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생인 나는 작년에 나와는 10살 차이인 90년대생, 70년대생 두 사람과 독특한 인연으로 만났다. 그들과 적당히 친해지고서는 언젠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이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것이 ‘2002년 월드컵’이었다고 덧붙였다. 2002년에 나는 스무 살이었다. 태극기를 들고 신촌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무척 행복했다. 사실 나에게 그 거리는 전경과 대학생이 아니면 서 있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최루탄 때문에 손수건을 항상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2002년에 아, 이렇게 거리에 함께 모여도 되는구나, 그리고 멋진 일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을 얻었다. 내가 한 개인이자 청년으로서 대한민국의 몇몇 현대사의 순간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용기도 그때 내 몸에 새겨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답을 짐작해 보았는데, 1970년대생은 IMF를, 90년대생은 최근의 촛불집회를 각각 말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정확히 20살 차이가 나는 둘은 동시에 같은 답을 했다. 그러니까, 2014년 4월16일, ‘세월호’였다. 그 이유도 거의 비슷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저의 아이가 거기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했어요.”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나는 2014년에 막 서른이 넘은 참이었다.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일들이 밀려들었던 때다. 나뿐 아니라 83년생인 주변의 친구들 모두가 비슷하게 순탄하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주변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서른 즈음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월호의 뱃머리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먹먹하기는 했으나 ‘내가 저기에 있다면’ 혹은 ‘나의 아이가 저기에 있다면’ 하는 데까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나의 공감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도 있겠고 출산과 육아라는 미션을 수행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70년대생과 90년대생의 몸에 세월호라는 재난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재난으로 깊게 새겨져 있었다.

개인과 동시하는 역사는 그들의 몸과 사유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재난이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서해훼리호의 침몰을 지켜보았다. 그 잔상이 내 몸 여기저기에 여전히 묻어 있다. 그러나 재난보다도 오히려 그 재난을 극복하는 방식이 그것을 목도하고 자기화한 이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게 된다. 잘 극복된 재난은 그 이후의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다시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반면 잘 극복되지 않은 재난은 오히려 그 이후를 더욱 참혹하게 만든다. ‘어떻게 구조했는가’만큼이나 ‘어떻게 사과했는가’ ‘어떻게 진상을 규명했는가’ ‘어떻게 책임졌는가’ ‘어떻게 위로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왜?”라는 여러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재난 이후의 재난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세월호를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규정한 90년대생과 70년대생 두 사람은, 하나의 공통점을 더 드러냈다. ‘나의 아이들을 외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것과 ‘기회가 되면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70년대생은 지금 한국에 없다. 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라는 그의 능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세월호 이후, 이민이 삶의 한 명제이자 목표가 된 어느 세대들이 탄생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개인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몸에는 이미 그 단어가 새겨지고 말았다. 80년대생들이 갖고 있는 ‘탈조선’이라는 해묵은 유행어와는 그 차원 역시 다르다. 이 자체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대한민국이 직면한 거대한 재난이다. 

그들의 마음을 구조하는 데는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현재진행형인 재난이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를 내가 만난 70년대생과 90년대생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 5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겨움을 호소하기에는 오히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몇 주기라는 기억의 순환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세월호라는 재난을, 그 재난 이후의 재난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남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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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5년이 흘렀다. 당시 나는 미디어를 통해 전원 구조 속보를 접한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가 나자마자 재빨리 대처해 승객을 구해내는 ‘그런 나라’에 산다는 사실에 우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전원이 구조되었다가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이 순식간에 실종자 상태가 되었다. 사는 곳과 상관없이 우리는 한동안 팽목항에 마음을 보냈다.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 통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오히려 비탄이나 통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놀람은 어처구니없음으로, 무기력은 분노로 바뀌었다. 비탄은 어이없음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슬픔과 다르다. 아직까지 비탄이 가시지 않은 데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폐쇄회로(CC)TV 관련 증거자료가 조작·편집된 정황을 밝히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안산에 있는 4·16 기억저장소에서 유가족들은 아직도 울고 있다. 참사 당시와 진상규명 투쟁을 할 때보다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애써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상실감은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사람의 속에 있다가 느닷없이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길 가다 거센 바람이 불 때, 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 무슨 징조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손바닥 위에 떨어질 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은 망연해진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조성된 ‘세월호 기억의 벽. 서성일 기자

그러므로 어떤 감정 앞에서는 “지겹다”고 말하면 안 된다. 슬픔이나 괴로움 앞에서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자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정은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지만, 반대로 밀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한없이 빽빽해져서 그 감정 이외의 다른 감정을 일상에 불러들일 의욕을 잃게 만든다. 코미디를 보며 웃기도 하고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더 큰 슬픔이 된다. 내가 웃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것에 신기해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움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영화 <생일>을 보았다. ‘생일 시’를 읽는 후반부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없이 울었다. 생일 시는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애간장을 저미는 편지 같았다. 이 시는 실제로 정혜신·이명수씨 부부가 기획한 세월호 유가족 생일 모임에서 낭독되었는데, 생일 시들은 한데 묶여 <엄마. 나야.>(난다, 2015)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시들은 학생의 육성을 통해 생생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이 책의 저자가 시인이 아닌 서른네 명의 단원고 아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 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선명해져서 섣불리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기억이라도 남아 있어서 살아갈 최소한의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남은 자는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갠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아파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김상혁의 시 ‘길은 어떻게든 다시’(<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현대문학, 2019)를 읽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길은 어떻게든 다시/ 소리…… 침묵…… 소리로 이어져 형은 다시/ 동생의 손을 잡고 개는 최고로 주인을 사랑하고/ 모든 자동차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다시 살고 있다. 어김없는 일들 사이에서 더 이상 같지 않은 일을 헤아리며 길 위에 소리와 침묵으로 이뤄진 발자국을 찍고 있다.

내년에도 4월16일이 올 것이다. 4월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여전히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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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인데?” 한 친구를 매개로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거기에는 중년의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도 있었다. 친구는 그와 내가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에게 내 정보를 흘렸고, 그는 관심 보이며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작품을 준비하며 친구들의 사례를 촬영하고, 랩도 배우고 있다고 답했더니 대뜸 돌아온 말은 별로라는 ‘평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별로인지, 만약 정말 별로라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만 뒤따른다면. 그러나 그는 면접관이라도 된 양 질문만을 이어갔고, 내 답변에 대한 반응으로는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네 작품은 안 뽑겠는데?” “내가 프로그래머라면 상영 안 하겠는데?”와 같은 깎아내림만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다. 관련 경험이 나보다 많은 사람이니 성실히 정보를 제공하면 뭔가 쓸 만한 통찰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나 보다. 헛된 기대였다.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오는 길,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단단히 털린 것만 같은 기분.

“그런 사람들 문창과에도 많아요!” 며칠 뒤 시와 소설을 쓰는 지인들과 만났을 때 그 감독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다들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알겠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 소설가는 한 창작 비평 모임에서 써 온 작품에 대해 폭언에 가깝게 깎아내리며 글쓴이를 낙담시킨 뒤, 술자리에서는 다정하게 대하며 격려하는 방식으로 후배를 길들이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선배는 정작 자기 소설은 안 쓰고 남의 소설 평가하는 데 열심이라고. 평가하는 위치를 점할 때 느껴지는 우월감. 자기 말을 귀담아듣는 존재를 눈앞에 두며 일종의 권력을 확인하는 감각에 취한 채 고여있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길들이기’ 방식으로 연애를 시작한 일도 수차례였다고.

그러고 보니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그런 부류의 인간들에게 쉽사리 휘둘렸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 들어간 뒤의 삶을 경험해 본 적 없어 막연했고, 일단 입사를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고, 손에 쥔 것을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내 것이 보잘것없어 보여 불안하고…. 그 시기, 가고 싶은 길을 앞서가는 사람은 영웅처럼 보였고,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설령 함부로 평가하거나 섣불리 가능성을 재단하는 말이더라도. 이제 생각해보니 그 녀석들도 갓 회사 생활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을 텐데, 후배들 훈계하며 뭐라도 된 기분을 만끽하고, 우러름 받으며 자존감 부풀리고, 잠재적 연애 대상을 물색했던 것이다.

나는 결국 회사에 들어가지 않는 삶을 택했다. 몇 가지 자기 주도 프로젝트를 벌였고, 그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경험은 남들이 뺏어갈 수 없는,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나의 것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덕에 이제는 수평적으로 의견과 감상을 교환할 수 있는 대상과 비틀린 마음으로 폭언을 일삼는 대상을 분별하는 눈을 얻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고 또 당해버렸네.

쉽게 일축할 수 있는 직업적 명사보다 꾸준히 해온 행동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더 잘 설명한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나를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 활동은 주로 말과 글로 이뤄졌지만, 더 효과적이라면 다른 방법을 익혀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심자로서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익히는 시기, ‘자존감 강탈자’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것. 나이 먹는다고 절로 인격적 성숙을 이루는 게 아니며, 경험 부족한 이들을 휘두르며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는 것. 또 한 번 경험했네. 앞으로도 새로운 분야에 흥미 생기면 또 뛰어들 텐데, 그때마다 거듭 당할 수밖에 없는 건가….

