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짧을수록 좋더라. 버스든 지하철이든 정거장은 시 한 편 읽기에 딱 알맞은 간격이다. 그러니 도로마다에는 가로수와 간판과 더불어 시집도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는 셈이겠다. 그제 아침 출근길의 라디오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연기’가 튀어나왔다.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에 실린 그 시는 마지막 구절이 내가 기억하여 외우는 것과 사뭇 달랐다. 황량과 적막의 차이. 지나간 것이라고 쉽게 관대한 건 아니겠지만 시에 관한 한 나로서는 오늘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

산에 다니면서 꽃도 꽃이지만 꽃이 처한 사정이나 사연에 주목을 해왔다. 몇 해 전 태백산을 다녀오다가 맞닥뜨린 풍경 속에서 대학시절에 만났던 ‘연기’를 다시 만났으니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 이윽고 도시락을 다시 빈 도시락으로 만든 뒤 하산하는 길이었다. 오전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거의 다 내려오자 백단사 근처의 약수암이 나타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요사채가 보이고 뭉클뭉클 피어나는 흰 연기가 공중에 뚜렷했다. 좁은 함석 굴뚝을 빠져나와 하늘의 깊이를 재면서 더욱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흰 연기. 문득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기막힌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약수암에는 호수 대신 작은 개울이 흐르고 물푸레나무, 귀룽나무, 고광나무, 물참대가 줄지어 자란다. 누군가 전지가위로 물참대의 마른 줄기 끝을 조심스레 잘라 함께 공부하였다. “이 물참대의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요!” 과연 물기를 잃고 말라가는 줄기 안에 뻥 뚫린 구멍이 있고 그 구멍 너머를 오래 더듬었던 기억.

출근길에 만난 시 하나가 여러 기억을 소환했다. 연기는 안과 밖을 구별할 줄 아는가 보다. 그러기에 지금 저 멀리 여의도 어느 건물에서 저렇게 기를 쓰고 위로 오르지 않겠는가.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시 한 편이 그려내는 적막한 공간에 젖어들면서 물참대 가지의 빈 구멍을 생각하며 자유로의 빈 구멍 속으로 달려나갔다. 물참대,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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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은 아니지만 ‘심’ 자로 시작하는 심학산 아래 웅크리고 지내면 뜻밖의 일을 겪기도 한다. 새벽 3시에라야 새벽 3시의 생각은 찾아오는 것. 북으로 가던 철새가 고도를 낮추어 퉁소를 연주하는 심야 음악회도 있다. 그렇게 몇 밤을 건넌 뒤 서울로 나오면 어디 먼 고대(古代)로부터 외출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도시는 부황하고 아찔하다. 그제는 몇 가지 볼일을 몰아서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가야 했다. 따뜻한 곳만 따뜻하고 추운 곳은 아주 추운 서울. 무려 20층짜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뒤 사기접시 속의 점심을 먹고 옛날 궁리출판의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처럼 의젓한 인왕산.

서촌의 통인시장 근처 길담서원에 들렀다. 오래전 마음이 허할 때, 이 벽의 책들을 다 읽으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했다가 아주 인상적인 말씀을 들은 바가 있었다.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번에는 무슨 진전된 답을 주실까. 손바닥만 한 정원을 지나고 현관을 들어서자 벽마다 책들이 빼곡하고 한쪽의 한뼘미술관에서는 풍경화가 전시 중이다. 고래(古來)의 공기가 흐르는 듯한 길담서원. 사방의 은은한 문자향을 즐기다 결국 마음속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곧 서울을 떠나신다고요. 공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내년 봄 백제의 고도(古都)에서 답을 듣는 것으로 미루고 때이른 작별인사만 드렸다.

황현산과 김용옥. 두 권의 책을 사고 일어서는데, 학예실장님이 문밖까지 나오셨다. 화단에서의 대화. 이 녹색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네요. 하늘메발톱, 산국, 인동초, 맥문동, 조팝, 찔레, 앵두나무. 한철을 함께한 동무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겨울 문명을 일구려는 꽃밭. 이름을 듣고 보니 아주 쓸쓸하지도 낯설지도 아니했다. 푸석한 토질을 가리키며 능청 늘어진 줄기에 빽빽하게 보랏빛 열매가 달려 있다. 좀작살나무였다. 내 은연중의 질문을 눈치채고 무슨 답을 주시는 게다. 안의 저 책이 아니라 바깥의 이 열매! 공중을 빠져나가는 한 입구처럼 병목현상이 벌어지는 좀작살나무 열매를 보다가 깊숙이 절하고 나의 고대로 얼른 복귀했다. 좀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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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광야’, 이육사)는 한 개결한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그로 인한 영향인가. 저 만주 벌판에서 땅이 아래로 달음박질해서 내려와 남해로 풍덩 뛰어든 게 한반도의 지형이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제주의 한라산(1950m)이 가장 높고 지리산(1915m)이 그다음이고 설악산(1708m)이 막내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생명이 바다에서 온 것처럼 산도 물에서 온 게 아닐까.

‘봄의 꽃 소식은 북상하지만 가을의 단풍 소식은 남하한다’(과학의 한귀퉁이, 김홍표)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래서 강원도의 저 야단스러운 단풍도 남해 근처에 이르러서는 다소 수굿해질 것으로 짐작해 왔다. 이 또한 나태한 내 상식의 등짝을 후려치기에 족한 것이었다.

뜻밖의 나무를 기대하며 찾은 거제도 북병산. 몇 개의 연륙교로 너나들이하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섬은 섬이다. 모든 것을 단단하고 옹골차게 밀집시키는 재주를 섬은 가졌나 보다. 거제의 단풍은 내 짐작을 보기좋게 배반하는 게 아닌가. 공중은 공중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오밀조밀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알록달록하기가 그지없는 섬의 단풍들.

