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50건

  1. 2019.02.12 교동도의 측백나무
  2. 2019.01.29 잣나무
  3. 2019.01.22 거제수나무
  4. 2019.01.15 때까치와 개암나무
  5. 2019.01.08 화살나무
  6. 2018.12.26 사위질빵
  7. 2018.12.18 바랭이
  8. 2018.12.11 수양버들
  9. 2018.12.04 황벽나무
  10. 2018.11.27 산수국
  11. 2018.11.20 좀작살나무
  12. 2018.11.13 자주쓴풀
  13. 2018.11.06 동래엉겅퀴
  14. 2018.10.30 가는잎향유
  15. 2018.10.23 산국
  16. 2018.10.16 인동덩굴
  17. 2018.10.10 참나무겨우살이
  18. 2018.10.02 바위구절초
  19. 2018.09.18 단풍취
  20. 2018.09.11 한라천마

새해 지나고 벌써 한 달. 아라비아 숫자가 큼지막한 달력 아래에서 살지만 그 속에 숨은 24절기를 올해부터 몸에 밀착시키기로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고작 오늘밖에 살지 못하는 내가 한 해의 중심을 그 어디로 삼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한해살이의 시작을 입춘(立春)에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봄이 저기에 저렇게 서는 것처럼 나도 여기에 이렇게 독립적으로 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하자.

설 연휴의 여세를 몰아 오래전부터 별렀던 교동도에 갔다. 아직도 명절이면 찾아오는 어릴 적 냄새가 조금 남아 있을 것도 같았다. 저물 무렵을 겨냥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교동제비집에 들러 몸을 녹인 뒤 대룡시장에 갔다. 좁은 골목마다 그 시절을 통과해낸 사람들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서성거린다. 관광객들로 불이 난 호떡집을 비롯해 이런저런 점빵들 사이로 효도관광, 신혼여행 안내문도 있다. 장례식장 빼놓고 있을 건 다 있는 시장. 그 끄트머리에서 산 가래떡을 입에 물고 골목을 벗어나니 교동초등학교가 있다. 제106회 졸업식을 축하하는 현수막 옆으로 우람한 측백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교문 기둥을 만지는데 어쩔 수 없이 내 고향 초등학교의 졸업식 생각이 났다. 풍금 소리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나온 언니들은 교문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 흩어졌었지. 학교 담벼락에 초상화가 있다. 이 학교를 떠나고, 이 세상도 마저 졸업하신 다섯 분의 제1회 졸업생들.

방학도 없이 학교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목구멍이 조금 간질간질해지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동장을 걸어 새삼스레 나무를 세어보았다. 좌측으로 54그루, 우측으로 29그루. 이 학교와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저장하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멀리 해가 뚜렷하게 지는 것을 보면서 시장으로 돌아와서 양초를 샀다. 이제 집에 가서 불을 켜면 겨울에도 푸르른 측백나무 사이로 많은 생각이 푸르륵 일어나겠다. 교동도의 측백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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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심심산곡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찾아가는 북한강이 심심한 듯 크게 용틀임을 할 때, 이에 호응하여 경기 근방에 가까이 집합한 산들이 막역한 친구처럼 첩첩하게 도열한다. 명지, 연인, 칼봉, 운두 그리고 천마. 마치 돌올한 산악문명이라도 곧 발흥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봄이면 이 산마다에 야생화의 잔치판이 벌어지는 건 이런 지리적 사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산으로 들 때, 그 산의 이름을 통한 내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오늘 찾는 곳은 저 문명의 한 축인 축령산이다. 산은 완만하다. 초입에서 잠깐 가파른 길을 더위잡아 오르니 바로 산천경개가 툭 트인 능선이다. 잎이 모두 떨어진 산. 나무는 물론 산의 전모가 훤히 드러난다. 어느덧 남이바위에 서니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적응한 소나무가 홀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저 아래 다정한 인간의 마을에 지곡서당이 있건만 글 읽는 소리 끊어진 지 오래!

축령산은 祝靈山이다. 그 이름이 퍽 희한해서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하는 산, 축령산. 축에 촉발되어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중국소설을 전공하는 분들을 따라 주자(朱子)의 고향 무이산을 갔었다. 주자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한 자료 중의 여러 글귀가 축(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결혼식장에 잘못 배달된 조화처럼 아주 낯설고 희한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주자 어머니의 이름이 축씨였던 것. 축령산을 걷는 내내 어쩐지 그때 퍽 낯설었던 옛 생각이 자꾸 났다.

축령산 정상에서 한숨을 돌린 뒤 이웃한 서리산으로 간다. 서로 뽐내지 않으며 그 능선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등산을 축령산-서리산으로 마무리하고 보니 무슨 근사한 목걸이를 완성하는 기분이었다. 그 목걸이의 고리에 해당하는 곳에 이르니 우람한 나무들이 공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 맏형처럼 자리잡고 묵묵히 하늘을 받드는 잣나무였다. 그늘을 좋아해서 아주 단정하고 기품 있게 뻗는 나무. 송무백열(松茂栢悅·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이라고 했던가. 잣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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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들어 대한(大寒) 근처를 지나건만 지난여름 땡볕에 상응하는 추위가 없다.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심설산행에 따라나섰을 땐 묵은 눈이라도 실컷 맞으리란 기대가 없지 않았다. 대관령에 도착해서 능경봉으로 오르는데 맞춤하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에 휩싸인 겨울산에 들면 잎을 떨군 나무의 밑천이 훤히 드러난다. 

