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四時)는 명확하고 지금은 틀림없는 겨울이다.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뺨을 에는 찬바람, 구슬피 우는 철새. 몇 가지 익숙한 풍경이 있지만 그래도 흰 눈이 보자기처럼 세상을 덮어야 비로소 겨울이 완성된다. 그리하여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듯, 우리도 그 흰 천을 뒤집어쓰고 매서운 세계로 날아가는 것. 퍽 불길하다. 올해처럼 이렇게 낡고 닳은 보자기가 있었던가. 

지난주 철원 고대산으로 갈 때, 혹 눈이 있을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꽃을 찾아 남쪽으로 간 적은 허다했지만 일부러 눈을 찾아 북쪽으로 가기는 처음이었다. 응달의 으슥한 골짜기를 지나 능선에 도착하니 눈기운이 완연해졌다. 이윽고 문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발밑에 시장이라도 선 듯 시끌벅적해졌다. 눈 밟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 다정한 소리. 뽀드득뽀드득뽀드득.

모처럼 접촉하는 눈과의 경계에서 특히 생각해 보는 것이 있었다. 오늘 따라 눈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게 아닌가. 삐거덕삐거덕삐거덕. 그것은 가슴 한쪽을 좀 불편하게 긁는 듯 조금 헐거워진 갈비뼈가 내는 소리를 닮았다. 어쩌면 그것은 장도리로 송판에서 굵은 대못을 빼는 소리로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뜬다. 어디로 떠날지도 잘 안다. 모두들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아래로 잠겨 들어가야 한다. 존재하는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 나무가 잎사귀를 살랑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 이는 돌아갈 곳의 근황을 미리 한번 살펴보는 동작들이 아닐까.

지금 나무는 헐벗었고 아직 꽃은 이르다. 어디에서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이곳은 너무 북쪽이다. 오늘은 꽃 대신 돌이다. 돌은 내 무거운 무게를 잠시 맡기려면 궁합을 잘 맞추는 누군가의 은근한 엉덩이에 불과하겠지만 이 세상의 배후를 궁금히 여기고 궁리하면서 바라보면 지하에서 올라온 참신한 얼굴이 된다. 일찍 넘어가는 산중의 해를 가늠하면서 홀로 뒤에 처진 채 누구를 퍽 닮은 돌들과 내가 내는 소리를 실컷 보고 들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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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를 처음 본 건 청와대 뒤 북악산에서였다. 군인들이 지키는 울타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숙연하게 서 있는 나무. 머리를 바싹 깎은 이등병의 군기가 느껴졌다. 벽돌처럼 오와 열을 맞춘 촘촘한 잎들 사이로 정말 쥐의 똥 같은 까만 열매가 몇 개 숨어 있어 제 이름의 연유를 짐작하게 했다. 한번 들으면 쉬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인왕산은 퍽 자주 가는 산이다. 어느 해 여름 땀을 잔뜩 흘리고 출렁출렁 내려왔을 때 국궁터인 황학정의 뒷덜미쯤에서 그 나무를 만났다. 한때 호랑이를 키울 만큼 깊고 무성했으나 이제는 조금 떨떠름해진 인왕산의 녹음. 그래도 잘 단장된 숲에서 마구 뻗어나가지 않고 숨어서 웅크린 채 영리하게 세상을 관조한다는 느낌의 나무. 쥐똥나무는 그런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시절이 수상하고 기후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겨울이라고 눈 한 톨 구경하지 못한 채 이 계절이 지나가는가. 눈 펄펄 내리지 않는 겨울이 매미 소리 하나 없는 여름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 조금의 기미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와 김해 불모산에 들렀다. 아직 그건 기우일세, 안심하라는 듯 바람은 차갑고 산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다. 아직 꽃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바짝 마른 낙엽의 세상이다. 그 자지러지는 소리 속에서 녹색이 눈에 띄었다. 아, 저건 반상록성이라서 마구잡이로 다 떨어지지 않아요. 꽃동무의 말끝에 쥐똥나무가 의젓하게 겨울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처음 보자마자 특이하게 기억했으나 이제껏 제대로 호명을 못해준 쥐똥나무. 오늘 조금 스산한 풍경에서 올해의 간지와 연결되면서 단박에 홀랑 마음을 뺏어간 쥐똥나무. 어쩌면 그간 내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경자년이라고 이제야 이렇게 영리하게 툭 달려드는 것일까. 푸들푸들 고두밥처럼 가지 끝에 촘촘히 달리는 향기로운 꽃들을 떠올리며, 쥐띠해의 첫 산행에서 특별히 반갑게 만난 쥐똥나무를 여기에 적는다. 쥐똥나무,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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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에 보고 듣고 읽은 것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치국은 나라를 다스린다고만 굳건히 알았는데 나라를 치유한다고 새길 수도 있다(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 노자에서 지극히 좋은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를 ‘상,선약수’로 끊어 읽으면 상투적인 말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런 뜻밖의 뜻을 얻을 수도 있다. 윗대가리가 물처럼 잘해야 한다. 덕불고필유린.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풀이가 아주 강고하다. 이 또한 조금 비틀어보면, 덕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더불어 함께하는 덕목이 있다(<이탁오의 논어평>). 마치 불행이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오는 것처럼.

