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며칠만 돌이켜본다. 과거는 실은 앞날에 있다. 뒤돌아보는 일도 앞을 보는 것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복도로 나와 신문철을 뒤적이니 며칠 전의 그 기사가 나온다. “경주 금령총서 최대 규모 56㎝ ‘혀 내민 말 모양’ 토기 발굴”이라는 제목이다. “혀를 낼름 표현한 말 모양 토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주 금령총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압도적인 크기(56㎝)의 말 모양 토기가 발굴됐다. 그런데 이 말 모양 토기의 모습은 혀를 쑥 내밀고 있었다.”(경향신문 10월1일자)

하필이면 왜 혀를 강조한 말일까. 거의 실물 크기라는 말 사진을 보면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왜 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혀를 꼬부리고 있을까. 수도꼭지를 틀면 찬물과 더운물이 같이 나오듯 혹 지금 말은 거짓말이나 참말이 저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말하려 함은 아닐까. 

참 말이 많은 시대다. 라디오에서는 노래보다 수다가 더 많다. 산에 가면 꽃에도 꽂히지만 생각을 발굴하기에 좋다. 걷는 것과 궁리하는 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체 기관 중에서 많이 사용하는 게 발이라면 가급적 적게 사용할 게 입이어야 하지 않을까. 밥과 말은 한 기관을 공통으로 이용하니 먹은 만큼만 말할 기회를 주자는 입법청원이라도 해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데 어느덧 광양의 백운산 골짜기였다. 드물게 일본목련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에 가면 나무는 혀처럼 잎을 달고 있다. 같은 햇빛과 같은 물을 먹은 탓에 나무의 혀는 비슷하다. 내는 소리도 한결같다. 그저 받침 없는 홀소리들.

일본목련의 매끈한 허벅지에 누군가 칼로 예리한 빗금을 그어놓았다. 산에서 직선을 사용하는 건 인간들뿐이다. 글을 안다고 제 이름 석 자를 새겨놓은 것이었다. 마이크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말하면 되었지 이렇게 나무를 괴롭히는 건 무슨 심보인가. 신라 시대의 말은 그 말을 전하려 이렇게 뒤늦게 나타난 게 아닐까. 나무는 그 상처를 오래 기억하며 못난 이름을 천천히 지우고 있었다. 내 얼굴을 덮고도 남을 만큼 큰 잎, 아니 큰 혀를 가진 일본목련, 목련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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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의 매제가 처음 고향에 와서 여동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와, 앞산 뒷산 사이에 장대를 걸쳐놓아도 되겠네. 드넓은 호남 벌판을 끼고 살다가 경상도 산간벽지의 좁은 동네를 보고 재치있게 마음의 한 자락을 질러본 셈이겠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김제, 정읍, 부안, 고창의 곡창지대를 달리는데 좌우가 다 들판이다. 뜨내기 나그네의 마음마저 부자로 만들어주면서 나락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오늘은 논에 사는 멸종위기종의 식물을 조사하는 데 따라나섰다. 멀리에서 내려다보는 산이 들으면 참 가소로운 일이겠지만 한때 국회의원이라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런 줄이야 잘 모르겠다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국회의원이야 또 뽑으면 되지만 한번 사라진 식물은 설령 온 인류가 다 들고일어난다 해도 돌이킬 수가 없는 법이다.

방아깨비와 그 동무들이 후드득 먼저 반기는 논두렁에 섰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옆에서 논두렁도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때 이곳은 내 좋은 놀이터였다. 이 좁고 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논두렁은 작은 밭이기도 했다. 논에 나온 쌀로 밥을 짓는다면 논두렁에서 나온 콩은 반찬으로 흡족했다. 어머니는 모내기 끝난 뒤 그 자투리 밭도 그냥 묵히는 게 허전했던 것이다.

나는 문득 몹시 놀란다. 그저 지나다니기만 했던 논두렁에 이리도 많은 종류의 식물이 살고 있다니! 더구나 하나하나 그 까무러칠 법한 이름이라니! 이 황홀한 학교에서 오늘 얼굴을 맞댄 식물을 호명해 본다. 밭뚝외풀, 금방동사니, 황새냉이, 둥근하늘지기, 여뀌바늘. 그저 입에 넣고 중얼거리기만 해도 입안에 까끌한 문명이 건설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한 자태가 있으니 민구와말이다. ‘습지에 나는 다년생 수초, 물 위의 잎은 5~6장씩 윤생, 털이 없으며,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길이 1~1.5㎝, 너비 3~5㎜, 잎자루는 없음, 꽃은 홍자색, 화관은 통 모양, 끝이 다소 입술 모양’(이영노, <한국식물도감>). 이러니 이들의 응원으로 자란 쌀밥 먹을 때마다 어찌 특별한 소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구와말,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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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합천 해인사에서 큰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직접 가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화면으로만 눈여겨보았다. 존재의 뚜껑을 따듯 누운 자세로 발을 환히 드러내 보이는 큰스님. 최대한 많이 땅과 접촉하는 자세로 최대한의 이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얼굴보다는 발바닥을 앞장세우고 먼 길 떠나는 중이었다. 

성경을 읽는다고 저절로 신자가 되는 건 아니겠다. 분열과 증오, 조롱과 선동으로 얼룩진 뉴스의 홍수 속에서 쿵,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뜻밖의 가을 태풍 링링에 해인사 장경각 앞의 학사대 전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놀라운 뉴스를 듣고도 며칠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갈 뻔했다가 쓰러진 나무를 호출해 준 건 역설적으로 또 다른 태풍 마타였다. 마음이 흉흉한 탓인가. 어쩌자고 나는 이웃집 할머니의 늙어가는 얼굴에는 무심하고 태풍급의 사고에만 이렇게 반응하는가. 

