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는 일주일씩의 시차를 두고 찾아왔다. 이주일 전, 갑자기 남편이 복통과 몸살에 시달렸다. 일주일 전 아이가 비슷한 증세를 보이더니, 일주일을 꼬박 앓았다. 지난 주말, 마침내 나에게도 오한과 복통이 찾아왔다. 왜 놀아주지 않냐며 성화인 아이로부터 누워 쉴 시간을 쟁취하는 동안 지난 2주간 나의 무심함이 빚어낸 풍경들이 보였다. 아픈 남편이 안쓰러운 한편, 병마로 상실된 남편의 노동력을 내가 메꿔야 하자 슬쩍 짜증이 치밀기도 했던 것, 아픈 아이가 떼쓰자 버럭댄 것. 그 순간이 한없이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아프니까. ‘누워 있는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른 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건강한 나라와 병의 나라에 동시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이중국적이다”라고 수전 손택은 말했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이라는 ‘이중국적’을 공유한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간신히 짐작해볼 수 있다. 고작 바이러스성 장염과 감기를 갖고 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없는 질병과 고통들이 도처에 널렸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은 여전히 이해 불가능성의 영역에 머무는 일이 많다.

서울도서관 서울기록문화관에 걸린 세월호 추본 리본. 김창길 기자

별것 아닌 투병기를 어쭙잖게 꺼내든 것은 최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다. 지난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내놓은 데 이어 사회학자 엄기호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펴냈다. 최근엔 미국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이란 책이 나왔다.

‘고통을 이해하기’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엄기호)는 말이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미투 운동,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 하지만 역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소화하기 힘든 시대를 관통해왔기 때문이라고.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러했다. 타인을 집어삼킨 거대한 슬픔을 조롱하고 혐오하기까지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당한 폭력과 고통에 대해 이해하기보다는 ‘피해자다움’을 평가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건 가능한가? 사실 이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100% 같은 입장과 상황에 처하기는 불가능하며, 100% 같은 고통을 경험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의 아픔을 바탕으로 타인의 고통을 지레짐작하고 이해하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레슬리 제이미슨은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 희귀병을 앓은 경험 등의 고통을 겪은 끝에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한 촉수를 갖게 되었다. 그조차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질문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탐구한 인상적인 작품을 만났다. 황정은은 연작소설집 <디디의 우산>에서 ‘묵자(墨字)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맹인의 문자가 ‘점자(點字)’라면 비맹인의 문자는 ‘묵자’라는 일침. 그것이 너무도 당연해 부를 필요도 없는 게 ‘묵자’의 세계다.

처음 접해 본 ‘묵자’라는 말에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우리가 거대악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다. 이명박을, 박근혜를, 최순실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재벌 일가의 부 세습을, 갑질을 비판하는 것도 쉽다. 왜냐하면 나는 재벌도 아니고 부패한 권력자도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묵자’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점자’의 세계에 살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만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무지의 영역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이해의 영역을 늘려가기 위한 노력, 나 자신을 콩알만큼이라도 확장시키려는 노력 말이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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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를 둔 한 학부모의 얘기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 조를 짜서 ‘다과 봉사’를 나가야 한단다. 경기 응원을 온 선수들 학부모와 경기를 지켜보는 각종 야구 관계자들에게 과자와 커피 등을 나눠주는 일이다. 어떤 선수가 잘하는지 지켜보는 스카우트들에게도 과자와 커피를 대접한다. 저학년 학생을 둔 어머니가 ‘다과 봉사’ 차례가 됐다. 경기장에서 다과를 준비하는데 고학년 학생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어이, 아가씨 커피 한 잔만 타 봐.” 충격을 받은 그 어머니는 아들의 전학을 고민했다.

심석희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감춰져 곪았던 스포츠계 각종 문제들이 쏟아졌다. ‘메달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가리고 덮고 어르고 윽박질렀던 사실이 드러났다.

꼬마 시절부터 새벽잠 쫓아가며 스케이트를 탔던 선수들은 메달을 위한 기계였다. 메달을 이유로 두들겨 팼다. 폭행 사실을 알리려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하자 코치의 코치인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는 “올림픽이 코앞이니 일단 올림픽에 집중하자”며 막아섰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이번에는 두들겨 팬 코치 구하기에 나섰다. 맞은 선수들에게 “너희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윽박질렀다.

상습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가 23일 경기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드라마 <SKY 캐슬>은 빙상 링크 위에서 ‘아이스 캐슬’로 이미 단단하게 성을 쌓아두고 있었다. ‘아이스 캐슬’ 속 김주영들은 ‘서울의대’ 대신 ‘금메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짬짜미’와 ‘탱크’는 금메달을 위한 전략으로 포장됐지만, 자발적 결정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드라마 속 시험지 빼돌리기와 다르지 않다.

젊은빙상인연대는 6건의 추가 성폭력 사실을 확인했다.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외부 관계자는 “피해자 몇은 공개 의지가 있었지만 부모님들의 거부가 완강했다. 2차 피해를 걱정했지만 더 큰 이유는 전명규 교수의 영향력 아래 더 이상 빙상계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한서진은 예서에게 말했다.

“엄마도 알아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 얼마나 잘못하는 일인지 알아. 그렇지만 예서야. 엄마는 네 인생 절대 포기 못해. 엄마가 다 감당할게,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공부만 해.” 양심이건, 이미 남은 상처건 다 중요하지 않다. 지금껏 들인 노력과, 거의 다 올라온 피라미드 끝이 모든 것을 덮는다.

아이스 캐슬을 만든 것은 빙상의 김주영, 한서진들이었다. 빙상의 김주영들은 ‘애국심’과 ‘금메달’이라는 숭고한 가치로 무장했고, 한서진들은 김주영들의 시스템에 가담하려다 덫에 갇혔다.

한서진들이 김주영을 만들었지만, 이미 괴물이 된 김주영은 한서진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안다. 무슨 짓을 해도 “이게 다 서울의대(금메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나만 믿으면 된다”고 강요한다. 믿지 못하겠다고, 뭔가 잘못됐다고 하면, “그렇다면 나가라”라고 한다. 밖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자신의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 각종 압박과 특혜를 주며 옥죈다. 드라마 속 조 선생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자꾸 회의감이 든다”고 하자 김주영은 “제 자식을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고픈 부모들의 욕망이 있는 한 입시 결과만 좋으면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어. 자식을 우리한테 맡기면 그들의 영혼도 우리 손아귀에 있거든. 지옥불에 처넣을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이어 조 선생에게 집 한 채를 선물했다. 조 선생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드라마에서 느끼는 기시감이란.

승리와 메달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면, 스포츠 전체가 ‘캐슬’이고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맨 앞의 어머니는 그나마 작은 용기를 냈다. 맞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먼 지방학교로 전학을 택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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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콘텐츠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여러번 받았다. “원래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난 10여년간 정치부에만 있다가 전혀 새로운 일을 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말이었지만 불편했다. ‘그런 쪽이라니? 저널리즘과 미디어 환경이 이렇게 빨리 변하고 있는데, 뉴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모두의 숙제 아닌가?’ 뉴콘텐츠는 신문의 일이 아니라는 듯 들리는 그 말에 괜스레 속이 배배 꼬였다.

알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신문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찾기처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생각해본다. 단지 신문이 낡은 플랫폼이라 외면받는가? 아니면 레거시 미디어라는 틀 속에서 독자와의 공감에 소홀했나?

7년 만에 다시 글을 내놓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동안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환자로 규정하고 의사라는 우월적 위치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던 것이다. 진료실 밖에서 흰 가운이라는 보호막 없이 그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환자’라는 틀로만 바라봐도 괜찮은 사람이란 세상에 없다.”

뜨끔했다. 흰 가운을 입은 정신과 의사와 수십년 전의 관성으로 신문을 만드는 저널리스트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의사가 진료실에 들어선 사람을 환자로 인식하는 접근법 자체를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 행위가 비전문적이라고도, 나쁜 뜻을 담았다고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환자라는 틀로‘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을 규정한 결과 의사는 자연스럽게 ‘우월적 지위’에 올랐고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됐을 것이다.