경자년이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올해는 또 무슨 생각이 찾아올까. 강가에 한해살이풀처럼 서서 흘러가는 것을 거저 바라보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득 번개 같은 꾀가 떠올랐다. 한해를 연초에 열고 연말에 닫는 학교로 삼기로 했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좀 분명해지는 듯했다. 간지를 따라서 교명은 경자학교로 명명했다. 올해 크게 할 일도 역시 산을 찾는 것. 가서 나무와 그 너머를 자꾸 짚어보는 일에 매달리기로 했다. 교가도 정했다. 백마야 울지마라.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빼놓지 않고 본 <가요무대>에서 송해 선생이 참 찰지게 부른 노래다. 곡조는 물론 가사가 올해의 나이와 지금의 심사를 잘 대변해주었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거치른 타관 길에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올해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인왕산에 오른다. 내가 나무를 찾아 산으로 드나든 건 인왕산이 시초였다. 말하자면 여기는 내 나무 문명의 발상지다.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정작 인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찔러왔었다. 산의 나무들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귀를 닫고 있다는 낭패감이었다. 저 산꼭대기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인왕산 넘어 첩첩산중으로, 나무들 너머의 곡절을 찾아서 경자학교의 대문을 성큼 출발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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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밋밋하게 짝수로 끝나지 않고 하루가 돌출해 있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기해년 삼백예순다섯 날은 그날로 수렴되어 가고 있다. 등대처럼 반짝거리는 그 마지막 날에 바닷가나 산정으로 가서 일출을 보면서 또 살아갈 날을 가늠해 보고 그에 따른 많은 결심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을 염두에 둔 마지막 주말.

채널의 맛은 돌리기보다는 끄는 데 있다. 뻔하고 빤한 텔레비전을 간단히 처치하고 남한산성을 찾았다. 총각 시절 꽤 자주 찾았던 예전의 정취가 그런대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걷는 길은 더욱 낮고 단단하게 다져졌다. 한 해 한 번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하다. 연말을 기념하여 공중의 말씀 같은 눈발을 기대해 보았지만 하늘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울퉁불퉁 성곽길과 호젓한 오솔길을 번갈아 걸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꿋꿋한 햇살을 받아 소나무 그림자가 내려앉고 그 사이로 내 그림자도 눕는다. 문득 이 고요하면서도 번잡한 숲에서 그림자들끼리는 뭔가 내통하지 않을까, 궁리가 일어났다. 이 세상의 배후는 어딜까, 궁금증도 솟아났다.

남한산성. 파란만장으로 점철된 이 조그만 산중도읍은 서울을 압축하여 옮겨놓은 듯 행궁은 물론 종로도 있고 시구문도 있다. 이윽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소나무와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식수했다는 전나무가 우뚝하다. 너무 늙은 나무들 아래 솔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수어장대(守禦將臺). 기단은 허물어지고 2층 건물은 낡아도 일필휘지는 늠름하기만 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눈썹같이 꿈틀거리는 글씨를 보며 생각해 본다.

한 해가 가는 건 누가 채널을 돌리는 것. 솔방울이 툭, 떨어지는 건 따로 한 세상이 열리는 것. 땅으로 들어가는 솔방울의 전생인 듯 아직 가지에 의연히 달려 있는 솔방울이 불쑥 마음을 치고 들어왔다. 바람에 날리는 송화 가루를 포착해서 자라난 열매. 봉함엽서처럼 씨앗을 간직하느라 입을 앙다문 듯 야무지게 또랑또랑하던 솔방울. 이제 꼭 품고 있던 씨앗을 모두 출가시키고 활짝 벌어진 솔방울들. 그들의 저 활연대오(豁然大悟)가 자꾸자꾸 내 마음을 빼앗아간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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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따뜻하더니 잠깐 맹렬했다가 아차 하는 순간 쌀쌀맞기 그지없는 애인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서해로 퐁당 빠질 때는 언제고, 또다시 꿋꿋하게 떠오른다. 그런 해에게 참 대단하다는 말을 붙여준다면, 그가 매일 펼쳐놓은 좌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게는 수수께끼라는 말이 참 어울릴 것 같다. 삶은 수수께끼. 이 네 글자가 없었더라면 삶이라는 이 난해한 현상을 어떻게 하루인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꺼내어 나를 사방으로 데리고 다니는 다리와 그런 다리의 능력을 이용하여 그 어디로 나를 또 건너게 하는 다리는 이름이 같다. 왜 다리는 다리이고 다리라 하는가. 더러 그런 시시한 궁리도 해가면서 모처럼 부산여행을 겸해 희귀식물조사대에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거문도에서 발견되어 거문도닥나무라고 칭호를 얻은 나무의 서식지인 기장의 어느 해변을 탐사하는 길. 가는 길목에 잠깐 바닷가 절에 들렀다.

대개 절은 다리 한두 개는 건너고 나서야 일주문 통과를 허락한다. 해남의 어느 큰 절의 입구에 피안교가 있다. 다리 건너 불국토로 들어가 절이 마련해 준 그 절절한 불심에 흥건히 젖었다가 다시 피안교를 곱다시 건너야 했다. 나의 아쉬움은 그것이었다. 산으로 들었다가 산에서 나갈 때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다리의 이름은 하나인가. 왜 그대로 피안교인가.

그런 총중에 거문도닥나무 찾으러 가다가 잠깐 들른 기장의 해동용궁사에서 모처럼 기회를 얻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절’답게 용궁으로 들어가듯 해수면 가까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잘록한 문 하나가 있어 속세와 불국토의 경계가 된다. 들어갈 때는 만복문이더니 나올 때는 등룡문이다. 같은 문인데 들어갈 때와 나갈 때 그 이름이 사뭇 다르다. 생명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말을 믿으며 파도의 응원가를 들으며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오르자니 등룡하는 기분? 매일 떠오르는 해도 어쩌면 이런 기분일까! 그런 허튼수작도 해보면서 기장 대변항의 해변에서 거문도닥나무를 마침내 만나 각별하게 오래 쓰다듬은 하루. 거문도닥나무, 팥꽃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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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복

코밑의 수염도 어쩌지 못하는데 저 멀리 늘 떠오르는 해를 어쩔 수 있겠는가. 혁명은커녕 벽지도 못 바꾸고 달력사냥이나 하는 연말이다. 굴뚝으로 들어가는 산타처럼 기해년도 쫄깃하게 수렴되어 이제 그 어떤 잘록한 구멍으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지난주에는 산으로 가던 길을 끊고 삼청동의 사진전으로 갔다. “산속도 속세를 벗어난 선경이요, 도시도 속세 안의 선경”임을 카메라로 포착해내는 이갑철의 “적막강산, 도시징후”. 

