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누구누구를 사법처리할 방침이다”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사법처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니까 언론도 따라 쓴다. 여기서 사법처리란 수사를 해서 기소했다는 뜻이다. 공소장 제출로 법원에 재판을 청구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굳이 ‘사법’처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사법(司法)’이란 무엇이 법인지를 말한다는 의미로 사법부가 하는 업무다. 그만큼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의 사무가 사법부의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법처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검사들은 자신들이 법관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법관과의 동일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검사의 직무와 권한은 사법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형사절차에서 중추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태도가 이해가 간다. 검찰은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불기소처분 결정으로 형사사건을 종결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판결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법관의 지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광범위하게 법관의 임무를 대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많은 형사사건은 법정으로 가기 전에 법관의 재판이 아니라 검사의 사법적 판단으로 종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검찰을 사법부에 준한다는 의미로 준사법기관(準司法機關)이라 부르고 검찰 스스로도 준사법기관임을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으로서 행정부에 속하지만 개개 검사의 직무는 사법권과 아주 밀접하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은 행정기관이면서 동시에 사법기관인 이중성격을 가진 기관이다. 엄격히 말하면 사법기관은 아니지만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준사법기관이다. 그래서 법관 독립의 이념은 검사에 대하여도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사법기관이 아니면서도 사법부와 함께 형사사법에 공동으로 기여해야 하는 검사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검사에게 법관과 같은 자격을 요구하고 그 신분도 보장한다. 검찰권 행사로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제한되고 침해되기 때문에 엄격한 법적 근거와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행정기관보다는 법률구속성이 더 높다. 검찰이 본질적으로 행정부 소속이지만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고 국민과 정치권력, 법원에 의한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이렇듯 법관과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는 권한을 갖는 검사에게는 법관과 마찬가지로 객관성, 공정성 및 진실과 정의의 원칙이 엄격하게 요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검사를 단독제의 관청으로 구성한 것이다. 일반 공무원과는 달리 개개의 검사가 검찰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라는 뜻이다. 검사는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의 보조기관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검찰사무를 행할 권한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동안 검찰은 준사법기관임을 자부할 정도로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는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고 싶을 때만 준사법기관임을 외친 것은 아니었던가. 검찰비판에 방어막으로 준사법기관성을 내세운 것은 아니었던가. 

그동안 검찰은 조직을 지킬 때 준사법기관임을 강조해왔다. 법원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할 때 준사법기관을 무기로 들고나왔다. 법관과 동일한 신분보장을 요구할 때 들고나오는 논리가 준사법기관이었다. 검찰의 인사권과 예산권의 독립을 주장할 때도 준사법기관임을 내세웠다. 의전과 대우를 받을 때에도 그랬다. 검찰은 검사장을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같은 차관급이라고 보면서 출퇴근 차량 등 고법 부장판사가 받는 대우를 그대로 검사장에게도 해왔던 것이다. 일은 준사법기관에 걸맞지 않게 하면서 대접만 받아온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자기 이름으로 검찰사무를 처리하지만 실은 상명하복의 위계 속에 속박되어 있었다. 바로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표현되는 상명하복관계 때문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상명하복의 위계조직에서 벗어나 준사법기관성을 검찰사무 곳곳에 실현하는 것이다. 상명하복의 검찰조직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정치적 소신이나 성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폐쇄적 조직이라는 점이 더해지면 개개 검사의 권력행사의 정치적 독립성 및 중립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검찰개혁을 위한 최우선과제는 무엇보다도 상하관계의 위계질서를 완화시켜 검찰 내부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조직이 관료화, 위계화, 폐쇄화되면 될수록 권력 기관화되고 정치적 영향 가능성이 증가하게 되며 정치권력이 검찰을 사유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조직의 민주화와 외적 통제만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검찰이 온전한 준사법기관이 될 수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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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피의자 신문조서도 없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시효 만료 직전 전격적이었다. 압수수색도 전방위로 행해졌다. 대상과 장소가 다소 포괄적이고 특정되지도 않았다. 일부 기관은 압수수색이 아니라 자료제출을 요청해야 할 곳도 있었다. 피의자도 피고발인도 아닌데 압수수색을 당해 마치 피의자인 것처럼 비치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사정보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언론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피의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을 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언론은 동조라도 하듯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른 채 검찰이 흘리는 조각정보를 짜 맞추어 퍼뜨리는 데 몰두했다. 베껴 쓰기까지 더해지니 조 장관 일가의 혐의와 관련한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보도 형태로 미루어 상당 부분 검찰 정보에 의존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클릭 수에 목매는 인터넷언론은 물론이고 정론을 표방하는 중앙 일간지에도 고급 외제차가 등장하는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상보도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기사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 조급증과 호기심을 채워주려 속보경쟁에 급급한 언론이었다.

