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305건

  1. 2019.12.05 세상의 눈, 카타추타
  2. 2019.11.21 비밀기지
  3. 2019.11.14 기억 상실
  4. 2019.11.07 월간지 인연
  5. 2019.10.31 자유인
  6. 2019.10.24 밤과 추위
  7. 2019.10.17 영혼이 찾아온 날
  8. 2019.10.14 시인의 근심걱정
  9. 2019.10.04 파리의 불심
  10. 2019.09.26 미럭 곰 차두
  11. 2019.09.19 싹둑싹둑 싹둑이
  12. 2019.09.16 명절 국수
  13. 2019.09.05 천사들의 합창
  14. 2019.08.29 심야버스
  15. 2019.08.22 레몬 나무의 기적
  16. 2019.08.16 참깨 들깨
  17. 2019.08.08 줄줄이 약봉지
  18. 2019.08.01 꼬무락꼬무락
  19. 2019.07.25 찻잎사귀
  20. 2019.07.18 열기구를 타라

나는 호주 시골구석 ‘울루루’를 거쳐 ‘카타추타’에 왔다.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지. 찍기 식으로 길을 찾으면 백발백중 제대로다. 신기를 받아야 해. 바람이 나를 데리고 왔다는 말도 틀린 말 아니렷다. 카타추타란 여기 원주민 애버리지니 말로 ‘많은 머리들’이란 뜻. 산봉우리가 우쑥부쑥 여러 사람 머리처럼 솟구쳤다. 바람의 계곡에 서니 정말 바람이 설설 불었다. 창문을 뜻하는 윈도(Window)는 바람의 눈이라는 뜻. 바람(Wind)의 눈(Eye)이란 북유럽어 ‘빈드르(Vindr)’와 ‘아우가(Auga)’, 이 두 단어가 합쳐진 말. 노르웨이 목수들이 통나무집을 지을 때 환기를 위해 지붕에다가 구멍을 뚫었단다. 바람이 불면 그 구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어. 이 구멍을 가리켜 ‘바람의 눈’ ‘바람의 입’ 등으로 불렀다지. 한국은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지만 여긴 정반대 여름의 시작이다. 세상의 눈, 카타추타에 서니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

우린 그간 1% 노력에 99%는 ‘빽’이라며 허탈해하였다. 한때 호주는 1의 평화, 99의 폭력으로 기울던 때가 있었다. “땅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생을 거부했다. 다짜고짜 총을 쏘아대고, 오히려 우리를 불법 침입자로 간주했다. 그들은 호주 대륙에 본래부터 있어 온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하려고 들었다. 우리 원주민의 가장 큰 힘은 사랑, 위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출신에 상관없이, 그가 순수 혈통이든 혼혈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를 존중한다. 원주민 아이는 버려지는 일이 없었다. 백인들의 고아원에서 자랄 때조차도 원주민 아이들은 서로를 돌보았다.” 호주 원주민 반조 클라크가 쓴 <대지를 지키는 사람들>의 한 구절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원주민들은 얼굴 흰 사람들이 대지에 찾아와 99%의 폭력을 행사하는 걸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본 카타추타 산계곡이 있었다. 바람의 눈. 모든 걸 지켜본 증인. 그러나 증인이 있는 한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카타추타를 속일 수 없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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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마친 들판에 덩그러니 남은 볏짚은 숨바꼭질하기 좋은 장소다. 싹둑 잘린 볏논의 가지런한 빈터에서들 손야구를 즐겼는데, 고무공을 던지면 주먹으로 치는 야구였다. 공이 가볍다보니 투수는 바나나킥 못지않은 마구를 던질 수 있었지. 맨 바람에 볼이 빨개지도록 들에서 놀곤 했다. 그럼 볏짚을 둘러쳐 뚝딱 바람막이 ‘벽집’을 지었다. 볏짚을 태워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다. 산으로 가면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나뭇가지로 지붕을 엮고 비닐을 덮고, 낙엽을 주워 바닥을 깔았다. 두셋이 들어가면 무릎이 닿았는데 친구들과 지은 첫번째 집이었다. 모험심 강한 아이들은 저마다 비밀기지를 하나씩 두었다. 나는 예배당 뒤에 세례식을 베푸는 시멘트 욕조가 있었는데, 그곳에다 대나무를 썰어다가 엮고 지붕을 만들어 비밀기지로 썼다. 지금처럼 캠핑 텐트가 흔한 세상이 아니었으니 고급 천막은 그림의 떡이었다. 농사에 쓰다만 불투명 비닐 조각이면 충분히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음반 일로 북유럽을 종종 가게 되는데, 아이들의 비밀기지로 쓰이는 트리하우스가 놀라웠다. 부모님과 같이 트리하우스를 지어본 아이들은 훗날 똑같이 제 자녀에게도 그 재미와 보람을 물려줄 듯싶었다.

교회 주변을 맴돌며 살다보니 어린 나이에 예배당 수리를 해봤다. 시멘트 블록으로 창고 건물도 겁 없이 지어보았다. 삼십대에 이 산골짜기 양지바른 터에 살림집을 짓기도 했다. 내 또래에선 이른 경험이었을 게다. 웬만한 목수보다 많은 공구를 가지고 있고, 해본 가락이 있어 덤벼든 일. 일복이 터져 알바로 ‘인테리어’도 돕곤 한다. 비밀기지를 만들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일파만파’ 놀이가 커진 게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천막집을 잘 세울 줄 알아야 한다. 인연이 닿으면 자기 집도 지어볼 수 있길. 헐어진 장독간이라도 다시 세울 재주는 가져야지. 국방과 안보를 염려하는데, 비밀기지를 잘 짓는 아이들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우랴. 아이들이 비밀기지 놀이는 않고 영어공부만 하니까 미국에서 방위비를 더 뜯어내려는 듯.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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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는 얼음이 얼었단 소식도 들린다. 유리창에 손을 대면 뽀드득 소리가 나. 뽀드득 소리란 말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다. 택시 합승을 한 아가씨와 할머니. 아가씨가 방귀가 급해 창문에 대고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무사히 실례를 했어. 그런데 할머니가 아가씨를 급 째려봤대. “소리는 잘 처리했는가 몰르겄지만서두 이 냄새는 우짤거여.” 뽀드득 뽀드득…. 들킬 수밖에 없는 냄새. 

