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322건

  1. 2020.04.02 ‘오지’의 마법사
  2. 2020.03.26 불렀어유?
  3. 2020.03.19 신의 음성
  4. 2020.03.12 블루진 청바지
  5. 2020.03.05 이미자
  6. 2020.02.27 침 튀김
  7. 2020.02.20 예쁜 조약돌
  8. 2020.02.13 오줌싸개
  9. 2020.02.06 미나리 싹
  10. 2020.01.30 잔정
  11. 2020.01.23 땅거미
  12. 2020.01.16 토끼굴
  13. 2020.01.09 때밀이
  14. 2020.01.02 게릴라 쥐
  15. 2019.12.26 자작자작
  16. 2019.12.19 세밑 덕담
  17. 2019.12.12 거비거비의 프러포즈
  18. 2019.12.05 세상의 눈, 카타추타
  19. 2019.11.21 비밀기지
  20. 2019.11.14 기억 상실

맛난 방울토마토를 심어야겠다 싶어 장에 나갔는데, 모종이 야물어 보이지 않아 한 주 거르기로 했다. 더운 날 방울방울 영근 토마토를 보면 잠시 행복해지겠다. 

아이가 어릴 때 교회 마당에서 방울방울 비눗방울을 날리곤 했다. 어른들은 딱딱한 장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릴 때, 하느님은 그 시간 누구랑 함께 웃고 놀았을까. 주디 갈런드가 부른 노래 ‘오버 더 레인보’.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귀여운 강아지 토토에게 불러주던 노래. “무지개 너머 어딘가 높다란 곳엔 어릴 적 자장가에서 들었던 세상이 있어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이 맑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그곳에 있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요. 구름 따라 흘러갔다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요. 걱정 근심이 굴뚝 꼭대기에 걸려 있다가 레몬 즙처럼 방울방울 녹아버릴 그곳요. 그곳에서 날 찾게 될 거예요.”

온가족이 집에 머무는 요즘, 아빠가 붓글씨로 가훈을 적었다. “하면 된다!” 아이가 양면테이프로 벽에 붙이자 엄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빠 보고 다시 쓰시라 해라.” 아빠와 아이가 동시에 엄마를 바라봤다. “되면 한다!” 엄마는 이 한마디와 함께 쓸던 빗자루를 집어던짐. 헉~ 살얼음이 잠시 쫘악. 아빠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붓을 접었다던가. 

‘하면 된다!’의 세계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하면 된다!’의 세계는 왠지 불편하고 숨이 막힌다. 내가 이룬 마법은 야생초 꽃밭을 가꾸거나 산밭에 매실나무를 데려다가 꽃을 본 일. 나무아미 시불시불~ 염불 같은 시를 쓴 일. 거창하고 거대한 꿈과 성공은 양보하며 살아왔다. 오지에서 세상을 살리는 마법들을 펼쳐온 사람들. 변두리 생활이 피차 불편하고 고달파도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오지의 마법사들. 나누고 돌보며 살아가는 마법사들의 마을. 눈물을 흘린 뒤 무지개가 뜬 당신의 두 눈. 오버 더 레인보를 부르며 강물 따라 걷는 당신의 두 발.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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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꼬마가 엄마에게 그랬다. “엄마! 나 사랑하면 소원하나 들어줘잉.” “엄마는 널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버리고, 또 어떤 것이라도 가져다줄게.” 그러자 꼬마가 속삭였다. “그럼 아빠를 버리고 마트 아저씨랑 결혼해줘요. 과자를 정말 맘껏 먹고 싶엉.” 요 맹랑한 것.

아이들이 긴긴 방학을 보내고 있다. 밥해서 먹이느라고 젊은 엄마 아빠들이 고생 많으시겠다. 과자도 많이 먹을 텐데, 봄에 이빨이 썩으면 치과 병원은 가을에 추수를 하겠지. 이빨이 빨리 썩으면 새 이빨이 얼른 나겠다. 뭐든지 좋게 생각하기. 하루는 지나가던 아재가 그만 새똥 벼락을 맞았다. “에잇 더러워. 저눔의 새 똥구멍을 그냥~.”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여보! 얼마나 다행인가요. 황소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생각해봐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우왕. 그랬담 세상이 똥바다 됐겠네. 오랜 날 행복하게 사는 부부를 만나보면 공통된 모습이 있단다. 한쪽에서 말을 많이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말을 열심히 듣는 편이란다. 다만 듣는 쪽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공통된 답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흘려듣는 것. 삭아서 담을 게 없는 사그랑주머니를 갖고 살면 앙금이 하나도 없이 평안 모드. 지저분하고 모진 말을 가슴에 쌓아두면 똥이 되고 독이 된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확신하며 살자. 그러려면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비뚤어지거나 잘못된 길을 가려 하면 꿈에서라도 나타나 뜯어말릴 것. 하느님이 몰래 우리나라에 찾아와 길을 걷는데, 햇볕이 따가워서 ‘갓’을 쓰고 다녔단다. 그러다 어떤 충청도 양반을 만나게 되었다. “저기 아저씨. 길 좀 물어 볼라는데요.” “갓 불렀어유?” 허걱~ “갓 블레스 유, 신의 가호를 빕니다.” 정체가 탄로나 버렸네. 그래서 한국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셨다는 싱거운 얘기. 우리는 서로를 축복한다. 이 어렵고 추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반드시 있길. 갓 불렀어유?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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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답답한 일이 생기면 바다에 성큼 가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바닷소리가 좋더라. 음반더미 속에 파묻혀 살며 지내지만, 미안하게도 내 영혼을 씻겨주는 바닷소리만 못하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부터 하려들 것이 아니다.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보여주어라.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면 기꺼이 배를 만드는 데 손을 거들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잠언이다. 바다를 깊이 만난 사람과 만나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말꼬리 잡길 좋아하고 비뚤어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배배 꼬여서 동의하지 않고 어깃장을 놓을 게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에게 바다를 소개하는 말은 이처럼 설명 불가. 바다를 만나고 파도에 몸을 맡겨 헤엄쳐본 사람, 뱃고동 소리와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의 찰싹대는 소리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어려서 배를 한 척 갖고 싶었다. 선착장에 묶여 있던, 배라고 할 것도 없는 뗏목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또래 동무와 그놈을 끌어내 바다로 진출해보았다. 항해는 한 시간도 채 못돼 어선에 발각되어 끌려왔다. 성공했다면 시방 신문에 표류기를 연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착장과 멀어지면서 들리던 바닷소리는 매우 고요했다. 동무도 순간 겁을 먹었는지 낯빛이 하얘졌다. 그때 구출하러 온 뱃고동 소리가 수차례 들렸다. 불가에서는 해조음이라 하여 바다에 감긴 모든 소리를 염불이라 한다던데, 자비로 가득한 염불의 공덕을 만났던 장면이다. 

