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년 전 과거가 되었다만은 (…) 조선의 요리 독립까지 잃어버리는 것을 구경했다. (…) 장유(醬油)라는 것이 우리나라 간장을 동화시켜 가지고 소위 선일융화(鮮日融和)를 실현시켰다. (…) 고추장, 김칫국 몇 가지가 하도 어이가 없는 듯이 한구석에 박혀 있는 꼴이라고는 적막해서 볼 수 없었다.” 동아일보 1923년 3월3일자에 실린 김재은의 회고다. 7년 전이니 1916년이다. 기미년 만세 시위가 터지기 3년 전이다. 기고자는 “사랑”과 “근심” 때문에 글을 썼다는데 고추장, 김칫국이 한구석에 처박히듯 조선 음식이 처량해진 내력을 돌아보매 이렇다. 일식 전골인 스키야키는 고급 조선요릿집에서 신선로를 진작에 “구축(驅逐)”했다. 스키야키가 밥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일식 절임인 복신지(福神漬·후쿠진즈케)가 따라붙었다. 후쿠진즈케라는 “들척지근한 물건”이 조선의 짠지를 “정복”했다. 후쿠진즈케는 일제 군대의 급양이 서양식으로 바뀐 가운데서도 지급된 일식 반찬이다. 또한 양과자는 다식을 대신하고, 정종은 조선의 소주를 “병합(倂合)”해 전횡을 다했다. 그러고는 장유, 곧 일식 간장인 쇼유가 맛 설계의 바탕인 조선의 간장을 동화함으로써 선일융화, 곧 조선 사람의 일본인화가 실현되었다. 선일융화를 뒤이은 통치 구호가 ‘내선일체(內鮮一體)’다. 1936년 부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내세운 바다. 먹어 들어가는 쪽에서야 융화네, 한 몸(一體)이네 못할 소리가 없겠지만, 실제로는 한쪽의 절멸을 바라는 수작 아닌가. 1910년 나라 망한 지 6년 만에 조선의 미각 상상력도, 음식도 적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당하는 쪽에서 볼 때에는 한 역사 공동체 절멸의 징후였다.

오늘날의 독자는 이 거친 민족주의 수사에 유치하다는 꼬리표를 망설임 없이 붙일 테다. 하지만 사랑, 근심, 구축, 정복, 병합, 일선융합 같은 엄중한 말의 행간을 더 살피고 싶다. 기고자는 조선인 일상의 사물이 쓰이지 않아서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 ‘쓰이지 않음’이 그저 조선식 일품요리, 반찬, 과자, 술, 장 사용의 빈도가 줄어든 현황만을 가리킬까. 가령 ‘들척지근함’은 산업화한 식품과 음식이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입맛을 단박에 사로잡은 비결이다. 일본제국의 설탕, 세계 최초의 MSG 제품인 아지노모토(그 한국판이 미원이다), 왜간장 셋이 손잡으면 들척지근하기에 대체로 무난한 맛을 쉬이 낼 수 있다. 이때 아지노모토와 왜간장이야말로 일본의 일상 감각에다 일본적인 상상력을 잘 쓴 끝에 얻은 현대 일본의 발명이다.

1908년 일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는 MSG 제조 기술의 특허를 받는다. 세계 최초로 ‘감칠맛(旨味·우마미)’을 규명한 성과가 발판이다. 이 조미료의 열쇠인 글루탐산은 1866년 독일 화학자 리트하우젠(Karl Heinrich Ritthausen)이 처음으로 발견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그때까지 미지의 영역에 있던 단맛·신맛·쓴맛·짠맛에 이은 제5의 맛을 개관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이케다였다. 그는 회의했다. 일본인 일상의 식재료인 다시마, 가쓰오부시를 우린 맛, 그 맛이 음식과 어울린 일본적인 맛의 실체는 당시 화학 교과서로는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했다. 그는 교과서 밖으로 치고 나갔다. 일본의 맛이 객관화되자 메이지시대까지도 일본인 스스로 구미 식품에 견주어 열등하다고 여긴 일식 간장과 된장을 세계화할 자신감이 붙었다. 1929년 이후 일본 산분해간장의 산업화 또한 이케다의 일본 미각 재발견의 연장에 있다. 깃코만(龜甲萬)으로 대표되는 일식 간장 산업의 세계화 또한 여기에 힘입었다. 일본 과학기술의 현대적 현현과 산업혁명에는 민족주의에 앞서는 ‘민족성’이 한가득이다. 오늘날 한식은 어떨까. 민족주의에 기댄 탄식을 넘은, 구체적인 내 유산과 일상 감각의 탐구에서는? 아직 드러내지 못한 가능성을 발현시킬 내 상상력에서는? 여전히 1923년식 탄식뿐이라면 섭섭하지 않은가. 아직 잘 써본 적이 없는 상상력. 쓰지 않아서 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상상력. 오늘도 설탕·MSG·왜간장으로 들척지근한 백반 한 상 앞에서 사무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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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제작은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데, 지금까지 그 ‘빡센’ 분위기가 문제로 지적되기보다 낭만화되어 온 게 사실이다. 과로는 젊음을 불태운다는, 영혼을 바친다는, 사명을 다한다는 식으로 포장되었다. 영웅담이 방송사에 넘쳐났다. 조연출 때 며칠 동안 몇 시간밖에 못 잤다는 것으로 입씨름이 붙었다.

나도 입사했을 때 이 일이 적당히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배웠다. 죽어라 해야 남들만큼 한다고 들었다. 이 일이 낭만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을 하다 시계를 보면 서너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과로가 일상화되니 여러 기행들이 넘쳐났다. 어느 PD는 며칠 만에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곤 입고 있던 옷을 다시 입고 나왔다. 수염을 자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가지 않고 숙직실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과로가 ‘장려’되면 과로를 인정받아야 마음이 편해진다. 다들 휴식과 퇴근을 숨기고 ‘계속 일하고 있는 상태’에 있으려 했다.

나는 조연출 시절 주로 바지를 갈아입지 않았다. 건빵바지 하나로 버티고 상의를 몇 개 갈아입으며 일을 지속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 늦으면 국장실 앞 소파에서 주로 잤다. 다들 하는 이런 설정의 목적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알리는 데 있다는 것을 일찍 간파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국장과 부장들이 회의하러 모이며 나의 자는 모습을 시청했다. 그리고 각 부서에 돌아가 나의 과로를 많은 이들에게 알렸다. “쟤는 왜 집에 안 가고 일만 하니?” 그건 칭찬이었고 다른 이에게는 압박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설정은 돌아서 나에게 왔다.

일하는 데 ‘전념’할수록 소속감이 강해졌고 통과의례를 거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이 생겼다. 일을 많이 하니 빨리 또 많이 배웠다. 사회 초년 인정 욕구가 충족되니 되도록 무리해서 일을 했다. 시키면 거절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런 게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나 역시 몇 번 느꼈다. 지병을 얻는 사람도 생겼다. 회사가 그런 분위기를 강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강제되지 않는 공간에서 전력을 다하려는 PD에게 브레이크를 걸기는 쉽지 않다.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고 평판이 중요한 사내 환경에서 후배 PD들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작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 또 프리랜서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과로가 낭만화되었던 시간은 다른 누군가에는, 또 그렇게 생각한 이들에게도 사실 잔인한 시간이었다.

과로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남성중심사회를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문제였다. 육체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소외되었고 일할 때건, 술 마실 때건 ‘최선을 다하는’ 후배가 대접받았다. 선배들은 자기 밑에 있을 때 과로를 마다하지 않고 헌신한 후배에게 기회와 편의를 더 제공하려고 했다. 규정된 시간 안에서 일을 할 경우 생기지 않을 편향이 자리 잡게 된 거다. 남자들이 입사 후에는 더 유능하다는 인식도 착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소모적으로 일했을 뿐이고 솔직히 돌이켜보니 그럴수록 더 후져졌다.

일을 오래 해보니 스태프의 과로는 PD의 무능과 준비 부족에 기인함을 차츰 알게 되었다. 스태프가 과로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리더는 나태해지기 쉽다. 시간 제약이 강화될수록 PD에게 필요한 것이 막연한 근성보다는 치열한 고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나아가 제작 시스템과 산업의 규제 환경이 노동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직책이 높은 선배 중 현명한 이들은 디테일한 간섭보다는 환경 개선에 관심을 쏟았다. 비효율은 고민하지 않으면 당연하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이한빛 PD가 세상을 떠나면서 과로가 문제라는 인식이 더 자리를 잡았다. 후배에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도 창피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방송계에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가까이 왔다. 방송사도 환경에 맞는 세부적인 규칙을 합리적으로 짜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강한 환경이 강제되면 긍정적인 효과가 많을 것 같다. 적응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믿는다. 아마 다른 분야도 다른 듯 비슷하지 않을까.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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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100만명의 홍콩 시민이 나오고 이어서 200만명이 나왔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결국 사과했고, 문제의 송환법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제 행정장관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이 시위의 배경에 대해 많은 분석과 설명이 나왔다. 또 수많은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홍콩과 한국의 민주화운동 혹은 촛불집회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시위대가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광둥어 버전을 노래했다는 뉴스도 화제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국경을 넘어서 연대하는 모습은 꽤 감격적이다. 또 이유가 어찌 되었든 폭력과 통제로 체제를 존속하려는 권력들의 불의함도 이론의 여지가 많지 않다.