알츠하이머에 걸려 법정에 출두하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골프장에 간 전모씨. 측근의 변명에 의하면, 골프장을 나오는 순간 자기가 골프를 쳤는지 안 쳤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우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지존급. 냄새가 너무 나지만 민주주의 아버지시라는데 어쩌랴. 그이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만 나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다. 감퇴란 어떤 욕구나 능력, 힘이 줄어서 약해진다는 말. 나이 들어가는 증거다. 글 연재를 신문 외에는 거절하다보니 마감 ‘빵구’를 낼 일은 없지만, 이도 모른다. 기자 동무가 챙겨주어야 한다. 어제 저녁에 개를 풀어놓고, 풀어놓은 걸 깜박 잊고 들어와 버렸나봐. 목줄을 하지 않고 넓은 견사에 넣어 두는데, 하루에 한두 시간은 마당에서 맘대로 놀게 해준다. 그러나 남의 밭에 쳐들어가 장난질을 했다간 동네 원성을 사게 되니 완전한 자유는 줄 수 없다. 아침에 문 열어 보니 현관 앞 그네 위에 올라가 그네를 즐기면서 쿨쿨 단잠. 멀리 안 도망가고 나를 지켜주었구나. 까맣게 잊고 나도 잠을 잤었다.

지난주엔 술자리에서 동무랑 낼 점심밥을 먹자고 약속해놓고서 까먹기도 했다. 식당에서 문자가 왔다. 나는 다른 데 가 있었고. “미안, 쏘리” 백번하고 다음에 비싼 회를 대접하기로 했다. 빨리 해외로 도망을 쳐야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화에 따른 기억 상실은 조금 있긴 했지만 치매나 알츠하이머는 아니었다. 내가 포도주를 좋아해 알코올성 치매가 걱정이 되긴 하다만, 그렇다고 주님의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은 또 제자됨의 예의가 아니렷다. 곤란한 인생살이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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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낙엽이 낙하 중이다. 이런 날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큰 볼륨으로 듣고 싶어라. 낙엽은 푸른 잎사귀의 죽음. 낙엽을 한 잎 주워 책갈피에 꽂아둔다. 최인호 샘의 글에서 본 기억. 봉쇄 수도원 트리피스에선 단 한마디 말만 할 수 있단다. “형제님. 죽음을 기억합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책갈피 낙엽에 적어두고 싶다. 죽음으로 멈춘 기억들은 남은 자의 몫이겠다.

오래전 월간 ‘샘터’에 몇 해 연재를 했었다. 그때 뵈온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최인호, 영문학자 장영희, 사진작가 최민식, 수필가 피천득, 그리고 법정 스님과 류시화 시인까지 모두 시절 인연들이다. 가끔 엽서를 주고받았던 이해인 수녀님도 월간지 인연. 출판사 샘터에서 부탁해와 아포리즘 같은 책을 한권 낸 일도 있다.

책이 나온 날에 붉은 벽돌 건물 샘터 파랑새극장에서 티어라이너 밴드 동생들과 공연을 가지기도 했었지. 한창 싸돌아다니던 때라 지인들이 많았다. 뒤풀이에 돈을 꽤 많이 써야 했던 기억. 대학로엔 ‘학전’이란 극장도 있는데, 막걸리 냄새를 풍기고서 건널목을 지나던 김민기 아저씨를 뵙기도 했다. 그땐 감히 알은체를 못했다.

‘샘터’의 인연도 가물거리는 옛일이 되었다. 매달 변함없이 독자를 찾던 월간지가 시대가 변하여 기우뚱한다는 소식. 그러고 보니 녹색연합에서 펴내던 생태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도 발간을 멈췄다. 창간호부터 녹색연합에 후원한다 셈 치고 매달 원고료 없는 긴 글을 주었지. 맑디맑은 수필들이 숨 쉬던 월간지들이 지상에서 힘겨워한다. 월간지들이 올근볼근 다투며 주름잡던 출판계는 옛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괘꽝스러운 전자기기의 세상이다. 무슨 협회에 가입하거나 학연, 지연, 등단의 울타리가 아니면 작가들끼리 교류도 사실 거의 없다. 지면이 없으면 안면도 더는 없겠고, 두둥게둥실 흩어가는 구름떼가 되겠지. 홀가분하여 좋기도 하지만서도 문우 문형을 갖지 못하는 시절은 못내 아쉬울 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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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다가오는지 아침저녁 쌀쌀함이 배나 더하다. 밤새 내린 이슬로 아침 마당이 촉촉하다. 뽀글이 점퍼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만날 찾아 입게 된다. 아이들아! 대학에 합격하려면 ‘재수 없는 꿈’을 꾸면 된단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야 또 많단다. 

