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66건

  1. 2019.02.14 짜라빠빠
  2. 2019.02.07 세 가지 자랑
  3. 2019.01.31 공기청정기
  4. 2019.01.24 그리운 사람의 별명
  5. 2019.01.17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6. 2019.01.10 오십대
  7. 2019.01.03 근사한 유리창
  8. 2018.12.27 수고한 이들에게
  9. 2018.12.20 북극여우와 여관
  10. 2018.12.13 ‘보해미안’ 랩소디
  11. 2018.12.06 겨울 염소
  12. 2018.11.29 연탄난로
  13. 2018.11.22 사람 자랑
  14. 2018.11.15 달새와 비새
  15. 2018.11.08 인디언 기우제와 첫눈
  16. 2018.11.01 샤바 샤바 아이샤바
  17. 2018.10.25 앞으로의 삶
  18. 2018.10.18 점순이
  19. 2018.10.11 굴뚝 연기
  20. 2018.10.04 단감과 맨드라미

비틀스의 노래 가운데 ‘예순네 살이 되었을 때’가 있다. 웬 아임 식스티 포. “시간이 흘러간 뒤에 머리숱도 없어지고, 나이는 지긋해져도, 밸런타인데이 때나 아니면 생일날 내게 와인과 엽서를 보내주고 그러실 거죠? 당신은 따뜻한 난롯불 곁에서 스웨터를 짜세요. 일요일 아침이면 드라이브도 같이 가요. 꽃 마당을 돌보며 잡초도 뽑을게요. 예순네 살 때에도 당신에게 나는 필요한 존재겠죠? 근검절약하다 보면 여름마다 흰 섬에 유람도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예순 살 넘어서까지 다투지 않고 함께 여행 다닐 친구가 있다면 행운아. 나이 들면 부인이 남편을 보통 이겨먹게 된다. 옆집 영감들은 다들 죽어 산에 누워 자는데 아직도 방에서 자고 일어나 귀찮게 구느냐며 타박도 듣겠지. 그러기 전에 적당할 때 알아서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여자가 남자보다 수명이 좀 더 길다고 한다.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할 시간을 특별히 주신 거겠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예쁜 것은 눈에 콩깍지가 낀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선물처럼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사이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오래도록 눈을 마주친다. 사랑하는 사이엔 보고픔이 더 커서 시선에 민망함이 없다. 요새 아이들은 앞에 친구를 두고도 휴대폰만 만지작댄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사랑한다고 노래할 수 있으랴. 수십 년 된 사이들을 보면 아직도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한다. 되레 정성을 더 쏟으면 쏟았지 소홀하게 굴지 않는다. 주기보다 받기를 바라면서 변덕이 죽 끓는 사람에겐 예순네 살의 친구란 그림의 떡이겠다. “짜라빠빠 그대는 아름다워.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당신은 믿음직해.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수줍어하지 말고.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즐겁게 노래해요. 짜라짜라 빠빠빠.” 늙어 죽을 때까지 짜라빠빠 노래하고, 누군가의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성공한 인생.

티베트 속담에 “서두르면 라싸에 도착하기 어렵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닿게 된다”는 말이 있다. 짜라빠빠 주문을 외우며 오늘부터 천천히, 일단은 예순네 살까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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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오랜만에 사람 소리가 담을 넘는 집집들. 영화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한 놈씩 덤비면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격파(?)해가는 것처럼, 첫째부터 막내까지 우르르 몰려온 ‘가족 난리’를 잘 치러냈다. 대개 할아버지들은 손주 사랑이 각별한데, 늘 그렇듯 두 번 고맙다. 한 번은 와주니 고맙고 두 번은 가주니 고맙다.

배며 사과며 통조림, 식용유까지 오랜만에 선물세트로 살림이 늘었겠다. 나는 그런 걸 사올 은인도 없고, 그냥 친구들이랑 떡국이나 쑤어 먹었다. 명절을 대가족과 보낸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피차 고달플 것 같아서 나부터 혼자 잠수를 타고는 했었다.