검은색 상의를 입은 홍콩 시민들이 16일 도심에서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악법을 철회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죄인 인도 조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 _ AP연합뉴스

그런데 우연히 본 한 문장에 약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이 '87년 광주항쟁'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오타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그 게시글을 공유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에 가깝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가령 촛불집회를 외국인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어떨까?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입장에 따라 설명 역시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홍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열심히 이런저런 뉴스들을 찾아본다고 해도, 그 맥락들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홍콩과 ‘비슷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화는 또 어떤가? 우리는 과연 우리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설명할 언어들과 기준들을 충분히 갖고 있을까? 결국 둘을 비교하고 그것을 통해 유사성을 판단할 정확한 근거가 우리에게도 딱히 없는 셈인 것은 아닐까에 생각이 닿았다. 

물론 안다는 것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단순히 무언가를 지지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싸움들에서 정확한 상황 진단과 이념적 선명성 같은 것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최초의 한정된 문제의식들에 다양한 관점과 경험들이 붙어가는 과정 속에서 투쟁은 커졌다. 그리고 여기에는 각자가 갖고 있는 상이한 불만들이 예상치 못한 계기를 만나 용광로처럼 녹아드는 과정이 반드시 끼어들었다.

이 불만의 용광로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목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했던 미국인들, 프랑스의 노란조끼들, 어쩌면 한국의 촛불 등등. 이들은 때로는 상이하다 못해 양립할 수 없는 입장과 주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각자의 불만을 안고 녹아들었다. 하지만 이 용광로의 열기와 불빛에만 현혹되어서는 정작 그것이 제련해 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지기도 한다. 부당한 권력을 몰아내고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 소수자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심지어 이 두 개의 목소리가 같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일도 적지 않다. 우리가 보았던 대부분의 흐름들은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고,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상황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홍콩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분노하는 것과, 드러난 현상에 대하여 조금 더 사려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서로를 배척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 동안 변화에 대한 열망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왔다. 당장이라도 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굴다가, 음울한 목소리로 ‘그래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하기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꾸고자 했던 것이 정녕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홍콩의 시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민주주의가 도래하기를,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이 우리에게도 길을 보여주기를, 무엇보다 무사하기를 빈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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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이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을 초래한 한국사회의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란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을 말한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남성=아버지의 위기”로 해석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무엇이었나? “아빠 힘내세요”였다. 더불어서 “부-자되세요!!” “신(新)현모양처”가 있었다.

이 세 유행어는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아버지들의 위기’로 이야기하고, 그들이 “노오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런 수사 안에서 외환위기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가 되고, 그 개인의 얼굴은 ‘남성’으로 상상된다. 이때 여성의 자리는 “남편 기 살려주고 자식 건사도 잘하면서 동시에 맞벌이를 하는” 신현모양처였다. 

이처럼 한국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형질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성별화된 문화적 위로를 경유해 위기를 외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남녀 공히 함께 경험한 재난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제일 먼저 해고되어 비정규직화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화제가 됐던 맥주 브랜드 카스의 CF ‘너무 예쁜 그녀-지갑’ 편을 떠올려보자. 맥주값을 낼 돈이 없는 남자 친구에게 커리어우먼인 여자 친구는 자신의 지갑을 건넨다. 하지만 왜인가? 왜 ‘여자’라는 성별이 해고의 기준이 되었던 시대에, 남자의 지갑에도 없는 돈이 여자의 지갑에는 있다고 상상되었는가?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이후 부성 멜로드라마의 인기로도 이어졌다. <내 딸 서영이>나 <7번방의 선물> 같은 작품들에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거나 죽어버렸고, 딸은 홀로 잘났으며, 아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다. “고개 숙인 아버지와 똑똑한 딸”이라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대. 욕심 많고 뭐든 잘하는 남자아이들을 ‘알파보이’라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독 여자아이들만은 ‘알파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이후 현상이다.

2016년 즈음, 사람들은 온라인 여성혐오의 원인으로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꼽았다. 2018년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는 한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고스펙 여성들이 하향결혼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한국 여자들은 잘나가고 한국 남자들은 기가 죽고 말았다는 인식이 강화,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 공히 불안 위에 서 있을 때에도, 남성의 어려움만은 그토록 짠하고 여성의 투쟁은 ‘알파걸들의 투정’으로 폄하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토록 여성들이 잘났음에도 왜 남녀 평균임금 격차는 여전히 대략 35%나 나는 것일까).

그런데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라는 표현 뒤에는 거대 괄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괄호 안에는 “그러나 성공한 남자, 돈 많은 남자와는 결혼하는 여자”라는 말이 숨어 있다. 이런 상상력과 연결된 조어가 바로 “김치녀=남자의 경제력에 빨대 꽂아 사치하는 무개념녀”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남성=경제력’ ‘여자=성공한 남자의 트로피’라는 가부장제의 오래된 도식이 살아 있다. 청년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부장제의 지배규범이다. 반면 어떤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판을 용인하면서, 이 위에서 ‘분배 정의’의 문제로 화를 내고 있다. 여자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그러므로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운동에서 젠더 갈등이란 가부장제의 성차별주의를 뒤집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면,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말하는 젠더 갈등이란 ‘잘나가는 여자 vs 고개 숙인 남자’라는 판타지로부터 비롯된 날조된 프레임이다. 젠더 갈등을 논하려면 이런 상이한 이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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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 출간에 관여하고서부터, 나를 기획자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생겼다. 그렇게 거창하게 기획이라고까지 할 게 없는 일이어서 민망했다. 김동식 작가가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집 출간 이후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단행본 매출의 2%를 기획인세로 지급하겠다는 계약서를 건네면서 “당신이 작가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요다출판사로 데려와 달라”고 했다. 작가의 인세 10%를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출판사의 이익을 나와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판사로부터 1년간 받은 기획인세는 내가 3년 동안 글을 써서 번 것보다도 더 많았다. 김동식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덩달아 새로운 업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여러 플랫폼의 글들을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2018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에 ‘문화류씨’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여우스님’이라는 글을 읽고는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회색인간>이 출간된 지 정확히 1년이 된 시점이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각색했다는 그의 글에서, 나는 1년 전과 비슷한, 한 작가와 그의 글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문화류씨 작가에게서는 아주 빠르게 긍정적인 답신이 왔고 우리는 곧 만났다. 그는 3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다. 그는 약간 큰 덩치에 잘 어울리지 않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동식 작가님이 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러웠고, 언젠가 그 기획자인 김민섭 작가님이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정말 1년 만에 연락을 주신 거예요.” 

김동식 작가의 사례는 무척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작가가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아 계속 글을 써 나간 젊은 작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1년 전의 내가 정말로 기획이라는 것을 했고 그것이 한 개인과 출판사에만 의미 있는 일로 남은 것이 아니구나, 하여,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2019년 6월에, 문화류씨의 소설집 두 권이 출간되었다. 그의 책을 기획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휴대폰 자판으로만 단행본 두 권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하는 것이었다. 휴대폰 자판이 더욱 편해서 글을 퇴고할 때만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다고 했고, 심지어 누워서 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문자나 톡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답답해 컴퓨터를 반드시 이용하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니터로 어떻게 책을 읽나’ 하는 거부감과 불편함을 모두가 가졌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킨들과 같은 전용기기가 보편화되었고 휴대폰으로 어디에서나 전자책을 읽는다. 그에 따라 손안에 들어올 만한 6인치 내외의 화면에 어울리는 글쓰기 방식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노출되는 플랫폼의 경우에는 그 담당자들이 노골적으로 “단락은 문장 2~3개마다 꼭 구분해 주시고요, 이미지도 화면마다 하나씩은 삽입되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제도권의 글쓰기 교육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읽는 방식의 변화가 쓰는 방식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들뿐 아니라 기자 등 글을 쓰는 모두는 자신의 글이 6인치의 모바일 화면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이중번역과 같은 방식으로 써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휴대폰에 익숙해진 어느 세대는, 혹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모바일 화면으로 글을 보는 데서 나아가 쓰는 세대로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류씨 작가는 마치 동시번역을 하는 것처럼, 쓰는 동시에 독자들의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손가락 작가’들의 탄생을 계속해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김동식 작가만큼이나, 문화류씨라는 새로운 작가도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은 새로운 손가락 작가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우리 앞에 계속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로서도 누구 하나 잘되고 끝나지 않는 그런 연속된 기획을 계속해 보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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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는 친구지만 마냥 반가웠다. 친구도 어떤 감정이 물밀었던 모양이다.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뻗으며 친구는 물었다. “어떻게 먹고사니?” 친구의 말은 우리를 둘 다 기쁨과 당황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친구는 아마도 “잘 지내지?”나 “어떻게 지내?”라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우리는 길 위에서 한바탕 사이좋게 웃었다.