입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야무지게 책상에 달라붙어 책을 읽곤 한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세 휙 지나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깐.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이 훨씬 즐겁다. 매주 설교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다. 입으로 뱉은 말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유란 그래 말을 앞세우지 않고 몸으로 먼저 살 때 차오르는 기쁨이 맞다. “울안의 닭은 배불러도 솥 안에 삶아지고, 들판의 학은 배고파도 천지가 자유롭다.” 지공 선사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남들보다 프로필이 장황한 편인데, 한마디로 줄이면 자유인. 사실 아무것도 되지 않고자 싸워왔는데, 그만 이력이 늘었다. 인도의 현자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했다. “자유인은 사실 사제복이나 사타구니쯤 가리는 남루한 옷을 입거나 하루 한 끼 식사하는 이러이러한 인간이 되고 저러저러한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무수히 선서를 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적으로 단순하며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이다. 그런 이성은 장애물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무엇을 향한 전진이 없기 때문에 놀라운 수용력을 지닌다. 이로써 은총과 하느님과 진리, 원하는 모든 것을 지닐 능력을 가지게 된다.”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 자유인들이 있어 예술도 있고 종교도 불을 밝힌다.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묻자 과학자, 장사꾼 쏟아지는데 한 여자아이가 말했어. “결혼해서 애 낳고 소박하게 살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럼 저는 이 친구가 애 낳는 데 협조하면서 소박하게 살래요.” 힛, 그리 살아도 뭐 둘이 좋다면야. 우리 사회는 이제 이 소박한 꿈도 꾸기 힘든 비혼과 저출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대범한 자유인들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닭장에 갇혀 와글다글 살다가 솥 안에 삶아지기 일보 직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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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간사해서 언제 더웠는지 기억조차 없다. 더위를 정녕 ‘보’내기 싫으면 가위와 바위를 내면 돼. 훗~. 어디를 쳐다보나 가을가을 한다. 은행잎은 노란리본을 흔들기 시작. 자연은 제 목소리를 분명히 낸다. 입이 달린 모든 생명은 제 소리를 내고 산다. “우리 시대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기억한다. 거친 아우성이나 침묵은 가을의 진중하면서도 분명한 표현력과는 딴판. 인간은 자연에게서 배울 게 많다.

올 들어 처음 군불을 때고 누웠다. 따뜻하니 좋구나. 좋을 일도 참 많다고 그러시겠다. 무엇보다 손발이 따뜻한 게 참 좋아. 나는 얼음송송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아’는 잘 안 마신다. 한여름에도 ‘따아’를 마신다. 후후 불어마시면 속이 데워져서 그런지 바깥 더위를 잊게 된다. 추운 겨울에 어찌 살까 약간 걱정이 드네. 기십년 겨울나기에 이력이 붙기는 했으나 추위는 정말 질색이야. 부지런히 호롱불을 걸어두고 군불을 때고 해야지 별 수 있는가.

노처녀가 시집을 간 첫날밤. 신랑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지. “아니 왜 그래요 갑자기?” “야 이눔의 자식아. 왜 이제야 나타나서 나를 감동 주는 겨?” 밀어뜨려 이불 속으로 쏘옥.

더운 날에는 담양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이 있었으나 추운 날에는 부인 가출 실종이렷다. “해 저무는 들녘 하늘가 외딴 곳에 호롱불 밝히어둔 오두막 있어 노을 저 건너의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켜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해 저무는 들녘 밤과 낮 사이에 이리로 또 저리로 비켜가는 그 사이에….” 김민기 아저씨의 ‘그 사이’ 밤과 낮 그 사이에 시방 서있다. 더위와 추위 그 사이에 서 있다. 그러다가 점차 기울어진다. 밤으로 그리고 추위에게로. 당신과 함께했던 밤과 추위를 생각하면 온몸 가득 온기가 솟아오른다. 그 기억으로 충분해. 이 세상의 밤과 추위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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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강의하러 간 김에 친구 얼굴 한번 보려고 방문했는데, 바쁜 일처리로 볼이 빨개 있었다. 같이들 마시라며 커피를 사서 넣어주고 뒤돌아섰다. 나는 다음 역까지 한참이나 걸었다. 영혼보다 빨리 달려가는 바쁜 몸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량들. 내뿜는 한숨과 매연에 얼른 이 산골로 돌아오고 싶었다.

구절초가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연보라 꽃송이에 꿀벌들이 달라붙어 쪽쪽대는 소리가 요란도 하지. 10월은 구근 식물 옮겨심기에 적기다. 젖먹이들을 물어 옮기는 어미 개나 고양이처럼 여러해살이식물들을 옮기고 새 보금자리를 지정해준다. 후일에도 내 정원은 꽃과 여러 식물들로 나와 손님들을 기쁘게 맞아줄 것이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소중히 달라붙어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곳. 정신 차리기에 좋은 곳을 사람도 ‘가지고, 가꾸고’ 해야 한다. 하루쯤 시간을 내어 풀을 뽑고, 꽃대를 잡아주고, 따뜻한 국화차를 내어 마시면서 살아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올가 토카르추크는 화가 요안나 콘세이요와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책을 냈다. 너무 바쁘게 산 ‘얀’이라는 이름의 남자 주인공. 어느 날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를 깡그리 기억 못하게 된다. 의사에게 찾아갔는데, 병명은 ‘영혼을 잃음’. 2~3년 전에 갔던 데를 찾아가거나 어디 한적한 곳에 기다리면 혹시 영혼이 되돌아올지도. 얀은 변두리 시골에 집을 구해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대문을 쿵쿵 두드리며 영혼이 돌아왔다. 얀은 다시 영혼을 잃지 않고자 시계와 트렁크 따위를 마당에 묻어버린다. 시계자리에선 종모양의 꽃이 자라고, 트렁크에선 호박이 열려 담을 타고 넘어갔다.

그림책이 좋아 침대에 껴안고 꿀잠을 잤다. 내게도 영혼이 찾아온 기쁜 날이었다. ‘하루쯤 시간을 내서 봐요’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사실 내가 조르고 바쁜 그들이 만나주는 세월. 친구도 순위가 있을 텐데, 돈벌이가 시원찮다보니 천덕꾸러기인가봐. 내 영혼이나 자주 만나야지 그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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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엄마랑 하는 말을 엿들은 유치원생 꼬마. “아빠는 내가 무슨 반인지도 몰라. 근심반 걱정반 아니라고요. 나 달님반인데 나한텐 관심도 없어요. 우우~” 귀여미 꼬맹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마음 편할 날 없지. 이게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걱정보따리는 배나 더 클 뿐. 

가을이 되면 시인들은 부쩍 ‘센치’해져서 슬픈 시들을 낳고는 한다. 시도 이를테면 시인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 자기 시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걱정만 한가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 담긴 ‘시’라는 시가 시답잖은 내 시를 쏘아본다. 솔직하고 담백한 시집을 읽다보면 주눅이 든다. 

