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83건

  1. 10:42:50 사막과 별들
  2. 2019.06.20 오로라의 집
  3. 2019.06.13 이야기, 춤, 명상
  4. 2019.06.07 느린 강
  5. 2019.05.30 블라디보스토크
  6. 2019.05.23 부산 갈매기
  7. 2019.05.16 가면 올빼미
  8. 2019.05.09 망명객
  9. 2019.04.25 중국 영화
  10. 2019.04.18 전화 소동
  11. 2019.04.11 성냥불
  12. 2019.04.04 북한 여행 회화
  13. 2019.03.28 개그맨
  14. 2019.03.21 실업자
  15. 2019.03.14 마음의 크기
  16. 2019.03.07 흉가
  17. 2019.02.28 교회 없는 마을
  18. 2019.02.21 전기장판
  19. 2019.02.14 짜라빠빠
  20. 2019.02.07 세 가지 자랑

유대땅 얘기책 성경을 읽고 자라선지 사막이 항상 궁금했다. 금모래 사장이 앞산만 하다는 말에 상상이 가지 않았다. 첫 사막은 사하라였다. 체 게바라도 걸었다는 알제리의 사하라. 이후론 자주 사막을 찾았다. 우리나라에도 섬마을에 사구사막이 몇 군데 있다. 사막이라고 하기엔 밋밋하긴 하지만서두. 이 정도 ‘열탕 날씨’라면 언젠가 사막 땅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사막에도 마을이 있다. 오아시스를 벗어나면 살 수가 없기에 계율이 매우 엄하지만 거기도 매한가지 사람 사는 동네. 사막에 가면 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아무리 낮에 햇살이 뜨겁더라도 밤이 되면 겨울만큼 춥다. 사막의 낙타들은 소중하게 여기는 주인을 만나 다복하게 살아가는 편이다. 사막엔 적토마나 오토바이조차도 힘을 쓰지 못한다. 겨울왕국의 개들도 마찬가지. 사랑받는 주인 아래 충성스러운 명견이 나타나 앞장을 선다.

“힐난을 받고 자란 아이는 남을 헐뜯는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잘 다툰다. 놀림을 받고 자라면 남과 어울리지 못한다. 격려를 받고 자라면 자신감이 커진다. 칭찬을 받고 자라면 감사할 줄 안다. 인정을 받고 자라면 자신의 생을 소중하게 여긴다.” 인기강사 글렌 반 에케렌의 얘기. 사막의 수도원은 엄격한 규율만큼 서로 보살핌이 각별하다. 동물들도 음식을 나눠먹을 줄 안다. 목마른 여행자들도 먼저 물을 내민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이 빛나듯이 극악한 환경에서 사랑과 배려가 훨씬 많아진다. 사막에서 인류의 성인들이 나고 자란 것을 생각해보라.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사람이 반갑고 소중하다. 사막에선 별이 하늘의 마을이나 되는 양 밝고 환하다. 인생 4막장, 그도 사막인가. 황량했던 인생도 사막에 가면 별빛의 조명과 축복을 받게 된다. 오만가지 음식과 물건들로 넘쳐나는 도심을 떠나서 조금은 춥고 외로운 사막을 찾아가는 여행을 권해주고 싶다. 평생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기회, 물 한 모금의 감사, 사람에 대한 그리움, 낙타처럼 선한 동물과의 조우까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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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들은 사고뭉치였다. 나 어렸을 땐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땠는데, 아랫목 말고는 달달 떨다가 잠을 설쳤다. 이후 등장한 연탄 시대. 더러 연탄가스를 마시기도 했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것은? 연탄가스. 취해서 해롱해롱하면 동치미를 떠다 먹었다. 어이없는 치료법. 국회는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집일 텐데, 요샌 농땡이 치는 재미가 좋은가. 마을회관은 노인들이 모여 점당 100원 화투를 치다 싸우는 집. 교회는 신도들이 모여 복 달라고 떼쓰다가 뜻대로 안되면 애먼 대통령을 욕하는 집. 대부분 가정집은 뿔뿔이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보다가 잠드는 집. 

언젠가 북유럽에 갔다가 한 숙소에서 오로라를 보았다. 내 기억 속 오로라 빌라. 소설가 르 클레지오의 소설에도 ‘오로라의 집’이 등장한다. “빌라 오로라라는 이름과 관목숲 가운데로 흘긋 보이는 집의 진주 빛깔과 그리고 무척 넓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아 새와 들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는 정원 때문에 그곳을 생각할 때마다 모험심으로 두근거렸다. … 고양이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원에서 마치 빌라 오로라 여주인의 피조물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집 입구에 적혀 있는 ‘우라노스’라는 그리스어는 ‘하늘’이라는 뜻.” 

하늘이 훤히 보이는 집은 얼마나 감사한가. 서울 살 때 반지하에서 잠깐 지내기도 했다. 하늘이 한 뼘도 보이지 않았다. 새마을기차를 타고 올라온 어머니는 캄캄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퍽퍽 한숨을 내쉬셨다. 책냄새뿐인 그 반지하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자연을 찬미하는 책들을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창문을 열자 오로라가 반기던 밤에 나는 피우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문득 났다. 하얀색 구름을 피어올리고 싶었다. 담배를 좋아하는 신부님 친구가 있는데, 공기 좋은 데 가면 항상 담배를 피우자고 한다. 얻어서 피우는 담배는 제법 맛이 있지. 내가 피어올린 하얀 색깔까지, 오로라는 다양한 빛깔을 서로 품었다. 그래서 아름답게 밤하늘을 물들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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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운이 좋으면 고수, 스승을 만나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히피>라는 소설에서, 여행길에 만난 스승 셋을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 스승은 도둑이었죠. 집에 들어가려는데 열쇠를 잃어버렸지 뭐요. 마침 길 지나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눈 깜짝할 새 문을 따는 재주를 지녔더군. 직업이 뭐냐 물으니 도둑이랍디다. 그는 날마다 실패하고 또 내일 또다시 도전한다고 했소. 두번째 스승은 개였죠. 목마른 개가 강물에 다가왔는데, 자기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뒷걸음쳤다오. 결국 개는 목마름을 참기 어렵자 정면 돌파를 결심, 강물에 뛰어들었죠. 순간 그림자는 사라지고 말았죠. 세번째 스승은 어린아이라오. 촛불을 들고 오길래 그 불 어디에서 났는지 물었지. 그러자 아이가 양초를 콧바람으로 훅 꺼버렸소. 여기 방금 있던 불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며 오히려 묻더군. 비로소 신성한 불빛, 지혜의 불빛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이처럼 이야기, 춤, 명상기도 속에 참된 지혜의 불빛이 있다오.” 

