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움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때때로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글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대부분 대체 불가능하다. 쉽게 대체 가능하다면 그리움에 마음 아플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그 대상의 세부정보를 낱낱이 알게 된다. 다른 존재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 언뜻 흔해 보여도 왜 그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지를 배워간다. 그 존재는 이제 결코 흔해질 수 없다. 구체적으로 고유해졌으니까. 이 구체적인 고유함을 기억하며 쓰는 글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담긴다. 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온 열아홉 살의 파도라는 아이가 쓴 글도 그랬다. 그가 10년 전의 어느 오후를 회상하며 쓴 글이다.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방통대에 과제를 제출하러 갔고 잠에서 깬 나는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다. 뻐근한 목을 좌우로 비틀며 부엌으로 들어서는데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의 태양빛이 부엌을 비추고 있었다. 찬란하고도 따뜻한 황금빛이 말이다. 부엌 곳곳에 스민 빛과 그림자를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집 부엌 예쁘네. 그런데 왜 울컥하지? 눈 아래쪽이 축축해졌다. 잠을 너무 푹 자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식탁을 지나치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앞으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직 삼십대였던 엄마와 일곱 살의 나와 다섯 살의 동생이었다. 우리는 오븐 앞에서 쿠키가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븐에서 새어나오는 주황빛이 내 코끝을 물들였다. 엄마는 전자파가 나온다며 세 발짝 뒤로 가자고 말했다. 동생은 얼굴에 밀가루를 잔뜩 묻힌 채 나를 끌어당겼다. 나의 분홍색 내복 끄트머리에 밀가루 반죽이 묻었다. 엄마의 등에는 쿠키 세 개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반죽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랑 동생은 엄마 몰래 킬킬댔다. 그러다가 내 눈앞의 오븐은 희미해지고 반쯤 열린 수납장이 드러났다. 아무도 없는 집안이 고요했다. 방금까지는 쿠키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아침에 끓인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더 이상 삼십대의 엄마와 일곱 살의 나는 없다. 동생이 만든 똥 모양 쿠키와 2007년의 겨울도 없다. 킬킬대던 웃음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파도가 살던 아파트 부엌에 함께 서있는 것 같았다. 숱한 아파트의 여느 살림집처럼 보여도 정확히 똑같은 집은 단 한 채도 없을 바로 그 집. 가보지 않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다. 파도가 독자에게 구체적인 장면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파도는 그리움을 설명하는 대신 그리운 이미지를 그저 보여주었다. 좋은 문장은 글자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미지를 독자의 마음속에 그려낸다. 디테일한 묘사란 부디 이렇게 상상해달라는 요청과도 같다. 문장 속 디테일과 함께 우리는 과거와 미래로 드나든다. 다른 이를 나처럼 느끼기도 하고, 나를 새롭게 다시 보기도 한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작품 중 ‘십대 소녀’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십대 소녀인 나/ 그 애가 갑자기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친한 벗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분명 낯설고 먼 존재일 텐데.// (…)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른다/ 대신 뭔가 더 가치 있는 걸 알고 있는 양 당당하게 군다./ 나는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함부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 애가 내게 시를 보여준다/ (…) 나는 그 시들을 읽고, 또 읽는다./ 흠, 이 작품은 제법인걸,/ 조금만 압축하고/ 몇 군데만 손보면 되겠네./ 나머지는 쓸 만한 게 하나도 없다// (…) 우리의 대화가 자꾸만 끊긴다./ 그 애의 초라한 손목시계 위에서/ 시간은 여전히 싸구려인 데다 불안정하다./ 내 시간은 훨씬 값비싸고, 정확한 데 반해.// 그러다 마침내 그 애가 사라지던 순간,/ 서두르다 그만 목도리를 두고 갔다.// 천연 모직에다/ 줄무늬 패턴,/ 그 애를 위해/ 우리 엄마가 코바늘로 뜬 목도리.// 그걸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심보르스카는 말했다.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그리하여 돌아가야만 한다고.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일이 멀어지는 걸 보며 계속 살아가는 사람 아닐까.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며.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며, 하지만 결코 디테일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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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고려 말기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에 술 깨는 국이라는 뜻의 성주탕(醒酒湯)이 나온다. 이것이 해장국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육즙에 정육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川椒)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되어 있어 얼큰한 오늘날의 해장국과 그 기본이 같다.”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포털사이트에서 ‘해장국’을 검색하면 요식업 가맹사업자의 광고부터 나온다. 광고에 깔린 ‘지식백과’를 클릭해 들어가면 위 문단이 ‘정보’의 맨 처음이다. 해장국을 파는 업체나 가게에서는 여기에 기대 ‘<노걸대>에 나오는 해장국’을 앞세운 광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주탕’ 세 글자 빼고는, 없는 소리다. 저 문단은 낭설이다. 우선 이 책의 편찬과 출판의 연대기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노걸대>는 조선 세종 때 편찬되기 시작한 중국어 학습서로 <번역노걸대>(1517), <노걸대언해>(1670), <중간노걸대언해>(1795) 등이 전해온다. ‘노걸대’는 중국인을 뜻하는 말인데 나중에는 만주어 학습을 위한 <청어노걸대>, 몽골어 학습을 위한 <몽어노걸대>까지 나왔다. 중국어 외의 어학서에서 노걸대를 빌린 것이다. 이 가운데 <노걸대언해>에 ‘성주탕’이라는 어휘가 딱 한 번 나오고, 성주탕을 언해(諺解)해 ‘술깨오는탕’이라고 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조리법은 나오지 않는다. 천초(초피)와 소금으로 양념을 해가며 고기볶음을 하면서, 남의 음식에 타박도 하는, 절로 웃음이 나는 장면이 <청어노걸대>(1765)에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해장국은 없다. 이것으로 끝이다. <노걸대언해> 속 성주탕과 오늘날의 해장국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성주’는 ‘술을 깨다’라는 뜻이다. 옛 동아시아에서 자연스러운 말이고, 흔히 쓴 어휘일 뿐이다.

대중이 잘 모를 수도 있지, 어쩌라고? 물으신다면, 나 또한 배운 도둑질 자랑하자고 나서지 않았노라 여쭈겠다. 해장국 한 그릇 앞에서도, 단 하나의 검색창 검색-복사하기-붙이기라는 타성이 작동한다. 게으른 정보 습득과 가짜정보 유통이라는 악순환이 아예 한국인의 삶의 형식이 되었다는 말인가. 전통 음식을 한다는 곳에 가면 빠지지 않고 붙어 있는 광고물이 있다. 포털사이트 찍어서 처음 나오는 지식과 정보를 인쇄한 광고판이다. 대개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자산어보>에 그런 소리가 있다고 우긴다. 가끔 <노걸대> 같은 ‘마이너한’ 문헌도 동원된다. 피부미용과 원기회복으로 박자를 맞추었지만, 사실과 맥락이 어긋난 이야기를 늘어놓다 낭설에 주저앉는다. 성주탕의 전설과 같은 꼴이다. 그러고는 내 음식이 어떤 점에서 맛나고, 좋은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설명하지 못한다. 가령 내 일이 선지해장국이라면, 구체적으로 선짓국해장국을 거론함이 옳다. 

선지가 국거리가 될 때 된장을 바탕 삼을 수도 있고 젓국을 바탕 삼을 수도 있다. 해산물에서 온 젓국과 동물 단백질이 만나면 서로가 서로의 풍미와 손잡고 독특한 맛을 이룬다. 된장의 구수함은 또 다른 길이다. 젓국과 된장 사이에서 나는 어떤 기획으로 무엇을 선택했는가? 선지는 어떻게 다루는가. 사람은 소가 아니라 소고기를 먹는다. 한 덩어리 네발짐승의 피는 손질과 정리를 통해 ‘선지’가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 입안에 들어와야 한다. 어떻게 다루었는가. 지저분한 것을 걷어내자고 중탕을 했다. 맛을 들인다고 젓국으로 밑간을 하기도 한다.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막걸리에 담가뒀다. 이런 고전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해장국 한 그릇 제대로 해내는 구체적인 길이다. 뾰족한 수는 없다. 내 일의 세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사람이, 내 줏대를 쥐고, 내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검색창, 내가 끼고 사는 단 하나의 매체에 기댄 낭설 수집이란 정보의 습득일 수도, 공부일 수도 없다. 이미 모두 알고는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손은 먼저 검색창을 향한다. 검색하는 사이에 그다음을 잊는다. 이야말로 타성이다. 선지해장국 한 그릇에 잇닿은 낭설 한 조각마저 타성에 장악된 우리 삶을 비추고 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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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두 달간의 시범 운영을 거친 후 최근 본격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시작했다. 그간 ‘근무 시간을 제한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기대와 ‘기업 경쟁력이 하락한다’는 우려가 함께 있었다. 실제 창의적인 일을 하고 근무 패턴이 불규칙하며 노동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방송사에 다니는 만큼 이번 개편이 어떤 영향을 줄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회사는 근무 성격에 맞게 여러 제도를 마련했는데 나는 그중 선택근무제의 적용을 받고 있다(4주간 160시간 이상 근무하되 20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나는 매일 근무 시작과 종료, 휴게 시간 등을 등록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근무가 매우 효율화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엔 매일 8시간을 반드시 일해야 했다. 그런데 업무량의 기복이 큰 만큼 하루에 2시간 정도 일하면 나머지는 할 일이 없을 때도 생긴다. 그러면 전후로 이러저런 일들을 만들었다. 동료와 긴 티타임을 갖기도 하고 ‘미드’를 몰아보기도 한다. 업무 협의, 콘텐츠 동향 연구라는 이름이 붙으면 일 같기도 하고 그냥 잡담, 취미라는 이름이 붙으면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지금은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일이 끝나면 퇴근한다. 스스로 휴게 시간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엄격해졌다. 일정을 띄엄띄엄 짜서 휴게 시간이 느는 것보다는 일을 몰아놓는 게 마음 편하다.