옛사람들은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첫째는 조상 자랑이다. 조상님을 존경하는 것이야 아름다운 미덕이나 그걸 자랑 삼는 순간 조상님 얼굴에 먹칠이 들어간다. 예수를 자랑해야 할 교회가 배후를 알 수 없는 선교사들과 목사를 자랑한다. 오늘날 개신교의 초대박 붕괴 원인이 이게 아닐까. 둘째는 자식 자랑이다. 자식은 잘되어도 고민, 못 되어도 애물단지다. 두고 봐라. 자식 잘된 집치고 행복한지. 자식은 무덤에 누울 때까지 잠재울 수 없는 시련의 파도와 같다. 셋째는 재물 자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이가 가진 재산을 자랑하는 인간이렷다. 사돈네 팔촌까지 벌떼처럼 손 벌리고 몰려올 것이다. 방송에서 집 자랑 돈 자랑 하는 치들을 보면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 사람들은 그때 환호하는 듯싶으나 쫄딱 망해버리기를 또 바라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자랑해야겠다. 첫째는 눈물이다.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이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비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로 삼아도 후회 없다. 당신과 헤어지면 눈물을 흘릴 사람이겠기에…. 둘째는 미소다. 미소가 예쁜 사람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는다. 항상 은인이 생긴다. 맑은 미소를 가진 사람은 또한 진실하다. 셋째는 친구다. 여럿이 말고 단 한 명의 친구. 둘도 필요 없다. 그런데 이걸 막상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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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연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에는 분홍빛깔 진달래가 움을 틔우거나 기지개를 켜고, 성질 급한 매화 무당은 벌써 방울을 쩔렁이면서 굿판을 벌일 태세다. 어차피 오실 손님이기에 어서 오시라 반기련다. 삼한사온은 옛날 얘기고 이제는 삼한사미라던가. 꼬박 사흘 동안 미세먼지로 극성. 봄꽃이 출렁이는 분홍빛깔 산허리도 먼지에 가려 안 보이고, 아지랑이도 미세먼지에 가려질 판. 어서 빨리 대안에너지, 태양에너지로 가뿐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흙먼지가 일상이었던 지난 시절. 비포장도로뿐인 시골에서 태어나 비포장 마당에서 흙놀이하며 자랐지. 바지 밑단에는 흙먼지가 한 움큼씩 담겨서 털지 않고 방에 들어왔다간 이불도 흙범벅. 시멘트 가루를 먹는지 미숫가루를 먹는지 모를 정도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시멘트 먼지가 동네에 자욱했다. 지붕으로 썼던 석면 슬레이트는 아무 데나 버려졌다. 거기다가 돼지고기를 올려서 구워먹던 사람들은 암에 안 걸린 게 기적. 버스가 한번 지나가면 온 동네가 사막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먼지에 휩싸였다. 이맘때면 들불을 놓는데, 논밭의 비닐을 태우자 시꺼먼 연기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공장 굴뚝처럼 연기가 도처에서 뿜어져 올라왔다. 안전하고 청명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던가. 미세먼지 폭풍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틈새시장이라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들었다. 나도 누가 차에다가 놓고 쓰라며 작은 공기청정기를 보내왔는데, 웅웅거리는 소리가 싫어 쓰지 않고 있다. 진짜 공기청정기는 이 나쁜 먼지들을 말없이 다 들이마시는 저 숲속의 나무들이겠다. 나무에 미안하고 감사하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줄이는 방법은 전기며 석유, 석탄, 이런 기존의 에너지를 아껴 쓰고 줄이는 길뿐이다. 숲의 나무들 말고도 공기청정기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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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황해도에선 장인을 가시아바이, 장모는 가시오마니라고 부르고 친정은 가싯집이라 한단다. 신혼초야를 마치고 가싯집에 인사를 가는데, 닭과 술과 떡을 장만했다. 바보 신랑은 닭이 생각이 안 나 ‘꺽거덕 푸드덕’. 술은 ‘울르렁 출르렁’. 떡은 ‘찐덕찐덕’. “허허. 이름도 하나 기억을 못하는 바보천치 사위를 얻었구먼. 불쌍한 내 딸.” 가시오마니는 열불이 터져 울었다. 신랑은 주는 대로 덥석 받아먹으라는 부모님 말씀대로 삶은 콩을 껍질 채 홀라당 삼켰지. 각시가 껍질은 벗겨먹으라고 나무라자 송편을 까설랑 알맹이만 쏙 파먹더란다. 떡보에 바보인 새신랑은 그래도 진실하고 착했어. 둘은 쥐두리별(북극성)이 높이 뜬 날, 수왕길(은하수의 황해도말) 건너는 끝날까지 콩 먹고 떡 먹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지.

요새는 떡보를 구경하기 어렵다. 길거리에 떡집은 없고 빵집만 성황. 어려서 나도 흔한 떡보다는 귀한 빵에 환장했다. “이 돈은 교회에다 헌금해라.” 엄마가 헌금하라고 용돈을 주시면 “빵 사먹고 빵집 주인이 헌금하게 하면 안될까용?” 머리가 요쪽으로 텄던 놈이다. 읍내에 빵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카스텔라 크림빵이 먹고 싶어서 어머니 손을 끌고 졸랐지. 그러나 당도한 곳은 호떡을 굽는 노점상. 호떡도 감지덕지였다.

나이가 먹은 뒤, 그토록 침을 흘렸던 빵은 관심 밖. 떡이 문득 궁금해진다. 난롯불에 하얀 가래떡을 구워설랑 꿀에다 콕 찍어먹고 싶어라. 찐덕찐덕 입안에 녹아 구르는 떡과 꿀.

입맛이 담백하면 삶조차 소박해진다. 미식가는 성질머리만큼 고약한 똥냄새. 대식가는 변소에 쭈그려 앉아 남보다 배는 더 길게 대사를 치러야 한다. 간뎅이가 붓고 대담한 사람은 구설수 환란을 비켜갈 수 없다. 아이스크림이 도처에 깔린 겨울, 떡보는 쑥떡을 먹게 될 봄을 기대하며 침을 꿀꺽 삼키지. 욕심조차 소박해라. 찍어먹으려면 꿀단지도 아껴야 해. 작은 걸 아끼고 귀히 여기는 마음. 낮고 천한 사람도 그처럼 깍듯하게 대하리라. 예전에는 떡보, 울보, 째보, 땅딸보, 느림보, 털보, 뚱보, 꾀보, 바보가 친구의 모두였다. 그리운 사람은, 바로 그런 별명의 친구들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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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목화꽃처럼 탐스러운 눈이 소르르 내렸다. 개울가 수렁논배미도 딱딱하게 얼어붙어 고두밥만큼 부풀었다. 성크름한 바람이 불긴 하지만 햇살이 따뜻해설랑 눈은 아침나절에 녹아버렸다. 마당에 있는 바위옹두라지에 개가 앉아 털을 고르면서 해바라기를 즐겼다. 개처럼 사람들도 가만히 앉아 비루하고 추저분한 인생을 추스를 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이 다시 정계에 복귀하거나, 얼굴을 뺀질댄다거나, 괘꽝스러운 망언을 해대지는 않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자아를 성찰함으로써, 내면의 침잠으로부터 시가 나오게 되면 당신은 그 시를 들고나가 누구에게 어떠냐 물어보지 않게 되리라. 문예지에 작품을 보내 관심이나 평가를 요구하지도 않게 된다. 이미 당신의 글은 자랑스럽고 자연스러운 재화 즉 자기 생명의 한 편린, 한 생명의 노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내적 필연성에서 이루어진 모든 예술작품은 위대하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충고는 한 가지뿐. 자기 자신을 살아가며 당신 생명의 밑천으로 노래하라. 심연의 고독 속에 파고들라. 그러다보면 허깨비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시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보통사람 가운데 한 명인 자기로의 복귀도 나쁜 건 아니다. 차라리 그 길이 시인의 길인지도 모른다.”