노력하여 배우지 않으면 야만인이 되고 말지. 야만인의 입에는 추한 막말과 가짜뉴스. 잘근잘근 이웃을 못되게 씹어대니 입끝에 피냄새. 한 고고학자가 정글을 탐험하다가 식인종 부족에게 붙잡혔다. “우리도 이제 옛날 그 무시무시한 식인종이 아니니 안심해라.” 과학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식인종이 컴퓨터 앞에서 검색하고 있는 걸 보고 기절초풍. 쇼핑몰에서 신제품 바비큐 그릴을 검색하고 있더란다. 신종 야만인.

당대 고수를 찾아다니는데, 도둑과 개와 어린아이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없겠다. 야만인들 같은 피 묻은 더러운 입들. 철 지난 반공을 팔아 밥벌이를 삼는 자들. 땅밟기 개종 여행이나 다니면 무슨 배움이 생기겠는가. 종교인의 입에서 피냄새가 가장 역하게 나는 아이러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빨래를 해서 널었다. 요즘은 귀를 자주 씻고 싶어진다. 세탁기에 귀를 넣어 깨끗이 세척하고 싶다. 상쾌해진 귀로 다정하고 다감한 이야기, 사람을 먼저 살리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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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앗사리드’라는 사하라 사막의 청년. 프랑스 고속기차 테제베를 탄 후일담, <사막별 여행자>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단봉낙타보다 천배는 빠르고 백마리 낙타가 늘어선 카라반만큼이나 길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눈앞에 어떤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고 심장은 더 세게 고동쳤다.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더 이상 거리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낙타들과 사막의 침묵 한가운데 누리는 낙타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리듬으로부터 나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열차 승객들의 조용하고도 태연한 모습이 놀라웠다.”

빠른 강물에 빠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명조차도 날름 집어삼킨다. 속도 빠른 시대에 살면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이름 없이 사라진다. 역사는 역시 ‘느린 강’에서 비롯된다. 느린 강을 따라 걷다보면 배짱 두둑하고 맷집이 센 사내를 만나게 되리. 현명하고 강인한 여인이 손을 내미는 곳.

나는 우수리스크에 와 있다. 극동의 한쪽. 우리 겨레 고려인이 마을을 이루어 살던 땅. 추위에 맞서 두꺼운 벽채를 세우고 지붕엔 기와를 구워 얹기도 했다. 장작을 집어넣는 벽난로 페치카. 온기를 나누던 겨레의 심성을 느끼게 된다. 여기 ‘수이픈강’, 옛 발해 땅 솔빈부에 흐르던 ‘솔빈강’이 흐른다. 작가 푸시킨의 동상이 있는 이 마을 귀퉁이엔 안중근과 홍범도 비석이 나란히 있다. 권총이 새겨진 비석조차 비장하여라. 하루는 느린 강가에 위치한 헤이그특사 이상설 기념비에 보드카를 뿌려주었다. 보드카는 멀리 돌고래가 뛰노는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짧은 여름, 모두들 웃통을 벗고 일광욕. 강물에 수영도 한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수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경찰이 물에 들어간 아가씨들을 나무라자 “아니 옷을 벗기 전에 말을 해야죠”. 경찰은 웃으며 “옷 벗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는데요”. 안중근 대장도 이 강물에 말을 세워 물 먹이고, 수영도 했을 것이다. 사랑해본 사람들이 저항도 하고 혁명도 한다. 느린 강물을 보다가 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평화롭고 느긋한, 느린 강.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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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파 가사에 길옥윤 작곡의 ‘순례자’라는 찬불가가 있다. 찬송가가 아니라 찬불가. 가깝게 지내는 운문사 승가대의 학장 진광 스님이 처음 이 노랠 가르쳐주었다. 그때 후배 여가수도 옆에서 따라 배워 불렀는데, 녹음실에서 녹음까지 해둔 기억. 내가 배운 첫번째이자 현재까진 마지막 찬불가. “당신은 꿈 찾는 방랑자. 마음의 길 가는 나그네. 인생도 사랑도 끝이 없는 길. 멀고 먼 고행길. 꿈꾸는 바다에 별 뜨면 불타는 사막도 잠들고 외로운 순례자, 거친 산길에 단풍이 깊어가네. 외로운 들판에 무명초. 잊혀진 하늘가 뜬 구름.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내 너를 사랑하리. 내 너를 사랑하리.”

뒷산에 놀러갔다가 어제 내린 장대비로 퉁퉁 분 개울물이 급히 달음질쳐 내려가는 소리. 찢기고 떨어진 어린 잎새들이 흘러가는 풍경.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시절이다. 올해도 몇 분들의 도움으로 순례를 떠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잠깐의 시간여행. 광복군의 수장 안중근의 도시를 거쳐 저항 가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노래하던 ‘야생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아랫녘에서 잊고 사는 도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올리면 가슴 저 끝, 시리고 아려온다. 오래전에 그 도시에서 출발하여 멀리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해봤다. 평생 잊지 못할 여행 가운데 한 장면. 남북이 철도를 잇는다는 소식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노랗게 단풍이 든 자작나무숲을 지나 눈 내리는 시베리아를 달리기도 했었다.

