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산에 갔다 내려올 때 외딴 동네에서 빈집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인적 끊긴 빈집은 오랜 시간 홀로 견딘 자취도 아주 늙었다. 내려앉는 지붕 아래 온기 없는 방. 마당은 시무룩한 풀들의 차지다. 비딱한 마당 입구에서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자가 있으니 수도다. 나는 수도꼭지를 보면 틀고 싶어진다. 과연 물은 나올까. 낮은 기대로 손잡이를 돌리면, 놀라워라, 물이 나온다! 수도의 목구멍까지 진출한 뒤 하염없이 대기하다 어렵게 지나가던 이를 불러 콸콸콸 쏟아지는 물. 마른 땅 시든 풀잎을 적시고 힐끗 뒤돌아보며 달아나는 물을 보며 마이크 앞의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지금 어떤 종류의 말을 입에서 꺼내 세상으로 흘려보내고 있는가.

설경(舌耕)이란 말이 있다. ‘강연이나 변호 따위와 같이 말을 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음’이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이미 배운 바 있으니 혀로 농사짓는다는 뜻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오늘도 컴퓨터 모니터 안을 쏘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밀봉한 봉투처럼 살고 싶었는데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그만 너덜너덜해진 쏘가리의 입이 된 것만 같다. 자극적인 미끼를 던진 제목에 낚이기가 여러 번이다. 눈만 버린 사진, 생각을 어지럽히는 말이나 글도 많다. 글 읽고 나서는 대개 글쓴이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그들의 빙그레 웃는 얼굴에서 빈집의 수도꼭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 입술에 걸린 낚싯바늘 같은 제목과 글들과 함께.  

요즘 산에 가면 제비꽃이 많다. 종류도 다양한 제비꽃 하나 없다면 그 산은 이미 빈집처럼 허물어지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중 낚시제비꽃은 남쪽 지방에 흔하다. 그제 부산의 꽃동무께서 앞산에서 찍었다며 보내주어 옛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땅에서 바로 꽃줄기가 올라오고 낚싯바늘처럼 고개가 바짝 구부러지는 낚시제비꽃. 빈집에서 물을 참고 있는 수도처럼 비탈에서 불쑥 솟은 가느다란 꽃대와 그 끝의 묵묵한 꽃잎. 낚시제비꽃,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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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 급한 걸음을 옮기는데 손바닥만 한 사무실 화단에 탁 걸리는 게 있다. 하늘에서 추락한 구름일 리는 없겠고 웬 눈뭉치인가 싶었다. 우수 경칩을 지난 지가 언제인가. 눈에게 눈이 깜빡 속았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다시 보니 하얀 꽃이다. 그간 내 몰랐을 뿐 오늘 갑자기 핀 건 아니었다. 벌써 뭉개지는 것도 있으니 세상 구경한 지 여러 날 되는 미선나무의 꽃송이들. 대견한 미선나무 꽃잎에 무작스럽게 코를 들이대니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이름에서 벌써 우람한 느티나무를 품고 있는 괴산은 과연 나무의 고장다웠다. 모텔의 어두컴컴한 복도는 물론 식당의 자투리땅마다 미선나무가 있어 은은한 향을 풍겼다. 중학교 어느 교과서에서 배운 이래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던 미선나무. 열매가 부채 모양을 닮아서 유래한 저 미선이라는 이름은 나무를 지나 사람으로까지 쉽게 연결된다. 축제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이름이 미선인 모든 분들께 미선나무 묘목을 선물하였다. 미선씨랑 동행할걸, 여운을 삼키며 어린 묘목을 업고 와 화분에 심었다. 미선나무에 얽힌 다소 싱거운 이야기를 어느 술자리에서 했더니 강화도에서 나무와 함께 나무 속에서 나무 같은 생활을 가꾸는 분이 선뜻 마음을 내주셨다. 우리집 정원의 미선이 하나 시집보내 드릴게요. 

무언가 큰 위로가 필요한 이 시절에 눈을 깜짝 놀래키면서 나에게 사정없이 달려든 게 바로 강화도 출신의 저 미선나무였다. 잠시 소홀했던 사무실의 화분도 확인해 보았다. 괴산의 어린 미선도 키가 훌쩍 자라 통통해진 겨드랑이마다 잎을 꼬박꼬박 내놓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새 가지를 만져보면 나무젓가락처럼 네모진 특징이 뚜렷하다. 내년에는 꽃도 피울 것이란 즐거운 예감이다.

어수선한 경자년의 봄. 꽃은 당장의 치료약은 아니겠지만 길게 보면 보약 이상이다. 괴산댁과 강화댁을 오가는 벌이라도 되는 양 나는 화단과 화분을 분주히 오르내리며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미선나무 곁에서 미선씨와 함께!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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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꽃산행 가서 아침을 때울 때 콩나물국밥은 흔한 메뉴 중의 하나다. 지역색이 물씬한 식당들은 그릇도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가격은 비슷하고 모두 콩나물을 듬뿍 넣어준다. 구례공영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첫 국물을 뜨자 혀가 장구를 쳤다. 이제껏 먹은 것 중 최고라고 덕담을 건넸더니 뿌듯한 기분을 감추지 않으셨다. 그 바람에 덩달아 즐거워지며 맛에 풍미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소라도 되어 우둑우둑 여물 씹는 기분으로 먹으면 더욱 좋아지는 콩나물국밥. 이번에도 턱밑에서 워낭소리 울리며 마지막 국물까지 핥아먹었다.