내 고향 거창에서 뒤로 자빠지면 뒤꼭지가 깨질 만큼 합천은 가까운 동네다. 동네 어른들은 추수 끝낸 마을여행, 대성중학교 형들은 수학여행으로 해인사를 갔었다. 그때 꼬맹이였던 나에게 최치원이가 죽기 직전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더니 그게 나무로 자랐대. 귀에 솔깃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바로 그 전나무가 쿵, 쓰러진 것이다. 최치원 지팡이의 손자뻘쯤 되는 수령 250년의 나무라고 한다. 

전나무의 행방을 찾다가 현장 사진을 보았다. 밑동이 부러진 전나무는 커다란 허공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스님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듯 나무 안에서 나온 큰 구멍이다. 다음 나라에 가는 데 필요한 여권처럼 나이테도 환히 드러났다. 해인사 스님들은 나무들 세계에서 큰스님에 속할 나무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봉행하고 문화재청은 뿌리를 보존하고 후계목을 심어 후사를 잇기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아, 고맙고 다행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언젠가 지하에서 하나로 반죽이 된다. ‘깜깜 한밤중 창밖에 비 내리고/ 등불 아래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의 울적한 심사를 읊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최치원. 지음(知音)보다 짙고 혈육보다 끈끈한 지팡이와 해후하며 또 어떤 시상에 잠기실지! 전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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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지나면 휴지가 되어버리는 신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제법 건질 게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신문 사회면의 모퉁이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첫 문장이 ‘나, 너, 우리’로 바뀐다는 단신이었다. 아니 이게 뭔 기삿거리인가!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거창한 시대정신이나 교육이념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아이에게 한 사회가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첫 언어는 대단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어의 첫 문장은 몇 번 변했다. 광복 직후에는 ‘바다, 나라, 가자’였다. 내가 배운 건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이리 오너라.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순이야 이리와. 나하고 놀자’였다. 천자문의 우주홍황은 아니더래도 왜 개까지 등장시켰을까.

스위치를 누르면 톡, 꺼져버리는 화면에서 며칠 전 짤막한 뉴스가 눈길을 끈다. “국립국어원이 명사 ‘됨됨이’와 ‘엉덩이’, 동사 ‘그리하다’, 형용사 ‘예민하다’ 등 몇 단어의 뜻풀이를 추가했다. (…) 됨됨이는 ‘사람으로서 지니고 있는 품성이나 인격’이라는 뜻으로만 썼지만, ‘사물 따위의 드러난 모양새나 특성’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가을 태풍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먼 산에 가지 못하고 유리창에 붙이는 신문지처럼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심학산에 올랐다. 늦털매미가 알뜰하게 운다. 인간처럼 말은 못하지만 몇 마디 음률로 성실하게 울다 간 올해의 보통 매미들. 일제히 종적을 감춘 여름의 처사들을 떠올리다가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처럼 언어의 가치가 떨어진 때가 있었을까.

어둑한 산길. 말의 가치 하락을 궁리하는 내 머릿속과 장단을 맞추듯 숲속에서 상수리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툭, 툭, 툭 귀를 간지럽혔다. 오늘의 글감을 구하러 두리번거릴 때 개여뀌의 빨간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다. 집 근처 뒷산에서 보았다고 함부로 쉽게 볼 건 아닌 풀. 그 옛날 시골에서 잎을 갈아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던 풀. ‘개’가 붙은 독한 풀이지만 그 됨됨이를 잘 다스리면 약으로도 쓰이는 개여뀌.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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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순간 21g이 줄어든다고 한다. 21g, 그것은 영혼의 무게일까? 5센트 동전 5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21그램>의 마지막 독백이다. 가장 작은 새인 벌새를 직접 본 적 없지만 대략 꿀벌만 하지 않을까. 꿀벌 한 마리 현호색의 꽃대궁을 붙들고 땅에 닿을 듯 휘청, 구부러지는 것을 보며 저게 바로 내 영혼의 무게이려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생태계에서 영화 <벌새>에 대한 주위의 강력한 평을 들었다. 안 보고는 그나마 있던 내 영혼이 증발할 것만 같았다.

화면에서 보는 아파트는 참 다닥다닥한 공간이었다. 현관 열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투성이의 신발 벗으면 곧바로 거실이고, 문 하나로 바로 방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 벌어질 때 숨을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떡집 막내딸인 은희는 중학생. 왼손으로 만화를 그리면서 가슴속 질문 하나는 그래도 붙들고 생활한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가족은 물론 학교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은희를 상대해 준 이는 한문학원 선생님이다. 왼손으로 한자를 잘 쓰는 그는 은희 마음에 한 획을 그어주며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흰 종이가 사무치게 좋았나. 연필로 만화를 그리듯 손바닥으로 백지를 쓰다듬는 은희.

영화에는 나무가 표나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친구와 헤어지는 곳도 다시 만나는 곳도 나무 아래에서다. 가장 크게 클로즈업되는 당단풍나무는 가을의 복판에서 프로펠러 같은 열매가 성숙하고 있다. 있던 곳의 그늘을 피해 되도록 멀리 날아가기 위해 저런 장치를 가진 것이다. 벌새는 무수한 날갯짓으로 공중에서 정지하여 꿀을 빨아먹는다. 은희는 가끔 벌새처럼 뛰어오르지만 공중에 머물 수는 없다. 중력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 삶의 무거움을 스스로 이겨내어야 하는 건 본인뿐이다. 영혼의 무게만 한 무거움에 휘청이던 현호색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영화 속 나무로 글을 마무리하자. 

벌새의 날갯짓처럼 눈을 반짝거리는 은희, 가슴속 한 획을 붙들고 당단풍나무 열매처럼 멀리 회오리쳐 날아가기를!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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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다. 추석 기념으로 이렇게 비틀어 보면 어떨까. 텔레비전은 방에 걸린 최신식 달이다. 올 명절에도 둥근 달은 물론 네모난 달을 많이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 걸린 <대서사시 옐로스톤>의 한 대목에 잠자리가 등장했다. 3억년 전 진화를 거친 끝에 생명체 중 가장 먼저 공중을 날아올랐다는 잠자리의 시야는 360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눈으로 멀리 지나가는 먹잇감을 포착해서 재빨리 낚아챈다. 연이어 시청한 영화 <마션>의 한 컷. 화성에 홀로 고립된 동료를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우주에서 필사적으로 도킹하는 장면은 잠자리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 물리적으로 비슷한가.