한편 어디에 있었건 일했으면 근로로 인정받는 것도 좋은 변화다. 집에서 잔뜩 일한 게 노동으로 인정 못 받아 억울한 일도 사라졌다. 통화내역, 문자 연락 등 근거가 명확하면 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회사 그리고 제자리에 있어야 일’이라는 통념에는 관리의 용이성이라는 명분 아래 불합리성이 숨겨져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진짜 일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다. 나아가 회사는 아침에 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곳이라는 생각도 점점 줄어들 거다. 지금의 싸움은 비효율을 감수하면서 ‘어때야 한다’는 것에 맞춰 살던 틀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일이 몰리면 정신없이 지낸다. 한편으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근로 환경도 챙길 의무가 있다. 확실히 젊은 친구들일수록 워라밸을 중시하는 것 같다. 그들과 좋은 팀워크를 이루기 위해 중요한 조건은 술도 밥도 어설픈 멘토링도 아닌 빠른 퇴근과 적절한 휴식이다.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들어와 함께 고민하자고 하면 민망해진다. 충분히 생각해서 회의 안건을 미리 정하고 결정은 신속해야 한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는데 이제는 장고 자체가 악수가 되어버렸다. 노동 투입량이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동료들은 시간 관리 자체가 큰 미션이다. 너무 긴 시간을 일해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은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처럼 경쟁력을 잃어갈 거다.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이다. 불필요한 수당 지출을 줄일 수 있고 각종 경비도 아낄 수 있다. 물론 필요한 인력을 더 뽑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거다.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로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젊은 구직자들에게도 악명 높은 방송사의 근무 환경 개선은 매력으로 다가올 거다.

사생활 측면에서 보면 전에는 나인 투 식스가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박스 존이었다. 개인적인 일과와 근무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새로운 시간을 확보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PD들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8시간을 매일 채워야 했기 때문에 조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조금 더 대담하고 획기적인 계획이 가능해졌다. 항상 고갈돼서 뭔가 채우고 싶은 절박함이 있는데 굳이 휴직을 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재충전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다. 그건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다.

PD는 일의 성격상 직장인과 개인사업자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이제는 개인사업자에 조금 더 방점이 찍히는 것 같다. 노동의 종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 불안한 시대를 조금 빨리 경험하고 적응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회사들이 이 국면을 통해 더 건강해지리라 기대한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곳은 도태되고 좋은 환경을 만드는 회사는 늘어날 거다. 다양한 직업 중 하나를 겪은 것에 불과하지만 나는 지금의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에 확실히 섰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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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0일 지면게재기사-

10월 마지막 주 모 영상 플랫폼에서는 술에 취한 두 스트리머 간의 난투극(‘현피’ 사건)이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이어진 싸움은 즉시 gif 그림파일로 저장돼 인터넷 세상에 뿌려졌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방송의 자격론과 윤리가 호출되며, 규제 없이 방송하는 개인들의 수위가 나날이 자극적으로 된다며 이러한 방송을 저지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반복된 낡은 이야기다. 공중파에서 스트리밍 방송 시스템을 빌려 송출자와 시청자의 거리를 좁히고, 실제 셀러브리티를 데려와 방송 출연을 시키는 세상에서 이러한 담론은 고리타분하고, 무용하다.

우리가 좀더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그 문화 저변이 어떤 동력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인식과 그 여파다. 주목할 것은 ‘현피’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gif라는 파편으로 잘라 밈(Meme)화시켜 공유하고 웃고 떠들며 즐기는 문화 자체, 그리고 그렇게 현실을 밈화해서 떠드는 동안 파고든 사실 불신의 미래다.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며 제시한 개념이다. 특정 집단에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최소단위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이론설명보다 ‘짤방’으로 알려져 있다. 짤방은 특정 세대 또는 집단의 문화적 유행이 그림파일 등으로 유포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드라마 <야인시대>의 김두한(김영철 분) 캐릭터가 “4딸라!”를 외치는 모습이나 최근 <타짜>의 곽철용(김응수 분)의 대사들이 그러한 사례다. 그들의 유쾌한 대사는 패러디를 양산하고 현실의 문화들에 균열을 낸다. 

가상 캐릭터들과 현실의 폭행 사건이 인터넷 공간 속에서 동일하게 밈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物化)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물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매매의 대상이 되며, 인간의 노동력이나 다른 능력, 심지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체도 물(物)과 물(物)의 관계처럼 변화됨을 뜻한다. 앞서 이야기한 스트리머의 폭력을 살펴보자. 그것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상품으로 변화한 것인데, 여기에 밈이라는 영역이 합쳐지면 단순히 현실이 물화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이 가상의 영역에서 문화상품화된다.

즉, 스트리밍 방송 속에서 싸우는 사람은 실제의 사람이고, 실제 사건이지만, 그것이 짤방화되는 그 순간 실제의 사람은 소멸하고 가상의 복제체인 밈만 남는다. 사람들은 실제 사건이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는 관심 없고 폭력 그 자체, 자극 자체만 존재하는 일종의 환영체, 팬텀(Phantom)으로만 소비하는 것이다.

밈으로 소통하고 복제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사실’을 믿지 않는다. 조작과 거짓, 선동과 날조 속에서 날아오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순진하고 나이브한 것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팩트’에 집착하고 사건에 대한 싸구려 신파적 감성에서 떨어져 나와 기계적 중립을 외치며 타자를 자처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확증편향적으로 믿고, 자신이 믿으면 그것이 팩트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에서만 일어나는 단일적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사건이나 사회·정치의 단면들조차 쉽게 짤방화하고 유희화하지 않나. 수많은 가짜뉴스 생산자들이 활개칠 수 있는 까닭도 이러하다. 정치적 영역에서부터 이미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 그것을 사실이라 믿고 소비하며, 현실 사회를 끊임없이 가상의 시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물론 이러한 사실 불신의 사회를 모조리 ‘인터넷의 밈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단지 오늘, 조금 더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이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변화했는지. 왜 우리는 팩트에 주목하면서 현실을 가상처럼 소비하고, 그 어떤 사실도 거짓이라 전제하고 받아들이면서, 수많은 가짜들을 사실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그 바깥에서 그 모든 과정을 웃고 즐기는지.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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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20일 미국.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 중인 오로라 극장에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린다. “내가 조커다”라고 외친 청년 제임스 홈스는 이날 8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체포됐다.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커>를 본 뒤, 나는 내내 이 사건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 아서 펠릭과 제임스 홈스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인 홈스가 조커와 동일시하면서 영화를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면, 허구적 인물인 아서는 홈스와 같은 실존 인물들에 이입해서 만들어진 캐릭터로 현실을 영화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아서가 참조하고 있는 사람들을 미국에선 ‘인셀(incel, 비자발적 순결주의자)’이라고 부른다. 대체로 20~30대, 애인 없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인 인셀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당연하게도 아서의 이야기와 인셀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공명한다. 특히 아서가 조커로 거듭나는 전환의 장면은 꽤 노골적이다. 

막 일자리에서 해고된 아서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양복쟁이 세 명이 지하철에 탄다. 그들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여자를 괴롭히자 여자는 아서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낸다. 아서는 나설 생각이 전혀 없지만 곤란하면 발작적으로 터지는 웃음 탓에 집단 구타를 당하게 된다. 여자는 이미 도망치고 난 뒤다.

아서는 결국 총을 난사하고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리고 스토킹하던 옆집 여자와 섹스를 나눈다. 조커의 탄생이다. 하지만 이 섹스는 완전히 붕괴된 아서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환상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아서의 괴물 (혹은 영웅으로의) 변신을 묘사하는 시퀀스의 시작과 끝에 여자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현실의 여자는 아서에게 위험을 떠넘긴 채 자리를 떠났지만, 망상 속의 여자는 영웅이 된 조커에게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준다.