어쨌거나 나는 그때 그 다큐멘터리 감독이 혹평했던 그 기획 그대로 작품을 완성했다. 상영의 기회와 관객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고, 영화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감정이 와 닿았다고 말하는 관객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결국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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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은 글쓰기 외에도 여러 요소로 구성된다. 글을 쓰는 시간이 주를 이루기는 하나 그 앞뒤로, 혹은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딴짓이 있다. 나는 그런 딴짓의 시간이 수업을 지속시킨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안 하는 게 더 편한 일이다. 귀찮음을 극복해야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 아이들의 귀찮음을 무릅쓰게 만드는가. 나의 오랜 탐구 주제였다. 

수업을 시작하면 입을 쭉 내밀고 토라진 얼굴로 앉아있는 아이가 보인다. 집에서 가만히 쉬고 싶어서 꾀병을 부려 보았지만 부모님께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각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올리브영 같은 화장품 가게에서 샘플을 발라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모두 다른 컨디션과 다른 사연을 가지고 모인다. 그들과 가장 먼저 하는 건 근황 토크이다. 지난 한 주간 어땠는지,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는지 내가 묻는다. 성의 없이 물으면 성의 없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우선 내 근황을 솔직하게 전해야 한다. 굿 뉴스로는 2년 만에 드디어 교정기를 뺀 사실을, 베드 뉴스로는 어떤 잡지에 연재를 하다가 잘렸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럼 아이들도 자신의 최근 소식 중 몇 가지를 엄선하기 시작한다. 날마다 다른 변수와 디테일이 추가되므로 말할 거리는 언제나 생겨난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떤 아이는 글쓰기 수업을 가는 버스 안에서 근황 토크를 준비한다. 또 다른 아이는 카톡 대화 내역을 뒤져보며 한 주간 주고받은 텍스트를 살펴본다. 자신이 말할 차례가 오면 다들 이렇게 말문을 연다. “저는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매주 다르다. 소식을 다 전하고 나면 옆에 있는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 말고 다른 이에겐 어떤 소식이 있는지 듣는 게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잡담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를 재미있어 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부러운 마음이나 못마땅한 마음일 때도 있다. 남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아이들 마음속에서 달궈지는 것을 나는 본다. 우리는 남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무수히 많은 걸 배우는 존재들이니까. 칠판에 글감을 적는 것은 그 무렵이다. 아이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간식을 준비한다. 

열세 살 김도현은 이렇게 썼다. “글감이 주어지면 난 먼저 망설인다. 몇 분간 첫 문장을 생각하며 옆에 놓인 간식을 한 입 베어 먹고 뚫어지게 글감을 쳐다본다.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면 빠르게 캐치해야 한다. 스토리를 구상하고 내가 만족을 느낄 것 같으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어쩔 때는 어려운 글감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 느낄 것 같아도 일단 써본다. 그러면 다음에 어려운 글감을 또 만나도 전보다 더 잘 써진다.” 빈 원고지를 앞에 둔 외로운 시간에 누군가는 간식의 힘을 빌려 첫 문장을 쓴다. 글쓰기 수업을 간식의 맛으로 기억하는 아이도 있다. 

열네 살 최가영은 이런 문장을 썼다. “글방에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참 다양한 간식들을 먹으며 참 많은 글을 썼다.” 이렇게 쓰고서 최가영은 어쩐지 먼 곳을 보는 것 같았다. 글쓰기는 글쓴이를 멀리 가게 만들기도 한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나에게로든 남에게로든 말이다. 그리고 간식은 멀리 갈 체력에 보탬이 된다. 열한 살 김지윤은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간식으로 나온 가래떡을 언니들이 손으로 가지고 놀던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가래떡을 가지고 놀던 언니인 열다섯 살 오승아가 쓴 인상적인 순간은 또 다르다. “글방에서 누군가가 특이한 소리로 재채기를 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모두가 웃었을 때. 몰래 먹은 야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생리컵에 대해 말했을 때. 기다란 가래떡을 먹으며 이걸 찍어먹을 간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서로 다른 기분과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글쓰기란 여전히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잡담과 간식을 기억하며 다음주에도 늦잠을 포기하고 수업에 온다. 떠들며 먹고 마시다가 명문장이 얼렁뚱땅 탄생되는 날들이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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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건 듯 불어 잠자던 모란대에 나무마다 잎 트고 가지마다 꽃피는 3, 4월 긴 해를 춘흥에 겨워 즐기다가 지친 다리를 대동문 앞 드높은 2층루에 실어놓고 패강(浿江, 대동강) 푸른 물 따라 종일의 피로를 흘려보내며 그득 담은 한 그릇 냉면에 시장을 맞출 때!”

식민지시기의 인기 잡지 ‘별건곤’ 1929년 12월호에 실린 평양냉면 예찬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의 한국어로 풀어 써도 바로 읽기가 만만찮다. 요컨대 봄바람 살랑 부는 봄은 생명이 움트는 봄의 정취에 취해 대동강 푸른 물 따라 놀기 좋은 때이며 “가득 담은 한 그릇의 냉면”의 제철이라는 소리다. 여기서 평양냉면을 수식하는 한마디는 “사시명물(四時名物)”이다. 곧 봄여름가을겨울의 냉면 맛이 다 따로 있으니, 사계절이 다 이유 있는 냉면의 제철이라는 뜻이다.

냉면은 식민지시기에 이미 사계절의 별미로 대중에게 자리를 잡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의 미식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품평도 있다. 심노숭의 입에는 메밀국수라면 평안도 것이 최고이고, 그 가운데서도 차게 조리한 국수가 더욱 좋았다. 심노숭이 냉면의 원형에다 지역과 조리법에 미식 담론을 더한 때는 유럽 미식학의 새 장을 연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75~1826)이 프랑스 음식을 열심히 먹고, 먹은 만큼 문자먹방을 하던 때와 겹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마침 새봄에 냉면을 들던 눈 파란 사람이 하하 웃는다. 한때 북미, 유럽에서는 젓가락질할 줄 알고, 게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스시’와 ‘사시미’를 먹을 줄 알면 제법 힙스터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한국에 온 이방인 가운데는 그럴듯한 낯빛으로 “아일럽 냉면!” 하고 말하지 못해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냉면을 해치움으로써 힙스터 단계 승급을 바라는 이도 더러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이 바뀌었다. 몇 해 전만 해도 낯선 음식, 못 먹으면 할 수 없지 하는 분위기가 우세하지 않았나.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음식에서 영어권의 ‘hot’ 그리고 ‘cold’는 뜨거워 입천장 까질 지경이나, 이뿌리 시릴 만큼의 차가움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 일상의 상온에 견주어 따듯한 정도, 상온 또는 상온보다 살짝 식은 정도가 각각 그네의 ‘hot’이고 ‘cold’이다. 이 땅에 온 많은 이방인이 극단적으로 뜨겁거나 극단적으로 찬 먹을거리는 별로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설렁탕, 삼계탕, 콩나물국밥 등을 코앞에 두고, 바로는 먹지 못하고 숟가락으로 국탕의 표면을 살살 헤집으며 제발 한 김 빠지기를 기다리는 모습, 막 끓어오른 전골을 접시에 덜고서도 한참 기다리는 모습은 그네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냉면에서도 그랬다. 많은 이방인이 살얼음 엉긴 냉면 대접, 또는 얼음이 풀렸다 해도 표면에 이슬 맺힌 면기를 받고 나면 잠깐 멀뚱멀뚱이었다. 같이 앉은 한국인 흉내를 내 육수를 들이켰다가도 싱긋 웃으며, ‘실례지만, 나는 냉기 더 빠지면 먹을게’ 하는 몸짓과 표정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확 달라졌다. 너 냉면이야? 나 미식가에 힙스터야! 아시안 퀴진과 코리안 퀴진 다른 줄 알아. 전에 없던 ‘cold’도 감수하고, 볼 미어터지게 사리도 우겨 넣고, 제법 호쾌하게 면기를 탁자에 탁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지! 하는 이방인들과 더러 냉면을 들게 된다. 여기 이르기까지 억지는 소용이 없었다. 

