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TV에 방영된 한 광고는 당시의 번화가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서 있는 ‘정신대’ 여성을 비춘다. 그러다 “역사는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브랜드의 로고가 등장하며 광고는 끝난다. 

비록 이 광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했지만, 고작 국산 운동화를 팔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은 지옥같은 경험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동원한 천박함은 나의 기억 속에 길이 남았다. 

내가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들에 냉담해진 것은 이런 기억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애국은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곳곳에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겠다는 악당들이 출몰해 웃기지도 않은 티셔츠를 팔거나, 인기를 얻으려 날뛰고 있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데다, 국적이라는 것이 변경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누구나 쉽게 옷을 갈아입듯 국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와 나를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 것이 가능한 것도, 또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문제들은 일본과 전 정권들이 만들어 냈다. 더 깊이 기원을 따지자면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전후 냉전구도 속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원했던 미국의 압력이며,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길 원했던 독재정권의 협잡의 산물이다. 시간이 흘러 국제정세가 변하고 힘과 돈의 흐름이 과거와 달라진 덕에 봉합되었던 문제가 마침내 파열음을 일으키며 튀어나왔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힘을 모으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 기준이 굴종이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와 대의명분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과열된 흐름과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지도층에서는 선언적이고 과격한 발언과 조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나는 보수정당과 한국 극우들의 책동에는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 싸움에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지나치게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까지도 느낀다.

싸움을 안락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를 대비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들을 보면 모두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염두에 둔 것들뿐이다.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희생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벌과 국가의 책임을 시민들의 몫으로 돌리고, 개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정작 한국의 재벌과 고위층은 위기를 통해서도, 또 위기 극복을 통해서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부를 쌓았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이토록 낮은 것에는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 내내 국가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버림받았던 배신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파국은 공평하게 오지 않으며, 언제나 약자들의 삶을 먼저 집어삼킨다는 교훈을 한국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뼈아프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모든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격차가 발생한다. 이 격차가 불합리하고 클수록 그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해체된다. 격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모든 공동체가 맞이한, 그리고 어쩌면 그 공동체의 핵심을 결정하는 문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위기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부와 권력을 취할 생각에 들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이야말로 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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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20년을 한 단체에서 일하면서 여성 등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 온 사람. 2019년 8월8일. 그는 최선을 다했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그가 “위대한 활동가”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날, 조용하게 추모의 마음이 흐르던 온라인 공간에 고인의 생전 활동을 폄하하는 문장이 하나 올라왔다. 방송인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렬씨가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쓴 글이었다.

“사유가 본인 상인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윤정주 위원이 방통위원직에서 빠진 건 참 다행이다.” 이렇게 쓴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윤 위원은) 이재명 지지자다”라고 답했다.

이정렬씨는 2018년 8월 방송된 TBS TV <품격시대>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하하는 은어인 “찢묻었다”를 사용한 것으로 문제가 되었다. 이에 민원이 제기되자 방송통신심위위원회에서는 징계를 결정한다. 이 심의회의에 윤정주 소장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다. 이씨가 윤 소장을 ‘이재명 지지자’라고 단언하고 비난한 이유다.

그런데 당시 방심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씨의 해석은 과도하다. 윤 소장은 민원이 제기된 “찢묻었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의 성기를 찢어서 묻는다는 말에서 나온 표현”으로 이런 단어가 공영방송에서 사용되면 안된다는 것.

여느 인터넷 용어와 마찬가지로 “찢묻었다”라는 말의 어원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다. 하지만 대체로 “이 지사와 그의 형 사이에 있었던 욕설 공방 중 이 지사가 “형수의 X지를 찢어 묻어버리겠다”는 욕설을 퍼부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문제의 용어는 이로부터 비롯된 별명이라고들 설명한다. 이후로 “찢=지지=더럽다”로 전유되었고, “찢묻었다=더러운 것이 묻었다=이재명 지지자다” 정도의 의미로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성적 폭언에 근간한 은어를 비판하는 것은 지금까지 윤 소장이 해 온 활동과 크게 어긋남이 없는 판단이다. 그의 심의위원 활동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여기에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여부는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윤 소장의 ‘편향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씨의 편협한 문해력이다. 궁찾사(혜경궁김씨를찾는사람들) 법률 대리인 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갈등을 빚어 온 그는 자신에 대한 방심위의 판단조차 진영 논리 안에서밖에 해석할 줄 몰랐던 셈이다.

이씨는 자신의 트윗이 문제가 되자 또다시 “윤 위원은 방심위원으로 일할 때 이재명 지사가 관련되어 있으면 편파적인 결정을 해 왔다”고 부연(혹은 변명)했다. 여전히 그 판단 근거는 밝히지 않은 상태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그러게 생전에 잘 살았어야지”라며 다시 또 윤 소장을 깎아내린다. ‘품격시대’는커녕, 저열한 말의 칼춤이 트위터를 타고 흐르는 중이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시간. 동료들과 유가족은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활동하던 공간들을 방문했다. “꼭 방심위에도 들려 달라”는 방심위 직원들의 부탁에 그곳 사무실과 회의실에도 들렀다. 그가 앉던 회의실 책상에는 추모의 꽃이 준비되어 있었다.

윤정주 소장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1600건에 달하는 심의 안건을 받아 3520회의 안건 심의 기록을 남겼고, 여성과 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스트 심의위원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해왔다. 덕분에 부당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런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방심위 내 양성평등관 역할을 수행했고, 직원들의 고충처리와 젠더문제 상담을 맡았으며,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썼다고 한다. 직원들이 꽃을 준비했던 마음을 알 것 같다.

품격이란 그런 것이다. 함부로 떠드는 입, 쉽게 놀리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존재의 품격을 결정한다.

윤정주 소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당신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세계입니다. 남기신 뜻은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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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큰 규모의 강연을 기획하면서 업체-작가 사이에서 한 달 넘게 서로의 일정과 내용을 조율한 일이 있다. 대학원생 조교 시절에 학회라든가 세미나라든가 하는 것들의 실무를 담당해 보기는 했지만 이러한 사회적 경험은 사실 처음이었다. 업체에서는 이런저런 요청을, 사실은 요구라고 할 만한 것을 계속해 왔다. 섭외한 작가들은 대개는 내가 알고 있거나, 글을 좋아하고 존경하거나, 이것을 핑계로 꼭 연락해 보고 싶었거나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해 차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 보려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었다.

불쾌감을 표시하며 빠지겠다고 선언한 작가도 있었다. 몹시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의 실수로 관계가 단절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한동안 아무 일을 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그였다고 해도 ‘이건 많이 무례한 일이잖아요’라는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 작가들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오히려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며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척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을 앞두고 강연 내용이나 일정이 변경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요청하는 여러 서류들도 자신의 시간을 내어 빠르게 보내주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특히 나와 나이가 비슷한 모 시인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기업과 일하는 무게에 시인과 일하는 무게를 함께 얹어 죄송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그가 쓰고 있는 시와 같았다. 덕분에 나는 그 문구를 붙잡고 당시의 짓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로 일주일쯤은 힘들 때마다 그 문자를 열어보았던 것 같다. 강연이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나에게 “괜찮아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에요”라거나 “요즘 강연을 줄여가고 있는데 오히려 좋은 소식이네요”라고 답한 작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기초로 타인의 처지를 사유할 줄 알았고,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내면서 타인의 삶을 보듬어 낼 줄을 알았다. 이것은 정말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다.

나에게도 강연을 요청하는 연락들이 종종 온다. 학교, 도서관, 여러 시설, 기업, 독서모임 등이다. 수십 명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담당자들과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이 요청하는 강사카드라든가 강의계획서라든가 강의자료라든가 하는 것들을 종종 빼먹곤 했다. 분명히 일정에 기록해 두기는 하는데 꼭 한두 개씩 잊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언제 답신을 주실 수 있을까요”하는 메일을 받고서야 “오늘까지 보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답하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요청한 것을 받지 못하면서도 ‘죄송’의 수사를 사용해야 하는 그 심정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처럼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은 그 처지가 되어보고서야 자신을 기초로 누군가를 상상해내게 된다. 항상 누군가에게 상처와 번거로움을 전하고서야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아 그저 죄송할 뿐이다.

