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300건

  1. 2019.04.15 그가 지나갔다
  2. 2019.04.08 건들대봐
  3. 2019.04.01 이불 비가
  4. 2019.03.25 아픈 새를 위하여
  5. 2019.03.18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6. 2019.03.11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7. 2019.03.04 돌을 집다
  8. 2019.02.25 다음에
  9. 2019.02.18 선잠
  10. 2019.02.11 세수
  11. 2019.01.28
  12. 2019.01.21 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 -연남동 4
  13. 2019.01.14 이 겨울밤
  14. 2019.01.07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15. 2018.12.31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16. 2018.12.26 고랑 몰라
  17. 2018.12.17 달의 뒤편
  18. 2018.12.10 화살
  19. 2018.12.03 마음을 들여다본다
  20. 2018.11.26 서른세 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그 여자가 동백나무 그늘의 끝을 막 지나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참새 몇 마리가 은행나무 이파리 사이에 숨어 뭐라 뭐라 떠들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은회색 승용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갈 때

그가 지나갔다


노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동네를 돌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왕개미 한 마리가 제 몸만 한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힘겹게 보도블록 가장자리를 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세상에!

얼굴도 없이

이경림(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 여자와 참새 몇 마리, 승용차, 아이들, 왕개미가 각각 활동할 때 얼굴도 없는 그가 지나갔다고 한다. 그는 누구일까. 그가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이 아닐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냇물 위에 떠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종이배 같은 시간이 아닐까. 혹은 매일매일에 늘 나의 심중(心中)에 살고 있는, 그리운 사람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보든 함께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비록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일지라도. 이도 아니면 내가 신앙하는 ‘님’이 아닐까. 이도 아니면 소소하지만 스스로 빛나는 일상의 순간이 아닐까. 여럿의 주체들이 각자 힘껏 살고 있음에도 그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하고, 놓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스침과 사라짐에 빗댄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지낸 하루가 나는 좋았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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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흥에 겨워

건들대는 거야.

천성이 그래,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비 내리면 비와 함께

새들이 노래하면

새들의 날개에 얹혀

같이 날아보는 거야.


그런 게 즐거움 아니냐고

너도 건들대보라고,

죽기 전에 후회 없이

한번 건들대보라고. 

김형영(1944~)


건들대는 것은 몸과 마음에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일 테다. 언덕을 넘어서오며 버드나무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가만가만 흔들어놓는 봄바람처럼. 조금은 들떠서 조금은 신이 나서 흥에 겨워 살아도 좋겠다. 바람이 저편으로 가면 바람을 따라서가고, 비가 오면 빗방울처럼 수면 위를 뛰고, 새들이 울면 새들의 악보에 맞춰 노래를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 너무 무겁고 딱딱하게 살지 않고,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고. 살구꽃이 피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고, 보리밭이 넘실넘실하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형영 시인은 시 ‘화살시편 29 - 봄을 믿어봐’에서 “봄바람 마신 새들/ 노랫소리 들리지?/ 감기 든 목소리가 아니야/ 목청이 탁 트였어// 믿을 건 봄뿐이야”라고 썼다. 봄바람을 마신 새처럼 봄을 흥얼거리면서 살아도 좋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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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쓰러지는 것을

