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운세를 살필 만큼 그리 고급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되는대로 밀고 나아갔다. 뒤늦게나마 날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의 훈련’을 소화한 아이가 대청도로 배치된 것이다. 스포츠뉴스가 끝나면 백령도가 표기된 지도가 떴다. 최북단 섬의 근황을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상냥한 음성이 몹시도 반가웠다. 첫 면회를 갔을 때 고독한 섬의 생태계도 염두에 두었지만 꽃보다는 쫄병이었다. 군인에서 아들로 돌아와 모처럼 시름을 잊고 동생과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2분3초’의 외박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해병 대신 꽃 보러 가는 길. 꽃산행을 응원하듯 배 이름도 하모니플라워다. 대청도에 내리니 5년 전의 생생한 추억이 땅보다 단단했다. 웬만한 지역은 일몰 이전에는 접근에 제한이 없었다. 대청도로 우편엽서를 제법 보낸 터라 이 지역의 주소는 지금도 훤히 왼다. 까나리액젓 담그는 통이 즐비한 옥죽동을 지나 모래사막 근처 용머리 해안을 탐사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흔한 순비기나무의 꽃, 해당화의 열매들이 한창이다. 

여름 바닷가에서는 벌거벗는 게 상책이다. 피서객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침내 그것과 만났다. 꽃에 입문했을 때, 오후 3시에 정확하게 꽃봉오리가 터진다는 말을 듣고 퍽 신기해했던 대청부채였다. 날카로운 칼 같은 잎이 서로 얼싸안으며 부챗살처럼 퍼진다. 나사처럼 배배 꼬인 채 지고 있는 꽃 옆에 피기 일보 직전의 꽃봉오리가 있다. 동영상 모드로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멀리 끊임없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짐작도 못할 저 바다의 깊이를 아들은 가슴에 들어앉혔을까, 생각하는 순간 꽃봉오리 하나가 확, 세상 구경을 하였다. 꽃잎 벌어지는 소리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렸나, 안 들렸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청도에서 대청부채를 보았다는 건 곡부에서 논어를, 달에서 이태백의 시를 읽은 셈에 비견할 수 있을 듯! 

제대 특명을 받고 하모니플라워를 탄 기분을 가늠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물에 뜬 배처럼 나의 기분도 파도 마루에 높게높게 걸리었다. 대청부채,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청부채  (0) 2019.08.20
염소와 고사리  (0) 2019.08.13
각시수련  (0) 2019.08.06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진옥

지난 하루를 되짚어본다. 깜깜한 밤을 지나 새벽에 눈을 떴다가 한숨 더 잤다. 날이 훤해지고서야 알람의 독촉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멀리까지 신호를 보낸 뒤 바닥을 짚고 일어나 직립했다. 달그락달그락 밥그릇을 비우고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검은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은 玄關으로 쓴다. 왜 ‘검을 현’일까. 

우리는 통상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처음 현을 만난다. 저 천자문의 첫 대목에서 玄을 ‘검을 현’으로 훈을 달면서 그저 ‘검다’라고만 이해한다. 하지만 하늘을 형용하는 검다, 라는 말은 가물가물하다, 라는 뜻에 가깝다. 아득히 멀고 깊어서 가물가물한 경지를 玄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멀고 깊으면 검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기도 하겠다.

그제 절친한 꽃동무가 산에서 만난 염소를 찍은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녹색을 배경으로 까맣기 그지없는 어미 염소가 더욱 까맣게 압축된 새끼 염소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염소는 ‘검다’라는 형용사의 우두머리인 양 온통 까맣다. 털은 물론 온몸이 구석구석 새까맣다. 염소는 마침내 똥마저 검은 것으로 생산한다. 검은색이 거느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통하고 우뚝한 존재.

한편, 까망이 장악한 풍경에서 아는 식물을 하나라도 찾으려니 염소 뒤에 앉아 있는 고사리가 보인다. 염소와 같이 소과(科)에 속하는 양의 이빨을 닮았다는 양치식물의 대표 격이다. 우리나라에 무려 350여 종이나 자생한다는 고사리 앞에서 내가 깜깜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실감한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고사리라고만 여기에 적을 뿐.

흑(黑)과 현(玄)의 차이처럼 블랙과 다크는 확실히 구별된다. 염소의 털은 블랙이지만 눈은 다크라고 해야 함이 옳다. 

우리는 아침에 현관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가, 저녁이면 현관을 닫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집과 세상 사이의 현묘한 문(門)인 현관을 玄關으로 표기하는 건 참 적절하다 하겠다. 눈알마저 새까만 염소 가족을 보면서 현관 바깥을 거니는 나를 겹쳐보느니, 지금 대체 어느 소용돌이 속을 나는 깜깜 헤매고 있는 중이더냐!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청부채  (0) 2019.08.20
염소와 고사리  (0) 2019.08.13
각시수련  (0) 2019.08.06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의 꼭대기가 숲처럼 우거지고 그 속에 큰 고민이 살고 있듯 산의 상층부에 습지가 있다.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아래에 처하기를 좋아하는 물을 높이 받들고 있는 터라 세상의 신비와 고요가 집합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의 고민에 상응하듯 혹 이무기라도 살고 있는 걸까.

내 안에 이리도 많은 구멍이 있었구나. 닭똥 같은 땀방울이 마구 빠져나오는 이열치열의 상쾌함을 느끼면서 서늘한 기운이 밀집한 습지의 물가로 접근하면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한 토막도 따라 나온다. 흘러가는 시냇물. 물에는 물고기가 제 몸뚱이 하나를 밑천으로 살았다. 물 바깥에서 물속의 물고기를 보는 건 기이한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쉬리 떼를 발견하는 건 언제 보아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바지를 걷고 매미 소리를 귀에 꽂으며 직접 물에 들어갔다. 물에서 물고기를 이길 수 있겠나. 하지만 물낯에 튕기는 햇살을 얼굴에 바르며 일렁이는 물살 아래 미끈거리는 돌과 모래를 더듬다가 운 좋게 모래무지, 동사리, 꺽저기를 잡기도 했다. 그렇게 물에서 물고기를 떼어낼 때의 짜릿한 흥분을 어찌 잊으랴. 