며칠 전 모 주간지에서 원고를 요청하고는 3주 동안 3번에 걸쳐 지연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담당 기자께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오셔서, 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싶어서 “담당자만큼 마음 힘든 사람이 어디 있나요. 무게를 덜어드려야 하는데 원고라도 제때 보내겠습니다”하고 답신을 보냈다. 물론 그 시인의 문자를 표절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답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내가 더욱 사랑하게 된 몇몇 작가들은, 결국 자신의 글과 삶을 일치시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글을 닮은 언어와 행동을 타인에게 보낼 줄을 알았다. 아마 그들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잘살고 있는지 별로 자신이 없는 나는 글로써라도 나의 삶을 견인해 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글과 닮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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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다 못 먹겠으면 좀 덜어.” 상냥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어른 하나와 소년 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한 소년은 부리나케 밥을 덜었다. 밥을 던 소년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밥을 덜고 나니 마음의 짐도 덜어진 모양이었다. 다른 소년은 밥을 덜지 않았다. 묵묵하게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다. “다 먹었다!” 밥을 던 소년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밥을 덜지 않은 소년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 밥그릇을 보니 아직도 절반 넘게 밥이 남아 있었다. 분명 주문할 때는 허기졌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니 배고프지 않았다. 오늘 첫 끼니야, 더위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해, 김치가 맛있게 잘 익었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며 꾸역꾸역 먹었다. 옆 테이블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억지로 밥을 먹은 게 결국 탈이 났다. 오후의 일정을 소화하다가 여러 번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면 주어진 일을 소화하기 힘들다.

다음 날 친구와 함께 간 식당에서는 고봉밥이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른 밥을 덜어 친구에게 주었다. 먹성이 좋은 친구는 고맙다고, 이것밖에 안 먹어서 괜찮겠느냐고 잇따라 말했다. 요새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초록색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했다. 고깃점을 든 채 그 말을 하니 이상했지만, 기분 좋게 웃었다. 더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고 더는 게 필요할 때가 있음을 알았다. 친구는 배가 고프고 식욕이 왕성하다. 내가 던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덤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바깥에 나오니 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인권이 부른 ‘돌고, 돌고, 돌고’였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라는 가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돌고 돌고 돌고”가 흡사 “덜고 덜고 덜고”로 들렸기 때문이다. 웃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덜어주면, 동시에 우는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덜어내면 사이좋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좋을 것이다.

몸의 짐을 덜면 어깨가 가뿐해진다. 밥을 함께 먹은 친구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떠날 때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더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짐을 더는 만큼 시간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근사했다. 몸의 짐은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

마음의 짐을 덜면 걸음이 경쾌해진다.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이 없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코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필요가 없으니 느긋하게 기지개를 켤 수 있다. 원치 않은 일에 개입하게 되었을 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벅찬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하고는 싶지만 잘할 수는 없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그 마음으로 착수하는 일에 몸이 기민하게 반응할 리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덜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빽빽해서 빛살 한 점 들이치지 못했던 일상이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더는 일은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옥죄고 위협하고 지우려 하는 것들을 덜어내야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어 있는 상태여야 채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한테 절박한 것이, 꼭 필요한 것이.

먹은 것이 채 소화되지 않은 상태거나 특정 식재료를 소화할 수 없는 몸에는 값비싼 음식물조차 독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맡은 일을 소화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도 심신에 과부하를 일으킨다. 어떤 감정이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쾌히 만나고 무언가를 척척 만드는 일도 어렵다. 그때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더는 일이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에는 능동적으로 덜기 시작해야 한다. 일을, 계획을, 주변 사람들을.  

더는 일은 나를 응시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때로 도움을 주기까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셈이다. 담을 때가 아니라 덜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보인다. 기꺼이 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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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고 다 똑같은가? 예를 들어,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인들’을 싸잡아 조롱하면 은근히 짜증 나지 않을까? 나도 한국인이지만, 나는 그를 원하지 않았단 말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너무나 다양하다. 인종, 국적, 계급, 연령, 출신 지역, 이념, 취향 등등. 그중 한두 가지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쉽게 분류하고 판단하는 거, 당해보면 불쾌하다. 6개월간 유럽에 체류했을 때 다른 국적 청년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느꼈다. 말을 나누기 전에 한국인은 이럴 것이라고, 혹은 ‘20대 동양인 여성’은 이런 사람이라고 미리 정해놓은 태도로 대하며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녀석들과는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었다.

일본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당해서 기분 나쁜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는 모토를 지닌 이로서, ‘일본인’을 모두 싸잡아 혐오하고 배척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은 아니듯, 일본인 모두가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실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일본의 교수, 변호사, 언론인 등이 모여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를 거론하며 “한국과 대립하더라도 특별하고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하는 성명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결론은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는 행위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과거를 사죄하며 독립투사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던 하토야마 전 총리 또한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듭 “우애정신”을 강조했다.

이 밖에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세계를 견지해온 일본의 예술인들, 제국주의 폭력성과 닿아있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본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이번 경제제재로 인한 부담을 떠맡게 될 일본의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우리와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고, 손잡을 수 있는 이들. 이런 일본인들과의 민간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베 정부에 저항하는 일본 내 세력에 힘을 실어주며 일본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려되는 현상이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버젓이 ‘미개한 섬숭이’, ‘쪽바리’와 같은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이 전시되는 일이다. 일본인 여행객을 쫓아낸 숙박 업체와 식당의 사례도 들려온다. 한국에 호감 갖고 놀러 왔던 일본인들이, 없던 원한이 생겨 돌아가는 게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양국민이 서로를 적대하는 일은 오히려 지금의 일본 정권이 바라는 일 아닐까.

일부 국내 언론 역시 ‘창조 논란’으로 혐일을 부추긴다.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용한 트래픽 장사로 보인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일본 영화 7편 상영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자가 만들어내고 싶은 논란 아니었는지? 기자는 “날로 확산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일본 작품의) 상영을 아예 취소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금 같은 분위기에 항일투쟁의 본고장으로 의병의 도시인 제천에서 일본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썼지만 목소리가 얼마나 높은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고, 논리도 억지스럽다. 내용은 살피지 않고 특정 국적이라는 사실만으로 문화 교류의 장인 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 취소를 주장하다니, 문화적 퇴행이다.

성숙하고 자발적인 불매운동?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인 전체를 혐오하고 민간 교류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평가 역시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어쨌거나 그가 존경받을 만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말했다. “외교 하는 국민이 되십시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외교가 생명입니다. (…)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벗들이 많이 생기도록 전 국민이 외교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민족주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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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가 말하길,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뉜댔다.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이건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한 기준이며 그 나머지에겐 모두 아차상을 주겠노라고 그는 썼다.  

나의 학생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을 종종 본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챌 수 있다. 어떤 얘기를 하려다 말 때. 말 못할 이유로 당장의 솔직함을 포기할 때. 남 탓만 할 수 없을 때. 가장 원망스러운 건 자기 자신일 때. 아이들은 복잡한 마음으로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고친다. 그렇게 쓴 것들은 아주 조금 노인의 문장처럼 보인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글을 완성해놓고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 원고지에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그저 다음주에 쓴 이야기는 내게 보여주고 싶어지기를, 안심해도 되는 독자로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애쓸 뿐이다. 10대들 앞에 글쓰기 교사로 서는 건 마음 놓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연습 같다. 아이들이 비밀과 죄책감을 쌓으며 어른이 되어갈 때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 중 하나일 수 있도록 말이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여느 소년들처럼 그 책 속의 소년도 슬픔과 그리움을 겪으며 자라난다. 그는 엄마가 아빠와 싸운 뒤 만드는 카레의 맛을 안다. 그 카레는 맛이 없다. 미움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소년은 생각한다. 또한 소년은 죽음이 두렵다. 엄마와 아빠가 죽을까봐, 누나들이 죽을까봐, 자기가 죽을까봐 두렵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막 눈물이 난다. 소년은 울면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을 하는 노래도 있다. 뮤지션 신승은이 쓰고 부른 ‘쇳덩이’라는 노래다. 노래는 부모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나 같은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거냐고. 아이가 이런 세상에 왜 나를 태어나게 했냐고 물었다면, 어른은 이런 나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고 묻는다. 쇳덩이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 적어본다.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아/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쇳덩이가/ 왜 나의 가슴팍 위에 자리 잡고 있는지/ 숨을 왜 잘 못 쉬고 있니/ 네가 물었고/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쇳덩이가/ 왜 너의 가슴팍 위에도 자리 잡고 있는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서로가 들어줄 수 없는 딱 그 모양의 쇳덩이/ 왜 태어난 건지 모르겠어/ 엄마 아빤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도대체 왜 낳은 건지/ 어쩌면 거기서부터 난 잘못되어 있는 건지/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포옹을 할 때마다 귀를 닫고서 했었지/ 사랑을 잘해보고 싶어/ 깨끗하고 행복한 사랑/ 애초에 내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가 나서서 말해준다면/ 오늘부로 깨끗이 포기할 텐데/ 너의 뒤통수를 만지는 일도/ 함께 아침을 차려 먹는 일도/ 논쟁을 하다 와락 껴안는 일도/ 어쩌면 나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 속의 상상 속의/ 행복이었다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꼭 해보고 싶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이 노래가 흘러나와 나는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건넜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포옹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가슴팍 위 쇳덩이를 솔직히 말해보려던 참에 상대방의 가슴팍 위 쇳덩이도 보여 입을 다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감각 같았다. 내 것 아닌 쇳덩이의 색깔과 모양과 무게도 곧바로 알아보는 안목. 서로 들어줄 수 없음을 알고 귀를 닫은 채 하는 포옹. 

