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홀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확고한 신념을 좇은 결과는 아니다. 앞으로 겪게 될,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로 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삶의 추이를 보면 앞으로도 웬만하면 쭉 1인 가구로 살겠거니 한다. 그러니 일단 이 삶의 형식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가꾸는 데 집중할 수밖에. 이 점은 나도, 그들도 같다. 차이점은 고양이 유무랄까? 나의 집에만 고양이가 없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1인 가구 모임을 가질 때, 깔깔 웃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깊어지면 어두운 주제가 튀어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깔깔 웃다가 어두운 이야기도 농담처럼 툭 던진다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계속 웃게 된다. 심지어 죽음을 말할 때도. 고양이 집사들의 고양이 사랑에 크게 감탄하는 때이기도 하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지만 약을 먹으며 계속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 A는 예전에 본 뉴스를 말하며 운을 뗐다. ‘1고양이 1인 가구’의 인간이 집에서 급사했고 며칠 지나 시신이 발견됐는데, 고양이가 시신의 얼굴 부분을 먹어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애도 그러면 다행이겠다, 굶을 일 없을 테니’ 생각부터 했다는 말을 하며 보살같이 웃었다. 친구 B는 유기농 보살이었다. 한 술 더 떠, 우리 애에게 나쁜 것을 먹이면 안 되니까 언제라도 비상식량이 될지 모를 스스로에게 늘 유기농만, 좋은 것만 공급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돈 벌고 운동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C는 가급적 밖에서 급사하고 싶다 했다. 시신 발견이 빠를 테고, 신분증을 확인하자마자 부모님께 연락 취할 테고, 그만큼 고양이에게 결핍의 시간은 짧을 테니.

사랑하는 ‘우리 애’ 자랑을 하는 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제 눈에 안경이다. 내 눈에도 웬만한 인간보다 고양이가 더 귀엽긴 하지만 심장이 아프고 막 그럴 정도는 아니던데. 친구들이 소셜미디어에 고양이 사진 올린 게 눈에 띄면 무덤덤한 얼굴로 ‘좋아요’ 누르고 금세 잊곤 했다. 굳이 같이 살 정도로 마음 움직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수입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로서, 스스로를 책임지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늘 있어 고양이에게 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살핌이 있어야만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여린 생명체의 보호자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다부진 책임감과 넉넉한 인내심, 무엇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반려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백만원 턱턱 내는 능력자들을 보며 ‘리스펙트’ 했다. 훗날 나는 나를 위해 그 정도의 치료비를 팍팍 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나 하나 적당히 추스르며 후회 없이 살다 가급적 지구에 해악 덜 끼치고 소멸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도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점 하나 보태고픈 시민적 욕망은 있다. 얼마나 시민의식이 투철한지, 급사 뒤 내 시체가 오래 방치되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까 봐, 썩는 냄새에 이웃이 고통받을까 봐 사서 걱정한다. 그래서 빠른 시체 수습을 위해 사적 장치를 마련했다. ‘고독한 생존방’이 그것이다. 다른 말은 쓰지 않고 ‘ㅅㅈ(생존)’만 쓰는 채팅방이다. 게시판에 구성원의 주소가 등록되어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수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안에 생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들도 이 방에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홀로’들은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며,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한다. 이게 우리에겐 일상인데, 사회에서는 아직도 1인 가구를 ‘현상’ 취급하는 모양이다. 명절 뒤의 들썩임을 보고 새삼 환기했다. 결혼 ‘못’한다며 인격모독까지 당했다는 증언들이 숱하게 쏟아진 것이다. ‘미혼’과 ‘저출산’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논조도 지속되고 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애나 개랑 살든, 혹은 고양이랑 살든, 그도 아니면 오롯이 혼자이든. 책임지기만 한다면, 구성원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고자 택한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 더 나아가 제도적 모색도 함께하는 동료 시민을 기대하면… 기대가 너무 큰 걸까?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제도로는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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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준비 없이 글쓰기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내 수업에 와서는 엄청나게 재밌는 글을 완성하고 집에 돌아갔다. 그들이 쓴 게 왜 재밌는지, 어떻게 좋은지 정확하게 칭찬해주고 싶어서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문장의 근거를 생각할 때 자주 다시 읽은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이 소설에는 작문 연습을 하는 어린 쌍둥이가 등장한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그들에겐 선생님이 따로 없다. 둘은 부엌 식탁에 앉아 서로에게 글감을 내준다. 그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종이 두 장에다 각자의 글을 쓴다. 다 쓰면 글을 바꿔서 읽어본다. 상대방의 글쓰기 교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가며 철자법 틀린 것을 고치고 문장을 수정한다. 문장을 고칠 때에는 쌍둥이들만의 규칙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사리 ‘친절하다’라고 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쌍둥이는 친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쓴다. ‘그는 우리에게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쌍둥이는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좋아한다’는 단어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이 마을은 아름답다’와 같은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그 말이 둘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

이러한 묘사만이 좋은 문장일 리는 없다. 모든 글쓰기에 적절한 훈련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연습 방식을 자주 떠올리며 글을 읽고 쓴다. 무언가를 게으르게 표현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 읽는 이의 눈앞에 구체적인 장면을 건넨다. 무수한 작가들이 잘 써준 생생한 장면들을 읽으며 나는 잠시 다른 존재가 되어볼 수 있었다.

2015년 나의 수업을 들으러 왔던 열두 살의 우예린은 달리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달리는 사람들은 얼굴 살이 위아래로 훌렁거린다. 내 차례가 오면 저 멀리서 선생님이 깃발을 올린다. 깃발이 내려오면 달려야 하니까 심장이 쿵쾅댄다. 출발하는 순간 재빨리 발을 움직여야 하는데 떨려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뛰다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다. 하늘을 나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럼 발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뛰면 나는 어느새 1등이나 2등이 되어 있다.’

이 글을 읽다가 내 심장도 좀 더 빨리 뛰었다. ‘뛰다 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라니 정말 찬란하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뛸 수만 있다면 날마다 달려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달리기를 잘한다’라고만 요약할 수도 있겠으나 우예린은 멋진 디테일을 생략하지 않았다. 그는 또 앞구르기에 대해서도 썼다.

‘앞구르기는 재미있지만 막상 해보면 무섭다. 내 차례가 오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입술을 꼭 깨물고 몸을 앞으로 굴린다. 구르는 동안엔 그저 할 수 있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 바퀴를 다 돌고나면 어지러워서 잠시 멍해진다.’

꼭 나도 같이 앞구르기를 한 것만 같다. 몸을 한 바퀴 굴리는 짧은 순간이 작가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의 감각에도 닿는다. 까먹고 있던 앞구르기의 두려움과 재미를 상기시킨다.

열 살 김지온은 ‘불’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불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멋진 색을 뿜으며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좋다. 불이 아름다운 이유는 몇천 년 전부터 어둠을 막아주고 맹수로부터 공격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또한 색깔들이 불을 아름답게 만든다. 불은 빨강, 파랑, 보라, 노랑으로 나뉘는데 맨 밑에 있는 보라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을 특히 좋아한다. 보라색의 불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온의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불의 색에 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온도별로 다른 그 색깔들이 그의 눈에는 영롱하게 아른거렸을 것이다. 그의 문장을 읽은 뒤로 나도 가끔 불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문장은 나에게 새로운 몸의 감각을 선물하곤 했다. 그들의 글에 자주 설득당하며 글쓰기 교사로 일했다.

<이슬아 | 작가·‘일간 이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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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 운운할 에피소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주 접할 수 있고, 게다가 상대적으로 싼 식료를 결국 사랑하게 되긴 하겠지요.”

설까지 지났다. 제대로 기해년(己亥年)이다. 12지의 동물로 치면 돼지의 해다. 그래서인가, 돼지와 돼지고기에 관해 묻는 전화며 이메일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사랑한다’를 똑 떨어진 명제로 삼는 분들을 겪다가 굳이 위와 같은 답변까지 따로 준비하게 되었다.

인류는 자원을 다음 대에 전수하며 사랑과 기호와 상징을 한 자원에 부여하게 마련이다. 묻는 분께 어깃장 놓기가 아니다. 성심껏 답하느라 앞뒤가 바뀐 소리에 굳이 토를 달고, 내가 할 수 있는 답을 하려는 뜻이다. ‘황금돼지의 해’까지 운운하면 더욱 난감하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 오행(五行)의 토에 엮인 것은 10간 가운데 ‘무(戊)’와 ‘기(己)’이고 그 상징색은 황색이다. 금에 엮인 것은 10간 가운데 ‘경(庚)’과 ‘신(申)’이고 그 상징색은 백색이다. 신해년(辛亥年)이 돌아오면 ‘백금돼지의 해’라 하든지, 외국어 쓰기들 좋아하니 플래티넘(Platinum) 가져다가 말을 만들든지, 암만해도 기해년은 황토색, ‘누렁돼지의 해’가 아닌가 싶어 이 글 쓰는 내내 갸웃거리는 중이다.

‘한국인의 사랑’에 이어 ‘황금돼지’에도 어깃장을 놓고 나면 중국 사람 진수(陳壽, 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까지 찾아 사전 질문지를 만든 분은  울상이 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제주도에서 돼지를 많이 키운 기록이 있다면서요?”