ⓒ최영민

그리하여 어느 비탈의 우람한 거제수나무 아래에서 이런 시 한 편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황지우)

눈은 계속 내렸다. 애인 만나고 올 때처럼 비가 그냥 한꺼번에 후다닥 내리고 만다면, 애인 만나러 갈 때처럼 눈은 망설이는 눈빛과 설레는 마음을 담고 천천히 흩날린다. 부드러운 혁명처럼 천하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벌받는 자세의 거제수나무를 보면서 서울을 벗어날 때 귓가에 왕왕거렸던 뉴스와 관련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어느 법률가와 만난 적이 있었다. 법의 문외한으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이 남긴 한마디가 영영 안 잊혔다. 세상에 죄가 이만큼 있다면, 요만큼 드러나고요, 요만큼 기소가 되고요, 이만큼 재판을 받고요, 겨우 요만큼 벌을 받는 셈입니다. 한 단계마다 반토막으로 좁혀지더니 한 뼘만큼으로 팍, 쪼그라든 그이의 양팔 사이로 빠져나간 이른바 ‘법꾸라지’들이 활개치는 소리가 푸드덕거렸던 기억.

세상의 소리를 빨아들이며 계속 내리는 눈. 하늘은 이렇게 순결한 눈을 보내주는데 발밑에서는 금방 질컥이는 흙탕으로 변해버린다. 잘되기는 어려운데 잘못되기는 왜 이리 쉬운가. 눈 내리는 겨울 대관령에서 만난 거제수나무. 그 수피가 부르튼 입술처럼 얇고 붉게 일어나며 벗겨진다. 어쩐지 누군가를 대신해서 애꿎게 벌서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 쳐다보는 저 겨울나무들. 거제수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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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것처럼 방치했던 서랍도 연초에는 모처럼 햇빛 아래 홀랑 뒤집어진다. 뭐 이리 자질구레한가. 잉크가 말라버린 만년필, 간이영수증 뒷면에 휘갈긴 메모가 툭 튀어나온다. 내가 저지른 소행이 분명하나 물건을 보고서야 어렴풋해지는 사연들. 사무실 앞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주운 도토리도 있다. 딱딱해진 도토리를 보는데 양볼이 불룩해지도록 열매를 집어넣는 다람쥐 생각이 났다. 저만의 장소에 먹이를 묻어두지만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다람쥐.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의 한 토막.

몇해 전 자연생태에 조예가 깊은 분들과 송지호 둘레를 탐방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뚝뚝하게 버티는 나무들의 동태를 살핀다. 울타리에 자작나무가 도열한 파릇한 보리밭을 가로질러 더듬더듬 되돌아나올 때, 누군가 말씀하시길, 오늘 정말 귀한 사진을 찍었어요, 때까치가 개암나무 가지에 개구리를 잡아서 걸어놓았더군요. 귀에 쏙 들어오는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도회 근방의 얕은 자연 속에서 이런 야생의 다큐멘터리를 목격하다니, 얼른 그곳으로 달려갈 태세를 갖추었지만 너무 먼 거리라 했다. 물회가 기다리는 점심시간도 촉박해서 카메라 속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개굴개굴 울다가 웃다가 그런대로 살아온 개구리. 느닷없이 개암나무 가지에 꿰인 채 꾸덕꾸덕 적나라하게 말라가는 개구리를 보는데 한 말씀 보탠다. 글쎄, 저 때까치가 기억력이 나빠 제가 공중에 감춰놓은 것도 대부분 까먹는대요!

쥐들이 한바탕 설치고 간듯 뒤죽박죽 어지러워진 서랍. 앞에 열거한 것 외에도 뜻밖의 품목이 더 있다. 흰 봉투에는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라는 약이 들어 있다. 한구석에서 뒹구는 건 몇 개의 연고들. 녹이야 슬지 않았지만 짜부라지고 뒤틀린, 그렇다고 제대로 다 쥐어짜지 못한 것이다. 당장 눈앞의 서랍 속에서 이 연고는 어쩌면 그리도 내 인생을 꼭 닮았더냐. 소중하게 보관한다고 툭 던져놓고서 그 영문을 까맣게 몰랐던 흔적들. 저 새대가리 좀 보라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던가. 아무튼, 때까치 그리고 개암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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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해서도 그 나무만큼의 햇빛이 정확하게 드는 법이다. 오늘 내가 찾는 나무는 홀로 우뚝한 교목이 아니라 어울려 사는 관목이다. 그것도 울타리로 심기에 적당해서 일제히 줄을 맞추고 관리당하는 나무이다. 나무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줄기에 날개가 있다. 그 나무를 볼 때면 나는 옛날의 한 시절로 득달같이 달려간다.

@최영민

부산으로 전학 가던 날. 천일여객 낡은 시외버스는 거창 차부를 떠나 합천, 창녕, 밀양, 삼랑진을 거쳐 탈탈거리며 갔다. 차의 진동에 너무 많이 시달렸다. 발등이 조금 부어올랐고 신발은 뻑뻑해졌다. 비슷하게 출발한 해도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구포다리를 건넜다. 여기가 부산의 입구인가. 이리저리 구경거리에 눈을 부라리는데 희한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처음 보는 네온사인 아래 어느 공터에서 둥그런 채를 가지고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공중에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백열전등을 저렇게 가지고 놀다니! 역시 도시사람들은 대단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배드민턴 공이었다. 산에 입문하고 나무의 특징을 통해 나무를 알아갈 때, 그 나무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 내가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바로 구포다리 근처 어느 공중에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신기했던 백열전등이었다. 그 나무 줄기의 날개와 배드민턴 공, 다시 말해 셔틀콕의 날개는 어쩌면 그리도 서로 닮았는지.