외국인들아, 제발 한국 음식의 대단함을 좀 알아줘 하는 안달복달은 늘 효과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우리는 외래 음식을 감각하고 소화한다. 뒤집어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런지 안 그런지 이방인 친구를 데리고 새봄에 냉면 나들이 한번 하시라. 중간에 “심노숭이라고 브리야사바랭이랑 동시대인이야.” 한마디 슬쩍 찔러 보시라. 그네도 마찬가지다. 내 눈앞의 음식이 연원 깊다는 사실을 멋쟁이의 문자 속으로 증거하면 어쩐지 더 대단해 보이게 마련이다. 분위기 됐을 때 내놓으면 된다. 먹고 있을 때, 듣고 싶을 때 슬쩍 나를 꺼내 보이기. 광고홍보는 이쯤으로 충분하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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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저)를 읽었다. 그저 직장 생활에서 오는 우울감을 달래볼까 싶어 집었는데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어 푹 빠져 읽었다. 뉴스를 채우는 수많은 갈등은 멀리서 보면 시대정신이라는 전선을 형성한다. 그런데 요즘 여러 사건들이 어지럽게 벌어져도 그것을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전선에 ‘직장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이니 많은 것이 선명해졌다.

촛불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정치적으로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준 시민들이지만 직장 문만 열고 들어가면 봉건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IT업체 직원은 사장에게 두들겨 맞아도 참아야 했고 간호사들은 기강이라는 이름 아래서 태움을 당해야 했다. 어떤 승무원은 오너의 딸이 문제 삼은 땅콩 때문에 울분을 삼키며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고, 다른 항공사에선 회장님 앞에서 ‘재롱 잔치’가 벌어졌다. 매장에선 손님이 갑질하며 무릎을 꿇게 해도 직원은 그 수모를 견뎌야 했다.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렇게 만들었다. 현직 검사는 성추행을 당해 항의한 뒤에는 좌천당해야 했다. 방송사에선 얼마 전까지 장시간 노동이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어 왔다. 함께 일했던 어느 작가는 전에 MC 한 명이 자장라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녹화 때마다 대기실 앞에서 부르스타에 불을 올려야 했다며 씁쓸해했다. 어느 대학 조교는 여전히 담배 심부름을 하고 있고 교수 자제분이 결혼하면 청첩장을 접어야 한다.

어느 특이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육아휴직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엄마들, 노래방에 끌려가서 몇 시간씩 노래를 불러내야 하는 사람들, 퇴근 시간이 오면 존재하지 않는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헛되이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나아가 불법이 강요되어도 해야 하거나 모른 척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벌어진다. 직장은 가정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닿지 않는 ‘가까이 있는 변방’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잃었다. 국민연금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조씨 일가의 추락이 거의 ‘괘씸죄’ 때문이었다는 것에도 방점을 찍을 만하다. 횡령 등 각종 범죄에도 경영권을 지켜 온 다른 그룹 오너들과 비교했을 때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벌인 일련의 사건들은 한편으로 사소해 보이지만 직장인들이 폭넓게 느끼는 공분 포인트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컸다.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상실은 직장 민주주의 결여가 회사 경쟁력 부족의 원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직장 민주주의는 시기상조이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어차피 남의 돈 먹는 건데 말 안 들으면 어쩌자는 거냐는 생각도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고, 존망을 두고 일사불란해야 하는 조직이 민주적이면 일이 되겠냐는 생각도 흔했다. 하지만 조직의 비민주성이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슬슬 체감하기 시작했다. 또 젊은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데 ‘직장 내 분위기’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급여가 적더라도 ‘좋은’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선진적인 기업들이 앞장서서 직장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곳에 인재들이 몰릴 거다. 우석훈 선생의 말처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만 절에는 땡중만 남는다. 미투 운동을 꽤 많은 젊은 남성들이 지지하고 있다. 그건 권력으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미시 파시즘과의 대결이라고 말할 때 가장 선명하게 이해된다.

국가의 민주화는 시민들이 다른 국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딜 수 있지만 기업의 민주화는 노동자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인력이 넘치고 자리가 부족한 시대라 해도 말이다. 다만 직장 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을 우리가 얼마나 가질 수 있고 요구하느냐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남모를 우울감이 거대한 우울감의 한 조각이었다는 기분이 들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연결된 어딘가엔 일 때문에 사람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있으니 우리의 감수성을 이 연대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김신완 MBC PD·<아빠가되는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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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들이 사용했던 펜을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7000원에 판매하려던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있었다. 펜 주인의 손편지가 동봉될 계획이었는데, 편지는 ‘등급 컷’이 높은 순으로 선착순 판매될 계획이었다. 논란이 일자 해당 동아리는 판매계획을 중지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상품’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시점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증발한 듯하다. 1998년에 출범했던 시민단체인 ‘학벌없는사회’는 2016년 해체를 선언하며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졌기에 학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학벌의 질서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사회경제적 권력의 획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도 서울대를 가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절과 다르게, 같은 서울대라도 부자와 빈자, 입시전형과 ‘등급 컷’에 따라 운명이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난한 아이들은 더 이상 서울대를 갈 수 없다. 학벌의 서열과 자본의 서열이 점점 더 빈틈없이 일치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개천의 용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중요한 것은 용이 아니다. 개천의 용이란 언제나 희망의 얼굴을 한 기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계급재생산을 위한 부자들의 온실에는 자녀들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필요하다면 시련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준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그것이 ‘경쟁’이라면 이들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서 적합하게 대우할 수 있다는 것은 이념이나 믿음의 영역에 더 가깝다. 애초에 그 기준 역시 돈과 권력의 바깥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격차가 더 깊어지고, 점점 돌이킬 수 없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박탈감에 대한 호소와 ‘갑질’에 대한 분노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오언 존스의 책 <기득권층>에서는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2002년의 어느 날, 지난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해 절망해 있던 보수당 정치인과 당원들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한 호텔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심각한 청중들의 얼굴과는 다르게 대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토니 블레어가 우리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미국과 함께 이라크 침공의 선봉에 서고, 민영화와 복지정책의 축소를 도모했다. 대처는 자신이 초석을 놓았던 신자유주의가 ‘적’에 의해 공고해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부패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법의 심판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학벌도 능력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들이고, 모두가 건물주의 꿈을 꾸며, 힘들게 입사한 정규직의 특권은 당연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혹시라도 나 모르게 과도한 복지혜택을 받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한다. 갑질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불평등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나의 박탈감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욕망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했고, ‘적’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와 우리가 비난하는 부패한 기득권자들 사이에는 현실의 골짜기와 인식의 실개천이 놓여있다.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퇴사해야만 삶에 대해 고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갈증과 환멸은 이 다른 생각의 부제로부터 연유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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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희정입니다. EBS <까칠남녀> 종방 후 1년 만입니다. 공중파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 여전히 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유튜브로 돌아왔습니다. 퀴어와 퀴어 앨라이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본격 퀴어 토크쇼 <손희정의 TMI>.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2019년 1월 초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기획, 제작하는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론칭한 <손희정의 TMI> 첫 녹화 날이었다.

전문 방송인도 아닌데 토크쇼 진행이라니.

이 어색한 만남의 시작은 2018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육방송 EBS는 악몽과도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보수 기독교를 필두로 반동성애 진영의 사람들이 “교육방송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방송사 앞에 모여 한 달 가까이 EBS 규탄 집회를 지속하고 있었다. EBS로서는 개국 이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증오와 악의를 대면하는 순간이었을 터다.

그들은 심지어 “EBS가 음란 방송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며 당근에 콘돔을 씌워 방송사 로비에 세워져 있는 (EBS 최고의 인기 캐릭터인) 방귀대장 뿡뿡이에게 던지기도 했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장 음란한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그토록 홀리한 분들이 어쩌다 이토록 음란한 행위를 하시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EBS에서 제작하고 있었던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가 2017년 12월25일과 2018년 1월1일 이틀에 걸쳐 <성소수자 특집 - 모르는 형님>을 방영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레즈비언(L),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인 게이(G), 양성애자인 섹스 칼럼니스트(B), 그리고 변호사인 트랜스젠더(T)가 출연하여 LGBT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주 쾌활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말이다.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싫어하는 반동성애 진영이 강하게 반발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시위 때문에 <까칠남녀>에 출연 중이던 양성애자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이 하차당하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공영방송이 혐오 선동에 이처럼 쉽게 넘어갈 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결국 은하선 하차에 불복한 일부 패널이 출연을 거부하면서 방송은 애초 계획된 회차를 다 채우지 못하고 허망하게 종영되었다.

당시 <까칠남녀>에 출연하고 있었던 나는 2017년 12월26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 지면에서 성소수자 특집 방송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때때로 “성소수자가 도대체 무슨 차별을 당하느냐”고 묻지만,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썼다. 그리하여 칼럼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백래시가 시작되기 전에 썼던 글이었지만, 결국 <까칠남녀> 케이스는 안타깝게도 내가 칼럼에서 했던 말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어버렸다. “당신들이 뭘 하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내 눈에만 띄지 말아라.” 성소수자 특집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난 오늘. 큐플래닛을 소개하기 위해 쓰고 있는 이 칼럼의 제목은 <‘보이는 것’이 들려드릴 이야기>다.