순천 외곽의 상검마을을 지날 때 그간 잊고 지냈으나 내 기억의 골짜기에 오래 달착지근하게 붙어 있던 냄새가 났다. 그것은 마을 끝에 있는 축사에서 소와 송아지 일가가 나에게 한 움큼 선물하는 것이었다. 아침의 그 통통했던 콩나물 줄기를 다시 꺼내 되새김질하면서 축사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상검마을 골짜기는 봄꽃들의 잔치판이었다. 꿩의바람꽃, 얼레지, 만주바람꽃, 현호색이 활짝 피었다. 골짜기가 깊어서 꽃들의 씨앗이 무척 굵었다. 꼴을 많이 베어 망태가 무겁듯 좋은 사진을 흡족하게 찍어 카메라도 무척 무거워졌나. 흔들흔들 내려오는 길. 소들의 집 앞에 다시 섰다. 식구들이 제법 되는 대가족이다. 이름이 따로 없기에 그저 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놈! 으로 통하는 소의 식구들.

갇혀 있는 건 소만일까.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처럼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들. 소들도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았다. 숫제 웬 놈이냐며 싱숭생숭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소는 무슨 전해줄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을 씰룩거리기도 한다. 그이들의 사전에 저 낮은 신음밖에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나를 지나 소들이 늘 바라보는 곳으로 눈을 돌린다. 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늙은 소에서 송아지까지, 소들의 시선이 한결같이 모이는 곳이 있다. 매화가 잔뜩 피어 있는 밭 가, 그 밭 사이로 말라버린 개울, 그 건너 저편, 피안의 언덕인 듯 봄햇살이 자글자글 끓고 있는 아늑한 무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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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장엄한 선언문처럼 <동의보감>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영귀한 존재이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의 형상을 닮은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기침 안 하기도 힘들지만 주말을 지붕 아래에서 공글리기도 참 어렵다. 믿을 건 자유로운 공기 속의 계곡과 들판이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길을 나설 때 <동의보감>의 저 첫대목이 떠오르는 건 오늘 보러 가는 꽃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다.

봄은 아래에서부터 온다. 천하를 물큰하게 녹이며 나오는 꽃들. 텔레비전, 휴대폰 따위에 꽂혀 있던 시선을 아래로 구부려 바로 발밑을 보라고 꽃은 바닥에서 피어난다. 까맣게 잊고 지낸 찬란한 둘레를 한번이라도 살펴보라며 봄은 땅을 밀어올린다. 봄나물에 입맛을 다시는 요즘 눈으로 드는 꽃 하나를 들라면 단연 동강할미꽃(사진)이다. 무덤가의 할미꽃은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교를 맺은 꽃이다.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그 꽃과는 달리 동강할미꽃은 사는 곳부터가 남다르다. 석회암 지대의 정선이나 영월, 그중에서도 아득한 바위틈에 간신히 뿌리를 내린다. 동강에 드리워진 아득한 뼝대에 고개를 내민 꽃. 보통의 야생화들이 저를 낳아준 고향을 그리워하듯 아래를 향하고 있다면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향하는 게 특징이다.

몇 굽이를 지나 드디어 만난 올해의 동강할미꽃. 밤낮없이 흘러가는 동강을 귓전에 꽂고 아득한 바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열리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꽃. 작년의 묵은 잎들을 수염처럼 수북하게 달고 있는 동강할미꽃에서 단군할아버지의 모습을 찾는 건 그리 무리한 상상도 아니겠다. 내친김에 나이를 모르겠는 바위의 침묵을 짚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나의 오른눈은 태양과, 왼눈은 달과 연결된다. 하늘에 구름이 있듯 얼굴에는 보조개가 있다. 하늘이 천둥과 번개를 부리듯 사람은 기침과 재채기를 할 권리가 있다. 언젠가 하늘에 대고 마음껏 기침하고 재채기하는 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동강할미꽃.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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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가뭄의 백운산 골짜기를 지나간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흥건한 가운데 생강나무 꽃송이가 꿈틀거린다. 가벼운 봄 흥분을 이기지 못해 야호, 소리를 질렀다. 아뿔싸, 겨울 기운이 낭자한 곳에서의 메아리는 그만큼 날카롭다. 바위를 굴러 떨어뜨리는 작은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 우르르 쏟아지는 돌들. 이 와중에 누가 소리를 질렀느냐, 왜 고함을 쳐서 산봉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느냐를 따지는 건 이 급박한 사태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그건 소리에 소리를 더해 바위를 더 부를 뿐이다. 나중 사태가 수습되고 난 뒤에 물어도 늦지 않다. 엎질러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얼른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뭣이 더 중하단 말인가.

물론 백운산을 오르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칠족령 고개를 넘으며 생각을 더해 나갈 때 슬그머니 떠오르는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나라에서 추위 내기 대회가 열렸단다. 어느 마을에선 겨울에 불이 언다고 한다. 그 모양이 활짝 핀 꽃 같아서 집 안에 들여놓기도 한단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누가 나선다. 추워도 너무 추워 말마저 언단다. 입에서 나온 말들이 영하에서 그대로 얼어버린다니 말 다한 셈. 그래서 봄이 되면 온 동네가 시끄러워서 죽겠다나 뭐라나. 