시 공책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좋은 문장이나 낱말, 이야기를 발견하면 기록해둔다. 아이가 밥은 먹었나 걱정하듯 내 시가 앞뒤 제자리를 틀고 앉았는지 한번씩 요리 보고 저리 본다. 목사들은 가끔, 또는 자주, 설교를 하게 되는데 설교문도 엄청 신경을 써야 한다. 아니면 모두 실망하거나 푹 깊은 잠을 주무시게 되니깐. 나도 담임목사 노릇을 할 때는 일주일 내내 설교문을 끙끙대며 썼다. 교인이라야 할머니들뿐이었으나 신경을 써야 한다. 할머니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차이를 잘 모르신다. 두 분 헤어스타일이 좀 차이가 나긴 하지. 

교회 다니기 전엔 절에 다니셨던 분들이라 왔다리 갔다리 불경과 성경이 머릿속에서 잡탕으로 오고 간다. 목사가 눈을 감고 기도하면 교인들은 휴대폰을 몰래 열어보고, 목사가 설교하면 교인들은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존다. 예수는 자식 대신 제자를 낳았는데, 모두 틈만 나면 곯아떨어졌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정체 모를 목사와 교인들만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나라 걱정. 걱정도 팔자이신 분들이렷다. 그러다가도 헌금은 기어이 걷더구먼. 결국은 먹고사니즘. 시인의 계절 가을엔 근심걱정이 커간다. 고엽의 가로수길 우울도 쌓여간다. 한 줌의 좋은 시가 나오려고 산고를 치르는 중이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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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장마가 지나가더니 한 주에 한 개씩 태풍이 몰려온다. 극장식 일기예보. 대형 동그라미가 비닐하우스와 낡은 함석 처마, 그리고 논밭을 정조준한다. 태풍아 우리 동네로는 오지마~ 백팔배를 올리는데, 백팔배는 ‘뱃살빼’의 동음이어. 

죄 없이 배고프고 뱃살이 쑥 빠지는 계절. 문밖은 온통 손길을 기다리는 일감들이다. 국화꽃이라도 볼라치면 꽃밭을 가꿔야 한다. 또 극성맞은 파리·모기에 괴롭다. 가을 태풍에 다들 날아가 버리면 좋겠다. 

잠자리와 벌과 나비, 그리고 파리가 서로 자랑질. 잠자리는 나처럼 멋지게 날 수 있어? 나비는 나처럼 우아하게 날 수 있어? 벌은 나처럼 날렵하게 날 수 있어? 그러자 파리가 배를 쥐고 웃더란다. “이 모자란 것들아. 니들은 나처럼 똥 먹을 수 있어?” 모두 졌다. 파리·모기가 없는 가을은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촌사람들에게 고마운 계절이다. 

악머구리로 시끄럽던 세상이 고요해지는 순간. 빈 들과 빈 가지. 단감을 다 수확하고 까치밥만 남은 감나무.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찬송가를 부르며 일을 하는 할머니들. 성크름한 날씨에도 늦은 시간까지 옴나위도 없이 꽉 찬 밭일들. 저녁이 파르께하게 찾아오면 밭고랑 백팔배를 멈추고 귀가들을 한다. 물끄럼말끄럼 쳐다보던 강아지, 그제야 밥먹게 생겼다며 좋아라 앞장을 선다. 파리·모기들 쫓는 강아지의 귀가 팔랑거린다. 사람귀도 강아지처럼 발달했으면 어쨌을까. 파리·모기도 먹고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들이다.

대전 사는 스님 동생이 종종 묵어가곤 한다. 엊그제도 불쑥 찾아와 계란말이도 하고 국도 끓여서 밥을 차려주더라. 반찬 없는 냉장고 속을 보더니 “형님은 요새 살림을 허시요 마시요?” 핀잔. 그래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살아 파리·모기는 없다며 칭찬도 조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 그랬더니 정말 조용히 있다가 떠났다. 차비라도 줄 걸 보내놓고 마음이 쓰였다. 미안해. 파리는 용서를 싹싹 빈다. 파리는 염치도 있고 불심도 있나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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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거리가 땟물에 꺼매가꼬, 몰강물(맑은 물)에 씨치고(씻고) 양철떼기 같은 걸로 배깨야재(벗겨야) 제 꺼죽이 돌아오겄소잉. 뫼욕(목욕)을 해도 핑야 똑 같어부러.” “엥간히 조깐 일을 해야재 빙(병) 걸려서 아파불믄 뭔 소양이간디.”

밭일이 많은 날. 검은 피부의 농부들이 들에 보인다. 한마디씩 안부를 묻는다. 허수아비도 참말로 오랜만에 동무들을 만나서 반가운 낯부닥이다. 산밭에는 몽당 빗자루, 그러니까 몽당구라 부르는 걸 하나 거꾸로 세워두기도 했다. 새들이 보아도 어설픈 허수아비. 저를 우습게 아냐며 매번 코웃음을 치는 새들. 큰비에 방천이 나면 득달같이 터진 물길을 메우고 입이 타드는 여름엔 길어 온 물로 ‘따둑따둑 다독다독’ 밭을 일궜다. 

“인자사 찬바람이 불어옹갑마.” 대대적인 수확이 시작되었다. 비바람과 가난을 누구보다 잘 견뎌온 소농들. 남보다 용감한 것보다는 10분을 더 견뎌낸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지. 견디길 잘하는 사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는 법. 농사꾼들은 자연재해마다 잘 이기고 견뎌낸다. 걱정이 아예 없는 인생을 바랄 게 아니라 걱정에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 결과이겠다. 요새처럼 전염병이 돌면 축산 농가들은 벼랑 끝에 선 처지가 된다. 가을태풍까지 몽니가 이만저만 아니어라. 몽니쟁이들이 어디나 숱 쌔고 쌔부렀다. 

