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인 지혜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다. 지혜는 학교에서 온라인개학에 대한 아무런 공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권호욱 기자

아이는 누워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이라고 했는데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싶게 작은 체구였다. 조막만 한 얼굴의 절반 이상은 인공호흡기가 덮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출퇴근길에만 마스크를 써도 코 옆에 자국이 생기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렇게 24시간 호흡기를 끼고 생활하고 있다.

골형성 부전증과 러셀실버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는 3년 전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만난 건 온라인개학 이후 교육격차가 더 커질 취약계층의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장애학생에게 절실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아이는 3년째 화상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방문교육을 통해서라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친구들이 소풍을 갈 때 근처에서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교는 지침과 안전을 이유로 그 어떤 대면접촉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는 책 읽기나 카카오톡 메신저 등이다. 그날도 아이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누운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세워져 있는 책을 읽어내려가는 식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도 꿈이 있어요. 누워 있고 아픈 아이라고 꿈이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두어 달 전에 만났던 50대 어머니가 떠올랐다. 경기도의 한 반지하에 살고 있는 한부모가정으로, 아이 다섯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습기로 눅눅한데 3~4년 전 폭우로 하수구가 역류하면서 부엌 장판 등은 볼썽사납게 우글거렸다. 침수로 물이 스며들어, 썩어 무너져내린 장롱을 버리고 플라스틱 서랍장을 구해왔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분이었다.

취재 말미에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직까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한껏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이라며 낯선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처럼 망설였다. 그러고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대신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졸업하면 군대를 바로 갔다와 돈을 벌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두 만남이 머릿속에서 겹쳐진 것은 우리 사회가 과연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곳인가라는 물음에서다. 

꿈은 앞으로 언젠가는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희망을 담는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더라도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동기로 작용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꿈은 곧 앞날을 뜻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살아갈 날이 있다고 항변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미처 앞날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고된 삶을 고백했다. 아프다고, 가난하다고 꿈이 없겠는가.

아이의 꿈은 작가라고 했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느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띄엄띄엄 학교에 가더라도 세상과 연대하고 어울리며 살고 싶은 이유다. 반지하에 사는 어머니도, 그의 아들도 꿈꾸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생계에 치여 미뤄두거나 잊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이 품은 꿈을 지켜줄 수 있을까. 꿈꾸는 일이 꿈같은 일이 된 사회, 2020년 우리의 모습이다.

<이성희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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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모습이라도 일상은 나를 이루는 터전이다. 특별한 것 없지만 늘 항상 그러한 것. 바로 거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나타나면서.

아이의 개학이 몇번 미뤄지고 보육을 위해 연차를 냈다. 사람이 가득찬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동료들과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쇼핑은 가능하면 온라인을 이용한다. 운동을 하러 가지 않는다. 가능하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외식을 줄인다. 퇴근 후 영화 한 편, 맥주 한 잔도 바이바이. 바로 지금 휴대폰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긴급재난문자’가 울린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직장인 지침. 유증상 시 재택근무, 직장 내 2m 거리 두기, 마주 보지 않고 식사, 다중공간 사용 않기, 퇴근 후 바로 귀가하기.” 일상이 어그러지면서 불안해지고, 불안하니까 움츠러든다. 견고한 일상에 발을 딛고 ‘나’와 ‘내 주변’ 너머를 살피던 사람들이 점점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상을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게 되자 타인의 일상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특히 일상이 남들보다 더 위태롭고 팍팍했던 이들, 균열로 인한 흔들림의 강도는 더 셀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일상이 그렇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주문과 택배 배송이 늘어나는 가운데 40대 비정규직 배송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회사 측은 배송 물량이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현장의 말은 이와 다르다. 플랫폼 노동이나 배달 시장이 코로나19 와중에 그나마 버티는 시장이라지만, 종사자에 대한 처우나 안전은 늘어나는 물량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한 사업장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하거나 지급받더라도 방한대였다고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1급 방진마스크를 받았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답답한 콜센터에서 여전히 전화를 받는 업무를 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전화를 받아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 있어 죄송하다”고 하면서.

와이파이를 잡으려 화장실에 쪼그려 앉은 영화 <기생충> 속 기우·기정처럼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책상과 휴대용 스탠드를 메고 와이파이를 찾아 산에 올라 인터넷 수업을 들어야 했던 한 중국 중학생의 이야기는 디지털 격차를 보여준다. 대학 강의들이 화상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수화나 자막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학습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균열은 오히려 일상을 고스란히 들춰냈다.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일상. 코로나19 이전에도 비정규직들은 계속 차별철폐를 외쳐왔고, 플랫폼 노동자들은 형태가 녹아내려버린 노동을 담을 틀을 요구해왔으며, 디지털 격차와 장애인 학습권은 오래됐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은 이슈였다.

일상의 균열이 생길 때 비로소 드러나지 않던 이들의 일상이 드러난다는 점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제 그 아이러니를 조화로 바꿀 수 있을까. 서로가 거리를 두고,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으니 협력과 연대의 둘러보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던 코로나19가 부각한 상처들을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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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환경은 그야말로 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보면 된다. 그 안에서 끊이지 않는 콜을 받으면 금세 목이 건조해져서 따갑다.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지 못할 만큼 옆 사람과 거리는 턱없이 좁아서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전염되기 쉽다.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하다가 겨우 나았는데 주위 직원들이 그대로 옮아 굉장히 미안했던 적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계속 앉아 있다 보니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상담원이 많다. 통화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거북목이라 조금 웃기면서도 슬프다. 늘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안구건조증은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먹고 바로 앉아 있으니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몸보다 더 아픈 게 마음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퇴사하는 동료를 종종 본다. 친한 선배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전화를 받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든다고 한다. 병원을 다녀도 쉽게 낫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폭식증 등 식이장애에 시달리고 심각한 불면증에 걸리는 동료도 있다.” 얼마 전 읽은 에세이집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애플북스)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의 저자 박주운씨는 5년간 콜센터 직원으로 일한 경험을 꼼꼼히 기록해 최근 책으로 냈다. ‘보통 주 6일 근무, 하루 70콜 이상, 적어도 한 달에 1500콜’이란 고통스러운 일상을 ‘글쓰기’에 기대 견뎠다고 한다. 

최근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상담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다시 주목받았다. 위에 인용한 대목에서 ‘독감’을 ‘코로나19’로 바꾸기만 하면 이번 집단감염의 원인이 손쉽게 설명된다. ‘외출을 줄이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는’ 등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 된 시대지만 콜센터 상담원들은 그 어느 것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박주운씨의 에세이는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기록이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으면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다.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생활인’의 에세이를 연달아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라이킷)은 장수연 라디오PD가 썼고, <제법 안온한 날들>(문학동네)은 남궁인 응급의학전문의의 글이다.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푸른숲)의 작가는 김성광 인터넷서점 MD다. 