일으키고 끌어올리고 또 잡아 세운다

일으키는 창유리의 아침이 눈부시지 않으면

물렁뼈로 엎디이고 말리


허기처럼 질긴 습관과 밥알처럼 끈덕진 관성이

뼈대를 세우고

호두알 깨뜨리는 책임과 밤껍질 발라내는 의무가

근육을 굴리나

때로는 널푸른 공중 그네를 매달고 싶었으리


쓰러지는 밤이 우물 속처럼 아득하더라도

무릎 당겨 세운 침대가 되는 꿈은 꾸지 말기를

어느 날 하늘을 날게 된 양탄자는

태생이 배를 깐 바닥이었으니

바닥을 타는 법을 터득해야

바람의 행간을 타고 날 수 있으리 

- 이선영(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절망의 계곡과도 같은 검은 밤이 있지만, 다시 산봉우리를 넘어오며 빛나는 새날 또한 있다. 환한 유리창으로 새날이 들어온다. 바닥을 밝히면서. 바닥에 누운 것들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새날이 와서 우리는 우물 속처럼 깊고 아득한 밤을 비로소 벗는다. 덮고 있던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다. 시인은 밤의 바닥으로부터 일어서는 일을 양탄자의 일에 비유한다. 바닥에 배를 깔고 늘펀하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양탄자가 바람을 타며 하늘을 날게 된 일에 비유한다. 양탄자처럼 바닥으로부터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를 바라면서. 한편, 시인은 시 ‘나는 직립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등 대고 있던 바닥을 딛고 일어설 때, 일어서려 할 때/ 비로소 아기는 제 안에서 움틀거리는 인간을 느끼리라.” 자신을 곧추 세우려는, 꿈틀거리는, 내면의 힘을 느껴볼 일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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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이라도 꺼내봐

미소라도 날려봐


조금은 가벼워도 괜찮아

순결하지 않아도 괜찮아

노래가 아니어도 괜찮아


아픈 것이 부끄러움은 아니니

깃털 속에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을 믿어봐


너 없는 공중은

투명한 폐허일 뿐이야


여긴 병원이 아니라

나는 너를 치료할 수 없지만


입을 맞춰줄게

부력을 채워줄게


너의 근력을 믿어봐

너의 의지를 믿어봐


고영(1966~)


아픈 새가 있다. 예전엔 공중을 투명하고 비옥한 영토로 만들던 새였다. 시인은 아픈 새에게 공중의 높이와 공중의 쾌청함을 돌려주고자 한다. 새가 없다면 공중은 황무지에 불과하기에. 몽골의 시인 롭상도르찌 을지터그스가 “풀은 모두 나무/ 돌마다 산/ 넓은 이 세상/ 사물은 모두 중심// 깃은 모두 새/ 새마다 하늘/ 풍요로운 이 삶의/ 모든 날들이 새롭다”라고 노래했듯이 새가 곧 하늘의 중심이요, 새가 곧 높고 맑은 하늘이기에. 시인은 새의 비상과 새의 자유를 위하여 심장의 박동과 근력과 의지를 스스로 신뢰하라고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흡족하지 않고 모자람이 있고 순탄하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다시 한번 더 하늘을 향해 떠오르자고 격려한다. 마음도 기운도 꺾이지 말라고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에게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내일의 벽공(碧空)이 기다리고 있기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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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1939~)

떨어진 공은 바닥을 탕, 탕 치며 다시 튀어 오른다. 용수철처럼 튀어 가볍게 떠오른다. 빠르게 그리고 힘이 넘치면서. 둥근 공은 쓰러져 몸져눕지 않는다. 늘 금방이라도 활동하겠다는 태세다. 어떠한 삶의 파도에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자세다. 생명의 불을 꺼뜨리는 일이 없다.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동력을 잃지 않는다. 둥근 공의 빛나는, 충만한,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상찬하면서 시인은 공을 “탄력의 나라의/ 왕자”라고 멋지게 명명한다. 우리의 마음도 이 “탄력의 나라”에 살았으면 한다.


우리는 새봄의 계절에 다시 피어난 산수유나무 노란 꽃들을 보면서 강한 탄력을 느낀다. 봄은 살아 숨쉬고, 얼굴에 몸에 의지에 활기가 돌고, 탄력이 좋다. 쇠하거나 새들새들해지는 법이 없다. 김이 식는 법이 없다. 봄이 곳곳에서 공처럼 튀어 오르고 있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봄을 보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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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이상국(194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면 벌여 놓거나 차려 놓은 것을 안으로 거둬들이게 된다. 비를 맞으면 안되는 것들은 치우거나 덮는다. 널어놓은 빨래는 거둬 안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잠시 일손을 놓는다. 누군가는 우산을 펼쳐 들고 식구를 마중 나가기도 한다. 비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벌판을 지나 벌떼처럼 온다. 와서 새잎들을 두드리고, 연못을 두드리고, 장독을 두드리고, 지붕을 두드리고, 사람의 애틋한 심사(心思)를 두드린다. 봄비가 좀 넉넉하게 왔으면 좋겠다. 나도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고 싶다. 이따금 생각도 쉬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던 비 그치면 봄 하늘이 보리밭처럼 푸르게 드러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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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를 집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돌 하나 밑에 돌의 그림자 하나가 생겼다


