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김홍표의 과학 한귀퉁이'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20.03.19 기침
  2. 2020.02.20 바이러스를 위한 변명
  3. 2020.01.23 동면을 꿈꾸다
  4. 2019.12.26 호모 바커스
  5. 2019.11.28 산소와 함께 살기
  6. 2019.10.31 반딧불과 오징어
  7. 2019.10.04 탄소를 먹다
  8. 2019.09.05 벼룩의 간
  9. 2019.08.08 손가락 지문의 생물학적 기능
  10. 2019.06.13 굶주린 인간 세포의 생존본능
  11. 2019.05.16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 생물학적 제휴
  12. 2019.04.18 봄은 꿈이다
  13. 2019.03.21 꽃도 광합성을 한다
  14. 2019.02.21 하루 한 끼
  15. 2018.11.29 털 잃은 인류, 언제부터 옷을 입었을까
  16. 2018.10.04 극성
  17. 2018.08.29 인간의 치아와 상어의 치아
  18. 2018.08.01 곤충의 날개
  19. 2018.07.04 도토리
  20. 2018.06.07 길가메시 프로젝트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눈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위로 오르면서 촘촘하지만 더 가는 줄기를 가진 느티나무를 보며 나는 뿌리에서 물관을 거쳐 비상하는 물을 상상한다. 물이 줄기의 가장 높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로 오를수록 점점 더 커지는 물관의 저항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무는 줄기와 물관의 표면적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본줄기의 단면적과 거기서 갈린 두 줄기 단면의 면적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느티나무 형상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뒤집어 보면 목 아래 기관에서 갈라지는 기관지 모습이 떠오른다. 기관은 지름이 약 1.5㎝이며 후두 아래로 10㎝ 정도를 내려간 다음 좌우 기관지로 갈라진다. 그 기관지는 15~23차례 더 나뉘다가 포도송이 모양의 작은 폐포에 연결된다. 

대략 1.1㎏인 허파에는 3억개 정도의 폐포가 있으며 이들 내부의 전체 표면적은 얼추 25평이 넘는다. 놀랄 만큼 넓다. 소화된 음식물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소장의 표면적은 이보다 더 넓어서 테니스장 크기에 이른다고 한다. 먹는 일이나 숨 쉬는 일 그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을 쉬는 까닭은 무엇일까? 심장이나 혈관과 같은 중간 기착지를 지난 공기, 특히 산소는 세포 안으로 들어와서 물질대사의 마무리 작업에 착수한다. 쉼 없이 영양소인 탄수화물이나 지방을 태우는 것이다. 그러한 느린 연소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은 공교롭게도 물이다. 이것저것 중간 단계를 다 떼고 결론만 말하면 우리의 허파가 1분에 약 16번 산소를 들이마시는 이유는 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그 사이사이 에너지 통화인 ATP와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허파로 들어온 기체 형태의 산소는 혈액이라는 액체 매질을 통해 전신의 세포에 전달된다. 하지만 공기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산소만이 아니다. 그냥 ‘아이쇼핑’하는 무심한 손님처럼 지나가는 질소도 있다. 미세먼지도 자주 들어온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중을 떠도는 세균이나 미생물들도 숨을 들이켤 때마다 우리 몸 안으로 침투한다. 이때 기도의 상피는 점막을 잔뜩 만들어 끈끈이주걱처럼 먼지나 미생물을 붙들었다가 밖으로 내보낸다. 섬모라는 세포 표면의 기관이 1초에 약 16차례 격렬하게 움직인 결과이다. 이러한 일은 평소에도 벌어지지만 호흡기 계통에 화학적 혹은 물리적 자극이 오면 보다 극적으로 호흡 과정이 달라진다. 방어적 반사(reflux)작용이라고 칭하는 기침이 바로 그런 행위이다. 물이 더러우면 잠시 공기의 순환을 멈추고 아가미에 낀 불순물을 밖으로 뿜어내는 물고기조차도 기침을 한다 하니 대부분의 포유동물이 기침을 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흔히 사용하는 실험동물인 쥐는 기침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쥐는 뭔가 다른 방식으로 폐로 들어오는 입자들을 제거하리라고 과학자들은 짐작한다.

사실 기침은 크게 세 가지 동작으로 구성된다. 먼저 숨을 들이마신다. 효과적으로 기침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다음은 후두를 닫아걸고 흉강과 횡격막 그리고 복막을 수축시켜서 흉강 내부 압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마지막으로 통로를 열고 큰 소리와 함께 공기를 몸 밖으로 내보낸다. 여러 종류의 근육을 동원해서 우리 신체는 흉강 내부의 압력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인다. 그 압력이 충분히 높아야 기관지 상피에 붙은 점액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격하게 기침할 때 분출되는 공기는 비행기보다 더 빨리 날아간다. 무려 시속 800㎞이다. 그렇기에 근육의 힘이 부족하거나 오랜 천식으로 기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기침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과학자들의 부단한 연구 덕에 우리는 기침 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다.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우연히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화학물질 또는 미생물 감염에 의해 생체 내부에서 만들어진 물질에 반응한다. 알싸한 고추를 먹고 기침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화학물질 외에도 소화계에 가해지는 물리적 자극에도 우리는 기침을 한다.

이처럼 기침의 생리학적 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왜 기침을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기침을 억제하는 약물이 염증성 질환을 더 오래 지속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얼핏 기침은 인간에게 이로운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식이나 상기도 감염 증상인 백일해처럼 기침으로 인한 과도한 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부 진화생물학자들은 우리 인간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자신이 살아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숙주를 ‘조종’하여 기침을 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자가 잘 움직이고 자주 기침을 해 자신의 분신이 섞인 비말을 주변에 많이 퍼뜨릴수록 감기 바이러스가 살아남을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은연중일망정 바이러스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인간의 약점 몇 가지를 최대한 이용한다. 시간당 평균 16번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인간의 습관도 그중 하나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리디아 보로이바는 강하게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할 때 비말이 무려 8m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목청껏 소리 높여 수다스럽게 말을 하면 입을 통해 나오는 비말의 수가 50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작년에 나왔다. 기침 한 번 하기 쉽지 않은 요즈음이다. 앞다퉈 꽃은 피는데 올봄은 유난히 더디 온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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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 한 방울의 부피는 0.05㏄다. 스무 방울을 합쳐야 겨우 1㏄가량 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아마도 땅콩 한 알 정도에 해당하는 부피가 물 1㏄에 가까울 것이다. 무게로 따지면 약 1g이다. 적은 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황에 따라서 이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 1989년 노르웨이 베르겐대학 연구진은 바닷물 1㏄에 바이러스 1000만마리가 산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보고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때문에 초긴장 상태여서 바이러스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바이러스에게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신비한 뭔가가 있다. 과학자들은 현재 지구에 약 160만종의 바이러스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중 약 1%의 정체를 밝혀냈다. 이 말은 나머지 99%에 해당하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뜻이다. 어쨌든 바이러스는 크기가 아주 작지만 그 종류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현재 많은 수의 중국인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정의하는 데 무척 인색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생활사가 숙주 생명체를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물림되는 유전체와 그것을 둘러싼 단백질 외피로 구성된 단출한 형태인 바이러스는 다른 생명체 안으로 들어가야만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다. 유전자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조립하는 숙주의 물질대사 수단을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주 세포 안에서 성공적으로 재생산을 마친 많은 수의 바이러스는 마침내 숙주의 세포막을 깨고 나와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선다. 

넉살 좋은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숙주로 삼는다. 담배에 침입하여 모자이크 무늬를 갖는 전염성 질환을 일으키거나 동백 붉은 꽃잎에 하얀 반점을 새기기도 하고, 사람이나 고양이에게 백혈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단세포 생명체인 세균도 예외는 아니다. 바닷물 속에 사는 세균의 약 20%는 매일매일 이런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었다가 곧이어 죽음을 맞는다. ‘박테리아를 잡아먹는다(phagy)’는 의미를 담아 우리는 이들을 박테리오파지라고 부른다. 한 개의 세균을 터뜨리고 나오는 박테리오파지의 수는 100개가 넘는다. 요즘 TV에 나와서 세균이랬다 바이러스랬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게 이 ‘크기’의 엄정함을 얘기해주고 싶다. 평균적인 세균은 바이러스에 비해 사뭇 크다. 이렇듯 바이러스는 최근에 불거진 오명과는 달리 지구에서 세균이 무한 증식하지 못하게 막는 막중한 일을 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는 것일까? 에이즈 바이러스를 예로 들어보자. 알다시피 이 바이러스는 면역계 세포인 T-세포를 공략한다. 목표를 ‘찾아 달라붙는’ 장치를 바이러스가 구비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돌연변이 표적 단백질을 보유한 일부 북유럽인에게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T-세포 안으로 잠입하지 못한다. 몸 안에 바이러스가 돌아다녀도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을 통해 폐로 들어가는 코로나19는 바깥쪽에 축구화 밑바닥에 박힌 것과 비슷한 스파이크 형태의 단백질을 가지고 있어서 폐의 상피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와 잘 결합한다. 구조적으로 서로 궁합이 잘 맞는 단백질 짝이 있어야만 세포에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저 수용체 단백질과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개발해 바이러스가 세포와 결합하는 일을 사전에 원천봉쇄하려 한다. 이달 초에 나온 논문을 보니 코로나19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항체가 얼추 개발된 모양이다. 좀 두고 봐야겠지만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바이러스는 또한 존재 특성상 자신의 유전체를 숙주에 넣었다가 다시 빼는 까닭에 생명체 사이에 유전체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자임한다. 사실 지구에 태반 포유류가 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 역시 바이러스였다. 자신의 유전체를 숙주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바이러스 융합 단백질을 포유동물의 유전체 안으로 옮긴 사건이 생명체 역사의 어느 순간에 벌어진 것이다. 태반이 암컷 포유류 자궁 내막에 문자 그대로 ‘융합’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 인간의 유전체 상당 부분은 바이러스에서 비롯되었다. 2016년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진은 24종의 포유동물에서 지금까지 바이러스와 결합한다고 알려진 단백질, 약 1300개의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 분석해보니 인간 단백질의 30%가 바이러스에 적응해온 강한 흔적이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 단백질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게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이 논문은 바이러스가 인간 진화를 가능케 한 ‘드라이버(driver)’ 역할을 했다는 논평과 함께 항간에 회자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자주 손을 씻어서 바이러스의 범접을 막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기는 하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가던 길에 우연히 박쥐나 닭 혹은 인간을 만난 것뿐이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며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된 인간은 이전보다 더 자주 바이러스를 소환해냈다. 바이러스 역시 빠르게 변신한 후 더 강한 모습으로 인류 앞에 등장하곤 했다. 이들은 자신의 유전체를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면역계는 강인하지만 가끔씩 이들 바이러스에게 무릎을 꿇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유전체는 인간이라는 구조물의 청사진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생명체들과의 투쟁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쉰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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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 서리가 내리면 어른들은 서둘러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곤 했다. 떼어낸 문틀에 두 겹의 창호지를 바르고 그 사이에 국화잎을 몇 장 집어넣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나중에 소읍으로 이사갔을 때는 광에 시커먼 연탄을 쌓아두었지만 시골에서는 겨우내 볏짚을 땔감으로 썼다. 바람 잘 통하는 대청마루에는 통가리가 놓이고 두어 가마 고구마도 채워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월동 준비라는 말에서조차 격세지감이 든다.

올겨울은 눈도 거의 없고 살을 에는 강추위도 아직 찾아오지 않아 부는 바람에서 봄뜻이 설핏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니까 더운 여름보다 체온을 유지하는 데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질문해보자. 어떤 사람이 아이슬란드에 있을 때와 자카르타에 있을 때 그의 정맥에 있는 피의 색은 어느 쪽이 더 붉을까? 

