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은어 중 ‘어그로’라는 말이 있다. 대개 ‘어그로를 끈다’는 관용구로 사용된다. 영어 단어 aggravation에서 왔다는 게 정설이다. 도발, 약올리기의 뜻을 가졌다. 

어그로를 끈다는 것은 부정적인 이슈를 내세워 관심을 모은다는 뜻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유행하고 있는 ‘막말’은 ‘어그로를 끄는 관종’의 짓이다. 현실 정치의 어그로는 실보다 득이 많다. 어그로의 수위만큼 자신의 지명도가 높아진다. 점점 더 자극적인 어그로가 유혹하는 어그로의 악순환이다. 

정치 관종의 어그로는 잃을 게 별로 없다. 막말과 망언은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정치판을 지저분하게 오염시킨다.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동시에 일부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지긋지긋한 정치로부터 떠나게 만들고, 지지자를 결집시키니 완벽한 플러스다. 정치판이 오염될수록 새로운 ‘유망주’가 유입될 가능성도 낮다. 새 얼굴이 없으니 자신의 자리는 더욱 탄탄해진다. 

지나치다 싶으면 사과를 하면 된다. 요즘 말로 ‘영혼 없는’ 사과는 다시 한번 어그로를 끄는 데 효과적이기까지 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을 공개적으로 한 뒤 “정확한 의미와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썼다”고 해명했다. 

‘어그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단어지만 출발은 달랐다. 원래 ‘어그로’는 ‘팀을 위한 희생’을 뜻하는, 말하자면 ‘숭고미’를 가진 단어였다.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에서 이 말이 나왔다.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참가하는 온라인 역할 게임이다. ‘파티’를 구성해 괴물(몬스터)을 사냥하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적 중 하나다. 

게이머의 역할은 크게 탱커, 딜러, 힐러의 3가지로 나뉜다. 딜러는 원거리 공격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몬스터를 공격해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인터넷 은어 중 ‘상대를 극도로 괴롭힌다’는 뜻의 ‘극딜’이 여기서 나왔다. ‘딜링’은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다.

힐러는 힐링(healing)을 맡는다. 전투 도중 피해를 입은 팀원들을 치료해 회복시켜주는 역할이다. 마지막 하나, 탱커가 바로 ‘어그로’의 주인공이다. 탱커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낸다. 탱커가 두들겨 맞으면서 버티는 동안 딜러가 몬스터를 공격하고, 힐러가 탱커 또는 딜러를 치료하면서 팀 전력을 높인다. 3가지 캐릭터의 호흡이 맞아야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다. 

몬스터의 공격이 딜러나 힐러를 향하면 파티 전력에 큰 손실을 입는다. 탱커는 몬스터가 계속 자신을 공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전술이 바로 ‘어그로’다. 탱커는 몬스터를 향해 도발을 계속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공격하도록 만든다. ‘어그로를 끄는’ 것은 대중들에게(혹은 지지자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팀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희생적 행동이다. ‘내 친구들 말고 나를 때려라’라고 외치는 행동이다. 내가 두들겨 맞는 동안 내 동료들이 승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종합격투기 선수 권아솔은 ‘어그로’ 전문이었다. 로드FC 소속으로 거침없이 막말을 이어갔다. 때로는 ‘트래시 토크’ 수준을 넘기도 했다. 지난 18일 제주에서 열린 굽네몰 로드FC 053 메인이벤트에서 만수르 바르나위에게 1라운드 초반 리어네이키드초크를 당해 졌다. 팬들의 비난이 거셌다. 권아솔은 SNS에 이렇게 적었다.

“선수가 시합을 못했다면 욕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선은 지켜달라. 나라의 지원도 못 받는 한국 종합격투기가 살아남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해서 한 거다. 이런 게 아니면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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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강렬하다. 화려한 음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식당 한쪽에서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을 먹노라면 그곳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먹어본 적은 없어도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것 또한 음식이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보면 ‘쿠바 샌드위치’ 맛이 궁금해진다. 음식평론가와 설전을 벌인 후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쫓겨난 셰프 칼이 푸드트럭에서 버터를 듬뿍 발라 구워내는 쿠바 샌드위치는 입맛을 다시게 한다. 사정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쿠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말이다. 칼은 아들에게 ‘카페 드 몽’의 설탕 파우더를 탈탈 뿌린 프랑스식 도넛 ‘베녜’를 맛보게 하기 위해 미국 뉴올리언스에 푸드트럭을 세운다. “천천히 먹어. 생의 첫 베녜는 다신 못 먹어. 세계 어디서도 이 맛은 못 내”라는 영화 속 대사 덕에 이곳의 베녜는 전 세계에 입소문이 났다.

나만 해도 10여년도 더 지났지만 베트남 휴양지 달랏에서 화덕에 구운 바게트와 함께 먹은 치즈 맛이 지금도 또렷하다. 홍콩 센트럴 뒷골목의 완탕면은 어떤가. 주인 할머니가 손짓으로 일러준 대로 그 집의 비법 소스를 한 숟갈 넣으니 놀라울 정도로 맛이 달라졌었다. 그때 처음 먹어본 완탕면에 반해 수없이 완탕면을 먹으러 다녔지만, 서울에서 그 맛을 내는 집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음식에는 그곳만의 맛이 담겨 있을 터이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한 장면.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요소. 거기에도 음식이 있다.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위대한 극장들보다는 위대한 식당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도시를 살리는 요인 중 하나가 ‘음식’이란 얘기다. 

음식에 대해 ‘피시 앤드 칩스’ 말고는 없다는 지독한 조롱을 받는 영국이지만, 런던에는 세계적인 셰프들과 유명 식당들이 많다. 이달 초 출장길에 잠깐 들른 런던에서 만난 한 업체 사장은 요즘 뜨는 음식으로 한식을 꼽았다. 런던 킹스크로스에 있는 한식당 ‘kimchee’(김치)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먹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한국 여행객들이 현지 음식이 맞지 않아 찾는 한식당과는 외양부터 다른 이곳은 종업원들도 한국인은 고용하지 않는 현지화 전략을 썼다. 잉카 유적지 외에는 내세울 게 없었던 페루 역시 매년 9월 리마에서 열리는 ‘미스투라’라는 남미 대륙 최대의 음식 축제가 사람들을 모은다.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이 한마디에 4·27 남북정상회담 당일 점심에는 평양냉면집마다 긴 줄을 선 풍경과 냉면 인증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도 도시 공동체를 위해 음식에 주목한다. 지난해부터 서울역 일대에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요리인류> 등 요리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KBS 이욱정 PD가 음식을 통한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로 기획을 맡았다. 올해는 식재료 공동구매, 공동손질, 공동배분을 하는 마을공동체 ‘우리마을 쿠킹박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음식을 매개로 공동체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건강하게 먹기 위한 노력만으로 우리는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에서 잃어버린 연대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다. 2008년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광우병’ 때문이었다. <식탁 위의 세상>에는 1967년 마틴 루서 킹의 우주의 상호연결성에 대한 연설이 나온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지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 말은 상관없어 보이는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평화를 얻지 못할 거라는 우려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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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노동자 과로사는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2017년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배원 과로사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배노동자들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과로와 근무 중 교통사고, 자살로 숨진 우정사업본부 직원은 157명이다. 올해 들어서도 5명의 집배노동자가 숨졌다.