시계가 없다고 시간마저 없어지는 건 분명 아니다. 시간이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정도의 분별력만 있었더라면! 여러 우회로를 거친 뒤에 나는 오늘 인왕산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멀리 단정한 그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저곳에 있기 위해선 나무를 띄우는 햇빛만큼이나 시간도 정확히 필요했다. 새해 지나고 벌써 일주일, 고여 있는 시간의 웅덩이인 듯 첫주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제 기해년도 제 시간의 봉투를 뜯겼으니 셔틀콕처럼 또 빨리 흘러가겠지. 줄기에 날개가 발달한 화살나무 옆을 지나는 오늘은 소한(小寒)이다. 화살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 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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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은 나날들이다. 알록달록한 하루가 지나가더니 드디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왔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김수영)라고 했는데 나는 올해도 달력만 겨우 바꾸었다. 어수선한 기분을 정리할 겸 옛글을 함께 읽는 동무들과 송년모임을 했다.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북한산 혹은 그 아래 둘째 동생뻘쯤의 인왕산을 찾을까 하다가, 연말답게 방향을 확 바꾸어 버렸다. 서울에서 가장 낮은 곳을 찾기로 한 것이다. 부드럽기 이를 데 없는 물에게 가장 낮은 장소가 한강이라면 자갈 같은 몸을 가진 우리들에겐 국립묘지가 가장 낮은 곳이겠다. ‘그날 묘지에서 뵙겠습니다∼’라는 한 분의 댓글이 새삼스러워졌다.

나이 사십 이후에는 항상 보따리 쌀 준비를 하라는 글을 접한 이래 그 방면의 생각을 아니해온 건 아니었다. 문득문득 죽음이 나를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것을 찾아 헤맨다는 느낌도 있다. 이런 궁리를 바탕으로 메모장에서 아직 다 완성하지 못한 글귀를 들고 국립묘지 산책에 나섰다. 그 메모란 다음과 같다. 날이 갈수록 그것이 좋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도 아닌 그것. 온기도 물기도 없고 살도 없고 뼈도 없는 그것. 그것이 좋아진다. 산에는 꽃이 피고 그것이 많다. 그저 보아주는 이 없어도 계절은 빈틈없이 차례차례 다녀간다. 식물은 순서대로 꽃을 피운다. 저곳에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곳은 텅, 비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으로 늘 고유하니깐. 올해는 무술년. 내 생애 다시 못 볼 그것이 지금 저기에서 지나가고 있다.

위 대목을 바탕으로 이 코너의 글감을 얻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망 좋은 장군묘역에 갔더니 장미 모양의 조화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추슬러 보니 빗살무늬토기처럼 밑이 뾰족한 플라스틱 화분이었다. 내처 서달산까지 오르는데 철조망에 붙어 꽃이 아닌 듯 꽃으로 서 있는 건 사위질빵의 마른 열매였다. 할머니 머리카락 같은 흰 열매. 나중 실제로 나를 보따리할 때 쓰면 퍽 어울릴 사위질빵의 줄기가 국립묘지 한쪽의 기슭에서 추위를 칭칭 감으며 악착같이 서 있었다.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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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기슭에서 10여년을 ‘삐댄’ 적이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서 자주 인왕산을 들락날락거렸다. 어느 날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의 집터가 사무실에서 코앞 거리의 군인아파트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매일 그 집터에 서서 인왕산의 변화를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었다. 인왕산은 계절을 간격으로 하여 변하되 인왕이 거느린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였다. 간단없이 출몰하는 구름처럼 그때그때 찾아온 단상을 메모하였다가 책으로 꾸몄다. 감히 빛으로 그린 ‘신인왕제색도’란 제목을 붙였다. 인왕의 슬하를 떠나 파주 심학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끔 서울에 나가 인왕산을 만나면 뭉클, 눈에서 물이 삐어져 나온다. 겸재 정선에 대해서도 흠모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겸재가 현령을 지냈던 서울 양천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을 가보는 날이 드디어 왔다. 그곳에서는 공기부터 달랐다. 눈앞의 풍경은 물론 마음속에 자리한 관념의 경치까지도 그려낸 산수화를 보다가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그림을 만났다. 화훼초충화의 하나인 ‘서과투서(西瓜偸鼠)’였다. 이미 많은 쥐들이 들락날락거린 듯 큼지막한 수박의 밑동은 구멍이 크고, 여기저기 붉은 씨를 퉤퉤 뱉으며 정신없이 갉아먹는 쥐를 그린 그림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겸재의 섬세한 관찰력에 기대어 몇 가지 식물을 찾아보았다.

보라색 꽃은 달개비(닭의장풀)인 것 같다. 우아하게 줄기를 뻗는 건 바랭이인 것 같고, 아마도 그령으로 짐작되는 벼과의 식물도 의젓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골에서 본 풀을 뒤늦게 알게 되어 퍽 좋다. 저곳에 저것이 없었다면 그곳은 빈 구멍이었다. 그것을 보아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면 그곳은 빈자리였다. 잡초라는 말을 치우고 고유명사를 부르는 기쁨이 크다. 언젠가 인왕산 아래 수성동계곡의 맨 마지막 집에서 만났던 달개비, 나도 참 좋아하는 여름 과일인 수박. 그리고 고향에서 발길에 차이던 꺼끌꺼끌한 그령과 바랭이. 260여년의 시차를 두고 겸재의 예리한 시선에 내 둔탁한 그것을 흐뭇하게 포개는 이 즐거움! 바랭이, 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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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서구의 서울식물원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무릇 아니 그런 데가 어디 있겠더냐. 이곳도 시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운영권의 절반은 하늘이 소유하고 있다. 임시개장을 했지만 당장 야외에 꽂혀 있는 나무들은 내년 봄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꽃잎 모양의 온실로 발길을 돌려 열대관과 지중해관을 둘러보았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를 설명하는 안내판의 한 구절을 인상적으로 마음에 담고 바로 이웃한 겸재정선미술관으로 향했다. “바오바브나무는 2000년 이상 생육이 가능한 식물이다. 옛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원통이 크고 중간이 비어 있는 바오바브나무를 무덤으로도 사용했다.”