검찰과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에서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보도의 정당성을 구한다. 하지만 설익고 확인되지 않은 흠집내기 추측성 기사로 도대체 진실이 무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2010년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 마련된 불행한 배경을 떠올렸을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는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취지에 공감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략이라는 오해다. 그래서 추진을 미루기로 했지만, 논쟁은 진행형이다. 공인이기 때문에 언론을 포함한 여러 각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국민의 알권리에 방점을 두는 입장에서는 검찰의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신속성만으로는 알권리가 충족될 리 없다. 피의자의 인권과 사생활 및 명예도 침해된다. 검찰이 던져준 정보를 활자화하고 방송으로 전파하면 국민은 피의자를 영락없는 유죄의 범죄자로 보게 된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흘린 피의사실은 법정에서 다투어 확정되어야 함에도 언론의 힘으로 진실한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는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기 힘들다.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에 밀려 공정한 수사도 장담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되면 확증편향이 생겨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유죄라는 터널 끝의 출구만 보는 터널시야로 다른 가능성이나 증거는 보이지 않게 되어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게 된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게 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기도 어렵다.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여론의 기대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언론 보도로부터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 보도로 침해되는 것은 피의자 개인의 인권침해에 머무르지 않고 공정한 수사와 재판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공적 이익도 침해되는 것이다.

그래서 충돌되는 여러 이익 사이의 비교형량을 통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미디어, 수사기관, 피의자와 변호인 등 각자의 관심과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피의사실 공표를 전적으로 금지하고 언론 보도를 엄격히 규제할 수 없는 이유다. 범죄혐의의 정도에 따른 내사단계, 수사착수단계, 영장청구단계, 기소단계, 공판절차단계마다 다른 이익형량의 기준을 적용하여 수사공보의 한계와 범위가 정해져야 한다. 수사 초기단계부터 언론에 공개하는 수사로는 검찰도 잃는 게 많다. 언론과 여론의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때로는 불공정 시비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피의사실을 공표할 때는 어느 정도 수사가 진척되어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타당한 확증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구속영장 청구 시점이 비로소 그런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인신구속을 하려면 범죄혐의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공보에 관한 사항은 헌법상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의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 사생활 등 기본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법무부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피의사실 공표의 허용 여부와 허용 기준 및 절차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일방적 피의사실 공표여서도 안된다. 그에 대한 피의자의 반론권이 보장되어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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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절차에서 국민정서법의 파고를 넘어서야 적격보고서가 채택될 것이고 임명권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지금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인사검증 기준에 따른 위법과 탈법은 없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는 기류다. 당시 있던 법과 제도를 잘 알고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특권층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박탈감과 후보자의 평소 소신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실망감이 빚어낸 국민정서법이 그렇다. 거기에는 그동안 보여준 공적인 행동과 사회적 발언으로 형성된 후보자의 이미지에 실망한 지지자의 배신감도 자리하고 있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인가에 대한 회의가 숨어 있기도 하다. 후보자의 날카로운 발언에 폐부가 찔려본 사람이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분노와 울분도 있을 것이다. 후보자가 했던 말과 글을 소환하여 대비표까지 만들어 가면서 비난에 가세한 사람도 있다. 이처럼 평소 후보자를 마뜩잖게 생각했던 이들의 거센 반격이 부정적인 분위기와 기류로 흐르게 했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출근 중 입장 발표를 마치고 승강기를 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법률 위에 헌법 있고,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실체가 없어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여론과 다를 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국민정서법은 여론보다 덜 객관적이다. 정서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나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지극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다. 지역정서처럼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일시적이고 휘발성이 있다. 누군가가 어떤 의도로 사실을 왜곡하여 선악을 판단해 버리고 이를 그대로 받아 퍼뜨리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정서법이 만들어진다. 언론 스스로 왜곡이나 편파보도로 그 흐름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한번 일어난 감정은 물결치듯 퍼져서 멈춰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 반작용의 정서도 생기지만 금세 묻혀 버린다. 관련 당사자 측에서 해명을 시도하지만 기류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국민정서의 흐름을 읽은 후보자는 아이 문제에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하면서 ‘국민정서’에 맞지 않은 일이라며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법 위에 숨어서 전 방위로 영향을 미치는 국민정서법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헌법 위에 자리한 최상위의 법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권층과 가진 자에 대한 불신이나 불평등과 불의에 대한 분노가 쌓여 발산된 국민정서법은 순기능도 한다. 전관예우나 병역면제 등에서 국민정서의 위력이 부정의와 불공정을 바로잡은 적도 있다. 그러나 국민정서법은 생성되는 과정을 보면 자의적이고 감정적이다. 사람의 감정과 정서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때그때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듣고 보았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일단 정서가 형성되면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여론인 것처럼 포장되고 국민의 뜻이 된다. 마치 보편성을 띤 법감정인 것처럼 여겨진다. 국민정서의 흐름을 정하는 국민의 눈높이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후보에게는 높은 도덕성과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다가도 어느 후보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때때로 이중적이다. 누구도 향방을 가늠하거나 옳고 그름을 변별할 수도 없다. 실체를 검증할 방도도 없다. 성문법처럼 실체가 있는 법이 아니기에 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바람처럼 왔다가 눈 녹듯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법과 절차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국민정서법에 휘둘려 누군가를 재단하고 국가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적법절차 등이 핵심으로 자리 잡은 민주법치국가에서 국민정서법이 개인의 유무죄를 가르고 공직의 임명기회를 좌우한다는 것은 구시대로의 회귀다. 민주국가의 정당이라면 언론을 이용해 유리한 국민정서 만들기에 애쓸 것이 아니다. 국회가 아니라 장외에서 투쟁과 의혹 터트리기로 국민정서법의 기류확산에 몰두해서는 안된다. 이는 국민이 제정한 인사청문회법을 무시하는 처사이자 반의회민주적 행태다. 청문이란 말할 기회를 주고 들어야 하는 절차다. 임명권자가 지명한 공직후보자가 적격자인지를 판단하려면 그를 불러 세워 들어보라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자료도 제출받고 증인도 불러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라는 것이 법에 정해진 청문방식이다.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는지, 검찰개혁과 수사권 조정 등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지, 그래서 공직윤리와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지, 법무행정 수행능력과 전문성이 있는지를 묻고 들어 확인해야 한다. 국민정서법이 통용되는 여론의 법정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져야 한다. 그리고 공직적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민정서법의 파고를 넘지 못하면 장관직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임명권자의 결단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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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의도 정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뼛속에는 ‘그때그때 달라요’ DNA가 숨어 있다. 자신과 당의 유불리에 따라 과거를 싹 잊어버리고 대응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말’ 정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당에서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공수가 교대되면서 되풀이되다 보니 악순환의 정치문화로 뿌리내렸다. 상황에 따라 변신해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반응은 히스테리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니 정치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공인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면 신뢰받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도 ‘내로남불’로 비난받고 있다. 야당 시절에는 극단의 표현으로 혹평을 쏟다가도 여당이 되면 180도 태도를 바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리화하는 모습이 카멜레온의 전형으로 비친다.

