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312건

  1. 2020.01.23 땅거미
  2. 2020.01.16 토끼굴
  3. 2020.01.09 때밀이
  4. 2020.01.02 게릴라 쥐
  5. 2019.12.26 자작자작
  6. 2019.12.19 세밑 덕담
  7. 2019.12.12 거비거비의 프러포즈
  8. 2019.12.05 세상의 눈, 카타추타
  9. 2019.11.21 비밀기지
  10. 2019.11.14 기억 상실
  11. 2019.11.07 월간지 인연
  12. 2019.10.31 자유인
  13. 2019.10.24 밤과 추위
  14. 2019.10.17 영혼이 찾아온 날
  15. 2019.10.14 시인의 근심걱정
  16. 2019.10.04 파리의 불심
  17. 2019.09.26 미럭 곰 차두
  18. 2019.09.19 싹둑싹둑 싹둑이
  19. 2019.09.16 명절 국수
  20. 2019.09.05 천사들의 합창

캐나다 북쪽 원주민 검은 발족의 추장 까마귀 발의 노래다. “삶은 이와 같은 거라네. 어둔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 겨울 한복판에 들소가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 푸른 초원을 달려가다가 땅거미 지는 노을에 사라져가는 작은 그림자.” 들소의 코에서 훅훅 나오는 콧김이 떠오른다. 그리고 땅거미. 거대한 평지 대륙에 드리운 어스름이 그립다.

저녁의 느낌은 늘 찌릿하다. 가수 김목인은 말했다. “밤이 오기 전 하늘은 살짝 밝아져 있었다. 슈퍼 앞 평상의 아저씨는 맥주 한 컵을 들고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타이르는 소리. 저녁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다세대주택 골목 어딘가 드리운 저녁. 옥상에서 보이는 건너 공터의 땅거미. 개가 누런 똥을 한 덩어리 누고 뒷발질을 해대는 소리. 아직도 골목을 누비는 두부장수와 칼갈이 아저씨. 창틀과 방충망을 고치는 용달 트럭의 반복되는 스피커 소리. 장 자크 상페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달음질치며 내뱉는 소리들. 명절이 다가오면 떡 방앗간이 분주해지지. 세상이 암만 빵빵 빵집만 생겨나도 변두리는 아직 떡떡, 찰떡 시루떡 좋아하는 이들이 살지. 땅거미가 지면 검은 깨떡이 생각난다. 예전엔,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 외치고 다니던 고물상 엿장수가 해가 저물기 전에 떨이로 다 팔고, 엿장수 맘대로 가위질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엿장수의 노래가 구성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 에구구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는 할매는 저녁밥을 짓는다. 혼자 밥 먹은 지도 수수십년은 된 거 같아. 물을 말아 먹는 밥에 김치 한 조각. 호물호물 씹지도 않고 삼킨다. 이 동네에서는 삼킨다고 안 하고 생킨다고 해. 물도 마신다가 아니라 생킨다고 하고. 어둠을 삼키는 땅거미. 현대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어스름 시간을 못 느끼고 산다. 푸른 들판을 달리는 땅거미. 내 작은 그림자. 또 당신이라는 인생. 새해에도 부디 평안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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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 토끼를 따라가는 샛강 어귀나 노출된 사암층 어디.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슬오슬 춥다. 토끼털처럼 따스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서야 한다. 토끼 똥이 보이면 근처에 분명히 토끼굴이 있을 거다. 토끼를 뒤에서 부르면 휙 돌아보는 까닭은 눈이 뒤에 없기 때문. 시시한 수수께끼.

시베리아 하고도 바이칼 호수에 얼음이 땡땡 얼었겠다. 용기가 대단한 토끼는 앙가라강 얼음강을 건너기도 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얼음호수를 내다보면서 꼭 토끼굴처럼 생긴 조그만 사우나 공간에 들어가 ‘바냐’를 즐긴다. 나도 러시아에 가면 종종 바냐를 해보곤 한다. 자작나무 잎사귀로 등때기와 허벅지를 자근자근 때리면서 더운 물을 뿌린다. 바냐란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 한 집에서 자작나무를 쪼개 불을 때고 바냐에 초대를 하면 주민들이 보드카와 빵과 청어조림을 들고 모이게 되는데, 어지간한 마을 대소사는 이 바냐 시간에 결정이 다 된다.

달구어진 돌덩이를 바라보며 토끼처럼 빨간 눈으로 이눔의 스키 저눔의 스키 수다를 떨어댄다. 뒤에다가 스키만 집어넣으면 무조건 러시아말 중급. 20도 30도 40도짜리 술을 나눠 마신다. 그러다보면 ‘졸도’할 수도 있다. 토끼굴 바냐를 마치고 나와 횡단열차에 오르면 출출하여 도시락 라면을 사먹게 된다. 러시아에서 ‘도시락’이라는 상표의 네모진 컵라면은 그냥 라면을 뜻하는 대명사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 도시락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기차는 24시간 따뜻한 물을 제공한다. 온수를 붓고 기다리면서 젓가락 대신 포크를 만지작거린다. 토끼가 배춧잎을 조근조근 씹듯이 라면줄기를 후루룩 쩝~ 하고서 밖을 살짝 내다보면 하얀 눈이 삽으로 퍼서 뿌리듯 내려싼다. ‘눈에 맞아서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다가 마구마구 내린다. “펄펄 눈이 옵니다, 마구마구 눈이 옵니다….” 토끼굴 같은 기차칸에서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하며 어디론가 저마다들 흘러서 간다. 당신은 시방 어디로 가는 길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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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사우나 시설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다. 하지만 산골 누옥이라도 욕실이 일단 잘돼 있고, 같이 사우나 갈 친구도 없어 온천을 소 닭 보듯 하고 산다. 