꽃산행에 나서 우리 강산을 돌아다니면 마음이 한움큼 뽑혀 나갈 때가 있다. 꽃보러 나왔다가 자연의 사정에 마음을 홀랑 빼앗기는 순간이다. 하늘과 산이 연출하는 ‘저절로 그러함’을 목격하고도 놓친 것을 뒤늦게 줍는 느낌과 함께 내 늑골 안쪽의 골짜기를 오늘에서야 비로소 찾는 듯하다.

한 바가지의 적막과 함께 귀가하여 그간 쏘다니며 찍은 꽃사진을 정리하였다. 나름 귀한 꽃, 좋았던 장면의 우열을 다퉈볼까 싶기도 하였지만, 그건 내가 나한테 할 일은 아니었다. 산에서는 비교급도 최상급도 없다. 올해도 절실하게 많이 배운 식물탐사대 꽃산행에서 만난 성주풀에 마무리를 맡겼다. 

하루에 갈 수 있는 가장 먼 뭍의 하나인 전남 신안의 팔금도. 그 섬의 가장 높은 채일봉으로 가는 길. 넓은 임도 초입의 산기슭에 철분을 함유한 지하수가 번들번들 흘러나왔다. 귀한 풀들이 자라는 조건의 그 질척한 풀밭에 이삭귀개와 노란 꽃잎의 성주풀이 보였다. 우리나라에는 오직 1종만 자생하고 경북 성주에서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은 꽃이다. “동아시아의 열대에서부터 난대의 습한 풀밭에까지 자라는 1년초. 전체에 굳은 털이 있고 뿌리는 적갈색. 잎은 대생하며 잎자루가 없고 끝이 뾰족한 피침형. 꽃은 황색, 원줄기 윗부분의 수상화서에 달린다. 꽃받침은 앞쪽이 얕게 터지며 끝이 뾰족하다. 열매는 삭과이며 타원형, 끝이 뾰족하고 종자에 줄이 있다.”(<대한식물도감>, 이창복)

생명의 흐름에서 잠시 사람으로 나왔듯, 도시도 자연이 잠깐 파견한 곳이다. 제아무리 구별되려고 해도 결국 자연에 포위됐고, 나무들이 내어준 공간에 불과하다. 기해년의 막바지에 운좋게 만났던 성주풀. 일년만 사는 풀이기에 지금 그 자리는 뚝, 흔적도 없겠다. 적막하겠다. 그 작은 몸으로 뾰족한 것투성이인 채, 올해의 내 적막을 완성해 주는 성주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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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짧을수록 좋더라. 버스든 지하철이든 정거장은 시 한 편 읽기에 딱 알맞은 간격이다. 그러니 도로마다에는 가로수와 간판과 더불어 시집도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는 셈이겠다. 그제 아침 출근길의 라디오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연기’가 튀어나왔다.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에 실린 그 시는 마지막 구절이 내가 기억하여 외우는 것과 사뭇 달랐다. 황량과 적막의 차이. 지나간 것이라고 쉽게 관대한 건 아니겠지만 시에 관한 한 나로서는 오늘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

산에 다니면서 꽃도 꽃이지만 꽃이 처한 사정이나 사연에 주목을 해왔다. 몇 해 전 태백산을 다녀오다가 맞닥뜨린 풍경 속에서 대학시절에 만났던 ‘연기’를 다시 만났으니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 이윽고 도시락을 다시 빈 도시락으로 만든 뒤 하산하는 길이었다. 오전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거의 다 내려오자 백단사 근처의 약수암이 나타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요사채가 보이고 뭉클뭉클 피어나는 흰 연기가 공중에 뚜렷했다. 좁은 함석 굴뚝을 빠져나와 하늘의 깊이를 재면서 더욱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흰 연기. 문득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기막힌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약수암에는 호수 대신 작은 개울이 흐르고 물푸레나무, 귀룽나무, 고광나무, 물참대가 줄지어 자란다. 누군가 전지가위로 물참대의 마른 줄기 끝을 조심스레 잘라 함께 공부하였다. “이 물참대의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요!” 과연 물기를 잃고 말라가는 줄기 안에 뻥 뚫린 구멍이 있고 그 구멍 너머를 오래 더듬었던 기억.

출근길에 만난 시 하나가 여러 기억을 소환했다. 연기는 안과 밖을 구별할 줄 아는가 보다. 그러기에 지금 저 멀리 여의도 어느 건물에서 저렇게 기를 쓰고 위로 오르지 않겠는가.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시 한 편이 그려내는 적막한 공간에 젖어들면서 물참대 가지의 빈 구멍을 생각하며 자유로의 빈 구멍 속으로 달려나갔다. 물참대,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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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은 아니지만 ‘심’ 자로 시작하는 심학산 아래 웅크리고 지내면 뜻밖의 일을 겪기도 한다. 새벽 3시에라야 새벽 3시의 생각은 찾아오는 것. 북으로 가던 철새가 고도를 낮추어 퉁소를 연주하는 심야 음악회도 있다. 그렇게 몇 밤을 건넌 뒤 서울로 나오면 어디 먼 고대(古代)로부터 외출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도시는 부황하고 아찔하다. 그제는 몇 가지 볼일을 몰아서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가야 했다. 따뜻한 곳만 따뜻하고 추운 곳은 아주 추운 서울. 무려 20층짜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뒤 사기접시 속의 점심을 먹고 옛날 궁리출판의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처럼 의젓한 인왕산.