돌의 그림자 하나는 얇다 돌 하나에 눌린 돌의 그림자 하나가 오목해지면서 오그라든다


오그라든 돌의 그림자 하나가 돌 하나를 감쌌다


돌 하나를 감싼 돌의 그림자 하나가 있고, 돌 하나의 그림자에 감싸인 돌 하나가 있고,


돌과 그림자는 각각이고 돌 하나를 감싼 적막과 돌의 그림자 하나를 감싼 적막이 각각이다


돌과 그림자와 적막은 겹겹이고 적막은 몇 겹을 겹쳐도 투명하다


- 위선환(194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위선환 시인은 최근에 새로운 시집을 펴내면서 이렇게 썼다. “사물은 낱이고 자체(自體)다. 언어는 사물을 드러낸다. 사물을 드러내는 언어와 언어가 드러내는 사물은 하나다. 언어는 사물이다.”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라고 했다.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이다. 돌, 그림자, 적막은 각각 독립적이고 고유하고 온전하다. 그리고 저마다 살아 있고, 움직인다. 심지어 돌에서 태어난 돌의 그림자는 돌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도 의지적으로 오히려 돌을 감싼다. 적막을 하나의 사물로, 하나의 존재로 보는 시각도 새롭고 이채롭다. 이런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대립은 사라지고 원융(圓融)의 세상이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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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 박소란(198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언젠가, 나중에 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이번 차례가 아니라 뒤에 하자는 이 말은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이 말이 꼭 빈말만은 아니어서 기대가 생긴다. 더욱이 사랑의 감정이 있는 사이에 오간다면 설렘이 있다. 설렘이 있어서 마음은 뒷날의 시간으로 먼저 가서 살게 된다. 비록 이미 해놓은 그 약속이 오늘 지켜지지 않고 다시 미뤄지더라도, 늘 다음이 또 오더라도, 저 백반집에 가서 한 끼의 밥을 먹는 일이 또 연기되더라도 마음은 후일의 때로 먼저 가서 살게 된다. ‘다음에’라는 말은 “공연히 기다리는 이의 마음이” 되게 하는 말이 아닐지. 사랑의 언덕 위를 불어가는 봄바람 같은 말쯤이 아닐지.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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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박준(198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옛 시간에 엉성했고 서툴렀던 사랑이 가슴에 살았다. 음식을 나눠 먹었고, 또 나른하고 보드라운 시간이 좋았다. 남들만큼 잘살고 싶었다.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소소한 몸놀림만으로도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서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노래와도 같은 빛이 있었다. 새 촉이 나듯이 새로이 올 내일이 있었다. 깊이 들지 못하는 선잠 같았던, 곧 깨고 말았지만 지금은 그리워하게 된 옛사랑의 시간이 있었다. 허름했고, 격랑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수두룩했지만, 어설펐지만, 사랑의 느낌이 마음의 탁자 위에 꽃병처럼 놓여 있었다.