답은 자카르타이다. 우리가 내쉬는 날숨에는 이산화탄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산소도 들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에서 건진 사람의 폐에 인공호흡으로 안전하게 산소를 제공할 수 있다. 전신을 돌아 심장으로 복귀하는 정맥 안에는 우리 신체가 미처 사용하지 않은 산소 기체가 섞여 있다. 열대지방인 자카르타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물을 분해하여 얻은 에너지를 쓸 일이 줄어든 탓에 아이슬란드에 있을 때보다 산소를 적게 사용한다. 적혈구가 산소를 더 많이 함유할수록 색상이 붉은 까닭에 적도에 사는 사람들의 정맥혈이 더 선홍색을 띠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1842년 독일의 의사 줄리우스 폰 마이어는 우리가 음식물을 먹고 연소하는 과정에서 얻은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법칙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음식물 속에 든 화학에너지가 일을 하는 근육의 운동에너지, 체온을 조절하는 열에너지 등으로 변하지만 그 총량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마이어가 처음 제시한 이 가설은 후에 열역학 제1법칙으로 굳어지고 후세인들의 골머리를 꽤나 아프게 만들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함에도 겨울에는 야생에서 음식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은 극지방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그래서 일부 동물들은 아예 잠을 잠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바로 우리가 겨울잠이라고 부르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겨울잠은 다람쥐 같은 설치류 동물들에게서 빈번하게 관찰된다. 체중에 비해 체표면적의 비율이 높을수록 체온이 쉽게 떨어지므로 몸집 작은 동물들은 겨울나기가 힘들다. 온대지방에 사는 체중 60㎏의 여성은 10%가 되지 않는 에너지를 열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지만 몸무게가 25g에 불과한 사슴쥐는 그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땅다람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장 9개월까지 잠을 자면서 거의 85%의 에너지를 절약하기도 한다.

이렇듯 겨울잠은 생존에 매우 유익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도 겨울잠을 잘 수 있을까?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인다. 비교생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동물 세 계통 모두에서 겨울잠 현상을 목격했다. 진화 역사에서 동면이 오래된 형질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한 유전자들을 찾아 나섰다. 유전자를 편집하면 인간에서도 동면을 유도할 수 있으리라 희망한 것이다.

동면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찾아낸 단백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혈액이 엉키는 것을 막는 단백질이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동면을 한다는 말의 화학적 의미는 산소를 적게 호흡해도 된다는 것이다. 1분에 200~300번씩 뛰던 땅다람쥐의 심장이 고작 3~5번 뛰고 숨은 4~6번 정도밖에 쉬지 않는다. 따라서 잠을 자는 동안에는 체온이 떨어지면서 아주 느리게 흐르는 혈액이 서로 엉키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또한 자는 동안에는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저장이 가능한 지방을 동물의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일도 그 못지않게 무척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대사 효소들의 활성도 빠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동면 연구에서 발견된 더 놀라운 점은 동면하는 동안 동물들이 거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뇌에 외상을 가하면 활동적인 다람쥐는 커다란 손상을 입지만 동면하는 다람쥐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된다. 움직임을 최소로 하면서 생체를 유지하고 손상을 치유하는 데 특별히 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학자들은 동면 연구에서 얻은 과학적 성과를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2019년 메릴랜드대학 연구진은 커다란 외상을 입은 환자의 혈액을 10도의 생리식염수로 대체하고 모든 생리 과정을 정지시켰다. 손상된 부위를 수술할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저온을 유지하여 생체 과정을 정지시키는 동면과 같은 현상을 우리는 가사 상태(suspended animation)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정지된 화면’처럼 인공적으로 가사 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식에 필요한 인간의 장기를 안전하게 보관해 멀리까지 운반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우주선에 탑승하는 비행사들을 ‘잠재워’ 먼 목적지까지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겨울잠에서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혜택이 균등하지는 않지만 추위를 피하는 여러 수단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침엽수림 통나무집에서 봄을 고대하는 동면을 꿈꾼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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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통시장을 어슬렁거리다보면 간혹 술빵과 마주치게 된다. 예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빵의 투박함은 사라지고 대신 강낭콩이니 푸른 완두콩이니 하는 고명이 먹음직스럽게 올라와 있다. 고무 함지박에 밀가루를 넣고 어머니는 막걸리와 사카린 혹은 그것을 가루 낸 당원 녹인 물을 약간 섞어 반죽을 빚었던 것 같다. 아랫목에 한동안 놔둬 빵빵해진 밀가루 반죽을 서둘러 쪄낸 술빵은 어릴 적 자주 새참거리로 등장해서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나선 내게도 얼마간의 몫이 돌아왔다.

술이 들어갔기 때문에 술빵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점은 익히 짐작이 간다. 이름값 하듯 술빵에선 약하긴 하지만 막걸리 향이 난다. 그렇다곤 해도 부풀린 밀가루 반죽으로 술빵을 만드는 주역은 막걸리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효모(yeast)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단세포 생물인 효모가 밀가루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꾸는 탁월한 재주를 부린 것이다. 바로 우리가 발효라고 부르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인류 역사 초기부터 효모는 인간 사회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빵과 와인 혹은 맥주를 만드는 데 반드시 효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모의 발효 산물인 이산화탄소 덕에 부푼 밀가루 반죽에 열을 가하면 알코올이 날아가고 고소한 빵이 된다. 그와 반대로 기체인 이산화탄소를 날려버리고 액체인 알코올만 남기면 그것이 곧 와인이고 맥주다.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인간은 약 9000년 전부터 곡물이나 꿀 혹은 과일을 이용하여 술을 담갔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술을 빚지는 않았다 해도 아마 인간에게는 소량의 알코올을 섭취할 기회가 간혹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 길에 떨어진 과일에 알코올이 함유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곰팡이가 덤벼들기 직전 땅에 떨어진 물컹한 단감에서 약간의 술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내게도 남아 있다. 하지만 알코올이 인간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2017년 ‘BBC-지구’에 실린 기사를 보면 술에 취한 채 창공을 날다 죽은 새들 이야기가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음주 비행을 하다 벽이나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여새(waxwing) 수십 마리가 발견됐다. 새들 배안에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베리류 열매가 가득했고 간의 알코올 농도는 최고 0.1%에 이르렀다고 한다. 늦은 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 너무 익어버린 과일을 먹은 것이 새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으로 밝혀졌다. 새들이 주식으로 먹는 작은 과일에 효모가 침입하여 알코올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새들뿐만 아니라 과일을 주로 먹는 포유동물도 간혹 알코올에 과다 노출된다는 사실이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었다.

2000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로버트 더들리 박사는 과일을 먹는 동물과 알코올 섭취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술 취한 원숭이’라 불리는 이 가설에 따르면 나무에 살던 우리 인류의 조상은 오래전부터 이미 알코올에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열매가 이제 막 발효되기 시작해 소량의 알코올 향을 공기 중에 퍼뜨리는 것은 밝고 붉은 색상과 함께 과일이 제대로 익었다는 확실한 신호가 된다. 따라서 알코올 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물이 충분한 양의 탄수화물을 보상으로 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이 가설은 곧 반격에 휩싸였다. 인류의 영장류 사촌인 원숭이는 과하게 익은 과일을 선호하지 않는 데다 술에 취해서는 나무 위에서 균형을 잡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술을 마시는 일이 영장류 집단에 뿌리 내리기 어려웠으리라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이 말도 이치에 맞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그럴싸한 효소를 가지고 있다면 상황은 팔팔결 달라질 수 있다.

2014년 산타페 대학 캐리건 박사는 침팬지와 고릴라 그리고 인간의 조상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알코올을 40배나 빠르게 분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 과학원 회보에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년 전에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할 수 있는 형질이 고등 영장류 집단 내에 퍼져나갔다는 게 이 논문의 결론이었다. 이 결론이 옳다면 일부 영장류 집단에서 알코올 분해 효소는 침팬지와 인간의 조상이 나뉘기 한참 전에 자리 잡은 것이다.

흔히 우리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지구 모습이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으리라 짐작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지구 역사에 비춰보면 나무와 잎 그리고 초식동물이 등장한 지도 그리 오래지 않다. 과일은 그중에서도 신참이다. 과육에 가득 찬 탄수화물을 한껏 즐긴 동물들은 결과적으로 식물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일을 도맡게 되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진화가 진행된 것이다. 백악기를 지나 공룡이 사라진 숲에서 곤충이나 나뭇잎을 먹던 영장류 동물들에게도 마침내 다디단 열매를 먹을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효모도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찌감치 과일에 포진한 효모는 빠르게 탄수화물을 알코올로 바꾼 다음 세균이나 곰팡이가 도저히 자리 잡지 못할 위험한 공간을 조성했다. 알코올 농도가 높은 상황에서 버틸 수 있게 스스로를 무장한 효모는 이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면 되었다.

효모와 제휴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인류의 조상은 효모의 발효 산물을 최대한 이용했다. 인류의 조상이 숲에서 드넓은 초원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진 일이다. 땅에 떨어져 발효되기 시작한 열매에는 알코올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미 강력한 알코올 분해 효소를 장착한 인류는 과일의 탄수화물과 알코올, 효모까지 한입에 털어 넣고 짧게나마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알코올을 끓여 순도 높은 술을 만드는 증류(蒸溜) 기술을 발명했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발효는 오롯이 효모의 창작품이다. 술자리가 잦은 연말이다. 잔을 부딪칠 때 한 번쯤은 효모에 대해서도 생각하자. 지구에는 인간 말고도 다재다능한 완전체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효모를 위해 건배!!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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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나무들은 이제 하늘을 향해 뻗었던 광합성 전진기지를 서서히 철수하고 있다. 물과 영양분이 들락거리던 지난 성하(盛夏)의 물관과 체관으로 한 켜의 나이테를 더한 나무는 작년보다 몸통을 더 키웠다. 공기 속의 삶을 선택한 나무들은 위로 높이 솟구치기 위해 밑동을 부풀린다. 나무가 생산하는 유기화합물의 90% 이상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비롯된다. 10%가 채 안되는 나머지는 뿌리를 통해 흡수하는 지각 속의 물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땅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나무는 가히 대기권에 근거를 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무는 어떻게 꼿꼿이 서게 되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식물은 리그닌(lignin)이라는 생체 고분자 화합물을 발명한 덕분에 수직 상승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목재 혹은 나무를 뜻하는 라틴어, 리그눔(lignum)에서 유래한 리그닌의 화학구조를 보면 유달리 산소 원자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약 4억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산소를 접착제 삼아 생성된, 물에 녹지 않는 리그닌 화합물은 황무지였던 지표면을 푸르게 만들어 지구 풍광을 일신(一新)했다. 리그닌은 식물을 땅 위에 굳건히 서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잎의 표면적을 넓혀 태양 에너지를 맘껏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어떤 생명체도 넘보지 못했던 대기권이라는 생태 지위를 차지한 나무는 빠르게 지구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으로 날개 달린 곤충과 새를 불러들여 꿀과 안식처를 제공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식물이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 덕분이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산소 덕분에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식물의 리그닌에 필적하는 동물의 고분자 화합물은 콜라겐이다. 포유동물이 가진 단백질의 양을 100이라고 했을 때 콜라겐은 그중 약 25%를 차지한다. 단연 압도적이다. 콜라겐은 인간의 결합조직인 뼈나 연골에 주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디에나 다 있다. 머리카락이나 혈관에도 있다. 이 중에서 콜라겐이 부실했을 때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조직은 어디일까? 뼈, 이빨? 아니다. 바로 혈관이다. 

심장에서 전신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인간은 약 10만㎞가 넘는 혈관계를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혈관벽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일은 건강하게 살기 위한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콜라겐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공들여 땋은 여자아이 삼단 머리처럼 콜라겐 다발은 세 줄의 콜라겐 기본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콜라겐 단백질 안에는 특별히 프롤린(proline)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13%에 육박할 정도다. 세포들은 프롤린 분자에 산소와 전자 한 개를 붙인 수산기를 일종의 접착제로 사용하여 세 줄의 콜라겐 다발을 완성한다. 이렇게 콜라겐 다발을 만들 때도 산소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콜라겐 다발에 구조적 안정성을 확고히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자가 필요하다. 

