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90건

  1. 2019.08.16 참깨 들깨
  2. 2019.08.08 줄줄이 약봉지
  3. 2019.08.01 꼬무락꼬무락
  4. 2019.07.25 찻잎사귀
  5. 2019.07.18 열기구를 타라
  6. 2019.07.11 짜이 고프스키
  7. 2019.07.04 사막과 슬픔의 볼레로
  8. 2019.06.27 사막과 별들
  9. 2019.06.20 오로라의 집
  10. 2019.06.13 이야기, 춤, 명상
  11. 2019.06.07 느린 강
  12. 2019.05.30 블라디보스토크
  13. 2019.05.23 부산 갈매기
  14. 2019.05.16 가면 올빼미
  15. 2019.05.09 망명객
  16. 2019.04.25 중국 영화
  17. 2019.04.18 전화 소동
  18. 2019.04.11 성냥불
  19. 2019.04.04 북한 여행 회화
  20. 2019.03.28 개그맨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게 깨다. 깻대는 심을 때부터 목숨 줄이 간당간당하다. 겨우 살아남은 야문 무리가 솟구친다. 가장 덥고 습한 장마와 여름을 나게 된다. 베어지면 곧바로 햇볕에 바짝 눕게 된다. 가장 뜨거운 아스팔트나 마당에다가 넌다. 잘 마르면 다음 순서, 죽도록 두들겨 패기. 바깥주인이 때리고 안주인이 때리고 개가 밟고 지나가도 욕을 먹지 않는 게 깨 털기다. 뒤지도록 두들겨 맞는 도리깨질이 끝나도 수난은 더 이어진다. 이제는 까불기. 돌조각이라도 있을까봐 바람에 까분다. 더러 땅바닥에 동댕이질. 그러고 나면 가장 센 불에 올라가 볶임을 당할 차례. 기름이 되는 녀석들은 쥐여 짜는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고소한 참기름을 불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건 그러니까 참기름이 아니라 피눈물이렷다. 당신의 시골 어머니가 보내오는 참기름은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더운 날 다리 밑에서 천렵놀이. 뱃살 번진 아재들 사우디 건배사. ‘사’나이 ‘우’정 ‘디’질 때까지. 흥을 돋우면 아낙들도 이에 뒤질세라 아우디. ‘아’줌마 ‘우’정도 ‘디’질 때까지. 그러고는 뒤끝에 비빔밥을 쓱쓱 만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질긴 목숨의 참기름을 쭈욱 두른다. “요거이 차이나 아니여. 니뽕거 아니여. 국산 로컬이여.” “알았어 알어.” 박수들을 친다. 고소하고 맛나고 질긴 우정들아. 사랑들아.

엄마 냄새. 참기름 냄새. 아이들도 엄마표 비빔밥을 좋아해. 이 고소한 밥을 안 먹고 단것만 찾으면 저만 병나고 손해지. 언젠가 북청사자놀이를 현장에서 봤는데, 사자탈을 벗은 아재들이 구석지에서 참기름에 비빔밥을 말아먹는 풍경. 잊지 못한다. 큰 양푼에다가 같이들 우걱지걱 비벼 먹는 저 힘. 저 기운.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내는 신명이었다. 참깨 들깨 나누며 함께 견디고 함께 넘어온 아리랑 고개.

참깨 들깨 수확 철이다. 차를 몰다가도 마을길에 깻대가 널어져 있으면 조심조심. 두들겨 맞을 일을 생각하면 또 불쌍불쌍.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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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뙤약볕에도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분들. 고등어라도 한 마리 사러 장에 나가기, 병원에 약 타러 가기, 외출은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병원과 약국을 차례로 들러 약봉지 하나씩 들고 탈래탈래 걸어 나오면 반기는 것은 다시 뙤약볕. 나도 약봉지를 항상 챙겨 다닌다. 약이라 함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의 그 약. 병은 선고받은 그날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것은 약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커피 라떼를 싫어한다지. 왜냐면 어른들이 입만 열면 ‘나 때’엔 어쩌고저쩌고. 그래봤자 일찍들 잔디밭으로 돌아가셨다. 라떼는 이제 그만. 옛 어른들은 신통방통 약이 없으니 일찍 숟가락을 놓았다. 의학이 발달하여 바야흐로 백세 장수시대. 남보다 먼저 죽으면 매우 억울하다.

제아무리 명품 패션, 명품 가방을 자랑하고 다녀도 병원에 눕는 순간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오줌이 담긴 비닐주머니를 샤넬 백 대신 옆구리에 차고 다닐 수도 있다.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법. 그러니까 건강하게 살았을 때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더불어 행복한 장면도 남겨둬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딱 한 가지. 살 수 있는 사람과 곧 죽을 사람의 차이도 정답은 같다. ‘무얼 찾아 맛있게 먹는 사람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

곡기를 끊지 않고 보조식품이라도 입에 털어 넣으면 어찌저찌 오줌과 똥을 눌 수 있다. 그래야 내일 조간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 ‘먹되, 배부르게 먹지 말고 잘 먹어라! 몸을 움직여 배고프게 만들라! 밥을 먹고 나면 꼭 걷기운동을 하라. 걷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다리가 튼튼해야 오래 산다. 걷다보면 나팔꽃도 보고 깨꽃도 보고 포도넝쿨에 달린 잘 익은 포도를 따먹을 수 있다. 천하의 명약이 있대도 고요히 생을 돌아보며 숲길을 걷는 보약에 비기랴. 손에 든 줄줄이 약봉지보다 두 발로 서서 걷는 순간이 보약이렷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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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때 본 구름이 그야말로 뭉게구름. 가끔 따갑던 해가 안 보여서 좋아. 고되던 시집살이, 모두 안 보이고 혼자 남은 할머니. 이제 좀 홀가분한데 왠지 외로워 보여. 대나무로 검은 차광막을 얼기설기 쳐놓고서 여름을 난다. 뭉게구름은 열심히 따가운 햇볕을 가려보지만 차광막만 못해. 할머니는 애를 쓰는 뭉게구름의 사랑을 알까. 부채를 하나씩 들고 모정에 모여 맘속에 담아둔 얘기 나누던 날도 많았다. 요샌 회관에 달린 에어컨이 대세. 에어컨을 켜고 앉았으면 어디선가 쪄온 옥수수가 나온다. 여기선 ‘옥시시’라고 한다. 옥수수 하나로 충분히 배부르고 행복해진다. “여그가 천국이재 뭘라 싸돌아댕개. 더우엔 가만히 자빠져 있는기 상책이여.” 그러면서도 자녀들이 고향집에 하루라도 들렀으면 바란다. 누워 있다가 궁둥이에서 방귀가 뒤따르면 푸하하들 웃고….

