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밭이 소란스럽길래 물을 뿌렸다. 잠잠할까 싶었으나 웬걸 물 머금고 배나 더 웅성거림. 요샌 장미의 계절이야. 밥상처럼 수북하게 차려진 장미 넝쿨. 큼직한 장미꽃은 보리와 쌀이 반반 섞인 고봉밥을 닮았다. 저마다 한 공기씩 꿰차고서 옛 시절 토방에 앉아 밥을 먹을 때 장미꽃 냄새가 밥 냄새에 섞여 밥을 먹는지 꽃을 먹는지 모를 때가 있었지. 아버지는 목사관에 꽃밭을 배나 넓히고 계절마다 꽃을 보며 즐기셨다. 덕분에 식구들은 꽃구경을 원 없이 했고, 본받아 나도 꽃밭 가꾸기를 좋아하면서 이때껏 살고 있다. 부모가 무얼 좋아하는지에 따라 자녀 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 맹자 어머니 말씀이 하나 틀린 말 아니야. 부모님은 동산에다 염소와 토끼, 닭도 길렀다. 닭은 알을 낳아주었는데, 답례로 퇴비 거름더미를..

갑오징어 철이다. 인생 갑질 하는 재미야 모른다만 갑오징어 나올 때면 살짝 데쳐 초장이나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순간 일약 미식가 갑으로 등극. 오독오독 씹힐 때 어금니에 닿는 고소한 풍미는 둘이 먹다가 귀신이 죽어도 몰라. 갑오징어를 먹는 순간 내 팔자도 을에서 갑이 되어보누나. 여기에다 갑오징어는 까무잡잡 먹물이 찐득하고 꾸덕해. 이 먹물에다 소면을 삶아 비벼 먹어도 좋고, 오징어살을 찍어 먹어도 맛나. 어딜 가나 먹물들의 싹쓸이 판이렷다. 배운 놈들이 외려 수를 짜고 세를 보태 배나 지독하게 결속한다. 정말 악착같이 덤비고 물어 뜯으니 이생에서 잘들 먹고 산다. 그러니까 죄다 먹물이 돼보려고 발악 피똥을 싸는 거지.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학벌을 만들고, 학위를 자랑하고, 학연으로들 결탁한다. 갑오징어가..

동네 근처에 예비군 훈련소가 있다. 삐딱하게 군모를 눌러쓴 예비군들이 가끔 보이곤 해. 한동안 코로나19로 예비군 훈련이 없나 조용하던데, 앞으론 소집 훈련을 재개한다니 내 눈에도 띄겠군 그래. 예비군 훈련장 근처를 지나가면 확성기에 군가가 왱왱.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직장마다 피가 끓어 드높은 사기. 총을 들고 건설하며 보람에 산다. 우리는 대한의 향토 예비군. 나오라! 붉은 무리 침략자들아. 예비군 가는 길에 승리뿐이다….” 붉은 무리는 누구를 가리키는진 잘 모르겠고. 작곡가 이화목은 가수 정미조가 노래해 히트시킨 ‘개여울’을 작곡한 분. ‘비둘기 집’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랑’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는데 군가도 여러 편. 예비군들의 행진은 요쪽 말로 느려터진 싸목싸목(느린) 행진. 그러면..

1930년대 가수 남일연이 감칠나게 부른 노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거리에 핀 꽃이라 푸대접 마오. 마음은 푸른 하늘 흰구름 같소. 짓궂은 비바람에 고달파 운다. 사랑에 속았다오~ 돈에 울었소~” 장대비처럼 처절하게 불러 재낀다. 그러다가 팔십년대 지하 서클에서 불린 ‘돈타령’이 또 대를 이었지. “돈돈돈 돈에 돈돈 악마의 금전. 갑돌이하고 갑순이하고 서로 만나서 둘이둘이 사랑하다 못살겠거든 맑고 푸른 한강수에 풍덩 빠져서 나는 죽어 화초가 되고 너는 죽어 훨훨 날으는 벌나비 되어 내년 삼월 춘삼월에 꽃피고 새가 울 때 당신 품에 안기거든 난 줄 아시오.” 이런 노래를 배우던 지하조직이 간혹 있었다. 안기부와 공안 검찰이 만든 지하조직이나 서울지하철공사 같은 엄청난 규모의 지하조직은 관두고 냅두..