처음에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단상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박주운씨의 책을 계기로 다시 살펴보니 이들의 글은 모두 현장의 소중한 기록이기도 했다. 장수연 PD의 글에는 방송환경의 변화와 MBC 파업의 영향이, 남궁인 전문의의 글에는 가난과 질병의 상관관계가, 김성광 MD의 글에는 출판산업의 변화와 육아의 어려움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모두가 고통스럽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번거롭겠지만 자신의 일기장이든, 소셜미디어든 지금의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기록해두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아니 조만간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간 뒤 과거를 다시 뒤적이면서, ‘그때는 그랬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들이 묶여 책으로 나오면 더 좋고.

<홍진수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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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 정기인사를 단행하면서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법관 7명을 재판 업무에 복귀시켰다. 다른 재판에 개입해 재판 독립을 훼손한 혐의를 받은 판사들에게 시민들이 재판을 받고 싶어 할까. 7명과 다른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이 어떤 업무를 맡는지 궁금해졌다. 지난 4일 취재 대상 법관들이 소속된 5개 법원에 사무분담표(법관 배치표)를 요청했다. 사무분담이란 판사들을 형사·민사·영장전담 등 분야별 재판부에 배치하는 일이다.

“제공이 어렵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5곳 중 대구지법·수원지법 등은 법관 배치표를 끝내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전례가 없다” “민감한 정보가 들었다” 같은 여러 이유를 댔다. 법관 배치표는 대단한 정보가 아니다. 재판부명과 판사 직위, 이름만 적는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공적 기관 홈페이지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형식의 표다. 예를 들어 ‘형사1부 홍길동 판사’가 다다.

법원의 법관 배치표 공개 여부는 이중적이다. 대법원이 관리하는 ‘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에서 법관 배치표를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법원 공보’ 4·10월호에 싣는다. 모든 시민에게 공개하는 자료다. 각급 법원 홈페이지는 재판부명만 공개한다. 판사의 소속 재판부를 알 수 없다. 

수사 보안을 이유로 법원보다 폐쇄적인 검찰은 어떨까. 각급 검찰 홈페이지에 차장검사·부장검사·평검사 이름과 사무실 호수가 적힌 검사실 배치표를 공개한다.

어떤 판사가 어떤 재판 업무를 맡는지에 관한 사항은 시민의 알권리다. “특정 법관(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사무분담을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대구지법)는 말에선 법원이 시민 알권리보다 ‘법원 가족’의 기본 정보에 더 민감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법원은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이 어떤 재판 업무를 맡았는지도 소상히 알려야 할 책무가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는 ‘비공개 대상 정보’를 다룬다. 공공기관은 국가안전보장, 국민 생명·신체 보호, 범죄예방 등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공개 대상 정보’의 예외가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직위’다.

‘김명수 대법원’은 재판 독립, 공정·투명한 사무분담 같은 사법개혁을 외친다. 그 과제를 추진·완수하려고 한다면, ‘형사1부 홍길동 판사’ 공개 문제부터 다시 들여다보길 바란다.

<유설희 | 사회부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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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어느 날. 바이러스가 도시로 스며들었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방역에 성공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 즈음 바이러스가 반격을 시작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동이 났다.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퍼졌다. 자고 일어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숫자를 보며 공포는 더욱 커진다. 바이러스 세상에서 감염을 피하고, 전파자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힘겹다. 일상은 무너지고, 갈 데라곤 집뿐이다. 지난 주말 대한의사협회는 대국민 권고안에서 3월 첫주 ‘외출 자제’를 제안했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대처할 별다른 방법은 없다. 개인 방역은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준수가 전부이다. 바이러스는 살아남았고,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포로 결속한 대중은 이번에도 특정 지역과 집단을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어냈다. 분노는 발병지인 ‘중국’에서 ‘신천지’로 옮겨갔다. 경계와 혐오는 감염병 종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 이상 확진자를 세는 게 무의미해진 지금은 각자가 할 일을 하는 것이 이 사태를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이다. “불안은 사람들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매개가 되는 바로 그 조건이기도 하다”(<불안들>)고 하지 않았던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전염병 창궐로 봉쇄된 도시 오랑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페스트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이 나온다. 전염병과의 사투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지도자나 관료가 아닌 의사 리외, 보건대를 조직한 타루 등 평범한 이들이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리외에게 “영웅주의”가 아니냐고 묻지만 그는 “성실성의 문제”라며, 성실성이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소설의 배경은 1940년대지만 지금 우리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임대료를 인하해주는 ‘착한 건물주’가 나오고, ‘의리’ 배우 김보성은 트럭을 타고 대구 거리를 누비며 마스크를 나눠줘 ‘마스크 산타’가 됐다. 1980년 고립의 두려움을 경험한 광주시는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문’을 통해 대구의 코로나19 경증 환자들을 전담병원 2곳에서 받아 치료하기로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이런 것들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대를 제도화하는 것. 자가격리자가 3만여명에 이르는 지금은 무엇보다 방역에 집중해야 할 때다. 지자체가 나서 공포나 혐오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에 ‘신천지 책임론’을 제기하며 지난 1일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등을 고발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여러 지자체장들도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 분명한 것은 정부든 지자체든 ‘통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언젠가 바이러스가 또다시 닥친다면, 그때는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얼마 뒤면 봄꽃이 한창일 텐데, 아직 봄을 맞을 처지가 아니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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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여놓은 마스크가 하나둘 떨어지면서 불안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가 수백명씩 늘어나고 설마 했던 사망자가 10여명에 이르는 지금, 마스크는 코로나19 감염을 피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예방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언제 잠잠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온갖 온라인 쇼핑몰을 들락거렸다. 마스크 판매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 빠르게 ‘구매하기’를 클릭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웃거린 것도 ‘마스크 대란’을 헤쳐나갈 비법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관련 게시물은 나처럼 마스크 구매에 실패했다는 하소연부터 직접 만드는 마스크 등에 대한 문의가 대부분이었다. 마스크 가격을 갑자기 대거 올려 판매하는 공급업체를 비판하는 게시글도 많았다. 1000원 안팎 하던 마스크값이 4000~5000원을 넘어 1장당 1만원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매한 마스크를 뜯어보니 휴지가 나왔다는 황당 사연도 있었다.

그러다 ‘마스크 나눔’이라는 게시물들이 눈에 띄었다. “대구에 계신 임산부께 마스크 나눔해요” “급한 대로 몇 개라도 나눔 올려요” 등의 제목으로 올라온 이 게시물들은 자신이 확보한 마스크 중 일부를 무료로 내놓는 내용이었다. 대개 대구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섰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이 올린 거였다. 택배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수량이 넉넉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게시물들에는 “따뜻한 마음에 대구 시민들도 잘 이겨낼게요” “저도 작게나마 나눔하겠습니다” 등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게시물과 댓글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선한 영향력’을 활자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한 친구도 생각났다. 친구는 마스크 판매 예정 정보를 친한 이들과 항상 공유한다. 누군가 당장 사용할 마스크가 없다고 하면 쟁이고 있던 물량도 직접 나눠준다. 마스크 대란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친구는 “다 같이 힘든 상황이잖아”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지인도 훈훈한 소식을 전했다. 인근 건물주들이 점포 임대료를 한시적으로 낮추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이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상가 세입자들을 조금이라도 돕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전주 한옥마을과 대구 서문시장 등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료’ 운동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건물주들이 알음알음 늘고 있는 것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력을 잃는 전염병이 퍼지면서 도시가 한순간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모습을 그렸다. 코로나19 확산이 급속도로 진행된 최근 한국 사회와 꼭 닮아 있다. 소설에서 정부는 시민 보호라는 미명으로 눈먼 자들을 격리하지만 수용소에는 무질서와 약탈, 폭력, 강간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가 난무한다.