집에 오는 길에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요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크게 네 가지다. 대학교에서 학인들과 배움을 나누는 일, 격주마다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일, 매일 오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두세 차례 출연하는 일, 그리고 읽고 쓰는 일. 어떤 일은 나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고 또 다른 어떤 일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그 일을 할 때 비로소 내가 나로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모든 일이 어색하다는 점이다.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어색한 일도 있고 여전히 어색한 일도 있다. 몸담은 지 얼마 안된 일은 늘 어색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있다. 남들 앞에서 말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어떤 물음에 답하는 일, 답하면서 다음에 내가 던질 질문을 헤아리는 일, 이 일 앞에서 나는 보통 작은 상태로 존재한다. 종종 위축되는 것은 물론 겉으로 웃고 있을 때조차 속은 땀범벅이다. 대학에서의 강의,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 그리고 JTBC <시사토크 세대공감> 출연 등은 신출내기의 어색함이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처음 같은 일도 있다. 바로 읽고 쓰는 일이다. 이 일 앞에서 나는 때때로 묻는다. 실력이 늘지도 않고 적응이 되지도 않는데,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왜 읽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까. 20여년 가까이 썼는데 왜 아직도 백지는 나를 새하얗게 질리게 만드는가. 어색함은 으레 어려움을 동반한다. 이 어려움은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얼어붙게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나를 생생하게 한다. 나는 지금 긴장하고 있구나, 머릿속에서 떠올린 문장대로 쓰지 못하고 있구나.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거나 너무 늦게 흐르는 것 같다. 그 시간에는 내가 없는 것 같다.

어색한 일은 맞지 않는 옷처럼 몸을 쭈뼛하게 만든다. 평소의 여유로운 내 모습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몰입이 필요하다. 신문을 애써 가까이해야 하고, 평소라면 지나쳤을 법한 기사에도 따뜻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 한국문학사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책을 읽고 해당 저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궁금증을 발휘해야 한다. 백지 앞에서 초연해지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야 나는 비로소 어떤 상태에 다다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방송에 익숙해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조리 있게 말하고 여유로운 나머지 방송용 미소로 씩 웃기도 할 때, 나는 아마 스튜디오에 없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일 앞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으므로, 몸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특정 발음을 뭉개버리기 일쑤다. 매번 출연하는 게스트가 다르니 그에 맞춰 나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빛나게 해주는 일은 기꺼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가끔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내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감각이다. 이 감각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깨어 있게 해준다. 나는 편한 쪽에서 불편한 쪽으로 한 발짝 움직인다. 날숨 상태에서 들숨 상태로 기꺼이 몸 상태를 바꾼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공부하겠다는 태도다. 나를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고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어색함에 익숙해지겠다는 다짐이다.

삶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는 나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어색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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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만든 적 있다. 이름은 ‘수저게임’. 말 그대로 참가자가 카드를 뽑아 금수저 또는 흙수저의 신분을 부여받은 뒤 역할에 충실히 활약하는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태어날 때 정해진 조건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졌다. 양극화를 좁히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북돋고 싶었다. 이를 위해 금수저는 더욱 부자 되는 것을 승리의 조건으로, 흙수저는 같은 계급 사람들 모두 무사히 생존하거나 혼자 계급 상승 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 자원이 한정돼 있으니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 게임의 핵심은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었다. 나는 플레이어들이 토론과 투표로 체계를 바꾸는 경험을 체득하도록 의도했다. 게임이 창작자의 의도와 정서를 전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임을 만든 적 있지만, 평소 게임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명작으로 꼽히는 타이틀 몇 편의 결말을 본 정도? 주로 롤플레잉 비디오 게임이었다. 게임 덕에 용과 마법사가 활약하는 판타지 세계도,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 미래도 활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모험을 벌인 뒤 당도한 결말을 곱씹으며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제작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닿았다고 느꼈을 때, 기꺼웠다. 감동과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물론 과정도 즐거워야 게임이다. 사실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종종 헤매었다. 말 그대로 길을 잃었다. 현실에서 길치는 게임에서도 길치였다…. 게임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기술을 숙련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퍼즐을 푸는 식의 도전 과제들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게임을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해 난도를 낮추면서, 현실을 떠올렸다. 인생의 난이도도 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지 모드’로 산다면 부족한 능력을 이유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쫓기는 기분으로부터 숨 고를 수 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으며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에 사는 대부분에게 현실은 ‘하드 모드’다.

게임이 인생과 다른 점은 스스로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다. 게임에서의 성장은 (현실에 비해)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지고, 도전 과제에는 반드시 해법이 있기 마련이며, 실수를 돌이킬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즉 게임에서의 노력은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으로 보답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이들 중 일상생활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하고, 위안을 주는 관계망에 속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 게임 관련 질병을 등록했다. 게임에 장기적으로 과몰입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에 대해서다. 이에 ‘게임은 유해하므로 청소년은 아예 게임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주장에 반대한다. 앞서 말했듯, 생각할 거리와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게임도 존재한다. 품위 없는 성 상품화와 ‘현질’ 유도, 사행성 확률 아이템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물론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게 모든 게임들을 싸잡아 혐오하고 금지하며 억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부모부터 자식이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돼줘야 ‘게임 과몰입’을 완화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자식의 관심사와 욕망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태도가 요구된다. 혹시 또 모르지. 자식이 게임에 흥미를 가지다 직접 게임을 만들어내고, 그로써 ‘성공’을 이루게 될지도.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람의 수와 그 정도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인생을 ‘즐겜’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보편의 사람들의 삶이 ‘이지 모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노말 모드’ 정도는 되도록.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일이 조금은 쉬워 지도록. 역시나 안전망을 확충하고 양극화를 좁히는 사회적 개입이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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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아이들은 자주 쓴다. 일단은 자신이 주어인 문장으로 글쓰기를 배워나간다. 재작년에 열다섯 살이었던 김서현이라는 아이는 원고지에 이렇게 적어서 들고 왔다.

‘나는 모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 또 나는 친구와 먼 산으로 가는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한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고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느낌이 든다.’

고작 세 문장이지만 나는 이 글의 화자가 조금 좋아지고 말았다. 누군가와 한참을 말하고 듣다가 해 지는 줄도 몰라봤던 사람만이 ‘먼 산으로 가는 수다’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다. 만약 친구가 된다면 그로부터 경쾌한 여유를 나눠 받을 게 분명했다. 위의 글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 김찬영이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김찬영이다. 김찬영은 나랑 세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인데 게임과 노래를 좋아한다. 찬영이 가수가 되면 좋겠다.’ 

‘나’였던 주어가 남으로 슬쩍 넘어갔다. 그 대상은 애증의 남동생이다. 가장 싫어하는 남이자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라니. 이 간극에서 관계의 탄력을 본다. 언제까지나 너와 가까운 친구일 거라는, 흔들리지 않는 전제 위의 다툼은 금세 회복되기 마련이다. 한껏 팽팽하게 늘어났다가도 빠르게 돌아오는 고무줄 같은 탄력이 남매 사이에 있는 듯하다. 김서현은 세 살 어린 남동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간단히 적은 뒤 가벼운 소망을 덧붙인다. 화자에 비해 동생이라는 인물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이름과 피상적인 정보만으로는 원고지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나기 어렵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며 몇 개의 계절을 통과하다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다른 인물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숨을 불어넣는 방식 중 하나는 큰따옴표다. 아이들이 주어를 남으로 설정한 뒤 큰따옴표를 쓰는 순간을 나는 눈여겨보게 된다. 그건 다른 사람의 말을 거의 외워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했던 말만 기억해가지고는 큰따옴표를 잘 사용하기 어렵다. 같은 해에 김서현은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제목은 ‘이사’다.

