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 멱살 잡힌 사람의 몸. 아무리 고급한 생각을 한다 해도 밥 한 톨 삼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건사하기가 난망이다. 기생(寄生)이란 말을 굳이 해야 하랴. 항산이라야 항심이라고 했다. 삼시세끼. 이보다도 더 일상을 좌우하는 게 달리 없으니 몸의 안팎이 다 같다. 오죽했으면 삼식이, 라는 참으로 모멸스러운 별명이 등장했을까. 

어디에서 오는지 도무지 그 정체를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배꼽시계가 뻐꾸기처럼 울었다. 또 도래한 점심. 이번 끼니는 출판도시 내 옥호도 사뭇 다정스러운 ‘곰씨부엌’으로 정했다. 곰처럼 우직한 분들이 묵직한 국물을 끓여낼 것만 같은 식당.

좋은 식당은 배고픈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내 가슴살을 잘게 저민 닭곰탕이 나오고 숟가락을 집었다. 첫술이 들어가고 들척한 국물이 목울대를 휘젓고 내려갈 때, 옛날 생각이 거슬러 올라왔다.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는 여섯 개의 입을 달래느라, 그 간단없는 삼시세끼를 감당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윽고 허기가 다스려지고, 국물이 바닥을 보일 무렵, 숟가락을 그릇에 걸쳐놓는 여유도 찾았다.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다가 아, 퍼뜩 알게 되었다. 

‘곰씨부엌’ 앞마당의 울울한 나무. 6월의 푸르른 신록이 도드라지는 벚나무들. 그들이 식당을 환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통유리창 바깥은 생생한 현실이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닿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 잎사귀가 춤을 추는 곳이었다. 나처럼 빈틈없는 몸을 가진 나무들을 보다가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나무들도 식사 중! 이 환한 햇빛 아래로 소풍 나온 듯! 

입안이 씰룩거릴 때마다 정확하게 리듬을 맞추며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들의 동작. 목구멍 너머로 꿀떡 삼킬 때면 더 크게 끄떡이는 잎사귀들의 움직임. 그것은 나의 저작운동과 때맞추어 궁합을 맞추는 나무들의 식사법이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벚나무 옆에서 벚나무와 함께 또 한 끼니를 때운 하루.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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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는 언제부터 있었나. 그건 내가 언제 이 세상에 왔을까와 똑같은 물음이다. 따라서 내가 이 세계로 미끄러져 나올 때 그림자도 함께 태어났다고 해야 정확하다. 울음보다도 먼저 그림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란, 태양이 너희들은 모두 언젠가 녹여먹을 사탕이야, 라고 지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찍어놓은 불도장 같은 것!  참 시시한 질문 같았는데 말하고 보니 감히 <논어>의 한 대목, 절문근사(切問近思)를 들먹일 수도 있겠다는 궁리와 함께 발밑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그림자를 관찰해 본다.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란 것을 증명하는 그림자. 그 그림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들었던 한마디로 귀결된다. 직진하는 햇빛은 너무나 멀리에서 오기에 지구에 평행하게 도착하고, 그래서 그림자가 생긴다! 이상하게 그 말이 참 마음에 오래 남아 그 이후 그림자에 대한 관심을 간단없이 이어지게 하는 한 이유가 되었다.

낯선 고장에 저물 무렵에 도착하는 건 사소한 축복이다. 뉘엿뉘엿 석양에 반사되는 밀양(密陽) 이정표를 보면서 네이버 옥편을 뒤적였다. 빽빽한 햇빛 혹은 비밀의 햇빛, 밀양. 낮에는 지푸라기처럼 빽빽했다가 밤이면 비밀스럽게 변하는 햇빛인가. 그래서 비밀은 햇빛 속에 다 드러난다는 것인가.

밤이란 지구의 짙은 그림자. 그 그림자에 폭 파묻혀 밀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유명한 얼음골을 지나 천황산 오르는 길. 볼 게 많았다. 여름임에도 너덜겅의 돌 밑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했다는 동의굴의 서늘한 바위에는 짙은 분홍의 설앵초. 얼음골과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꽃도 꽃이지만 오늘은 그림자에 특히 유념하기로 했다.

산에서 나무 한 그루의 사연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 쟁반 같은 나뭇잎에 담긴 꽃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별 모양의 흰 꽃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덜꿩나무. 잎은 물론 가지, 줄기에 털이 밀생하는 덜꿩나무. 모양이 반듯해야 그림자도 반듯하다. 이 세계를 두껍고 깊게 복사하는 꽃과 그림자를 찰칵, 찍었다. 덜꿩나무, 산분꽃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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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화수목금토. 일주일을 한 묶음으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세속도시의 일상이다. 요일마다 얼굴은 다 달라진다. 웃음과 울음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하지만 표정은 돌처럼 딱딱해진 지 오래다. 