있긴 있다. 그때에는 제주라고 하지 않고,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이라 했으며, 거기 ‘주호(州胡)’라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들이 “소와 돼지를 잘 기른다[好養牛及猪]”라고 했다. 제주 목축, 목장의 역사는 방목지가 넉넉한 조건과 뗄 수 없다. 몸집이 큰 소도 한때 방목해 키웠을 수 있다. 풀 뜯어 먹게 방목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기르기’의 조건이기도 하다. 돼지는 어떨까. 3세기 양돈의 실제, 모른다. 저때에도 제주의 주호는 배를 타고 한반도를 오가며 장사를 했다는데, 멧돼지를 생포해 일정 규모의 방목지에서 순치했다가, 시세 좋을 때 뭍으로 싣고 가 팔았는지 모른다. ‘잘 기른다’는 그쯤을 견문한 결과일 수 있다. 그 한마디에는 양돈의 자연 조건, 사회 조건, 기술과 종의 문제 등에 대한 세목은 담기지 않았다. 한편 제주 사람들이 20세기 이후 동물성 단백질을 얻기 위한 가축으로 돼지에 집중해 독특한 돼지고기 음식 문화를 이루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제주 고유종 돼지가 사라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질문자가 순대까지 들고나오면 다시 말을 보탤 수밖에 없다. 지구상 어느 민족도 살코기만 먹은 적 없다. 어느 민족에게도 선지와 창자는 알뜰살뜰 먹을 만한 귀중하고 맛난 식료다. 선지의 양분과 풍미, 그리고 창자의 기름기와 물성과 질감을 결합한 음식은 지구 곳곳에서 먹어온 바다. 서울 종로통에서 보이는 아바이순대나 전주 남부시장 피순대와 구분하기 어려운 소시지도 세계 곳곳에 있다. 영어권의 블랙푸딩, 블러드소시지, 프랑스의 부댕, 중국의 쉐창 등이 좋은 예다. 선지빛깔 아롱진 순대의 기획은 지구 공통이다.

관련한 어깃장 가운데 최악은 아마 ‘추억의 돼지고기 음식’에 대한 답이었을 테지. 개업 60년을 뽐내는 서울 시내 한 돼지고기 음식점에서였다.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 육고기와 내장을 다루는 집에서, 식료는 길가에 방치된 채였다. 직사광선 아래, 가로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였다. 채소를 쌓아 올린 붉은 고무통과 음식물쓰레기통이 나란했다. 60년 업력으로 이미 건물을 몇 채나 샀다는 이른바 노포였다. 나는 답했다. 여기 사랑이나 추억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결별할 것과는 결별하고 새로이 사랑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새해에 이토록 야박한 순간을 지어냈음을 굳이 고백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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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일본군 전시 성폭력 생존자이자 인권·평화 운동가였던 김복동 선생께서 93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그 전쟁에 참전한 남자들은 그의 몸을 강탈하고 강간했다. 살아남아 되돌아온 고국의 독재자는 그의 거대한 상처와 폭력의 기억을 경제차관 몇 푼에 도매금으로 팔아넘겼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수년이 지나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문제는 3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고, 대통령이 된 독재자의 딸은 이번에는 외교를 위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선언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싸웠다. 그리고 끝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속에서 남은 이들에게 계속 싸워줄 것을 당부하며 숨을 거두었다. 역사의 버거운 상흔들이 고작 하나의 개인이었던 자신에게 몰려드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숨죽이고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여전히 세계 어딘가에서 자행되는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다.

국민대학교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학생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어쩌면 그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 폭력의 예사로움을, 광범위함을, 일반성을. 한국에만 국한시켜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전시 강간이 즐비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계엄군에 의한 강간 및 성고문 등이 자행되었음이 드러났다. 국가 단위의 역사는 전쟁을 언제나 승리나 패배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심지어는 거기에서 어떤 명예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쟁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을 이들에게 주어지는 승리나 명예는 없다. 반면 패배에 대한 대부분의 대가는 바로 이 무관한 자들이 치르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위안부’를 바라보기 두려워한 것은, 그것이 이 사회, 무엇보다도 남자들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흐릿한 필터를 들지 않으면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없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상당부분 ‘약소국의 설움’에 머물러있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누이’들을 지키지 못했고, ‘우리’는 여전히 힘이 약해 강대국인 일본에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겪어서는 안될 일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과 분노가 아니라, 힘이 약한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울분이다.

이것은 민족의 설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일본 군인만 저지르는 악행이 아니라, 지금도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고, 모든 배경과 이유는 뒤로 물러나야 마땅한 것이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비분강개하는 남성들의 수와 모든 강간과 성폭력이 그 자체로 악이고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남자들의 수는 왜 이렇게나 차이가 날까? 왜 일본이 저지르면 악이지만 동포가 저지르는 성폭력은 ‘꽃뱀일 수도 있는’ 문제일까?

때때로 나는 온라인상에 그 많은 남성들이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당한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아닌지 고민한다. 하지만 그 어떤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간일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정당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함이지, 처벌하는 자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폭력에 대한 반대가 없는 ‘미안함’은 그저 남자의 얼굴을 한 ‘민족’에 바치는, 그마저도 자기 자신을 위한 한 조각의 공명심일 뿐이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벌건 얼굴로 여자에게 술 먹이는 법을 떠벌이던 어떤 남자가 떠오른다. 김복동 선생이 일생을 걸쳐서 원한 것은 정의였다. 우리가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을 만큼은 정의로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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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진(염정아)은 극 초반 자신감에 차 있다. 할머니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본인의 열정(정보력)이라는 강남 3대 교육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환경에 1등 욕심 많은 딸까지 두었다. 거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코디까지 합세하니 서울의대 합격이 어려운 목표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딸을 하버드에 입학시킨 전력에 독서토론회를 주도하는 열정적인 차민혁 교수(김병철) 집의 경우 눈에 띄는 결함은 기민하지 못한 엄마 노승혜(윤세아)다. 한서진보다 한발 늦는 그녀가 차 교수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또 총명한 아들을 뒀지만 말 그대로 ‘그냥’ 좋은 부모인 이수임(이태란)네는 한서진 눈에는 순진하게 굴다 큰코다칠 한심한 부류다. 진진희(오나라)팀은 줏대 없는 엄마에 무기력한 아들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딸 강예서(김혜윤)만 합격을 하면 한서진은 가난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고 인정받는 며느리가 될 것 같다. 아들 영재(송건희)를 서울의대에 합격시킨 명주 언니(김정란)를 보며 개선 행진할 날이 자신에게도 곧 찾아오리라 믿고 있다.

한서진이 차근차근 딸을 합격의 문턱까지 끌고 가는 동안 다른 가정은 각자의 문제로 파행을 빚는다. 반항, 자학, 사기 등 아이들의 모습은 요즘 학생들의 불행한 모습들을 망라한다. 하지만 결함처럼 보였던 지점들이 아이들의 파멸을 막는 구명줄이 되는 건 아이러니다. 노승혜는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남편 차 교수와 이혼까지 선언하며 자식들을 구하고, 진진희는 가출한 수한을 뜨거운 눈물로 끌어안으며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다른 엄마들이 벼랑 끝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동안 한서진은 가장 결함 없어 보임에도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 위태로워진다. 더 확실한 결과를 얻고 싶은 조바심과 타고난 악바리 근성으로 가장 공고한 캐슬을 쌓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사고가 터질 것만 같다. 그녀에게도 종종 심각한 고민이 찾아온다. 첫 번째는 아이를 너무 몰아세우다 탈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살한 영재 엄마처럼 되면 어쩌지?’ 하지만 ‘예서는 억지로 공부한 영재와 달리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크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두 번째는 수임의 아들 황우주(찬희)가 불행을 겪는 걸 외면한다는 죄책감. 하지만 ‘이제 한 학기만 남았어. 목적지에만 가면 이 불타는 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고 그럼 그만이야’라며 다시 한번 자신을 설득한다.

김주영 선생(김서형)은 맹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서진의 거울이다. 영재의 탈선이 부모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달콤한 말. 한 학기만 넘기면 된다며 빼돌린 중간고사 시험지를 내미는 그녀의 말. 그건 김주영 선생의 말이지만 한서진이 바라던 것들이다.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그 길을 굳이 걷는 건 한서진이다.

19회에 가서야 한서진네의 결함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바로 예서의 유리 멘털. 예서는 잠을 못 이루며 흔들린다. 예서가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터뜨리지 않았다면 한서진은 중도 포기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성공을 향해 가는 데 흔히 걸림돌이라 불리는 유약한 마음이 구원의 단서가 된다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이 드라마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위 0.1%가 모여 사는 배타적인 공간을 밖에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길 바랐을까? 오직 내 아이는 이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이 지옥행 열차에서 함께 뛰어내리자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SKY캐슬>에서 지독하게 자식들의 성공에 집착하는 주요 인물들은 한서진, 차 교수와 같은 서민 출신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상류 사회를 조롱하는 데 방점이 찍힌 풍자극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선동극처럼 느껴진다.