이 가사는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일까.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일까. 아니라면 노인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일까. 잘 모르겠다.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이 아니라는 것만 알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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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해마다 이때면 특정 주제에 따른 ‘원고 청탁’이 돌아온다. 엉겁결에 받은 전화, 대뜸 ‘복날 먹는 거’로 써 달라는 말이 건너왔다. 그 ‘먹는 거’ 가운데 ‘민어’는 이미 정한 바였다. ‘이열치열’로 기둥 세우고, ‘반가 음식’에 ‘복달임’으로 벽 치고 지붕 인다는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갸우뚱하다 답했다. “복달임의 핵심은 지역과 공동체의 휴식,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땡볕 피하기예요. 지혜는 그런 데 있어요. 오로지 먹는 소리면 복달임의 참모습을 말할 틈이 없죠. 휴일의 휴식에 별미 있으면 더 좋겠죠. 삼복 중의 식재료와 음식이 다 복달임이 됩니다. 민물잡어가 그중 만만했고, 잘 익은 과일, 과채가 오히려 청신합니다. 있는 대로 수박, 참외 나누어 먹고 버무리나 개떡쯤이 휴식의 별미로 넉넉했어요.”

말 나온 김에 민어 이야기나 좀 하겠다. ‘민어(民魚)’는 예전에 많이 잡힐 때에는 보통 사람들이 반찬거리에서 제수에 이르기까지 두루 쓴 어물이다. 민농엇과, 대구과, 민어과 물고기를 두루 이르는 한자 이름을 쓰기도 했다. 정약전(1758~1816)은 &lt;자산어보&gt;의 민어 항목에서 부세를 민어의 아종으로 여겼다. 예전에는 지역에 따라 민어뿐 아니라 민어를 닮은 살점 넉넉한 흰살 생선을 두루 민어라 했을지 모른다. 일본 문헌에서도 실물과 어휘를 둘러싸고 조선과 비슷한 뒤섞임이 확인된다. 한편 &lt;난호어목지&gt;는 민어의 다양한 쓰임과 인기를 기록하면서 “무릇 바닷물고기로서 수요가 큰 것 가운데 이 물고기처럼 요긴한 것이 없다”고 했다. 다 떠나서, 민어는 맛이 좋다.

뼈는 끓이면 끓일수록 짙고 깊고 풍미 그윽한 곰국을 낸다. 기름질(oily) 뿐 아니라 개운한 지방질의 풍미는, 영어를 빌리면, 잘 익은 버터처럼 녹진하다(buttery). 여기에 넉넉한 살점까지 어울린 민어탕은 과연 진미이다. 횟감으로 빠지겠는가. 결을 살린 숙수의 칼질이 연출한 민어회는 씹을수록 기분 좋은 촉감이 잇새를 간질인다. 간질이면서 고소함을 뿜는다. 수분을 적절히 제어하면? 잘 말린 약대구의 예도 있지만, 해풍과 일광에 마른 민어의 감칠맛은 그야말로 폭렬하는 순간이 있다. 찌면 찐 대로 바닷내와 손잡은 달큰함이 배가된다. 구우면 소금이 밀어내고 증폭한 ‘buttery’한 풍미가 감칠맛과 손잡고 거침없이 먹는 이의 미각에 육박한다. 규모 있게 뜬 포에 달걀옷을 입혀 지진 민어 전유어를 보고 있으면, 음식이 이렇게 얌전하고 어여쁠 수가 있구나 싶다. 부레를 포함한 내장은 내장대로 회에 탕에, 또 데쳐 두루 먹었다. 알집으로는 알젓과 어란으로 변신했다. 굴비처럼도 가공하고, 북어처럼도 가공했다.

민어는 여름에만 맛있는 어물이 아니라, ‘여름에도’ 맛난 어물이었다. ‘복달임에도’ 좋았다. 누구에게나 고마운 어물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먹방을 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민어를 두고 복날 먹지 못하면 안될 것처럼 굴었다. 2000년대는 호들갑 고착의 시기이다. 1960년대 이후 보편화한 복달임 음식인 삼계탕과 구별되는 새 기삿거리, 새 방송용으로 요긴했던 것일까. 대중매체는 자연 조건이 바뀌면서 덜 잡히고, 가공의 다양성도 떨어지면서 값이 오른 민어에 ‘고급’ ‘반가 음식’을 뒤집어씌웠다. 그뿐이었다. 앞서 말한 민어의 미덕은 몸집 큰 흰살 생선에 대체로 깃들어 있다. 농어·대구·보구치·수조기·참조기·부세가 어디 빠지는 자원인가. 크면 큰 대로 깊은 맛이 있고, 상대적으로 작으면 염장하거나 건조하거나 반건조해 다시 맛을 들여 유통해 먹었다. 오늘날에는 그래도 서남해 산지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 내력과 가공과 조리와 관능의 세부 그리고 덜 잡히면서 잠깐 잠복한 민어의 가능성은 먹방이 궁금해하는 바는 아닐 테다. 한여름 보통사람의 휴식은? 병어·붕장어·뱀장어·전복·자두·복숭아·보리·밀·옥수수·토마토·감자·고추·호박·가지·오이·연·칡에 이르는 이 철의 먹을거리와 그 음식 문화는? 또한 먹방용 화제는 아닐 테다. 먹방이 궁금해하지 않는 바, 굳이 써 보인다. 복날 앞두고 받은 원고 청탁은 정중히 사양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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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봄밤>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종영했다. 약사이자 싱글대디인 유지호(정해인 분)와 도서관 사서에 다른 남자와 교제 중이던 이정인(한지민 분)이 만나 사랑을 이뤄가는 이 드라마는 현실 연애를 느끼게 해주는 디테일한 전개로 호평을 받았다. 나는 이 드라마를 매회 본방으로 꼬박꼬박 시청했는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요즘은 기다리기가 싫어 중간부터 따라잡아 막판에 본방을 시청하거나 다 끝난 뒤 몰아보는 게 흔한데 이 드라마는 한 주를 기다리는 게 훨씬 더 좋은 느낌이었다. 그건 <봄밤>의 주인공들이 현실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숙고의 시간을 함께하며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의미 있었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봄밤>의 소재는 자극적이면서 진부하다. 아이 있는 남자가 혼담이 오가는 여자와 눈이 맞아 주변의 만류에도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는 어느 주말 드라마에서 본 것 같다. 하지만 제작진은 두 주인공을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선봉에 세움으로써 우리 예상과는 다른 싸움을 보여준다.

배우 정해인과 한지민이 출연한 MBC 드라마 '봄밤'의 한 장면. JS픽쳐스 제공

이정인은 자식이 아이 있는 자리로 시집가는 것을 봐야 하는 애끓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용서를 비는 것으로 어려움을 돌파해나가지 않는다. 그가 유지호를 선택하는 건 단지 그를 원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해명이 꼭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자칫 성급한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 상처받기 쉬울 유지호의 마음에 집중한다. 동시에 마음을 확인한 만큼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유지호는 아이만 남겨두고 떠난 옆자리를 누군가로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가 연애에 나서는 것은 단지 이정인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은 세심하게 서로의 감정과 입장을 헤아리는 것으로 어려움을 돌파한다. 둘 다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생각을 섣부르게 먹지 않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시청자 역시 긴 고민 끝에 나올 그들의 행동을 긴 호흡으로 기다린다.