주중에도 고개가 있는가. 수요일을 기점으로 어디론가 내려가는 느낌이다. 금요일. 얼굴이 마구 뜯겨나가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귀가하다가 흑석동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광고판을 보았다.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영월 창령사터 오백 나한(사진).’ 큼지막한 돌덩이의 울먹이려는 표정이 목석같던 나의 뒷덜미를 끌어당겼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공간에서 단연 돋보였기에 휴대폰에 찰칵, 담았다. 그리고 몇 바퀴가 굴렀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칼럼 ‘래여애반다라’(조운찬)를 읽은 아침, 뜻밖에도 춘천 출신의 아내가 창령사터 나한 이야기를 꺼냈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정밀한 고독과 숨막히는 고요가 밀물처럼 들어찼다. “마치 허공을 나는 새가 걸림 없이 멀리 가는 것처럼”(법구경) 컴컴한 공중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있어 이름을 문의했지만 아는 이 아무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불성을 깨우쳐주시는 나한은 좌대에 앉아서 나와 어깨를 견주었다. 시골 뒷산에서 흔히 보았던 질감의 돌이다. 전시장의 나한은 보는 이들과 분리되지 않았다. 싸늘한 유리로 격리되지도 않았다. 나는 자유로이 나한 사이에 섞인다. 어쩌면 이 순간은 나도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이다. 나한들도 나를 구경하고 있는 중이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얼굴을 가져가는 듯했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나오는 길. “단단한 돌덩이 오래됐단 말 말게. 무생(無生)에 견주어 보면 찰나간인 걸.”(청허 휴정) 박물관에 입장할 때 왼편으로 본 나무는 오른편에서 여전히 피어 있다. 요즘은 산에 가도 봄과 가을의 사이에서 꽃이 잠깐 주춤하는 시기. 그 허전한 간극을 감당하듯 홀로 핀 산딸나무다. 관상수로 심었지만 용산을 후원하는 저 남산의 기운이 흠뻑 배었다. 다음 산에서 만나면 보리수 아래 정등각을 깨친 부처처럼 창령사터 오백 나한을 떠올려야지! 산딸나무, 층층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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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같은 출판계 몇 분과 무등산 가는 길. 아침에 광주행 KTX를 타면 당일치기로 너끈히 다녀올 수 있다. 행신은 幸信이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듯 행운의 우편엽서에 올라탄 기분으로 출발했다. 좌석의 등받이마다 정다운 문구가 있다. ‘마음을 잇다, 당신의 코레일.’ 행신역과 송정역을 잇는 기차에서 저 구절을 발견하니 자연스레 며칠 전 귓전을 울린 YTN의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관련 뉴스가 떠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전야제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르고 거세게 망월동의 대지를 적십니다. (…) 기념식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빗물 대신 이제는 눈물이 행사장을 적셨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물질이다. 비는 곧 물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은 낮은 곳을 찾아간다. 낮은 곳은 서러운 곳. 그렇게 물은 하늘과 유족의 가슴을 이어주고 있었다.

증심사~장불재를 잇는 길은 넉넉했다. 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직접 걸었던 인연으로 ‘노무현등산로’로 명명된 곳이기도 하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바닥에 일렁거렸다. 얼마나 화려한 흑백인가. 그 어떤 총천연색의 풍경보다도 더 가슴을 찌르는 서늘함이 있다. 최근 꽃산행을 다니면서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산에 가면 바위나 돌에서 사람의 얼굴이 자꾸 그려지는 것이다. 요즘은 아예 작정을 하고 바위 얼굴을 수집하기도 한다. 오늘, 오월의 광주, 무등산, 노무현등산로를 걷자니 감회가 아니 날 수가 없었다. 무정한 돌, 무심한 얼굴. 흙으로 녹아들어가는, 어디에서 사진으로 본 듯한, 억울하게 사라진 분들의 장엄한 표정 같은 바위 속, 돌 속 얼굴들. 바람이 깎고 비가 다듬고 발길로 조각한 바위 얼굴들!

그 돌들 옆의 덤불에 광대수염이 빤히 길 안을 바라보고 있다. 경상과 전라 등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오늘 무등산에서 보는 꽃은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꼿꼿하게 발딱 서 있는 꽃. 무언가 할 말이 많아서 고함을 지르는 꽃. 층을 지고 어깨 겯듯 모여서 피어난 하얀 꽃, 광대수염.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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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석권(手不釋卷), 잠시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 머리에 철들 무렵 부친한테 참 많이도 들었던 사자성어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와 접촉하는 첨병이었던 손. 그 손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건 무엇일까. 아무리 열중한다 해도 손바닥에서의 일은 잠깐이었다. 본래 인생은 잡는 데 있지 않다는 걸 암시하면서 그곳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한동안 열망했던 너는 잡힐 듯하다가 그냥 스쳐가고 말았지. 끝내 나의 손을 외면하고 말았지. 

요즘 식당에 가면 빈자리는 많아도 빈손은 없다. 모두들 그것을 들고 그것에 빠져 있다. 음식이 나와 젓가락을 잡기까지의 자투리 시간도 그냥 두지 못한다. 배꼽 없는 이가 없듯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손을 장악하였다. 스카이, 갤럭시, 안드로이드, 구글 등 하늘과 관련된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그것들. 이 짝퉁하늘에 고개를 박고 사느라 고개 들 겨를이 없다.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는 손바닥 안의 그것! 손안을 만지작거리다가 급기야 몸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그것을 치환해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여러 현상들과 똑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것은 이내 책의 죽음, 하늘의 죽음, 대화의 죽음으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그것의 바탕화면 캘린더에는 생일과 더불어 나의 기일도 분명히 들어 있다. 그러니 어쩌면 죽음의 척후병이 미리 이렇게 구체적으로 현현한 게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