다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극한 상황에서도 눈먼 자들을 돕고 의지하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 작가 조제 사라마구는 “이들에게 있어서 연대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성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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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 여부를 놓고 몇 달째 논란이 이어지던 각 시·도교육청의 ‘모의선거 교육’(모의투표)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주 “안된다”며 쐐기를 박았다. 

선관위원 9명 전원이 참석하는 전체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데, 이로써 학교에서 모의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됐다. 예컨대 이미 지난해 12월 모의투표를 진행할 40개 학교의 선정을 마치고, 이를 지원할 예산과 교육계획까지 준비했던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이 모든 걸 갈아엎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모의투표를 함께 준비해왔거나 이를 지지해온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겠지만 선관위가 이를 받아들여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없다. 교육감들이 선관위 결정에 반발해 강경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낮다. 한 교육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터라 정치적 오해를 살 게 뻔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모의투표는 이론보다는 실전에 가까운 교육 과정이다. 학생들이 실제 정당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보고, 토론과 스스로의 가치판단을 거쳐 투표까지 직접 해보는 일련의 과정이 핵심이다. 모의투표 결과는 실제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에 공개토록 돼 있다.

선관위는 모의투표를 전면 불허한 이유에 대해 “교원이 교육청의 계획하에 모의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행위 양태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에 이르러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위원들이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교육계 일각에선 “위원들 대부분이 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탓”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학내 모의투표는 과거 총선이나 대선 때도 여러 차례 실시했던 교육이다. 모의투표 자체가 정치편향 시비에 휘말렸다거나, 모의투표로 인해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세뇌’되었다는 등의 얘기 역시 알려진 바 없다. 모의투표가 “애들은 가라” 식으로 막아야 할 투전판이 아니라는 얘기다. 선관위의 결정에는 학생 유권자의 독립적인 사고와 판단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결여돼 있다.

일본은 “젊은 유권자의 투표율 상승에 도움이 된다”며 교내 모의투표를 권장하고 있다. 공직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20~30대 젊은 유권자의 투표율이 꼴찌를 기록하는 동안 선관위는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규제기관이 있으면 진흥기관이 있어야 적절한 균형이 맞는 경우도 있다. 선관위가 규제 쪽에 관심이 더 많다면 이참에 ‘선거진흥위원회’를 만드는 건 어떤지 제안한다.

선관위의 결정이 ‘선거 교육’이라는 큰 밥그릇(혹은 주도권)을 놓치기 싫어서라고는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다. 선관위는 최근 ‘18세 유권자 선거 교육 교재’를 발간해 일선 학교에 보급했다. 다만 학교에서 제대로 활용되길 바란다면 교재부터 꼼꼼히 검토해보길 권장한다. 

교재를 보면 “친구에게 지지를 부탁할 수 있다”고 했다가, “교실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건 불법”이라고 해놓고선, “2개 이상 교실을 다니며 선거운동하면 불법”이라고도 써놓았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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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엔 특권이라는 단어가 1번 등장한다. ‘제11조 3항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사실 특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국회의원에 한해 두 가지 특권을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 직무상 발언에 대한 면책 특권과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아니할 불체포 특권. 적어도 법적으로는 다른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권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 말고도 검찰과 언론 등이 가진 권력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것 외에도 곳곳에 스며 있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특권도 있다. 사는 곳에 따라, 버는 돈의 액수에 따라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이 범람한다. 비정규직의 사원증 목줄·식권의 색이 정규직의 그것과 다른 곳이 있고, 노키즈존이 존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도로 퍼지자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자는 목소리, 아시아에 대한 혐오가 고개를 든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지혜 교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특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별의 이면에 특권이 있는 이유다.

뭐 사소한 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소한 듯 보이고 무의식적이며 심지어 쉽게 변명이 가능한 언행이 차별 구조를 공고화한다. <인종토크>의 작가 이제오마 올루오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름이 너무 어렵네요. 다른 별칭 없어요?” “아시아인치고 눈이 크네요” “만원이지만 비어 있는 옆자리” “엄마 아빠가 너랑은 놀지 말라고 했다는 말”. 사소하지만 계속 쌓여가며 편견을 강화하는 말과 행동이 바로 마이크로어그레션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만약 지금 ‘내가 차별을 하고 있다고?’ 혹은 ‘나에게 특권이 있다고?’라는 의문이 들었다면 일단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선 것이다. 특권을 해체하고 직시할 때만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적 성취가 아닌 구조적으로 주어진 특권인 경우 이 분석은 더 유효하다. 올루오는 “우리가 가진 특권이 다른 이가 받는 차별과 교차하는 지점을 인식하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경향신문 기획 ‘가장 보통의 차별’은 우리가 특권과 차별이 교차하는 곳 어디쯤에 서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성별, 성적지향, 학력, 거주지역, 외모, 나이, 경제력, 장애·병력 범주에서 각자의 차별과 특권의 경험을 돌아본 뒤 응답자들이 보인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누구에게나 강자의 면과 약자의 면이 있다.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특권과 차별을 돌아보면 필연적으로 불편해진다. 남의 특권과 나에 대한 차별, 내 특권과 타인에 대한 차별이 맞닿은 지점에 있어서다. 그 불편함을 기어코 찾아내어 바라보는 게 차별과 특권을 없애는 시작이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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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가수 겸 배우 하리수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2000년 9월 게이인 배우 홍석천이 ‘커밍아웃’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한국인들에게 알린 지 대략 7개월 만이었다. 홍석천이 동성애라는 당시 사회의 금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면,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등장은 ‘타고난 성(性)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리수는 한국사회의 선구자였다.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악담을 받기도 했지만 버텨냈다. 이듬해 12월에는 법원에서 호적 정정 및 개명 허가를 받았다. 법적인 성을 바꾸는 일은 같은 해 7월에도 있었지만, 유명인의 경우는 그 파장이 훨씬 컸다. 하리수의 주민번호 7번째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고, 본명이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바뀐 것은 이 사회의 변화를 상징했다. 당시 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성전환자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 헌법 이념에 따라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2020년 1월은 19년 전 하리수의 등장 때만큼이나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한국사회에서 많이 회자된 시기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육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던 변희수 전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결국 강제전역 판정을 받았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호적정정까지 마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최종 합격했다. 그러나 19년이란 세월만큼 한국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진보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듯하다. 변 전 하사와 숙명여대의 일이 알려진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 복무적합 여부’와 ‘여대 입학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남성 부사관으로 입대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전환복무 요구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이 전례 없는 일이기에 절차적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관련 규정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 규정을 따질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구성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까지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군과 숙명여대의 일부 구성원들이 이들을 ‘진정한 여성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면서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진정한 여성’이란 개념 자체는 남성 위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생물학적 정의였다. 생물학적으로 ‘지정’받은 성별과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시스젠더(Cisgender) 여성만 진짜 여성이란 주장은 21세기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지금에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 페미니즘의 고전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팔루디는 76세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아버지를 만난 뒤 <다크룸>이란 책을 썼다. 팔루디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다크룸>)을 쓰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경험들이 합쳐져서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정체성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인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라며 “사실은 둘 다이다. 우리는 물려받은 것을 재구성하는 순간에도 물려받은 것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지금은 2020년이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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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종목 가운데는 ‘민주적인’ 스포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야구는 타석에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개의 스트라이크만 허용된다. 때로 판정시비는 따르지만 삼진아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뒤끝이 깔끔한 편이다.