조국 전 민정수석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임 수석 인선안 발표에서 떠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내가 행위자일 때와 관찰자일 때가 일관적이지 않은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편향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할 때와 남이 하는 것을 바라볼 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이중 잣대는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기제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가혹하게 비난하다가도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변명하는 모순적 태도를 그저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정치인이나 정당은 달라야 한다. 신뢰의 정치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려면 언행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언행을 평가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등등을 알아낸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에 대한 여야의 논평대립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금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을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무부 장관에 최측근 민정수석을 기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최악의 측근인사·회전문 인사”라는 논평을 냈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여당이 되어 똑같은 상황을 옹호하고 있는 모양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지금은 헌법질서에 대한 모욕이자 보복·공포정치의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가 검찰권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명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검사 전성시대의 절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이 다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던 때다. 거기에 청와대 파견검사까지 합치면 청와대가 일선 검찰청 이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는 모양새여서 검찰공화국 소리를 들을 만했다. 청와대의 검사들, 검찰에 장악된 법무부가 청와대와 검찰 간의 끈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대통령 최측근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부 장관이 되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사정라인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연결고리를 통해 검찰의 중립성이 심히 해쳐질 것이라는 우려가 설득력이 있었고 현실화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매우 느슨해졌다. 그만큼 검찰권 장악 우려는 해소된 상태다. 아무리 대통령의 분신으로 인정받는 인물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더라도 검찰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제도적으로도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청와대에는 파견검사도 없고,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사파견도 불가능해졌다. 민정수석비서관도 검사 출신이 아니다. 검찰이 장악했던 법무부도 상당부분 탈검찰화가 이루어졌다.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이 비검찰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확 달라진 상황이다. 사람만 달라졌다면 야당의 우려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인사권으로 검찰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이전 정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여당의 태도를 ‘내로남불’로 깎아내릴 수 있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행’이라는 명목만 보면 똑같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 실질이 다르다. 그리고 기획하고 착수했던 법무·검찰 개혁의 완수라는 법무부 장관의 임무도 다르다. 