콜라겐 단백질에 전자를 전달해 주는 생체 물질은 다름 아닌 비타민C이다. 대항해 시대에 수많은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요란스럽게 등장한 비타민C 결핍의 주요한 증상인 괴혈병은 대개 전자 하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부실해진 콜라겐 단백질에서 비롯되었다. 비타민C의 정체를 밝힌 헝가리의 센트죄르지 박사는 연구 초반 저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소의 부신을 대량으로 추출했다. 부신(副腎)은 그 이름처럼 콩팥 위에 붙은 기관이며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들고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을 만들 때도 비타민C가 제공하는 전자가 필요한 것이다. 교과서에서 우리는 비타민C가 중요한 세포 내 항산화물질이며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비타민C는 스트레스성 매개 물질인 아드레날린뿐만 아니라 근육의 운동 및 쾌감 본능을 매개하는 도파민 생합성에도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원으로 쓰기 위해 잘게 쪼갠 지방산을 미토콘드리아로 운반하는 카르니틴이라는 물질을 만들 때도 필수적이다. 괴혈병의 초기 증상은 권태감을 동반하는데 이 증상은 카르니틴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 중요하고 다양한 기능을 하는 비타민C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대신 싱싱한 채소나 과일을 먹어 필요한 양의 비타민C를 충족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다세포 생명체는 스스로 비타민C를 만든다. 몇 종의 물고기와 새 그리고 박쥐 일부, 기니피그 및 영장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비타민C를 만드는 유전자와 효소 일습(一襲)을 갖추고 평생을 살아간다. 심지어 식물이나 버섯도 비타민C를 합성한다. 식물의 비타민C는 주로 광합성 과정에서 파생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한다고 알려졌지만 콜라겐과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에 참여하는 동물에서의 비타민C의 기능을 염두에 둔다면 이 화합물이 식물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식물이 왕성하게 성장하거나 과일이 익을 때 비타민C가 필요하다는 최신의 연구 결과는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쩌자고 비타민C라는 중요한 물질을 만드는 수단을 내팽개쳤을까? 과학자들은 아마도 우리 영장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잎과 과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생화학적 격변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합리적으로 추론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항산화제인 비타민C를 합성하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세포 독성물질인 과산화수소산화물이 만들어진다. 주위에서 쉽게 비타민C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저 효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탄수화물 재원도 절약하고 간접적으로나마 독성물질의 위험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채소와 과일을 자주 먹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는 진화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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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주문진 어시장에 갈 기회가 되면 나는 오징어를 유심히 관찰한다. 피부의 갈색이 옅어지면서 색이 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심심풀이 땅콩과 함께 오징어를 흔한 먹거리로 취급하지만 바다에서 유영하는 오징어나 문어 또는 갑오징어가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해서 색을 바꾼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이들 두족류 동물은 어두운 바위에 앉으면 진한 갈색으로, 모래 위를 헤엄칠 때는 옅은 모래 빛으로 자신의 피부색을 바꾼다. 

2019년 3월 미국 보스턴의 노스이스턴대학 연구진은 오징어나 갑오징어가 피부 층층이 다양한 색소 주머니를 갖고 있으며 빛의 밝기에 따라 이 소기관의 크기를 변화시켜 색소의 농담(濃淡)과 패턴을 조절한다는 논문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빛을 감지한 오징어의 뇌가 신호를 보내면 색소 주머니를 둘러싼 근섬유가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일이 진행된다. 보호색을 띠는 과정에 오징어의 신경계와 세포 골격 단백질 사이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군인이나 화장품 업계 종사자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군복이나 전투기의 색을 조절하여 위장술에 사용할 수 있는지 타진해본다거나 빛에 따라 피부의 색조를 조절해보려는 것이다.

신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징어를 관찰할 때 아마도 글루탐산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나는 색소 주머니를 둘러싼 근섬유가 수축하고 이완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한때 내 연구의 주제가 혈관의 수축과 이완에 관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근육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뼈와 함께 생명체의 이동에 관여하는 골격근과 혈관 혹은 소화기관을 움직이는 평활근이 그것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협심증 환자들은 급할 때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 알약을 혀 아래에 집어넣는다. 구강 점막에 녹아 약물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관상동맥 평활근 세포를 이완하여 혈관을 넓히고 혈액이 잘 흐르게 한다.

니트로글리세린은 무기 그리고 의약품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진 흥미로운 화합물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 물질의 의약품으로서의 기능은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다이너마이트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몇 명이 자신들이 일하지 않는 주말에 협심증 증세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이 현상에 주목한 임상 의사들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의약품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정작 협심증을 앓았던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약으로 먹지 않았다고 한다. 무기를 약으로 쓸 수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훗날 과학사가들의 ‘펜놀림’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니트로글리세린처럼 혈관을 확장하는 물질을 우리 세포가 만든다는 점이다.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 산소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를 써서 세포 안의 효소가 만들어내는 혈관 확장 물질은 바로 일산화질소(nitric oxide)이다.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물질을 우리 몸에서 만들고 있다는 점이 다소 의아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 세포가 만든 이 기체 화합물은 생성된 곳 근처에서 국소적으로 작용하고 빠르게 분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순간에 직면하면 세포는 이 화합물을 즉시 만들어야 한다. 혈관을 확장시켜 산소를 공급할 때 일산화질소는 산소와 협조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세포 안에서 산소와 경쟁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예는 반딧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름밤을 수놓는 아름다운 반딧불의 정체는 이들 기체 화합물 사이의 경쟁 구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개똥벌레는 세포 호흡에 사용되는 산소를 불씨 삼아 빛을 낸다. 호흡 단백질에 일산화질소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세포는 산소를 호흡 과정에 사용할 수 없다. 갈 곳 없는 산소가 반딧불 불씨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머지않아 곧 반딧불이 꺼진다. 그래서 반딧불은 깜박거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2001년 텁스대와 하버드 의대 공동연구진은 반딧불의 불빛(lantern) 자체가 호흡 단백질에 자리 잡은 일산화질소를 몰아낸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렇게 산소가 다시 호흡에 참여하면 반딧불 불씨는 가뭇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포의 호흡 단백질에 결합하는 성질을 가진 화합물이 일산화질소처럼 반딧불을 밝힐 수 있으리라 추론할 수 있다. 동물에 치명적인 독성 물질인 청산가리를 소량 처리하면 반딧불이 밝아진다. 청산가리가 세포의 호흡 단백질에 결합하기 때문이다. 연탄가스 중독 물질인 일산화탄소도 호흡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반딧불의 불씨를 키울 수 있다.

몇 가지 예에서 짐작하듯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일산화질소와 일산화탄소를 만드는 효소 단백질이 있다. 세균도 예외는 아니다. 일산화질소는 아르기닌 아미노산을 변형시켜 만든다. 반면 일산화탄소는 적혈구 헤모글로빈 분자에 하나씩 박혀 있는 헴 분자를 재료로 만든다. 적혈구 하나가 파괴될 때마다 약 8억개의 헴이 분해되고 그만큼의 일산화탄소 분자가 생성된다. 이 두 기체 분자 모두 인간의 몸 안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혈관을 확장하며 신경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오징어 색소 주머니를 수축하고 이완하는 과정에도 물론 참여한다.    

요즘 과학자들은 이들 기체 화합물을 의료용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한다. 세포나 조직의 호흡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켜 활성 산소의 생성을 차단하면 장기이식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와 일산화질소에 천형처럼 부여된 독성 물질이라는 오명은 최근 생겨난 것이지만 사실 이들 두 기체는 생명의 역사 초기부터 오랫동안 세포의 안녕에 공헌해 왔다. 이 두 화합물 모두 호흡이나 광합성 과정을 조절하는 아주 오래된 물질이다. 생물학에서는 오래 버텨 온 것일수록 더 중(重)하고 각별히 아름답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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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길을 걷다보면 꼬투리가 펼쳐진 달맞이 풀이 연신 눈에 띈다. 아직은 햇살이 등짝을 따스하게 비추지만 한해살이풀들은 자신의 분신들을 여기저기에 숨겨놓고 겨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들도 이파리에 남은 영양분을 서둘러 몸통으로 옮기면서 잎싹 꽃싹을 머금은 봉오리들을 마련한다.  

가을이 한창이다. 열대우림은 그렇지 않겠지만 머지않아 온대 지방의 숲은 일제히 나뭇잎을 떨구고 중위도 지구 북반구의 광합성 표면적을 현저히 줄여나간다. 이렇게 광합성 속도가 줄어듦에 따라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분석한 이산화탄소의 수치는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한다.

식물들이 자라고 씨를 맺는 데 필요한 주된 영양소는 이산화탄소와 물이다. 물을 분해해서 전자와 수소 이온을 얻은 식물은 이들을 이산화탄소에 붙여 포도당으로 만든다. 이 단계에 빛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일컫는다. 자신이 사용할 식재료를 스스로 생산한다는 점에서 식물은 독립 영양 생명체이다.  

반면 우리 인간은 자체적으로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종속 영양 생명체다. 우리는 그러나 포도당을 이산화탄소로 바꾸면서 식물의 먹거리를 약간 챙겨주기는 한다. 광합성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세포 과정을 우리는 호흡이라고 한다.

하지만 호흡과 광합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각 과정에 사용되는 재료의 에너지양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안정적이지만 매우 낮은 에너지를 가진 이산화탄소에 태양에너지를 부어 고에너지 탄수화물을 만든다. 인간은 이 농밀한 화학에너지를 함유한 탄수화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고 이를 물건을 들어 올리는 운동에너지, 신경세포끼리 신호를 전달하는 전기에너지 혹은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열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이렇게 식물은 인간을 지구 밖의 에너지원인 태양과 연결시킨다.

지구 역사에서 광합성이 등장하기 전에 생명체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에너지원은 지구 내부에서 나왔다. 심해의 바닷물을 데우고 인도대륙을 움직여 히말라야산맥을 높이 들어 올린 힘이다. 수천도에 달하는 지구 내부의 열이 지각판을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해 1인치씩 대서양을 넓히는 힘도 지구 내부의 열에서 기원한다. 또한 지구 내부의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심해 생명체들도 존재한다. 이 내부 에너지에 더해 광합성은 지구 밖에서 거저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를 여투어 생명체가 한동안 보전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했다. 천년 넘게 살아남은 용문산 은행나무에는 천년 전에 한반도에 도달한 태양에너지가 살아 있다. 태백산맥 준령에 파묻힌 석탄은 훨씬 더 오래 묵은 태양에너지이자 수억년 전 대기 중에 존재했던 이산화탄소 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식물은 대기 중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안으로 끌어들일까? 바로 기공(氣孔)을 통해서다. 기공은 우산이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육상 식물이 가지고 있는 핵심기관이다. 하지만 식물은 주변 상황에 따라 기공의 열고 닫음을 면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빛이 도달하지 않는 밤에는 물론 기공을 열 필요가 없다. 한편 주변에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다고 해도 오래 기공을 열어두는 일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건조하거나 기온이 높으면 기공을 통해 수증기가 날아가 전체적으로 광합성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성 미생물이 기공을 통해 식물에 침입하는 일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지금부터 40여년 전 과학자들은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과 기공의 개수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눈치챘다. 또한 실험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198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대학 식물학자 F 이안 우드워드는 같은 종의 식물이 산꼭대기에서 자랄 때와 평지에서 자랄 때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꼭대기에 사는 식물은 뿌리가 잘 발달했지만 덩치는 작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산꼭대기 식물이 평지에 사는 사촌들보다 더 많은 수의 기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드워드는 실험실에서 변수를 바꾸어가면서 관찰을 계속했다. 산꼭대기와 평지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검토한 것이다. 두 환경을 모사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 예컨대 온도와 습도 혹은 빛의 차이는 기공의 숫자를 결정짓는 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공의 숫자를 변화시켰다. 산꼭대기에서 식물이 확보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평지에 비해 더 적었던 것이다. 중력 때문에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의 밀도는 줄어든다. 높은 산에서는 산소의 양도, 이산화탄소의 양도 적다. 산꼭대기와 달리 평지에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부족하지 않다. 재료와 에너지가 드는 기공을 적게 만들어도 식물이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며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380ppm에 이르렀다. 매년 2ppm씩 빠르게 늘고 있다. 1998년 영국과 중국의 공동연구진은 현생 은행나무와 1924년에 수집한 은행잎에서 기공의 숫자를 비교했다. 20세기 약 70년이 지나는 동안 은행나무 뒷면에 있는 기공의 수는 ㎟당 137개에서 97개로 줄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냉장고 및 아파트 등이 본격적으로 호흡에 가세하면서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한 결과이다. 온실가스에 갇힌 태양에너지는 지구의 온도를 급하게 올리고 한반도에 잦은 가을 태풍을 몰고 온다. 여기서도 문제는 속도다. 2015년이 지나며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양이 공식적으로 400ppm을 넘었다고 탄식했다. 그 뒤로 불과 5년이 넘지 않은 2019년 5월 지구 대기 이산화탄소의 양은 ‘공식적으로’ 415ppm을 넘었다.  