아부지 생일이라며 아들이 백만년 만에 찾아왔다. 얼치기 실력으로 미역국을 끓이더니 둘이 온천에도 가잔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홀딱 벗고 노천탕에 앉아 비 구경을 했다. 장성한 아이랑 간만에 행복한 순간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멸치국수에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아이에게 옛날 목욕탕 이야길 해줬더니 배를 쥐고 웃는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서로 부탁하여 등의 때를 밀곤 했던 기억들을 들려주었다. ‘때밀이 세신사’에게 맡기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냔다. 

돈을 아끼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 사이 정이 많았던 시절. 모두가 때밀이가 되어 등에 낀 때를 닦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대를 우애롭게 건너왔다.

경상도 할매들이 교회 앞 평상에 앉아 이런 이야길 했단다. “예수가 죽었다카든데.” “와 죽었다카드나?” “대못이 박혀가 그래 되따 안카드나.” “글마 머리 풀고 다닐 때 내 알아봤데이.” 지나던 할매가 앉더니 “예수가 누꼬?” “며늘아가 아침저녁으로 아부지 아부지 캐사이 바깥사돈 아니겠나.” “보이소. 글마 거지다. 손발에 때가 껌디이같이 끼고, 산발하고 다니질 않트나.”

예수도 때를 밀려고 자주 물가로 나갔다. 늙은 까마귀가 우는 물가에는 때밀이가 서 있었을 게다. 인생은 머잖아 염사가 기다리고 있어 시신을 정성껏 닦아준다. 

중국 허난성의 소설가 옌렌커의 소설 &lt;연월일&gt;을 기억한다.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는 같이 오줌을 누고 몸을 닦는다. 늑대와 대치하면서 옥수수 밭을 지키다가 끝내 눈을 감는다. 그들의 죽음은 매우 엄숙했다. 개와 정이 들어 함께하다가 따로따로 죽는 장면은 서럽고도 쓸쓸했다. 마지막으로 눈곱을 떼어주면서 할아버지가 우는 소리 같은 비바람소리. 

오늘은 때가 낀 세상을 씻어내는 바람과 빗소리가 요란한 하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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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쥐가 난다고 할 때 쥐가 있고 굴을 파서 드나드는 긴 꼬리 들쥐가 있다. 다람쥐나 박쥐는 쥐하고는 한패가 아니지만 도리 없이 이름표를 붙이고 산다. 물속에도 쥐가 사는데 쥐포를 해서 먹는 쥐치가 그것이다. 주둥이가 쥐처럼 길어서 아마 쥐를 갖다가 붙인 거 같다.

 

한번은 목사관 내 처소 다락에 다글다글 쥐가 살았다. 하도 시끄럽게 뛰노는 통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쥐 끈끈이를 놓기도 하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가히 신출귀몰이었다. 퇴치 기도를 해도 전혀 안 먹혔다. 아무튼 나는 목사로서도 자질이 여러모로 부족. 쥐가 조용한 순간은 사람이랑 매우 비슷했다. 첫째, 내 이야기에 귀를 모으는 중이거나 아니면 둘째, 내 이야기가 지루하여 조는 중. 셋째는 이제 저 차례, 다른 할 말을 준비하는 순간. 그러던 어느 날 슬그머니 쥐가 사라졌다. 밖에 한가득 놓인 개밥그릇을 치우고, 매달아 놓던 옥수수까지 죄 대피시킨 때문 같았다. 게다가 들고양이가 찾아오면 참치 캔을 따서 공손하게 바쳤다. 사냥꾼에게 대접을 했더니 효과가 금방 생겼다. 쥐들도 별수 없어 줄행랑.

그래도 끝내 고집을 부린 놈이 있었는지 고양이가 놈을 물어다 마당에 보란 듯 놓아둔 적도 있었다. 그냥 이사를 가지 왜 고집을 피워 죽임을 당했을꼬. 고집불통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목수도 절대 고칠 수 없는 집이 바로 ‘고집’이라지 않던가. 고집 센 놈치고 잘되는 꼴을 본 기억이 없다. 이후에도 가끔씩 쥐와 밀고 당기는 동거는 계속되었다.

산골에 살면 쥐와 대면은 일상에 가깝다. 쥐꼬리가 스윽 지나가거나 들쥐가 낸 구멍들을 발견한다. 쥐가 살면 뱀도 살고 고양이도 따라 산다. 높은 하늘에서 정찰하는 매도 보인다. 떼어놓고 나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이렷다. 쥐들 가운데는 게릴라 쥐들도 있다. 일개 이름 없는 쥐들의 승전보를 기대하는 새해다. 크고 이름난 쥐들이 세상을 온통 갉아먹고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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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가 타는 소리는 자작자작. 눈밭에 선 자작나무가 보고 싶은 겨울이야. 올해는 말이 늦터진 아이처럼 눈다운 눈이 안 내리니 속이 다 답답해라. 자작나무를 바라보면서 뜨거운 술을 자작하고 싶구나. 