평온한 바다에선 뱃사람이 배울 게 없다. 일상이 힘들면 힘든 대로, 이웃의 아픔과 눈물을 헤아리는 연민으로 글감을 삼으면 된다. 릴케는 더 말하기를 “글은 최종적으로 쓰는 것이다”라고 했다. 매일 매 순간 습관처럼 쓰지 않으면 안된다. 미세먼지로 바깥출입이 어려운 때, 책을 더 읽고 글을 더 써본다면 좋겠다. 영화 <말모이>는 한글학회가 걸어온 길을 재미있게 담고 있다. 영화를 통해 엉덩이와 궁둥이 차이를 처음 알았다. 엉덩이와 궁둥이를 떡하니 붙이고서 우리말 신간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지 욕심 먹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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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히로카네 겐시’는 오십대 중년 시기를 잘 사는 6가지 비법을 소개했는데, 1. 작은 욕심 부리기(예컨대 따뜻한 찌개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 한 잔의 즐거움. 싸고 맛있는 세계의 즐거움이 있음), 2. 과거 따위 돌아보지 않기(묵은 감정 깨끗이 정리하고 이름조차 잊기. 가슴 뛰지 않는 물건 버리기), 3. 망설임 없이 즐거움으로 향하기(언제 죽을지 모르니 매일을 진지하게 즐기고, 오래 살지 모르니 배우는 일에도 새삼 도전하기), 4. 방황하지 않기(제발 좋아하는 일만 찾아서 하고, 피차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기), 5. 감정 온화하게 다스리기(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뭘 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를 갖기. 뭘 받을까가 아니라 뭘 줄까에 관심 쏟기. 자식이 있다면 부모 품을 떠나도록 놓아주기), 6. 인생은 일장춘몽임을 깨닫기(평소에 유서쓰기. 가급적 이별은 산뜻하게). 나나 당신이나 버릴 것 하나 없이 6가지가 빠짐없이 필요하겠다.

촌락에서는 오십대도 이팔청춘. 환갑은 돌잔치나 비스무리. 품바 몸뻬 바짓가랑이를 걷어 입고 이태리 가짜상표가 붙은 오일장 목도리를 펄럭이고서 활개를 치는 아낙네들. 어깨허리치마를 해 입고 만세를 부르던 3·1운동 여학생들의 피가 흐르는 분들. 후반생을 이리 산다고 생각하니 없던 정도 생겨나고, 미운 정은 미운 정대로 고마워라. 어쩌다보니 오십대에 와 닿은 나는 젊고 대찬 ‘차도녀’는 ‘무섬증’부터 덥석 든다. 또 젊은 사내의 원대한 꿈이나 패기에 찬 언변을 감상하는 자리도 얼른 피하고 보는 게 상책. 냉대를 할 것 같으면 냅다 망설임 없이 집으로 향하기. 방황하지 않기, 인생은 일장춘몽. 방어가 최선의 공격. 수비가 튼튼한 축구는 재미가 없으나 결승전에는 그런 팀들이 남더라.

인생 중반이 되면 개그도 하나 외울 줄 알아야 한다. 소가 죽으면 다이소. 얼음이 죽으면 다이빙. 김밥이 죽으면 김밥천국.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죽기 전에 외우라. 실없이 웃다가 잠들면 꿈자리도 좋지. 밤새 싸우다가 한을 품고 등져 눕는 오십대 부부도 많다더라. 등이 가려울 때는, 여깃다! 효자손. 오십대 필수품 가운데 하나인데 편의점에서는 왜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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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고구마를 간식 삼아 자주 먹는다. 난롯불에 구운 고구마는 혀에 닿자마자 녹는다. 나도 먹고 강아지도 먹이고 하면서 둘이 볼살이 통통 올랐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창문 밖을 똑같이 바라본다. 하루 일과의 꽤 많은 시간을 창문 밖 구경에다 쓴다. 신문 방송에서 보는 다사다난한 바깥 세계와는 다른 ‘내면과 자연의 세계’를 마주하는 유리창. 나란한 신발과 얼멍얼멍 자란 수풀과 아물거리는 별빛이 내다보이는 창가는 어쩌면 문명과 다른 세계와의 조우다.

한 기자가 수도자에게 찾아와 물었다. “무슨 기도를 바치시나요?” “저는 주로 말하기보다는 듣습니다.” “정말이오? 그럼 하느님은 무슨 말씀을 들려주시나요?” “그런데 그분도 듣는 걸 좋아하셔서 별로 말씀이 없으세요.” 이 동네 분들은 사투리가 입에 붙어서 하늘에 ‘동시통역사’가 있어야지 안 그러면 말이 안 통해서라도 피차 침묵. 사투리 덕분에 손주들 맡아보는 수고도 덜게 되니 더욱 사투리를 쓰는 듯싶다. 손주들 맡기 싫으면 무조건 사투리로 말을 하고, 밥을 씹어서 입에다 넣어주고, 말도 못 배운 아이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방바닥 닦는 걸레로 입이나 얼굴을 닦아주면 애 엄마 아빠가 펄쩍 뛰면서 아이를 냉큼 데리고 가버린다지. 그러면 이제 나름 재미나고 고요한 여생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 고구마를 삶는 집집마다 연기가 송송 올라온다. 주민들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나처럼 창문 밖을 오래도록 구경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많은 숙소를 옮겨 다녔다. 카운터에서 똑같은 부탁을 반복하는데, 바깥 풍경이 좋은 방을 달라는 말. 커튼을 열었을 때 햇볕이 드는 방이었으면 좋겠고 나무 한 그루쯤 보이길 바란다. 요새 가난한 청춘들은 집이 아니라 방을 전전하고, 그 단칸방도 월세가 지독하여 좁아터진 방만큼 숨 막히는 세월이라지. 사람에게는 창문이 필요하고, 마당이 필요하고, 나무와 새와 별과 구름과 햇살과 바람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은 당장 바꿔내야 한다. 모든 이들이 근사한 창문을 한 개씩 가지는 세상. 오버 더 레인보, 창문 너머 무지개가 뜨고 행복은 거기 있으니까.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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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라보라레(Laborare)’에는 ‘일하다’라는 뜻과 함께 ‘고생하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수도승 ‘프란체스코 드 살’은 말하기를 “각자의 구두에 작은 돌멩이들을 집어넣은 뒤 그걸 신고 길을 나선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했다. 다들 발바닥이 얼마나 아플까. 어느 라디오 방송에선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말로 방송문을 연다. 찡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는 멘트다. 고생 끝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세밑 창가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본다.

