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60건

  1. 2019.04.23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2. 2019.04.16 심학산 약천사의 영산홍
  3. 2019.04.09 깽깽이풀
  4. 2019.04.02 얼레지
  5. 2019.03.26 구례 산수유마을의 산수유
  6. 2019.03.19 날개현호색
  7. 2019.03.12 낙우송
  8. 2019.03.05 인왕산 정상의 싸리
  9. 2019.02.26 거문도 등대의 까마귀쪽나무
  10. 2019.02.19 바위손
  11. 2019.02.12 교동도의 측백나무
  12. 2019.01.29 잣나무
  13. 2019.01.22 거제수나무
  14. 2019.01.15 때까치와 개암나무
  15. 2019.01.08 화살나무
  16. 2018.12.26 사위질빵
  17. 2018.12.18 바랭이
  18. 2018.12.11 수양버들
  19. 2018.12.04 황벽나무
  20. 2018.11.27 산수국

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1004라는 숫자가 돋보인다. 일공공사가 아니라 천사로 읽고 天使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의 크고 작은 섬을 통칭하여 1004개라는 것. 그래서 이곳은 천하에서 유일한 천사의 섬이라는 것. 최근에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뭍에 직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제 목포에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저 천사들의 발치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의 추위가 산하를 휩쓸고 있다. 식물에 각별한 애정과 깊은 안목을 지닌 분들과 봄맞이 꽃산행에 나섰다. 무안 톱머리해변에서 일박하고 김대중대교-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두봉산에 올랐다. 최근 뭍의 산에서는 진달래(너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더냐,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꽃이 없었는데, 섬의 산은 올해의 봄을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꽃에 취하려는데 한술 더 뜬다. 하늘에서 부드러운 사신이 도착한 것이다. 객쩍은 환영사도 작성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텅 빈 줄로 알았는데/쌓인 말이 저리도 많았구나//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두봉산을 종주하고 내려오니 벚나무가 활짝 피었다. 그 아래 작은 정자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때는 마침 점심 무렵이라 하루 중에서 가장 긴요한 시간대이다. 허기를 달래는 사람, 젖은 몸을 말리는 사람, 등산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동무들을 찾는 사람. 마치 산중에 도깨비시장이라도 반짝 열린 듯하다. 벚나무 꽃잎에 폭 싸인 저 알록달록한 풍경을 세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묘사해 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는 구르고 흘러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벚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 꽃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졌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간다. 착륙하는 빗방울과 흩날리는 꽃잎의 중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그대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에 머무르다 또 어디로 가는가.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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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고 물에 빠진 닭이 있다. 난처한 사정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닭백숙집에 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다. 상을 잇대어 붙이고 미팅 대열로 나란히 앉았다. 단순한 점심이 아닌지라 여러 사람들의 말로 일순 식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구규(九竅)는 몸에 뚫린 아홉 가지 구멍을 말한다. 구규가 있기에 인체는 외부와 소통하고 연락하면서 겨우 유지·건사한다. 

하부의 것은 그렇다 치고 상부에 난 건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눈 하나가 뒤통수에 달리면 사방을 두루 꿰지 않을까. 일견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그건 부작용이 많은 게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몰두하라는 함의로 나는 이해한다. 

한편 얼굴에 모인 일곱 개로 생각이 뻗어나가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해부학적으로 콧구멍은 겉으로만 두 개일 뿐 실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한다. 말하는 구멍과 먹는 구멍.

모처럼 소임을 만난 나의 입은 토실한 토종닭의 육질을 실컷 즐겼다. 다음은 또 다음의 기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저런 구규에 관한 실없는 생각과 함께하면서 점심을 끝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말은 먹이를 찾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먹을 게 떨어지면 대화도 금방 시들해진다. 이윽고 나는 섬을 퐁당퐁당 떠났다.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마당에서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

불룩한 배도 꺼줄 겸, 차를 버리고 심학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 너머 출판도시의 사무실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산 초입의 약천사 돌화단에 영산홍이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추위에 아직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다. 그 아래 누군가 나무팻말을 세워놓았다. 자세히 보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영산홍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용 나무다. 거룩한 불심을 보살피는 나무판으로 인해 오늘의 영산홍은 퍽 달리 보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을 세 번 외며 심학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영산홍, 진달래과의 반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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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꼬리가 길다. 기역자로 꼬부라지고 마는가 했는데 리을자로 두 번을 더 꺾고서야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태세다. 여기인가 했더니 아니고 이번인가 했는데 또 가라는 천마산의 정상과 같은 구조인가 보다. 우수(雨水) 지나고 곡우(穀雨)가 코앞인데 기다리는 비는 아니 오시고, 공중의 찬 기운은 발톱을 거두지 않는다. 