겁이 없는 자들이 꼭 문제를 일으킨다. 이웃과의 관계를 고려치 않은 안하무인 제멋대로가 큰 사달을 낸다. 제 말만 고집하는 요란한 세상에 굽히고 따르는 나직한 말, 경외심과 겸손이 묻은 말을 사모해야 한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찬송을 부르면서 바다로 예배를 드리러 가자. 신의 음성을 듣기엔 사실 예배당은 좁아터진 데다 상업 광고가 너무도 많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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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바다빛깔 블루가 인기라고 한다. 패션과 가구, 그림과 사진, 창틀과 지붕 색깔에도 블루가 자주 눈에 띈다. 승용차 색깔도 블루가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청바지 차림의 선남선녀들이 봄기운을 가득 몰고 왔다. ‘아침이슬’의 가수 양희은씨는 한때 청바지 통기타 세대의 상징이었다. 양희은씨 어머니는 양장점을 하셨단다. 대여섯살 때 육촌 오빠의 닳은 청바지를 물려받았는데, 엄마가 한쪽 무릎에 예쁜 튤립을 수놓아 입혔다고 한다. 고2 생일 때 처음 맘보청바지를 엄마가 사줬는데, 교복 이외엔 그 청바지로 멋을 부렸다고. 엄마의 양장점엔 패션잡지들이 많아서 영화배우 알랭 들롱과 제임스 딘이 즐겨 입던 인디고 블루 청바지 사진을 오려 간직했단다. 그녀는 모교 서강대와 서소문 동양라디오, 노래하던 명동 카페촌, 후암동 자택을 오가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청바지 차림에 기타를 둘러메고 김민기 아저씨 노래들을 불렀다. 그녀가 입은 청바지는 신세대의 강인함과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권위적인 양복과 한복저고리에서 벗어난 평등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불황엔 짠돌이들이 살아남는다지. 누가 불황 탈출비법이라고 몇마디 조언. 술자리가 이어지면 가장 싸게 나온 데서 재빠르게 계산할 것, 선배들을 가까이할 것(한국에선 선배가 주로 계산), 1인분씩 줄여서 주문할 것, 교통비가 싼 한국에선 대중교통이 남는 장사, 냉면사리를 곱빼기로 시킬 것(그래야 고기값을 아낌), 헌 옷을 고쳐 입고 질긴 청바지를 애정할 것, 나돌면 돈이니깐 집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텔레비전으로 세계 여행, 가진 땅이 없으면 하늘을 자주 쳐다보며 햇볕을 쬘 것(하늘은 당신의 소유). 재밌기도 하고 좀 얍삽하기도 한 그런 소리!  

나는 어려선 청바지가 별로였는데, 요새는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이제서야 청춘인가. 굼뜨고 늦터진 인생. 소문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렷다. 당신이나 나나 조금은 더 ‘전성기’여도 괜찮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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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가장 실세라면 신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씨라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 행사가 죄다 취소되어 파리 날리겠지만 이미 벌어 놓은 돈이 솔찬하겠다. 이 글을 혹시 본다면 사인본 음반이라도 보내주슈! 가인씨 손전화기 번호가 저장된 사람이라면 실세 중 실세 인정.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이미자 여사의 팬이니까 굳이 팬심을 바꾸고 싶진 않아라. 스캔들 사연이라곤 없는 가수 노사연, 절대로 통통배를 움직이며 해운 사업을 하면 안되는 배철수, 잠이 너무 많은 트로트 뽕짝의 여신 이미자. 누구 말마따나 잠이 보약이고 잠이 최고여서 이름도 이미자.

사회적 거리를 두라길래 집에 가만히 있는데, 막걸리를 받아놓고 파전 김치전에 매생이굴국 끓여먹으면서 국가 지침을 준행하며 지내고 있다. 살이 찐다.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 이 사태가 끝나면 살부터 빼야 한다. 심심하니 늘어진 테이프도 당겨서 들어보고 CD, LP 음반도 꺼내어 닦는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월드뮤직 선생 소리를 듣고 사는 이 몸. 그러나 남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는 <KBS 가요무대> 프로에 등장하는 구수한 옛 노래들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 마포종점, 향기 품은 군사우편, 과거를 묻지 마세요, 목포의 눈물, 번지 없는 주막, 동백 아가씨, 추억의 소야곡, 삼다도 소식, 하숙생, 단장의 미아리 고개, 홍도야 울지 마라… 좋아 미친다.