지난 13일에는 무기계약직 집배원으로 일하던 30대 이은장씨가 다음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잠자다 돌연사했다. 전형적인 과로사다. 이씨는 평소 과중한 업무로 힘들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근무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 외 ‘무료노동’도 잦았다.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에 챙긴 여분의 옷, 짐을 나르다 생기는 상처를 치료할 소독제 등은 필수품이었다. 정규직이 돼 행복을 배달하겠다는 이씨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십년간 반복되는 집배노동자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지난해 9월 낸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연평균 2745시간(한국 임금노동자 평균 2052시간)에 달하는 집배노동자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연 2340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2853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는 정규직 집배원을 1000명 증원하기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지난 13일 새벽 어머니와 살던 세종시 자택에서 과로로 숨진 30대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이른 출근을 위해 전날(12일) 밤 거실에 미리 준비해 둔 집배원 조끼. 조끼 안에는 업무에 필요한 잔돈, 우편물도착안내서, 볼펜, 매직, 자동차 키, PDA 배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정대연 기자

결국 돈이 문제다. 집배원 증원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부문에서 적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해에는 적자가 1000억원이 넘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기업들이 e메일이나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고지서를 발송하는 경우가 늘어난 탓이다. 민간택배업체들과 낮은 단가로 경쟁하면서 우체국 택배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그러나 우편물량이 준다고 집배노동자들의 업무강도가 낮아진 건 아니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택배가 늘어나고,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구 단위로 이뤄지는 우편 배달 노동강도는 오히려 세졌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돈이 든다. 

보편적 공공서비스인 우편을 비용만으로 따지는 게 타당할까. 오지에 홀로 사는 노인도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외딴섬에 산다는 이유로 선거공보물, 법원송달물을 받아보지 못한다면…. 이윤이 최우선 가치인 민간기업이라면 손해를 보는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당장 우체국 수를 대폭 줄일 것이다. 국회가 이 ‘죽음의 행렬’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 투입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제라도 예산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우편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우편 50g 기준(2017년) 한국 우편요금은 350원으로, 영국(722원), 일본(806원), 독일(976원) 등의 절반 이하다. 공공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한 어느 정도의 요금 인상을 검토해봐야 한다. 기업·정부 등이 우편물을 다량 발송할 때 깎아주는 돈이 연 2500억원에 달하는데 감액률이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책사회부 | 정대연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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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고되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 착한 지인이 있었다. 작은 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고 누구든 계산 없이 성심성의껏 돕는 능력자였다. 하지만 사장은 그의 노하우만 날름날름 빼먹을 뿐 제대로 처우하지 않았다. 사람 좋은 지인은 고민은 하면서도 싫은 소리는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처지에 답답해하면서 이기적인 사장의 승승장구가 부당하다고 여겼다.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미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교수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3만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먼저 타인을 나보다 먼저 배려하는 ‘주는 사람’(giver)으로 전체 중 25%의 비율을 차지한다.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받는 사람’(taker)의 비율은 19%였다. 그 두 극단 사이에는 ‘맞추는 사람’(matcher)이 56%로 폭넓게 분포한다.


업무성과로 볼 때 이타적인 ‘주는 사람’은 아주 나쁘거나 아주 좋은 양극단을 달렸다. 이들은 조직 내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 정작 자신의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등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가 적잖았다. 이렇게 착한 ‘호구’들이 뒤처질 때 그럼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할까. 꼭 그렇진 않다는 게 그랜트 교수의 설명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 개념이 확실한 ‘맞추는 사람’들이 이들을 응징하기 때문에 성공을 하더라도 ‘반짝 성공’에 그친다고 한다. 그렇게 호혜주의에 기반한 사회협력이라는 원칙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은 일찌감치 수학적으로도 검증된 바 있다. 로버트 액설로드 미 미시간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 대회를 열어 수십 개의 다양한 전략들을 대전시킨 결과, 맘씨 좋은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 최고의 강자였다고 <협력의 진화>(1984)에서 소개했다. ‘팃포탯’의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방에게 기본적으로 호의적이고, 이후에는 받은 대로만 명료하게 돌려준다. 상대방이 한 번 배신했다 치면 한 번만 응징하고 이후에는 관대하게 뒤끝 없이 용서하고 다시 협력의 문을 열어놓는다.


반대로 복잡한 음모나 불신에 바탕을 둔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승률이 낮았다. 한 번이라도 배신당하면 끝까지 응징하는 ‘프리드먼’, 상대방이 배신할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 서면 먼저 뒤통수 쳐서 이익을 챙기는 ‘다우닝’, 상대방의 신뢰를 얻다가 느닷없이 배신하는 ‘트랜퀼라이저’ 등은 승자가 되지 못했다.


액설로드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네 가지 방법을 충고한다. ‘질투하지 마라. 먼저 배반하지 마라. 협력이든 배반이든 그대로 되갚아라. 너무 영악하게 굴지 마라.’ 사랑과 자비로 아울렀어야 할 듯한 세 번째 문장을 제외하면 설교나 설법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린다. 재산을 둘러싼 형제자매 간 암투가 기업을 산산조각 낸 사례가 부지기수인데도 ‘호구는 되지 않겠다’며 역사를 반복한다. 얄팍한 상술로 온라인에서 그럴듯하게 치장한 물건을 팔다가 들통나서 분노의 소비자 폭격을 받는 사례는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온다. 


선의를 믿고, 꾸준히 진심으로 바르고 느린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들 보기엔 ‘호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진짜 이기는 사람들은 그런 호구들이다. 이들이 오랜 시간에 거쳐 얻는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만큼 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앞에서 말한 맘씨 착한 지인은 몇 년 뒤 독립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살고 있다. 그를 호구로 봤던 사장네 회사는 업계에서 잊혀졌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의 실패에 초조해하며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 문장은 끝까지 읽어봐야 아는 것처럼 인생의 결론도 오랜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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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우리집에 연탄을 땠어요. 근데 연탄을 때니까 방이 아주 따뜻하고 나무를 안 해와도 돼서 힘이 덜 들었어요.”

연탄이라니. 갑자기 왜 연탄 얘길 하실까. 지난 4월29일 삼성백혈병 산재사망자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64)를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황씨는 2007년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둘째 딸을 잃고 10년 넘게 삼성을 상대로 싸웠다. 차라리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더 희망이 있겠다는 만류와 돈 뜯어내려는 수작이라는 조롱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황씨는 재판에서 삼성을 이겼다. 과학과 의학과 법률의 논리로 중무장했던 삼성은 황씨의 질긴 투쟁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삼성의 거액 회유를 뿌리치고, 삼성직업병피해자들을 위한 인권단체 ‘반올림’을 만들어 삼성으로부터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도 받아냈다.

보상도 사과도 끝났지만, 황씨는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하다 ‘일’이 있을 땐 전국으로 달려간다. 지난 4월28일엔 마석 모란공원에 갔다. 태안화력발전소 산재사망자 김용균씨의 추모조형물 제막식에 참석했다.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했던 이날 황씨는 마이크를 잡고 “우리 정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그런 기업을 처벌하긴커녕 상을 주고 세금을 수천억원씩 깎아줍니다. 학교에서 노동자 교육은 시키지도 않고 기업에서 일하라고 합니다. 노동자는 안 죽으려야 안 죽을 수가 없고 안 다치려야 안 다칠 수가 없습니다.”