ⓒ이해복

경북 의성으로 깽깽이풀을 찾으러 간다. 고운사는 그 연혁을 보면 보통 유서 깊은 절이 아니다. “신라 의상조사가 창건하고 고운 최치원이 중건하였다. (…) 송림이 우거진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는 속세에서 저만치 있는 듯한 청정 수행도량으로….” 주차장에서 산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범상치 않다. ‘쪼대’를 아시는가.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찰흙을 이르는 말이다. 좌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호위하는 길바닥은 그 쪼대 같은 흙으로 다져졌다. 시멘트와 다르고 아스팔트와는 더욱 다른 그 길은 주위의 소리는 흡수하면서 주변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수목장의 흔적도 있는 곳에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저만치 피어나는 건 깽깽이풀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의 기세에 눌려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활짝 핀 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며칠 후면 만개할 깽깽이풀이 조금 아쉬워졌다. 풀 대신 절 구경에 나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셨다는 곳에 이르니 ‘아거각’ 현판이 눈썹을 때린다. 이웃한 적묵당의 주련은 이해하겠는데 ‘我渠閣’은 도통 문자 바깥이다. 문 없는 ‘아거각’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자니 섬돌 주위로 가랑잎만 바람에 업혀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수소문하니 ‘아거각’은 서산대사가 자신의 영정 뒷면에 남긴 게송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이름이 조금 사납기는 하지만 깽깽이풀은 황홀한 꽃이다. 고운사 아거각의 ‘我’자는 아래에 그 어디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독특한 글씨다. 꽃과 글씨를 교대로 떠올리면서 늦은 밤 오래 뒤척거렸다. 깽깽이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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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살 것 같은 산청(山淸)의 웅석봉 오르는 길이다. 초입에서부터 경사가 심했다.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고향 거창이 지척이다. 지리산에 더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해복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곳의 공통점은 산비탈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한다. 경사로 인한 긴장감이 항상 몸에 전달되기에 그런 것인가 보다. 나보다 키 큰 나무들, 오래 사는 나무들. 저들도 모두 저 험준한 비탈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 것도 순간이다. 잠깐 치고 올랐는데 오늘 보려고 작정했던 나무의 군락이 일순 눈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외국어처럼 사뭇 생경한 이름이지만 한국 특산의 히어리다. 꽃이 조롱조롱 달려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새가 날렵하다. 얼핏 보면 먹음직스러운 꽈배기 같더니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뚜렷한 누에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웅석봉 한 능선에는 노란 히어리가 붉은 진달래와 한껏 어우러졌다. 바람이라도 불어 출렁출렁 흔들릴 땐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꽃상여(喪輿)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

그리고 그 바닥에는 얼레지가 한창이다. 몇 해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두 잎, 하나만 달랑 올라오는 대궁과 그 끝에 오로지 하나만의 꽃이다. 얼레지는 한 골짜기를 온통 저들의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잎이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다. 입 있는 것들이 함부로 먹었다가 큰코다치는 잎이다. 

처음 보는 얼레지는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얼레지. 새침하게 토라져 입을 닫은 얼레지도 있고, 쪽진 머리처럼 한껏 뽐을 내는 얼레지도 있다. 민감하기는 이를 데 없어 두툼한 햇빛이 아니라면 함부로 꽃잎을 열지 않는 얼레지.

노랗고 붉은 공중과 보랏빛 골짜기. 그 단정한 빛깔을 어루만지며 바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람 불 때마다 산 하나를 떠메고 가려는 듯 일제히 나부끼는 얼레지. 이번 바람은 내 오른쪽 뺨을 때리는가. 어머니 생각이 더욱 진하게 났다. 얼레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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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외곽의 산청 인근에서 흐드러진 히어리 군락을 조사한 뒤 구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수유 축제가 벌어지는 원좌마을을 찾았다. 지리(智異)의 훤칠한 이마 아래로 내리닫는 널찍한 들판에 자리한 마을이다. 올해의 산수유 꽃은 바로 오늘이 절정이라서 한적했던 골목이 번화한 거리처럼 북적댄다. 모처럼 속마음을 저 나무처럼 활짝 터뜨리고 싶어 안달이 난 상춘객들. 돌담 아래 길목에는 할머니들이 쑥, 도라지, 머위 등등의 봄나물로 구색을 갖춘 임시가게를 열었다.

물론 산수유 마을에는 산수유가 많았다. 마을의 입구에서 노란 물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흠뻑 든다. 산수유가 층층나무과에 속한다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산수유 마을 풍경을 일별해 본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의 흔적이 땅속을 쏜살같이 더듬는 두더지 자국처럼 뚜렷하다. 저 하늘과 맞닿은 곳에는 장엄한 지리산의 능선이 뚜렷하다. 바로 한 칸 아래에는 기쁜 혹은 슬픈 소식을 전하는 전깃줄이 윙윙윙 뻗어나간다. 그리고 작은 텃밭에는 두더지의 자취를 지우며 새로 두둑을 세우고 비닐로 덮어놓았다. 무슨 맛있는 씨를 뿌려놓았는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라나는 채소들.

봄빛이 휘황한 시멘트 길을 걸어 동네 한 바퀴를 하다가 문득 안 사실이 있다. 원좌마을에는 의외로 무덤이 많았다. 밭은 물론 집 근처에도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에 무질서한 묘지 조성으로 인하여….” 구례군수 명의의 안내판이 있을 정도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된장가게를 운영하시는 분께 무덤에 대해 물었더니 한마디 해주신다. 여긴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죠. 무덤? 하이고 무덤이 우리보다 먼저재. 무덤 사이로 집이 들어서고 자투리땅을 개간한 것이라요. 또 무덤을 만났다. 그 흔한 석물은 없고 산수유로 둘러싸인 무덤이다. 생전의 금실을 반영하듯 둘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저 첩첩 지리산을 배경으로 아득히 해 지는 쪽을 나란히 보고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이 더 있다. 웬만한 집에는 대문 옆에 달린 게 있다. 나중의 일을 예감하듯 둘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는 문패.

층층나무과의 산수유 그늘에서 하늘, 구름, 산, 전깃줄, 나무, 무덤, 문패로 연결되는 층층의 풍경을 오래오래 감상했다. 산수유, 층층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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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노랗게 제 방식으로 번역해내는 산수유에 벌 한 마리가 악착같이 들러붙어 귓속말을 전한다. 집요한 중매쟁이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라지만 꽃은 아무런 흥미가 없다. 그저 올봄의 꽃밥을 만드는 데 열중할 뿐이다. 바람을 불러 도리질을 해 보지만 잉잉거리는 벌은 막무가내다. 꽃가루 대신 탄력이라도 달라고 찰거머리같이 덤빈다.