여당 건배사는 ‘위하여’고 야당 건배사는 ‘위하야’라고 한다. 여야가 힘을 합해도 될까 말까 한 대륙 연결, 유럽 연결이라는 평화와 번영의 일대 전진. 우리 동네에 영어가 쪼매 가능한 사람들만 하는 건배사가 있다. ‘무시로’ 삼행시. 무조건, 시방부터, 로맨틱한 사랑으로! 로맨틱해야 한다. 이름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매우 로맨틱하다. 강릉을 출발해 원산, 함흥, 나진을 거쳐 달리던 기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숨을 고른다. 순례자들이 기차역에 가득한 시골 도시.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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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말을 ‘모국어’라 한다. 아버지의 말 부국어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 모국어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뭔 쓰잘데없는 말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가 무안을 주면서 입을 딱 다물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머니가 이기고 산다. 아버지가 이기고 사는 집은 희귀하다. 집에서 이기지 못해 밖에 나가 억지 대장노릇을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긴다. 지고 사는 게 안에서나 밖에서나 현명한 처세일 텐데. 

수가 많다는 말을 경상도 사람들은 ‘쎄삐릿다, 억수로 많다, 항 거석 있다, 수두룩 빽빽하다, 천지삐까리 많다’고 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솔찬하다, 겁나다, 허벌나다, 오살나게 쎄뿌렀다, 시꺼멓다’ 그런다. 오월 하루, 역사의 현장 광주에 시민들이 많이 모였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메이홀에선 민중미술가 김봉준 화백의 신작전 ‘오월 붓굿’이 열렸다. 김샘과 내가 맺어온 인연의 결실로 광주에선 첫번째 전시였다. 그간 한번쯤 전시할 만도 했을 텐데, 우리나라는 이만큼 지역 장벽, 경계가 높고 두껍다. 하루는 메이홀 앞이 충장로와 민주광장인데 ‘태극기 부대’가 지나면서 야구장에서나 들었던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오늘 야구하는 날인가? 야구장에 부산 팬들이 와서 부르면 따라서 불러주던 노래. 어머니 말을 징하게 안 듣는 사내들이 억수로 모여들더니 민주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에 조롱 삼아 ‘부산 갈매기’를 열창한다. 반응은 분노할 것도 없고 그냥 조용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부산 인물을 찍어준 광주 시민들.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줘서 다행이네 뭐.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지금은 그 어디서 내 모습 잊었는가” 부산 갈매기야! 전라도 친구들을 잊으면 되겠는가. 잊지 말아다오. 좋은 뜻으로 해석하마. 노래가 무슨 죄냐.

언론에 거론되는 유망 정치인들이 죄다 저쪽 분들인 것은 어떤 구조악에 빠진 듯하다. 갈매기는 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 어디라도 사는데 말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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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들은 입마개 마스크를 달고 다니며 입 냄새를 즐기는 묘한 취향들을 갖고 있다. 차라리 매연과 먼지가 입 냄새보단 나을 거 같은데. 조그맣지도 않고 얼굴을 다 가리는 마스크는 가면 수준. 시골에선 마스크를 구경하기 어렵다. 혹시 올빼미를 보면 복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군. 검은 주둥이를 가진 똥개도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해. 복면 도둑을 잡자는 것이지 검정 마스크를 쓴 날강도는 아님이렷다.

의사 샘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술을 하는 이유는 혹시 잘못되어도 담당 의사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어. 힛~. 아무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자 올빼미도 움쩍 뒷발질을 하게 된다.

입을 가리면 표정을 알 수 없지. 한 항공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내건 구호가 “노 스마일!” ‘웃지 않기’였단다. 직원들이 미소를 거두고 화난 표정을 짓는다면 손님들이 대번 외면하게 되어 있다. 거기다가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꼬마 손님들은 놀라서 울지도 모른다.

사장님은 노동자를 웃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자기도 웃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또한 노동자도 감정노동이어서가 아니라 미소 띤 얼굴로 사는 편이 먼저 자기 자신과 영혼에 좋다.

언젠가 호주 숲에 갔다가 하얀 복면을 한 ‘흰가면 올빼미’를 보았다. 가면 올빼미는 탈을 쓴 광대처럼 보였다. 불행한 죽음을 가져온다 해서 원주민들은 이 친구를 잡아다가 현관문에 못 박고 액막이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흰가면 올빼미가 살지 않아 다행. 죽음은 올빼미가 가져오는 게 아니라 웃지 않는 인간이 가져오는 어두운 침묵. 올빼미는 죽어 가면을 벗겠지만 우리는 겹겹 회칠한 거짓과 위선을 벗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관용과 호의는커녕 혐오와 배척이 도가 지나치다 싶다. 특히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 일부는 가장 혐오와 배척의 주동세력으로 고착되었다. 가면 뒤엔 전쟁광 금약탈꾼 ‘십자군’의 얼굴이 보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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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샘, 다음엔 합수 샘 이런 ‘히읗 자’ 연락처가 내게 있다. 한수 형은 가수 정태춘 형. 내 산골짝 집에 몇차례 오시기도 했다. 다음에 윤한봉, 합수 샘은 고향 선배다. 오월 광주의 미국 망명자. 돌아가신 뒤 기념사업회가 전남대학교 앞 공간에 같이 둥지를 튼 일도 있었다. 귀천하신 뒤에도 이름을 감히 지우지 못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단체 초대로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 망명자 합수 형이 그곳에서 허리띠도 풀지 않은 채 눕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서 오월 동지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망명자의 노래 같은 신산한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 신보에 담긴 ‘나그네’와 ‘빈산’. 먼 오랜 날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스멀거렸다. “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 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한수야, 부르는 쉰 목소리에 멈춰 서서 돌아보니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방랑자, 망명자들, 홀로된 자들. “어미마다 제 아이 불러가고 내가 그 빈들에 홀로 섰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가네. 나도 애들처럼 밟고 가네.”(나그네) 노래는 신산하게 부는 바람처럼 끝나고, 고꾸라진 팽나무가 보이는 외딴집에 사는 나는, 멀리 시내의 불빛이 깜박거리는 빈산에 기대 다음 노랠 듣는다. “억새 춤추는 저 마을 뒤 빈산….” 내일 아침엔 음반 잘 들었다는 감상문을 보내드려야겠다.