사회를 공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덕분이다. 시청자 중에는 예서가 서울의대에 합격하는 것을 바라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응원하는 기분일 수도 있지만 마음을 좀 다잡을 필요가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워서 따라갔다간 끝장나는 게 이 게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이기기 어렵고, 이겨도 지는 게임은 모두 함께 그만두는 게 상책이다.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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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사업에 진출하려던 카카오의 계획은, 택시업계의 격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복잡한 심정인데 카풀서비스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같이 가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혼자서 운전하는 일이 대부분인 나는 차량유지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이 서비스에 꼭 가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멋진 일’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갔다. 택시기사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데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졌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차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필연적으로 택시의 수요는 줄어든다. 지금은 택시기사와 카풀기사가(서비스 업체가) 노동의 주체를 두고 갈등을 빚지만, 나중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운전이라는 노동이 언젠가는 기계가 대리하는 노동으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택시노조 등 택시 4개 단체 회원들이 2018년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카카오 카풀 반대 3차 집회’를 마친 뒤 마포대교를 건너 행진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테슬라의 대표인 일론 머스크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다. “당신의 차는 당신을 회사에 내려다주고 종일 다른 사람들을 싣고 다니며 돈을 벌다가 당신을 다시 태우러 올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100%다.” 운전이라는 노동은 자율주행 기술의 발달에 따라 온전히 기계의 몫이 될 것이고, 택시기사도, 카풀기사도, 대리기사도, 버스기사도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차량은 개인에게는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만 주로 남게 될 것이다. 굳이 유지비가 드는 차량을 소유하기보다는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는 것이 저렴하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책은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가 기계화·자동화에 의해 어떻게 위협받을 것인가에 대해 다루었다. 미국에서 출간돼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나는 저자가 쓴 ‘인간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사례’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1) 인간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을 바란다. 2) 인간은 병에 걸린다. 3) 인간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다. 4) 인간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가족이 있다. 5) 인간은 법적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사용자를 고소할 때도 있다. 6) 인간은 잠을 잔다. 7) 인간은 SNS 계정이 있다. 얄미운 내용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비효율이기도 하다. 기계는 불평 없이 일하고, 고장이 나면 빠르게 고치거나 폐기할 수 있고, 자신의 기분에 영향받지 않고, 신경 써야 할 가족이 없고, 누군가를 고소하지도 않고, 밤새 노동을 시킬 수 있고, 논란을 일으킬 플랫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결국 인간의 노동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안타깝게 서술한다. 

우리는 사람의 노동이 간소해지는 시대에서, 소멸하는 시대로 막 진입하고 있다. 운전뿐 아니라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가까운 미래에 기계의 일로써 대체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의 기계라는 것은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는 데 그쳤지만, 이제 사람의 수고를 전부 가져가려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간 이 사회를 지탱해 온 어느 한 명제를 완전히 뒤엎는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다. 지금까지는 업종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열심히 일하면 생계를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대가 찾아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일을 완벽히, 정확하게는 몇 배나 더 ‘잘’ 기계가 대리하게 되고, 사람은 건강한 몸과 의지가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어렵게 된다. 단순한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의사, 변호사, 펀드매니저 등 모든 전문분야에 걸쳐 해당된다. 자신의 노동을 노력, 근면, 성실이라는 가치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는 조금씩 타인의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는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은 택시기사가 파업을 했지만 내일은 트럭기사, 모레는 카풀기사, 결국은 내 차례도 올 것이다. 이제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계화·자동화가 가져올 풍요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잃지 않아야 할 것은, ‘보통 사람’, 서로를 닮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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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좀비 영화 고전인 <시체들의 새벽>(1978)의 홍보 문구다. 줄줄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법조계 #미투 가해자 안태근, 연극계 #미투 가해자 이윤택, 그리고 충남도 전 지사 안희정 등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다. 강간범들이 이미 지옥을 꽉 채우고 있어서, 저들이 지옥에도 못 가고 여기서 떠도는 건가 싶었다.

2018년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함께 시작했다. 이는 2019년 체육계 #미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성폭력을 방조하는 구조는 사뭇 강고하고, 가해자들은 여전히 반성을 모르며, 그들을 처벌할 법적이고 문화적인 토대는 아직 미미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 언론은 “미투 피로감”을 들먹이며 마치 성폭력 가해자와 ‘미투 구경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하지만 피로감이란 오히려 이 “강간의 왕국”과 싸우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미투가 터질 때마다 소란스럽기만 하지 아직 제대로 해결된 것은 없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가야 할 길도 너무 멀다. 그러다 보니 끝나지 않는 마라톤을 뛰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회가 느끼는 피로감이 있다면, 그건 여성을 계속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도록 강요하는 강간문화가 초래한 ‘강간문화 피로감’이다.

“미투 피로감”이란 사실 좀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하찮은 감정 같은 것이다. 당신도 좀비물을 보다가 “피곤하게 뭐 저렇게까지 열심히 버티나, 그냥 좀비가 되어 버리면 간단할 텐데” 싶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미투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와 거리감은 딱 저 정도일 뿐이다. 그들을 구경꾼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미투는 이 지옥도에서 도저히 좀비가 될 수 없는 인간들의 싸움이다. 그들은 좀비의 민낯을 보고 썩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괴로운 시간을 버티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 덕분에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1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피해자들은 더욱 용감해졌고, 그를 지원하는 동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 싸움을 지지하는 시민의 범위 역시 넓어지고 있다. 우리는 스포츠계 #미투를 보면서 그런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토대는 앞서 “나도 말하겠다”면서 침묵을 깬 사람들 덕분에 쌓여왔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안 전 지사는 같은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준헌 기자

그렇다면 이 좀비 아포칼립스를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한국 반성폭력 운동이 집중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성범죄 수사 및 처벌 과정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최협의설’을 타파하는 것이다.

형법상 강간·추행이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당하고, 그것이 ‘현저히 저항이 곤란한 정도’여야 하며,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 한국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폭행·협박을 최대한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의미에서 ‘강간죄에서 폭행 협박에 대한 최협의설’이라고 한다.

안희정의 경우 일반 강간죄(형법 297조)가 아닌 위력에 의한 간음죄(형법 303조)로 기소되었음에도, 1심 재판부는 “위력이 행사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명시적인 위협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졌다. 위력의 의미가 최협의설의 영향 아래에서 해석된 것이다. 따라서 오는 2월1일 안희정 항소심 선고 내용은 최협의설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서조차 피해자가 저항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면, 한국의 법조계는 #미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안희정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 선고를 통해 최협의설에 치우친 성폭력 판단을 극복하는 판례를 남겨야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판결이 가이드가 되어 “명백한 동의가 없다면 그것은 강간”이라는 “Yes Means Yes 룰”을 바탕으로 하는 ‘비동의 강간 추행죄’ 신설로 나아가야 한다. 판례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손희정 |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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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가 올랐다. 같은 날 건강보험료와 함께 국민연금, 통신비가 통장에서 쑥 빠지니 타격감에 얼얼했다. 말일쯤 납부할 주거비 및 각종 공과금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기타소득 원천징수세율 상향(6.6%→8.8%) 소식도 마음을 어둡게 한다. 먹는 것 줄이고 입던 것만 입어도, 사람들과 ‘랜선’으로만 만나며 웬만하면 칩거한다 해도 기본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은 줄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늘었다. ‘적게 벌고 적게 쓴다’는 삶의 기조를 유지하기에는 이미 기본으로 쓰이는 돈이 상당하다.

그간 글을 쓰거나 워크숍이나 특강을 진행하는 등 ‘용병’으로 쓰이고 수당 받아 근근이 먹고살았다(기타소득 원천징수세율 상향 소식이 내게 큰일로 다가온 이유다). 돈을 벌 수 있는 제안이 끊이지 않고, 가늘고 길게나마 이어져 온 것은 운이 좋았기에 가능했고, 감사할 일이다. 

고마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만나자고 해서 그쪽 사무실까지 찾아갔는데 막상 상대가 뚜렷한 계획이 없던 적이 왕왕 있다. 마음 맞는 상대라면 의견 나누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딘지 불쾌한 상대의 얄팍한 호기심만을 채워줬다는 직감을 안고 돌아온 날이다. 역시나 예감은 맞아들어 그런 만남은 일로 연결되지 않았다. 대충 툭 던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이나 메시지 역시 실속 없을 확률이 높다. 주요 골자를 텍스트로 설명하는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의뢰인은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다. 신뢰감이 드는 상대와 충분히 대화가 오고간 일도 엎어질 수 있는 판국에…. 즉 일이 줄어들기는 쉬운데, 늘리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인지하는 프리랜스 창작자는 특정 의뢰인의 선택을 받지 않아도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를 욕망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대중의 선택이 창작자에게 보상(광고 수익)으로 돌아가는 플랫폼을 불러왔다. 유튜브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으로 보상을 받는 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 ‘구독’과 ‘좋아요’가 곧 자원이며, 이는 적나라한 수치로 모두에게 공개된다. 이런 구조에서 채널을 ‘성장’시키기 위해 흔히 동원되는 전략은 선정적인 이미지의 전시와 속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특정 진영 결집을 자극하는 화법이 되기 쉽다. 검색으로 유입되는 숫자를 늘리고, 같은 존재를 혐오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낀 이들이 소속감마저 느끼며 팬덤을 형성하길 노리는 것이다. 유튜브 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활발히 유통되는 이유다. 