한편 조커를 낳은 것은 ‘토머스 웨인’이 상징하는 부패한 사회의 금융자본이다. 전혀 새롭지 않다. 다만 영화가 웨인을 설명하는 방식만은 흥미롭다. 그는 거대한 저택에 집사를 거느리고 살면서도 산업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인 <모던 타임즈>를 보며 여가를 보내는 진보적 문화 엘리트다. 정치 신성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인민의 적”으로 지목했던 바로 그 자들. 그들은 사회주의자의 코미디를 보면서 문화적 취향을 뽐낼 시간은 있지만,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울부짖는 청년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여유는 없다.

소수자와 다양성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와 선을 그으며 등장한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윤리적 자본과 건강한 국가 시스템”에 대해 강조하면서 ‘건강한 보수’의 가치를 세련되게 설파했다. 그러나 인셀은 총기 난사로 그에 응답했다. 그렇게 트럼프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019년, DC 유니버스의 외곽에서 등장한 <조커>는 인셀의 손을 들어준다.

물론 아서는 한심한 관종일 뿐이고, “내가 광대다”를 외치는 마스크맨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폭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야말로 인셀의 은밀한 옹호자들의 자기인식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선량하고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할 뿐 영웅이라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과 함께 선다. 관객들이 공감하지 않을 아서의 범죄는 의도적으로 삭제하거나(B호실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코미디로 산화시켜버리고(발자국에 묻어나는 피는 상담사의 것이었겠지?), 아서의 흑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면서 말이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건 여기에서다. 아서와 인셀, 그리고 인셀의 옹호자들이 같은 변명 혹은 망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은 모방범죄가 아니다. 이미 편재하는 폭력의 반복과 지속이다.

어쩌면 이것이 마블과 경쟁하는 DC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올바름을 ‘마블=기득권 엘리트의 것’으로 밀어내면서, 마블의 행보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광대들의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것. 이 치밀하게 계산된 정교한 영화 앞에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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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모 평생교육원에서 12주차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혼자서 다하는 것은 아니고 강백수라는 시인과 함께, 정확히는 ‘대중문화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한다.  

이런 건조한 자리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모인다.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쓴다. 특히 ‘동네의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저마다 멋진 제안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난주에는 우리는 어떠한 글쓰기를 해야 할 것인가, 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가장 활발하게 참여해 온 40대 남성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아내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은데, 새로운 말이 필요할 것 같아요”하는 내용이었다. 난 그가 “아내가 제 말을 잘…”하고 말한 순간부터 “저, 잠시만요”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으나 우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수강생들이 그 표현에 무언가 불편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미안한 심정이 되었다.

나는 말을 마친 그에게 “아내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마도 명령의 의미가 아니라 대화를 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는 내용인 것 같아요, 맞지요?”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읽을 타인에게 불편함이나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맥락이 어떠하더라도 사람들은 하나의 단어와 한 줄의 문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글의 온도는 그것으로 결정된다. 특히 쉽게 상처 받는 것은 소수자들이다. 일상에서 여러 이유로 차별을 감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위치한 부호 하나의 무게마저도 짐이 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글을 읽어내는 힘을 탓하기 이전에, 쓰는 사람의 무감각을 더욱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맥락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그 사례에서 자신이 ‘을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가면 된다.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아내가 제 말을 잘 안 들어요(아내에게 문제가 있어요)”라는 것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저도 아내의 말을 잘 안 듣게 되었어요(저에게 문제가 있어요)”라고 하면, 그 주체만 바뀌었을 뿐인데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표현이 되는 것이다.  

나는 40대인 그에게 “사실 선생님 나이대의 남성들은 글에서 조금 상처 받아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상처 주는 쪽에 있기 때문입니다”하고 덧붙였다. 어쩌면 중년 남성들은 나의 이 문장에 분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진 편에 있음을 드러낸다. 분노 역시 가진 사람의 몫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상처와 상실이 남는다.

그 남성이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예요. 고맙습니다”하고 말해서, 나는 그가 정말로 고마웠다.  

그때 그의 뒤에 앉은 여성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는 그에게 “아까 말씀하셨을 때 저 사실 불편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하고 말했다. 나는 이때 무언가 눈물이 날 만큼 둘에게 고마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간 사용해 온 언어를 고쳐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랬기에 그에게 상처 받았던 누군가도 그에게 다정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다.

사회와 문화를 비평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게, 나는 그러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함을 전하고 싶다. 자신을 거쳐나가지 않은 물음표는 쉽게 타인을 규정하고 상처 주게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라는 데서 시작한 물음표는 타인과 사회를 향해 건강하게 확장된다. 그러면 그는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고 거기에 쉼표 하나를 넣을 때마다 타인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나는 글쓰기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쓰는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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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떠난 지 1년이 되었네. 금세이기도 하고 어느덧이기도 한 1년이었어. 금세 잊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어느덧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들이 많았네. 그 순간마다 누나의 희미한 웃음이 있었어. 예전에는 그 웃음이 희미한 줄도 몰랐었네. 힘없는 웃음이, 그러나 새어 나올 때마다 웃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던 그 웃음이, 실은 희미한 웃음이었어. 희미해서 오히려 여운이 길었어. 사람들은 어렴풋해지는 것을 어떻게든 붙들려고 하잖아.

누나가 떠난 날은 개천절이었어. 하늘이 열린 날, 누나는 하늘에 올라가 무엇이 되었을까. 별처럼 빛나고 있을까, 달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모양을 바꿀까,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새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지기도 했을까. 누나는 왠지 이런 말을 해줄 것 같다.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거야. 한없이 깜깜해지고 싶은 날, 월식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다른 달을 마주할 수 있겠지. 어제 읽었던 누나의 시가 오늘 읽으면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누나는 한국에 오고 싶어 했고 나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말할 때, 쓸 때는 쉽더라. ‘싶다’라는 보조형용사에 마음을 내맡겼으니까. 정작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 내일 있을 회의가, 다음주에 있을 행사가 줄지어 떠오르더라. 항공권을 예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한숨이 났어. 이렇게 많은 이들이 떠나고 돌아오는데, 우리의 발을 묶어버린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기다리는 마음은 가닿는 발걸음이 되지 못했을까. 누나와 주고받은 e메일을 읽으며 나는 뒤늦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

지난 1년 사이, 나는 세 번의 큰 이별을 겪었어. 이별을 할 때마다 멀어지는 건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나 같았어. 내가 점점 쪼그라지는 것 같았어. 소실점이 되어 세상 모르게 사라질 것 같았지. 땅을 보고 걷는 버릇이 있었는데,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부쩍 늘어났어. 이별한 이들이 하늘 어딘가에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아. 나란히 걷던 날, 땅을 보며 걷는 내게 누나가 그랬잖아. “주눅 들지 마. 시 앞에서만 겸손해지고.” 잔뜩 웅크린 어깨를 서서히 펴기 시작해.

사람들이 물어. 이제 좀 괜찮으냐고. 덧붙이는 말들은 이런 것이야.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그때마다 나는 희미하게 웃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누나의 희미한 웃음이 보이기 시작해. 나도 모르게 손을 쥐게 돼. 놓치면 안 되는 것을 갖게 된 것처럼, 어떻게든 품고 있어야 하는 감정처럼. 남겨진 사람들은 그리워할 수밖에 없으니까. ‘남겨진’이라고 썼다가 ‘남은’이라고 고쳐 썼어. ‘그리워할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썼다가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로 고쳐 썼어. 고쳐 쓰는 일이 잦아졌어. 어떤 감정을 슬픔이나 안타까움 등 한 단어로 묶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 시간이었어.

슬픔에 깊숙이 잠겨 있으면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잖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도리질을 하면서도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에 몸을 내주잖아. 그리고 천천히 떠올리기 시작하지. 함께했던 시간을, 내가 몸담고 있는 여기의 시간과 상대가 묵고 있을 거기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어서, 기억할 것이 남아 있어서 실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나가 노트에 적은 문구가 누나의 유고집 제목이 되었다고 들었어. <가기 전에 쓰는 시들>이었다가 누나는 글자 ‘시’ 위에 빗금을 그었지. 그리고 그 아래 ‘글’이라고 고쳐 적었어. 가기 전까지 고쳐 적는 마음, 정확함을 향해 한없이 뾰족해지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어. 써야 할 시들을 가늠하고 단어를 고르고 그것들을 연결해 문장을 만드는 모습을 찬찬히 그려봤어. 독일의 시간, 뮌스터의 시간, 누나의 책상 위에서 흐르면서 고이던 시간을.