언젠가 말재간꾼 김제동이 그랬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십니까? 행운입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십니까? 그건 행복입니다.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짓밟고 다니지는 않습니까?” 현대인들은 뭔가를 다들 쫓아다니는데, 행복이 아닌 행운이 아닐까. 꼬무락꼬무락 거동하는 어매들. 길쌈하고 물레 돌리고 고추를 말리고 콩대를 털던 마당, 세월이 지나 아이들 그림자 하나 놀지 않는 빈 마당에서 홀로 허리를 편다.

우리 동네엔 빨치산이 지리산 자락을 타고 추월산, 병풍산까지 쏟아져 내려왔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던 손을 급히 놀려서 옥수수와 감자를 한 바구니 쪄주던 할머니들이 있었다. 배고픈 자식은 남이나 북이나 아군이나 적군이나 보고선 참을 수 없었다. 그게 어머니요 아버지였다. “우리나라 어머니 품을 떠나서 헤매던 형제들 어서 뭉치세. 백설단심 끓는 피 깨끗이 받아 한을 풀고 찾으세. 화려 삼천리….” 독립군들의 노래 ‘우리나라 어머니’에 나오는 그 어머니들. 품이었던 분, 고향집이었던 분들. 그래서 이곳은 고국산천, 화려삼천리 아닌가.

동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갈 때, 꼬무락꼬무락 낮게 별자리가 뜬다. 세 잎 클로버도 보이고 네 잎 클로버도 보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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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갯불과 함께 장마. 후텁지근 열대야. 가공할 습도는 땀에 절게 만든다. 십자고상의 예수님도 이렇게 더우면 양팔 벌리기 기구운동을 잠시 멈추고 땀을 닦으신다. 대웅전의 부처님도 스님이 선풍기를 살짝 틀어주면 안면에 미소가 ‘살짜기 옵서예’로 번진다. 엊그제는 연꽃 방죽이 있는 완주 송광사에서 연차 다회를 가졌다. 또 강원도 강릉땅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절집 청학사. 나도 실무자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동무들과 우연히 방문했다. 스님이 내신 귀한 차를 얻어 마셨다. 더위를 불사하고 팔도 유람을 했는데, ‘하나라도 더 알라’는 사우디 최고 선생님 존함마따나 앎과 배움이 느는 유람이었다. 이름만으로 거뜬히 세계 여행이 가능하다지. 인도에 가장 위대한 철학자 ‘알간디 모르간디’, 인도 최고 요가 수행자 ‘안꼰다리 골라꽈’, 타짜 챔피언 중국의 왕창 따와 프랑스의 몽땅 따…. 이런 분들 성함이나 주워 섬기고 살다가, 제법 철이 들었나 요샌 ‘하나라도 더 알라’. 

이름난 다인 중의 한명인 지인이 첫물차를 안겨주어 팔팔 끓인 샘물에 내려 마시는 중이다. 땀을 내면 그만큼 차라도 마셔야 한다. 좋은 잎차는 가슴 밑바닥까지 뜨겁게 만들어 삿된 더위를 내몬다. 베트남에 가면 리아(Ria) 잎사귀를 이용해 수프를 끓이거나 요리에 곁들인다고 한다. 숲에서 난 열매들과 고기 등을 내다 팔아도 리아 잎사귀만큼은 팔지 않는단다. 발에 쥐가 나는데 특효라고 믿어 신령하게 아끼던 잎사귀. 틱낫한 스님도 망명 중에 이 리아 잎사귀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하루는 누가 리아 잎사귀라고 가져와 수프를 끓여 반가웠는데, 아뿔싸 엉뚱한 풀을 뜯어 끓였고 모두 미열을 앓았단다. 잎사귀 하나로도 고국 땅을 그리워할 수 있다. 누군가 이 땅을 그리워하는지 잎사귀들이 살랑살랑 손을 흔든다.

슈퍼맨의 가슴에는 옷이 스판이라고 에스자가 새겨져 있다. 슈퍼맨도 좌선을 하고 차를 마시고자 고른 천이렷다.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흙에서 나서 흙으로 가고, 물에서 나서 물로 가는 덧없는 인생을 다들 느껴보는 것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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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 여행 다큐에 몇 차례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멕시코에 가서는 열기구를 탔다. 이전에 터키 파묵칼레에서 열기구를 한번 타보기도 했는데,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한마디로 ‘째진다’. 매사추세츠에 사는 작가 댄 펜웰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88가지를 꼽는다. “댄스 강좌에 등록하라. 매일 8잔의 물을 마셔라. 헌책방에서 한나절을 보내라. 이웃을 위해 과자를 구워라. 단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꽃을 보내라. 한 가지 멋진 마술을 익혀라.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카드를 써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카메라를 지니고 다녀라.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라. 혼자 여행을 떠나라. 악기를 하나 배워라. 유머집을 한권 사서 외워라. 아이스크림 한통을 혼자 다 먹어라.” 뭐 이런 내용들. 그 가운데 “열기구를 타라!”는 순위도 있다. 다음은 열기구 조종사의 기도문. 어딘가 열기구 여행사 벽면에 적힌 글이란다. “바람이 그대를 부드럽게 반겨 주기를. 태양은 그대를 따듯한 손길로 축복해 주기를. 신이시여! 저 하늘 높이 또 안전하게 비행하도록 돕고, 다시 사랑스러운 대지의 품으로 되돌려 주시기를.” 