우리 동네에선 ‘미련한 곰 같은 놈’을 가리켜 ‘미럭 곰 차두’라고 부른다. 요런 미럭 곰 차두 하면 순하디 순한 타박이고, 요런 호랭이 물어갈 놈의 미럭 곰 차두하면 웃자고 하는 나무람이다. 미련한 곰들이 들과 산을 지킨다. 어디 노동 현장엘 가 봐도 꼭 이런 ‘미럭 곰 차두’가 한 마리씩 띈다. 바람이 몹시 찬 손돌이추위가 가깝기 전에 벼도 베고 고추도 들여야지. 따비밭 손바닥 위에다 뿌린 부추가 송글 거린다. 근근한 쪽박세간에서 밥과 김치를 해먹고, 나들잇벌 옷 하나 볕에 잘 말려 입고설랑, 엉덩잇바람으로 서두르는 길. 읍내 목욕탕 나가는 길. 미럭 곰 차두가 가을 농사를 다 마친 뒷날 풍경이다. 누가 그에게 힘찬 박수를 쳐줄까. 당신도 나와 같이 박수를 쳐드리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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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못하는 목사가 있었다. 교인들이 모두 졸고, 특히 제 아내는 코까지 골았다.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는데, 누구 좋은 의견 없는가?” 아들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부지.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떼고 그 자리에 시계를 걸어 놓는 겁니다. 무조건 아부지 쪽을 쳐다보겠죠. 빨리 끝내달라고 아멘을 연발할 겁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쳐다보지 않으면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래 억울한 일 당한 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고공 투쟁을 했다. 불교 스님이나 기독교 ‘은수자’들의 삭발과 긴 수염 등은 내용이 많이 다르다. 치장하지 않고 수행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발리섬 우붓에 가면 원숭이 왕국이 있다. 원숭이들이 노상강도 깡패나 같다. 과일은 기본이고 가방도 뺏어가고 휴대폰도 낚아챈다. 모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서로들 나눠 써보며 메롱메롱 놀리기까지 한다. 문제는 가발을 쓴 사람을 덮치는 경우다. 민둥산이 드러나면 원숭이들도 깜짝 놀란다. 아무튼 가발 착용자들은 원숭이 왕국에 얼씬거리지 않는 편이 낫다.

학교 다닐 때 자주 두발 단속을 당했다. 일명 ‘바리캉’으로 한쪽 머리를 쭉 밀어버렸다. 학교에 이발소가 아예 딸려 있어 돈을 나눠 먹는 눈치였다. 두발 단속을 하는 날이면 이발사 표정이 밝았다. 한편 경찰은 성인들을 상대로 장발 단속을 했다. 군사정권은 머리를 자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회 약자들은 그들이 들이대는 가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싹둑싹둑 가차없이 자르고, 또는 스스로 자르게 만든 머리카락들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그들 독재자와 하수인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들 받아 심한 탈모를 겪었다. 또 공안검사들은 대학생들을 잡아다가 간첩이라고 족쳤다. 원산폭격 고문을 시키면 부분 탈모가 발생했다. 욕조에서 공짜로 ‘스킨스쿠버’ 교육도 시켜주었다. 물을 많이 먹고 죽거나, 탁 치면 억하고 죽거나, 보통들 싹둑 목숨이 떨어져야 끝이 났다. ‘싹둑이’들의 세상이었다. 생각해보면 멀지도 않고 엊그제 일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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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면은 간편해. 삶는데 냄새와 연기가 없다. 고기는 구울 때마다 기름이 튀고 냄새도 난리. 배지영의 단편소설 ‘근린 생활자’엔 501호 아줌마가 등장한다. “발코니에서 담배 피우거나 고기 굽는 것 삼가해주세요. 연기가 위쪽으로 그대로 올라가서 특히 3, 4층 분들은 창도 못 열어놓고 지낸다고요. 아셨죠. 꼭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발코니가 있는 집을 계약해 들어간 아무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고기를 구워댔다. 이제는 아래층에서도 쫓아들 올라온다. 면이나 삶아먹지 총각들이 뭔 고기냐 이를 드러냈을 것이다. 시골집에 살면 삼시세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낭설이다. 낙향처사들은 불이야 있으나 두 가지 돈이 없게 된다. 머니 돈과 돼지 돈.

산타 할아버지가 절대 먹을 수 없는 면, 울면. 울면 안돼. 당신은 산타가 아니니 울면도 드실 수 있겠다. 면을 너무 좋아했는데, 밀가루 당분 섭취를 줄이려다보니 메밀국수를 찾아먹게 되었다. 납품하는 곳을 알아냈고, 국수를 쟁여놓고 안심. 명절 긴긴날 뭘 먹을 건지, 장이라도 봐야 할 텐데 국수나 삶아먹을까 생각하니 개운하고 홀가분해라. 김치만 있으면 되었고, 얹어먹을 고기라도 들어온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시인 백석은 먹는 타령을 지독히 했다. 시들 통째로 밥내와 모밀내, 오만가지 군침을 돌게 만드는 낱말들 잔치.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가튼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가튼 도야지를 잡아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또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이북에서는 돼지고기와 국수를 한 궁합으로 먹는 모양. 냉면과 온면, 고루 맛보는 겨레의 명절. 쟁반 속에 달이 둥그렇게 뜰 게야.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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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세상이 왁자지껄 시끄러울 때는 다툼이 있단 소리. 야곱이 결혼한 뒤 한참 만에야 친구를 만났다. “자네 부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야곱이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변했다네. 연애 시절엔 내가 주로 얘길 하고 아내가 들었지. 결혼 뒤엔 아내가 주로 얘길 하면 내가 듣게 되더군. 지금은 말이지, 우리 둘이 떠드는 얘기를 이웃사람들이 모두 듣고 산다네. 싸우는 목소리가 담을 넘거든.”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행복하려면 차를 사고, 일 년 행복하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라고.