서촌의 통인시장 근처 길담서원에 들렀다. 오래전 마음이 허할 때, 이 벽의 책들을 다 읽으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했다가 아주 인상적인 말씀을 들은 바가 있었다.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번에는 무슨 진전된 답을 주실까. 손바닥만 한 정원을 지나고 현관을 들어서자 벽마다 책들이 빼곡하고 한쪽의 한뼘미술관에서는 풍경화가 전시 중이다. 고래(古來)의 공기가 흐르는 듯한 길담서원. 사방의 은은한 문자향을 즐기다 결국 마음속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곧 서울을 떠나신다고요. 공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내년 봄 백제의 고도(古都)에서 답을 듣는 것으로 미루고 때이른 작별인사만 드렸다.

황현산과 김용옥. 두 권의 책을 사고 일어서는데, 학예실장님이 문밖까지 나오셨다. 화단에서의 대화. 이 녹색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네요. 하늘메발톱, 산국, 인동초, 맥문동, 조팝, 찔레, 앵두나무. 한철을 함께한 동무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겨울 문명을 일구려는 꽃밭. 이름을 듣고 보니 아주 쓸쓸하지도 낯설지도 아니했다. 푸석한 토질을 가리키며 능청 늘어진 줄기에 빽빽하게 보랏빛 열매가 달려 있다. 좀작살나무였다. 내 은연중의 질문을 눈치채고 무슨 답을 주시는 게다. 안의 저 책이 아니라 바깥의 이 열매! 공중을 빠져나가는 한 입구처럼 병목현상이 벌어지는 좀작살나무 열매를 보다가 깊숙이 절하고 나의 고대로 얼른 복귀했다. 좀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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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광야’, 이육사)는 한 개결한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그로 인한 영향인가. 저 만주 벌판에서 땅이 아래로 달음박질해서 내려와 남해로 풍덩 뛰어든 게 한반도의 지형이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제주의 한라산(1950m)이 가장 높고 지리산(1915m)이 그다음이고 설악산(1708m)이 막내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생명이 바다에서 온 것처럼 산도 물에서 온 게 아닐까.

‘봄의 꽃 소식은 북상하지만 가을의 단풍 소식은 남하한다’(과학의 한귀퉁이, 김홍표)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래서 강원도의 저 야단스러운 단풍도 남해 근처에 이르러서는 다소 수굿해질 것으로 짐작해 왔다. 이 또한 나태한 내 상식의 등짝을 후려치기에 족한 것이었다.

뜻밖의 나무를 기대하며 찾은 거제도 북병산. 몇 개의 연륙교로 너나들이하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섬은 섬이다. 모든 것을 단단하고 옹골차게 밀집시키는 재주를 섬은 가졌나 보다. 거제의 단풍은 내 짐작을 보기좋게 배반하는 게 아닌가. 공중은 공중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오밀조밀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알록달록하기가 그지없는 섬의 단풍들.

지금 산에 이렇다 할 꽃이 없다고 하나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면 눈에 들어오는 꽃들이 아직도 수북하다. 골무꽃이 싱싱하고, 한라돌쩌귀도 늠름하게 피었다. 아마 이 골짜기가 보유한 마지막 용량일까. 남녘의 꽃들이 이처럼 안간힘을 다하는 것처럼 지금 강원도 어느 인적 없는 심산유곡에서는 매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지도 모를 일…이라고 상상하면서 숲과 덤불을 빠져나오는데 무엇인가 바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 있다.

식물들은 자신의 전부를 몽땅 집어넣은 열매를 가급적 멀리 보내려고 기발한 전략을 동원한다. 바람, 새, 다람쥐를 부르기도 하지만 오늘 나도 모르게 나를 이용하는 건 도깨비바늘이었다. 내가 섬, 단풍을 비롯한 눈앞의 풍경에 감탄하는 사이 내 바지에 슬쩍 들러붙은 도깨비바늘. 다 뗐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미끼였고 집에 와서 보니 정작 튼실한 녀석은 엉덩이에 붙어 서울까지 진출했다. 네가 이겼다! 도깨비바늘,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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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형태를 관찰하면 대개 뿌리-줄기-가지-잎-꽃-열매의 순서다. 제아무리 우람한 팽나무도 두 장의 떡잎에서 시작해서 이 순서를 따른다. 살아 있음을 대표하는 生(생)은 이런 모습을 형용한 글자이다. 지면을 뚫고 나오는 어린잎의 씩씩한 팔뚝이 저 한자에는 배어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동물들의 서글픔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식물들의 의연함에서 그 뜻을 길어온 것이다. 나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인생이라는 말도 한번 가늠해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서슬에 촉발되어 그 덧없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나이 혹은 계절. 

나고 피는 순서는 조금 달라도 대개 꽃보다 잎은 더 멀리 간다. 꽃은 잠깐 피고 잎은 오래 핀다. 지금은 꽃에 하나 꿀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단풍의 시간. 꽃에 취해 좋다고 히히덕거리다가 사무실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산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단풍이다. 꽃 진 자리에 영롱한 열매와 그 옆에 접시처럼 어우러진 단풍잎을 보면서 아, 세월 한번 참 빠르다, 하려니 나는 참 얕고도 얕구나. 