떼 지어 나는 새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북적거려 계절마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가는 행로가 맞는가. 새들도 불안한지 주소를 주고받는다. 끼룩낄룩 낄룩끼룩. 제사 지내고 허전한 마음 달래려 자유로를 달렸다. 하늘처럼 땅도 평소와는 퍽 다른 풍경이다. 임진각은 망향객으로 몹시 붐빈다. 자격 없는 나는 화석정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율곡의 한시와 우람한 느티나무를 일별하는데 수령 267년의 향나무 아래에서 이것 좀 보라며 아내가 소리를 친다. 우주선, 아니 헬리콥터를 빼닮은 잠자리를 기대했더니 반짝이는 날개를 단 개미들이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껍질이 길게 벗겨지는 향나무. 이 나무로 만든 연필은 향기도 좋았지. 그 미끄러운 줄기를 운동장처럼 가지고 노는 개미들. 나무에 난 작은 구멍을 중심으로 개미들이 병목현상이나 충돌사고도 없이 분주히 들락날락거린다. 


쓸쓸하자고 추석은 마련되었는가. 문득 흘러가는 것들을 관찰해본다. 하늘에는 구름, 임진강에는 물, 국도에는 차 그리고 향나무에는 개미들이 어디론가 가는 중! 이 묵묵한 풍경에 일조하는 향나무는 입도 없지만 발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으니 옆으로 내달리며 굴러떨어지는 것들과 달리 나무는 가장 천천히 정면으로 걸어간다. 내년에도 무사히 내 그늘로 오시게. 서로 닮은 얼굴들에 비슷한 걸음걸이로 곧 흩어질 대가족을 굽어보면서 향나무는 묵직한 한 걸음을 하늘로 내딛고 있었다. 향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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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교목. ⓒ이해복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아주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거기에 무어라 말할 하늘이 아니다. 여름이 차례를 지켜 덥고, 나는 순서가 되어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꾸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궁리가 든다.

지난 일요일은 입춘 이후 열다섯 번째인 백로였다. 대부분의 24절기가 뜻만 무뚝뚝하게 전하는 데 비해 백로는 그 이름이 퍽 우아하다. 덕유산 삿갓재에서 1박 하는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링링에게 발목이 잡혔다. 파주출판단지로 허전한 발길을 돌리는데 뿌리째 뽑힌 가로수가 많았다. 거리에 수북한 상수리나무의 가지를 관찰하니 접촉면이 너덜너덜했다. 아직도 바르르 떠는 가지를 들고 한 달 전의 춘천으로 달려갔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오신 형님들과 김유정문학촌의 금병산 오르는 길. 산은 그야말로 소설가의 뒷배를 담당한 듯 오솔길이 호젓했다. 어두웠던 시대를 감당해야 했던 김유정의 그 많은 고민과 문장을 받아준 산책길. 바닥에 박힌 바위들이 닿소리라면 지나가는 바람결은 홀소리라고 해둘까. 

금병산 길바닥에 신갈나무 가지가 떨어져 있다. 가지와 접했던 부위를 보면 누군가 예리하게 칼로 자른 듯 매끈했다. 이는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를 괴롭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소행이다. 녀석은 신갈나무 열매에 알을 낳고, 주둥이로 가지를 잘라 밑으로 떨어뜨린다. 충격을 완화하려고 프로펠러처럼 잎을 몇 개 매단 채. 그냥 자연스럽게 무위하게 부러진 게 아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거리에서 생각을 더 달려본다. 훤칠한 나무일수록 태풍은 더 집요하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은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나무, 사람은 사람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반죽이 된다. 우리는 이 산들을 등뼈로 삼아 각각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무용한 질문이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신갈나무가 그에 대한 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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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벌, 풀 초. 연약한 풀과 싸울 일이 뭐 있으랴만, 풀을 깡그리 제거한 도시에서 듣는 저 단어가 참으로 강력하다, 벌초(伐草). 매미 소리는 하늘의 그물인가. 우렁차서 구멍이 성근 듯하지만 빠뜨리는 법이 없다. 여름의 잔해를 모두 짊어지고 매미들은 지금 입적하고 있는 중!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벌초는 가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고개다. 저 고개를 넘으면서 날씨는 수굿해지고 벼는 고개를 숙인다. 이윽고 가을이 시작되고 추석이 찾아온다.

고개가 하나 더 있다. 벌초하러 시골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는 엉덩이가 특별히 발달한 자동차 꽁무니를 그저 냅다 쫓아가기에 바쁘다. 무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단정한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 ‘라제통문’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글씨는 최근 것이로되 글자는 신라, 백제 시대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왼편으로 구부러져 구천동을 지나 덕유산 빼재를 넘는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으로 경상의 거창과 전라의 무주를 사이좋게 잇고 있는 중! 높아서 좋고 그 말맛이 빼어나기에 더욱 좋은 고개. 빼재 이정표가 보일 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구천동의 청량한 공기가 서울의 묵은 공기를 얼른 쫓아냈다. 코끝을 때리는 고향 냄새를 따라 눈앞의 풍경은 싸늘한 공간에서 비로소 다정한 장소로 바뀐다. 어머니는 아니 계셔도 당신의 친정 근처를 휘돌아들 때마다 옛이야기를 풀어놓던 음성이 바람결에 전해온다.

산소는 양지바른 곳이기에 꽃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무릇, 닭의장풀, 달맞이꽃, 여뀌가 무덤 둘레마다 드문드문 피었다. 가장 강렬하게 핀 꽃은 꽃며느리밥풀이다.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을 상징하듯 서글픈 꽃의 아랫입술 가운데 이빨 혹은 밥풀 같은 게 도드라진다. 그 옛날 이름도 모르고 꼴을 베어 소에게 줄 때 고명처럼 얹어 주었던 꽃일까.