장 자크 상페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에 실린 글귀를 저 꽁무니마다 달아주고 싶어라. “내 포부는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라오. 이렇게 겨울비가 내리는 날엔 정든 낡은 스웨터를 걸치고 지내면 좋지. 오래전부터 즐겨했던 음반들도 좋아. (중략) 언제나 똑같은 꿈을 꿔. 펠레가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플라티니에게 공을 패스하지. 기차게 좋은 상황에서 내게 골을 넣으라고 다시 패스를 해. 나는 냅다 슛을 날려요. 그런데 비웃으면서 한 손으로 공을 막는 골키퍼는, 바로 내 마누라예요.”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가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위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생하고 와서도 정작 쉴 데가 없다.

하늘에 구름 떠가는데, 구름 속에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장. 파인텍 노동자들이 누리고픈 아주 소박한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 있다면 어서 지상에 내려와 흙을 밟는 일. 대지의 사람들과 국밥 한 그릇 나누는 일. 매번 국회의원들이 공을 가로막는 골키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시절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그믐밤. 세상에 ‘고생 끝 낙’이 한 번이라도 있었으면 바라며 축복을 빌어본다. 축복이란 밥상에 초대하는 것. 노동하는 이들에게, 배고픈 이들에게, 정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외로운 친구에게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의 말. 인류의 성인들이 날마다 했던 똑같은 말. 같이 밥 먹자는 말. 수고하고 고생한 노동자들은 밥 먹을 자격이 충분해. 종교인이나 정치인들도 밥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좀 식사자리를 같이하길. 침을 뱉고 멸시하며 무시하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굶주리고 아플 따름이다. 서로들 세심하게 존중하고 귀담아들어야 한다. 수고한 손들을 매만지는 밤이 되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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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선 여우를 영깽이라고 한다. 강원도민 율곡 선생이 십만 양병설을 주장할 때도 영깽이를 들먹이셨다는 우스갯소리. “왜눔들이 움메나 빡신지 영깽이(여우) 같애가지고요. 조총이란 것을 맹글었는데요. 쪼그마한 구녕을 뚤봐서 눈까리를 들이대고 존주어서리 들이 쏘며는요. 쎄사리가 빠지쟌소. 일이만은 택도 없고 십만 군사는 길러내야 떼까리로 뎀비도 끄떡없지비요.” 조선시대에도 야생에 흔했던 여우, 여시, 영깽이.

야생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는 사십대 초쯤 불곰에 습격당해 죽었다. 알래스카에서 대학생활을 했는데, 여우 사진을 많이 찍었다. 북극여우는 깜찍하고 귀여우나 먹이 앞에선 날렵하고 생존 능력도 뛰어나다. 연보랏빛 야생 크로커스가 핀 강가 둔덕. 가문비나무숲이 흐드러진 에스키모 마을. 바다표범 육포를 나눠 먹으면서 겨울을 나는데 배고픈 겨울엔 큰사슴 무스와 카리부, 여우도 사람 사는 마을에 출몰한다. 사진가는 “여우가 사람 길목에 나타날 때는 ‘아~ 정말 춥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술회한다.

덴마크 작가 요른 릴은 그린란드에서 16년을 살았다. 일기 삼아 쓴 &lt;북극 허풍담&gt;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폐지수집상이 하도 글씨체가 특이하고 내용도 재밌어서 출판사에 보내 빛을 보게 된 책. 어둠과 추위 속에서 개들을 기르고 곰을 사냥하고 여우를 만나는 일. 북극은 사람이 하도 귀하고 소중해서 비정규 인력이다 뭐다 사람을 괄시하거나 착취하진 않는데, 사기꾼들은 어디나 있다. “개벼룩을 함께 나눌 예쁜 여자가 있다면 좋겠네.” 허공에 키스를 날리던 고독한 아이슬란드인. 문명인들은 이 원주민들 상대로 사기를 치고 총을 팔고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바리장대로 사방을 두른 여관. 북극권 툰드라 캠프. 정성을 다해 먼 길 손님을 마중하던 원주민들. 주인은 마치 제 친척이나 자녀가 온 것처럼 손님을 맞았다. 장작불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첫 사냥길을 들려주던 그 촌로들은 이제 죽고 없어라. 카리부 사슴뿔이 걸려있는 북극 시골 여관. 앙금쌀쌀 다가온 북극여우가 불빛에 안도하며 살길을 찾던 집. 그런 여관은 이제 책 속에나 있는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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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키는 혹독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때 만난 이웃사촌을 평생 잊지 못했다. 시인과 매춘부, 나환자와 수녀, 부두노동자, 무덤 파는 인부, 묘지 경비원, 교수형 집행인, 도둑과 거지, 소매치기 사기꾼, 살인 수배자,  양치기, 열쇠와 시계제조공, 이발사, 마법사, 고물상, 곱사등이, 새장수, 낚시꾼 어부, 재봉사, 결핵환자, 떠돌이 악사들.

공동묘지 파는 인부는 무덤 팔 때도 아코디언을 짊어졌단다. 그는 지옥을 안 믿었다. 의로운 자는 거룩한 곳으로 가고 죄인의 영혼은 육체 속에서 벌레들이 다 파먹을 때까지 남는다 말했다. 그는 죽은 자를 위해 세속 노래를 연주해줬는데 불경스럽다며 신부에게 욕을 얻어먹었다. 고리키는 신부가 아니라 무덤 파는 인부를 성스럽게 여기고 글로 남겼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도 고생스러운 생애였다. 10대에 고아가 되어 막노동을 전전했다. 어찌 저찌 시인 소리를 들으며 행복도 잠깐. 장남은 콜레라로 병사, 차남은 자살. 큰딸은 정신병원에, 넷째는 병사. 우울증이 깊어진 시인은 추운 겨울 병상에 누워 성탄별을 보았다. “세상은 그래도 사랑하기에 좋은 곳이에요. 이런 곳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요새 무시는 쌩으로 묵어도 이상 달어라. 코가 잘래나가도록 추와야 단물이 싹 들지라. 사람도 추와야 잔 사는 거 같어부러. 더와서 쌔(혀) 내놓고 다닐 땐 사람이 아니재. 갱아지재.” 막 파낸 굵은 무를 한소쿠리 안겨주고 간 할매. “짐치 못 담궈묵겄스믄 기냥 깎어서 깍깍 씹어 자셔. 방구 냄시도 맛나고이.”