물론 이런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지만 자기만의 리듬은 잃지 않는, 숙고 끝에 내놓는 의견과 따뜻한 감성으로 구독자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유튜버들이 있다. 존경하고 응원한다. 나는 아마 안될 것이다. 지나치게 경쟁 지향적이고 숨 가쁜 환경에서 쉽게 불행을 느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좀 더 가능성 있어 보이는 것은 웹소설 플랫폼이다. 독자들에게 편당 100원씩 받는 연재소설 중 나를 매료시킨 것이 있다. 비록 클리셰 범벅일지라도 건강한 메시지와 감동이 있었다. 철저히 기획하고 연구하며 문법을 습득한다면 나도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프리랜서로서, 창작자로서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 여기까지 왔다. 수단에 대해 골몰하다 보면 목적을 잊거나 방향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시금 돌아본다. 나는 더는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직접 말하기로 마음먹었고, 널리 알려진 ‘진실’에 반례가 있음을 증언하고 싶었으며, 그 결과물이 흥미롭고 유쾌하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지 않더라도, 내가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몇 명에게라도 유익할 수 있다면 보람을 느꼈다. 이런 날들이 앞으로도 가능하기를 희망한다.

이게 개인의 몫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상업성에 혈안이 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공공이 제공한다면 서로 간의 오해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콘텐츠들이 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고위 관료 나리의 옷깃을 붙들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기타소득 원천징수세율 높인 것, 사회안전망으로 되돌려줄 거지요? 지역가입자라 건강보험료 어마무시하게 내고 있어서 사보험 따로 안 들었는데, 훗날 이런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해줄 거죠?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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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구성이 정교해서 놀라고 묘사가 독특해서 놀란다. 이야기는 비극적이지만, 비극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날카로운 빛살이 있다. 그 빛살은 우리에게 쏟아지면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신분 제도와 가부장제 등 크고 굳건한 것 앞에서 개개인은 작고 허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모여 사는 작은 것들이 없는 한, 큰 것의 의미도 사라진다.

큰 것 앞에서는 으레 압도당하고 고개 숙이게 되고 몸을 낮추게 된다. 관습과 종교 앞에서 우리는 위축된다. 큰 것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믿음 없이 축적이 불가능하다. 믿음은 편견으로 둔갑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기도 하고 때때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가로막기도 하고 원하는 곳에 발 들일 수 없게 만든다. 사람은 큰 것 앞에서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 큰 것을 꿈꾸고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사는 삶이 빡빡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늘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작은 것을 보면 우리는 다가가고 그것과 교감하기 위해 마음을 열어젖힌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면 들여다보게 된다.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나무 아래서 나뭇잎과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에서 어떤 것이 피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쓸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순간의 중심에 있었던 나는 안다. 그게 얼마나 충만한 경험이었는지, 그 순간의 전후에 나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작은 것들의 반짝임처럼, 그 반짝임이 모이고 모여 일어나는 기적처럼.

얼마 전에 김현 시인을 만났다. 그는 매해 새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작년의 계획을 듣는 순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늦잠을 더 자주 자고, 야식을 종종 먹고, 줄넘기를 하다 중도에 포기하고, 마감 같은 거 일주일씩은 늦을 것, 짝꿍에게는 더 징징대고 인간관계는 더 복잡해질 것. 그러니까 마음을 다해 대충 살 것.” 그리고 그는 작년 계획의 상당수를 달성했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잠들기 전에 그 계획들이 자꾸 떠올랐다. 거창하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사람임을 자각하는 순간들은 다 저기에 있었다.

그는 작은 것들이 가져다주는 활력을 아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작은 계획을 달성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계획이지만, 그것을 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계획이다. 어떤 일을 진득하게 수행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싫증을 느끼거나 끈기가 부족해서 그 일을 그만두는 것도 사람이다. 그는 사람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며 사람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일상에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을 계획으로 삼는 일은 거창하지는 않아도 근사하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김현 시인의 계획을 곱씹으며 나는 올해 나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병상에 있는 아빠와 자주 눈 마주치기, 엄마가 지치지 않게 옆에서 웃겨드리기,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기꺼이 축하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마음 다해 위로하기, 매일 나만의 한 시간을 만들기, 지역에 있는 독립서점에 찾아가기, 새로운 길로 산책하기, 틈틈이 메모하기, 작고 여리고 하늘하늘한 것들을 눈여겨보기, 그것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항목들을 적고 나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떤 계획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생생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안다.

책을 읽다가 밑줄이 그어진 부분을 발견했다. “너무나 명백히 있기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명백한 것들 앞에서 사람들은 의심하기를 멈춘다. 당연한 것은 자극이 되지 못하므로. 그러나 스스로가 명백해지는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 순간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내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이따금이라서 더욱 소중한 순간을, 항상이라서 지나치기 쉬운 순간을 심신에 열심히 새겨야겠다. 작은 것들이 내 삶의 물꼬를 터주는 상상을 해본다.

작고 여리고 하늘하늘한 것들을 통해 내년 이맘때쯤 나는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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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에 전단을 붙이며 돌아다니던 날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적어놓은 전단이었다. 교사를 소개하는 난에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와 경력을 적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잡지사에서 근무했고 작은 문학상에서 작은 상을 탄 사실을 적었으나 미더운 글쓰기 교사로 보이기엔 충분치 않았다. 사실 이제 막 스물세 살이 된 참이었고 카페 알바만으로는 월세를 감당하기가 벅찰 뿐이었다. 가르치는 일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는 것이 좋았다. 뭐라고 어필해야 할지 몰라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도 글쓰기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적었다. 내가 썼지만 믿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나야말로 글쓰기가 싫고 두려울 때가 잦았기 때문이다. 

영등포와 목동 일대에 전단을 돌리자 가뭄에 콩 나듯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한 학부모는 어느 대학을 다녔냐고 물었다. 내가 대학의 이름을 대답하자 그는 심드렁하게 전화를 끊었다. 출신 대학을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런 이의 자녀들이 내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수업준비물을 챙겨서 가정에 방문하면 엄마들은 나 보고 고등학생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수업에 대한 궁금증도 염려도 섞인 말이었다. 별다른 경력 없는 학부생에게 아이를 믿고 맡긴 고용주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잘하고 싶었다. 

무언가에 대해 쓰고 싶은 대로 쓰자고 제안하면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혹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기억은 나는데 쓰기가 싫다고도 말했다. 좋은 이야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내주어야만 그들도 소중한 것을 나에게 내주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먼저 털어놓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거짓말’이라는 글감에 관해, 또는 ‘방귀’나 ‘눈물’이나 ‘도둑질’이나 ‘질투’나 ‘어떤 냄새’라는 글감에 관해. 어리석은 경험을 한두 개 말하다 보면 그 자리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은 날 보며 웃었다. 그때 질문을 건네야 했다. 너희는 어떠냐고. 그럼 그들은 연필을 들고 회심의 미소 같은 것을 지었다. 재미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의 표정은 호기롭기 마련이었다. 어리석고 우스운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으므로 아이들은 원고지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들 중 하나였던 열 살의 최가희는 이런 문장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방으로 가니까 왠지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찡했다. 뭔가 엄마한테 안기고 싶었다. 자다가 밝은 곳으로 가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온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언니랑 동생이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니, 나도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또 다른 하나인 열세 살의 이형원은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는 함께 뒤섞여 놀다가 서로의 여름 냄새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 우리의 두피에서는 찌든 걸레 냄새가 났다. 우리의 옷에선 중학생 남자 옆을 지나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났다. 우리의 발에서는 가죽에 물을 묻히고 한동안 방치해둔 냄새가 났다. 웃음거리가 되던 우리의 여름 냄새들이었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내 후각까지 생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여름 냄새’ 묘사는 탁월했다. 또 다른 하나인 열세 살 오승린은 이런 문장을 썼다.

“가끔씩 영화 찍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주로 절벽에서 서로의 손을 놓쳐 떨어지고 마는 시나리오였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꼭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그가 쓴 것 덕분에 나는 이야기의 속성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란 우리를 몇 번이고 다시 살게 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엄두도 안 날 스릴을 잠깐 체험해볼 수도 있고, 가짜로 비극을 겪으며 마음 근육을 키울 수도 있었다. 그사이에 우리는 어쩌면 더 강해지기도 했다. 

그런 문장들을 읽으며 오년간 글쓰기 교사로 지냈다. 서울의 영등포와 목동과 판교와 전라남도의 여수 등을 돌며 보따리장수처럼 글쓰기 수업을 했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면서도 가장 많이 배우는 건 나였다.