사실 삼진아웃은 생활 곳곳에서 통용돼왔다. 음주운전이 일례다. 이전 도로교통법은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1% 미만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3차례 적발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고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2차례만으로도 면허를 취소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허위·미끼 매물이 판을 치는 중고자동차 시장도 그렇다. 2016년 정부는 중고차 매매업체가 허위매물 등으로 3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빼앗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별로 나아진 게 없자, 2차례 적발로 기준을 높였다.

삼진아웃제에는 처음은 실수일 뿐 ‘두 번째부터가 진짜 잘못’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고차 시장이나 음주운전에서 보듯 두 번까지 눈감아줬다가는 진짜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람 심리라는 게 한 번 해도 안 걸리면 ‘또 괜찮겠지’라며 간이 커지게 마련이다. 감시와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개전의 정’이 안 보일 때는 단매가 현실적 처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현재 풀 카운트 상황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사실상 삼진아웃이다.

최근 삼성의 ‘준법경영 선언’이라든지, 전직 대법관까지 모셔와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린 것을 보는 시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해 10월25일 첫 공판 때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발언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1993년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 법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판결로 말하면 그만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눈을 가린 채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었는지 굳이 되물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삼성의 영향력은 이처럼 크고도 깊다.

그리고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 50돌. 이 부회장은 새 경영 화두를 던졌다. ‘100년 삼성, 함께 가요 미래로!’ 삼성의 책임경영 고민이 십분 이해되지만, 1주일 전 재판장의 주문 이후라 영 개운치 못하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창민 한양대 교수와 최한수 경북대 교수의 보고서는 “재벌 총수들이 유죄판결로 구속됐을 때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기업 가치가 더 크게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단언키는 어렵다. 무죄가 나거나 집행유예를 받으면 삼성과 나라 경제에 더 충격이 올까.

판사는 경영에 ‘훈수’를 두고, 기업인은 당연한 준법경영을 ‘선언’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현실이 그저 서글프다. 미워도 다시 한번인가.

<전병역 기자 |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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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직자 26명의 2009~2013년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은 2013년 6월7일 모터쇼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터쇼라니. 해직자들이 쌍용차의 신차발표회에 가서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나보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 모터쇼의 이름은 H-20000이었다. ‘20000’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를 가리키고, ‘H’는 HEART 혹은 HOPE 혹은 사다리를 뜻한다고 들었다. 그 모터쇼에 나온 차는 달랑 한 대였다. 

그 차를 만든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었다. 해고된 지 5년째에 접어들자 노동자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뭐였지?’ ‘왜 우리는 매일 투쟁만 하고 있는 거지?’ ‘맞아, 우리 원래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었잖아.’ ”

해직자들은 중고자동차 가게에서 2004년산 코란도 밴을 구입해 해체한 뒤, 낡은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조립해 ‘그들만의 차’를 만들었다. 거리와 옥상, 첨탑에서 농성을 하며 ‘시위꾼’ ‘빨갱이’로 매도당하던 그들은 오랜만에 차를 만진 뒤 아이처럼 좋아하고 울었다.

부끄럽지만 그들이 모터쇼를 진행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정리해고의 피해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노사정(노조, 회사, 정부) 합의에 따라 2020년 1월 복직하기로 했던 쌍용차 해직자 중 46명의 복직이 무기한 연기됐다. 회사는 그들에게 임금의 70%를 주겠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일도 안 하고 돈을 받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비아냥댄다. 복직예정자 김득중씨는 지난 23일 월급 97만6149원을 받았다. 김씨는 1993년 입사해 올해 27년차다. 서류상으로는 쌍용차 직원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액수만 문제는 아니다. 쌍용차 해직자들은 ‘존재의 이유’와 싸웠다. 왜 갑자기 해고되었는가. 경찰특공대가 희대의 진압작전을 벌일 만큼 파업이 불법이었는가. 10년간 30명이 목숨을 잃은 것도 이런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 평택이라는 도시를 터전으로 살던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리됐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공동체도 무너졌다. 죽은 자들은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쌍용차 출신이라는 것을 숨겨야 했다. 그렇게 10년7개월을 버텼다. 남은 복직예정자들은 ‘쌍용차 생존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참담한 사실은 그나마 쌍용차 문제가 지난 10여년간 가장 큰 관심을 받은 해고사건이라는 점이다. 오늘도 전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옥상에 오르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곡기를 끊으며 기약 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 도장을 찍은 쌍용차의 복직합의가 복직 1주일 전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파기되는 사실을 보며,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는 그 많은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아마 더 외로워졌을 것이다. 노동하며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바람이, 2020년에도 어떤 이들에겐 몸과 마음을 다쳐가며 절규해야 할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야 할까.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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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사히신문 기자였다가 정년을 포기하고 50세에 퇴사한 이나가키 에미코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그의 산문집 <퇴사하겠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직후였다. 50대 비혼 여성이 사표를 던지고 나서 삶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니 어쩐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기분으로 청한 인터뷰였다.

그는 회사라는 ‘키높이 신발’을 벗어던진 후 집도 줄이고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미니멀리즘으로 살아보니 진짜 ‘행복’을 느낀다고 했었다. 당시 그의 속내를 옮기며 ‘나라면’이라는 감정 이입까지 하면서 꽤 여운이 남았다. 그렇다 해도 냉장고도 밥솥도 없이 살기는 쉽지 않으니 나만의 작은 노력을 하기로 했다. 옷가지며 집 안에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을 내다버리는 일부터 실행에 옮겼다. 지금도 물건을 사들이지만, 꼭 필요한 물건만 집에 들이려고 한다. 대형마트에 안 간 지는 이미 오래됐다.

