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김형, 이리로 오라니까.” 우형이 나의 옷깃을 당기며 넌지시 말한다. 김형,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다. 평론가님, 작가님, 선생님, 형, 오빠, 김작…. 살면서 참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지만 성이 김씨라는 것 외에는 어떤 정보값도 없는 호칭, 김형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사는 게 힘들어졌다. 상반기 강연과 행사가 쓰나미처럼 휩쓸려 나갔다. 글값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하기 곤란하다. 음악이나 미디어 업계에 있는 지인들에게 일감 좀 없냐고 손을 벌려볼까 생각했다. 이내 관뒀다. 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공연과 행사가 다 취소돼 있는 직원도 줄여야 할 판이다. 이런저런 대출을 알아봤지만 근로소득세, 사업소득세를 내지 않는 프리랜서를 위한 대출은 없다. 기타소득세 3.3%만 내는 세입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 보인다. 어쩌겠는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용직의 삶을 시작했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수도권에 있는 물류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었던 새벽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됐다. 오전 5시 반쯤 일어나 6시에 집을 나선다. 6시3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물류 센터에 도착하면 오전 7시20분. 서울과 수도권 여기저기에서 출발한 셔틀버스에서 수백명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양떼가 우리에 들어가듯 하나뿐인 입구로 줄을 서서 들어간다. 열외 없이 마스크를 쓰고 열감지기를 통과한 후 사물함에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짐을 보관한 후 각자의 작업장으로 향한다. 이름은 사라진다. 휴대폰 번호 8자리로 만든 바코드를 찍고 일에 투입된다. 창고의 물건을 집품하거나 포장하거나 분류한다. 하루 종일 PDA로 물건마다, 그 물건들을 담는 박스마다 박혀 있는 바코드를 찍으면서 일을 한다. 누군가와 대화는커녕, 인사를 나눌 틈도 없다. 바코드로 인식되고 바코드를 찍는 사람들은 아직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는 부품이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로 인간이 부품화된 현대사회를 풍자한 영화를 찍은 게 1936년,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따라 물건을 담고, 포장하고, 재고파악을 하고, 분류하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별별 물건들을 주문하고 소비하는 게 자못 신기하기도 하다. 시간의 상대성을 절실히 깨달을 때도 있고, 편의와 환경은 필연적으로 반비례 관계임을 체감하기도 한다. 마스크와 목장갑을 착용하고 보내는 침묵의 하루들을 모으면 책 한 권은 금세 쓸 수 있을 듯싶다.

일이 익숙해지니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휴학생이나 주부이다. 자주 나와 얼굴을 익힌 또래 사람들끼리 그룹을 지어 점심을 먹고 휴식 시간을 보낸다. 내 또래 남자들도 가끔 보인다. 흡연실에서 한두 명씩 얼굴을 익히다 보니 넉살 좋은 누군가 먼저 말을 건다. 그룹이 된다.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3.3%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타를 맞은 업종에 있다는 것. 이벤트 회사에 다니던 사람, 영화판에 있는 사람, 지역축제를 기획하는 회사에 있는 사람…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폭탄을 맞아 일거리를 구걸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통성명을 하지만 이름은 기억하지 않는다. ‘실장’ ‘대표’ ‘팀장’ 등 원래 직함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김형’ ‘최형’으로 부르며 각자의 ‘본캐’를 지킨다. 이것은 원래 우리의 삶이 아니라는 무의식적 담합의 호칭 같다. 점심을 먹은 후 그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15분 남짓한 시간을 보낸다. 다시 오후의 일을 시작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들과도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인사는 “내일 봅시다”가 아니다. “빨리 여기서 안 봐야 할 텐데”다. 3.3% 인생들이 본래의 하루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김작가 |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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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여파로 거리에 사람이 없다. 산책할 때 종종 만나던 강아지도 언젠가부터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여름,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면 찰방찰방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도 잘 있겠지? 비를 흠뻑 맞은 나무에서 물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부디 어디에 있든 안녕하기를.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가 오늘 따라 유독 깊고 어두워 보인다. 말할 수 없는 처지와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바닥에 고여 있을 것만 같다.

재택근무를 독려해서인지 출퇴근 시간대에 특히 붐비던 카페와 식당도 한산하다. 단골 카페에 들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졌다. “안녕하세요.” 계산대에 맥없이 앉아 계시던 사장님이 벌떡 일어선다. “오전에 사람을 못 볼 줄 알았어요. 요새는 파리도 안 날려요. 파리마저.” 희미하게 웃었지만 사장님의 안색이 좋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지금 시기는 그야말로 곤혹일 것이다. 곤란한 일은 으레 예기치 않게 발생하고, 마음을 졸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가 많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넨 인사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안녕하지 않은 이에게 건네는 ‘안녕’은 오히려 안녕하지 못한 작금의 상황을 상기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안녕하세요”라는 말 속에 과도한 경쾌함이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위급할수록 평소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평소처럼 지내기에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저 사장님의 말에 “파리는 원래 여름에 많이 날리잖아요” 같은 몹쓸 농담을 던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프시케의숲, 2020)을 읽었다.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라는 부제답게 책 속엔 매일 가라앉았다가 솟아오르고, 옅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농밀해지고 있는 감정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이 실은 편견과 배제, 평가와 질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활동적인 노인들에게 쓰이곤 하는 ‘정정하다’라는 형용사에는 ‘내 눈에 보기 좋다’라는 평가와 함께 거기에서 발생하는 만족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안에 해당 노인의 고민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하는 ‘여전하다’라는 말 속에는 ‘여전해서 좋다’라는 흐뭇함이 담겨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너는 거기에 머무르고 있구나’라는 못마땅함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아프다더니 괜찮은가 보네?”라는 말에는 괜찮아서 다행이라는 의미와 함께 ‘환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이 묻어 있다. 덕담인지 책망인지 모를 이런 말들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아왔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내면에는 벽돌이 한 장씩 쌓인다. 누군가에게 쉽게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타인의 척도로 섣불리 평가받지 않기 위해.

책을 다 읽고 나니 헛헛해졌다. 책에 등장하는 뭇사람처럼 나 또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알고 보호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약한 점을 들추어내는 사람들 속에서 그것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존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감싸고 달래는 일, 그것은 비단 손윗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전주에 있는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에서 만난 일곱 살배기 친구가 내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하게 “작가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는데,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그것은 다독이는 안녕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인사가 힘이 됐어요. 안녕히 가세요.” 카페 밖으로 나오는데 등 뒤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소 곤란한 감정’이 잔뜩 넉넉한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웅덩이 바닥에서 가만가만, 하지만 분명히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봄이었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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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2월24일 (출처:경향신문DB)

잘 억제되던 코로나19가 막 확산세로 돌아선 지난주 두 일간신문에서 읽은 논설위원들의 칼럼은 야비하고 역겨운 내용들이었다. 감염증 확산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해 더욱 공포를 부채질하고, 사회적 재난의 피해자들까지 욕보이는 칼럼이었다. 역겹지만 제목이나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전체가 세월호다”와 “대구 사람들 참 점잖다”라는 칼럼이다.

이 칼럼들의 논지는 참 비슷하다.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나 언론의 말은 듣지 않고 오히려 중국 혐오가 퍼질 것만 우려하며 국민을 방치하는 정부야말로 나라 전체를 세월호로 만들고 있는 정부 아니냐는 것이다. 마스크 수급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대구=신천지=야당의 프레임이나 만들고 있는 정부 앞에서 점잖게 참는 대구 시민들이 감탄스럽다는 것이었다. 과연 혐오와 선동의 부채질은 누가 하고 있는가? 

이 글들의 가장 악질적인 점은 기왕의 피해자들을 정치적 선동에 이용하는 데 있는 듯하다. 정부 비난의 정치적 선동에 난데없이 소환된 세월호 희생가족과 감염증 확산의 직접적 피해자인 대구 시민들은 이 글들로 또 한 번 독 묻은 비수에 찔린다. 코로나19의 원천지인 중국에 대해 아양이나 떠는 친중국 좌파 정부, 중국에 줄 마스크는 챙기면서 국내 수급도 못하는 무능 정부라는 프로파간다를 강화하려는 것 외에 이 칼럼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과학과 통계적인 사실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①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서 중국 입국 확진자는 단 한 명, 그보다는 국내 전파가 주원인이다. ②국내 확진자 수가 많은 것은 모 변수인 검사수와 검사범위에서 한국이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③국내 확진자수도 신천지 교인과 관련 접촉자가 93%를 차지할 만큼 특정 범위로 한정되어 있다. ④관련학회와 WHO는 마스크 착용이 일반인에게는 필요 없거나 천 마스크로도 충분하다고 권고한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자. 동업자 직능단체에 불과한 대한의사협회와 달리 전문학회인 한국역학회와 대한예방의학회는 중국 봉쇄가 아무 효과도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엄연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공포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공포의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팬데믹’(전 세계적 유행)이 아닌 ‘인포데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례가 정부 불신을 조장하는 위의 칼럼들이다. 둘째는 이미 이 사회가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시민들의 상호불신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감염을 막아줄 마스크를 사겠다고 감염을 불사하고 약국 앞에 선 긴 줄이 그것을 말해준다.