혼밥 혼술을 하는 것도 자작이라 한다. 만화가이자 수필가인 쇼지 사다오는 혼밥 혼술의 대가. 그의 ‘자작 감행’이라는 수필 한편을 읽었다. “자작할 때는 병맥주보다 도쿠리(목이 잘록한 술병) 쪽이 좋다. 도쿠리를 집어 든다. 적당량을 술잔에 따르고 원래 있던 곳에 도쿠리를 내려놓는다. 엄지와 검지로 술잔을 쥔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술잔을 입 쪽으로 가져간다. 그와 동시에 입술도 술잔을 마중 나간다. 쭉 들이켠다. 일련의 이 느긋한 동작들이 좋다. 약간 적적한 부분이 좋다.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이 좋다. 어딘가 내버려진 느낌이 좋다. 이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군중 속에서 혼자 마신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단, 자작으로 마실 때는 침울해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연말이라 사람들 틈에서 어지럽게 살았다. 군중 속에서 때론 괴로웠다. 누구도 관심 없는 제 지난한 사업 이야기를 떠든다. 정치 토크는 점쟁이들도 홰를 치는데 밤새 끝이 없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보다는 나으니 참아보다가 자작으로 혼술 아닌 혼술을 하게 된다. 게다가 내 에코 천 가방에는 월트 휘트먼의 글 쪼가리가 오랜 날 들어 있다. “해변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아이는, 모든 것 곧 집어삼킬 듯 승리에 우쭐대며 낮게 드리운 묘지 같은 구름, 그 구름들 바라보며, 조용히 운다. 울지 마라, 얘야. 울지 마라, 내 사랑… 나는 별들이 환히 빛나는 모습 바라보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온 우주와 미래의 비밀을 풀 열쇠에 대해 생각한다.” 도쿄의 술집을 전전하는 애주가 쇼지 사다오, 필라델피아 항구 어디 밤의 해변을 혼자 거니는 휘트먼을 생각한다. 자작나무가 타는 모스크바의 밤 도스토옙스키는 또 어디서 혼자 보드카를 들이켰을까. 그들의 외로운 두 눈이 ‘자작자작’ 별빛처럼 타오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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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맺음달 달력은 동그라미로 가득해. 무슨 약속이 이렇게나 많은지. 하루는 공연을 했다. 호주에서 돌아와 ‘새까만스키’가 되어 등장. 내 시를 죄다 노래한 음반 <심야버스>가 나온 지 한 달도 넘음. 음반은 안 팔리지만, 그래도 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자뻑 중. 청계천변 새로 생긴 ‘전태일기념관’에서 발매공연을 했다. 가수 하림은 우정출연. 친구이자 동생 하림은 나랑 여행도 같이 다녔고, 내 산골 집에도 놀러오고 했었지. 악기 연주력도 그렇고 하림만 한 내공을 지닌 가수가 이 땅에 드물다. 그이 피앙세와 폴란드로 신혼여행 가는 통에 라디오 음악방송에 내가 잠깐 땜빵 출연하기도 했었다. 하림의 노래 ‘출국’, 오랜만에 ‘생라이브’로 들었어. 출국이 많은 방학 때렷다. 나라를 떠나봐야 우리나라 좋은 줄도 알고, 못난 구석도 알게 되지. 

“난 통 누가 불러주질 않아서 외로워.” 송년회 약속이 드물다고 친구가 그런다. “남 만날 때 자기 이야기만 하지 말고, 남 칭찬도 하고 좀 그래.” 고립된 사람들을 보면 특징이 있는데, 자기 투정이 많다. 또 남 사정에 관심이 없다. 칭찬이나 덕담도 매우 짜다. 올 한 해 고생했다고, 네가 있어 버틸 만했다고, 이런 덕담하는 데 무슨 돈이 드나? 

성경에 보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는 말씀. 내년 걱정을 벌써부터 할 필요는 없다. 올해 걱정과 괴로움은 여기서 훌훌 털어버리자. 그래야 새 힘이 생겨나지. 노(No)를 거꾸로 쓰면 온(On)이 된다. 문젯거리에 부닥치면 뾰족수도 거기 있다. 바로 그 문제에 인생 해답과 희망이 함께 있다. 그때 곁에서 힘을 주는 말, 덕담 한마디가 반드시 필요하지. 차에 시동을 걸듯 누군가 돌려주고 눌러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덕이 있는 사람이란 덕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덕담을 하다보면 평소 없던 덕도 달라붙고 생겨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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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중심부 아웃백에서 나와 또 다른 인적 드문 오지, 이름조차 오지라는 힌터랜드(Hinter Land)에 당도했다. 이곳 글래스 하우스 마운틴스 국립공원엔 산봉우리 밑으로 원주민 ‘거비거비’ 부족이 모여 살았다.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엔 11개의 우뚝한 봉우리가 특별하다. 평야에 화산활동으로 솟은 기괴한 바위 산들. 늪에는 악어, 숲에는 코알라와 캥거루가 산다.

길에서 원주민 아저씨를 한 분 만났는데 기다란 통나무 악기 디저리두를 들고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디저리두는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든다. 흰개미들이 속을 파먹은 나무를 구해 검불을 모아 불을 내고 구멍을 더 뚫은 뒤 사람 키보다 조금 작게 자른다. 혀와 입을 움직여 온갖 동물들 울음소리와 강물소리, 바람소리를 닮은 소리를 낸다.

쿠노린 산에서 의식을 치른 뒤 원주민들은 멀리 울루루까지 금성 샛별을 보며 장장 6개월 맨발로 걸어 순례를 했다. 순례자 그룹의 리더였던 빌린빌린의 손자 디자이를 우연찮게 만났다. 빌리빌리 동네에 살았던 빌린빌린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말라차!’, 헤어질 땐 ‘나니 니즌’. 나니(보다), 니즌(새롭게), 그래서 ‘새롭게 봅시다’라는 뜻. 새롭게 보면 쉬이 늙고, 병들어 죽고,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게다.

디저리두 소리처럼 대지에 가득했다가 다시 새롭게 사람의 숨으로 들어와 입구멍에서 노래가 되는 신비. 나이 들지 않는 이들을 그럽(Grup)족이라 부른다. 연속극 &lt;스타트랙&gt;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만 사는 별에 착륙하게 되는데, Grown up의 줄임말로 그 부족을 ‘그럽’이라 한 데서 유래. 그럽족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을 즐긴다. 그리고 햇볕과 여행을 사랑한다. 이곳 원주민 거비거비는 햇볕에 타서 다른 어떤 원주민보다 검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원주민들은 “당신은 옥수수를 자라게 하는 햇볕 같아요. 나와 같이 옥수수를 자라게 합시다.” 이렇게 긴 말로 프러포즈를 한다. 이곳 거비거비는 “나랑 같이 낮엔 캥거루처럼 걷고, 밤엔 코알라처럼 잠을 잡시다”라는 말로 프러포즈를 한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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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 시골구석 ‘울루루’를 거쳐 ‘카타추타’에 왔다.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지. 찍기 식으로 길을 찾으면 백발백중 제대로다. 신기를 받아야 해. 바람이 나를 데리고 왔다는 말도 틀린 말 아니렷다. 카타추타란 여기 원주민 애버리지니 말로 ‘많은 머리들’이란 뜻. 산봉우리가 우쑥부쑥 여러 사람 머리처럼 솟구쳤다. 바람의 계곡에 서니 정말 바람이 설설 불었다. 창문을 뜻하는 윈도(Window)는 바람의 눈이라는 뜻. 바람(Wind)의 눈(Eye)이란 북유럽어 ‘빈드르(Vindr)’와 ‘아우가(Auga)’, 이 두 단어가 합쳐진 말. 노르웨이 목수들이 통나무집을 지을 때 환기를 위해 지붕에다가 구멍을 뚫었단다. 바람이 불면 그 구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어. 이 구멍을 가리켜 ‘바람의 눈’ ‘바람의 입’ 등으로 불렀다지. 한국은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지만 여긴 정반대 여름의 시작이다. 세상의 눈, 카타추타에 서니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