<이슬아  작가·‘일간 이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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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기 유럽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30세 전후였다고 한다. 반대로 새롭게 세상의 주인이 된 자본가, 즉 부르주아들은 결혼에 앞서 양가의 가계도를 펼쳐놓고 장애인이나 병자가 없는지를 꼼꼼히 따져가며 자신들의 ‘선천적’ 우월성을 증명해줄 계급의 육체와 건강을 만드느라 애썼다. 죽음 앞의 평등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해지는 것은, 그것에 이르는 과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이 평등한 시간이란 심장이 멎는 찰나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마저도 못 견디는 부자와 권력자들은 안간힘을 쓰며 그것에 맞서려고 노력한다. 해프닝이 일어나고, 어느 굴지의 대기업 회장은 의식 없이 의료기기들에 의존해 ‘안정적으로 생존’해 있는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차명계좌와 탈세 혐의가 발견되고 있다. 이들도 모두 결국에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24세 하청 노동자가 맞이한 죽음이나, 안전설비 없는 낡은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 또는 환불을 해주지 않고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살해당한 성매매 여성의 죽음 같은 것과 비교해 평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위험과 죽음의 분배는 돈과 권력이 그렇듯 불평등하다. 어떤 이들은 부자들이 위험을 감수했기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디에 투자를 할지 고르는 위험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작업환경이 주는 위험 사이에는 엄청난 사회적 거리가 놓여 있다. 그 어떤 호전적인 투자자도 자신의 최후를 발전소의 하청노동자로서 랜턴도 없이 위험천만한 안전점검 업무를 하다가 맞이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며 기업의 비용절감과 더 많은 배당에 기꺼이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더 많은 구조조정과 아웃소싱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불만에 차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물론 위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의 운명론적인 성격을 이야기하기에는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한 것들이 여전히 많다. 이것은 단순히 안전규정과 장비의 유무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위험이다. 그곳에서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비용보다, ‘위험수당’을 얹어주고,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해 누군가 다치고 죽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처럼 가장 위험한 업무도 가장 적은 권한만을 갖고 있는 불안정한 하청노동자에게 떠맡기는 것이 가능하다면, 누구보다도 ‘경제적’이고자 하는 자본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단지 산업재해 문제만이 아니다. 고급 거주구역에 설치된 방범시설과 CCTV는 범죄를 낙후된 지역으로 밀어낸다.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기를 위한 설비들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져 그곳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위험과 죽음은 결국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김낙년 교수의 <한국의 학력별 사망률 격차, 1985~2015>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사망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그 효과는 학력에 따라 차등화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특히 60세 이상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는데, 준비할 겨를도 없이 세월을 맞은 이들에게로 죽음이 몰려간 탓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사람의 가격’은 돈으로도, 사회적 가치로서도 너무 저렴하다. 만약 안전사고가 났을 때 기업에 철저한 징벌이 내려졌다면, 자본가들은 안정규칙을 귀찮아하는 노동자들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수많은 연구자금을 안전을 위한 대책마련에 쏟아부었을 터다. 그러나 현실은 누더기로 통과된 산안법에 대해 기업의 부담을 준다며 발악하는 보수언론과 재계의 목소리다.

위험과 죽음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비하고, 책임을 분담함으로써 그것에 맞설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을 우리는 ‘사회’라고 부른다.

<최태섭 | 문화비평가·<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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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경향신문의 같은 지면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만8300원에 구매했지만 아이의 병원 일정이 출국 하루 전으로 잡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사에서는 1만8000원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대한민국 남성일 것, 2) 그의 이름이 김민섭일 것, 3) 두 사람의 여권에 표기된 영어 이름의 철자가 모두 같을 것, 이었다. ‘섭’이라는 이름이 SEOP, SEOB, SUB, SUP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염두에 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의 개인 계정과 경향신문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로도 알려진 이 일도 어느덧 만 1년이 지났다. 그래서 그 후의 이야기를 간단히 기록해 경향신문의 독자들께도 알리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글을 올린 지 3일 만에 나와 정확히 10살 차이인 1993년생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사실 포기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1993년생 김민섭씨는 자신이 휴학생 신분이며 졸업전시비용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째서 1년에 1000만원 내외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졸업을 하기 위한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여행을 가기에 가장 적합한 김민섭씨가 나타났음을 알았다.

항공권 양도를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행히 김민섭씨가 아니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그는 다음과 같은 정중하고 다정한 제안을 해왔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항공권을 지원해 주어도 여행을 갈 수 없을 만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김민섭씨도 항공권 외의 다른 비용이 부담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숙박비를 부담해 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연결해 드리고, 나는 “김민섭씨를 찾았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축하의 댓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했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1) 저에게 12월31일까지 유효기간인 후쿠오카 그린패스권(일일 버스 승차권)이 있어요. 저는 어차피 올해 다시 갈 일이 없을 테니 등기로 보내드릴게요. 2) 저는 와이파이 렌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김민섭씨가 꼭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면 좋겠어요. 3) 얼마 전 후쿠오카타워에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요, 입장권이 한 장 남아 있는데 보내드리고 싶어요. 1만8000원을 돌려받느니 차라리 이름이 같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항공비에 더해 숙박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후원하겠다는 개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는 카카오에서도 스토리펀딩을 통해 그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했고, 결국 여행을 다녀오고도 한 청년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이 모였다.

공항에서 만난 대학생 김민섭씨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고 말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저 사람 덕분에 내가 여행을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저 사람들이 잘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수백번의 생각을 하면서 공항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몹시 피곤해 보여 설레서 잠을 못 잔 모양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친구들과 준비하는 공모전이 있는데 여행을 가기 전 자신의 몫을 하느라 거의 밤을 새웠다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왜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청년의 여행을 도왔는지를 알았다. 지금도 내가 아는 많은 20~30대들이 취업 준비와 각종 시험들 때문에, 불편한 마음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한다. 1993년생 김민섭씨를 도운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주변의 평범한 청년을, 자신의 자녀를, 무엇보다도 평범한 스스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가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것은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김민섭씨는 나에게 “왜 작가님을 비롯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저를 도와줬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고 그의 여행을 도운 모두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언젠가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씨를 꼭 찾아서 제가 여행을 보내줄게요”라고 말하고는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2018년, 나의 한 해는 어느 한 청년 덕분에 무척 행복했다. 그는 얼마 전 학사 과정을 수료했고,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제 곧 2019년이다. 나는 여전히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의 잘됨은 우리 사회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잘되면 좋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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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다. 거리에서 캐럴이 들리고 대형서점 앞에는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수북이 쌓여 있다. 카페 안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반짝이는 것, 화려한 것, 갖고 싶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무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별은 가장 갖고 싶은 어떤 것이다. 자주, 오랫동안 그윽하게 바라보게 된다. 맨 위에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은 얻기 쉽지 않은 것이다.

얻기 쉽지 않은 것을 상상해보는 일은 크리스마스 때 가장 많이 했던 일이다. 인형과 로봇, 게임기와 컴퓨터 등 욕망은 매년 커졌다. 물건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통해 욕망이 팽창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것이 대학 입시나 취업 등 합격과 불합격의 문제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로소 크리스마스에 욕망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소원을 빈다고 해서, 소원이 절실하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없으리라.

작년 이맘때쯤 나는 ‘메리와 해피와’라는 시를 썼다. 길 가다 충동적으로 산 크리스마스카드 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카드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amp; 해피 뉴 이어’라고 적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이고, 연말은 연시와 아주 가깝기에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길 바란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믿는다. 처음과 끝은 우리가 축하할 만한 것들이니까. 시작하는 마음과 끝내는 마음이 같지 않을지라도, 마음은 그렇게 매년 새로 태어나기도 하니까.

‘메리와 해피와’는 “메리는 즐겁게 지내려고 애쓰는 아이/ 즐거운 아이는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즐거운 아이는 아니지만 즐겁게 지내려고 애쓰는 삶은 나를 닮았다. 삶은 보통 지루하고 즐거운 순간은 간혹 찾아오지만, 즐겁게 지내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즐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믿었다. 가만있는 자에게 즐거움이 찾아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나고 극장에 가고 신나는 노래를 들어야 한다.

“해피는 행복한 척하려고 애쓰는 아이/ 행복한 아이는 아니다”라는 구절도 있다. 행복한 아이는 아니지만 밖에서는 행복해 보이려고 애쓰는 삶은 나를 향해 있었다.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에 어떤 일도 없다고 손사래 치며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이 겹쳤다. 나는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게 옳지 않다 믿었다. 행복한 척 애쓰다 보면 행복한 순간이 깃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올해도 길 가다 크리스마스카드를 하나 샀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는 문구가 어김없이 적혀 있다. 기념일이나 연말연시 등 어떤 시기에 마음을 나누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도 주변에 즐거움을 나누는 일,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도 가까운 이들의 행복을 비는 일만큼 말이 안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말이 안되는 일이기에, 나와는 아직 먼 일이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다행히 ‘메리와 해피와’의 후반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게/ 어떤 시간은 순간이 된다는 게/ 순간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추억이 된다는 게.” 크리스마스카드에 위의 구절을 천천히 적었다. 나는 즐겁게 지내려 애쓰는 마음이, 행복한 척 애쓰는 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당장의 날 속이는 것 같을지라도 내게 더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을 잊지 않게 해준다. 그것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도와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나르는 사연들, 한 송이 한 송이 절실한 그리움들은 사람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거기에는 차가운 눈(雪)과 따뜻한 눈(目)이 다 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눈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빛이 가득할 것이다. 힘든 사람에게는 이 풍경이 낱낱의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눈이 내리고 얼고 녹고 증발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 언젠가 희망으로 뿌리리라. 이런 믿음이 내일을 열어젖혀줄 것이다.

