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자가 당황한 나머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거의 굳어진 공식이다. 자동차는 부품 약 3만개의 복잡한 제품이다. 가느다란 전선 가닥 하나가 끊어지거나 합선이 돼도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솔직히 제조사조차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물며 이를 소비자에게 입증하라는 건 무리다. 최근 이런 점을 반영한 전향적인 판결들이 조금씩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1월 BMW 급발진 사건 항소심에서 제조사가 유가족들에게 4000만원씩 배상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과속 범칙금 전력이 없는 60대 운전자가 시속 200㎞ 넘게 질주한 정황을 그 증거로 인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급발진이 아니란 근거를 BMW가 제시하라’고 재판부..

오랜만에 눈다운 눈이 왔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온 세상이 하얗다. 큰 건물, 작은 건물 가리지 않고 모두 눈에 덮였다. 온갖 상념이 이어진다. “너네는 큰집에서 네 명이 살지/ 우리는 작은집에 일곱이 산다/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또 사니/ 너네는 집 많아서 좋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우리 집도 하얗지”(한돌의 노래 ‘못생긴 얼굴’의 한 토막) 어제 오늘 내린 눈이 북극발 한파에 얼어붙었다. 8차선 도로, 주택가 골목길 할 것 없이 죄다 얼음판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낭만이라면, 땅에 얼어붙은 눈이 만든 빙판길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때에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 등을 배달하는 라이더들이다. ‘집콕’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주문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가르칠지 결정하는 교육과정 개편은 흔히 권력투쟁에 비유된다. 국어 교사들은 국어가, 수학 교사들은 수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사회나 과학도 필요하고, 음악·미술·체육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심지어 같은 과목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미·적분이 중요하다는 목소리와 기하·벡터를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교육과정에는 공동체의 비전과 발전 전략은 기본이고, 학문적 기득권과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보면 그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년 국가교육과정 개정 때 노동교육 요소를 반영하자고 6일 제안했다. 특정 교과만이 아니라 여러 과목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비중을 강화하고, 취업이나 적성 ..

법조계에는 기수문화라는 게 있다. 군대에서 군번, 대학에서 학번을 따지듯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따진다. 로스쿨 제도 도입 전에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률가를 전원 선발했는데, 최종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에서 2년의 수료 과정을 마쳐야 판사·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다. 연수원 기수가 높다는 건 그만큼 판검사 근속연수가 길거나 변호사 경력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법조계 연공서열의 기준인 셈이다. 언론이 법조계 인사들을 언급할 때 이름 뒤에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를 병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계질서가 강한 검찰에서 기수문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현 정부의 기수 파괴 인사로 줄었다고 하지만 기수문화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동기나 후배 기수보다 고검장·검사장 승진이 늦거나 동기·후배 기수가 검찰총장에 오르면..

많은 기관장들이 연초에 신년사를 낸다. 그러나 현안이 있는 곳 외에는 언론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다. 새해가 밝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어려웠던 지난해를 회고하고, 올해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며, 모두들 복 많이 받자는 덕담으로 끝난다. 외부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은 일부러 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 조직 환경과 문제점 등 구성원들이 평소 듣던 얘기를 나열하는 수준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신축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검찰 가족 여러분!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해 ‘새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며 소망을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로 끝을 맺었다. 작년에 없던 코로나19 방역 강화가 들어갔고, 검찰개혁,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 인권 등 윤 총장이 ..

현실이란 실제로 존재하며 드러난 어떤 것을 가리킨다. 눈이나 촉감 등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어 사실로 선뜻 받아들일 만한 게 현실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그 현실 너머를 상정한 가상현실(VR)이 다가오고 있다. 그 모습은 이미 소설이나 영화에서 더러 그려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 는 미래사회 VR의 모습을 그린 수작이다. 앞서 미국 작가 스탠리 와인바움의 1935년 소설 은 가상현실 개념을 제시한, 이 분야의 효시로 꼽힌다. 여기엔 주인공이 안경 같은 장치를 쓰자 호텔방이 갑자기 숲으로 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이다. 키프로스 여인들을 혐오한 그는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는데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에 감동한 여신 아프로디테가..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된 후 백신이 마지막 희망일 때가 있었다. 백신이 코로나19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그때 음모론이 머리를 내밀었다. 빌 게이츠의 ‘백신 음모론’이다. 각종 전염병 백신 개발에 헌신해온 그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속에 칩이 숨겨져 있고, 이 백신을 맞으면 실시간 감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게이츠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음모론을 들어 게이츠를 공격했다. 물론 가짜뉴스다. 연이은 백신 접종 소식이 여행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를 실현할 ‘백신 여권’ 도입 계획까지 나왔다. 백신 접종자들에게 디지털 증명서를 발급해 해외여행은 물론 식당이나 공연장, 경기장 등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발상..

‘왝 더 독(Wag the dog).’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이다. 주객이 뒤바뀐 경우에 빗대어 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제품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얼마나 적시적소에 유통시키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고객과 연결되지 못하면 끝이다. “유통이 제조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유통 방식 중에도 배달이 중요해졌다. 대형마트로 차를 끌고 가는 모습은 점점 줄어든다. ‘새벽배송’으로 문 앞에서 바로 장바구니를 받아볼 수 있어서다. 아직 시골에는 5일장이 공존하는 세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배달되지 않는 물건이 거의 없다. 가히 ‘만물의 배달 서비스화’다. 코로나19로 배달의 위상은 더 커졌다. 우리가 코로나19 충격을 상대적으로 잘 견디게 하는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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