태풍 ‘미탁’이 한반도 상륙을 목전에 둔 오늘도 은행나무의 뒷면에서는 기공의 수가 줄고 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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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을 들으면 천민자본주의 사회를 주도하는 악덕 업주나 호시탐탐 백성들의 등골을 탐하는 탐관오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직업 때문에 나는 출판된 과학 논문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보건원 도서관 웹사이트인 펍메드(pubmed)를 방문한 뒤 벼룩과 간을 검색어로 집어넣고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논문은 더러 있었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논문은 찾지 못했다. 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벼룩은 과연 심장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몸집의 길이가 2㎜에 불과한 물벼룩도 심장이 있어서 소화기관을 거쳐 온 영양소를 온몸으로 분배한다. 심장은 폐를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와 간을 통해 역시 몸 ‘안’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전신으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폐와 간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먹을거리인 산소와 영양소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1차 관문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동물의 간과 폐가 소화기관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른 기관과 비교하였을 때 간은 혈액이 들어오는 통로가 두 개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은 뇌, 근육, 콩팥 그리고 간으로 들어간다. 이들 기관에 산소와 신선한 영양분을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기관을 통과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대사 폐기물을 회수한 혈액은 정맥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심장을 중심으로 우리 몸은 이렇게 한 번의 순환을 매듭짓는다. 하지만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몸의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는 소화기관에서 어떤 경로를 따라갈까? 인간의 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내부 기관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나는 소화기관을 ‘내 안의 밖’으로 간주한다. 입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폐를 거쳐 심장으로 가듯 소화기관에서 아주 잘게 잘린 영양소들은 주로 작은창자에 연결된 모세혈관을 타고 간 문맥(portal vein)을 거쳐 간으로 들어간다. 심장에서 하나 그리고 소화기관에서 하나 이렇게 두 개의 통로를 거쳐 간으로 혈액이 들어온다. 따라서 간은 음식물을 따라 들어올 수도 있는 독성물질이나 이물질을 선별하고 독성을 제거한 다음 이들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수행한다. 

이런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과학자들은 간이 출입국을 관장하는 세관과 같은 업무를 맡는다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다른 일부 과학자들은 순환계에서 영양소를 끌어내는 일이 간의 본디 업무였다고 말한다. 사실 알을 낳는 동물들은 그들의 후손이 독립적인 완결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필요한 물질 모두를 노른자(난황(卵黃))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물질은 난황형성 단백질인데 영양소 집하장인 간에서 이 지질단백질을 만든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간세포를 직접 분리해온 나는 현미경으로 간세포를 보면서 늘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뒤 초파리에 관한 논문을 읽다가 “앗, 간세포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5㎜도 채 되지 않는 곤충의 몸 안에 인간의 간세포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소화기관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 지방과 단백질을 저장하고 그중 상당부분을 후손에게 할애한다. 벼룩이나 꼬마선충 같은 아주 작은 동물은 간의 역할을 겸한 소화기관에서 난황형성 단백질을 만든다. 동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든 척추동물들은 영양소가 풍부하지 못한 환경에서 진화했다. 곰처럼 육식을 하던 판다가 왜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는지 저간의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매일 체중의 10분의 1이 넘는 양의 대나무를 먹어야 한다. 하루 14시간 넘게 먹어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고 번식을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뭄이 들거나 병충해가 자심하면 대를 잇는 일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좋을 때까지 번식을 유예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번식 과정에는 성호르몬이 관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양 상태에 관한 정보도 중요하다. 이 두 과정에서 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간은 생식기관에 성호르몬의 재료인 콜레스테롤을 공급한다. 하지만 아미노산과 같은 필수영양소가 풍부한지 아니면 부족한지에 관한 신호도 동시에 내보낸다. 만약 영양소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오면 생식기관은 성호르몬 신호가 오더라도 반응하지 않는다. 생식 주기를 멈춰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인간 여성에서도 벌어진다. 거식증으로 시달리는 여성들은 아예 월경을 거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알을 낳는 대신 배아를 자궁에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알을 낳는 일처럼 이 과업도 두 생물학적 성(sex) 중 여성에만 국한된다. 알을 낳지 않으니까 난황형성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산모는 이 고분자 물질과 같은 계열의 지질단백질 및 콜레스테롤을 생식기관에 공급하고 저장된 지방과 포도당을 태아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여성들이 허벅지와 엉덩이에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하는 생물학적 이유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에게 한동안 젖을 먹이는 일도 여성의 몫이다. 이때도 여성의 간은 생식과 대사 기능 사이에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한다. 이런 점에서 여성의 간은 일종의 생식기관이다.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주도하는 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물질 대사의 정치(精緻)함은 남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남성의 혈액은 에스트로겐의 양도 적고 그 호르몬을 인지하는 수용체 단백질도 여성의 3분의 1에서 5분의 1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과 남성의 간은 다르다. 흔히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말할 때 뇌의 기능을 언급하지만 남녀 간 뇌 유전자 발현의 차이는 14%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간의 유전자는 양성에서 72%가 다르게 발현된다. 주로 지방 대사, 면역 그리고 독성물질의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여성의 간에서 특별히 더 활성화된다. 지방 조직 유전자의 발현도 68%의 성차를 보인다. 먹고살며 후대를 계승하는 일에 남성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생물학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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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0대 후반의 스위스 여성이 미국 국경을 통과하려다 세관원의 제지를 당했다. 여권의 사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손가락 지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스위스 바젤대학의 피터 이틴은 ‘입국심사 지연’ 질환이라고 비유했다.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식 중 하나로 지문이 자리 잡은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진나라 관리들은 사람마다 각기 지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미시시피에서의 생활>이란 책에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지문을 이용해 범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했다. 국가에 의해 의무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에 편입될 때 만 17세가 되는 우리 청소년들은 반드시 지문을 등록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법의학이나 범죄수사에서 흔히 사용되곤 하는 지문의 생물학적 기능은 무엇일까? 어떤 과학자들은 촉촉한 지문이 잡은 물건을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종이를 연거푸 넘길 때 손가락 끝이 건조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듯도 싶다. 지금은 보기 힘든 일이 되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손가락에 침을 퉤퉤 뱉어가며 지폐를 세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무에서 주로 생활하는 코알라가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지문을 가지고 있다는 관찰도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촉각과 관련된 기능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엄마 배 속에서 여섯 달이 지나는 동안 발생이 완결되는 지문에서 땀샘과 그에 연결된 몇 가지 신경세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전을 손가락으로 만져서 그것이 500원짜리인지 100원짜리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 자판기 투입구에 실수 없이 집어넣을 수도 있다. 이는 지문과 피부 아래 신경이 없으면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지문과 결부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지문의 돋은 능선을 따라 일정하게 배열된 땀샘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호젓한 산길에서 호랑이를 마주칠 일은 이제 없겠지만 직장 상사나 면접관을 대면해야 할 일은 흔히 생길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에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주변을 살펴 돌멩이나 작대기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바탕 접전을 치르거나 도망할 때는 손바닥 땀이 소용 있을 수 있겠지만 상사의 면전에서 그것은 별 쓰임새가 없다. 이렇듯 급격히 변화한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은 가끔 구닥다리 신세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스트레스 반응일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근육에 혈액을 듬뿍 보내고 눈을 부릅떠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일은 석기시대에는 필수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적을수록 좋다. 

어쨌든 지문은 손에 예민한 촉각 기능을 부여하면서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한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목욕탕에 있다가 나왔을 때 손가락이 불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유독 손가락 끝이 더욱 그렇다. 피부 각질이 물을 머금어서 혹은 혈관이 수축해서 그렇다는 둥 몇 가지 이유를 대지만 기실 이 현상에는 신경계가 관여한다. 손목 신경을 다친 사람의 손가락이 물속에서 붇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어슷하게 홈이 파인 타이어처럼 물속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우리 손가락이 일시적으로 변형을 치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문이건 주름이건 우리 손바닥과 손가락은 참으로 특별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미국 입국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저 여성의 손가락에는 왜 지문이 없었을까? 먼 친척을 포함해 여성의 가족 중 일곱 명이 지문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과학자들은 그 증상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마침내 그것을 찾아냈다. 피부에서만 발견되는 특정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털이나 손톱을 구성하는 주된 단백질인 케라틴에 돌연변이가 있을 때에도 간혹 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문 없는 저 스위스 여성은 단지 촉각이 좀 무디고 종이돈을 잘 세지 못하는 불편함 말고 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았을까? 기자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여성은 격렬한 운동을 하지 못했다. 수영장에서도 발만 물에 담그고 앉아 있었을 뿐 친구들과 함께 헤엄을 즐길 수 없었다. 약간만 근육 운동을 하면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열을 내지만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는다. 사실 잘 느끼지도 못한다. 인간의 신체가 되먹임 체계를 적절히 가동하면서 언제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땀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부는 ㎠당 약 150~340개에 이르는 에크린 땀샘을 구비하고 효율적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우리는 약 200만~500만개의 땀샘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가장 많이 분포한 땀샘은 머리에서 몸통, 사지로 내려가면서 그 수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지문에 박혀 있는 땀샘도 체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박동하듯 에크린샘을 통해 피부로 일분에 땀을 최대 스무 차례나 주기적으로 흘리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일은 침팬지나 고릴라 그리고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포유동물의 경우 에크린샘은 역할이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 코끼리는 혈관이 풍부하게 분포한 귀를 팔랑거리거나 주름진 피부로 표면적을 늘리면서 적도의 더위를 견딘다. 개나 고양이는 주로 헐떡이면서 체온을 식히지만 인간처럼 땀을 흘리지는 않는다. 대신 발바닥에 땀샘이 풍부하다. 이들과 달리 우리 인간은 몸 표면과 공기의 경계면에서 충분히 땀을 흘리고 그것을 증발시키면서 체열을 떨어뜨린다.  

현대에 들어 인류는 오래되었지만 완성도가 높은 ‘땀 흘림’이라는 우리 몸의 생리학적 되먹임 기제 대신 화학 에너지가 듬뿍 가미된 전기 온도조절 장치에 대한 의존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시동 켜진 자동차 옆을 지나가기 무섭고 에어컨 실외기 앞의 회양목이 가뭇없이 시들어가고 있다. 덥고 습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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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간혹 사람들은 단식을 한다. 한두 끼는 몰라도 나는 여러 날 굶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젊은 날 나는 단식을 하던 빙장 어른 앞에서 회 한 접시에 두 병의 소주를 꿀꺽 한 ‘인정머리 없는’ 짓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은 나중에 ‘맛있게 먹기 위해’ 지금 단식을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매우 흥미로운 얘기였지만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나중에 미국에서 실험하는 도중에 그 말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우연히 찾아왔다.

아마 2005년이었을 게다. 누구라도 그렇듯 실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진행된 최신의 연구 결과물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인터넷을 통해 새롭게 발표된 논문을 읽는 게 주된 일과가 된 것이다. 어쨌든 그때 읽었던 논문은 24시간 동안 굶은 섬유아세포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역사 내내 배불리 먹은 경험이 없기에 동물들이 굶는 일에 잘 적응되어 있다는 따위의 슬픈 사연은 아니었다. 대신 배양액에 혈청이 없어 굶주린 세포 표면에서 안테나 같은 뭔가가 돌출된다는 내용이었다. 돌출된 세포 소기관은 흔히 섬모(cilia, 纖毛)라고 불린다. 보통 이 소기관은 노잡이처럼 단세포인 짚신벌레를 움직이게도 하지만 기도(氣道)의 상피처럼 고정된 세포에서는 먼지나 세균을 붙잡은 점액을 목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최신 생물학>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이 사용한 세포는 섬모를 써서 움직이는 능력은 없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과학자들은 세포의 표면에 돌출된 안테나 모양의 섬모를 운동과 결부된 소기관과 따로 구분하여 일차(primary)섬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꼬리를 움직여 정자가 움직일 때 또는 기도 상피세포가 섬모를 움직여 점액을 운반할 때 관여하는 단백질 묶음은 본질적으로 같다. 움직임을 담당하는 축(axis) 구조가 없는 일차섬모는 세포 안에서 주로 감각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2005년 논문에 등장했던 세포는 과연 무엇을 감지한 것일까? 분명 세포는 배양액의 영양소가 ‘적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 뒤 ‘셀’이라는 저널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청을 다시 공급받은 세포 표면에서 일차섬모가 눈 녹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일차섬모는 굶주린 세포의 표면에서만 형성된 것이다. 그 뒤로 다양한 종류의 세포에서 일차섬모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지방을 저장하는 세포에서도 그 존재가 밝혀졌지만 섬모는 주로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감지하거나 색상을 구분하는 눈의 세포들도 표면에 섬모가 있다. 평형을 담당하는 귀의 세포 및 후각을 담당하는 세포들 모두 섬모에 의지해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수행한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단식을 하는 사람들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나랑 마주했던 그 어른도 단식에 따른 생리적 변화가 바로 저 감각의 예민함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의 변화를 인식한 세포들이 온갖 감각을 동원하여 먹을 것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정황이 익히 연상되는 것이다. 개별 세포도, 그 세포의 집결체인 생명체도 모두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고자 애를 쓴다. 