말이야말로 참 무서운 질병이겠구나, 생각하면서 골짜기를 빠져나오니 동강이다. 미끈한 강, 튼튼한 강. 형님처럼 믿음직한 강,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강. 이 강도 얼마 전에는 꽝꽝 얼었다. 물이 바닥에서부터 언다면 물고기는 겨우내 어디에서 살 방도를 찾겠는가. 물은 바깥에서부터 얼어 길쭉한 방을 만들어 준다. 덕분에 물고기는 얼음을 이불처럼 덮는다. 이제는 모두 풀려났다. 물도 풀렸고, 물소리도 풀려났다. 물고기도 수척해진 몸을 풀고 있겠지. 아득한 뼝대가 발을 담그는 강가에 갯버들이 있다. 나에겐 봄의 한 지표가 되는 나무이다. 이 강에서 겨울에 벌어진 일을 모두 기억하는 나무. 우람히 흐르는 강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봄기운을 잔뜩 짊어진 갯버들. 애벌레처럼 올해의 꽃이 꿈틀거리는 갯버들(사진)에 최근의 시름을 얹어두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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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이라고 하면 곧장 쌀밥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한탄강, 겨울에는 두루미의 고장이다. 나의 경우 그 사이에 절 이름 하나가 슬쩍 끼어들기도 한다. 얼음 트레킹,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관찰 등 몇 번의 철원 여행에서 백마고지, 노동당사는 둘러보았지만 그 아름답다는 절을 이정표에서 확인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고대산 지나서 철원의 경계에 들어서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절이라는 곳은 저물 무렵에 가야 더욱 특별한 맛이 나는 법이다. 철원에서 저녁을 맞이했으니 방향은 딱 한 곳으로 정해졌다. 길 위에서의 바쁜 마음을 추슬러 이번에는 곧장 그 절로 들이닥쳤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아담한 절이 바로 나타났다. 도피안사(到彼岸寺)는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며, 통일신라 경문왕 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연혁에 비해 너무나 소박한 규모다. 완만한 경사길을 오르며 오른편을 주목하니 잎은 없고 열매가 모두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다. 히어리, 줄댕강나무, 분꽃나무 등 모두 짱짱한 나무들이 아닌가. 나무수국은 작년 꽃이 미라처럼 아직도 늠름하기만 하다. 하나하나 짚어나가는데 야생화 냄새도 난다. 즉석에서 알아보니, 이곳은 나무들 말고 야생화로도 한 끗발 한다. 노루귀, 복수초는 물론 깽깽이풀, 삼지구엽초가 풍성하단다. 대적광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종각 옆의 우람한 산뽕나무를 우러러보는데 처사님이 저녁 공양을 하라시는 게 아닌가.

소박한 밥상. 수제비와 함께 철원쌀밥을 주신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끝의 침묵을 깨고 결국 꽃 이야기를 했다. 도피안사에 계시는 분들은 법력뿐만 아니라 나무와 꽃에 대한 공력이 보통 분들이 아니었다. 앞서 거론한 이름과 함께하는 식탁이 아연 꽃들의 야단법석(野壇法席)! 깊숙이 절하고 내려오는데 날은 어둑해지고, 나무들도 어둠의 이부자리를 깔려고 한다. 절에 왔다가 뜻밖의 거룩한 끼니는 물론 꽃에 대한 이야기로 호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일주문을 빠져나오다가 짚이는 데가 있어 잠깐 차를 세웠다. 비로소 제대로 들어오는 산의 이름. 절을 품고 꽃을 여는 화개산(花開山)!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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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빙하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터전을 잃고 몸이 홀쭉해진 북극곰 사진을  보았다. 먹이를 찾아 홀로 방황하는 흰곰. 점점 줄어드는 빙하의 면적이 곰의 발목을 점점 올가미처럼 죄는 것 같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그 처지를 한반도에도 적용시켜 본다. 겨울에도 적설량, 눈 오는 일수가 적어진다. 무엇보다도 눈 쌓인 면적이 졸아든다. 강원도로 가서야 겨우 제대로 된 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다간 나의 겨울 정신도 북극곰의 육체처럼 핼쑥해지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

퍽이나 다행스럽게 최근 눈 소식이 들렸다. 심설산행을 도모하러 백두대간의 마산봉-대간령 구간을 걸었다. 진부령 입구 흘리에서 스패치,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모처럼 쓸모를 만난 장비들이 덩달아 흥분하는 것 같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행을 천왕봉에서 출발했더라면 여기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구간이다. 마산봉 조금 지나 병풍바위에 이르니 눈앞이 장관이다. 멀리 아득한 곳에 원시의 바깥으로 넘어가는 입구처럼 향로봉이 아스랗다. 겨울을 앓는 산하가 붕대라도 감은 듯 전모가 훤히 드러난다. 시린 눈을 달래며 시선을 돌리면 털진달래 옆에 따뜻한 안내판이 있다. “(…) 봄이면 주위로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피어나고 여름이면 산의 푸름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고 병풍바위와 산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과 운해가 산에 끼면 마치 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들어 훨훨 타다가 연기를 뿜어 올리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인적 드문 한겨울 산중에서 문자로나마 봄, 여름, 가을을 만나 얼었던 마음의 한 조각을 데웠다. 털진달래는 주로 고산지대에 살고 잎에 털이 많다. 꽃보다 먼저 잎을 틔울 준비를 하며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털진달래. 바위틈에 야물게 어울린 털진달래 위로 눈이 내린다. 눈은 공중을 꼬집으며 내려와 차렷! 자세로 선다. 하늘이 평소 무어라 말은 안 하지만 이렇게 가끔 부드러운 말씀도 내려주는 것. 털진달래 위로 쌓이는 무언의 흰 말씀을 오래오래 경청했다. 털진달래,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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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율시, 오언절구, 사자성어를 생각해 본다. 팽나무 씨앗에 팽나무의 모든 미래가 온축되듯 한자에는 한 글자 너머의 뜻이 깊이 쌓인다. 세 글자의 단어도 있다. 어느 철학책에서 만난 ‘단독자’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새겨지는 말이다. 지금 나에게 와닿는 말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광합성’이다. 산에 다니면서 식물에 대한 궁리 끝에 길어 올린 것이다. 이 세상을 먹여 살리는 밑바탕이 바로 저 세 글자에서 비롯되지 않겠는가.

오래 묵혀둔 숙제를 풀려고 한국고전번역원에 왔다. 뒤늦게 고전에 입문하려고 해보지만 굳어진 머리와 고드름처럼 자란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맹자의 한 대목에서는 천하에서 공히 존중하는 셋 중의 하나로 나이를 들기도 하지만 이게 결코 자랑은 아니다. 어차피 홀로 걷는 길, 또 한번의 결기가 필요해진 나는 ‘단독자’라는 말을 불러내야 했다. 번역원의 소식지인 ‘고전사계(古典四季)’를 뒤적이다가 새로운 말 하나를 얻어가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동무해준 건 멀리 북한산이었다. 되짚어보니 불광사에서 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지척에 있다. 