우리는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로부터 한 사회의 한계를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회가 지우려고 하는 존재들이 부득부득 얼굴을 드러내고 말하기 시작할 때, 그 ‘보이는 것’이 들려줄 이야기의 힘은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는 아직 그 가능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큐플래닛의 또 다른 프로그램 <퀴어 업데이트>에는 <까칠남녀>의 은하선 작가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신필규 활동가가 출연한다. 이 세계에 스며들어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가짜뉴스와 오해를 차근차근 풀어보는 방송이다.

‘보이는 것’을 통해 비로소 듣게 될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이 큐플래닛의 ‘구독’ 버튼을 누르실 시간이다.

<손희정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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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 이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게 됐다. 90%에 가까운 수수료를 지불하고 1만8000원을 환불받느니 차라리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자,라는 이유로 시작한 별것 아닌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 김민섭씨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적인 일이 의도치 않게 사회적인 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환불받고 치킨이나 같이 시켜 먹지 뭐하는 거야”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 항공권을 양도받은 누군가가 즐겁게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과정을 지켜본 나 역시 가성비 좋은 ‘소확행’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여행을 후원한 여러 개인들 역시, 그로 인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선한 연대, 우리 사회의 ‘착한 일’ 중 하나가 된 듯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여기에 답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착함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착한 일 코스프레 같은 것을 늘 목도하며 살아가고, 스스로의 착한 일 역시 잘 인식하지 못한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작은 결론은, 착해지고 싶은 존재는 사회적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착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두 가지의 행위를 강박적으로 지속했다. 하나는 ‘아동 정기후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헌혈’이었다. 한 달에 3만원씩 특정 아동에게 돈을 보냈고 한 달에 한 번씩 헌혈을 했다. 내가 그것을 시작한 계기보다도 사실 ‘시기’가 문제였다. 나는 그때 대학원 과정생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는 것조차 벅찼고 헌혈을 하러 갈 시간에 논문이나 더 쓰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후줄근하다고 할 수 있을 그 시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누군가를 돕고 싶은 심정이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밤새 논문을 쓰고 발제 준비를 해도 그것을 마치고 나면 몹시 허무했다. 내가 쓴 글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이 즐거우니까 버텨낸 것이기는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나는 이 사회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헌혈을 하고 나의 피를 바라보던 중, ‘저 피는 나의 글과는 다르게 누군가에게 쓰이겠구나, 그러니까 저건 사회적인 물건이구나’ 하는 감정이 찾아왔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사회적 존재로서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대학원을 수료하기까지 70번에 가까운 헌혈을 했다. 정기후원을 시작할 때의 사정도 비슷했다. 자매결연, 그 ‘결연’이라는 단어를 소유할 수 있음에 감격했던 것 같다.

착한 일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를 사회적으로 연결시킨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그 마음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행위는 하는 편과 받는 편 모두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어야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얇고 느슨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러한 착한 일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된다.

어느 아동과 연결되었던 날, 나는 “당신은 왜 후원을 하셨습니까?”하는 물음에 답해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는 “저를 위해 후원합니다”하는 한 줄을 적었다. 게시판을 살펴보던 나는 몹시 놀랐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후원의 이유에 “저를 위해서…”라고 적은 것이다. 사실 모두가 외로웠고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날 나는 별로 외롭지 않았다. 아직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하는 데 대한 답을 제대로 내지는 못했지만, 타인을 상상하는 데서부터 그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사회적 존재로서 외롭지 않기를, 당신과 누군가의 잘됨을 바라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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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현대문학, 2019)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와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 이 소설은 삼대(三代)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여성으로서 해당 시기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삶은 신산하기 이를 데 없지만, 엄마들은 딸이 앞으로 살아갈 삶은 훨씬 더 나았으면 한다. 나와 같지 않은 삶을 꿈꾸는 일은 나의 삶을 돌이켜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비단 엄마와 딸 사이뿐만 아니라 많은 관계에서 감정은 평면적이지 않다. 좋으면서도 싫고 한없이 고마워하면서도 못내 서운하고 사랑하면서도 틈틈이 미워한다. 이 모순된 감정들은 방패로 칼을 찌르는 것만큼이나 이상하지만, 우리는 어찌어찌 그 상황을 모면하면서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단출해졌을지언정, 그 관계 속에는 이미 역사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면서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굳이 이전을 톺아보는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게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서 서로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응당 해야 하는 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어서 더 말 못하는 일도 있고 가족이기 때문에 애써 숨겨야 하는 일도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가족에게는 자국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 자국은 불에 덴 자리처럼 바라볼 때마다 무언가를 환기시킨다. 예전에 있었던 일, 그때 들었던 그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거의 매일, 남겨진 자국을 바라보며 동시에 새로운 자국을 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할머니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봐라, 인아야.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관계도 마찬가지다. 결이 안 맞는다고, 취향이 다르다고 외면하기 일쑤였던 나 자신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또한 쉽게 부서지는 사람, 취약한 사람이어서 내게 적대적인 사람을 만나면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럴 때면 관계를 낫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알아왔는데도 단둘이 남겨지면 어색한 사이가 있다. 나는 지금껏 그런 순간을 피하려 잔머리를 굴리던 사람이었다.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전화할 데가 문득 떠올랐다고 말하며 잠시 자리를 뜨기도 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낫게 하려고 실없는 소리를 하는 때도 있었다. 가족에게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감 없이 튀어나오는 말들 중 상당수가 실언이었다. 이해받으려고만 했지 정작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녹두전은 번번이 부서졌다.

친애한다는 것은 친밀히 사랑한다는 것이다. 친밀한 사이, 그러니까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는 일은 상대를 궁금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친밀함이 친애함으로 가닿기 위해서는 상대를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귀담아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친애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토닥이며 관계를 노릇노릇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서로 좋은 말만 주고받아서는 형성되기 어렵다. 상대의 못난 점이나 부족한 점까지 내가 받아들여야 관계는 다음 단계를 맞이할 수 있다.

백수린은 소설 제목에 ‘친애하다’라는 동사를 두 번 썼다. “친애하고”와 “친애하는” 사이에는 다름 아닌 쉼표가 있다. 나는 그 쉼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사랑하기 위해서, 마침내 친애하기 위해서 들이쉬는 심호흡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참는 태도인가, 이해하기 위한 안간힘인가. 누군가를 친애한다고 말할 때, 그 말에는 빽빽한 쉼표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상대를 아로새기는 작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만간 고향에 가서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 엄마의 인생에 대해 들어둬야겠다. 엄마 인생에 촘촘히 난 자국들을 헤아리며 고백해야겠다. 엄마를 친애한다고. 친애하고, 친애한다고.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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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한 이야기 때문에 달라지기도 한다. 때때로 글쓰기는 본인에 관한 농담과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이다. 과장하고 축소하고 생략하고 점프하고 덧붙이며 스스로를 위한 진실을 세공한다.

2015년의 어느 글쓰기 수업에서 내가 아는 탄생 설화 중 몇 가지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한라산에 걸터앉아 제주도를 창조한 설문대 할망과, 알껍데기를 깨고 태어난 주몽과, 갈라진 제우스의 머리에서 황금 무장을 한 채 등장한 아테나의 이야기 따위를 손발 휘저으며 설명했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심드렁하게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 나는 칠판에 ‘나의 탄생 설화’라고 적었다. 내가 그들에게 묻고 싶었던 건 각자의 기원(起源)에 관한 해석이었다, 자기 몸과 영혼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어떻게 믿고 싶은지 궁금했다. 낳아달라고 한 적 없는데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것이며, 혹시 그 의미를 찾았는지도 궁금했다.

칠판에 적힌 글감을 보고 열 살 조이한은 글 한 편을 휘리릭 완성했다. 제목은 ‘조이한의 탄생 신화’. 전문은 이렇다.

‘난 하늘에 있었다. 내 앞에는 부처님과 하느님과 오방신, 저승사자, 예수님, 할락궁이, 터주신, 제우스, 알라신, 자연신 등 여러 신이 있었다. 난 신들한테 말했다. “저기요.” 그러자 신들이 내게 말했다. “가라.” “어디로요?” “너희 엄마 뱃속으로.” 갑자기 문이 내 앞에 생겨났다. 들어가자 우리 엄마 뱃속이었다. 신들이 말했다. “이제 너의 수명은 예전과 다르다.” 그 순간 내가 태어났다. 태어나자 우리 엄마가 보였다. 좋아서 “응애 응애” 하고 울었다.’

원고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이 글을 열 살의 조이한과 킥킥대며 읽었다. 본인에 관해 마음에 드는 루머 하나를 막 창조한 그는 무엇이든 쓸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또 다른 버전의 탄생 신화도 한 편 더 써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아빠를 인터뷰한 뒤 완성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다음 주에 조이한은 이런 글을 써왔다. 

‘옛날에 엄마랑 아빠는 63빌딩에서 커피를 마셨다. 엄마가 전해준 말이다. 둘이 무슨 얘기를 했냐면, 엄마가 아빠에게 “너 시간 있니?”라고 물었다. 아빠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물었다. “나랑 결혼할래?” 그러자 아빠의 영혼이 찬물에 적셔진 것처럼 놀랐다.’