보해소주 잎새주를 마시는 이쪽 동네는 ‘보헤미안’이 아니라 ‘보해미안’ 랩소디. 무국을 마시면 간밤 술이 벌떡 깬다. “마마 저스트 킬 어 맨… 우우우….” 날마다 죽고 또다시 사는 신비로운 겨울나기. 명함도 보잘것없으며 아예 있지도 않은 이들이 눈보라를 견디면서 살아가는 산동네. 앞집에서 들바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뒷집이 춥고, 뒷집에서 산바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앞집이 추운 골목길.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우쭐거리면서 청기와집 인연을 자랑해댄다. 기와공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기와집을 자랑하는 머저리가 아닌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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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보이던 염소가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아기를 가져 배가 남산이 된 염소, 귀염둥이를 데리고 다니는 염소, 맴맴 돌다가 목줄에 감긴 염소, 우두커니 먼산바라기를 하는 수행자 염소, 뺀질뺀질한 양아치 염소, 안 가겠다고 삐대고(버티고) 앉은 떼쟁이 염소, 입삭낭구(잎사귀)를 죄다 뜯어먹고 배터지기 직전의 부잣집 염소, 졸다가 경운기 소리에 자망해서 뒤로 나자빠진 염소. 뿔자랑을 하며 깔짝깔짝 싸움을 거는 염소. 세상 뭐 있어, 디룩디룩 살찐 염소, 멀뚱멀뚱 똥개를 쳐다보는 염소, 부잡스러운 염소, 시부렁거리는 염소, 암컷을 쫓아댕기는 염소, 명주 솜털만큼 보드랍고 얌전하니 시말스러운 염소. 흑사탕처럼 검은 똥을 뻐르적뻐르적 싸놓은 염소…. 갑자기 하얗고 검은 염소들이 보고 싶어라.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하나.

김성동의 소설 <염소>는 여덟 달을 살다간 흑염소 빼빼의 이야기. 노랑내 난다고 소금을 한 주먹 집어먹게 한 뒤 칼잡이는 빼빼에게 덤벼들고, 순간 빼빼는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린다. 충남 보령 솔미마을. 입만 열면 “떠야지, 떠야 혀”라고 말하는 주민들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고팠던 빼빼. “편지해!”라는 청삽살이의 배웅을 받으며 장으로 끌려갔다. 중간 상인을 들이받고 잠시 자유를 얻기도 했다.

“내가 사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을 때, 나는 이미 힘없이 끌려만 다니던 어제의 염소가 아니라는 것을….”

빨강 에나멜 구두나 또각거리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염소를 만나러 북인도나 중동땅에 가고는 했다. 파키스탄에선 염소가 사람만큼 흔하다. 염소들이 맞아준 검은 밤엔 로티빵을 씹으며 염소젖을 먹어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사라지자 문득 보고 싶은 무엇들이 생기질 않던가. 하지만 다시 봄이 되어도 보기 싫은 얼굴들이 있다. 옥에 갇힌 적폐의 얼굴들. 그들을 누구 맘대로 석방 운운인가. 잠시 한뎃바람을 피하자는 겨울 염소도 아니고 말이다. 염소는 악마의 얼굴을 닮았다지만 진짜는 다른 데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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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김장철. 이 집 저 집에서 구수한 깨 볶는 냄새. 배춧잎의 새하얀 고갱이 향기가 또 얼마나 다디단지. 나는 김장김치를 얻어먹는 베짱이. 밭에선 할매들이 배추를 뽑아 다듬고, 나는 소나무를 성탄트리 삼아 별과 방울을 매달았다. 팝스타 스팅은 성탄 캐럴을 한장 냈는데, <겨울밤>이라는 음반. 앨범에는 팬들에게 띄운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다. “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녹음실에서 한해 겨울을 보냈어요. 피렌체 북부지방의 찬바람이 매서웠죠. 일곱명의 음악가들과 모직 코트를 껴입고 주방 난로에 둘러앉아 머그잔으로 손을 데웠죠. 녹음기간 11월부터 3월까지 그 지방의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 했어요. 어찌나 추운지 입김이 풀풀 나오고 길은 얼음장이었죠. 나는 어릴 적 깜깜한 새벽에 아버지와 우유배달을 하면서 자랐어요. 하얗게 쌓인 숫눈길을 걸었죠. 우유배달을 마쳐도 해가 뜨지 않았죠. 우리 집의 유일한 난방장치는 연탄난로였어요. 전등을 끄고 앉아 난로를 혼자 바라보곤 했죠. 붉게 타오르는 연탄과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하염없이 쳐다봤어요.”

나도 연탄난로를 보고 자랐다. 아래층 위층 두개의 연탄을 불구멍이 보이도록 갈아 끼우는 일.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고갤 돌려봐도 별수가 없었다. 콧속으로 매캐한 무엇이 훅 들어오곤 했다. 새벽예배를 위해 교회 난로는 살리고 목사관의 연탄보일러 불씨는 죽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은 아침 내내 추위에 떨었다. 미안했던지 목사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코코아를 컵에 가득 담아 건네시곤 했다. 아버지가 부엌에 나타나서 하신 일은 자신이 즐기시던 커피와 아이들을 위한 코코아를 타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그 코코아 맛을 지금도 기억하는 건 연탄보다 연탄과 맞바꾼 코코아가 훨씬 따뜻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케이크도 한조각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울케이크 한조각 주세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제발요. 이 집의 주인과 안주인, 복받으세요.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 모두 무럭무럭 자라길. 마구간의 가축과 문 앞의 개도 열배의 축복이 있길.” 스팅의 캐럴 ‘소울케이크’로 겨울이 시작되었다. 당신,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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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엔 거절밖에 달리 대책이 없다. 아무 데나 걸터앉아서 판소리를 내질러서야 되겠는가. 예전엔 여기저기 연재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써재낀 글들을 책으로 묶는 일은 낯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다. 세상에 사람은 많으나 사랑은 한 사람뿐이듯 내 글은 재주가 아닌 진심이고 싶었다. 그런 글을 찾아 살게 해주신 여러 은인들이 계시다. 감사한 인연들.