지금 사랑의 시간을 살고 있다면, 허밍처럼 즐겁고 상쾌하게 사랑의 시간만을 살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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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아 강물을 받아요

그 물로 얼굴을 비벼요

물고기 냄새와 달빛 냄새가

나네요

아침 해가 강물에게 들려준

얘기를 느낄 수 있어요

 

손에서 얼굴 냄새가 나요

평생 화장수 한번

바르지 않았죠

슬픈 날은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나요

반짝반짝 흘러내리는 별

내 몸 어딘가 이리 많은 별이

있었다니 신비해요

별이 있어 세월 내내

행복했지요

별이 있어 해와 달도

외롭지 않았지요

 

슬플 때면 강으로 가요

쭈그리고 앉아

강물로 얼굴을 비벼요

얼굴이 환해지니

그리운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곽재구(195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깨끗한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했으면 좋겠다. 물고기들의 집인 강물을 떠서. 초승달과 만월의 빛이 밤새 하얗게 내린 강물을 떠서.

그렇게 강물로 얼굴을 감쌌으면 한다. 슬픈 날엔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외롭고 쓸쓸하고 어두운 시간과 장소에 별이 살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별은 스스로 빛을 모아 빛나면서 슬픔을 견뎌내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도 강에 대해 노래했다. ‘물고기와 나’에서는 “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라고 썼고, ‘강물’에서는 “물을 보면 좋아요/ 종일 노래 불러요”라고 썼다. 강물에서 춤과 노래를 발견했다. 우리의 일상을 강물처럼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한다면 우리도 보다 다양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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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아직 던져지지 않은 돌

아직 부서지지 않은 돌

 

아직 정을 맞지 않은 돌

 

아직 푸른 이끼를

천사의 옷처럼 두르고 있는 돌

 

아직 말하여지지 않은 돌

아직 침묵을 수업 중인 돌

 

아직 이슬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돌

 

그리고 잠시 손에 쥐었다

내려놓은 돌

 

아직 조금 빛을 품고 있는 돌

 

유강희(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곳에 가만히 앉은 돌멩이가 하나 있다. 햇살 아래 잠든 듯이. 아직은 생김새가 태어난 모양 그대로인 돌멩이다. 손을 타지 않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채로. 푸른 이끼도 입고 있다. 날개를 접은 채. 태어나지 않은 언어를 갖고 있는 돌멩이. 내내 잠잠하게 있는 돌멩이. 아침이면 부시고 맑은 이슬이 이마에 데구루루 구르는 돌멩이. 그리고 한 번 나의 옷깃을 스쳐간 돌멩이. 내면에는 순수와 사랑과 빛을 하얀 새알처럼 품고 있는 돌.

시인은 시 ‘돌아’에서 이렇게 또 썼다. “돌아/ 너무 맑은 날 아침은/ 네 가난한 거죽에도/ 새 옷 한 벌 해주고 싶어// 어느 영원의 반짝이는 개울 하나/ 너랑 손잡고 건너고 싶어”

돌은 작고 고유한 존재요, 하나의 우주요, 돌은 못된 생각이 없는 착한 성격이요, 돌은 우리가 더욱더 가꾸어야 할 그 어떤 반짝임과 밝음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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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의 기억은 따뜻하다. 약국에서 두통약을 사고, 흰 양말 열 켤레를 사고, 망원시장에 들러 복숭아 몇 알을 샀다. 일요일 저녁에는 면 셔츠를 입고 스키야키를 먹으며 무연고 무덤과 양치류의 우울은 밀쳐두었다. 태풍 매미가 오던 해, 여름의 철학이나 새벽 두 시 첫 눈송이를 받던 손바닥은 기억하자.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절판된 책을 빌린 행운과 당신 이마를 때리는 초저녁 싸락눈을 사랑하자. 등 뒤로 멀어지는 이별은 용서하자. 쓸쓸하고 여윈 연남동에서도 이를 악물고 견딜 만했으니까.

장석주(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연남동’이라는 이 동네는 특정한 장소라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보통의 동네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약국과 상점과 식당과 네거리와 시장과 도서관이 있고, 사랑의 싹틈과 낙화가 있고, 휴일의 소박한 행복이 있고, 계절의 바뀜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사는, 이를 꼭 마주 물고 참으며 사는, 편두통을 앓는, 평범한 우리들이 있다. “푸른 양말을 신던 봄날”이라는 시구는 봄날의 신록을 떠올리게 한다. 또 풋풋하게 자라나는 풀들의 싱그러움처럼 마음에 신선하게 품은 내일의 계획과 희망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곳에서든, 어떤 때에든 우리는 이처럼 ‘푸른 양말’을 신을 일이다. “눈 온 뒤 파밭에서 파랗게 솟은 파인 듯” 발목에 푸른빛을 두를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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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끼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 안 나게 문을 여닫곤 한다.