유고집인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 누나가 떠난 날인 개천절에 출간된다고 해. 2011년 5월17일에 누나는 이렇게 썼지. “오늘도 아프지 않고 글을 쓰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발병도 하기 전 죽음을 예감한 이 문장을 읽고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 나는 저 문장을 바꿔 누나에게 답장을 해. “오늘도 기억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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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온라인 세상 어딘가는 ‘5평 주택’ 관련 논쟁으로 뜨거웠다.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으로 제공되는 공간이 대부분 5평 내외의 원룸이라는 사실을 비판한 트위터 이용자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그의 잇단 트윗을 요약해 옮기면 “청년주택에 살면서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사회초년생이니까’ ‘시세보다는 저렴하니까’ 등의 말은 우리가 좁고 작은 방에 살아도 ‘괜찮은’ 이유가 될 수 없다”이다.

이 논쟁은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매일, 셀 수 없이 키보드 배틀이 일어나지만 모두 보도되는 것은 아니다. 

이 트윗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점에서다. 감정이 격해지면 격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고, 가능한 한 많은 인간을 격하게 만들수록 훌륭한 ‘어그로’다. 이 트윗처럼.

감정을 자극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좁고 작은 방’에 살아봤거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 얘기였다. 청년임대주택은 아니지만 나는 약 5평의 주택에 살고 있다. 전에 살던 곳에 비해 여러모로 나아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저 트윗에 따르면 나는 배알도 없는 녀석이었다.

내 경우에는, 공간의 크기가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 기준 4.24평)을 넘긴다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그 안을 구성하는 것들이 더 중요했다. 이를 테면 방음, 방수, 단열, 채광, 통풍 같은. 

이전 집은 집 안에서 벽 너머 옆집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방음에 취약했고, 단열이 거의 되지 않음은 물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40초 이상 나오지 않았다. 건물이 오래되어 어딘가 틈이 생겼는지, 밖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한 길벌레와 마주치기 예사였고, 무엇보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10개월간 지속된 천장의 누수였다. 건물주는 고쳐준다고 말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10개월 동안 희망고문을 했다. 날마다 영토를 확장하는 붉고 푸른 곰팡이까지 품고 살아갈 정도로 내 신경줄은 튼튼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적지 않은 돈을 받는 건물주들의 심보에 이가 갈린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니까 가격이 오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토지와 달리 서비스는 물리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편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평균은 왜 이 모양인지? 

집주인들이 자기들은 살지 못할 집을 세를 내놓으면서 교통의 편의성을 무기로 또는 시세를 이유로 값을 비싸게 받는 행태에 화가 난다. 대학교 기숙사나 청년공공주택이 들어설 때, 더는 세입자를 호구잡지 못할까봐 반대 시위 벌이는 것을 보고는 인류애를 상실할 뻔했다.

집주인들의 양심만 믿고 있을 수 없기에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교통편의성이 높으면서도 저렴하고, 품질 괜찮은 공공주택을 공급함으로써 형편없는 주택을 시장에서 도태시키는 것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서울 충정로와 구의동의 청년주택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듯 보인다. 충정로 청년주택의 기본 임대조건은 보증금 1656만원에 월 임대료 7만원. 월 40만~50만원의 임대료를 내던 청년이 이곳에 입주한다면 가처분소득이 높아질 터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저축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보증금인데, 시에서는 청년들의 보증금 부담을 고려해 최대 4500만원까지 무이자로 임차보증금을 빌려주는 등의 방안을 내년 입주 전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평형보다는 공급량이다. 충정로역 주택 499실 중 49실만이, 강변역 주택 84실 중 18실만이 공공임대 주택이다. 49실과 18실. 임대 시장을 흔들기에는 턱없어 보인다. 5평인데도 공급량이 이렇게 적은데, 10평이면 더 적었을 것 아닌가.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인가. 우리 각자 더 나은 삶을 요구할 때 이 점을 함께 고민하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때, 제안하는 내용에 삶의 구체성이 반영되면 좋겠다. 디테일이 결여된, 선입견 가득한 비판으로 행복의 가능성마저 부정당한, 5평 주택에 살고 있는 1인은 격하게 황당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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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란 무엇인가. 나로 인해 무언가가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비건 지향 생활을 지속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지구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치사율 100%로, 돼지에게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감염된 돼지는 고열로 온몸의 혈관이 파열돼 고통스럽게 죽는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살처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파주와 연천 일대의 돼지들에게서 감염이 확인되었다. 22일 기준으로 돼지 1만5333마리가 살처분돼 땅속에 매몰되었다. 감염된 돼지들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은 돼지들도 모조리 함께 죽였다.

23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나온 경기 김포시 통진읍의 한 양돈농장 앞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며 방역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대규모 살처분은 아주 신속히 이뤄졌다. 전염병 확산을 확실히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한꺼번에 모아 가스사시킨 뒤 땅에 묻는 방식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질식시키는 가스사 역시 매우 고통스러우므로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가스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의식이 있는 채로 땅에 묻히는 돼지들도 있었다. 사실상 생매장으로 죽인 경우다. 의식이 있는 돼지를 생매장하는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에 위배된다. 그러나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속성을 우선시하다 보면 가사 상태에 있는지, 완전히 죽었는지, 그런 것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집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돼지는 나의 반려 고양이 탐이보다도 지능이 높다. 탐이만큼이나 온갖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편안해하거나 기대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등의 생생한 감정이 그들에게도 있다. 의식이 있는 채로 포클레인 집게에 온몸을 붙잡힌 뒤 커다란 구덩이에 내던져지는 돼지의 얼굴에는 어마어마한 공포가 서려있다.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란 힘겨운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수많은 돼지들이 치명적인 병에 걸리는 근본적인 이유다. 가축전염병 창궐은 인류가 가축을 키우는 방식과 몹시 유관하다. 조류독감과 구제역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의 아주 기본적인 면역력조차 파괴한다. 고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좁고 열악한 사육장에 감금해서 키우고, 이빨과 꼬리를 자르고 거세한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히며 고작 6개월을 살게 한 뒤 도살장에서 죽인다. 그리고 그만큼을 또 태어나게 한다. 이 모든 지옥 같은 일이 우리의 입맛을 위해 벌어진다. 아주 거대한 시스템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 세계 축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조금 드러냈을 뿐이다.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19일 논평에서 “살처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만을 위한 조치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반복되는 살처분 과정은 인간에게도 몹시 치명적이다. 살처분 작업자 4명 중 3명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이들에 대한 사후 심리치료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그의 저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동물에 대해 잊어버린 것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잊어간다. 동물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에게 반응하는 능력까지도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와 동물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만큼이나 오래 묵은 전쟁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에도 이보다 더 일방적인 전쟁은 없었다.”

책임감의 영어 단어 ‘responsibility’는 ‘response’와 ‘ability’의 합성어다. ‘반응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1만여마리 돼지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인간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것에 안심하거나 삼겹살 값이 오르는 것을 염려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응답이다. 이 응답은 현재의 돼지들뿐 아니라 미래의 돼지들에게도 꾸준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돼지들과 우리는 같은 세계에 속해있고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나은 반응을 해야 한다. 고기를 덜 먹음으로써, 안 먹음으로써, 가축을 덜 잔인하게 키움으로써, 최대한 고통 없이 죽임으로써 우리가 변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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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국물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온갖 국물 음식이 오른다. 안 보이면 섭섭하다. 유럽과 아메리카 사람들이 끼니마다 와인·맥주·탄산수를 곁들이고, 중국과 인도, 서남아시아며 아프리카 곳곳의 사람들이 끼니마다 차 없이는 못 산다면, 한국인에게는 국탕·찌개·전골이 있다. 저들의 주식인 빵·찐빵·난이란 덤덤하기 이를 데 없다. 탕면 빼고는, 국수는 뻑뻑하다. 맹물만으로 부족한 저작(咀嚼)과 목넘김을 돕느라, 시거나 달거나 쌉쌀하거나 특유의 풍미를 띤 와인·맥주·탄산수 또는 차를 마실 수밖에 없다. 나란히, 한국인에게는 짠맛 위에 복합적이면서 풍성한 풍미를 세운 국물이 고맙다.

국물 음식 덕분에 덤덤한 맨밥이 편안하고 맛있게 넘어간다. 국물은 쌀 등 곡물의 전분이 호화하면서 이룬 맨밥의 맛과 향을 증폭한다. 지나치게 얌전해 잘 나서지 않는 맨밥의 단맛과 구수함, 그리고 미량의 지질에서 유래한 기름진 고소함이 국물과 함께 새로이 몸을 드러낸다. 장·젓갈·김치의 증폭과는 또 다른 질감과 촉감이다. 하지만 익숙한 사물이란 낯선 사물일 수 있다. 한국인은 내가 먹는 국탕·찌개·전골의 정체와 속성을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가령 국탕이란? ‘찌개에 견주어’ 물을 많이 잡아 끓인 음식이다. 그리고 주재료의 풍미가 앞선다. 콩나물국, 미역국, 설렁탕, 대구탕 등이 좋은 예다. 말만 들어도 콩나물, 미역, 소고기, 대구의 풍미가 삼삼하다. 찌개는? ‘국에 견주어’ 바특하게 끓인다. 그리고 찌개 속에서는 채소든 고기든 해산물이든 모두 푹 무른다. 푹 무른 대로 장 또는 양념의 풍미가 깊숙이 침투한다. 된장찌개를 기본으로, 김치찌개라든지 부대찌개는 이러한 속성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전골은? 국탕·찌개 동아리와 그 속성을 공유하되 계통과 자질이 다르다. 냄비에 가득 끓여 나온, 모든 재료가 푹 익어버린 국물 음식은 이름만 ‘전골’일 뿐 전골일 수 없다. 우리는 전골 본래의 의미와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전골은 잘 손질해 얌전히 간추린 고기, 채소, 해물 등을 전골 전용 조리 용구인 전골틀에 맵시 있게 담은 뒤 장국 또는 간을 맞춘 옅은 육수를 부어, 즉석에서 끓이면서 먹는다. 예전엔 곁상에 따로 전골틀을 올려 차리기도 했다.