올바른 비판을 하려면 자기가 경험했던 것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시각과 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반대편에 서 보고 한쪽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해야 대립정치의 악순환도 끊어낼 수 있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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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에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증거 내밀기다. 발뺌하거나 다그치면 “증거 있어? 증거 대 봐”라고 방어하거나 공격한다. 증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 찬 오리발이지만 막상 증거를 내밀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법정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려면 물증도 필요하고 증인도 불러 신문해야 한다. 모든 분쟁은 증거싸움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증거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진실은 인정받지 못한다. 범죄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죄판결이 난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증거를 인멸하기도 한다. 미행하거나 몰래 엿듣기도 하고 흥신소의 도움도 받는다. 불법으로 도·감청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위치추적기를 달기도 한다. 증거를 시멘트 바닥에 파묻기도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현금 가방을 건네기도 한다. 증인과 입도 맞춘다. 올 들어 적폐청산 수사 때문이었는지 압수수색 건수가 대폭 증가했는데, 수사기관은 물증확보 수단으로 압수수색영장을 활용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이메일도 들여다보고 금융계좌도 추적한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압수수색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영장 범위를 넘어서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하기도 하고 압수수색으로 얻은 증거로 영장에 적힌 혐의와는 다른 별건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기도 한다. 증거로 유무죄가 판가름 나니까 증거수집에서 불법의 선을 넘어설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월29일 오전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정황이 확실하고 심증이 있어도 무죄가 될 수밖에 없다. 증거재판주의다. 증거라고 다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유죄를 입증할 스모킹건이라도 위법하게 손에 넣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다.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압수수색해 찾아낸 물증이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받은 자백은 증거로 제출되어서도 안되고 증명의 자료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증거법의 대원칙이다. 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도지사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때마침 들어온 도지사 비서관의 업무일지를 압수한 사건에서 그 업무일지에 도지사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압수범위를 벗어난 위법수집 증거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한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전환점이다. 아무리 진실발견이 형사소송의 목표라 하더라도 적법절차의 원칙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특이한 점은 이 판결에서 당시 대법관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이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다면서, 증거수집 절차의 위법사유가 영장주의의 정신과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 한해 그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별개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이다. 지금 사법농단 재판의 피고인으로서 권한남용 혐의의 증거가 들어있는 이동식저장장치(USB)의 압수수색이 위법하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법관 시절의 입장에 따르면 증거능력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재판에서 핵심 피고인들은 검찰의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양승태 피고인을 비롯한 고위 법관 출신 피고인들은 압수한 USB 등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저장장치에는 범죄사실과 관련된 엄청난 파일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증거능력 인정여부가 사건의 핵심쟁점이다. 양승태 피고인의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절차에서 어떤 위반 행위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최근 여러 재판에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어 대법원 판례에 따른 당연한 결론이지만 사법농단 재판의 방패막 판결이자 방향제시일 수 있다는 지적이 검찰을 긴장하게 했었다. 어떤 항소심 재판부는 별건수사에 활용한 위법한 압수수색 관행의 근절을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재판부의 보도자료 배포가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증거법 대원칙이기는 하다. 피의자 피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적법절차의 원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위법수집 증거의 배제법칙은 법원이나 검찰 모두 법치국가 형사소송절차에서 지켜야 할 철칙이다. 실체적 진실발견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적법절차의 원칙 아래 형사사법 정의의 실현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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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에 따라다니는 단어가 ‘규제’다. 여기에 신산업·신기술 관련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도 더해진다. 규제와 갈등으로 선진국에 한참 뒤처졌다고 아우성이다. 핀테크, 공유경제, 바이오헬스, 블록체인, 빅데이터, AI 등 신산업발전에 규제 족쇄가 장애물이라는 주장이다. 규제 없는 나라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혁신 스타트업이나 규제 없는 목장에 방목했더니 쑥쑥 성장했다는 외국 공유경제를 예로 든다. 한국 기업은 첩첩산중의 규제 속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세계시장을 앞서갈 기회를 잃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오헬스 국가비전을 선포하면서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산업을 ‘사람중심 혁신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에는 글로벌 수준의 인허가 규제 합리화가 들어 있다. 안전관리 강화도 포함되어 있지만 규제개선의 기조는 규제완화다. 규제샌드박스와 규제자유특구가 그 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의 황우석 사태 이후에 촘촘해진 바이오산업의 규제를 풀어가겠다는 것으로 제약바이오 산업계에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악재가 연이어 터져 잔뜩 움츠러든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와 계획적 증거인멸이 그렇고, 코오롱생명과학이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주성분 사기가 그렇다.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경영승계를 위해 벌인 고의적 분식회계는 국민의 안전·생명과는 관계없다지만 수사대상이 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서 신뢰도는 추락하고 말았다. 가짜 성분이 포함된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를 투약한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작·은폐가 황우석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과학사기로 개발기업은 소액주주와 환자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얻었다.