나그네라는 말은 ‘나가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다, 나가다. 집 나간 사람. ‘네’는 사람을 뜻한다. 집을 나가면 누구나 개고생. 집에서 내쫓긴 순간 고생길. 어쩌면 우리 모두 집을 나간 나그네 신세인지 모른다. 스스로 망명자가 된 사람도 있다. 망명자들의 눈은 푸른 창공 같고 한없이 가난하다. 

두 눈 질끈 감은 사람. 이 세계의 추한 혼탁에서 벗어난 용맹정진 수도자도 마찬가지다. 또한 남미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책을 읽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을 가리켜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라고 했다. 저 길거리의 사람들, 저 무수한 불빛 지붕들 아래에 더러 나그네 망명객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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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동네가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라 가끔 축제 때 판다 분장을 보게 된다. 어린 대나무 잎사귀를 입에 달고 사는 판다. 대숲에서 판다가 굴러떨어질 거 같다. 주민들만 해도 중국 구경을 안 해본 분이 없을 정도. 회갑 때도 가고 칠순 때도 간다. 누구 집 노총각 아들은 중국 동포랑 가약을 맺었는데, 친정 식구들이 건너와 농사일을 거들어 살림이 폈다.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갈 필요가 없는 게 그런 모양으로다가 반은 한국식, 반은 중국식으로 살아가는 집들이 있다. 이곳 외딴 데까지 배달음식은 오로지 중국요리뿐. 누가 중국 댕겨왔다며 백주 한 병 들고 오면 요리 하나를 시켜서 나눠 마신다. 조금만 마셔도 판다처럼 방구석을 뒹굴게 된다. 어려서 성룡의 취권 흉내를 내고 놀았지. 동네 아재들 중에 이미 취권을 터득한 분들도 꽤 되었어. 막걸리 몇 잔이면 주먹질을 해대고, 경운기와 함께 수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 취권을 마스터했기 때문이렷다.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들은 깔린 음악이 좋다. 보고도 또 찾아보게 된다. 공추하가 부르는 ‘사방에 핀 장미’와 같은 명곡이 흐르는 영화. 여명, 장만옥, 장국영, 양조위, 공리 같은 명배우들의 대사가 흐르면 가슴이 촛농처럼 녹아들고 만다.  

일제 식민이나 분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중국이랑 형제 나라로 오래전부터 잘 지냈을 것이다. 중국이랑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생기면 두 눈 감고 외면하더니만 요샌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다며 오두방정을 떤다. 일제 순사집안 씨앗들인가.

가수 김정호의 외가가 이곳 담양이다. 판소리꾼 집안.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말 못하는 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이 노래 ‘몽중인’을 처음 부른 가수도 공추하다. 그러니까 원곡은 중국 노래. 1940년. 우리가 임시정부를 중국에 두었을 때 흐르던 노래. 공추하의 노래를 들었을 임시정부 식구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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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을 해도 자꾸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라는 소리. 시골에 산다고 다짜고짜 노인 취급을 한다. 아버니임~으로부터 시작되는 코맹맹이 소리. 죄송합니다, 라고 전화를 서둘러 끊으면 재차 또 걸려오곤 한다. 짜증이 욱 올라온다. 태양광 소리만 들어도 이젠 뒷골이 땅길 지경이다. 탈곡기를 사라는 전화도 온다. 마을 전화부를 어떻게 알고 이런 전화를 다 하나 싶다. 손전화기로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도 두어 번 받아보았다. 귀하의 은행정보가 털렸다고 하길래 은행에 저축한 돈이 없는데 괜찮다고 했더니 딱 끊는다. 좀 더 전화를 해도 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 언젠가는 대출을 해준대서 이미 콩팥 장기까지 팔았다고 했더니 딸칵 끊더라. 

대학생인 아들이랑 통화를 하다보면 ‘이 녀석이 요새 돈이 없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술값이 없든지 책값이 없든지 아니면 데이트 비용이 없든지 셋 중 하나일 테다. 사내아이는 보이스. 낚시는 피싱. 대부분의 부모는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산다. 해준 것 없는 아비에게 마음을 내는 걸 보면 나로선 감사한 일. 적은 돈이지만 잘 받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마음에 저장해둔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낙들 둘이서 자식 걱정을 했다. 한 아낙 왈 “대학교 댕기는 아들이 만날 돈만 부쳐달라는데, 도대체 무슨 학생이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학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푸념을 늘어놓자, 듣고 있던 다른 아낙 왈. “차라리 그렇다면 속이나 편하겠네요. 우리 딸은 돈을 달란 소리를 전혀 안 해요.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 옷 사고 가방 사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빼앗기는(?) 편이 낫다 싶기도. 