산업재해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 ‘다시는’ 만든 세 부모. 특성화고현장실습 피해가족모임의 김용만씨,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반올림의 황상기씨. 김용만·김미숙·황상기(왼쪽부터)씨가 지난 4월29일 함께 걷고 있다. ‘산업재해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을 만든 세 사람은 전날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김용균씨 추모 조형물 제막식과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들과의 이야기마당에 함께했다. 김영민 기자

29일엔 국회에서 열린 ‘산재·재난참사 유가족이 기업책임강화 법안발의 의원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마당’에도 참석했다. “이런 자리 하는 걸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를 핍박하고 압박하고 병들고 죽게 만들어서…. 우리 아들·딸들이 더 이상 병들고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올림’의 이상수 활동가는 “사실 아버님이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삼성과의 합의 이후 마치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이 온몸이 통증을 쏟아내고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와도 그의 딸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딸의 죽음을 많은 이들 앞에서 계속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겐 참기 힘든 고통이다. 게다가 야박한 인심은 자식을 잃은 아비도 조롱하고 모욕한다. 그가 이제 자신만의 평안을 추구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굳이 감내하며, 그가 남의 자식들을 위해 나서는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황씨가 꺼낸 대답은 ‘연탄’이었다. “근데 그 연탄이란 것은 광산노동자들이 자기 목숨을 다 바쳐서 캐낸 거잖아요. 제가 택시운전을 해서 먹고살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가 비포장도로에 포장을 깔끔하게 해줬기 때문이에요. 여태껏 살면서 나는 다른 노동자들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고 살아왔거든요. 그럼 나도 다른 노동자들,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황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이 너무 소년 같아서 놀랐다. 나쁜 일이라곤 당해본 적이 없는 듯한 해사한 얼굴로 그는 딸의 죽음을, 다른 이들의 생명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맑은 얼굴의 이유를, 자기 몸이 아파가면서도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이번에 만나고서야 알았다. 황상기씨는 연탄 한 장의 따뜻함을, 그 따뜻함 뒤에 숨은 수고로움을, 그 수고로움 뒤에 스러진 많은 생명을 몸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황상기씨, 그리고 그와 손잡은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의 가족들이 모두 안녕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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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한국일보는 경북 경산에 있는 ‘작은 교회’ 이야기를 전했다. 유명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신도가 30여명뿐인 하양 무학로 교회를 무료로 설계해 주었다는 가슴 따뜻한 내용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크게 짓기만 하는 대도시 대형교회와 달리 단층으로 작게 지어 교회 본연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내 담당 분야에 이런 좋은 기사거리가 있었는데 몰랐다는 자책과 함께 기사를 읽는데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승 대표가 설계비를 제외하고도 교회 건축비가 턱없이 모자랐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빚 없이 완공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도움을 준 이웃 명단에는 ‘경쟁 관계’인 경북 은해사도 있었다.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관 스님은 “뭐 그런 걸 다 물어보냐”며 “근처에 어려운 교회가 있어 돈을 조금 보탰다. 나도 하느님께 복 한번 받아보려고 했다”고 답했다. 시쳇말로 참 ‘쿨’한 반응이었다. 그 교회 목사님과는 그 이전부터 교류하며 지내던 사이라고도 말했다. 종교를 담당하면서 쿨한 성직자를 많이 만났다. 불교 조계종 스님들도 적지 않다. 다른 종교와 종단에도 항상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사회 문제를 두고 발언하는 데도 거침없는 분들이 많다. 스님 개개인의 성품도 있겠지만, 불교 특유의 열린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스님들의 ‘쿨’한 성품이 작용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 조계종 내부에 만들어진 노조(조계종 노조)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스님들은 노조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종무원들로 이뤄진 조계종 노조는 지난달 4일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이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 마련을 위해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3월18일에는 총무원이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을 냈다. 종단의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사용자’로 명기했다.

노조의 ‘공격’에 조계종 총무원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5일 조계종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 3명을 대기발령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같은 달 10일 ‘산불복구 지원’이란 명목하에 이들을 강원도 낙산사로 전보 조치했다. 일반 기업들이 노조를 압박할 때 쓰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스님들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지난달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행 스님은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도 아닌데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기획실장 오심 스님은 “각 사찰에 가보니 무슨 불교에서 노조냐고 의아하게 생각한다”며 “(사찰)분담금 내지 말고 종무원 없이 운영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스님들이 모든 노조에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국내 최장기 분쟁사업장이었던 콜텍의 노사가 13년 만에 합의하기까지 조계종은 노조에 큰 힘을 보탰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2012년부터 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했고 지난달 22일 콜텍 노사가 합의할 때도 함께했다. 조계종이 발행하는 불교신문은 지난달 27일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이 조계종과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조계종이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스님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 종교단체의 종무원’이 만든 노조와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는 다르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도 노조의 업무는 같다. 노조는 임금인상이나 복지확대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그중에는 사용자의 전횡을 견제하고 일터의 건전성을 지키는 일도 포함된다. 종단 내부의 노조도 쿨하게 대하는 스님들을 보고 싶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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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에서 맛보게 되는 최초의 달콤한 경험은 바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설 때라고 말했다. 낯선 이들이 환영해주는 경험은 ‘삶의 생생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편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에게 호텔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곳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리지만 수전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그에게 집이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이 쉼 없이 요구되는 돌봄의 공간일 뿐이다. 수전은 오로지 홀로 되기 위해 런던의 후미진 호텔을 찾는다. 

지난 주말, 내게 호텔은 생의 안정감을 확인하게 해주는 곳도,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물론 낯선 이들에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이 정해진 환영, 반쪽짜리 환영이었다. 그곳은 차라리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인 차별과 배제의 장소였다. 

높은 층수,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는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 묵기로 한 것은 딸아이 생일을 맞아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근처에 위치한 호텔이어서 정한 곳이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는 순간부터 기대는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의 직원은 전망 좋은 라운지를 투숙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단서를 붙였다. “단, 만 12세 미만 아동은 출입 금지입니다.” 물론 홈페이지의 화려한 소개글에 그런 문구는 없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그곳에 있기 부적절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투숙객”에 우리는 포함될 수 없었다. 대신 근처 아쿠아리움 이용권을 지급했지만, 어쩐지 “이거 줄 테니 나가주세요”란 뜻으로 들렸다. 

‘부적절한 사람’이 된 경험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호텔 수영장을 찾았다. 그곳에선 거의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 수영장 옆 사우나에 아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대신 작은 샤워실에서 간단한 샤워는 가능하다고 했다. 비좁은 샤워실에서 불편하게 아이를 챙기고 짐정리를 하고 있자니 더부살이하는 군식구가 된 느낌이었다. 

인류학자 김현경식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 나와 아이는 순간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사람이 됐다. <사람, 장소, 환대>에는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나오는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김현경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환대와 장소를 꼽는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묻는다.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날 호텔은 나에게 생의 안정감이 아니라 불안정감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란 ‘미성숙한 인간’으로서 특정 장소에서 배제되고 추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또 ‘나의 진정한 사회적 위치’를 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로서 나 역시 배제·추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말이다. 그곳에서 나와 아이는 조건부 환대를 받는 ‘이등 시민’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이번 경험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의식과 무의식에 자국을 남길지 두렵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두 명의 재판관은 “우리 모두 태아였다”고 말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조건, 국가의 책임에 대한 고민 없는 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말을 바꿔 말해보자.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아이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하고 배제하는 사회, 이 사회가 과연 아이가 태어나 온전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인가.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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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인 한 회사 후배와 대화를 하다 흠칫 놀란 적이 있다. “저는 영화 잘 안 봐요. 유튜브에 가면 짧게 짧게 설명해 놓은 영상들 있어서 그걸 봐요. 몇 시간 동안 어떻게 봐요.” ‘아 그렇구나!’


입사 16년차인 나에게 그는 ‘요즘 후배’의 기준이다. 그는 센스 있고 합리적으로 일하며 제 몫을 해낸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지만 선이 확실하고 끈적한 관계보단 산뜻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개인차는 있겠으나 대체로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겐 비슷한 특징이 엿보인다.