이발하듯 덥수룩한 산소의 머리를 깎고 난 뒤 절을 한다. 그간 얼른 일어나기에 바빴는데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방금 낫에 베인 풀에서 나오는 향기를 작정하고 맡아본 것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확인하는 지하의 근황은 아닐까. 꽃며느리밥풀 곁이기에 더욱 좋았던 기해년의 벌초, 두 개의 고개를 넘으며 끝났다. 꽃며느리밥풀,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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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 가면 전봇대에 자꾸 눈길이 간다. 너절한 세상 따위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저 멀리 달아나는 전봇대. 껑충한 전봇대는 키만 큰 게 아니다. 수많은 소식과 사연을 전달하느라 귀가 아주 발달했다. 길에도 막다른 골목이 있는 것처럼 전봇대도 그 끝이 있을 것이다. 혹 말이 바뀌는 국경 근처에 가면 전봇대의 최후를 볼 수 있을까. 흔치 않은 외국 여행은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으니 그 또한 여의치가 않아 아직까지 궁금한 사항으로 남았다. 육상선수처럼 성큼성큼 뛰어가는 전봇대, 너는 자꾸 어디로 가느냐.

사나운 파도를 가르며 대청도로 갈 때 문명의 척후병인 양 전봇대는 이미 나보다 먼저 상륙해 있었다. 혹 이곳에서라면 격리된 섬에서 진화를 관찰하듯 전봇대의 일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작은 섬은 섬대로 한없이 넓고 깊어서 좀체 그 끝을 보여주지 아니했다. 허겁지겁 쫓아가는 텅 빈 공용버스를 보기좋게 따돌리며 숲으로 들어가더니 저 멀리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전봇대. 하늘을 배경으로 참으로 아름답게 구름의 난간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대청도와 백령도에서 자생하는 대청부채를 바닷가에서 만난 뒤, 이 지역에서 겨우 볼 수 있는 나무를 찾아나섰다. 섬마을을 잇는 줄기 같은 도로를 벗어나 확 좁아지는 가지 같은 임도로 접어드니 여느 곳과 다름없는 생태계가 눈을 호린다. 북한계선에 위치한 동백나무를 구경하고 돌아나오는 길켠에서 좀 특이하다 싶은 나무를 용케 꽃동무가 찾아냈다. 이름도 아주 특이한 뇌성목.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게 특징인 감태나무와 아주 유사하다. 감태나무가 산지에 산다면 뇌성목은 바닷가에 산다.

어린 시절 학교 갔다 오다가 무청 돋아나는 밭에 꽂힌 전봇대 아래에서 들리던 윙윙윙 소리는 조금 무시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우물로 던진 밧줄 같아서 그 끝을 잡고 대처로 가는 꿈을 의탁하기도 했었지. 뇌성목, 그 이름은 천둥치는 소리라는 뜻의 뇌성(雷聲)이라고 한다. 외딴 섬, 대청도에서 만난 전봇대 옆의 뇌성목, 녹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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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운세를 살필 만큼 그리 고급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되는대로 밀고 나아갔다. 뒤늦게나마 날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의 훈련’을 소화한 아이가 대청도로 배치된 것이다. 스포츠뉴스가 끝나면 백령도가 표기된 지도가 떴다. 최북단 섬의 근황을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상냥한 음성이 몹시도 반가웠다. 첫 면회를 갔을 때 고독한 섬의 생태계도 염두에 두었지만 꽃보다는 쫄병이었다. 군인에서 아들로 돌아와 모처럼 시름을 잊고 동생과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2분3초’의 외박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해병 대신 꽃 보러 가는 길. 꽃산행을 응원하듯 배 이름도 하모니플라워다. 대청도에 내리니 5년 전의 생생한 추억이 땅보다 단단했다. 웬만한 지역은 일몰 이전에는 접근에 제한이 없었다. 대청도로 우편엽서를 제법 보낸 터라 이 지역의 주소는 지금도 훤히 왼다. 까나리액젓 담그는 통이 즐비한 옥죽동을 지나 모래사막 근처 용머리 해안을 탐사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흔한 순비기나무의 꽃, 해당화의 열매들이 한창이다. 

여름 바닷가에서는 벌거벗는 게 상책이다. 피서객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침내 그것과 만났다. 꽃에 입문했을 때, 오후 3시에 정확하게 꽃봉오리가 터진다는 말을 듣고 퍽 신기해했던 대청부채였다. 날카로운 칼 같은 잎이 서로 얼싸안으며 부챗살처럼 퍼진다. 나사처럼 배배 꼬인 채 지고 있는 꽃 옆에 피기 일보 직전의 꽃봉오리가 있다. 동영상 모드로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멀리 끊임없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짐작도 못할 저 바다의 깊이를 아들은 가슴에 들어앉혔을까, 생각하는 순간 꽃봉오리 하나가 확, 세상 구경을 하였다. 꽃잎 벌어지는 소리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렸나, 안 들렸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청도에서 대청부채를 보았다는 건 곡부에서 논어를, 달에서 이태백의 시를 읽은 셈에 비견할 수 있을 듯! 

제대 특명을 받고 하모니플라워를 탄 기분을 가늠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물에 뜬 배처럼 나의 기분도 파도 마루에 높게높게 걸리었다. 대청부채,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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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지난 하루를 되짚어본다. 깜깜한 밤을 지나 새벽에 눈을 떴다가 한숨 더 잤다. 날이 훤해지고서야 알람의 독촉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멀리까지 신호를 보낸 뒤 바닥을 짚고 일어나 직립했다. 달그락달그락 밥그릇을 비우고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검은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은 玄關으로 쓴다. 왜 ‘검을 현’일까. 

우리는 통상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처음 현을 만난다. 저 천자문의 첫 대목에서 玄을 ‘검을 현’으로 훈을 달면서 그저 ‘검다’라고만 이해한다. 하지만 하늘을 형용하는 검다, 라는 말은 가물가물하다, 라는 뜻에 가깝다. 아득히 멀고 깊어서 가물가물한 경지를 玄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멀고 깊으면 검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기도 하겠다.