돌아가신 형님의 외아들 조카가 이번에 섬마을 학교로 발령이 났다. 비금도, 멀기도 한 섬이다. 섬마을 선생님이 된 거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틀어놓고 가사를 음미한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 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찬송가보다 뽕짝을 더 애정하는 나는 밖에선 많은 사랑을 받는데, 교인들에겐 많은 미움을 사는 거 같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교주가 될 팔자는 절대로 아닌 것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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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촐촐 내리면 ‘급’ 튀김이 먹고 싶다. 나는 고구마튀김과 오징어다리튀김을 좋아해. 당신은 야채튀김이나 김말이튀김. 섞어서 맛이라도 한번 보자. 선생님은 침 튀김. 강의하실 때 침 튀김이 많은 샘을 만나면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곤욕을 치르게 된다. 무림의 고수 도올 샘은 침 폭탄과 자기 자랑만 덜하시면 얼마나 좋아. 목사 신부는 신도들과 멀리 떨어져 설교를 하니까 침 튀김이 덜해 보일 뿐. 요샌 대형스크린 영상으로 줌을 해서 보여주는데, 가까이 앞줄에 안 앉길 잘했다는 이들이 생긴다.

한 신부님이 하도 담배를 자주 태우셔서 여성 신도 한 분이 한마디. “신부님. 이제 담배 끊으셔야 해요. 매너 없게 숙녀들 앞에 놓고 태우시는 것도 좀 그래욧.” 그러자 신부님은 한 모금 더 쭉 빨더니 “자매님. 천사처럼 아름다운 분들이 이렇게나 많으신데 구름이 빠지면 말이 됩니까. 천사들에겐 구름이 있어야죠.” 허~ 틀린 말도 아니네. 장황한 말로 침 튀김 맛보는 거보다 구름과자가 더 나을 수가 있지. 

사이비 종파나 격정을 다해 암기된 말을 쏟아내는 법. 방송인과 정치인들이 ‘애드리브’로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들, 억양이 센 침 튀기는 말들도 그래. 마음에도 해롭고 몸에도 해로운 말이다.  

사랑하는 사이는 침을 나누지. 키스를 통해 전염되고 감염된다. 하나의 종말론적(?) 운명공동체가 되는 게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서 굳이 침 튀김을 시켜먹을 이유는 없지. 

행여 호흡기로 뭐가 들어올라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옛사람들은 역병이 창궐하면 옷감 베로 얼굴을 전체 가리고 다녔단다. 설렁탕, 곰탕, 매운탕, 내장국, 콩나물국, 김칫국 뜨거운 국물 음식을 두루두루 ‘나눔’하려고 음식이 그리 발달한 것이라 하더라. 우리는 어느 시대나 위기를 헤쳐온 불굴의 깡다구 겨레. 너무 멀어 안 들려서 그렇지 힘내라며 세계의 친구들이 응원 중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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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골목에서 만났던 반도네온 연주자를 잊지 못한다. 탱고엔 반드시 반도네온이 있어야 제맛이지. 탱고가 두루 퍼진 까닭이 있다. 당시 사교 무도회엔 왈츠나 추는 정도.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나 좀 잡는 스킨십이었는데 탱고는 깊은 포옹까지 거침없었다. 유럽으로 건너가선 콘티넨털탱고라 하여 점잖은 탱고로 바뀌기도 했다. 반도네온 자리에 유사품 중후한 아코디언을 쓰고 말이다.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확실히 뭔가 달라. 진한 반도네온 맛에다 탱고 춤꾼들의 ‘밀착’이 장난 아니다. 무희의 허리가 으스러질 지경.

간밤 펄펄 눈이 내렸는데, 탱고를 추듯 눈발이 춤을 추었다. 나도 덩달아 설뚱해서 숫눈밭에 발자국을 남겼지. 춤추는 인디언처럼 모카 가죽신은 아니라도 장화를 꺼내 신고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눈발자국이 마치 춤꾼의 스텝 같았어.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 

스키장에서 물을 얼려 만든 가짜 설빙 말고, 하늘에서 내린 진짜 눈발은 감격스럽다. 사람도 생각도 진짜를 만나야 가슴이 뻥 뚫리고 눈이 뜨인다. 아이들 친구 ‘펭수’ 말고 진짜 펭귄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수컷 아델리 펭귄은 눈밭 얼음길을 헤매고 다니면서 암컷에게 줄 조약돌을 진종일 고른다. 예쁜 색깔의 돌을 모아 신혼둥지를 쌓고, 직접 구애 선물로 바치기도 해. 완벽한 조약돌을 찾아 온 해변을 뒤지고 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단다. 얼마나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지 남극 과학자들도 따라서 울 지경.

발끝에 조약돌을 바치자 암컷이 마다 않고 집어 물면 프러포즈는 대박 성공. 곧바로 탱고 춤을 추러 얼음산 밀롱가로 사라진다. 얼음계곡을 지나온 바람소리가 웨딩마치로 울려 퍼지는 순간이렷다. 

함부로 마구발방하는 세상에 귀하고 소중한 말과 마음을 내밀어야 한다. 무례하고 해악한 말, 날이 선 짱돌을 집어던지는 짓을 재미 삼은 자들도 있다. 조약돌을 찾듯 고운 말을 골라쓰는 이들은 복이 있다. 인생의 은인들을 꼭 만나게 되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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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훈의 단편소설 ‘졸피뎀과 나’에는 가난뱅이 작가 청년이 등장한다. 어깨는 넓지만 종아리가 가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아버지는 밑구멍이 째지는 형편에도 달마를 닮은 돌덩어리 수석을 1000만원에 사오는 한심한 인간. 하루 종일 신세한탄만 주절대다가 멋진 차를 타고 서둘러 퇴근하는 사촌형 빵집사장. 엄마와 청년은 자정까지 빵 만드는 노동을 하고 허리가 고꾸라져 귀가한다. 빵집 형수는 호텔 연회에서 “도련님! 고기에서 흙냄새가 나지 않아요? 비린내가 나요”라면서 시건방을 떤다. 연립주택의 반지하방. 창문도 북향이라 햇볕도 없는 집. 사도들이나 살 법한 카타콤 같은 지하세계를 전전한다. 정신병원에서 지낸 한때의 이력과 감정기복이 심한 여자들과 지난한 연애사, 6평짜리 원룸으로 이사한 뒤 야뇨증으로 실례한 이불을 널던 가을밤의 풍경 등등. 흡사 영화 <기생충>의 시나리오 같은 얘기들이 똑같이 펼쳐진다. 