이런 90년대생이 한꺼번에 우리 팀에 몰려왔다. 영상 제작을 함께할 인턴PD가 합류한 것이다. 앞으로 이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이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258쪽에 나온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트위터 멘션. “망연자실한 리서치 결과 십대들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로 두 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놔야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영화의 적이 휴대폰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16년 전엔 나도 신입이었다. 입사 2년차쯤, 당시 15년차였던 한 선배가 신입인 나에게 적잖이 당황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거침없고 직선적이었다고. 이제 추억을 곱씹는 선배가 됐지만 말이다. 앞에 언급한 책에 채현국 선생님(효암학원 이사장)의 발언도 인용되는데, 채현국 선생님은 2014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가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라고 했다. 나이가 들고 ‘아비’가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거늘 이런 가차 없는 말씀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런데 잠깐 뒤집어 보면 그리 섭섭할 일은 아니다. ‘아비’는 이미 많이 누리고 많이 가졌다. 많이 도전했고, 실패했으며 성공했다. 연륜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생겨나는 사이에 어쩌면 현실에 만족하며 변화에 소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썩는다’는 채현국 선생님의 표현을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아비’가 되는 것. 어쩌면 ‘아비’로 생존하는 것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어쩐지 선배 세대가 억울하다고? 아니다. 90년대생도 언젠가 ‘아비’가 된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어른됨을 고민하다가 생각의 끝은 신문에 이른다. 신문은 올드 미디어다. 레거시 미디어, 트래디셔널 미디어 등 올드 미디어를 부르는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어쨌든 뉴미디어는 아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고 유튜브를 위시한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에도 달리고 있지만 어느새 늙어버렸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잠깐 뒤집어 보면 레거시 미디어는 이미 많이 누리고 많이 가졌다. 많이 도전했고, 실패했으며 성공했다. 노하우가 축적되는 사이 지금의 방식에 안주하게 되고 도전정신은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올드 미디어에 쏟아지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치 있는 언론으로 남는 것은 미디어 스타트업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의 시대에 신문은 ‘아비’가 아니라 다시 태어난 ‘아들’을 자처하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혁신이 그렇게 쉽냐고? 아니다. 그렇지만 변화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고민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이미 미디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정답을 제시해 줄 초인은 없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아비’와 ‘아들’이 함께 만들어갈 뿐이다. 이제 90년대생 인턴들이 쓴 뼈 때리는 콘텐츠 분석 보고서를 더 읽어 봐야겠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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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노래 속 ‘잡초’는 이름도, 꽃도, 향기도, 손도, 발도 없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존재다. 여자농구 청주 KB스타즈를 우승으로 이끈 안덕수 감독은 ‘잡초’라 불렸다.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갖고 있는 걸 잘 몰라서다. 한국 사회에서 인물을 평가하는 첫번째 요소인 ‘학연’과 ‘지연’을 갖추지 못했다.

경기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덩치가 컸다. 주변의 권유로 농구공을 잡았다. 매산초등학교와 삼일중을 거쳤다. 중3 시절 전국대회에서 펄펄 날았고 우승을 따냈다. 안 감독은 “옛날 기억은 항상 좋은 일만 남기지만 같은 학년에서 우리 친구들을 이길 선수는 없었다. 다 한 수 아래였다”고 했다. 같은 학년 동기들은 얼마 뒤 불기 시작한 ‘농구대잔치 열풍’의 주인공이 됐다. 전희철과 김병철이 한 학년 위, 양희승과 서장훈, 추승균 등이 동기였다. 

우승 뒤 일본으로 친선경기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일본 고교(하쓰시바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농구공은 잘 다뤘지만 일본어는 몰랐다. 이미 같은 재단의 삼일상고 진학이 예정돼 있던 터였다. 농사짓던 아버지가 말했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1989년 당시 일본과의 경제적 격차는 상당했다. 운동 선수에게 짐 싸는 일은 익숙했지만, 말 한마디도 안 통하는 곳은 낯설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첫 반년 동안 죽도록 고생했다. 말이 안 통하니 그곳에서야 말로 ‘잡초’였다. 안 감독은 “그래도 나중에는 일본 후배들이 형제처럼 잘 따랐다”고 했다.

고교 졸업 뒤 일본의 규슈산업대에서 월 10만엔씩 장학금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대학 졸업 무렵, 한국에도 ‘프로농구’가 생겼다. 삼성에 입단했지만 그를 위한 자리는 넓지 않았다. 습관성 어깨 탈구도 발목을 잡았다. 선수생활이 일찍 끝났다.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을 지내다 2007년 일본 여자프로농구 샹송화장품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다. 당시 일본 여자 농구는 한국 농구에 뒤져 있었다.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낯선 곳을 향한 또 한 번의 도전이었다. 9년 동안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일본 농구는 한국 농구에 역전했다. 그사이 안 감독도 일본 농구가 가진 시스템의 힘을 온몸으로 배웠다.

2016년 초 KB스타즈의 감독 자리가 비어 있었다. 많은 ‘국내 농구인’들이 그 자리를 노렸다. 학연·지연은 물론 여러 가지 ‘인연’을 동원해 관심과 욕심을 전했다. 안 감독은 여기저기 줄을 대는 대신 당시 챔피언이었던 우리은행의 챔프전 경기를 보러 다녔다. 안 감독은 “경기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았다”고 했다. KB스타즈는 팀 분위기 쇄신을 원했다. WKBL 출범 뒤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인연이 없는 ‘잡초’가 적격이라는 판단이었다. 구단 관계자가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샹송화장품을 설득했다. 감독직을 고사했던 안 감독은 “3년을 기다려달라는 게 내 수락 조건이었다”고 했다.

감독 첫해 드래프트에서 박지수를 지명할 수 있었던 것은 운명 같은 행운이었다. ‘잡초’로 지낸 지난 세월은 소통 능력을 키웠다. 일본어 한 글자를 모르고도 살아남았다.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뜻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선수들은 “감정 표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게 오히려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긴박한 순간 복잡한 언어보다 솔직한 표정이 더 정확하게 뜻을 전하기 마련이다. 화려한 꽃과 향기로 속이는 대신 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잡초의 힘이다. 한국 여자 농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던 정선민을 FA로 데려오고도 하지 못했던 우승을 약속했던 3년 만에 결국 해냈다.

중3 때 일본을 가지 않았더라면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을지 모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안 감독은 “그래도 일본으로 갔을 것”이라고 했다. “온실 속 화초는 보는 사람이 즐겁지만 끈질긴 잡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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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친 밤이었다. 바람은 시뻘건 불씨를 사방으로 날랐다. 불은 바람을 타고 ‘도깨비불’처럼 삽시간에 번졌다. 그날 밤은 모두 쉬이 잠들지 못했다. 노모는 대처로 나간 자식의 안부가, 농부는 창고에 쌓아놓은 못자리가 걱정이었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았지만, 손쓸 틈도 없이 들이닥친 화마를 피해 집을 빠져나오느라 도리가 없었다.

강원 일대를 휩쓴 산불이 일어난 밤을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14년 전 ‘양양 산불’이 일어난 날이다. 주민들에게는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져 천년 고찰 낙산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던 모습이 떠오른 밤이었을 테다. 이번에도 주민들은 큰불에 밤새 마음을 졸였다. 그나마 하루 만에 불길이 잡혔다. 단시간에 최대 규모의 소방력을 투입해 불과의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소방당국은 산불 발생 2시간여 만에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덕분에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전국에서 출동한 소방차들이 밝힌 경광등으로 훤했다.

정부의 대응 체계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화재 현장을 찾아 주민을 만났다. 임기를 하루 남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임식을 취소하고 현장을 지키다 진영 후임 장관에게 임무를 인계했다. 화재 다음날 정부는 피해지역인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4일 오후 7시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되며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이날 불은 원암리의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가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길이 속초 시내 쪽으로 번지며 고성·속초지역 콘도 숙박객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져 긴급 대피하는 등 밤새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 불로 오후 11시30분 현재 1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방청은 재난 대응 최고 수준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차를 속초지역에 지원토록 조치했다. 연합뉴스

재난을 당한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당장 피해를 줄일 순 없지만, 정부가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 시스템의 붕괴를 목격했다. 이는 재난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9·11 사태를 겪은 미국인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 전적으로 국가의 대응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번 산불 진화에도 시민의 힘이 빛을 발했다. 사람들에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일조했던 건 소셜미디어(SNS)에 시시각각 올라온 현장 사진들이었다. SNS에서는 목줄에 묶인 탓에 불길을 피하지 못해 털이 검게 그을린 강아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주민은 화재 현황 지도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고, 펜션을 운영하는 숙박업자는 빈방을 기꺼이 내주었다.