그런데 ‘제2의 황우석 사태’나 ‘제2의 인보사 사태’가 염려되는 상황에서도 바이오산업계는 규제강화를 걱정한다. 재발방지를 위한 규제일변도를 우려하면서 기업의 국내 신약 개발 의지가 꺾일 수 있다고 겁을 준다. 신성장 산업의 위축을 걱정하기도 한다. 혁신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규제완화다. 시장은 경쟁원리로 작동하는데 여기에 국가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관여하면 안된다는 논리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신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규제에 갇혀 기술발전이 뒤처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규제 장벽을 허물고 시장을 자유롭게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유니콘 기업도 나오고 혁신성장이 이루어져 새로운 먹거리산업들이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정부가 개발자의 편의를 맞춰주는 맞춤형 심사나 다른 의약품보다 먼저 인허가를 심사하는 우선 심사, 조건부 허가 등의 신속처리를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을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한다. 경제 활성화로 포장된 규제완화정책을 시행하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산업계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을 요구하고 규제지체현상을 지적하기 전에 기업의 윤리경영과 인권경영을 말해야 한다.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고, 산업진흥보다 환자의 안전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윤리도덕이 밥 먹여 주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르지만 규제완화와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이 겹쳐지면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산업 분야에서는 과학과 경영에서의 윤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으로 ‘사람중심 혁신성장’을 실현하겠다는 정부정책은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읽어야 한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우 윤리경영과 신뢰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첨단·혁신’으로 포장해 하루빨리 시장에 내놓을 생각보다는 윤리경영, 인권 존중,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한다는 다짐이 우선이어야 한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인보사 사태나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서 윤리의식의 실종을 드러낸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혈액 진단 키트로 상당수 질병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선언했던 미국 메디컬 생명공학기업 ‘테라노스’의 사기극과 몰락도 본보기다. 

규제의 유연화와 규제의 글로벌화를 말하기 전에 글로벌기업의 윤리경영부터 배우라. 그래야 경쟁력도 높아지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보장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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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행한 직무상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다. 불체포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하고, 회기 전에 체포·구금됐을 때에도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될 수 있는 권리다. 소신껏 발언하고 표결하라는 면책특권은 그러나 때로는 방탄복으로 변질되고, 불체포특권은 제 식구 보호용 우산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국회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고 국회의원은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을 누린다. 그야말로 치외법권의 성역이다.

그런 곳에서 패스트트랙을 두고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 국회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불법적인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물국회’에 더해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얻었다. ‘짐승국회’로 이름 붙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다. 여당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소위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무더기 고발하면서 향후 정국의 흐름은 수사와 재판의 향방에 달려있게 되었다. 국회법 제165조와 제166조는 국회회의 방해금지를 규정하고 의원직 상실과 피선거권 박탈의 형선고가 가능한 법정형을 두고 있다. 2012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하여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그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첫 수사대상이 된 터라 검찰의 칼날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반발한 한국당은 여당 의원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이 마뜩잖게 생각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포함된 패스트트랙 법안에 반대하는 한국당 의원들이 수사대상이어서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몸싸움 방지법이라 불리는 국회선진화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줄 것인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적 처리보다는 정치적 타협을 주문하기도 한다. 고소·고발을 취하한다 해도 검찰 수사는 그대로 진행될 수 있지만 양측의 합의로 자신들이 만든 법을 무력화한다면 국회와 입법권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국회에서 불법적인 사태가 벌어져도 정당 간 타협으로 유야무야되던 잘못된 관행이 되풀이되면 국회의 성역화는 더 큰 비난을 받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과 여야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으니 국회의원의 국회 밖 막말도 도를 넘고 있다. 경쟁적 막말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편을 가르고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막말이 최고가 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과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하자는 선동적 발언 등은 막말의 극치다. 면책특권과 표현의 자유를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면서 정당화하려 하지만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한참 넘어섰다. 명백히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무책임하게 내뱉기도 한다. 한번만 확인해 보면 진위를 알 수 있는 가짜뉴스도 거리낌 없이 유포한다. 국민의 대변자라는 국회의원으로서 품위와 품격은 간데없다. 이렇게 면책특권의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을 내뱉는 행태, 직무상 행하는 발언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발언 등등은 어떤 식으로든 규제되어야 한다. 물론 민주주의국가에서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공인이나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이들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제기와 비판도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등의 극단적 표현이나 차별·혐오 발언이다. 표현의 자유 뒤에서, 면책특권을 방패막이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는 발언과 표현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이를 적절히 제한하지 않으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침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내외에서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숱한 막말을 쏟아내는 것은 막말면허로 여기는 면책특권의 영향이다. 면책특권의 방탄복에 숨어서 막말을 해본 경험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으니 막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면책특권은 민주주의가 덜 성숙되고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어 있던 독재시대에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에게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장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구시대의 산물인 면책특권을 보장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국회를 더 이상 성역으로 남겨두거나 국회의원에게 치외법권의 특전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국회의원 스스로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회피하면 법치를 말할 자격은 없어진다. 민주주의가 가장 잘 작동해야 할 국회에 특혜와 성역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이다. 불가침 성역을 허물어야 국회 안팎에서 책임 있고 품격 있는 언행이 발현되고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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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표적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는 공인일까, 사인(私人)일까. 대통령이 공인이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를 받는다고 그 가족도 당연히 공인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신변보호를 받는 증인도 공인으로 봐야 하지만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공인의 범위를 넓히려는 측에서는 그들의 명예나 프라이버시보다는 언론보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기로 잡다한 사적 영역까지 감시와 검증의 이름으로 들여다보고 간섭하고 싶어 한다. 특히 언론은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공인의 사생활도 취재보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공인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 혹시 제기될지도 모르는 명예훼손 소송의 방어막을 치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예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까지 공인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의 파수꾼(watchdog)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야당은 후보자의 내밀한 영역인 병력이나 수술이력까지 들먹이며 공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것처럼 의혹을 터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지면을 장식했었다. 대중의 관심이나 흥미를 충족시켜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공인의 범주가 넓어야 좋다. 신랄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통한 여론형성 기능을 수행하려면 숨 쉴 공간이 넉넉해야 편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간의 너비를 결정하는 공인 개념의 광폭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공인인가. 전통적으로는 사전적 의미를 중시하여 고위 공직자를 공인이라고 불렀다. 저명한 사람도 공인에 포함시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적 인물이라는 용어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공인 개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이나 마약, 성폭력 범죄 등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으레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지만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판례에서 사용하는 공적 인물이나 공인이라는 용어는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언어용법 또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연예인이나 뉴스 앵커 같은 유명인도 공인 내지 공적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공적 관심사에 관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 뉴스 가치가 있는 저명성이나 매체의 노출빈도에 근거하여 유명한 인물을 공인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공직자와 같은 공인으로서의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사생활 영역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 인물의 범주를 넓히면 넓힐수록 표현의 자유는 확장되지만 공적 관심사나 유명도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표지 때문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소지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간혹 연예인이나 유명인 대해서는 과도한 언론의 자유가 발휘되지만, 정치적 책임과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할 공인에 대해서는 과잉의 명예보호가 되는 역전현상도 나타난다.