지금 산에 이렇다 할 꽃이 없다고 하나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면 눈에 들어오는 꽃들이 아직도 수북하다. 골무꽃이 싱싱하고, 한라돌쩌귀도 늠름하게 피었다. 아마 이 골짜기가 보유한 마지막 용량일까. 남녘의 꽃들이 이처럼 안간힘을 다하는 것처럼 지금 강원도 어느 인적 없는 심산유곡에서는 매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지도 모를 일…이라고 상상하면서 숲과 덤불을 빠져나오는데 무엇인가 바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 있다.

식물들은 자신의 전부를 몽땅 집어넣은 열매를 가급적 멀리 보내려고 기발한 전략을 동원한다. 바람, 새, 다람쥐를 부르기도 하지만 오늘 나도 모르게 나를 이용하는 건 도깨비바늘이었다. 내가 섬, 단풍을 비롯한 눈앞의 풍경에 감탄하는 사이 내 바지에 슬쩍 들러붙은 도깨비바늘. 다 뗐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미끼였고 집에 와서 보니 정작 튼실한 녀석은 엉덩이에 붙어 서울까지 진출했다. 네가 이겼다! 도깨비바늘,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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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형태를 관찰하면 대개 뿌리-줄기-가지-잎-꽃-열매의 순서다. 제아무리 우람한 팽나무도 두 장의 떡잎에서 시작해서 이 순서를 따른다. 살아 있음을 대표하는 生(생)은 이런 모습을 형용한 글자이다. 지면을 뚫고 나오는 어린잎의 씩씩한 팔뚝이 저 한자에는 배어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동물들의 서글픔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식물들의 의연함에서 그 뜻을 길어온 것이다. 나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인생이라는 말도 한번 가늠해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서슬에 촉발되어 그 덧없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나이 혹은 계절. 

나고 피는 순서는 조금 달라도 대개 꽃보다 잎은 더 멀리 간다. 꽃은 잠깐 피고 잎은 오래 핀다. 지금은 꽃에 하나 꿀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단풍의 시간. 꽃에 취해 좋다고 히히덕거리다가 사무실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산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단풍이다. 꽃 진 자리에 영롱한 열매와 그 옆에 접시처럼 어우러진 단풍잎을 보면서 아, 세월 한번 참 빠르다, 하려니 나는 참 얕고도 얕구나. 

무지와 몽매를 옆구리에 끼고 화살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느끼며 광양 백운산으로 간다. 사람의 한평생 눈 쌓인 진흙에 기러기 잠깐 내려 발자국 남기는 것과도 같고, 무성했던 구름이 순식간에 스러지는 것과도 같다는 옛글을 떠올리며 산 초입의 어느 둑방길에 이르렀다. 비슷한 어깨의 갈대와 억새. 키가 껑충한 갈대와 억새는 門(문)처럼 나란히 서 있고 그 틈을 본다. 둑 건너 자동차 전용도로 위의 차들은 거칠 것이 없다. 세상의 주인인 양 씽씽 달린다. 관광버스, 레미콘차, 이삿짐차, 돼지를 싣고 가는 차, 승용차. 차를 부리나케 쫓아가는 차, 차, 차들. 바람이 불자 벌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갈대와 억새의 문틈 사이로 망아지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각종 차들을 망연히 보았다. ‘사람이 이 천지 사이에 살고 있는 시간이란 마치 준마가 벽의 틈새를 언뜻 지나가듯 순식간’(장자)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바람을 빌려 고개를 끄떡거리는 갈대와 억새.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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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을 빗댄 11월11일. 지릅대기 모양을 빙자한 국적도 없는 고약한 놀이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린 지 여러 해다. 이른바 빼빼로 데이. 빼빼 마른 몸매에 대한 집착인가. 어느새 젊은이들까지 이 개념 없는 풍속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통속적인 과자 하나에 이날의 의미를 줘버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경박한 일이다. 하루를 일생에 치환해보자. 1111, 1111은 11월11일 11시11분. 이 시간은 어디쯤에 해당할까. 빼빼로에 눈이 멀어 아차 하는 순간 오전은 훌쩍 지나가고 청춘은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더니 11월11일을 맞아 곳곳에서 가래떡의 날을 진행한다는 뉴스가 많다. 빼빼로 데이를 물리치고 우리 전통이 깃든 가래떡으로 간식을 즐기자는 취지의 행사를 농협에서 많이 벌인다. 가래떡을 입에 물고 있는 사람들. 사진 찍고 나서 가래떡을 참기름에 푹 찍어 꿀떡 삼켰겠다. 얼마나 맛있을꼬! 

지난 일요일, 춘천을 다녀오는데 서울에 진입할 무렵 비가 차창을 두드렸다. 내일이면 11월11일이기에 더욱 맞춤한 가을비. 문득 생각하노니 지금 내리는 이 비들야말로 11111111의 행렬이 아닌가. 비는 식물들에겐 그야말로 빽빽한 물줄기가 아니겠는가. 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농부들에겐 새참 같은 국수가락이 아니겠는가. 아하, 사람과 사물에게 모두 시원하게 튕, 튕, 튕 튕기는 !!!!! 느낌표가 아니겠는가. 

단풍에 취한 사이 가뭄까지는 아니래도 가을비가 좀 뜸했다. 코를 거꾸로 세워 그냥 받아마시고 싶을 만큼 몹시 달콤한 가을비를 보며 왼편으로 고개 들어 천마산을 보았다. 몇 해 전 처음으로 이 산으로 꽃산행을 갔던 날, 이렇게 산행기를 적었다. “오늘 많은 나무들이 제 이름을 찾았다. 산은 그냥 삼각형의 흙덩어리만은 아니다. 앞으로 천마산을 지나칠 땐 골짜기와 능선, 숱한 돌 틈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겠다.” 