몽글몽글 구름이 피어나더니 서산을 넘는다. 어떤 날은 전화가 하도 많이 걸려와 소동에 가까운 날이 있고, 어떤 날은 공치는 심심한 날도 있다. 번호부를 뒤지면 얼굴조차 희미한 사람. 인연이 다한 사람. 아쉽지만 가벼워지고 싶어 ‘삭제’를 누른다. 오래전 죽은 사람이지만 기억하고 싶어 저장해 둔 이름도 있다. 그리운 노란 리본의 이름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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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 큰 산불 소식. 우리 동네도 몇 해 전 가정집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태웠다. 힘내시라고 성금도 드리고 그랬었다. 아직도 그 집 마당엔 불에 탄 흔적들이 보인다. 다행히 헬기로 물을 뿌려 뒷산으로 번지는 걸 막았다. 산으로 불이 옮았다면 내 거처도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냇가에 살면 홍수가 무섭고 산골에 살면 산불이 걱정된다.

사형수 세 명이 간곡하게 기도하자 하느님은 각자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로 했다. 한 명은 여자를 구해 달라고 했다. 얼마 못 가 뼈만 앙상한 채로 죽었다. 다른 한 명은 술을 달라고 했다. 주정만 부리다가 죽었다. 나머지 한 명은 담배를 원했다. 그런데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간수가 궁금해서 묻자 죄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담배만 달랑 주고 성냥불은 안 주셨는데요.”

성냥불 하나, 담뱃불 하나로 큰불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여를 태우다가 산불이 나고, 논두렁 밭두렁 태우다가도 산불이 났다. 아주 어렸을 적에 잠깐 초가집에서 살아도 봤다. 목사관 임시 거처가 초가집이었다. 그즈음 장애인 형이 불장난에 재미를 붙였는데, 나뭇광에 불을 붙이려고 번번이 시도하다가 내게 딱 걸리곤 했다. 장작 아궁이에서 놀다가 손을 데더니만 그 재미와 작별하더라. 집이 타버릴 뻔했다.

“저녁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 작은 불꽃으로 내 마음을 날려 봐. 저 들판 사이로 가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명절 때면 깡통에 구멍을 뚫고 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까딱 잘못했다간 산불로 번지는 위험천만한 놀이였다. 예전엔 불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를 들고 뛰쳐나왔다. 합심하여 불을 껐다. 뜬금없이 교회에서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부흥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 나는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떠올렸다. 불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위험한 무엇이렷다. 이상 저온으로 밤기온이 차다. 잔솔가지 그러모아 난로에 불을 모으고 산다. 날마다 불을 보면서 지내는데, 재를 버릴 때도 그렇고, 꺼진 불도 다시 본다. 자나 깨나 산불조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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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행사로 한 달 넘는 장기간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계획을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작년부터는 북한이라고 답을 하는데, 기도를 섞어서 하는 소리다.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이민이나 월북은 능력도 없고 간뎅이가 붓지 않아서리. 길거리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지구 어디라도 좋아. 시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연필과 종이가 있다면 그 어디나 “가즈아”!

북한에 가려면 먼저 생활 북한어 공부를 해둬야 한다. 최근에 여행가 김준연씨가 펴낸 <북한 여행 회화>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먼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식당에서부터 챕터 원이 시작된다.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 부르고, 낙지를 오징어라 부른다. 그러니까 연포탕을 만약 주문하면 오징어탕이 나오게 되시겠다. 닭알두부(계란찜), 고기떡(소시지), 줴기밥(주먹밥), 고기마룩(고깃국), 썩장(청국장), 보가지국(복어국), 꼬부랑국수(라면), 곽밥(도시락), 김치남비탕(김치찌개), 발쪽(족발), 날맥주(생맥주), 빼주(고량주), 우림술(과일주) 뭐 이런 식이다. 회화 공부를 왜 해야 한다는 말인지 이제 짐작이 조금 가실 게다.


챕터 투는 호텔. 발바리차(택시), 유람뻐스(관광버스), 초대소(고급호텔), 건발기(드라이어), 간데라(촛불), 색텔레비존(컬러 티브이), 얼군제품(냉동식품), 사과단졸임(사과잼), 썩음막이약(방부제), 쫑대바지(레깅스), 보안원(경찰), 끌신(슬리퍼), 쪽머리 아픔(편두통), 머리물 비누(샴푸), 계단 승강기(엘리베이터)…. 이 정도만 외우면 무사히 먹고 자고는 가능하겠다.

거리나무(가로수)와 드림버들(수양버들)이 늘어선 강변에 앉아 있노라면 이런 방송소리가 들린단다. “남존녀비 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생활양식이 지배하는 남조선 사회에서 녀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하는 코맹맹이소리. 그것마저 영어, 일본어, 한자말이 섞인 온갖 잡탕말….” 이것을 대한민국 표준말이라고 아나운서 리춘희 할머니가 마구마구 뭐라고 까신다나. 흐흐. 맞는 말씀도 있고 아닌 말씀도 있는데, 몸에 좋은 약은 귀에도 쓰고 아프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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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인디안밥, 점심에는 고래밥, 저녁에는 사또밥. 대충대충 먹고 살아도 되는데 부산스럽게 또 상차림을 하게 된다. 한 처자가 절대로 결혼은 않겠다고 장담하면서 친구들에게 그랬다. “사내놈들은 다 늑대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늑대밥은 안될 거니 어디 두고 보라고.” 그랬다가 느닷없는 반전 결혼식. 이번에는 말이 바뀌어 “늑대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니.”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이런 밥 타령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밥이 코로 들어갔다.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외우는 편이다. 진지한 말의 성찬은 아무리 영혼의 양식이라도 앉아 있기 괴롭지. 우울한 수도원은 내가 머물 곳이 못된 듯싶다. 인연이 쌓여서 강연을 부탁받기도 한다. 거마비도 못 주는 궁핍한 현장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도 가끔 가곤 했다. 웃을 일이란 하나 없는 표정으로, 아무리 재밌는 소리를 해도 시큰둥. 놀부와 스님의 “주나봐라 주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불경외기 싸움처럼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그러면 나 혼자 웃다가 온다. 나라도 살아야지. 