저널리스트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스미디어 시대의 제작·유통 방식에 익숙했다. 그 방법이 당연했고, 그에 따라 ‘뉴스 생산자’로서 전문성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사 생산 행위 자체를 독자보다 앞세우게 되면서 의도치 않지만 참담한 결과를 손에 들었다. 언론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고루하고 답답한 ‘소통 불가’ 이미지가 더해졌다.

지나치게 자조적인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돌아보고 더 혁신해야 한다. 어떻게? 혹자는 콘텐츠 홍수 속에 종이신문의 시대는 이미 갔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문제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라고 말한다. 혼란스럽다. 전 세계 유수의 레거시 미디어들이 수많은 실험을 했지만 누구도 ‘나를 따르라’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팩트체크를 브랜드화한 워싱턴포스트, 뉴스 유료화를 안착시킨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때로는 성과를 낸 도전들마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는 영원한 돌파구로 평가되지 않고, 향후 도태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성공 정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확실한 사실이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해답을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실낱같은 불빛은 독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콘텐츠를 원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의 이면을 드러내는 보도에 박수를 칠 것이고, 독자의 요구를 잘 담아낸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엔 반응할 것이다. 신문의 시대가 간 것이 아니라 신문이 만들어 낸 것만 읽던 독자의 시대가 갔음을 직시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직업을 통해 훈련된 공감 전문가가 될 수 있다.” KBS PD로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직접 현장으로 뛰어든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이 지난해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흰 가운’은 던져버리고 저널리스트의 공감 능력을 되살려 보면 어떨까. 독자여! 당신이 옳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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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없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김기정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2016년 법원도서관장으로 있으면서 직원 친목 도모 명목으로 기업에서 금품·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김 법원장 측은 이렇게 반박했다. 지위를 이용한 적도 없고, 재판 업무도 맡지 않을 때라고 했다.

김 법원장은 야구경기 스카이박스 입장권, 영화 VIP시사 관람권, 글램핑장 이용권 등을 받았다. 주식, 고급차량, 현찰을 뇌물로 받아 큰 사회적 논란이 된 법조인들과 비교하면 수수 명목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사소한 관행’은 인정해도 되는 것일까?  

고도의 윤리 의식은 법관에게 필수다. 외국의 잣대는 엄격하다. ‘각국 법관 징계 제도에 관한 연구’(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미국 연방법원의 모범법관행동규범을 소개한다. 보고서는 법관 징계사유 행위로 “합리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법관의 독립성·청렴성·공평성을 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선물·융자·유증·이익 기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물품을 수령하는 경우”도 든다.

캐나다 법관윤리원칙도 ‘청렴성’을 두고 “법관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법관 자신의 행동이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펴낸 ‘법관 윤리’를 보면, 법관이 친구 변호사 개업식에 본인의 소속 법원명과 직위를 적은 화분을 보내는 것도 제한했다. 판사와 변호사 간 유착 같은 오해를 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막았다. 

김 법원장은 ‘친구 호의를 받아 직원들에게 선의를 베푼’ 행위가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공무원, 그것도 고위 법관의 지위라서 받은 선물은 아닐까? ‘기업의 친구들’이 왜 자신에게 물질적 호의를 보였는지 성찰도 하지 못한 듯하다.

김 법원장의 수수는 ‘외관의 공정성’에 어긋난다. 바깥에서 바라봤을 때 공정해야 한다. 기업이 제공하는 금품·편의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는 법관을 신뢰할 수는 없다.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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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만나 결혼한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25년 뒤에 헤어질 것을 알았더라도 우린 결혼했을 것이다. 우리는 부부로서 함께 멋진 삶을 살았으며 부모로서, 친구로서, 벤처 프로젝트 파트너로서, 모험을 추구하는 개인으로서 앞으로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우리를 표현하는) 단어는 달라지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며 소중한 친구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 부부의 이혼 발표는 이랬다. 세상에 이렇게 ‘쿨’한 이혼 선언이라니. 3만4000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와 부인 매켄지 베이조스가 지난해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포즈를 취한 모습. 세계 최고 부호인 베이조스가 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결혼 25년 만에 이혼을 선언해 부인과의 재산분할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에 쉬운 이혼은 없다. 베이조스 부부도 상상하지 못할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일부 언론은 베이조스의 불륜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쿨’한 발표를 한 데 대해 혹자는 말한다. 결국은 돈 아니겠느냐고. 아내 매켄지가 받을 수 있는 위자료로 70조원 얘기가 나온다. 천문학적인 돈을 가지면 친권과 양육권, 상대에 대한 감정적 앙금 등이 모두 치유될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은 치열하게 법정 다툼 중이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도 이혼소송 중이다. 70조원까지는 안되겠지만 이들의 위자료도 50억~8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일반인이면 평생 먹고살 만한 돈이다. 돈이 있다고 모두가 ‘쿨’한 이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단 부부 사이뿐일까. 심지어 직장도 그렇다. 20년 근무하고 나가면서 회사와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화려하게 영입됐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기업 간 전략적 제휴도 끝이 아름다운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북유럽은 좀 다른 것 같다. 이혼도 우리보다는 일반적이고 해직도 쉬워 보인다. 북유럽 사람들이 특별히 마무리를 잘하는 성향이라서 그럴까? 그보다는 제도를 주목한다. 북유럽은 계약관계가 촘촘해 책임소재가 명확하고 복지가 잘 마련돼 있어 새로운 선택에 부담이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어렵다고 ‘동거’를 선택하는 그들이다. 상대와 헤어진다고 생활이 궁핍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동·육아수당을 받으면 부담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 취업과 실직은 명시된 계약서를 따르고 설혹 직장을 잃어도 실업급여가 충분해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심리적인 요소도 있다. 혜민 스님은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연애가 깨질 때 우아하게 헤어지는 사람은 없다”며 “나란 인간도 엄청 치사하구나, 아주 못됐구나를 깨달아야 다른 완벽하지 못한 사람을 봤을 때 쉽게 손가락질하지 않게 된다”고 썼다. 부족한 나와 그동안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면 생각보다 ‘쿨’한 이별을 할 수 있다. 부족한 나를 20년간 써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면 회사와도 우아한 이별이 가능할지 모른다.

인사철이다. 신문 한쪽에는 승진자 명단이 가득하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축하 인사가 쏟아지겠지만 그 자리를 지켰던 선임자의 얘기는 없다. 승진자 명단에도, 부서이동자 명단에도 없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따로 연락을 취해볼까 생각하다가도 행여 실례가 될까 싶어 망설여진다. 회사랑 ‘아름다운 이별’을 못했을까봐 그의 주변 동료들에게 묻기도 조심스럽다. 사라진 그들이 머지않은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묵직해진다.

‘이 회사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운이 좋았던 일이라 생각한다. 저는 나가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나의 가족이다.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자.’ 나는, 당신은 떠날 때 ‘쿨’한 퇴직 인사를 남길 수 있을까. 헤어짐에도 기술이 필요할 텐데 어디서도 배운 적 없다. 그래서일까, 헤어짐은 여전히 낯설다. 우아한 이별은 더더욱.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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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드라마 한 편이 한국을 들썩인다. 드라마는 세간의 분위기를 가볍고도 빠르게 담아내는 덕에 사람들은 드라마 한 편을 통해 미처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던 시대적 유행과 분위기를 훑곤 한다. 드라마 <SKY 캐슬>은 대학입시가 갖는 의미를 21세기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교육이 갖는 세속성을 이야기한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을 위한 ‘유연한’ 사다리가 아닌 계층 유지 또는 계층 확대를 위한 ‘배타적인’ 사다리가 됐을 때 어떤 현상들을 낳게 되는지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선이 멈춘 지점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도, 자식교육을 향한 엄마들의 그악스러움도 아닌 바로 아빠들의 무기력함이었다. 아빠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 속 아빠들은 의사·교수 등으로 사회적으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JTBC 드라마 의 한 장면.