산 입구의 생강나무는 오늘도 안녕할까. 이 비를 맞으며 내년 봄에 가장 먼저 피어나려 오늘밤 훌쩍 자라겠지. 생강나무를 생각하면서 생강나무와 함께 어둑한 집으로 들어왔다. 생강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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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도 많고 기름진 고장도 많지만 이름으로 진주만 한 데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진주가 지도에서 빠진다면 참 쓸쓸하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진주 진양호 숲을 탐사했습니다. 이 고장 출신의 문인묵객이 허다하지만 그중에 잠깐이나마 직접 안면을 익혔던 한 시인이 유독 떠올랐습니다. 그이가 생전에 가꾸고 부린 말에는 이 진양호의 깊은 물빛과 수직 절벽의 아찔함이 다 들어 있겠다는 짐작도 함부로 해 보았습니다.

진양호가 거느린 산은 얌전하고 납대대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물을 깊이 가둔 탓에 물 가까이는 깎아지른 절벽이 많습니다. 한 발 삐끗하면 그냥 물의 나라로 입국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잠시 왔던 꽃들이 모두 저희의 나라로 입적하고 난 뒤의 스산한 시기에 이곳은 진주바위솔이라고 하는 탁월하기 이를 데 없는 꽃을 피웁니다. 범접하기 힘든 절벽에 자리잡고 있기에 더욱 귀하고 드문 진주바위솔. 한 해가 저무는 마당에 이 꽃이 없었더라면 우리 산하는 그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오늘은 못 볼 줄 알았는데 경사를 헤치고 가시 많은 나무를 다스리며 나아간 꽃동무 덕분에 아찔함 속의 황홀을 만끽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 이 시간을 숲에서 맞는 자신이 퍽 대견하고 흡족합니다. 숲속의 나무를 보면서 공부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나무와 졸참나무 잎의 결정적 차이, 감국과 산국의 구별법 등 저의 눈과 귀는 몹시 바빠집니다. 어느덧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고 편안한 나무 계단이 이어졌습니다. 멀리 노란 등이 켜졌습니다. 으레 흔하디흔한 산국으로 짐작하고 내빼려는데 아니었습니다. 저도 알겠기에 아, 이고들빼기군요, 했더니 왜 이고들빼기인 줄 아세요, 하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가진 게 고것밖에 없는 난처함으로 우물쭈물했더니 이고들빼기를 헤치더니 잎의 아랫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잎의 밑부분이 귓불처럼 둥글고 도톰하게 늘어지면서 줄기를 넉넉하게 감싸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고들빼기라고 한다면서 저의 귀를 슬쩍 만져주었습니다. 이순에 만난 참으로 거창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고들빼기, 국화과의 한두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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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

후배가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자월도에 별장을 마련하고 집들이를 하였다. 섬은 물에서 웃자란 땅, 애처로운 데가 있다. 이름에서 제주 애월을 떠올리게 하는 자월에 도착해서 몸을 세 번 훌쩍훌쩍 뛰었다. 해당화 울타리의 허름한 연립주택에 당도하니 격조했던 살림살이가 심심한 강아지처럼 왈칵 달려들었다. 해변 소나무숲에 해먹을 치고 멍 때리러 나가려는데 안방 미닫이문이 스르르 닫힌다. 다시 열어도 저절로 닫힌다. 아무도 없는데 또 닫힌다. 어디서 오는가, 이 무심한 기울기는.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나가려니 비로소 들어오는 현관 풍경. ‘뻘밭’에 나갈 때 신는 장화 다섯 켤레가 코스모스처럼 가지런히 서 있다. 둘은 크고 셋은 작다. 큰 장화에서 작은 장화로의 귀여운 기울기. 누가 보냈을까, 마음까지 자꾸 간지러워진다. 이 작은 신에 발을 넣은 적이 내게도 분명 있었지. 돌이킬 수 없는 나날 속에서 이틀을 뭉텅 잘라 자월에 온 것도 이런 기울기에 미끄러진 것이겠지.

이튿날 뒷산에 올랐다. 길쭉한 섬이라 능선에는 기울어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겨울로 기우는 계절. 산국을 비롯해 쥐꼬리망초, 산박하 등이 안간힘을 다해 보지만 아래로 기우는 기운은 어쩔 수 없다. 이윽고 정상을 지나 완만한 사면에 이르니 자잘한 열매를 단 보리수나무가 서 있다. 흰 주근깨가 표면에 자글자글 끓는 붉은 열매. 하나 따서 입에 넣으며 나는 고향의 외가로 달려갔다.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외가에 가면 이상하게 우리집보다 항상 먹을 게 많았다. 대청마루 소쿠리에는 정금과 보리수나무 열매인 ‘뻐리똥’이 가득 담겨 있었지.

볼이 미어지도록 먹던 기억을 되살려 몇 알 넣으니 그때의 맛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지 않겠는가. 지금은 짠물에 포위되었지만 예전에는 다 뭍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섬에서 단물이 나오듯 보리수나무의 열매는 정확히 그 맛을 내고 있는 게 아닐까. 변한 게 있다면 내 탓이다. 이제 제법 세월이 흘러 그 많은 것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나를 그 어디로 데려가는 보리수나무의 열매, 뻐리똥. 어디로부터 말미암은 것인가, 날이 갈수록 가팔라지는 이 시큼한 기울기! 보리수나무, 보리수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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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며칠만 돌이켜본다. 과거는 실은 앞날에 있다. 뒤돌아보는 일도 앞을 보는 것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복도로 나와 신문철을 뒤적이니 며칠 전의 그 기사가 나온다. “경주 금령총서 최대 규모 56㎝ ‘혀 내민 말 모양’ 토기 발굴”이라는 제목이다. “혀를 낼름 표현한 말 모양 토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주 금령총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압도적인 크기(56㎝)의 말 모양 토기가 발굴됐다. 그런데 이 말 모양 토기의 모습은 혀를 쑥 내밀고 있었다.”(경향신문 10월1일자)

하필이면 왜 혀를 강조한 말일까. 거의 실물 크기라는 말 사진을 보면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왜 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혀를 꼬부리고 있을까. 수도꼭지를 틀면 찬물과 더운물이 같이 나오듯 혹 지금 말은 거짓말이나 참말이 저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말하려 함은 아닐까. 