소설가 김성중의 <개그맨>은 이렇게 시작된다. “느린 말투의 느린 움직임, 한순간 던진 말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후 각자의 연상 끝에 터지는 폭소. 대중이 그의 개그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가 무명시절일 때 만났다. (중략) 개그맨은 떨어진 빗물을 바라보면서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이 슬픔의 도성에서 웃음거리를 그래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선가 폭소가 터진다. 일행도 아닌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엿들어 알고 싶다. 친구가 재밌는 말을 하면 일부러라도 많이 웃어주고 그러자. 실없는 이야기라도 좀 웃어주자. 만두 두개, 그만 두게! 할 때까지 말이다. 시샘추위로 한껏 움츠러든 며칠이었다. 노랑나비를 보았다. 마당에서 개그맨과 노랑나비가 콤비로 쇼를 했다. 웃을 일이 있어야만 세상살이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일단 웃고 나면 세상살이가 어느새 행복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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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절집엔 고목 매화들이 듬뿍한 꽃들을 내밀고 있더라. 입술연지처럼 고운 꽃을. 지난겨울 동치미가 먹고 싶었나 캥캥 울던 고라니도 간데없고 외따롭게 지붕을 인 암자엔 노승의 기침소리만 뎅그렇다. 같이 나들이한 친구가 “나 절에 들어가서 살까?” 실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절집도 장기 투숙자는 골라서 받는다. 또 행자스님이라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지. 피식하면 하는 소리가 ‘고향에 내려가서 살겠다, 절에 들어가 살고프다’ 어쩐다 하지만 그게 말만큼 쉽나. 만만한 게 절집이다. 정치인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유권자 여러분. 일단 저를 실업자로 만들지만 말아주세요. 실업에서 구해 주시면 반드시 유권자 여러분에게 구직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능청도 좋아라. 그래놓고는 몰라요로 하세월이렷다.

구름이 비를 꾹 참고 있다. 꾸물꾸물하다. 전화기 저편에서 한 아이가 실업자 신세가 되었노라 하소연을 했다. 짐마차를 모는 근면한 노동자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아이. 이제 뭘 할 거냐 물으니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시 구직활동을 해보겠노라고. 그 아이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혼자 벌어 월세를 내고 햇반을 데워 먹으며 살아간다. 친구들 다 가는 대학도 가지 못했다. 복날에 술 취한 개도 “개장수들 다 나오라고 그래!” 허풍을 떤다고 하지. 이 아이는 항상 마음을 움츠리고 어깨도 굽어 있다. 목소리도 모기소리만 하다.

지금은 실업급여라도 있어 다행이어라. 전에는 당장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했고, 당일부터 알거지였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정년도 뭣도 없고 좋아. 다만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 실업자 아닌 실업자라는 점. 누가 그랬다. 아직도 원고료 몇 푼이라도 받고 사는 작가가 몇이나 되겠냐고. 운 좋은 거라고. 쥐꼬리만 한 원고료를 한번은 동생 스님이 계시는 절집에 시주했다. 스님도 시를 쓴다. 실업자 시인들, 모두 원고료를 받는 세상이 속히 오기를 바라면서 살짝 밀어드렸다. 그 덕분인지 요즘 시가 솔솔 써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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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에도 바람막이숲이 있어 양지마다 쑥이 쑥쑥. 나는 벌써 쑥버무리를 해먹고 쑥국도 끓였단다. 봄이면 어머니가 해주시던 쑥떡 생각이 간절해라. 쫄깃한 떡을 뜯어 콩고물에 찍고 입에 물려주시던 그 손. 당신도 기억하실 게다. 쑥떡을 떼어주시던 우리 어머니들.

친구가 낚시를 가자는 걸 나는 쑥 캐러 가자고 그랬다. “아니 아줌마들 속에 끼여서 쑥을 캐자고?” “칫! 낚시 가봐라. 새까만 사내들뿐이지. 들에 가보면 쑥 캐는 여인들이 콧노래를 부른당.” 내 말에 어이가 없어한다.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랑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 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소 먹이던 목동이 손목 잡았네. 새빨개진 얼굴로 뿌리치고 가오니 그의 굳은 마음 변함없다네. 어여쁘다 그 처녀. 들과 언덕 지나서 시냇가에 가니, 꼬리 치는 금붕어 뛰고 있었다. 버들 꽃을 뜯어서 봄바람에 날리니 허공 위에 닿는 꽃. 어여쁘다 그 처녀. 나무하던 목동이 손목 잡았네. 새빨개진 얼굴로 뿌리치고 가오니 그의 굳은 마음 변함없다네….” 새빨개진 얼굴로 지종지종 지지배배 노래를 불러본다.

쑥에서 시작해 봄나물이 곧 산동네에 범람하리라. 봄도 사랑도 이렇게 확대되고 커가야 한다. 사랑을 증명하는 단계에서들 주변을 정리하고 오직 한 사람에게 속박되려 하지만, 둘의 사랑을 키우되 그간의 우정들 또한 이어갈 줄 알아야 한다. 남자의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여자의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마음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지팡이를 짚던 할머니가 병원에서 나올 때 보니 허리를 곧게 펴고 나타나셨다. 깜짝들 놀라 “수술을 받으신 거예요?” “아니여. 지팡이를 좀 긴 걸루 써보라 해서 말이여.” 작은 지팡이를 짚고 쑥만 캐러 다닐 일은 아니다. 봄누리엔 납작 엎드린 달래 냉이 씀바귀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 곧 키만 한 두릅나무에 쌉싸름한 두릅이 영글면 저기 산자락 너럭바위에 앉아 동동주 한 잔 마셔야지. 마음도 커가고 사랑도 커가고, 모두가 함께 커가는 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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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라 삼짇날, 새 풀을 밟으면 꽃바람이 난다지. 아침부터 부지런한 농부 말고 군인들이 보였다. 옆 동네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데, 콩 볶는 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한 달에 두어번 이질적인 총소리. 그래도 축사의 냄새보다는 낫지 싶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치기를 기다려본다.