겸재의 그림은 이른바 진경산수의 경지를 체득한 작품이다. 겸재의 산수화는 너무 멀리 있는 풍경을 담았기에 그림 속 나무는 마음으로 짚어야 한다. 그래도 잘생긴 조선의 소나무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간혹 훤칠하게 늘어진 버드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흠뻑한 기분으로 미술관을 나선다. 들어갈 때 못 본 나무들이 눈으로 번쩍 들어온다. 그림과 짝을 맞추었는가. 뜰 앞에 우뚝한 건 소나무와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종류가 제법 많다. 오늘 겸재와 어울린 건 수양버들이다. 줄기 끝 하늘에 별도로 뿌리가 있는 듯 아래로 능청능청 처지면서 울타리 역할도 한다. ‘인왕제색도’를 떠올리며 소나무 옆 ‘겸재정선공덕비’를 읽는데 이런 글귀가 있다. “(…) 그 화풍이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조선산수화가 선생으로부터 개벽이 시작되었다 (…) 선생이 쓰고 버린 몽당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룰 지경이라고 한 말 ‘매필성총(埋筆成塚)’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방문한 두 장소, 식물원과 미술관을 연결시켜주는 건 나무이지만 무덤에도 마음이 쏠린다. 봉분이야 사람들이 만들겠지만 무덤을 앉히고 이를 실질적으로 건사하는 건 하늘이겠다. 구름 밑을 쏘다니는 동안 나 역시 걸어다니는 무덤에 불과하겠군. 한 폭의 그림처럼 수양버들과 어울린 겸재정선미술관을 뒤돌아보는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양버들,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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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면 늘 좋지만 그게 천마산이라면 더더욱 아니 좋을 수가 없다. 꽃에 입문하고 처음으로 찾은 산. 길지 않은 나의 꽃이력을 따져보면 천마산의 한 골짜기로 나의 반질반질한 등산화는 미끄러져 들어간다. 늘그막에 우연히 나의 전부를 투신케 한 취미의 처음이자 바탕 같은 곳이겠다. 그 천마산의 정상 바로 아래의 돌핀샘에 앉아 쑥떡과 커피를 먹는다. 얼마 전 다녀간 첫눈의 흔적 사이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저만치 수피가 울퉁불퉁 발달한 황벽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도 벌써 12월이네, 탄식을 여러 번 들었던 뒤끝인가. 문득 생의 질서가 어수선해지고 삶의 갈피가 헛갈릴 때 나의 근원이 어디일까를 궁리해 보기도 한다. 연말이고 겨울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찬 기운에 편승하여 코끝을 싸늘하게 두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라서 겨울산에 드니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당장 저 황벽나무의 잎은 뿌리를 찾아서 흙으로 녹아들고, 이 돌핀샘의 물은 빗방울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바다를 찾아 한강으로 내려가는 중!

고등학교 수학시간. 이차함수 문제가 나오면 그림부터 먼저 그렸다. 이른바 x축과 y축을 긋고 0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땐 그래도 꿈과 더불어 연습장에 허술하게 표시한 원점이라도 있었다. 오늘 내가 오른 산도 말하자면 엎어놓은 포물선이고 한발한발 이동한 자취를 연결하면 점근선일 테다. 그렇다면 나도 항상 그 어디를 향하여 접근하고 있는 중!

황벽나무는 엄청 큰 나무이다. 그 앞에서 나는 너무나 작아서 여름에 피는 노란 꽃이나 가을에 여무는 열매를 지나치기가 일쑤다. 다만 언제나 폭신폭신한 코르크의 탄력을 확인하고 즐기기 위해서 수피를 쿵쿵 쥐어박으며 황벽나무를 구별해 왔다. 오늘은 때도 때이고 이제 나이도 나이니만큼 나무 앞에서 오로지 이 생각만 하기로 했다. 겨울을 알몸으로 앓는 나무 앞에 서면 나무를 木으로 표기하는 연유가 저절로 짐작되는바, 이 나무들 밑으로 들어가 똥막대기(一)처럼 눕게 되는 곳에 나의 근본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궁리와 함께 황벽나무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本’이라는 글자를 허공에 적어본다. 황벽나무, 운향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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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나도 그렇지만 공중에 붕 떠서 사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첫눈 기념사진이 모두 위에서 아래로 찍은 것들이다. 길을 걸으면 눈밭에 찍히는 발자국들. 이렇게 띄엄띄엄 걷기에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연속적으로 살았는데 그렇게 축적된 기억이 도무지 없다. 빛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고 한다. 먼지들의 집적인 이 몸도 빛의 자식이라서 그런 이중성을 고스란히 실천하는 중이라 여기기로 했다.

ⓒ 이해복

며칠 전 북한산성에서 의상능선 가는 길. 서울 쪽에서는 더러 올랐지만 바깥에서 접근하기는 드문 경험이다. 북한산이 그저 하나의 우뚝한 산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바위가 여러 골짜기로 대단하게 뻗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과 체위를 동원하며 기신기신 올라서 사모바위에 도착했다. 길은 고요하고 바위는 조용했다. 팥배나무 열매가 주렁주렁하다. 덕분에 새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지저귄다. 빨간 열매 너머로 보이는 서울은 첩첩산중에 파묻힌 고도(古都)같다.

빛이 일찍 스러지는 계절이기에 꽃 대신 말을 배우기로 했다. 산성을 복원하는 작업 현장에 낯선 용어들이 많다. 여장, 성가퀴, 성랑. 여장은 성에 낮게 덧쌓은 담인데 여자들도 넘을 수 있기에 ‘女牆’으로 표기한단다. 오랜만에 만난 사모바위. 예전에 보았을 때와 그 느낌이 퍽 다르다. 이목구비를 모두 버린 편안한 얼굴이다. 말의 바깥을 터득한 홀가분한 표정이다. 삼천사로 내려오는 능선. 오후 5시 무렵의 삐딱한 햇살을 등에 업자 익숙한 그림자가 건너 증취봉 한 자락에 척 걸쳐졌다. 빛의 속도로 이 우주로 먼저 도망치다가 바위한테 꼼짝없이 붙잡힌 그림자, 나의 겉가죽!