참 말이 많은 시대다. 라디오에서는 노래보다 수다가 더 많다. 산에 가면 꽃에도 꽂히지만 생각을 발굴하기에 좋다. 걷는 것과 궁리하는 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체 기관 중에서 많이 사용하는 게 발이라면 가급적 적게 사용할 게 입이어야 하지 않을까. 밥과 말은 한 기관을 공통으로 이용하니 먹은 만큼만 말할 기회를 주자는 입법청원이라도 해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데 어느덧 광양의 백운산 골짜기였다. 드물게 일본목련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에 가면 나무는 혀처럼 잎을 달고 있다. 같은 햇빛과 같은 물을 먹은 탓에 나무의 혀는 비슷하다. 내는 소리도 한결같다. 그저 받침 없는 홀소리들.

일본목련의 매끈한 허벅지에 누군가 칼로 예리한 빗금을 그어놓았다. 산에서 직선을 사용하는 건 인간들뿐이다. 글을 안다고 제 이름 석 자를 새겨놓은 것이었다. 마이크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말하면 되었지 이렇게 나무를 괴롭히는 건 무슨 심보인가. 신라 시대의 말은 그 말을 전하려 이렇게 뒤늦게 나타난 게 아닐까. 나무는 그 상처를 오래 기억하며 못난 이름을 천천히 지우고 있었다. 내 얼굴을 덮고도 남을 만큼 큰 잎, 아니 큰 혀를 가진 일본목련, 목련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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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의 매제가 처음 고향에 와서 여동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와, 앞산 뒷산 사이에 장대를 걸쳐놓아도 되겠네. 드넓은 호남 벌판을 끼고 살다가 경상도 산간벽지의 좁은 동네를 보고 재치있게 마음의 한 자락을 질러본 셈이겠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김제, 정읍, 부안, 고창의 곡창지대를 달리는데 좌우가 다 들판이다. 뜨내기 나그네의 마음마저 부자로 만들어주면서 나락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오늘은 논에 사는 멸종위기종의 식물을 조사하는 데 따라나섰다. 멀리에서 내려다보는 산이 들으면 참 가소로운 일이겠지만 한때 국회의원이라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런 줄이야 잘 모르겠다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국회의원이야 또 뽑으면 되지만 한번 사라진 식물은 설령 온 인류가 다 들고일어난다 해도 돌이킬 수가 없는 법이다.

방아깨비와 그 동무들이 후드득 먼저 반기는 논두렁에 섰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옆에서 논두렁도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때 이곳은 내 좋은 놀이터였다. 이 좁고 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논두렁은 작은 밭이기도 했다. 논에 나온 쌀로 밥을 짓는다면 논두렁에서 나온 콩은 반찬으로 흡족했다. 어머니는 모내기 끝난 뒤 그 자투리 밭도 그냥 묵히는 게 허전했던 것이다.

나는 문득 몹시 놀란다. 그저 지나다니기만 했던 논두렁에 이리도 많은 종류의 식물이 살고 있다니! 더구나 하나하나 그 까무러칠 법한 이름이라니! 이 황홀한 학교에서 오늘 얼굴을 맞댄 식물을 호명해 본다. 밭뚝외풀, 금방동사니, 황새냉이, 둥근하늘지기, 여뀌바늘. 그저 입에 넣고 중얼거리기만 해도 입안에 까끌한 문명이 건설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한 자태가 있으니 민구와말이다. ‘습지에 나는 다년생 수초, 물 위의 잎은 5~6장씩 윤생, 털이 없으며,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길이 1~1.5㎝, 너비 3~5㎜, 잎자루는 없음, 꽃은 홍자색, 화관은 통 모양, 끝이 다소 입술 모양’(이영노, <한국식물도감>). 이러니 이들의 응원으로 자란 쌀밥 먹을 때마다 어찌 특별한 소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구와말,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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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합천 해인사에서 큰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직접 가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화면으로만 눈여겨보았다. 존재의 뚜껑을 따듯 누운 자세로 발을 환히 드러내 보이는 큰스님. 최대한 많이 땅과 접촉하는 자세로 최대한의 이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얼굴보다는 발바닥을 앞장세우고 먼 길 떠나는 중이었다. 

성경을 읽는다고 저절로 신자가 되는 건 아니겠다. 분열과 증오, 조롱과 선동으로 얼룩진 뉴스의 홍수 속에서 쿵,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뜻밖의 가을 태풍 링링에 해인사 장경각 앞의 학사대 전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놀라운 뉴스를 듣고도 며칠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갈 뻔했다가 쓰러진 나무를 호출해 준 건 역설적으로 또 다른 태풍 마타였다. 마음이 흉흉한 탓인가. 어쩌자고 나는 이웃집 할머니의 늙어가는 얼굴에는 무심하고 태풍급의 사고에만 이렇게 반응하는가. 

내 고향 거창에서 뒤로 자빠지면 뒤꼭지가 깨질 만큼 합천은 가까운 동네다. 동네 어른들은 추수 끝낸 마을여행, 대성중학교 형들은 수학여행으로 해인사를 갔었다. 그때 꼬맹이였던 나에게 최치원이가 죽기 직전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더니 그게 나무로 자랐대. 귀에 솔깃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바로 그 전나무가 쿵, 쓰러진 것이다. 최치원 지팡이의 손자뻘쯤 되는 수령 250년의 나무라고 한다. 