사랑과 진실을 품고 살 때 세상 또한 밝아진다. 일을 할 때도 사랑으로 행해야지. “사랑을 품은 가슴으로 일하지 않으려면 성전 앞문에서 구걸을 하는 편이 나을 거예요. 빵을 구울 때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빵맛이 쓸 뿐이죠. 괴로운 맘으로 포도주를 만들면 그 괴로운 마음이 포도주 속에 고스란히 담기죠. 천사처럼 노래해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사람들이 결국엔 귀를 막게 될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다가 밑줄 그은 구절. 영원한 것은 없지. 사랑도 물론이다. 굳게 각오하고, 이를 앙 물고 지켜내야 날마다 숨을 쉬게 되는 마음. 천사들의 합창, 사랑 노래를 듣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밤송이가 누렇게 영글고 대추 열매도 굵어지고 있다. 조용조용 깊어가는 가을이다. 노란 불빛의 집들. 바닷가 마을 게가 기어 다니듯 조용조용 찾아온 밤이면 쓰르라미가 목이 터져라 운다. 그래봤자 야곱이 싸우는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세계에서 가장 방귀를 잘 뀌는 ‘까스명수’보다는 턱없이 모자란 쓰르라미 목소리. 사랑으로 부르는 노래, 천사들의 합창으로 밤이 꽉 찬다. 현해탄 건너 부잣집 영감 ‘수표로 밑닦가’ 상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우리들은 단단히 사랑하고 뭉쳐서 잘 이겨낼 거야.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끝내 당당하게 웃을 수 있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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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소설 <이방인>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버스를 놓칠까봐 허겁지겁 뛰어갔다. 숨차게 올라탄 뒤끝에다 버스 배기통에서 나는 기름 냄새, 격한 진동, 도로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 그 모든 것들에 혼미해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를 타는 내내 졸았다. 깨고 보니 내가 한 군인의 어깨에 파묻혀 있었다. 군인은 겸연쩍게 웃으며 어디서 오는 길이냐 물었다. 대답하기 쑥스러워, 가볍게 얼버무렸다.”

지난여름 동안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작곡가이자 가수 김현성 형이랑 음반 녹음작업을 했다. 음반 제목은 ‘심야버스’. 내가 지은 시들에다가 형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하는 음반. 우린 20년도 넘은 오랜 인연이다. 우정의 결실 하나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가을에 출시하고 공연도 같이할 예정이다.

이 일로 여러 번 심야버스를 탔다. 서울과 산촌을 오가면서 나도 소설 속 이방인처럼 까무러쳐 졸고는 했다. 심야버스는 늦게까지 수고한 분들이 주 고객이다.

퀘이커 신자들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가면 워너메이커의 동상이 있다. 체신부 장관까지 지낸 워너메이커는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 그는 우리나라 종로 YMCA를 지어주기도 했다. 입만 열면 4가지를 강조했는데, ‘집중해서 생각하라. 서둘러 실행에 옮겨라. 배나 노력하라. 사람이 아닌 신을 섬겨라.’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백화점을 열고 버스도 구입했다. 사람들은 승용차 대신 백화점 버스에 다투어 탔다. 이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유층이었다지.

오늘날 버스, 특히 심야버스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거 적어도 서로를 믿고 정직하게 사는 이들. 비슷한 거주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타 집으로 향한다. 몰래 한몫 잡아 꿍친 돈도 없다. 자녀들은 집 가까운 동네 학교에 그냥 다닌다. 이웃집 애가 늦으면 같이 발을 동동 구른다. 버스 객석에서, 고단한 머리들 어깨에 나누며 숨소리와 땀내음을 같이 느낀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우리는 그걸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심야버스에 졸던 학생들이 끝으로 내리면 달님도 눈을 감고 잠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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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혀를 내밀고 더워하면 수박을 나눠 먹었다. 포도는 몇 송이 달리지 않아서 새들에게 양보. 쳇- 기다려도 감사의 인사가 없구나. 내 사랑 레몬으로는 주스를 해서 마신다. “꿈을 꾼다네. 하느님이 되어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꿈. 하지만 너무 지루해 죽을 맛이야. 땅에서 사는 게 차라리 나았어. 기적놀이를 하는 하느님이 아니라면 미치고 말았을 거야. 잘 왔어. 나는 하느님이야. 나는 날마다 기적을 베풀지. 레몬즙으로 만든 비를 뿌릴게. 이슬 내리듯 동굴들을 적시게 하고, 하수구에도 일품 라인산 와인이 넘치게 할게. 시인들은 내가 선물한 음식을 반겨하더라.” 독일시인 하이네의 시 ‘귀향’에서처럼 레몬즙 비가 내리고는 해. 오늘 비소식이 있다. 빗물로 머리를 감으려고 양동이를 내다 놓았다.

레몬 나무를 한 그루 열심히 돌봤는데, 레몬 열매가 송알송알 달렸어. 생큐 생큐. 이건 기적이야! 소리쳤어. 내 일상은 마치 미국시인 휘트먼의 그 일상처럼 소소하기 이를 데 없으니 이건 기적이 맞다. “평범한 일상. 사무실 혹은 책상, 자두 과수원과 사과 과수원, 정원 가꾸기. 씨 뿌리기. 나무 베기, 꽃 피우기와 덩굴 키우기. 곡식과 비료. 회토, 진흙, 찰흙, 하층토 쟁기질. 삽과 곡괭이와 갈퀴와 괭이. 물대기와 물빼기. 말빗과 말옷, 말 고삐와 굴레와 재갈, 말먹이 짚다발, 외양간과 바닥, 곡식 저장고와 구유, 건초와 시렁. 여기 도시와 시골. 난로와 촛불, 가스등과 히터와 수로. 싸우는 사람의 일격, 어퍼컷 하나 둘 셋. 빵집의 빵과 케이크, 열대의 과일과 푸줏간 선반의 고깃덩이. 당신의 방과 침실, 당신의 피아노포르테, 난로와 조리 기구.” 휘트먼은 ‘직업을 위한 노래’를 쓰면서 집 안을 죽 한번 둘러봤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 축복 같은 시가 찾아왔겠지. 창문 밖엔 푸른 잎사귀의 레몬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풍경. 우린 수많은 기적 속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지. 정원은 온통 꽃들, 열매들. 이젠 가을이야. 돌본 만큼 정직한 열매를 거두길. 공정한 세상에 살고 싶어라. 소소한 기적에 환호하면서.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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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게 깨다. 깻대는 심을 때부터 목숨 줄이 간당간당하다. 겨우 살아남은 야문 무리가 솟구친다. 가장 덥고 습한 장마와 여름을 나게 된다. 베어지면 곧바로 햇볕에 바짝 눕게 된다. 가장 뜨거운 아스팔트나 마당에다가 넌다. 잘 마르면 다음 순서, 죽도록 두들겨 패기. 바깥주인이 때리고 안주인이 때리고 개가 밟고 지나가도 욕을 먹지 않는 게 깨 털기다. 뒤지도록 두들겨 맞는 도리깨질이 끝나도 수난은 더 이어진다. 이제는 까불기. 돌조각이라도 있을까봐 바람에 까분다. 더러 땅바닥에 동댕이질. 그러고 나면 가장 센 불에 올라가 볶임을 당할 차례. 기름이 되는 녀석들은 쥐여 짜는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고소한 참기름을 불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건 그러니까 참기름이 아니라 피눈물이렷다. 당신의 시골 어머니가 보내오는 참기름은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더운 날 다리 밑에서 천렵놀이. 뱃살 번진 아재들 사우디 건배사. ‘사’나이 ‘우’정 ‘디’질 때까지. 흥을 돋우면 아낙들도 이에 뒤질세라 아우디. ‘아’줌마 ‘우’정도 ‘디’질 때까지. 그러고는 뒤끝에 비빔밥을 쓱쓱 만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질긴 목숨의 참기름을 쭈욱 두른다. “요거이 차이나 아니여. 니뽕거 아니여. 국산 로컬이여.” “알았어 알어.” 박수들을 친다. 고소하고 맛나고 질긴 우정들아. 사랑들아.