그래도 꽃 하나를 빠트릴 수는 없다. 꽃이 아니면서 바람결에 꽂힌 꽃이다. 삼천사 입구 미타교에서 만난 산수국이다. 빛이 머물다간 꽃은 변화가 많다. 본래의 꽃은 그 주위로 곤충을 유인하는 헛꽃이 만발했었다. 이제 그 소임을 다한 헛것은 방향을 빙그르르 돌려 아래를 향하고 있다. 꽃은 색깔만 빠졌을 뿐, 공중에서 풍장하면서도 어제의 골격을 악착같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디로 가시려는가, 산수국.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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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이라고 다 지나간 건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과 똑같은 작동 원리이다. 지난 일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그것은 무시로 나타나서 마음의 따귀를 느닷없이 갈기기도 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했는데 꽃 앞에서 생각나는 일들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나날들에서 모두 내 잘못을 미끼로 벌어진 일이겠지, 마음에 두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가 무섭게 또 나타나는 스산한 기억들. 결심하는 건 나의 소관사항이되 결심은 내 영역이 아닌 것. 그래도 안심이다. 그 또한 아무리 까불어 보았자 15초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 마음의 구조가 본디 그렇게 생겼다.

ⓒ이해복

아주아주 오래전, 어린이 연속극에서 본 장면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동무들과 다투고 온 손녀가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훌쩍거린다. 가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 콩알 하나를 손바닥에 놓는다. 콩이 보이느냐, 고개를 끄덕이는 손녀. 이번에는 손을 탁 쳐서 콩을 떨어뜨린다. 책상 밑 구석으로 굴러간 무심한 콩알 하나. 콩이 어디에 있느냐. 고개를 가로젓는 손녀한테 한 말씀 하신다. 마음을 방만큼만 넓혀도 콩은 보이지 않는단다. 지붕 없는 산으로 가면 띵띵한 몸 안에 포박되었던 네모난 마음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오늘은 좀작살나무 앞에 섰다. 그 어디로 가는 길목에서 열매가 땡글땡글하게 뭉쳤다.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제 마음을 이렇게 야무지게 보따리한 셈이겠다. 작살나무는 그 종류가 여럿이지만 열매는 다들 비슷해서 고즈넉한 늦가을 공중을 장악하고도 남는다.

낮에 산을 찾고 밤에 꽃을 그리는 어느 화가는 좀작살나무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적는다. “온 산에 단풍이 물들었는데 비바람에 추풍낙엽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단풍은 바람 따라 어지럽게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 가을 하늘이 코발트색으로 깊어지면 좀작살나무 열매도 더욱 아름다운 자수정 보석으로 변합니다. 낙엽은 져도 그 자리에 열매는 남아 겨울 배고픈 산새들의 먹이가 되어줍니다”(이해복). 실제 할아버지이기도 한 화가는 손녀를 지나 이제 산새들에게까지 마음을 넓히신 것일까. 좀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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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석에 앉아 노자강독을 듣는다. 오늘은 제50장이다. 대강의 뜻이야 번역된 책을 참조하면 되겠지만 한자의 뿌리까지 더듬자니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산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중간의 대목에 얄팍한 마음이 실린다. 人之生(인지생), 動之死地(동지사지). 사람의 삶은 죽을 곳으로 움직여 가는 것. 그중 세 글자에 눈이 꽂혔다. 지금까지 그 전모를 모른 채 나도 인생이란 말을 여러 번 사용하였다. 어느새 그것의 반 고비를 지난 마당에 가끔 그 어디로 떨어진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그런 마당에 갈 지(之)를 사이에 끼우니 남은 인생이 어디로 급박하게 굴러간다는 촉감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도 같았다. 한 글자 차이로 인생과 인지생은 그 어감이 이렇게 퍽 다르다. 난해한 수업을 마치고 취해서 귀가할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다. “인지생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침불시(寢不尸)라고 하셨던가. 잘 때도 시체처럼 똑바로 눕지 않고 옆으로 걷는 듯이 잤다. 사나운 꿈을 꾸기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밤을 건너고 주말이 오면 또 마음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가, 몸을 움직여서 가는 곳은 산.

시원하게 앞으로 달린다. 이 도로를 만드는 데, 이 다리를 놓은 데 땀 한 방울 보탠 적 없지만 나를 안 받아준 적은 없다. 그렇게 해서 장보고대교를 건너는데 좌우에서 급한 해류가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완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 근처 어느 야트막한 곳. 저기는 바다이고 여기는 산기슭이다. 그 사이에 섬이 형님처럼 앉아 있다.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이젠 달력도 얇아졌다. 두 장이 마지막 잎새처럼 간당간당하다. 풍부했던 햇살도 졸아드는 저녁이다. 모든 것들이 움직이며 그 어디로 넘어가는 중.

올해의 꽃들이 모두 사라졌군, 기대를 접으려는 때 길가에 어엿하게 핀 꽃이 있다. 남녘이라서 아직도 가능한 자주쓴풀이다. 미라처럼 쓸쓸하게 꽃대 위에 저의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피뢰침처럼 날카로운 잎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혀를 찌르는 쓴맛이 다리를 다시 건널 때까지 입에 감돌았다. 그것의 맛도 이렇게 쓰다! 새삼 깨우쳐주는 자주쓴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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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절에서는 마주치는 이도 있지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내려놓으려는지 어깨도 유난히 처져 보인다. 멀리 우뚝한 일주문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지하로 푹푹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경주 가는 길. 김천의 직지사 사하촌에서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교실을 벗어난 이후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어울려 경내를 잠깐 거닐었다. 탑으로 가는 눈길을 빼앗아가는 단풍잎들. 아아, 벌써 40년이라니! 희끗희끗 영감으로 넘어가는 후줄근한 모습들이었지만 이름을 대면 졸업앨범에서의 앳된 얼굴들이 그냥 훅, 튀어나왔다. 흥건한 기분으로 신라의 달밤을 떠들썩하게 건넜다.