따뜻한 봄볕에 등을 지지는 감나무 아래 암탉이 동생 둘을 데리고 ‘뒤안’을 뒤지고 있다. 땅에게 뭘 좀 먹을 걸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낙엽을 뒤집고 흙을 쪼으며 여린 부리로 먹이를 찾는 닭. 아직 땅이 제대로 안 녹았는지 가끔 고개를 들고 먼곳을 보며 공중에 부리를 닦는다. 최선을 다하는 닭들의 거룩한 식사.

ⓒ최영민

참 열심히 산다. 그 옆에는 이런 먹이를 광고하고 있다. 닭백숙/흑염소/오리/연회석완비/010-XXXX-XXXX. 지금 옹골찬 암탉 한 마리 잡아서, 뜨겁게 삶으면, 기름기가 좌르르르…. 입맛을 다시며, 고인 침을 닦으며, OO농장의 전화번호를 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는 참으로 속(俗)되도다. 시냇가 한쪽에 개구리 알이 수북하다. 어떤 건 제법 성숙해서 눈알이 뒤룩뒤룩하다. 곧 올챙이로 쏟아져 나올 기세다. 옆 잘록한 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바위로 올라가려고 발 없는 꼬리로 발버둥친다. 용수철처럼 상승하려는 기운이 물씬! 이 세상의 봄은 이런 연약한 것들의 기운과 동작이 모이고 모인 집합일 테다. 21일은 춘분(春分)이다. 춘분은 수상한 봄이 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서 봄은 비로소 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된다.

여기는 경주와 포항이 맞붙은 운제산(雲梯山) 산여계곡이다. 혼자 특출하게 높지는 않아도 원효를 비롯한 신라 고승들이 구름의 사다리처럼 데리고 다닌 산이다. 모두들 어깨를 걸고 있는 형제처럼 다정하다. 낙엽더미 풍성한 곳에 날개현호색이 있다. 지체없이 몸을 풍덩 던졌다. 잎은 댓잎처럼 가늘고 꽃잎 옆에 날개 모양이 뚜렷하다. 낙엽들이 스스로를 해체하면서 흙으로 녹아들 때 그 어디로 비상하려는 듯! 날개현호색, 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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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처럼 긴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옆구리를 열고 내리니 신경주역이다. 이곳은 언제나 다른 역보다도 곱절의 묵직한 기분이 어깨를 두드린다. 천년도시와 가깝기도 하지만 역사 바깥으로 나오면 묘한 기물이 있어 과연 경주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그네의 출출한 속을 달래주는 튀김, 해장국 따위의 간판이 마구 달려드는 여느 역과는 달리 광장에 무덤이 앉아 있다. 살아 있음의 엄숙함을 새삼 일깨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경주 방내리고분군 1호 돌방무덤’. 오늘은 버스나 승용차의 푹신한 의자에 엉덩이를 맞추겠지만 그 언젠가는 나하고 꽉 궁합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경주에서 출발해 포항 운제산 오어사(吾魚寺) 부근의 봄꽃을 관찰하는 탐사는 하루로 그쳐야 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하늘이 몹시 찌푸르르하더니 드디어 비가 내렸다. 봄을 풀어놓고 미세먼지를 진압하는 달콤한 봄비였다. 산으로 못 가는 아쉬움을 흠뻑 달래고도 남을 만큼 반가웠다. 그냥 귀가하기가 서운해서 경주 남산 자락의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들렀다. 야생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나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무마다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경주라서 그런가. 상투적이지 않은 알찬 정보들이 빼곡하다. 내 고향에서 목탁으로 만든다는 살구나무를 두고 “살구(殺狗)란 의미는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씨를 달여서 먹으면 독을 중화시킨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희미한 빗줄기 사이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우뚝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설명문이 붙은 낙우송(落羽松)이다. “잎이 깃털처럼 떨어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 주변에서 흔히 공기뿌리를 볼 수 있으며 잎이 어긋나게 달리는 점이 메타세쿼이아와 다르다. 4~5월 수꽃은 가지 끝에 달려 밑으로 늘어지고 암꽃은 둥그스름하게 핀다.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비 사이로 남산의 능선을 본다. 앞으로 낙우송을 만나면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말도 꼭 따라 나오겠지, 궁합을 맞추듯! 낙우송, 낙우송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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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허공의 한 자리를 차지하신 외할머니의 표현을 빌린다면 오늘은 공일(空日)이다. 거문고에 능한 친구와 휴일의 오후에 인왕산으로 향했다. 지하에서 올라와 선바위를 향하는데 굿당 벽에 무학대사의 오도송이 적혀 있다. 靑山綠水眞我面 明月淸風誰主人(푸른 산 푸른 물은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은 누가 주인인가).

칠언절구 중에서도 열한 번째의 바람 풍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건 최근의 한 생각 때문이다. 바람 풍(風)에 벌레 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벌레하고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제야 그 빤한 사실을 접수하게 되었을까. 바람에 벌레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바람소리가 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소리는 바람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 사물들과 부딪쳐 내는 소리다. 세상 만물에는 무언가 꿈틀거리고자 하는 벌레들이 숨어 있고 그래서 그들을 일깨우면 그것들이 일어나 이 세상을 발효시킬 것이라는 생각.