고전사계에서 얻은 말은 ‘화신풍(花信風)’이다. 소한부터 곡우까지의 스물네 번 꽃소식을 전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봄이 왔다고 그냥 봄은 아니다. 꽃이 피고, 나무가 옷을 갈아입고, 훈풍이 분다고 도래하는 봄도 아닐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훈훈한 눈길이 있어야 비로소 봄은 완성되는 것.  

논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너희들은 어째서 詩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물정을 살필 수 있게 하며,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게 하고, (…)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아직 눈에 띄는 건 없지만 곧 흙이 피워올리는 한 편의 시처럼 꽃들이 얼굴을 내밀 것이다.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를 벌어지게 할수록 올해는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 꽃을 많이 보고 시도 많이 읽어야겠다, 자연과의 접촉 면적을 최대한 늘려야겠다고 새삼 결심해 보는 스산한 오후.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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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의 한철 출몰처럼 사이클이 매우 짧은 영화판에서 점점 더할 나위가 없는 새로운 경지를 밟아가는 <기생충>이 개봉하기 전 공개한 시놉시스를 보면서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었다. 봉준호의 영화는 가족을 다루기는 했으되 카프카의 소설과는 전혀 결이 달랐다. 가족과 기생충을 연결했던 내 어설픈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른바 사회적 계급을 건드린 영화는 가족들끼리의 소외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 간의 싸움이었다.

최근 몇 주간 집 안에 스스로 발목을 가뒀다. 오래 묵혀둔 숙제를 거창한 핑계로 삼았다. 산에 못 가니 자꾸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좀 모르고 살아도 되는데 어쩌자고 나의 손바닥은 이리도 복잡한가. 그 좁은 면적 안으로 세상만사가 집결하고 그것은 이내 마음속 여러 갈피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근거 없는 불안과 지나친 걱정이 흥건해지는 것이다.

즐비한 나무 대신 이런저런 뉴스는 결이 아주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가족이 있다. 우한의 교포가 입국하기까지의 국내의 싸늘한 반응과 그 이후의 훈훈한 대응이 요동친다. 가족만 먼저 보내고 돌아서는 우한 영사의 눈물의 편지가 있는가 하면 한 교민의 이런 인터뷰도 있다. “남기로 했습니다. 여기 가족이 있고, 중국인 아내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귀국 여부를 물어 왔지만, 귀국을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양력은 물론 음력으로 이제는 완전히 경자년에 들었다. 새 달력도 벌써 한 장만큼 얇아졌다. 입춘이구나, 새삼 중얼거리면서 복잡한 심사도 달랠 겸 창가의 화분 하나를 본다. 작년 고향에 벌초 갔을 때, 내가 뛰놀던 논두렁의 흙을 한 삽 퍼서 담아둔 화분이다. 그냥 무심코 지나친 곳에 의외의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특히 흔하디흔한 방동사니의 매력에 빠져 퍼온 것이다. 내 알량한 호기심을 다독이며 그저 물만 주었을 뿐인데 논두렁 화분의 흙은 지금 들끓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손톱만 한 풀들이 꿈틀꿈틀 올라오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흙에 발을 묻고 사는 것들에 마음을 포개면서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펼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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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한문에 눈을 떴다. 한자하고 한문은 또 다른 세계다. 한자는 한 글자가 하나의 정부(政府)다.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뜻만 고정되지 않고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는다. 같은 한자에 상반되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하다. 이인삼각(二人三脚)처럼 뒤뚱뒤뚱 걸어가는 세 글자 이하의 단어에 산술적으로 서너 자 더했을 뿐인데 그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도무지 요령부득인 5언절구, 7언율시의 구절들.

옥편을 뒤적거리면서 밤하늘을 자주 생각한다. 갈피마다 흩어진 한자는 저 하늘의 반짝거리는 뭇별을 닮았다. 고래(古來)로부터 숱하게 뿌려진 별 몇 개가 연결되어 별자리는 만들어졌다. 북두칠성, 오리온, 큰곰자리, 전갈자리가 다 그렇다. 한자를 연결해서 구체(具體)와 심오(深奧)를 빚어내는 저 성좌(星座)에 이백과 두보도 걸터앉아 있는 것.

꺼져가는 심지를 돋우면서 밤마다 별을 보고 글을 궁리하다가 낮에도 공중을 보려는 습관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위치하는 곳은 파주출판단지인데 자동차로 출발해 30분 만에 도착하면 서울하고는 영 다른 풍경이다. 평지돌출한 심학산과 서해로 넓어지기 직전의 한강이 넉넉한 세상을 연출하는 것.

우리가 밤낮으로 무엇을 볼 때 전적으로 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고개를 조절하면서 천하의 일부를 조각조각 스스로 편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눈을 깜빡거릴 수는 있어도 시선은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너와 나, 저 오리무중의 사이에 무슨 ‘섬’이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그 ‘섬’에 상륙이 불가능하다. 내리지 않는 눈 걱정이나 하다가 소한, 대한을 엉겁결에 다 보내고 벌써 입춘이 코앞이다. 그 사이에 설날이 끼었다. 까치만큼 좋아라 설날을 기다렸던 게 엊그제였는데, 나는 이제 왜 명절에 시큰둥한 작자가 되었을까. 반성하듯 직진하는 시선을 심학산으로 들어 올리다가 나와 심학산의 사이에 있는 상수리나무 끝에 새삼 시선이 얹혔다. 빈 둥지인 줄 알았는데, 고마워라, 까치 한 마리가 쓸쓸히 날아올랐다. 올해의 설날은 이렇게 겪는가. 산은 아직 정중동, 나는 꽃산행을 준비 중.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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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四時)는 명확하고 지금은 틀림없는 겨울이다.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뺨을 에는 찬바람, 구슬피 우는 철새. 몇 가지 익숙한 풍경이 있지만 그래도 흰 눈이 보자기처럼 세상을 덮어야 비로소 겨울이 완성된다. 그리하여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듯, 우리도 그 흰 천을 뒤집어쓰고 매서운 세계로 날아가는 것. 퍽 불길하다. 올해처럼 이렇게 낡고 닳은 보자기가 있었던가. 