누가 들을까 봐도 아닌데

그리운 문소리도 있는데.

 

귀 조금 밝히고 보니 이즘 사는 일

조약돌 밑으로 꼬리 감춘 눈석임물.

흐르긴 흐르는가?

흐르는 감각만 남았는가?

 

감각들이 연필심처럼 무뎌지고 있다.

창밖 어둠 속에 싸락눈 내리는 기척 분명한데.

눈과 귀는 창 앞에서 더듬대고 있다

그래도 볼펜처럼 이만 끝! 아닌 게 다행?

 

어디까지가 다행일까?

청각을 뿌리까지 잃은 베토벤이

소리의 어둠 속에서

소리로 숨 쉬고 소리로 노래하고 몸부림치며

소리로 밑도 끝도 없이 깊어지는 이 겨울밤.

황동규(193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이가 들면 귀로 소리를 듣는 힘도 약해진다. 귀에 보청기를 꽂은 시인은 무뎌지는 감각에 대해 생각한다.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서 없어지듯이 차츰 약해지고 꺼지는 감각에 대해 생각한다. 빼족하던 연필심이 점점 뭉뚝해지는 것처럼 감각이 서서히 무디어지고 둔해지는 게 그나마 다행 아니냐고 자문한다.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음에도 수많은 역작을 작곡한 베토벤이 감내했던 ‘소리의 어둠’을, 그리고 그의 예술혼을 생각한다. 황동규 시인은 “시(詩)에서 내려 침묵을 듣고 싶다”라고 쓴 적이 있다. 침묵은 너무 커서 밑도 끝도 없다. 요즘 겨울날 밤의 침묵은 목탄(木炭)보다 검고, 강(江)처럼 길다. 그러나 침묵은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격렬한 소리들이 간신히 결박되어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아직 쏟아지지 않은 그 소리들을 들으려는 것이리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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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바이칼호의 새 떼들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다 늙어 꿈이 이루어져

바이칼호에 가서 찬 호수에 손도 담가보고

사하라에 가서 모래 속에 발도 묻어보고

파리의 외진 카페에서 포도주에 취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행복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친구네 퀴퀴한 주막집 뒷방에서 몰래 취하거나

아니면 도랑을 쳐 얼개미로 민물새우를 건지면서


창밖엔 눈발이 치고

모래바람 부는 사하라와 고추잠자리 떼 빨간 동구 앞 길을

번갈아 오가면서, 지금 나는

병상에서 행복하다 

-신경림(1935~)