둥둥둥. 바람결에 실려오는 건 국사당에서 굿하는 소리였다. 자연스럽게 궁리에서 펴낸 <만신 김금화>의 저자이신, 며칠 전 허공으로 거처를 옮기신 김금화 선생님(1931~2019)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인왕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귤과 삶은 계란을 건넸다. 배경으로 단가 ‘죽장망혜’를 틀어놓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미세먼지가 물결처럼 띠를 이루며 출렁출렁 시내를 훑으며 지나갔다. 인왕산은 바위산이다. 희미한 실핏줄 같은 등산로 옆 날망에 표지판이 있다. ‘위험해요.’ 암벽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위험이란 게 어디 지금 이 자리, 인왕산 정상에서만의 일일까. 정작 위험한 곳은 오히려 저곳이라고, 위험한 서울을 지그시 가리키는 팻말 옆에 나무가 있다. 바위를 거처로 삼아 자라는 날씬한 소나무 옆의 싸리였다. 가뭄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무. 작년의 잎과 작별하지도 못한 채 전신이 배배 꼬여 비를 기다리고 있는 싸리. 나무 안에 웅크린 벌레여, 잠시만 기다리게. 이제 곧 경칩(驚蟄)이네! 싸리, 콩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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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거문도에 발을 딛는 순간, 몇 가지 생각도 훌쩍 따라 내렸다.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제사 지내고 나면 음식은 고방으로 가고 병풍과 제기는 다락이나 시렁으로 올라갔다. 반지로 남은 여러 시절을 통과하고 한 큰 매듭에 이르니 이제 옛날의 그것들처럼 나도 그 어떤 선반 위로 올라간 느낌이 든다. 그만큼 하늘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리라.

10년 단위로 묶으면 고작 여섯 번 만에 도달한 고개이다. 이제 마지막 고비까지 두세 번 남았는가. 앞으로의 첫 구간을 지탱할 한 글자의 주제어로 ‘문’을 택했다. 논어의 한 대목,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 행하고도 힘이 남은 뒤에야 글을 배운다)이라고 할 때의 그 문(文)이다. 그런 총중에 거문은 ‘巨文’이라 하니 더욱 특별한 느낌을 아니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낚시꾼과 관광객을 유혹하는 간판과 영국군 묘지의 이정표가 어우러진 시내를 가로질러 거문도 등대로 걸어갔다. 몇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선 거문도는 호수처럼 평온하고 고요했지만 출렁대는 파도를 따라 이 섬의 근심과 걱정도 따라 흔들리는 듯하다. 빈 가게가 여럿이다.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길은 동백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는 꽃길이었다. 통으로 떨어진 동백꽃은 길바닥을 밝힌다. 바위에 걸터앉은 꽃도 있다. 짙은 응달의 돌 안에서 누군가 바깥을 내다보는 느낌. 드디어 등대에 도착했다. 아담한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건 까마귀쪽나무들이다. 바닷바람을 상대하느라 거칠 수밖에 없겠지만 길쭉한 잎은 둥글게 모여 나고, 수형도 깔끔하고 매끈하다. 동백꽃잎을 올려놓은 듯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등대 너머로 서로 구별이 되지 않는 쪽빛들. 바다에는 배가 있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혹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까마귀쪽나무, 녹나무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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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다이너스티, 야생의 지배자들>을 보았다. 영국 BBC의 알아주는 다큐멘터리는 궁리출판에서 출간했던 적도 있어 더욱 텔레비전 앞으로 몸을 끌어당기게 했다. 침팬지, 황제펭귄, 사자, 아프리카 들개, 호랑이. 자연의 한 영역을 실효적으로 차지하는 이 지배자들을 좌지우지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나하고도 공통으로 엮이는 물이었다.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초원에 건기가 오면 순한 초식동물들은 물을 찾아 헤맨다. 이들을 먹이로 노리는 지배자들도 물 앞에서는 결국 꼼짝 못하는 신세였다.

요즘 뭍은 가뭄이 무척 심하다. 산에 가면 바짝 마른 숲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명의 끄나풀인 등산화에 밟힐 때마다 마른 낙엽이 으깨지는 소리가 몹시도 자지러진다. 귀한 나무를 찾아 거문도에 가려고 나로도에 왔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뜨지를 못했다. 비와 배. 서로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둘은 하늘을 매개로 서로 엮여 있지 않은가.

내일을 기약하고 나로도의 사양산에 올랐다. 눈썹에 걸리는 바다 건너 봉래산 기슭에 우주항공센터가 있다. 막연하게 하늘 너머를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 실제로 지구 바깥으로 나가려고 힘쓰는 곳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나중 사람들은 내가 거문도로 들어가듯, 화성이나 달로 가는 우주선에 가뿐히 몸을 실을지도 모를 일!

정상 근처의 바위에 이르렀다. 바위도 가뭄을 탄다. 바위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멧돼지가 씩씩거리며 파헤친 흔적이 역력한 곳에 바위손이 무성하다. 꽃을 피우지 않지만 숲 다양성의 일익을 담당하는 양치식물의 하나이다. 언젠가 EBS 다큐에서 본 바위손. 바짝 말라 죽은 척하던 잎이 비가 내리자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척박한 바위에서 겨울과 가뭄을 견디느라 줄기와 잎이 안쪽으로 돌돌 말린 바위손. 혹 멧돼지의 주둥이를 피하려 호랑이나 사자의 뭉툭하면서도 날카로운 발을 닮은 건 아닐까? 우수(雨水)가 임박했지만 아무런 기미가 없는 나로도의 무정한 하늘이었다. 바위손, 부처손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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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지나고 벌써 한 달. 아라비아 숫자가 큼지막한 달력 아래에서 살지만 그 속에 숨은 24절기를 올해부터 몸에 밀착시키기로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고작 오늘밖에 살지 못하는 내가 한 해의 중심을 그 어디로 삼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한해살이의 시작을 입춘(立春)에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봄이 저기에 저렇게 서는 것처럼 나도 여기에 이렇게 독립적으로 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하자.