흔히 즐거움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들이 멀리 있다고,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단어들을 곁에 두지 않는 한, 정작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당황하고 말 것이다. 일부러 소리 내어 곁에 있는 이들에게 메리와 해피를 전해야 하는 이유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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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행히 꽤 괜찮은 한 해였다. 새로운 취미 덕이다. 음악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음악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음악과 무관한 고민 상담까지 받기 시작했다. 대화하고 나면 후련했고 많은 일이 분명해졌다. 그는 내게 정규 교육 과정에서 만난 어느 누구보다 좋은 영향을 줬다.

그는 소년원의 아이들도 가르친다. 그곳 아이들의 마음도 연 것으로 보인다. ‘마성의 선생’이다. 출소한 어느 아이는 숱한 밤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그에게 의지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다시 ‘사고’를 쳐서 ‘감방’에 갔고, 그가 아이들에게 그 전만큼은 마음을 열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고 나니 미운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한 얘기만 하거나, 사업해서 크게 한탕할 거라기에 들어보니 결국 누군가에게 사기 치겠다는 얘기인 애들이 답답하다고 그는 토로했다. 이해되는 한편, 그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길, 포기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나도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행청소년’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바르게만 자라왔나 궁금해진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오해 사기 싫으니, 형사처벌 받을 일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상처 될 일을 왕왕 저지른 어린 날이었다. 가슴속 응어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 속 행복의 형상은 내겐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게 억울했다. 평생 절약해도 1억원 모으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집값은 수억원이 기본이라는 사실도 막막했다. 학교에서의 차별과 부조리, 열의 없는 선생들과 납득되지 않는 억압들도 숨통을 조여왔다. 세상이 싫고 어른들이 미웠다. 그 마음을 좋지 못한 방향으로 표현했다. 응어리가 풀리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카메라를 들며, 좋은 어른들을 만나고 내가 표현하는 바에 귀 기울이며 공감을 표하는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며, 무엇보다 경제적 안정을 이루며 좀 나아졌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는 절대적 빈곤 계층에 속하지 않았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뒀을 뿐 내게 적극적인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상당수 소년범의 경우는 다르다. 절대적 빈곤 계층에 속하며 부모가 학대한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서 뛰쳐나와 고시원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으나 주어진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곳뿐, 일하는 시간 중 모멸감을 견딜 때가 많고 밥 먹고 월세 내면 모이는 돈 없으며 취미 생활은 사치일 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출구가 없을 거라는 현실인식이 들 수 있음을, 정당화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건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대신 이미 태어나 고통받고 있는, 현존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덜고 희망을 찾아주는 일에 더 관심이 간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행동이 도출되기 너무 쉬운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 행위를 한 개인 탓만 하는 사회가 부도덕하게 느껴진다. 특히 미래세대의 몫까지 빨아들여 버블을 형성해놓고 ‘성장’을 이뤘다며 좋아하는 촌극에 아직도 적응 안된다. 이제 자원의 분배를 디자인하는 일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사회 변화는 더디기에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일상을 버텨야 한다. 모든 소년원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 음악 선생님이 출강하는 곳은 그가 가르치는 두 시간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일과가 없다. 여기에는 공무원의 ‘적당주의’ 탓도 있다. 더 많은 시민들의 온정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기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지 살펴보고, 마땅한 것이 있으면 가담하는 일이 내년의 목표 중 하나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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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 인천 부평 주택가의 공터, 작업복과 안전모 차림의 남자가 사람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뭔가 만들기 시작한다. 나무 막대기 7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그 위에 또 다른 나무 막대기 2개를 올려놓고 양면테이프로 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무 막대기 벽을 홈이 파여 있는 스티로폼 위에 세운다. 이렇게 하나씩 벽을 만들어 세우자 이내 긴 벽이 만들어진다. 얇게 이어 붙인 나무판을 세우고 통으로 된 지붕까지 씌우고 나면 완성이다. 국내 유일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흔적인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 노동자들의 숙소 ‘미쓰비시(三菱·삼릉) 줄사택’과 똑같은 모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벽과 벽을 맞대어 줄줄이 늘어서 짓는 주택 형태라서 ‘줄’사택이라고 부른다는 집이다. 모형으로나마 직접 만들어보니 얼마나 허술하게 지어졌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옆집과 연결된 것은 벽 하나뿐, 그때나 지금이나 공동화장실은 여전하고 도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도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 삼릉 주택의 골목을 빠져나온 관객들은 미리 받은 수첩에 도장을 찍고, 새겨진 질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말로만 듣던 ‘삼릉 줄사택’에 가볼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연극 덕분이었다. 젊은 극단 ‘앤드씨어터’가 기획한 <터무늬 있는 연극×인천_부평편>이 그것이다.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걸으며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부평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동형 공연이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그 지역만이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찾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공연이었다.

<터무늬 있는 연극×인천> 시리즈는 사람에게 지문이 있듯이 땅에도 새겨져 있는 고유한 지문, 즉 터의 무늬를 찾기 위한 작업으로 그동안 배다리와 십정동, 송도 등지에서 공연됐다. 땅을 ‘부동산’이나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바라본다면 결코 기획할 수 없는 공연이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이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을까” 중얼거리며 한숨 쉬는 주인공 말이다. 옥탑방에서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뒷모습과 함께 보이는 한강과 서울의 야경,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비춰주면서 드라마는 다음 컷으로 넘어간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 그 고민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마음 놓고 지낼 ‘지상의 방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오래이고 상가는 끊임없이 들어서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는 ‘공간’이다. 오래된 재즈클럽, 자리를 잡아가는 동네책방, 젊은 부부가 하는 작지만 맛있는 음식점도 2년마다 아슬아슬하게 버틴다. 동네에서 뭘 좀 해보겠다는 청년들이나 함께 모여 오카리나를 부는 동호회 사람들도 안정적인 공간, 그러니까 ‘터전’에 목말라 있다. 나영석 PD는 <합니다, 독립술집>이란 책의 추천사에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야기가 공간에 모인다. 관계와 시간이 축적되면 신기하게도 공간에 힘이 생긴다”라고 썼지만, 공간들이 모여 ‘자리 잡을’ 터전은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봐도 ‘건물주가 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다.

얼마 전 다녀온 삼릉 줄사택은 지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주차장 등을 조성하자는 의견과 역사적 가치 검증을 통해 문화특구로 개발하자는 의견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삼릉 사택을 그대로 철거한다면 역사의 터전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말 테다. 전 세계에서 유행이라는, 지역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동네 빵집, 카페, 공동 주택 등의 주인이 되는 ‘시민자산화’ 논의라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터무늬 있는 연극’처럼 일상의 터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한편, 그 터전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한 시도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날 연극에서 찍은 도장의 질문이 여전히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개발이 사람을 떠나가게 하는 걸까 모이게 하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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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척 들어서서 ‘밥 한 그릇 주’ 하고는 목로 걸상에 걸터앉으면 1분이 못 되어 기름기가 둥둥 뜬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가 앞에 놓여진다. 파양념과 고춧가루를 듭신 많이 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가지고 훌훌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란 도무지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가 없으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없다.”

식민지 시기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12월호에 실린 ‘문자먹방’ 가운데 하나다. 이 잡지는 조선 기생과 할리우드 배우를 아우른 연예계 이야기, 통속적인 흥미를 살살 긁는 뒷골목 애정 비화, 섹슈얼리티를 자극적인 양념으로 삼은 풍문과 얄궂기 이를 데 없는 괴담과 추문을 적절히 요리할 줄 아는 잡지였다. 먹는 소리, 문자먹방에서도 발군이었다. 음식을 자주 다루었고, 집중력이 있었다. 고릿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식민지 대도시의 풍경에, 일상의 풍속에, 연애하는 남녀의 산책길에, 밤 산책에, 당대 보통 조선 사람이 일평생 갈 일 없는 나라 이야기에, 어떤 상황에든 곧잘 먹는 이야기를 가져다붙였다. 일상의 음식을, 일상의 감각에 스며들도록 했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음식을 가지고 독자를 홀리려는 것일까? 갈 데 없는 설렁탕 이야기 아닌가. 글쓴이, 필명 우이생(牛耳生, 쇠귀. ‘生’은 남성을 표시하는 접사)의 붓끝을 더 따라가 보자. 그에 따르면 설렁탕이라는 말만 들어도 우선 구수한 냄새가 코로 물신물신 들어오고 터분한 속이 확 풀리는 것 같다고 한다. 겨울에, 겨울에도 밤-자정이 지난 뒤에 부르르 떨리는 어깨를 웅숭그리고 설렁탕집을 찾아가면 우선 김이 물씬물씬 나오는 뜨스한 기운과 구수한 냄새가 먼저 회를 동하게 한단다. 우이생이 보기에 설렁탕은 한마디로 “일반 하층계급에서 많이 먹는 것은 사실이나 제 아무리 점잖을 빼는 친구라도 조선 사람으로서는 서울에 사는 이상 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을 괄시하지 못”할 음식이었다.