나도 어렸을 때 야뇨증을 잠시 앓았다.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지렸다. 누이가 오줌싸개라고 놀리면 더 심해졌다. 평생 처음 한약을 달여 먹기도 했다. 효능은 딱히 없었다. 변소는 멀고 외딴곳, 무서웠다. 캄캄한 밤중에 그곳까지 혼자선 못 갔다. 교회에 얹혀살았기에 거룩한 공간이라는 반복된 주입도 어린 나를 괴롭혔다. 지금 같아선 십자가 강대상 밑이라도 시원하게 오줌을 갈겼을 텐데. 

어느 날 엄마가 조그만 요강을 하나 내게 안겨주셨다. 오직 나만의 요강. 만수무강, 만수에겐 요강이 없다는 뜻. 그러나 나에겐 요강이 생겼노라. 이후 야뇨증은 씻은 듯 없어졌다. 

지금은 몇 걸음이면 안방에서 변소까지 가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이 때론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한지 알게 되었기에 악령, 귀신 따위 믿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아. 목사란 목표가 없는 사람, 제때 오줌 눌 일 말고는 세상에 무슨 떨칠 만한 목표 따위 없다. 그러니 오줌싸개여도 괜찮아. 적당히 가난해도 괜찮아. 졸피뎀을 먹어야 잠들 수 있는 당신도 괜찮아 다 괜찮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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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어서 마스크를 벗고 봄나들이 가고파라. 택배가 와서 나가보니 간밤에 내린 눈이 마당에 살짝 뿌려져 있다. 귀한 눈이라 강아지랑 둘이 행복하게 밟아댔어.

얼마 전엔 북해도에 잠깐 일이 있어 다녀왔다. 눈이라면 원 없이 보고 왔지. 영화 &lt;러브레터&gt;의 오타루엔 오금이 저릴 만큼 차가운 독일식 맥주 ‘오타루 비루’가 있다. 농부들과 어부들이 목을 축이는 곳.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어보았다. 눈이 무릎까지 차는 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그곳 북해도에서 농업대 선생을 지낸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의 배금 성장주의에 일격을 가한 ‘무교회주의’의 스승이다.

나는 선생이 머문 교정 공원에 이르렀다. 자연을 노래한 선생의 글 일부다. “자연은 그해를 선하든 악하든 모든 사람에게 고루 비추고, 빗물도 그러하다. 지진 벼락으로 극장과 교회를 무너뜨리고, 바다에 유빙을 놓아두어 목사와 도박사를 동시에 수장시킨다. 같은 병균은 신자나 불신자나 가리지 않고 감염시킨다. 착한 사람이 운 나쁘게 되는 수가 있고 악한 사람이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자연 앞에서 선악정사의 구별이 없다. 더구나 죽음은 만인에 대한 최후선고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치자면 일본이 세계 으뜸이나 사람의 마음이 부패한 것을 치자면 일본은 최악이다. 산이 푸르고 물이 맑은 곳마다 훼손하여 모두 도박과 열락을 탐하는 곳이 되었다. 아아,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자연은 북해도나 이곳 남녘이나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데 사람 사는 것은 매일반인 것 같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겪는 이 재앙 앞에 조속히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머리를 모아야 하겠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해마다 미나리 싹이 푸르게 솟고 푸짐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미나리 싹을 낳고 기르던 땅별이 우리 인간들 때문에 많이 아프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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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무슨 대소사에 기웃거리는 일에서 자유로워졌다. 세상에 남은 인연이 있다면 잔정을 느끼는 사이, 잔정을 나누는 사이뿐. 가령 물을 한 컵 달라고 하면 컵받침에 건네주는 손길이라든지, 어디 멀리 떠나는 여행길에 여비를 쥐여주는 거친 손의 친구에게 마음이 스민다. 그 친구를 위해 선물을 고를 때 가슴이 뛴다. 잔핏줄에 잔정이 돌아야 세상 살맛이 생겨난다. 

중국도 시골로 갈수록 정이 많고 눈물이 많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술을 권하고 담배를 권한다. 어떤 할머니는 백세쯤 되어 보였는데, 길에서 쪼그려 담배를 권하는 이들을 보고 나무랐다. “어이 젊은이들. 담배가 무엇이 좋다고 여태 피우나. 나도 작년에 끊었다네.” 건너편 담벼락엔 정이 무척 많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마침 정거장 곁이어서 담벼락에 자전거를 대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 괴로웠다. 담이 기우뚱할 지경이었다. 세우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를 않아. 그래서 할아버지는 잔정을 베풀기로 했다. “여기 세워둔 자전거를 공짜로 드립니다.” 담벼락에다 써 붙였더니 그날 한 대도 남지 않고 자전거가 모두 사라지는 기적. 신종 폐렴의 진원지로 중국을 겨냥하여 혐오하는 말들이 사납구나. 중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입조심을 한다. 그러고도 정 많은 사람은 불행한 일이 닥치면 원망과 공포가 아니라 보호의 기도와 사랑의 기운을 그러모은다.  

지중해 변방에서 태어난 작가 칼릴 지브란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보스턴의 시리아촌에서 지브란은 바느질 일감을 날랐다. 어머니와 형과 누이가 연달아 결핵으로 죽었다. 청년은 하나 남은 여동생을 데리고 골방을 전전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전시했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때 이방인을 향해 정을 보인 여인 메리 헤스켈을 만나게 된다. 또박또박 잉크를 찍어 감사와 시심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시인의 우정이고 잔정이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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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쪽 원주민 검은 발족의 추장 까마귀 발의 노래다. “삶은 이와 같은 거라네. 어둔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 겨울 한복판에 들소가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 푸른 초원을 달려가다가 땅거미 지는 노을에 사라져가는 작은 그림자.” 들소의 코에서 훅훅 나오는 콧김이 떠오른다. 그리고 땅거미. 거대한 평지 대륙에 드리운 어스름이 그립다.