반면 정인이 교제하던 기석(김준한 분)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알겠다, 또는 알아’란 말이다. 부잣집에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그는 정인의 생각을 단정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숙고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당연하게’ 진행될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경로를 이탈하려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정인의 언니 부부는 기석과 정인이 함께할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아버지가 목매는 눈에 보이는 조건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다.

이·유 커플은 한국 사회의 복잡한 인간관계망 안에서 감정의 싹을 틔운다. 기석은 유지호의 대학 선배고 지호 친구의 직장 상사다. 정인의 아버지는 기석 아버지(김창완 분)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장을 맡고 있다. 정인의 형부는 기석의 선배다. 불편한 시선들과 압력이 둘의 관계를 시험한다. 가시덤불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온몸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부모 말 들을걸 그랬어’라는 진부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유려한 탈출이 필요하다.

이정인과 유지호가 인상적으로 보여준 건 서로에 대한 대단한 집중이다. 가부장제는 선택을 부모(아버지), 조건에 의지한다. 그렇게 ‘정해진’ 위치만 찾고 정작 깊이 숙고하지 못하면서 패착이 쌓인다. 가부장제의 정점에 있는 기석의 아버지가 조건에 안 맞다며 만남을 꺼렸던 정인을 보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가진 한계를 스스로 폭로하는 순간이다. 강변에 처량하게 앉은 그는 아마 떠난 아내를 떠올리며 균형감각을 상실해온 자신을 자책했을지 모른다. 

주인공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없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한다. 그리고 끝내 다치지 않고 빠져나오는 과정은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방식이 아니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가 상견례까지 해놓고 결혼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막을 내린다는 거다. 그건 결혼을 복원하되 그것이 우리가 추구할 ‘유일한’ 가족 형태는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봄밤>은 어떤 모습이건 주인공들처럼 개인이 개인에게 집중하며 얻은 결론은 모두 소중하며 정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닐까?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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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이 있다. 칼럼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고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서만 세상사와 그에 대한 의견을 접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저널리즘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가 저 직함을 걸고 으스댄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럼니스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시대가 변한 것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불현듯 칼럼 쓰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09년부터 칼럼을 썼고, 칼럼집만 두 권을 냈다. 근 10여년을 해온 일인데 언제까지 이럴 셈인가라고 고민하다보니, 최근 꽤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칼럼이 쉬운 글은 아니다. 칼럼이라는 글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제약은 분량과 마감일이다. 칼럼의 분량은 많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어떤 것을 넣고 어떤 것을 빼야 하는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조사를 바꾸고, 몇 편의 글이 필요한 이야기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축약할 것인지를 두고 골몰해야 한다.           

게다가 칼럼을 쓰는 날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성이 없는 이야기라면 상관없겠지만, 산재하는 이슈들 중 어떤 것을 골라서 이야기할지도 매번 결정해야 한다. 퇴고를 마치고 마침내 원고를 보내는 새벽이 오면 잠시 해방감에 젖었다가, 나중에 신문에 실린 글을 보며 후회와 반성을 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사이클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주나 월 단위로 반복된다. 

하지만 새로운 어려움들은 이런 통상적인 어려움과는 결을 달리한다. 칼럼은 기사가 아니지만 저널리즘의 일부이고, 거짓된 사실이나 과장이 있어선 안된다는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한다. 그런데 이 팩트 체크가 요즘 고역이다. 칼럼리스트는 기자가 아니므로 대체로 팩트 체크는 언론들의 보도에 의존한다. 그런데 같은 사건에 대해 언론사마다 이야기가 다른 것은 예사이고, A라고 보도되었던 내용이 알고 보니 B라는 식의 일들도 걸핏하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여러 언론사의 기사들을 복수로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기사의 원출처가 되는 자료들까지 뒤져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잘못된 사실들이 칼럼에 섞여 들어가는 일이 생기고야만다. 

게다가 요즘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칼럼니스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수많은 SNS들에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생긴 일들에 대해 전문지식이 담긴 글들을 생산해낸다. 굳이 전문지식이 아니더라도 경청할 만한 좋은 관점과 의견들이 ‘좋아요’와 ‘공유’를 타고 돌아다닌다. 글이 싫다면 유튜브에 가보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기 이름을 건 채널을 개설해놓고 쉬지 않고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러니 굳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 주제에 대해 쓴 칼럼을 봐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좋은 칼럼을 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재치로 웃게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또 칼럼이 언론의 지면에 실리는 이상 그것은 공적인 말로써 기능한다. 때로는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곧 사라질 과거는 아닌가 고민하다가도, 내 글이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글일지 모른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다. 10년이나 계속 기용을 해주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속편한 생각도 없지는 않다.

칼럼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마지막 문단이다. 뻔한 교훈적인 말이나, 의미 없는 선언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뻔한 선언과 의미 없는 교훈으로 끝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주어진 지면이 다 채워진 관계로 이만 줄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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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쏟아지는 조명과 광활한 축구장을 가득 채운 함성. 뜨거운 공기 속을 유영하는 카메라는 출전을 앞두고 있는 선수들을 비추고, 그들 사이로 잔뜩 긴장한 플레이어 에스코트의 얼굴이 보인다. 경기장까지 선수를 배웅한 에스코트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 한다. 그때, 그의 손을 끌어당기며 11번 선수가 말한다. “아직 안 끝났어.” 이때부터 한 소녀의 FIFA 월드컵 모험이 시작된다. 

지난 7월8일 폐막한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기념해 나이키가 내놓은 광고 ‘그 이상을 꿈꿔라(Dream Further)’의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한 10대 축구선수 마케나 쿡은 구릿빛 피부를 빛내며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에스코트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광고는 축구 꿈나무가 이름 있는 선수들, 그리고 심판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쿡의 짧은 환상이었던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지금 그라운드를 뛰는 선배의 모습이 이후 후배의 커리어를 견인하는 힘이 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광고의 끝에 쿡은 자신이 에스코트하는 선수에게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묻는다. “준비 됐죠?”

“너 자신이 되어라”거나 “당신의 가능성을 믿는다”라던 나이키는 이제 세대를 이어가며 쌓이는 여자들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이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이키는 성차별적인 스폰서 정책과 고용차별로 문제가 되고 있다. 

2019년 5월, 미국 육상 선수인 앨리손 펠릭스를 비롯한 3명의 선수는 임신 때문에 나이키로부터 계약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밝혔다. 펠릭스는 이렇게 말한다. “임신은 프로 선수의 경력 중 일부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이를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꾼다.” 출산 후 경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후원금을 삭감하는 것은 편견에 따른 차별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나이키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고발자들에 따르면 나이키는 동일임금법을 위반하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 가해자를 승진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의 관리를 받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여성의 지위와 평등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나이키의 광고 메시지와는 사뭇 다른 결정들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나이키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제적 성별분업에 기대고 있는 기업이다.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는 나이키가 여성이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된 나라를 아웃소싱 국가로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나이키는 여성의 입지가 취약한 나라에 스웨트숍(SWEATSHOP·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면서 노동하는 작업장)을 세우고 이를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인로에 따르면 과거 한국에 나이키 스웨트숍이 들어섰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군부독재가 노동조합을 억압하는 데 열심이었고, 둘째 “열심히 일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여성의 도덕’으로 여겨지는 문화 덕분에 여성 노동자를 쉽게 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런 착취 산업은 상황이 더 안 좋은 나라들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후였다. 이런 이동이 일어나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은 나이키가 친여성적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아시아 지역 스웨트숍에 대한 비판이 나이키의 이미지를 잠식하는 시점이었던 셈이다.

나이키 페미니즘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고의 상상력은 여성뿐만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가능성을 해방시키고 그 운신의 폭을 넓힐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삶은 뭉개면서 그의 지갑만을 찬양할 때, 여성은 ‘부당한 대우와 착취-시발비용 탕진-부당한 대우와 착취’ 같은 악순환의 고리에 갇힐지도 모른다. 물론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 값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스웨트숍 노동자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우리가 소비자로서뿐만 아니라 노동자로서 말하고 움직일 때에야 비로소, 나이키 페미니즘을 발판으로 현실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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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일부터 5일까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사실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정규직, 그중에서도 전문직이 되기를 기대하며 공교육의 현장에 보내지만, 아이들은 비정규직이 지키는 학교 정문을 지나, 그들에게 수업을 듣고, 그들이 만든 밥을 먹고, 다시 4대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보습학원의 강사들을 만나러 간다. 