바이러스, 신천지, 대구, 그리고 중국 등의 의미 연결망은 다시 한번 새로운 불안과 공포가 퍼지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 같다. 그러잖아도 매일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뉴스 댓글과 광화문의 군중들 사이에서 흉흉하게 퍼지던 소문과 가짜뉴스의 전파 환경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공포가 더 확대된다면 중세의 흑사병처럼 유대인과 마녀를 제물로 요구할 수도 있고, 1923년의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때처럼 조선인의 피를 원할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의 좋은 정치는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음습한 정치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무너진 신뢰를 걱정하고 그것을 재건할 방법을 궁리하는 정치일 것이다. 예컨대 당장의 경기 위축과 일거리 단절로 하루를 버티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파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재난기본소득’(경향신문 3월3일자 1면 보도)을 고민하는 정치일 것이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짜 정치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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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은행에서 우연히 동창을 만났다. 동창은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니 마지막으로 본 지 20년도 더 된 셈이다. 한눈에 동창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그것은 동창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이 특이해서 어, 했는데 얼굴을 보니 너더라.” 동창은 내 얼굴을, 나는 동창 얼굴을 보고 그때를 적극적으로 떠올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잖아.” 동창의 입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때가 소환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어떤 부분은 동창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어릴 때 먹던 소시지가 더 맛있지 않아?” 저녁을 먹다가 형이 불쑥 물었다. 소시지를 문 채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출시되는 소시지가 더 맛있어야 할 텐데 이상해.” 우리 둘 다 길쭉한 분홍색 소시지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슈퍼에 갔는데 분홍색 소시지가 없는 거야. 당황했지.” 30년 전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했다. “그때여서 더 맛있었던 것 같아. 맛을 가늠하는 데 상황도 영향을 끼치니까.”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던 내 모습이 그려졌다. 웃고 있었다.

요새 ‘라떼는 말이야’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서 라떼는 다름 아닌 ‘나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한때가 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만이 한때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의 권위에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훈수에 응대하는 것이다. 어른이 시시로 불러내는 ‘왕년’이 지금의 ‘라떼’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어릴 때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불러내는 것이 참 좋았다. 자꾸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때는 잊히게 마련이다. 끄집어내기를 그만두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찍고 쓴 사진 에세이 <한번은,>(이봄, 2015)에는 무수한 ‘한 번’이 등장한다. 빔 벤더스는 길 위에서 무수한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에 있어서 한 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라는 문장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한번’이라고 붙여 쓰면 “지난 어느 때나 기회”를 의미하지만 ‘한 번’이라고 띄어 쓰면 횟수가 중요해진다. 그때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때를 지금으로 불러낼 때마다 한번은 비로소 ‘한 번’이 된다. 희미해질 수도 있는 순간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삶은 이렇듯 한번 살아보는 것이 아니다. 딱 한 번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내게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우물쭈물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분을 비롯해 글쓰기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저 ‘한번’에는 내가 여태 잊지 않은 공간, 심신에 새겨진 시간, 그 안에서 몸소 겪은 일이 다 들어 있다. 글을 써보면 알게 된다. 무수히 많은 일들 중 하나였던 ‘이런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든 특별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일이 나의 일상을, 나아가 나의 인생을 구성한다. 개중에 어떤 것은 추억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를 호명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점점 희미해진다. 무수한 ‘한번’을 소환할 때 나는 좀 더 나다워진다. 이때 글쓰기는 나를 지키려는 안간힘이자 마침내 나를 지켜내는 작은 기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이미 쓰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재수할 때 독서실에서 백지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일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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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계획이 다 있다. 열세 살 무렵 <도전! 골든벨>을 시청하다 골든벨을 울린 언니가 5개 국어로 유창하게 인사하는 것을 본 뒤 무조건 5개 국어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장기계획 중 하나로 남아있다. 앞으로 4개국의 언어를 더 배우기만 하면 된다. 또 2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불어나는 체중의 관리를 위해 “매일 10㎞씩 걸어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한번도 실행한 적 없는 중장기적 계획이 있고, 부디 이 칼럼이 명문이 되어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망상형 계획, 가깝지 않았던 학교 동기의 결혼식에 불참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드는 부도덕한 계획, 별다른 계획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아지는 부를 갖고 싶다는 ‘무계획이 상팔자’형 계획도 있다. 

계획의 크기와 종류는 이렇게나 다양하지만 무슨 계획이든 무산되는 순간에 느끼는 절망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나는 주로 내 부족한 의지로 인해 좌절되는 계획이 많은데 이건 몇 마디 자책으로 쉽게 풀리기도 하고 이후의 대책을 마련하는 게 가능해서 계획을 변경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외부 요인에 의해 별안간 좌절되는 계획만큼의 타격은 없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그 계획을 성실하고 훌륭히 잘 지켜왔다면? 그리고 계획 이상의 실적과 성취를 이뤘다면? 그때의 상실감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나서 분노할 만큼 큰 것이다. 완성 직전의 도미노가 힘없이 무너지면 도미노 근처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탄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박미선, 양희은, 이지혜가 진행했던 시사예능 <거리의 만찬>은 주제와 관련한 당사자에게 마이크를 주는 방송이었다. ‘시사예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만큼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설정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관점이 분명하며 언변이 좋은 진행자를 앞세우는 기성 시사예능 형태를 생각해보면 그런 상식과 보편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송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사자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명쾌한 주장과 단단한 근거의 말들은 힘이 있었고, 외면받던 목소리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방송이니만큼 그 말을 담아내는 세 명의 여성 진행자는 그 자체로 프로그램의 취지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거리의 만찬>은 첫 방송 때부터 시청자들에게 내비친 계획을 여러모로 훌륭하게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여성 미디어 제작단체 ‘소그노’가 만든 웹 예능 <뉴토피아>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봤다. 출연자와 제작자는 모두 여성으로, 예고편만 봐도 ‘기성 예능의 구태한 관습을 재능 있는 여성들이 직접 바꾸겠다!’ 하는 기획의도가 대차게 드러나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방송에 기대를 갖게 된 데에는 그들이 앞세운 포부와 계획이 적어도 타의에 의해서 무산될 리는 없을 거란 확신이 크게 작용했다. 애청자를 설득하기엔 타당성이 부족했던 <거리의 만찬> 진행자 교체 사태로 나는 방송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기준 하나를 더 얻은 셈이다.

나는 그러한 각성과 동시에 타의에 의해 좌절된 계획이 다시 회복될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담론의 균형을 기계적으로 맞추지 않고 늘 한쪽의 저울에 미리 추를 올려주었던 <거리의 만찬>이 본인들이 겪은 진통마저 직접 다루는 것을 상상하며 재개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도미노를 재건할 수 있다면 누군가를 원망할 여력도 그들을 지지하는 에너지에 보태고 싶을 만큼 말이다. 대개 이럴 때 만화에서는 “이것마저 나의 계획의 일부였다…” 읊조리고는 그 좌절을 다시 추진력으로 바꾼다. 전혀 계획에 없었으면서 다 계획의 일부였다고 말하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좀 멋쩍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계획은 별로 없지 않나.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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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그들을 살찌게 하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 연작에 나오는 ‘고양이 물루’는 고양이에 관한 숱한 묘사 가운데 내가 최고로 꼽는 글이다. 이 글을 보기 전까지 나는 타자의 세계, 짐승의 세계를 이토록 가감 없이 관찰하는 시선을 만난 적이 없다. 고양이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 속에 잠겨 있으며, 필요한 때가 오면 도약한다. 고양이의 시간은 기다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해석이다. 그는 오로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며, 지금 막 갱신한 현재에 반응하여 뛰어오른다.