짐작하다시피 그것은 휴대폰이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잠시 생활에서 이탈하는 방법으로 산을 택했다. 카메라를 메고 휴대폰도 챙겨서 홍천의 어느 깊숙한 계곡을 파고들었다. 그곳에는 꽃도 많지만 떠오르는 궁리도 많다. 어느 나무의 겨드랑이에 숨어 있었던가. 집이라면 짐작조차 못했던 문장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적, 인적 드문 자갈밭 귀퉁이에서 노랑무늬붓꽃을 만났다. 보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저의 자리를 지키며 정갈하게 피어난 노랑무늬붓꽃. 품안의 거울 꺼내 보듯 그것도 한번 생각해보면서 꽃동무의 그것에 찍힌 노오란 노랑무늬붓꽃을 찍어보았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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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갈아 종종 신문지에 붓글씨를 썼다. 못된 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우글거린다는 말이 있는데 신문에도 많이 들러붙어 있다. 얍삽한 얼굴에는 먹물로 죽죽 긋기도 했다. 말이 먹이고 붓이지 혼자만의 글씨요 솜씨였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부친이 한 말씀 하셨다. “야야, 날 비를 잘 쓰면 장개를 먼 데로 간다캤다.” 비(飛) 자는 어쩐지 균형을 잡기가 좀 어렵다. 말뚝 하나에 겨우 의지하는 천막 같아서 웬만해서는 멋이 나지 않는다.

춘천 지나 화천의 오지마을에 꽃잔치가 있다 하여 찾아가는 길. “초대합니다. 봄의 절정인 즈음, 꽃가람 화천 비수구미 숲속에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만개했습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이 3000여 개나 꽃을 피웠습니다. 법적 지위도 그러하지만 꽃의 품격도 사뭇 다릅니다. 장소 : 비수구미 마을, 주최 : 광릉요강꽃보존회 장윤일, 노영대.”

날아갈 듯 아흔아홉 굽잇길을 넘어 飛水口尾(비수구미) 마을로 가는 동안 어쩌면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수 없는 비(飛) 자에 대한 궁리가 슬몃슬몃 일어났다. 나는 강원 춘천 출신의 색시한테 장가를 갔다. 부친한테 그런 말씀을 들었던 곳이 부산이었으니 잘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아주 멀리 간 건 확실한 셈이겠다.

‘광릉요강꽃! 30여년을 지키고 증식해 온 3000촉의 꽃망울’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린 민박집으로 들어서니 공기와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이 집은 파로호가 숨겨둔 생태마을의 한복판으로 계곡트레킹에 이은 산채비빔밥으로 널리 호가 난 곳이다. 배낭을 풀고 바로 뒷사면으로 갔다. 세상에나, 하나만 보아도 눈이 홀릴 판인데, 3000촉이라니! 이 꽃들은 매우 특별하다. 특별하고도 신기해서 야생에서 광릉요강꽃을 만나면 나는 삼배의 예를 드린다. 개화시기가 마침 초파일 근처이기도 해서 산중에서 광릉요강꽃을 만났을 때 그 말고 달리 흔감한 기분을 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러 의미가 포개진 비수구미의 이 장관 앞에서는 삼천배가 아니라 구만배로도 모자랄 판이다. 오오, 내 마음 설설 끓게 만든 광릉요강꽃.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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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좋은 거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때의 그것은 입이 큰 생선이겠지만, 와 그래요 대구?라고 할 때의 그곳은 어엿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사는 도시다. 거창에서 가장 가까운 대처라 많은 내 고향분들이 대구를 비빌 언덕으로 알고 살아온 바이기도 하다. 그동안 큰 언덕이라고만 알았는데 옥편에서 구(邱)를 뒤적이니 구릉을 넘어 무덤, 분묘의 뜻도 있다. 병풍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라서 무척 덥겠거니 했는데 어찌 보면 이름에서 이미 더운 기운을 바탕으로 깔고 있겠다는 느낌도 든다.

그 대구의 한편에 위치한 불로동은 不老洞이다. 불로라면 불사일 것이 마땅할진대 역설적으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어마어마한 무덤군이 있다. 얼마나 양지바른 곳이었기에 이리도 많은 무덤일까. 당시엔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을 테지만 이제는 탱자나무 울타리만 초라할 뿐이다. 그래도 하늘과 내통하고 호령하는 무덤의 정기는 살아 있어 다종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기를 되풀이한다.