동네 할머니들은 비닐봉지도 아끼느라 빨아서 빨랫줄에 넌다. 가끔 빨래집게를 탈출한 검정 비닐봉지가 하늘을 비행한다. 유에프오의 등장에 송골매가 놀라서 뒷동산에 숨기 바쁨. 이렇게 더운 날은 헬륨 가스가 따로 필요 없어. 바람이 살짝만 불어 주면 모든 비닐봉지들이 하늘로 박차고 오를 기세. 요새 아이들은 풍선 가지고 노는 일도 드물다. 풍선을 주면 빵~ 터트리고 보는 재미. 흔하다보니 귀함을 몰라. 우리는 만년 어린 왕자. 동심에 가득 차서 하늘을 꿈꾼다. 열불이 나면 열기구. 이열치열 열기구. 열심히 산 자여 열기구를 타라. 우울증이 심한 자 열기구를 타라. 예수 재림을 믿는 자 열기구를 타라. 혼잡한 전깃줄을 피해 땅에 돌아오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뭐 한 가지 꼭 해봐야지 벼르고 살면, 삶이 되게 온온해지더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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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돌아와 여행 때 찍은 사진들을 밤새 정리. 공복감을 달래려고 우유를 끓이다가 급기야 짜이를 한잔 만들어 먹었다. 인도인 친구가 있는데, 고국에 다녀올 때마다 그에게 짜이 찻잎을 부탁한다. 또 언제 생길지 모르니 아껴서 마시고 있다.

피로가 겹치면 달달한 밀크 티가 구미에 당긴다. 짜이를 파는 커피숍에 앉아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면서 동무들이랑 수다를 떨고 싶다. 코끼리의 나라 인도는 이야기만 들었을 러시아의 음악천재 차이코프스키. 아시는가. 인도에선 내 별명이 짜이가 고픈 ‘짜이 고프스키’라는 걸. 한 잔에 1루피 때부터 그 동네엘 가보곤 했는데, 지금은 심지어 50루피 짜이도 있다고 들었다. 세상 어디나 물가는 오르는데 사는 형편은 수십년 똑같다.

음료 차 문화가 커가면서 조급증이 많이 줄어드는 걸 보게 된다. 두런두런 차를 나눠 마시면 일상의 속도가 느려진다. 급박한 속도로 하루를 달리다보면 사건사고가 터지게 돼 있다. 하루에 차를 얼마나 자주 또 오래 마셨는가에 따라 한 인생의 속도를 알 수 있겠다.

내친김에 차이코프스키 얘길 하자면, 연주 여행 중에 이런 일기를 남겼다. “내가 정말 즐거운 시간은, 늦은 저녁 방에 앉아 차를 홀짝이며 혼자 쉴 때다. 어둠이 내린 창문 밖을 보는 일은 행복하다. 손님이 없는 이른 아침 시간도 좋다. 그 밖의 시간은 정말 피곤하다. 40㎞ 정도로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더구나 낯선 타국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것도 괴롭다.” 주기별로 대인기피증을 앓았던 작곡가는 그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고 창작에 열중할 수 있었다. 혼자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차의 두 가지 즐거움은 여러 잔을 내려 다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한 잔을 내려 나 홀로 마시는 것.

청문회에서는 왜 아무개랑 같이 밥을 먹었냐며 따지더라. 차를 같이 마신 것 가지고는 따지지 않아. 차나 마시지, 왜 밥들을 먹어가지고… 밥은 식욕이라는 욕망을 동반한다. 여기에는 다른 욕망들까지 달라붙게 되어 있다. 어디서 차 한 잔 하자는 건 작은 내디딤. 라면 먹고 가라는 말은 당돌한 유혹이 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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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마두금이 울리는 몽골의 내륙 사막.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가 여기선 ‘사막과 슬픔의 볼레로’로 바뀐다. “몽골시골몽골시골….” 풀벌레 눈물타령. 방음이라곤 되지 않는 천막집 게르. 침대는 움직일 때마다 공포영화의 효과음처럼 끽끽거린다. 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백야의 초원과 사막. 옛 우리 조상들은 몽골과 한 지붕을 덮었다. 대륙을 나눠 쓰면서 말을 달렸다. 말 대신 지금은 오토바이가 눈에 띈다. 

유목민들은 여기 천막집 게르에서 살아간다. 게르에서는 밥 냄새가 항상 폴폴 난다. 일본에서 가장 방귀를 잘 뀌는 인간 ‘아까끼고 또끼어’도 게르에서 살면 냄새가 금방 달아나서 살 만하겠어. 구두쇠 ‘무라카와 쓰지마’는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이곳에서는 김새는 이름.

몽골엔 홉스굴 같은 너른 호수도 있다. 전에 왔을 땐 홉스굴에서 보트를 탔다. 사막의 눈물이 다 모여 있는 그곳. 사막은 본디 바다였다가 물을 잃고 말았으리라. 사막 모래는 그래서 꺼이꺼이 소리내어 운다. 바닷물과 헤어져 슬픈 모래는, 마두금에 맞춰 노래를 한다.

배에 같이 탔던 몽골 친구가 그랬다. 물이 드문 초원의 마부나 목동, 사막의 상인이 되지 않아서 정말 만족한다고. 물이 없는 곳에 사는 괴로움을 상상해봤다. 이렇게 귀한 물에다 쓰레기를 버리는 문명. 플라스틱 부유물과 폐그물, 폐유 유해물질을 몰래 버리는 범죄자들. 급기야는 방사능 오염물질까지 바다에 흘린다.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사막이 되고 말리라. 