ⓒ최영민

골프, 관광 조와 헤어져 삼릉에서 남산 금오봉에 올랐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심상찮은 기운이더니 실제 바위 바깥으로 외출한 부처들도 있다. 한 가족이 소풍을 나왔는가. 꼬마가 가파른 경사에서 외친다. 고만 집에 가자. 경상도 사투리의 투정을, 이 자슥아 이 길 아니고는 집에 갈 수 없데이, 다독이는 젊은 엄마의 슬기로운 거짓말은 이 지방 특유의 억양이다. 여기가 경주이고, 이곳이 남산이라 그런지 집이라는 말은 졸업과 얽히며 사무치게 귀에 들어왔다. 천년이 퇴적된 경쾌한 풍경을 가리키는 바위에 철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줄기와 가지, 어린 나뭇잎은 희한한 무늬를 연출해낸다. 사람 인(人), 큰 대(大), 마음 심(心)이 함께 어울렸다. 바람에 불어 철쭉이 흔들리면 따라서 일렁이는 오묘한 글자들 속에 철쭉이 전하는 큰 소식이 있는 듯!

어제부터 내심 떠올리며 공글린 꽃이 있으니 동래엉겅퀴이다. 몇해 전 상주 황금산 입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이름에 특별하게 꽂힌 건 엉겅퀴 앞에 얹힌 두 글자가 바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엉겅퀴는 동래(東萊)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 부산의 꽃동무가 이기대 해변에 한창이라며 동래엉겅퀴를 보내주었다. 50주년에도 모두들 저 동래엉겅퀴처럼 싱싱하게 모일 수 있을까. 이래저래 동래엉겅퀴와 얽히고설킨 하루였다. 동래엉겅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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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요란하던 빛이 어둠한테 지고, 세상의 모든 사물도 웅크린 짐승처럼 하나로 묶이기 시작하는 저녁이다. 이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 물먹는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김종삼). 저물다는 말이 참 좋다. 날이 저문다, 라고 말하면 고단했던 하루가 묵직하게 섬돌 아래로 내려앉는 것 같다. 사방에서는 꽃도 이미 열매로 저물어 버렸다.

서두르긴 했지만 조령산 깃대봉에 올랐다가 새재 뒤편으로 내려올 땐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준다는 문경의 단풍이 몹시 푸짐했다. 아찔하기도 하지만 무섭도록 아름다운 바위들. 그 한쪽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어선 꽃들이 있다. 참으로 갸륵하게 끌어모은 흙무더기마다 꽃이 꽂혀 있다. 저물어가는 이 계절을 담당하는 가는잎향유다. 꽃은 한두 송이가 아니라 길 떠나는 가족처럼 우르르 떼지어 피었다. 모든 꽃들이 훌쩍 사라진 때, 조금 고즈넉한 곳에서 가는잎향유를 보는데 옛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마지막 수업종이 울리면 필통과 공책을 부리나케 책보에 쌌다. 오늘은 우리 동네 ‘회치’가 있는 날이다. 마을 뒷산의 큰 느티나무 그늘에 어른들이 솥을 걸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바위인 ‘내리방석’에서 돼지를 굴러 떨어뜨린다고 했다. 송아지처럼 씩씩거리고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가 채 씹지도 않은 채 넘긴 돼지고기 몇 점. 굵은 소금에 찍지 않아도 단맛이 펄펄 입안에서 장구를 쳤다. 지나간 일은 지금으로부터 옛날로 멀어진 게 아니었다. 앞에서부터 이렇게 불시에 찾아든다. 아직도 안 잊히는 그날의 술렁술렁한 풍경들.

‘가는잎’은 잎이 어디로 간다는 건 아니고 그야말로 가늘다는 뜻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저물어가는 가을에 가는잎향유를 만나려니 그런 뜻만 실리는 건 아니었다. 봄이라는 글자에는 꽃을 보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 가을에는 어디로 간다는 동작이 마음껏 포함되어 있는 것.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가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흔들리는 가는잎향유 앞에서 송아지처럼 느리고 길게 울고 싶어졌다. 가는잎향유,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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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지나 석모도 상봉산의 호젓한 산길. 직육면체의 방과 네모난 모니터가 활개치는 도시에서는 짐작도 못할 생각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길은 뱀처럼 길고 또한 교묘해서 앞서간 이들의 흔적도 감쪽같이 삼켜버린다. 길이 문득 끊어지는 듯해서 부리나케 쫓아가 보면 또 그 어디로 넓게 구멍을 벌리며 나아가는 굽이굽이 산길. 그 좁아지는 고개를 수문장처럼 산국이 지키고 있다.

@이해복

무술에서 기해로 넘어가는 신호탄처럼 피어나는 산국. 저 노오란 산국을 보며 비로소 올해 꽃들의 마무리를 실감한다는 내 꽃동무도 있다. 기진한 체력으로 뒤처져 걷다가 정밀한 고독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휘황한 산국을 자세히 관찰해 본다. 혀를 닮았다는 설상화와 대롱 모양의 관상화가 보기좋게 꽉 맞물렸다. 어느 산길에서나 흔히 발에 감기는 꽃이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생각에도 품질이 있다. 길에서 길을 지키는 이런 산국을 두고 노자(路子)라 해도 되지 않을까. 또한 길이 고개로 넘어가듯 길의 철학자인 노자(老子)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도 큰 억지는 아닐 듯싶었다. <노자>는 노자가 세상에서 몸을 숨기기 직전 함곡관 수문장의 부탁을 받고 단숨에 써낸 책이라는 풍문도 전해지지 않는가.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휘발유 냄새가 스며들어 산길도 끝나려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다. 그 옆에는 살아있는 목숨들이 가야 할 방향을 선도하듯 일제히 하늘로 걸어가는 나무들. 죽어서도 깎인 몸으로 서 있는 이정표는 굵은 팔을 들어 상봉산, 한가라지고개, 공동묘지의 세 방향을 가리킨다. 등산객은 상봉산, 하산객은 한가라지고개, 망자는 공동묘지로 가라는 것이겠다.

아직은 살아있는 나는 공동묘지를 외면하고 일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밥보다 먼저 나온 노란 막걸리 주전자를 보는데 산국과 노자가 다시 생각나기에 최근에 읽은 노자와 관련한 한 대목을 끄집어냈다. 노자가 이승을 떠나려는 스승 상용(商容)을 찾아 마지막 가르침을 청하자, 내 입안을 보라며 말씀하시길,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문득 노자는 깨달았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남는다는 것을!