나는 이 대목에서 깜짝 놀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혼에 대한 느낌을 아빠께서 이렇게나 멋지게 설명해주신 거냐고. 조이한은 딴 데를 보며 “그냥 제가 상상한 다음에 써봤어요”라고 답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해 쓰다가 그는 얼떨결에 자기 아닌 다른 존재로 잠시 확장되었던 것이다. 아까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시간이 지나고 둘은 쇼핑, 싸움, 사랑 등등을 하게 됐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다. 이제 그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될까?” 내가 묻자 조이한은 “이제 끝났죠?”라고 묻더니 부리나케 놀러 나갔다. 원고지랑 연필도 안 챙기고 뛰쳐나갔다. 나는 책상에 혼자 남아 그가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제목은 ‘거짓말’이었다.

‘언젠가 방귀를 뀌었는데 안 뀌었다고 거짓말했다. 엄마가 잘 해줬는데 잘 안 해줬다고 거짓말했다. 거짓말 안 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밖에도 이상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은 아빠한테도 있고 엄마한테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등 모두한테 있다. 그러니까 모두 쓰는 말이라는 거다. 너무 나쁘게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조이한은 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이었지만 나는 글쓰기 교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거짓말을 수호하는 과목은 글쓰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저 각자 몫의 삶만 산다면 신화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지프 캠벨은 말했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죄다 이해하기가 벅차서 허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좋은 거짓말에는 빛도 어둠도 풍부하게 담겨있다. 그와 함께 지어낸 거짓말로 진실 쪽을 가리키고 싶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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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骨董)요?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고미술품 또는 우아한 소품이란 뜻이 있지요. 그런데 자질구레해서 무어라 분류하기 어려운 옛날 물건이라는 뜻도 있어요. 골동에서 ‘예술적 가치’나 ‘우아함’이 빠지면 엿이랑 바꾸어 먹을 폐품에 가까운 고물이죠.”

새봄, 새순 올라오는 철이라 그런가. 비빔밥 이야기를 해달라는 분도 부쩍 늘었다. 어떤 분들은 비빔밥에다 굳이 오색오미, 오방색의 철학, 한식의 도(道) 등등 넘칠 지경의 수사(修辭)를 이미 깔고 물어온다. 이때 비빔밥의 한자 표현인 ‘골동반(骨董飯)’이 비빔밥의 가치와 우아함을 단박에 드러낼 마법의 어휘로 보이기도 하나 보다. 아마도 ‘골동’이란 말이 훈련된 취향과 점잖은 취미의 후광을 뿜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그 후광이 너무 세, 골동품과 고물 사이가 아주 좁다는 점은 또 생각지 못할 수도 있긴 하겠다.

논의를 한국 음식 문화사 속 비빔밥에 맞추면 19세기 홍석모의 저술 <동국세시기>가 참고가 될 만하다. <동국세시기>는 오늘날의 비빔국수 방식의 국수를 ‘골동면’이라고 했다. 아울러 중국 강남 사람들이 ‘반유반(盤遊飯)’을 잘 만든다고 했다. 반유반이란 찬합의 바닥에 생선식해, 육포, 회, 구이 따위를 깔고, 그 위에 밥을 퍼 담아 들고 나가는 도시락이다. 이것을 놀던 자리에서 비벼 먹는다. 홍석모는 골동면에 견줄 만한 밥의 ‘골동’이라고 했다. 이 뒤로 골동반이란 말은 많은 문헌에 등장한다. 일상의 말과 일상의 실제 행위로 비빔밥의 속성은 충분히 설명이 된다.

“대저 부빔(비빔)의 출처는 골동에서 나왔다. 장사꾼이 무슨 물건이든지 오래되고 파상(망가진)난 헌 넝마까지 벌려놓고 팔고 사는 곳을 골동가게라 한다. [중략] 부빔밥(비빔밥)은 여러 가지 잡되게 섞은 것을 말한다.” 근대의 스타 요리인 이용기가 1924년 펴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실린 ‘부빔밥(비빔밥)’ 항목의 한 구절이다. 역시 충분하다. 음식에 관한 논의는 엄연한 물리적인 실제의 한 그릇에서 출발할 일이다. 말은 그 뒤를 따라오면 된다. 가령 홍석모와 동시대를 살다간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골동반 항목에다 나물, 생선회(숭어/갈치/준치), 생선구이(전어), 마른 새우 가루, 새우젓, 새우알, 게장, 달래, 오이, 구운 김 가루, 잘 익힌 매운 장 등 당시 사람들이 잘 먹는 비빔밥 재료를 소개했다.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빔밥은, 밥상에 놓인 밥에다 어떤 재료고 숟가락, 젓가락, 손에 걸리는 대로 섞어 만든다. 만들기도, 먹기도 만만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요식업에 등장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 꼬막이든, 멍게든, 상추든, 콩나물이든, 심지어 물기 자작한 불고기를 더해서든 온갖 비빔밥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오히려 이규경의 기록에 이어지는 오늘날의 비빔밥 풍경이다.

유래도 기원도 어휘도 오늘날 내 앞에 놓인 구체적인 비빔밥의 입장에서 살핌이 옳다. 이때에도 그 음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 관한 설명과 이해를 빠뜨리면 허무한 정보 나열을 벗어나기 어렵다. 비빔밥에서 간장, 고추장, 기름장,  기타 별미장이 한껏 풍미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라. 밥의 상태와 특정 재료에 맞는, 섬세한 장의 안배는 비빔밥 고도화의 가능성을 다시 연다. 생선회비빔밥에는 겨자장을 쓰기도 했다. 섬세하게 감각하면 참기름의 미각도 새삼스럽다. 참기름을 적절히 다루는 데서 진짜 향신유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재료와 재료가 따로 놀지 않도록 하는 달걀의 쓰임은 어떨까. 기름에 지질 뿐만 아니라 수란을 쓰기도 했다. 19세기 한글 조리서 <시의전서>에 따르면 비빔밥에다 양지와 갈비 육수를 바탕으로 해 끓이고 고명을 얹은 잡탕국을 붙여 한 상을 만들기도 했다. ‘걸리는 대로’라고 했지만 이를 ‘지역’과 ‘제철’과 ‘나의 기호와 취향’으로 바꿀 때, 비빔밥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쥔 음식이 된다. 번잡한 수사보다, 내 앞에 놓인 한 그릇 잘 살피기. 음식에서 이를 앞설 일은 없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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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내가 방송사 시험을 보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PD 지망생들은 방송사 작문 시험을 위해 스터디를 만들어 대비해왔다. 작문 스터디는 나름 전통 있는 준비법이다. 그런데 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그 흔한 작문 스터디는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강권한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작문 스터디에 들어가면 모일 때마다 글을 한 편 쓴다. 부원들이 돌아가며 주제를 내면 대략 한 시간 동안 글을 써서 내야 한다. 낯선 주제를 소화하기 위해 끙끙거리다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만족스럽지 못한 원고들을 모아 복사해 읽고 돌아가며 피드백을 나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원고를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원고는 늘어나지만 실력은 늘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라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학생이 많다.

약간의 변형은 있겠으나 이런 패턴은 스터디마다 대동소이하다. 사실 작문 준비를 해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이유는 스터디 방식이 글 쓰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은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말하고 싶은 얘기를 간절하게 전하는 과정을 통해 향상된다. 연애편지와 비교해보자. 우선 구애라는 목적이 있다.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인다. 너무 늦게 편지를 주면 인연을 놓칠 수 있고 급히 주면 글이 한심하여 부끄러울 수 있다. 그래서 글을 마치는 시간도 고민 끝에 정한다. 나름 최상의 글을 쓰기 위해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 관련 서적도 뒤져본다. 그러다보면 대충 봤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신(2막2장)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온다. 왜 이 작품이 세기를 거듭하며 살아남았는지 알 것 같다. 한편 자신의 글은 전보다 더 작아 보인다. 그만큼 보는 눈이 열린 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작문의 결과 역시 현실적이다. 편지가 모든 것을 좌우하진 않지만 그 역할이 어땠는지는 명확히 알 수 있다. 퇴짜를 맞으면 글을 다시 곱씹으며 다음 기회에 더 나아지길 바란다. 그런 과정에서 글은 조금씩 늘어간다. 어떤 목적을 두고 글을 쓰다보면 글 좀 쓴다는 소리도 머지않아 들을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기 위해 자료를 찾는 것부터 글을 쓰고 다듬고 또 다듬으며 냉정한 독자 앞에서 벌거벗겨져 평가를 받는 모든 과정이 글을 쓰는 일이다. 준비도 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이나 욕망 없이 쓰고, 거기에 동료의 피드백을 받은 후 다시 쓰지도 않은 글로 성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문 스터디는 시험을 모사하고 있다. 결국 시험이란 환경 아래서 글을 써야 하니 그런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보편화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경쟁률이 지망생들을 숨 막히게 만든다. 열에 하나가 필기시험에 통과한다니 대단한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수들의 혈투를 예상하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 말만 되면 통과’하는 게 작문 전형이다.