산양은 높은 절벽에서 살면서 인간이 사는 마을 따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인간의 쓰레기에는 입도 대지 않겠노라 각오했을까. 어쩌다 비가 내리면 얼굴을 씻기는 하겠지. 양심을 씻어야 하는 인간보다 성화된 존재가 분명하다. 

나는 게르 바깥에서 세수를 했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흙먼지나 씻는 정도. 향수 대신 초원에서 나는 허브향으로 땀내를 쫓는다. 단출하고 가볍다. 유목민이 된 기분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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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땅 얘기책 성경을 읽고 자라선지 사막이 항상 궁금했다. 금모래 사장이 앞산만 하다는 말에 상상이 가지 않았다. 첫 사막은 사하라였다. 체 게바라도 걸었다는 알제리의 사하라. 이후론 자주 사막을 찾았다. 우리나라에도 섬마을에 사구사막이 몇 군데 있다. 사막이라고 하기엔 밋밋하긴 하지만서두. 이 정도 ‘열탕 날씨’라면 언젠가 사막 땅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사막에도 마을이 있다. 오아시스를 벗어나면 살 수가 없기에 계율이 매우 엄하지만 거기도 매한가지 사람 사는 동네. 사막에 가면 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아무리 낮에 햇살이 뜨겁더라도 밤이 되면 겨울만큼 춥다. 사막의 낙타들은 소중하게 여기는 주인을 만나 다복하게 살아가는 편이다. 사막엔 적토마나 오토바이조차도 힘을 쓰지 못한다. 겨울왕국의 개들도 마찬가지. 사랑받는 주인 아래 충성스러운 명견이 나타나 앞장을 선다.

“힐난을 받고 자란 아이는 남을 헐뜯는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잘 다툰다. 놀림을 받고 자라면 남과 어울리지 못한다. 격려를 받고 자라면 자신감이 커진다. 칭찬을 받고 자라면 감사할 줄 안다. 인정을 받고 자라면 자신의 생을 소중하게 여긴다.” 인기강사 글렌 반 에케렌의 얘기. 사막의 수도원은 엄격한 규율만큼 서로 보살핌이 각별하다. 동물들도 음식을 나눠먹을 줄 안다. 목마른 여행자들도 먼저 물을 내민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이 빛나듯이 극악한 환경에서 사랑과 배려가 훨씬 많아진다. 사막에서 인류의 성인들이 나고 자란 것을 생각해보라.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사람이 반갑고 소중하다. 사막에선 별이 하늘의 마을이나 되는 양 밝고 환하다. 인생 4막장, 그도 사막인가. 황량했던 인생도 사막에 가면 별빛의 조명과 축복을 받게 된다. 오만가지 음식과 물건들로 넘쳐나는 도심을 떠나서 조금은 춥고 외로운 사막을 찾아가는 여행을 권해주고 싶다. 평생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기회, 물 한 모금의 감사, 사람에 대한 그리움, 낙타처럼 선한 동물과의 조우까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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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들은 사고뭉치였다. 나 어렸을 땐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땠는데, 아랫목 말고는 달달 떨다가 잠을 설쳤다. 이후 등장한 연탄 시대. 더러 연탄가스를 마시기도 했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것은? 연탄가스. 취해서 해롱해롱하면 동치미를 떠다 먹었다. 어이없는 치료법. 국회는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집일 텐데, 요샌 농땡이 치는 재미가 좋은가. 마을회관은 노인들이 모여 점당 100원 화투를 치다 싸우는 집. 교회는 신도들이 모여 복 달라고 떼쓰다가 뜻대로 안되면 애먼 대통령을 욕하는 집. 대부분 가정집은 뿔뿔이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보다가 잠드는 집. 

언젠가 북유럽에 갔다가 한 숙소에서 오로라를 보았다. 내 기억 속 오로라 빌라. 소설가 르 클레지오의 소설에도 ‘오로라의 집’이 등장한다. “빌라 오로라라는 이름과 관목숲 가운데로 흘긋 보이는 집의 진주 빛깔과 그리고 무척 넓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아 새와 들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는 정원 때문에 그곳을 생각할 때마다 모험심으로 두근거렸다. … 고양이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원에서 마치 빌라 오로라 여주인의 피조물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집 입구에 적혀 있는 ‘우라노스’라는 그리스어는 ‘하늘’이라는 뜻.” 

하늘이 훤히 보이는 집은 얼마나 감사한가. 서울 살 때 반지하에서 잠깐 지내기도 했다. 하늘이 한 뼘도 보이지 않았다. 새마을기차를 타고 올라온 어머니는 캄캄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퍽퍽 한숨을 내쉬셨다. 책냄새뿐인 그 반지하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자연을 찬미하는 책들을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창문을 열자 오로라가 반기던 밤에 나는 피우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문득 났다. 하얀색 구름을 피어올리고 싶었다. 담배를 좋아하는 신부님 친구가 있는데, 공기 좋은 데 가면 항상 담배를 피우자고 한다. 얻어서 피우는 담배는 제법 맛이 있지. 내가 피어올린 하얀 색깔까지, 오로라는 다양한 빛깔을 서로 품었다. 그래서 아름답게 밤하늘을 물들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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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운이 좋으면 고수, 스승을 만나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히피>라는 소설에서, 여행길에 만난 스승 셋을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 스승은 도둑이었죠. 집에 들어가려는데 열쇠를 잃어버렸지 뭐요. 마침 길 지나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눈 깜짝할 새 문을 따는 재주를 지녔더군. 직업이 뭐냐 물으니 도둑이랍디다. 그는 날마다 실패하고 또 내일 또다시 도전한다고 했소. 두번째 스승은 개였죠. 목마른 개가 강물에 다가왔는데, 자기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뒷걸음쳤다오. 결국 개는 목마름을 참기 어렵자 정면 돌파를 결심, 강물에 뛰어들었죠. 순간 그림자는 사라지고 말았죠. 세번째 스승은 어린아이라오. 촛불을 들고 오길래 그 불 어디에서 났는지 물었지. 그러자 아이가 양초를 콧바람으로 훅 꺼버렸소. 여기 방금 있던 불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며 오히려 묻더군. 비로소 신성한 불빛, 지혜의 불빛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이처럼 이야기, 춤, 명상기도 속에 참된 지혜의 불빛이 있다오.” 