무지와 몽매를 옆구리에 끼고 화살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느끼며 광양 백운산으로 간다. 사람의 한평생 눈 쌓인 진흙에 기러기 잠깐 내려 발자국 남기는 것과도 같고, 무성했던 구름이 순식간에 스러지는 것과도 같다는 옛글을 떠올리며 산 초입의 어느 둑방길에 이르렀다. 비슷한 어깨의 갈대와 억새. 키가 껑충한 갈대와 억새는 門(문)처럼 나란히 서 있고 그 틈을 본다. 둑 건너 자동차 전용도로 위의 차들은 거칠 것이 없다. 세상의 주인인 양 씽씽 달린다. 관광버스, 레미콘차, 이삿짐차, 돼지를 싣고 가는 차, 승용차. 차를 부리나케 쫓아가는 차, 차, 차들. 바람이 불자 벌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갈대와 억새의 문틈 사이로 망아지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각종 차들을 망연히 보았다. ‘사람이 이 천지 사이에 살고 있는 시간이란 마치 준마가 벽의 틈새를 언뜻 지나가듯 순식간’(장자)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바람을 빌려 고개를 끄떡거리는 갈대와 억새.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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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을 빗댄 11월11일. 지릅대기 모양을 빙자한 국적도 없는 고약한 놀이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린 지 여러 해다. 이른바 빼빼로 데이. 빼빼 마른 몸매에 대한 집착인가. 어느새 젊은이들까지 이 개념 없는 풍속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통속적인 과자 하나에 이날의 의미를 줘버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경박한 일이다. 하루를 일생에 치환해보자. 1111, 1111은 11월11일 11시11분. 이 시간은 어디쯤에 해당할까. 빼빼로에 눈이 멀어 아차 하는 순간 오전은 훌쩍 지나가고 청춘은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더니 11월11일을 맞아 곳곳에서 가래떡의 날을 진행한다는 뉴스가 많다. 빼빼로 데이를 물리치고 우리 전통이 깃든 가래떡으로 간식을 즐기자는 취지의 행사를 농협에서 많이 벌인다. 가래떡을 입에 물고 있는 사람들. 사진 찍고 나서 가래떡을 참기름에 푹 찍어 꿀떡 삼켰겠다. 얼마나 맛있을꼬! 

지난 일요일, 춘천을 다녀오는데 서울에 진입할 무렵 비가 차창을 두드렸다. 내일이면 11월11일이기에 더욱 맞춤한 가을비. 문득 생각하노니 지금 내리는 이 비들야말로 11111111의 행렬이 아닌가. 비는 식물들에겐 그야말로 빽빽한 물줄기가 아니겠는가. 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농부들에겐 새참 같은 국수가락이 아니겠는가. 아하, 사람과 사물에게 모두 시원하게 튕, 튕, 튕 튕기는 !!!!! 느낌표가 아니겠는가. 

단풍에 취한 사이 가뭄까지는 아니래도 가을비가 좀 뜸했다. 코를 거꾸로 세워 그냥 받아마시고 싶을 만큼 몹시 달콤한 가을비를 보며 왼편으로 고개 들어 천마산을 보았다. 몇 해 전 처음으로 이 산으로 꽃산행을 갔던 날, 이렇게 산행기를 적었다. “오늘 많은 나무들이 제 이름을 찾았다. 산은 그냥 삼각형의 흙덩어리만은 아니다. 앞으로 천마산을 지나칠 땐 골짜기와 능선, 숱한 돌 틈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겠다.” 

산 입구의 생강나무는 오늘도 안녕할까. 이 비를 맞으며 내년 봄에 가장 먼저 피어나려 오늘밤 훌쩍 자라겠지. 생강나무를 생각하면서 생강나무와 함께 어둑한 집으로 들어왔다. 생강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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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도 많고 기름진 고장도 많지만 이름으로 진주만 한 데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진주가 지도에서 빠진다면 참 쓸쓸하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진주 진양호 숲을 탐사했습니다. 이 고장 출신의 문인묵객이 허다하지만 그중에 잠깐이나마 직접 안면을 익혔던 한 시인이 유독 떠올랐습니다. 그이가 생전에 가꾸고 부린 말에는 이 진양호의 깊은 물빛과 수직 절벽의 아찔함이 다 들어 있겠다는 짐작도 함부로 해 보았습니다.

진양호가 거느린 산은 얌전하고 납대대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물을 깊이 가둔 탓에 물 가까이는 깎아지른 절벽이 많습니다. 한 발 삐끗하면 그냥 물의 나라로 입국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잠시 왔던 꽃들이 모두 저희의 나라로 입적하고 난 뒤의 스산한 시기에 이곳은 진주바위솔이라고 하는 탁월하기 이를 데 없는 꽃을 피웁니다. 범접하기 힘든 절벽에 자리잡고 있기에 더욱 귀하고 드문 진주바위솔. 한 해가 저무는 마당에 이 꽃이 없었더라면 우리 산하는 그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오늘은 못 볼 줄 알았는데 경사를 헤치고 가시 많은 나무를 다스리며 나아간 꽃동무 덕분에 아찔함 속의 황홀을 만끽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 이 시간을 숲에서 맞는 자신이 퍽 대견하고 흡족합니다. 숲속의 나무를 보면서 공부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나무와 졸참나무 잎의 결정적 차이, 감국과 산국의 구별법 등 저의 눈과 귀는 몹시 바빠집니다. 어느덧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고 편안한 나무 계단이 이어졌습니다. 멀리 노란 등이 켜졌습니다. 으레 흔하디흔한 산국으로 짐작하고 내빼려는데 아니었습니다. 저도 알겠기에 아, 이고들빼기군요, 했더니 왜 이고들빼기인 줄 아세요, 하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가진 게 고것밖에 없는 난처함으로 우물쭈물했더니 이고들빼기를 헤치더니 잎의 아랫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잎의 밑부분이 귓불처럼 둥글고 도톰하게 늘어지면서 줄기를 넉넉하게 감싸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고들빼기라고 한다면서 저의 귀를 슬쩍 만져주었습니다. 이순에 만난 참으로 거창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고들빼기, 국화과의 한두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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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

후배가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자월도에 별장을 마련하고 집들이를 하였다. 섬은 물에서 웃자란 땅, 애처로운 데가 있다. 이름에서 제주 애월을 떠올리게 하는 자월에 도착해서 몸을 세 번 훌쩍훌쩍 뛰었다. 해당화 울타리의 허름한 연립주택에 당도하니 격조했던 살림살이가 심심한 강아지처럼 왈칵 달려들었다. 해변 소나무숲에 해먹을 치고 멍 때리러 나가려는데 안방 미닫이문이 스르르 닫힌다. 다시 열어도 저절로 닫힌다. 아무도 없는데 또 닫힌다. 어디서 오는가, 이 무심한 기울기는.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나가려니 비로소 들어오는 현관 풍경. ‘뻘밭’에 나갈 때 신는 장화 다섯 켤레가 코스모스처럼 가지런히 서 있다. 둘은 크고 셋은 작다. 큰 장화에서 작은 장화로의 귀여운 기울기. 누가 보냈을까, 마음까지 자꾸 간지러워진다. 이 작은 신에 발을 넣은 적이 내게도 분명 있었지. 돌이킬 수 없는 나날 속에서 이틀을 뭉텅 잘라 자월에 온 것도 이런 기울기에 미끄러진 것이겠지.