강원도 고성의 어느 습지. 미리 알고 가는 길이었지만 짐작 못한 곳에서 습지는 툭 튀어나왔다. 숲에서 뱀을 만나듯, 점빵에서 알사탕을 눈으로 훔치듯 숲속의 습지는 뜻밖의 발견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낡은 길에는 고사목이 쓰러져 있고 어느 태풍의 소행인 듯 나무는 뿌리째 뽑혀 밑동과 잔뿌리가 수직으로 허옇게 드러나 있기도 하였다.

물가에 좀 더 접근해 본다. 습지에 깊숙이 물구나무서 있던 산과 구름은 더 깊은 속으로 빠져들면서 나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땀에 전 한 사내의 모습을 떠받쳐 주는 건 각시수련이다. 주로 오래된 습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매우 귀한 식물이다. 연꽃의 잎과 줄기가 공중을 짚는다면 수련은 수면에 그 높이를 맞춘다.

수련(睡蓮). 문자적으로 졸음과 관련이 있으니 수련은 물을 이불처럼 깔고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중일까. 어쨌든 저를 제대로 보려면 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라는 것이니 그 옛날의 기억을 확실하게 반짝 일깨우는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청부채  (0) 2019.08.20
염소와 고사리  (0) 2019.08.13
각시수련  (0) 2019.08.06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이가 사춘기 시절 갈 곳 몰라 헤맬 때 더러 꼰대 같은 소리를 해댔다. 골짜기에서 얼른 능선을 타라. 그 방법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아니하고 그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게 상책이라고만 했다. 어떤 자리에서는 주워들은 풍월로 그만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도 충고랍시고 던지기도 했었다. 내 마음조차 어디 있는 줄 깜깜 모르는 주제에 마음 운운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퍽 가소롭기만 하다, 아무튼.

산에 가서 깔딱고개 몇 개 넘으면 능선을 만난다. 그 능선에 서면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온다.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지만 최초의 사람은 산에서 성큼성큼 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고 상상하게 된다. 그 깊이를 짐작 못할 침묵의 덩어리인 바위를 관찰하면 이 또한 바다에서 융기한 흔적이 있으니 마냥 터무니없는 생각만도 아닐 터다. 오르기는 어렵고 내려가기는 더 어려운 법이라 했다. 그러니 저 아래 세상이란 잘되기는 무지 어렵고, 잘 안되기는 너무나 쉬운 현장이 아닐까, 아무튼. 

설악의 능선은 겨울에도 좋지만 여름에 가면 더 좋다. 봉우리 이름이 주는 뜻을 가늠하다 보면 하늘의 한 별자리를 짚어나가는 기분에 발길도 가볍다. 한계령에서 올라 귀때기청을 곁눈질하고 끝청, 중청 그리고 대청으로 이루어진 ‘설악좌’를 순례하는 기분이란!

오늘의 행로는 끝청을 지나고 잠시 멈췄다. 중청대피소를 지척에 둔 바위들 틈에 야생화가 잔뜩 피어 있다. 높은 산중인데도 그 이름이 등대시호란다. 꽃은 뿌리-줄기-잎-대궁-꽃의 일반적인 모양을 따르지 않는다. 기하학적 구조가 특이하고 자잘한 꽃을 들여다보면 하도 오묘해서 눈알이 뱅뱅 돌 지경이다. 이 꽃안을 ‘등대시호좌’로 명명해 줄까. 

캄캄한 바다를 밝히는 등대로 짐작하고 이 높은 산도 결국 바다에서 왔다는 한 근거로 삼으려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등대시호는 등잔을 거는 대에서 따온 이름이라 했다. 사무실 한편에 호롱과 양초를 모두 놓을 수 있는 녹슨 등대가 있다. 시골 큰집에서 쓸모를 잃고 뒹구는 것을 수습해온 것이다. 저 등잔불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가. 내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꿈을 눅진하게 담은 듯한 설악산의 등대시호.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염소와 고사리  (0) 2019.08.13
각시수련  (0) 2019.08.06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해복

간밤에 비가 왔나 보다. 하루 내내 험상궂은 하늘의 표정. 태풍 다나스는 소멸했지만 그 뒤끝은 남았다. 대서(大暑)가 임박했는데 아직 매미가 기척이 없다. 올해 첫 매미소리는 언제? 하려는데 멀리서 맴맴맴, 이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는 매미답지 못했다. 이내 소리의 꼬리가 툭, 끊어졌다. 혹 내가 머릿속에서 작곡한 매미소리였을까?

동네 한바퀴를 하다가 이웃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예전에는 교사나 계단이 보였는데 이제는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은 늘 반듯한 줄로만 알았다. 실은 몹시 울퉁하고 불퉁하다. 비 오고 난 뒤에는 그 실상이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이 뛰놀다 간 텅 빈 운동장에 서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책 하나를 썼는데 그 첫대목은 이렇다. “늦은 밤 초등학교 옆을 지나는데 때마침 비 내려 운동장으로 내처 들어간 적이 있는가. 운동장 흰 모래가 밤하늘의 별들과 은밀히 내통하는 시간. 소나기 한 줄금 온 뒤 비릿한 비냄새가 코끝에 아릿할 때 초등학교 깜깜한 운동장에 서본 적이 있는가.” 