노력하여 배우지 않으면 야만인이 되고 말지. 야만인의 입에는 추한 막말과 가짜뉴스. 잘근잘근 이웃을 못되게 씹어대니 입끝에 피냄새. 한 고고학자가 정글을 탐험하다가 식인종 부족에게 붙잡혔다. “우리도 이제 옛날 그 무시무시한 식인종이 아니니 안심해라.” 과학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식인종이 컴퓨터 앞에서 검색하고 있는 걸 보고 기절초풍. 쇼핑몰에서 신제품 바비큐 그릴을 검색하고 있더란다. 신종 야만인.

당대 고수를 찾아다니는데, 도둑과 개와 어린아이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없겠다. 야만인들 같은 피 묻은 더러운 입들. 철 지난 반공을 팔아 밥벌이를 삼는 자들. 땅밟기 개종 여행이나 다니면 무슨 배움이 생기겠는가. 종교인의 입에서 피냄새가 가장 역하게 나는 아이러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빨래를 해서 널었다. 요즘은 귀를 자주 씻고 싶어진다. 세탁기에 귀를 넣어 깨끗이 세척하고 싶다. 상쾌해진 귀로 다정하고 다감한 이야기, 사람을 먼저 살리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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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앗사리드’라는 사하라 사막의 청년. 프랑스 고속기차 테제베를 탄 후일담, <사막별 여행자>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단봉낙타보다 천배는 빠르고 백마리 낙타가 늘어선 카라반만큼이나 길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눈앞에 어떤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고 심장은 더 세게 고동쳤다.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더 이상 거리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낙타들과 사막의 침묵 한가운데 누리는 낙타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리듬으로부터 나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열차 승객들의 조용하고도 태연한 모습이 놀라웠다.”

빠른 강물에 빠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명조차도 날름 집어삼킨다. 속도 빠른 시대에 살면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이름 없이 사라진다. 역사는 역시 ‘느린 강’에서 비롯된다. 느린 강을 따라 걷다보면 배짱 두둑하고 맷집이 센 사내를 만나게 되리. 현명하고 강인한 여인이 손을 내미는 곳.

나는 우수리스크에 와 있다. 극동의 한쪽. 우리 겨레 고려인이 마을을 이루어 살던 땅. 추위에 맞서 두꺼운 벽채를 세우고 지붕엔 기와를 구워 얹기도 했다. 장작을 집어넣는 벽난로 페치카. 온기를 나누던 겨레의 심성을 느끼게 된다. 여기 ‘수이픈강’, 옛 발해 땅 솔빈부에 흐르던 ‘솔빈강’이 흐른다. 작가 푸시킨의 동상이 있는 이 마을 귀퉁이엔 안중근과 홍범도 비석이 나란히 있다. 권총이 새겨진 비석조차 비장하여라. 하루는 느린 강가에 위치한 헤이그특사 이상설 기념비에 보드카를 뿌려주었다. 보드카는 멀리 돌고래가 뛰노는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짧은 여름, 모두들 웃통을 벗고 일광욕. 강물에 수영도 한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수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경찰이 물에 들어간 아가씨들을 나무라자 “아니 옷을 벗기 전에 말을 해야죠”. 경찰은 웃으며 “옷 벗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는데요”. 안중근 대장도 이 강물에 말을 세워 물 먹이고, 수영도 했을 것이다. 사랑해본 사람들이 저항도 하고 혁명도 한다. 느린 강물을 보다가 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평화롭고 느긋한, 느린 강.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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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파 가사에 길옥윤 작곡의 ‘순례자’라는 찬불가가 있다. 찬송가가 아니라 찬불가. 가깝게 지내는 운문사 승가대의 학장 진광 스님이 처음 이 노랠 가르쳐주었다. 그때 후배 여가수도 옆에서 따라 배워 불렀는데, 녹음실에서 녹음까지 해둔 기억. 내가 배운 첫번째이자 현재까진 마지막 찬불가. “당신은 꿈 찾는 방랑자. 마음의 길 가는 나그네. 인생도 사랑도 끝이 없는 길. 멀고 먼 고행길. 꿈꾸는 바다에 별 뜨면 불타는 사막도 잠들고 외로운 순례자, 거친 산길에 단풍이 깊어가네. 외로운 들판에 무명초. 잊혀진 하늘가 뜬 구름.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내 너를 사랑하리. 내 너를 사랑하리.”

뒷산에 놀러갔다가 어제 내린 장대비로 퉁퉁 분 개울물이 급히 달음질쳐 내려가는 소리. 찢기고 떨어진 어린 잎새들이 흘러가는 풍경. “별이여 달이여 어린 잎새여.”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시절이다. 올해도 몇 분들의 도움으로 순례를 떠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잠깐의 시간여행. 광복군의 수장 안중근의 도시를 거쳐 저항 가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노래하던 ‘야생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아랫녘에서 잊고 사는 도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올리면 가슴 저 끝, 시리고 아려온다. 오래전에 그 도시에서 출발하여 멀리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해봤다. 평생 잊지 못할 여행 가운데 한 장면. 남북이 철도를 잇는다는 소식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노랗게 단풍이 든 자작나무숲을 지나 눈 내리는 시베리아를 달리기도 했었다.