저녁의 느낌은 늘 찌릿하다. 가수 김목인은 말했다. “밤이 오기 전 하늘은 살짝 밝아져 있었다. 슈퍼 앞 평상의 아저씨는 맥주 한 컵을 들고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타이르는 소리. 저녁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다세대주택 골목 어딘가 드리운 저녁. 옥상에서 보이는 건너 공터의 땅거미. 개가 누런 똥을 한 덩어리 누고 뒷발질을 해대는 소리. 아직도 골목을 누비는 두부장수와 칼갈이 아저씨. 창틀과 방충망을 고치는 용달 트럭의 반복되는 스피커 소리. 장 자크 상페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달음질치며 내뱉는 소리들. 명절이 다가오면 떡 방앗간이 분주해지지. 세상이 암만 빵빵 빵집만 생겨나도 변두리는 아직 떡떡, 찰떡 시루떡 좋아하는 이들이 살지. 땅거미가 지면 검은 깨떡이 생각난다. 예전엔,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 외치고 다니던 고물상 엿장수가 해가 저물기 전에 떨이로 다 팔고, 엿장수 맘대로 가위질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엿장수의 노래가 구성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 에구구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는 할매는 저녁밥을 짓는다. 혼자 밥 먹은 지도 수수십년은 된 거 같아. 물을 말아 먹는 밥에 김치 한 조각. 호물호물 씹지도 않고 삼킨다. 이 동네에서는 삼킨다고 안 하고 생킨다고 해. 물도 마신다가 아니라 생킨다고 하고. 어둠을 삼키는 땅거미. 현대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어스름 시간을 못 느끼고 산다. 푸른 들판을 달리는 땅거미. 내 작은 그림자. 또 당신이라는 인생. 새해에도 부디 평안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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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 토끼를 따라가는 샛강 어귀나 노출된 사암층 어디.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슬오슬 춥다. 토끼털처럼 따스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서야 한다. 토끼 똥이 보이면 근처에 분명히 토끼굴이 있을 거다. 토끼를 뒤에서 부르면 휙 돌아보는 까닭은 눈이 뒤에 없기 때문. 시시한 수수께끼.

시베리아 하고도 바이칼 호수에 얼음이 땡땡 얼었겠다. 용기가 대단한 토끼는 앙가라강 얼음강을 건너기도 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얼음호수를 내다보면서 꼭 토끼굴처럼 생긴 조그만 사우나 공간에 들어가 ‘바냐’를 즐긴다. 나도 러시아에 가면 종종 바냐를 해보곤 한다. 자작나무 잎사귀로 등때기와 허벅지를 자근자근 때리면서 더운 물을 뿌린다. 바냐란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 한 집에서 자작나무를 쪼개 불을 때고 바냐에 초대를 하면 주민들이 보드카와 빵과 청어조림을 들고 모이게 되는데, 어지간한 마을 대소사는 이 바냐 시간에 결정이 다 된다.

달구어진 돌덩이를 바라보며 토끼처럼 빨간 눈으로 이눔의 스키 저눔의 스키 수다를 떨어댄다. 뒤에다가 스키만 집어넣으면 무조건 러시아말 중급. 20도 30도 40도짜리 술을 나눠 마신다. 그러다보면 ‘졸도’할 수도 있다. 토끼굴 바냐를 마치고 나와 횡단열차에 오르면 출출하여 도시락 라면을 사먹게 된다. 러시아에서 ‘도시락’이라는 상표의 네모진 컵라면은 그냥 라면을 뜻하는 대명사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 도시락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기차는 24시간 따뜻한 물을 제공한다. 온수를 붓고 기다리면서 젓가락 대신 포크를 만지작거린다. 토끼가 배춧잎을 조근조근 씹듯이 라면줄기를 후루룩 쩝~ 하고서 밖을 살짝 내다보면 하얀 눈이 삽으로 퍼서 뿌리듯 내려싼다. ‘눈에 맞아서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다가 마구마구 내린다. “펄펄 눈이 옵니다, 마구마구 눈이 옵니다….” 토끼굴 같은 기차칸에서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하며 어디론가 저마다들 흘러서 간다. 당신은 시방 어디로 가는 길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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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사우나 시설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다. 하지만 산골 누옥이라도 욕실이 일단 잘돼 있고, 같이 사우나 갈 친구도 없어 온천을 소 닭 보듯 하고 산다. 

아부지 생일이라며 아들이 백만년 만에 찾아왔다. 얼치기 실력으로 미역국을 끓이더니 둘이 온천에도 가잔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홀딱 벗고 노천탕에 앉아 비 구경을 했다. 장성한 아이랑 간만에 행복한 순간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멸치국수에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아이에게 옛날 목욕탕 이야길 해줬더니 배를 쥐고 웃는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서로 부탁하여 등의 때를 밀곤 했던 기억들을 들려주었다. ‘때밀이 세신사’에게 맡기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냔다. 

돈을 아끼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 사이 정이 많았던 시절. 모두가 때밀이가 되어 등에 낀 때를 닦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대를 우애롭게 건너왔다.

경상도 할매들이 교회 앞 평상에 앉아 이런 이야길 했단다. “예수가 죽었다카든데.” “와 죽었다카드나?” “대못이 박혀가 그래 되따 안카드나.” “글마 머리 풀고 다닐 때 내 알아봤데이.” 지나던 할매가 앉더니 “예수가 누꼬?” “며늘아가 아침저녁으로 아부지 아부지 캐사이 바깥사돈 아니겠나.” “보이소. 글마 거지다. 손발에 때가 껌디이같이 끼고, 산발하고 다니질 않트나.”

예수도 때를 밀려고 자주 물가로 나갔다. 늙은 까마귀가 우는 물가에는 때밀이가 서 있었을 게다. 인생은 머잖아 염사가 기다리고 있어 시신을 정성껏 닦아준다. 