하지만 ‘돈만 잘 벌어다 주면 가장 노릇 다 한 줄 알았다’는 극 중 영재 아버지의 고백처럼 그들은 여전히 집안일과 자식일에 별 관심이 없다.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오직 성적표가 나올 때뿐이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나 학생회장 당선 소식 등은 아빠의 사회적 지위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하버드생인 딸이 아빠한테 눈물을 흘리며 소리친다. “공부 잘하는 자식만 자식이라는 생각 들게 했잖아!”

과정을 공유하지 않은 채 성과의 기쁨만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은 가족에게도, 심지어 가족의 리더 격인 아빠들에게도 통용된다.

미국 연수 시절 미국 아빠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다. 평일 축구·농구 수업에 오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빠들과 함께 왔다. 한국처럼 직업강사가 아닌 자원봉사 체제로 꾸려지는 스포츠 클럽 성격상 축구 코치, 농구 코치는 대개 누구 누구의 아빠들이었다.

축구 매치가 있던 어느 토요일 놀라운 광경을 봤다. 상대편 축구팀 코치가 아기띠를 맨 채로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 심판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배 위엔 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기가 매달려 있었고,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아이는 축구 경기를 뛰고 있었다. 싱글 대디인지, 엄마의 부재 때문인지 추측할 새도 없이 입이 쩍 벌어졌다. 동료 이웃이 털어놓은 목격담도 보통은 넘었다. 농구수업에 갔더니 젊은 아빠가 무려 4명의 아이를 유모차와 아기띠를 동원해 홀로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풍경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지표로만 봐도 한국 아빠들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현저히 낮다. 남성 가사 분담률은 1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3.6%)의 절반 수준이다. 덴마크(43.4%), 핀란드(40.7%) 등 유럽 복지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 첨병인 미국조차 아빠들의 가사분담률(38%)은 평균을 웃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엄마의 역할, 돈의 역할로 극한까지 밀고 온 것이 우리 교육의 모습”이라며 “아직 사용해볼 여지가 남은 것이 아빠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아빠와 대화하고 여행하고 공부하는 생활, 아빠가 자녀교육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사교육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빠들이 안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오는 길을 몰라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히 여유로운 일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밥벌이를 하는 아빠가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가족을 돌보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각박하고 부족하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불거진 후폭풍만 봐도 그렇다. 한국 사회의 아빠들은 언제쯤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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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수해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2018년도 짝수해였고, 어김없이 대규모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얼핏 보면 ‘음모’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짝수해에 어김없이 몰아친 칼바람의 최대 희생자는 레게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던, 네덜란드 축구 영웅 루드 굴리트(56)였다.

굴리트는 1980~1990년대 세계적인 축구 스타였다. 남미에 마라도나가 있다면 유럽에는 굴리트가 있었다. 레게 머리는 최첨단 유행의 아이콘이었다. 학생들이 머리를 빡빡 깎던 시절이었다. ‘사자머리’를 휘날리던 카를로스 발데라마(57·콜롬비아)와 함께 강렬한 임팩트를 줬다. 그러니까, 굴리트는 축구 영웅 중 한 명이었다.

지난 16일, 굴리트가 ‘짝수해 프로젝트’에 희생됐다. 연합뉴스는 이날 ‘네덜란드 축구영웅 뤼트 휠릿이 한국 축구대표팀 간판 손흥민에 관해 극찬했다’고 전했다. 뤼트 휠릿? 요한 크루이프는 그렇다치고 ‘오렌지 삼총사’는 굴리트와 마르코 반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 아니었나. 이들 말고 또 영웅이 있나? 역시 네덜란드는 축구 영웅 배출에 있어 그리스·로마신화급인 나라구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영웅 축에도 못 끼는구나. 역시 나는 야구는 조금 알지만, 확실히 ‘축알못’이로구나.

잠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한 뒤 깨달았다. 루드 굴리트가 바로 뤼트 휠릿이었다. 프로야구 롯데 손아섭처럼 야구 잘하려고 손광민에서 손아섭으로 이름 바꾼 것은 아닐 터였다. 현역 은퇴한 지 오래다. ‘퓨처 컨설턴트’의 제안에 따라 건강이나 행운을 위한 개명도 아니다. 맞다, 2018년은 짝수해였다.

루드 굴리트의 철자는 Ruud Gullit다. 이미 30년 전, 외래어 표기법이 불안정했을 때, 영어식으로 읽어 루드 굴리트가 됐다. 네덜란드인이고, 현지 발음을 고려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뤼트 휠릿이 맞(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년 동안 굴리트라 알던 축구 영웅의 이름이 하루아침에 휠릿으로 바뀌다니.

‘짝수해 프로젝트’의 진실은 이렇다. 짝수해마다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열린다. 올림픽과 월드컵이 번갈아 개최된다. 2016년에는 리우 올림픽이, 2018년에는 러시아 월드컵이 열렸다. 이때마다 국립국어원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강제 개명’이 이뤄진다. 과거 잘못 표기된 이름들이 출생국가의 현지 발음 등을 고려해 새 표기법으로 바뀐다. 2018년은 그 규모가 엄청났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러시아 월드컵,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이어졌다. 수많은 선수들이 강제 개명을 당했다.

소치 올림픽 때 이승훈과 경쟁했던 스벤 크라머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스벤 크라머르’로 개명됐다. 이집트의 축구 영웅이자 리버풀의 에이스 모하메드 살라는 러시아 월드컵을 계기로 ‘무함마드 살라흐’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실 ‘오렌지 삼총사’ 이름도 틀렸다. 반바스텐으로 알았던 선수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판 바스턴’으로 개명된 지 오래다. 그때 ‘반’들이 다 ‘판’으로 바뀌었다. 반니스텔루이는 ‘판 니스텔로이’로, 반더사르는 ‘판 데르사르’로 개명됐다.

외래어 표기법은 충분히 공감하고 존중한다. 원칙을 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짜장면’이 표준어가 됐듯, 대다수 스포츠 팬들에게 친숙한 이름은 그대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원칙과 규칙의 지나친 강제는 ‘엘리트 주의’의 위험에 빠진다. 외래어 표기법 5항은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으로 존중한다’고 돼 있다. 오렌지는 아륀지가 아닌데, 굴리트는 왜 휠릿이 돼야 할까. 박지성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번 시절 ‘위 숭 빠레’로 불렸다.

‘지못미’ 굴리트. 그리고 이제는 저우룬파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된 또 다른 나의 어릴 적 영웅들도 함께.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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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이 든 동네인 줄 알았던 을지로에 다시 시간이 흐른다. 색 바랜 골목길 사이로 청년들이 스며들면서 멈췄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셔터가 내려진 빈집에 청년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들의 아지트 옆으로 카페들도 생겨났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묘하게 뒤섞인 을지로는 지금 가장 ‘뜨는’ 동네다.

을지로의 옛 이름은 구릿빛 진흙이 많은 땅, ‘구리개’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황금정(黃金町)으로 부르다가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변경할 때 지금의 을지로란 이름이 붙여졌다. 1930년대 이 일대는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던 곳이었다. 일제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은 북촌, 남쪽은 남촌이라 불렀다. 일본인 거주지인 남촌은 일본을 거쳐 온 서양의 신문화가 조선에 등장하는 주 무대였다. 양복을 입고 ‘딴스홀’을 출입하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퇴폐의 상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의 근대 문학이 싹튼 곳도 바로 여기다. 당시 ‘오갑빠’(앞머리를 일직선으로 자른 머리) 스타일의 구보 박태원이 막역한 사이였던 봉두난발의 이상과 함께 황금정 일대를 활보하곤 했다. 이상이 신혼살림을 차린 허름한 셋집도 이곳에 있었다.