여당 건배사는 ‘위하여’고 야당 건배사는 ‘위하야’라고 한다. 여야가 힘을 합해도 될까 말까 한 대륙 연결, 유럽 연결이라는 평화와 번영의 일대 전진. 우리 동네에 영어가 쪼매 가능한 사람들만 하는 건배사가 있다. ‘무시로’ 삼행시. 무조건, 시방부터, 로맨틱한 사랑으로! 로맨틱해야 한다. 이름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매우 로맨틱하다. 강릉을 출발해 원산, 함흥, 나진을 거쳐 달리던 기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숨을 고른다. 순례자들이 기차역에 가득한 시골 도시.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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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말을 ‘모국어’라 한다. 아버지의 말 부국어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 모국어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뭔 쓰잘데없는 말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가 무안을 주면서 입을 딱 다물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머니가 이기고 산다. 아버지가 이기고 사는 집은 희귀하다. 집에서 이기지 못해 밖에 나가 억지 대장노릇을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긴다. 지고 사는 게 안에서나 밖에서나 현명한 처세일 텐데. 

수가 많다는 말을 경상도 사람들은 ‘쎄삐릿다, 억수로 많다, 항 거석 있다, 수두룩 빽빽하다, 천지삐까리 많다’고 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솔찬하다, 겁나다, 허벌나다, 오살나게 쎄뿌렀다, 시꺼멓다’ 그런다. 오월 하루, 역사의 현장 광주에 시민들이 많이 모였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메이홀에선 민중미술가 김봉준 화백의 신작전 ‘오월 붓굿’이 열렸다. 김샘과 내가 맺어온 인연의 결실로 광주에선 첫번째 전시였다. 그간 한번쯤 전시할 만도 했을 텐데, 우리나라는 이만큼 지역 장벽, 경계가 높고 두껍다. 하루는 메이홀 앞이 충장로와 민주광장인데 ‘태극기 부대’가 지나면서 야구장에서나 들었던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오늘 야구하는 날인가? 야구장에 부산 팬들이 와서 부르면 따라서 불러주던 노래. 어머니 말을 징하게 안 듣는 사내들이 억수로 모여들더니 민주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에 조롱 삼아 ‘부산 갈매기’를 열창한다. 반응은 분노할 것도 없고 그냥 조용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부산 인물을 찍어준 광주 시민들.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줘서 다행이네 뭐.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지금은 그 어디서 내 모습 잊었는가” 부산 갈매기야! 전라도 친구들을 잊으면 되겠는가. 잊지 말아다오. 좋은 뜻으로 해석하마. 노래가 무슨 죄냐.

언론에 거론되는 유망 정치인들이 죄다 저쪽 분들인 것은 어떤 구조악에 빠진 듯하다. 갈매기는 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 어디라도 사는데 말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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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들은 입마개 마스크를 달고 다니며 입 냄새를 즐기는 묘한 취향들을 갖고 있다. 차라리 매연과 먼지가 입 냄새보단 나을 거 같은데. 조그맣지도 않고 얼굴을 다 가리는 마스크는 가면 수준. 시골에선 마스크를 구경하기 어렵다. 혹시 올빼미를 보면 복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군. 검은 주둥이를 가진 똥개도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해. 복면 도둑을 잡자는 것이지 검정 마스크를 쓴 날강도는 아님이렷다.

의사 샘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술을 하는 이유는 혹시 잘못되어도 담당 의사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어. 힛~. 아무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자 올빼미도 움쩍 뒷발질을 하게 된다.

입을 가리면 표정을 알 수 없지. 한 항공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내건 구호가 “노 스마일!” ‘웃지 않기’였단다. 직원들이 미소를 거두고 화난 표정을 짓는다면 손님들이 대번 외면하게 되어 있다. 거기다가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꼬마 손님들은 놀라서 울지도 모른다.

사장님은 노동자를 웃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자기도 웃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또한 노동자도 감정노동이어서가 아니라 미소 띤 얼굴로 사는 편이 먼저 자기 자신과 영혼에 좋다.

언젠가 호주 숲에 갔다가 하얀 복면을 한 ‘흰가면 올빼미’를 보았다. 가면 올빼미는 탈을 쓴 광대처럼 보였다. 불행한 죽음을 가져온다 해서 원주민들은 이 친구를 잡아다가 현관문에 못 박고 액막이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흰가면 올빼미가 살지 않아 다행. 죽음은 올빼미가 가져오는 게 아니라 웃지 않는 인간이 가져오는 어두운 침묵. 올빼미는 죽어 가면을 벗겠지만 우리는 겹겹 회칠한 거짓과 위선을 벗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관용과 호의는커녕 혐오와 배척이 도가 지나치다 싶다. 특히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 일부는 가장 혐오와 배척의 주동세력으로 고착되었다. 가면 뒤엔 전쟁광 금약탈꾼 ‘십자군’의 얼굴이 보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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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샘, 다음엔 합수 샘 이런 ‘히읗 자’ 연락처가 내게 있다. 한수 형은 가수 정태춘 형. 내 산골짝 집에 몇차례 오시기도 했다. 다음에 윤한봉, 합수 샘은 고향 선배다. 오월 광주의 미국 망명자. 돌아가신 뒤 기념사업회가 전남대학교 앞 공간에 같이 둥지를 튼 일도 있었다. 귀천하신 뒤에도 이름을 감히 지우지 못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단체 초대로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 망명자 합수 형이 그곳에서 허리띠도 풀지 않은 채 눕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서 오월 동지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망명자의 노래 같은 신산한 노래를 들었다. 정태춘 신보에 담긴 ‘나그네’와 ‘빈산’. 먼 오랜 날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스멀거렸다. “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 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한수야, 부르는 쉰 목소리에 멈춰 서서 돌아보니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방랑자, 망명자들, 홀로된 자들. “어미마다 제 아이 불러가고 내가 그 빈들에 홀로 섰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가네. 나도 애들처럼 밟고 가네.”(나그네) 노래는 신산하게 부는 바람처럼 끝나고, 고꾸라진 팽나무가 보이는 외딴집에 사는 나는, 멀리 시내의 불빛이 깜박거리는 빈산에 기대 다음 노랠 듣는다. “억새 춤추는 저 마을 뒤 빈산….” 내일 아침엔 음반 잘 들었다는 감상문을 보내드려야겠다.