그러던 어느날 클릭 몇 번이면 되는 온라인 장보기가 나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비집고 들어왔다. 새벽배송은 신세계였다. 첫 주문은 낭패를 보았지만 말이다. 일단 잠을 설쳤다.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주문한 식재료 도착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 소리를 들었다. 메시지에는 현관 앞에 배송한 사진까지 친절하게 첨부돼 있었다. 부리나케 문을 열어보았지만, 물건은 없었다. 휴대폰 사진을 몇 번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주문한 물건이 다른 집으로 간 것을 알아차렸고, 내가 주문한 상자를 남의 집 문 앞에서 훔치듯 들고 온 게 나의 첫 새벽 장보기다.

그날 이후로 새벽배송은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과도하게 딸려오는 포장재가 문제였다. 게다가 내 친구는 나 같은 주문자 때문에 택배 종사자들의 ‘밤이 없는 삶’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면박을 줬다.

편리함 뒤에 숨은 그림자라고 해야 할까. 온라인 시장이 늘어나면서 각종 일회용품 쓰레기 증가와 함께 배송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부작용으로 불거진다. 넘쳐나는 쓰레기로 인해 매립지는 포화상태이고 소각시설도 한계에 직면했다. 올 1월부터는 수도권매립지에 들어올 수 있는 생활쓰레기양을 지자체별로 할당해 제한하는 ‘반입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쓰레기양이 예상보다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배송시스템도 문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긱 이코노미’(비정규직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일하는 택배기사 리키는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페트병을 차에 가지고 다닌다. 켄 로치 감독은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착취”라 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플랫폼 사용자이기도 한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이 변화하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마련이다. 그게 쓰레기 대란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만 남는 상황으로 올 수도 있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는 데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곤 하는데, 쓰레기 때문에라도 당장 온라인 장보기를 그만둬야 하는가.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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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도 선거권을 갖게 됐다. 교육부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통해 집계한 결과를 보면 오는 4월16일 총선에 투표할 수 있는 학생 유권자는 14만명이다. 서울만 놓고 보면 2만3000명가량이 투표권을 갖게 된다. 많게는 2000표에 달하는 고등학생 유권자가 있는 자치구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20대 총선에서 관악구을의 1·2위 간 표 차이는 861표였다. 학생 유권자의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는 얘기다.

선거 주목도에서는 대선이나 총선에 미치지 못해도 학생 유권자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선거는 바로 지방선거다. 초박빙 승부가 많은 지방선거에선 수백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사례가 흔하다. 고3 학생 유권자가 꼭 교육 문제만 보고 투표하지는 않겠지만, 본인들이 현실에서 체감하는 학교 문제와 더 가까운 선거도 지방선거다. 초·중·고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은 물론 이를 감시하고 지원할 지자체 의원까지 한꺼번에 뽑기 때문이다.

초·중·고 교육이 교육감들에게 상당부분 이관된 상황에서 지방의회가 각 지역 교육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상대적으로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다못해 학교에 교실이 부족해 건물을 증축하거나 신축할 때도 지방의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반해 학생들이 지방의회에 대해 알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고 봐야 한다.

18세 선거권이 허용된 것을 계기로 학생 유권자들이 지방의회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길 희망한다. 그렇게 해야 교육을 사익과 바꿔 먹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적어지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를 위해 투표하려는 학생은 어떤 의원이 유치원 편을 들며 공익을 가로막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학교 후배와 동생을 위해 투표하려는 학생은 어떤 의원이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하자고 압력을 넣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위해 투표하려는 학생은 어떤 의원이 자꾸 학교에서 사교육을 시키자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도입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금은 각 교육청에서 조례를 통해 일부 실시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을 정식 교과목으로 편성해 초·중·고 교육과정에 넣자는 제안이다. 국회에도 여러 건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법안 도입 취지나 방향만 본다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다만 민주시민교육을 법제화한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했으면 한다. 현재 발의된 여러 법안을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른바 ‘진영 논리’가 교과목에 개입될 여지가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처럼 말이다. 학생들이 선거권을 갖게 됐으니 교육이 시급하다는 식의 접근도 바람직하지 않다. 역으로 묻는다면 지금 선거권을 가진 ‘어른’들 중 선거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선거권을 획득한 이상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동등한 한 표다. 선거에서 국민의 권리를 함께 행사할 수 있는 ‘동지’가 늘었다는 점에서 새로 선거권을 갖게 된 학생들을 ‘격하게’ 환영한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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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기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달력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력이라는 물건보다 ‘계기가 있는 날’을 좋아한다. 그날 발생한 사건·사고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쓰려면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계기를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달력이다. 업계 용어로 흔히 ‘카렌다 아이템’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을 계기로 혁신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박종철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을 계기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짚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타이밍은 이른바 ‘꺾이는 해’다. 3주기, 4주기보다는 ‘5주기’, 8주기나 9주기보다는 ‘10주기’가 뭔가 더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말은 출판 담당 기자에게 꽤 괜찮은 시기였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즉 ‘2010년대의 책’을 꼽아보기에 아주 적당했다. 당대에 주목받고, 사랑받았던 책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0년간 주요하게 다뤘던 책들을 다시 들춰보고, 출판평론가 등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형서점에 자료를 요청해 2010년대의 베스트셀러 목록도 정리했다. 2010년대의 ‘좋은 책’과 ‘잘 팔린 책’을 동시에 선정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간 책 기사를 써오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였다. 언론이 ‘좋은 책’이라고 판단해 열심히 읽고 소개한 책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반면 베스트셀러 상단에 있어, 다시 찾아본 책들은 내 기준으로는 그리 좋은 책이 아니었다. ‘팔리는 책’이 다 좋은 책은 아니다라고 자위하면서도 씁쓸했다.

10년을 통째로 들여다보니 그런 고민은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선정해 신문독자들에게 권한 책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간, 그러니까 많은 독자들이 사랑한 책도 다 의미가 있었다. (내가 고른) 좋은 책이든, 잘 팔리는 책이든 모두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경향신문이 선정한 2010년대의 책’으로 뽑힌 &lt;정의란 무엇인가&gt;와 &lt;아픔이 길이 되려면&gt; &lt;골든 아워&gt;&lt;21세기 자본&gt; &lt;법률가들&gt; &lt;피로사회&gt; &lt;금요일엔 돌아오렴&gt; &lt;백래시&gt; 등을 보니 그간 한국 사회를 달군 이슈를 알 수 있었다.

&lt;아프니까 청춘이다&gt; &lt;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gt; &lt;미움받을 용기&gt;&lt;언어의 온도&gt; &lt;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gt; &lt;여행의 이유&gt; 등 연도별로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에서는 2010년대 한국을 살아간 사람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찌됐든 다행이다. 그간 나름 심혈을 기울여 해온 일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내가 선정한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10년 뒤에 돌아보면 그 책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작은 단초는 될 것이다.