우린 그간 1% 노력에 99%는 ‘빽’이라며 허탈해하였다. 한때 호주는 1의 평화, 99의 폭력으로 기울던 때가 있었다. “땅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생을 거부했다. 다짜고짜 총을 쏘아대고, 오히려 우리를 불법 침입자로 간주했다. 그들은 호주 대륙에 본래부터 있어 온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하려고 들었다. 우리 원주민의 가장 큰 힘은 사랑, 위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출신에 상관없이, 그가 순수 혈통이든 혼혈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한다. 원주민 아이는 버려지는 일이 없었다. 백인들의 고아원에서 자랄 때조차도 원주민 아이들은 서로를 돌보았다.” 호주 원주민 반조 클라크가 쓴 <대지를 지키는 사람들>의 한 구절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원주민들은 얼굴 흰 사람들이 대지에 찾아와 99%의 폭력을 행사하는 걸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본 카타추타 산계곡이 있었다. 바람의 눈. 모든 걸 지켜본 증인. 그러나 증인이 있는 한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카타추타를 속일 수 없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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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마친 들판에 덩그러니 남은 볏짚은 숨바꼭질하기 좋은 장소다. 싹둑 잘린 볏논의 가지런한 빈터에서들 손야구를 즐겼는데, 고무공을 던지면 주먹으로 치는 야구였다. 공이 가볍다보니 투수는 바나나킥 못지않은 마구를 던질 수 있었지. 맨 바람에 볼이 빨개지도록 들에서 놀곤 했다. 그럼 볏짚을 둘러쳐 뚝딱 바람막이 ‘벽집’을 지었다. 볏짚을 태워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다. 산으로 가면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나뭇가지로 지붕을 엮고 비닐을 덮고, 낙엽을 주워 바닥을 깔았다. 두셋이 들어가면 무릎이 닿았는데 친구들과 지은 첫번째 집이었다. 모험심 강한 아이들은 저마다 비밀기지를 하나씩 두었다. 나는 예배당 뒤에 세례식을 베푸는 시멘트 욕조가 있었는데, 그곳에다 대나무를 썰어다가 엮고 지붕을 만들어 비밀기지로 썼다. 지금처럼 캠핑 텐트가 흔한 세상이 아니었으니 고급 천막은 그림의 떡이었다. 농사에 쓰다만 불투명 비닐 조각이면 충분히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음반 일로 북유럽을 종종 가게 되는데, 아이들의 비밀기지로 쓰이는 트리하우스가 놀라웠다. 부모님과 같이 트리하우스를 지어본 아이들은 훗날 똑같이 제 자녀에게도 그 재미와 보람을 물려줄 듯싶었다.

교회 주변을 맴돌며 살다보니 어린 나이에 예배당 수리를 해봤다. 시멘트 블록으로 창고 건물도 겁 없이 지어보았다. 삼십대에 이 산골짜기 양지바른 터에 살림집을 짓기도 했다. 내 또래에선 이른 경험이었을 게다. 웬만한 목수보다 많은 공구를 가지고 있고, 해본 가락이 있어 덤벼든 일. 일복이 터져 알바로 ‘인테리어’도 돕곤 한다. 비밀기지를 만들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일파만파’ 놀이가 커진 게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천막집을 잘 세울 줄 알아야 한다. 인연이 닿으면 자기 집도 지어볼 수 있길. 헐어진 장독간이라도 다시 세울 재주는 가져야지. 국방과 안보를 염려하는데, 비밀기지를 잘 짓는 아이들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우랴. 아이들이 비밀기지 놀이는 않고 영어공부만 하니까 미국에서 방위비를 더 뜯어내려는 듯.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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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는 얼음이 얼었단 소식도 들린다. 유리창에 손을 대면 뽀드득 소리가 나. 뽀드득 소리란 말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다. 택시 합승을 한 아가씨와 할머니. 아가씨가 방귀가 급해 창문에 대고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무사히 실례를 했어. 그런데 할머니가 아가씨를 급 째려봤대. “소리는 잘 처리했는가 몰르겄지만서두 이 냄새는 우짤거여.” 뽀드득 뽀드득…. 들킬 수밖에 없는 냄새. 

알츠하이머에 걸려 법정에 출두하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골프장에 간 전모씨. 측근의 변명에 의하면, 골프장을 나오는 순간 자기가 골프를 쳤는지 안 쳤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우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지존급. 냄새가 너무 나지만 민주주의 아버지시라는데 어쩌랴. 그이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만 나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다. 감퇴란 어떤 욕구나 능력, 힘이 줄어서 약해진다는 말. 나이 들어가는 증거다. 글 연재를 신문 외에는 거절하다보니 마감 ‘빵구’를 낼 일은 없지만, 이도 모른다. 기자 동무가 챙겨주어야 한다. 어제 저녁에 개를 풀어놓고, 풀어놓은 걸 깜박 잊고 들어와 버렸나봐. 목줄을 하지 않고 넓은 견사에 넣어 두는데, 하루에 한두 시간은 마당에서 맘대로 놀게 해준다. 그러나 남의 밭에 쳐들어가 장난질을 했다간 동네 원성을 사게 되니 완전한 자유는 줄 수 없다. 아침에 문 열어 보니 현관 앞 그네 위에 올라가 그네를 즐기면서 쿨쿨 단잠. 멀리 안 도망가고 나를 지켜주었구나. 까맣게 잊고 나도 잠을 잤었다.