나그네라는 말은 ‘나가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다, 나가다. 집 나간 사람. ‘네’는 사람을 뜻한다. 집을 나가면 누구나 개고생. 집에서 내쫓긴 순간 고생길. 어쩌면 우리 모두 집을 나간 나그네 신세인지 모른다. 스스로 망명자가 된 사람도 있다. 망명자들의 눈은 푸른 창공 같고 한없이 가난하다. 

두 눈 질끈 감은 사람. 이 세계의 추한 혼탁에서 벗어난 용맹정진 수도자도 마찬가지다. 또한 남미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책을 읽는 사람, 노래를 듣는 사람을 가리켜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라고 했다. 저 길거리의 사람들, 저 무수한 불빛 지붕들 아래에 더러 나그네 망명객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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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동네가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라 가끔 축제 때 판다 분장을 보게 된다. 어린 대나무 잎사귀를 입에 달고 사는 판다. 대숲에서 판다가 굴러떨어질 거 같다. 주민들만 해도 중국 구경을 안 해본 분이 없을 정도. 회갑 때도 가고 칠순 때도 간다. 누구 집 노총각 아들은 중국 동포랑 가약을 맺었는데, 친정 식구들이 건너와 농사일을 거들어 살림이 폈다.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갈 필요가 없는 게 그런 모양으로다가 반은 한국식, 반은 중국식으로 살아가는 집들이 있다. 이곳 외딴 데까지 배달음식은 오로지 중국요리뿐. 누가 중국 댕겨왔다며 백주 한 병 들고 오면 요리 하나를 시켜서 나눠 마신다. 조금만 마셔도 판다처럼 방구석을 뒹굴게 된다. 어려서 성룡의 취권 흉내를 내고 놀았지. 동네 아재들 중에 이미 취권을 터득한 분들도 꽤 되었어. 막걸리 몇 잔이면 주먹질을 해대고, 경운기와 함께 수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 취권을 마스터했기 때문이렷다.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들은 깔린 음악이 좋다. 보고도 또 찾아보게 된다. 공추하가 부르는 ‘사방에 핀 장미’와 같은 명곡이 흐르는 영화. 여명, 장만옥, 장국영, 양조위, 공리 같은 명배우들의 대사가 흐르면 가슴이 촛농처럼 녹아들고 만다.  

일제 식민이나 분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중국이랑 형제 나라로 오래전부터 잘 지냈을 것이다. 중국이랑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생기면 두 눈 감고 외면하더니만 요샌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다며 오두방정을 떤다. 일제 순사집안 씨앗들인가.

가수 김정호의 외가가 이곳 담양이다. 판소리꾼 집안.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말 못하는 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이 노래 ‘몽중인’을 처음 부른 가수도 공추하다. 그러니까 원곡은 중국 노래. 1940년. 우리가 임시정부를 중국에 두었을 때 흐르던 노래. 공추하의 노래를 들었을 임시정부 식구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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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을 해도 자꾸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라는 소리. 시골에 산다고 다짜고짜 노인 취급을 한다. 아버니임~으로부터 시작되는 코맹맹이 소리. 죄송합니다, 라고 전화를 서둘러 끊으면 재차 또 걸려오곤 한다. 짜증이 욱 올라온다. 태양광 소리만 들어도 이젠 뒷골이 땅길 지경이다. 탈곡기를 사라는 전화도 온다. 마을 전화부를 어떻게 알고 이런 전화를 다 하나 싶다. 손전화기로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도 두어 번 받아보았다. 귀하의 은행정보가 털렸다고 하길래 은행에 저축한 돈이 없는데 괜찮다고 했더니 딱 끊는다. 좀 더 전화를 해도 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 언젠가는 대출을 해준대서 이미 콩팥 장기까지 팔았다고 했더니 딸칵 끊더라. 

대학생인 아들이랑 통화를 하다보면 ‘이 녀석이 요새 돈이 없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술값이 없든지 책값이 없든지 아니면 데이트 비용이 없든지 셋 중 하나일 테다. 사내아이는 보이스. 낚시는 피싱. 대부분의 부모는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산다. 해준 것 없는 아비에게 마음을 내는 걸 보면 나로선 감사한 일. 적은 돈이지만 잘 받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마음에 저장해둔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낙들 둘이서 자식 걱정을 했다. 한 아낙 왈 “대학교 댕기는 아들이 만날 돈만 부쳐달라는데, 도대체 무슨 학생이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학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푸념을 늘어놓자, 듣고 있던 다른 아낙 왈. “차라리 그렇다면 속이나 편하겠네요. 우리 딸은 돈을 달란 소리를 전혀 안 해요.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 옷 사고 가방 사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빼앗기는(?) 편이 낫다 싶기도. 

몽글몽글 구름이 피어나더니 서산을 넘는다. 어떤 날은 전화가 하도 많이 걸려와 소동에 가까운 날이 있고, 어떤 날은 공치는 심심한 날도 있다. 번호부를 뒤지면 얼굴조차 희미한 사람. 인연이 다한 사람. 아쉽지만 가벼워지고 싶어 ‘삭제’를 누른다. 오래전 죽은 사람이지만 기억하고 싶어 저장해 둔 이름도 있다. 그리운 노란 리본의 이름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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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 큰 산불 소식. 우리 동네도 몇 해 전 가정집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태웠다. 힘내시라고 성금도 드리고 그랬었다. 아직도 그 집 마당엔 불에 탄 흔적들이 보인다. 다행히 헬기로 물을 뿌려 뒷산으로 번지는 걸 막았다. 산으로 불이 옮았다면 내 거처도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냇가에 살면 홍수가 무섭고 산골에 살면 산불이 걱정된다.