이튿날 뒷산에 올랐다. 길쭉한 섬이라 능선에는 기울어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겨울로 기우는 계절. 산국을 비롯해 쥐꼬리망초, 산박하 등이 안간힘을 다해 보지만 아래로 기우는 기운은 어쩔 수 없다. 이윽고 정상을 지나 완만한 사면에 이르니 자잘한 열매를 단 보리수나무가 서 있다. 흰 주근깨가 표면에 자글자글 끓는 붉은 열매. 하나 따서 입에 넣으며 나는 고향의 외가로 달려갔다.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외가에 가면 이상하게 우리집보다 항상 먹을 게 많았다. 대청마루 소쿠리에는 정금과 보리수나무 열매인 ‘뻐리똥’이 가득 담겨 있었지.

볼이 미어지도록 먹던 기억을 되살려 몇 알 넣으니 그때의 맛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지 않겠는가. 지금은 짠물에 포위되었지만 예전에는 다 뭍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섬에서 단물이 나오듯 보리수나무의 열매는 정확히 그 맛을 내고 있는 게 아닐까. 변한 게 있다면 내 탓이다. 이제 제법 세월이 흘러 그 많은 것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나를 그 어디로 데려가는 보리수나무의 열매, 뻐리똥. 어디로부터 말미암은 것인가, 날이 갈수록 가팔라지는 이 시큼한 기울기! 보리수나무, 보리수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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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며칠만 돌이켜본다. 과거는 실은 앞날에 있다. 뒤돌아보는 일도 앞을 보는 것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복도로 나와 신문철을 뒤적이니 며칠 전의 그 기사가 나온다. “경주 금령총서 최대 규모 56㎝ ‘혀 내민 말 모양’ 토기 발굴”이라는 제목이다. “혀를 낼름 표현한 말 모양 토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주 금령총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압도적인 크기(56㎝)의 말 모양 토기가 발굴됐다. 그런데 이 말 모양 토기의 모습은 혀를 쑥 내밀고 있었다.”(경향신문 10월1일자)

하필이면 왜 혀를 강조한 말일까. 거의 실물 크기라는 말 사진을 보면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왜 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혀를 꼬부리고 있을까. 수도꼭지를 틀면 찬물과 더운물이 같이 나오듯 혹 지금 말은 거짓말이나 참말이 저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말하려 함은 아닐까. 

참 말이 많은 시대다. 라디오에서는 노래보다 수다가 더 많다. 산에 가면 꽃에도 꽂히지만 생각을 발굴하기에 좋다. 걷는 것과 궁리하는 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체 기관 중에서 많이 사용하는 게 발이라면 가급적 적게 사용할 게 입이어야 하지 않을까. 밥과 말은 한 기관을 공통으로 이용하니 먹은 만큼만 말할 기회를 주자는 입법청원이라도 해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데 어느덧 광양의 백운산 골짜기였다. 드물게 일본목련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에 가면 나무는 혀처럼 잎을 달고 있다. 같은 햇빛과 같은 물을 먹은 탓에 나무의 혀는 비슷하다. 내는 소리도 한결같다. 그저 받침 없는 홀소리들.

일본목련의 매끈한 허벅지에 누군가 칼로 예리한 빗금을 그어놓았다. 산에서 직선을 사용하는 건 인간들뿐이다. 글을 안다고 제 이름 석 자를 새겨놓은 것이었다. 마이크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말하면 되었지 이렇게 나무를 괴롭히는 건 무슨 심보인가. 신라 시대의 말은 그 말을 전하려 이렇게 뒤늦게 나타난 게 아닐까. 나무는 그 상처를 오래 기억하며 못난 이름을 천천히 지우고 있었다. 내 얼굴을 덮고도 남을 만큼 큰 잎, 아니 큰 혀를 가진 일본목련, 목련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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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의 매제가 처음 고향에 와서 여동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와, 앞산 뒷산 사이에 장대를 걸쳐놓아도 되겠네. 드넓은 호남 벌판을 끼고 살다가 경상도 산간벽지의 좁은 동네를 보고 재치있게 마음의 한 자락을 질러본 셈이겠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김제, 정읍, 부안, 고창의 곡창지대를 달리는데 좌우가 다 들판이다. 뜨내기 나그네의 마음마저 부자로 만들어주면서 나락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오늘은 논에 사는 멸종위기종의 식물을 조사하는 데 따라나섰다. 멀리에서 내려다보는 산이 들으면 참 가소로운 일이겠지만 한때 국회의원이라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런 줄이야 잘 모르겠다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국회의원이야 또 뽑으면 되지만 한번 사라진 식물은 설령 온 인류가 다 들고일어난다 해도 돌이킬 수가 없는 법이다.

방아깨비와 그 동무들이 후드득 먼저 반기는 논두렁에 섰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옆에서 논두렁도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때 이곳은 내 좋은 놀이터였다. 이 좁고 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논두렁은 작은 밭이기도 했다. 논에 나온 쌀로 밥을 짓는다면 논두렁에서 나온 콩은 반찬으로 흡족했다. 어머니는 모내기 끝난 뒤 그 자투리 밭도 그냥 묵히는 게 허전했던 것이다.