이에 촉발되어 내가 나온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오륙도에서 시작하는 갈맷길 꽃탐사를 마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학교는 기억 속의 모습에서 그리 변한 게 없었다. 다만 새삼 느낀 건 운동장이 퍽 좁아졌다는 것과 화단이 무척 빈약하다는 것. 내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을 우람한 나무를 기대했건만 운동장 사정이 넉넉하질 못했다. 화단을 뒤지니 동백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은 계요등이 눈에 띄었다. 때가 겨울 끝 무렵이라 작년 열매가 저물어가는 희미한 빛을 끌어당기며 여물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 꽃산행에서 심심찮게 계요등을 만났다. 꽃은 참 야무지고 예쁘기 그지없는데 냄새가 좀 독특하다. 사정이야 어떻든 활짝 핀 계요등은 고약한 냄새를 뚫고 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덩굴이 되었다. 하늘에 구름이 있다면 땅에는 운동장이 있다. 오늘 큰아이가 졸업한 운동장에 서서, 나를 배출한 부산의 그 운동장, 그 안에서 씩씩거리며 뛰놀았던 나, 그런 나를 바라보기도 했을 계요등을 떠올렸다. 계요등, 꼭두서니과의 덩굴성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시수련  (0) 2019.08.06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는 납작하게 산다. 나무처럼 자라고, 꽃같이 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날이 납작하고 납작해져서 그림자보다도 더 아래로 몸을 숨기는 게 사람의 일생이겠다. 세속의 일상은 이 납작에 저항하는 자세이다. 머리맡의 찬물이 미지근해지는 것처럼 자꾸 납작해지는 그 삶 속에서 큰 고비를 하나 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음은/머리도 가슴도 발목이 아닌/ 뒷덜미를 통해 올 것이다// 산 정상 바로 아래 어디쯤/ 불각시에 산불이라도 났을 때 대비하는 헬기장// 햇빛이 바글바글 놀고 있는 공터/ 웬만한 산의 뒷덜미쯤에 있는 공터// 수피가 튼튼한 참나무/ 겨드랑이를 긁고 발목에 쌓인 낙엽을 청소하려고/ 마른 기운을 모을 때// 공중에서/ 턱/ 소방 헬리콥터가 난데없이 나타나듯// 나의 죽음은/ 나의 뒷덜미에 소리없이 착륙하는 것”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설악산에 오르는 길. 한계령에서 끝청을 지나 중청 대피소에서 한숨을 돌리고 대청으로 오르는 데 헬기장이 나타났다. 최근의 그 메모를 떠올리며 설악의 꼭대기를 향하여 남은 힘을 짜낸다. 중청서 대청까지의 짧은 구간은 여간 범상치가 않다. 얼마나 무거운 하늘인가, 잘록하게 늘어진 곡선. 공중의 밑바닥과 설악의 어깨가 만나는 접면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판인데 계절에 따라 진귀한 꽃들이 밭밑에 자욱하다. 우리 딛고 사는 세상을 바다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게 산이라면 그 설악을 이렇게 마지막으로 맵시 있게 마무리하는 건 바로 이 연약한 꽃들.

많은 꽃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바람꽃에 내 마음을 포갠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의 변산바람꽃에서 여름에서 여름의 한 중앙을 지키는 바람꽃까지, 책 한 권을 쓸 만큼 바람꽃 가족은 그 종류가 많다. 이런저런 바람꽃들이 차례로 다녀가는 걸 지켜보다가 아주 높은 곳에서 가장 늦게까지 피어 있는 바람꽃. 설악의 높이에 내 키를 더한다 한들 바람꽃이 빚어내는 이 깊이에 필적할 수 있으랴. 험상궂은 얼굴 모양의 바위 앞에 앉아 첩첩산중의 저 아래를 무정하게 바라보는 바람꽃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의 등대시호  (0) 2019.07.30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말석에 앉아 노자를 배운다. 이제껏 귀동냥한 것과는 사뭇 다른 전복적 해석에 머릿속이 반짝거린다. 무유(無有)를 비롯해 부쟁, 무위는 노자가 말하는 주요한 개념들이다. 그런 총중에 경향신문의 한 인터뷰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판문점 회동 핵심은 분단이 얼마나 인위적인지 보여준 것.” 심화학습을 위해 읽은 ‘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의 머리말에 맞춤한 내용이 있다. “70, 80년대는 군사정치의 극성기로 학교는 이에 항거하는 반정시위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군경들의 침입으로 영일이 없었다. (…) 그때 학생들이 내건 반정권 구호들에 불이병강천하와 같은 노자의 글귀들이 등장했다.”

일찍이 김구는 우리나라가 문화국이 되는 것을 소원했거니와 당시 학생들이 불이병강천하(不以兵强天下: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를 내세운 건 되새길 만한 안목이 아닐 수 없겠다. 결국 학생들은 군사정치를 물리쳤고, 그제 판문점에서의 저 만남도 결국은 부쟁(不爭)으로 가는 한 이정표가 되리라.

천하통일은 있어도 천지통일이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천지는 진즉에 통일되어 있다. 꽃에 입문하고 북방계 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어 백두산 탐사에 종종 따라붙는다. 얼마 전 이도백하로 가는 길목을 둘러보는 길. 우리나라 웬만한 산 아래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벌깨덩굴이 ‘천지삐까리’로 피어 있다. 수형이 익숙한 나무들은 객지에서도 나의 눈을 안심케 함은 물론 인정이 묻어나던 기억 속의 고향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꽃과 나무는 이미 스스로 천하를 통일하고 있는 중!

어느 숲으로 들어가니 발을 디디기 송구할 만큼 왕죽대아재비가 잔뜩 피어 있었다. 설악산을 위시해서 높고 깊은 산에서나 발견된다지만 아직 내 눈으로 입장하지 못했던 귀한 꽃이다. 아재비라니, 이름에서 그 어떤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이런 인위라면 얼마든지 좋다. 따지고 보면 인간인 나하고 식물인 왕죽대아재비는 물과 흙, 바람과 천둥으로 차곡차곡 연결되어 있는 것. 생김새에서 누님을 떠올리게 하는 국화처럼 이름에서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왕죽대아재비.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요등  (0) 2019.07.23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심학산 아래 ‘곰씨부엌’ 앞의 벚나무  (0) 2019.06.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의 두뇌처럼 복잡한 회로의 북한산. 선잠을 깨고 나와 지하에서 출발했다. 연신내역-불광사-족두리봉 옆길로 오른다. 번들거리고 번잡한 도심에서 30여분 만에 이런 풍광과 시야를 얻다니, 과연! 이윽고 향로봉 아래 고개에 이르렀다. 차마고도를 연상케 하는 돌고개가 꼬부라져 돌아가고 그 날망 끝에 인왕산 아래 동네가 잘록하게 걸린다. 꼭 10년 전에 바로 이 자리를 다녀간 뒤 이런 일기를 썼다. “등산객이 빠져나간 만큼 일요일의 시내는 조용하다. 한반도 중앙 고원에 건설된 문명의 도시, 서울. 저녁밥 짓는가. 푸르스름하게 가득 찬 기운. 승가사 계곡 물소리 찰방찰방 귀에 담아 구기동으로 내려왔다.” 