‘다음주면 이사를 간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신이 났다. 하지만 엄마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안방에 있는 침대를 들고 갈까, 두고 갈까? 들고 가기엔 이사 갈 집 안방이 너무 작은데. 이 침대가 푹신해서 좋긴 좋지만 두고 가야겠다. 애들 침대만 가져가야겠어.” 그다음에 엄마는 소파를 생각했다. “이 소파는 어떡하지? 가죽도 다 벗겨지고 오래됐는데. 가서 새로 사든지 해야겠다. 냉장고는 어쩌지? 거의 고장이 났는데. 새로 사기엔 돈이 너무 아까운데…. 그나저나 서현이 방 책상은 어떡할까? 새 집에 들어가려나? 들어가겠다! 에어컨은 가져갈까? 집이 작아서 잠깐만 켜도 시원해질 테니까 가져가야지. 찬영이 인형들은 짐 되니까 그냥 버릴까? 아니야. 자기 돈으로 열심히 모은 건데 챙겨가자. 냄새 나는 저 햄스터들은 누구한테 줘 버릴까? 에이, 그냥 데려가자. 커튼은 삶아서 가져갈까? 그냥 이사 간 다음에 세탁해야겠다.” 엄마는 혼잣말을 마친 뒤 우리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엄마 이제 이사박스에 물건 챙길 테니까 너희도 정리 시작해!” 이삿날이 오자 나랑 동생은 아침부터 새집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놀았다. 짜장면도 먹었다. 옆집에 사는 아림이 언니랑도 놀았다. 이 집에서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물건들은 빠진 것 없이 무사히 옮겨졌다. 엄마의 잔소리와 혼잣말은 중요하다.’

이사를 앞둔 어른의 혼잣말은 길고도 길다. 신경 써서 챙겨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집도 마음도 어수선해 보인다. 김서현과 김찬영은 이사의 고단한 부분에는 참여하지 않는 듯하다. 짜장면을 먹고 ‘혼신의 힘을 다해’ 놀기만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가 노는 와중에도 엄마의 혼잣말을 죄다 적었다는 점이다. 일하고 살림하고 이사라는 거사를 치러내는 한 어른의 흔적이 아이의 글에 적혀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문득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하며 엄마의 대사를 되살렸을 것이다. 틀리게 옮기지 않으려 과거를 유심히 돌아봤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작업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지나친 남의 혼잣말조차도 다시 기억하는 것. 나 아닌 사람의 고민도 새삼 곱씹는 것. 아이들이 주어를 타인으로 늘려나가며 잠깐씩 확장되고 연결되는 모습을 수업에서 목격하곤 한다.

<이슬아 |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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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에서 천정(天正) 시대, 그러니까 서기 1573~1592년 사이에 나가사키로 처음 들어왔다. 중개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었다. 그 조리 방법은 이렇다. 달걀, 설탕, 밀가루, 꿀, 맥아당(조청), 우유 등을 섞어 뻑뻑한 반죽을 만들어 나무틀에 붓는다. 틀은 일본에서 구하기 쉬운 삼나무 계통 목재를 쓰면 그만이다. 반죽은 오븐에 넣고 구워야 한다. 번듯한 유럽식 오븐을 당장 만들기 어렵다면? 쓰던 아궁이 또는 화덕을 손보아 대류열을 가둘 공간을 확보하면 그만이다. 대단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원리를 파악해, 내가 구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쓸모 있는 사물을 만들어 내는 솜씨 또는 그 결과를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한다. 브리콜라주로 조리의 한 고비를 넘기면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한 시간쯤 불 조절에 주의해 잘 구우면 맛난 과자가 완성된다.

눈치챈 독자도 있으리라. ‘카스테라(カステラ)’ 이야기다. 더 들어가 보자. 일본인은 자완무시(茶碗蒸し)를 익히 먹어왔다. 일식 달걀찜인 자완무시는 설탕과 다디단 요리술을 섬세하게 써 특유의 질감과 풍미를 구현한다. 남중국, 동남아시아, 유구(오키나와)와 이어진 무역 덕분에 쓰자고 하면 일본인에게 설탕이 없지 않았다. 이윽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정제당의 시대를 열자 일본인은 정제당에도 금세 적응했다. 이때 비정제당 경험은 유용한 참고서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다. 자완무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카스테라에 또 다른 상상력을 빌려주었다. 자완무시의 맛과 조리의 설계에서 연역하면 이렇다. 카스테라란 밀가루 전분의 호화(糊化)가 낀 데다 설탕과 우유에서 비롯한 독특한 질감과 풍미까지 기대되는 새로운 자완무시이다. 대류열에 굽는다지만 반유동 상태의 반죽이 머금은 물기는 찌는 효과도 낸다. 틀에 쓴 나무는 물기를 붙들어주는 소재이다.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 입맛의 기호와 공동체의 선택이 그다음 진화의 동력이 되었다.

맥아당, 꿀, 설탕을 섬세하게 매만진 끝에 구현한 쨍하면서 깊은 단맛, 우유와 벌꿀이 배가한 풍미, 찜의 여운이 있는 스펀지의 물성 등은 이베리아 ‘카스텔라(castela)’와는 다른 ‘카스테라’의 속성이고 개성이다. 16세기 이베리아(포르투갈-스페인)의 카스텔라를 시조라고 한다면 일본의 카스테라는 시조와 나란히 설 만한 중시조다. 일본 제과인들은 이베리아에서 유래해, 일본 제과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꽃피어, 오늘날 동아시아 사람이 공유하는 카스테라를 일본 과자로 여긴다. 먹는 분야에서 ‘힙스터’를 자처하는 유럽 사람들에게도 카스테라는 일본 과자로 보인다. 일본풍 찻상과 함께라면 더하다. 카스테라는 메이지 시대 이후에 꽃핀 구미풍의 양과자(洋菓子)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 과자, 곧 화과자(和菓子) 동아리에 들어간다.

1718년에는 본격 제과서인 <어전과자비전초>가 등장한다. 여기에도 이베리아발 과자의 원리와 본질에 파고든 흔적이 역력하다. 달걀을 예민하게 대하고, 달걀 거품을 잘 쓰고, 대량의 설탕을 적절히 통제하는 데서 이베리아 및 유럽 제과의 특색을 발견한다. 낯선 재료인 밀가루와 낯선 기술인 제빵 또한 일본식으로 소화한다. 가령 술이나 술지게미를 써 반죽을 부풀린다는 제안도 흥미롭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옥수수술빵의 원리다. 상상력과 시도는 메이지 시대로 이어졌다. 문호 개방과 함께 폭발한 서양 제빵제과의 이입은 두 번째 도전과 도약의 계기였다. 

눈 돌려 오늘 내 나라를 바라본다. 슈니발렌, 벌집아이스크림, 대만카스테라, 뚱카롱, 흑당 음료 등등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유행이 명멸한다. 무엇이 의미 있는 시도이고 무엇은 유산되지 못할 우발적인 등퇴장인가? 무엇이 한국적 재해석이고 무엇은 열화복제인가? 열화복제라도 쌓기만 하면 유산이 될까? 아니 쌓은 게 있긴 한가? 운산조차 벅차다. 유행의 현황에 관한 중계보다, ‘뚱카롱은 한과다’와 같은 명제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관찰자의 착잡함부터 굳이 남긴다. 이 착잡함이 나와 내 동포에게 유산이 될 수 있을지조차 회의하면서.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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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일요일 밤에 방송하는 <복면가왕>은 연예인에게 컴백 무대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인기가 많아 출연 시 주목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온 관심이 쏠릴 때 가장 드라마틱하게 모습을 공개하는 포맷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복귀하는 양상은 다양하다. 스스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고 인기가 시들어 사라졌다가 어렵게 돌아온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떠돌다가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도 <복면가왕> 출연은 가장 원하는 그림이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지금 모습에 집중하게 만든다. 나이, 성별, 직업 등 모든 것이 가면 속에 감춰지는데 도박, 폭행, 음주운전 등 그들이 저지른 잘못 역시 일종의 선입견으로 간주된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시청자들을 일단 매료시킨다면 연착륙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뿌린 지상 최고의 향수처럼 마법이 시작되면 뜻밖의 결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복귀 방송에 앞서 ‘요란’을 떨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복귀 기사는 화제성 부양에 필요하지만 히스토리를 되짚는 과정도 동반한다. 출연도 하기 전 부정적인 요소가 다시 도마에 오르면 복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복면가왕>은 출연을 비밀보장하기 때문에 앞서 치러야 하는 절차가 자연스럽게 생략된다. 반면 그런 절차의 부재에서 오는 손해를 만회하고 남을 만큼 방송은 극적으로 진행된다. 방송 후에도 가면 속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누구’인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도 장점이다. <복면가왕>이 복귀 무대로 주목받는 건 그만큼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바비킴이 이달 초 <복면가왕>을 통해 돌아왔다. 기내 난동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4년6개월이 흐른 뒤 찾아왔다. 다른 연예인의 복귀 기간과 비교해도 길었던 건 연예인 중년 남성이 일반인 젊은 여성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맥락과 더불어 당시 ‘땅콩회항’ 직후 터지며 갑질 패키지로 묶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긴 유배를 거친 만큼 시청자들의 마음도 많이 녹은 듯하다. 그의 노래가 꽤 그리웠던 모양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따뜻하게 그를 안아주었다. 그럼에도 차가운 시선이 여전한 것을 보며 좀 놀랐다. 가면을 벗고 인사하며 울컥 눈물을 쏟으려는 바비킴을 떠올리니 용서란 게 무엇인가 곱씹게 된다. 