이렇듯 굶으면 세포 표면에서 형태학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만 세포 안에서는 자기소화(自己消化, autophagy)라는 세포 과정도 진행된다. 스스로(auto) 먹는다(phagy)는 뜻의 이 과정은 당장 긴요하지 않은 낡은 단백질이나 손상된 세포 소기관을 처분하여 세포가 굶주림을 모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효모에서 이러한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박사는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오스미 박사 연구팀은 자기소화에 관계되는 유전자를 없애버린 몇 종류의 생쥐 새끼가 고작 12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탯줄을 통해 어미로부터 영양분을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하는 생쥐의 새끼가 초유를 먹기 전까지 자기 스스로 영양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생아도 마찬가지다. 출산 직후 신생아의 혈중 포도당의 양을 측정한 연구에 따르면 혈액 안의 포도당은 1시간이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상적인 신생아들은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하여 혈중 포도당의 양을 회복하고 자기소화 과정을 통해 아미노산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를 겪지 않는다. 그러나 신생아에 대한 영양 공급이 늦어지거나 자기소화 능력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성인들도 하루 정도 굶으면 간에 저장된 창고에서 뇌가 사용할 포도당을 우선 갹출하고 자기소화를 진행하여 아미노산을 충당한다. 하지만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본디부터 그렇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근육에 저장된 포도당 덩어리는 포식자 동물로부터 재빠르게 도망치거나 먹잇감을 쫓기 위해 비축된 것이며 다른 목적으로 양도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잠깐 굶더라도 우선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굶는 시간이 길어지면 근육단백질, 나중에는 지방산을 분해하여 입맛 까다로운 뇌를 먹여살린다.

굶주린 세포 혹은 생명체가 일차섬모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자기소화를 진행하기도 한다면 이 두 과정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 두 과정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섬모가 없으면 자기소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아직 정확한 생물학적 전모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뇌와 주변 기관 모두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호작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차섬모가 ‘실질적으로’ 인간의 모든 세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접하면 나는 자주 뇌까린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 것일까? 과학의 길은 참 멀고도 멀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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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우리의 오월은 경계에 서 있다. 겨우내 열려 있던 공간을 부리나케 푸른 잎들로 채운 오월은 봄을 성큼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경계는 우리 몸 안에도 존재하는데 몸의 내부 장기를 외부와 연결한다. 호흡 과정을 통해 폐는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한다. 소장을 거쳐 들어온 영양소도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포유동물인 인간은 산소 또는 영양분과 마주하는 폐와 소장의 경계막을 충분히 접고 구부려 표면적을 극대화한 후에야 비로소 세포를 먹여살릴 수 있게 되었다. 피부 면적은 2㎡에 불과한 데 비해 인간의 평균 폐 표면적은 50㎡(약 15평)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놀랍지 아니한가?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 소화기관의 표면적은 그보다 서너 배는 더 넓다.  

먹고 숨 쉬는 경계의 표면적이 넓다는 점은 경이롭지만 그 현상이 산소와 영양분 흡수를 향한 우리 몸의 해부학적 안간힘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일견 슬프기도 하다. 어쨌든 표면적만 보아도 피부는 확실히 방어 기관이고 폐와 소장은 에너지와 물질을 몸속으로 끊임없이 집어넣는 역동적인 기관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오월이면 나는 또 다른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바로 태반이다. 참 손이 많이 가던 아기가 제법 사람 꼴을 갖춘 일을 축하하는 어린이날이나 그 일을 묵묵히 감내한 어버이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어버이날이 공존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저 기관 때문이 아니던가? 인간의 배아가 발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반도 그 기능에 걸맞게 표면적이 11~14㎡에 달한다. 20㎝ 크기의 원반 모습을 띤 태반의 한쪽은 엄마의 자궁내막에, 다른 한쪽은 탯줄을 매개로 아기와 연결되어 태반 포유류 특유의 기관을 이룬다. 이들은 태반 없이 발생 초기에 태어난 새끼를 ‘육아낭’이라는 주머니에서 키우는 캥거루와는 사뭇 다른 생식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이 전략은 알에서 태어나 젖을 먹는 원시 포유류인 오리너구리 생식과도 큰 차이가 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발생학 강의를 하다 가끔 나는 “누가 태반을 만들었을까?”라는 생경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당연히 ‘임부가 만드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질문자의 의도를 고려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 태반은 태아가 만든다. 정자와 난자 하나가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수정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종류의 세포로 분화된다. 하나는 태아가 될 줄기세포들이고 나머지는 태반이 될 줄기세포들이다. 태아 줄기세포는 심장과 뇌, 피부 등등을 포함해서 약 3~4㎏에 이르는 신생아의 각종 세포로 분화하겠지만 태반 줄기세포는 태아와 산모의 경계면인 약 450g의 태반을 조직화한다. 이 태반을 통해 임부는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태아의 노폐물을 처리한다. 매분마다 임부의 심장을 빠져 나가는 혈액의 20% 정도가 태반을 경계로 태아와 마주한다. 이런 방식으로 태반 포유류는 조류 혹은 파충류의 탄산칼슘 알껍데기와 난황을 완전히 대체하고 자손을 보다 안전하게 이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전략이 임부의 부담을 크게 가중시켰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지구상에 태반 포유류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주연이 필요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바이러스다. 애써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우리 유전체의 약 8%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 바이러스는 유전자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 공장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가 스스로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세균이나 동물의 세포 안에 들어가 그들의 복제 기구에 무임승차해야 한다. 그렇게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고 그것을 일일이 조립한 후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를 터뜨리고 탈출한다. 역전사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매우 특별한 한 종류의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체를 숙주 세균이나 인간의 세포 유전체에 슬며시 끼워 놓는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유전체에 바이러스의 흔적이 살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돌연변이로 바이러스 유전체가 병원성을 잃은 데다, 또 숙주인 우리 세포도 이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면역계의 시선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러한 제어 장치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가끔 말썽을 일으킬 때가 있다. 여기저기 함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점핑 유전자라는 이름이 붙은 바이러스 유전자 조각이 인간 유전자 중간에 끼어들면 암세포로 바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포유류 조상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하나를 태반을 만드는 데 차출하는 술수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본디 숙주의 세포막에 바이러스의 껍데기를 합칠 때 쓰던 단백질이었다. 태반의 핵심인 영양막 세포는 ‘신시틴(syncytin)’이라 불리는 바로 이 바이러스 기원 단백질을 이용하여 임부 자궁 내막에 녹아 융합해 들어간다. 이런 방식으로 태아는 임부의 혈액으로부터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확보할 전초기지를 마련했다. 프랑스 과학자 하이드만은 영장류 태반에서 신시틴 아형(亞型)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것이 임부의 면역계를 약화시켜 태아를 공격하지 못하게 돕는 부가적 역할을 한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바이러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유전자들이 태아와 임부 사이의 ‘의사소통’에 적극 참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체에 편입한 바이러스 유전체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오월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 혹은 이전 세대와의 자리바꿈을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달이다.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에 맺은 생물학적 제휴 아래 비로소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키메라인 것이다. 6월이 오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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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피어난 수수꽃다리 꽃에 앉아 날개를 접고 꿈을 꾸는 나비는 태양에서 날아온 광자(photon)에 흠뻑 취해 있다. 이런 나른하고 이완된 기운은 금방이라도 나까지 엄습할 듯하다.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유독 봄에 피곤하고 무기력한 증상을 우리는 춘곤증이라고 부른다. 낮이 길어지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 북반구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긴 겨울 동안은 햇빛이 내리쬐는 낮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우리 몸속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재고가 바닥난다. 이에 반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춘곤증이 생긴다는 가설도 있다. 또는 기온이 올라가 혈관이 이완되고 혈압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증세가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춘곤증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균 시간만큼 잠을 자지 못해서 잠의 고리(高利) ‘빚’에 시달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기네스북에서조차 ‘잠 안 자고 버티기’ 기록 분야를 폐지했을 만큼 과학자들은 부족한 잠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했다. 너무 많이 자도 좋을 것은 없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인들은 세탁기나 냉장고 혹은 휴대폰과 같은 ‘시간 절약 기계’ 살 돈을 버느라 잠잘 시간을 앗기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수면 부족은 우리 몸 곳곳에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그래서 수면과학자들은 평균 수면 시간보다 잠을 적게 자는 행위가 빚을 지는 일이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 사실 평생 지속되는 인간의 행동 중 잠이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운동하거나 밥을 먹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동물의 몸속에 수면을 유도하는 기구(machinery)를 켜고 끄는 스위치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주로 초파리를 사용한다. 포도 껍질에 몰려드는 자그마한 곤충 말이다. 생긴 것은 보잘것없지만 이들의 유전체는 인간의 그것과 비슷하고 기능적인 면에서도 흡사한 부분들이 많다. 초파리들도 잠을 설치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수명도 줄어든다. 하지만 남들보다 적게 자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있는 까닭에 동물의 수면을 조절하는 유전적 소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2005년 위스콘신 대학의 토노니 교수는 9000종의 초파리 돌연변이체를 조사한 뒤 칼륨 채널을 암호화하는 셰이커(shaker)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으면 잠을 적게 잔다고 보고했다. 뒤이어 수면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항균 작용을 하는 유전자도 알려졌다. 잠을 자는 일이 곧 면역계를 강화시킨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잠 역시 관장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잠을 자지 않으며 공부하면 학습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잠을 잘 때 활발하게 일하는 한 무리의 신경세포들이 초파리 뇌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세포들이 밤에 일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포가 일을 잘하도록 수면 환경을 조성하면 곧 불면증을 치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생명체가 잠에 들 수 있게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하는 일이 초파리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면 잠은 결국 동물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잠의 기능을 일반적으로 뇌와 근육에 휴식 시간을 주거나 손상을 회복하는 일, 포식자를 피하는 일,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 정보 처리와 저장 등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효과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연구 결과가 올해 3월 ‘네이처’에 보고되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잠은 체내에 누적된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생체 내 에너지 상태를 재정비한 후 다음날을 대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산소와 함께 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산화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한다. 음식물에서 채굴한 전자가 간혹 부적절하게 산소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녹슨 쇠도 ‘화학적’으로 산화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보면 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산소를 다루어야 한다. 우리 세포 안의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산소가 없으면 에너지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처럼 주저앉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산스레 산소를 써서 에너지를 만들어야만 간신히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천형처럼 산소와 함께 사는 동안 동물은 잠을 자야만 한다. 내려오다 만 모래시계를 뒤집듯 잠을 설친 뒤 활성산소를 이고 진 채로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의 어깨는 축 처질 수밖에 없다. 비단 인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포분열 시간이 불과 30분이 안되는 대장균도 어떤 식으로든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이다. 또한 행동을 기준으로 봤을 때 잠을 자지 않는다고 알려진 귀뚜라미나 얼룩물고기 또는 개구리도 반드시 잠을 자야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어떻게 잠을 자는지 우리가 아직 자세히 모를 뿐이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먼저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운동이나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를 허물어뜨릴 단백질의 손상이 수면을 관장하는 신경세포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만약 다른 어떤 생리학적 과정보다도 수면이 질병을 치유하는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잠을 잘 자는 행위는 곧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일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면서 서로 잠을 권해야 하지 않겠는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어쨌든 꽃은 피는 게고 솟아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우리도 나른한 나비의 꿈을 한번 꾸어봄직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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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 내내 간직해 온 열매가 아직도 붉은데 다시 새봄을 맞은 산수유는 꽃망울을 틔워냈다. 봄이다. 무채색의 칙칙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듯 봄꽃은 밝고 화려하다. 곧 벚꽃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도 필 것이다. 남들보다 서둘러 꽃을 피우면 비록 적은 양의 꿀을 제공하더라도  꽃가루를 실어 나를 벌들이 찾아들 것이기에 산수유가 저런 전략을 취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잎 없이 열린 공간으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서발막대 거칠 것 없이 날아갈 수 있다는 점도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꽃은 대표적인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식물은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생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한다. 첫 번째는 잎에서 광합성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는 잎에서 만든 탄수화물로 꽃을 피우고 매개 동물을 유인할 꿀을 만드는 일이며 많은 수의 식물이 취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는 생식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지난해 저장해 두었던 탄수화물을 꽃 피우는 데 사용하는 산수유나 벚꽃이 이런 전략을 쓴다. 마지막은 생식기관이 직접 광합성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꽃은 광합성에 참여한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푸른색을 띤 꽃받침일 것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갈 때까지 꽃받침은 적극적으로 광합성에 참여하기도 한다. 최근 나는 감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한 호주 농림부의 출판물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감의 초록색 꽃받침 네 개를 하나씩 떼 가면서 감의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한 연구 결과였다. 놀랍게도 네 개 꽃받침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감의 크기가 제일 컸고 꽃받침 수가 줄어들면서 감의 크기는 비례적으로 작아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꽃받침 말고 꽃잎, 암술 혹은 수술대와 같은 꽃의 생식 부위에서도 광합성이 진행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식물의 거의 모든 기관이 많든 적든 탄소를 고정하는 광합성 작업에 나서는 걸 알 수 있다. 익기 전의 과일이나 일년생 풀의 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맹그로브라는 식물은 뿌리로도 광합성을 한다. 물론 이파리에 비해 그 효율은 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밀의 쭉정이는 단위 면적당 광합성 효율이 잎의 75%에 이르기도 한다. 이삭의 수를 감안하면 이는 쉽사리 무시하지 못할 양이다.