하지만 큰불에 너나없이 마음을 쏟고 있는 동안에도 정치권은 ‘네 탓’ 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가 산불, 온 국민은 화병”이라고 썼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왜 이리 불이 많이 나나”라는 글을 올렸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게시글을 삭제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철수 속초시장은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산불 현장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저자 레베카 솔닛은 이러한 상태를 ‘엘리트 패닉’이라 칭한다. 그는 엘리트 집단으로 대표되는 정부와 관료조직은, 재난 앞에서 스스로 혼란 속에 빠져든다고 했다. 그는 “재난은 사회적 요구를 증폭시키고 새로운 집단에 힘을 부여하는 한편, 정부의 조직적·행정적·도덕적 결함을 노출시킴으로써 정치제도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재난에 맞서 새롭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타주의를 발휘할 때, 정부는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고, 무능을 숨기고자 거짓을 말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대형 재난은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는가?’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재난 뒤에는 취약한 사회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본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재난을 모두 예방할 수는 없다.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책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내년 강원도의 봄날엔 새까만 재가 아닌 벚꽃잎이 날렸으면 한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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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맘때 서울 사대문 안에서 분신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제는 경희궁자이아파트가 들어선 돈의문 재개발지역에서다. 일식집을 하던 고모씨(당시 67세)는 2016년 4월12일 15년 된 자신의 식당이 강제철거되는 현장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의 가게가 있던 새문안의 ‘맛집 골목’엔 조선시대 골목의 흔적과 1920년대 한옥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2003년 뉴타운 지역에 편입되면서 전부 헐려 근린공원이 될 운명이었는데,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인 2015년 서울시가 용도를 문화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토지와 건물을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받기로 하고 ‘돈의문박물관마을’ 조성을 추진해 2017년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근린공원이 되면 종로구로 넘어가게 돼 있던 토지 소유권을 놓고 시와 구가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예술가들에게 기획전시 공간으로 내줬지만 관람객이 오지 않아 ‘유령마을’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결국 시는 땅 문제는 해결이 안된 채로 지난해 10월 민간에 긴급 용역을 내서 운영주체를 뽑았다.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 경희궁 옆 골목 안쪽에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새롭게 꾸며 3일 공개했다. 최미랑 기자  

“전면 철거하는 재개발을 반성하고 재생의 관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마을로 만들고자 했다.” 3일 서울시가 새로 단장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공개하며 밝힌 취지다.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를 콘셉트로 잡았다. 

건물들을 신축·리모델링하는 데는 총 300억원이 들었고 운영엔 연간 25억원이 든다. 사라질 뻔한 공간을 지켜낸 만큼 어떻게 다시 꾸몄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날 공개된 마을을 둘러보니 내용이 참담했다. 보존한 건물 40채 중 16채를 ‘마을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그중 ‘생활사전시관’에는 연탄과 비누, 빨래판과 아궁이 같은 것들을 모아뒀다. 사진관, 이발소, 오락실, 만화방, 구락부(클럽)도 엉성하게 재현했다. ‘새문안극장’에서는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이 상영됐다. 1970년대 교복을 입은 도슨트(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추억의 감성을 느껴보시라”고 강조하는 동안 골목길에선 199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또 한옥을 살려 만든 ‘체험전시관’에선 닥종이·자수·한지공예 등 체험수업을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억지로 짜내는 듯한 공간과 프로그램들이었다. ‘인위적인 테마파크 이상의 의미가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건물들이 남아있는 것 자체로 시민들에게 의미가 클 것”이라고 답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마을전시관’에 새롭게 꾸며진 ‘새문안만화방’(왼쪽)과 ‘돈의문콤퓨타게임장’. 서울시는 “스마트폰 터치가 아닌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고, 웹툰 대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꼭 가봐야 할 장소로 추천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최미랑 기자

재개발에 밀려난 세입자들에게 시는 2015년 “편의시설을 들이게 되면 특별분양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업종보다는 ‘콘셉트’에 맞는 것을 들일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자리 잡은 상인들이 과연 이곳으로 되돌아올까. 시는 ‘살아있는 참여형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삶이 밀려난 자리에 중구난방으로 과거의 생활을 박제해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미랑 | 전국사회부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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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대형마트·백화점·슈퍼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일제히 금지된 이번주, 공교롭게도 두 장의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이탈리아 해안에서 발견됐다는 향유고래.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한다는 이 고래의 모습은 처참했다. 지난 주말 이탈리아 해안에서 발견된 8m 길이의 고래 배 속엔 무려 48.5파운드(22㎏)의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상표 및 바코드가 붙은 세제 용기를 비롯해 접시, 쇼핑백, 낚싯줄 등이 나왔다. 이 암컷 고래는 새끼도 배에 품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은 최근 국내 한 미술관에 걸린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의 ‘앨버트로스’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그가 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찍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새’ 앨버트로스는 불행하게도 인간의 탐욕과 대량 소비가 불러온 재앙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어미 새는 독약인 줄도 모른 채 주워온 플라스틱을 아기 새에게 먹이고, 죽은 앨버트로스의 배에는 각종 플라스틱 조각들이 가득 차 있다. 슬픔을 넘어 죄책감, 그리고 분노마저 불러일으킨다.

플라스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부쩍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썩지 않는 쓰레기를 품을 수 있는 생태계의 임계치가 넘은 듯 여기저기에서 자연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플라스틱의 폐해가 무서운 것은 최후의 피해자는 인류가 될 것임을 누구나 짐작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벨기에 출신의 미국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1909년 발명한 이후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격히 생산량이 증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65년간 플라스틱은 83억t 생산됐고, 이 중 63억t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특히 방치된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져 생긴 미세플라스틱은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던 미세먼지가 현재는 일상적인 환경피해가 됐듯 몇 년 후면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공포로 해산물을 마음놓고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각국 정부도 나서고 있다. 유럽의회는 2021년부터 나이프·빨대·면봉 막대·접시 등 플라스틱으로 만든 10개 종류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주 가결했다. 찬성이 560표로 반대 35표, 기권 28표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법안은 또 2029년까지 플라스틱병의 90%를 재활용하고, 2025년부터는 플라스틱병 제조 시 재생 플라스틱을 25~30%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미국의 경우 주정부 차원에서 움직임이 감지된다. 뉴욕주는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번째로 내년 3월부터 소매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다음달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각 카운티가 종이봉투를 유료화하는 방안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중국이 폐비닐 수입금지를 결정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일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재사용률을 끌어올린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쇼핑하러 나서기 전 장바구니를 꼭 챙긴다. 기업체들의 과대포장 문제는 제쳐놓고 일반 시민들만 다잡는다는 불만도 들린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과대포장을 우선 단속하고 비닐봉지 대체재를 만들어 보급하는 게 더 좋았을 법하다. 그러나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의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이다. 과대포장도 따지고 보면 보기 좋고 깨끗한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한 물건은 폐기도 인간이 해야 한다”는 한 환경운동가의 말처럼 이제는 누구라도 나서야 할 때이다.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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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한 통 썼다. 편지의 형식을 빌린 인터뷰 요청글이었다. 한번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보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연락처를 알아내고도 하루를 꼬박 망설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인터뷰를 청하는 이유를 적은 뒤 최근에 쓴 몇 건의 인터뷰 기사를 덧붙였다. 일로 쓰는 모든 글이 다 어렵지만 이 글이 근래에 쓴 어떤 글보다도 쓰기 힘들었다. 읽고 또 읽으며 몇 글자를 붙였다 뗐다 한 끝에 전송을 눌렀다. 편지를 보낸 지 11시간쯤 지나서 답을 받았다. 편지의 수신인은 세월호 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이다.