어느 주말의 오후 2시, 나는 불로동 무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2년 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으니 또 2년만큼 정확하게 늙은 몸이었다. 그나마 잘 먹는 재주를 가진 자로서 불로동에서 터득한 게 있다. 무덤군에 갈 때는 조금 불콰한 기분으로 가는 게 좋다! 이날은 배우 안재모씨가 광고모델인 불로막걸리를 공원 입구의 칼국수집에서 음복하듯 한 잔 걸치고 입장했다. 술기운 탓인가. 무덤 곁을 지나치려니 나의 다음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아무리 불로동에 드나든다 한들, 탱자나무 가시로 막는다 한들 불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허벅지 근육의 탄력이 헐렁해지듯 호주머니 속의 금쪽같은 시간이 점점 묽어지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덤은 무의 덤. 언제나 봉긋하고, 포근한 곳. 다정하고도 덤덤하다. 대구 불로동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는 뻣뻣한 똥막대기를 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건 애기자운이다. 작지만 야무진 꽃이다. 지하 뿌리에서 직접 잎과 꽃이 따로따로 나온다. 대체적으로 털이 빽빽해서 나오자마자 늙었다는 느낌도 주는 애기자운. 턱 괴고 엎드려 꽃을 맞추는데 자꾸 꽃 너머가 눈에 들어왔다. 대구에서 무덤에 파묻히고, 불로동에서 불로막걸리를 마신 하루. 살아 있을 때 모름지기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 어떤 아귀를 딱딱 맞춘다는 느낌이 흠뻑 들었다. 애기자운,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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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좀 해둘걸, 몹시 후회스럽다.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한자 몇 개 아는 것에서 멈췄다. 늘그막으로 기울어질수록 고전을 기웃거리게 된다. 졸아드는 시간 앞에서 이제 소설은 그만 읽겠다는 사소한 결심도 한다. 이 세계의 진리는 의문문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무식한 자의 용감에 기대어 한술 더 뜬다면 그것도 부정문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돌멩이가 그것이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정작 돌멩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없다. 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구별되고 그저 ‘아니다’라는 사실에 촘촘히 기대고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한문을 더듬더듬 읽으면 꽤 자주 부정문을 만나게 된다. <노자>의 첫 문장은 단호한 부정문이고, <논어>의 첫 대목엔 무려 5번의 ‘아니 불(不)’이 등장한다. ‘그렇다’는 긍정은 그것으로 일단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부정은 그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가끔 붓으로 써보면 ‘不’은 균형을 잡기가 힘들고 웬만해서는 모양새가 나지 않는 글자다. 어쩌면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의 고독한 포즈 같은 ‘不’의 어원을 찾다가 ‘이 문자는 악부(&#33852;莩), 즉 꽃받침의 상형자이다’(<한자의 세계>, 시라카와 시즈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不’자를 닮은 것을 찾다가 지난주 거문도의 바닷가 절벽에서 맞춤한 조건의 식물을 만났다. 꽃잎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도톰한 꽃대 위에 꽃받침의 흔적만 쓸쓸하게 남은 털머위였다. 거문도의 거문이 ‘巨文’이라서 더 각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털머위. 내친김에 과감하게 말해 본다. 세상은 ‘不’자 위에 아슬하게 건설된 문명이 아닐까.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룩했는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한 자동차라지만 운전의 관건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데에 있지 않는 것. 오늘도 자유로를 달려 출퇴근을 한다. 현대문명의 총아를 몰고 가는 동안 백미러를 보고 ‘부(不)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거문도의 털머위, 그것을 빼닮은 총 4획의 ‘아니 不’이 함께 떠올랐다. 털머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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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1004라는 숫자가 돋보인다. 일공공사가 아니라 천사로 읽고 天使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의 크고 작은 섬을 통칭하여 1004개라는 것. 그래서 이곳은 천하에서 유일한 천사의 섬이라는 것. 최근에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뭍에 직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제 목포에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저 천사들의 발치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의 추위가 산하를 휩쓸고 있다. 식물에 각별한 애정과 깊은 안목을 지닌 분들과 봄맞이 꽃산행에 나섰다. 무안 톱머리해변에서 일박하고 김대중대교-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두봉산에 올랐다. 최근 뭍의 산에서는 진달래(너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더냐,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꽃이 없었는데, 섬의 산은 올해의 봄을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꽃에 취하려는데 한술 더 뜬다. 하늘에서 부드러운 사신이 도착한 것이다. 객쩍은 환영사도 작성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텅 빈 줄로 알았는데/쌓인 말이 저리도 많았구나//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두봉산을 종주하고 내려오니 벚나무가 활짝 피었다. 그 아래 작은 정자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때는 마침 점심 무렵이라 하루 중에서 가장 긴요한 시간대이다. 허기를 달래는 사람, 젖은 몸을 말리는 사람, 등산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동무들을 찾는 사람. 마치 산중에 도깨비시장이라도 반짝 열린 듯하다. 벚나무 꽃잎에 폭 싸인 저 알록달록한 풍경을 세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묘사해 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는 구르고 흘러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벚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 꽃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졌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간다. 착륙하는 빗방울과 흩날리는 꽃잎의 중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그대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에 머무르다 또 어디로 가는가.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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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고 물에 빠진 닭이 있다. 난처한 사정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닭백숙집에 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다. 상을 잇대어 붙이고 미팅 대열로 나란히 앉았다. 단순한 점심이 아닌지라 여러 사람들의 말로 일순 식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구규(九竅)는 몸에 뚫린 아홉 가지 구멍을 말한다. 구규가 있기에 인체는 외부와 소통하고 연락하면서 겨우 유지·건사한다. 

하부의 것은 그렇다 치고 상부에 난 건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눈 하나가 뒤통수에 달리면 사방을 두루 꿰지 않을까. 일견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그건 부작용이 많은 게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몰두하라는 함의로 나는 이해한다. 

한편 얼굴에 모인 일곱 개로 생각이 뻗어나가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해부학적으로 콧구멍은 겉으로만 두 개일 뿐 실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한다. 말하는 구멍과 먹는 구멍.

모처럼 소임을 만난 나의 입은 토실한 토종닭의 육질을 실컷 즐겼다. 다음은 또 다음의 기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저런 구규에 관한 실없는 생각과 함께하면서 점심을 끝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말은 먹이를 찾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먹을 게 떨어지면 대화도 금방 시들해진다. 이윽고 나는 섬을 퐁당퐁당 떠났다.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마당에서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

불룩한 배도 꺼줄 겸, 차를 버리고 심학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 너머 출판도시의 사무실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산 초입의 약천사 돌화단에 영산홍이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추위에 아직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다. 그 아래 누군가 나무팻말을 세워놓았다. 자세히 보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영산홍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용 나무다. 거룩한 불심을 보살피는 나무판으로 인해 오늘의 영산홍은 퍽 달리 보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을 세 번 외며 심학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영산홍, 진달래과의 반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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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꼬리가 길다. 기역자로 꼬부라지고 마는가 했는데 리을자로 두 번을 더 꺾고서야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태세다. 여기인가 했더니 아니고 이번인가 했는데 또 가라는 천마산의 정상과 같은 구조인가 보다. 우수(雨水) 지나고 곡우(穀雨)가 코앞인데 기다리는 비는 아니 오시고, 공중의 찬 기운은 발톱을 거두지 않는다. 