지난주 철원 고대산으로 갈 때, 혹 눈이 있을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꽃을 찾아 남쪽으로 간 적은 허다했지만 일부러 눈을 찾아 북쪽으로 가기는 처음이었다. 응달의 으슥한 골짜기를 지나 능선에 도착하니 눈기운이 완연해졌다. 이윽고 문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발밑에 시장이라도 선 듯 시끌벅적해졌다. 눈 밟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 다정한 소리. 뽀드득뽀드득뽀드득.

모처럼 접촉하는 눈과의 경계에서 특히 생각해 보는 것이 있었다. 오늘 따라 눈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게 아닌가. 삐거덕삐거덕삐거덕. 그것은 가슴 한쪽을 좀 불편하게 긁는 듯 조금 헐거워진 갈비뼈가 내는 소리를 닮았다. 어쩌면 그것은 장도리로 송판에서 굵은 대못을 빼는 소리로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뜬다. 어디로 떠날지도 잘 안다. 모두들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아래로 잠겨 들어가야 한다. 존재하는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 나무가 잎사귀를 살랑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 이는 돌아갈 곳의 근황을 미리 한번 살펴보는 동작들이 아닐까.

지금 나무는 헐벗었고 아직 꽃은 이르다. 어디에서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이곳은 너무 북쪽이다. 오늘은 꽃 대신 돌이다. 돌은 내 무거운 무게를 잠시 맡기려면 궁합을 잘 맞추는 누군가의 은근한 엉덩이에 불과하겠지만 이 세상의 배후를 궁금히 여기고 궁리하면서 바라보면 지하에서 올라온 참신한 얼굴이 된다. 일찍 넘어가는 산중의 해를 가늠하면서 홀로 뒤에 처진 채 누구를 퍽 닮은 돌들과 내가 내는 소리를 실컷 보고 들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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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를 처음 본 건 청와대 뒤 북악산에서였다. 군인들이 지키는 울타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숙연하게 서 있는 나무. 머리를 바싹 깎은 이등병의 군기가 느껴졌다. 벽돌처럼 오와 열을 맞춘 촘촘한 잎들 사이로 정말 쥐의 똥 같은 까만 열매가 몇 개 숨어 있어 제 이름의 연유를 짐작하게 했다. 한번 들으면 쉬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인왕산은 퍽 자주 가는 산이다. 어느 해 여름 땀을 잔뜩 흘리고 출렁출렁 내려왔을 때 국궁터인 황학정의 뒷덜미쯤에서 그 나무를 만났다. 한때 호랑이를 키울 만큼 깊고 무성했으나 이제는 조금 떨떠름해진 인왕산의 녹음. 그래도 잘 단장된 숲에서 마구 뻗어나가지 않고 숨어서 웅크린 채 영리하게 세상을 관조한다는 느낌의 나무. 쥐똥나무는 그런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시절이 수상하고 기후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겨울이라고 눈 한 톨 구경하지 못한 채 이 계절이 지나가는가. 눈 펄펄 내리지 않는 겨울이 매미 소리 하나 없는 여름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 조금의 기미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와 김해 불모산에 들렀다. 아직 그건 기우일세, 안심하라는 듯 바람은 차갑고 산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다. 아직 꽃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바짝 마른 낙엽의 세상이다. 그 자지러지는 소리 속에서 녹색이 눈에 띄었다. 아, 저건 반상록성이라서 마구잡이로 다 떨어지지 않아요. 꽃동무의 말끝에 쥐똥나무가 의젓하게 겨울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처음 보자마자 특이하게 기억했으나 이제껏 제대로 호명을 못해준 쥐똥나무. 오늘 조금 스산한 풍경에서 올해의 간지와 연결되면서 단박에 홀랑 마음을 뺏어간 쥐똥나무. 어쩌면 그간 내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경자년이라고 이제야 이렇게 영리하게 툭 달려드는 것일까. 푸들푸들 고두밥처럼 가지 끝에 촘촘히 달리는 향기로운 꽃들을 떠올리며, 쥐띠해의 첫 산행에서 특별히 반갑게 만난 쥐똥나무를 여기에 적는다. 쥐똥나무,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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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에 보고 듣고 읽은 것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치국은 나라를 다스린다고만 굳건히 알았는데 나라를 치유한다고 새길 수도 있다(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 노자에서 지극히 좋은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를 ‘상,선약수’로 끊어 읽으면 상투적인 말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런 뜻밖의 뜻을 얻을 수도 있다. 윗대가리가 물처럼 잘해야 한다. 덕불고필유린.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풀이가 아주 강고하다. 이 또한 조금 비틀어보면, 덕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더불어 함께하는 덕목이 있다(<이탁오의 논어평>). 마치 불행이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오는 것처럼.

경자년이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올해는 또 무슨 생각이 찾아올까. 강가에 한해살이풀처럼 서서 흘러가는 것을 거저 바라보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득 번개 같은 꾀가 떠올랐다. 한해를 연초에 열고 연말에 닫는 학교로 삼기로 했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좀 분명해지는 듯했다. 간지를 따라서 교명은 경자학교로 명명했다. 올해 크게 할 일도 역시 산을 찾는 것. 가서 나무와 그 너머를 자꾸 짚어보는 일에 매달리기로 했다. 교가도 정했다. 백마야 울지마라.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빼놓지 않고 본 <가요무대>에서 송해 선생이 참 찰지게 부른 노래다. 곡조는 물론 가사가 올해의 나이와 지금의 심사를 잘 대변해주었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거치른 타관 길에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올해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인왕산에 오른다. 내가 나무를 찾아 산으로 드나든 건 인왕산이 시초였다. 말하자면 여기는 내 나무 문명의 발상지다.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정작 인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찔러왔었다. 산의 나무들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귀를 닫고 있다는 낭패감이었다. 저 산꼭대기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인왕산 넘어 첩첩산중으로, 나무들 너머의 곡절을 찾아서 경자학교의 대문을 성큼 출발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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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밋밋하게 짝수로 끝나지 않고 하루가 돌출해 있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기해년 삼백예순다섯 날은 그날로 수렴되어 가고 있다. 등대처럼 반짝거리는 그 마지막 날에 바닷가나 산정으로 가서 일출을 보면서 또 살아갈 날을 가늠해 보고 그에 따른 많은 결심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을 염두에 둔 마지막 주말.