강화도 특산의 밥과 반찬의 묵직한 맛이 혀와 이로 구성된 입안을 휘젓고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노자의 말씀과 산국의 향기도 진하게 따라 넘어갔다. 산국,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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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앞.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불 꺼진 곳이 많았다. 시무룩한 동네의 낯선 간판과 좁은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컴컴함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가. 마음이 조금 조마조마해졌다. 하지만 조마조마해지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다. 마음이 그렇다는 건 하늘이나 어둠 또는 보이지 않는 곳이거나 잡을 수 없는 것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맡긴다는 게 아니겠는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술잔 앞에서 박수도 치다가 깨고 보니 아침이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현진오 소장이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마지막 산행이다. 거제도의 등뼈 같은 계룡산과 선자산 가는 길. 개띠라고 한 해를 마감하느라 유독 깡충깡충 저마다 바쁜 시기를 보낸다는 느낌도 든다.

꽃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고 열매가 승한 시기이다. 가파르게 경사진 어느 돌길에 이르니 편평한 바위에 이끼가 그림처럼 붙어 있다. 누군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표현한 듯 순정한 무늬. 문득 뒤를 돌아보면 거제도와 통영을 두루 아우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정상에 오르니 멀리 부산, 대마도가 보이고 현직 대통령의 생가 마을도 보인다. 대통령을 두 분이나 배출한 거제도는 참 의젓하군! 꽃을 품은 섬이라는 거제에 푹 빠져 하산하는 동안 많은 열매를 보았다. 이 지역의 숭상한 기운을 다 끌어모았는가. 팥배나무, 찔레나무, 윤노리나무, 가막살나무의 열매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열매가 태양의 자식이라 둥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조리 다 빨간 건 아니었다. 그중에 하나는 까맣게 여물어서 눈길을 끈다. 희고 노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꽃은 보았지만 이렇게 그 열매를 보는 건 처음인 인동덩굴이다.

흔히 인동초라고도 불리며 또 한 분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덩굴성 식물로 많은 고비를 지나 숱하게 휘어지고 꺾어지면서 마침내 척, 내놓은 까만 열매. 빨간 열매가 주위를 밝히면서 퍼지는 느낌을 준다면 검은 열매는 주위를 끌어모아 응축한다는 인상을 준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반짝거리는 인동덩굴의 쥐똥처럼 까만 열매 앞에서 대낮인데도 내 마음이 잠깐 조마조마해졌다. 인동덩굴, 인동과의 덩굴성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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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가면 이상하게 받침 없는 지명에 마음이 끌린다. 그중에서도 서귀포는 특히 그렇다. 받침이 하나도 없는 곳, 서귀포. 그 어디로 돌아가기 직전 모든 흔적을 지우며 잠시 머무는 장소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희한한 나무를 보자고 찾아간 서귀포 근처 어느 포구의 한적한 골목 식당. 손바닥 선인장만 한 정원과 주황색 양철지붕이 잘 어울렸다. 이 집의 맛과 향을 보증하겠다는 포즈로 서 있는 배롱나무는 아직도 꽃등이 무성하다. 식당을 닮은 길가의 메뉴판에는 그 이름만으로 혀를 씰룩거리게 하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간장덮밥, 성게문어덮밥, 오징어덮밥, 딱새우덮밥, 보말칼국수, 파전. 한편, 배롱나무 아래 임시 입간판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준비한 재료가 소진되어 오후 5시에 다시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 재료의 8할은 식물들일 것이다.


꽃에 입문하고 꽃에 흠뻑 빠지면서 동물과 식물의 관계를 살펴보는 내 생각이 조금 변했다. 나무를 앞에 두고 움직일 줄도 모르는 저 등신들 좀 보라며 키득거렸던 게 그간의 상투적인 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식물이 동물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 굳이 우열을 다툰다면 누가 더 고등하겠느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식물이 자생한다면 동물은 기생한다는 게 엄연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재주 많은 천하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일지라도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아야 하는 것처럼 음식이 외부에서 공급되지 않으면 몸은 폐허가 된다. 우리는 외부에 멱살이 잡힌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보려고 한 희한한 나무는 참식나무에 기생하는 참나무겨우살이였다. 식당 앞 현무암 돌울타리에 자라는 우람한 참식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린 그 나무는 때맞추어 꽃을 제대로 피우고 있다. 기생하는 제 처지를 고려하여 참식나무가 열매 키우기를 기다렸다가 이제야 늦게 꽃을 피우는가 보다.

겨우살이의 이름이 왜 겨우살이인 줄이야 모르겠다. 동서남북에서 왜 하필 그쪽에만 받침이 없을까. 해가 돌아가는 서쪽을 향하여 서서 서귀포의 참나무겨우살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참나무겨우살이, 겨우살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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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박명이다. 여기는 백두산의 서파로 오르는 산중 휴게소이다. 하룻밤일지언정 운 좋게 백두산의 주인이 되었다. 별들도 계단처럼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밝기에 따라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중. 마침내 1442개의 계단을 올랐다. 늘 만나는 해이지만 제대로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는 태양이 멀리 자암봉과 쌍무지개봉 사이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움푹 꺼진 천지로 내리닫는 급한 경사에 핀 바위구절초. 가장 먼저 오늘의 햇살에 얼굴을 씻는 생명이다. 해가 뜨면서 세상은 밝아졌다지만 그만큼 세상은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태다. 어둠이 깨진 상태가 지나고 한낮이면 지독한 땡볕에 시달려야 한다. 지금은 온순하기 짝이 없는 햇살이 금세 털이 빳빳한 짐승처럼 돌변해서 세상을 찔러댈 것이다. 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텅 빈 광장에서 햇빛을 쬐었다. 이 무량한 자원은 장엄한 백두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자꾸 손이 오므라졌다. 그냥 흘러 보내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나의 손은 구부러지기가 쉬웠으니 포클레인처럼 햇빛을 어디에서고 움푹 퍼 담는 버릇 하나를 백두산에서 얻었다!

