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앓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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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늘 잠이 모자랐다

학교 늦을라, 흔들어 깨우는

엄마가 미웠다 군용 모포 끌어당기는

기상나팔도 출근 재촉하는

알람도 싫었다 더 자고 싶었다

아예 깨고 싶지 않은 꽃잠도 있었다

꿈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꽃잎도 사금파리도 아스라한 별똥별인데

속절없이 깨어나 은하의 기슭

뒤척이는 날이 많아졌다 어쩌다 돋는

꿈 한 촉도 오래 정박하지 못했다

꿈의 잔해가 부스럭거렸다



굽 낮은 튜바의 음색이었다


장문석(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리고 젊은 나이에는 잠이 많아 늘 잠이 부족했는데 예순이 되니 잠이 없어졌다고 시인은 말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이 새벽이면 일어나 “은하의 기슭”을 이리저리 헤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예순의 나이는 장중한 저음(低音)을 내는 금관악기인 튜바의 음색이라고 소회를 밝힌다. 예순이 와서 잠은 사라졌지만 뭔가 이승에서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또 말씨와 행동이 정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예순 살이 되니 “산등성을 물들이는 노을빛이 고즈넉했다”라고 느끼게 되었고, 또 “삶이란 더불어 밥 먹을 인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라고 알게 되었다고 썼다.

공자는 예순 살을 ‘이순(耳順)’이라고 불렀다. 귀가 순해지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져 들으면 곧 이해가 되는 때가 예순의 때라고 했다.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고 속이 깊고 조용한 때라는 뜻일 게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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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꽃들이

사방에서 지펴진다면

알전구처럼 밝혀준다면


그 길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섧디설운

이름 하나

기억 하나

돌아오겠지요.


노향림(19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동백나무들이 빗살처럼 촘촘하게 늘어선 숲길이 있다. 그 숲길을 걸으며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그이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시인은 그 숲길에서 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글이글하는 불과도 같은 붉은 동백꽃들이 피는 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동백꽃들이 알전구처럼 환하게 피어나면 시간의 미로 속으로 사라졌던 그이의 이름과 얼굴과 기억이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그리워하면 동백숲길은 우리의 잃어버린, 부서진 옛 시간을 되찾아주고 회복시켜줄 것이기에. 아주 잊히는 것은 없고, 그리워하면 저 먼 곳에서 다시 봄처럼 옛사랑의 기억은 돌아올 것이기에. 

최근에 새 시집을 펴낸 노향림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누가 그랬던가, 시의 씨앗을 사람들 마음 안에 다 틔워주는 일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시간 속에서 잊혀가고 소외된 시의 본적지로 나는 오늘밤도 푸른 편지를 쓰리”라고 적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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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속에 구름이 살고 있었다

자신이 쏟아부었던 분량의 소나기

그다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무거운 지게를 지고 살았으면

소금쟁이가 됐을까

1초에 자기 몸길이 백배나 되는 거리의 물위를

가볍게 걸어다니는 소금쟁이가

물속에 사는 구름의 생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풀섶에서 쓰르라미가 울었다

종일 두 앞발을 비비며 우는 소리

흐르는 시냇물에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여름 한철 온 생을 빌고 있다



그림자 한 점 없는 뙤약볕 시골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루나무 꼭대기

파란 연못에 내 전생이 환하게 보이다

까무룩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시골길

너무 환한 생의 정면과 적막이 무서워 울었다


권대웅(1962~)


연못의 수면에 구름이 비치었다. 활발한 구름은 한 차례 소낙비를 뿌렸다. 연못의 수면에 소금쟁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연못의 수면과 연못의 수면에 비친 구름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구름도 소금쟁이도 지금의 시간 이전에는 무거운 생(生)을 짊어지고 살았다. 이제는 무게를 덜고 한결 경쾌해졌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수풀에서는 쓰르람쓰르람 쓰르라미가 울었다. 찌는 듯한 더위의 대낮에 시인은 시골길을 걷다 하얀 적막을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올려다본, 훤칠한 미루나무 끝 하늘에서 전생의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벽과도 같은, 깎아 세운 것 같은 적막과 딱 맞닥뜨리는 순간 생의 비의(秘義)를 보았다. 생명이 힘차고 왕성하게 자라지만 때때로 적막 산중 같기도 한 여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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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


- 정끝별(1964~)


여름이 오고 능소화가 피었다.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능소화가 피었다. 여름 내내 능소화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다. 달군 솥처럼 뜨거운 하늘 아래에 열정적으로 꽃을 피운다. 그처럼 옛집 담벼락에도 능소화가 여름을 살다 갔다. 옛집 골목과 담 아래에는 노래와 이야기와 달콤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 옛집 담벼락에 능소화도 다 졌지만.