전골은 휴대와 이동이 간편한 노구솥과 손을 잡고 태동했다. 노구솥은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는 명확히 전골 전용의 용기, 곧 ‘전골틀’이 되었다. 이런 내력을 거쳐 전골은 국탕·찌개와는 구분되는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조선 말기를 지나면서는 바로 익는 재료,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 재료 등을 미리 손질해 전골냄비(노구솥 또는 전골틀에서 진화했거나 냄비에서 전용한)에 보기 좋게 담고, 장국을 부어 즉석에서 끓여 재료가 먹기 좋을 때 바로 건져 먹을 수 있는 국물 요리로 자리를 잡았다. 식민지시기의 인기 요리인 조자호(趙慈鎬, 1912~1976)의 생각에 전골이 호화로워질대로 호화로워지면 곧 ‘신선로’였다. 요컨대 전골이란 즉석 국물 음식이자 전용 용기의 연출을 전제로 한 일품요리였다. 연출에서는 격식과 모양을 뽐내고, 여기에 붓는 장국 또는 육수는 맑아야 한다. 푹 익히지 않은 다양한 부재료는, 국탕 속의 그것과 달리 조직감과 색감과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육수는 그때그때 더해 끓여 탁하지도 바특하지도 않도록 했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본래’ 같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전골의 정체와 속성을 곰곰이 생각지 않고 전골 운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물 음식의 분야, 국물 음식에 대한 또 다른 ‘상상력’이 아쉬워 ‘본래’ 운운한다. 국물에 잠긴 재료의 상태, 국물의 탁도와 점도에 대한 새로운 접근, 장국 및 육수의 섬세한 운용, 일품요리 연출의 가능성 등에서 전골은 의미 있는 자질을 쥐고 있다. 갱신과 새로운 탄생의 여지가 있다. 그저 넓고 깊은 냄비에다 푹 끓인 국물 음식과 분명히 구분되는 전골의 본래 모습을 이 계절에 돌아본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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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MBC는 스스로 신랄한 비평대에 서겠다는 각오로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선언했고, 담당자가 된 나는 비평토크쇼 <탐나는 TV>(토요일 오전 8시10분)의 첫 방송을 작년 9월22일 내보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프로그램을 적어도 볼 만한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우선 현재 TV 비평 지형을 형성하는 유력 평론가들을 많이 모셨다. 그리고 발언에 제약을 두지 않기로 약속했다. 또 특정 TV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날것 같은 반응을 해당 프로그램의 PD가 지켜보는 코너, 단순 댓글 소개를 넘어 시청자들의 반응을 빅데이터로 보여주는 코너, 담당 PD를 어렵지만 자주 초대해 논쟁에 참여시키는 코너 등 다양한 포맷을 선보였다. <탐나는 TV>는 작은 프로그램이지만 지상파의 공적 의무에 더 기여하는, 사내 제작진이 전보다 관심 있게 보는, 출연자들이 여러 프로그램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는, 시청자들이 조금 볼 만하다는 반응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신랄한 비판을 받은 제작진 중에선 ‘팀킬’ 아니냐며 화내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년은 새로운 체제가 운영을 시작한 과정이었고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기에 비판을 더 따갑게 느꼈다. 한편으론 떨어진 사기를 올릴 위로가 내부적으로 더 필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시청률과 댓글을 넘어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종합적으로 보여줘 제작진이 참고할 만한 것을 내놓고자 노력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이 조금 더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고민했다. 그럼에도 칭찬은 쉽게 휘발되었고 비판은 오래 남았다.

출연자들과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평론가, 데이터 분석가, 크리에이터 등으로 구성된 출연진은 시청자들을 대변하기 때문에 나에게 갑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내가 섭외한 출연자로 을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겠다며 칼끝을 바짝 세운 그들과 코너별 콘셉트를 생각하며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나는 매주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만나면 반가워 덕담도 주고받지만 소위 말하는 친분은 잘 쌓이지 않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PD와 작가들에게 기댈 상황도 못 된다. 그들은 우리 프로그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토크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두 번째로 생각할 일이다. ‘무제한 자사 비평’이라는 콘셉트를 듣고 모인 이들이니 제작진 스스로도 자존심을 걸고 만들고 싶어 한다. 만들다보면 비판의 대상이 나의 친한 동기일 때도, 존경하는 선배일 때도 있다. 가편집본 시사에 앞서 이런저런 친분을 스치듯 얘기해도 팀원들의 표정이 상하는 것을 느껴 조심하게 된다.

나는 최근 ‘외국인 셰프, 연예인들이 하루만 열었다 사라지는 마법 같은 식당’이라는 콘셉트의 파일럿 <신기루식당>(목요일 밤 10시5분)을 만들어 방송을 앞두고 있다. <탐나는 TV>에서 함께 일하는 PD들과 작가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다루는 코너의 경우 패널 선택에서 나를 배제하고 녹화 때도 자리를 비울 것을 요구했다. 또 가편집 시사 때도 빠지고, 프로그램의 하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종 시사만 할 것을 요구해 모두 수용했다. 자신이 만드는 비평 프로그램의 도마에 신작을 올린다니 심란하다.

나는 1년간 뜻하지 않은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뜻하지 않은 평화를 느꼈던 것 같다. 모두에게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선 끝까지 외로워야 하는 상황을 겪어보니, 외로울수록 나는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며 안도하게 된다. 오히려 조금 덜 외로워 보자고 움직이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세속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균형과 질서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실감한다. 저널리즘, 비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는 사람들은 ‘인싸’를 포기하는 게 숙명인 것 같다. 언론이라는 게 존재감을 얻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존재감이 사라지곤 하니 말이다. 조직 안에서, 또 개인끼리 서로 너무 위하고 끈끈한 게 문제인 우리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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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의 강연을 들었다고 하는 분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자녀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줄 수 있을지를 물었다. 사실 이러한 요청은 이전에도 한 번 받았고 가끔은 이보다 더욱 특별한 일도 일어난다. 

나는 그에게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해서요, 그리고 제가 중등교육의 전문가도 아니니 그런 일을 잘하는 분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치동이라든가 하는 데서 이미 정보를 많이 얻었고 첨삭도 받았지만, 그러면 너무 ‘관리’를 받은 티가 나니까 나에게 한 번 더 관리를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내가 다시 한번 어렵겠다고 하자 그는 대한민국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 어렵다면서 작가님도 아이가 크면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를 대학에 보낼 생각이 별로 없다고, 답하고 말았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사실 정말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왜 아이의 자기소개서에, 그의 인생에 관리가 필요한지.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한다. 위법과 편법의 범위를 넘나들면서 법이 허락하는 그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당사자가 아닌 그 부모들이, 혹은 한 가문이 총력전을 기울여서 한 개인을 ‘관리’한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입시를 치를 나이가 된다고 해도 굳이 그러한 세계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이도, 나도 행복하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아이가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가게 된다고 해도 나는 아이의 발을 잡고 말리고 싶다. OO아,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하고. 그가 공부하며 행복하다면 물론 공부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본인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확신이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다. 그 무엇이든 결국 온전히 그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과연 무엇을 선택한다고 해도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인가는 잘 모르겠다. 유치원생인 나의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수영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모든 아이들의 수영모 색깔이 다르다. 태권도복의 띠가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것처럼 그들의 레벨에 따라 그 색을 다르게 해 둔 것이다. 부모들이 수영장 카페테리아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수영모를 쓰고 강습을 받는다. 어쩌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보내는 모든 공간에 저마다의 색과 숫자가 있고, 그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아이가 함께 타인과 경쟁하고 있을 것이다. 