을지로가 일제 때 금융과 쇼핑의 중심지였다면, 1970~1980년대는 철공소와 인쇄소 등이 밀집한 ‘제조업의 메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활력을 잃었다. 을지로가 도시의 주변부로 숨어든 것도 이 무렵부터다. 쇠퇴해가던 을지로는 2~3년 전 청년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허름하지만 비밀 같은 공간을 찾아 저녁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잊혀진 공간 을지로를 사람들이 다시 찾는 이유는 뭘까? <다시, 을지로>의 저자 김미경은 ‘공존’을 꼽는다. 과거와 현재, 새로 골목에 입성한 청년들과 오랫동안 이 골목을 지켜온 가게 사장님들과의 공존. 청년 예술가들에게 빈집을 내어주고 임차료를 지원하는 중구청의 정책도 한몫했다. 또 다른 이유는 공간이 주는 이점 때문이다. 이곳엔 한때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준다’는 업체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을지로가 보여주는 공존이야말로 구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의 모범답안에 근접한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계획과 개발은 ‘도시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라고 말한다. 그가 소개한 일화는 이를 잘 설명한다. 뉴욕 이스트할렘 새로 정비된 저소득층 주택단지에 자리를 크게 차지한 잔디밭이 있었다. 지역 관계자들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거 다 누린다”며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정작 주민은 자신들의 집을 헐어 버리고 만든 잔디밭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저게 필요하대요?”

그는 시 당국과 개발 관계자들이 지역 주민의 삶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한다. 그는 수십억달러를 들여 수립한 도시계획이 오히려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된다. 이는 도시재생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 중인 서울에도 유효하다. 종로구 옥인동, 사직동 등은 재개발을 두고 여전히 찬반이 갈리는 곳들이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남기자는 건 아니다. 도시는 지자체, 도시계획가들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제이콥스는 자신이 살았던 뉴욕 허드슨가의 일상을 발레에 비유했다. 도시는 무질서하지만 발레 공연처럼 각자 역할을 맡은 거리의 무용수들에 의해 움직인다는 의미다. 만약 도시의 거리를 걸어다닐 때 날마다 바뀌는 즉흥 발레를 볼 수 있다면 그 도시는 일상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서울도 다시 발레를 추어야 할 때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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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친지들에게 거액을 빌린 뒤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래퍼 마이크로닷이 지난 25일부로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채널A의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에서 큰 인기를 모은 뒤 다른 프로그램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던 도중에 터진 ‘불상사’였다. 나 역시 얼마 전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로닷을 보고 호감이 생기던 터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20년 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범죄, 의혹이 터져나온 직후 마이크로닷과 소속사의 대응 등을 전해들은 뒤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이크로닷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연일 연예인 부모를 겨냥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래퍼 ‘도끼’ 어머니의 과거 사기 의혹이 불거졌고, 다음날 도끼가 공식 사과했다. 27일에는 인기 아이돌그룹 마마무의 멤버 휘인의 아버지가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휘인은 당일 저녁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이지만, 원만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닷. 사진 경향DB

사건의 당사자가 된 연예인들은 억울함이 클 것이다. 마이크로닷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는 여섯살에 불과했다. 성인이 된 뒤 부모가 저지른 범죄를 알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도의적 책임’ 외 법적 책임까지 묻기는 어렵다. 도끼와 휘인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이들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조금이라도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본인들이 수습에 나서고 있다. 아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을 비롯한 연예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나만 잘해선 안되는 시대구나. 주변 관리에도, 사고 후 수습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나도 그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최근에 만난 종교인들이 생각났다. 종교담당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금이라도 ‘높은’ 종교인들을 볼 기회가 생기면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가지려 하지 않고, 수행길로 들어서려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종교가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요.”

이런 무식하고 기초적인 질문에도 종교인들은 사뭇 진지하게 답을 주신다. 그러나 답변을 듣고 만족스러웠던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답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한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산에 가봐라. 고목이 쓰러지는 소리는 온 산을 울린다. 그러나 작은 묘목이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잘못만 크게 부각되기 마련이니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열심히 하다보면 잘될 것’이란 의미로 들렸다. 한 교단의 고위직 종교인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단을 창시한 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된다.” 역시나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로 해석됐다.

답답했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연예인도 혼자만 잘해서는 되지 않는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주변에서 잘못을 했으면 함께 수습에 나서야 일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항상 조직을 정비하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없게 단속해야 한다.

만족할 만한 답변은 최근에 한 개신교 목사님에게 들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항상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 ‘종교 불황기’에도 그 목사님이 속한 교회는 계속 신도를 늘리고 있다.

물론 교회의 신도수를 늘리는 것이 종교의 본령은 아니다. 교세 확장에만 몰두하다 종교의 본질까지 훼손해버린 사례도 많다. 그래도 그 ‘성장의 이유’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이제 나만 잘해서 되는 시대는 아니기에.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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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을 ‘유기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과업은 뭘까. 단연 세대교체다.

어떤 노하우들은 세대를 걸쳐 쌓이고 전수된다. 물론 간혹 백마 탄 영웅이 나타나 일거에 몇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리오넬 메시 같은 인걸이 한국 축구에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가 있어도 월드컵 4강은 장담키 어렵다.

신기한 것은 중국 14억 인구 중에 눈 감고 11명을 뽑아도 한국보다는 축구를 잘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축적된 경험, 노하우 때문인데 이는 세대가 바뀌더라도 그냥 유지, 계승, 발전되는 게 아니다. 뭔가 큰 홍역을 치른 뒤에나 본질적 변화가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참패한 허정무 감독 체제가 흔들렸다. 당시 거의 모든 기자들은 ‘그냥 고!’라며 눈감아줬다. 반면 경향신문의 모 선배가 단기필마로 ‘외국인 감독 체제로 전환’이란 깃발을 들었다. 이는 결국 거스 히딩크를 데려와 2002년 기적을 이룬 밑거름이 됐다. 변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위기론이 심상찮다. 그동안 현대차는 세대를 걸쳐 얼마나 발전해왔을까. 수소전기차 등 미래형 기술 개발은 고무적이다. 다만 나무에 꽃 피고 열매 맺기만 기다리다가 큰일 치를 수도 있겠다 싶다. 겨울이 깊다. 기본 기술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전기차도 차다. 수십년 해온 전통 차량조차 문제가 있다면, 마운드를 갈아엎어야 할 판이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다.

중대기로에 선 지금 현대차 구조에 변화가 엿보인다. 일단 최고 수뇌부의 위치 조정이다. 9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으로 직급이 한 단계 올랐다. 2005년 경영 전면에 나선 그는 3세대 젊은 지도자로서 새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됐다. 그동안은 부는 듯 마는 듯, 좀 뜨뜻미지근했다. 이제 핸들을 잡은 만큼, 앞으로 더 확실한 색깔을 내주길 기대한다. 요즘 고성능차를 강화하는 노력이 일례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서울 강남의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에 매입한 일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많은 이들은 걱정한다. 현대·기아차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나 규모는 주요 경쟁사와 비교하면 안타깝다. 강남 노른자 땅에 근사한 뭘 세우든지 소비자들은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것들이 부친 정몽구 회장의 결단이겠지만 미래지향적인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믿는다.

40대 중반 한 지인이 지난여름 독일산 수입차로 옮겨탔다. 출력, 토크 등 드러난 성능만 비교하면 현대차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핸들링이나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탄탄한 서스펜션, 연비 따위가 솔직히 한 수 위라고 말한다. 그에게 물었다. “다음에 현대차로 돌아갈 거야?” 예상대로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전기차 시대에는 현대차가 ‘불판’을 갈 수 있을까.

그동안 정 수석부회장이 피터 슈라이어 등을 데려와 디자인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이젠 기술 전문가부터 영입하는 게 더 필요해 보인다. 디자인은 그만하면 수준급이다.