하이데거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끌어와 자신의 현존재를 구성하는 인간을 ‘탈존적 존재’라고 부르며 동물의 현재와 구별한다. 현재에 들어와 있지만 이미 소멸해버린 과거,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와의 간극에서 인간의 ‘의미’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투(企投), 곧 끝없이 계획하는 존재다. 반면 동물은 현재에 갇힌 존재, 오로지 본능에 주어진 환경 안에 폐쇄되어 있는 존재이다. 동물은 그들이 생존하는 환경에 완벽하게 일치돼 있기 때문에 ‘자기를 벗어난’ 상황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얄궂게도 하이데거의 이 현존재론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행을 읽는다. 고양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미래를 꿈꾸느라 현재를 잊은 존재들이다. 이미 이뤄진 미래는 미래가 아니기에 인간의 시선은 또다시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향한다.

우리 집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나는 이 아이에 대한 글을 한번쯤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2년 여름 ‘볼라벤’과 ‘산바’라는 이름의 태풍이 한반도를 연타했을 때 동네에서 주운 고양이다. 비에 쫄딱 젖어 처량하고 가냘프게 울고 있는 새끼를 주워 ‘태풍’이라 이름 붙였다. 태풍이는 자기를 구해준 이 울음을 장기 삼아 때마다 견뎌낼 수 없는 울음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낸다.

태풍이는 고양이 물루처럼 새를 사랑한다. 창밖의 새를 한 시간씩 응시하며 울고 끙끙댄다. 새와 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새를 갖고 싶고 먹고 싶어서 그만 새에 꽁꽁 붙들려버린 것이다. 이러한 매혹에는 인간의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무엇이 있다. 그리하여 베란다 창을 열어준 어느 날, 태풍이는 다 먹고 남은 새의 머리를 자랑스럽게 내놓아 주인을 기겁하게 했다. 또 어떤 날은 열린 창문으로 길냥이 동무가 덩달아 들어오기도 했는데, 친구가 붙인 고양이 이름이 떠올라 녀석을 ‘덩달이’라 이름 붙였다.

철학자 데리다가 키운 고양이 ‘로고스’는 가장 유명한 고양이 중 하나일 것이다. 데리다는 철학자답게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생각한다. 어쩌다 발가벗은 몸으로 로고스의 집요한 시선을 받아냈던 곤란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원래부터 발가벗은 고양이는 발가벗은 것을 모르는데 부끄러워 옷을 입는 인간이야말로 발가벗은 존재라는 역설을 발견한다. “내가 고양이와 놀 때, 내가 고양이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내게 시간을 내주는 것인지 누가 알랴”라는 말로 실존의 전도된 진실을 이야기한다.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는 이렇게 끝맺는다. “사실, 어떤 절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 모범으로 한 마리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어디 또 있으랴.” 인간의 가없는 욕망이 오로지 현재만을 사는 고양이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다. 고양이가 진리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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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잡아당기면 못써.” 근린공원에서 산책 중에 엄마가 아이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옷소매만 잡아당겨도 아프잖아. 꽃은 얼마나 아프겠어.” 아이의 눈이 금세 휘둥그레졌다. “미안해, 꽃아.” 오열하며 사과하는 아이 옆을 지나치는데 가슴이 뭉근하게 끓기 시작했다. 아이는 집에 가서 꽃을 잡아당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사는 동안, 무심코 꽃을 잡아당기거나 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을 괴롭히려고 할 때마다 옷소매를 떠올리며 도리질을 할 것이다.

저녁 약속이 있어 버스를 탔다. 퇴근 시간 전인데도 버스 안은 북적였다. 버스 뒤편으로 이동하다 한 중년 남성이 버스 안쪽을 향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구두 밑바닥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그 바람에 버스 안에서 병목현상 비슷한 것이 일어났다. 다리를 피해 뒤로 이동하다가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벌어졌다. 서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만원버스 안에서 겨우 자리를 잡아 봉을 붙잡고 서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출발할 때마다 봉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누군가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버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명절이 코앞이라 사람들의 손에는 사과 상자, 김 선물 세트, 과일주스가 든 유리병, 고기가 든 비닐봉지 등이 들려 있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버스에서 다리를 꼬고 앉지 말아야겠다. 설사 만원버스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잠재적인 여유를 앗아가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일사분기에 특정 주제를 가지고 워크숍을 하는데, 그때 강연을 부탁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공손하면서도 분명한 태도에 마음이 기울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의 호탕함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잘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수락한 이상,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게 나의 도리일 것이다. 뽀드득뽀드득 그릇을 소리 나게 닦으며 다짐했다. 어떤 제안이든 곧바로 수락하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해본 후 연락을 드린다고 정중하게 말해야겠다.

그날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약 스무 개의 정거장 동안 서서 갈 생각을 하니 타기 전부터 피로했다. 종일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고, 내게는 엉겁결에 생긴 한라봉 상자까지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탑승한 열차에는 선반이 없었다. 작년 여름에 미관상으로 좋고 유실물도 줄일 수 있어 지하철 선반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접했었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타게 되니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별수 없이 한라봉 상자를 좌석 옆에 세로로 세워두었다. 최대한 부피를 줄여야 한 사람이라도 더 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은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지금껏 거기에 비(非)임산부가 앉아 있는 것만 봐 온 터라 기분이 좋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보였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임산부 배려석에는 앉지 말아야겠다, 객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임산부가 앉을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비워둬야겠다. 금방이라도 힘이 풀릴 것 같던 두 다리가 곧게 펴졌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할 것이 명확해졌다. 그것은 상식 밖 행동을 보고 상식적인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하는 과정이었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대뜸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른이 되려고 그러니?” “아니. 해로운 어른은 되지 않으려고.”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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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새해 인사보다 “2020년이 되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하는 진부한 실망을 더 많이 듣는다. 나는 ‘자동차가 날아다닌다는 발상 자체가 완전 과거형 아닌가? 날아다니는데 굳이 무겁고 바퀴 달린 자동차 모양일 필요가 없잖아’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그러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더 진부한 인사를 하고 만다.

비록 2020년의 풍경이 어릴 적에 그렸던 상상화나 과학 엑스포 전시관에서 봤던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유튜브 ‘맞춤동영상’ 때문에 내가 충분히 미래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죽을 때까지 돈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고 저주받은 세대의 청년답게 아침 출근길에 부동산 대책을 브리핑하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본다. 봐도 무슨 말인지 통 어렵기 때문에 금방 끄고 ‘오늘 뭐 먹지’를 검색해서 점심메뉴를 미리 골라본다. 수많은 맵고 짠 외식들을 보다가 갑자기 건강이 염려되어 건강식 위주로 검색어를 바꾼다. 장수를 위해 샐러드를 먹으라는 사람과 샐러드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식습관이라고 말하는 사람, 샐러드로 연간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는 청년 사업가, 브로콜리를 먹는 고양이 영상이 같이 나온다. 당연히 고양이의 브로콜리 먹방을 선택하고 흐뭇하게 본 뒤에, 이어지는 연관 동영상 중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라는 멋진 가사가 있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라는 명곡을 재생해본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내 유튜브 메인 채널에는 ‘억 소리 나는 한강뷰 아파트’ ‘일주일 동안 샐러드만 먹기’ ‘고양이의 냉동잉어 먹방’이 같이 나오게 되고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하며 잠시 혼란에 빠졌다가 한동안 유튜브를 켜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친구한테 얘기하니 친구는 가만히 살펴보면 그게 전부 다 나의 관심사가 아니겠냐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싫은 거다. 사람들 대부분 하루 동안 수십 가지의 생각을 떠올리고 망각할 텐데 유튜브 한번 봤다는 이유로 나의 허튼 뇌 활동 기록이 한꺼번에 전시되다니. 이것이야말로 SF영화에 나오던 미래다. 

‘인간, 네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수치심을 느껴봐’ 하는 로봇들의 저항!

나는 인공지능에게 지배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세웠다. 바로 ‘유튜브 영상에 댓글 남기기’다. 비웃지 마시라. 글 한 편을 대충 훑어도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면 그것은 내 것이 된다고 했다. 유튜브 댓글창을 보니 이미 굉장히 많은 감상들이 남겨져 있었다. 고양이가 브로콜리를 먹는 영상에는 “고양이가 브로콜리를 먹는 소리가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브로콜리가 아니라 콜리플라워인 것 같습니다”, 집값 떨어지는 징조들을 소개하는 영상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담합해서 집값 떨어질 때까지 안 사면 좋겠다”, 또 무언가를 열심히 폭로 중인 가로세로연구소의 영상에는 “변희재님 안경 벗고 렌즈 끼시면 멋질 것 같습니다”까지. ‘굳이 내가 댓글을 단다고 해서 로봇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또다시 한동안 유튜브를 켜지 않게 된다.