ⓒ이해복

경북 의성으로 깽깽이풀을 찾으러 간다. 고운사는 그 연혁을 보면 보통 유서 깊은 절이 아니다. “신라 의상조사가 창건하고 고운 최치원이 중건하였다. (…) 송림이 우거진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는 속세에서 저만치 있는 듯한 청정 수행도량으로….” 주차장에서 산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범상치 않다. ‘쪼대’를 아시는가.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찰흙을 이르는 말이다. 좌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호위하는 길바닥은 그 쪼대 같은 흙으로 다져졌다. 시멘트와 다르고 아스팔트와는 더욱 다른 그 길은 주위의 소리는 흡수하면서 주변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수목장의 흔적도 있는 곳에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저만치 피어나는 건 깽깽이풀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의 기세에 눌려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활짝 핀 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며칠 후면 만개할 깽깽이풀이 조금 아쉬워졌다. 풀 대신 절 구경에 나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셨다는 곳에 이르니 ‘아거각’ 현판이 눈썹을 때린다. 이웃한 적묵당의 주련은 이해하겠는데 ‘我渠閣’은 도통 문자 바깥이다. 문 없는 ‘아거각’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자니 섬돌 주위로 가랑잎만 바람에 업혀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수소문하니 ‘아거각’은 서산대사가 자신의 영정 뒷면에 남긴 게송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이름이 조금 사납기는 하지만 깽깽이풀은 황홀한 꽃이다. 고운사 아거각의 ‘我’자는 아래에 그 어디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독특한 글씨다. 꽃과 글씨를 교대로 떠올리면서 늦은 밤 오래 뒤척거렸다. 깽깽이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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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살 것 같은 산청(山淸)의 웅석봉 오르는 길이다. 초입에서부터 경사가 심했다.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고향 거창이 지척이다. 지리산에 더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해복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곳의 공통점은 산비탈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한다. 경사로 인한 긴장감이 항상 몸에 전달되기에 그런 것인가 보다. 나보다 키 큰 나무들, 오래 사는 나무들. 저들도 모두 저 험준한 비탈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 것도 순간이다. 잠깐 치고 올랐는데 오늘 보려고 작정했던 나무의 군락이 일순 눈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외국어처럼 사뭇 생경한 이름이지만 한국 특산의 히어리다. 꽃이 조롱조롱 달려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새가 날렵하다. 얼핏 보면 먹음직스러운 꽈배기 같더니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뚜렷한 누에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웅석봉 한 능선에는 노란 히어리가 붉은 진달래와 한껏 어우러졌다. 바람이라도 불어 출렁출렁 흔들릴 땐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꽃상여(喪輿)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

그리고 그 바닥에는 얼레지가 한창이다. 몇 해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두 잎, 하나만 달랑 올라오는 대궁과 그 끝에 오로지 하나만의 꽃이다. 얼레지는 한 골짜기를 온통 저들의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잎이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다. 입 있는 것들이 함부로 먹었다가 큰코다치는 잎이다. 

처음 보는 얼레지는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얼레지. 새침하게 토라져 입을 닫은 얼레지도 있고, 쪽진 머리처럼 한껏 뽐을 내는 얼레지도 있다. 민감하기는 이를 데 없어 두툼한 햇빛이 아니라면 함부로 꽃잎을 열지 않는 얼레지.

노랗고 붉은 공중과 보랏빛 골짜기. 그 단정한 빛깔을 어루만지며 바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람 불 때마다 산 하나를 떠메고 가려는 듯 일제히 나부끼는 얼레지. 이번 바람은 내 오른쪽 뺨을 때리는가. 어머니 생각이 더욱 진하게 났다. 얼레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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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외곽의 산청 인근에서 흐드러진 히어리 군락을 조사한 뒤 구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수유 축제가 벌어지는 원좌마을을 찾았다. 지리(智異)의 훤칠한 이마 아래로 내리닫는 널찍한 들판에 자리한 마을이다. 올해의 산수유 꽃은 바로 오늘이 절정이라서 한적했던 골목이 번화한 거리처럼 북적댄다. 모처럼 속마음을 저 나무처럼 활짝 터뜨리고 싶어 안달이 난 상춘객들. 돌담 아래 길목에는 할머니들이 쑥, 도라지, 머위 등등의 봄나물로 구색을 갖춘 임시가게를 열었다.

물론 산수유 마을에는 산수유가 많았다. 마을의 입구에서 노란 물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흠뻑 든다. 산수유가 층층나무과에 속한다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산수유 마을 풍경을 일별해 본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의 흔적이 땅속을 쏜살같이 더듬는 두더지 자국처럼 뚜렷하다. 저 하늘과 맞닿은 곳에는 장엄한 지리산의 능선이 뚜렷하다. 바로 한 칸 아래에는 기쁜 혹은 슬픈 소식을 전하는 전깃줄이 윙윙윙 뻗어나간다. 그리고 작은 텃밭에는 두더지의 자취를 지우며 새로 두둑을 세우고 비닐로 덮어놓았다. 무슨 맛있는 씨를 뿌려놓았는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라나는 채소들.

