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진중권의 돌직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3.09 대구사태와 광주사태
  2. 2020.01.06 웰빙 인 좀비월드

[시사 2판4판]토끼 농장 (출처:경향신문DB)

바이러스가 발발했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할 원칙이 있다. 방역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을 경우 국가의 방역정책이 정당의 탐욕이나 대중의 공포로 인해 정치적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국민의 생명이 달린 사안을 자신들의 정치적 어젠다를 확산할 기회로 여기는 여러 세력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여야의 구별이 없어 보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수습의 책임을 진 정부 측에서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경고의 목소리를 묵살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철마다 찾아오는 인플루엔자와 동일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규모 감염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머잖아 코로나는 종식될 것”이라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짜파구리 오찬 사진을 홍보용으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기 위해 국가의 방역대책을 싸잡아 비난하기 마련이다. ‘방역에 실패했다’는 이미 내려진 결론을 위해 그들은 인과관계를 왜곡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즉에 ‘중국인의 출입을 봉쇄했어야 한다’는 주장. 확진자가 이미 7000명을 넘었지만 그중에서 중국인에 의한 감염의 사례는 겨우 한두 건에 불과하다. 또 진즉에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미국에서도 바이러스는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그릇된 인과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방역에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국에서 오는 직항편을 끊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중국인들에게만 집중하는 바람에 그보다 더 유동인구가 많은 유럽인들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그들이 의심했던 중국인들은 검사결과 모두 음성으로 밝혀졌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 후에야 뒤늦게 0번 환자는 유럽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봉쇄의 논리가 옳다면 같은 논리에 따라 당장 확진자의 90%가 나온 대구·경북부터 봉쇄해야 할 게다. 하지만 그 많은 중국봉쇄론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대구를 봉쇄하자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것만 봐도 중국봉쇄설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베네치아까지 봉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이럭저럭 사태를 수습해 가고 있다.

한편, 그 반대편에서는 분노한 대중의 시선을 애써 종교와 지역으로 돌리려 한다. 서울시장은 신천지 교주를 ‘살인죄’로 고발했고, 한국의 두테르테 경기도지사는 그를 쫓아 야밤에 신천지 본부로 쳐들어가더니, 급기야 주일예배를 강제로 금지시키는 행정조치까지 검토 중이란다. 방역을 핑계로 대나, 이 오버액션이 대중의 뇌리에 자신을 대선주자로서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포퓰리즘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대구사태” “문재인 폐렴” 등 

‘네이밍’ 전술로 정치적 악용에 

낙인찍어 고립시키는 언동들


가장 질이 안 좋은 것은 특정 지역에 낙인을 찍어 고립시키는 언동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코로나19 확진자 현황과 2018년 지방선거 결과가 담긴 사진을 올리며 “투표의 중요성 후덜덜”이라 썼다. 더불어민주당 청년위 소속의 한 인사는 “대구는 어차피 미통당 지역”이고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TK는 손절해도 된다”고 썼다가 보직에서 해임됐다.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은 이번 사태를 “대구사태”라 명명했다.

코로나19 이슈의 정치적 악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네이밍’의 전술이다. 보수언론에서는 여전히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 사태의 원인이 정권의 친중정책에 있다고 못 박아 두려는 게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것을 ‘대구폐렴’이라 부른다.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대구에 있다는 얘기다. 미래통합당의 어느 예비후보는 “문재인 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고 외친다. 그냥 ‘코비드19’, 아니면 (일본처럼) ‘신종폐렴’이라 부르면 안되나?


광주시민 “환자 수용” 선언처럼

작작 좀 하자, 다들 알지 않는가 

혐오·봉쇄 아닌 연대가 답임을


다들 미쳐 돌아가는 가운데 지난 1일 광주시민들은 대구의 경증환자들을 수용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것이 “광주의 길”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머릿속으로 그 옛날 봉쇄된 도시에서 살았던 무서운 체험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그때 광주를 봉쇄했던 자들은 그 불행한 사건을 ‘광주사태’라 불렀다. 작작들 좀 하자. 다들 알지 않은가. 선동이 아니라 과학, 불신이 아니라 신뢰, 혐오가 아니라 이해, 봉쇄가 아니라 연대만이 해답이라는 것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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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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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 틈에 사는 것 같아요.”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요즘 지인을 만날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난단다. 과거에 멀쩡했던 사람들이 ‘조국’에 관해 뭔가 부정적인 얘기라도 하면 대화 중 갑자기 괴물로 돌변해 공격해오는 일을 몇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 다정히 대화를 나누던 친구나 동료가 바로 눈앞에서 좀비로 돌변하는 상황. 이게 어디 그만의 일이겠는가? 요즘 그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게다. 