오래전 ‘샘터’라는 잡지에 수필 연재를 다년간 했었다. 하루는 샘터의 뒷방을 지키던 동화작가 정채봉 샘이 전화를 주셨는데, 무슨 이야길 나누다가 정샘의 글 가운데 ‘택시 번호 연하장’ 얘기로 미소가 번졌던 기억. “지난해 송년 모임에서였습니다. 친구가 수첩 중의 한 장을 끊어서 송구영신이라고 써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쪽을 들여다보니 웬 택시 번호가 줄줄이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심히 무슨 택시 번호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친구가 씩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금년에 너 태워 보낸 택시 번호들이야. 마음이 안 놓여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바깥으로 나오니 그날따라 눈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 우범 택시들 얘기. 옛날엔 통금에 죄다들 쫓겼고, 택시는 폭풍우에 뜬 유일한 조각배였었다.

택시 번호가 담긴 연하장은 아니더라도, 금테를 두른 반지가 아니더라도, 엽서와 감귤 한 상자 선물로 나누는 연말. 안부를 묻는 다정한 인연. 세상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친구’ ‘사람’이라던 말씀. 그날 정샘과 나눈 대화는 택시 번호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세상에서 나를 지키고 또 친구들을 지키며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물장수 두부장수, 푸성귀장수, 떡장수, 엿장수, 찹쌀떡장수, 메밀묵장수… 겨울 골목마다 손님을 찾아 서성이던 목소리. 막차를 타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호호 시린 손을 비비던 택시 운전수. “얼른 여와붑시다잉.” 부모님 허락에 벅차서 눈 내리는 밤길을 오래 서성이던 연인들. 돈 자랑, 집안 자랑, 권세 자랑, 다들 하는 자랑 속에서 당신의 유별난 친구 자랑. 그런 사랑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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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고꾸라진 나무는 땅심이 좋지 않음을 말해주네. 하지만 길 가던 사람들은 나무가 구부러져 볼품없다고만 흉보네. 바다에 떠 있는 근사한 요트보다는 어부의 찢긴 그물이 내 눈에 들어오네. 나이가 사십이 되자 소작농의 아내는 허리가 휘었다네. 나는 그 굽은 몸에 관해 노래하네. 아리따운 아가씨의 따스한 가슴은 외면한 채 말이네. 나도 사과나무에 피는 꽃을 제목으로 시를 쓰고 싶다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아무개의 연설에 분개하는 일에 마음이 앞서가네. 나를 책상으로 당겨 앉게 하고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역시 노여움이라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 총총한 시. 우리는 굵직굵직한 분란과 소요를 겪으면서 가까스로 예까지 살아왔다. 때마다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헤쳐온 길. 그러면서도 한편 “달새의 머리는 온통 달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다네. 비의 새는 온통 다음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하는 생각뿐. 우리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인도의 시인 카비르가 들려주던 ‘애초의 시’를 내 작은 가슴에 품은 지도 오래되었다. 자연에 깃들여 살면서 한껏 ‘자연주의’가 될 수 없었던 노릇은 우리 시대 시인의 동일한 운명일까. 돌보지 않으면 방안 곳곳 쥐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이내 마음 하나 챙기기도 쉽지가 않은 세월인데,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면 눈물만 한가득이 된다. 내 배만 채운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이 허기와 갈증.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서 숨져간 이웃들의 사연엔 손이 다 떨렸다. 이뿐만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행여 한 아이라도 외롭거나 가난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릅뜬 국민들의 눈과 노여움. 아이들의 웃음만 말고 아이들의 눈물도 엿볼 줄 아는 시인들이 많아져야겠다.

세계 상위층 부유함을 누리고 사는 우리들.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해야 원이 풀릴지. 이십대 자녀가 더는 쑥쑥 키가 자라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어리석은 부모나 마찬가지. 많이 가지는 일보다 잘 나누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때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오로지 사랑으로 혁명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오늘도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달새와 비새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노을보다 붉은 단풍이 번진 먼 산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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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아저씨가 밤새 퍼마시고 집에 들어오니 곤히 자던 부인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내질렀다. “새벽 두시예요. 차라리 더 마시고 곧바로 출근을 하지 그러셨수. 집에는 왜 들어와서 달그락거리고 잠을 깨냐고요. 나도 술을 못 마셔서 이런 줄 아슈?” 그러자 아저씨 대답.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시간에 문을 열어주는 집이 이 집뿐이라서 들어왔소. 미안해요잉.”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개 꺼내더니만 텁석 식탁 의자에 앉더라는…. 그 말이 우스워서 둘이 그 맥주 한캔을 나눠 마셨다는 훈훈한 결말.

밤을 새우는 열정. 무어라도 하나 열심히 끈기 있게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지.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이면 쉽게 쓰러지진 않을 사람. 연말연시 모임들이 많을 때다. 연말에 한번쯤은 꼭 만나 맑은 술 한잔 나누고 지나가야 섭섭하지 않은 벗들이 있다. 자주 만나진 못해도 소중한 인연은 꼭 지켜가야 한다.

인디언 기우제는 신기하다. 호피족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몇날 며칠을, 아니 몇달이라도 계속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그날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정성. 냉정하던 하늘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오기와 끈기. 애타하는 마음들이 모이면 하늘도 움직인다. 