다만 조금이나마 욕심을 부리고 싶은 일은 있다. 2019년에 주요하게 다룬 책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숙제를 반영했다. &lt;선량한 차별주의자&gt;는 일상에 뿌리박힌 차별 문제를 다뤘고 &lt;20vs80의 사회&gt;는 불평등 문제를, &lt;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gt;은 청소년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매주 ‘무거운 책’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내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2020년에는 작년보다는 더 밝고 희망적인 책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 무거운 책을 쓰고 있는 저자들도 변화된 사회를 보고, 희망적인 내용으로 원고를 고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는 소식을 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금은 희망을 꿈꾸기에 가장 적당한 1월이니까.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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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폰다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최고 배우였던 그가 기후변화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에 감화해 기후 변화 전사로 거듭났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폰다는 기후 위기를 “우리 집이 불타고 있어요”라고 표현한 툰베리의 발언에서 착안해 ‘소방 대피 훈련을 하는 금요일(Fire Drill Fridays)’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금요일마다 워싱턴에서 시위를 하더니, 체포돼 끌려가면서도 빨간 코트를 입은 채 허리를 곧게 펴고 걸었다. ‘대박! 이 사람 뭐지?’ 알고 보니 젊은 시절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했고, 베트남 반전운동에 나섰으며 반핵운동도 벌인 활동가였다.

그런 그에게 ‘좀 튄다?’ 싶은 이력이 있는데, ‘제인 폰다의 워크아웃’이라는 비디오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80년대 초 피트니스계의 선두주자였다는 것이다. “여성은 땀을 흘려서는 안된다고 여겨졌던” 그 시절 폰다는 직접 운동 강사로 뛰었고, 레오타드를 입은 채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비디오에 출연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닌 정말 ‘근육’을 위한 운동 말이다. 그는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말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그랬잖아요. 혁명은 근육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그렇다. 여자는 근육이다. 이는 최근 경향신문이 사회적 기업 ‘위밋업스포츠’와 함께 만드는 콘텐츠 ‘언니네 체육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언니들’의 운동 목적이 남이 보기에 아름다운 몸, 마른 몸이 아닌 온전히 나의 건강과 체력을 위한 ‘근육’이라는 점에 100% 동의한다.

운동하는 삶을 살았고, 여전히 운동을 사랑하는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망설이는 여성들에게 몸을 쓰며 땀 흘리는 행복에 대해 말한다. “여자는 근육! 운동합시다.” 배동미 기자

1980년대도 아닌데 아직 여자가 마음껏 운동하기엔 장애물이 많다. 잉글랜드스포츠협회는 2015년 여성 누구라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디스 걸 캔(This Girl Can)’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조사 결과 여성 대다수가 ‘신체 활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로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고 한다. 여자가 운동을 하면 어떻게 보일까,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두려움. 양민영 작가는 <운동하는 여자>에서 “여성은 운동을 배우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까지 함께 익힌다”고 했다. 역도를 배울 때 양 무릎의 방향이 바깥을 향하도록 벌리는 것이 어려웠으며 평영을 배울 때 여성이 뒤따라 와야 안심이 됐다는 예를 소개했다.

여성의 몸을 여전히 보여주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선도 있다. 폴댄스 1년 반 차로 일주일에 4번은 스튜디오에 나간다는 곽민지씨는 인터뷰에서 수업 영상을 SNS에 올렸더니 모르는 사람이 ‘스트리퍼가 되고 싶은 거냐’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민지씨는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몸을 드러낸 것 자체로 이어지는 사고의 회로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을 빼놓을 수 없다. 김혼비 작가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세상에는 전 국가대표 선수를 앞에 놓고 축구의 기본기에 대해 논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정말로 있다”고 했다. “혹시 선출이세요? (중략) 근데 선출들 중에 너무 멋 부리면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그냥 한 번만 꺾어도 될 건데, 왜 굳이 두 번 세 번 꺾어?” 이쯤되면 ‘설명’을 넘어 ‘참견’과 ‘무례’가 된다.

그래도 운동을 한다. 재미있으니까,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근육이 붙어가는 몸이 기특해서, 성취를 맛보려고,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한다.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디스 걸 캔’에서 제안하는 94가지 운동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아이와 함께 운동하기’ ‘자녀 등하교’ ‘아이와 디즈니 노래 부르며 춤추기’ ‘집에서 운동하기’ ‘걷기’ ‘공원에서 운동하기’. 거창한 도구가 없어도 의지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다. 몸의 형태가 어떻든, 사이즈가 무엇이든, 능력과 배경에 상관없이 근육은 정직하니까.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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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자전거 축제에 참가했다. 강남 법원 앞까지 도로를 달리고 돌아와 잠수교 남단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광화문까지는 혼자 알아서 돌아왔다. 한강을 끼고 오다가 마포에서 인도 옆 자전거길로 가는데 문득 도로에 분명히 찍힌 표지글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우선통행.’

내심 불안했지만 그래도 가쪽 차선에 버젓이 그어진 교통표지를 믿고 차도로 내려가봤다. 마포사거리를 앞두고 한 화물차가 거의 왼쪽 핸들이 닿을 듯 바짝 밀어붙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아찔했다. 위협운전이다. 운전자는 ‘왜 자전거가 도로에 내려와 교통흐름을 방해하냐’고 생각했겠지만. 그러나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엄연히 인도가 아닌 도로를 달려야 하는 차다. ‘자전차.’

겁은 났지만 좀 더 가보기로 한다. 아현삼거리를 지나 서대문으로 직진하는 상황. 충정로사거리 앞에서 맨 오른쪽 차선은 서소문행 우회전 길로 바뀐다. 경향신문 쪽으로 직진하려면 한 차선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순간 버스가 옆으로 치고 나오며 가로막았다. 버스를 지나보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뒤에서 승용차들도 비켜줄 기미 없이 막 달려온다. 결국 갓길에 한참 선 뒤 신호가 바뀐 뒤에야 겨우 차선을 바꿨다.

이런 서울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게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행정’으로 보였다. 일단 도로 바닥에 표시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운전자들은 그 길이 자전거 우선인지 모르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칼치기’가 버젓이 일어난다.

대안은 뭘까. 차선의 절반만큼 아예 선을 긋고 선명한 색깔로 칠해 자전거로를 만들거나, 적어도 우선통행이란 표시를 분명히 해놔야 한다. 북서울숲이나 청계천 옆 일부 구간에 이렇게 돼 있다. 청계천에서 직접 달려보니 꽤 편하고 안전했다. 막히는 차보다 빨리 가기도 했다. 충정로사거리처럼 갈림길 때문에 안쪽으로 갈아타야 하는 곳에도 안내선을 분명히 그어주면 좋겠다.

출퇴근 때 시내 곳곳은 거대한 주차장 같다. 당장 대안은 차로를 넓히거나 우회로를 뚫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상 불가능하거나 지역 민원, 환경 문제로 쉽잖다. 사실 해법은 따로 있다. 차로 하나를 떼서 자전거 전용길로 내주면 된다. 우리도 자전거 출퇴근 인구를 대폭 늘려야 한다. 디젤차나 가솔린직분사(GDI) 차량의 미세먼지, 더 문제라는 브레이크 패드 마모나 타이어 분진 등을 탓하기 전에 자전거 통행부터 보장해주자.