전나무의 행방을 찾다가 현장 사진을 보았다. 밑동이 부러진 전나무는 커다란 허공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스님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듯 나무 안에서 나온 큰 구멍이다. 다음 나라에 가는 데 필요한 여권처럼 나이테도 환히 드러났다. 해인사 스님들은 나무들 세계에서 큰스님에 속할 나무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봉행하고 문화재청은 뿌리를 보존하고 후계목을 심어 후사를 잇기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아, 고맙고 다행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언젠가 지하에서 하나로 반죽이 된다. ‘깜깜 한밤중 창밖에 비 내리고/ 등불 아래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의 울적한 심사를 읊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최치원. 지음(知音)보다 짙고 혈육보다 끈끈한 지팡이와 해후하며 또 어떤 시상에 잠기실지! 전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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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지나면 휴지가 되어버리는 신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제법 건질 게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신문 사회면의 모퉁이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첫 문장이 ‘나, 너, 우리’로 바뀐다는 단신이었다. 아니 이게 뭔 기삿거리인가!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거창한 시대정신이나 교육이념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아이에게 한 사회가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첫 언어는 대단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어의 첫 문장은 몇 번 변했다. 광복 직후에는 ‘바다, 나라, 가자’였다. 내가 배운 건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이리 오너라.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순이야 이리와. 나하고 놀자’였다. 천자문의 우주홍황은 아니더래도 왜 개까지 등장시켰을까.

스위치를 누르면 톡, 꺼져버리는 화면에서 며칠 전 짤막한 뉴스가 눈길을 끈다. “국립국어원이 명사 ‘됨됨이’와 ‘엉덩이’, 동사 ‘그리하다’, 형용사 ‘예민하다’ 등 몇 단어의 뜻풀이를 추가했다. (…) 됨됨이는 ‘사람으로서 지니고 있는 품성이나 인격’이라는 뜻으로만 썼지만, ‘사물 따위의 드러난 모양새나 특성’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가을 태풍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먼 산에 가지 못하고 유리창에 붙이는 신문지처럼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심학산에 올랐다. 늦털매미가 알뜰하게 운다. 인간처럼 말은 못하지만 몇 마디 음률로 성실하게 울다 간 올해의 보통 매미들. 일제히 종적을 감춘 여름의 처사들을 떠올리다가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처럼 언어의 가치가 떨어진 때가 있었을까.

어둑한 산길. 말의 가치 하락을 궁리하는 내 머릿속과 장단을 맞추듯 숲속에서 상수리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툭, 툭, 툭 귀를 간지럽혔다. 오늘의 글감을 구하러 두리번거릴 때 개여뀌의 빨간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다. 집 근처 뒷산에서 보았다고 함부로 쉽게 볼 건 아닌 풀. 그 옛날 시골에서 잎을 갈아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던 풀. ‘개’가 붙은 독한 풀이지만 그 됨됨이를 잘 다스리면 약으로도 쓰이는 개여뀌.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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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순간 21g이 줄어든다고 한다. 21g, 그것은 영혼의 무게일까? 5센트 동전 5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21그램>의 마지막 독백이다. 가장 작은 새인 벌새를 직접 본 적 없지만 대략 꿀벌만 하지 않을까. 꿀벌 한 마리 현호색의 꽃대궁을 붙들고 땅에 닿을 듯 휘청, 구부러지는 것을 보며 저게 바로 내 영혼의 무게이려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생태계에서 영화 <벌새>에 대한 주위의 강력한 평을 들었다. 안 보고는 그나마 있던 내 영혼이 증발할 것만 같았다.

화면에서 보는 아파트는 참 다닥다닥한 공간이었다. 현관 열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투성이의 신발 벗으면 곧바로 거실이고, 문 하나로 바로 방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 벌어질 때 숨을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떡집 막내딸인 은희는 중학생. 왼손으로 만화를 그리면서 가슴속 질문 하나는 그래도 붙들고 생활한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가족은 물론 학교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은희를 상대해 준 이는 한문학원 선생님이다. 왼손으로 한자를 잘 쓰는 그는 은희 마음에 한 획을 그어주며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흰 종이가 사무치게 좋았나. 연필로 만화를 그리듯 손바닥으로 백지를 쓰다듬는 은희.

영화에는 나무가 표나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친구와 헤어지는 곳도 다시 만나는 곳도 나무 아래에서다. 가장 크게 클로즈업되는 당단풍나무는 가을의 복판에서 프로펠러 같은 열매가 성숙하고 있다. 있던 곳의 그늘을 피해 되도록 멀리 날아가기 위해 저런 장치를 가진 것이다. 벌새는 무수한 날갯짓으로 공중에서 정지하여 꿀을 빨아먹는다. 은희는 가끔 벌새처럼 뛰어오르지만 공중에 머물 수는 없다. 중력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 삶의 무거움을 스스로 이겨내어야 하는 건 본인뿐이다. 영혼의 무게만 한 무거움에 휘청이던 현호색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영화 속 나무로 글을 마무리하자. 

벌새의 날갯짓처럼 눈을 반짝거리는 은희, 가슴속 한 획을 붙들고 당단풍나무 열매처럼 멀리 회오리쳐 날아가기를!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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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다. 추석 기념으로 이렇게 비틀어 보면 어떨까. 텔레비전은 방에 걸린 최신식 달이다. 올 명절에도 둥근 달은 물론 네모난 달을 많이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 걸린 <대서사시 옐로스톤>의 한 대목에 잠자리가 등장했다. 3억년 전 진화를 거친 끝에 생명체 중 가장 먼저 공중을 날아올랐다는 잠자리의 시야는 360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눈으로 멀리 지나가는 먹잇감을 포착해서 재빨리 낚아챈다. 연이어 시청한 영화 <마션>의 한 컷. 화성에 홀로 고립된 동료를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우주에서 필사적으로 도킹하는 장면은 잠자리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 물리적으로 비슷한가.


떼 지어 나는 새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북적거려 계절마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가는 행로가 맞는가. 새들도 불안한지 주소를 주고받는다. 끼룩낄룩 낄룩끼룩. 제사 지내고 허전한 마음 달래려 자유로를 달렸다. 하늘처럼 땅도 평소와는 퍽 다른 풍경이다. 임진각은 망향객으로 몹시 붐빈다. 자격 없는 나는 화석정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율곡의 한시와 우람한 느티나무를 일별하는데 수령 267년의 향나무 아래에서 이것 좀 보라며 아내가 소리를 친다. 우주선, 아니 헬리콥터를 빼닮은 잠자리를 기대했더니 반짝이는 날개를 단 개미들이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껍질이 길게 벗겨지는 향나무. 이 나무로 만든 연필은 향기도 좋았지. 그 미끄러운 줄기를 운동장처럼 가지고 노는 개미들. 나무에 난 작은 구멍을 중심으로 개미들이 병목현상이나 충돌사고도 없이 분주히 들락날락거린다. 