요즘 이 사회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야기가 ‘조국’과 그의 가족에 이르면 성한 정신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가끔 제정신 가진 이를 만나면, 마치 영화 속에서 좀비에 쫓기던 주인공이 용케 살아남은 다른 인간 생존자들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그 반가움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어서, 호모사피엔스가 야생에서 우연히 같은 종을 만났을 때 느끼는 종적(種的) 유대감, 유적(類的) 안도감에 가깝다. 

정상인이라면 ‘부모가 학생의 시험을 대신 치르는 것이 명백한 부정행위’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감염자의 첫 증상은 헛소리. “그것은 대리시험이 아니라 오픈 북이었다.”(유시민 이사장) 따라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대한민국 우리 어머니들, 부모님들의 절반 이상을 잘못하면 범죄 혐의로 몰 수 있다”(홍익표 대변인). 교수의 뇌라고 해서 바이러스 앞에서 무사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시험을 부모한테 물어 답한다고 부정행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온라인 시험은 여기저기 책을 구해 읽어보거나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답을 구하는 능력입니다. 조국 아들은 요행히 자기 가까이에 유능한 사람을 두어 쉽게 온라인 시험에 활용했을 뿐입니다. 요즈음 같은 무한경쟁시대는 바로 그런 온라인 시험의 능력이 진짜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분은 감염되기 전에 무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단다. 결국 ‘부모 잘 만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시대에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라는 얘기인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던 정유라의 항변을 생각해 보라. 결국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 열심히 추진해온 그 개혁이라는 것의 정체가, 고작 최순실 가문이 차지하던 자리를 조국 가문에게 넘겨주는 것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높으신 양반들이 깔아놓은 자락 위에서 무명의 민초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도 아이가 문제 푸는 거 도와주곤 하는데, 그럼 나도 고소당하겠네.” 민초들이라 그런지 비위를 옹호하는 방식이 매우 토착적이며 생활 밀착적이다. “조카가 사생대회 그림 그리는 거 도와준 적 있는데, 나도 고소하지 그래?” 한 번이라도 아이의 숙제를 거들어 본 모든 이들이 들고일어나 ‘나를 고소하라!’며 집단으로 항의를 한다. 무슨 드레퓌스 사건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시험은 부모가 아니라 학생이 치르는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이는 상식에 속했다. 하지만 이제 당연함의 당연함을 주장하기 위해 매번 좀비들과 논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예 논리의 영역을 떠나버린 이들이라, 애초에 이길 수도 없는 논쟁이다. 결국 ‘자식의 시험을 부모가 대신 치르는 것은 부정’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지워싱턴대학의 도움을 빌려야만 했다. 나라 안에서 논리와 윤리의 기준이 무너진 터라, 그 기준을 밖에서 빌려와야 할 신세가 된 셈이다. 

여당의 홍익표 대변인은 “조지워싱턴대 성적사정 업무방해죄를 기술했는데 이게 얼마나 조국 장관 기소 내용을 희화화시킬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며, 기소 검사를 “검찰의 X맨”이라 불렀다. 이렇게 그는 심각한 시험부정을 가볍게 ‘희화화’한다. 시험부정 따위는 이들에게는 아예 범죄도 아닌 모양이다. 참고로, 쌍둥이 딸에게 답안지 넘겨주었던 어느 교무부장은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언도받은 바 있다. 

아무리 혐의를 드러내도 지지자들의 믿음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렇게 털었는데 나온 게 이것밖에 없어? 조국 장관님은 정말 깨끗하시다!” 시험부정의 사실이 외려 청렴함의 징표가 된다. 아들을 대신해 시험을 치른 조국 전 장관이 정유라의 대리과제 기사에 “경악한다”며 코멘트를 달아도, 그들은 결코 경악하지 않는다. 

한때 지구상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존했듯이 이 사회에도 당분간 두 종류의 영장류가 공존할 모양이다. 좀비들 틈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모든 생존자들에게 새해인사를 보낸다. ‘올해도 무사하세요. 우리 멸종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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