나는 문득 몹시 놀란다. 그저 지나다니기만 했던 논두렁에 이리도 많은 종류의 식물이 살고 있다니! 더구나 하나하나 그 까무러칠 법한 이름이라니! 이 황홀한 학교에서 오늘 얼굴을 맞댄 식물을 호명해 본다. 밭뚝외풀, 금방동사니, 황새냉이, 둥근하늘지기, 여뀌바늘. 그저 입에 넣고 중얼거리기만 해도 입안에 까끌한 문명이 건설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한 자태가 있으니 민구와말이다. ‘습지에 나는 다년생 수초, 물 위의 잎은 5~6장씩 윤생, 털이 없으며,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길이 1~1.5㎝, 너비 3~5㎜, 잎자루는 없음, 꽃은 홍자색, 화관은 통 모양, 끝이 다소 입술 모양’(이영노, <한국식물도감>). 이러니 이들의 응원으로 자란 쌀밥 먹을 때마다 어찌 특별한 소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구와말,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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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합천 해인사에서 큰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직접 가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화면으로만 눈여겨보았다. 존재의 뚜껑을 따듯 누운 자세로 발을 환히 드러내 보이는 큰스님. 최대한 많이 땅과 접촉하는 자세로 최대한의 이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얼굴보다는 발바닥을 앞장세우고 먼 길 떠나는 중이었다. 

성경을 읽는다고 저절로 신자가 되는 건 아니겠다. 분열과 증오, 조롱과 선동으로 얼룩진 뉴스의 홍수 속에서 쿵,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뜻밖의 가을 태풍 링링에 해인사 장경각 앞의 학사대 전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놀라운 뉴스를 듣고도 며칠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갈 뻔했다가 쓰러진 나무를 호출해 준 건 역설적으로 또 다른 태풍 마타였다. 마음이 흉흉한 탓인가. 어쩌자고 나는 이웃집 할머니의 늙어가는 얼굴에는 무심하고 태풍급의 사고에만 이렇게 반응하는가. 

내 고향 거창에서 뒤로 자빠지면 뒤꼭지가 깨질 만큼 합천은 가까운 동네다. 동네 어른들은 추수 끝낸 마을여행, 대성중학교 형들은 수학여행으로 해인사를 갔었다. 그때 꼬맹이였던 나에게 최치원이가 죽기 직전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더니 그게 나무로 자랐대. 귀에 솔깃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바로 그 전나무가 쿵, 쓰러진 것이다. 최치원 지팡이의 손자뻘쯤 되는 수령 250년의 나무라고 한다. 

전나무의 행방을 찾다가 현장 사진을 보았다. 밑동이 부러진 전나무는 커다란 허공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스님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듯 나무 안에서 나온 큰 구멍이다. 다음 나라에 가는 데 필요한 여권처럼 나이테도 환히 드러났다. 해인사 스님들은 나무들 세계에서 큰스님에 속할 나무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봉행하고 문화재청은 뿌리를 보존하고 후계목을 심어 후사를 잇기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아, 고맙고 다행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언젠가 지하에서 하나로 반죽이 된다. ‘깜깜 한밤중 창밖에 비 내리고/ 등불 아래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의 울적한 심사를 읊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최치원. 지음(知音)보다 짙고 혈육보다 끈끈한 지팡이와 해후하며 또 어떤 시상에 잠기실지! 전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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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지나면 휴지가 되어버리는 신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제법 건질 게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신문 사회면의 모퉁이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첫 문장이 ‘나, 너, 우리’로 바뀐다는 단신이었다. 아니 이게 뭔 기삿거리인가!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거창한 시대정신이나 교육이념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아이에게 한 사회가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첫 언어는 대단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어의 첫 문장은 몇 번 변했다. 광복 직후에는 ‘바다, 나라, 가자’였다. 내가 배운 건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이리 오너라.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순이야 이리와. 나하고 놀자’였다. 천자문의 우주홍황은 아니더래도 왜 개까지 등장시켰을까.

스위치를 누르면 톡, 꺼져버리는 화면에서 며칠 전 짤막한 뉴스가 눈길을 끈다. “국립국어원이 명사 ‘됨됨이’와 ‘엉덩이’, 동사 ‘그리하다’, 형용사 ‘예민하다’ 등 몇 단어의 뜻풀이를 추가했다. (…) 됨됨이는 ‘사람으로서 지니고 있는 품성이나 인격’이라는 뜻으로만 썼지만, ‘사물 따위의 드러난 모양새나 특성’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가을 태풍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먼 산에 가지 못하고 유리창에 붙이는 신문지처럼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심학산에 올랐다. 늦털매미가 알뜰하게 운다. 인간처럼 말은 못하지만 몇 마디 음률로 성실하게 울다 간 올해의 보통 매미들. 일제히 종적을 감춘 여름의 처사들을 떠올리다가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처럼 언어의 가치가 떨어진 때가 있었을까.

어둑한 산길. 말의 가치 하락을 궁리하는 내 머릿속과 장단을 맞추듯 숲속에서 상수리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툭, 툭, 툭 귀를 간지럽혔다. 오늘의 글감을 구하러 두리번거릴 때 개여뀌의 빨간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다. 집 근처 뒷산에서 보았다고 함부로 쉽게 볼 건 아닌 풀. 그 옛날 시골에서 잎을 갈아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던 풀. ‘개’가 붙은 독한 풀이지만 그 됨됨이를 잘 다스리면 약으로도 쓰이는 개여뀌.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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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순간 21g이 줄어든다고 한다. 21g, 그것은 영혼의 무게일까? 5센트 동전 5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21그램>의 마지막 독백이다. 가장 작은 새인 벌새를 직접 본 적 없지만 대략 꿀벌만 하지 않을까. 꿀벌 한 마리 현호색의 꽃대궁을 붙들고 땅에 닿을 듯 휘청, 구부러지는 것을 보며 저게 바로 내 영혼의 무게이려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생태계에서 영화 <벌새>에 대한 주위의 강력한 평을 들었다. 안 보고는 그나마 있던 내 영혼이 증발할 것만 같았다.