일러스트_김상민 화백

한때 바람을 쐬러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자유롭게 높이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았다. 그러면서 카사블랑카와 바이칼 호수로의 유랑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이국의 큰 호수와 아득한 모래사막과 번화한 거리를 다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옛 마을의 뒷방과 좁은 개울에서 보냈던, 소중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오늘은 눈발이 유리창에 하얗게 치고, 시인은 타국의 막막하게 펼쳐진 사막과 옛 마을의 어귀를 번갈아가며 생각한다. 꿈이 있었던 시간과 방황했던 시간은 행복했다. 그리고 꿈을 이룬 시간도 행복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화관(花冠)을 쓴 것처럼 눈부신 순간들이다. 밤하늘에 뽈록거리는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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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와서 바깥은 경극의 배경과 잘 어울렸다 찻잎을 물에 띄울 때 고요의 눈썹은 내가 그린 듯 가깝다 먹구름과 싸우면서 제 높이를 슬슬 키웠던 능선 그림자도 한 움큼 불러 물에 담갔다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물이 쉽게 끓기나 할까마는 물이 펄펄 끓으면 영혼은 현실과 마주친다 양철 주전자가 물의 온도에 접근하면서 마침내 쇠붙이까지 물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주둥이에서 쇄쇄 김이 올라오고 때마침 뚜껑은 들떠서 십 리쯤은 도망갈 기세이다 물도 주전자도 뜨겁다고 뜨거워 못 견딘다고 이제 너희가 외쳐라 송재학(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는 날이어서 날씨는 마치 경극의 극적인 장면을 보는 듯하다. 찻잎을 우려 차를 마실 때에 시인은 푸른 찻잎에서 고요의 가느스름한 눈썹을 본다. 찻잔에는 능선의 그림자도 비쳤다. 시인은 맑은 물을 찻주전자에 부어 끓인다. 끓으면서 물과 주전자가 격해지는 것을 바라본다. 찻주전자 주둥이에서는 김이 몰아쳐 나오고, 뚜껑은 들썩들썩하며 곧 말처럼 멀리 달아날 기세다. 이 펄펄 끓는 물과 몹시 요동하는 찻주전자를 보면서 시인은 말한다. 뜨거워 견딜 수 없는 속내를 숨기지 말고 모두 털어놓으라고. “사물의 안에 원래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발견 이상의 것을 시인은 해야 한다”라고 송재학 시인은 말한 적이 있다. 내년에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을 잘 살펴야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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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을 잡아 엿을 고는 성탄일

딸이 전복을 따야 농가목돈 물고

딸이 소라를 잡아야 학자금 갚고

사나흘 솥단지 안에서 엿기름이 졸아든다

엿을 먹어야 지픈 바당에 든다

솔칵타는 성탄일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

눈 살 때까지는 동짓달에도 숨비소리를 뱉어야 한다

시집간 딸이 물질 간 성탄일에 궁퉁이 어신 눈이 내리고

베롱 베롱

부끌레기 부끄지 말라고 뭉근 불로 무쇠솥을 지들리는 어머니

김병심(197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시는 제주 방언으로 썼다. “지픈”은 깊음을, “솔칵”은 소나무 가지를, “쉐”는 소를, “궁퉁이 어신”은 눈치 없음을, “눈 살 때까지”는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를, “베롱 베롱”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불빛을, “부끌레기 부끄지 말라고”는 거품이 넘치지 않은 상태를, “지들리는”은 누름을 뜻한다. 그리고 “고랑 몰라”는 말을 해도 모른다는 뜻이다. 시집 간 딸이 차가운 겨울 바다에 물질을 하러 간 날에 친정어머니는 엿을 곤다. 성탄절인 날에도 딸은 생계를 위해 전복과 소라를 따러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무심하게도 굵은 눈은 내린다. 어머니의 근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엿을 고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성탄절의 교회 종소리를 들었다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 보다 푸르고 깊고, 성스럽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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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긁을 때 아무리 용써도 손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읽을 수는 있어도 발음할 수 없는 시니피앙 ‘어’와 ‘으’, 달의 뒤편이다 천수관음처럼 손바닥에 눈알 붙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내 얼굴, 달의 뒤편이다 물고문 전기고문 꼬챙이에 꿰어 돌려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더듬이 떼고 날개 떼어 구워 먹을 수는 있어도 빼앗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같은 것, 내 눈동자의 뒤편이다

장옥관(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든 것에 뒤쪽이 있다. 그곳은 잘 닿지 않는다. 한꺼번에 힘을 몰아 쓰더라도 미치지 못한다. 마치 손으로 긁으려고 해도 미치지 못하는, 너른 등짝의 한 곳처럼. 달의 이면(裏面)처럼. 경상도 사람은 ‘어’와 ‘으’를 옳게 발음하지 못하는데 이 영역도 달의 뒤편 같은 것이요, 내가 볼 수 없는 내 얼굴도 달의 뒤편 같은 것이다. 또한 가을날의 밤에 듣게 되는 애절한 귀뚜라미의 울음도 우리가 애써도 갖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가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뒤편이 있다. 내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운, 능력 밖의 일이 있다. 그러므로 용을 써도 되지 않는 일은 남의 손을 빌려서 하면 된다. 어울려서 한 벌이나 한 쌍을 이루면 된다. 손뼉을 부딪쳐 소리를 내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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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뜨거운 미꾸라지처럼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넣고 있다