지난주엔 술자리에서 동무랑 낼 점심밥을 먹자고 약속해놓고서 까먹기도 했다. 식당에서 문자가 왔다. 나는 다른 데 가 있었고. “미안, 쏘리” 백번하고 다음에 비싼 회를 대접하기로 했다. 빨리 해외로 도망을 쳐야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화에 따른 기억 상실은 조금 있긴 했지만 치매나 알츠하이머는 아니었다. 내가 포도주를 좋아해 알코올성 치매가 걱정이 되긴 하다만, 그렇다고 주님의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은 또 제자됨의 예의가 아니렷다. 곤란한 인생살이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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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낙엽이 낙하 중이다. 이런 날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큰 볼륨으로 듣고 싶어라. 낙엽은 푸른 잎사귀의 죽음. 낙엽을 한 잎 주워 책갈피에 꽂아둔다. 최인호 샘의 글에서 본 기억. 봉쇄 수도원 트리피스에선 단 한마디 말만 할 수 있단다. “형제님. 죽음을 기억합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책갈피 낙엽에 적어두고 싶다. 죽음으로 멈춘 기억들은 남은 자의 몫이겠다.

오래전 월간 ‘샘터’에 몇 해 연재를 했었다. 그때 뵈온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최인호, 영문학자 장영희, 사진작가 최민식, 수필가 피천득, 그리고 법정 스님과 류시화 시인까지 모두 시절 인연들이다. 가끔 엽서를 주고받았던 이해인 수녀님도 월간지 인연. 출판사 샘터에서 부탁해와 아포리즘 같은 책을 한권 낸 일도 있다.

책이 나온 날에 붉은 벽돌 건물 샘터 파랑새극장에서 티어라이너 밴드 동생들과 공연을 가지기도 했었지. 한창 싸돌아다니던 때라 지인들이 많았다. 뒤풀이에 돈을 꽤 많이 써야 했던 기억. 대학로엔 ‘학전’이란 극장도 있는데, 막걸리 냄새를 풍기고서 건널목을 지나던 김민기 아저씨를 뵙기도 했다. 그땐 감히 알은체를 못했다.

‘샘터’의 인연도 가물거리는 옛일이 되었다. 매달 변함없이 독자를 찾던 월간지가 시대가 변하여 기우뚱한다는 소식. 그러고 보니 녹색연합에서 펴내던 생태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도 발간을 멈췄다. 창간호부터 녹색연합에 후원한다 셈 치고 매달 원고료 없는 긴 글을 주었지. 맑디맑은 수필들이 숨 쉬던 월간지들이 지상에서 힘겨워한다. 월간지들이 올근볼근 다투며 주름잡던 출판계는 옛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괘꽝스러운 전자기기의 세상이다. 무슨 협회에 가입하거나 학연, 지연, 등단의 울타리가 아니면 작가들끼리 교류도 사실 거의 없다. 지면이 없으면 안면도 더는 없겠고, 두둥게둥실 흩어가는 구름떼가 되겠지. 홀가분하여 좋기도 하지만서도 문우 문형을 갖지 못하는 시절은 못내 아쉬울 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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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다가오는지 아침저녁 쌀쌀함이 배나 더하다. 밤새 내린 이슬로 아침 마당이 촉촉하다. 뽀글이 점퍼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만날 찾아 입게 된다. 아이들아! 대학에 합격하려면 ‘재수 없는 꿈’을 꾸면 된단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야 또 많단다. 

입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야무지게 책상에 달라붙어 책을 읽곤 한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세 휙 지나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깐.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이 훨씬 즐겁다. 매주 설교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다. 입으로 뱉은 말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유란 그래 말을 앞세우지 않고 몸으로 먼저 살 때 차오르는 기쁨이 맞다. “울안의 닭은 배불러도 솥 안에 삶아지고, 들판의 학은 배고파도 천지가 자유롭다.” 지공 선사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남들보다 프로필이 장황한 편인데, 한마디로 줄이면 자유인. 사실 아무것도 되지 않고자 싸워왔는데, 그만 이력이 늘었다. 인도의 현자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했다. “자유인은 사실 사제복이나 사타구니쯤 가리는 남루한 옷을 입거나 하루 한 끼 식사하는 이러이러한 인간이 되고 저러저러한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무수히 선서를 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적으로 단순하며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이다. 그런 이성은 장애물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무엇을 향한 전진이 없기 때문에 놀라운 수용력을 지닌다. 이로써 은총과 하느님과 진리, 원하는 모든 것을 지닐 능력을 가지게 된다.”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 자유인들이 있어 예술도 있고 종교도 불을 밝힌다.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묻자 과학자, 장사꾼 쏟아지는데 한 여자아이가 말했어. “결혼해서 애 낳고 소박하게 살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럼 저는 이 친구가 애 낳는 데 협조하면서 소박하게 살래요.” 힛, 그리 살아도 뭐 둘이 좋다면야. 우리 사회는 이제 이 소박한 꿈도 꾸기 힘든 비혼과 저출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대범한 자유인들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닭장에 갇혀 와글다글 살다가 솥 안에 삶아지기 일보 직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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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간사해서 언제 더웠는지 기억조차 없다. 더위를 정녕 ‘보’내기 싫으면 가위와 바위를 내면 돼. 훗~. 어디를 쳐다보나 가을가을 한다. 은행잎은 노란리본을 흔들기 시작. 자연은 제 목소리를 분명히 낸다. 입이 달린 모든 생명은 제 소리를 내고 산다. “우리 시대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기억한다. 거친 아우성이나 침묵은 가을의 진중하면서도 분명한 표현력과는 딴판. 인간은 자연에게서 배울 게 많다.