중국 허난성의 소설가 옌렌커의 소설 &lt;연월일&gt;을 기억한다.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는 같이 오줌을 누고 몸을 닦는다. 늑대와 대치하면서 옥수수 밭을 지키다가 끝내 눈을 감는다. 그들의 죽음은 매우 엄숙했다. 개와 정이 들어 함께하다가 따로따로 죽는 장면은 서럽고도 쓸쓸했다. 마지막으로 눈곱을 떼어주면서 할아버지가 우는 소리 같은 비바람소리. 

오늘은 때가 낀 세상을 씻어내는 바람과 빗소리가 요란한 하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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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쥐가 난다고 할 때 쥐가 있고 굴을 파서 드나드는 긴 꼬리 들쥐가 있다. 다람쥐나 박쥐는 쥐하고는 한패가 아니지만 도리 없이 이름표를 붙이고 산다. 물속에도 쥐가 사는데 쥐포를 해서 먹는 쥐치가 그것이다. 주둥이가 쥐처럼 길어서 아마 쥐를 갖다가 붙인 거 같다.

 

한번은 목사관 내 처소 다락에 다글다글 쥐가 살았다. 하도 시끄럽게 뛰노는 통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쥐 끈끈이를 놓기도 하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가히 신출귀몰이었다. 퇴치 기도를 해도 전혀 안 먹혔다. 아무튼 나는 목사로서도 자질이 여러모로 부족. 쥐가 조용한 순간은 사람이랑 매우 비슷했다. 첫째, 내 이야기에 귀를 모으는 중이거나 아니면 둘째, 내 이야기가 지루하여 조는 중. 셋째는 이제 저 차례, 다른 할 말을 준비하는 순간. 그러던 어느 날 슬그머니 쥐가 사라졌다. 밖에 한가득 놓인 개밥그릇을 치우고, 매달아 놓던 옥수수까지 죄 대피시킨 때문 같았다. 게다가 들고양이가 찾아오면 참치 캔을 따서 공손하게 바쳤다. 사냥꾼에게 대접을 했더니 효과가 금방 생겼다. 쥐들도 별수 없어 줄행랑.

그래도 끝내 고집을 부린 놈이 있었는지 고양이가 놈을 물어다 마당에 보란 듯 놓아둔 적도 있었다. 그냥 이사를 가지 왜 고집을 피워 죽임을 당했을꼬. 고집불통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목수도 절대 고칠 수 없는 집이 바로 ‘고집’이라지 않던가. 고집 센 놈치고 잘되는 꼴을 본 기억이 없다. 이후에도 가끔씩 쥐와 밀고 당기는 동거는 계속되었다.

산골에 살면 쥐와 대면은 일상에 가깝다. 쥐꼬리가 스윽 지나가거나 들쥐가 낸 구멍들을 발견한다. 쥐가 살면 뱀도 살고 고양이도 따라 산다. 높은 하늘에서 정찰하는 매도 보인다. 떼어놓고 나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이렷다. 쥐들 가운데는 게릴라 쥐들도 있다. 일개 이름 없는 쥐들의 승전보를 기대하는 새해다. 크고 이름난 쥐들이 세상을 온통 갉아먹고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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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가 타는 소리는 자작자작. 눈밭에 선 자작나무가 보고 싶은 겨울이야. 올해는 말이 늦터진 아이처럼 눈다운 눈이 안 내리니 속이 다 답답해라. 자작나무를 바라보면서 뜨거운 술을 자작하고 싶구나. 

혼밥 혼술을 하는 것도 자작이라 한다. 만화가이자 수필가인 쇼지 사다오는 혼밥 혼술의 대가. 그의 ‘자작 감행’이라는 수필 한편을 읽었다. “자작할 때는 병맥주보다 도쿠리(목이 잘록한 술병) 쪽이 좋다. 도쿠리를 집어 든다. 적당량을 술잔에 따르고 원래 있던 곳에 도쿠리를 내려놓는다. 엄지와 검지로 술잔을 쥔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술잔을 입 쪽으로 가져간다. 그와 동시에 입술도 술잔을 마중 나간다. 쭉 들이켠다. 일련의 이 느긋한 동작들이 좋다. 약간 적적한 부분이 좋다.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이 좋다. 어딘가 내버려진 느낌이 좋다. 이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군중 속에서 혼자 마신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단, 자작으로 마실 때는 침울해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연말이라 사람들 틈에서 어지럽게 살았다. 군중 속에서 때론 괴로웠다. 누구도 관심 없는 제 지난한 사업 이야기를 떠든다. 정치 토크는 점쟁이들도 홰를 치는데 밤새 끝이 없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보다는 나으니 참아보다가 자작으로 혼술 아닌 혼술을 하게 된다. 게다가 내 에코 천 가방에는 월트 휘트먼의 글 쪼가리가 오랜 날 들어 있다. “해변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아이는, 모든 것 곧 집어삼킬 듯 승리에 우쭐대며 낮게 드리운 묘지 같은 구름, 그 구름들 바라보며, 조용히 운다. 울지 마라, 얘야. 울지 마라, 내 사랑… 나는 별들이 환히 빛나는 모습 바라보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온 우주와 미래의 비밀을 풀 열쇠에 대해 생각한다.” 도쿄의 술집을 전전하는 애주가 쇼지 사다오, 필라델피아 항구 어디 밤의 해변을 혼자 거니는 휘트먼을 생각한다. 자작나무가 타는 모스크바의 밤 도스토옙스키는 또 어디서 혼자 보드카를 들이켰을까. 그들의 외로운 두 눈이 ‘자작자작’ 별빛처럼 타오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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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맺음달 달력은 동그라미로 가득해. 무슨 약속이 이렇게나 많은지. 하루는 공연을 했다. 호주에서 돌아와 ‘새까만스키’가 되어 등장. 내 시를 죄다 노래한 음반 <심야버스>가 나온 지 한 달도 넘음. 음반은 안 팔리지만, 그래도 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자뻑 중. 청계천변 새로 생긴 ‘전태일기념관’에서 발매공연을 했다. 가수 하림은 우정출연. 친구이자 동생 하림은 나랑 여행도 같이 다녔고, 내 산골 집에도 놀러오고 했었지. 악기 연주력도 그렇고 하림만 한 내공을 지닌 가수가 이 땅에 드물다. 그이 피앙세와 폴란드로 신혼여행 가는 통에 라디오 음악방송에 내가 잠깐 땜빵 출연하기도 했었다. 하림의 노래 ‘출국’, 오랜만에 ‘생라이브’로 들었어. 출국이 많은 방학 때렷다. 나라를 떠나봐야 우리나라 좋은 줄도 알고, 못난 구석도 알게 되지. 