‘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 여기 이르러 절로 무릎을 탁 친다. 조선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서 제를 올리고 끓인 선농탕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이제 음식 문화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론하지 않는 낭설이 다 부질없어지고, 조선 시대 몽골어 학습서인 &lt;몽어유해(蒙語類解)&gt; 속에서 곰탕에 해당하는 몽골어 ‘슈루’의 흔적 더듬기도 보람이 없다. 설렁설렁이랬다. 설렁설렁이란 바람이 가볍게 자꾸 부는 모양과 감각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부사다. 커다란 솥에서 탕국이 끓어오르며 가볍게 이리저리 이는 물결을 수식할 때에도 딱이다. 팔이나 꼬리를 가볍게 자꾸 흔들 듯이 가벼운 움직임, 가벼운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을 수식하는 말도 이 말이다. 설렁탕은 설렁설렁 끓고, 사람들은 설렁설렁 밤길을 걸어가, 설렁탕 한 뚝배기 설렁설렁 해치운다. 체면 차릴 것 없고 돌아볼 것 없다. 우이생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음식집이라면 제 소위 점잖다는 사람은 앞뒤를 좀 살펴보느라고 머뭇거리기도 하겠지만 설렁탕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해방적(解放的)이다.” 사람을 해방시키는 음식이니, 그야말로 맛있다는 음식 가득 늘어놓고도 입맛이 없어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끼지럭끼지럭’하는 친구도 “설렁탕만은 그렇게 괄시하지 못한다.”

위 이야기는 진품명품, 천하의 명물이라고 할 만한 조선 팔도의 대표 음식을 예찬한 칼럼 ‘진품·명품·천하명식팔도명식물예찬(珍品·名品·天下名食八道名食物禮讚)’에 할애한 꼭지에 속한다. 여기에 조선 대표 신선로, 전주 탁백이국(콩나물국밥), 진천 메밀묵, 진주 비빔밥, 서울 설렁탕, 개성 편수, 대구 대구탕반(따로국밥), 연백 인절미, 평양 냉면이 나란하다. 신선로 하나를 빼놓고는 모두 누구나 설렁설렁 먹을 만한 음식이다. 100년 전에 막 태어난 문자먹방은 누구나 만만히 대할 음식에다 이야기로, 수사로, 감각의 적극적인 표현과 관능의 구체적인 발현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서민의 음식에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무대예술은 종합예술이라 하지만 잘 조리된 한 가지 음식이나 잘 차려진 한 상 요리라는 것은 역시 훌륭한 한 종합예술”이라며 과감히 의미를 부여했다. 설렁탕, 탁백이국이라면 하층계급 음식이 제 매력으로 상하귀천 모두를 설득하고 아우른 데 박수를 보냈다. 편수가 보쌈김치와 어울릴 때에는 “식도락의 미각은” “황홀경”에 이른다고 했다. 인절미에 부친 말은 ‘사랑의 떡 운치의 떡’이다. 잡지다운 통속성은 그것대로 흐르되 의도 했든 하지 않았든, 음식에서 초보적인 민족주의 과제가 수행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조선어 통사의 개척과 함께였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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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최근작 <죽은 자로 하여금>은 사무장이 운영하는 요양병원의 병폐를 다룬다. 9만명 인구의 소도시 이인시의 한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무주’라는 인물이 종합병원의 비리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무주’가 비감 어린 정의감으로 밝혀낸 적폐 당사자는 사실, 거대한 비리의 한 고리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 또한 거미줄 같은 비리의 연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사무장병원의 실태는 이런 것들이다. 첫째, ‘의료행위’보다는 환금성을 지향하는 ‘시장’으로서의 병원에서 ‘환자’는 치료대상이 아니라 사고파는 물건이다. 병원의 목표는 ‘환자의 완치가 아니라 병상이 비지 않는 것’이기에 보험급여의 노인들은 산술에 의해 수급되거나 배제된다. 둘째, 기업으로서의 병원은 제약회사는 물론 기타 의료 관련 업체들과 부풀리기식 거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 종합병원 관계자들은 모두, 의료진도 예외 없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사기와 거짓을 묵인하고, 그리하여 거대한 타락의 씨줄과 날줄로서 부패를 양산하는 데 기여한다.

‘무주’는 혁신위원회에서의 활약으로 병원운영의 실권자이자 환자 ‘삐끼’인 ‘이석’의 비리를 적발하고 사직하게 만들지만, 그 행위가 정녕 ‘정의감과 도덕심’의 발로인지 혹은 사무장의 농락에 의한 대리 행위였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태어날 아이를 위한 정의사회 구현이 그의 내부고발을 정당화시켜주었지만 그마저도 유산되고, 상사의 명령에 의해 체납병원비 관리직을 맡게 되자 무주의 고뇌는 더욱 깊어진다. 병원비를 장기체납한 노인 환자를 번쩍 들어 간이침대에 옮기고 쇼핑백에 환자의 초라한 물건을 담아 던질 때, 무주는 이제 정의로운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처럼 ‘악의 평범성’을 상징하는 괴물로 변한다. 괴물은 무주만이 아니다. 응급실에 실려온 늙은 아버지를 묻지도 않고 살려놓았다고 악을 쓰는 자식들, 그리고 자발적으로 타락의 ‘용접공’으로 기능하는 직원들로 확장된다. 무서운 것은 ‘우리’는 결코 ‘그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의 변증법>에서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부르주아 문명 공포의 두 이름으로 칭했다. 그에 의하면 이 두 괴물은 각각 산업혁명기에 탄생한 노동자와 자본가를 상징한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사람의 신체기관을 수집해서 만든 일종의 패치워크 누더기이다. 괴물은 아내를 얻고 인간처럼 살기를 욕망하지만, 그 불가능성을 알고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가족을 살해하고 멀리 달아난다. 프랑코 모레티는 이 “집단적이고 인공적인 피조물”인 괴물에서 마르크스가 묘사한 소외된 노동의 변증법, 즉 ‘더욱더 기형화되고 야만화되고 무력해지고 노예화되는’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성을 읽어낸다. 반면 루마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은 이름만 귀족일 뿐, 손수 가사일을 돌보고 사치를 삼가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내면화한 검소한 자본가를 의미한다. 드라큘라는 난폭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으며 다만 한 방울의 피도 허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타인의 피를 빨며 자본의 생리를 실행할 뿐이다. 이 인격화된 자본은 “흡혈귀처럼 오직 살아있는 노동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으며, 더 많은 노동을 빨아먹을수록 더 오래 사는 죽은 노동”을 의미한다.

프랑코 모레티가 부르주아 문명 공포의 상징으로 지목한 두 괴물은 편혜영의 소설에 나오는 괴물들과 다르지 않다. 교통사고로 팔과 다리에 철심을 박고 누워있는 ‘이석’의 아들이 그렇듯, 병들고 가난한 환자들은 ‘인간’에서 삭제당한 프랑켄슈타인들이고, 이들의 피로 생명을 유지하는 병원은 흡혈귀이다. 그러나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경계는 모호하다. 편혜영 소설의 평범한 병원 직원들이 헌신적인 노동자와 비리대행자를 오가듯, 두 괴물을 조합한 닮은꼴들이 주위에 즐비하다. 가정과 직장에서, 거리에서 갑을관계를 수없이 바꿔가며 사는 우리들은 프랑켄슈타인인가, 드라큘라인가. 조직의 작은 부속품이 되어 성실하게 굴러가는 우리들은 착취자인가, 피착취자인가. 김수영 시처럼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다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선량하기까지 한’ 적들은 사방에 그리고 우리 내부에도 있다는 것, 김수영 말대로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토록 어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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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커뮤니티에서 내 저서 &lt;한국, 남자&gt;가 5·18민주화운동을 모독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 근거는 책의 목차 중 ‘남성성의 극한: 80년 광주의 공수부대’라는 부분이다. 놀랍게도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목차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을 하겠다거나 5·18기념재단에 제보를 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중이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군이 치른 3번의 ‘전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내전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다. 두 번째는 희박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 박정희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참전했던 베트남전쟁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전쟁이 바로 신군부가 정당성 없는 군부독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광주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였던 5·18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했던 계엄군이다. 생각해보면 계엄군의 대부분은 직업군인이 아니라 징집된 병사들이었다. 일부의 이탈이나 저항이 존재했지만 계엄군은 마지막까지 대오를 유지하며 광주의 시민군을 학살하고 도시를 무덤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징집된 병사들, 즉 군복무가 끝나면 다시 시민이 될 사람들이 이런 잔혹하고 부정의한 일에 항의하지 않고, 그 명령을 수행했는지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물론 그들은 이탈하면 죽인다는 상관들의 협박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병사들을 골라내 때리고 기합을 주는 내부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광주의 시민들이 다 간첩이라는 가짜정보를 세뇌당하듯 주입받았다. 또 진압 과정에서 동료 병사가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며 증오심을 키웠고, 산속에서 숙영을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을 때리고, 고문하고, 강간하고, 죽였느냐고 묻지 않을 수는 없다. 그로부터 내가 발견한 것은 한국 사회의 권력자들이 만들어 내고자 했던 남성성의 한 극한이다. 이는 18세기 무렵 최초의 근대적 남성성이 등장했을 때부터 모든 권력의 꿈이었다. 의문을 갖지 않는 건장한 육체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고, 더럽고 잔인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남자들. 국가는 이 남자들을 모든 권리를 가진 일등시민으로, 나머지 비남성들을 이등시민으로 만들고 법과 제도에서부터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차별대우했다. 그렇게 일등시민이 된 남자들은 군대와 일터와 사회에서 권위에 복종하고, 대신 이등시민들을 착취하면서 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상대적 우위를 누렸다. 이들의 충성은 요란한 군복을 입은 늙은 장군들과 비단옷을 입은 부자들에게 바쳐졌고, 이들은 평범한 남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착취하면서 돈과 명예를 독식했다.