긴 포물선의 길을 깜깜한 나무 속에 들이붓고 있다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과녁판에는 아직도 화살이 퍼덕거려서

출렁이는 파문이 나이테를 밀며 퍼져나가고 있다

-김기택(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화살이 하나의 표적에 도달하고도 화살이 그곳으로 그 방향으로 쏠리고 몰리는 힘은 곧바로 멈추지 않는다. 과녁의 안쪽으로 계속 퍼져 들어가려고 한다. 화살을 맞은 과녁 또한 그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 격동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에 받게 되는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말과 눈빛과 표정과 움직임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하는 하나의 센 힘이다. 그래서 흥분과 눈물을 일으키거나, 기쁨의 감정이 북받쳐 흘러넘치도록 한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나목의 빈 가지를 흔들어놓는 것을 본다. 빈 가지는 한동안 위아래로 폭을 갖고 흔들린다.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산에 부딪쳐 되울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메아리가 골짜기에 사방으로 퍼지고 흩어지는 것을 끝까지 듣는다. 소리가 그친 뒤에도 여음(餘音)이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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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여다본다.

눈으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발을 내밀어 디뎌본다.

그런데 너를 이렇게 들여다보는 것을

누가 보지 않을까?

 

길 아닌 곳으로 방향을 잡아

파고든다. 풀숲을 헤쳐나간다.

나무 뒤에도 숨고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멀리 내다본다.

 

마음을 밟고 있는 몸 끝으로

삶의 비밀보다 더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 것들을 떨어뜨린다.

너는 중얼거림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 깨어난다.

채호기(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마음의 영토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곳은 우거진 곳이며, 길이 나 있지 않은 곳이며, 어지럽게 갈래가 져 있는 곳이다. 또한 깊고, 불분명하고, 변하며, 덮여 있다. 이 시는 이러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내 떨어뜨린 것이 ‘중얼거림’이라고 말한다. 숨겨져 있던 것이, 알려져 있지 않던 것이 부지불식간에 바깥으로 드러나는 경우 가운데 하나가 ‘중얼거림’이라고 말한다. 예부터 하루 세 번 자신을 관조(觀照)하라고 가르쳤다. 열고, 살피고, 먼지를 걷어내는 일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주인으로, 귀의처로 삼으라고 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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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옥상에서

서른세 개의 날개를 돌려라

 

오가 가다 오르다 내리다 흐르다 멈추다 녹다 얼다 타오르다 꺼지다 보다 듣다 생각하다 말하다 삼키다 뱉다 잡다 놓다 울다 웃다 주다 받다 묻다 답하다 밀다 당기다 열다 닫다 떠오르다 가라앉다 부르다 사라지다 넘다

 

서른세 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파도가 밀려가고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니

세상은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니

 

기다리지만 말고 서른세 개의 노를 저어 찾아라

세계의 손끝에서 마악 태어난 당신을

나희덕(196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움직임과 작용을 나타내는 서른세 개의 단어들이 여기에 있다. 서른세 개의 날개이며 노(櫓)인 동사들이다. 이 동사들로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넌다. 이 동사들이 우리의 활동을 설명한다. 우리는 밀려가고 밀려오는 삶의 파도 위에, 이 동사들의 파도 위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행위는 자족적으로 일어나고 유지되고 종결된다. 그러나 하나의 행위는 이 세상에 작용해서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움직임에 대해 거스르는 반대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가 서로 이웃해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나희덕 시인이 표현한 대로 “감자 덩굴에 매달린 작은 감자알처럼” 혹은 “두 개의 떡잎처럼” 말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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