차는 차(車)다. 한자 모양대로 프레임에 바퀴 달고 굴러가는 뭔가다. 무엇보다 잘 달리고, 돌고, 서야 한다. ‘화장발’은 이내 드러난다. 가솔린 직분사(GDI) 엔진을 비롯한 결함 차량을 만드는 동안에도 디자인만 너무 강조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 세대교체에 실패한 조직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지 요새 축구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정 수석부회장이 진정 용기가 있다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문구를 화두로 품을 만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파괴하지 못하는 자는 무엇도 제대로 바꿀 수 없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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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는 미국에서 먼저 끝났다.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만났다. 동·서부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의 맞대결은 1916년 이후 102년 만이었다.

다저스의 감독 데이브 로버츠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흑인 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뒀다. 보스턴 감독 알렉스 코라 역시 미국이 아닌 푸에르토리코에서 출생했다. 월드시리즈는 114회째를 맞았지만 ‘마이너리티 감독’끼리의 맞대결은 처음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모든 소수자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대결이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코라 감독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감독으로 처음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더구나 2018시즌이 감독 데뷔 시즌이었다. 휴스턴 벤치 코치를 거쳐 이번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계약했다. 연봉이 8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감독 중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코라 감독은 보스턴과 감독 계약 때 인센티브 등 이런저런 부가 조건을 요청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조건만 내세웠다. “내 고향에 수송기 한 대분의 구호물자만 보내주면 된다”고 했다.

코라 감독이 계약하기 직전이었던 2017년 9월,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피해규모 자체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초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사망자는 64명이었지만 지난 5월 하버드대 조사팀이 현지 방문 조사를 한 결과, 허리케인 마리아 때문에 숨진 주민 수가 무려 4645명이나 된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 피해 규모도 97조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월드시리즈는 치열했다. 3차전은 연장 18회까지 치러졌다. 다저스가 맥스 먼시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겼다. 2승1패를 하고도 보스턴 선수들이 1승2패인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코라 감독은 라커룸에서 “우리가 약해서 18회 끝에 진 것이 아니라 상대가 우리를 이기려면 18이닝이나 필요했던 것”이라고 격려했다. 보스턴 선수들이 힘을 되찾았다. 4차전 0-4로 뒤진 경기를 뒤집어 이겼고 4승1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코라 감독은 우승 트로피를 들고 보스턴 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다.

다저스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다. 팬들은 ‘패장’ 로버츠 감독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구단은 해고 대신 연장 계약을 택했다. 월드시리즈 패배라는 ‘결과’보다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오른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보다 과정’은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KBO리그의 가을야구도 치열했다. 히어로즈는 리그 최저연봉 팀이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상대를 끝까지 괴롭혔다. SK의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2차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뒤 “이제 미칠 시간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팬들을 뭉클하게 했다. 두산 주장 오재원은 1루 주자로 타자의 파울 타구에도 3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오재원은 “전력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정수빈은 방망이를 짧게 쥐고도 결승 홈런을 때렸다. 작지만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업무’가 아닌 ‘가족’으로 팀 모든 구성원을 대했다. 선수들에게 ‘컨디션이 어떠냐’고 묻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은 잘 지내냐’를 먼저 물었고 팀을 하나로 만들어 우승으로 이끌었다.

야구는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가을의 승패는 한없는 기쁨과, 한없는 아쉬움의 골짜기를 잔인하게 가른다. 그래도 ‘가을의 전설(Fall classic)’이라 불리는 것은, 인생의 교훈을 딱딱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8년의 야구가 끝났다. 이번 가을에도 우리는 야구를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야구기자 하길 잘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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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는 여전히 한국의 유효한 신입사원 채용 방식이다. 언론사도 그렇다. 어떤 부서를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경력과 함께 ‘○○년에 입사한 ○○기’가 나의 정체성으로 줄곧 따라다닌다.

그 ‘공채문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 수습기자 교육이다. 3~6개월 동안 경찰서의 지저분한 기자실에서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면서 밤늦도록 사건 현장과 경찰서를 돌아다니면 육체가 너덜너덜해진다. 하루 종일 ‘1진’이라 불리는 선배에게 보고하면서 빠뜨리고 놓친 부분을 수없이 지적당하면 영혼도 너덜너덜해진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혹독함 때문인지 과거 경향신문 수습기자를 취재하러 왔던 한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 이름은 <극한직업>이었다.

극한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름의 결론은 다음 2가지였다.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떻게든 마무리해내는 능력과 그 누구에게, 뭐든 물어볼 수 있는 용기를 습관처럼 장착하는 것. 마감을 지키고 막힘없이 취재할 수 있는 것은 기자로서 일해나가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기사를 잘 쓸 수 있는 교육과는 딱히 관련이 없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연습기사가 시뻘겋게 되도록 ‘빨간펜’을 당했지만 빨간펜의 목적은 대개 기사를 특정한 형식으로 잘 정리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렇게 수습교육을 마치고 나면 모두가 파도에 잘 깎인 몽돌처럼 몇 가지 정형화된 기사에 익숙해졌다.

이건 종이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최적화된 방식이기도 했다. 지면을 이리저리 갈라 한정된 분량만큼 기사를 넣어야 하니 기사는 무엇보다 ‘경제적’이어야 한다. 기사의 주제가 뭔지 가장 먼저 알려주고 핵심 팩트만 골라 압축해야 했다. 맥락과 전후 상황에 배려할 공간은 없었다. 기자의 주관은 금기시됐으며 그마저도 모두 발라냈다. 말 그대로 뼈만 남는다.

그런데 이제 독자들은 이런 기사가 불편하고 불친절하다고 말한다. 기자가 일방적으로 팩트의 중요도를 매겨 나열해놓고 맥락이 제대로 담기지 않으니 기사는 물 흐르듯 이해되지 않는다. 기자의 관점도 없으니 건조하기 짝이 없고 정작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접근이 어려운 팩트를 발굴해내는 것은 여전히 기자의 경쟁력이지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팩트를 잘 정리하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팩트를 잘 정리하고 맥락과 관점까지 제시하는 좋은 글은 기사 말고도 많다.

기사를 선명하게 쓰기 위해 무리하게 주제를 뽑아 단정하는 일이 때로는 ‘폭력적’일 수도 있다. 세상일이 그렇게 무 자르듯 재단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재단되지 않는다면 재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사실 독자들은 신문이 ‘낡아서’ 안 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가 ‘낡아서’ 안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임원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는 금지’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회의에서는 파워포인트 대신 모두가 자신의 관점과 완결된 이야기를 담은 6장짜리 메모를 준비해 발표해야 한다. 일목요연한 파워포인트를 아무리 만들어도 회사에는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다.

올겨울에도 여전히 많은 수습기자들이 경찰서를 헤맬 것이다. 언론사의 수습교육 관행은 많이 달라졌다. 경향신문 수습기자들도 더 이상 경찰서에서 숙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늘 써오던 기사 작성법을 가르치던 교육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미디어의 콘텐츠가 바뀌려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선행돼야 할 것 중 하나가 기자 교육을 바꾸는 일이다. 수습기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팩트를 잘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맥락과 관점을 담을 수 있도록 생각하는 법이다.

<이인숙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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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패션에 관심은 많은데, 정작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똑같아 보인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한국에 정착한 어느 프랑스인 패션 디자이너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사 댓글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관심은 많다. 다만 내 옷보다 남이 뭐 입었는지 관심이 많을 뿐이다.”

한국식 ‘똑같은’ 패션의 정점인 ‘김밥 패딩’을 입는 겨울이 오고 있다. 기후이변으로 북극 얼음이 많이 녹아 올해도 제트기류가 한반도로 흘러내려올 것이라고 하니 이제 겨울철 롱패딩은 ‘생존템’ 내지 ‘국민복’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롱패딩을 남과 다르게 개성 있게 입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혹한에는 그저 애벌레 고치 짓듯 껴입는 게 최고다. 하지만 아주 조금, 남과 똑같은 복장이 ‘몰개성’의 증거가 아닌지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곤 한다.