같은 요일, 같은 자리에서 그 풍경을 본다. 침침한 눈 사이로 산은 여여하고, 거리도 여전하다. 몇 가지의 변화는 있다. 그동안 문득문득 들이닥친 생각들이 내 두개골에 주입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나이 마흔부터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한다. 오십에는 자연과 접촉면적을 넓히는 게 장땡이다. 육십부터 지붕 아래를 지옥으로 여겨라. 

그때와 같은 품목의 김밥에 물, 과일과 빵을 우물거리며 천하의 한 귀퉁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무슨 난투극이라도 있었는가. 얼룩덜룩 멍이 들었다. 곧 한줄금 퍼부을 기세다. 오늘도 식물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담을 만한 게 없다. 공중으로 가는 시선을 아래로 구부렸다. 나무보다는 바닥의 돌을 자꾸 보는 건 발과 접촉하는 곳의 사정이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비비고 싶을 만큼 기묘한 표정의 돌들. 마을버스 속에서 판문점발 속보를 찰랑찰랑 귀에 담으며 탕춘대-포방터시장-홍제역으로 내려왔다. 과연! 나로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오늘 벌어진 일들 속에서 그래도 꽃 하나를 소환하는 일이다. 북한산 초입, 태극기가 펄럭이는 바위 너머에서 꽃 한 송이를 보았더랬다. 아주 가늘고 너무 여린 병아리난초였다. 아무 데서고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야생화. 나의 머릿속을 양초처럼 순간 환하게 밝힌 병아리난초. 너를 만났기에 마음 놓고 돌을 보았단다. 오전에 너를 활짝 보았기에 오후에 이렇게 확 좋은 뉴스를 듣는구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대청봉의 바람꽃  (0) 2019.07.16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심학산 아래 ‘곰씨부엌’ 앞의 벚나무  (0) 2019.06.18
덜꿩나무  (0) 2019.06.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파주에 끝내주는 국숫집이 있다. 칼칼한 맛도 맛이지만 그 옥호가 특히 눈길을 끈다. ‘언 칼국수’. 간판에 ‘言’이라고 한자로 딱 박혀 있다. “言. 날카로운 칼과 口가 합친 것. 칼로 까칠까칠하게 만들듯 하나하나 확실하게 구별되는 게 말”이라고 옥편은 그 자원을 풀이한다. 무심코 그냥 하는 게 말인 줄로 안다. 언어가 없다면 세상은 분별될 수 없다. 제아무리 깊은 궁리를 해도 말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궁리를 바깥으로 운반할 수 있겠는가. 옹알이만 하다가 일생이 지나간다. 한편 그것을 그것이라 말해버리면 그것밖에 되지 못하니 이 말의 감옥은 또 어쩔 것인가. 말, 그게 결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틉틉한 멸치국물에 색다른 고명. 한 숟가락 뜨면 맑아도 그릇 속은 깊고 묘하다. 이 쫄깃하면서도 뚝뚝 끊어지는 면발을 이 이름에 담은 것일까. 말끔히 비우고 난 뒤 주인을 찾았더니, 원래 ‘언니네 칼국수’였는데 상호등록을 하려니 한자가 필요해서 언(言)으로 했다고 한다. 얼큰했던 맛이 확 깨는 싱거운 답이 아닐 수 없었다.

심학산 자락에서 놀다가 저녁을 맞이했다. 간단하게 때우자며 출판단지 입구의 청국장집, ‘진달래’로 갔다. 주말이라 오히려 한가해서 우리 둘은 특별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보리밥을 바탕으로 각종 나물과 큼지막한 상추에 고추장을 섞어 밥을 비볐다. 밥알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어 막걸리 안주로도 훌륭하다. 몇 술 뜨는데 비로소 라디오 소리가 걸어왔다. &lt;배미향의 저녁스케치&gt;에서 전해주는 날씨 소식. 먼 지방에는 비, 경기에는 돌풍이 분단다. 그 끝에 오늘은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라고 했다.

공터로 나오니 전혀 다른 국면의 세상이 또렷하다. 눈앞의 풍경은 언어의 집합이기도 하다. 산과 들판, 집과 골목이 있다. 이들을 가능케 하는 햇살이 짱짱하다. 텃밭 옆에 건장한 건 살구나무였다. 노란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직은 밍밍하고 떫은 맛. 여름의 한 지극한 경지인 하지이니 오늘이야말로 열매는 가장 당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물가물한 하늘에 저물어가는 기해년의 하지. 나무 아래서 그 이름만 겨우 알 수 있는 살구를 툭 건드리자 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살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의 왕죽대아재비  (0) 2019.07.09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심학산 아래 ‘곰씨부엌’ 앞의 벚나무  (0) 2019.06.18
덜꿩나무  (0) 2019.06.11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산딸나무  (0) 2019.06.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외부에 멱살 잡힌 사람의 몸. 아무리 고급한 생각을 한다 해도 밥 한 톨 삼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건사하기가 난망이다. 기생(寄生)이란 말을 굳이 해야 하랴. 항산이라야 항심이라고 했다. 삼시세끼. 이보다도 더 일상을 좌우하는 게 달리 없으니 몸의 안팎이 다 같다. 오죽했으면 삼식이, 라는 참으로 모멸스러운 별명이 등장했을까. 

어디에서 오는지 도무지 그 정체를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배꼽시계가 뻐꾸기처럼 울었다. 또 도래한 점심. 이번 끼니는 출판도시 내 옥호도 사뭇 다정스러운 ‘곰씨부엌’으로 정했다. 곰처럼 우직한 분들이 묵직한 국물을 끓여낼 것만 같은 식당.

좋은 식당은 배고픈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내 가슴살을 잘게 저민 닭곰탕이 나오고 숟가락을 집었다. 첫술이 들어가고 들척한 국물이 목울대를 휘젓고 내려갈 때, 옛날 생각이 거슬러 올라왔다.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는 여섯 개의 입을 달래느라, 그 간단없는 삼시세끼를 감당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윽고 허기가 다스려지고, 국물이 바닥을 보일 무렵, 숟가락을 그릇에 걸쳐놓는 여유도 찾았다.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다가 아, 퍼뜩 알게 되었다. 