애당초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화면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시청자도 여전히 많다. ‘미성년도 보는 TV에 굳이 그런 사람들을 나오게 할 필요 있을까’ 싶은 게 엄격한 기준을 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형벌을 이렇게 쉽게 주장할 대상이 연예인 말고 또 있나 싶다. 방송출연도 직업의 세계라면 영구 퇴출은 그만큼 높은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자숙기간은 죄질과 더불어 인기, 평소 보여주었던 인성, 안티 팬의 규모, 대체 가능성, 복귀 플랫폼 등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정해진다. 명시적으로 확인할 룰도 없어 연예인 입장에선 자숙 기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좀 안 보였는데 다시 나온 것을 보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났구나. 세월 참 빠르네…’라고 말하기에 당사자는 매일의 생계를 견디며 일 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야 한다. 한편으로 어느 연예인이 음주운전처럼 큰 죄를 짓고도 슬쩍 복귀를 해버리면 속수무책 TV에서 봐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도 현실이다. 기준이 자의적일수록 여론은 쉽게 누군가를 가혹하게 대하고 또 누군가를 쉽게 용서한다. 규칙이 명확한 경우가 하나 있는데 군 입대 문제다. 어길 경우 가장 가혹한 징벌이 기다리고 있지만 갔다 오면 과거를 묻지 않는다.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이한 경우이다.

우리 사회는 용서받는 공식이 명확하게 제시되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워낙 죗값을 치르지 않는 자들이 많으니 제대로 용서해주고 또 용서받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다. 그래서 법적 처벌 이외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경계심이 있고 또 인색하기도 하다. 그 정서적인 맥락 속에 연대 의식 없고 소수인 연예인이 유독 호되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가장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는데 이 정도는 좀 걱정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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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인사불성 상태의 취객을 상대해본 사람이라면, 과도한 알코올이 인간을 얼마나 강하고 대책 없는 존재로 만드는지 알 것이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취객을 손쉽게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최근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는 동영상에 대해 논평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오히려 그 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고,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동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하면서 ‘그럼에도 논란’이라는 식의 보도를 지속하는 언론들이 논평의 대상일 수는 있을 것이다. 여경 폐지라는 억지주장을 하는 이들의 주장을 계속해서 사회적 여론인 것처럼 다루며 의미 없는 수선을 피워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너무 많은 영화와 매체들이 경찰의 업무를 극적이고 폭력적으로 연출해왔다. 하지만 경찰의 일상이 도심을 가르는 추격전과, 목숨을 건 혈투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표창원 의원에 의하면 세계 각국의 경찰 업무 중 물리력을 사용하는 업무의 비중은 많게 잡아야 30%가량이고 나머지 70%는 대민 업무를 비롯한 소통 업무다. 만약 경찰이 빈번하게 물리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경찰일수록 인권감수성, 합법성, 소통능력이 더욱 중시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공권력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물리력을 행사할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의 폭력이 두려워서 그들의 말을 듣기로 한 것이라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상대하는 이들이 언제나 험상궂은 덩치들뿐인 것도 아니다. 경찰은 조폭도 상대하지만, 지능범이나 교통사고를 낸 사람도 상대하고, 그게 범죄라는 것도 모른 채 대수롭지 않게 범법을 행한 사람도 상대한다. 서로 언쟁을 벌이는 사람들도 상대하고, 각종 시위대도 상대하며, 범죄의 피해자들도 상대한다. 그러므로 푸시업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경찰 업무를 모조리 맡겨야 한다는 발상은 단순함을 떠나 지극히 위험하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여성 경찰은 무용하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리고 이 논의들은 여성 경찰의 현실적 필요와 역할을 재차 확인해주었다. 여성 경찰들은 통상적인 경찰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흉악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므로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나 조사 과정에서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일상적인 업무에서 불필요한 물리력 행사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실용성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논의는 치안이라는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민주주의적으로 구성하고 통제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경찰의 중요한 권한 중 하나는 누가 범죄자인지를 식별하는 것이다. 가령 지난 정권에서 경찰은 민간인 및 반(비)정부 세력에 대한 감시를 벌이고 여론조작을 하는 등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 또 최근 버닝썬 사태에 대한 조사를 통해 유착 의혹이 제기된 경찰과 성매매 및 약취강간을 벌였다고 의심되는 연예인과 ‘VIP’들 대신에 제보자를 유일한 범죄 용의자로 선정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경찰의 가장 큰 문제는 취객을 한손으로 제압하지 못하는 여성 경찰이 아니라, 그릇된 조직 보위 논리와 권력욕에 빠져 공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있는 조직의 전·현직 결정권자들이다. 경찰청의 중요한 사안을 무술대회를 열어 결정한다고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절호의 기회를 만난 듯이 여경 폐지를 외치는 남자 경찰공무원 지망생들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무장과 폭력 사용이 공권력에 대한 존중을 높여주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공권력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공명정대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복이지 몽둥이가 아니다. 제복 속에 사람의 성별과 피부색과 성 정체성과 장애 여부는 더더욱 아니다. 경찰과 경찰 지망생들께서는 업무에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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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이 채 되기 전에 TV에서 본 개그 프로그램의 콩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니, “기억난다”기보다는 “잊혀지지 않는다”에 가까울 것 같다. 내용은 이랬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한 마을의 돈 많기로 유명한 부잣집의 딸내미가 덩치가 크고 못나기가 그지없는데, 그게 또 외동인지라 오냐오냐 자라 버릇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혼기가 차도록 데려가겠다는 남자 하나가 나서지를 않아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석꾼은 누구든 딸을 데려가기만 하면 큰돈을 물려주겠다고 공언한다. 이에 가난하지만 영민한 총각이 찾아와 그 천방지축을 기꺼이 아내로 맞는다.

이 정도였다면 아직까지 잊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혼기가 찬 딸을 치워버리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이야기가 아닌가. 어린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그래서 실제로는 겁먹게 했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청년이 말괄량이 뚱보를 신부로 맞아들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친구들이 그를 놀려먹기 위해 신혼집으로 찾아온다. 기도 못 펴고 살고 있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면서 낄낄거린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신혼집에서 마주친 새신부가 어찌나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 듣는지, 놀랄 노자다. 심지어 행실이 고아지니 추하기 그지없던 얼굴도 어딘가 고와 보인다.

친구들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새신랑에게 묻는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건가?” 새신랑은 빙글빙글 웃으며 답한다. “첫날밤에 술을 진탕 먹여 곯아떨어지게 한 뒤, 이불에 물을 엎어버렸지.” 신혼 첫날에 이불에 오줌을 지린 줄 안 신부는 부끄러움에 바들바들 떨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겠다고 설치는 신랑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비밀만 지켜주신다면 평생 하늘처럼 받들며 순종하겠어요.”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뚱뚱하고 거침없는 여자아이였던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세계에서 여자의 활기는 부덕이 되고, 남자의 야료는 재기(才氣)가 된다는 것을.

과거에는 이런 종류의 민담이 각종 판본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어떤 판본에서는 “박색인 주제에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닌 것까지는 참았는데, 여성 상위 체위(woman on top)로 하늘 같은 남편을 짓누르는 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친구를 시켜 아내를 유혹하게 한 뒤 불륜 현장을 덮쳐 몽둥이로 두들겨 버릇을 고쳤다고 자랑한다.

배우 라미란과 이성경이 출연한 영화 <걸캅스>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뭐가 되었든 ‘제멋대로인 여자’를 길들이는 이야기에서 여자들은 뚱뚱하고, 시끄럽고, 많이 먹고, 욕심 사납고, 음탕하며, 움직임이 크다. ‘여성 상위 체위’가 상징하는 것처럼 허락되지 않은 자리로 기어 올라가 남자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

이 여자들은 성적 위계를 뒤집기 때문에 무질서를 초래하고, 스스로 중성성을 드러내면서 사회의 젠더 이분법을 비웃는다. 절제와 순종의 미덕에서 아무런 가치를 찾지 않으며,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고 스스로 농담이 된다. 자유롭게 나이 들었기 때문에 때때로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지혜를 지녔다. 그들은 좁은 공간을 깨고 자신을 기꺼이 확장시킨다. 큰 몸, 큰 입, 큰 목소리, 큰 성기는 그 확장성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미 위협적이다.

그러므로 이런 여자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들을 ‘길들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그렇게 그들을 낄낄거림의 소재로 격하시킴으로써 힘을 빼앗아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 콩트에서 사지를 흔들며 무대를 활보하던 ‘위풍당당한 못난이’가 남편의 거짓말에 속아 두 손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종종 거리며 걷는 ‘온순한 새신부’가 되었을 때, 그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건 <걸캅스> 때문이었다. 이 영화 속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은 타협과 도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스스로 농담이 된다. 그리고 웃음이 쌓여갈 수록 그들이 활보하는 공간은 넓어지고,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게감을 더해간다. 그야말로 ‘우먼 온 톱’의 활개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손희정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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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이 된 나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그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 것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그를 향한 부모의 걱정은 계속 많아져 간다. 5월이 되고서는 5월15일에 무엇을 들려서 보내야 하나, 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김영란법’ 때문에, 혹은 그 덕분에, 일정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새 아이의 아빠이면서 그의 스승을 신경 써야 할 자리에 이르렀다.