개인주의는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과 똑같은 것은 미덕이 아닌 게으름이므로, 자기만의 특질을 가꿔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가 더 두드러지는 사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명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의 저서 &lt;차별의 언어&gt;에 따르면 한국어에는 유독 ‘우리’라는 표현이 많다. 엄마, 집, 회사 같은 단어 앞에 ‘나’가 아닌 ‘우리’가 붙는다. ‘우리’는 ‘울타리’와 어원이 같다. 나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정체성을 공유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독 민감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패션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소소한 의식처럼 보인다. ‘개성만점 에지 있는’ 유행 패션을 함께 소비하면서 한 사회 안에 연결된 너와 나를 확인하는 것이다. 쨍한 빛깔 등산재킷 차림의 단체관광객, 체크남방에 뿔테안경 쓴 공대생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직장 여성들이 ‘복제 패션’의 ‘유머짤’로 소비되곤 하는데 사실 다들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이다. 김밥 패딩의 경우 허리선을 강조하거나, 라쿤이나 여우 같은 동물의 털을 달거나 하는 정도다.

이렇게 모두가 한꺼번에 소비 축제에 뛰어들면 회사의 명운이 바뀌기도 한다. 스포츠용품 업체 ‘휠라’는 국내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2~3년간 크게 유행하면서 기울던 사세를 한 방에 역전시켰다. 김밥 패딩이 스트리트 패션에 밀려 고전하던 아웃도어 업체들의 둘도 없는 효자가 된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군중의 소비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lt;타인의 영향력&gt;에서 ‘군중심리’라고 하면 중심 없이 휩쓸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보다 순기능을 가질 때도 적잖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타인과 연결되고 소통해야 제 기능을 하도록 설계돼 있다. 나와 상대방이 같은 취향을 갖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패션은 즉각적인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곳에서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차별화되는 제품은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비슷비슷하게 입는 게 이득인 셈이다.

다만 똑같이 입더라도 똑같은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는 걸 서로 이해할 상상력이 있다면 모두가 사시사철 ‘김밥 패딩’ 같은 옷을 입더라도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플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패션만 고집했지만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인간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고 패션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고유한 서로를 마주하기 위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복장을 넘어 나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타인의 삶에 귀기울이는 ‘환대’의 마음만 가지면 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당신은 지금 입고 있는 옷 이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머금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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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시급히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전문가 확보였다. 교비로 명품 사고 아파트 관리비 내고, 있지도 않은 ‘가장거래’로 설립자 뒷주머니만 채우는, 일부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립유치원들을 한때 유치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욕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뭐가 문제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희한했다. 생각보다 전문가라 할 만한 이들과 통화하기가 어려웠다. 대학입시나 사학비리, 사교육 문제 등과 관련해선 논리정연함으로 여론몰이를 능숙히 해대는 교육단체들도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했다. 교수들은 입 열기를 조심스러워하거나 피상적 말을 늘어놓았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주기로 한 대학교수는 결국 “못하겠다”고 했다.

정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집단휴업 등으로 어깃장을 놓고, 유리한 입법을 위해선 로비도 서슴지 않는 사립유치원 단체의 영향력이 무서워서였을까 생각했던 것은 순진함이었다. 그보단 유아교육 전문가라 불릴 만한 분들이 의외로(?) 없다는 게 더 정확했다.

아동학을 전공한 어느 분도 “국내엔 유치원 전문가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정책의 방향에 대해 코멘트해줄 만한 전문가라면 “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십년간 초등교육의 귀속 분야로서 유아교육이 다뤄지면서 국가가 맡아야 할 기본 교육에 사인(私人)이라는 시장논리가 자리 잡아 오늘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용민의그림마당]2018년10월26일 (출처:경향신문DB)

사립 초·중·고교와 달리 개인이 임대건물만 있으면 유치원을 차릴 수 있는 현 구조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비롯됐다. 원장 기준에 대한 자격도 남발됐다. 그동안 툭하면 사립유치원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휴업 등으로 실력행사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유력 정치인까지 합세해 정부에 “좀 봐달라”고 개입했다. 사립유치원들의 이기심과 정부의 무관심, 정치권의 부적절한 개입이 ‘형식은 교육기관인데 내용은 자영업’인 형태의 사립유치원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에서 유아교육은 ‘귀찮은 존재’ 정도로 여겨져왔다. 각 교육청의 조직도만 봐도 알 수 있다. 17개 시·도 중 유아교육이 ‘과’ 단위로 조직된 곳은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몇 곳 안된다. 초등교육과 내 유아교육팀으로 분류돼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도 2013년에서야 관련 팀을 유아정책과로 승격했다. 한마디로 유치원은 ‘돈 있으면 보내고 안 보내도 그만’이라는 30~40년 전 시각에서 진일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료조차 “유아교육과로 가게 되면 물먹는 것이란 인식이 많다”고 토로했다.

사회 전체가 유아들의 삶과 권리에 무관심해왔다는 점에서 학부모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발 위주,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내 아이만 불이익받지 않으면 유치원이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 없어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촉발시킨 실시간 정보공유와 대응은 학부모들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여론 형성을 가능케 하고 있다. 나 하나 달라져서 세상이 바뀔까 하고 심드렁했던 부모들은 이제 아이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선다. 민심 변화는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국공립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발언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그는 사립유치원의 표는 얻었을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들의 표는 얻지 못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의 이 작품은 공교롭게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내며 인용한 시다. 그가 말한 꽃이 ‘유아교육의 공공성’은 아니었겠지만서도 현재 국민의 꽃은 하나씩 하나씩 피어 꽃밭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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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사를 하면서 책 수백권을 정리했다. 책장에 두 겹으로 꽂아놓고도 모자라 종이 박스에 담아뒀던 책들을 이사하는 김에 떠나보냈다.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들은 팔고, 그렇지 못한 책들은 기부했다. 이도저도 아닌 것들은 재활용쓰레기장에 내놨다.

읽지도 않을 책을 먼지가 쌓이도록 모아두는 오랜 악습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이사를 기회로 악습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용품이 늘어나면서 내 책을 놓아둘 공간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재밌게 읽었던 책이라도 다시 책장을 펼칠 일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택배 박스에 넣었다.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들은 아이 핑계를 대고 남겨뒀다. 아내에게 “언젠가 아이들이 봤으면 하는 책들”이라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글자를 깨우칠 때쯤이면 종이책이란 매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더 과감한 선택을 요구했지만, 나는 “그래도 1000년 이상을 버텨왔는데 그리 쉽게 사라지겠냐”며 버텼다. 다행히 이사를 한 뒤에 책장 1개는 채울 만큼의 책이 살아남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내게 힘을 실어주는 보도가 나왔다. 호주와 미국 연구진이 책을 집 안 가득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지적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신문이 보도한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집에 책이 쌓여 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또 집에 책이 많이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 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 및 통계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연구(Social Science Research)’에 실렸으니 얼렁뚱땅 진행된 연구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데이터 5년치를 분석했다고 한다. 31개국 성인 남녀 16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중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집에 책이 얼마나 있었는지’와 ‘시험 결과’를 비교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많은 분위기에서 자란 성인들은 언어 능력, 수학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났다. 학창 시절 학업성적도 집에 있는 장서의 규모와 비례했다. 반면 책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성인들은 읽고 쓰는 문해력, 수리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특히 고소득층 가정보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책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학업 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규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더라도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10대 청소년들은 책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자란 대학 졸업생만큼이나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구진의 설명도 있었다.