화면에서 보는 아파트는 참 다닥다닥한 공간이었다. 현관 열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투성이의 신발 벗으면 곧바로 거실이고, 문 하나로 바로 방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 벌어질 때 숨을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떡집 막내딸인 은희는 중학생. 왼손으로 만화를 그리면서 가슴속 질문 하나는 그래도 붙들고 생활한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가족은 물론 학교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은희를 상대해 준 이는 한문학원 선생님이다. 왼손으로 한자를 잘 쓰는 그는 은희 마음에 한 획을 그어주며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흰 종이가 사무치게 좋았나. 연필로 만화를 그리듯 손바닥으로 백지를 쓰다듬는 은희.

영화에는 나무가 표나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친구와 헤어지는 곳도 다시 만나는 곳도 나무 아래에서다. 가장 크게 클로즈업되는 당단풍나무는 가을의 복판에서 프로펠러 같은 열매가 성숙하고 있다. 있던 곳의 그늘을 피해 되도록 멀리 날아가기 위해 저런 장치를 가진 것이다. 벌새는 무수한 날갯짓으로 공중에서 정지하여 꿀을 빨아먹는다. 은희는 가끔 벌새처럼 뛰어오르지만 공중에 머물 수는 없다. 중력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 삶의 무거움을 스스로 이겨내어야 하는 건 본인뿐이다. 영혼의 무게만 한 무거움에 휘청이던 현호색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영화 속 나무로 글을 마무리하자. 

벌새의 날갯짓처럼 눈을 반짝거리는 은희, 가슴속 한 획을 붙들고 당단풍나무 열매처럼 멀리 회오리쳐 날아가기를!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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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다. 추석 기념으로 이렇게 비틀어 보면 어떨까. 텔레비전은 방에 걸린 최신식 달이다. 올 명절에도 둥근 달은 물론 네모난 달을 많이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 걸린 <대서사시 옐로스톤>의 한 대목에 잠자리가 등장했다. 3억년 전 진화를 거친 끝에 생명체 중 가장 먼저 공중을 날아올랐다는 잠자리의 시야는 360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눈으로 멀리 지나가는 먹잇감을 포착해서 재빨리 낚아챈다. 연이어 시청한 영화 <마션>의 한 컷. 화성에 홀로 고립된 동료를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우주에서 필사적으로 도킹하는 장면은 잠자리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 물리적으로 비슷한가.


떼 지어 나는 새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북적거려 계절마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가는 행로가 맞는가. 새들도 불안한지 주소를 주고받는다. 끼룩낄룩 낄룩끼룩. 제사 지내고 허전한 마음 달래려 자유로를 달렸다. 하늘처럼 땅도 평소와는 퍽 다른 풍경이다. 임진각은 망향객으로 몹시 붐빈다. 자격 없는 나는 화석정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율곡의 한시와 우람한 느티나무를 일별하는데 수령 267년의 향나무 아래에서 이것 좀 보라며 아내가 소리를 친다. 우주선, 아니 헬리콥터를 빼닮은 잠자리를 기대했더니 반짝이는 날개를 단 개미들이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껍질이 길게 벗겨지는 향나무. 이 나무로 만든 연필은 향기도 좋았지. 그 미끄러운 줄기를 운동장처럼 가지고 노는 개미들. 나무에 난 작은 구멍을 중심으로 개미들이 병목현상이나 충돌사고도 없이 분주히 들락날락거린다. 


쓸쓸하자고 추석은 마련되었는가. 문득 흘러가는 것들을 관찰해본다. 하늘에는 구름, 임진강에는 물, 국도에는 차 그리고 향나무에는 개미들이 어디론가 가는 중! 이 묵묵한 풍경에 일조하는 향나무는 입도 없지만 발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으니 옆으로 내달리며 굴러떨어지는 것들과 달리 나무는 가장 천천히 정면으로 걸어간다. 내년에도 무사히 내 그늘로 오시게. 서로 닮은 얼굴들에 비슷한 걸음걸이로 곧 흩어질 대가족을 굽어보면서 향나무는 묵직한 한 걸음을 하늘로 내딛고 있었다. 향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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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교목. ⓒ이해복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아주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거기에 무어라 말할 하늘이 아니다. 여름이 차례를 지켜 덥고, 나는 순서가 되어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꾸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궁리가 든다.

지난 일요일은 입춘 이후 열다섯 번째인 백로였다. 대부분의 24절기가 뜻만 무뚝뚝하게 전하는 데 비해 백로는 그 이름이 퍽 우아하다. 덕유산 삿갓재에서 1박 하는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링링에게 발목이 잡혔다. 파주출판단지로 허전한 발길을 돌리는데 뿌리째 뽑힌 가로수가 많았다. 거리에 수북한 상수리나무의 가지를 관찰하니 접촉면이 너덜너덜했다. 아직도 바르르 떠는 가지를 들고 한 달 전의 춘천으로 달려갔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오신 형님들과 김유정문학촌의 금병산 오르는 길. 산은 그야말로 소설가의 뒷배를 담당한 듯 오솔길이 호젓했다. 어두웠던 시대를 감당해야 했던 김유정의 그 많은 고민과 문장을 받아준 산책길. 바닥에 박힌 바위들이 닿소리라면 지나가는 바람결은 홀소리라고 해둘까. 

금병산 길바닥에 신갈나무 가지가 떨어져 있다. 가지와 접했던 부위를 보면 누군가 예리하게 칼로 자른 듯 매끈했다. 이는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를 괴롭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소행이다. 녀석은 신갈나무 열매에 알을 낳고, 주둥이로 가지를 잘라 밑으로 떨어뜨린다. 충격을 완화하려고 프로펠러처럼 잎을 몇 개 매단 채. 그냥 자연스럽게 무위하게 부러진 게 아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거리에서 생각을 더 달려본다. 훤칠한 나무일수록 태풍은 더 집요하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은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나무, 사람은 사람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반죽이 된다. 우리는 이 산들을 등뼈로 삼아 각각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무용한 질문이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신갈나무가 그에 대한 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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