광합성 전문 기관인 잎은 기공이라는 구멍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인다. 지금처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증가하면 식물은 그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기공의 입구를 좁히거나 그 수를 줄임으로써 광합성 원자재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중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1924년과 1998년에 채취한 은행나무 잎에서 기공의 수가 각각 134개에서 97개로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식물학 잡지에 발표했다. 잎 뒷면에 있는 기공의 숫자를 세면 식물이 살았던 당시 대기 중에 존재했던 이산화탄소의 양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식물은 대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탄수화물의 재료인 이산화탄소를 확보할 수 있다. 

식물도 동물과 다름없이 자신이 만든 포도당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따라서 광합성을 하지 않는 온대 지방의 겨울이나 빛이 없는 깜깜한 밤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약간 증가한다. 전문 광합성 기관이 아닌 줄기나 과일 혹은 꽃받침은 자신들의 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일부를 여투어 다시 쓰면서 광합성을 수행한다. 이렇게 식물은 따로 기공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경제를 운영해 나간다. 

동물이나 대부분의 세균은 갖지 못한 엽록체를 구비한 식물이나 조류가 이 행성에서 진행하는 광합성 과정은 실로 지구 전체를 먹여 살린다. 행성의 바깥에서 도달한 한 방향의 태양에너지를 지구 생명체가 포획하는 유일한 방법이 광합성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부의 에너지를 지구 안으로 들여오는 통로로서 광합성 생명체들은 든든한 곡물 창고인 셈이지만 실제 이들은 지구에 도달하는 전체 태양에너지의 1%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식물의 생물량은 지구 전체 생명체의 80%에 육박한다. 2018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와 미국의 칼텍 연구진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 전체의 탄소 무게가 5500억t이고 그중 식물의 무게가 4500억t에 이른다고 추정했고 그 연구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했다. 이 수치는 우리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 인구는 약 12년마다 10억명씩 늘고 있지만 인간의 주요 곡물인 밀과 쌀 생산량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태양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가까운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식물의 경제 방식을 배우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인류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식물이 잎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을 최대한 이용하여 대기권 혹은 자신의 날숨 속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영양소로 변환시키는 과정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인간이 작물화에 성공한 밀과 쌀 같은 곡물의 쭉정이조차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하다. 식물의 이런 기예를 보고 있으면 생명의 역사에 기여한 인간의 발명품이 알코올을 농축시키거나 끓는점에 따라 석유를 분류하는 ‘증류’ 또는 ‘바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광합성에 참여하는 분자 기구나 유전적 기초를 비로소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엽록소를 동물의 세포에 이식하든, 식물의 잎이나 뿌리를 흉내 낸 로봇을 제작하든 인류의 운명은 앞으로도 거의 수십억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큰 저 태양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도 여전히 봄은 꽃으로 그득하겠지만 이젠 그 꽃받침에 내려앉는 태양빛마저도 눈여겨보게 된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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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잘 때 먹지 않는다. 잠자는 동안 우리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를 소화할 효소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도 꺼버린다. 잘 때 먹지 않는다는 이 짧은 문장을 뒤집어 읽으면 ‘우리는 깨어 있을 때에만 음식을 먹는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먹을까? 모든 사람이 매일매일 하는 일이니까 우리는 이미 답을 잘 알고 있다.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이다. 얼마 전에 초등학생들 방학계획표 그리듯 깨어 있는 시간을 셋으로 나누고 그 시간만큼 교대로 밥을 안 먹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그들은 ‘릴레이 단식’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래서 나도 잠시 짬을 내서 계산해 보았다. 1900년대 초반 인류는 평균 아홉 시간을 잤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30분 정도이다. 평균을 얘기할 때면 늘 수많은 개별자들이 눈앞에 떠오르지만 일단 계산을 해보자. 하루 7시간30분 잔다면 깨어 있는 시간은 16시간30분이다. 이를 3으로 나누면 5시간30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단식을 시작한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보자. 오전 7시30분에 일어난 사람은 그때부터 단식에 돌입하여 오후 1시에 바통을 넘겨주고 그때부터는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타까운 아침잠 10분을 위해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하는 길에서 이런 뉴스를 들었다면 그야말로 실소할 일이지만 어쨌든 그 단식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내게 하나의 생물학적 질문을 던져 주었다. 우리는 왜 하루 세 끼를 먹는가? 두 끼 혹은 한 끼를 먹으면 안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보통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다른 동물들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밤과 낮의 주기적 리듬에 따라 생활하도록 적응했다는 생물학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자고 잘 때는 먹지 않는 신체 리듬에 적응해왔다. 이른바 일주기 생체 리듬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생리 혹은 대사 과정이 주기적으로 매일같이 반복된다. 이 리듬이 깨지면 우리는 쉽게 살찌고 스트레스에도 매우 취약해진다. 하지만 인간이 불을 밝혀 밤을 낮처럼 쓰면서 생체 리듬이 일상적으로 깨지는 상황이 찾아왔다. 평소 잠을 자던 시간에 잠을 자기는커녕 오히려 먹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거나 댐처럼 높은 곳에 담긴 물의 중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시기 이후 먹고사는 인간의 행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끼니의 역사에 대한 두 번째 접근 방식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세 끼니가 자리를 잡은 것은 미국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작업시간을 할애하다보니 규칙성과 세 끼니 개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를 먹는 일이 일상화된 지는 불과 200년도 되지 않았다. 세 끼니 말고도 산업혁명의 여파는 컸다. 가장 명시적인 효과는 아마도 전기가 상용화되면서 전 세계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가동되는 체계로 전환된 것일 것이다. 전 세계 노동자의 10% 이상은 밤낮을 바꿔 교대작업을 한다고 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과 산업 현장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산업혁명은 밤이 되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물학적 명제에 인간이 공식적으로 불복종을 선언한 근대적 사건인 셈이다.

2014년 미국 국립 노화연구소 마크 매트슨 박사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시간을 신체가 생물학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유전자 혹은 세포가 원하는 ‘끼니’가 있다는 뜻이다. ‘비만(Obesity)’이라는 잡지에 실린 논문에서 하버드 대학 브리검 여성 병원의 프랜크 쉬어 박사는 어두워 배고픔이 최고조에 이르기 전에 식사를 해야 한다는 일주기 생체 리듬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잠에서 바로 깬 아침에는 오히려 배고픈 느낌이 가장 적었다. 이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통념과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또한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이 하루 세 끼를 먹는 일이 생물학적으로 에너지 과잉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 끼를 빼지 않고 먹는 중에 우리는 흔히 스낵도 먹는다. 진화적으로 스낵은 사냥 나갔다가 우연히 잡은 토끼 같은 것이다. 늘 먹는 끼니에 반해 간혹 먹는 음식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쿠키나 파이, 초콜릿, 과자, 라면 등이 모두 스낵이다. 인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발효식품인 술도 에너지 함량이 높은 스낵의 일종이다. 세 끼,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특히 점심과 저녁 식후에 먹는 스낵은 일주기 생체 리듬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비만과 고혈압과 같은 현대적 의미에서 ‘인간이 만든 질병’의 직접,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우리는 먼 조상에 비해 에너지가 농축된 음식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다. 불로 익히거나 가루 내서 익혀 소화하기 쉽게 가공된 음식물이 도처에 넘쳐난다. 오직 유일하게 인간만이(모든 인간은 아닐지라도) 언제든 포만하게 먹을 수 있는 지구 역사 최초의 기회를 얻었다. 이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인간의 유전자와 세포가 굶주림 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되었다는 뜻이 된다. 굶주림의 시기를 거치면서 인간은 음식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배불리 먹고 그것을 지방의 형태로 저장했다. 이런 방식이 우리 조상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쉽게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인류의 이런 대물림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평소의 절반 정도의 열량을 매일 섭취하거나 아니면 하루는 굶고 다음날은 평소처럼 먹는 일을 반복하는 간헐적 단식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고 상처를 치유하며 여러 대사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문이 여러 편 나왔다. 그럴 수 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행복하게 가끔씩 배불리 잘 먹는 일도 삶의 한 즐거움이라는 느낌을 저버리지 못한다. 다만 수저를 들기 전에 한 가지만 생각하자. 먹는 절대량을 좀 줄이고 되도록 밝을 때 동료나 친구, 가족과 즐겁게 먹자. 그리고 행복하게 숨을 쉬자.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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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렸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대부분의 겨울 외투 안에서 보온 효과를 주는 날짐승의 깃털은 피부의 변형된 형태로 인간의 손톱이나 침팬지의 털과 그 유래가 별로 다르지 않다. 갓 태어난 새끼만 먹을 수 있도록 젖을 발명해 낸 포유류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성이 바로 털이다. 피부 표면에 단열 효과가 매우 뛰어난 털외투를 두른 것이다. 하지만 털은 몸 안의 열을 외부로 방출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에 포유류가 덥고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는 데 방해가 된다.

사람들은 흔히 5000종이 넘는 포유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털이 없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말은 틀렸다. 사실 침팬지나 인간이나 털이 자라나는 모낭의 수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머리에는 약 10만개, 몸통에는 300만~500만개의 모낭이 있다. 거기서 털이 나고 자라고 빠지는 일이 진행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보다 침팬지의 털이 더 굵고 더 시커멓고 길게 자란다는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므로 질문은 털이 왜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왜 털이 왜소해졌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이에 다윈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인간이 털을 버렸다고 말했다. 한편 어떤 과학자들은 온도에 민감한 뇌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털을 잃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가 1분을 달리지 못하고 털북숭이 사람과 동물이 태양 아래에서 쉽게 열사병에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적도 근처의 초기 인류에게 효율적으로 열을 식히는 장치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과학자들은 무리지어 동굴에서 살던 인류를 괴롭힌 이(lice)나 벼룩 등, 외부 기생충을 피하기 위해 털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기생충들이 질병을 옮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털을 잃은 인간은 이제 땀샘을 한껏 구비하고 외부로 열을 방출하면서 두 발로 대지 위를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지구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럼 인류는 언제 벌거숭이가 되었을까? 몇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약 120만년 전에 두 발로 걷던 인간의 몸에서 털이 사라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열재 털을 잃은 인간은 밤이나 고위도의 추위를 견디기에 무척 불리했을 것이다. 뭔가 대안이 필요했으리라는 뜻이다. 털이 없어지는 사건을 전후해서 인간이 불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인간의 구강 구조를 증거로 내세우며 인류가 불을 사용한 시기가 털을 벗은 시기보다 앞섰으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치아의 크기가 줄고 턱의 힘이 약해지면서 느슨해진 머리뼈 덕분에 신생아 뇌의 크기를 키울 수 있었고 소화 효율이 높아져 인간이 먹는 데 쓰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랭엄은 말했다. 그럴싸하다. 