역설적으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다시 대학원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정규직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진다. 아무리 간편한 노동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지만 학교가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내가 속한 단톡방에서도 그렇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아이들을 볼모로 파업하는 일은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일’이어서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학부모들의 걱정이 컸다.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데 대한 번거로움과 아이들이 빵이나 라면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급식 대란’이라는 단어와 함께 분노의 감정으로도 확산되었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는 6살 아이가 있어서, 당사자라기보다는 적당히 어중간한 자리에서 이 일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몇 년 뒤 아이에게 무엇이라고 말해 주면 좋을지를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볼모’라는 표현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만큼 아이들에게 사람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다. 네가 오늘 한 끼를 굶는 이유는 너의 밥을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해 주고는, 도시락이나 빵이나 김밥 같은 것이나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면 된다. 그러한 간편식을 몇 끼 먹는다고 몸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도 자라나서 노동자가 된다. 누구라도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전문직이거나 정규직이 될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은 평범한 노동자가 되어 저마다의 노동의 공간에 존재하게 될 텐데, 그 평범이라는 것의 기준은 그때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다. 그들은 사람뿐 아니라 기계나 인공지능과도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아프지도 않고, 잠을 잘 필요도 없고, 의료보험이나 퇴직금이 필요하지도 않은, 그러한 존재들이다. 여기에서 승리해 정규직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노동하지 못하고 기계가 생산한 부를 기본소득의 형태로 나누는 최초의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처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그들의 노동이 외로워지거나 슬퍼지지 않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개선하는 일이다.

그에 더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것은 그들을 돌보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일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그들의 어깨에 지우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박탈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 그런 폭력의 언어는 스스로의 논리적 감정적 빈곤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의 노동 역시 또 무언가의 무게에 짓눌려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우리에게 ‘나는 어떠한 노동자로/부모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표를 가지게 해 준다. 이 파업을 대란으로만 여길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사람과 노동의 소중함이라는 감각을 일깨워 주는 교육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하는 선택이 모든 부모들에게 남는다. 

혼자 잘 먹는 한 끼보다도 함께 굶는 한 끼가 아이가 올바른 개인으로 자라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 굶음에 아이와 함께 동참하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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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귀하의 노력에 힘입어…”로 시작되는 메일이었다. 의례적으로 보내는 것이었겠지만, 다 읽고 나니 유독 한 단어가 입에 남았다. 바로 ‘힘입다’였다. 활자로는 간간이 접했지만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단어였다. 힘 있는 상태일 때는 굳이 다른 힘이 필요치 않다. 내 기세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반면, 힘없는 상태일 때는 힘이 나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빌리거나 합칠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아마도 ‘힘입다’의 첫 번째 뜻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다. “어떤 힘의 도움을 받다.” 간절하게 부탁할 때의 마음은 아마도 이와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 때 힘을 보탠 사람도 힘을 입은 사람도 행복할 것이다. 직접적인 도움과 맞닿아 있는 첫 번째 뜻은 주로 긴박한 상황과 함께 쓰인다. 수해 지역에 성금을 보내고 복구 현장에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할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은 힘입는다.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가시적인 힘이다.

현장성이 두드러지고 전후의 상황 변화가 확연한 첫 번째 뜻과 달리, ‘힘입다’의 두 번째 뜻은 육안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어떤 행동이나 말 따위에 용기를 얻다”라는 의미처럼, 힘을 입었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이 힘이 되는지조차 현장에서 가늠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해나 응원이 그렇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삶의 다음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힘은 다시 살아야 할 마음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는 힘이다.

‘힘입다’의 세 번째 뜻은 “어떤 것의 영향을 받다”다. 행사에 가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 주로 사회자가 그 역할을 맡곤 하는데, 사회자의 역량에 따라 주인공의 매력이 한껏 발산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자가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중한다면, 주인공이 힘입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보색 대비처럼 말이다. 보색을 서로 섞으면 무채색이 되지만, 하나를 배경으로 다른 색이 놓이면 더 뚜렷이 보인다. 빨간색과 청록색, 남색과 노란색, 녹색과 주황색처럼 말이다. 이는 누군가를 힘입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힘을 내려놓아야 함을 뜻한다. 북돋우는 힘이다.

그날 밤,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일에 ‘힘입다’라는 단어를 썼다. 고마움을 전하려 쓰기 시작한 메일이었는데, 저 단어를 사용하니 그 사람이 내게 써준 마음이 좀 더 선명해졌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많은 존재들에게 힘입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님의 지원에 힘입어 나는 부족함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동료들의 격려에 힘입어 이때껏 글을 쓸 수 있었다.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몇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지인들의 도움에 힘입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신문사에서 내게 내어준 지면에 힘입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다음날 아침,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택배 왔습니다.” 주문한 책들이 온 모양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4층 건물의 4층이다. 승강기도 없고 계단도 제법 가파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기사님의 이마에는 아침부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번번이 고맙습니다. 주스 한 잔 드시고 가세요.” 갈증이 심했는지 기사님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환히 웃는 모습을 보고 힘입는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미소에 힘입어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입는 것처럼, 나는 매일 힘입는다. 철에 맞는 옷이 따로 있는 것처럼, 사는 데는 알록달록한 힘이 필요하다. 꼭 커다랗지 않아도 된다. 자잘해도,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아도 그 힘은 공기처럼 나를 감싼다. ‘힙입다’라고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무엇보다 힘을 옷처럼 입을 수 있다니, 꼭 슈퍼맨이나 배트맨의 슈트처럼 근사하지 않은가.

자주 입고 자주 입히고 싶은 말이다, 힘입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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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관심 종자)’이세요?” 누가 대뜸 당신에게 묻는다고 상상해보자. 기분이 어떨지. 많은 경우, 모욕받았다고 생각하며 얼굴 붉히지 않을까? 관심 끄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나머지, 염치도 수치심도 없는 행위로 사회적 해악을 끼친 이들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겪었다. 사탄도 실직시킬 정도로 못된 소리 한다든지,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한 뒤 ‘인증’한다든지, 거짓말로 왜곡된 상황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애먼 사람 욕먹게 만든다든지 등등.

하지만 그들만이 관종일까? 요즘 들어 나는 관종을 타자화할 수 없게 됐다. 무언가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관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고, 가치관에 동조받고 싶고, 감정에 공감받고 싶다는 욕망은 강력한 창작의 동기이다. 과정에서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닿고, 감흥 주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짜릿해! 늘 새로워! ‘좋아요’가 최고야!

관심은 비단 기분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에 희귀하게 빛나는 스타들이 독식했던 자원을 이제는 작은 별들이 잘게 쪼개어 나눠 갖는 시대가 됐다. 관심의 크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소셜미디어의 팔로어 숫자다. 마케터들은 별들에게 팔로어 규모에 비례하는 돈을 주고 광고를 의뢰한다. 이들은 창작물의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플랫폼에서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설령 즉각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관심은 여전히 중요하다. 일단 관심을 받아야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취직? 인사 담당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연애? 가까워지고 싶은 대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해결을 위해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간은 한정돼 있다. 관심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일종의 경쟁을 거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기획력과 창의성을 갖춘 이들이 유리하다. 적확하게 표현하고 삼키기 쉽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그리고 운이 따라준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즉 문화 자본을 쌓은 관종이 주목받기 쉽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교육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서, 혹은 생계에 쫓겨서, 시간이 없어서 예술적 경험과 감각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은 좌절과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한 친구는 세상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고 자신은 엑스트라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결국 (비극적으로) 죽고 나서야 관심받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좌절하지 않고 콘텐츠 생산자가 되는데, 그게 하필 혐오 콘텐츠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욕해줄 것이 분명한 ‘만만한 대상’에 대한 익숙한 혐오를 험한 말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런 식으로 혐오로 뭉친 집단의 재간둥이가 되어 관심과 인정을 받고 큰 수익까지 거둔 사례가 숱하게 남아 있다.