채널의 맛은 돌리기보다는 끄는 데 있다. 뻔하고 빤한 텔레비전을 간단히 처치하고 남한산성을 찾았다. 총각 시절 꽤 자주 찾았던 예전의 정취가 그런대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걷는 길은 더욱 낮고 단단하게 다져졌다. 한 해 한 번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하다. 연말을 기념하여 공중의 말씀 같은 눈발을 기대해 보았지만 하늘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울퉁불퉁 성곽길과 호젓한 오솔길을 번갈아 걸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꿋꿋한 햇살을 받아 소나무 그림자가 내려앉고 그 사이로 내 그림자도 눕는다. 문득 이 고요하면서도 번잡한 숲에서 그림자들끼리는 뭔가 내통하지 않을까, 궁리가 일어났다. 이 세상의 배후는 어딜까, 궁금증도 솟아났다.

남한산성. 파란만장으로 점철된 이 조그만 산중도읍은 서울을 압축하여 옮겨놓은 듯 행궁은 물론 종로도 있고 시구문도 있다. 이윽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소나무와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식수했다는 전나무가 우뚝하다. 너무 늙은 나무들 아래 솔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수어장대(守禦將臺). 기단은 허물어지고 2층 건물은 낡아도 일필휘지는 늠름하기만 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눈썹같이 꿈틀거리는 글씨를 보며 생각해 본다.

한 해가 가는 건 누가 채널을 돌리는 것. 솔방울이 툭, 떨어지는 건 따로 한 세상이 열리는 것. 땅으로 들어가는 솔방울의 전생인 듯 아직 가지에 의연히 달려 있는 솔방울이 불쑥 마음을 치고 들어왔다. 바람에 날리는 송화 가루를 포착해서 자라난 열매. 봉함엽서처럼 씨앗을 간직하느라 입을 앙다문 듯 야무지게 또랑또랑하던 솔방울. 이제 꼭 품고 있던 씨앗을 모두 출가시키고 활짝 벌어진 솔방울들. 그들의 저 활연대오(豁然大悟)가 자꾸자꾸 내 마음을 빼앗아간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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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따뜻하더니 잠깐 맹렬했다가 아차 하는 순간 쌀쌀맞기 그지없는 애인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서해로 퐁당 빠질 때는 언제고, 또다시 꿋꿋하게 떠오른다. 그런 해에게 참 대단하다는 말을 붙여준다면, 그가 매일 펼쳐놓은 좌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게는 수수께끼라는 말이 참 어울릴 것 같다. 삶은 수수께끼. 이 네 글자가 없었더라면 삶이라는 이 난해한 현상을 어떻게 하루인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꺼내어 나를 사방으로 데리고 다니는 다리와 그런 다리의 능력을 이용하여 그 어디로 나를 또 건너게 하는 다리는 이름이 같다. 왜 다리는 다리이고 다리라 하는가. 더러 그런 시시한 궁리도 해가면서 모처럼 부산여행을 겸해 희귀식물조사대에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거문도에서 발견되어 거문도닥나무라고 칭호를 얻은 나무의 서식지인 기장의 어느 해변을 탐사하는 길. 가는 길목에 잠깐 바닷가 절에 들렀다.

대개 절은 다리 한두 개는 건너고 나서야 일주문 통과를 허락한다. 해남의 어느 큰 절의 입구에 피안교가 있다. 다리 건너 불국토로 들어가 절이 마련해 준 그 절절한 불심에 흥건히 젖었다가 다시 피안교를 곱다시 건너야 했다. 나의 아쉬움은 그것이었다. 산으로 들었다가 산에서 나갈 때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다리의 이름은 하나인가. 왜 그대로 피안교인가.

그런 총중에 거문도닥나무 찾으러 가다가 잠깐 들른 기장의 해동용궁사에서 모처럼 기회를 얻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절’답게 용궁으로 들어가듯 해수면 가까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잘록한 문 하나가 있어 속세와 불국토의 경계가 된다. 들어갈 때는 만복문이더니 나올 때는 등룡문이다. 같은 문인데 들어갈 때와 나갈 때 그 이름이 사뭇 다르다. 생명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말을 믿으며 파도의 응원가를 들으며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오르자니 등룡하는 기분? 매일 떠오르는 해도 어쩌면 이런 기분일까! 그런 허튼수작도 해보면서 기장 대변항의 해변에서 거문도닥나무를 마침내 만나 각별하게 오래 쓰다듬은 하루. 거문도닥나무, 팥꽃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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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복

코밑의 수염도 어쩌지 못하는데 저 멀리 늘 떠오르는 해를 어쩔 수 있겠는가. 혁명은커녕 벽지도 못 바꾸고 달력사냥이나 하는 연말이다. 굴뚝으로 들어가는 산타처럼 기해년도 쫄깃하게 수렴되어 이제 그 어떤 잘록한 구멍으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지난주에는 산으로 가던 길을 끊고 삼청동의 사진전으로 갔다. “산속도 속세를 벗어난 선경이요, 도시도 속세 안의 선경”임을 카메라로 포착해내는 이갑철의 “적막강산, 도시징후”. 