불 말고 추위에 대한 인간의 적응성을 높일 만한 수단이 또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옷이다. 그러면 인류는 언제부터 옷을 입었을까? 옷의 재료가 동물의 가죽이든 식물의 섬유든 생체 물질은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화석으로 오래 남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인간이 언제부터 옷을 입게 되었는지 알아냈다. 고인류학에 분자생물학 기법이 가미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700만년 전 공통조상으로부터 침팬지와 초기 인류가 분기된 것처럼 옷 솔기에 사는 이도 머릿니와 진화적 작별을 치르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종(種, species)으로 살아가리라 작정한 것이었다.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의 데이비드 리드 박사팀은 해부학적으로 현생인류인 아프리카 사람들이 약 8만3000년에서 17만년 전 사이에 본격적으로 옷을 입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머리에 살던 이가 의복으로 터전을 옮겨 살게 된 역사를 유전체에서 복원한 것이었다. 유전체를 분석하는 과학자들은 여러 생명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매우 잘 보존된 유전자의 염기 혹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하면서 생물 종 사이의 유연관계를 파악한다. 인류가 언제 털을 잃게 됐는지 짐작하게 된 것도 포유동물의 피부와 털의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비교 분석 후 얻은 결론이었다. 털옷을 벗고 불을 지핀 인류는 이윽고 옷을 갖춰 입게 됨으로써 위도나 고도가 높은 곳으로 출정할 준비를 갖췄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류는 섣불리 터전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대대적으로 아프리카를 등지게 된 까닭은 그들이 살던 아프리카 동부 지역이 건조해지면서 먹을 게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체체파리와 같은 곤충이 매개하는 질병이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약 몇 만 명까지 줄었던 인구는 현재 75억명을 넘어섰다. 털옷을 벗은 인류는 불과 옷을 발명한 데다 난방이 가동되는 콘크리트 벽 안에서 칩거 중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다. 지금도 칼바람이 들이치는 고시원 쪽방에서 난로 하나로 쪽잠을 청하는 이들은 먼 옛날에 잃어버린 인간의 털옷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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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은 영어로 폴라리스(polaris)다.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별자리 중간쯤에 있다고 알려진 북극성은 길 잃은 사람의 길라잡이 역할도 하는 붙박이별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포라는 집을 구성하는 가재도구 중 하나인 섬모를 연구하던 10여 년 전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 단백질의 이름도 폴라리스였다. 이 단백질에 문제가 있으면 발생 과정에서 몸통의 좌·우측 배치가 달라진다니 세포 안에서도 폴라리스가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다. 세포생물학에서 우리들은 특정한 단백질이나 혹은 세포 내 소기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할 때 극성(polar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체의 바깥쪽 표면인 피부나 몸통 내부를 관통하는 소화기관의 표면을 구성하는 상피세포들은 빈틈없이 닫혀 있어야 한다. 상처가 나면 아프기도 하지만 세균이나 곰팡이가 침범하기도 쉽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포들끼리 서로 밀착하여 닫혀 있기 때문에 세포의 위쪽 면과 아래쪽 그리고 측면의 환경이 서로 각기 달라진다. 피부 세포의 바깥막은 공기와 맞닿아 있지만 측면은 이웃하는 세포의 측면과 바짝 달라붙는다. 점액을 밖으로 밀어내는 먼지떨이 모양의 섬모는 기도 상피세포의 바깥 면에만 분포되어 있다. 거기가 아니면 섬모의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피세포의 바깥쪽 막에 섬모가 존재할 때 극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화학자들은 물을 대표적인 극성 물질이라고 말해왔다. 수소 2개와 산소 1개로 이루어진 물 분자 안에서 전자를 갈구하는 산소 부근에 전자가 밀집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소 쪽에는 전자의 밀도가 적고 따라서 두 원소 간의 전기적 성질이 달라진다. 물의 바로 이런 극성 때문에 소금쟁이가 수면 위에 떠 움직이고 100m에 이르는 미국 삼나무 꼭대기까지 물이 공급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살아있는 생명체에서나 그 생명체 안을 채우고 있는 화학물질 모두에게서 극성은 무척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극성은 언제 깨지게 될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이른바 ‘상피진피 전이’일 것이다. 이 용어는 대열을 벗어난 상피세포가 노마드 진피세포로 변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웃하는 세포와 오롱이조롱이 붙어 해독작용을 담당하던 6각형 모양의 간세포가 외씨버선 모양의 진피세포로 날렵하게 탈바꿈한 뒤 혈관을 타고 폐에 둥지를 틀게 되면 간세포로서 자신의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암 생물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암세포가 폐에 전이되었다고 말한다. 세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간에서 붙박이로 해독작용을 하던 간세포의 극성이 깨졌다는 표현을 선호한다.

소화기관에서 몸통 안으로 들어온 포도당은 총길이 12만㎞인 인간의 혈관을 따라 돌면서 영양소가 필요한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포 해부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말은 혈액과 맞닿은 혈관내피 세포 표면에 포도당 운반 단백질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닐 뿐이다. 원래 있어야 할 장소를 벗어나면 포도당을 운반해야 할 이 단백질의 쓰임새가 가뭇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은 세포나 단백질만이 아니다. 가령 가장 따뜻할 때조차 평균 기온이 10도도 되지 않는 툰드라 지대에 사는 모기들이 사라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이곳 물웅덩이 모기 유충들은 썩은 이끼를 분해하는 청소동물이자 물고기들의 먹잇감이다. 성충 모기들은 순록의 피를 빨아 먹는다. 극성스러운 모기떼를 피해 순록은 바람을 거슬러 움직인다. 그러므로 모기가 사라지면 순록의 이동 경로가 달라질 것이고 이들을 쫓는 늑대들의 생존 전략도 분명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기 유충을 먹이로 삼던 물고기들이 굶주림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찾아오리란 것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한때 병목 단계를 지나올 정도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다던 인류는 현재 75억 명을 넘어섰다. 그 결과 마천루가 늘어선 대도시들이 남북반구 온대 지방을 따라 난립하고 있다. 특히 북위 30~50도 지역은 그야말로 인간과 그들의 콘크리트 안식처로 가득 찼다. 그 덕택에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잃은 말 못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고통을 겪는다. 대전의 동물원을 탈출했던 퓨마 ‘호롱이’는 네 시간 동안 자신이 의당 누려야 했을 ‘극성’의 안온함을 온전히 만끽했을까? 닷새 동안 100㎞를 이동해 한사코 김천의 한 산을 고집했던 지리산 반달곰은 자신이 있어야 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 것일까? 추운 날 도심으로 내려오는 멧돼지들과 인간이 함께 사는 일은 가능할까? 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 인간은 단순히 ‘지구이웃’을 제거하는 가장 손쉽고 이기적인 전략을 자주 선택했다. 구제역에 시달리는 사육 돼지들과 A4 종이 한 장 정도의 공간에서 살던 병든 닭을 그저 땅에 묻어왔을 뿐이다. 다른 모든 생명체의 정당한 서식처를 파괴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만큼 인간의 ‘극성’은 정말 그리도 고귀한 것일까?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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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퀸즐랜드 선샤인 해안의 동물원 국장이었던 스티브 어윈(Steve Irwin)은 2006년 홍어에 물려서 죽었다. 그는 열렬한 환경 운동가이자 원시림 탐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악어 사냥꾼’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다. 잔치 때마다 빼놓지 않고 홍어무침을 먹었던 나는 저 뉴스를 보며 ‘독이 있는 홍어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벌처럼 쏘는 범무늬노랑가오리(stingray)는 꼬리에 가시가 자리 잡고 아래 독의 분비선이 있어서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재미있는 점은 홍어와 같이 연골어류에 속하는 상어의 비늘도 저 가시와 진화적 기원이 서로 같은 상동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돌토돌한 상어의 피부는 방패비늘(楯鱗, placoid scales)이라고 불리는 200~500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크기의 비늘로 덮여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상어 피부를 관찰했던 과학자들은 저 비늘이 우리 인간의 치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고기와 사지동물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며 “팔굽혀 펴기”를 할 수 있었던 물고기 화석을 발견한 닐 슈빈(Neil Shubin)은 턱이 없는 어류인 칠성장어 이빨에서 입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인 상어의 방패비늘을 보았다. 척추동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방어용 외골격 조직을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내골격 이빨로 용도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캄브리아기를 규정하는 대량의 화석은 분해가 쉽지 않은 이런 외골격과 이빨, 그리고 근육이 붙어 있던 뼈에 다름 아니다. 생명체의 역사에서 마침내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인간처럼 척추동물로 분류되지만 턱이 없어 무악어류로 불리는 생명체 중에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곰장어도 있다. 청소동물로 바다 아래쪽에 사는 곰장어와 달리 몸통에 7개의 아가미 구멍이 있는 칠성장어는 강한 이빨을 물고기 몸통에 박아 체액을 빨아먹는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발견되는 칠성장어는 먹장어와 더불어 ‘살아있는 화석’이면서 동시에 이빨이 턱보다 먼저 진화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는 신비로운 물고기이기도 하다.

턱과 이빨은 살아가는 데 먹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점을 웅변하는 진화적 장치이다. 척추동물의 98%가 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저 기관의 유용성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턱은 먹잇감을 잡고 소화기관 안으로 집어넣는 일을 수행한다. 이빨이 없는 닭도 부리와 턱을 움직여 물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하지만 이빨이 있으면 잡고 씹어서 소화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사자나 기린 모두 먹는 방식은 사실상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빨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뿐이다.

잡식성인 인간의 입에는 앞니, 송곳니, 어금니가 각각 8개, 4개, 20개 있다. 앞니는 끊고 자른다. 송곳니는 구멍을 낼 수 있다. 어금니는 맷돌처럼 음식을 잘게 갈 수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육식성인 사자는 송곳니가, 초식성인 기린은 어금니가 발달했다. 코끼리는 길고 커다란 엄니(ivory)를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200개가 넘는 이빨을 가진 돌고래도 있다. 과학자들은 포유류가 진화하면서 이빨의 수는 점차 줄어든 반면 다양성은 증가했다고 말한다. 동물의 이빨은 다양하지만 사실 그 형태는 무엇을 먹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젖을 먹을 때 이빨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젖먹이 포유동물이 태어날 때 이가 없다는 사실이 단박에 이해가 된다.

약 6~8개월 정도 자라면 아기의 입 아래쪽에서 앞니 2개로 시작해 얼추 30개월 정도면 전부 20개의 젖니가 나오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 발로 걷는 사건보다 치아가 나오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30개월 정도면 젖을 떼고 아기가 다른 종류의 음식물을 먹을 생물학적 준비가 완성된다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치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발생을 시작한다. 수정이 되고 약 8주 후면 젖니, 20주 후면 영구치의 발생이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52개의 치아를 다 갖고 있다. 그게 인간 치아의 전 재산이다. 상어는 살아 있는 동안 3만번 이빨을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 빠지면 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곤충이 탈바꿈하듯 치아를 교체한다. 아이의 몸통은 성장을 하지만 한번 형성된 치아는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피가 네 배 증가하는 뇌를 담기 위해 인간의 머리통은 당연히 커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턱에 맞춰 인간은 치아를 새것으로 교체할 필요가 생겼다. 새로 나온 영구치는 더 크고 튼튼하다. 뼈와 달리 수산화 인회석이라는 무기염류가 함유된 강력한 법랑질(enamel)이 위아래 두 개의 이빨이 마주치는 부위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랑질을 만드는 세포는 잇몸을 뚫고 치아가 나오자마자 죽어버린다. 치아의 표면이 부식되고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랑니는 17~21세 정도에 느지막하게 나온다. 아예 사랑니가 없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턱과 이빨에 부담을 줄인 덕택일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더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 치아는 약해지고 그 수도 더 줄어들지 모르겠다. 길게 보면 인간은 늘 진화하는 중임에 분명하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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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다. 잠자리가 날고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키 높이 웃자란 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약 3억년 전 데본기에 곤충의 날개가 진화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다. 최초로 지구 상공을 점령한 곤충은 기세등등하게 자신들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전체 동물계의 약 70%를 차지하는 곤충은 전 세계적으로 1000만종에 육박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구의 어디에서도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매미의 옛 이름은 ‘매암’이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곧바로 이름이 되었음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소수(素數)를 아는 ‘수학자’ 곤충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미는 홀수년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서식하는 13종의 매미 중에서 참매미와 지지매미는 5년을 주기로 지상에 나온다. 왜 그런 독특한 행동을 매미가 진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재미있는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천적 가설이다. 눈에 보이는 매미를 먹잇감으로 삼는 새나 동물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천적이 소수년, 평년 가릴 것 없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매미의 저런 전략은 하등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먹잇감 경쟁 가설이다. 같은 생태 지위 안에 살아가는 서로 다른 종의 매미들끼리 먹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주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지역에 수명주기가 5년인 매미와 7년인 매미가 산다면 이들 두 매미가 동시에 활동하는 시기는 3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게 된다. 그렇지만 이 설명은 매미 말고도 엄청난 수의 동물과 곤충들이 동일한 공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궁색해진다.