설 연휴의 여세를 몰아 오래전부터 별렀던 교동도에 갔다. 아직도 명절이면 찾아오는 어릴 적 냄새가 조금 남아 있을 것도 같았다. 저물 무렵을 겨냥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교동제비집에 들러 몸을 녹인 뒤 대룡시장에 갔다. 좁은 골목마다 그 시절을 통과해낸 사람들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서성거린다. 관광객들로 불이 난 호떡집을 비롯해 이런저런 점빵들 사이로 효도관광, 신혼여행 안내문도 있다. 장례식장 빼놓고 있을 건 다 있는 시장. 그 끄트머리에서 산 가래떡을 입에 물고 골목을 벗어나니 교동초등학교가 있다. 제106회 졸업식을 축하하는 현수막 옆으로 우람한 측백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교문 기둥을 만지는데 어쩔 수 없이 내 고향 초등학교의 졸업식 생각이 났다. 풍금 소리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나온 언니들은 교문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 흩어졌었지. 학교 담벼락에 초상화가 있다. 이 학교를 떠나고, 이 세상도 마저 졸업하신 다섯 분의 제1회 졸업생들.

방학도 없이 학교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목구멍이 조금 간질간질해지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동장을 걸어 새삼스레 나무를 세어보았다. 좌측으로 54그루, 우측으로 29그루. 이 학교와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저장하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멀리 해가 뚜렷하게 지는 것을 보면서 시장으로 돌아와서 양초를 샀다. 이제 집에 가서 불을 켜면 겨울에도 푸르른 측백나무 사이로 많은 생각이 푸르륵 일어나겠다. 교동도의 측백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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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심심산곡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찾아가는 북한강이 심심한 듯 크게 용틀임을 할 때, 이에 호응하여 경기 근방에 가까이 집합한 산들이 막역한 친구처럼 첩첩하게 도열한다. 명지, 연인, 칼봉, 운두 그리고 천마. 마치 돌올한 산악문명이라도 곧 발흥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봄이면 이 산마다에 야생화의 잔치판이 벌어지는 건 이런 지리적 사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산으로 들 때, 그 산의 이름을 통한 내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오늘 찾는 곳은 저 문명의 한 축인 축령산이다. 산은 완만하다. 초입에서 잠깐 가파른 길을 더위잡아 오르니 바로 산천경개가 툭 트인 능선이다. 잎이 모두 떨어진 산. 나무는 물론 산의 전모가 훤히 드러난다. 어느덧 남이바위에 서니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적응한 소나무가 홀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저 아래 다정한 인간의 마을에 지곡서당이 있건만 글 읽는 소리 끊어진 지 오래!

축령산은 祝靈山이다. 그 이름이 퍽 희한해서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하는 산, 축령산. 축에 촉발되어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중국소설을 전공하는 분들을 따라 주자(朱子)의 고향 무이산을 갔었다. 주자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한 자료 중의 여러 글귀가 축(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결혼식장에 잘못 배달된 조화처럼 아주 낯설고 희한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주자 어머니의 이름이 축씨였던 것. 축령산을 걷는 내내 어쩐지 그때 퍽 낯설었던 옛 생각이 자꾸 났다.

축령산 정상에서 한숨을 돌린 뒤 이웃한 서리산으로 간다. 서로 뽐내지 않으며 그 능선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등산을 축령산-서리산으로 마무리하고 보니 무슨 근사한 목걸이를 완성하는 기분이었다. 그 목걸이의 고리에 해당하는 곳에 이르니 우람한 나무들이 공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 맏형처럼 자리잡고 묵묵히 하늘을 받드는 잣나무였다. 그늘을 좋아해서 아주 단정하고 기품 있게 뻗는 나무. 송무백열(松茂栢悅·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이라고 했던가. 잣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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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들어 대한(大寒) 근처를 지나건만 지난여름 땡볕에 상응하는 추위가 없다.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심설산행에 따라나섰을 땐 묵은 눈이라도 실컷 맞으리란 기대가 없지 않았다. 대관령에 도착해서 능경봉으로 오르는데 맞춤하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에 휩싸인 겨울산에 들면 잎을 떨군 나무의 밑천이 훤히 드러난다. 

ⓒ최영민

그리하여 어느 비탈의 우람한 거제수나무 아래에서 이런 시 한 편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황지우)

눈은 계속 내렸다. 애인 만나고 올 때처럼 비가 그냥 한꺼번에 후다닥 내리고 만다면, 애인 만나러 갈 때처럼 눈은 망설이는 눈빛과 설레는 마음을 담고 천천히 흩날린다. 부드러운 혁명처럼 천하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벌받는 자세의 거제수나무를 보면서 서울을 벗어날 때 귓가에 왕왕거렸던 뉴스와 관련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어느 법률가와 만난 적이 있었다. 법의 문외한으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이 남긴 한마디가 영영 안 잊혔다. 세상에 죄가 이만큼 있다면, 요만큼 드러나고요, 요만큼 기소가 되고요, 이만큼 재판을 받고요, 겨우 요만큼 벌을 받는 셈입니다. 한 단계마다 반토막으로 좁혀지더니 한 뼘만큼으로 팍, 쪼그라든 그이의 양팔 사이로 빠져나간 이른바 ‘법꾸라지’들이 활개치는 소리가 푸드덕거렸던 기억.