‘비겁하다’는 말이 제일 두렵다. 그건 내가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는 정면승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힘들고 어렵고 골치아픈 일은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꼭 해야 할 말, 꼭 해야 할 일도 빙빙 돌리고 미루다가 타인에게 더 상처를 주고 폐를 끼치는 일도 많았다. 가끔 강심장 같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중요한 거의 모든 순간에 실은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나의 ‘비겁의 역사’는 길고도 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였다. 2014년 4월 이후 몇 달간은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세월호 사건을 취재했다. 매일 화가 나 있었고 기사를 써도 써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맡았던 취재가 끝난 뒤에는 의식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피해 도망다녔다. 저 엄청난 분노와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했다. 세월호 관련 기록을 정리한 여러 권의 책들도 쌓아만 두고 한 장도 읽지 않았다.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앞을 여러 번 지났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팽목분향소 앞 자갈밭에 놓여 있는 노란 조약돌. 색이 바래고 글씨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도망다닌 5년 동안 세월호 사건에서 조금도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노래의 모든 슬픈 서사가 창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세월호의 이야기로 읽혔다. 책을 읽다 말고 영화를 보다 말고 노래를 듣다 말고 우는 것도 아닌, 울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번을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을 쓰면 명치 끝이 아팠다. 2016년 늦가을,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촛불시민들 사이로 세월호 유가족들이 탄 차가 들어섰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길을 열라고 외쳤지만, 노란 리본을 단 그 차를 본 순간 내 목소리는 꽉 막혀버렸다.

2019년 4월, 지금 책상에는 세월호 관련 책과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인터뷰를 청한 기자가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기꺼이 자신의 아픔을 들려주기로 결심한 분을 만나기 위해, 그동안 외면하려 애썼던 깊고 어두운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작가들의 글을 모은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씨는 2014년 이렇게 썼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그는 지난해 펴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서문에선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걸 본 이후 한동안 나는 뉴스를 보며 자주 울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괴로워 피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눈물도 멈췄다. (중략) 이런 일들을 겪고 나는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말하는 것은 두렵고 아프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어쩌면 100년 뒤에도 이 사건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한다. ‘쫄보’가 될지언정 더 이상 비겁하게 살지 말자는 마음으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모두가 침몰한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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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마다 돌아오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평가를 앞두고 결국 사달이 났다. 전국 43개 자사고 중 올해 재평가 대상은 22개. 이 중 13개 자사고가 모여 있는 서울에서 자사고 교장 22명이 지난 25일 모여 “재평가를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 유일의 광역 자사고인 하나고를 제외한 22개 자사고가 모두 참여한 선언이니 현재대로라면 서울시 자사고 재평가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튿날 열린 서울시교육청과 자사고들 간 간담회에서도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자사고들은 시교육청이 만든 평가 기준이 과거보다 지나치게 높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정당한 요구라고 보기 어렵다. 수험생이 출제자에게 “문제가 너무 어려우니 쉽게 내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세상에 그런 시험은 없다. 더욱이 자사고 재평가는 엄연히 교육법으로 규정된 법률행위다. 기본적으로 자사고가 그 평가 기준을 이유로 재평가를 거부할 대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교사노동조합 등이 “재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자사고 지정 요건을 위반하는 위법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선 배경이다.

자사고가 무엇을 기대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는지 단정하긴 어렵다. 정말로 시교육청이 평가 기준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민선으로 교육감직을 연임하고, 기회만 되면 자사고 폐지를 외쳐온 조희연 교육감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속된 말로 ‘가오’가 빠져도 너무 빠지지 않나.

5년 전을 떠올려본다. 2014년에도 자사고 재평가가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14개 자사고가 평가를 받았고, 8개 학교가 기준 미달로 나타났다. 시교육청은 규정에 따라 해당 자사고에 대해 폐지 절차에 들어갔지만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다. 교육법에는 자사고를 취소하려면 교육부와 시교육청이 ‘사전 협의’를 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자사고를 없앨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시교육청과 교육부의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지난해 대법원은 “사전 협의가 안됐으니 지정 취소를 하면 안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시교육청이 진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자사고 재평가 결과 발표 및 후속 조치는 연말쯤에나 이뤄진다. 그리고 내년엔 바로 총선이 있다. 일각에선 자사고들의 평가 거부 선언을 ‘제2의 한유총 사태’와도 비교하지만 뜯어보면 결이 많이 다르다. 한유총 사태는 학부모와 여론이 스스로 정부 편에 섰다.

자사고 문제는 다르다. 인생을 좌우한다는 대학 입시가 걸려 있는 문제다. 당장 자녀가 다니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학부모는 많지 않다. 지난해 학교 측이 스스로 원해 일반고로 전환한 대성고의 경우 아직도 전환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유총 문제와 달리 자사고는 지역 민심과 여론을 동요시킬 휘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선언문을 들고 나타난 22명의 교장과 그 뒤에 자리 잡은 사학재단들은 이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려되는 점은 교육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시교육청이 재평가와 지정 취소를 강행했을 때 교육부가 5년 전처럼 딴지를 걸지 않아야 정상이다. 규모와 그 파급력을 봤을 때 자사고들이 집단 평가 거부에 나섰을 때 즉각 교육부가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여당 내에서도 누구는 자사고를 없애자 하고, 누구는 “우리 지역에만 없다”며 자사고를 달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 현 정부의 명운과 차기 대권의 향방까지 걸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자사고가 됐든 정부가 됐든 교육을 가지고 정치놀음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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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영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세상에서 사는 일이란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내가 겪은 몇 가지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

물리적인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태어난 뒤로,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접하는 경험과 인식하는 세상이 다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일을 겪어도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여성이 훨씬 더 위험한 세상에 살고 더 많은 차별을 받는다.

몇 년 전 일이다.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에게 행선지를 이야기하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택시는 낯선 길로 가고 있었다. 주변에 가로등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순간 겁이 났다. 그러나 곧 별일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택시 강도나 납치범이라면 술에 취하지도 않은 멀쩡한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잠이 들었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기사님에게 슬쩍 물어보니 본인이 아는 지름길을 택해서 왔다고 했다. 실제로 택시비도 조금 적게 나왔다.

집에 와서 아내와 이 짧은 해프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니 ‘남자라서 다행’이었다. 아내는 여성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쉽게 다시 잠들지는 못했을 것이라 했다. 맞다. 내가 여성이었다면 택시가 집 앞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어쩌면 한밤중에 이런 택시를 잡아탄 스스로를 탓했을지도 모른다.

여성·흑인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캡틴 마블>. 월드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얼마 전 영화 <캡틴 마블>을 봤다. ‘페미니즘 영화’라며 일부 남성들이 관람을 거부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려와 달리 페미니즘 요소가 극의 전개를 해치지 않았다. ‘여자들은 할 수 없을 것이란 편견을 이겨내는 여주인공’은 너무나 교과서적이라 ‘진짜 이게 페미니즘 요소의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해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다음달 개봉하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이어주는 영화로는 무난하다고 여겼다.

같은 영화를 보고 온 회사 여자 후배의 반응은 나와 달랐다. 평소 마블 영화를 즐기지 않았지만 <캡틴 마블>은 정말 재밌고 감동적으로 봤다고 했다.