학부모와 교사, 특히 자신을 닮은 학생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교육론을 쓴 고등학생,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의 노정석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숫자가 우리의 행복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어젯밤 전투에서 죽은 전사자의 수, 오늘 일어난 자동차 추돌사고의 사망자, 테러 희생자 같은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에 따르면 숫자는 입시제도가 만들어 낸 허영이고 가짜행복일 뿐이다. 공부라는 것은 더 배우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에서 나온다.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자녀와 학생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배움에 대한 욕구를 스스로 가질 수 있게 그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처럼 그들을 경쟁과 관리에 매몰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전화한 학부모에게 나는 “교수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은 누군가가 자신의 논문을 읽어주는 일입니다. 자녀분께서 면접을 볼 때 그들의 최근 논문의 제목과 초록만 읽고 들어가도, 가장 인상적인 학생으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역시 대치동 전문가들이 하는 관리의 영역인지, 아니면 대학에서 오래 공부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환상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한다. 경쟁과 관리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누구인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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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뛰다가 넘어졌다. 쿵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달려가 아이를 일으켰다. 아이의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으냐고 묻는 건지, 괜찮다고 위로하는 건지 나도 모르게 말을 쏟아냈다. 아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뒤편에서 갑자기 “울지 마!”라는 말이 들려왔다.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감은 양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소매를 들어 눈을 훔쳤다. 울긴 했지만 울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울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울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무도 없을 때 남몰래 더 크게 울지는 않을까. 제때 울지 못한 울음은 언젠가 다시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때 흐르는 눈물은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다. 그 눈물 속에는 억울함과 섭섭함, 울지 못하게 만든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득 어릴 때 들었던 날선 말들이 떠올랐다. 가령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 운다”나 “눈물이 헤프다” 같은 말들. 눈물이 솟구칠 때마다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게 했던 말들. 씩씩하지 못하다고, 참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던 말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오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저 말들은 이제 케케묵은 것이 되었지만, 사람의 마음에서 이끼처럼, 곰팡이처럼 피어올라 그를 옥죄기도 한다. 내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책을 읽다가 울었다. 현직 의사 김선영이 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라이킷, 2019)이라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종양내과 의사인데, 아버지를 암으로 일찍 떠나보낸 사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그가 근무하는 병원이 작년에 아빠가 항암치료를 받은 병원과 같아서 첫 장을 읽을 때부터 목구멍으로 침을 삼켜야만 했다. ‘사실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일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의사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내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던 문장을 옮긴다. 단단하면서도 겸손한 저 문장들로 인해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눈물이 흘러나올 때마다 불끈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주먹 안에는 “울지 마”라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울지 않을래”라는 내 목소리가 새겨 있었다. 울지 못하게 만드는 외부 기제가 아니라, 울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슬픔을 공부할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누군가가 슬플 때, 어설픈 위로를 던지기보다는 그 슬픔을 헤아려보는 자세가 소중하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일 수도 있다.

“울지 마”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때는 위로가 되고 어느 때는 폭력이 되는 말. 누군가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그 자리에 영영 붙박아두기도 하는 말.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더없이 편리한 “울지 마”라는 말. 실은 많은 말들이 양날을 지니고 있다. 슬픔을 다스리기 위해 했던 말이 슬픔을 더욱 부풀리기도 하고, 참아왔던 울음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울지 마”라는 말보다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빠와 함께 거닐던 산책로를 혼자 걷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 날이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나는 울어도 괜찮다고, 울 수 있어서 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면 아마 나 자신이 통째로 쏟아졌을 것이다.

뛰다가 넘어져 우는 사람이 있었다. “울지 마”라는 외침에 울음을 삼키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장하며 울음을 참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바탕 울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눈물과 타인의 눈물을 둘 다 존중하겠다고 결심했다. 눈물의 농도와 경중을 따지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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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진 8월이었다.

광복절 전후로는 <김복동>과 <주전장>을 봤다. <김복동>도 시의적절한 영화였지만, 둘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주전장>을 추천하고 싶다. 

<주전장>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의 주장을 비친 뒤 곧장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수족이 구속되거나 철창 안에 갇혀있지 않았는데 무슨 강제동원된 ‘성노예’냐고 비웃는 극우 인사의 발언 뒤로, 여성들의 자유의지가 침해된 여러 정황들과 ‘노예’라는 언어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법학자의 발언이 뒤따르는 식이다.

방대한 정보와 치고받는 대화(처럼 편집된 각자의 인터뷰)의 끝에 다다른 영화의 결론은, 세계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일본의 우익 세력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며,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굳이 과장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 위안부가 20만명에 달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큰 숫자일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해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용한 세력이 있었고, 이는 상대에게 숫자가 허위이므로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할 빌미를 줬다. 상호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 '주전장' 포스터. 사진제공 시네마달

일본계 미국인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것도, 직접 영어 내레이션으로 작품을 진행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을 몸소 실천하기 위함일지 모른다. <주전장>을 거세게 공격하는 ‘일본회의’는 전략의 효과를 방증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최근 일주일은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 상영작들에 빠져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자면, 평소 관심사와 닿아있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이다(이번주 토요일까지 ‘디박스(eidf.co.kr/dbox)’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유엔 특별조사위원 레일라니 파르하와 함께 세계를 누비는 카메라는 ‘조물주 위 건물주’가 한국만의 현실은 아님을 드러낸다. 토론토의 미친 집값과 노팅힐의 젠트리피케이션. 동네를 돌아야 할 돈을 해외로 빼내고, ‘우연한 만남’이라는 도시의 즐거움을 빼앗으며 획일적 공간을 양산하는 투기 세력들. 심지어 대표적 복지국가 스웨덴마저도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국제사모펀드에 잠식됐다. 

이 지점에서 갑자기 한국이 툭 튀어나온다. 악명 높은 사모펀드의 자금 출처 중 하나가 한국의 국민연금이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은퇴 후 복지를 위해 돈을 불린다는 명목으로 연기금을 투자하지만, 그 투자처는 국민들이 은퇴 뒤 살아갈 터전을 박살낸다는 아이러니. 심지어 한국에는 ‘강제퇴거’라는 박살 방식까지 자행된다. 용역들이 누워있던 아내의 배를 찼다는 남편의 증언은 공분하게 만든다. 레일라니는 유엔을 대표해 강제퇴거는 중대한 인권 범죄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래도 영화는 한 줄기 희망을 비춘다. 지방정부 간의 연대와 여성 연대다. 세계 도시의 시장과 부시장들은 모여 노하우를 공유하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다. 사무보조로 고용된 줄리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여성들, 특히 워킹맘들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레이라니는 웃으며 줄리를 사진에 담는다. 여러모로 하고자 하는 말이 많은 다큐멘터리다. 딱 내 취향이야.

문득 생각했다. 올해 유독 다큐멘터리 풍년인가? 그럴 리 없다. 좋은 다큐멘터리들은 언제나 있었고 변한 건 나다. ‘다큐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깬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의 감동,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 감독과의 내적 토론의 즐거움을. 요즘 다큐멘터리는 미적 성취도 대단하여 시각적 쾌감까지 얻을 수 있다.

관심만 기울인다면 다양성 영화를 접할 기회는 많다. 그것도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시민단체나 지역공동체가 기획하는 상영회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나는 같이 보고 함께 얘기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홀로 삭이던 문제도 함께 고민함으로써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볼 게 없다”는 말이 맴돈다면 이런 기회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더 풍요롭고 튼튼한 문화 생태계를 지닌 한국을 기대한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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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세다. 급하다. 거칠다. 한마디 한마디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고 날카롭다. 표현과 수사가 구구절절 극으로 치닫기만 한다. 침소봉대(針小棒大)가 기본값이 되고 나니 양두구육(羊頭狗肉)에도 둔감해지고 말았다. 음식을 둘러싼 말글 말이다. 음식 또는 미식이 업인 사람들의 말글뿐 아니라, 일상 속 음식에 잇닿은 말글이 오늘 대개 그렇다. 장삼이사들이 살아가는 골목, 일터가 되는 길거리, 매일의 반찬거리를 대느라 돌아다니는 시장 여기저기 내걸린 음식의 말글이 어느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것이다. 닭갈비집의 모든 재료는 닭갈비의 고향 춘천에서 공수하고, 팥빙수집 팥은 기가 막히게들 정선, 경주, 나주, 신안 등 팥 주산지에 자리한 큰아버지네 또는 외삼촌네서 농사 지은 팥을 직접 공수해 쓴다고들 한다. 부모님의 시골 텃밭에서 쌈거리를 공수하는 백반집과 한정식집이 어느 동네에나 넘치게 있다. 심지어 내 텃밭을 두고 영업한다는 고급 음식점에서는 ‘방금 텃밭에서 공수한 채소’를 쓴다고도 한다.