사실, 책이 존재 자체로 공부를 시켜주지는 않는다. 책을 만드는 종이나 잉크에서 뇌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이 분비되는 것도 아닌데 책을 근처에 쌓아둔 것만으로 문해력이나 수리력이 늘어날 리가 없다. 짐작컨대 저런 결과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책 읽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집에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공간과 비용을 책에 할애했다는 의미다. 그런 부모가 책을 적게 읽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저소득층 가정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없는 살림에 책을 사는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에서 자란 아이라면 손쉽게 책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다시 책을 쌓아둘 명분이 생겼다. 다만 앞으로는 책을 쌓아두기만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독서율은 1994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성인은 책 읽기가 어려운 이유로 ‘시간이 없다’ 다음에 ‘휴대전화, 인터넷, 게임’ 등을 들었다. 학생은 ‘시간이 없다’ 뒤로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한국에 사는 성인으로서 뒤통수가 따갑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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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귀가 얇다. 이건 좋다더라, 저건 진짜 좋다더란 말에 귀가 팔랑거린다.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만 봐도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기자라는 직업의 드문 장점 중 하나는 가고 싶은 곳에 직접 가보고, 궁금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때론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지름신’이다. 눈앞에서 좋은 것을 보고 나면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취재를 하면서 적잖게 ‘지름신’을 영접했다. 소소하게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비건(vegan) 패션을 구매하고,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취재하다 텀블러와 손수건을 구매한 것까지. 개중에 가장 크게 지른 것을 꼽자면 단연 공동육아일 것이다. 취재차 방문했던 집 근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된 것이다.

22일 서울 용산구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무실이 불도 꺼진 채 굳게 닫혀 있다. 한유총은 정부가 사립유치원 감사 방침과 ‘폐원 엄단’ 등의 조치를 발표한 뒤 “비리 공무원 명단도 공개하라”며 연일 비난 성명을 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부모가 직접 어린이집 운영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동육아는 꿈은 이상적일지 몰라도 맞벌이 집안에는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넣지 않았던 ‘게으른 부모’에 속했던 나는 공립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민간 어린이집에 만족해야 했다. 심심치 않게 올라오던 어린이집 학대 뉴스에 뒷목이 뻐근해 오기도 했지만, 인상 좋은 어린이집 원장을 믿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등원을 3개월 앞둔 상황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마침 자리 하나가 남았다는 소식에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전국 어린이집의 10%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미리 신청하는 기민함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던 터였다. 아이에게 좋은 게 나한테도 좋은 게 아니겠나, 일단 지르고 보자. 그렇게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공동육아가 쉬운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 운영과 의사결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된다는 것, 선생님과 아이가 신뢰를 바탕으로 비교적 평등하고 민주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공동육아의 이점이다. 하지만 ‘부모의 참여와 노동’이 뒤따랐다. 지르기 전 세세하게 읽어보지 못한 약관을 마주하는 심정으로, 나는 주말과 연차를 공동육아에 투자했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공동육아의 절대적 장점이었고, 그 장점에 나의 내적 갈등은 상쇄됐다.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사립유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를 초청해 “단설 유치원 신설 자제”라는 엄한 소리를 하게 만들어 훅 가게 할 정도로 입김이 센 단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박용진 의원이 등장해 사자의 코털을 단번에 뽑아버렸다. 학부모들이 낸 돈으로 명품백을 사고, 아이들 100명이 수박 한 통을 나눠먹는 등 상식 밖의 비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분노하는 한편 가슴을 쓸어내렸다. 공동육아 때문에 수고로울지라도 이런 비리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구나. 이런 식으로 나의 ‘지름신’을 합리화하고 싶진 않았는데. 

공동육아가 이상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동육아라는 특정한 형태의 보육 시스템이 필요 없는 현실이 이상적일 것이다. 부모의 참여 속에 투명하게 운영되는 시스템, 자연에서의 놀이가 중심이 되는 교육방식이 확대되고, 모든 보육시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되는 현실 말이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비리가 터져나온 유치원에 부모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가 하면 이참에 유치원 운영에 참여하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공동육아를 선택한 나나, 아이에게 해가 갈까봐 유치원 비리를 알면서도 눈감아야 했던 부모 모두 ‘아이를 위해서’라는 마음만은 같았다는 점이 서글프다. 국공립 유치원 부족, 신뢰할 수 없는 사립 유치원이란 현실이 ‘거대한 비리’로 나타났다. 이제 진정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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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ngs we touch have no permanence…. There is nothing we can hold onto in this world. Only by letting go can we truly possess what is real.”

2000년 개봉해 세계적 찬사를 받은 영화 <와호장룡>의 대사다. 무당파의 고수 리무바이가 가지고 있던 청명검을 둘러싼 얘기다. 청명검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스토리다. 누군가에게 ‘청명검’은 권력, 명예일 수도 있고, 또 많은 이들에겐 떼돈일 거다.

리무바이가 후학들에게 전하려던 바는 아마도 위 대사일 테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쥐고 있을 수 있는 영원한 건 없다. 내려놓아야만 참된 것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다.’

리무바이 역을 맡은 홍콩 영화계의 거목 저우룬파(주윤발·63)가 최근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약 8100억원대 재산이라니…. 싱가포르 갑부의 딸이란 그의 아내도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어쩌면 저우룬파는 리무바이의 현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와호장룡>의 주윤발.

사람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집은 적어도 서울 강남에 30평대 아파트가 있고, 고급 수입차를 굴리며, 물 건너온 명품으로 몸을 감싸야 할까.

누구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려울 텐데, 혹자는 ‘적어도 현금 20억원 남짓이면 더 이상의 돈은 별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혹시 너무 많은 재산이 지금 자신에게 모여 있다면 왜, 무엇을 위해서인지 이번 기회에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럼 왜 우리는 놓지 못하는가. 일단 인생의 업보인 자식새끼 때문이다. 저우룬파에게 자녀가 없는 점도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수년 전 역시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한 다른 유명배우는 얼마 전 말을 뒤집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들 때문이라고도 하니 씁쓸하다.

우리가 아등바등하는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노후 걱정이다. 여기서 S·K·Y로 대표되는 학벌이 불거지고, 강남 집값 타령을 비롯한 부동산 문제가 얽히고설킨다. 우리 사회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에 가까운 정글이다.

이런 실타래를 끊을 진짜 ‘청명검’은 뭔가. 사실 답은 웬만큼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후 걱정을 덜어주는 복지체계가 모범답안에 가깝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살면 늙어서 호강은 못해도 폐지를 주워야 하는 걱정은 떨치게 해야 한다. 공부머리가 안되는데 굳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빚내가며 ‘엉터리 학종’을 억지로 채울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악연이 끊길 것이다.

독일형 마이스터고 어쩌고저쩌고 백날 떠들어봐야 안 먹힌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을 배워 사회에 나왔다가 협력업체나 프랜차이즈 본사에 갑질을 당할 수 있어서다. 부동산 투자인지, 투기인지 광풍이 부는 이유도 비슷하다. 근본 원인은 노후 걱정에 임대료라도 받겠다는 불안감이 커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옛말이 있다. 만약에 재벌 총수가 자식에게 최소한 삶을 보장할 만큼만 빼고 전 재산을 환원했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아들, 손자까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닐 공산이 크다. 누구든 한두 번 미끄러지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대한민국 사회다.

지분 일부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모두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는 총수일가들 모습에선 깃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리무바이가 극중 대나무를 타는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는 말했다. “돈은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보관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영원한 건? 혹자에겐 사랑이고 다른 누구에겐 아름다운 이름일 것이다. 리무바이처럼 살아도 되는 날을 꿈꾼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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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야구선수 오승환·임창용씨가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된 사건에 개입했다며 ‘견책’ 징계를 받은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12일 낸 A4용지 1장 분량의 입장문은 상당히 격앙된 톤이었다. “미국 진출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을 게 우려돼 조언한 것이지 결코 결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도대체 (해당 재판을 담당한) 김모 판사가 조언이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났다는 징계사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불복의 소송을 내겠다고도 했다.

그의 억울함은 정당한가. 현행법 어디에도 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와 같은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대해 ‘조언’하라는 권한은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인사·예산·회계·시설·통계·송무·등기·가족관계등록·공탁·집행관·법무사·법령조사 및 사법제도 연구에 관한 사무”가 법원조직법에 규정된 사법행정사무의 전부다.