설날쯤이면 새해 인사를 슬슬 마무리해도 좋을 것이다.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유튜브를 보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한다. 상대가 봤을 수십개, 수백개의 영상 중에서 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채널은 무엇이고 그게 어떤 재미인지 묻고 싶다. 그러고는 마치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방향을 유도하듯이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채널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어본 뒤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다가 유튜브를 끄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2020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새해 대화는 없을 것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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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 ‘꽃’은 이제 너무나 유명하여 전 국민이 외우는 시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시를 패러디해서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가는 꽃이 될까봐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고 우스개로 말하기도 한다. 전 대통령의 이름을 ‘503’으로 대신 지칭하는 식으로 말이다.

 김춘수의 시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정현종의 시도 생각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어렴풋한 몸짓을 하나의 존재로 확정하는 일이고, 그 존재가 온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까지 한꺼번에 파악한다는 말이다.

시인들의 이런 통찰을 접할 때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 든다. 릴케는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 마지막 구절을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로 끝맺는다. 머리가 떨어져나간 아폴론 흉상이 ‘너’를 꿰뚫고 너의 구태의연한 존재를 다른 무엇으로 바꿔야 한다고 호통친다.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 현실의 존재를 소환하고 다그친다. 

시적인 언어들은 뭐라 특정할 수 없는 우리들의 존재, 시간, 세계를 호명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확정해준다는 점에서 ‘이름’의 기능과 꼭 닮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동화 <샬롯의 거미줄>에서 시골농장의 여자아이는 갓 태어난 새끼돼지에게 이름을 붙여주려 애쓴다. 무녀리로 태어난 약한 새끼는 곧 죽여야 하니 이름을 붙이지 말라는 아빠의 엄명을 무시하고 아이는 ‘윌버’라는 이름을 붙인다. 소시지가 될 운명이었던 윌버는 이후 박람회에서 멋진 돼지로 뽑혀 상까지 받는 영예를 누린다. 소시지감을 ‘윌버’로 만들고 미운 오리새끼 안에 백조가 들어있음을 밝혀준 건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름과 호명이 반드시 해방적 기능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월터 옹의 빼어난 저작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는 문자가 생겨나면서 인간의 삶이 개념에 붙들리고 허구적 서사에 매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구술문화의 사람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건 물푸레나무나 유칼리나무 등이지, 나무 혹은 식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확실히 이름은 존재의 풍부한 가능성과 진실을 밝혀주기보다 은폐할 때가 많다. ‘된장녀’ ‘김치녀’가 그러하고, 지만원씨가 5·18시민군을 북한군 특수부대로 주장하기 위해 ‘광수 1호’라는 악의적 호칭을 붙였을 때가 그러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주관적 감정과 경험의 직접성을 지키려다보니 아예 진실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이제는 속류 개념으로 추락해버린 탈진실(post-truth)을 광장에서, 단톡방에서, 뉴스 댓글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펼친다. 당신이 붙인 이름이나 내가 붙인 이름이나 진실의 일각일 뿐이니 꿀릴 게 없다는 심리다. 숱한 혐오의 언어나 가짜뉴스는 이렇게 양산된다. 탈진실의 효과는 이렇듯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이름을 없애는 쪽으로 가지 못하고 무분별한 이름만 더 많이 짓는 쪽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이름을 포기할 수 없다. 두려워 벌벌 떨며 이름도 부르지 못하는 ‘볼드모트’를 해리 포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호명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호명은 진실이 무엇인지 진단하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라 말한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치들이 명명한 ‘최종해결책’ 대신 ‘인종학살’을 택하는 것이다. 사실 이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폭력이 될 이름을 선택할 것인가, 해방이 될 이름을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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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송년회 시즌을 앞두고 이런저런 단기아르바이트를 했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술값이라도 좀 벌어볼 요량이었다. 상하차나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는 배제했다. 술값 벌려다가 병원비가 더 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걸 빼도 과연 현대사회, 별의별 아르바이트가 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사용될 목소리 녹음이었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인공지능에 관련된 일이라니. 돈도 벌고 미래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다음날 아침,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합정동에 있는 오래된 오피스텔의 오래된 방이었다. 오래된 노트북 한 대와 오래된 마이크가 장비의 전부였다. 혼자 기다리던 남자는 말없이 노트북 화면을 켜고 지정된 단어들을 낭독하라고 했다. 약 20분에 걸쳐 몇백개의 단어를 읽었다. ‘교차로’ ‘부장님’ 같은 의미 있는 단어들과 ‘빽봉’ ‘로나가’ 같은 의미 없는 단어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단어들을 읽었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낭독이 끝난 후 남자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급여 지급을 위한 정보를 기입하는 종이였다. 낡은 방에 들어가서 낡은 방을 나올 때까지, 나와 남자가 나눈 대화는 “안녕하세요”와 “수고하셨습니다”가 전부였다. 인공지능처럼 그럴싸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기계처럼 차가운 시간이었다. 20분이 꽤 길었다.

얼마 후에는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 모델, 이 얼마나 화려한 단어인가. 하지만 모델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얼굴과 몸을 가진 내가 화려한 모델일을 했을 리는 없다. 집 근처 입시 미술학원에서 뽑는 아르바이트였다. 오후 1시에 학원에 갔다. 사방에 진흙이 잔뜩 묻은 남루한 화실에 학생 10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무표정하게 앉았다. 5분에 한번씩 울림에 맞춰 조금씩 방향을 돌렸다. 열명 모두에게 나의 두상을 360도로 보여주면 50분이 지난다. 10분간 휴식 후 다시 의자에 앉아 똑같은 일(이걸 ‘일’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을 4시간 동안 반복했다. 평소의 4시간이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음반 대여섯장을 들을 수 있고 영화를 두 편 가까이 볼 수 있다. 낮잠을 두세번은 잘 수 있고 낮술을 거나해질 때까지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4시간은 나일강만큼 길었다. 아니, 알람이 울리는 5분도 한강처럼 길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생각뿐.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거창한 시간을 가졌다. 생각의 항해에 필요한 연료가 동났다. 무의식의 파도에 사고를 맡기고 온갖 잡생각을 두서없이 하고 또 했다. 과정도, 결론도, 의미도 없는 생각(이걸 ‘생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을 4시간 동안 반복했다. 그사이 열 개의 흙덩어리는 열 개의 나를 닮은 사내의 흉상이 됐다. 어느새 나타난 강사가 그 흉상들을 품평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앞서의 네 시간에 비하면 쏜살같이 한 시간이 지나갔다. 리뷰가 끝난 후, 흉상 하나하나는 순식간에 다시 흙덩어리로 돌아갔다. 태어나서 처음 나의 흉상이 탄생했지만 그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마치 화분이나 감귤과 같은 정물에 불과한 물체였다. 녹음 아르바이트와 모델 아르바이트를 할 때 글을 쓰고 방송을 통해 말과 얼굴을 제공하는 나는, 거기에 없었다. 사회적 존재를 거세당한 한 개인이 정해진 시간을 채웠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 것이다.