호주 눙가바라 원주민들의 창조 신화는 재미있다. 어느 날 땅이 무지개뱀을 낳았다. 뱀은 이곳저곳 다니며 강줄기를 냈다. 강물 속에 개구리알 보따리가 생겨났고 뱀이 개구리의 옆구리를 간질이자 개구리는 웃음보를 참지 못해 보따리가 터져버렸다. 개구리들이 온 강줄기에 가득 찼다. 이제 개구리떼는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하게 울기 시작했다. 주구장창 울어댔다. 결국 비가 가득 내렸다. 나무와 풀과 꽃들, 캥거루와 코알라, 암사슴과 새들이 강물줄기에 기대어 살게 되었다. 비도 그렇지만 첫눈도 간절한 마음으로 빌 때 ‘펄펄’ 내린다. 첫눈 내리는 날 보자고 약속한 사랑이 세상에 있는 한, 첫눈은 올해도 어김없이 내릴 게다. 간절한 사랑과 소원이 없다면, 더는 비도 눈도 이 세상에 내리지 않으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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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씨는 심을 땐 구덩이에 쇠똥거름을 담뿍 준다. 발아 시기에는 해충을 이겨내도록 잎사귀에 재를 툭툭 뿌려주지. 가을이면 샛노란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가 어김없이 찾아온다오. ‘검은 재를 뒤집어쓴 소녀’란 뜻의 신데렐라. 호박공주라고 불러도 되겠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왕자님은 언제 만날까.” 아이들은 신데렐라 동요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즐긴다.

계모와 언니들은 착한 신데렐라를 왜 괴롭혔을까. ‘구박을 받았더래요, 불쌍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사랑을 받았더래요, 행복한 신데렐라’… 이런 스토리였다면 얼마나 좋아.

눈 내리는 밤, 노란 호박죽을 끓여먹으면 노란 보름달처럼 속이 다스워질 거야. 우린 이토록 정겨운 호박에다가 서양에선 악마 얼굴을 새겨 넣고 촛불을 밝힌다.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되었듯 요샌 핼러윈데이가 젊은이들의 축제. 반짝거리는 유리 구두처럼 환한 쇼윈도. 호박 등불을 밝힌 가게마다 유령 무도회가 밤새 열릴 것만 같아라.

이맘땐 이른 무도 덥썩 캐고 고구마도 풍년. 단감도 살찌게 먹는 시기. 무를 날로 깎아먹으면 방귀를 밤새 뀌게 된다. 일본에서 방귀를 가장 많이 뀌는 사람은 ‘아까끼고 또껴’씨. 천하의 짠돌이 구두쇠 ‘무라까와 쓰지마’와 ‘도나까와 쓰지마’ 형제들은 조선의 홍시 하나 남겨두는 마음, 그 넉넉한 마음을 꼭 배우길. 감나무 꼭대기에 남긴 감들이 주렁주렁. 밭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게 한다. 밭둑에 줄줄이 호박, 이달 하순엔 배추도 캐서 김장을 담그게 될 게다. 싸리울을 넘나들던 산비둘기도 논에 버려진 낱알을 부지런히 쪼아먹으면서 겨울 채비를 서두른다.

별똥 하나가 적막을 긋고 가는 오밤중. 나는 호박이 조르라니 앉아 있는 부엌을 오지게 바라본다. 달빛을 흠뻑 머금은 호박이 스스로 빛을 뿜고 있어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호박마차를 타고 집으로 갈 시간. 눈물은 뚝. 이제는 왕자님과 겨우내내 행복하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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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모임에서 벌어진 일. 각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손가락을 잘라야 할 성싶네요. 도박에서 헤어나질 못해요. 부인 몰래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삽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에요. 오늘도 사실 거짓말하고 이 자리에 왔어요.” “나는 요즘 누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배우자가 알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사내가 말했다. “나는 남의 말 하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것도 배나 부풀려서 말이죠. 이 자리가 파하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떠들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남의 말 하길 좋아한다. 그만 한 재미도 없겠지만, ‘카더라 통신’에다가 ‘주관적인 오해’도 적지 않다. 시골사람들은 순박해서 최소한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양동이 가득 톱밥을 떠 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쬐는 시간.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소설가 임철우의 <사평역>에선 역장이 톱밥을 ‘바께스’째 부어놓고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한다. “첫눈 얘기, 지난 농사와 물가에 관한 얘기, 얼마 전 새로 갈린 면장과 머잖아 읍내에 생기게 된다는 종합병원까지 화제는 이어진다. 처음엔 역장과 농부가 주연이었지만 차츰 여자들도 끼어들게 된다. 그들 중 음울한 표정의 젊은 사내만이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로다. … 톱밥 난로의 열기가 점점 강하게 퍼져 오르고 있다.” 데모를 하다 유치장에 잠깐 갇히고, 그 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대학생 청년. 젊은 날 내 모습 그대로여서 이 소설을 한참 사랑하였다. 소설엔 미친 여자도 등장하는데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또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녀는 오늘 막차를 타지 않았고, 역 대합실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겨울채비로 장작개비를 쪼갰다. 시꺼먼 연탄을 닮은 강아지, 아버지 고향이 시모노세키인 시바견 블랙탄도 놀러와 거들어 주었다. 시바 시모노세키. 무슨 욕 같아라. 남의 흉한 말, 남 얘기는 개한테나 들려주련다. 난롯가에 빙 둘러앉은 뒤엔 덕담부터 건네자.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을 나눠보자. 우리에게 있어 진정 귀중한 시간은, 앞으로의 삶일 테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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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아이들은 이름도 참 예뻐. 내 또래만 해도 나온 순서대로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어디 몸뚱이에 점만 보이면 점만이 점택이 점순이 점례. 이름이 진짜 점순이였던 누나 친구가 있었어. 점순이 누나는 하필 얼굴에 큰 점이 있어가지고 온갖 놀림을 받고 자랐어. 그동안 고산 오지만을 수십 차례 오르내리며 직사광선 자외선 마사지를 너무 많이 받고 다녔다. 눈 밑에 기미가 생기고 보이지 않던 점들이 우수수. 집에 틀어박혀 연속극이나 보면서 산다면 모르겠지만 사람들도 두루 만나고 해야 하는 처지라 병원에 한번 가봤다. 기미, 주근깨, 점을 레이저로 지지자고 한다. 일주일 꼬박 뭘 바르고 붙이고 하면서 치료를 했는데 깨끗한 얼굴로 돌아왔다. 구절초에 감국이며 쑥부쟁이가 피어나는 계절에 햇빛 구경도 못하고 책만 슬슬 읽으면서 추석 명절 앞뒤를 그렇게 보냈다.