꽃산행에 나서 우리 강산을 돌아다니면 마음이 한움큼 뽑혀 나갈 때가 있다. 꽃보러 나왔다가 자연의 사정에 마음을 홀랑 빼앗기는 순간이다. 하늘과 산이 연출하는 ‘저절로 그러함’을 목격하고도 놓친 것을 뒤늦게 줍는 느낌과 함께 내 늑골 안쪽의 골짜기를 오늘에서야 비로소 찾는 듯하다.

한 바가지의 적막과 함께 귀가하여 그간 쏘다니며 찍은 꽃사진을 정리하였다. 나름 귀한 꽃, 좋았던 장면의 우열을 다퉈볼까 싶기도 하였지만, 그건 내가 나한테 할 일은 아니었다. 산에서는 비교급도 최상급도 없다. 올해도 절실하게 많이 배운 식물탐사대 꽃산행에서 만난 성주풀에 마무리를 맡겼다. 

하루에 갈 수 있는 가장 먼 뭍의 하나인 전남 신안의 팔금도. 그 섬의 가장 높은 채일봉으로 가는 길. 넓은 임도 초입의 산기슭에 철분을 함유한 지하수가 번들번들 흘러나왔다. 귀한 풀들이 자라는 조건의 그 질척한 풀밭에 이삭귀개와 노란 꽃잎의 성주풀이 보였다. 우리나라에는 오직 1종만 자생하고 경북 성주에서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은 꽃이다. “동아시아의 열대에서부터 난대의 습한 풀밭에까지 자라는 1년초. 전체에 굳은 털이 있고 뿌리는 적갈색. 잎은 대생하며 잎자루가 없고 끝이 뾰족한 피침형. 꽃은 황색, 원줄기 윗부분의 수상화서에 달린다. 꽃받침은 앞쪽이 얕게 터지며 끝이 뾰족하다. 열매는 삭과이며 타원형, 끝이 뾰족하고 종자에 줄이 있다.”(<대한식물도감>, 이창복)

생명의 흐름에서 잠시 사람으로 나왔듯, 도시도 자연이 잠깐 파견한 곳이다. 제아무리 구별되려고 해도 결국 자연에 포위됐고, 나무들이 내어준 공간에 불과하다. 기해년의 막바지에 운좋게 만났던 성주풀. 일년만 사는 풀이기에 지금 그 자리는 뚝, 흔적도 없겠다. 적막하겠다. 그 작은 몸으로 뾰족한 것투성이인 채, 올해의 내 적막을 완성해 주는 성주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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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짧을수록 좋더라. 버스든 지하철이든 정거장은 시 한 편 읽기에 딱 알맞은 간격이다. 그러니 도로마다에는 가로수와 간판과 더불어 시집도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는 셈이겠다. 그제 아침 출근길의 라디오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연기’가 튀어나왔다.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에 실린 그 시는 마지막 구절이 내가 기억하여 외우는 것과 사뭇 달랐다. 황량과 적막의 차이. 지나간 것이라고 쉽게 관대한 건 아니겠지만 시에 관한 한 나로서는 오늘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

산에 다니면서 꽃도 꽃이지만 꽃이 처한 사정이나 사연에 주목을 해왔다. 몇 해 전 태백산을 다녀오다가 맞닥뜨린 풍경 속에서 대학시절에 만났던 ‘연기’를 다시 만났으니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 이윽고 도시락을 다시 빈 도시락으로 만든 뒤 하산하는 길이었다. 오전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거의 다 내려오자 백단사 근처의 약수암이 나타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요사채가 보이고 뭉클뭉클 피어나는 흰 연기가 공중에 뚜렷했다. 좁은 함석 굴뚝을 빠져나와 하늘의 깊이를 재면서 더욱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흰 연기. 문득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기막힌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약수암에는 호수 대신 작은 개울이 흐르고 물푸레나무, 귀룽나무, 고광나무, 물참대가 줄지어 자란다. 누군가 전지가위로 물참대의 마른 줄기 끝을 조심스레 잘라 함께 공부하였다. “이 물참대의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요!” 과연 물기를 잃고 말라가는 줄기 안에 뻥 뚫린 구멍이 있고 그 구멍 너머를 오래 더듬었던 기억.

출근길에 만난 시 하나가 여러 기억을 소환했다. 연기는 안과 밖을 구별할 줄 아는가 보다. 그러기에 지금 저 멀리 여의도 어느 건물에서 저렇게 기를 쓰고 위로 오르지 않겠는가.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시 한 편이 그려내는 적막한 공간에 젖어들면서 물참대 가지의 빈 구멍을 생각하며 자유로의 빈 구멍 속으로 달려나갔다. 물참대,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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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은 아니지만 ‘심’ 자로 시작하는 심학산 아래 웅크리고 지내면 뜻밖의 일을 겪기도 한다. 새벽 3시에라야 새벽 3시의 생각은 찾아오는 것. 북으로 가던 철새가 고도를 낮추어 퉁소를 연주하는 심야 음악회도 있다. 그렇게 몇 밤을 건넌 뒤 서울로 나오면 어디 먼 고대(古代)로부터 외출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도시는 부황하고 아찔하다. 그제는 몇 가지 볼일을 몰아서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가야 했다. 따뜻한 곳만 따뜻하고 추운 곳은 아주 추운 서울. 무려 20층짜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뒤 사기접시 속의 점심을 먹고 옛날 궁리출판의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처럼 의젓한 인왕산.

서촌의 통인시장 근처 길담서원에 들렀다. 오래전 마음이 허할 때, 이 벽의 책들을 다 읽으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했다가 아주 인상적인 말씀을 들은 바가 있었다.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번에는 무슨 진전된 답을 주실까. 손바닥만 한 정원을 지나고 현관을 들어서자 벽마다 책들이 빼곡하고 한쪽의 한뼘미술관에서는 풍경화가 전시 중이다. 고래(古來)의 공기가 흐르는 듯한 길담서원. 사방의 은은한 문자향을 즐기다 결국 마음속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곧 서울을 떠나신다고요. 공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내년 봄 백제의 고도(古都)에서 답을 듣는 것으로 미루고 때이른 작별인사만 드렸다.