시인은 시 ‘나침바늘을 보다’에서 “낮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물을 켜야 한다고/ 밤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불을 켜야 한다고”라고 썼다. 우리의 낮과 밤이 삶이라는 꽃의 개화를 돕던 시절이 있었다. 화관을 쓴 듯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 빠진 듯이, 염천처럼 뜨겁기만 하다면 꽃은 언제든지 필 것이다. 여름날의 능소화처럼 우리의 담벼락에 “뚜뚜랄라 따따룰루/ 명랑한 열망”으로 피어 함께 삶을 합주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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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그릇이 아니어서 물에 헹구거나 부실 일도 없다


다만 바람이 들어 와

그의 등짝을 어루만지고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추썩거리기도 한다.


또 아랫마을 개 짖는 소리가 와 들썩들썩 들쑤시지만 꼼짝을 않는다.


일체가 변하지만 변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은 변할 리 없다고 

시름이 홀로 깨어 먹 갈고

반야경이나 베껴 쓰는


그 곁에

이 새벽녘 고요는 뼈나 근육도 없이

그냥 그대로 그린 듯 앉아 있다.


홍신선(194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새벽녘에 깨어 홀로 고요와 마주한다. 고요는 한 사람처럼 시인의 방에 앉아 있다. 물론 고요는 조용하고 잠잠한, 하나의 상태일 뿐이지만.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나 개 짖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고요는 고요를 유지한다. 그것들이 고요를 깨트릴 수 없다는 것은 새벽녘의 이 고요가 얼마나 깊고 견고한 고요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시인은 고요 곁에서 경전을 베껴 쓴다. 스스로 고요한 심경에 이르기 위해서. 시인은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고요를 앞에 하다 보면 마치 비 갠 아침 녘 사물처럼 내가, 내 둘레가 한결 선명하게 보인다”라고 썼다. 큰 바람과도 같은 소란이 잦아들도록 하는 것이, 내면의 평온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팔풍(八風)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유리하고 불리한 것,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 칭찬을 받음, 속임을 당함, 고통을 겪음, 즐거운 일 등에 흔들리지 않을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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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눈을 지고도 끄떡없는,

더 새파란 그늘을 펼친 주목 옆에

고사목 하나


모가지 부서지고

어깨가 깨졌지만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죽음 속에서

죽음을 넘어

마지막 큰 가지를 북대 쪽으로

가라, 

너는 네 길을 가라

혼자서 가라, 거기에 아무것 없을지라도


굶주린 멧돼지와

피투성이 삵과

통곡하듯 번쩍이는 빙벽들의 그믐밤을 부르며


전동균(196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잣눈은 척설(尺雪)과 같은 뜻이다. 많이 쌓인 눈을 일컫는다. 말라서 죽은 나무 위에 눈이 한가득 쌓였다. 그러나 나무는 꿋꿋하게 섰다. 이 가지 저 가지가 군데군데 꺾였으나 위를 향해 곧게 섰다. 의연한 기품으로. 새파랗게 그늘을 펼치며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 흔들림이 없이 반듯하게 섰다. 시인은 이 고사목으로부터 기개를 본다. 굽히지 않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립하는 지조를 본다. ‘북대’는 신성하고 고고한 정신의 거처일 테다. 울음과 허기와 피투성이의 계곡 너머에 있는, 차디찬 빙산 그 너머에 우뚝 솟아 있는, 영적인 그런 곳일 테다. 무엇에도 기죽지 말고, 비록 종국에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 일을 생각해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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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방에 앉아 침대 옆에 놓인 시집을 읽습니다

당신이 비운 집

한쪽에 놔둔 식물에 물을 주라 하였기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도 봅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 한 병 꺼내 마셔도 좋다 하였기에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 희미한 삶의 냄새

이 삶은 달걀을 어디에 칠까요

무엇에 부딪쳐 삶을 깨뜨릴까요


이병률(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집을 비운 사람의 방에 잠시 들른 사람이 있다. 집을 비운 사람과 그 집을 방문한 사람은 서로 일상에서 친하게 교유(交遊)하는 사이. 메마른 화분에 물을 줘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러 가서 그이처럼, 그이가 읽던 시집을 읽고, 그이의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을 꺼내기도 한다. 그이가 되어본다. 그럴 때 시인은 책을 펼치고, 눕고, 혼자 먹는 이 일이 다름 아닌 삶의 희미한 냄새라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이가 매일매일을 사는 공간에서 우연히 그이가 되어봄으로써 그이의 생활과 마음 안쪽으로 들어가 보게도 된다. 그이 일상의 모래알 같은, 부서진 조각을 봄으로써 그이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도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씨와 작은 움직임 등을 읽음으로써 그이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물로 샘 전체의 물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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