이런 사례가 한국 사회에서 양산되는 일을 그만 보기 위해,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플랫폼 업체를 압박하고 규제하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관심받고 싶은 욕망을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심이라는 자원이 더 작고 다양한 것들에까지 미치도록 사회적 조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청년 정책뿐만 아니라, 문화적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섬세한 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관종’이라는 용어 사용은 관심을 바라는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니까 자꾸 솔직하지 못하게 ‘나는 관심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막상 관심 안 주면 수동공격하며 칭얼대는 피곤한 녀석들이 나오는 것 아닐까. 차라리 솔직해지자. 나는 관종이다. 다만 관심받고 싶어 벌인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틔우는 등의 효용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에 성공한다면, 여러분들은 ‘좋아요’를 아끼지 말아주시길….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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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생들은 문제를 마주했던 순간에 대해 글로써 증언하곤 한다. 열 살 김지온은 이렇게 썼다. “5년 전 일이다. 침대 위에 앉아서 휴대폰에 딸린 조그마한 장식용 하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야광 하트가 좋아서 조금씩 입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야광 하트는 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고 말았다. 순간 좀비 영화에서 다른 사람은 모두 도망치는데 나 혼자 좀비 떼에 물려 뜯기는 기분이 들었다.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이 왜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마’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한테 소리쳤다. ‘물 줘! 빨리!’”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물을 가져다 준 엄마에게 방금 일어난 돌발 상황을 털어놨을까? 김지온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만 알기로 선택한 것이다. “엄마한테 야광 하트를 삼켰다는 걸 숨긴 이유는 수술할까봐였다. 한 달 뒤에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수술하면 아파?’ 엄마는 아프다고 했다. 1년 뒤에야 나는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했다. 5살에 삼켰고 지금은 열 살이니까 야광 하트는 5년간 내 뱃속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숨긴 자잘한 문제들이 내 유년에도 있었다. 엄마 물건을 혼자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려놓고는 함구한 적. 원감 선생님의 도시락 잔반 검사를 피해 몰래 토란을 남기고 감춘 적. 분명 은폐였다.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이자 갈등을 덮어놓는 임시방편이었다. 어째서 회피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걸까.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려는 게 우리의 본능 중 하나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연령대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누적될수록 익숙한 갈등에 대해서는 면역이 생기기도 한다. 2016년에 열세 살이던 양휘모는 이렇게 썼다. “가끔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른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어떤 태평함과 담담함이 양휘모의 문장에서 느껴진다. 엄마에게 혼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는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알고 있는 듯하다. 낮에는 싸웠던 우리지만 밤이 오면 화해하게 될 거라고. 왜냐하면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나 또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사랑의 확신 때문에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도 지어 부를 수 있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이라는 가사를 쓰는 건 그가 지금의 속상함에 매몰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양휘모가 한 살 한 살 자라날수록 그를 무너뜨릴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아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라도 한 사람이 천하무적이 되는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새로운 문제로 새롭게 괴로워할 테고 새로운 만회의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열일곱 살의 나사라는 아이는 필리핀에서 한 친구와 싸웠다가 화해한 일을 회상하며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상철이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야! 네가 우리 진실게임 한 거 말하고 다녔냐?’ 상철이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더 부글부글 끓어서 ‘네가 진실게임 말하고 다녔냐고!’ 하며 상철이의 어깨를 살짝, 아니 조금 힘을 실어서 쳤다. 그러자 상철이가 ‘나 치지 말라고!’ 소리치며 내 몸을 한 바퀴 엎어치기했다. 3학년 형들이 달려와 우리 둘을 떼어 놓았다. (…) 어느 날 상철이는 나에게 다가와 선데이 마켓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마켓은 더웠고 붐볐고 복잡했고 시끄러웠다.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 나는 상철이 뒤만 졸졸 따라갔다. 걔는 많이 와본 사람답게 성큼성큼 걸었다. 좋은 망고와 좋은 수박이 뭔지 알려줬다. 우리는 과일을 한가득 샀다. 학교로 돌아와서 함께 나눠 먹었다. 무너진 장벽 위로 꽃이 피는 느낌이었다. 상철이가 선데이 마켓을 알려줬을 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고 즐겁게 쇼핑을 하고 놀았다. 그런데 상철이의 의사는 들어보지 않았다. 상철이가 ‘콜’하긴 했지만 당황스러워서 거부를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마켓에 있는 내내 나는 즐거웠어도 상철이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지만 그때 상철이는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나사는 아는 듯하다. 관계가 회복되어도 때로는 상처 부위가 아주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문장 덕분에 나도 남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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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년 전 과거가 되었다만은 (…) 조선의 요리 독립까지 잃어버리는 것을 구경했다. (…) 장유(醬油)라는 것이 우리나라 간장을 동화시켜 가지고 소위 선일융화(鮮日融和)를 실현시켰다. (…) 고추장, 김칫국 몇 가지가 하도 어이가 없는 듯이 한구석에 박혀 있는 꼴이라고는 적막해서 볼 수 없었다.” 동아일보 1923년 3월3일자에 실린 김재은의 회고다. 7년 전이니 1916년이다. 기미년 만세 시위가 터지기 3년 전이다. 기고자는 “사랑”과 “근심” 때문에 글을 썼다는데 고추장, 김칫국이 한구석에 처박히듯 조선 음식이 처량해진 내력을 돌아보매 이렇다. 일식 전골인 스키야키는 고급 조선요릿집에서 신선로를 진작에 “구축(驅逐)”했다. 스키야키가 밥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일식 절임인 복신지(福神漬·후쿠진즈케)가 따라붙었다. 후쿠진즈케라는 “들척지근한 물건”이 조선의 짠지를 “정복”했다. 후쿠진즈케는 일제 군대의 급양이 서양식으로 바뀐 가운데서도 지급된 일식 반찬이다. 또한 양과자는 다식을 대신하고, 정종은 조선의 소주를 “병합(倂合)”해 전횡을 다했다. 그러고는 장유, 곧 일식 간장인 쇼유가 맛 설계의 바탕인 조선의 간장을 동화함으로써 선일융화, 곧 조선 사람의 일본인화가 실현되었다. 선일융화를 뒤이은 통치 구호가 ‘내선일체(內鮮一體)’다. 1936년 부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내세운 바다. 먹어 들어가는 쪽에서야 융화네, 한 몸(一體)이네 못할 소리가 없겠지만, 실제로는 한쪽의 절멸을 바라는 수작 아닌가. 1910년 나라 망한 지 6년 만에 조선의 미각 상상력도, 음식도 적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당하는 쪽에서 볼 때에는 한 역사 공동체 절멸의 징후였다.

오늘날의 독자는 이 거친 민족주의 수사에 유치하다는 꼬리표를 망설임 없이 붙일 테다. 하지만 사랑, 근심, 구축, 정복, 병합, 일선융합 같은 엄중한 말의 행간을 더 살피고 싶다. 기고자는 조선인 일상의 사물이 쓰이지 않아서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 ‘쓰이지 않음’이 그저 조선식 일품요리, 반찬, 과자, 술, 장 사용의 빈도가 줄어든 현황만을 가리킬까. 가령 ‘들척지근함’은 산업화한 식품과 음식이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입맛을 단박에 사로잡은 비결이다. 일본제국의 설탕, 세계 최초의 MSG 제품인 아지노모토(그 한국판이 미원이다), 왜간장 셋이 손잡으면 들척지근하기에 대체로 무난한 맛을 쉬이 낼 수 있다. 이때 아지노모토와 왜간장이야말로 일본의 일상 감각에다 일본적인 상상력을 잘 쓴 끝에 얻은 현대 일본의 발명이다.