아마 나의 부모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이던, 정확히는 국민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사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반의 칠판마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는 글씨와 그림이 색분필로 채워졌고, 교탁에는 그들을 위한 선물이 쌓였다. 반장의 주도로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감정이 격해져 울기도 했다.

성인 여성 교육기관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15일 열린 스승의날 기념행사에서 만학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들이 무척 많다는 데 있었다. H교사는 “강남에서 일할 때는 트렁크를 열면 이런저런 선물이 많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했고, S교사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 두엇을 앞으로 불러내서 “너희는 편지 한 통 쓰지 않았느냐”고 눈물이 나도록 혼내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스승의날은 교탁에 쌓인 선물과,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 보면서 학생의 이름을 호명하는 교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질책을 당하는 학생들, 그러한 야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J는 30대 젊은 교사였고 그는 자신 앞에 쌓인 선물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들께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세요” 하고는 서둘러 수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때 학생들은 J에게서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다. 그것이 그만큼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던 것이다. 20년 전에는 H와 S의 방식이 오히려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시대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문법, 문화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를 학생으로서 젊은 교사로서 겪어낸 이들이 강단에 서고 있고, 덕분에 2019년의 5월15일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스승의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기도 하고, 아예 폐지하자는 당사자의 청원도 올라온다. 여기에는 교권이라는 것의 추락과 달라진 스승의 역할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하겠으나, 나는 나의 세대가 쌓아올린 지금의 풍경이 이전보다는 더 마음에 든다.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내일은 스승의날입니다. 이날은 선생님들에게는 스승의 길을 걷는 사명감과 긍지로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자들에게는 스승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이에 저희 유치원에서는 선물, 꽃바구니 등 일체의 물건을 받지 않으니 감사의 뜻이 훼손되거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하고 모든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아이는 참 좋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스승의날을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날’로 명시한 그 부분이 참 좋고 고마웠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에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대학원생의날’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그들은 “푸코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튜링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퀴리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김윤식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모든 교수들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 거창한 행사는 없더라도, 대학원생 동료, 선후배,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날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라고, 절박한 마음을 드러냈다.

스승의날의 주체가 ‘스승’이듯이, 이날은 유치원에서든 대학교에서든 그들이 자신의 제자들을 돌아보는 날 역시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한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답하는 주체적인 당사자가 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다. 특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바람처럼, 자신 역시 언젠가는 대학원생이었던 교수들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대학원생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선물을 거부하고 휴교를 하는 데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학교에서 맞이하게 될 스승의날은 그렇게 다시 조금은 또 다른 날로 다가갈 수 있으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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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스승의날이다. 기념일이 많은 5월은 으레 주변을 돌아보는 달이다. 기념일 때문에 지출이 크기도 하지만, 고마워할 사람이 있다는 게, 그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념일을 핑계로 “고마워요”나 “미안해요” 같은 고백과 “행복하세요”나 “건강하세요”와 같은 바람을 수줍게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말인데도 저 말들을 할 때면 오스스 소름이 돋는 이유는 무엇일까. 슬프게도 지금껏 어떤 스승도 그 이유를 알려준 적이 없다. 어떤 것은 살면서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스승의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 연락을 드리지 않다가 기념일을 핑계로 전화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게다가 “선생님, 스승의날이라 연락드렸습니다” 같은 말을 뻔뻔하게 건넬 만큼의 내공도 없다. 그마저도 몇 년 전부터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지레 겁을 먹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전화기를 쥔 손은 파들파들 떨린다. 머리는 연신 조아린 채다. 스승들은 나를 혼내지 않을 것이다. 외려 기운을 북돋워주실 것이다. 그런데도 전화를 걸기 전부터 나는 말을 더듬고 있다.

스승은 대화의 맥이 끊길 때쯤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잘 지내지?”나 “건강하지?”와 같은 심상한 질문을. 심상한 질문인데 내게 그것은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뜨끔해서 그렇다. 내가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승이 간파한 것 같아서, 건강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나를 들킨 것 같아서. “잘 지내야지요”나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와 같은 대답으로 국면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미 나는 얼어붙었다. 정곡을 찔린 나를 떠올리며 수화기 저편에서 스승은 웃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김병익 선생님의 산문선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이른비, 2019)을 읽었다. 매 글 뒤에는 추신이 덧붙어 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을 여기로 다시 소환하는 일, 지금에 와서 옛 기억을 애타게 더듬는 일일 것이다. “무연한 것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여, 앞으로 남은 것보다 지난 기억이 훨씬 많아진 나는 이제 그것들에, 따뜻한 안녕의 인사를 보낸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겸허해진다. 무연한 것, 그러니까 아무 인연이 없는 것에게 나 또한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닿은 존재와 무연한 존재를 그러모으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승의날 하루가 모자랄 것이다. 옆에서 나를 자극하는 존재를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곁을 살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 힘들 때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아빠의 말씀이 떠오른다. 무연하기에 진한 여운을 남긴 존재도 있다. 어떤 산책길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길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다 갖게 해주었다. 지난 기억과 앞으로 남은 것의 무게가 수평을 이루는 순간을 떠올리니 아찔하다. 나이를 먹어도 스승은 필요할 것이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주는 사람’을 뜻한다. 가르치는 현장에 꼭 교단과 칠판이 있을 필요는 없다. 이끌어주는 일이 꼭 우물 앞까지 함께 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다. 나를 가운데에 두고 바라봐야 ‘예전의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존재가 보인다. 앞으로도 무수한 사람이 나를 스쳐갈 것이다. 그보다 더 무수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은 한참 뒤에야 뾰족한 섬광처럼 다가올 것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스승으로 인해 ‘나중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궁금해하는 사람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궁금함을 주변에 나누는 사람들이 내게는 모두 스승이다. 궁금함을 유발하는 생물과 무생물 또한 스승이다. 궁금해함으로써 삶의 실마리가 생기고 내일의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진다. 나의 스승은 도처에 있다. 그들 모두에게, 하나하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여기에서 거기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여기를 똑똑히 기억하리라.

무수한 스승들 덕에 이 글을 쓸 수 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손을 뻗어도 가닿을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다. 허나 손끝의 굳은살은 지금 이 순간의 밀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스승의 가르침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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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민국’이라 불릴 정도다.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역대 최단 1000만 관객을 모으는 신기록을 세웠다. 왜 이 정도로 난리일까? 돈 많이 들인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다는 충족감을 주는 ‘눈뽕’ 가득 시각효과, 호쾌한 액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물론 마블 콘텐츠를 안 보면 대화에 낄 수 없어서 억지로 본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실제로 마블 스튜디오는 얘깃거리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왔다. 원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대와 연계해 풍부히 해석할 여지를 던졌고, (비록 아쉬운 점이 있을지라도) 다양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며 편견 타파에 초점 맞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인기 있는 사회라고, 그 사회가 작품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곳은 되지 않는다. 포용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문화콘텐츠가 범국민적 흥행을 하는 한국은 포용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이 간극이 나는 흥미롭다.

한국 국민 10명 중 8명은 난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고, 젊은 남성 집단은 난민뿐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통계 지표가 나타났다. 젊은 남성들은 마블 인기를 견인하는 핵심 지지층이다. 차별, 혐오, 폐쇄는 근래의 마블 영화 <블랙팬서> <캡틴마블>에서 지향한 가치와 정반대인데, 주요 마블 소비자들이 마블의 가치와 상이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것을 보면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말도 옛말인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포용적인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를 접했지만, 그 가치에 감응하지는 않아 보이니 말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 쉽고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너무 많기에, 작품 한두 개가 끼치는 힘은 미미할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여운에 빠져있기보다, 허기를 채우듯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삼키게끔 하는 환경이다. 사람들은 ‘이야기 폭식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소비하기를 반복한다. 이야기를 주워 삼키는 동안에는 현실의 고단함도, 외로움도 잊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야기가 사람을 삼키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일. 신화, 역사, 종교 등 거대한 이야기는 그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태극기부대 어르신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반공주의라는 지나간 이야기에 삼켜져, 원혼처럼 현재를 배회하며 울부짖는 사람들.