올 들어 처음 군불을 때고 누웠다. 따뜻하니 좋구나. 좋을 일도 참 많다고 그러시겠다. 무엇보다 손발이 따뜻한 게 참 좋아. 나는 얼음송송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아’는 잘 안 마신다. 한여름에도 ‘따아’를 마신다. 후후 불어마시면 속이 데워져서 그런지 바깥 더위를 잊게 된다. 추운 겨울에 어찌 살까 약간 걱정이 드네. 기십년 겨울나기에 이력이 붙기는 했으나 추위는 정말 질색이야. 부지런히 호롱불을 걸어두고 군불을 때고 해야지 별 수 있는가.

노처녀가 시집을 간 첫날밤. 신랑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지. “아니 왜 그래요 갑자기?” “야 이눔의 자식아. 왜 이제야 나타나서 나를 감동 주는 겨?” 밀어뜨려 이불 속으로 쏘옥.

더운 날에는 담양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이 있었으나 추운 날에는 부인 가출 실종이렷다. “해 저무는 들녘 하늘가 외딴 곳에 호롱불 밝히어둔 오두막 있어 노을 저 건너의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켜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해 저무는 들녘 밤과 낮 사이에 이리로 또 저리로 비켜가는 그 사이에….” 김민기 아저씨의 ‘그 사이’ 밤과 낮 그 사이에 시방 서있다. 더위와 추위 그 사이에 서 있다. 그러다가 점차 기울어진다. 밤으로 그리고 추위에게로. 당신과 함께했던 밤과 추위를 생각하면 온몸 가득 온기가 솟아오른다. 그 기억으로 충분해. 이 세상의 밤과 추위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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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강의하러 간 김에 친구 얼굴 한번 보려고 방문했는데, 바쁜 일처리로 볼이 빨개 있었다. 같이들 마시라며 커피를 사서 넣어주고 뒤돌아섰다. 나는 다음 역까지 한참이나 걸었다. 영혼보다 빨리 달려가는 바쁜 몸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량들. 내뿜는 한숨과 매연에 얼른 이 산골로 돌아오고 싶었다.

구절초가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연보라 꽃송이에 꿀벌들이 달라붙어 쪽쪽대는 소리가 요란도 하지. 10월은 구근 식물 옮겨심기에 적기다. 젖먹이들을 물어 옮기는 어미 개나 고양이처럼 여러해살이식물들을 옮기고 새 보금자리를 지정해준다. 후일에도 내 정원은 꽃과 여러 식물들로 나와 손님들을 기쁘게 맞아줄 것이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소중히 달라붙어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곳. 정신 차리기에 좋은 곳을 사람도 ‘가지고, 가꾸고’ 해야 한다. 하루쯤 시간을 내어 풀을 뽑고, 꽃대를 잡아주고, 따뜻한 국화차를 내어 마시면서 살아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올가 토카르추크는 화가 요안나 콘세이요와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책을 냈다. 너무 바쁘게 산 ‘얀’이라는 이름의 남자 주인공. 어느 날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를 깡그리 기억 못하게 된다. 의사에게 찾아갔는데, 병명은 ‘영혼을 잃음’. 2~3년 전에 갔던 데를 찾아가거나 어디 한적한 곳에 기다리면 혹시 영혼이 되돌아올지도. 얀은 변두리 시골에 집을 구해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대문을 쿵쿵 두드리며 영혼이 돌아왔다. 얀은 다시 영혼을 잃지 않고자 시계와 트렁크 따위를 마당에 묻어버린다. 시계자리에선 종모양의 꽃이 자라고, 트렁크에선 호박이 열려 담을 타고 넘어갔다.

그림책이 좋아 침대에 껴안고 꿀잠을 잤다. 내게도 영혼이 찾아온 기쁜 날이었다. ‘하루쯤 시간을 내서 봐요’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사실 내가 조르고 바쁜 그들이 만나주는 세월. 친구도 순위가 있을 텐데, 돈벌이가 시원찮다보니 천덕꾸러기인가봐. 내 영혼이나 자주 만나야지 그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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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엄마랑 하는 말을 엿들은 유치원생 꼬마. “아빠는 내가 무슨 반인지도 몰라. 근심반 걱정반 아니라고요. 나 달님반인데 나한텐 관심도 없어요. 우우~” 귀여미 꼬맹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마음 편할 날 없지. 이게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걱정보따리는 배나 더 클 뿐. 

가을이 되면 시인들은 부쩍 ‘센치’해져서 슬픈 시들을 낳고는 한다. 시도 이를테면 시인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 자기 시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걱정만 한가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 담긴 ‘시’라는 시가 시답잖은 내 시를 쏘아본다. 솔직하고 담백한 시집을 읽다보면 주눅이 든다. 

시 공책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좋은 문장이나 낱말, 이야기를 발견하면 기록해둔다. 아이가 밥은 먹었나 걱정하듯 내 시가 앞뒤 제자리를 틀고 앉았는지 한번씩 요리 보고 저리 본다. 목사들은 가끔, 또는 자주, 설교를 하게 되는데 설교문도 엄청 신경을 써야 한다. 아니면 모두 실망하거나 푹 깊은 잠을 주무시게 되니깐. 나도 담임목사 노릇을 할 때는 일주일 내내 설교문을 끙끙대며 썼다. 교인이라야 할머니들뿐이었으나 신경을 써야 한다. 할머니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차이를 잘 모르신다. 두 분 헤어스타일이 좀 차이가 나긴 하지. 