이상은 지난여름 백두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적은 소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50일 후, 나의 시선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머문 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분은 손으로 천지물을 떠서 입안으로 들여놓기도 하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물맛을 보기 위해 아니 그러고는 못 배겼으리라.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건 앞만 보고, 겉만 보고, 부분만을 본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행위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때 영접한 천지일출이 개인적으로 감격스러운 일이긴 해도 이런 본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맞잡은 손은 다를 수 있다. 부디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으로 두루 원만한 결과를 맺으시기를! 맞잡고 치켜든 두 정상의 손 뒤 어디쯤은 내가 정성스럽게 바라본, 지금도 눈에 밟히는 바위구절초가 있던 자리이다. 장군봉에는 무슨 꽃이 피어 있을까. 천지의 첫 햇살에 얼굴을 씻으며 웃던 백두산 바위구절초의 근황이 몹시 궁금해졌다. 바위구절초,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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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방태산에 가면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말이 늘 머리에 떠오른다. 방태산의 지형은 마치 솥 같아서 움푹 꺼진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솥의 테두리 같은 능선을 걸어 원점회귀하면 됩니다. 내가 ‘솥산’이라는 뜻의 부산(釜山) 출신이라는 것과 뭐 상관있으랴만 솥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환기력이 있다. 오늘은 그 방태산을 세번째 오르는 길. 숭늉으로 말갛게 씻긴 솥단지의 한 사면을 기어오르듯 녹음이 울울하게 흘러넘치는 골짜기를 훑어오를 때 문득 시 한 구절을 소환해본다. “…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허수경) 독일에서 외롭게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시인에게까지 생각이 미칠 무렵 한 익숙한 광경을 만났다. 발바닥을 폭신하게 만들어주고 두리번거리는 눈길을 편하게 받아주는 전방의 풍경. 그건 바위도 아니고 모래도 아닌 무른 암석들이 만들어주는 길이 아닌가. 그 길은 맞춤하게 좁고, 좁아서 잘록하고, 그래서 휘어져 그 어디론가 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이런 길은 혼자 가는 게 좋다. 일행에서 뒤떨어져 마음껏 자빠져서 손바닥만 한 꽃사진을 찍었다.

모래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저 무른 암석을 내 고향에서는 ‘썩박돌’이라 했다. 돌 같기는 했지만 손으로 짚으면 부스스 흘러내리기도 하는 푸석푸석한 알갱이들. 얼핏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암석 같은 질감이 바로 이 돌 아닌 돌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정다운 썩박돌들. 때마침 알맞게 정금나무가 있고 산앵도나무도 있다. 어린 시절 소먹이 하러 갔을 때 참 익숙하고 친하게 맞닥뜨린 나무들이다. 신맛의 열매는 이름만 떠올려도 침이 흥건해진다.

나를 자빠뜨리며 여러 생각을 발굴하게 만든 건 단풍취였다. 산나물로 많이 먹는 취 종류 중에서 단풍잎을 닮아 그런 이름을 가졌다. 이제 그런 이름을 가졌기에 더욱 아름다운 단풍취. 매미소리는 곧 끊기겠지만 내년에도 봄은 온다. 풋향기 오를 때 허벅지에 솥단지 끼고 단풍취 한 장 뜯어서 쌈싸먹어 볼까. 입에서 단풍, 단풍이라는 소리가 나더라고 공갈이라도 쳐볼까. 단풍취,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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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가을, 겨울이 겨울, 봄에 봄, 여름은 여름. 멀리 산을 보면 젓가락 하나 꽂을 만큼의 빈틈도 없이 계절이 꽉 들어찼다. 자연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스스로 저의 길을 이루어나간다. 제 도리를 다하는 자연은 어쩌면 저리도 성실한가. 그럴 때 저 천하의 질서에 탄복하면서 자사(子思)의 <중용>에 대해 궁리해 본다.

올챙이와 개구리, 줄기 같은 대벌레, 뽕나무에 상황버섯, 쥐다래는 쥐다래. 가까이 산속으로 들면 어쩌면 이토록 자연은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한가. 그럴 때 이 위대한 질문을 떠올리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호출해 본다.

그제는 제주도로 꽃산행을 갔다. 아침의 피곤을 털고 일어나 바깥을 보니 내 어찌 할 수 없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비온 뒤 죽순처럼 떠오른 생각 하나. 중용은 두 개의 동사가 결합한 단어라고 한다. 중(中)은 가운데라기보다는 적중하다라는 말이다. 용(庸)은 그 상태를 떳떳하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때에 맞게 적중한 상태를 항상 유지해 나가는 경지를 이르는 게 중용이다. 산에 가면 알 수 있다. 식물은 최선의 노력으로 때맞추어 꽃을 피운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그 꽃을 건사하려고 한다. 꽃이야말로 내 눈앞의 생생한 중용이겠다!

모처럼 내리는 비 그칠 줄을 몰라 비를 맞는 수밖에 없었다. 비옷을 입고 비한테 흠씬 두들겨 맞으며 한라산에 들어갔다. 거린사슴 근처 둘레길에서 만난 한라천마*. 어디로 가다가 잠시 쉬는 두꺼비처럼 묵직하게 있다. 저 두꺼비를 대신할 두꺼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다가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한라천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한라천마 : 낙엽수림 아래 썩은 식물체에 기생하며 자라는 부생식물로 타원형의 덩이줄기가 있고 줄기는 붉은색이 도는 갈색으로 높이 10㎝ 정도 자란다. 잎은 비늘 같으며 여러 개 달린다. 꽃은 9~10월 줄기 끝에 2~5개가 총상꽃차례로 밑을 향해 달린다.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드물게 자생하며 개체수가 매우 적다. -국립수목원의 <한국의 희귀식물>에서 인용함.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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