최근 ‘20대 남성’이라고 호명 받은 집단도 이야기에 삼켜진 이들로 보인다. 말은 바로 해야지, 이들은 사실 모든 20대 남성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이 용어를 사용한 맥락에 따르면 이들은 ‘역차별 시대에 태어나 박해 받는 남자’라는 이야기에 심취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다. “페미는 정신병”이라고 웅얼대고, 불법촬영 피해 여성에게 “함부로 다리 벌리고 다녀 그런 것 아니냐”며 2차 가해하고, “사실 여자들이 일 더 못하는 건 ‘팩트’ 아니냐?”며 임금차별을 정당화하는 그들의 레퍼토리는 발전이 없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본 말을 그대로 따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논리력도 없나 보다. 그들 발언 자체가 여성혐오가 존재함을 입증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집단에 삼켜진 이들은, 본인이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하다보니까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 착각한다. 누군가 경험이나 의견을 나누고자 하면, 일단 방어부터 하고 본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내 주변은 안 그런데?”라며 속 터지게 하는 것이다. 내 편 아니면 적, 이분법으로 나눈 세계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실재하는 피해의 경험들과 문화적 폐단과 제도적 모순을 가린다. 

나는 개인과 개인 간의 다채로운 관계 맺기가 용이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 말이다. 마블도 좋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내 자신을 그보다 더 오래 봐야겠다. 멀리서부터 큰소리로 외치는 아우성들로 세상이 가득하지만, 가까이서 작게 소곤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을 표하는 데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그보다 앞서야 하는 건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기, 스스로의 약점과 두려움을 마주하기, 나의 약함을 숨기려고 타인에게 상처 입히지 않기….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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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지향 생활을 해보니 이 시대의 영상들을 새롭게 감각하게 된다. 비건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것뿐 아니라 나와 타자가 맺는 관계를 돌아보고 다시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무엇을 볼지에 대해서도 여러 고민이 생긴다. 유튜브 시대를 나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실감하는데, 많은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본 영상에 대한 글을 써오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나 먹방이나 게임 채널이나 ASMR을 소개하고 감상을 적는다. 그중에서도 나의 학생들이 가장 잦은 빈도로 시청하는 것은 동물 영상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영상들 속 동물들이 얼마나 귀엽고 웃기고 놀라운지를, 혹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슬픈지를 증언하는 글을 쓴다. 그걸 읽으며 나는 학생들의 여가 시간을 상상하고, 가끔 웃고, 또 가끔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자신의 반려견이 죽음을 맞는 순간을 촬영한 영상이 유튜브에는 아주 많다. 죽기 직전의 개와 그 개를 둘러싼 가족과 절절한 호명과 울음과 사랑의 메시지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생생히 기록돼 있다. 제목엔 날짜와 개 이름과 ‘무지개다리 건너는 순간’이라는 문장이 쓰인다. 나는 동물 영상을 잘 보지 않지만 아이들이 영상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옮겨 적어오는 날엔 그 죽음의 현장을 상상하게 된다. 아이들은 그걸 보며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쓴다. 나는 그들이 슬펐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또한 영상 속 동물과 사람들이 겪은 슬픔의 무게나 진정성에 대해서도 감히 어떤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영상을 보는 일에 관해 생각한다. 아이들이 느낀 슬픔의 정체를 생각한다. 나 역시 반려묘와 함께 살며 날마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므로 그 존재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고통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장면이 웹에 업로드되어 누구든 언제든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데이터가 무한 복제되고 무한 반복 재생도 가능한 시대에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봄으로써 발생하는 감정의 결에 대해서도 세세한 구분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영상에서의 슬픔은 시청자를 위협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보고 싶은 슬픔’이자 ‘소진되기 좋은 슬픔’이다. 시청자의 일상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소비된다. 정신분석학자 백상현은 그의 책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에서 스펙터클 사회가 미디어를 통해 제공하는 감정의 고양 상태에 관해 말한다. “텔레비전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웃음과 슬픔, 분노와 노스탤지어의 감정을 자극하지만 정작 이것이 겨냥하는 것은 감정의 소진상태이다.” 

우리는 예능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유튜브 영상 클립 등을 통해 여러 감정을 느끼지만 극적인 비극을 본 뒤에도 대체로 별탈없이 일상에 복귀한다. 숱한 미디어 콘텐츠가 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은 어제의 내가 변함없이 오늘의 나로 돼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정화 역할을 한다. 라캉은 이런 안정화를 비난했다. 안정화란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착시키는 부정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걸 ‘살균된 슬픔’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진정한 슬픔과 분노는 우리의 존재를 뒤흔든다. 원래 자리한 위치에서 떨어져나가게 하고 방황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다. 라캉은 말했다. “만일 슬픔이 우리의 ‘감정’에 진실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감동’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흔들림’을 통해서일 뿐”이라고. 

감동적인 동물 영상들이 범람하는 한편에는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수산 현장이 있다. 그라인더에 갈리는 병아리와 살처분당하는 돼지의 얼굴들도 있다. 그 현장 역시 마음만 먹으면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쪽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슬픔의 실체는 거기에 죄다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조회수가 높지는 않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망각을 위한 카타르시스의 기능”이 거기엔 없다. 그 슬픔은 너무도 불편하여 우리를 어제와 똑같은 존재로 남겨두지 않는다. 비건이 아닌 이들에게도 분명히 어떤 영향을 미치고야마는 이미지들이다.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며 수업에서 나온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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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여보, 일어나 빙수나 한 잔 자시오. 좀 속이 시원하여질 테니. 이제 울으시면 어짜요? 다 팔자로 알고 참아야지. 나도 젊어서 과부 되고 다 자란 자식 죽고… 그러고도 이렇게 사오. 부모 없는 것이 남편 없는 것에 비기면 우스운 일이랍니다. 이제 청춘에 전정(前程·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왜 걱정을 하겠소. 자 어서 울음 그치고 빙수나 자시오. 배도 자시구.”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하다 이듬해 단행본으로 묶인 이광수 소설 <무정(無情)>의 한 장면이다. 초여름 더위가 성큼 다가온 경성의 6월, 주인공 형식의 하숙집을 찾아온 영채가 하루아침에 오빠와 아버지를 잃고 홀로 된 저간의 일을 털어놓다가 그만 복받쳐 쓰러진다. 형식과 영채는 어려서 함께 자란, 오누이 같은 사이다. 우는 영채는 숨이 넘어가는데 하숙집 주인 노파가 얼른 시장에 달려가 빙수를 사 온다. 위로랍시고 뱉은 말이라곤 ‘팔자’에 ‘전정 구만리’에 갈 데 없는 봉건적인 수사요, 듣는 쪽에게 위로가 될 리 없는 무정한 낡은 언어인데, 빙수 한 사발이 노파의 소박한 자매애를 간신히 구원했다. 빙수는 실제로 타는 속을 달래고, 몸과 마음의 열을 식히는 효과가 있었을 테지. 냉장고 보급률 높지 않던 시대, 한여름의 빙수나 얼음물이 보통 사람의 감각에 준 충격, 각성의 감도는 오늘날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으리라.

19세기 이전에는 임금 또는 극소수의 권력자와 부자들만 한여름에도 얼음을 즐겼다. 한겨울에 자연빙을 채취해 빙고에 거두었다가, 한여름에 꺼내서 먹어치웠다. 파천황(破天荒)은 과학기술의 결과였다. 1862년 영국에서 비전기식 냉장고가 등장한다. 1875년에는 암모니아 압축식 냉동기가 나와 인공 제빙의 시대가 열린다. 1890년대가 되면 조선에서도 제빙기가 돌고 냉동고가 조영되었다. 여기서 나온 얼음으로 1910년대 조선의 도시에서 부자든 서민이든 한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 또는 빙수 먹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량생산 기술과 손을 잡고 보면 얼음이란 가장 비용이 덜 들고, 가장 관리가 간단한 식료품 아니겠는가.

“스윽- 스윽- 그 얼음 갈리는 소리를 들어라. 새하얀 얼음비가 눈발같이 흩어져 내리는 것을 보라.”

월간 잡지 ‘별건곤’ 1928년 7월호에 실린 빙수의 ‘문자먹방’이 이랬다. 10년 사이에 빙수를 향한 감각도, 빙수의 물성과 질감에 대한 감수성도 훌쩍 컸다. 먹방은 이렇게 다시 이어진다. 

“사알-사알 갈아서 참말로 눈결같이 간 고은 얼음을 사뿐 떠서 혓바닥 위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씹을 것도 없이 깨물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혀도 움직일 새 없이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달콤한 향긋한 찬 기운에 혀끝이 환해지고 입 속이 환해지고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가슴속 뱃속 등덜미까지 찬 기운이 돈다. 참말 빙수는 많이씩 떠먹기를 아껴하면서 혀끝에 놓고 녹이거나 빙수 물에 혀끝을 담그고 시원한 맛에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기뻐하는 유치원 아기들같이 어리광 쳐가며 먹어야 참맛을 아는 것이다.”