1908년 일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는 MSG 제조 기술의 특허를 받는다. 세계 최초로 ‘감칠맛(旨味·우마미)’을 규명한 성과가 발판이다. 이 조미료의 열쇠인 글루탐산은 1866년 독일 화학자 리트하우젠(Karl Heinrich Ritthausen)이 처음으로 발견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그때까지 미지의 영역에 있던 단맛·신맛·쓴맛·짠맛에 이은 제5의 맛을 개관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이케다였다. 그는 회의했다. 일본인 일상의 식재료인 다시마, 가쓰오부시를 우린 맛, 그 맛이 음식과 어울린 일본적인 맛의 실체는 당시 화학 교과서로는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했다. 그는 교과서 밖으로 치고 나갔다. 일본의 맛이 객관화되자 메이지시대까지도 일본인 스스로 구미 식품에 견주어 열등하다고 여긴 일식 간장과 된장을 세계화할 자신감이 붙었다. 1929년 이후 일본 산분해간장의 산업화 또한 이케다의 일본 미각 재발견의 연장에 있다. 깃코만(龜甲萬)으로 대표되는 일식 간장 산업의 세계화 또한 여기에 힘입었다. 일본 과학기술의 현대적 현현과 산업혁명에는 민족주의에 앞서는 ‘민족성’이 한가득이다. 오늘날 한식은 어떨까. 민족주의에 기댄 탄식을 넘은, 구체적인 내 유산과 일상 감각의 탐구에서는? 아직 드러내지 못한 가능성을 발현시킬 내 상상력에서는? 여전히 1923년식 탄식뿐이라면 섭섭하지 않은가. 아직 잘 써본 적이 없는 상상력. 쓰지 않아서 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상상력. 오늘도 설탕·MSG·왜간장으로 들척지근한 백반 한 상 앞에서 사무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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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제작은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데, 지금까지 그 ‘빡센’ 분위기가 문제로 지적되기보다 낭만화되어 온 게 사실이다. 과로는 젊음을 불태운다는, 영혼을 바친다는, 사명을 다한다는 식으로 포장되었다. 영웅담이 방송사에 넘쳐났다. 조연출 때 며칠 동안 몇 시간밖에 못 잤다는 것으로 입씨름이 붙었다.

나도 입사했을 때 이 일이 적당히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배웠다. 죽어라 해야 남들만큼 한다고 들었다. 이 일이 낭만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을 하다 시계를 보면 서너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과로가 일상화되니 여러 기행들이 넘쳐났다. 어느 PD는 며칠 만에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곤 입고 있던 옷을 다시 입고 나왔다. 수염을 자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가지 않고 숙직실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과로가 ‘장려’되면 과로를 인정받아야 마음이 편해진다. 다들 휴식과 퇴근을 숨기고 ‘계속 일하고 있는 상태’에 있으려 했다.

나는 조연출 시절 주로 바지를 갈아입지 않았다. 건빵바지 하나로 버티고 상의를 몇 개 갈아입으며 일을 지속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 늦으면 국장실 앞 소파에서 주로 잤다. 다들 하는 이런 설정의 목적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알리는 데 있다는 것을 일찍 간파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국장과 부장들이 회의하러 모이며 나의 자는 모습을 시청했다. 그리고 각 부서에 돌아가 나의 과로를 많은 이들에게 알렸다. “쟤는 왜 집에 안 가고 일만 하니?” 그건 칭찬이었고 다른 이에게는 압박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설정은 돌아서 나에게 왔다.

일하는 데 ‘전념’할수록 소속감이 강해졌고 통과의례를 거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이 생겼다. 일을 많이 하니 빨리 또 많이 배웠다. 사회 초년 인정 욕구가 충족되니 되도록 무리해서 일을 했다. 시키면 거절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런 게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나 역시 몇 번 느꼈다. 지병을 얻는 사람도 생겼다. 회사가 그런 분위기를 강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강제되지 않는 공간에서 전력을 다하려는 PD에게 브레이크를 걸기는 쉽지 않다.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고 평판이 중요한 사내 환경에서 후배 PD들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작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 또 프리랜서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과로가 낭만화되었던 시간은 다른 누군가에는, 또 그렇게 생각한 이들에게도 사실 잔인한 시간이었다.

과로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남성중심사회를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문제였다. 육체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소외되었고 일할 때건, 술 마실 때건 ‘최선을 다하는’ 후배가 대접받았다. 선배들은 자기 밑에 있을 때 과로를 마다하지 않고 헌신한 후배에게 기회와 편의를 더 제공하려고 했다. 규정된 시간 안에서 일을 할 경우 생기지 않을 편향이 자리 잡게 된 거다. 남자들이 입사 후에는 더 유능하다는 인식도 착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소모적으로 일했을 뿐이고 솔직히 돌이켜보니 그럴수록 더 후져졌다.

일을 오래 해보니 스태프의 과로는 PD의 무능과 준비 부족에 기인함을 차츰 알게 되었다. 스태프가 과로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리더는 나태해지기 쉽다. 시간 제약이 강화될수록 PD에게 필요한 것이 막연한 근성보다는 치열한 고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나아가 제작 시스템과 산업의 규제 환경이 노동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직책이 높은 선배 중 현명한 이들은 디테일한 간섭보다는 환경 개선에 관심을 쏟았다. 비효율은 고민하지 않으면 당연하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이한빛 PD가 세상을 떠나면서 과로가 문제라는 인식이 더 자리를 잡았다. 후배에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도 창피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방송계에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가까이 왔다. 방송사도 환경에 맞는 세부적인 규칙을 합리적으로 짜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강한 환경이 강제되면 긍정적인 효과가 많을 것 같다. 적응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믿는다. 아마 다른 분야도 다른 듯 비슷하지 않을까.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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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100만명의 홍콩 시민이 나오고 이어서 200만명이 나왔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결국 사과했고, 문제의 송환법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제 행정장관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이 시위의 배경에 대해 많은 분석과 설명이 나왔다. 또 수많은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홍콩과 한국의 민주화운동 혹은 촛불집회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시위대가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광둥어 버전을 노래했다는 뉴스도 화제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국경을 넘어서 연대하는 모습은 꽤 감격적이다. 또 이유가 어찌 되었든 폭력과 통제로 체제를 존속하려는 권력들의 불의함도 이론의 여지가 많지 않다.

검은색 상의를 입은 홍콩 시민들이 16일 도심에서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악법을 철회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죄인 인도 조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 _ AP연합뉴스

그런데 우연히 본 한 문장에 약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이 '87년 광주항쟁'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오타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그 게시글을 공유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에 가깝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가령 촛불집회를 외국인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어떨까?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입장에 따라 설명 역시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홍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열심히 이런저런 뉴스들을 찾아본다고 해도, 그 맥락들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홍콩과 ‘비슷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화는 또 어떤가? 우리는 과연 우리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설명할 언어들과 기준들을 충분히 갖고 있을까? 결국 둘을 비교하고 그것을 통해 유사성을 판단할 정확한 근거가 우리에게도 딱히 없는 셈인 것은 아닐까에 생각이 닿았다. 

물론 안다는 것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단순히 무언가를 지지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싸움들에서 정확한 상황 진단과 이념적 선명성 같은 것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최초의 한정된 문제의식들에 다양한 관점과 경험들이 붙어가는 과정 속에서 투쟁은 커졌다. 그리고 여기에는 각자가 갖고 있는 상이한 불만들이 예상치 못한 계기를 만나 용광로처럼 녹아드는 과정이 반드시 끼어들었다.

이 불만의 용광로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목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했던 미국인들, 프랑스의 노란조끼들, 어쩌면 한국의 촛불 등등. 이들은 때로는 상이하다 못해 양립할 수 없는 입장과 주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각자의 불만을 안고 녹아들었다. 하지만 이 용광로의 열기와 불빛에만 현혹되어서는 정작 그것이 제련해 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지기도 한다. 부당한 권력을 몰아내고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 소수자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심지어 이 두 개의 목소리가 같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일도 적지 않다. 우리가 보았던 대부분의 흐름들은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고,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상황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홍콩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분노하는 것과, 드러난 현상에 대하여 조금 더 사려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서로를 배척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 동안 변화에 대한 열망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왔다. 당장이라도 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굴다가, 음울한 목소리로 ‘그래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하기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꾸고자 했던 것이 정녕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홍콩의 시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민주주의가 도래하기를,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이 우리에게도 길을 보여주기를, 무엇보다 무사하기를 빈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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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이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을 초래한 한국사회의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란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을 말한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남성=아버지의 위기”로 해석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무엇이었나? “아빠 힘내세요”였다. 더불어서 “부-자되세요!!” “신(新)현모양처”가 있었다.

이 세 유행어는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아버지들의 위기’로 이야기하고, 그들이 “노오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런 수사 안에서 외환위기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가 되고, 그 개인의 얼굴은 ‘남성’으로 상상된다. 이때 여성의 자리는 “남편 기 살려주고 자식 건사도 잘하면서 동시에 맞벌이를 하는” 신현모양처였다. 