특히 “여자는 조종사가 될 수 없어” “여자는 너무 감정적이야” “여자가 하기엔 무리야”라는 ‘조언’을 쉴 새 없이 받으며 자란 주인공이 이런 편견을 박살내고 우주 최강의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가슴을 두드린 모양이었다. 이 후배는 ‘딸과 함께 볼 영화’를 찾고 있는 선배에게 <캡틴 마블>을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최근 성폭력 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방송인 정준영의 범행을 보는 시선에도 ‘온도차’가 있다. 획일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남성들은 대체로 정준영의 범죄를 ‘실재하는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마도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 많은데 왜 언론은 정준영 사건만을 다루나. 뭔가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남성일 것이다. 반면 여성들에게 정준영의 범행은 언제라도 눈앞에 닥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니 ‘다른 사건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 역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은 원래 다르게 태어난 존재이니 별 수 없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의 평화, 직장의 평화,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두 세계의 간극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사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여성들은 두 세계 간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와중에 비판을 받고, 논란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 이제 공은 반대편에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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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고구마를 캐다가 금맥을 찾았다는 표현을 썼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고구마인 줄 알았는데 펄떡이는 심장을 캐낸 형국이다. ‘버닝썬 사건’은 가수 승리의 성접대, 약물 강간, 불법 동영상 촬영과 공유, 공권력과의 유착 의혹까지 그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의 몸을 물건 취급하고, 성폭력 범죄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는 ‘남성연대’의 심장 말이다. 권력과 부가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는 자리에선 어김없이 드러나는 낡은 심장.

이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게 놀랍진 않다. 승리는 버닝썬에서 불법 약물을 유통하고, 이를 통해 여성을 강간하고 성접대에 이용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이 버닝썬의 범죄행위를 눈감고 비호해준 의혹도 드러났다. 이런 일들이 승리가 벌인 사업의 영역에서 벌어졌다. 승리와 친한 연예인들의 사적인 대화방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나. 가수 정준영은 성관계를 불법촬영해 공유했고, 참여자들의 대화에선 약물에 의한 강간이 있을 가능성도 드러났다. 2016년 여자친구를 불법촬영한 혐의로 입건됐던 정준영은 ‘죄송한 척’을 한 후 경찰의 부실수사에 힘입어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었다.

폭행과 마약, 성범죄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이 지난달 17일 영업을 중단한채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석우 기자

이들의 일터인 방송은 어땠을까. 정준영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줬다.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현재 드러난 ‘불법촬영 범죄’와 연관된 듯한 일을 언급하고, 남성 연예인들이 농담거리로 삼는 장면이 공중파를 타고 나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정준영의 ‘황금폰’에 있는 ‘도감’, 승리의 ‘외장하드’에 있다는 ‘야동’엔 이들의 대화방에서 오갔던 불법촬영 영상들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중의 성의식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했다.

TV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들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연예인의 부와 권력으로도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현행법을 조롱하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긴 했다. 그동안 봐왔던 유사한 사건의 주인공들은 유력 재벌이나 고위 공무원쯤의 감투는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정도의 부와 명성만으로도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 이것에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토대이며, 남성연대로 다져진 사회구조였던 것이다.

지금 승리-정준영 사건은 필연적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장자연 사건’과 만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유희나 여흥으로 여기고, 공권력과의 유착으로 범죄를 무마했다는 점에서다. 때마침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 윤지오씨가 10년간 해외에서 체류해오다 최근 귀국해 공개증언에 나섰다.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민청원도 60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김학의 전 차관과 관련해서도, 부실수사를 입증하는 새로운 증언이 나오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우리는 이제야 ‘가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법을 익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피해자 리스트가 떠돌고, 동영상을 찾는 움직임도 있지만, 동시에 SNS에선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포스터가 널리 공유됐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과거였다면 ‘남성 연예인의 일탈’ 정도로 넘어갔을 사건이 범죄로 정의되고 가해자가 중심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성폭력을 가시화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시킨 ‘미투 운동’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수전 브라운밀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강간이 권력과 폭력의 범죄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문화적으로 강간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남성연대’(male bonding)의 실체를 해부하고 폭로했다. 그는 “불균형을 바로잡고 우리 자신과 남성들을 강간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여러 층위에서 함께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작은 문이 열렸다. 이제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힐 차례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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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래!” 구순 노친네의 목청은 쩌렁쩌렁했다. 걸음걸이부터 힘찼다. 골프라운딩을 두 바퀴 하고도 남을 성싶다.

참 기이한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아니 요즘은 더 정확히 그냥 ‘전두환씨’가 새삼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다. 맞서 싸우던 이들은 하나둘 떠나고 이 늙은 내란수괴는 보란 듯이 강건하고 당당하다. 먼저, 29년 만이라던가. 서울 연희동 골목 장면을 보자니 개인적으로 두 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하나. 바야흐로 ‘땡전뉴스’가 판을 치던 1984년 6월 어느 날. 당시 한 초등학생은 학교의 소집명령에 학우들과 수㎞를 걸어서 경북의 고속도로 인터체인지(IC)에 이르렀다. ‘전통 각하’께서 고속도로 개통을 축하하려고 지나가실 때 손을 흔들기 위해서다. 광주를 밟고 최고권력자가 된 전씨가 동서화합을 명분으로 급조한 88올림픽고속도로다. 워낙 서둘러 2차선으로 만든 탓에 한동안 국내 사망률 최고 ‘죽음의 고속도로’로 악명 높았다. 그날 한참을 기다려도 그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정작 각하께선 헬기로 지나갔단다. 대구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동네 형은 방학 때 와선 “전두환 일당이 총으로 사람을 쏘고 권력을 뺏었다”는 무서운 얘기를 들려줬지만 말귀를 알아먹기엔 어렸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을 마친 후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둘. 1995년 봄이던가. 대학교 학생회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밖이 술렁거리고 시끄러웠다. 일단의 선배들이 두 줄을 지어 교정을 다니며 구호를 외쳤다. “독재자 전두환을 처벌하라!” 더러는 야상 군복까지 입은 복학생 선배들이 대학도서관에서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하다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역사에는 ‘문민정부’ 김영삼(YS) 정부가 전두환·노태우의 12·12 쿠데타를 단죄한 것으로 돼 있다. 앞서 3당 합당에 대한 ‘야합’ 비난에 “호랑이를 잡으러 굴로 들어왔다”고도 했던 YS다.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5·18 특별법도 만들었지만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시민사회는 전두환·노태우씨를 검찰에 고소, 고발했다. 그날 도서관에서 책을 잠시 덮고 뛰쳐나온 선배들의 함성은 그런 연장선에 있다. 훗날 한나라당으로 제17대 국회의원 금배지까지 단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1995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겪고서야 기소돼, 끝내 두 쿠데타 주역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반란수괴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저들은 틈만 나면 왜 버젓이 갈등을 부추길까. 북한군 개입설까지 퍼뜨리며…. 이는 마치 전범들을 영웅시하고 위안부, 나아가 독도까지 트집 잡아 끊임없이 잡음을 즐기는 일본 우익과 닮은꼴이다. 단죄를 못한 탓이다. 독일 등지에도 전쟁범죄를 정당화하고, 인종주의를 신봉하는 늙은 옛 나치단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사실 지만원씨 발언 등이 불거져나온 맥락이나 시점이 중요하다. 바로 정부의 지지도가 떨어진 때다. 독버섯의 포자는 그늘진 어딘가에 늘 퍼져 있다. 역사를 되돌리려는 자들은 음습한 틈을 노린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이들이 슬금슬금 피어날 것이다. 그러다 훗날 전통 각하의 위패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모셔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날 도서관을 뛰쳐나온 선배들께 늦게나마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 시대의 멍에를 짊어진 386정치인들이 소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망언을 잠재우고, 민주화를 꽃피운 이름들을 더 아름답게 빛낼 열쇠가 될 것이다. 단지 전두환 때리기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저들이 뻔한 수작을 걸어온 이유일 수 있어서다.