봄빛이 휘황한 시멘트 길을 걸어 동네 한 바퀴를 하다가 문득 안 사실이 있다. 원좌마을에는 의외로 무덤이 많았다. 밭은 물론 집 근처에도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에 무질서한 묘지 조성으로 인하여….” 구례군수 명의의 안내판이 있을 정도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된장가게를 운영하시는 분께 무덤에 대해 물었더니 한마디 해주신다. 여긴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죠. 무덤? 하이고 무덤이 우리보다 먼저재. 무덤 사이로 집이 들어서고 자투리땅을 개간한 것이라요. 또 무덤을 만났다. 그 흔한 석물은 없고 산수유로 둘러싸인 무덤이다. 생전의 금실을 반영하듯 둘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저 첩첩 지리산을 배경으로 아득히 해 지는 쪽을 나란히 보고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이 더 있다. 웬만한 집에는 대문 옆에 달린 게 있다. 나중의 일을 예감하듯 둘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는 문패.

층층나무과의 산수유 그늘에서 하늘, 구름, 산, 전깃줄, 나무, 무덤, 문패로 연결되는 층층의 풍경을 오래오래 감상했다. 산수유, 층층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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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노랗게 제 방식으로 번역해내는 산수유에 벌 한 마리가 악착같이 들러붙어 귓속말을 전한다. 집요한 중매쟁이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라지만 꽃은 아무런 흥미가 없다. 그저 올봄의 꽃밥을 만드는 데 열중할 뿐이다. 바람을 불러 도리질을 해 보지만 잉잉거리는 벌은 막무가내다. 꽃가루 대신 탄력이라도 달라고 찰거머리같이 덤빈다.

따뜻한 봄볕에 등을 지지는 감나무 아래 암탉이 동생 둘을 데리고 ‘뒤안’을 뒤지고 있다. 땅에게 뭘 좀 먹을 걸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낙엽을 뒤집고 흙을 쪼으며 여린 부리로 먹이를 찾는 닭. 아직 땅이 제대로 안 녹았는지 가끔 고개를 들고 먼곳을 보며 공중에 부리를 닦는다. 최선을 다하는 닭들의 거룩한 식사.

ⓒ최영민

참 열심히 산다. 그 옆에는 이런 먹이를 광고하고 있다. 닭백숙/흑염소/오리/연회석완비/010-XXXX-XXXX. 지금 옹골찬 암탉 한 마리 잡아서, 뜨겁게 삶으면, 기름기가 좌르르르…. 입맛을 다시며, 고인 침을 닦으며, OO농장의 전화번호를 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는 참으로 속(俗)되도다. 시냇가 한쪽에 개구리 알이 수북하다. 어떤 건 제법 성숙해서 눈알이 뒤룩뒤룩하다. 곧 올챙이로 쏟아져 나올 기세다. 옆 잘록한 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바위로 올라가려고 발 없는 꼬리로 발버둥친다. 용수철처럼 상승하려는 기운이 물씬! 이 세상의 봄은 이런 연약한 것들의 기운과 동작이 모이고 모인 집합일 테다. 21일은 춘분(春分)이다. 춘분은 수상한 봄이 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서 봄은 비로소 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된다.

여기는 경주와 포항이 맞붙은 운제산(雲梯山) 산여계곡이다. 혼자 특출하게 높지는 않아도 원효를 비롯한 신라 고승들이 구름의 사다리처럼 데리고 다닌 산이다. 모두들 어깨를 걸고 있는 형제처럼 다정하다. 낙엽더미 풍성한 곳에 날개현호색이 있다. 지체없이 몸을 풍덩 던졌다. 잎은 댓잎처럼 가늘고 꽃잎 옆에 날개 모양이 뚜렷하다. 낙엽들이 스스로를 해체하면서 흙으로 녹아들 때 그 어디로 비상하려는 듯! 날개현호색, 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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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처럼 긴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옆구리를 열고 내리니 신경주역이다. 이곳은 언제나 다른 역보다도 곱절의 묵직한 기분이 어깨를 두드린다. 천년도시와 가깝기도 하지만 역사 바깥으로 나오면 묘한 기물이 있어 과연 경주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그네의 출출한 속을 달래주는 튀김, 해장국 따위의 간판이 마구 달려드는 여느 역과는 달리 광장에 무덤이 앉아 있다. 살아 있음의 엄숙함을 새삼 일깨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경주 방내리고분군 1호 돌방무덤’. 오늘은 버스나 승용차의 푹신한 의자에 엉덩이를 맞추겠지만 그 언젠가는 나하고 꽉 궁합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경주에서 출발해 포항 운제산 오어사(吾魚寺) 부근의 봄꽃을 관찰하는 탐사는 하루로 그쳐야 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하늘이 몹시 찌푸르르하더니 드디어 비가 내렸다. 봄을 풀어놓고 미세먼지를 진압하는 달콤한 봄비였다. 산으로 못 가는 아쉬움을 흠뻑 달래고도 남을 만큼 반가웠다. 그냥 귀가하기가 서운해서 경주 남산 자락의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들렀다. 야생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나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무마다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경주라서 그런가. 상투적이지 않은 알찬 정보들이 빼곡하다. 내 고향에서 목탁으로 만든다는 살구나무를 두고 “살구(殺狗)란 의미는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씨를 달여서 먹으면 독을 중화시킨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희미한 빗줄기 사이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우뚝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설명문이 붙은 낙우송(落羽松)이다. “잎이 깃털처럼 떨어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 주변에서 흔히 공기뿌리를 볼 수 있으며 잎이 어긋나게 달리는 점이 메타세쿼이아와 다르다. 4~5월 수꽃은 가지 끝에 달려 밑으로 늘어지고 암꽃은 둥그스름하게 핀다.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비 사이로 남산의 능선을 본다. 앞으로 낙우송을 만나면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말도 꼭 따라 나오겠지, 궁합을 맞추듯! 낙우송, 낙우송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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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허공의 한 자리를 차지하신 외할머니의 표현을 빌린다면 오늘은 공일(空日)이다. 거문고에 능한 친구와 휴일의 오후에 인왕산으로 향했다. 지하에서 올라와 선바위를 향하는데 굿당 벽에 무학대사의 오도송이 적혀 있다. 靑山綠水眞我面 明月淸風誰主人(푸른 산 푸른 물은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은 누가 주인인가).