‘곰씨부엌’ 앞마당의 울울한 나무. 6월의 푸르른 신록이 도드라지는 벚나무들. 그들이 식당을 환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통유리창 바깥은 생생한 현실이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닿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 잎사귀가 춤을 추는 곳이었다. 나처럼 빈틈없는 몸을 가진 나무들을 보다가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나무들도 식사 중! 이 환한 햇빛 아래로 소풍 나온 듯! 

입안이 씰룩거릴 때마다 정확하게 리듬을 맞추며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들의 동작. 목구멍 너머로 꿀떡 삼킬 때면 더 크게 끄떡이는 잎사귀들의 움직임. 그것은 나의 저작운동과 때맞추어 궁합을 맞추는 나무들의 식사법이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벚나무 옆에서 벚나무와 함께 또 한 끼니를 때운 하루.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의 병아리난초  (0) 2019.07.02
살구나무  (0) 2019.06.25
심학산 아래 ‘곰씨부엌’ 앞의 벚나무  (0) 2019.06.18
덜꿩나무  (0) 2019.06.11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산딸나무  (0) 2019.06.04
무등산의 광대수염  (0) 2019.05.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내 그림자는 언제부터 있었나. 그건 내가 언제 이 세상에 왔을까와 똑같은 물음이다. 따라서 내가 이 세계로 미끄러져 나올 때 그림자도 함께 태어났다고 해야 정확하다. 울음보다도 먼저 그림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란, 태양이 너희들은 모두 언젠가 녹여먹을 사탕이야, 라고 지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찍어놓은 불도장 같은 것!  참 시시한 질문 같았는데 말하고 보니 감히 <논어>의 한 대목, 절문근사(切問近思)를 들먹일 수도 있겠다는 궁리와 함께 발밑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그림자를 관찰해 본다.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란 것을 증명하는 그림자. 그 그림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들었던 한마디로 귀결된다. 직진하는 햇빛은 너무나 멀리에서 오기에 지구에 평행하게 도착하고, 그래서 그림자가 생긴다! 이상하게 그 말이 참 마음에 오래 남아 그 이후 그림자에 대한 관심을 간단없이 이어지게 하는 한 이유가 되었다.

낯선 고장에 저물 무렵에 도착하는 건 사소한 축복이다. 뉘엿뉘엿 석양에 반사되는 밀양(密陽) 이정표를 보면서 네이버 옥편을 뒤적였다. 빽빽한 햇빛 혹은 비밀의 햇빛, 밀양. 낮에는 지푸라기처럼 빽빽했다가 밤이면 비밀스럽게 변하는 햇빛인가. 그래서 비밀은 햇빛 속에 다 드러난다는 것인가.

밤이란 지구의 짙은 그림자. 그 그림자에 폭 파묻혀 밀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유명한 얼음골을 지나 천황산 오르는 길. 볼 게 많았다. 여름임에도 너덜겅의 돌 밑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했다는 동의굴의 서늘한 바위에는 짙은 분홍의 설앵초. 얼음골과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꽃도 꽃이지만 오늘은 그림자에 특히 유념하기로 했다.

산에서 나무 한 그루의 사연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 쟁반 같은 나뭇잎에 담긴 꽃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별 모양의 흰 꽃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덜꿩나무. 잎은 물론 가지, 줄기에 털이 밀생하는 덜꿩나무. 모양이 반듯해야 그림자도 반듯하다. 이 세계를 두껍고 깊게 복사하는 꽃과 그림자를 찰칵, 찍었다. 덜꿩나무, 산분꽃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구나무  (0) 2019.06.25
심학산 아래 ‘곰씨부엌’ 앞의 벚나무  (0) 2019.06.18
덜꿩나무  (0) 2019.06.11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산딸나무  (0) 2019.06.04
무등산의 광대수염  (0) 2019.05.28
노랑무늬붓꽃  (0) 2019.05.2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월화수목금토. 일주일을 한 묶음으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세속도시의 일상이다. 요일마다 얼굴은 다 달라진다. 웃음과 울음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하지만 표정은 돌처럼 딱딱해진 지 오래다. 

주중에도 고개가 있는가. 수요일을 기점으로 어디론가 내려가는 느낌이다. 금요일. 얼굴이 마구 뜯겨나가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귀가하다가 흑석동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광고판을 보았다.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영월 창령사터 오백 나한(사진).’ 큼지막한 돌덩이의 울먹이려는 표정이 목석같던 나의 뒷덜미를 끌어당겼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공간에서 단연 돋보였기에 휴대폰에 찰칵, 담았다. 그리고 몇 바퀴가 굴렀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칼럼 ‘래여애반다라’(조운찬)를 읽은 아침, 뜻밖에도 춘천 출신의 아내가 창령사터 나한 이야기를 꺼냈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정밀한 고독과 숨막히는 고요가 밀물처럼 들어찼다. “마치 허공을 나는 새가 걸림 없이 멀리 가는 것처럼”(법구경) 컴컴한 공중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있어 이름을 문의했지만 아는 이 아무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불성을 깨우쳐주시는 나한은 좌대에 앉아서 나와 어깨를 견주었다. 시골 뒷산에서 흔히 보았던 질감의 돌이다. 전시장의 나한은 보는 이들과 분리되지 않았다. 싸늘한 유리로 격리되지도 않았다. 나는 자유로이 나한 사이에 섞인다. 어쩌면 이 순간은 나도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이다. 나한들도 나를 구경하고 있는 중이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얼굴을 가져가는 듯했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나오는 길. “단단한 돌덩이 오래됐단 말 말게. 무생(無生)에 견주어 보면 찰나간인 걸.”(청허 휴정) 박물관에 입장할 때 왼편으로 본 나무는 오른편에서 여전히 피어 있다. 요즘은 산에 가도 봄과 가을의 사이에서 꽃이 잠깐 주춤하는 시기. 그 허전한 간극을 감당하듯 홀로 핀 산딸나무다. 관상수로 심었지만 용산을 후원하는 저 남산의 기운이 흠뻑 배었다. 다음 산에서 만나면 보리수 아래 정등각을 깨친 부처처럼 창령사터 오백 나한을 떠올려야지! 산딸나무, 층층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도반 같은 출판계 몇 분과 무등산 가는 길. 아침에 광주행 KTX를 타면 당일치기로 너끈히 다녀올 수 있다. 행신은 幸信이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듯 행운의 우편엽서에 올라탄 기분으로 출발했다. 좌석의 등받이마다 정다운 문구가 있다. ‘마음을 잇다, 당신의 코레일.’ 행신역과 송정역을 잇는 기차에서 저 구절을 발견하니 자연스레 며칠 전 귓전을 울린 YTN의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관련 뉴스가 떠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전야제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르고 거세게 망월동의 대지를 적십니다. (…) 기념식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빗물 대신 이제는 눈물이 행사장을 적셨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물질이다. 비는 곧 물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은 낮은 곳을 찾아간다. 낮은 곳은 서러운 곳. 그렇게 물은 하늘과 유족의 가슴을 이어주고 있었다.