김창완밴드의 ‘시간’이라는 노래가 있다. 김창완이 2016년에 발표한, 현재로서는 그의 가장 최근곡이다. 1977년부터 그가 낸 노래 중 가장 쓸쓸하고 처량한 곡이기도 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반도네온이 악기의 전부인 이 노래에서 그는 이런 가사를 부른다. “그냥 날 기억해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 익명의 목소리와 익명의 존재로 이틀을 보내며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새해가 왔다. 익명의 삶을 꾸려나갈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다시 듣고 싶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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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다. 돌아보건대, 생은 늘 외로웠다”로 시작하는 한 편의 글을 읽었다. 외롭다는 말에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첫 문장부터 돌부리에 걸린 듯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생을 돌아보아야 할 만큼 나이를 먹은 건 아니라고 여기지만 생을 돌아보기에 좋은 나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 테니 이런 문장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며 머물러도 괜찮을 듯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쓴 최초의 시도 외로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를 쓴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부임한 지 몇 해 안되었지만 인기가 많은 분이어서 다른 반 동급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첫인상은 좀 무시무시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분이어서 까다로운 성격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으니까. 6학년이 되기 전부터 동네 형들과 누나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던 터라 잔뜩 긴장한 탓도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반 친구들은 다들 그런 듯했다. 그렇지만 며칠 안되어 왜 인기가 많은 선생님인지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집이 가난하다고 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차별하지도 않았다. 그런 차별이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선생님은 수업 운영 방식에서도 남달랐다. 일주일에 세 시간인 작문 시간을 다른 반 선생님들은 보통 자습 시간 삼아 적당한 요일로 한 시간씩 떨어뜨려 놓았지만 우리 반은 달랐다. 오전 수업만 있던 토요일은 오롯이 작문 시간으로 채워졌다. 우리 반 친구들은 매주 토요일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고 책을 읽거나 시를 쓰거나 좋은 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일 년을 보냈다. 날이 갈수록 그 시간을 즐기게 됐고 돌아보니 아마도 그때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도 외로울 수 있는 법이다. 세 해 전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바로 전해에는 아버지가 탈곡기에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나는 형제자매가 많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집에 돌아가면 아무도 없었다. 적막과 고요만이 나의 형제였다. 그 시간을 늦추기 위해 학교에 오래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홀로 찾아들어 시간을 보내던 곳은 도서관이었다. 거기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을 만큼 쓸쓸한 곳이었다. 그 사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서가 사이 마룻바닥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재단한 허공에서 속삭임처럼 책 먼지가 들끓었다. 외로움은 그처럼 숨죽인 채 내 곁에 머물렀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 거였다. 도서관에서만 위안을 찾을 수 있던 한 아이가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른의 말투를 흉내 내지 않아도 좋다고 무엇을 느끼든 내가 느낀 걸 쓰면 그게 바로 시라는 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며 시를 끄적이게 된 거였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낸 우리는 각자 두 편의 시를 제출했고 선생님은 그 시들로 문집을 엮어 졸업하던 날에 한 권씩 나눠주었다. 나는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미리내’라는 제목의 이 문집을 가끔 들여다본다. 그 시절에 내가 느껴야 했던 외로움을, 사실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한 번도 발설하지 못했던 감정이 서투르지만 결백한 언어들로 행을 이루어 잠에서 깨어나는 걸 본다. 문집에 실린 다른 친구들의 시에서도 내가 느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감정들을 본다. 어쩌면 그 아이들의 가슴속에서 난생처음 이끌려 나와 부신 눈을 깜박이고 있을 그것들을. 그로부터 삼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해 일 년 동안 우리에게 시를 가르쳐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문학을 알게 해준 당신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외로워하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외로웠다. 돌아보건대, 생은 늘 외로웠다”(최명표)로 시작하는 당신의 글을 읽었다. “그날 처음으로 눈곱이 산 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몌별하느라 밤새 빚어낸 사리인 줄 깨달았다”라는 문장처럼 당신 역시 외롭고 높고 쓸쓸했음을 알았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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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간, 음악평론가로서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토크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최근엔 정말 많은 음악인들이 토크가 연계된 콘서트를 진행하고, 미술인들 역시 전시장에서 수많은 전시 연계 토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자리에서 나는 주로 사회자 또는 음악평론가로 참여해 질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작업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등 그간 창작자에게 궁금했던 것을 공론장에서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이 토크의 현장은 일종의 비평 ‘현장실습’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경험상 이런 자리는 ‘대화 그 자체’를 위해 마련되었다. 어떤 특정 해답을 도출하려는 의도 없이 일단 유연하고 풍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좋은 대화가 가장 중요한 이 자리에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고, 그에 맞는 적절한,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질문을 던질 것이 요구되었다. 말과 글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으나 나는 예술가들과 이런 토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와 혼자 평론을 쓸 때의 태도에 그리 큰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에서 나는 음악 혹은 음악가의 말을 듣고 ‘질문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론이 질문하는 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거시적 차원에서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촉구한다. 혹자는 현장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이제까지의 일들을 솎아내 무엇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소개하기도 한다. 모두가 무심했던 곳 어딘가에 숨어있던 문제적 상황을 예리한 눈으로 포착해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필자도 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평론가의 위치는 저 높은 곳에서 현장을 관망하며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을 수도, 모두가 떠난 자리를 주의 깊게 되돌아보는 시점에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치 토크의 현장에서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차를 공유하며 지금의 일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다. 내가 음악을 듣고 떠오른 생각을 굳이 글로 정리해 내보내는 이유는 나의 ‘질문’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늘 자문자답을 하거나 의문으로 글을 끝맺게 되어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유연한 태도로 대화의 가능성을 잠재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입장을 지향하고 있다. 좋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청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평론이 갖추어야 할 동일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비평문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글인 만큼 어떤 의견을 정리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건넬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이 모든 일이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상정하고, 대화자 없이도 좋은 대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론가라는 말을 가끔 ‘질문자’ 혹은 ‘대화자’라는 말로 바꾸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평론가라는 직업에 부여된 과업이 ‘평가하여 논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창작자들에게 ‘좋은 질문을 건네는 일’로 탈바꿈하는 것 같다.

평론가라는 직함에는 어딘가 날선 느낌이 있다. 물론 평론가는 자신의 위치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무디지 않은 시선으로 엄중히 고민하며 글을 써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라면 평론가는 실제로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벼려진 칼끝이 더 자주 겨냥해야 하는 것은 음악보다는 평론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타인의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론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영향력을 가질지 재고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다듬어나가고 싶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드는 반성의 시선, 그리고 평가자가 아닌 ‘대화자’의 자리에서 음악과 음악가들에게 질문하는 태도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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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는 여느 부자지간처럼 소가 닭을 보듯 닭이 소를 보듯 하며 오랜 세월 서로를 견뎌왔다. 어떤 점에서는 현명한 처사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대놓고 으르렁거렸다면 서로에게 상처만 줬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우리 부자는 보고도 못 본 체하거나 에둘러서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이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 아예 말을 별로 나누지 않는 사이였음에도 기억에 남는 아버지와의 일화는 너무 많아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다.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주말이었다. 그날쯤 편지가 도착하리라 여긴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쉬지 않고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오전에 이미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갔을 테니 기다리던 편지가 도착했을 거였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가 아니던가. 고운 필체로 다정한 이야기가 담겼을 여학생의 편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간지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마루에 놓인 편지봉투가 와락 눈에 들어왔다. 나만 보면 심드렁하게 되새김질을 해서 밉상이던 외양간의 소들조차 그때만큼은 사랑스러웠다. 

나는 한달음에 토방 위로 뛰어 올라가 마루에 가방을 던져놓고 편지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봉투에 쓰인 삐뚤삐뚤하다 못해 난폭해 보이기까지 한 글자를 오래도록 노려보았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굵직한 사인펜으로 쓴 게 분명한 그 글자들을 말이다. “홍기, 보아라. 우리는 외출허니 소 밥은 니가 주거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어서, 내 이름마저 틀리게 써서, 꼼짝 말고 집이나 지키라는 명령이어서가 아니었다. 뜯어보지도 못한 예쁜 봉투에 쓰인 아버지의 악필에 내 순정은 물론 편지를 보낸 그이의 순정마저 짓밟힌 듯해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그때부터 나는 정말로 아버지를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군대에 갈 때였다. 입영 영장을 받아놓고 대여섯 달쯤을 고향 집에서 지냈다. 아버지와 나 모두에게 영락없이 불편한 몇 달이었다. 다른 집 자식들처럼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지, 일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 농사일에 써먹을 수도 없지, 게다가 별 쓸모도 없는 글 나부랭이나 쓰겠다며 집에 죽치고 들어앉았으니 아버지의 심기가 어떠할지 뻔히 보였다. 입영 날짜를 앞당길 수만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윽고 그날이 다가왔다. 너무 먼 길이어서 하루 전날 집을 나서야 했고 나 혼자 떠나야 했다. 대문에서 큰절 한 번 올리면 당분간 아버지와는 볼 일이 없게 된 거였다.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셨지만 아버지는 담담했다. 아버지가 내게 봉투를 건넸다. 여비는 어머니가 이미 줬던 터라 나는 아버지가 따로 챙겨주는 돈 봉투이겠거니 하며 주머니에 넣고 집을 떠났다. 