세상의 소리를 빨아들이며 계속 내리는 눈. 하늘은 이렇게 순결한 눈을 보내주는데 발밑에서는 금방 질컥이는 흙탕으로 변해버린다. 잘되기는 어려운데 잘못되기는 왜 이리 쉬운가. 눈 내리는 겨울 대관령에서 만난 거제수나무. 그 수피가 부르튼 입술처럼 얇고 붉게 일어나며 벗겨진다. 어쩐지 누군가를 대신해서 애꿎게 벌서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 쳐다보는 저 겨울나무들. 거제수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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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것처럼 방치했던 서랍도 연초에는 모처럼 햇빛 아래 홀랑 뒤집어진다. 뭐 이리 자질구레한가. 잉크가 말라버린 만년필, 간이영수증 뒷면에 휘갈긴 메모가 툭 튀어나온다. 내가 저지른 소행이 분명하나 물건을 보고서야 어렴풋해지는 사연들. 사무실 앞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주운 도토리도 있다. 딱딱해진 도토리를 보는데 양볼이 불룩해지도록 열매를 집어넣는 다람쥐 생각이 났다. 저만의 장소에 먹이를 묻어두지만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다람쥐.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의 한 토막.

몇해 전 자연생태에 조예가 깊은 분들과 송지호 둘레를 탐방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뚝뚝하게 버티는 나무들의 동태를 살핀다. 울타리에 자작나무가 도열한 파릇한 보리밭을 가로질러 더듬더듬 되돌아나올 때, 누군가 말씀하시길, 오늘 정말 귀한 사진을 찍었어요, 때까치가 개암나무 가지에 개구리를 잡아서 걸어놓았더군요. 귀에 쏙 들어오는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도회 근방의 얕은 자연 속에서 이런 야생의 다큐멘터리를 목격하다니, 얼른 그곳으로 달려갈 태세를 갖추었지만 너무 먼 거리라 했다. 물회가 기다리는 점심시간도 촉박해서 카메라 속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개굴개굴 울다가 웃다가 그런대로 살아온 개구리. 느닷없이 개암나무 가지에 꿰인 채 꾸덕꾸덕 적나라하게 말라가는 개구리를 보는데 한 말씀 보탠다. 글쎄, 저 때까치가 기억력이 나빠 제가 공중에 감춰놓은 것도 대부분 까먹는대요!

쥐들이 한바탕 설치고 간듯 뒤죽박죽 어지러워진 서랍. 앞에 열거한 것 외에도 뜻밖의 품목이 더 있다. 흰 봉투에는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라는 약이 들어 있다. 한구석에서 뒹구는 건 몇 개의 연고들. 녹이야 슬지 않았지만 짜부라지고 뒤틀린, 그렇다고 제대로 다 쥐어짜지 못한 것이다. 당장 눈앞의 서랍 속에서 이 연고는 어쩌면 그리도 내 인생을 꼭 닮았더냐. 소중하게 보관한다고 툭 던져놓고서 그 영문을 까맣게 몰랐던 흔적들. 저 새대가리 좀 보라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던가. 아무튼, 때까치 그리고 개암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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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해서도 그 나무만큼의 햇빛이 정확하게 드는 법이다. 오늘 내가 찾는 나무는 홀로 우뚝한 교목이 아니라 어울려 사는 관목이다. 그것도 울타리로 심기에 적당해서 일제히 줄을 맞추고 관리당하는 나무이다. 나무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줄기에 날개가 있다. 그 나무를 볼 때면 나는 옛날의 한 시절로 득달같이 달려간다.

@최영민

부산으로 전학 가던 날. 천일여객 낡은 시외버스는 거창 차부를 떠나 합천, 창녕, 밀양, 삼랑진을 거쳐 탈탈거리며 갔다. 차의 진동에 너무 많이 시달렸다. 발등이 조금 부어올랐고 신발은 뻑뻑해졌다. 비슷하게 출발한 해도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구포다리를 건넜다. 여기가 부산의 입구인가. 이리저리 구경거리에 눈을 부라리는데 희한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처음 보는 네온사인 아래 어느 공터에서 둥그런 채를 가지고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공중에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백열전등을 저렇게 가지고 놀다니! 역시 도시사람들은 대단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배드민턴 공이었다. 산에 입문하고 나무의 특징을 통해 나무를 알아갈 때, 그 나무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 내가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바로 구포다리 근처 어느 공중에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신기했던 백열전등이었다. 그 나무 줄기의 날개와 배드민턴 공, 다시 말해 셔틀콕의 날개는 어쩌면 그리도 서로 닮았는지.

시계가 없다고 시간마저 없어지는 건 분명 아니다. 시간이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정도의 분별력만 있었더라면! 여러 우회로를 거친 뒤에 나는 오늘 인왕산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멀리 단정한 그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저곳에 있기 위해선 나무를 띄우는 햇빛만큼이나 시간도 정확히 필요했다. 새해 지나고 벌써 일주일, 고여 있는 시간의 웅덩이인 듯 첫주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제 기해년도 제 시간의 봉투를 뜯겼으니 셔틀콕처럼 또 빨리 흘러가겠지. 줄기에 날개가 발달한 화살나무 옆을 지나는 오늘은 소한(小寒)이다. 화살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 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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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은 나날들이다. 알록달록한 하루가 지나가더니 드디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왔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김수영)라고 했는데 나는 올해도 달력만 겨우 바꾸었다. 어수선한 기분을 정리할 겸 옛글을 함께 읽는 동무들과 송년모임을 했다.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북한산 혹은 그 아래 둘째 동생뻘쯤의 인왕산을 찾을까 하다가, 연말답게 방향을 확 바꾸어 버렸다. 서울에서 가장 낮은 곳을 찾기로 한 것이다. 부드럽기 이를 데 없는 물에게 가장 낮은 장소가 한강이라면 자갈 같은 몸을 가진 우리들에겐 국립묘지가 가장 낮은 곳이겠다. ‘그날 묘지에서 뵙겠습니다∼’라는 한 분의 댓글이 새삼스러워졌다.