특히 판사에 대한 인사 평정과 사무분담을 담당하는 수석부장판사의 ‘조언’은 그 자체로 조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법농단 의혹이 촉발된 계기인 지난해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를 보면 간단히 설명된다. 법관 500여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법원장 등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기타 의견 중에는 ‘직간접적인 사건 처리 관여’도 포함됐다.

피고인들에게 사건이 약식명령으로 끝날지, 공판에 회부될지는 차이가 크다. 김 판사 판단에 임 부장판사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판사는 임 부장판사 말을 들은 뒤 공판 회부 결정을 바꿨다. 번복의 특혜는 야구선수들이 입었다. 한 해 70만건에 이르는 다른 약식기소 사건에도 이런 ‘조언’이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에서 다시 확인한 건 법원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곳은 바로 법원이라는 점이다.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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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한데 어울려 몰려다니던 어린 시절, 야구장도 함께 가고 그랬다. 그때 야구장에는 소주가 흔했다. 3회가 지나기 전, 불콰해진 아저씨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였다.

이후 다들 사느라 바빴다. 야구가 멀어졌다. 한때 ‘야구가 없으면 어떻게 사냐’던 친구들은 나이와 함께 ‘야구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를 깨달았다. 가끔 일본을 이겼을 때, 금메달을 땄을 때 한 번쯤 아, 야구가 잘했구나. 그 정도.

한 친구가 묻는다. “근데 말야, 유격수가 실책이 많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나름 전문가라고 불리는 적도 있으니, 설명을 시작한다. “실책이라는 기록은 말야, 심판이 아니라 기록원이 판단하는 거거든. 정상적인 수비로 처리할 수 있었던 타구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하는데, 실책은 포구와 송구를 모두 따져봐야 해. 무엇보다 실책은 종종 어려운 타구를 처리할 때 벌어지거든. 정작 수비능력이 떨어지는 내야수는 건드리지도 못할 타구를 쫓아가서 잡아낸 뒤 1루에 던지다가 실책이 기록되는 경우도 많아. 실책 숫자는 되레 수비를 잘한다는 뜻이기도 해. 그거 알아? 데릭 지터라는 메이저리그 유명 유격수는 마이너리그 첫해 실책을 56개나 저질렀어. 구단이 외야수로 전향시키려고 하다가 실책을 분석했지. 절반 정도는 사실상 1루수 실책이었어. 송구가 일단 바운드가 되면, 쉬운 바운드였다 하더라도 무조건 송구한 선수의 실책이거든. 실책 숫자만 보고 그 선수를 외야로 돌렸다면, 메이저리그는 역대 최고 선수를 잃었겠지.”

또 다른 친구가 묻는다. “야, 아무리 홈런 많이 치는 타자라도 삼진이 많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답은 의무감이다. “홈런과 삼진은 비례하는 기록이야. 홈런을 때리려면 풀스윙을 해야 하니 삼진을 각오해야 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야.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타격 트리플크라운이 81년째 안 나왔어. 올해 크리스티안 옐리치라는 선수가 가까이 갔다가 실패했지. 아, 트리플크라운은 말야, 한 선수가 홈런, 타점, 타율에서 모두 1위를 하는 거거든. 홈런과 타율에서 동시에 잘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래도 득점권 타율이 낮은 건 문제 맞지?”

“득점권이라는 게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라서, 한 시즌의 샘플로 그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기는 어렵지. 3할3푼 타자가 꼬박꼬박 3타석마다 안타를 때리는 건 아니잖아. 평소에도 잘 치는 타자가 결국 기회가 왔을 때 잘 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야.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해당 스탯이 연도별 연관성을 얼마나 갖고….”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야, 너 그거 TMI야. 너네 TMI가 뭔지는 아냐”면서 낄낄거리고 잘라 들어온다. 고애신이 떠올랐다. 분명 내 T를 배우기는 했는데.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약자란다. 처음 뜻과 달리 지나치게 상세한 정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낼 때 쓰인다. TMI는 ‘호오(好惡)’의 영역에 대한 설명을 거부한다. 나는 이게 싫은데, ‘네가 그걸 싫어하면 안돼’라고 설명하는 순간 TMI 경고다. 거꾸로, 나는 이게 좋은데, ‘너는 그걸 좋아하면 안돼’라고 설명하는 것 역시 TMI다. ‘선비질’이고 ‘설명충’이 된다.

자, 그러면 여기서 추석 전후 최고의 유행어. ‘기자란 무엇인가.’ 가짜뉴스가 파고드는 곳은 ‘호오’의 영역이다. 공감을 핑계로, 원하고 바라는 답을 뉴스로 꾸며 뿌린다. 혹시라는 음모에 거짓 팩트를 얹어 ‘역시 그렇군’이라는 반응을 이끈다. ‘가짜뉴스’는 결국 공감이 아니라 증오를 부추긴다. 기자에게 TMI는 의무다. 잘못된 정보는 고치는 게 맞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누군가 물어보면 또 설명한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해당 스탯의 연도별 연관성이 말야….”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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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지방의 사립학교다. 조선시대 마지막 왕인 순종 때 설립된 꽤 오래된 학교라는 점을 빼곤 평범한 여고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동문을 만나 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고교서열화가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내세울 만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창피해 할 학교도 아니었다.

몇 년 전 학교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당시 교장 주도로 학교생활기록부 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으로 학교는 경찰 수사를 받았으며 해당 교장은 불명예 퇴진을 했다는 것이다.

그 교장은 고1 때 나를 가르쳤던 국어 선생님이셨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 혹은 더 젊었을까. 당시 선생님은 수업에 열의가 있었고 사고방식도 유연한 편이라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겼을까 잠시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사는 게 바빠 그 뒤로 잊고 지냈다.

최근 일 때문에 만난 한 입시전문가로부터 다시 내 모교 이야기를 듣게 됐다. 강남 숙명여고의 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에 대해 언급하던 중이었다. “지방 학교로 입시설명회를 다닐 때 보면 보통 학교장은 얼굴도 안 내비치고 교감이 인사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몇 년 전 ○○여고를 방문했는데 교장이 직접 나오더니 교장실로 안내하는 게 아니겠어요? 들어가보니 음식이 차려져 있고 다른 교사들도 배석해 있어 놀랐어요.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이 학교에서 내신비리 사건이 터졌죠.”

좋은 입시결과를 내보겠다는 교사의 열망이 지나치면 비리에도 쉽게 무뎌지는 걸까. 제자가 아닌 자녀 성적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숙명여고와는 경우가 사뭇 다르지만 두 사건 모두 학교생활기록부라는 내신 때문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입 전형에서 내신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면서 내신 경쟁의 불투명성, 불공정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신 불신이 심화되면서 수능에 근거한 ‘정시’ 확대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도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정시 비중을 더 늘리기로 했다. 이 논쟁에서 정시 확대가 강남 8학군, 외고·자사고에 유리하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정시 지지층에선 내신 기반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야말로 고액 컨설팅 등으로 강남에 더 유리한 전형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에 대해선 교사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더 들여다보면 학종에 대한 반감은 패자부활의 가능성을 줄이는 시스템에 있는 듯하다.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저개발 전통사회에서 선진경제 국가로 성장했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은 한 세기 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은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나라다. 그 같은 변화는 교육이 이끌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지표 2018을 봐도 한국은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열망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높다. 그런데 학종의 경우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으니 재수를 하게 되는데 패자부활전 성격의 정시를 줄이고 100% 학종으로 바꾸겠다고 하니 이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싶다. 평소 학종 지지파였던 지인들의 입에서조차 “(자녀가) 만점에 가까운 수능 성적에도 불구하고 (내신이 안 좋아) 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 “고2 때부터 공부해 현재 내신 1등급이지만 3년치를 계산해보니 학종으로는 좋은 대학은 어림없더라” 등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번 실패는 영원한 실패’라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대학입시 과정에서 체화된 이 논리는 대학 졸업 후 공시족 등 각종 시험족을 낳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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