사형수 세 명이 간곡하게 기도하자 하느님은 각자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로 했다. 한 명은 여자를 구해 달라고 했다. 얼마 못 가 뼈만 앙상한 채로 죽었다. 다른 한 명은 술을 달라고 했다. 주정만 부리다가 죽었다. 나머지 한 명은 담배를 원했다. 그런데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간수가 궁금해서 묻자 죄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담배만 달랑 주고 성냥불은 안 주셨는데요.”

성냥불 하나, 담뱃불 하나로 큰불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여를 태우다가 산불이 나고, 논두렁 밭두렁 태우다가도 산불이 났다. 아주 어렸을 적에 잠깐 초가집에서 살아도 봤다. 목사관 임시 거처가 초가집이었다. 그즈음 장애인 형이 불장난에 재미를 붙였는데, 나뭇광에 불을 붙이려고 번번이 시도하다가 내게 딱 걸리곤 했다. 장작 아궁이에서 놀다가 손을 데더니만 그 재미와 작별하더라. 집이 타버릴 뻔했다.

“저녁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 작은 불꽃으로 내 마음을 날려 봐. 저 들판 사이로 가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명절 때면 깡통에 구멍을 뚫고 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까딱 잘못했다간 산불로 번지는 위험천만한 놀이였다. 예전엔 불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를 들고 뛰쳐나왔다. 합심하여 불을 껐다. 뜬금없이 교회에서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부흥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 나는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떠올렸다. 불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위험한 무엇이렷다. 이상 저온으로 밤기온이 차다. 잔솔가지 그러모아 난로에 불을 모으고 산다. 날마다 불을 보면서 지내는데, 재를 버릴 때도 그렇고, 꺼진 불도 다시 본다. 자나 깨나 산불조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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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행사로 한 달 넘는 장기간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계획을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작년부터는 북한이라고 답을 하는데, 기도를 섞어서 하는 소리다.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이민이나 월북은 능력도 없고 간뎅이가 붓지 않아서리. 길거리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지구 어디라도 좋아. 시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연필과 종이가 있다면 그 어디나 “가즈아”!

북한에 가려면 먼저 생활 북한어 공부를 해둬야 한다. 최근에 여행가 김준연씨가 펴낸 <북한 여행 회화>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먼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식당에서부터 챕터 원이 시작된다.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 부르고, 낙지를 오징어라 부른다. 그러니까 연포탕을 만약 주문하면 오징어탕이 나오게 되시겠다. 닭알두부(계란찜), 고기떡(소시지), 줴기밥(주먹밥), 고기마룩(고깃국), 썩장(청국장), 보가지국(복어국), 꼬부랑국수(라면), 곽밥(도시락), 김치남비탕(김치찌개), 발쪽(족발), 날맥주(생맥주), 빼주(고량주), 우림술(과일주) 뭐 이런 식이다. 회화 공부를 왜 해야 한다는 말인지 이제 짐작이 조금 가실 게다.


챕터 투는 호텔. 발바리차(택시), 유람뻐스(관광버스), 초대소(고급호텔), 건발기(드라이어), 간데라(촛불), 색텔레비존(컬러 티브이), 얼군제품(냉동식품), 사과단졸임(사과잼), 썩음막이약(방부제), 쫑대바지(레깅스), 보안원(경찰), 끌신(슬리퍼), 쪽머리 아픔(편두통), 머리물 비누(샴푸), 계단 승강기(엘리베이터)…. 이 정도만 외우면 무사히 먹고 자고는 가능하겠다.

거리나무(가로수)와 드림버들(수양버들)이 늘어선 강변에 앉아 있노라면 이런 방송소리가 들린단다. “남존녀비 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생활양식이 지배하는 남조선 사회에서 녀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하는 코맹맹이소리. 그것마저 영어, 일본어, 한자말이 섞인 온갖 잡탕말….” 이것을 대한민국 표준말이라고 아나운서 리춘희 할머니가 마구마구 뭐라고 까신다나. 흐흐. 맞는 말씀도 있고 아닌 말씀도 있는데, 몸에 좋은 약은 귀에도 쓰고 아프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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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인디안밥, 점심에는 고래밥, 저녁에는 사또밥. 대충대충 먹고 살아도 되는데 부산스럽게 또 상차림을 하게 된다. 한 처자가 절대로 결혼은 않겠다고 장담하면서 친구들에게 그랬다. “사내놈들은 다 늑대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늑대밥은 안될 거니 어디 두고 보라고.” 그랬다가 느닷없는 반전 결혼식. 이번에는 말이 바뀌어 “늑대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니.”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이런 밥 타령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밥이 코로 들어갔다.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외우는 편이다. 진지한 말의 성찬은 아무리 영혼의 양식이라도 앉아 있기 괴롭지. 우울한 수도원은 내가 머물 곳이 못된 듯싶다. 인연이 쌓여서 강연을 부탁받기도 한다. 거마비도 못 주는 궁핍한 현장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도 가끔 가곤 했다. 웃을 일이란 하나 없는 표정으로, 아무리 재밌는 소리를 해도 시큰둥. 놀부와 스님의 “주나봐라 주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불경외기 싸움처럼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그러면 나 혼자 웃다가 온다. 나라도 살아야지. 

소설가 김성중의 <개그맨>은 이렇게 시작된다. “느린 말투의 느린 움직임, 한순간 던진 말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후 각자의 연상 끝에 터지는 폭소. 대중이 그의 개그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가 무명시절일 때 만났다. (중략) 개그맨은 떨어진 빗물을 바라보면서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이 슬픔의 도성에서 웃음거리를 그래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선가 폭소가 터진다. 일행도 아닌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엿들어 알고 싶다. 친구가 재밌는 말을 하면 일부러라도 많이 웃어주고 그러자. 실없는 이야기라도 좀 웃어주자. 만두 두개, 그만 두게! 할 때까지 말이다. 시샘추위로 한껏 움츠러든 며칠이었다. 노랑나비를 보았다. 마당에서 개그맨과 노랑나비가 콤비로 쇼를 했다. 웃을 일이 있어야만 세상살이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일단 웃고 나면 세상살이가 어느새 행복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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