우리나라는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 길거리에 가보면 ‘대포집’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선 폭탄주를 아무나 제조한다. 건너편 식당은 부대찌개. 길에 보면 총알택시가 쓩쓩 날아다닌다. 미세먼지 연막탄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할 만큼 자욱하다. 무슨 가공할 미사일이 있어 미세먼지를 헤치고 명중을 하겠는가. 또 모두가 핵가족으로 각지에 흩어져 산다. 핵가족은 독재 아니라 독재 할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는다. 여기다가 공포의 흉가들이 마을마다 버티고 있다. 세기의 강심장들도 나가자빠진다.

우리 동네도 흉가에 폐가가 한 집 건너. 앞 동네는 너른 평지라 부자들이 별장을 짓고 난리 브루스인데 고갯마루 접어들면 노루 사슴이 기웃거리고 멧돼지가 괄괄거리는 산촌. 게다가 혼불이 출몰하는 빈집, 흉가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린다.

귀신은 자기 말만 한다. 할매들도 귀신이 되려고 자기 말만 하고 산다. 나는 글을 쓰니까 해소라도 하지만 말동무가 없으니 그러시는 거겠지. 귀신도 누가 들어주질 않으니 혼잣말로 시부렁거린다. 흉가에서는 씨부렁씨부렁 묘한 소리가 난다.

다행히 봄이면 그 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꽃바람 봄바람에 귀신도 참하고 순해지는 모양. 아가씨가 방구가 마려워 “자기야! 사랑해!” 큰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뿡 싸질렀는데, “뭐라고? 방구 소리 때문에 안 들렸어.” 무안하게시리. 귀신 소리도 봄이 오는 소리 때문에 들릴락 말락. 금방 귀신의 계절 여름 칠팔월이 올 테고 그땐 살맛나게 떠들어대려무나. 흉가라도 있어 귀신도 살고, 어쩌면 다행이지 싶다. 귀신도 못 사는 세상이 더 무서운 게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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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엔 다행히도(?) 교회가 없다. 오래전 내가 집을 짓자 교회를 짓는 거 아니냐며 쫓아온 주민이 있었는데, 건설인부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걸 보자 안도하며 돌아갔다. 일요일마다 여러 대 교회 승합차가 와서 주민들을 골라 싣고 간다. 각자 떨어진 교회들로 고고. 가끔 전도를 나오기도 하는데, 전도거절용이나 방어용으로다가 대문에 교회 간판을 하나 붙여버릴까 싶기도 해. 대꾸하기도 귀찮고 종파를 설명하기도 머리가 아파서리. 얘기를 나눠보면 백이면 백 붉은 토끼 눈알이 되어 공격적인 말투.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할 거라며 협박하는 부분에서는 진짜 나로 하여금 불쌍한 마음도 드는 표정이었다. 목사라고 안 하고 그냥 촌놈이라고 했던 게 문제. 흐흑.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건 시골 교회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할머니 교인들이 꼬맹이 취급할까봐 그랬다. 한번은 문익환 목사님이 내 수염을 근사하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서로 수염을 만져보며 웃었던 기억. 목사님 수염을 만져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나이가 같아 보여 좋다던 할매들은 내가 수염이라도 밀면 코털이라도 빨리 기르라고 나무라셨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비슷한 옷을 걸치고서 알콩달콩 지내다가 훌쩍 길을 떠나왔다.

한 인기 강사가 튀는 옷을 입고 강의를 갔는데, 그곳은 하필 교도소. 재소자들 속에서 튀는 옷이 순간 부끄러웠다고 한다. 소통을 이야기하러 간 강사가 옷부터 소통이 안된 것. ‘그들과 같은 옷을 입어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치렁치렁한 목사 성의가 있었는데, 그런 옷 좋아하는 목사에게 줘버렸다. 치마도 뭣도 아니고 그런 이상한 옷을 걸치고 설교단에 서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성경 교사일 뿐이다. 

태극기집회 분들과 극우 기독교가 만나 흥미로운 미래 정치를 약속하는 마당이다. 소통이 문제인데, ‘소통불가 고집불통 맹신’으로 무장하여 나라를 온통 분란과 불화로 끌고 갈까 염려된다. 일요일마다 마을을 갈라놓듯이 나라를 갈라놓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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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호랑이가 참다못해 마을로 내려왔어. 두둥게둥실 애기를 키우는 집에서 말소리가 났지. “이놈의 징글징글한 가난. 떨어지지도 않고 벗어날 길도 없소. 호랑이보다 무서운 이 가난. 아이고 팔자야.” 엄마랑 애기가 우는 소리. 듣자하니 저보다 무서운 가난이란 게 있다는데 고건 뭘까. 요전날 서당 마당을 어슬렁거릴 때 훈장이 내뱉은 소리도 기억났다.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 진다. 그러나 적을 알면 백전백승 이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면 살 수가 있지. 쫄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된단다.” 이 말에 덜컥 놀랐던 일. 호랑이는 ‘알지 못하는 적 가난’이 두려웠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입춘 지나자 보일러 기름을 아껴보자며 전기장판 한 쪼가리 등에 대고 누운 어르신들. 깔밋한 새집에 전기장판이 놓인 방은 드물다. 대개 거우듬하고 울퉁불퉁한 방바닥. 냉기로 썰렁한 방은 어쩌다 한 번씩 기름보일러를 돌린다. 아랫목이 자글거리던 옛집은 꿈속만 같아라. 나무를 해올 기운도 없고, 기름 값은 호랑이보다 무섭지.