‘공수(空輸)’란 ‘항공 수송’을 줄인 말이다. 하늘로 난 길을 통해 화물을 실어 옮기고 주고받을 때에 쓸 말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뭍 사이의 항공편이 아니면, 이 땅의 철도와 화물차로 운송할 수 있는 물류가 아니면, 대한민국 먹을거리 유통 및 요식업이 공수를 통해 얻을 이익 또는 편의란 웬만해서는 없다. 강원, 경북, 전남과 서울 등 수도권 사이의 공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자영업자? 1만명 가운데 한 사람꼴도 안될 테다. 명실상부가 어긋나니 극에 달한다. 정답고 수더분한 음식 앞에 ‘마약(痲藥)’이 왔다. 마약떡볶이, 마약김밥, 마약튀김, 마약어묵꼬치, 마약전 등등. 장수가 판촉을 위해 한 번 쓸 말이라면 모르겠으되, 막다른 지경의 표현에 한국어 사용자 모두가 감염된 형국이다. 극에 달한 표현이란 빈곤한 어휘만큼이나 사물의 세목을 향한 상상력을 가리는 나쁜 효과를 낸다. 마약 너머, 떡볶이·김밥·튀김·어묵꼬치·전을 운용하는 조리의 기술은? 나는 맛을 보았는가 아니면 자극을 받았는가 되돌아보면? 맛이 진공인 자극의 지속 가능성은? 파괴와 파멸의 쾌락을 환기하는 음식의 자리란, 있더라도 따로 있을 테다. 무엇보다 어떤 형편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럼에도 정답고 수더분한 음식의 가치만큼은 이어가고 있는가. 극에 달한 말에 반비례하는 서민대중 음식의 질을 돌아보면 다만 허무하다.

‘투하(投下)’도 못잖다. 설탕이나 소금 따위, 가루는 친다. 즙액 또한 친다. 또는 뿌린다. 송송 썬 파나 실파 따위는 국물에 넣는다. 장식이라면 올린다. 투하란 떨어뜨리거나 던져서 넣기니, 그 말에 이어지는 무게나 몸집이나 수고의 정도가 밥 짓고 상 차리는 부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끔찍한 표현이지만 ‘폭탄 투하’야말로 투하라는 명사의 쓰임을 잘 보여준다. 또는 ‘자본 투하’ 같은 용례가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한 한국어 사전의 선택이다. 투하라는 말은 그 머리 위에 ‘충격’이라는 효과를 어느 정도 이고 있는 말이다. 웃자고 한 번 쓴다면 모를까, 음식을 하면서 내내 쓸 말은 아니다.

내 동작이 조리와 음식의 어떤 과정, 무슨 효과, 어느 사물과 이어졌는지 섬세하게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치고, 뿌리고, 넣고, 올리는 동작, 그리고 거기 잇닿은 적절한 용언을, 체언 및 수식언까지 함께 고려해 운용하게 마련이다. 이윽고 설거지를 할 즈음에는 ‘설거지하다’ 단 하나로 게으르고 빈곤하게 말하지 않을 테다. 무언가 묻고, 붙고, 끼고, 물든 그릇을, 헹구고, 가시고, 부시어, 애벌설거지를 지나, 필요하면 두벌설거지도 거쳐 아퀴를 지을 줄 알 테다. 그 사람은 설거지를 둘러싼 바로 그 행위와 그 상태에 맞는 적확한 말로, 처음과 중간과 끝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세고, 급하고, 거칠고, 새되고, 극에 달한 끝에서는 기약하기 힘든 노릇이다. 상황이 말을 이끌기도 할 테고 말이 상황을 이끌기도 할 테다. 우선은 마음부터 평평하게 고르기로 새삼 다짐한다. 먹는 데 엮는 말 한마디가 엄중하기만 한 오늘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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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TV에 방영된 한 광고는 당시의 번화가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서 있는 ‘정신대’ 여성을 비춘다. 그러다 “역사는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브랜드의 로고가 등장하며 광고는 끝난다. 

비록 이 광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했지만, 고작 국산 운동화를 팔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은 지옥같은 경험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동원한 천박함은 나의 기억 속에 길이 남았다. 

내가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들에 냉담해진 것은 이런 기억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애국은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곳곳에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겠다는 악당들이 출몰해 웃기지도 않은 티셔츠를 팔거나, 인기를 얻으려 날뛰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데다, 국적이라는 것이 변경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누구나 쉽게 옷을 갈아입듯 국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와 나를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 것이 가능한 것도, 또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문제들은 일본과 전 정권들이 만들어 냈다. 더 깊이 기원을 따지자면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전후 냉전구도 속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원했던 미국의 압력이며,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길 원했던 독재정권의 협잡의 산물이다.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하고 힘과 돈의 흐름이 과거와 달라진 덕에 봉합되었던 문제가 마침내 파열음을 일으키며 튀어나왔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힘을 모으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 기준이 굴종이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와 대의명분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과열된 흐름과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지도층에서는 선언적이고 과격한 발언과 조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는 보수정당과 한국 극우들의 책동에는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 싸움에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지나치게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까지도 느낀다.

싸움을 안락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를 대비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들을 보면 모두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염두에 둔 것들뿐이다.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희생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벌과 국가의 책임을 시민들의 몫으로 돌리고, 개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정작 한국의 재벌과 고위층은 위기를 통해서도, 또 위기 극복을 통해서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부를 쌓았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이토록 낮은 것에는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 내내 국가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버림받았던 배신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파국은 공평하게 오지 않으며, 언제나 약자들의 삶을 먼저 집어삼킨다는 교훈을 한국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뼈아프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모든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격차가 발생한다. 이 격차가 불합리하고 클수록 그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해체된다. 격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모든 공동체가 맞이한, 그리고 어쩌면 그 공동체의 핵심을 결정하는 문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위기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부와 권력을 취할 생각에 들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이야말로 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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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20년을 한 단체에서 일하면서 여성 등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 온 사람. 2019년 8월8일. 그는 최선을 다했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그가 “위대한 활동가”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날, 조용하게 추모의 마음이 흐르던 온라인 공간에 고인의 생전 활동을 폄하하는 문장이 하나 올라왔다. 방송인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렬씨가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쓴 글이었다.

“사유가 본인 상인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윤정주 위원이 방통위원직에서 빠진 건 참 다행이다.” 이렇게 쓴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윤 위원은) 이재명 지지자다”라고 답했다.

이정렬씨는 2018년 8월 방송된 TBS TV <품격시대>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하하는 은어인 “찢묻었다”를 사용한 것으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민원이 제기되자 방송통신심위위원회에서는 징계를 결정한다. 이 심의회의에 윤정주 소장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다. 이씨가 윤 소장을 ‘이재명 지지자’라고 단언하고 비난한 이유다.

그런데 당시 방심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씨의 해석은 과도하다. 윤 소장은 민원이 제기된 “찢묻었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의 성기를 찢어서 묻는다는 말에서 나온 표현”으로 이런 단어가 공영방송에서 사용되면 안된다는 것.

여느 인터넷 용어와 마찬가지로 “찢묻었다”라는 말의 어원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다. 하지만 대체로 “이 지사와 그의 형 사이에 있었던 욕설 공방 중 이 지사가 “형수의 X지를 찢어 묻어버리겠다”는 욕설을 퍼부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문제의 용어는 이로부터 비롯된 별명이라고들 설명한다. 이후로 “찢=지지=더럽다”로 전유되었고, “찢묻었다=더러운 것이 묻었다=이재명 지지자다” 정도의 의미로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성적 폭언에 근간한 은어를 비판하는 것은 지금까지 윤 소장이 해 온 활동과 크게 어긋남이 없는 판단이다. 그의 심의위원 활동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여기에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여부는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윤 소장의 ‘편향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씨의 편협한 문해력이다. 궁찾사(혜경궁김씨를찾는사람들) 법률 대리인 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갈등을 빚어 온 그는 자신에 대한 방심위의 판단조차 진영 논리 안에서밖에 해석할 줄 몰랐던 셈이다.

이씨는 자신의 트윗이 문제가 되자 또다시 “윤 위원은 방심위원으로 일할 때 이재명 지사가 관련되어 있으면 편파적인 결정을 해 왔다”고 부연(혹은 변명)했다. 여전히 그 판단 근거는 밝히지 않은 상태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그러게 생전에 잘 살았어야지”라며 다시 또 윤 소장을 깎아내린다. ‘품격시대’는커녕, 저열한 말의 칼춤이 트위터를 타고 흐르는 중이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시간. 동료들과 유가족은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활동하던 공간들을 방문했다. “꼭 방심위에도 들려 달라”는 방심위 직원들의 부탁에 그곳 사무실과 회의실에도 들렀다. 그가 앉던 회의실 책상에는 추모의 꽃이 준비되어 있었다.

윤정주 소장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1600건에 달하는 심의 안건을 받아 3520회의 안건 심의 기록을 남겼고, 여성과 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스트 심의위원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해왔다. 덕분에 부당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런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방심위 내 양성평등관 역할을 수행했고, 직원들의 고충처리와 젠더문제 상담을 맡았으며,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썼다고 한다. 직원들이 꽃을 준비했던 마음을 알 것 같다.

품격이란 그런 것이다. 함부로 떠드는 입, 쉽게 놀리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존재의 품격을 결정한다.