고대 중세 동아시아에서는 한여름에 빙고에서 꺼낸 얼음을 칼로 깎아 얼음가루를 내 금속 식기에 켜켜이 쌓고, 거기다 능금, 포도, 오미자, 양매, 오매, 치자를 꿀에 졸이고, 정향, 회향, 육두구, 계피, 후추 따위로 풍미를 끌어올린 즙을 친 빙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한여름에 얼음만 봐도 좋았다. 달리 얼음의 질감을 논할 여지가 없으니 호화로운 즙액 얻기에 집중했다. 이윽고 한 번 수가 나자 사람의 감각이 이렇게 달라졌다. 위에서 본 그대로다. 도구와 방법이야말로 사람의 감각, 음식 감수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법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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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은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너무 익숙하고 안쓰럽고 분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사람에게는 튼튼한 벽과 지붕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을 목격했던 곳은 죄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내 한복판 한쪽에 자리 잡은, 너무나도 빈약해 보이는 천막이었다. 그리고 그 목격담은 마치 유령처럼 장소를 옮겨가며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야 그 지난한 투쟁이 콜트와 콜텍의 공동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년 만에 사측으로부터 ‘유감 표명’과 ‘합의금’을 받게 된 것은 1988년에 설립되고 통기타를 만들던 콜텍이고, 1973년에 설립되어 전자기타를 만들던 콜트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여전히 대법원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콜트의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공장으로 돌아간 그들은 3개월 만에 다시 정리해고를 당했고, 콜트는 국내 공장을 아예 정리해버렸다. 다시 진행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고 2017년 5월 “국내 공장이 없어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 실익이 없다”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후에 밝혀진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 사건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박근혜 정권과의 재판거래 대상으로 분류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콜트는 여전히 멈출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다.

4464일간 이어진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콜텍 노사가 정리해고 노동자의 ‘명예 복직’에 합의한 22일 임재춘 콜텍지회 조합원(오른쪽)이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42일 만에 단식을 풀며 김경봉 조합원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일 수 있다. 사람들은 평생을 일하면서 살지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사장이 고용한 사람을 마음대로 자르는 것은 아직도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고, 심지어 공장을 뜯어 외국으로 나갔는데도 해고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인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근대적 고용관계가 생겨난 이후 노동자들은 단지 더 많은 돈을 위해서만 싸운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자의적인 결정들에 맞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권리를 얻기 위해서도 싸웠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유명한 구호는 기업과 경영자들이 한낱 숫자로 취급하며 잘라내는 게 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멀쩡히 흑자를 내며 잘 운영되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경영상의 이유를 대며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은 콜트와 콜텍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아직도 너무나 많은 ‘사장님’들은 기업과 장롱 속 금송아지 사이의 구분을 못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재산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은 교육, 환경, 법과 제도, 경제정책을 비롯한 영역에서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그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는 기업과 자본에는 깃털과 같은 자유로움을, 사회와 노동자들에게는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자본과 기업의 방만함이 위기가 되어 돌아오자,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2018년 세계은행은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 5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통계는 세계은행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신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저임금 여성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다고 발표했으며, 한 글로벌 컨설팅 업체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여성이 일하기 가장 안 좋은 나라로 꼽았다. 

이 격차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면한 사회문제들의 상당수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13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버티며 투쟁해온 콜텍 노동자들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에 나선다. 이인근 지회장은 “자본들은 오래 버티면 노동자들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법칙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콜텍에 축하와 감사를, 그리고 콜트에는 간절한 기원을 보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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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생인 나는 작년에 나와는 10살 차이인 90년대생, 70년대생 두 사람과 독특한 인연으로 만났다. 그들과 적당히 친해지고서는 언젠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이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것이 ‘2002년 월드컵’이었다고 덧붙였다. 2002년에 나는 스무 살이었다. 태극기를 들고 신촌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무척 행복했다. 사실 나에게 그 거리는 전경과 대학생이 아니면 서 있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최루탄 때문에 손수건을 항상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2002년에 아, 이렇게 거리에 함께 모여도 되는구나, 그리고 멋진 일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을 얻었다. 내가 한 개인이자 청년으로서 대한민국의 몇몇 현대사의 순간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용기도 그때 내 몸에 새겨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답을 짐작해 보았는데, 1970년대생은 IMF를, 90년대생은 최근의 촛불집회를 각각 말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정확히 20살 차이가 나는 둘은 동시에 같은 답을 했다. 그러니까, 2014년 4월16일, ‘세월호’였다. 그 이유도 거의 비슷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저의 아이가 거기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했어요.”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나는 2014년에 막 서른이 넘은 참이었다.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일들이 밀려들었던 때다. 나뿐 아니라 83년생인 주변의 친구들 모두가 비슷하게 순탄하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주변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서른 즈음이 대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월호의 뱃머리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먹먹하기는 했으나 ‘내가 저기에 있다면’ 혹은 ‘나의 아이가 저기에 있다면’ 하는 데까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나의 공감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도 있겠고 출산과 육아라는 미션을 수행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70년대생과 90년대생의 몸에 세월호라는 재난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재난으로 깊게 새겨져 있었다.

개인과 동시하는 역사는 그들의 몸과 사유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재난이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서해훼리호의 침몰을 지켜보았다. 그 잔상이 내 몸 여기저기에 여전히 묻어 있다. 그러나 재난보다도 오히려 그 재난을 극복하는 방식이 그것을 목도하고 자기화한 이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게 된다. 잘 극복된 재난은 그 이후의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다시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반면 잘 극복되지 않은 재난은 오히려 그 이후를 더욱 참혹하게 만든다. ‘어떻게 구조했는가’만큼이나 ‘어떻게 사과했는가’ ‘어떻게 진상을 규명했는가’ ‘어떻게 책임졌는가’ ‘어떻게 위로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왜?”라는 여러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재난 이후의 재난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세월호를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규정한 90년대생과 70년대생 두 사람은, 하나의 공통점을 더 드러냈다. ‘나의 아이들을 외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것과 ‘기회가 되면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70년대생은 지금 한국에 없다. 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라는 그의 능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세월호 이후, 이민이 삶의 한 명제이자 목표가 된 어느 세대들이 탄생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개인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몸에는 이미 그 단어가 새겨지고 말았다. 80년대생들이 갖고 있는 ‘탈조선’이라는 해묵은 유행어와는 그 차원 역시 다르다. 이 자체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대한민국이 직면한 거대한 재난이다. 

그들의 마음을 구조하는 데는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현재진행형인 재난이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를 내가 만난 70년대생과 90년대생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 5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겨움을 호소하기에는 오히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몇 주기라는 기억의 순환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세월호라는 재난을, 그 재난 이후의 재난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남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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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5년이 흘렀다. 당시 나는 미디어를 통해 전원 구조 속보를 접한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가 나자마자 재빨리 대처해 승객을 구해내는 ‘그런 나라’에 산다는 사실에 우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전원이 구조되었다가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이 순식간에 실종자 상태가 되었다. 사는 곳과 상관없이 우리는 한동안 팽목항에 마음을 보냈다.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 통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오히려 비탄이나 통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놀람은 어처구니없음으로, 무기력은 분노로 바뀌었다. 비탄은 어이없음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슬픔과 다르다. 아직까지 비탄이 가시지 않은 데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폐쇄회로(CC)TV 관련 증거자료가 조작·편집된 정황을 밝히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안산에 있는 4·16 기억저장소에서 유가족들은 아직도 울고 있다. 참사 당시와 진상규명 투쟁을 할 때보다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애써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상실감은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사람의 속에 있다가 느닷없이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길 가다 거센 바람이 불 때, 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 무슨 징조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손바닥 위에 떨어질 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은 망연해진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조성된 ‘세월호 기억의 벽. 서성일 기자

그러므로 어떤 감정 앞에서는 “지겹다”고 말하면 안 된다. 슬픔이나 괴로움 앞에서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자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정은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지만, 반대로 밀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한없이 빽빽해져서 그 감정 이외의 다른 감정을 일상에 불러들일 의욕을 잃게 만든다. 코미디를 보며 웃기도 하고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더 큰 슬픔이 된다. 내가 웃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것에 신기해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움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영화 <생일>을 보았다. ‘생일 시’를 읽는 후반부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없이 울었다. 생일 시는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애간장을 저미는 편지 같았다. 이 시는 실제로 정혜신·이명수씨 부부가 기획한 세월호 유가족 생일 모임에서 낭독되었는데, 생일 시들은 한데 묶여 <엄마. 나야.>(난다, 2015)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시들은 학생의 육성을 통해 생생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이 책의 저자가 시인이 아닌 서른네 명의 단원고 아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 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선명해져서 섣불리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기억이라도 남아 있어서 살아갈 최소한의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남은 자는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갠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아파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김상혁의 시 ‘길은 어떻게든 다시’(<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현대문학, 2019)를 읽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길은 어떻게든 다시/ 소리…… 침묵…… 소리로 이어져 형은 다시/ 동생의 손을 잡고 개는 최고로 주인을 사랑하고/ 모든 자동차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다시 살고 있다. 어김없는 일들 사이에서 더 이상 같지 않은 일을 헤아리며 길 위에 소리와 침묵으로 이뤄진 발자국을 찍고 있다.

내년에도 4월16일이 올 것이다. 4월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여전히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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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