공인이란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고, 도덕적이고 정당한 공적 활동으로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존재다. 이들에 관한 정보는 공공성을 갖춘 것이므로 알권리에 포함되며 언론보도를 통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공인 내지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이나 일반인이 통상 인식하는 것처럼 공공의 관심사 또는 유명도를 기준으로 공적 인물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더라도 그들에 관한 언론보도를 넓게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 단계에서의 범죄혐의 보도도 마찬가지로 공인보다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보도내용이 공적 관심 사안인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를 준별해야 한다. 공직자인 공인의 경우에도 내밀한 사적 영역이나 비밀영역에 속하는 사항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적법하려면 극히 예외적으로 정보공개의 이익이 더 커야 한다.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여야 하고, 그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 표현 내용·방법 등이 적절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보도의 자유와 알권리가 개인의 인격권과 명예보다 우선시되는 것이다. 방송인, 유명 스포츠 선수, 뉴스앵커 같은 유명인과 연예인은 공직자인 공인과는 다르다. 그래서 제한적인 공적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사적 공간이나 사생활을 공직자보다 더 넓게 보호하려 한다. 언론은 항상 알권리를 주장하지만 국민은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대통령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공직자인 대통령에 의해 공적 인물이 되었으므로 제한적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설사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경호를 받고 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공인은 아니므로 개인정보와 사생활은 공직자보다 더 보호받아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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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결정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보석허가율이 40%를 밑돌고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인데 전직이 고려되어 구치소 담장이 낮아진 것 아닐까 하는 의혹 때문이다. 보통 피고인들은 보석을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데, 권력이나 돈 있는 피고인은 심심찮게 보석으로 풀려난다. 주로 병보석이다. 자유를 만끽하던 권력자나 재벌총수들이 좁디좁은 교도소 독방에 갇혀 생긴 병인데 여느 피고인은 상상도 못하는 사유로 풀려나는 것이다. 피고인이 누구냐에 따라 보석 여부가 갈린다고 ‘유권무죄’ ‘유전무죄’라는 말도 유행이다.

피고인 이명박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피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신청은 기각된 것을 보면 권력자라서 특혜를 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의혹의 눈초리와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어권보장이 형사법의 대원칙이지만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보석은 시민적 상식과 정의감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재벌총수들이 감방생활을 피하는 수법인 병보석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법 앞의 평등은 권력 앞에서 맥을 못 춘다는 비판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보석사유가 있으면 석방해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지만 그동안 보석을 재벌총수와 정치인처럼 막강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는 자들에게 선별적이고 예외적으로 허용해 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것이다.