“난 통 누가 불러주질 않아서 외로워.” 송년회 약속이 드물다고 친구가 그런다. “남 만날 때 자기 이야기만 하지 말고, 남 칭찬도 하고 좀 그래.” 고립된 사람들을 보면 특징이 있는데, 자기 투정이 많다. 또 남 사정에 관심이 없다. 칭찬이나 덕담도 매우 짜다. 올 한 해 고생했다고, 네가 있어 버틸 만했다고, 이런 덕담하는 데 무슨 돈이 드나? 

성경에 보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는 말씀. 내년 걱정을 벌써부터 할 필요는 없다. 올해 걱정과 괴로움은 여기서 훌훌 털어버리자. 그래야 새 힘이 생겨나지. 노(No)를 거꾸로 쓰면 온(On)이 된다. 문젯거리에 부닥치면 뾰족수도 거기 있다. 바로 그 문제에 인생 해답과 희망이 함께 있다. 그때 곁에서 힘을 주는 말, 덕담 한마디가 반드시 필요하지. 차에 시동을 걸듯 누군가 돌려주고 눌러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덕이 있는 사람이란 덕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덕담을 하다보면 평소 없던 덕도 달라붙고 생겨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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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중심부 아웃백에서 나와 또 다른 인적 드문 오지, 이름조차 오지라는 힌터랜드(Hinter Land)에 당도했다. 이곳 글래스 하우스 마운틴스 국립공원엔 산봉우리 밑으로 원주민 ‘거비거비’ 부족이 모여 살았다.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엔 11개의 우뚝한 봉우리가 특별하다. 평야에 화산활동으로 솟은 기괴한 바위 산들. 늪에는 악어, 숲에는 코알라와 캥거루가 산다.

길에서 원주민 아저씨를 한 분 만났는데 기다란 통나무 악기 디저리두를 들고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디저리두는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든다. 흰개미들이 속을 파먹은 나무를 구해 검불을 모아 불을 내고 구멍을 더 뚫은 뒤 사람 키보다 조금 작게 자른다. 혀와 입을 움직여 온갖 동물들 울음소리와 강물소리, 바람소리를 닮은 소리를 낸다.

쿠노린 산에서 의식을 치른 뒤 원주민들은 멀리 울루루까지 금성 샛별을 보며 장장 6개월 맨발로 걸어 순례를 했다. 순례자 그룹의 리더였던 빌린빌린의 손자 디자이를 우연찮게 만났다. 빌리빌리 동네에 살았던 빌린빌린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말라차!’, 헤어질 땐 ‘나니 니즌’. 나니(보다), 니즌(새롭게), 그래서 ‘새롭게 봅시다’라는 뜻. 새롭게 보면 쉬이 늙고, 병들어 죽고,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게다.

디저리두 소리처럼 대지에 가득했다가 다시 새롭게 사람의 숨으로 들어와 입구멍에서 노래가 되는 신비. 나이 들지 않는 이들을 그럽(Grup)족이라 부른다. 연속극 &lt;스타트랙&gt;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만 사는 별에 착륙하게 되는데, Grown up의 줄임말로 그 부족을 ‘그럽’이라 한 데서 유래. 그럽족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을 즐긴다. 그리고 햇볕과 여행을 사랑한다. 이곳 원주민 거비거비는 햇볕에 타서 다른 어떤 원주민보다 검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원주민들은 “당신은 옥수수를 자라게 하는 햇볕 같아요. 나와 같이 옥수수를 자라게 합시다.” 이렇게 긴 말로 프러포즈를 한다. 이곳 거비거비는 “나랑 같이 낮엔 캥거루처럼 걷고, 밤엔 코알라처럼 잠을 잡시다”라는 말로 프러포즈를 한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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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 시골구석 ‘울루루’를 거쳐 ‘카타추타’에 왔다.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지. 찍기 식으로 길을 찾으면 백발백중 제대로다. 신기를 받아야 해. 바람이 나를 데리고 왔다는 말도 틀린 말 아니렷다. 카타추타란 여기 원주민 애버리지니 말로 ‘많은 머리들’이란 뜻. 산봉우리가 우쑥부쑥 여러 사람 머리처럼 솟구쳤다. 바람의 계곡에 서니 정말 바람이 설설 불었다. 창문을 뜻하는 윈도(Window)는 바람의 눈이라는 뜻. 바람(Wind)의 눈(Eye)이란 북유럽어 ‘빈드르(Vindr)’와 ‘아우가(Auga)’, 이 두 단어가 합쳐진 말. 노르웨이 목수들이 통나무집을 지을 때 환기를 위해 지붕에다가 구멍을 뚫었단다. 바람이 불면 그 구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어. 이 구멍을 가리켜 ‘바람의 눈’ ‘바람의 입’ 등으로 불렀다지. 한국은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지만 여긴 정반대 여름의 시작이다. 세상의 눈, 카타추타에 서니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