땟거리 장만하여 동태나 된장국으로 끼니를 삼는다. 전기장판에 누워 솜이불에 체온을 실으면 스르르 눈이 감긴다. 늙으면 초저녁잠이 많아지는 법. 봄 아지랑이가 필 때까지 빨간 내복과 전기장판으로 의연하게 견디는 분들.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추위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부연 입김이 터져 나오는 꿈이라도 따뜻하다…. 종일 떨다 돌아온 날에는 온도조절기에 빨갛게 불이 들어온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세상 끝 옥탑에 보일러가 도는 기분.” 박소란 시인의 ‘전기장판’이란 시다.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간난이 할머니가 누워 잠든 전기장판. 생각하노라니 민들레의 사투리가 ‘말똥굴레’라 일러주신 권정생 샘의 오두막이 떠오른다. 민들레는 전기장판에 납작 누워 있는 사람들 같다고도 하셨다. 나는 그다음부터 민들레를 보면 똥을 굴리던 말똥구리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 전기장판에 누워 하얀 솜이불을 덮은 할매들 모습을 동시에 상상하게 되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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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노래 가운데 ‘예순네 살이 되었을 때’가 있다. 웬 아임 식스티 포. “시간이 흘러간 뒤에 머리숱도 없어지고, 나이는 지긋해져도, 밸런타인데이 때나 아니면 생일날 내게 와인과 엽서를 보내주고 그러실 거죠? 당신은 따뜻한 난롯불 곁에서 스웨터를 짜세요. 일요일 아침이면 드라이브도 같이 가요. 꽃 마당을 돌보며 잡초도 뽑을게요. 예순네 살 때에도 당신에게 나는 필요한 존재겠죠? 근검절약하다 보면 여름마다 흰 섬에 유람도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예순 살 넘어서까지 다투지 않고 함께 여행 다닐 친구가 있다면 행운아. 나이 들면 부인이 남편을 보통 이겨먹게 된다. 옆집 영감들은 다들 죽어 산에 누워 자는데 아직도 방에서 자고 일어나 귀찮게 구느냐며 타박도 듣겠지. 그러기 전에 적당할 때 알아서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여자가 남자보다 수명이 좀 더 길다고 한다.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할 시간을 특별히 주신 거겠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예쁜 것은 눈에 콩깍지가 낀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선물처럼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사이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오래도록 눈을 마주친다. 사랑하는 사이엔 보고픔이 더 커서 시선에 민망함이 없다. 요새 아이들은 앞에 친구를 두고도 휴대폰만 만지작댄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사랑한다고 노래할 수 있으랴. 수십 년 된 사이들을 보면 아직도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한다. 되레 정성을 더 쏟으면 쏟았지 소홀하게 굴지 않는다. 주기보다 받기를 바라면서 변덕이 죽 끓는 사람에겐 예순네 살의 친구란 그림의 떡이겠다. “짜라빠빠 그대는 아름다워.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당신은 믿음직해.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수줍어하지 말고. 짜짜라 짜라빠빠빠. 짜라빠빠 즐겁게 노래해요. 짜라짜라 빠빠빠.” 늙어 죽을 때까지 짜라빠빠 노래하고, 누군가의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성공한 인생.

티베트 속담에 “서두르면 라싸에 도착하기 어렵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닿게 된다”는 말이 있다. 짜라빠빠 주문을 외우며 오늘부터 천천히, 일단은 예순네 살까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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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오랜만에 사람 소리가 담을 넘는 집집들. 영화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한 놈씩 덤비면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격파(?)해가는 것처럼, 첫째부터 막내까지 우르르 몰려온 ‘가족 난리’를 잘 치러냈다. 대개 할아버지들은 손주 사랑이 각별한데, 늘 그렇듯 두 번 고맙다. 한 번은 와주니 고맙고 두 번은 가주니 고맙다.

배며 사과며 통조림, 식용유까지 오랜만에 선물세트로 살림이 늘었겠다. 나는 그런 걸 사올 은인도 없고, 그냥 친구들이랑 떡국이나 쑤어 먹었다. 명절을 대가족과 보낸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피차 고달플 것 같아서 나부터 혼자 잠수를 타고는 했었다.

옛사람들은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첫째는 조상 자랑이다. 조상님을 존경하는 것이야 아름다운 미덕이나 그걸 자랑 삼는 순간 조상님 얼굴에 먹칠이 들어간다. 예수를 자랑해야 할 교회가 배후를 알 수 없는 선교사들과 목사를 자랑한다. 오늘날 개신교의 초대박 붕괴 원인이 이게 아닐까. 둘째는 자식 자랑이다. 자식은 잘되어도 고민, 못 되어도 애물단지다. 두고 봐라. 자식 잘된 집치고 행복한지. 자식은 무덤에 누울 때까지 잠재울 수 없는 시련의 파도와 같다. 셋째는 재물 자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이가 가진 재산을 자랑하는 인간이렷다. 사돈네 팔촌까지 벌떼처럼 손 벌리고 몰려올 것이다. 방송에서 집 자랑 돈 자랑 하는 치들을 보면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 사람들은 그때 환호하는 듯싶으나 쫄딱 망해버리기를 또 바라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자랑해야겠다. 첫째는 눈물이다.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이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비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로 삼아도 후회 없다. 당신과 헤어지면 눈물을 흘릴 사람이겠기에…. 둘째는 미소다. 미소가 예쁜 사람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는다. 항상 은인이 생긴다. 맑은 미소를 가진 사람은 또한 진실하다. 셋째는 친구다. 여럿이 말고 단 한 명의 친구. 둘도 필요 없다. 그런데 이걸 막상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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