쓸쓸하자고 추석은 마련되었는가. 문득 흘러가는 것들을 관찰해본다. 하늘에는 구름, 임진강에는 물, 국도에는 차 그리고 향나무에는 개미들이 어디론가 가는 중! 이 묵묵한 풍경에 일조하는 향나무는 입도 없지만 발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으니 옆으로 내달리며 굴러떨어지는 것들과 달리 나무는 가장 천천히 정면으로 걸어간다. 내년에도 무사히 내 그늘로 오시게. 서로 닮은 얼굴들에 비슷한 걸음걸이로 곧 흩어질 대가족을 굽어보면서 향나무는 묵직한 한 걸음을 하늘로 내딛고 있었다. 향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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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교목. ⓒ이해복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아주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거기에 무어라 말할 하늘이 아니다. 여름이 차례를 지켜 덥고, 나는 순서가 되어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 지금 해야 할 일은 자꾸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궁리가 든다.

지난 일요일은 입춘 이후 열다섯 번째인 백로였다. 대부분의 24절기가 뜻만 무뚝뚝하게 전하는 데 비해 백로는 그 이름이 퍽 우아하다. 덕유산 삿갓재에서 1박 하는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링링에게 발목이 잡혔다. 파주출판단지로 허전한 발길을 돌리는데 뿌리째 뽑힌 가로수가 많았다. 거리에 수북한 상수리나무의 가지를 관찰하니 접촉면이 너덜너덜했다. 아직도 바르르 떠는 가지를 들고 한 달 전의 춘천으로 달려갔다.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오신 형님들과 김유정문학촌의 금병산 오르는 길. 산은 그야말로 소설가의 뒷배를 담당한 듯 오솔길이 호젓했다. 어두웠던 시대를 감당해야 했던 김유정의 그 많은 고민과 문장을 받아준 산책길. 바닥에 박힌 바위들이 닿소리라면 지나가는 바람결은 홀소리라고 해둘까. 

금병산 길바닥에 신갈나무 가지가 떨어져 있다. 가지와 접했던 부위를 보면 누군가 예리하게 칼로 자른 듯 매끈했다. 이는 도토리가 달리는 참나무를 괴롭히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소행이다. 녀석은 신갈나무 열매에 알을 낳고, 주둥이로 가지를 잘라 밑으로 떨어뜨린다. 충격을 완화하려고 프로펠러처럼 잎을 몇 개 매단 채. 그냥 자연스럽게 무위하게 부러진 게 아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거리에서 생각을 더 달려본다. 훤칠한 나무일수록 태풍은 더 집요하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가장 많은 나무는 신갈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나무, 사람은 사람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반죽이 된다. 우리는 이 산들을 등뼈로 삼아 각각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무용한 질문이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신갈나무가 그에 대한 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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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벌, 풀 초. 연약한 풀과 싸울 일이 뭐 있으랴만, 풀을 깡그리 제거한 도시에서 듣는 저 단어가 참으로 강력하다, 벌초(伐草). 매미 소리는 하늘의 그물인가. 우렁차서 구멍이 성근 듯하지만 빠뜨리는 법이 없다. 여름의 잔해를 모두 짊어지고 매미들은 지금 입적하고 있는 중!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벌초는 가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고개다. 저 고개를 넘으면서 날씨는 수굿해지고 벼는 고개를 숙인다. 이윽고 가을이 시작되고 추석이 찾아온다.

고개가 하나 더 있다. 벌초하러 시골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는 엉덩이가 특별히 발달한 자동차 꽁무니를 그저 냅다 쫓아가기에 바쁘다. 무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단정한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 ‘라제통문’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글씨는 최근 것이로되 글자는 신라, 백제 시대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왼편으로 구부러져 구천동을 지나 덕유산 빼재를 넘는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으로 경상의 거창과 전라의 무주를 사이좋게 잇고 있는 중! 높아서 좋고 그 말맛이 빼어나기에 더욱 좋은 고개. 빼재 이정표가 보일 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구천동의 청량한 공기가 서울의 묵은 공기를 얼른 쫓아냈다. 코끝을 때리는 고향 냄새를 따라 눈앞의 풍경은 싸늘한 공간에서 비로소 다정한 장소로 바뀐다. 어머니는 아니 계셔도 당신의 친정 근처를 휘돌아들 때마다 옛이야기를 풀어놓던 음성이 바람결에 전해온다.

산소는 양지바른 곳이기에 꽃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무릇, 닭의장풀, 달맞이꽃, 여뀌가 무덤 둘레마다 드문드문 피었다. 가장 강렬하게 핀 꽃은 꽃며느리밥풀이다.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을 상징하듯 서글픈 꽃의 아랫입술 가운데 이빨 혹은 밥풀 같은 게 도드라진다. 그 옛날 이름도 모르고 꼴을 베어 소에게 줄 때 고명처럼 얹어 주었던 꽃일까.

이발하듯 덥수룩한 산소의 머리를 깎고 난 뒤 절을 한다. 그간 얼른 일어나기에 바빴는데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방금 낫에 베인 풀에서 나오는 향기를 작정하고 맡아본 것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확인하는 지하의 근황은 아닐까. 꽃며느리밥풀 곁이기에 더욱 좋았던 기해년의 벌초, 두 개의 고개를 넘으며 끝났다. 꽃며느리밥풀,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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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 가면 전봇대에 자꾸 눈길이 간다. 너절한 세상 따위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저 멀리 달아나는 전봇대. 껑충한 전봇대는 키만 큰 게 아니다. 수많은 소식과 사연을 전달하느라 귀가 아주 발달했다. 길에도 막다른 골목이 있는 것처럼 전봇대도 그 끝이 있을 것이다. 혹 말이 바뀌는 국경 근처에 가면 전봇대의 최후를 볼 수 있을까. 흔치 않은 외국 여행은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으니 그 또한 여의치가 않아 아직까지 궁금한 사항으로 남았다. 육상선수처럼 성큼성큼 뛰어가는 전봇대, 너는 자꾸 어디로 가느냐.