교회 다니기 전엔 절에 다니셨던 분들이라 왔다리 갔다리 불경과 성경이 머릿속에서 잡탕으로 오고 간다. 목사가 눈을 감고 기도하면 교인들은 휴대폰을 몰래 열어보고, 목사가 설교하면 교인들은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존다. 예수는 자식 대신 제자를 낳았는데, 모두 틈만 나면 곯아떨어졌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정체 모를 목사와 교인들만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나라 걱정. 걱정도 팔자이신 분들이렷다. 그러다가도 헌금은 기어이 걷더구먼. 결국은 먹고사니즘. 시인의 계절 가을엔 근심걱정이 커간다. 고엽의 가로수길 우울도 쌓여간다. 한 줌의 좋은 시가 나오려고 산고를 치르는 중이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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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장마가 지나가더니 한 주에 한 개씩 태풍이 몰려온다. 극장식 일기예보. 대형 동그라미가 비닐하우스와 낡은 함석 처마, 그리고 논밭을 정조준한다. 태풍아 우리 동네로는 오지마~ 백팔배를 올리는데, 백팔배는 ‘뱃살빼’의 동음이어. 

죄 없이 배고프고 뱃살이 쑥 빠지는 계절. 문밖은 온통 손길을 기다리는 일감들이다. 국화꽃이라도 볼라치면 꽃밭을 가꿔야 한다. 또 극성맞은 파리·모기에 괴롭다. 가을 태풍에 다들 날아가 버리면 좋겠다. 

잠자리와 벌과 나비, 그리고 파리가 서로 자랑질. 잠자리는 나처럼 멋지게 날 수 있어? 나비는 나처럼 우아하게 날 수 있어? 벌은 나처럼 날렵하게 날 수 있어? 그러자 파리가 배를 쥐고 웃더란다. “이 모자란 것들아. 니들은 나처럼 똥 먹을 수 있어?” 모두 졌다. 파리·모기가 없는 가을은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촌사람들에게 고마운 계절이다. 

악머구리로 시끄럽던 세상이 고요해지는 순간. 빈 들과 빈 가지. 단감을 다 수확하고 까치밥만 남은 감나무.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찬송가를 부르며 일을 하는 할머니들. 성크름한 날씨에도 늦은 시간까지 옴나위도 없이 꽉 찬 밭일들. 저녁이 파르께하게 찾아오면 밭고랑 백팔배를 멈추고 귀가들을 한다. 물끄럼말끄럼 쳐다보던 강아지, 그제야 밥먹게 생겼다며 좋아라 앞장을 선다. 파리·모기들 쫓는 강아지의 귀가 팔랑거린다. 사람귀도 강아지처럼 발달했으면 어쨌을까. 파리·모기도 먹고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들이다.

대전 사는 스님 동생이 종종 묵어가곤 한다. 엊그제도 불쑥 찾아와 계란말이도 하고 국도 끓여서 밥을 차려주더라. 반찬 없는 냉장고 속을 보더니 “형님은 요새 살림을 허시요 마시요?” 핀잔. 그래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살아 파리·모기는 없다며 칭찬도 조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 그랬더니 정말 조용히 있다가 떠났다. 차비라도 줄 걸 보내놓고 마음이 쓰였다. 미안해. 파리는 용서를 싹싹 빈다. 파리는 염치도 있고 불심도 있나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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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거리가 땟물에 꺼매가꼬, 몰강물(맑은 물)에 씨치고(씻고) 양철떼기 같은 걸로 배깨야재(벗겨야) 제 꺼죽이 돌아오겄소잉. 뫼욕(목욕)을 해도 핑야 똑 같어부러.” “엥간히 조깐 일을 해야재 빙(병) 걸려서 아파불믄 뭔 소양이간디.”

밭일이 많은 날. 검은 피부의 농부들이 들에 보인다. 한마디씩 안부를 묻는다. 허수아비도 참말로 오랜만에 동무들을 만나서 반가운 낯부닥이다. 산밭에는 몽당 빗자루, 그러니까 몽당구라 부르는 걸 하나 거꾸로 세워두기도 했다. 새들이 보아도 어설픈 허수아비. 저를 우습게 아냐며 매번 코웃음을 치는 새들. 큰비에 방천이 나면 득달같이 터진 물길을 메우고 입이 타드는 여름엔 길어 온 물로 ‘따둑따둑 다독다독’ 밭을 일궜다. 

“인자사 찬바람이 불어옹갑마.” 대대적인 수확이 시작되었다. 비바람과 가난을 누구보다 잘 견뎌온 소농들. 남보다 용감한 것보다는 10분을 더 견뎌낸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지. 견디길 잘하는 사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는 법. 농사꾼들은 자연재해마다 잘 이기고 견뎌낸다. 걱정이 아예 없는 인생을 바랄 게 아니라 걱정에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 결과이겠다. 요새처럼 전염병이 돌면 축산 농가들은 벼랑 끝에 선 처지가 된다. 가을태풍까지 몽니가 이만저만 아니어라. 몽니쟁이들이 어디나 숱 쌔고 쌔부렀다. 

우리 동네에선 ‘미련한 곰 같은 놈’을 가리켜 ‘미럭 곰 차두’라고 부른다. 요런 미럭 곰 차두 하면 순하디 순한 타박이고, 요런 호랭이 물어갈 놈의 미럭 곰 차두하면 웃자고 하는 나무람이다. 미련한 곰들이 들과 산을 지킨다. 어디 노동 현장엘 가 봐도 꼭 이런 ‘미럭 곰 차두’가 한 마리씩 띈다. 바람이 몹시 찬 손돌이추위가 가깝기 전에 벼도 베고 고추도 들여야지. 따비밭 손바닥 위에다 뿌린 부추가 송글 거린다. 근근한 쪽박세간에서 밥과 김치를 해먹고, 나들잇벌 옷 하나 볕에 잘 말려 입고설랑, 엉덩잇바람으로 서두르는 길. 읍내 목욕탕 나가는 길. 미럭 곰 차두가 가을 농사를 다 마친 뒷날 풍경이다. 누가 그에게 힘찬 박수를 쳐줄까. 당신도 나와 같이 박수를 쳐드리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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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못하는 목사가 있었다. 교인들이 모두 졸고, 특히 제 아내는 코까지 골았다.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는데, 누구 좋은 의견 없는가?” 아들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부지.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떼고 그 자리에 시계를 걸어 놓는 겁니다. 무조건 아부지 쪽을 쳐다보겠죠. 빨리 끝내달라고 아멘을 연발할 겁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쳐다보지 않으면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래 억울한 일 당한 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고공 투쟁을 했다. 불교 스님이나 기독교 ‘은수자’들의 삭발과 긴 수염 등은 내용이 많이 다르다. 치장하지 않고 수행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발리섬 우붓에 가면 원숭이 왕국이 있다. 원숭이들이 노상강도 깡패나 같다. 과일은 기본이고 가방도 뺏어가고 휴대폰도 낚아챈다. 모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서로들 나눠 써보며 메롱메롱 놀리기까지 한다. 문제는 가발을 쓴 사람을 덮치는 경우다. 민둥산이 드러나면 원숭이들도 깜짝 놀란다. 아무튼 가발 착용자들은 원숭이 왕국에 얼씬거리지 않는 편이 낫다.