나이 사십 이후에는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하라는 글을 접한 이래 그 방면의 생각을 아니해온 건 아니었다. 문득문득 죽음이 나를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것을 찾아 헤맨다는 느낌도 있다. 이런 궁리를 바탕으로 메모장에서 아직 다 완성하지 못한 글귀를 들고 국립묘지 산책에 나섰다. 그 메모란 다음과 같다. 날이 갈수록 그것이 좋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도 아닌 그것. 온기도 물기도 없고 살도 없고 뼈도 없는 그것. 그것이 좋아진다. 산에는 꽃이 피고 그것이 많다. 그저 보아주는 이 없어도 계절은 빈틈없이 차례차례 다녀간다. 식물은 순서대로 꽃을 피운다. 저곳에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곳은 텅, 비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으로 늘 고유하니깐. 올해는 무술년. 내 생애 다시 못 볼 그것이 지금 저기에서 지나가고 있다.

위 대목을 바탕으로 이 코너의 글감을 얻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망 좋은 장군묘역에 갔더니 장미 모양의 조화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추슬러 보니 빗살무늬토기처럼 밑이 뾰족한 플라스틱 화분이었다. 내처 서달산까지 오르는데 철조망에 붙어 꽃이 아닌 듯 꽃으로 서 있는 건 사위질빵의 마른 열매였다. 할머니 머리카락 같은 흰 열매. 나중 실제로 나를 보따리할 때 쓰면 퍽 어울릴 사위질빵의 줄기가 국립묘지 한쪽의 기슭에서 추위를 칭칭 감으며 악착같이 서 있었다.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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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기슭에서 10여년을 ‘삐댄’ 적이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서 자주 인왕산을 들락날락거렸다. 어느 날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의 집터가 사무실에서 코앞 거리의 군인아파트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매일 그 집터에 서서 인왕산의 변화를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었다. 인왕산은 계절을 간격으로 하여 변하되 인왕이 거느린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였다. 간단없이 출몰하는 구름처럼 그때그때 찾아온 단상을 메모하였다가 책으로 꾸몄다. 감히 빛으로 그린 ‘신인왕제색도’란 제목을 붙였다. 인왕의 슬하를 떠나 파주 심학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끔 서울에 나가 인왕산을 만나면 뭉클, 눈에서 물이 삐어져 나온다. 겸재 정선에 대해서도 흠모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겸재가 현령을 지냈던 서울 양천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을 가보는 날이 드디어 왔다. 그곳에서는 공기부터 달랐다. 눈앞의 풍경은 물론 마음속에 자리한 관념의 경치까지도 그려낸 산수화를 보다가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그림을 만났다. 화훼초충화의 하나인 ‘서과투서(西瓜偸鼠)’였다. 이미 많은 쥐들이 들락날락거린 듯 큼지막한 수박의 밑동은 구멍이 크고, 여기저기 붉은 씨를 퉤퉤 뱉으며 정신없이 갉아먹는 쥐를 그린 그림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겸재의 섬세한 관찰력에 기대어 몇 가지 식물을 찾아보았다.

보라색 꽃은 달개비(닭의장풀)인 것 같다. 우아하게 줄기를 뻗는 건 바랭이인 것 같고, 아마도 그령으로 짐작되는 벼과의 식물도 의젓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골에서 본 풀을 뒤늦게 알게 되어 퍽 좋다. 저곳에 저것이 없었다면 그곳은 빈 구멍이었다. 그것을 보아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면 그곳은 빈자리였다. 잡초라는 말을 치우고 고유명사를 부르는 기쁨이 크다. 언젠가 인왕산 아래 수성동계곡의 맨 마지막 집에서 만났던 달개비, 나도 참 좋아하는 여름 과일인 수박. 그리고 고향에서 발길에 차이던 꺼끌꺼끌한 그령과 바랭이. 260여년의 시차를 두고 겸재의 예리한 시선에 내 둔탁한 그것을 흐뭇하게 포개는 이 즐거움! 바랭이, 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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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서구의 서울식물원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무릇 아니 그런 데가 어디 있겠더냐. 이곳도 시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운영권의 절반은 하늘이 소유하고 있다. 임시개장을 했지만 당장 야외에 꽂혀 있는 나무들은 내년 봄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꽃잎 모양의 온실로 발길을 돌려 열대관과 지중해관을 둘러보았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를 설명하는 안내판의 한 구절을 인상적으로 마음에 담고 바로 이웃한 겸재정선미술관으로 향했다. “바오바브나무는 2000년 이상 생육이 가능한 식물이다. 옛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원통이 크고 중간이 비어 있는 바오바브나무를 무덤으로도 사용했다.”