윤정주 소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당신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세계입니다. 남기신 뜻은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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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큰 규모의 강연을 기획하면서 업체-작가 사이에서 한 달 넘게 서로의 일정과 내용을 조율한 일이 있다. 대학원생 조교 시절에 학회라든가 세미나라든가 하는 것들의 실무를 담당해 보기는 했지만 이러한 사회적 경험은 사실 처음이었다. 업체에서는 이런저런 요청을, 사실은 요구라고 할 만한 것을 계속해 왔다. 섭외한 작가들은 대개는 내가 알고 있거나, 글을 좋아하고 존경하거나, 이것을 핑계로 꼭 연락해 보고 싶었거나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해 차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 보려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었다.

불쾌감을 표시하며 빠지겠다고 선언한 작가도 있었다. 몹시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의 실수로 관계가 단절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한동안 아무 일을 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그였다고 해도 ‘이건 많이 무례한 일이잖아요’라는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 작가들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오히려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며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척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을 앞두고 강연 내용이나 일정이 변경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요청하는 여러 서류들도 자신의 시간을 내어 빠르게 보내주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특히 나와 나이가 비슷한 모 시인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기업과 일하는 무게에 시인과 일하는 무게를 함께 얹어 죄송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그가 쓰고 있는 시와 같았다. 덕분에 나는 그 문구를 붙잡고 당시의 짓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로 일주일쯤은 힘들 때마다 그 문자를 열어보았던 것 같다. 강연이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나에게 “괜찮아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에요”라거나 “요즘 강연을 줄여가고 있는데 오히려 좋은 소식이네요”라고 답한 작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기초로 타인의 처지를 사유할 줄 알았고,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내면서 타인의 삶을 보듬어 낼 줄을 알았다. 이것은 정말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다.

나에게도 강연을 요청하는 연락들이 종종 온다. 학교, 도서관, 여러 시설, 기업, 독서모임 등이다. 수십 명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담당자들과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이 요청하는 강사카드라든가 강의계획서라든가 강의자료라든가 하는 것들을 종종 빼먹곤 했다. 분명히 일정에 기록해 두기는 하는데 꼭 한두 개씩 잊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언제 답신을 주실 수 있을까요”하는 메일을 받고서야 “오늘까지 보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답하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요청한 것을 받지 못하면서도 ‘죄송’의 수사를 사용해야 하는 그 심정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처럼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은 그 처지가 되어보고서야 자신을 기초로 누군가를 상상해내게 된다. 항상 누군가에게 상처와 번거로움을 전하고서야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아 그저 죄송할 뿐이다.

며칠 전 모 주간지에서 원고를 요청하고는 3주 동안 3번에 걸쳐 지연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담당 기자께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오셔서, 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싶어서 “담당자만큼 마음 힘든 사람이 어디 있나요. 무게를 덜어드려야 하는데 원고라도 제때 보내겠습니다”하고 답신을 보냈다. 물론 그 시인의 문자를 표절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답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내가 더욱 사랑하게 된 몇몇 작가들은, 결국 자신의 글과 삶을 일치시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글을 닮은 언어와 행동을 타인에게 보낼 줄을 알았다. 아마 그들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잘살고 있는지 별로 자신이 없는 나는 글로써라도 나의 삶을 견인해 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글과 닮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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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다 못 먹겠으면 좀 덜어.” 상냥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어른 하나와 소년 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한 소년은 부리나케 밥을 덜었다. 밥을 던 소년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밥을 덜고 나니 마음의 짐도 덜어진 모양이었다. 다른 소년은 밥을 덜지 않았다. 묵묵하게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다. “다 먹었다!” 밥을 던 소년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밥을 덜지 않은 소년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 밥그릇을 보니 아직도 절반 넘게 밥이 남아 있었다. 분명 주문할 때는 허기졌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니 배고프지 않았다. 오늘 첫 끼니야, 더위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해, 김치가 맛있게 잘 익었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며 꾸역꾸역 먹었다. 옆 테이블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억지로 밥을 먹은 게 결국 탈이 났다. 오후의 일정을 소화하다가 여러 번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면 주어진 일을 소화하기 힘들다.

다음 날 친구와 함께 간 식당에서는 고봉밥이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른 밥을 덜어 친구에게 주었다. 먹성이 좋은 친구는 고맙다고, 이것밖에 안 먹어서 괜찮겠느냐고 잇따라 말했다. 요새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초록색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했다. 고깃점을 든 채 그 말을 하니 이상했지만, 기분 좋게 웃었다. 더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고 더는 게 필요할 때가 있음을 알았다. 친구는 배가 고프고 식욕이 왕성하다. 내가 던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덤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바깥에 나오니 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인권이 부른 ‘돌고, 돌고, 돌고’였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라는 가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돌고 돌고 돌고”가 흡사 “덜고 덜고 덜고”로 들렸기 때문이다. 웃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덜어주면, 동시에 우는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덜어내면 사이좋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좋을 것이다.

몸의 짐을 덜면 어깨가 가뿐해진다. 밥을 함께 먹은 친구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떠날 때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더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짐을 더는 만큼 시간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근사했다. 몸의 짐은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

마음의 짐을 덜면 걸음이 경쾌해진다.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이 없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코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필요가 없으니 느긋하게 기지개를 켤 수 있다. 원치 않은 일에 개입하게 되었을 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벅찬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하고는 싶지만 잘할 수는 없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그 마음으로 착수하는 일에 몸이 기민하게 반응할 리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덜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빽빽해서 빛살 한 점 들이치지 못했던 일상이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더는 일은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옥죄고 위협하고 지우려 하는 것들을 덜어내야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어 있는 상태여야 채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한테 절박한 것이, 꼭 필요한 것이.

먹은 것이 채 소화되지 않은 상태거나 특정 식재료를 소화할 수 없는 몸에는 값비싼 음식물조차 독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맡은 일을 소화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도 심신에 과부하를 일으킨다. 어떤 감정이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쾌히 만나고 무언가를 척척 만드는 일도 어렵다. 그때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더는 일이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에는 능동적으로 덜기 시작해야 한다. 일을, 계획을, 주변 사람들을.  

더는 일은 나를 응시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때로 도움을 주기까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셈이다. 담을 때가 아니라 덜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보인다. 기꺼이 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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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고 다 똑같은가? 예를 들어,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인들’을 싸잡아 조롱하면 은근히 짜증 나지 않을까? 나도 한국인이지만, 나는 그를 원하지 않았단 말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너무나 다양하다. 인종, 국적, 계급, 연령, 출신 지역, 이념, 취향 등등. 그중 한두 가지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쉽게 분류하고 판단하는 거, 당해보면 불쾌하다. 6개월간 유럽에 체류했을 때 다른 국적 청년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느꼈다. 말을 나누기 전에 한국인은 이럴 것이라고, 혹은 ‘20대 동양인 여성’은 이런 사람이라고 미리 정해놓은 태도로 대하며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녀석들과는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었다.

일본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당해서 기분 나쁜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는 모토를 지닌 이로서, ‘일본인’을 모두 싸잡아 혐오하고 배척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은 아니듯, 일본인 모두가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실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일본의 교수, 변호사, 언론인 등이 모여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를 거론하며 “한국과 대립하더라도 특별하고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하는 성명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결론은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는 행위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과거를 사죄하며 독립투사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던 하토야마 전 총리 또한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듭 “우애정신”을 강조했다.

이 밖에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세계를 견지해온 일본의 예술인들, 제국주의 폭력성과 닿아있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본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이번 경제제재로 인한 부담을 떠맡게 될 일본의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우리와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고, 손잡을 수 있는 이들. 이런 일본인들과의 민간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베 정부에 저항하는 일본 내 세력에 힘을 실어주며 일본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려되는 현상이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버젓이 ‘미개한 섬숭이’, ‘쪽바리’와 같은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이 전시되는 일이다. 일본인 여행객을 쫓아낸 숙박 업체와 식당의 사례도 들려온다. 한국에 호감 갖고 놀러 왔던 일본인들이, 없던 원한이 생겨 돌아가는 게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양국민이 서로를 적대하는 일은 오히려 지금의 일본 정권이 바라는 일 아닐까.

일부 국내 언론 역시 ‘창조 논란’으로 혐일을 부추긴다.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용한 트래픽 장사로 보인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일본 영화 7편 상영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자가 만들어내고 싶은 논란 아니었는지? 기자는 “날로 확산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일본 작품의) 상영을 아예 취소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금 같은 분위기에 항일투쟁의 본고장으로 의병의 도시인 제천에서 일본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썼지만 목소리가 얼마나 높은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고, 논리도 억지스럽다. 내용은 살피지 않고 특정 국적이라는 사실만으로 문화 교류의 장인 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 취소를 주장하다니, 문화적 퇴행이다.

성숙하고 자발적인 불매운동?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인 전체를 혐오하고 민간 교류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평가 역시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어쨌거나 그가 존경받을 만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말했다. “외교 하는 국민이 되십시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외교가 생명입니다. (…)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벗들이 많이 생기도록 전 국민이 외교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민족주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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