그제 절친한 꽃동무가 산에서 만난 염소를 찍은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녹색을 배경으로 까맣기 그지없는 어미 염소가 더욱 까맣게 압축된 새끼 염소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염소는 ‘검다’라는 형용사의 우두머리인 양 온통 까맣다. 털은 물론 온몸이 구석구석 새까맣다. 염소는 마침내 똥마저 검은 것으로 생산한다. 검은색이 거느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통하고 우뚝한 존재.

한편, 까망이 장악한 풍경에서 아는 식물을 하나라도 찾으려니 염소 뒤에 앉아 있는 고사리가 보인다. 염소와 같이 소과(科)에 속하는 양의 이빨을 닮았다는 양치식물의 대표 격이다. 우리나라에 무려 350여 종이나 자생한다는 고사리 앞에서 내가 깜깜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실감한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고사리라고만 여기에 적을 뿐.

흑(黑)과 현(玄)의 차이처럼 블랙과 다크는 확실히 구별된다. 염소의 털은 블랙이지만 눈은 다크라고 해야 함이 옳다. 

우리는 아침에 현관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가, 저녁이면 현관을 닫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집과 세상 사이의 현묘한 문(門)인 현관을 玄關으로 표기하는 건 참 적절하다 하겠다. 눈알마저 새까만 염소 가족을 보면서 현관 바깥을 거니는 나를 겹쳐보느니, 지금 대체 어느 소용돌이 속을 나는 깜깜 헤매고 있는 중이더냐!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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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꼭대기가 숲처럼 우거지고 그 속에 큰 고민이 살고 있듯 산의 상층부에 습지가 있다.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아래에 처하기를 좋아하는 물을 높이 받들고 있는 터라 세상의 신비와 고요가 집합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의 고민에 상응하듯 혹 이무기라도 살고 있는 걸까.

내 안에 이리도 많은 구멍이 있었구나. 닭똥 같은 땀방울이 마구 빠져나오는 이열치열의 상쾌함을 느끼면서 서늘한 기운이 밀집한 습지의 물가로 접근하면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한 토막도 따라 나온다. 흘러가는 시냇물. 물에는 물고기가 제 몸뚱이 하나를 밑천으로 살았다. 물 바깥에서 물속의 물고기를 보는 건 기이한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쉬리 떼를 발견하는 건 언제 보아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바지를 걷고 매미 소리를 귀에 꽂으며 직접 물에 들어갔다. 물에서 물고기를 이길 수 있겠나. 하지만 물낯에 튕기는 햇살을 얼굴에 바르며 일렁이는 물살 아래 미끈거리는 돌과 모래를 더듬다가 운 좋게 모래무지, 동사리, 꺽저기를 잡기도 했다. 그렇게 물에서 물고기를 떼어낼 때의 짜릿한 흥분을 어찌 잊으랴. 

강원도 고성의 어느 습지. 미리 알고 가는 길이었지만 짐작 못한 곳에서 습지는 툭 튀어나왔다. 숲에서 뱀을 만나듯, 점빵에서 알사탕을 눈으로 훔치듯 숲속의 습지는 뜻밖의 발견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낡은 길에는 고사목이 쓰러져 있고 어느 태풍의 소행인 듯 나무는 뿌리째 뽑혀 밑동과 잔뿌리가 수직으로 허옇게 드러나 있기도 하였다.

물가에 좀 더 접근해 본다. 습지에 깊숙이 물구나무서 있던 산과 구름은 더 깊은 속으로 빠져들면서 나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땀에 전 한 사내의 모습을 떠받쳐 주는 건 각시수련이다. 주로 오래된 습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매우 귀한 식물이다. 연꽃의 잎과 줄기가 공중을 짚는다면 수련은 수면에 그 높이를 맞춘다.

수련(睡蓮). 문자적으로 졸음과 관련이 있으니 수련은 물을 이불처럼 깔고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중일까. 어쨌든 저를 제대로 보려면 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라는 것이니 그 옛날의 기억을 확실하게 반짝 일깨우는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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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춘기 시절 갈 곳 몰라 헤맬 때 더러 꼰대 같은 소리를 해댔다. 골짜기에서 얼른 능선을 타라. 그 방법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아니하고 그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게 상책이라고만 했다. 어떤 자리에서는 주워들은 풍월로 그만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도 충고랍시고 던지기도 했었다. 내 마음조차 어디 있는 줄 깜깜 모르는 주제에 마음 운운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퍽 가소롭기만 하다, 아무튼.

산에 가서 깔딱고개 몇 개 넘으면 능선을 만난다. 그 능선에 서면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온다.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지만 최초의 사람은 산에서 성큼성큼 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고 상상하게 된다. 그 깊이를 짐작 못할 침묵의 덩어리인 바위를 관찰하면 이 또한 바다에서 융기한 흔적이 있으니 마냥 터무니없는 생각만도 아닐 터다. 오르기는 어렵고 내려가기는 더 어려운 법이라 했다. 그러니 저 아래 세상이란 잘되기는 무지 어렵고, 잘 안되기는 너무나 쉬운 현장이 아닐까, 아무튼. 

설악의 능선은 겨울에도 좋지만 여름에 가면 더 좋다. 봉우리 이름이 주는 뜻을 가늠하다 보면 하늘의 한 별자리를 짚어나가는 기분에 발길도 가볍다. 한계령에서 올라 귀때기청을 곁눈질하고 끝청, 중청 그리고 대청으로 이루어진 ‘설악좌’를 순례하는 기분이란!

오늘의 행로는 끝청을 지나고 잠시 멈췄다. 중청대피소를 지척에 둔 바위들 틈에 야생화가 잔뜩 피어 있다. 높은 산중인데도 그 이름이 등대시호란다. 꽃은 뿌리-줄기-잎-대궁-꽃의 일반적인 모양을 따르지 않는다. 기하학적 구조가 특이하고 자잘한 꽃을 들여다보면 하도 오묘해서 눈알이 뱅뱅 돌 지경이다. 이 꽃안을 ‘등대시호좌’로 명명해 줄까. 