황현산과 김용옥. 두 권의 책을 사고 일어서는데, 학예실장님이 문밖까지 나오셨다. 화단에서의 대화. 이 녹색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네요. 하늘메발톱, 산국, 인동초, 맥문동, 조팝, 찔레, 앵두나무. 한철을 함께한 동무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겨울 문명을 일구려는 꽃밭. 이름을 듣고 보니 아주 쓸쓸하지도 낯설지도 아니했다. 푸석한 토질을 가리키며 능청 늘어진 줄기에 빽빽하게 보랏빛 열매가 달려 있다. 좀작살나무였다. 내 은연중의 질문을 눈치채고 무슨 답을 주시는 게다. 안의 저 책이 아니라 바깥의 이 열매! 공중을 빠져나가는 한 입구처럼 병목현상이 벌어지는 좀작살나무 열매를 보다가 깊숙이 절하고 나의 고대로 얼른 복귀했다. 좀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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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광야’, 이육사)는 한 개결한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그로 인한 영향인가. 저 만주 벌판에서 땅이 아래로 달음박질해서 내려와 남해로 풍덩 뛰어든 게 한반도의 지형이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제주의 한라산(1950m)이 가장 높고 지리산(1915m)이 그다음이고 설악산(1708m)이 막내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생명이 바다에서 온 것처럼 산도 물에서 온 게 아닐까.

‘봄의 꽃 소식은 북상하지만 가을의 단풍 소식은 남하한다’(과학의 한귀퉁이, 김홍표)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래서 강원도의 저 야단스러운 단풍도 남해 근처에 이르러서는 다소 수굿해질 것으로 짐작해 왔다. 이 또한 나태한 내 상식의 등짝을 후려치기에 족한 것이었다.

뜻밖의 나무를 기대하며 찾은 거제도 북병산. 몇 개의 연륙교로 너나들이하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섬은 섬이다. 모든 것을 단단하고 옹골차게 밀집시키는 재주를 섬은 가졌나 보다. 거제의 단풍은 내 짐작을 보기좋게 배반하는 게 아닌가. 공중은 공중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오밀조밀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알록달록하기가 그지없는 섬의 단풍들.

지금 산에 이렇다 할 꽃이 없다고 하나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면 눈에 들어오는 꽃들이 아직도 수북하다. 골무꽃이 싱싱하고, 한라돌쩌귀도 늠름하게 피었다. 아마 이 골짜기가 보유한 마지막 용량일까. 남녘의 꽃들이 이처럼 안간힘을 다하는 것처럼 지금 강원도 어느 인적 없는 심산유곡에서는 매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지도 모를 일…이라고 상상하면서 숲과 덤불을 빠져나오는데 무엇인가 바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 있다.

식물들은 자신의 전부를 몽땅 집어넣은 열매를 가급적 멀리 보내려고 기발한 전략을 동원한다. 바람, 새, 다람쥐를 부르기도 하지만 오늘 나도 모르게 나를 이용하는 건 도깨비바늘이었다. 내가 섬, 단풍을 비롯한 눈앞의 풍경에 감탄하는 사이 내 바지에 슬쩍 들러붙은 도깨비바늘. 다 뗐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미끼였고 집에 와서 보니 정작 튼실한 녀석은 엉덩이에 붙어 서울까지 진출했다. 네가 이겼다! 도깨비바늘,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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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형태를 관찰하면 대개 뿌리-줄기-가지-잎-꽃-열매의 순서다. 제아무리 우람한 팽나무도 두 장의 떡잎에서 시작해서 이 순서를 따른다. 살아 있음을 대표하는 生(생)은 이런 모습을 형용한 글자이다. 지면을 뚫고 나오는 어린잎의 씩씩한 팔뚝이 저 한자에는 배어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동물들의 서글픔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식물들의 의연함에서 그 뜻을 길어온 것이다. 나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인생이라는 말도 한번 가늠해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서슬에 촉발되어 그 덧없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나이 혹은 계절. 

나고 피는 순서는 조금 달라도 대개 꽃보다 잎은 더 멀리 간다. 꽃은 잠깐 피고 잎은 오래 핀다. 지금은 꽃에 하나 꿀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단풍의 시간. 꽃에 취해 좋다고 히히덕거리다가 사무실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산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단풍이다. 꽃 진 자리에 영롱한 열매와 그 옆에 접시처럼 어우러진 단풍잎을 보면서 아, 세월 한번 참 빠르다, 하려니 나는 참 얕고도 얕구나. 

무지와 몽매를 옆구리에 끼고 화살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느끼며 광양 백운산으로 간다. 사람의 한평생 눈 쌓인 진흙에 기러기 잠깐 내려 발자국 남기는 것과도 같고, 무성했던 구름이 순식간에 스러지는 것과도 같다는 옛글을 떠올리며 산 초입의 어느 둑방길에 이르렀다. 비슷한 어깨의 갈대와 억새. 키가 껑충한 갈대와 억새는 門(문)처럼 나란히 서 있고 그 틈을 본다. 둑 건너 자동차 전용도로 위의 차들은 거칠 것이 없다. 세상의 주인인 양 씽씽 달린다. 관광버스, 레미콘차, 이삿짐차, 돼지를 싣고 가는 차, 승용차. 차를 부리나케 쫓아가는 차, 차, 차들. 바람이 불자 벌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갈대와 억새의 문틈 사이로 망아지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각종 차들을 망연히 보았다. ‘사람이 이 천지 사이에 살고 있는 시간이란 마치 준마가 벽의 틈새를 언뜻 지나가듯 순식간’(장자)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바람을 빌려 고개를 끄떡거리는 갈대와 억새.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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