엄마 냄새. 참기름 냄새. 아이들도 엄마표 비빔밥을 좋아해. 이 고소한 밥을 안 먹고 단것만 찾으면 저만 병나고 손해지. 언젠가 북청사자놀이를 현장에서 봤는데, 사자탈을 벗은 아재들이 구석지에서 참기름에 비빔밥을 말아먹는 풍경. 잊지 못한다. 큰 양푼에다가 같이들 우걱지걱 비벼 먹는 저 힘. 저 기운.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내는 신명이었다. 참깨 들깨 나누며 함께 견디고 함께 넘어온 아리랑 고개.

참깨 들깨 수확 철이다. 차를 몰다가도 마을길에 깻대가 널어져 있으면 조심조심. 두들겨 맞을 일을 생각하면 또 불쌍불쌍.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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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뙤약볕에도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분들. 고등어라도 한 마리 사러 장에 나가기, 병원에 약 타러 가기, 외출은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병원과 약국을 차례로 들러 약봉지 하나씩 들고 탈래탈래 걸어 나오면 반기는 것은 다시 뙤약볕. 나도 약봉지를 항상 챙겨 다닌다. 약이라 함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의 그 약. 병은 선고받은 그날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것은 약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커피 라떼를 싫어한다지. 왜냐면 어른들이 입만 열면 ‘나 때’엔 어쩌고저쩌고. 그래봤자 일찍들 잔디밭으로 돌아가셨다. 라떼는 이제 그만. 옛 어른들은 신통방통 약이 없으니 일찍 숟가락을 놓았다. 의학이 발달하여 바야흐로 백세 장수시대. 남보다 먼저 죽으면 매우 억울하다.

제아무리 명품 패션, 명품 가방을 자랑하고 다녀도 병원에 눕는 순간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오줌이 담긴 비닐주머니를 샤넬 백 대신 옆구리에 차고 다닐 수도 있다.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법. 그러니까 건강하게 살았을 때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더불어 행복한 장면도 남겨둬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딱 한 가지. 살 수 있는 사람과 곧 죽을 사람의 차이도 정답은 같다. ‘무얼 찾아 맛있게 먹는 사람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

곡기를 끊지 않고 보조식품이라도 입에 털어 넣으면 어찌저찌 오줌과 똥을 눌 수 있다. 그래야 내일 조간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 ‘먹되, 배부르게 먹지 말고 잘 먹어라! 몸을 움직여 배고프게 만들라! 밥을 먹고 나면 꼭 걷기운동을 하라. 걷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다리가 튼튼해야 오래 산다. 걷다보면 나팔꽃도 보고 깨꽃도 보고 포도넝쿨에 달린 잘 익은 포도를 따먹을 수 있다. 천하의 명약이 있대도 고요히 생을 돌아보며 숲길을 걷는 보약에 비기랴. 손에 든 줄줄이 약봉지보다 두 발로 서서 걷는 순간이 보약이렷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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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때 본 구름이 그야말로 뭉게구름. 가끔 따갑던 해가 안 보여서 좋아. 고되던 시집살이, 모두 안 보이고 혼자 남은 할머니. 이제 좀 홀가분한데 왠지 외로워 보여. 대나무로 검은 차광막을 얼기설기 쳐놓고서 여름을 난다. 뭉게구름은 열심히 따가운 햇볕을 가려보지만 차광막만 못해. 할머니는 애를 쓰는 뭉게구름의 사랑을 알까. 부채를 하나씩 들고 모정에 모여 맘속에 담아둔 얘기 나누던 날도 많았다. 요샌 회관에 달린 에어컨이 대세. 에어컨을 켜고 앉았으면 어디선가 쪄온 옥수수가 나온다. 여기선 ‘옥시시’라고 한다. 옥수수 하나로 충분히 배부르고 행복해진다. “여그가 천국이재 뭘라 싸돌아댕개. 더우엔 가만히 자빠져 있는기 상책이여.” 그러면서도 자녀들이 고향집에 하루라도 들렀으면 바란다. 누워 있다가 궁둥이에서 방귀가 뒤따르면 푸하하들 웃고….

언젠가 말재간꾼 김제동이 그랬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십니까? 행운입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십니까? 그건 행복입니다.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짓밟고 다니지는 않습니까?” 현대인들은 뭔가를 다들 쫓아다니는데, 행복이 아닌 행운이 아닐까. 꼬무락꼬무락 거동하는 어매들. 길쌈하고 물레 돌리고 고추를 말리고 콩대를 털던 마당, 세월이 지나 아이들 그림자 하나 놀지 않는 빈 마당에서 홀로 허리를 편다.