사나운 파도를 가르며 대청도로 갈 때 문명의 척후병인 양 전봇대는 이미 나보다 먼저 상륙해 있었다. 혹 이곳에서라면 격리된 섬에서 진화를 관찰하듯 전봇대의 일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작은 섬은 섬대로 한없이 넓고 깊어서 좀체 그 끝을 보여주지 아니했다. 허겁지겁 쫓아가는 텅 빈 공용버스를 보기좋게 따돌리며 숲으로 들어가더니 저 멀리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전봇대. 하늘을 배경으로 참으로 아름답게 구름의 난간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대청도와 백령도에서 자생하는 대청부채를 바닷가에서 만난 뒤, 이 지역에서 겨우 볼 수 있는 나무를 찾아나섰다. 섬마을을 잇는 줄기 같은 도로를 벗어나 확 좁아지는 가지 같은 임도로 접어드니 여느 곳과 다름없는 생태계가 눈을 호린다. 북한계선에 위치한 동백나무를 구경하고 돌아나오는 길켠에서 좀 특이하다 싶은 나무를 용케 꽃동무가 찾아냈다. 이름도 아주 특이한 뇌성목.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게 특징인 감태나무와 아주 유사하다. 감태나무가 산지에 산다면 뇌성목은 바닷가에 산다.

어린 시절 학교 갔다 오다가 무청 돋아나는 밭에 꽂힌 전봇대 아래에서 들리던 윙윙윙 소리는 조금 무시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우물로 던진 밧줄 같아서 그 끝을 잡고 대처로 가는 꿈을 의탁하기도 했었지. 뇌성목, 그 이름은 천둥치는 소리라는 뜻의 뇌성(雷聲)이라고 한다. 외딴 섬, 대청도에서 만난 전봇대 옆의 뇌성목, 녹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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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운세를 살필 만큼 그리 고급하게 살지 못했다. 그저 되는대로 밀고 나아갔다. 뒤늦게나마 날씨를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의 훈련’을 소화한 아이가 대청도로 배치된 것이다. 스포츠뉴스가 끝나면 백령도가 표기된 지도가 떴다. 최북단 섬의 근황을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상냥한 음성이 몹시도 반가웠다. 첫 면회를 갔을 때 고독한 섬의 생태계도 염두에 두었지만 꽃보다는 쫄병이었다. 군인에서 아들로 돌아와 모처럼 시름을 잊고 동생과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2분3초’의 외박이 후다닥 끝나버렸다. 

해병 대신 꽃 보러 가는 길. 꽃산행을 응원하듯 배 이름도 하모니플라워다. 대청도에 내리니 5년 전의 생생한 추억이 땅보다 단단했다. 웬만한 지역은 일몰 이전에는 접근에 제한이 없었다. 대청도로 우편엽서를 제법 보낸 터라 이 지역의 주소는 지금도 훤히 왼다. 까나리액젓 담그는 통이 즐비한 옥죽동을 지나 모래사막 근처 용머리 해안을 탐사했다. 어느 바닷가에서나 흔한 순비기나무의 꽃, 해당화의 열매들이 한창이다. 

여름 바닷가에서는 벌거벗는 게 상책이다. 피서객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침내 그것과 만났다. 꽃에 입문했을 때, 오후 3시에 정확하게 꽃봉오리가 터진다는 말을 듣고 퍽 신기해했던 대청부채였다. 날카로운 칼 같은 잎이 서로 얼싸안으며 부챗살처럼 퍼진다. 나사처럼 배배 꼬인 채 지고 있는 꽃 옆에 피기 일보 직전의 꽃봉오리가 있다. 동영상 모드로 숨죽여 기다리는 동안 멀리 끊임없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다. 나는 짐작도 못할 저 바다의 깊이를 아들은 가슴에 들어앉혔을까, 생각하는 순간 꽃봉오리 하나가 확, 세상 구경을 하였다. 꽃잎 벌어지는 소리 파도 소리에 묻혀 들렸나, 안 들렸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청도에서 대청부채를 보았다는 건 곡부에서 논어를, 달에서 이태백의 시를 읽은 셈에 비견할 수 있을 듯! 

제대 특명을 받고 하모니플라워를 탄 기분을 가늠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물에 뜬 배처럼 나의 기분도 파도 마루에 높게높게 걸리었다. 대청부채,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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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지난 하루를 되짚어본다. 깜깜한 밤을 지나 새벽에 눈을 떴다가 한숨 더 잤다. 날이 훤해지고서야 알람의 독촉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멀리까지 신호를 보낸 뒤 바닥을 짚고 일어나 직립했다. 달그락달그락 밥그릇을 비우고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검은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은 玄關으로 쓴다. 왜 ‘검을 현’일까. 

우리는 통상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처음 현을 만난다. 저 천자문의 첫 대목에서 玄을 ‘검을 현’으로 훈을 달면서 그저 ‘검다’라고만 이해한다. 하지만 하늘을 형용하는 검다, 라는 말은 가물가물하다, 라는 뜻에 가깝다. 아득히 멀고 깊어서 가물가물한 경지를 玄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멀고 깊으면 검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기도 하겠다.

그제 절친한 꽃동무가 산에서 만난 염소를 찍은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녹색을 배경으로 까맣기 그지없는 어미 염소가 더욱 까맣게 압축된 새끼 염소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염소는 ‘검다’라는 형용사의 우두머리인 양 온통 까맣다. 털은 물론 온몸이 구석구석 새까맣다. 염소는 마침내 똥마저 검은 것으로 생산한다. 검은색이 거느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통하고 우뚝한 존재.