기차에서 봉투를 꺼내 보았다. 딸려 나온 건 편지지였다. 눈에 익은 아버지의 필체. 굵은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편지였는데 내가 당신에게 받은 첫 편지였고 이후에도 다시 받아본 적 없는 유일한 편지였다. 아마 다른 때였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여전히 정서법에 어긋나는 악필인 데다 내용도 진부했다. 상관의 명령에 충실하고 나라에 보탬이 되는 군인이 되어라, 솔선수범해라, 전우애를 발휘해라 등등.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은 이런 거였다. 니 어머니는 아프지 말라고만 헌다. 나는 편지지를 봉투에 넣고 차창 밖의 뭉개진 풍경을 보았다. 그러니까 이 짧은 편지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든 이력이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이 다인 아버지는 문장이 형편없었고 초등학교 중퇴인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어머니도 쉬운 글자는 더듬더듬 읽었으나 쓸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내게 당부하고 싶었던 말을 아버지가 편지 끝에 덧붙여 써야만 했던 이유다. 말이 안 통해 아예 말을 별로 나누지 않는 사람 사이에도 기억에 남는 사연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금은 안다. 그이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거의 모든 걸 말해왔으니까.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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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깥에서 귀마개를 끼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수도권 인근에 살고, 사무실 없이 불규칙하게 이곳저곳 오가며 일하기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혼자 일을 하거나 바깥 업무 중에 뜨는 시간이 생기면 도시생활자 프리랜서들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카페를 주로 찾는다.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카페 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곳은 무엇보다 조용한 곳이다. 일하기에 좋고 쉬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공간을 찾아갈 일말의 여유도 없거나 간혹 아무리 돌아다녀도 조용한 곳이 없을 때가 있다.

많은 이들이 비유하듯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감을 수 없는 탓에, 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예측 불가능한 소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귀마개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는 비장의 무기였다. 귀마개는 집중을 방해하거나 평온을 깨뜨리는 수만가지 요인 중 소리 하나만큼은 흐리게 해줄 수 있었다. 처음엔 별 기대가 없었지만, 조용함의 힘은 대단했다. 소리를 덜 들으면 확실히 덜 피곤하고, 덜 산만했다. 점차 그 매력에 빠져든 나는 카페는 물론이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심지어는 이미 꽤 조용한 도서관이나 집에서도 귀마개를 끼우게 됐다. 바깥소리를 스스로 ‘뮤트’하는 것에 차츰 익숙해지자 평소보다 소리에 예민해져서 날이 설 때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평소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 소리를 세심히 들으며 도시의 소리풍경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 공간의 소리는 대체로 그곳을 점유한 사람들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졌다. 어떤 이들은 ‘서울은 너무 시끄럽다’라는 식으로 한 도시 전체를 시끄러운 곳으로 일축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도 그런 불평 섞인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언제나 시끄럽기만 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또 소란스러운 곳이 마냥 거북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많은 소리가 오가는 공간에는 특유의 활기가 있고, 가끔은 적당히 소란스러울 때 부담 없이 말하고 움직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소리환경을 마련해두는 것이 으레 그 공간에 기대되는 미덕일 때도 있다. 하지만 짧은 경험상 도시생활에서 느낀 아쉬움이 있었다면, ‘항상 조용한 곳’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인구밀집지역을 오가면서 그곳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게 애초에 어불성설인 것 같긴 하지만, 조용함의 힘을 잘 알게 된 나는 일상 속에서 잠잠한 공간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게 됐다.

도시마다 특수한 상황과 문화가 있는 만큼 해외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나, 유독 마음에 깊게 남은 특별한 경험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마치 서울 지하철의 ‘약냉방칸’처럼 곳곳에 ‘조용한 칸’으로 표시된 곳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곳에서는 열차 소리, 문소리, 안내방송 외에는 정말 별다른 소리 없이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곳이 지하철이어서가 아니고, ‘조용한 칸’이라는 분리된 공간에서만큼은 고요함을 즐기자는 약속이 수월하게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소리가 넘쳐날 수밖에 없는 이 도시생활에서는 소리에 대한 피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생활자들의 마음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 어떤 업장에서는 간혹 시끄러운 손님은 퇴장당할 수 있다거나, 조용한 공간 유지를 위해 특정 손님층은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문구를 내걸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날 선 태도를 취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조용함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합의를 마련하는 약속의 방식을 꿋꿋이 지향했으면 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공적 영역의 소리를 고요히 유지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섬세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한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그것은 무언가를 제거하고 조용함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공동의 목표점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실천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더 쾌적할 것이라는 점을 믿는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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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에 가면 한 번씩 들러 안부를 묻는 이가 있다. 그이는 나와 비슷한 나이지만 나보다 키가 크고 늘씬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아직은 넉넉하다 할 수는 없어도 제법 무성해진 가지를 마을 정자 지붕 쪽으로 드리운 채 그 곁을 한결같이 지키고 있다. 

수령 사십 년에 가까운 이 느티나무를 심던 날이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이 흰수염 노인이라 부르던 이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서이다. 본래 그 자리에는 족히 이백 년은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시름시름 앓더니 더는 잎사귀가 돋지 않게 되었고 어느 날 번개에 맞아 몸통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고사목을 뿌리째 뽑은 뒤 마을 사람들은 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를 추렴하여 사다 심었다. 그 일에 앞장선 이가 흰수염 노인이었다. 나는 땅을 삽으로 파거나 물 양동이를 나르며 그 일을 도왔는데 내 어린 손아귀에 다 들어올 만큼 가느다랬던지라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예전의 느티나무만큼 자랄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별 흥미도 기대도 없었다. 

노인은 밑동 부근의 흙을 정성스레 골라주었고 듬뿍 물을 주고 난 뒤 다정하게 느티나무를 쓰다듬었다. 노인은 이 나무가 정자 지붕을 덮을 듯이 자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면 그 아래서 목침을 베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잎사귀들이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숨 푹 자고 싶다고 거의 수줍어하면서 말했는데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난감한 말이기도 했다. 동네 노인 중에서도 가장 연배가 높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한 이 고비늙은 노인에게는 그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꿈인 탓이었다. 그럼에도 노인이 어린 느티나무를 보며 꿈이라도 꾸듯 눈빛을 빛낼 때는 까닭 없이 서글퍼졌다.

그로부터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노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때까지도 어린 느티나무는 여전히 어린나무에 불과했고 노인의 꿈은 노인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느티나무를 심던 날 보았던 노인의 눈빛만은 내 마음에 박혔고 이따금 나는 거기에 발이 걸려 휘청거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눈빛이 누군가의 눈빛을,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의 눈동자에 떠오르던 빛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꿈을 꾸는 노인이라니. 

아무도 노인에게 꿈이 뭐냐고 묻지 않는다. 노인을 꿈꿀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꿈을 꾸는 노인이 있다면 헛된 꿈을 꾼다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노인이 있다면 그 노인이야말로 우리의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안전하고 평온하다고 믿는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인 셈이다. 꿈을 꾸는 노인은 불온하다. 그들이 꾸는 불온한 꿈은 이 세계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로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고향을 떠난 뒤로는 그 나무를 드물게 볼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내 눈에 느티나무의 성장은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십 년이 흐르고 또다시 십 년이 흐르고… 언제부턴가 느티나무는 짙은 그늘을 드리울 수 있게 되었고 그 아래 목침을 베고 잠드는 사람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흰수염 노인의 꿈이 그이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꿈꾸는 노인은 자신만을 위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 노인의 꿈은 다음 세대를 위한 꿈이기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윤리적인 꿈 가운데 하나이다. 일당 몇만 원에 노인을 매수하여 광장으로 몰려들게 한 자들은 단지 노인을 짓밟은 게 아니라 인간의 꿈을 짓밟은 것이다. 노인에게서 꿈을 박탈한 것이며 꿈꿀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은 것이다. 노인이 꿈을 꿀까 봐 두려워 푼돈을 쥐여주고 꿈을 꾸지 못하도록 억누른 것이다. 노인이 꾸는 꿈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꿈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 아니 그걸 알기에 인간의 미래를 한사코 파렴치하고 비열한 자들의 수중에 남겨두려는 자들. 감히 노인을 능멸하고 능욕한 자들. 부디 그들이 그 노인들의 꿈에 등장하기를 바란다. 노인들의 꿈속에서 영원히 소멸하는 존재로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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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딸은 손가락이나 무릎, 다리 등을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아빠 이거 봐, 아파! 하면서 내 관심을 끌려는 말과 행동을 자주 한다. 나는 아프겠다 하면서 호호 불어주는데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던 터라 나의 이런 말과 행동에 아이는 익숙한 평안을 느끼며 안심을 한다. 나도 평소에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보면 잘 잤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묻고, 어린이집에 갔다 오면 오늘은 뭘 했는지 뭐가 재미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재잘재잘 즐겁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아이가 무언가를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할 때, 그림이나 공작물이나 뭐든 자기가 만든 걸 자랑하고 싶거나 내게 주고 싶어 할 때 나는 얼마나 자주 딴짓을 하면서 그걸 보았던가. 오롯이 아이 앞에 앉아 귀를 기울이고 감탄한 적이 몇 번이나 되었던가. 아이는 또한 내 말과 행동에서 무관심하면서도 관심 있어 하는 척한다는 걸 얼마나 자주 느꼈을까.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일인용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에 앉아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보채고 울 때마다 젖병을 물렸던 기억이 나서였다. 아빠가 여기 앉아서 분유 먹여준 거 기억나? 안 나지? 그러자 딸은 응, 안 나. 근데 이건 기억나,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거실로 나를 이끌더니 무릎걸음으로 베란다 창을 향해 기어가는 거였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랑 엄마가 저기 서서 밖을 보는데 내가 이렇게 기어서 갔던 건 기억나.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 아이가 언제 일을 기억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에게 이미지로 남은 건 나와 아내가 나란히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거였고 아마도 그건 우리의 뒷모습이었을 거다.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고도 그게 누구인지 아는 것. 그게 하필이면 뒷모습이라는 것. 그런 것들 때문에 가슴이 저릿했다. 아이에게 이미지로 남은 우리의 뒷모습과 그걸 보고 기어서 다가오던 아이. 세월은 그런 식으로 흘러 우리는 앞선 사람의 뒤를 따라 살아가고 그들이 보았던 것들, 그러니까 노을이거나 별이거나 눈이 쌓여가는 어느 길이거나 비 내리는 풍경들을 보면서 삶의 영속성을 사유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이를 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남들만큼 뒷바라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아이는 내게 가난을 환기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보면 가난한 내가 분명하게 보이면서 서러워진다. 가난을 한탄하는 순간에만 진정으로 가난해진다는 신념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는 이 가난을 비난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난한 주제에 왜…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까지 상처받는 말일 것이므로 우리는 오래도록 아플 것이다.