누구든 법 앞에서 똑같이 대접받기를 원한다. 누구든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가 있으면 구속되어야 하고, 구속 이후라도 보석사유가 생기면 석방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피의자·피고인이 대통령이었든, 재벌총수로서 국가경제를 위해 애썼든 그런 사정들이 고려되어서는 안된다. 법과 원칙이 흔들려 나라가 휘청거렸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면 피의자·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이나 전직 대법원장이라고 달리 대우해서는 안된다. 그들도 법 앞에 평등해야 할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만 인권이 있고 방어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권력자들이 피의자로 소환되고 수사대상이 되면서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이 화두가 되었다. 피고인 이명박의 보석결정에서 판사가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어권을 근거로 제시한 것처럼, 피의자 양승태가 검찰청 포토라인을 무시하자 이를 옹호하기 위해 포토라인 세우기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라는 비판이 사법부 내에 있었다. 그에게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자 비로소 영장남발의 문제를 제기하고 사법농단 수사에서 밤샘조사의 반인권성도 부각시켰다. 전직 대통령, 전직 대법원장과 고위법관, 정치인 등의 수사와 재판에서 비로소 기존 관행이 이슈가 되고 인권감수성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리 주장해도 듣지도 보지도 않다가 자기 식구들이어서 갑자기 눈과 귀가 트인 것 같다. 그러나 과거 실무관행에 대한 자기비판이나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 식구 감싸기와 조직방어의 이기심으로 비칠 뿐이다. 전직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관행 무시행위나 보석허가의 근거로 판사가 제시한 방어권 보장 등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결정하거나 행동하고도 때와 장소가 적절치 않아 욕을 먹거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이 사람 봐가면서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은 심판대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지켜야 정의가 세워짐을 상징한다.

전직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한 판사도 안대로 눈을 가렸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힘이 보석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 이명박의 보석결정이 특혜라며 비판할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 결정이 보석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구속된 거물급 정치인 피고인이 불구속재판을 청구하면 일응의 잣대가 될 것이다. 구속사유인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더라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 석방하되 거주지 및 통신제한과 같은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면 된다는 취지이므로 보석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보석허가결정의 기준이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돌연사 위험성까지 주장했는데 병보석사유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이제 웬만하면 병보석은 어려워졌다고 봐야 한다. 구치소 내 의료진이 충분하다는 이유다. 나아가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어권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재판상 방어권은 권력자나 재벌총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사법부가 실천하는 법 앞의 평등이 헌법에 생명을 불어넣고 불신의 사법부를 살려내는 길이 될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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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제정 당시 국회는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삭제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만 남고 다른 한 축이 빠진 것이다. 이제야 그 배경이 드러났다. 여야가 한목소리였던 이유를 알 만하다. 표면적으로는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적용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다’ ‘그래서 의정활동의 족쇄가 될 것이다’ ‘위헌적이다’ 등등의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이해충돌 상황이 자신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옭아맬 법을 제정할 리 없는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들 중에는 부동산 임대업자도 있고 기업경영인도 있고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적 이익과 사적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수조사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둘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친지에게 건물매입을 권유한 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받게 한 의원, 역 개발명목으로 예산을 따온 역세권 건물주 의원이나 지방 일부대학의 역량강화를 위해 국비투입 예산안 통과를 추진한 의원이 그 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고위공직자였을 때부터 부친 소유 부동산 근처의 철도사업을 추진했다는 해명을 들어보니 더욱 이해충돌의 소지는 커 보인다. 국비투입 사업지로 선정되기 몇 개월 전에 역 근처 상가건물을 샀다니 더욱 의심스럽다.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자신이 맡고 있는 공적인 업무 또는 공공의 이익과 서로 상충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해충돌은 일상에서, 직업수행에서 늘 맞닥트리게 된다. 이해충돌 상황의 폭은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공직자 중에서도 정책결정 권한을 갖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이해충돌 상황의 크기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이 마주하게 될 이해충돌 상황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한, 입법권한, 예산안 심의의결권한 그리고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등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막강하다. 그러니 겉으로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뒤로는 사적 이익을 챙기고, 직무로 얻은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주변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상황도 많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공적 위치에서 사적인 자신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 내 가족과 친·인척의 이익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에 ‘이해충돌 방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되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처벌규정이 없는 선언적 규정이어서 실효성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에 처벌을 포함한 이해상충 방지가 논의되었다가 아쉽게 삭제되었다. 이후 법제화는 계속 시도되었으나 법안은 잠자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제약으로 다가올 법안에 적극적 관심을 보일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손혜원 의원 사건으로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해충돌 방지를 규율하고 범죄화하라는 여론의 압박도 거세졌다. 국회 내부에서도 여러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대 여야는 ‘이해충돌’ 문제로 대충돌 중이다. 1월에 국회를 소집했지만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했다. 2월 국회는 아예 의사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손혜원 국정조사’ 없이는 국회를 열 수 없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버티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는 안갯속이다. 이해충돌로 대치하고 있지만 여야의 속내는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옭아매고 불이익을 줄 법안은 그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법이다. 여야가 한통속이라서 더욱 걱정이다. 세비 인상의 예에서 보듯이 여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도 그들 모두에게 불이익이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다. 그들은 ‘국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치적 대표성을 강조한다.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윤리다. 정녕 국민을 위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사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공적 입법의무를 방기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상충이다. 전수조사로 이해충돌 사례를 유형화하고 기준을 세워 처벌대상을 좁혀나가면 위헌소지 없는 법안을 마련할 수 있다. 청렴공직사회의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에 이해충돌 방지규정을 끼워 넣는다면 공직윤리규범이 완전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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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루하루가 신기록이다. ‘고공농성 408일’, 3년 전 사측으로부터 고용, 단체협약과 노동조합 승계를 약속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다시 더 높은 굴뚝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 동료의 기록이 경신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디찬 굴뚝에서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는 두 노동자는 이제 매일매일 슬픈 역사를 남기고 있다. 그곳은 날아다니는 새들이 둥지를 틀고 쉬어가는 곳이다. 새들에게는 낙원일지 모르지만 사람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돌아누울 수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풍찬노숙 중이다. 기록적인 폭염을 견뎌내고 칼바람의 혹한과 맞서며 좁디좁은 굴뚝 난간에서 또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누가 이들을 하늘로 오르게 했는가. 이 땅이 노동자를 보듬지 못하고 법과 제도가 자신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자 내몰리듯 높은 곳으로 밀려 오른 것이다. 굴뚝, 타워크레인, 광고 전광판, 이 땅에서 희망을 잃은 노동자들이 오르는 단골 장소다. 2명의 파인텍 노동자들은 3년 전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늘에 올랐다”는 그의 동료처럼 또 수십미터의 굴뚝으로 올라갔다. 기네스북에 기록을 남겨 영웅이 되려고 75m 상공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노동인권을 살려보려고 올라간 것이다. 그곳에서 소외받고 버려진 약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버티고 있다. 차디찬 겨울을 두 번 맞을 때까지.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약속을 지키라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한뎃잠을 잔 지 400일이 넘자 비로소 응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땅에서는 그들을 살려내기 위한 동조 단식으로 연대하는 이들도 있다. 다행히 노사의 교섭이 시작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진전은 없다. 고용주의 인식이 아직도 3년 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에게 고용주는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인가?”라는 야만의 언사도 주저하지 않았다. “농성하는 사람들에게만 인권이 있나. 합법적으로 기업 하는 나도 너무 힘들어서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가 않다. 이 나라가 법치국가가 맞나”라고 항변도 한다. 이들에게는 욕심 이외의 감정은 없는 모양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뼈만 남은 자신의 옛 직원에게 할 소리인지 매정하기만 하다.  