겸재의 그림은 이른바 진경산수의 경지를 체득한 작품이다. 겸재의 산수화는 너무 멀리 있는 풍경을 담았기에 그림 속 나무는 마음으로 짚어야 한다. 그래도 잘생긴 조선의 소나무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간혹 훤칠하게 늘어진 버드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흠뻑한 기분으로 미술관을 나선다. 들어갈 때 못 본 나무들이 눈으로 번쩍 들어온다. 그림과 짝을 맞추었는가. 뜰 앞에 우뚝한 건 소나무와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종류가 제법 많다. 오늘 겸재와 어울린 건 수양버들이다. 줄기 끝 하늘에 별도로 뿌리가 있는 듯 아래로 능청능청 처지면서 울타리 역할도 한다. ‘인왕제색도’를 떠올리며 소나무 옆 ‘겸재정선공덕비’를 읽는데 이런 글귀가 있다. “(…) 그 화풍이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조선산수화가 선생으로부터 개벽이 시작되었다 (…) 선생이 쓰고 버린 몽당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룰 지경이라고 한 말 ‘매필성총(埋筆成塚)’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방문한 두 장소, 식물원과 미술관을 연결시켜주는 건 나무이지만 무덤에도 마음이 쏠린다. 봉분이야 사람들이 만들겠지만 무덤을 앉히고 이를 실질적으로 건사하는 건 하늘이겠다. 구름 밑을 쏘다니는 동안 나 역시 걸어다니는 무덤에 불과하겠군. 한 폭의 그림처럼 수양버들과 어울린 겸재정선미술관을 뒤돌아보는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양버들,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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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면 늘 좋지만 그게 천마산이라면 더더욱 아니 좋을 수가 없다. 꽃에 입문하고 처음으로 찾은 산. 길지 않은 나의 꽃이력을 따져보면 천마산의 한 골짜기로 나의 반질반질한 등산화는 미끄러져 들어간다. 늘그막에 우연히 나의 전부를 투신케 한 취미의 처음이자 바탕 같은 곳이겠다. 그 천마산의 정상 바로 아래의 돌핀샘에 앉아 쑥떡과 커피를 먹는다. 얼마 전 다녀간 첫눈의 흔적 사이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저만치 수피가 울퉁불퉁 발달한 황벽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도 벌써 12월이네, 탄식을 여러 번 들었던 뒤끝인가. 문득 생의 질서가 어수선해지고 삶의 갈피가 헛갈릴 때 나의 근원이 어디일까를 궁리해 보기도 한다. 연말이고 겨울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찬 기운에 편승하여 코끝을 싸늘하게 두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라서 겨울산에 드니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당장 저 황벽나무의 잎은 뿌리를 찾아서 흙으로 녹아들고, 이 돌핀샘의 물은 빗방울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바다를 찾아 한강으로 내려가는 중!

고등학교 수학시간. 이차함수 문제가 나오면 그림부터 먼저 그렸다. 이른바 x축과 y축을 긋고 0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땐 그래도 꿈과 더불어 연습장에 허술하게 표시한 원점이라도 있었다. 오늘 내가 오른 산도 말하자면 엎어놓은 포물선이고 한발한발 이동한 자취를 연결하면 점근선일 테다. 그렇다면 나도 항상 그 어디를 향하여 접근하고 있는 중!

황벽나무는 엄청 큰 나무이다. 그 앞에서 나는 너무나 작아서 여름에 피는 노란 꽃이나 가을에 여무는 열매를 지나치기가 일쑤다. 다만 언제나 폭신폭신한 코르크의 탄력을 확인하고 즐기기 위해서 수피를 쿵쿵 쥐어박으며 황벽나무를 구별해 왔다. 오늘은 때도 때이고 이제 나이도 나이니만큼 나무 앞에서 오로지 이 생각만 하기로 했다. 겨울을 알몸으로 앓는 나무 앞에 서면 나무를 木으로 표기하는 연유가 저절로 짐작되는바, 이 나무들 밑으로 들어가 똥막대기(一)처럼 눕게 되는 곳에 나의 근본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궁리와 함께 황벽나무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本’이라는 글자를 허공에 적어본다. 황벽나무, 운향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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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나도 그렇지만 공중에 붕 떠서 사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첫눈 기념사진이 모두 위에서 아래로 찍은 것들이다. 길을 걸으면 눈밭에 찍히는 발자국들. 이렇게 띄엄띄엄 걷기에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연속적으로 살았는데 그렇게 축적된 기억이 도무지 없다. 빛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고 한다. 먼지들의 집적인 이 몸도 빛의 자식이라서 그런 이중성을 고스란히 실천하는 중이라 여기기로 했다.

ⓒ 이해복

며칠 전 북한산성에서 의상능선 가는 길. 서울 쪽에서는 더러 올랐지만 바깥에서 접근하기는 드문 경험이다. 북한산이 그저 하나의 우뚝한 산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바위가 여러 골짜기로 대단하게 뻗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과 체위를 동원하며 기신기신 올라서 사모바위에 도착했다. 길은 고요하고 바위는 조용했다. 팥배나무 열매가 주렁주렁하다. 덕분에 새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지저귄다. 빨간 열매 너머로 보이는 서울은 첩첩산중에 파묻힌 고도(古都)같다.

빛이 일찍 스러지는 계절이기에 꽃 대신 말을 배우기로 했다. 산성을 복원하는 작업 현장에 낯선 용어들이 많다. 여장, 성가퀴, 성랑. 여장은 성에 낮게 덧쌓은 담인데 여자들도 넘을 수 있기에 ‘女牆’으로 표기한단다. 오랜만에 만난 사모바위. 예전에 보았을 때와 그 느낌이 퍽 다르다. 이목구비를 모두 버린 편안한 얼굴이다. 말의 바깥을 터득한 홀가분한 표정이다. 삼천사로 내려오는 능선. 오후 5시 무렵의 삐딱한 햇살을 등에 업자 익숙한 그림자가 건너 증취봉 한 자락에 척 걸쳐졌다. 빛의 속도로 이 우주로 먼저 도망치다가 바위한테 꼼짝없이 붙잡힌 그림자, 나의 겉가죽!

그래도 꽃 하나를 빠트릴 수는 없다. 꽃이 아니면서 바람결에 꽂힌 꽃이다. 삼천사 입구 미타교에서 만난 산수국이다. 빛이 머물다간 꽃은 변화가 많다. 본래의 꽃은 그 주위로 곤충을 유인하는 헛꽃이 만발했었다. 이제 그 소임을 다한 헛것은 방향을 빙그르르 돌려 아래를 향하고 있다. 꽃은 색깔만 빠졌을 뿐, 공중에서 풍장하면서도 어제의 골격을 악착같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디로 가시려는가, 산수국.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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