증심사~장불재를 잇는 길은 넉넉했다. 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직접 걸었던 인연으로 ‘노무현등산로’로 명명된 곳이기도 하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바닥에 일렁거렸다. 얼마나 화려한 흑백인가. 그 어떤 총천연색의 풍경보다도 더 가슴을 찌르는 서늘함이 있다. 최근 꽃산행을 다니면서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산에 가면 바위나 돌에서 사람의 얼굴이 자꾸 그려지는 것이다. 요즘은 아예 작정을 하고 바위 얼굴을 수집하기도 한다. 오늘, 오월의 광주, 무등산, 노무현등산로를 걷자니 감회가 아니 날 수가 없었다. 무정한 돌, 무심한 얼굴. 흙으로 녹아들어가는, 어디에서 사진으로 본 듯한, 억울하게 사라진 분들의 장엄한 표정 같은 바위 속, 돌 속 얼굴들. 바람이 깎고 비가 다듬고 발길로 조각한 바위 얼굴들!

그 돌들 옆의 덤불에 광대수염이 빤히 길 안을 바라보고 있다. 경상과 전라 등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오늘 무등산에서 보는 꽃은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꼿꼿하게 발딱 서 있는 꽃. 무언가 할 말이 많아서 고함을 지르는 꽃. 층을 지고 어깨 겯듯 모여서 피어난 하얀 꽃, 광대수염.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덜꿩나무  (0) 2019.06.11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산딸나무  (0) 2019.06.04
무등산의 광대수염  (0) 2019.05.28
노랑무늬붓꽃  (0) 2019.05.21
화천 비수구미 마을의 광릉요강꽃  (0) 2019.05.14
대구 불로동 무덤군의 애기자운  (0) 2019.05.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수불석권(手不釋卷), 잠시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다. 머리에 철들 무렵 부친한테 참 많이도 들었던 사자성어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와 접촉하는 첨병이었던 손. 그 손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건 무엇일까. 아무리 열중한다 해도 손바닥에서의 일은 잠깐이었다. 본래 인생은 잡는 데 있지 않다는 걸 암시하면서 그곳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한동안 열망했던 너는 잡힐 듯하다가 그냥 스쳐가고 말았지. 끝내 나의 손을 외면하고 말았지. 

요즘 식당에 가면 빈자리는 많아도 빈손은 없다. 모두들 그것을 들고 그것에 빠져 있다. 음식이 나와 젓가락을 잡기까지의 자투리 시간도 그냥 두지 못한다. 배꼽 없는 이가 없듯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손을 장악하였다. 스카이, 갤럭시, 안드로이드, 구글 등 하늘과 관련된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그것들. 이 짝퉁하늘에 고개를 박고 사느라 고개 들 겨를이 없다.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는 손바닥 안의 그것! 손안을 만지작거리다가 급기야 몸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그것을 치환해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여러 현상들과 똑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것은 이내 책의 죽음, 하늘의 죽음, 대화의 죽음으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그것의 바탕화면 캘린더에는 생일과 더불어 나의 기일도 분명히 들어 있다. 그러니 어쩌면 죽음의 척후병이 미리 이렇게 구체적으로 현현한 게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

짐작하다시피 그것은 휴대폰이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잠시 생활에서 이탈하는 방법으로 산을 택했다. 카메라를 메고 휴대폰도 챙겨서 홍천의 어느 깊숙한 계곡을 파고들었다. 그곳에는 꽃도 많지만 떠오르는 궁리도 많다. 어느 나무의 겨드랑이에 숨어 있었던가. 집이라면 짐작조차 못했던 문장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적, 인적 드문 자갈밭 귀퉁이에서 노랑무늬붓꽃을 만났다. 보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저의 자리를 지키며 정갈하게 피어난 노랑무늬붓꽃. 품안의 거울 꺼내 보듯 그것도 한번 생각해보면서 꽃동무의 그것에 찍힌 노오란 노랑무늬붓꽃을 찍어보았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먹을 갈아 종종 신문지에 붓글씨를 썼다. 못된 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우글거린다는 말이 있는데 신문에도 많이 들러붙어 있다. 얍삽한 얼굴에는 먹물로 죽죽 긋기도 했다. 말이 먹이고 붓이지 혼자만의 글씨요 솜씨였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부친이 한 말씀 하셨다. “야야, 날 비를 잘 쓰면 장개를 먼 데로 간다캤다.” 비(飛) 자는 어쩐지 균형을 잡기가 좀 어렵다. 말뚝 하나에 겨우 의지하는 천막 같아서 웬만해서는 멋이 나지 않는다.

춘천 지나 화천의 오지마을에 꽃잔치가 있다 하여 찾아가는 길. “초대합니다. 봄의 절정인 즈음, 꽃가람 화천 비수구미 숲속에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만개했습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이 3000여 개나 꽃을 피웠습니다. 법적 지위도 그러하지만 꽃의 품격도 사뭇 다릅니다. 장소 : 비수구미 마을, 주최 : 광릉요강꽃보존회 장윤일, 노영대.”

날아갈 듯 아흔아홉 굽잇길을 넘어 飛水口尾(비수구미) 마을로 가는 동안 어쩌면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할 수 없는 비(飛) 자에 대한 궁리가 슬몃슬몃 일어났다. 나는 강원 춘천 출신의 색시한테 장가를 갔다. 부친한테 그런 말씀을 들었던 곳이 부산이었으니 잘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아주 멀리 간 건 확실한 셈이겠다.