곤충은 어린 시절과 성충일 때 먹잇감이 다르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도 신생아들에게 그들만의 먹잇감을 따로 장만했다. 젖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포유류라고 부르지 않던가? 하지만 식재료만 두고 보았을 때 인간과 매미의 생활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신생아에게 젖을 먹이는 시기는 길어야 3년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활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기는 젖이 아닌 다른 음식물을 먹는다. 하지만 매미는 성체로 살아가는 기간이 기껏해야 한 달인 반면 애벌레로 꽤 오랜 시간을 땅 아래에서 지낸다.

성체로서 매미가 지상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짝짓기를 하고 나무 껍질 안쪽에 알을 낳는 일이다. 일 년 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나무에서 내려와 한 자나 되는 땅속에서 살아간다. 매미 애벌레가 주로 먹는 것은 식물의 뿌리가 흡수한 수액이다. 그 수액을 먹고 몇 년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뿌리가 땅에서 흡수한 수액에는 애벌레가 살아갈 영양소가 무척 부족하다. 이에 매미 애벌레가 선택한 전략은 공생체 미생물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이 미생물은 애벌레가 필요한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을 제공하는 대신 식재료와 생활공간을 제공받는다. 이런 연합이 맺어지는 순간 애벌레 숙주와 공생체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2018년 일본 쓰쿠바 대학의 다케마 후카쓰 연구진은 일본에 서식하는 24종의 매미 몸 안에 살아가는 공생체를 연구해서 그 결과를 미 과학원 회보에 게재했다. 술시아(Sulcia)라는 미생물은 24종의 매미 모두에서 발견되었고 매미 몸 안에서 몇 종류의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른 한 종의 미생물 공생체는 일부 매미들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저 공생체가 없는 매미 몸에는 효모와 비슷한 곰팡이 기생 생명체가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매미 생활사에 곰팡이 기생체는 아주 일찍부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무에서 떨어진 애벌레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동안 이 곰팡이가 침입하기 때문이다. 이 곰팡이는 몇 년을 애벌레와 살다가 성체로 변하기 전에 자실체를 싹 틔우고 포자를 땅에 뿌려댄다. 이것이 고가의 한약재로 쓰이는 동충하초(冬蟲夏草)의 실체이다. 애벌레와 기생체 사이의 줄다리기 결과가 매미의 진화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애벌레는 저 곰팡이를 구슬러서 친구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개 기생체들은 안락한 환경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유전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다. 그러면 숙주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효소 유전자가 고장 나면 숙주도 공생체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숙주 애벌레는 기생체 곰팡이를 공생체로 돌리는 전략을 개발해 낸 것이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원한 기생체도 없고 영원한 공생체도 없는 것이다. 소임을 다한 공생체는 새로운 공생체로 대체되고 저 효모 비슷한 곰팡이는 애벌레 숙주를 위해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생산하고 있었다. 반면 동충하초는 싹트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무껍질에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진 허물인 선퇴(蟬退)를 남기고 탈바꿈에 성공한 매미는 땅속에서 펼쳐진 곰팡이와의 오랜 투쟁에서 승전보를 쟁취한 자들이다. 크게 울 만한 자격이 넘친다. 더위에 매미 울음마저 지쳐갈 무렵에야 가을이 오려는가? 덥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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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썩은풀이라고도 불리는 여러해살이 식물인 황금(黃芩)의 학명은 스쿠텔라리아 바이칼렌시스(Scutellaria bicalensis)다. 이 식물은 햇빛을 차단하는 화합물인 바이칼린(baicalin)을 만든다. 화학적으로 플라보노이드 계열의 물질인 바이칼린을 발음하는 순간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숫가, 거대한 평원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태양빛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자그마한 풀을 떠올린다. 파도에 실려 육상에 처음 들어왔던 식물의 조상들은 물속에서는 마주하지 못했던 과도한 양의 자외선에 대항해 스스로를 지켜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 항산화제 화합물인 플라보노이드가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육상식물 대부분은 많든 적든 플라보노이드 화합물을 만든다. 너무 강한 햇빛은 식물 세포 내부의 유전 정보인 DNA나 효소 단백질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약 3억6000만년 전 데본기 후반 혹은 석탄기 초기에 식물들은 플라보노이드를 만드는 생합성 경로를 바꾸어 지금껏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두 종류 화합물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중 하나는 리그닌(lignin)이다. 리그닌은 일종의 접착제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탄수화물 덩어리인 셀룰로오스를 붙잡아 강력한 세포벽을 만들었다. 그 강인한 화합물 덕에 나무고사리 등 양치류 식물은 곧추서서 태양을 향해 잎을 뻗어 올렸다. 급기야 이 나무들은 30m 넘게 자라났다. 하지만 리그닌이라는 화합물을 분해할 수 있는 세균이 아직 진화하지 못한 데다 뿌리마저 약했던 이들 양치식물은 분해되지 못한 채 땅속에 모두 묻혀버렸다. 먼 훗날 석탄으로 환생한 이 나무들은 현재 대기권으로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돌려보내고 있다.

다른 한 종류의 화합물은 타닌(tannin)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언급한 플라보노이드 혹은 탄수화물을 구심점으로 삼아 분자량이 500에서 2만 돌턴에 이르는 거대한 화합물이 만들어졌다. 리그닌처럼 타닌도 주로 나무에 존재한다. 떫은 감, 밤 껍질 혹은 차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바나나 껍질에도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리그닌이 나무를 서 있게 했다면 타닌은 초식동물이나 그 밖의 곤충 혹은 곰팡이나 세균의 접근을 막는 일종의 기피제(deterrent) 역할을 했다. 타닌이 쓴맛을 내기 때문이다. 

화합물 안에 존재하는 많은 페놀기가 단백질이나 물과 강하게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타닌은 수렴성이 있다고 말한다. 도토리를 먹은 말이 갑자기 죽거나 감을 먹은 다음날 배변이 힘든 이유는 동일하다. 이 화합물이 대장에서 물을 격리시켜 변을 굳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쓴맛은 식물을 먹잇감으로 삼는 모든 생명체에게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다. 자연계에서 쓴맛은 곧 독성이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래서 물고기와 같은 경골어류 또는 척추동물이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유충일 때 풀을 뜯어먹어야 하는 곤충도 쓴맛을 감지하는 단백질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감각기관이 아닌 우리 인간의 기도에서도 쓴맛 수용체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쓴맛 수용체 단백질이 공기 중으로 들어가는 먼지나 미세 플라스틱 입자를 쓴맛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맛에 관한 한 인간은 다소 가학적인 데가 있다. 매운 것도 쓴 것도 기꺼이 먹는다. 한방에서 쓴맛은 건위(健胃)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위를 건강하게 한다는 의미와 쓴맛이 합쳐져서 고미 건위제라는 말이 등장했다. 얼마 전 식당에 갔다가 돼지가 타닌이 풍부한 도토리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도토리를 먹도록 돼지를 방목해서 키우기 때문에 고기 맛이 좋다는 논조였다. 이들 돼지의 근육질 사이에 지방의 함량이 높다는 논문도 찾아 읽었다. 타닌 말고도 도토리에는 탄수화물과 지방이 풍부하다. 아마 도토리에 풍부한 지방이 돼지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돼지는 쓰디쓴 타닌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논문에 따르면 다른 종류의 풀과 함께 먹어 돼지가 타닌의 쓰고 수렴성이 있는 특성을 완화시켰다고 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돼지 말고 인간도 도토리를 먹는다. 다람쥐들도 습한 땅속에 도토리를 묻어 쓴맛을 줄인 다음 나중에 그것을 찾아 먹는다고 한다. 도토리의 영어 표기 acorn은 oak(신갈나무)와 corn(낟알)의 합성어다. 신갈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전 세계적으로 북반구 온대지방에 넓게 퍼져 있다. <신갈나무>라는 책을 쓴 윌리엄 로건은 신갈나무와 초기 인류의 정착지가 ‘거의 일치한다’고 해석했다. 쉽게 말하면 도토리가 초기 인류의 중요한 식량원이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다른 곡물이 이를 대체하면서 지금은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도토리의 중요성은 현저하게 줄었다.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 캘리포니아 지역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도토리를 저장하고 가루를 내어 식량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들도 우리처럼 여러 번 물에 우려내 도토리의 붉은 빛 타닌을 제거했다.

여름날 창밖으로 보이는 신갈나무가 올곧다. 가을이면 허리를 굽힌 사람들이 검은 봉지 안에 도토리 열매를 주워 모을 게다. 추운 날 배고픈 멧돼지는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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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1일 일본 남단인 가고시마현에 사는 한 노인이 별세했다. 그 사건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이유는 죽기 직전까지 그 노인이 지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에 태어난 나비 다지마는 프랑스의 잔 칼망, 미국의 사라 나우스에 이어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오래 살았던 사람이다. 말할 것도 없이 생몰 연도가 문서에 기록된 경우만 유효하다. 

나비 다지마는 117년 8개월을, 칼망은 122년 6개월, 나우스는 119년 2개월을 살았다. 모두 여성인 이들은 110년을 넘게 산 초장수(super-centenarian) 인간 집단에 속한다. 가장 오래 살았던 남성은 일본인인 기무라 지무에몬이며 116세를 살았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원전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쓴 수메르의 길가메시를 시작으로 중국의 진시황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꿈꾸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만을 밝힐 수 있었다. 생물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예외도 죽음을 비켜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도 수명을 늘리기를 꿈꾼다. 구글까지 나서서 500세 수명을 목표로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하고 있다. 보통 쥐의 수명이 2~3년임을 감안하면 30년을 넘게 사는 저 두더지쥐에 과학자들이 현혹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생물학적 한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의학과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더 연장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세기 인간의 기대 수명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증가했던 눈앞의 증거가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수명에 한계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생아 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였던 공중 보건과 환경 위생의 개선에 힘입은 바가 컸다.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과학자들은 1968년 이후 41개국의 사망자 기록이 담긴 국제 수명 데이터베이스를 훑어서 인간의 수명에 어떤 패턴이 있는지 조사했다. 2016년 네이처에 실린 이들 논문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의 수는 현재에 가까울수록 증가했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105세까지 산 사람들의 수는 늘었지만 123세까지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100살이 넘은 사람 1000명 중 하나가 110살 문턱을 넘는다고 한다. 오래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장수와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의 실체를 찾아다닌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의 어느 지역을 찾아 거기 사는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돌연변이를 찾아냈던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역학 연구 결과는 인간의 최대 수명이 125세를 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태껏 오래 살았던 사람 20명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인간의 근육에 새겨진 세월의 파괴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인간은 채워진 마개를 연 채 수돗물을 틀어 물을 채우고 있는 욕조에 비유할 수 있다. 수돗물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욕조 안의 물은 소용돌이를 멈추고 마침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저 간단없이 공급되는 수돗물을 우리는 업이라고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는 물질대사라 부른다. 인간은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물질대사를 통해 산소와 버무려 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 효율은 50%를 밑돈다. 열로 소모하는 영양분이 많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그것을 사용한다.

문제는 산소다. 우리는 폐를 통해 들어온 산소를 다 쓰지 않는다. 그 증거는 적도 부근에서와 극지방 근처에서 정맥에 흐르는 혈액의 색이 다르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적도 부근에서 정맥혈의 색이 더 붉다. 심장으로 돌아오는 적혈구가 산소를 더 많이 싣고 있다는 뜻이고 이 말은 신체가 산소를 적게 소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추운 극지방에서는 산소를 알뜰히 써서 에너지뿐만 아니라 열도 생산해야 살 수 있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네덜란드 상선의 독일 의사 메이어는 열역학 법칙을 고안했다.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가 지닌 에너지는 사람이 수행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나머지는 열로 변환되지만 총량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맥의 혈액 색깔에서 추론한 것이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최근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이 호흡한 총량의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인간은 이 사용하지 않은 80%의 산소도 덥히기 위해 애를 쓴다. 게다가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의 80%는 질소이다. 겨울에 우리는 저 질소도 덥혀서 공기 중으로 헛되이 내보낸다. 물리학자들은 저 헛된 노력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이 담긴 비커에 퍼지는 한 방울의 잉크 입자처럼 인간이 음식을 먹고 욕조의 소용돌이를 돌리는 한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그 증가된 엔트로피는 120살 먹은 노인의 피부에 새겨진 주름으로, 또 그들을 굼뜨게 걷게 하는 근육의 퇴화로 이어진다. 하나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 한쪽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살아가는 20대의 팔뚝에 펼쳐질 100년의 세월은 또한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러니 우리는 낭비되는 산소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입으로 들어가는 ‘수돗물’의 양을 줄일 일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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