학교 다닐 때 자주 두발 단속을 당했다. 일명 ‘바리캉’으로 한쪽 머리를 쭉 밀어버렸다. 학교에 이발소가 아예 딸려 있어 돈을 나눠 먹는 눈치였다. 두발 단속을 하는 날이면 이발사 표정이 밝았다. 한편 경찰은 성인들을 상대로 장발 단속을 했다. 군사정권은 머리를 자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회 약자들은 그들이 들이대는 가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싹둑싹둑 가차없이 자르고, 또는 스스로 자르게 만든 머리카락들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그들 독재자와 하수인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들 받아 심한 탈모를 겪었다. 또 공안검사들은 대학생들을 잡아다가 간첩이라고 족쳤다. 원산폭격 고문을 시키면 부분 탈모가 발생했다. 욕조에서 공짜로 ‘스킨스쿠버’ 교육도 시켜주었다. 물을 많이 먹고 죽거나, 탁 치면 억하고 죽거나, 보통들 싹둑 목숨이 떨어져야 끝이 났다. ‘싹둑이’들의 세상이었다. 생각해보면 멀지도 않고 엊그제 일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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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면은 간편해. 삶는데 냄새와 연기가 없다. 고기는 구울 때마다 기름이 튀고 냄새도 난리. 배지영의 단편소설 ‘근린 생활자’엔 501호 아줌마가 등장한다. “발코니에서 담배 피우거나 고기 굽는 것 삼가해주세요. 연기가 위쪽으로 그대로 올라가서 특히 3, 4층 분들은 창도 못 열어놓고 지낸다고요. 아셨죠. 꼭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발코니가 있는 집을 계약해 들어간 아무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고기를 구워댔다. 이제는 아래층에서도 쫓아들 올라온다. 면이나 삶아먹지 총각들이 뭔 고기냐 이를 드러냈을 것이다. 시골집에 살면 삼시세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낭설이다. 낙향처사들은 불이야 있으나 두 가지 돈이 없게 된다. 머니 돈과 돼지 돈.

산타 할아버지가 절대 먹을 수 없는 면, 울면. 울면 안돼. 당신은 산타가 아니니 울면도 드실 수 있겠다. 면을 너무 좋아했는데, 밀가루 당분 섭취를 줄이려다보니 메밀국수를 찾아먹게 되었다. 납품하는 곳을 알아냈고, 국수를 쟁여놓고 안심. 명절 긴긴날 뭘 먹을 건지, 장이라도 봐야 할 텐데 국수나 삶아먹을까 생각하니 개운하고 홀가분해라. 김치만 있으면 되었고, 얹어먹을 고기라도 들어온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시인 백석은 먹는 타령을 지독히 했다. 시들 통째로 밥내와 모밀내, 오만가지 군침을 돌게 만드는 낱말들 잔치.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가튼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가튼 도야지를 잡아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또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이북에서는 돼지고기와 국수를 한 궁합으로 먹는 모양. 냉면과 온면, 고루 맛보는 겨레의 명절. 쟁반 속에 달이 둥그렇게 뜰 게야.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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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세상이 왁자지껄 시끄러울 때는 다툼이 있단 소리. 야곱이 결혼한 뒤 한참 만에야 친구를 만났다. “자네 부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야곱이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변했다네. 연애 시절엔 내가 주로 얘길 하고 아내가 들었지. 결혼 뒤엔 아내가 주로 얘길 하면 내가 듣게 되더군. 지금은 말이지, 우리 둘이 떠드는 얘기를 이웃사람들이 모두 듣고 산다네. 싸우는 목소리가 담을 넘거든.”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행복하려면 차를 사고, 일 년 행복하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라고.

사랑과 진실을 품고 살 때 세상 또한 밝아진다. 일을 할 때도 사랑으로 행해야지. “사랑을 품은 가슴으로 일하지 않으려면 성전 앞문에서 구걸을 하는 편이 나을 거예요. 빵을 구울 때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빵맛이 쓸 뿐이죠. 괴로운 맘으로 포도주를 만들면 그 괴로운 마음이 포도주 속에 고스란히 담기죠. 천사처럼 노래해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사람들이 결국엔 귀를 막게 될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다가 밑줄 그은 구절. 영원한 것은 없지. 사랑도 물론이다. 굳게 각오하고, 이를 앙 물고 지켜내야 날마다 숨을 쉬게 되는 마음. 천사들의 합창, 사랑 노래를 듣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밤송이가 누렇게 영글고 대추 열매도 굵어지고 있다. 조용조용 깊어가는 가을이다. 노란 불빛의 집들. 바닷가 마을 게가 기어 다니듯 조용조용 찾아온 밤이면 쓰르라미가 목이 터져라 운다. 그래봤자 야곱이 싸우는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세계에서 가장 방귀를 잘 뀌는 ‘까스명수’보다는 턱없이 모자란 쓰르라미 목소리. 사랑으로 부르는 노래, 천사들의 합창으로 밤이 꽉 찬다. 현해탄 건너 부잣집 영감 ‘수표로 밑닦가’ 상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우리들은 단단히 사랑하고 뭉쳐서 잘 이겨낼 거야.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끝내 당당하게 웃을 수 있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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