캄캄한 바다를 밝히는 등대로 짐작하고 이 높은 산도 결국 바다에서 왔다는 한 근거로 삼으려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등대시호는 등잔을 거는 대에서 따온 이름이라 했다. 사무실 한편에 호롱과 양초를 모두 놓을 수 있는 녹슨 등대가 있다. 시골 큰집에서 쓸모를 잃고 뒹구는 것을 수습해온 것이다. 저 등잔불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가. 내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꿈을 눅진하게 담은 듯한 설악산의 등대시호.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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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복

간밤에 비가 왔나 보다. 하루 내내 험상궂은 하늘의 표정. 태풍 다나스는 소멸했지만 그 뒤끝은 남았다. 대서(大暑)가 임박했는데 아직 매미가 기척이 없다. 올해 첫 매미소리는 언제? 하려는데 멀리서 맴맴맴, 이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는 매미답지 못했다. 이내 소리의 꼬리가 툭, 끊어졌다. 혹 내가 머릿속에서 작곡한 매미소리였을까?

동네 한바퀴를 하다가 이웃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예전에는 교사나 계단이 보였는데 이제는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은 늘 반듯한 줄로만 알았다. 실은 몹시 울퉁하고 불퉁하다. 비 오고 난 뒤에는 그 실상이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이 뛰놀다 간 텅 빈 운동장에 서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책 하나를 썼는데 그 첫대목은 이렇다. “늦은 밤 초등학교 옆을 지나는데 때마침 비 내려 운동장으로 내처 들어간 적이 있는가. 운동장 흰 모래가 밤하늘의 별들과 은밀히 내통하는 시간. 소나기 한 줄금 온 뒤 비릿한 비냄새가 코끝에 아릿할 때 초등학교 깜깜한 운동장에 서본 적이 있는가.” 

이에 촉발되어 내가 나온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오륙도에서 시작하는 갈맷길 꽃탐사를 마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학교는 기억 속의 모습에서 그리 변한 게 없었다. 다만 새삼 느낀 건 운동장이 퍽 좁아졌다는 것과 화단이 무척 빈약하다는 것. 내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을 우람한 나무를 기대했건만 운동장 사정이 넉넉하질 못했다. 화단을 뒤지니 동백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은 계요등이 눈에 띄었다. 때가 겨울 끝 무렵이라 작년 열매가 저물어가는 희미한 빛을 끌어당기며 여물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 꽃산행에서 심심찮게 계요등을 만났다. 꽃은 참 야무지고 예쁘기 그지없는데 냄새가 좀 독특하다. 사정이야 어떻든 활짝 핀 계요등은 고약한 냄새를 뚫고 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덩굴이 되었다. 하늘에 구름이 있다면 땅에는 운동장이 있다. 오늘 큰아이가 졸업한 운동장에 서서, 나를 배출한 부산의 그 운동장, 그 안에서 씩씩거리며 뛰놀았던 나, 그런 나를 바라보기도 했을 계요등을 떠올렸다. 계요등, 꼭두서니과의 덩굴성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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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납작하게 산다. 나무처럼 자라고, 꽃같이 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날이 납작하고 납작해져서 그림자보다도 더 아래로 몸을 숨기는 게 사람의 일생이겠다. 세속의 일상은 이 납작에 저항하는 자세이다. 머리맡의 찬물이 미지근해지는 것처럼 자꾸 납작해지는 그 삶 속에서 큰 고비를 하나 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음은/머리도 가슴도 발목이 아닌/ 뒷덜미를 통해 올 것이다// 산 정상 바로 아래 어디쯤/ 불각시에 산불이라도 났을 때 대비하는 헬기장// 햇빛이 바글바글 놀고 있는 공터/ 웬만한 산의 뒷덜미쯤에 있는 공터// 수피가 튼튼한 참나무/ 겨드랑이를 긁고 발목에 쌓인 낙엽을 청소하려고/ 마른 기운을 모을 때// 공중에서/ 턱/ 소방 헬리콥터가 난데없이 나타나듯// 나의 죽음은/ 나의 뒷덜미에 소리없이 착륙하는 것”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설악산에 오르는 길. 한계령에서 끝청을 지나 중청 대피소에서 한숨을 돌리고 대청으로 오르는 데 헬기장이 나타났다. 최근의 그 메모를 떠올리며 설악의 꼭대기를 향하여 남은 힘을 짜낸다. 중청서 대청까지의 짧은 구간은 여간 범상치가 않다. 얼마나 무거운 하늘인가, 잘록하게 늘어진 곡선. 공중의 밑바닥과 설악의 어깨가 만나는 접면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판인데 계절에 따라 진귀한 꽃들이 밭밑에 자욱하다. 우리 딛고 사는 세상을 바다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게 산이라면 그 설악을 이렇게 마지막으로 맵시 있게 마무리하는 건 바로 이 연약한 꽃들.

많은 꽃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바람꽃에 내 마음을 포갠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의 변산바람꽃에서 여름에서 여름의 한 중앙을 지키는 바람꽃까지, 책 한 권을 쓸 만큼 바람꽃 가족은 그 종류가 많다. 이런저런 바람꽃들이 차례로 다녀가는 걸 지켜보다가 아주 높은 곳에서 가장 늦게까지 피어 있는 바람꽃. 설악의 높이에 내 키를 더한다 한들 바람꽃이 빚어내는 이 깊이에 필적할 수 있으랴. 험상궂은 얼굴 모양의 바위 앞에 앉아 첩첩산중의 저 아래를 무정하게 바라보는 바람꽃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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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석에 앉아 노자를 배운다. 이제껏 귀동냥한 것과는 사뭇 다른 전복적 해석에 머릿속이 반짝거린다. 무유(無有)를 비롯해 부쟁, 무위는 노자가 말하는 주요한 개념들이다. 그런 총중에 경향신문의 한 인터뷰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판문점 회동 핵심은 분단이 얼마나 인위적인지 보여준 것.” 심화학습을 위해 읽은 ‘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의 머리말에 맞춤한 내용이 있다. “70, 80년대는 군사정치의 극성기로 학교는 이에 항거하는 반정시위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군경들의 침입으로 영일이 없었다. (…) 그때 학생들이 내건 반정권 구호들에 불이병강천하와 같은 노자의 글귀들이 등장했다.”