칠언절구 중에서도 열한 번째의 바람 풍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건 최근의 한 생각 때문이다. 바람 풍(風)에 벌레 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벌레하고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제야 그 빤한 사실을 접수하게 되었을까. 바람에 벌레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바람소리가 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소리는 바람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 사물들과 부딪쳐 내는 소리다. 세상 만물에는 무언가 꿈틀거리고자 하는 벌레들이 숨어 있고 그래서 그들을 일깨우면 그것들이 일어나 이 세상을 발효시킬 것이라는 생각.

둥둥둥. 바람결에 실려오는 건 국사당에서 굿하는 소리였다. 자연스럽게 궁리에서 펴낸 <만신 김금화>의 저자이신, 며칠 전 허공으로 거처를 옮기신 김금화 선생님(1931~2019)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인왕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귤과 삶은 계란을 건넸다. 배경으로 단가 ‘죽장망혜’를 틀어놓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미세먼지가 물결처럼 띠를 이루며 출렁출렁 시내를 훑으며 지나갔다. 인왕산은 바위산이다. 희미한 실핏줄 같은 등산로 옆 날망에 표지판이 있다. ‘위험해요.’ 암벽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위험이란 게 어디 지금 이 자리, 인왕산 정상에서만의 일일까. 정작 위험한 곳은 오히려 저곳이라고, 위험한 서울을 지그시 가리키는 팻말 옆에 나무가 있다. 바위를 거처로 삼아 자라는 날씬한 소나무 옆의 싸리였다. 가뭄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무. 작년의 잎과 작별하지도 못한 채 전신이 배배 꼬여 비를 기다리고 있는 싸리. 나무 안에 웅크린 벌레여, 잠시만 기다리게. 이제 곧 경칩(驚蟄)이네! 싸리, 콩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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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거문도에 발을 딛는 순간, 몇 가지 생각도 훌쩍 따라 내렸다.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제사 지내고 나면 음식은 고방으로 가고 병풍과 제기는 다락이나 시렁으로 올라갔다. 반지로 남은 여러 시절을 통과하고 한 큰 매듭에 이르니 이제 옛날의 그것들처럼 나도 그 어떤 선반 위로 올라간 느낌이 든다. 그만큼 하늘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리라.

10년 단위로 묶으면 고작 여섯 번 만에 도달한 고개이다. 이제 마지막 고비까지 두세 번 남았는가. 앞으로의 첫 구간을 지탱할 한 글자의 주제어로 ‘문’을 택했다. 논어의 한 대목,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 행하고도 힘이 남은 뒤에야 글을 배운다)이라고 할 때의 그 문(文)이다. 그런 총중에 거문은 ‘巨文’이라 하니 더욱 특별한 느낌을 아니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낚시꾼과 관광객을 유혹하는 간판과 영국군 묘지의 이정표가 어우러진 시내를 가로질러 거문도 등대로 걸어갔다. 몇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선 거문도는 호수처럼 평온하고 고요했지만 출렁대는 파도를 따라 이 섬의 근심과 걱정도 따라 흔들리는 듯하다. 빈 가게가 여럿이다.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길은 동백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는 꽃길이었다. 통으로 떨어진 동백꽃은 길바닥을 밝힌다. 바위에 걸터앉은 꽃도 있다. 짙은 응달의 돌 안에서 누군가 바깥을 내다보는 느낌. 드디어 등대에 도착했다. 아담한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건 까마귀쪽나무들이다. 바닷바람을 상대하느라 거칠 수밖에 없겠지만 길쭉한 잎은 둥글게 모여 나고, 수형도 깔끔하고 매끈하다. 동백꽃잎을 올려놓은 듯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등대 너머로 서로 구별이 되지 않는 쪽빛들. 바다에는 배가 있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혹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까마귀쪽나무, 녹나무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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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다이너스티, 야생의 지배자들>을 보았다. 영국 BBC의 알아주는 다큐멘터리는 궁리출판에서 출간했던 적도 있어 더욱 텔레비전 앞으로 몸을 끌어당기게 했다. 침팬지, 황제펭귄, 사자, 아프리카 들개, 호랑이. 자연의 한 영역을 실효적으로 차지하는 이 지배자들을 좌지우지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나하고도 공통으로 엮이는 물이었다.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초원에 건기가 오면 순한 초식동물들은 물을 찾아 헤맨다. 이들을 먹이로 노리는 지배자들도 물 앞에서는 결국 꼼짝 못하는 신세였다.

요즘 뭍은 가뭄이 무척 심하다. 산에 가면 바짝 마른 숲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명의 끄나풀인 등산화에 밟힐 때마다 마른 낙엽이 으깨지는 소리가 몹시도 자지러진다. 귀한 나무를 찾아 거문도에 가려고 나로도에 왔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뜨지를 못했다. 비와 배. 서로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둘은 하늘을 매개로 서로 엮여 있지 않은가.