이런 일들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앞으로 우리의 삶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피해갈 수 없다면 똑바로 대면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마저 손 놓은 채 무심히 지나가지 않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라고 했던 파스칼의 말을 기억한다. 그런 순간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유함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므로 부유한 자들을 부러워한 적은 있으나 열망한 적은 없다. 다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당하게 분배받아 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국정원, 검찰, 경찰 가운데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있을 때 그 앞에 비굴하게 조아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걸 가로막고 방해하는 자들은 최선을 다해 증오했노라고. 적어도 네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공권력을 사유화한 파렴치한 자들만을 위한 정치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너의 웃음 한 조각 눈물 한 방울마저 잊지 않고 살아왔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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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타로의 에세이집 &lt;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gt;는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에 그가 거울 속에서 만난 한 피아노 연주자의 외양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책의 서문이자 필자를 소개하는 이 짧은 글은 이어질 내용이 ‘피아노 연주자인 자신을 아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나’의 글이 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서양음악에 관한 글쓰기에서 ‘무대 위의 연주’는 가장 까다로운 글감 중 하나다. 그 원인은 여럿이겠으나 우선 가장 근본적인 난점은 이것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음반이나 영상과 달리 공연으로만 접한 연주에 관해 쓸 때는 정량화된 데이터나 기록물에 의존하기가 어렵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만 의지해 그 연주를 복기하며 뭔가를 써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또 공연장에서는 연주 말고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이 얽히고설키며 연주에 개입하는데, 그 모든 미묘한 관계를 글에 모두 담아내기도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사는 기침 소리는 물론 연주자들끼리 주고받는 눈짓, 소리로 들려오진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객석의 기류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러한 ‘현장성’은 연주에 대한 일목요연한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접 공연장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lt;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gt;에서 타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피아노 연주자가 공연장에서 겪는 일들이다. 물론 바흐나 쇼팽 등 그가 자신을 잊고 몰입해서 연주해야 할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글의 중요한 일부다. 하지만 그는 흔히 공연의 주변부로 여겨졌던 요소나 관객 시점에서 보고 들을 수 없었던 무대의 이면을 소개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불안과 긴장 가득한 자신의 꿈부터 날 선 몸의 감각, 언제나 그가 지니고 다니는 악보들, 공연장이 뿜어내는 위용, 조율사와의 소통, 무대로 걸어 나오는 자신의 걸음걸이, 연주 직전에 손을 가다듬는 찰나의 순간, 객석에서 늘 들려오는 사탕 껍질 소리와 마른 헛기침, 악보를 넘겨주는 이와의 미묘한 호흡,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의 음향, 그리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볼 때의 역설적인 충만함까지. 음악과 더불어 공연을 구성하는 이 크고 작은 요인들은 무대 위의 주인공이자 예리한 관찰자인 타로에게 흥미로운 글감이 된다.

지나치기 쉬운 이 요인들을 하나하나 포착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가 음악만큼이나 ‘공연’에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타로에게는 공간, 분위기, 몸짓, 손짓, 크고 작은 소리 등 이 모든 것이 결코 부수적인 것들이나 소음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그에게 연주 도중에 사탕 봉지를 조용히 여는 관객은 서로 마주치지 않고 말도 나누지 않지만 함께 한 곡의 실내악을 연주하는 충실한 파트너이고, 연주 시작 전의 박수갈채는 청중의 몰입도와 공간의 음향을 측정하는 중요한 가늠자다. 돌이켜보면 청중 입장에서 공연을 볼 때도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엄밀하게 갈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다. 지휘자가 무대로 걸어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음악이 시작되는 것 같았을 때,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소리는 완전히 잦아들었지만 연주자들이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다고 느껴질 때 등 공연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순간이 음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듯했다.

만약 우리가 음악을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공연의 예술로 접근한다면 공연에서 맞닥뜨린 어떤 요인을 음악 외적인 것으로 분리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타로도 기나긴 지면을 할애해 공연을 지탱하는 그 수많은 요인을 하나하나 음악적 대상으로 불러낸 것일 테다. 그 어수선하고도 다뤄내기 까다로운 ‘무대 위의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공연 전체에 관한 이야기로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타로의 글을 읽다 보면 음악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공연’이라는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고 우리는 거기서 어떤 음악적 순간을 즐기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며 공연의 여러 결을 촘촘히 드러낸 글을 읽는 것은 접하기 드문 행운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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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뜬 어느 저녁에 딸과 산책하러 나갔다. 날이 흐린 탓에 보름달인데도 영 밝지가 않아 입김이 서린 창 너머에 떠오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함께 고개를 들어 달을 보았다. 달이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주고 싶었기에 무슨 표현을 고르면 좋을지 잠시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산문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솥에 든 찐빵 같다거나 야단맞고 나와 시무룩해 보인다는 식의 긴 묘사문들만 떠올랐다. 어쨌든 그럴듯한 비유를 찾아보려 애쓰는데 딸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였다. 아빠, 달이 녹았어. 아이의 그 한마디에 혀끝에 맴돌던 모든 말들이 스르르 녹아 버렸다. 그래, 달이 녹았구나. 그보다 더 그럴듯하고 적확한 표현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말이었다.

이토록 간명하고 순진하고 투명한 말을 잃어버린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이따금 아이들의 말에 놀라는 이유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내가 보는 세상과 퍽 달라 보여서이다. 같은 세상을 보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눈에 더 잘 보일 뿐만 아니라 그 세상이 내가 아는 세상보다 더 비밀스럽고 아름답다는 사실 앞에 고요히 무릎을 꿇고 싶어서이다. 아름다운 말에는 비참한 세상을 실제로 더 아름다워지게 하는 힘이 있고 아이들의 말에도 그와 비슷한 힘이 있다. 아이들의 말은 시인의 말에 가장 가깝고 그건 곧 우리 모두 한때 시인이었다는 뜻이기도 할 거다.

그에 비하자면 정치인의 말은 얼마나 졸렬한가.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 나경원, 황교안, 홍준표 같은 자들의 말을 듣고 읽으면서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들의 말은 하나같이 막말이다. 거칠고 상스럽다. 그들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테고 흐린 날 달을 가리키며 달이 녹았다고 말할 줄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아이들의 언어에서 누구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언어는 앙상하기 이를 데 없어 혐오의 감정 외에는 다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언어를 바꾸어야 한다. 언어를 바꿀 수 없다면 세상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당신의 언어로 이 세계가 한결 더 거칠어지고 상스러워질 테니까.