이것이 내가 이야기하는 ‘남성성’이다. 그러니 나로선 대체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남성성은 좋은 것인데 그것의 극한이 공수부대라고 했으니 광주를 모독했다고 생각했을까?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의 ‘역사’로 편입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두 번의 정부를 거쳐서야 가능했다. 아직도 미처 밝히지 못한 진실들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광주에 북한군이 있었다는 날조를 유포하고 있으며, 과거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에 기념행사 때마다 크고 작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단순히 ‘민주화운동’이라는 화석화된 말로는 광주를 알 수도, 지킬 수도 없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대체 광주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에 대한 다른 관점과 해석이 광주에 대한 모독이란 말인가? 그저 마음에 안 드는 책에 광주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수아비와 싸우는 꼴이야말로 광주를 빌미로 누군가를 괴롭히려는 심보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아직도 신고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얼마든지 신고하시길. 참고로 5·18기념재단은 기부도 받고 있다. 뭐가 더 생산적일지는 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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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지역의 명문여고를 졸업한 아내에게 출신고의 교훈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을 일이 있었다. 그는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착한 딸’과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기억해 냈다. ‘참된 일꾼’은 내가 찾아서 보여주자 곧 그것이 맞다고 답했다. 그 교훈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는지 물어보니 “아니 별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아내가 졸업한 W여고의 교훈 3가지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고이든 남고이든 굳이 그 교훈에 ‘○○한 딸·아들’같이 특정 성별을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착한’이라는 형용사는 권장될 만한 것이지만 그것이 여성을 수식하고 나면 그 뜻이 묘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든든한’이라는 형용사가 남성과 어울려 ‘든든한 아들’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면 더욱 한 단어의 훼손이나 오염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 딸은 착해요” “우리 아들은 든든하죠” 등과 같은 익숙한 결합은 단순히 국어사전에 명시된 의미를 넘어서, ‘훈’을 건네는 주체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사회적 욕망이기도 하고 가문(가정)이라는 소집단의 욕망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사회는 착한 딸들에게 많은 순종과 희생을 강요해 왔다. 착함을 강요받은 딸들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받지 못했고 돌봄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났다. 그들은 참된 일꾼이 되어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가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거나 형제의 학비를 보탰다. 1970년대의 이름 없는 어린 여공들은, 자라서 어진 어머니로서 착한 딸과 든든한 아들을 키워내는 역할까지를 도맡았다.

<별들의 고향>(1973)이나 <영자의 전성시대>(1973)의 서사이고, 최근에는 <우리들의 누이>(2018)라는 소설에서도 이 시기의 여성들을 다루었다. 그런 젊은 날의 서사를 가진 여성들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들에게 그만한 빚을 지고서도 여전히 염치없이 그 훈을 다음 세대에게까지 전하는 데 열심이다.

나는 나의 자녀가 (특히 딸이) 3년 동안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라는 훈을 보며 등교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새겨진 큰 바위를 보는 일도, 그것이 명시된 교가를 부르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그가 착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나와는 달리 어진 부모가 되기를 바라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참된 노동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순종하거나 다른 형제를 위해 희생하지 않기를 더욱 바라고, 결혼과 출산을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기를 더욱 바라고, 스스로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더욱 바란다. 그러니까 사회적 개인이 아닌 온전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공립여학교의 교훈이나 교가를 직접 찾아보면서, 나의 아내가 졸업한 학교의 사례가 특별한 것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성실, 순결, 봉사’라든가 ‘겨레의 참된 어머니가 되자’라든가 ‘여성의 착한 꿈은 여기에서 자라고’와 같은 훈들을 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그만 미안해지고 말았다. 별로 이상한 교훈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생명을 다한 줄 알았던 언어들은 학교에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런데 W여고는 몇년 전에 교훈을 바꾸려고 시도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교감으로 재직했던 모 선생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도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라는 교훈이 낡은 것이라 생각해 바꾸고 싶었다. 학생·학부모·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01명이 찬성하고 402명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훈 개정을 위한 공모전을 열기로 했으나 총동문회에서 만장일치로 반대했다는 것이다. 항의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온 졸업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 시기 지역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동문회는 “시대가 변해도 교훈은 변치 않는 학교의 전통”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제는 노년이 되었을 W여고의 초기 졸업생들은 착한 딸로서, 어진 어머니로서, 그리고 참된 일꾼으로서 자신의 삶과 삶의 태도를 형성해 왔을 것이다. 그 언어에 익숙해진 몸은, 그것을 쉽게 ‘전통’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 훈이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익숙해지고 만다.

나는 주변의 훈을 바꿀 것을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다. 교훈뿐만 아니라 사훈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일상공간의 모든 훈을 바꿀 필요가 있다. 순결, 정숙,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래미안캐슬아트빌, 교수마을과 같은 기괴한 언어들이 여전히 이 사회를 포위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이 되어서는 안 되고, 특히 그 언어로 자신의 몸을 형성해 갈 어린 세대들(학생들)에게 전해져서는 안 된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일은 누군가를 구속하고 승리를 선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우선, 주변의 언어를 전복시켜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그 훈들을 바꾸어야 한다. 그에 더해 당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훈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당신의 아이들이 여전히 그 훈을 노래하고 교정을 거닐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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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울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다. 울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던 시절도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떼를 쓰고 투정을 부렸다. 툭하면 울어서 울보, 여차하면 떼를 써서 떼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울어서 솜사탕을 얻고 떼써서 아이스크림을 얻었다. 녹는 것들이 많았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들이 많았다.

암 투병 중인 아빠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새겨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을 하고 귤을 까먹고 낙엽을 두 장 주워 서로 한 장씩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성인이 되고 이런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내가 몰랐던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남은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

얼마 전 허수경 시인의 사십구재가 있었다. 나는 약력 보고를 했는데, 약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긴 글을 적었다. 더 무색한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능하다면 수경 누나가 했던 말과 썼던 글들을 밤새 들려주고 싶었다. 사십구재를 마치고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아빠가 응급실로 옮겨졌다.

주치의가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몸과 마음은 한통속이었다. 지지난주까지 나와 근린공원을 산책했던 아빠였다. 20여년 전 얘기를 나누며 그땐 왜 그랬을까 얘기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얼른 몸을 추슬러 바다를 보러 가자고도 했다. 아빠는 바다를 보면 아득해진다고 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말,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좀체 떠나지 않았다. 구급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밤,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나는 아빠에게 무엇을 얼마나 했을까. 올 한 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그 무능함을 끝내 외면할 수 없어 슬펐다.

평소에 아빠는 할 것은 다 했느냐고 종종 물으셨다. 채근하거나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할 것에는 할 일뿐만 아니라 할 말, 나아가 할 도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차근차근 할게요, 라고 답하면 아빠는 씩 웃었다. 그래,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게 좋다. 그 말에 얼굴이 벌게져 헛딴데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요즘 들어 애를 그렇게 쓰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말했어야 했다. 저도 당신이 제 아빠인 게 좋아요. 부자지간이라 쉽게 나오지 않던 말이, 실은 부자지간이라 부러 애써서 해야 할 말이었던 것이다.

아빠에 대해 알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 또한 나를 슬프게 했다. 긴 시간을 함께해도 몰랐던 것들이, 상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심함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자책하다가도,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을 아직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온기를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무리 준비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마음일 것이다. 물질적 준비는 차곡차곡 모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적 준비는 상상을 요하는 것이다. 소중한 대상이 떠나고 난 다음 장면은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다.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에서 어떤 것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만다.

아버지라고 안 쓰고 아빠라고 쓴다. 아버지라고 안 부르고 아빠라고 부른다. 아빠라고만 부르던 시절, 아빠는 뭐든 해낼 수 있었으니까. 말만 하면 뭐든 만들어냈으니까. 배구도 잘하고 바둑도 잘 두고 당구도 잘 치던 아빠였으니까. 한자와 수학에 능했던 아빠였으니까. 시 쓰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던 아빠였으니까.

허수경의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개정판 작가의 말을 읽는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아빠에게 사랑한다, 라고 말해야겠다. 잘 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잘 떠나는 일일 것 같다. 남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잘 보내는 일일 거다. 아빠가 한 번이라도 더 웃으실 수 있게 말을 많이 건네야겠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야겠다.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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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