출퇴근 차량에 대개 몇 명이 타고 있는지부터 보라. 한국교통연구원의 2016년 통행량 자료에 나온다. 나홀로 차량이 82.5%나 된다. 그러면서 찻길을 더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것들이 교통혼잡과 오염의 주범이다. 혼자 10~20㎞ 정도 출퇴근하려고 그 큰 쇳덩어리로 온갖 매연을 뿜어댄다.

지난해 5월 기획취재차 가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도로 한중간 절반 이상에 나무를 심어 공원처럼 해놓고 양옆에 자전거길을 냈다. 덴마크 취재를 다녀온 경향신문 기자는 시내 교통의 60% 이상을 자전거가 분담한다고 전했다.

사실 편도 20㎞ 정도는 자전거를 타거나 전기보드 같은 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미세먼지 타령을 하며 전기차를 강조하는 것도 좀 못마땅하다. 솔직히 시내용으로 전기차가 왜 필요한가. 그냥 전기자전거나 전기보드만으로 너끈하다.

지금처럼 어중간하게 만든 자전거길에는 불편과 위험이 따른다. 운전자도 짜증나는 법이다. 서울시내 주요 도로부터 갓길에 자전거길을 따로 내보자. 서울시가 이런 준비를 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저마다 적당한 불편과 수고를 감내해야 비로소 변화가 가능해진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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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일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문제가 해결될 때입니다. 복잡한 문제들이 기사 한 번 썼다고 풀리진 않지만 도움이 될 수는 있으니까요. 지난 한 해 동안 저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과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제게 가장 아프게 남아 있는 ‘결국 도움이 되지 못한 기사’를 꼽아봤습니다. 

지난 7월 ‘진도가족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 박동운씨, 박미심씨, 허현씨를 만났습니다. 전두환 정부 시절 조작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른 이들은 재심에서 무죄가 밝혀졌지만, 박근혜 정부가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크게 좁히는 법논리를 만들어내며 손해배상에서 제외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판결이 잘못됐다고 결정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도 박씨 가족에게 배상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8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명되고 9월 법무부가 ‘김제가족간첩단 조작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다른 사건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늦게라도 손해를 배상하는 것은 정부가 선별적, 시혜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닙니다. 10월 조 장관이 취임 한 달 만에 낙마하면서, 이 문제는 잊혀졌습니다. 38년 동안의 이야기를 묻고 들으며, 괜히 상처만 헤집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5월엔 ‘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황상기씨, 김용만씨, 김미숙씨를 만났습니다. “다시는 내 자식 같은 죽음이 없기를 바란다”는 ‘다시는’의 활동은 많은 주목을 받았고, 김미숙씨는 10월 아들의 이름을 따 ‘김용균재단’을 창립했습니다. 노동현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특성화고 기업체 현장실습’은 별다른 보완 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전 문제는 “취업률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7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실습생들의 수당을 최저임금의 70%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네, 올린 게 그 정도입니다. 안전관리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면 기업의 책임 있는 관리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계류 중입니다. 황상기씨는 인터뷰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내 자식 죽은 얘기 자꾸 하기 싫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될 때까지 목이 터져라 얘기해야지 어쩌겠어요.”

1년 전 12월엔 ‘일본 미투의 상징’ 이토 시오리 기자를 만났습니다. 방송사 간부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밝힌 이토는 오히려 ‘꽃뱀’ 취급을 당하며 일본을 떠나야 했습니다. 수사관이 유력한 증거까지 채취했지만, 누군가의 압력으로 수사는 중단됐고 가해자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18일엔 민사재판이 선고될 예정이지만, 이토의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김한민 작가는 <아무튼, 비건>에서 한 친구의 냉혹한 현실비판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건 신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가족, 친구, 학벌, 돈, 부동산, 성공도 아냐.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 ‘세상은 안 변한다’는 믿음이야.” 정말 그럴까요? 생의 대부분을 ‘빨갱이’라 불리며 산 이들은 다른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을 도우며 살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아직’ 살아 있는 남의 자식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돈과 시간과 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살해 위협 속에서도 어떤 여성은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경찰 황용식은 연쇄살인범 ‘까불이’에게 말했습니다. “니들이 많을 것 같냐, 우리가 많을 것 같냐? 나쁜 놈은 백 중에 하나 나오는 쭉정이지만, 착한 놈들은 끝이 없이 백업이 돼. 우리는 떼샷이여.” 2020년은 부디 ‘착한 사람들의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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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 엄마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울었는지 퉁퉁 부어 있더니 어느 날은 며칠 새 바짝 말라 있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힘겹게 버티며 살아내는 표정, 둘 다 그랬다.

두 엄마는 모두 자식을 잃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내걸고 거리로 나왔다. 엄마를 떠난 두 아들의 이름 뒤에는 ‘법’이 따라다닌다. 김용균법과 민식이법. 사람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각각 그렇게 부른다. 지난 9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군의 엄마 박초희씨는 “그렇게 쓰라고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라며 울었다.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엄마 김미숙씨는 ‘세상을 좋게 하고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는 뜻이라던 아들의 이름을 그냥 쓴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우연히 본 두 엄마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은 내게도 아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고 김민식군과 같은 9살로, 고 김용균씨처럼 엄마와 셀카 찍기를 좋아한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엄마의 애끊는 심정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무심한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그렇게 한들 뭐가 달라지겠냐고.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잃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아이의 학교 앞 횡단보도에도 신호등이 없다. 1년 새 정규직이 35만명 줄고 비정규직은 86만여명이나 증가하는 노동현실에서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두 엄마 모두 처참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았을 우리 이웃이며, 또 우리다.

고 김용균씨의 엄마는 한 기자회견에서 “자식 죽은 부모가 나서지 않으면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 이만큼 힘들고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해야 국민이 알아주고 조금이라고 귀 기울여준다”고 했다. 슬픔을 가누기도 전에 일어섰던 것은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내년부터 원청업체 책임을 강화하는 김용균법이 시행되지만, 고 김용균씨가 일하던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인 하청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을 맡을 수 있다. 민식이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차량을 어린이 통학차량으로 관리하는 ‘태호·유찬이법’과 안전사고 때 응급처치를 의무화하는 ‘해인이법’ 등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은 많다.

엄마들은 ‘투사’가 되어가고 있다. 고 김용균씨의 엄마는 아들의 1주기 추모대회에서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다. 이제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가겠다”고 했다. 고 김민식군의 엄마는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른 아이들이라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돌아보면 우리의 역사에서 자식의 이름을 내걸고 거리에 나선 엄마들이 많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두 어머니는 자식 이름과 함께 일생을 살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며 세상을 바꾸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엄마에게 아이 이름은 내 이름과도 같다. 아이를 낳고 줄곧 직장생활을 한 나도 ‘OO엄마’라고 불릴 때가 많다. 아예 아이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자식의 이름을 앞세워 세상에 나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엄마는 자식의 죽음을 곱씹고 곱씹을 것이며, 그때마다 속은 까맣게 문드러질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두 엄마의 용기와 희생에 고개를 숙인다.