남북 이산가족을 찾을 때, 해외입양아가 친부모를 수소문할 때, 몸에 특징이 될 만한 점이 하나 있으면 ‘왓따’다. 문어가 멸치에게 퇴짜를 맞은 이유는 뼈대 없는 가문이라서. 복점이 있는 여인은 콧대가 높고 기운도 알차서 어지간한 문어는 눈에 차지도 뵈지도 않아. 뼈대가 없으면 복점이라도 한두 개 박혀 있어야 한다. 잘생긴 부처님 ‘부처 핸썸’도 이마에 점을 하나 붙이고 계시지 않던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점 공방전’.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점 얘기. 싸리비를 들고 잠자리나 쫓던 스님이 내게 전화를 해서 다 물어본다. 나랑 같이 목욕탕에도 몇 번 간 사이. 그때 자기 점을 안 봤냐 하시는데 아니 사우나하면서 누가 남의 거시기를 쳐다보나. 게다가 스님 거시기를…. 돌았냐고 하면서 웃다가 전화를 끊으니 밤하늘에 별점이 한가득이나 우르르 떴어라. 병들어 일찍 죽었다는 점순이 누나도 하늘에 별점이 되어 나를 쳐다보는 듯해. 나도 이 별의 한 개 점 같은 존재. 고단하고 뻐근한 세월에도 복점이 하나씩 있으니 부디 견디라고, 견뎌보자며 그렁그렁해진 별빛들. 엎드려 웅크린 자리마다 꽃이 피듯 좋은 날 반드시 있을 거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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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으로 내려가면 지평선이 펼쳐진 동네. 수평선을 보며 살았는데 이처럼 들녘 끝을 보며 살게 될 줄이야. 대지를 달려온 세찬 바람은 태극기에 닿자 몽돌 해변처럼 찰파닥 소리를 낸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가을운동회를 기억하는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볼까 하다가 모래바람이 불어 무르춤하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높이 걸린 태극기는 K팝 아이돌만큼 신이 나서 혼자 춤춘다. 퇴근하고 돌아온 사오정에게 부인이 그랬다지. “퇴근길 힘들었나요?” 사오정이 깜짝 놀란 얼굴로 “태극기 흔들지 않았는뎅. 나 태극기 부대 아니영.” 사오정에게 귀팝 파라고 귀이개를 꼭 선물해주어야지.

생풀 냄새가 올라오는 들길엔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신중현의 노래 ‘미련’은 가을날 레퍼토리.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코스모스 길을 따라 늘어선 마을엔 굴뚝마다 노래만큼 하얀 연기도 흘러나온다. 세상엔 연기를 쿨룩쿨룩 내뱉는 굴뚝만 있는 게 아니더라. 나 바람을 삼키는 굴뚝도 보았다. 중동 사막땅 이란에 가면 ‘버드기르’라고 있다. 집집마다 ‘바람 탑’이 하나씩 높다랗다. 뜨거운 사막 바람을 잡아다가 물 저장소에 식히는 원리. 이렇게 시원해진 공기를 집안 곳곳으로 들인다. 이젠 우리나라 굴뚝도 폭염이 기승일 때는 이란의 바람 탑처럼 에어컨 역할까지 했으면 좋겠어.

코스모스가 춤추고 태극기가 춤추고 굴뚝엔 연기가 춤추는 가을. 의자나 평상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던 영감님들은 대부분 하직. 찡등그리며 쏘아보던 교회 댕기는 아짐씨들, 이제 제 앞가림도 벅찬 세월이렷다. 골목을 주름잡던 영감탱이의 담배연기가 그립다. 연기가 피어나는 곳엔 어김없이 사람이 살고 있지. 사람이 집에 머문다는 게 얼마나 온기 있는 노릇인지. 수십 채 건물이 있대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내 님’이 없다면 인간은 대체 어디서 위로와 온기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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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개를 묻은 단감나무는 통째 새들에게 주기로 했다. 봄날 슬펐던 수목장은 가을에 접어들자 조장이 되었구나. 감은 우리 개의 볼따구처럼 뽀얗고 발개서 내 마음은 더욱 아프다.

치아가 부실한 할매들 누구도 감을 따먹지 못한다. 자녀들도 참기름이나 고춧가루면 모르지만 눈독을 들이지 않아. 새로 이사 들어온 이들이 거창하게 농사를 벌이는 걸 보면 저걸 다 어떻게 뒤처리를 하려나 염려가 생긴다. 고추나무 서너 대, 배추밭 한 고랑이면 여름 내내 먹고도 남을 단출한 식구에 말이다.

스쳐 지나가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다가서면 고된 노동의 현장. 논밭이며 과수농장이 그렇다. 감을 따는 일도 고생이 막심인 일터다. 새들이 파먹기 전에 어서 수확을 서둘러야 하는데. 사람을 데려다 쓰는 일은 돈도 돈이려니와 노동력을 구하기가 일단 어렵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누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손해는 눈덩이. 단감은 5일장에 가져가보아야 누가 사가지도 않는다. 이런 소읍에서는 아그닥아그닥 단감을 씹어 삼킬 장정이 드물지.

차라리 밭에다 맨드라미꽃을 심은 정자지기 촌로는 마음부터 가벼워 보였다. 그런데 여쭤보니까 고개를 젓는다. “빈 땅 놀리기가 뭐햐서 심은 꽃일 뿐이재. 꼽사(꼽추) 맹키로 꾸부러진 양반들도 추수떨이를 하는디 영 미안해가꼬잉.” 마치 갠지스 강가에서 우아하게 요가를 하다가 들킨 것처럼 나도 마음이 저어했다.

“그의 인생은 부조리 수업을 위한 노트가 아니다. 메모 쪼가리가 아니다. 그의 인생은 똥을 치우는 것이다. 빨래하는 것이다. 바위에 빨래를 패대기친다. 물먹은 운명을 패대기친다. 어린 바라문들이 아름다운 요가를 하는 새벽 갠지스 강가에서. 그는 홀로.” 최승호 시인의 ‘불가촉천민’이라는 시. 인도 여행길에서 나도 똑같은 걸 보았다. 서양 여인이 섞인 요가 수련생들이 강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핏기 없는 화장터 노동자들, 숨을 꼴깍이던 풍경. 그래도 꽃이 피면 어디나 아름답다. 한가로운 농땡이 양반들도 있어야 마을이 조화롭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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