우린 그간 1% 노력에 99%는 ‘빽’이라며 허탈해하였다. 한때 호주는 1의 평화, 99의 폭력으로 기울던 때가 있었다. “땅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생을 거부했다. 다짜고짜 총을 쏘아대고, 오히려 우리를 불법 침입자로 간주했다. 그들은 호주 대륙에 본래부터 있어 온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하려고 들었다. 우리 원주민의 가장 큰 힘은 사랑, 위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출신에 상관없이, 그가 순수 혈통이든 혼혈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한다. 원주민 아이는 버려지는 일이 없었다. 백인들의 고아원에서 자랄 때조차도 원주민 아이들은 서로를 돌보았다.” 호주 원주민 반조 클라크가 쓴 <대지를 지키는 사람들>의 한 구절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원주민들은 얼굴 흰 사람들이 대지에 찾아와 99%의 폭력을 행사하는 걸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본 카타추타 산계곡이 있었다. 바람의 눈. 모든 걸 지켜본 증인. 그러나 증인이 있는 한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카타추타를 속일 수 없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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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마친 들판에 덩그러니 남은 볏짚은 숨바꼭질하기 좋은 장소다. 싹둑 잘린 볏논의 가지런한 빈터에서들 손야구를 즐겼는데, 고무공을 던지면 주먹으로 치는 야구였다. 공이 가볍다보니 투수는 바나나킥 못지않은 마구를 던질 수 있었지. 맨 바람에 볼이 빨개지도록 들에서 놀곤 했다. 그럼 볏짚을 둘러쳐 뚝딱 바람막이 ‘벽집’을 지었다. 볏짚을 태워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다. 산으로 가면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나뭇가지로 지붕을 엮고 비닐을 덮고, 낙엽을 주워 바닥을 깔았다. 두셋이 들어가면 무릎이 닿았는데 친구들과 지은 첫번째 집이었다. 모험심 강한 아이들은 저마다 비밀기지를 하나씩 두었다. 나는 예배당 뒤에 세례식을 베푸는 시멘트 욕조가 있었는데, 그곳에다 대나무를 썰어다가 엮고 지붕을 만들어 비밀기지로 썼다. 지금처럼 캠핑 텐트가 흔한 세상이 아니었으니 고급 천막은 그림의 떡이었다. 농사에 쓰다만 불투명 비닐 조각이면 충분히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음반 일로 북유럽을 종종 가게 되는데, 아이들의 비밀기지로 쓰이는 트리하우스가 놀라웠다. 부모님과 같이 트리하우스를 지어본 아이들은 훗날 똑같이 제 자녀에게도 그 재미와 보람을 물려줄 듯싶었다.

교회 주변을 맴돌며 살다보니 어린 나이에 예배당 수리를 해봤다. 시멘트 블록으로 창고 건물도 겁 없이 지어보았다. 삼십대에 이 산골짜기 양지바른 터에 살림집을 짓기도 했다. 내 또래에선 이른 경험이었을 게다. 웬만한 목수보다 많은 공구를 가지고 있고, 해본 가락이 있어 덤벼든 일. 일복이 터져 알바로 ‘인테리어’도 돕곤 한다. 비밀기지를 만들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일파만파’ 놀이가 커진 게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천막집을 잘 세울 줄 알아야 한다. 인연이 닿으면 자기 집도 지어볼 수 있길. 헐어진 장독간이라도 다시 세울 재주는 가져야지. 국방과 안보를 염려하는데, 비밀기지를 잘 짓는 아이들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우랴. 아이들이 비밀기지 놀이는 않고 영어공부만 하니까 미국에서 방위비를 더 뜯어내려는 듯.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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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는 얼음이 얼었단 소식도 들린다. 유리창에 손을 대면 뽀드득 소리가 나. 뽀드득 소리란 말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다. 택시 합승을 한 아가씨와 할머니. 아가씨가 방귀가 급해 창문에 대고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무사히 실례를 했어. 그런데 할머니가 아가씨를 급 째려봤대. “소리는 잘 처리했는가 몰르겄지만서두 이 냄새는 우짤거여.” 뽀드득 뽀드득…. 들킬 수밖에 없는 냄새. 

알츠하이머에 걸려 법정에 출두하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골프장에 간 전모씨. 측근의 변명에 의하면, 골프장을 나오는 순간 자기가 골프를 쳤는지 안 쳤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우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지존급. 냄새가 너무 나지만 민주주의 아버지시라는데 어쩌랴. 그이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만 나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다. 감퇴란 어떤 욕구나 능력, 힘이 줄어서 약해진다는 말. 나이 들어가는 증거다. 글 연재를 신문 외에는 거절하다보니 마감 ‘빵구’를 낼 일은 없지만, 이도 모른다. 기자 동무가 챙겨주어야 한다. 어제 저녁에 개를 풀어놓고, 풀어놓은 걸 깜박 잊고 들어와 버렸나봐. 목줄을 하지 않고 넓은 견사에 넣어 두는데, 하루에 한두 시간은 마당에서 맘대로 놀게 해준다. 그러나 남의 밭에 쳐들어가 장난질을 했다간 동네 원성을 사게 되니 완전한 자유는 줄 수 없다. 아침에 문 열어 보니 현관 앞 그네 위에 올라가 그네를 즐기면서 쿨쿨 단잠. 멀리 안 도망가고 나를 지켜주었구나. 까맣게 잊고 나도 잠을 잤었다.

지난주엔 술자리에서 동무랑 낼 점심밥을 먹자고 약속해놓고서 까먹기도 했다. 식당에서 문자가 왔다. 나는 다른 데 가 있었고. “미안, 쏘리” 백번하고 다음에 비싼 회를 대접하기로 했다. 빨리 해외로 도망을 쳐야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화에 따른 기억 상실은 조금 있긴 했지만 치매나 알츠하이머는 아니었다. 내가 포도주를 좋아해 알코올성 치매가 걱정이 되긴 하다만, 그렇다고 주님의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은 또 제자됨의 예의가 아니렷다. 곤란한 인생살이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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