고수만 알고 먹는다는 고수나물. 식물시장에 연줄이 있는 후배에게 부탁해 구해다가 밭에 심었다. 쌉싸름한 맛의 방풍나물도 한판 구해서 같이. 올 초에 스님 동생이 하룻밤 자고 가면서 산나물 예찬을 어찌나 펼치던지. “뭘 먹는 걸 탐하고 그래.” “형님은 생각이 짧으시오. 혼자 살면서 아파봐. 누가 돌봐줘요? 건강하게 살다 죽어야지.” 옳다구나 맞아. 삶고 데친 나물 반찬은 명절에나 맛보는데 샐러드식으론 언제나 나물 맛을 볼 수 있겠네. 나물 반찬만큼 무침 요리가 먹고 싶을 때도 있어. 가까이 가자미 회무침을 잘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친구들과 가끔 방문. 회를 쳐서 먹고 식초를 가미한 회무침으로 먹기도 해. 무와 미나리를 넣고 지리탕을 끓이면 이렇게 봄비로 쌀쌀한 날엔 아랫배를 덥히고 역병의 인후통도 가라앉..

판소리 수궁가는 토끼와 자라가 주연, 용왕님은 조연. 해결사 자라는 이름만 자라고 절대 안 자면서 돌아다녀. 용궁에 끌려간 토끼는 간을 집에 두고 왔다면서 속임수. 육지에 나와설랑 냅다 도망을 치는데 그만 사냥꾼의 올무에 걸리고 말아. 두 번째 목숨줄이 위태. 마침 쉬파리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토끼의 애원에 도움을 주는데, 똥구멍에다 유충 구더기들을 실례. 거기다가 용궁에서 내내 참아온 도토리 방귀까지 뽀옹~. 사냥꾼들은 이걸 불에 구워 먹었다간 큰 병에 걸리겠다 싶어 토끼를 숲에다 내던져 버리고 간다. 토끼는 두 번 죽다 살아난 행운의 주인공. 사실 용궁 이야기만 알지 사냥꾼 이야기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또 자라는 어찌 됐을까 안 궁금해? 다른 약재를 들고 병든 용왕님을 살렸다는 게 정설. 하다못..

과거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잘되던 때가 있었어. 한 학생이 도무지 취업을 못하고 코가 석 자나 빠져 지내자 교수 면담. “교수님! 취업 게시판을 한번 보세요. 불문학을 전공했어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든 것 같습니다. 흑흑.” 학교 앞 취업 게시판을 보니 대부분 ‘전공 불문’이라고 쓰여 있었대나 어쨌대나. 지금은 대부분 대졸 이상. 하버드 유학파도 많아. 학벌만 높고 교양이나 따뜻한 심성이 없어 보인다. 학연, 지연에다가 직업이 같은 직연, 개신교 교회가 같은 개연(?)까지 쌓이면 막강 라인이 형성돼. 패거리 집단들이 어디서나 완장 행짜를 부리는지 몰라. 이런 세상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몰면서 변두릴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해. 볼일이 있어 나온 김에 자전거포에 들렀다. 카센터를 애용해야 차를 오래 타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각본집을 들썩거렸더니 개가 꼬리춤. “개가 뭔가를 쳐다보며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있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면, 더욱 흥분해서 꼬리를 흔든다. 껑충껑충 뛰기도 한다.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황금빛 저녁 햇살이 빛나는 버스 차창 밖으로 뜀박질 경주하듯 달리는 아이가 보인다.” 강아지도 아마 뒤따라 달음박질 중이겠지. 영화에 나오는 시골개처럼 두리번거리면서 봄밭의 할매들을 관찰한다. 마당 아래 빙 둘러친 견치돌 옹벽이 있는데 해마다 할매들이 돌틈에 호박 구덩이를 만들어 내 꽃밭과 마당까지 호박 넝쿨이 범람해. 잔디와 돌틈 철쭉나무들을 싹 덮어 죽게 만들고, 호박 한 덩어리 먹어보라 주지도 않음. 문제의 할매에게 올핸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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