시험 문제가 상당히 어려운 것도 시험 대비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가끔 출제자가 개인의 창의력을 과시하고자 현직 PD도 못 풀 문제를 내놓기도 한다. 곡예를 하려면 남다른 훈련이 필요할 것만 같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기본 실력이 없는 사람이 시험장에서 마술을 부릴 수는 없다.

사실 이런 스터디 문화가 수십 년 이어진 이유는 보다 깊은 곳에 있다. 학생들은 시험이 아닌 때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니 글은 원래 시험 보듯 쓰는 것이라 착각한다. 어릴 적부터 글은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그리 해도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PD들 중에 언론고시생 생활을 하지 않고 단박에 입사한 이들이 꽤 많다. 소설이나 시나리오 쓴다고 헤매고, 평론가 되려고 끙끙거리다 어느 날 시험장 갔다 덜컥덜컥 합격하는 거다.

PD 지망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들은 시험이라는 게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듯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글을 쓰라고 하면 등에 식은땀부터 난다. 시험으로 글쓰기를 공부하며 생긴 내상 때문일 것이다. 글은 잘 쓰는 사람만 쓰는 것도 아니고, 잘 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려면 시험 따위는 잊어버려야 한다. 앞으로 시험을 봐야 하는 사람도, 아주 오래전 시험을 봤던 사람도.

<김신완 MBC PD·<아빠가되는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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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자’에 대한 말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20대 남자들의 현실을 자세히 보려는 노력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관심사는 이들이 어느 당을 지지할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20대 남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스피커들 역시 매우 편향되어 있다. 소위 ‘명문대’ 출신이거나, 안티페미니즘을 통해 주목을 끌고 그것을 돈이나 명성과 같은 자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발언을 20대 남자의 생각과 주장으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고, 갈등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 권위를 실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대 남자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까? 통계에서 확인되는 것들이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자의 고용률 및 실업률은 2008~2017년 10년간 별로 개선되지 않았거나 악화됐다. 5세 단위로 끊어서 보면 15~29세 남성 중 대부분의 구간은 10년 전 고용률을 회복했지만, 24~29세의 고용률은 2008년 70.7%에서 2017년 67.9%로 하락했다. 20대 남녀를 통틀어 가장 큰 고용지표 악화를 보여준다. 실업률의 증가폭 역시 가장 커서 2008년 7.5%이던 실업률은 2017년 11.6%였다. 2017년의 경우 20대 전반에서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보다 높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을 앞지른 것은 2017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30~34세 남성의 2017년 고용률은 87.3%에 달했고, 같은 나이대의 여성은 10년 전보다 9.1%포인트 올라 61%였다. 15~29세에서 여성이 3.9%포인트 높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로 역전된 것이다. 

한편 2008~2017년 한국의 10만명당 자살사망률은 등락을 반복했으나 결과적으로는 26명에서 24.3명으로 줄었다. 20대의 경우 여성은 모든 구간에서 눈에 띄는 자살률 저하가 나타났다. 20~24세 남성 역시 줄어들었다. 그런데 25~29세 남성의 경우에는 오히려 자살률이 증가했다. 2008년 24.4명에서 2017년 25.3명으로 늘었다.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20대 남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실태조사’에 따르면 18~29세 남성의 주요 우울장애 일년유발률은 2006년 1.4%에서 2016년 3.5%로, 불안장애의 경우 3.5%에서 7.4%로 증가했다. 물론 유발률 자체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문제다. 

하지만 20대 남자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가령 남성 자살사망자 수를 학력별로 보면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은 자살사망자가 발생한다. 또 ‘한국복지패널’ 조사에 따르면 자살 생각, 계획, 시도 모두에서 저소득층이 일반가구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을 나타낸다. 또 2019년 1월을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를 보면 학력이 같을 경우 남자가 여자에 비해 아주 높은 경제활동참가율을 보인다. 대졸 남성은 86.7%가 경제활동인구인 반면 대졸 여성은 66.6%로 차이가 크다. 고졸 남성은 72.4%로 대졸 여성보다 높고, 고졸 여성은 54.9%에 불과하다. 빈곤율 역시 일관되게 여성이 더 높다. 남성 임금노동자가 여성보다 230만명가량 많지만, 비정규직은 오히려 여성이 68만명 더 많다. 이런 통계들은 끝도 없이 찾아낼 수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20대 남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 그렇다면 논의는 이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20대 남자를 위한다는 이들도 심지어 스스로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 탓을 하거나, 페미니즘 탓을 한다. 나는 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의미 없는 갈등과 혐오를 조장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의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힘없고 가난하고 위험에 노출된 남자들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분탕질 소재로나 동원될 뿐이다. 

진짜 문제는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히 질식해가는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혐오 유발자들의 사회적 질식사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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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주목을 끌기 위해 연출하는 어떤 장면들은 끔찍하다. 5·18 유공자를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이나 “저딴 게 대통령”에 이은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자면, 혐오 선동과 막말 외에는 정치적 자원을 갖지 못한 정치인의 해악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선동 이후, 5·18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와 모독 행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우리-국민’에서 배제하여 그들을 향해 증오의 말을 쏟아내고, 심지어는 정책 결정에까지 기어이 영향을 미치고야 마는 정치인들은 그저 사회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제임스 길리건의 &lt;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gt;라는 책은 이 문제를 파헤친다.

정신의학자인 길리건은 폭력에 대해 연구하던 중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정부가 발간한 살인율·자살률 통계를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기간에 미국 사회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이 함께 오르내리는 경향’을 발견하는데, 놀랍게도 공화당 집권기에는 수치가 늘어났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 이런 경향성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이 문제에 파고들기 시작한다. 의사로서 “정치가 아닌 생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서 말이다. 하지만 답은 결국 정치로 귀결된다.

길리건에 따르면 개인에게 나타나는 폭력 행동의 직접적인 심리적 원인은 수치와 치욕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자극받고 악화되는데, 여기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해고’처럼 사회·경제적 지위가 곤두박질치는 경험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국민을 수치와 치욕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을 추구해왔다. 공화당 정권하에서 노동자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당했고, 복지정책은 “거지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노력을 강조함으로써 경쟁을 부추기고 소수자를 배제함으로써 다수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 수사와 정책은 불평등을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불평등은 오히려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숭배된다.

반면 민주당은 대체로 경제 불평등을 줄이는 데 집중해왔다. 소득세와 각종 누진세율을 높이고, 실업률과 실업 기간을 줄이고, 가장 취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복지를 확대했다. 이렇게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줄어들자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 역시 줄어들었다.

사회 구성원을 악마화함으로써 폭력을 조장하는 공화당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중 교도소 내 교화 프로그램 취소 사건은 매우 인상적이다. 길리건은 교화 프로그램을 연구해 재범 예방에 100% 효과를 보였던 것은 단 하나, 교도소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그는 범죄율을 줄이는 데 관심이 있는 정부 관리라면 누구라도 이 학위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구 내용이 한 공화당 주지사에게 전달되었을 때, 결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도소에 고등교육 무상제공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주지사는 곧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교도소에 들어와서 공짜로 대학 교육을 받으려고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주지사는 결국 학위 프로그램을 박살내는 데 성공했고, 공화당은 미국 전역의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에게 대학 교재와 학비를 대주었던 연방정부 지원금을 없애버린다.

이는 보수와 그들의 세계관이 실제로 폭력을 줄이는 데 얼마나 무능하고, 심지어는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상징하는 정치적 가치다.

마찬가지로 한국당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리 정치가 쇼라고 하더라도, 그 쇼가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가는 사소하지 않다. “정치하는 놈들, 다 그놈이 그놈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에도 정치혐오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분명히 어떤 정치인은 더 해롭다.

<손희정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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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연결된 불광천변을 걷다가, ‘래미안캐슬아파트’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건물과 만났다. 언제 여기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지, 하고 살펴보니까 아담한 오피스텔이었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 이름에 함께 걷던 친구와 잠시 웃었다. 하긴 래미안과 캐슬이 함께 붙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 곁의 빌라와 오피스텔들도 ‘○○거장메카’ ‘△△아트빌’ ‘□□리치하우스’ 등, 오히려 최근의 브랜드 아파트보다 더욱 화려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브랜드 아파트의 보급은 1999년 ‘삼성쉐르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며,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각 건설사가 저마다의 욕망을 가득 담은 각종 브랜드를 내놓았다.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모 건설사의 CF 문구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 특히 자신이 사는 곳의 이름과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이때부터 널리 퍼져나갔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한 개인과 그가 속한 가정이라는 소집단의 위상을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기본 브랜드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서브브랜드를 붙여 ‘○○캐슬 포레스트’ ‘□□파크 메가트리움’ 등의 이름들도 등장했다. VIP에 만족하지 못하고 VVIP라든가 VVVIP 등의 V를 베리베리 더해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설사들은 그 욕망을 부추겨 아파트의 분양에 활용했고 우리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말았다.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빌거’와 ‘휴거’, 그러니까 아파트에도 못 사는 ‘빌라 거지’와, 휴먼시아 주공아파트에 사는 ‘휴먼시아 거지’로 서로의 계급을 구분해낸다.