한편으론 각하의 만수무강을 빈다. 왜 이러냐고? 진솔한 사과도 없이 몸져누우시기엔 아직 이르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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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에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논쟁’의 영역이다. 홍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직접 노출한 ‘센’ 발언이 기자에게 고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쓸까? 말까?’

홍 전 대표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은 왜 고민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고민이 시작되는 이유는 ‘쓰는 것’의 몇 가지 효용 때문이다. ① 발언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한다. ② 온라인에서 잘 팔린다. 반대로 ‘쓰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도 있다. ① 요즘 같은 실시간 소통 시대에 굳이 왜 기사로 워딩을 그대로 전달하나. ② 발언 자체에 대한 판단과 검증이 필요하진 않을까.

취재원에게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관의 자세가 필요했다. 객관성, 중립성 등 거리를 유지한 건조한 사실 전달이 언론의 가치였으며 ‘전달자’ ‘매개자’로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했다. 지금도 누군가의 발언과 사진 등이 고스란히 기사화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주요 인사의 발언, 셀럽의 SNS 등은 발화와 거의 동시에 ‘속보’라는 이름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사실 온라인 경쟁만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 관행과 가치는 유효한 측면이 있다. ‘뭐 이런 걸 기사로 쓰느냐’는 악플이 달릴지언정 클릭은 해봤다는 얘기니까.

그렇다보니 아이러니가 생긴다. 독자들이 디지털 시대의 기자와 기사에 기대하는 가치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독점하던 정보나 인물에 대한 접근 장벽은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나만의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제 기자는 따옴표 속에 담긴 ‘말’(text) 자체를 넘어 따옴표 너머의 ‘맥락’(context)을 짚어주는 사람으로 진화해야 한다.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한 현장을 종합적으로 비춰보고 사실이 아닌 진실이 무엇인지 ‘판정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어떤 발언이나 행위가 소수를 향한 혐오이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 언론의 검증 절차, 기자의 독자적 해석과 판단을 전제한, ‘진실의 판정자’로서의 적극적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성애, 수간까지 비화될 것 “5·18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 등의 발언을 따옴표 속에 묶어 그대로 전달만 하는 것을 독자들은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2016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라는 공화당 후보를 만났는데, 당시 뉴욕타임스 짐 루텐버그 기자는 기사를 통해 “당신이 트럼프 후보가 가장 최악의 인종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방향으로 선동하려는 사람이라고 믿는 저널리스트라면 어떻게 그를 보도할 것이냐고 묻는다. 문제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과연 저널리즘의 가치에 맞느냐는 질문이다. 이후 미국에선 유력 정치인의 발언이 사실인지 여부를 ‘체크’해 전달하는 ‘팩트 체크’ 보도가 나타난다. ‘트럼프가 A라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게 아니라 ‘트럼프가 A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틀린 발언이며 B가 맞다’고 보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검증 방법은 사실에 입각해야 하고, 검증의 기반이 된 정보나 발언인의 출처도 투명해야 한다.

당연히 이 같은 역할에는 부담이 따른다. 미국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팩트 체크 기사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기자가 판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가 신문과방송 2월호 기고에서 쓴 문장을 빌려 말하고 싶다. “이 몫을 감당하지 않은 저널리스트,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한 기사는 고작해야 ‘발언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한 결과물일 뿐이다. ”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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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정동교회를 지난다. 그 길 끝에 경향신문이 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수놓는 아름다운 출근길이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숙연함이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혼란스러웠던 구한말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있고, 아관파천의 무대였던 구 러시아공사관이 있고, 을사늑약을 맺은 중명전이 있다. 또 유관순 열사 동상이 교정을 지키는 이화여고가 있다.

얼마 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하얀 천이 쳐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고종황제의 국장을 재연한 것이라고 했다. 고작 100년 전만 해도 이 땅에 왕이 있었고, 주권 잃은 왕의 타살 의혹에 민중들은 분노했다. 이 땅은 일제 치하였고 우리글과 우리말을 맘껏 쓰지 못했다. 언제 광복이 될지, 아니 광복이 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1919년 그날 태극기 하나 들고 맨몸으로 거리에 뛰쳐나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단한 용기다.

3·1 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난달 24일 덕수궁을 흰 천으로 둘러싸 고종 장례를 재현하는 <백년 만의 국장> 전시 준비가 한창이다. 이석우 기자

어쩌면 올 3·1절은 한반도의 축제가 될 뻔했다. 앞선 2월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 진통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기에 무언가 나올 것 같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경제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는 덕담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넬 때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합의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따리가 부족했을 수도, 김 위원장의 요구가 과했을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담대한 성과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실망스러운 결과다.

반면 북·미 회담에 부정적이던 사람들은 “나쁜 결과보다는 결렬이 낫다”며 빈손 결과를 환영하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100년 전에도 ‘그런다고 광복이 될 줄 아느냐’며 독립운동에 냉소적인 사람들은 있었다. 심지어는 일제에 붙어 부역을 한 조선인 순사도 있었다. 미래는 단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역사는 언제나 절실한 자들의 몫이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하는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생각보다 난제가 많아 큰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렇더라도 실망하지는 마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또 한발 전진한 것”이라고 했다. 나라 밖에서 보는 한반도 정세는 냉정했다.

북·미 정상이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진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트위터에 올렸다는 시 한 편이 올라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2015년 10월28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에 2 대 15로 대패하고 올린 안도현 시인의 시다.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참고 기다리면서 엉덩이가 짓물러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그날을 고대하는 마음과 마음들이 뒤섞이고 걸러지고/ 나눠지고 침전되고 정리된 이후에 온다’

3·1운동 이후 광복까지도 26년이 걸렸다. 한두 번의 훈풍으로 70년간 굳어진 고드름이 단번에 녹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일지 모른다. 고약한 꽃샘추위에 조금 녹다가 다시 얼고, 다시 얼었다 또 녹으면서 고드름은 봄을 맞는다.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남북 철도 연결도 그렇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덕수궁 돌담길 은행나무 끝에 움이 살짝 텄다. 제비 한 마리 온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제비가 와야 봄이 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지배배 웃으며 헤어졌다. 봄은 올 것이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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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과 환경부가 지난달 25일 서해에서 진행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인공강우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27일 발표한 상세분석 결과에 따르면 비가 아주 약간 내렸지만,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예고된 실패였다. 전문가들은 시간당 10㎜의 비가 2시간 이상은 내려야 미세먼지를 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공강우 기술로는 시간당 고작 1㎜가 늘어나는 정도다. 게다가 인공강우 실험의 영향권은 100~200㎢ 정도의 국지적인 범위라 시민들의 기대처럼 서해상에 ‘커튼’을 칠 정도도 못된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2일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서울 여의도를 걷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그럼에도 인공강우 실험에 ‘미세먼지 저감’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미세먼지를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특단의 대책을 시도”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인공강우 등 새로운 방안의 필요성을 밝힌 것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갑갑한 국민들의 마음을 씻어내는 심정으로 인공강우 실험이라도 시도했을 것이다.

예정된 실험에 미세먼지 저감 효과 분석을 추가한 것이고, 장기적으로 과학기술을 축적한다는 측면에선 무조건 나무랄 일은 못된다. 문제는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부랴부랴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벌이는 게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다.

정부에 지금 필요한 것은 ‘기우제’가 아니라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중국 탓으로만 여겨서도 안된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을 더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계절은 봄으로 변하고 미세먼지 농도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보여주기’ 대책으로는 잠시 눈을 돌릴 뿐, 근본적 해결 방안은 될 수 없다.

<배문규 | 정책사회부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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