‘광릉요강꽃! 30여년을 지키고 증식해 온 3000촉의 꽃망울’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린 민박집으로 들어서니 공기와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이 집은 파로호가 숨겨둔 생태마을의 한복판으로 계곡트레킹에 이은 산채비빔밥으로 널리 호가 난 곳이다. 배낭을 풀고 바로 뒷사면으로 갔다. 세상에나, 하나만 보아도 눈이 홀릴 판인데, 3000촉이라니! 이 꽃들은 매우 특별하다. 특별하고도 신기해서 야생에서 광릉요강꽃을 만나면 나는 삼배의 예를 드린다. 개화시기가 마침 초파일 근처이기도 해서 산중에서 광릉요강꽃을 만났을 때 그 말고 달리 흔감한 기분을 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러 의미가 포개진 비수구미의 이 장관 앞에서는 삼천배가 아니라 구만배로도 모자랄 판이다. 오오, 내 마음 설설 끓게 만든 광릉요강꽃.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등산의 광대수염  (0) 2019.05.28
노랑무늬붓꽃  (0) 2019.05.21
화천 비수구미 마을의 광릉요강꽃  (0) 2019.05.14
대구 불로동 무덤군의 애기자운  (0) 2019.05.07
거문도의 털머위  (0) 2019.04.30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0) 2019.04.2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구 좋은 거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때의 그것은 입이 큰 생선이겠지만, 와 그래요 대구?라고 할 때의 그곳은 어엿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사는 도시다. 거창에서 가장 가까운 대처라 많은 내 고향분들이 대구를 비빌 언덕으로 알고 살아온 바이기도 하다. 그동안 큰 언덕이라고만 알았는데 옥편에서 구(邱)를 뒤적이니 구릉을 넘어 무덤, 분묘의 뜻도 있다. 병풍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라서 무척 덥겠거니 했는데 어찌 보면 이름에서 이미 더운 기운을 바탕으로 깔고 있겠다는 느낌도 든다.

그 대구의 한편에 위치한 불로동은 不老洞이다. 불로라면 불사일 것이 마땅할진대 역설적으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어마어마한 무덤군이 있다. 얼마나 양지바른 곳이었기에 이리도 많은 무덤일까. 당시엔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을 테지만 이제는 탱자나무 울타리만 초라할 뿐이다. 그래도 하늘과 내통하고 호령하는 무덤의 정기는 살아 있어 다종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기를 되풀이한다.

어느 주말의 오후 2시, 나는 불로동 무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2년 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으니 또 2년만큼 정확하게 늙은 몸이었다. 그나마 잘 먹는 재주를 가진 자로서 불로동에서 터득한 게 있다. 무덤군에 갈 때는 조금 불콰한 기분으로 가는 게 좋다! 이날은 배우 안재모씨가 광고모델인 불로막걸리를 공원 입구의 칼국수집에서 음복하듯 한 잔 걸치고 입장했다. 술기운 탓인가. 무덤 곁을 지나치려니 나의 다음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아무리 불로동에 드나든다 한들, 탱자나무 가시로 막는다 한들 불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허벅지 근육의 탄력이 헐렁해지듯 호주머니 속의 금쪽같은 시간이 점점 묽어지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덤은 무의 덤. 언제나 봉긋하고, 포근한 곳. 다정하고도 덤덤하다. 대구 불로동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는 뻣뻣한 똥막대기를 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건 애기자운이다. 작지만 야무진 꽃이다. 지하 뿌리에서 직접 잎과 꽃이 따로따로 나온다. 대체적으로 털이 빽빽해서 나오자마자 늙었다는 느낌도 주는 애기자운. 턱 괴고 엎드려 꽃을 맞추는데 자꾸 꽃 너머가 눈에 들어왔다. 대구에서 무덤에 파묻히고, 불로동에서 불로막걸리를 마신 하루. 살아 있을 때 모름지기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 어떤 아귀를 딱딱 맞춘다는 느낌이 흠뻑 들었다. 애기자운,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진즉에 좀 해둘걸, 몹시 후회스럽다.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한자 몇 개 아는 것에서 멈췄다. 늘그막으로 기울어질수록 고전을 기웃거리게 된다. 졸아드는 시간 앞에서 이제 소설은 그만 읽겠다는 사소한 결심도 한다. 이 세계의 진리는 의문문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무식한 자의 용감에 기대어 한술 더 뜬다면 그것도 부정문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돌멩이가 그것이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정작 돌멩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없다. 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구별되고 그저 ‘아니다’라는 사실에 촘촘히 기대고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한문을 더듬더듬 읽으면 꽤 자주 부정문을 만나게 된다. <노자>의 첫 문장은 단호한 부정문이고, <논어>의 첫 대목엔 무려 5번의 ‘아니 불(不)’이 등장한다. ‘그렇다’는 긍정은 그것으로 일단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부정은 그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가끔 붓으로 써보면 ‘不’은 균형을 잡기가 힘들고 웬만해서는 모양새가 나지 않는 글자다. 어쩌면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의 고독한 포즈 같은 ‘不’의 어원을 찾다가 ‘이 문자는 악부(&#33852;莩), 즉 꽃받침의 상형자이다’(<한자의 세계>, 시라카와 시즈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不’자를 닮은 것을 찾다가 지난주 거문도의 바닷가 절벽에서 맞춤한 조건의 식물을 만났다. 꽃잎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도톰한 꽃대 위에 꽃받침의 흔적만 쓸쓸하게 남은 털머위였다. 거문도의 거문이 ‘巨文’이라서 더 각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털머위. 내친김에 과감하게 말해 본다. 세상은 ‘不’자 위에 아슬하게 건설된 문명이 아닐까.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룩했는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한 자동차라지만 운전의 관건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데에 있지 않는 것. 오늘도 자유로를 달려 출퇴근을 한다. 현대문명의 총아를 몰고 가는 동안 백미러를 보고 ‘부(不)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거문도의 털머위, 그것을 빼닮은 총 4획의 ‘아니 不’이 함께 떠올랐다. 털머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천 비수구미 마을의 광릉요강꽃  (0) 2019.05.14
대구 불로동 무덤군의 애기자운  (0) 2019.05.07
거문도의 털머위  (0) 2019.04.30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0) 2019.04.23
심학산 약천사의 영산홍  (0) 2019.04.16
깽깽이풀  (0) 2019.04.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1004라는 숫자가 돋보인다. 일공공사가 아니라 천사로 읽고 天使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의 크고 작은 섬을 통칭하여 1004개라는 것. 그래서 이곳은 천하에서 유일한 천사의 섬이라는 것. 최근에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뭍에 직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제 목포에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저 천사들의 발치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의 추위가 산하를 휩쓸고 있다. 식물에 각별한 애정과 깊은 안목을 지닌 분들과 봄맞이 꽃산행에 나섰다. 무안 톱머리해변에서 일박하고 김대중대교-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두봉산에 올랐다. 최근 뭍의 산에서는 진달래(너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더냐,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꽃이 없었는데, 섬의 산은 올해의 봄을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꽃에 취하려는데 한술 더 뜬다. 하늘에서 부드러운 사신이 도착한 것이다. 객쩍은 환영사도 작성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텅 빈 줄로 알았는데/쌓인 말이 저리도 많았구나//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두봉산을 종주하고 내려오니 벚나무가 활짝 피었다. 그 아래 작은 정자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때는 마침 점심 무렵이라 하루 중에서 가장 긴요한 시간대이다. 허기를 달래는 사람, 젖은 몸을 말리는 사람, 등산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동무들을 찾는 사람. 마치 산중에 도깨비시장이라도 반짝 열린 듯하다. 벚나무 꽃잎에 폭 싸인 저 알록달록한 풍경을 세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묘사해 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는 구르고 흘러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벚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 꽃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졌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간다. 착륙하는 빗방울과 흩날리는 꽃잎의 중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그대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에 머무르다 또 어디로 가는가.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불로동 무덤군의 애기자운  (0) 2019.05.07
거문도의 털머위  (0) 2019.04.30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0) 2019.04.23
심학산 약천사의 영산홍  (0) 2019.04.16
깽깽이풀  (0) 2019.04.09
얼레지  (0) 2019.04.0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고 물에 빠진 닭이 있다. 난처한 사정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닭백숙집에 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다. 상을 잇대어 붙이고 미팅 대열로 나란히 앉았다. 단순한 점심이 아닌지라 여러 사람들의 말로 일순 식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구규(九竅)는 몸에 뚫린 아홉 가지 구멍을 말한다. 구규가 있기에 인체는 외부와 소통하고 연락하면서 겨우 유지·건사한다. 