우리 동네엔 빨치산이 지리산 자락을 타고 추월산, 병풍산까지 쏟아져 내려왔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던 손을 급히 놀려서 옥수수와 감자를 한 바구니 쪄주던 할머니들이 있었다. 배고픈 자식은 남이나 북이나 아군이나 적군이나 보고선 참을 수 없었다. 그게 어머니요 아버지였다. “우리나라 어머니 품을 떠나서 헤매던 형제들 어서 뭉치세. 백설단심 끓는 피 깨끗이 받아 한을 풀고 찾으세. 화려 삼천리….” 독립군들의 노래 ‘우리나라 어머니’에 나오는 그 어머니들. 품이었던 분, 고향집이었던 분들. 그래서 이곳은 고국산천, 화려삼천리 아닌가.

동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갈 때, 꼬무락꼬무락 낮게 별자리가 뜬다. 세 잎 클로버도 보이고 네 잎 클로버도 보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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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갯불과 함께 장마. 후텁지근 열대야. 가공할 습도는 땀에 절게 만든다. 십자고상의 예수님도 이렇게 더우면 양팔 벌리기 기구운동을 잠시 멈추고 땀을 닦으신다. 대웅전의 부처님도 스님이 선풍기를 살짝 틀어주면 안면에 미소가 ‘살짜기 옵서예’로 번진다. 엊그제는 연꽃 방죽이 있는 완주 송광사에서 연차 다회를 가졌다. 또 강원도 강릉땅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절집 청학사. 나도 실무자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동무들과 우연히 방문했다. 스님이 내신 귀한 차를 얻어 마셨다. 더위를 불사하고 팔도 유람을 했는데, ‘하나라도 더 알라’는 사우디 최고 선생님 존함마따나 앎과 배움이 느는 유람이었다. 이름만으로 거뜬히 세계 여행이 가능하다지. 인도에 가장 위대한 철학자 ‘알간디 모르간디’, 인도 최고 요가 수행자 ‘안꼰다리 골라꽈’, 타짜 챔피언 중국의 왕창 따와 프랑스의 몽땅 따…. 이런 분들 성함이나 주워 섬기고 살다가, 제법 철이 들었나 요샌 ‘하나라도 더 알라’. 

이름난 다인 중의 한명인 지인이 첫물차를 안겨주어 팔팔 끓인 샘물에 내려 마시는 중이다. 땀을 내면 그만큼 차라도 마셔야 한다. 좋은 잎차는 가슴 밑바닥까지 뜨겁게 만들어 삿된 더위를 내몬다. 베트남에 가면 리아(Ria) 잎사귀를 이용해 수프를 끓이거나 요리에 곁들인다고 한다. 숲에서 난 열매들과 고기 등을 내다 팔아도 리아 잎사귀만큼은 팔지 않는단다. 발에 쥐가 나는데 특효라고 믿어 신령하게 아끼던 잎사귀. 틱낫한 스님도 망명 중에 이 리아 잎사귀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하루는 누가 리아 잎사귀라고 가져와 수프를 끓여 반가웠는데, 아뿔싸 엉뚱한 풀을 뜯어 끓였고 모두 미열을 앓았단다. 잎사귀 하나로도 고국 땅을 그리워할 수 있다. 누군가 이 땅을 그리워하는지 잎사귀들이 살랑살랑 손을 흔든다.

슈퍼맨의 가슴에는 옷이 스판이라고 에스자가 새겨져 있다. 슈퍼맨도 좌선을 하고 차를 마시고자 고른 천이렷다.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흙에서 나서 흙으로 가고, 물에서 나서 물로 가는 덧없는 인생을 다들 느껴보는 것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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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 여행 다큐에 몇 차례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멕시코에 가서는 열기구를 탔다. 이전에 터키 파묵칼레에서 열기구를 한번 타보기도 했는데,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한마디로 ‘째진다’. 매사추세츠에 사는 작가 댄 펜웰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88가지를 꼽는다. “댄스 강좌에 등록하라. 매일 8잔의 물을 마셔라. 헌책방에서 한나절을 보내라. 이웃을 위해 과자를 구워라. 단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꽃을 보내라. 한 가지 멋진 마술을 익혀라.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카드를 써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카메라를 지니고 다녀라.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라. 혼자 여행을 떠나라. 악기를 하나 배워라. 유머집을 한권 사서 외워라. 아이스크림 한통을 혼자 다 먹어라.” 뭐 이런 내용들. 그 가운데 “열기구를 타라!”는 순위도 있다. 다음은 열기구 조종사의 기도문. 어딘가 열기구 여행사 벽면에 적힌 글이란다. “바람이 그대를 부드럽게 반겨 주기를. 태양은 그대를 따듯한 손길로 축복해 주기를. 신이시여! 저 하늘 높이 또 안전하게 비행하도록 돕고, 다시 사랑스러운 대지의 품으로 되돌려 주시기를.” 


동네 할머니들은 비닐봉지도 아끼느라 빨아서 빨랫줄에 넌다. 가끔 빨래집게를 탈출한 검정 비닐봉지가 하늘을 비행한다. 유에프오의 등장에 송골매가 놀라서 뒷동산에 숨기 바쁨. 이렇게 더운 날은 헬륨 가스가 따로 필요 없어. 바람이 살짝만 불어 주면 모든 비닐봉지들이 하늘로 박차고 오를 기세. 요새 아이들은 풍선 가지고 노는 일도 드물다. 풍선을 주면 빵~ 터트리고 보는 재미. 흔하다보니 귀함을 몰라. 우리는 만년 어린 왕자. 동심에 가득 차서 하늘을 꿈꾼다. 열불이 나면 열기구. 이열치열 열기구. 열심히 산 자여 열기구를 타라. 우울증이 심한 자 열기구를 타라. 예수 재림을 믿는 자 열기구를 타라. 혼잡한 전깃줄을 피해 땅에 돌아오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뭐 한 가지 꼭 해봐야지 벼르고 살면, 삶이 되게 온온해지더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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