이처럼 한국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형질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성별화된 문화적 위로를 경유해 위기를 외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남녀 공히 함께 경험한 재난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제일 먼저 해고되어 비정규직화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화제가 됐던 맥주 브랜드 카스의 CF ‘너무 예쁜 그녀-지갑’ 편을 떠올려보자. 맥주값을 낼 돈이 없는 남자 친구에게 커리어우먼인 여자 친구는 자신의 지갑을 건넨다. 하지만 왜인가? 왜 ‘여자’라는 성별이 해고의 기준이 되었던 시대에, 남자의 지갑에도 없는 돈이 여자의 지갑에는 있다고 상상되었는가?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이후 부성 멜로드라마의 인기로도 이어졌다. <내 딸 서영이>나 <7번방의 선물> 같은 작품들에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거나 죽어버렸고, 딸은 홀로 잘났으며, 아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다. “고개 숙인 아버지와 똑똑한 딸”이라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대. 욕심 많고 뭐든 잘하는 남자아이들을 ‘알파보이’라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독 여자아이들만은 ‘알파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이후 현상이다.

2016년 즈음, 사람들은 온라인 여성혐오의 원인으로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꼽았다. 2018년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는 한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고스펙 여성들이 하향결혼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한국 여자들은 잘나가고 한국 남자들은 기가 죽고 말았다는 인식이 강화,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 공히 불안 위에 서 있을 때에도, 남성의 어려움만은 그토록 짠하고 여성의 투쟁은 ‘알파걸들의 투정’으로 폄하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토록 여성들이 잘났음에도 왜 남녀 평균임금 격차는 여전히 대략 35%나 나는 것일까).

그런데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라는 표현 뒤에는 거대 괄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괄호 안에는 “그러나 성공한 남자, 돈 많은 남자와는 결혼하는 여자”라는 말이 숨어 있다. 이런 상상력과 연결된 조어가 바로 “김치녀=남자의 경제력에 빨대 꽂아 사치하는 무개념녀”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남성=경제력’ ‘여자=성공한 남자의 트로피’라는 가부장제의 오래된 도식이 살아 있다. 청년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부장제의 지배규범이다. 반면 어떤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판을 용인하면서, 이 위에서 ‘분배 정의’의 문제로 화를 내고 있다. 여자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그러므로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운동에서 젠더 갈등이란 가부장제의 성차별주의를 뒤집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면,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말하는 젠더 갈등이란 ‘잘나가는 여자 vs 고개 숙인 남자’라는 판타지로부터 비롯된 날조된 프레임이다. 젠더 갈등을 논하려면 이런 상이한 이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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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 출간에 관여하고서부터, 나를 기획자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생겼다. 그렇게 거창하게 기획이라고까지 할 게 없는 일이어서 민망했다. 김동식 작가가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집 출간 이후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단행본 매출의 2%를 기획인세로 지급하겠다는 계약서를 건네면서 “당신이 작가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요다출판사로 데려와 달라”고 했다. 작가의 인세 10%를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출판사의 이익을 나와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판사로부터 1년간 받은 기획인세는 내가 3년 동안 글을 써서 번 것보다도 더 많았다. 김동식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덩달아 새로운 업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여러 플랫폼의 글들을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2018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에 ‘문화류씨’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여우스님’이라는 글을 읽고는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회색인간>이 출간된 지 정확히 1년이 된 시점이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각색했다는 그의 글에서, 나는 1년 전과 비슷한, 한 작가와 그의 글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문화류씨 작가에게서는 아주 빠르게 긍정적인 답신이 왔고 우리는 곧 만났다. 그는 3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다. 그는 약간 큰 덩치에 잘 어울리지 않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동식 작가님이 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러웠고, 언젠가 그 기획자인 김민섭 작가님이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정말 1년 만에 연락을 주신 거예요.” 

김동식 작가의 사례는 무척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작가가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아 계속 글을 써 나간 젊은 작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1년 전의 내가 정말로 기획이라는 것을 했고 그것이 한 개인과 출판사에만 의미 있는 일로 남은 것이 아니구나, 하여,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2019년 6월에, 문화류씨의 소설집 두 권이 출간되었다. 그의 책을 기획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휴대폰 자판으로만 단행본 두 권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하는 것이었다. 휴대폰 자판이 더욱 편해서 글을 퇴고할 때만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다고 했고, 심지어 누워서 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문자나 톡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답답해 컴퓨터를 반드시 이용하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니터로 어떻게 책을 읽나’ 하는 거부감과 불편함을 모두가 가졌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킨들과 같은 전용기기가 보편화되었고 휴대폰으로 어디에서나 전자책을 읽는다. 그에 따라 손안에 들어올 만한 6인치 내외의 화면에 어울리는 글쓰기 방식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노출되는 플랫폼의 경우에는 그 담당자들이 노골적으로 “단락은 문장 2~3개마다 꼭 구분해 주시고요, 이미지도 화면마다 하나씩은 삽입되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제도권의 글쓰기 교육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읽는 방식의 변화가 쓰는 방식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들뿐 아니라 기자 등 글을 쓰는 모두는 자신의 글이 6인치의 모바일 화면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이중번역과 같은 방식으로 써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휴대폰에 익숙해진 어느 세대는, 혹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모바일 화면으로 글을 보는 데서 나아가 쓰는 세대로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류씨 작가는 마치 동시번역을 하는 것처럼, 쓰는 동시에 독자들의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손가락 작가’들의 탄생을 계속해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김동식 작가만큼이나, 문화류씨라는 새로운 작가도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은 새로운 손가락 작가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우리 앞에 계속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로서도 누구 하나 잘되고 끝나지 않는 그런 연속된 기획을 계속해 보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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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는 친구지만 마냥 반가웠다. 친구도 어떤 감정이 물밀었던 모양이다.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뻗으며 친구는 물었다. “어떻게 먹고사니?” 친구의 말은 우리를 둘 다 기쁨과 당황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친구는 아마도 “잘 지내지?”나 “어떻게 지내?”라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우리는 길 위에서 한바탕 사이좋게 웃었다.

집에 오는 길에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요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크게 네 가지다. 대학교에서 학인들과 배움을 나누는 일, 격주마다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일, 매일 오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두세 차례 출연하는 일, 그리고 읽고 쓰는 일. 어떤 일은 나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고 또 다른 어떤 일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그 일을 할 때 비로소 내가 나로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모든 일이 어색하다는 점이다.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어색한 일도 있고 여전히 어색한 일도 있다. 몸담은 지 얼마 안된 일은 늘 어색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있다. 남들 앞에서 말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어떤 물음에 답하는 일, 답하면서 다음에 내가 던질 질문을 헤아리는 일, 이 일 앞에서 나는 보통 작은 상태로 존재한다. 종종 위축되는 것은 물론 겉으로 웃고 있을 때조차 속은 땀범벅이다. 대학에서의 강의,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 그리고 JTBC <시사토크 세대공감> 출연 등은 신출내기의 어색함이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처음 같은 일도 있다. 바로 읽고 쓰는 일이다. 이 일 앞에서 나는 때때로 묻는다. 실력이 늘지도 않고 적응이 되지도 않는데,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왜 읽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까. 20여년 가까이 썼는데 왜 아직도 백지는 나를 새하얗게 질리게 만드는가. 어색함은 으레 어려움을 동반한다. 이 어려움은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얼어붙게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나를 생생하게 한다. 나는 지금 긴장하고 있구나, 머릿속에서 떠올린 문장대로 쓰지 못하고 있구나.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거나 너무 늦게 흐르는 것 같다. 그 시간에는 내가 없는 것 같다.

어색한 일은 맞지 않는 옷처럼 몸을 쭈뼛하게 만든다. 평소의 여유로운 내 모습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몰입이 필요하다. 신문을 애써 가까이해야 하고, 평소라면 지나쳤을 법한 기사에도 따뜻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 한국문학사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책을 읽고 해당 저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궁금증을 발휘해야 한다. 백지 앞에서 초연해지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야 나는 비로소 어떤 상태에 다다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방송에 익숙해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조리 있게 말하고 여유로운 나머지 방송용 미소로 씩 웃기도 할 때, 나는 아마 스튜디오에 없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일 앞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으므로, 몸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특정 발음을 뭉개버리기 일쑤다. 매번 출연하는 게스트가 다르니 그에 맞춰 나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빛나게 해주는 일은 기꺼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가끔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내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감각이다. 이 감각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깨어 있게 해준다. 나는 편한 쪽에서 불편한 쪽으로 한 발짝 움직인다. 날숨 상태에서 들숨 상태로 기꺼이 몸 상태를 바꾼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공부하겠다는 태도다. 나를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고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어색함에 익숙해지겠다는 다짐이다.

삶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는 나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어색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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