<이성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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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대중잡지 ‘삼천리’에 재밌는 설문조사가 하나 실렸다.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일제강점기 서울시장(경성부윤)은 당연히 일본인이 맡아 했다. 그러니 조선인, 더구나 여성은 시장이 절대 될 리 없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가정한 질문이었다. 당대 유명 여성 대부분은 이 질문에 “모든 서울시민에게 영양주사를 한 대씩 놓고…” “허영심을 근절하기 위해 화장품 세금을 100배 인상하겠다”는 식의 진지하지 않은 ‘공약’을 남발했다. “제가 서울 여시장이라니 천지개벽을 하게요”라며 상상 자체를 부정한 답변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은 여성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전차 요금 구역제 폐지를 서울시정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전차 서대문선과 마포선 간, 동대문선과 청량리선 간, 광희문선과 왕십리선 간을 하나의 구역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당시 동대문과 남대문을 경계로 교외선으로 환승하려면 전차 요금 5전을 더 내야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이 주로 살던 도심에서 밀려나 교외에 거주하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조선인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1930년대 경성에서도 교통 문제가 중요한 현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주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 거리를 누볐던 전차는 점차 버스의 장애물로 변했다. 전차는 교통혼잡을 이유로 결국, 1968년 11월 멈췄다. 

전차가 사라지고 버스가 들어선 서울은 해마다 변했다. 

누군가 기막힌 요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차도는 계속 늘어났는데 도로는 여전히 막히고, 보행자는 밀려났다.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차량이 내뿜는 배출가스로 인한 경제 손실이 날로 커지면서 전 세계 대도시들은 도심에서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99년 스페인 폰테베드라에서 시작된 ‘차 없는 도시’ 캠페인은 어느새 세계 도시들의 공통 과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월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교통국 이사회는 2025년까지 가장 붐비는 거리인 ‘마켓 스트리트’를 전면 보행길로 바꾸는 안을 승인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싱가포르, 영국 런던 등에서는 ‘차 없는 도시’로 가는 중간 단계로 ‘교통혼잡세’를 걷고 있다. 서울시도 이제는 보행자 우선의 ‘걷는 도시 서울’을 내세운다. 주요 도로 찻길을 줄이고 모두 보행자와 자전거에 내줄 방침이다. 4대문 안은 공해유발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이달부터 과태료를 부과한다. 

세계 도시들이 차 없는 도시를 추진하는 것은 단순히 공기질을 개선하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차 없는 도시 시행 효과에 대해 “도심의 차량 수가 줄어들수록 보행자들의 사회적 교류가 늘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증명됐다”고 분석했다.

보행친화도시는 찻길을 줄이고 자전거길을 넓힌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2017년 12월 종로 중앙버스전용차로(BRT)를 개통하고 그 일대 보도를 넓혔지만, 보행자들이 늘어나 실제로 주변 상권이 살아났는지는 의문이다. 따릉이를 타고 광화문과 경복궁 주변만 다녀봐도 시내에 얼마나 많은 구릉지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서울 시내를 걸어보라.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쉴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걷고 싶은 도시는 어디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내년부터 운행하기로 한 ‘녹색순환버스’는 반길 만하다. 

85년 전 질문으로 돌아가자. “내가 시장이 된다면?” ‘땡땡~’거리며 전차가 도심을 달리게 하겠다. 종로 같은 구도심은 버스전용차로보다 전차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전차는 매연도 배출하지 않는다. 마침 ‘노면전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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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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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학생에게 특정 정치사상을 주입하려 했다는 한 학생의 주장으로 시작된 인헌고 사태가 “정치 편향 교육은 없었다”는 서울시교육청의 특별장학 결과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급기야 해당 주장을 처음 제기한 학생은 시교육청 앞에서 삭발식을 열며 “정치공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 보수단체는 직무유기 등을 주장하며 조 교육감을 검찰에 고발했다.

인헌고 사태를 들여다보면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학교 내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학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외부의 ‘세력’이 있다는 점, 두번째는 그 세력이 ‘극우·보수’라는 점이다.

학생이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지를 하든 지원을 하든 자유다. 문제는 그 ‘의도’다. 인헌고 사태는 현재 ‘전교조 해체’ ‘정권 퇴진’ 등 온갖 정치색이 개입돼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보다 지지세력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이쯤 되면 누가 누구한테 정치사상을 주입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인헌고 학생의 주장이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에는 지지세력 탓도 있다.

지금은 고등학교가 말 그대로 ‘학교’의 개념이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 고등학교는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의 시작이 고등학생들의 반독재 시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많은 대학이 설립되고, 고등교육이 대학으로 이관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의 근거지도 대학으로 이동했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에는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둔 학내 동아리가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인헌고 사태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세력이 극우·보수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인헌고 사태의 시작은 이 학생이 ‘성평화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생긴 지도교사와의 갈등 문제였다. 그리고 이 동아리는 ‘성평화’를 외치는 한 시민단체가 조직한 연합동아리 중 하나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헌고 사태의 근간이 이 시민단체와 ‘성평화’라는 개념에 있다는 뜻이다.

이 시민단체의 대표가 지난해 3월 한 언론과 한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그는 10·20대가 젠더이슈나 젠더갈등에 민감한데, 보수가 이를 놓치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뒤집어보면 보수가 젠더이슈나 젠더갈등을 활용하면 10·20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헌고 사태에 극우·보수가 적극 지지를 보내고 지원하는 게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인헌고 학생이 삭발하며 조 교육감 퇴진을 외친 날로부터 일주일 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성평화 교육의 필요성’ 관련 토론회를 열고 인헌고 학생을 초청했다.

정치란 게 그렇다 치자.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젊은층 지지율 올리기에 도움이 되고, 이것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뭔들 못할까. 하지만 10·20대가 젠더이슈나 젠더갈등에 민감하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있다. 이들이 말하는 ‘성평화’라는 개념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돼서다. 요지를 들여다보면 남녀가 젠더이슈로 갈등하거나 싸우지 말고 서로 인정할 건 하고 존중하면서, 말 그대로 ‘평화롭게’ 지내자는 취지로 들린다. 문제는 뭘 인정하고 존중하냐인데, 여기에는 여성혐오나 남성우월주의 등으로 해석될 만한 주장들이 넘쳐난다.

페미니즘으로 둔갑한, 일부 여성들의 과격한 혐오주의가 잠시 대중의 시선을 끄는 것을 놓고 보편적인 양성평등의 개념이나 페미니즘 전체를 매도하거나 부정하는 것도 위험해 보인다. 현재 우리 사회가 그나마 성취한 양성평등의 수준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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