일찍이 김구는 우리나라가 문화국이 되는 것을 소원했거니와 당시 학생들이 불이병강천하(不以兵强天下: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를 내세운 건 되새길 만한 안목이 아닐 수 없겠다. 결국 학생들은 군사정치를 물리쳤고, 그제 판문점에서의 저 만남도 결국은 부쟁(不爭)으로 가는 한 이정표가 되리라.

천하통일은 있어도 천지통일이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천지는 진즉에 통일되어 있다. 꽃에 입문하고 북방계 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어 백두산 탐사에 종종 따라붙는다. 얼마 전 이도백하로 가는 길목을 둘러보는 길. 우리나라 웬만한 산 아래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벌깨덩굴이 ‘천지삐까리’로 피어 있다. 수형이 익숙한 나무들은 객지에서도 나의 눈을 안심케 함은 물론 인정이 묻어나던 기억 속의 고향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꽃과 나무는 이미 스스로 천하를 통일하고 있는 중!

어느 숲으로 들어가니 발을 디디기 송구할 만큼 왕죽대아재비가 잔뜩 피어 있었다. 설악산을 위시해서 높고 깊은 산에서나 발견된다지만 아직 내 눈으로 입장하지 못했던 귀한 꽃이다. 아재비라니, 이름에서 그 어떤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이런 인위라면 얼마든지 좋다. 따지고 보면 인간인 나하고 식물인 왕죽대아재비는 물과 흙, 바람과 천둥으로 차곡차곡 연결되어 있는 것. 생김새에서 누님을 떠올리게 하는 국화처럼 이름에서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왕죽대아재비.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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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뇌처럼 복잡한 회로의 북한산. 선잠을 깨고 나와 지하에서 출발했다. 연신내역-불광사-족두리봉 옆길로 오른다. 번들거리고 번잡한 도심에서 30여분 만에 이런 풍광과 시야를 얻다니, 과연! 이윽고 향로봉 아래 고개에 이르렀다. 차마고도를 연상케 하는 돌고개가 꼬부라져 돌아가고 그 날망 끝에 인왕산 아래 동네가 잘록하게 걸린다. 꼭 10년 전에 바로 이 자리를 다녀간 뒤 이런 일기를 썼다. “등산객이 빠져나간 만큼 일요일의 시내는 조용하다. 한반도 중앙 고원에 건설된 문명의 도시, 서울. 저녁밥 짓는가. 푸르스름하게 가득 찬 기운. 승가사 계곡 물소리 찰방찰방 귀에 담아 구기동으로 내려왔다.” 

같은 요일, 같은 자리에서 그 풍경을 본다. 침침한 눈 사이로 산은 여여하고, 거리도 여전하다. 몇 가지의 변화는 있다. 그동안 문득문득 들이닥친 생각들이 내 두개골에 주입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나이 마흔부터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한다. 오십에는 자연과 접촉면적을 넓히는 게 장땡이다. 육십부터 지붕 아래를 지옥으로 여겨라. 

그때와 같은 품목의 김밥에 물, 과일과 빵을 우물거리며 천하의 한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무슨 난투극이라도 있었는가. 얼룩덜룩 멍이 들었다. 곧 한줄금 퍼부을 기세다. 오늘도 식물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담을 만한 게 없다. 공중으로 가는 시선을 아래로 구부렸다. 나무보다는 바닥의 돌을 자꾸 보는 건 발과 접촉하는 곳의 사정이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비비고 싶을 만큼 기묘한 표정의 돌들. 마을버스 속에서 판문점발 속보를 찰랑찰랑 귀에 담으며 탕춘대-포방터시장-홍제역으로 내려왔다. 과연! 나로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오늘 벌어진 일들 속에서 그래도 꽃 하나를 소환하는 일이다. 북한산 초입, 태극기가 펄럭이는 바위 너머에서 꽃 한 송이를 보았더랬다. 아주 가늘고 너무 여린 병아리난초였다. 아무 데서고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야생화. 나의 머릿속을 양초처럼 순간 환하게 밝힌 병아리난초. 너를 만났기에 마음 놓고 돌을 보았단다. 오전에 너를 활짝 보았기에 오후에 이렇게 확 좋은 뉴스를 듣는구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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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끝내주는 국숫집이 있다. 칼칼한 맛도 맛이지만 그 옥호가 특히 눈길을 끈다. ‘언 칼국수’. 간판에 ‘言’이라고 한자로 딱 박혀 있다. “言. 날카로운 칼과 口가 합친 것. 칼로 까칠까칠하게 만들듯 하나하나 확실하게 구별되는 게 말”이라고 옥편은 그 자원을 풀이한다. 무심코 그냥 하는 게 말인 줄로 안다. 언어가 없다면 세상은 분별될 수 없다. 제아무리 깊은 궁리를 해도 말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궁리를 바깥으로 운반할 수 있겠는가. 옹알이만 하다가 일생이 지나간다. 한편 그것을 그것이라 말해버리면 그것밖에 되지 못하니 이 말의 감옥은 또 어쩔 것인가. 말, 그게 결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틉틉한 멸치국물에 색다른 고명. 한 숟가락 뜨면 맑아도 그릇 속은 깊고 묘하다. 이 쫄깃하면서도 뚝뚝 끊어지는 면발을 이 이름에 담은 것일까. 말끔히 비우고 난 뒤 주인을 찾았더니, 원래 ‘언니네 칼국수’였는데 상호등록을 하려니 한자가 필요해서 언(言)으로 했다고 한다. 얼큰했던 맛이 확 깨는 싱거운 답이 아닐 수 없었다.