그럼에도 모든 막말이 막말인 것만은 아니다. 막말이라고 해서 다 거칠고 상스러운 건 아니다.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어느 시인이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다. 그이의 의원 사무실로 축하문과 축하 꽃다발 등이 쉼 없이 날아들었다. 거기에 이질적인 문구가 새겨진 화분 하나도 섞여 있었다. 근조 누구누구 시인. 시인의 동료 시인들이 보낸 화분이었다. 장례식장에 보내는 조화나 다름이 없었으니 축하는커녕 조롱을 넘어 상당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화분이었다. 뒤늦게 화분을 발견한 보좌관이 당장 치우겠다고 하자 시인은 손을 내저었다. 그냥 놔두시게. 왜냐고 묻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걸 보면서 내가 죽었구나 하며 날마다 되새겨 보겠네. 나는 이 일화를 듣고 시인이 근조라는 막말에서 동료 시인들의 분노와 혐오만을 읽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국회의원 이전에 시인임을 잊지 말라는, 어차피 정치를 하기로 했다면 시인답게 하라는 다정한 질책으로도 받아들였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시인의 내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미 근조라는 단어 속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근조라는 말은 막말이면서도 막말이 아닌 셈이고 분노와 혐오를 담고 있지만 더 이상 분노와 혐오만은 아닌 셈이다. 그 단어는 진심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설을 듣고도 웃는 이유는 우리가 이상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욕설에 담겨 있는 진심을 헤아릴 수 있어서이다. 친한 친구들과 이따금 비속어를 나누는 사람은 친구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친구의 진심이 드러나지 않는 말의 내부에도 있음을 안다. 우리 모두 일상에서 비록 시는 아닐지라도 아직 시를 완전히 잃지는 않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기에 진짜 막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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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라는 지명을 처음 인식하게 된 건 미군기지와 관련해서였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의 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의 범죄도 그에 못지않았던 터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먼 나라였다. 지도를 보면 오키나와가 일본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본 열도의 남쪽 끄트머리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오키나와는 일본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으니까. 오키나와에 정말 관심을 갖게 된 건 메도루마 슌의 소설을 읽고 난 뒤부터였다. 그제야 오키나와의 역사를 다룬 글을 찾아 읽으며 오키나와를 알아갔다. 

메도루마 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몇몇 단편만 두고 말하자면 낯익고도 낯설어 뭐라 표현하기 쉽지 않은 묘한 특색이 있다. 인물의 한쪽 다리가 퉁퉁 붓더니 엄지발가락에서 물이 나오게 되고 밤마다 귀신들이 나타나 그 물을 받아먹는다거나 넋이 나간 사람의 입속에 소라게가 들어가 있다는 식의 설정은 분명히 현실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환상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메도루마 슌의 소설에 도입된 이러한 환상성은 최근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환상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외려 러시아의 고골과 같은 옛 작가들이 환상성을 다루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할 만큼 순진하고 단순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환상적이라고 여겼던 부분들이 어떤 실제보다 실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게 되고 비로소 환상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에 가까워야 한다, 라고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이의 소설에서 소설가의 곤혹을 느꼈다. 비참한 역사를 마주한 소설가가 선택할 수밖에 없고 선택해야만 했던 환상성이 환상으로의 도피로 여겨지지 않도록 고뇌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인물을 내세워 그 인물의 내면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고통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 보여줄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이의 용기 덕분에 일본 내부의 식민지라는 오키나와의 정체성이 다른 어떤 문학에서보다 더 사실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일왕의 생일 축하연에서 일본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던 아무로 나미에의 용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소설가의 용기였다. 그들의 용기가 귀중한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행보와 관련해서 일본 상품을 불매하는 운동이 한창이다. 이 운동은 자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의 헌법 9조를 개정하여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바꾸려 하는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적 움직임을 거부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운동은 혐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일본의 양심들이 오래전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막으려 했던 일들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 헌법이 개정되었을 때 악몽이 다시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고 느끼게 될 이들은 아마도 오키나와 사람들일 테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 가운데 하나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상상할 줄 아는 용기일 것이다. 우리가 이명박·박근혜 시절을 살면서 느껴야 했던 비참함을 지금 그들도 느끼고 있다. 아베를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그들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그이들을 환대해야 하고 그이들을 격려해야 하며 그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일본은 가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오키나와라면 괜찮지 않을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곳.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삶과 현실 그 자체로 전쟁을 느낄 수밖에 없는, 평화헌법이 개정되는 순간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그이들이라면 손을 내미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그곳은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니까.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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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은 서핑의 새로운 성지다. 수도권에서의 접근이 용이하고, 초보자와 고수 모두에게 적합한 파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니아의 문화였던 서핑이 양양이 발견된 후 새로운 해양문화가 됐다. 양양 서핑의 중심지는 죽도해변이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곳은 몇 년 사이 렌털숍과 스쿨, 아기자기한 카페와 펍으로 가득한 ‘힙 플레이스’가 됐다. 맛집이나 술집 같은 유흥업에 의해 뜬 동네와 문화나 예술로 인해 발전하는 동네의 차이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기록하려는 자의 유무다. 양양은 후자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몰려 서핑을 즐기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죽도해변에서 인구해변으로 넘어가다보면 검은색 3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띄는 로고가 있다. WSB 팜 서프 매거진(WSB Farm Surf Magazine: 이하 WSB). 면사무소와 파출소가 있는, 나름 지역의 중심지지만 ‘매거진’이라는 명칭이 낯선 게 사실이다. WSB를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서핑 플랫폼회사다. 2016년과 이듬해 여름마다 2권의 무크지를 발간했고 서핑을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참가한 콤필레이션 앨범 <파도타러 가는 7번 국도>를 제작했다. 이 ‘잡지사’의 핵심 인력은 두 명, 한동훈 대표와 장래홍 편집장이다. 서핑대회에서 만난 둘은 본래 타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의기투합하여 서핑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하고 2013년 양양으로 내려와 사무실을 차렸다. 때마침 서핑이 곧 붐을 타기 시작했다. 서핑을 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그들을 가르치는 숍과 스쿨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말하자면 문화가 움튼 것이다. 하지만 서핑을 다루는 전문지도 없고, 서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매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는 유행은 기억으로만 남는 법. 그래서 무크지를 만들었다. 가이드북이자 서핑문화의 기록지다. 국내외의 서핑 스폿, 서핑에 목숨을 건 이들의 인터뷰, 그리고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커버하는 서핑 가이드 등 서핑과 관련된 거의 모든 콘텐츠가 담겨 있다. 한 대표와 장 편집장을 포함, 공식 스태프는 네 명에 불과한데 사진, 필자, 일러스트, 번역까지 참여한 인원은 웬만한 메이저 잡지에 뒤지지 않는다. 그만큼 서퍼들의 커뮤니티가 탄탄하다는 증거다. 

무크지와 음반 같은 아날로그 매체만 낸 게 아니다. WSB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운영하는 동명의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앱) 때문이다. 인터뷰, 스폿 소개 등이 있는 ‘서프 TV’ ‘스폿 가이드’ ‘서핑 레슨’ 등 다양한 서핑 콘텐츠를 동영상으로 제공하는 이 앱의 핵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고 있는 라이브 웹캠이다. 국내 해변 23곳에 HD 웹카메라를 설치하고 파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한다. “타지에서 살고 있는 서퍼들은 현지의 지인들을 통해서만 서핑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파도가 좋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낚시’인 경우도 생긴다. 지인이 없으면 기상청 예보만 보고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 예보에 파도 정보는 없다.” 장 편집장의 말이다. 이 웹캠은 보다 정확한 서핑을 가능케 했다. 당일로 서핑을 즐기는 경우 출발 전 아예 어느 스폿의 파도가 좋은지 확인한 후 행선지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 기상 스타트업과 제휴, 스폿마다 파도차트를 제공한다. 일출과 일몰 시간은 물론이고, 시간대별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 초당 파도의 높이, 물때까지 서핑에 필요한 꼼꼼한 정보를 제공한다. 파도는 사람의 뜻대로 만들 수 없지만, WSB를 통해 최소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서핑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은 평일에도 늘 우리 홈페이지를 띄워놓고 파도 치는 모습을 바라본다고 하더라. 꼭 서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ASMR처럼 활용한다고 하더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폭풍이 몰아치든, 사무실에서건 고속도로에서건 WSB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바다에 데려다 놓는다. 서핑문화를 모으고 엮어 지금을 기록하고, 기술을 활용하여 미래를 바꾼다. 몇 년 사이 죽도해변의 땅값은 수직상승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가 밀려온다. 하지만 WSB는 ‘문화와 기술’이 교차하는 또 다른 파도를 만들고 있다. 이 파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새로운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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