나는 최근 쓴 책에서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몇 가지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최근의 아파트 이슈 두 가지가 ‘브랜드 아파트로의 전환’과 ‘폐쇄형 아파트로의 전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자곡포레 아파트’의 주민들이 시공사 측에 이름 변경을 요청해 ‘래미안 포레 아파트’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폐쇄형 아파트는 그 이후 쟁점이 되었다. 폐쇄형 아파트란 정문과 후문 등 주요 출입문을 제외한 모든 외부를 투시형 담장 등으로 둘러싸는 방식을 말한다. 외부인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나는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사항이 공지된 것을 열람하기도 했는데, 그들이 커뮤니티에 일반검색을 허용해서 올려둔 것이라, 폐쇄에서 특별함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출입증 없이 그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모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대표는 “입주민과 인근 주민의 구분이 어려워 통제가 사실상 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어린 자녀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폐쇄형 아파트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안전과 생활권 보장이라는 대명제를 내세운 그는 결국 중요한 이유를 덧붙였는데,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150억~200억원 정도는 상승할 것이라고 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단절과 폐쇄를 선언하는 것이, 자신이 속한 공간의 자산가치로 이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타인을 배제하면서 특별함을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나의 아이가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려면 정문에서부터 사유를 설명하고, 해당 동 앞에 가서 친구를 호출하고, 다시 해당 호의 문 앞에 가서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 “민섭아 놀자!” 하는 목소리에 야구 글러브를 챙겨 “적당히 놀아라!” 하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뛰어나가던, 1990년대 초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약간 더 나은 안전을 담보받으며 그것으로 고작 아파트의 자산가치를 올리고, 정작 더욱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브랜드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과 빌라 등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들이 특별해지고픈 욕망을 가득 담고서 이 도시를 구성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단어들에 잡아먹혀서는 안되겠다. 같은 브랜드의 타인들에게만 친절하고 다정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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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헐레벌떡 들어온 한 사람이 기다리던 사람에게 물었다. “뭐하고 있었어?”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시간을 쓰고 있었어.” 순간, 귀를 의심했다. 시간을 쓰고 있다니,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표현을 듣고 온 신경이 그 자리에 쏠리고 말았다. “시간을 어떻게 썼는데?”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 들어온 사람이 물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방긋 웃으며 읽고 있던 책을 번쩍 들어 보였다. “시간 잘 썼네.” 대화가 오가는 동안, 주변에는 온기가 감돌았다.

얼마 후 나는 독서에 집중하기 어려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은 아니었다. “시간을 쓰고 있었어”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까지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나 자신과 시간이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시간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손으로 단박에 움켜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만있어도, 집중해서 어떤 일을 해도 지금 이 시간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읽고 있던 책은 여전히 똑같은 페이지였다.

시간을 잘못 썼다고 자책하며 문을 힘껏 밀어젖혔다. ‘허비하다’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헛되이 쓴 시간은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잘 쓴 시간은 또 어디로 가는가.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말 지금 이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지금을 살고 있지만, 지금의 무게는 각자 다 다를 것이다. 그 무게는 진행하고 있는 일의 중압감, 함께 있는 사람과의 친밀도,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기대 등이 뒤섞여 결정될 것이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웠다.

돌아오는 길에는 쓰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재화를 쓰는 일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서점에서 책을 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돈을 쓰는 일이었다. 그때, 시간은 책이나 커피와 함께 따라오는 것이었다. 경험의 중심에는 언제나 시간이 있었다. 시간을 쓰지 않으면 경험치도, 지식도, 지혜도 쌓일 수 없었다.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셈이다. 지금이 몇 시인지 시각에만 연연한 나머지, 그것을 아우르는 시간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간을 쓰는 일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를 고르고 그 시간 안에 나를 담는 일이다. 여가인 경우, 시간은 내가 쓰기 나름이므로 이때는 시간에 가담하는 것이 된다. 시간과 같은 편이 되어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산책을 하고 전시장에 가고 친구를 만나 요즘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보이는 나’가 감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수행하기도 한다. 남몰래 춤을 배우고 만화책을 잔뜩 빌려와 키득거리며 밤새 읽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진짜 나’를 찾는 일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시간은 때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쓰는 일에는 늘 신중해야 할 것이다. 돈을 쓰는 일보다 마음을 쓰는 일에, 그 마음을 고이 담아 시간을 쓰는 일에. 시간을 잘 쓰면 그 시간이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근래에 아빠를 그리워하며 쓰는 시간은 참으로 귀하다. 아빠와 함께 산책하던 근린공원을 걸어갈 때마다 옆에 누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외출할 때는 혼자였지만 귀가할 때는 매번 둘이 손을 맞잡고 돌아온다.

나는 아빠가 앉곤 하던 벤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벤치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아빠와 함께하던 사계절의 색깔과 냄새를 기억하고 있어서 실로 다행이다. 아빠가 이름을 알려준 참빗살나무와 옥잠화를 발견하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본다. 말없이 올려다보던 하늘에 오늘도 어김없이 달이 떠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도 있었다. 여름과 가을이 되면 꽃들이 추억을 상기하듯 다시 피어날 것이다. 기억을 추억으로 만드느라 달은 매일 밤 떠오를 것이다.

쓰는 일에 대해 골몰하니 시간이 참 잘 갔다. 오래간만에 시간을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쓴 시간은 머잖아 단단한 기억이 되어, 뭉클한 추억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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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홀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확고한 신념을 좇은 결과는 아니다. 앞으로 겪게 될,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로 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삶의 추이를 보면 앞으로도 웬만하면 쭉 1인 가구로 살겠거니 한다. 그러니 일단 이 삶의 형식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가꾸는 데 집중할 수밖에. 이 점은 나도, 그들도 같다. 차이점은 고양이 유무랄까? 나의 집에만 고양이가 없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1인 가구 모임을 가질 때, 깔깔 웃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깊어지면 어두운 주제가 튀어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깔깔 웃다가 어두운 이야기도 농담처럼 툭 던진다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계속 웃게 된다. 심지어 죽음을 말할 때도. 고양이 집사들의 고양이 사랑에 크게 감탄하는 때이기도 하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지만 약을 먹으며 계속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 A는 예전에 본 뉴스를 말하며 운을 뗐다. ‘1고양이 1인 가구’의 인간이 집에서 급사했고 며칠 지나 시신이 발견됐는데, 고양이가 시신의 얼굴 부분을 먹어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애도 그러면 다행이겠다, 굶을 일 없을 테니’ 생각부터 했다는 말을 하며 보살같이 웃었다. 친구 B는 유기농 보살이었다. 한 술 더 떠, 우리 애에게 나쁜 것을 먹이면 안 되니까 언제라도 비상식량이 될지 모를 스스로에게 늘 유기농만, 좋은 것만 공급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돈 벌고 운동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C는 가급적 밖에서 급사하고 싶다 했다. 시신 발견이 빠를 테고, 신분증을 확인하자마자 부모님께 연락 취할 테고, 그만큼 고양이에게 결핍의 시간은 짧을 테니.