내일을 기약하고 나로도의 사양산에 올랐다. 눈썹에 걸리는 바다 건너 봉래산 기슭에 우주항공센터가 있다. 막연하게 하늘 너머를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 실제로 지구 바깥으로 나가려고 힘쓰는 곳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나중 사람들은 내가 거문도로 들어가듯, 화성이나 달로 가는 우주선에 가뿐히 몸을 실을지도 모를 일!

정상 근처의 바위에 이르렀다. 바위도 가뭄을 탄다. 바위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멧돼지가 씩씩거리며 파헤친 흔적이 역력한 곳에 바위손이 무성하다. 꽃을 피우지 않지만 숲 다양성의 일익을 담당하는 양치식물의 하나이다. 언젠가 EBS 다큐에서 본 바위손. 바짝 말라 죽은 척하던 잎이 비가 내리자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척박한 바위에서 겨울과 가뭄을 견디느라 줄기와 잎이 안쪽으로 돌돌 말린 바위손. 혹 멧돼지의 주둥이를 피하려 호랑이나 사자의 뭉툭하면서도 날카로운 발을 닮은 건 아닐까? 우수(雨水)가 임박했지만 아무런 기미가 없는 나로도의 무정한 하늘이었다. 바위손, 부처손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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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새해 지나고 벌써 한 달. 아라비아 숫자가 큼지막한 달력 아래에서 살지만 그 속에 숨은 24절기를 올해부터 몸에 밀착시키기로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고작 오늘밖에 살지 못하는 내가 한 해의 중심을 그 어디로 삼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한해살이의 시작을 입춘(立春)에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봄이 저기에 저렇게 서는 것처럼 나도 여기에 이렇게 독립적으로 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하자.

설 연휴의 여세를 몰아 오래전부터 별렀던 교동도에 갔다. 아직도 명절이면 찾아오는 어릴 적 냄새가 조금 남아 있을 것도 같았다. 저물 무렵을 겨냥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교동제비집에 들러 몸을 녹인 뒤 대룡시장에 갔다. 좁은 골목마다 그 시절을 통과해낸 사람들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서성거린다. 관광객들로 불이 난 호떡집을 비롯해 이런저런 점빵들 사이로 효도관광, 신혼여행 안내문도 있다. 장례식장 빼놓고 있을 건 다 있는 시장. 그 끄트머리에서 산 가래떡을 입에 물고 골목을 벗어나니 교동초등학교가 있다. 제106회 졸업식을 축하하는 현수막 옆으로 우람한 측백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교문 기둥을 만지는데 어쩔 수 없이 내 고향 초등학교의 졸업식 생각이 났다. 풍금 소리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나온 언니들은 교문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 흩어졌었지. 학교 담벼락에 초상화가 있다. 이 학교를 떠나고, 이 세상도 마저 졸업하신 다섯 분의 제1회 졸업생들.

방학도 없이 학교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목구멍이 조금 간질간질해지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동장을 걸어 새삼스레 나무를 세어보았다. 좌측으로 54그루, 우측으로 29그루. 이 학교와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저장하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멀리 해가 뚜렷하게 지는 것을 보면서 시장으로 돌아와서 양초를 샀다. 이제 집에 가서 불을 켜면 겨울에도 푸르른 측백나무 사이로 많은 생각이 푸르륵 일어나겠다. 교동도의 측백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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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강원도 심심산곡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찾아가는 북한강이 심심한 듯 크게 용틀임을 할 때, 이에 호응하여 경기 근방에 가까이 집합한 산들이 막역한 친구처럼 첩첩하게 도열한다. 명지, 연인, 칼봉, 운두 그리고 천마. 마치 돌올한 산악문명이라도 곧 발흥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봄이면 이 산마다에 야생화의 잔치판이 벌어지는 건 이런 지리적 사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산으로 들 때, 그 산의 이름을 통한 내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오늘 찾는 곳은 저 문명의 한 축인 축령산이다. 산은 완만하다. 초입에서 잠깐 가파른 길을 더위잡아 오르니 바로 산천경개가 툭 트인 능선이다. 잎이 모두 떨어진 산. 나무는 물론 산의 전모가 훤히 드러난다. 어느덧 남이바위에 서니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적응한 소나무가 홀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저 아래 다정한 인간의 마을에 지곡서당이 있건만 글 읽는 소리 끊어진 지 오래!

축령산은 祝靈山이다. 그 이름이 퍽 희한해서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하는 산, 축령산. 축에 촉발되어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중국소설을 전공하는 분들을 따라 주자(朱子)의 고향 무이산을 갔었다. 주자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한 자료 중의 여러 글귀가 축(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결혼식장에 잘못 배달된 조화처럼 아주 낯설고 희한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주자 어머니의 이름이 축씨였던 것. 축령산을 걷는 내내 어쩐지 그때 퍽 낯설었던 옛 생각이 자꾸 났다.

축령산 정상에서 한숨을 돌린 뒤 이웃한 서리산으로 간다. 서로 뽐내지 않으며 그 능선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등산을 축령산-서리산으로 마무리하고 보니 무슨 근사한 목걸이를 완성하는 기분이었다. 그 목걸이의 고리에 해당하는 곳에 이르니 우람한 나무들이 공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 맏형처럼 자리잡고 묵묵히 하늘을 받드는 잣나무였다. 그늘을 좋아해서 아주 단정하고 기품 있게 뻗는 나무. 송무백열(松茂栢悅·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이라고 했던가. 잣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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