한편, 까망이 장악한 풍경에서 아는 식물을 하나라도 찾으려니 염소 뒤에 앉아 있는 고사리가 보인다. 염소와 같이 소과(科)에 속하는 양의 이빨을 닮았다는 양치식물의 대표 격이다. 우리나라에 무려 350여 종이나 자생한다는 고사리 앞에서 내가 깜깜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실감한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고사리라고만 여기에 적을 뿐.

흑(黑)과 현(玄)의 차이처럼 블랙과 다크는 확실히 구별된다. 염소의 털은 블랙이지만 눈은 다크라고 해야 함이 옳다. 

우리는 아침에 현관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가, 저녁이면 현관을 닫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집과 세상 사이의 현묘한 문(門)인 현관을 玄關으로 표기하는 건 참 적절하다 하겠다. 눈알마저 새까만 염소 가족을 보면서 현관 바깥을 거니는 나를 겹쳐보느니, 지금 대체 어느 소용돌이 속을 나는 깜깜 헤매고 있는 중이더냐!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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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꼭대기가 숲처럼 우거지고 그 속에 큰 고민이 살고 있듯 산의 상층부에 습지가 있다.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아래에 처하기를 좋아하는 물을 높이 받들고 있는 터라 세상의 신비와 고요가 집합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의 고민에 상응하듯 혹 이무기라도 살고 있는 걸까.

내 안에 이리도 많은 구멍이 있었구나. 닭똥 같은 땀방울이 마구 빠져나오는 이열치열의 상쾌함을 느끼면서 서늘한 기운이 밀집한 습지의 물가로 접근하면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한 토막도 따라 나온다. 흘러가는 시냇물. 물에는 물고기가 제 몸뚱이 하나를 밑천으로 살았다. 물 바깥에서 물속의 물고기를 보는 건 기이한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쉬리 떼를 발견하는 건 언제 보아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바지를 걷고 매미 소리를 귀에 꽂으며 직접 물에 들어갔다. 물에서 물고기를 이길 수 있겠나. 하지만 물낯에 튕기는 햇살을 얼굴에 바르며 일렁이는 물살 아래 미끈거리는 돌과 모래를 더듬다가 운 좋게 모래무지, 동사리, 꺽저기를 잡기도 했다. 그렇게 물에서 물고기를 떼어낼 때의 짜릿한 흥분을 어찌 잊으랴. 

강원도 고성의 어느 습지. 미리 알고 가는 길이었지만 짐작 못한 곳에서 습지는 툭 튀어나왔다. 숲에서 뱀을 만나듯, 점빵에서 알사탕을 눈으로 훔치듯 숲속의 습지는 뜻밖의 발견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낡은 길에는 고사목이 쓰러져 있고 어느 태풍의 소행인 듯 나무는 뿌리째 뽑혀 밑동과 잔뿌리가 수직으로 허옇게 드러나 있기도 하였다.

물가에 좀 더 접근해 본다. 습지에 깊숙이 물구나무서 있던 산과 구름은 더 깊은 속으로 빠져들면서 나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땀에 전 한 사내의 모습을 떠받쳐 주는 건 각시수련이다. 주로 오래된 습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매우 귀한 식물이다. 연꽃의 잎과 줄기가 공중을 짚는다면 수련은 수면에 그 높이를 맞춘다.

수련(睡蓮). 문자적으로 졸음과 관련이 있으니 수련은 물을 이불처럼 깔고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중일까. 어쨌든 저를 제대로 보려면 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라는 것이니 그 옛날의 기억을 확실하게 반짝 일깨우는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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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춘기 시절 갈 곳 몰라 헤맬 때 더러 꼰대 같은 소리를 해댔다. 골짜기에서 얼른 능선을 타라. 그 방법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아니하고 그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게 상책이라고만 했다. 어떤 자리에서는 주워들은 풍월로 그만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도 충고랍시고 던지기도 했었다. 내 마음조차 어디 있는 줄 깜깜 모르는 주제에 마음 운운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퍽 가소롭기만 하다, 아무튼.

산에 가서 깔딱고개 몇 개 넘으면 능선을 만난다. 그 능선에 서면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온다.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지만 최초의 사람은 산에서 성큼성큼 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고 상상하게 된다. 그 깊이를 짐작 못할 침묵의 덩어리인 바위를 관찰하면 이 또한 바다에서 융기한 흔적이 있으니 마냥 터무니없는 생각만도 아닐 터다. 오르기는 어렵고 내려가기는 더 어려운 법이라 했다. 그러니 저 아래 세상이란 잘되기는 무지 어렵고, 잘 안되기는 너무나 쉬운 현장이 아닐까, 아무튼. 

설악의 능선은 겨울에도 좋지만 여름에 가면 더 좋다. 봉우리 이름이 주는 뜻을 가늠하다 보면 하늘의 한 별자리를 짚어나가는 기분에 발길도 가볍다. 한계령에서 올라 귀때기청을 곁눈질하고 끝청, 중청 그리고 대청으로 이루어진 ‘설악좌’를 순례하는 기분이란!

오늘의 행로는 끝청을 지나고 잠시 멈췄다. 중청대피소를 지척에 둔 바위들 틈에 야생화가 잔뜩 피어 있다. 높은 산중인데도 그 이름이 등대시호란다. 꽃은 뿌리-줄기-잎-대궁-꽃의 일반적인 모양을 따르지 않는다. 기하학적 구조가 특이하고 자잘한 꽃을 들여다보면 하도 오묘해서 눈알이 뱅뱅 돌 지경이다. 이 꽃안을 ‘등대시호좌’로 명명해 줄까. 

캄캄한 바다를 밝히는 등대로 짐작하고 이 높은 산도 결국 바다에서 왔다는 한 근거로 삼으려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등대시호는 등잔을 거는 대에서 따온 이름이라 했다. 사무실 한편에 호롱과 양초를 모두 놓을 수 있는 녹슨 등대가 있다. 시골 큰집에서 쓸모를 잃고 뒹구는 것을 수습해온 것이다. 저 등잔불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가. 내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꿈을 눅진하게 담은 듯한 설악산의 등대시호.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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