사랑하는 ‘우리 애’ 자랑을 하는 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제 눈에 안경이다. 내 눈에도 웬만한 인간보다 고양이가 더 귀엽긴 하지만 심장이 아프고 막 그럴 정도는 아니던데. 친구들이 소셜미디어에 고양이 사진 올린 게 눈에 띄면 무덤덤한 얼굴로 ‘좋아요’ 누르고 금세 잊곤 했다. 굳이 같이 살 정도로 마음 움직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수입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로서, 스스로를 책임지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늘 있어 고양이에게 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살핌이 있어야만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여린 생명체의 보호자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다부진 책임감과 넉넉한 인내심, 무엇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반려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백만원 턱턱 내는 능력자들을 보며 ‘리스펙트’ 했다. 훗날 나는 나를 위해 그 정도의 치료비를 팍팍 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나 하나 적당히 추스르며 후회 없이 살다 가급적 지구에 해악 덜 끼치고 소멸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도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점 하나 보태고픈 시민적 욕망은 있다. 얼마나 시민의식이 투철한지, 급사 뒤 내 시체가 오래 방치되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까 봐, 썩는 냄새에 이웃이 고통받을까 봐 사서 걱정한다. 그래서 빠른 시체 수습을 위해 사적 장치를 마련했다. ‘고독한 생존방’이 그것이다. 다른 말은 쓰지 않고 ‘ㅅㅈ(생존)’만 쓰는 채팅방이다. 게시판에 구성원의 주소가 등록되어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수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안에 생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들도 이 방에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홀로’들은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며,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한다. 이게 우리에겐 일상인데, 사회에서는 아직도 1인 가구를 ‘현상’ 취급하는 모양이다. 명절 뒤의 들썩임을 보고 새삼 환기했다. 결혼 ‘못’한다며 인격모독까지 당했다는 증언들이 숱하게 쏟아진 것이다. ‘미혼’과 ‘저출산’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논조도 지속되고 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애나 개랑 살든, 혹은 고양이랑 살든, 그도 아니면 오롯이 혼자이든. 책임지기만 한다면, 구성원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고자 택한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 더 나아가 제도적 모색도 함께하는 동료 시민을 기대하면… 기대가 너무 큰 걸까?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제도로는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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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준비 없이 글쓰기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내 수업에 와서는 엄청나게 재밌는 글을 완성하고 집에 돌아갔다. 그들이 쓴 게 왜 재밌는지, 어떻게 좋은지 정확하게 칭찬해주고 싶어서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문장의 근거를 생각할 때 자주 다시 읽은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이 소설에는 작문 연습을 하는 어린 쌍둥이가 등장한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그들에겐 선생님이 따로 없다. 둘은 부엌 식탁에 앉아 서로에게 글감을 내준다. 그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종이 두 장에다 각자의 글을 쓴다. 다 쓰면 글을 바꿔서 읽어본다. 상대방의 글쓰기 교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가며 철자법 틀린 것을 고치고 문장을 수정한다. 문장을 고칠 때에는 쌍둥이들만의 규칙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사리 ‘친절하다’라고 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쌍둥이는 친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쓴다. ‘그는 우리에게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쌍둥이는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좋아한다’는 단어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이 마을은 아름답다’와 같은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그 말이 둘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

이러한 묘사만이 좋은 문장일 리는 없다. 모든 글쓰기에 적절한 훈련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연습 방식을 자주 떠올리며 글을 읽고 쓴다. 무언가를 게으르게 표현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 읽는 이의 눈앞에 구체적인 장면을 건넨다. 무수한 작가들이 잘 써준 생생한 장면들을 읽으며 나는 잠시 다른 존재가 되어볼 수 있었다.

2015년 나의 수업을 들으러 왔던 열두 살의 우예린은 달리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달리는 사람들은 얼굴 살이 위아래로 훌렁거린다. 내 차례가 오면 저 멀리서 선생님이 깃발을 올린다. 깃발이 내려오면 달려야 하니까 심장이 쿵쾅댄다. 출발하는 순간 재빨리 발을 움직여야 하는데 떨려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뛰다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다. 하늘을 나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럼 발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뛰면 나는 어느새 1등이나 2등이 되어 있다.’

이 글을 읽다가 내 심장도 좀 더 빨리 뛰었다. ‘뛰다 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라니 정말 찬란하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뛸 수만 있다면 날마다 달려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달리기를 잘한다’라고만 요약할 수도 있겠으나 우예린은 멋진 디테일을 생략하지 않았다. 그는 또 앞구르기에 대해서도 썼다.

‘앞구르기는 재미있지만 막상 해보면 무섭다. 내 차례가 오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입술을 꼭 깨물고 몸을 앞으로 굴린다. 구르는 동안엔 그저 할 수 있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 바퀴를 다 돌고나면 어지러워서 잠시 멍해진다.’

꼭 나도 같이 앞구르기를 한 것만 같다. 몸을 한 바퀴 굴리는 짧은 순간이 작가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의 감각에도 닿는다. 까먹고 있던 앞구르기의 두려움과 재미를 상기시킨다.

열 살 김지온은 ‘불’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불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멋진 색을 뿜으며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좋다. 불이 아름다운 이유는 몇천 년 전부터 어둠을 막아주고 맹수로부터 공격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또한 색깔들이 불을 아름답게 만든다. 불은 빨강, 파랑, 보라, 노랑으로 나뉘는데 맨 밑에 있는 보라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을 특히 좋아한다. 보라색의 불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온의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불의 색에 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온도별로 다른 그 색깔들이 그의 눈에는 영롱하게 아른거렸을 것이다. 그의 문장을 읽은 뒤로 나도 가끔 불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문장은 나에게 새로운 몸의 감각을 선물하곤 했다. 그들의 글에 자주 설득당하며 글쓰기 교사로 일했다.

<이슬아 | 작가·‘일간 이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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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 운운할 에피소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주 접할 수 있고, 게다가 상대적으로 싼 식료를 결국 사랑하게 되긴 하겠지요.”

설까지 지났다. 제대로 기해년(己亥年)이다. 12지의 동물로 치면 돼지의 해다. 그래서인가, 돼지와 돼지고기에 관해 묻는 전화며 이메일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사랑한다’를 똑 떨어진 명제로 삼는 분들을 겪다가 굳이 위와 같은 답변까지 따로 준비하게 되었다.

인류는 자원을 다음 대에 전수하며 사랑과 기호와 상징을 한 자원에 부여하게 마련이다. 묻는 분께 어깃장 놓기가 아니다. 성심껏 답하느라 앞뒤가 바뀐 소리에 굳이 토를 달고, 내가 할 수 있는 답을 하려는 뜻이다. ‘황금돼지의 해’까지 운운하면 더욱 난감하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 오행(五行)의 토에 엮인 것은 10간 가운데 ‘무(戊)’와 ‘기(己)’이고 그 상징색은 황색이다. 금에 엮인 것은 10간 가운데 ‘경(庚)’과 ‘신(申)’이고 그 상징색은 백색이다. 신해년(辛亥年)이 돌아오면 ‘백금돼지의 해’라 하든지, 외국어 쓰기들 좋아하니 플래티넘(Platinum) 가져다가 말을 만들든지, 암만해도 기해년은 황토색, ‘누렁돼지의 해’가 아닌가 싶어 이 글 쓰는 내내 갸웃거리는 중이다.

‘한국인의 사랑’에 이어 ‘황금돼지’에도 어깃장을 놓고 나면 중국 사람 진수(陳壽, 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까지 찾아 사전 질문지를 만든 분은  울상이 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제주도에서 돼지를 많이 키운 기록이 있다면서요?”

있긴 있다. 그때에는 제주라고 하지 않고,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이라 했으며, 거기 ‘주호(州胡)’라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들이 “소와 돼지를 잘 기른다[好養牛及猪]”라고 했다. 제주 목축, 목장의 역사는 방목지가 넉넉한 조건과 뗄 수 없다. 몸집이 큰 소도 한때 방목해 키웠을 수 있다. 풀 뜯어 먹게 방목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기르기’의 조건이기도 하다. 돼지는 어떨까. 3세기 양돈의 실제, 모른다. 저때에도 제주의 주호는 배를 타고 한반도를 오가며 장사를 했다는데, 멧돼지를 생포해 일정 규모의 방목지에서 순치했다가, 시세 좋을 때 뭍으로 싣고 가 팔았는지 모른다. ‘잘 기른다’는 그쯤을 견문한 결과일 수 있다. 그 한마디에는 양돈의 자연 조건, 사회 조건, 기술과 종의 문제 등에 대한 세목은 담기지 않았다. 한편 제주 사람들이 20세기 이후 동물성 단백질을 얻기 위한 가축으로 돼지에 집중해 독특한 돼지고기 음식 문화를 이루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제주 고유종 돼지가 사라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질문자가 순대까지 들고나오면 다시 말을 보탤 수밖에 없다. 지구상 어느 민족도 살코기만 먹은 적 없다. 어느 민족에게도 선지와 창자는 알뜰살뜰 먹을 만한 귀중하고 맛난 식료다. 선지의 양분과 풍미, 그리고 창자의 기름기와 물성과 질감을 결합한 음식은 지구 곳곳에서 먹어온 바다. 서울 종로통에서 보이는 아바이순대나 전주 남부시장 피순대와 구분하기 어려운 소시지도 세계 곳곳에 있다. 영어권의 블랙푸딩, 블러드소시지, 프랑스의 부댕, 중국의 쉐창 등이 좋은 예다. 선지빛깔 아롱진 순대의 기획은 지구 공통이다.

관련한 어깃장 가운데 최악은 아마 ‘추억의 돼지고기 음식’에 대한 답이었을 테지. 개업 60년을 뽐내는 서울 시내 한 돼지고기 음식점에서였다.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 육고기와 내장을 다루는 집에서, 식료는 길가에 방치된 채였다. 직사광선 아래, 가로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였다. 채소를 쌓아 올린 붉은 고무통과 음식물쓰레기통이 나란했다. 60년 업력으로 이미 건물을 몇 채나 샀다는 이른바 노포였다. 나는 답했다. 여기 사랑이나 추억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결별할 것과는 결별하고 새로이 사랑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새해에 이토록 야박한 순간을 지어냈음을 굳이 고백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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