심학산 자락에서 놀다가 저녁을 맞이했다. 간단하게 때우자며 출판단지 입구의 청국장집, ‘진달래’로 갔다. 주말이라 오히려 한가해서 우리 둘은 특별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보리밥을 바탕으로 각종 나물과 큼지막한 상추에 고추장을 섞어 밥을 비볐다. 밥알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어 막걸리 안주로도 훌륭하다. 몇 술 뜨는데 비로소 라디오 소리가 걸어왔다. &lt;배미향의 저녁스케치&gt;에서 전해주는 날씨 소식. 먼 지방에는 비, 경기에는 돌풍이 분단다. 그 끝에 오늘은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라고 했다.

공터로 나오니 전혀 다른 국면의 세상이 또렷하다. 눈앞의 풍경은 언어의 집합이기도 하다. 산과 들판, 집과 골목이 있다. 이들을 가능케 하는 햇살이 짱짱하다. 텃밭 옆에 건장한 건 살구나무였다. 노란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직은 밍밍하고 떫은 맛. 여름의 한 지극한 경지인 하지이니 오늘이야말로 열매는 가장 당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물가물한 하늘에 저물어가는 기해년의 하지. 나무 아래서 그 이름만 겨우 알 수 있는 살구를 툭 건드리자 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살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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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멱살 잡힌 사람의 몸. 아무리 고급한 생각을 한다 해도 밥 한 톨 삼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건사하기가 난망이다. 기생(寄生)이란 말을 굳이 해야 하랴. 항산이라야 항심이라고 했다. 삼시세끼. 이보다도 더 일상을 좌우하는 게 달리 없으니 몸의 안팎이 다 같다. 오죽했으면 삼식이, 라는 참으로 모멸스러운 별명이 등장했을까. 

어디에서 오는지 도무지 그 정체를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배꼽시계가 뻐꾸기처럼 울었다. 또 도래한 점심. 이번 끼니는 출판도시 내 옥호도 사뭇 다정스러운 ‘곰씨부엌’으로 정했다. 곰처럼 우직한 분들이 묵직한 국물을 끓여낼 것만 같은 식당.

좋은 식당은 배고픈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내 가슴살을 잘게 저민 닭곰탕이 나오고 숟가락을 집었다. 첫술이 들어가고 들척한 국물이 목울대를 휘젓고 내려갈 때, 옛날 생각이 거슬러 올라왔다.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는 여섯 개의 입을 달래느라, 그 간단없는 삼시세끼를 감당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윽고 허기가 다스려지고, 국물이 바닥을 보일 무렵, 숟가락을 그릇에 걸쳐놓는 여유도 찾았다.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다가 아, 퍼뜩 알게 되었다. 

‘곰씨부엌’ 앞마당의 울울한 나무. 6월의 푸르른 신록이 도드라지는 벚나무들. 그들이 식당을 환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통유리창 바깥은 생생한 현실이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닿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 잎사귀가 춤을 추는 곳이었다. 나처럼 빈틈없는 몸을 가진 나무들을 보다가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나무들도 식사 중! 이 환한 햇빛 아래로 소풍 나온 듯! 

입안이 씰룩거릴 때마다 정확하게 리듬을 맞추며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들의 동작. 목구멍 너머로 꿀떡 삼킬 때면 더 크게 끄떡이는 잎사귀들의 움직임. 그것은 나의 저작운동과 때맞추어 궁합을 맞추는 나무들의 식사법이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벚나무 옆에서 벚나무와 함께 또 한 끼니를 때운 하루.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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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는 언제부터 있었나. 그건 내가 언제 이 세상에 왔을까와 똑같은 물음이다. 따라서 내가 이 세계로 미끄러져 나올 때 그림자도 함께 태어났다고 해야 정확하다. 울음보다도 먼저 그림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란, 태양이 너희들은 모두 언젠가 녹여먹을 사탕이야, 라고 지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찍어놓은 불도장 같은 것!  참 시시한 질문 같았는데 말하고 보니 감히 <논어>의 한 대목, 절문근사(切問近思)를 들먹일 수도 있겠다는 궁리와 함께 발밑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그림자를 관찰해 본다.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란 것을 증명하는 그림자. 그 그림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들었던 한마디로 귀결된다. 직진하는 햇빛은 너무나 멀리에서 오기에 지구에 평행하게 도착하고, 그래서 그림자가 생긴다! 이상하게 그 말이 참 마음에 오래 남아 그 이후 그림자에 대한 관심을 간단없이 이어지게 하는 한 이유가 되었다.

낯선 고장에 저물 무렵에 도착하는 건 사소한 축복이다. 뉘엿뉘엿 석양에 반사되는 밀양(密陽) 이정표를 보면서 네이버 옥편을 뒤적였다. 빽빽한 햇빛 혹은 비밀의 햇빛, 밀양. 낮에는 지푸라기처럼 빽빽했다가 밤이면 비밀스럽게 변하는 햇빛인가. 그래서 비밀은 햇빛 속에 다 드러난다는 것인가.

밤이란 지구의 짙은 그림자. 그 그림자에 폭 파묻혀 밀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유명한 얼음골을 지나 천황산 오르는 길. 볼 게 많았다. 여름임에도 너덜겅의 돌 밑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했다는 동의굴의 서늘한 바위에는 짙은 분홍의 설앵초. 얼음골과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꽃도 꽃이지만 오늘은 그림자에 특히 유념하기로 했다.

산에서 나무 한 그루의 사연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 쟁반 같은 나뭇잎에 담긴 꽃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별 모양의 흰 꽃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덜꿩나무. 잎은 물론 가지, 줄기에 털이 밀생하는 덜꿩나무. 모양이 반듯해야 그림자도 반듯하다. 이 세계를 두껍고 깊게 복사하는 꽃과 그림자를 찰칵, 찍었다. 덜꿩나무, 산분꽃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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