하부의 것은 그렇다 치고 상부에 난 건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눈 하나가 뒤통수에 달리면 사방을 두루 꿰지 않을까. 일견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그건 부작용이 많은 게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몰두하라는 함의로 나는 이해한다. 

한편 얼굴에 모인 일곱 개로 생각이 뻗어나가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해부학적으로 콧구멍은 겉으로만 두 개일 뿐 실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한다. 말하는 구멍과 먹는 구멍.

모처럼 소임을 만난 나의 입은 토실한 토종닭의 육질을 실컷 즐겼다. 다음은 또 다음의 기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저런 구규에 관한 실없는 생각과 함께하면서 점심을 끝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말은 먹이를 찾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먹을 게 떨어지면 대화도 금방 시들해진다. 이윽고 나는 섬을 퐁당퐁당 떠났다.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마당에서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

불룩한 배도 꺼줄 겸, 차를 버리고 심학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 너머 출판도시의 사무실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산 초입의 약천사 돌화단에 영산홍이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추위에 아직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다. 그 아래 누군가 나무팻말을 세워놓았다. 자세히 보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영산홍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용 나무다. 거룩한 불심을 보살피는 나무판으로 인해 오늘의 영산홍은 퍽 달리 보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을 세 번 외며 심학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영산홍, 진달래과의 반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문도의 털머위  (0) 2019.04.30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0) 2019.04.23
심학산 약천사의 영산홍  (0) 2019.04.16
깽깽이풀  (0) 2019.04.09
얼레지  (0) 2019.04.02
구례 산수유마을의 산수유  (0) 2019.03.2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겨울은 꼬리가 길다. 기역자로 꼬부라지고 마는가 했는데 리을자로 두 번을 더 꺾고서야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태세다. 여기인가 했더니 아니고 이번인가 했는데 또 가라는 천마산의 정상과 같은 구조인가 보다. 우수(雨水) 지나고 곡우(穀雨)가 코앞인데 기다리는 비는 아니 오시고, 공중의 찬 기운은 발톱을 거두지 않는다. 

ⓒ이해복

경북 의성으로 깽깽이풀을 찾으러 간다. 고운사는 그 연혁을 보면 보통 유서 깊은 절이 아니다. “신라 의상조사가 창건하고 고운 최치원이 중건하였다. (…) 송림이 우거진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는 속세에서 저만치 있는 듯한 청정 수행도량으로….” 주차장에서 산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범상치 않다. ‘쪼대’를 아시는가.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찰흙을 이르는 말이다. 좌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호위하는 길바닥은 그 쪼대 같은 흙으로 다져졌다. 시멘트와 다르고 아스팔트와는 더욱 다른 그 길은 주위의 소리는 흡수하면서 주변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수목장의 흔적도 있는 곳에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저만치 피어나는 건 깽깽이풀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의 기세에 눌려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활짝 핀 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며칠 후면 만개할 깽깽이풀이 조금 아쉬워졌다. 풀 대신 절 구경에 나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셨다는 곳에 이르니 ‘아거각’ 현판이 눈썹을 때린다. 이웃한 적묵당의 주련은 이해하겠는데 ‘我渠閣’은 도통 문자 바깥이다. 문 없는 ‘아거각’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자니 섬돌 주위로 가랑잎만 바람에 업혀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수소문하니 ‘아거각’은 서산대사가 자신의 영정 뒷면에 남긴 게송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이름이 조금 사납기는 하지만 깽깽이풀은 황홀한 꽃이다. 고운사 아거각의 ‘我’자는 아래에 그 어디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독특한 글씨다. 꽃과 글씨를 교대로 떠올리면서 늦은 밤 오래 뒤척거렸다. 깽깽이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0) 2019.04.23
심학산 약천사의 영산홍  (0) 2019.04.16
깽깽이풀  (0) 2019.04.09
얼레지  (0) 2019.04.02
구례 산수유마을의 산수유  (0) 2019.03.26
날개현호색  (0) 2019.03.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