사측은 3년 전 약속이행으로 책임질 일 없다는 주장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의 약속이행은 불완전 이행이다. 노사합의는 약속이자 법인데 사측은 이를 이행하는 척만 했다. 현재의 파인텍을 세워 노동자의 일터를 만들어 주었지만 임금협상을 차일피일 미뤘고, 복귀한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월급만 주고 수당 등을 받을 수 있는 일감은 거의 주지 않았다. 결국 반발한 노조가 파업하자 사측은 공장을 폐쇄하고 새 사업체를 입주시켰다. 책임을 노조 쪽으로 미뤄버린 것이다. 지난 연말께부터 4차례 노사가 마주 앉았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빈손이다. 3년 전 불완전 합의이행을 경험한 노조 측이 기존 합의사항을 지키라며 합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진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사측은 요지부동이다.

이게 우리 노동인권의 현주소다. 위험천만한 굴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바람에 자칫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곳만이 아니다. 발전소 석탄 컨베이어벨트에 위태롭게 누워 있기도 하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여 있기도 하다. 부당해고, 농성과 단식,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리의 노동인권의 현주소다. 생명을 걸어야만 겨우 해결되는 수준이어서 노동자의 생명이 존중되지 못하고 수단화되는 현실이다. 작년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하여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권경영을 선언하지만 노동인권은 입에서만 맴돈다. 말과 행동이 각각이고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논다.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경영이 인권경영이다. 노동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 노동자와 사용자가 공생하는 것이 바로 기업인권의 핵심이다. 인권 감수성을 가진 기업문화가 정착해야 기업의 경쟁력도 커지고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해진다. 기업 활동에서의 인권침해는 기업경영의 리스크다.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는 해외 거래처가 많다고 한다. 이들에게 반인권적인 회사 대표의 언행이 알려진다면 기업경영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작은 것 때문에 더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물론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엊그제 굴뚝 위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는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을 살리고 보는 노사교섭이 절실하다.

<히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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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재벌 총수를 ‘오너’(owner)라 부른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 설립자와 일가들이 회사의 주인이자 소유주라는 의미다. 설립자의 개인능력 덕분에 성공했으므로 오너가 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수성가의 신화가 회사를 자기소유, 개인재산으로 여기게 한다. 자기가 키운 회사라는 생각에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자녀에게 물려준다. 사유재산인 보유 지분뿐만 아니라 경영권까지 상속하려 한다. 경영권은 사유물이 아닌데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는 오너의 잘못된 인식이 가족경영과 경영권세습을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이제 재벌 상속과 경영권 대물림이 우리 기업의 독특한 관행이 되었다. 내 것이라는 생각에 권위주의적 오너가 되고 수직적 기업문화가 지배한다.

세습자본주의의 민낯이 오너의 갑질 행태로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회사는 보통 주식회사이므로 설립자이자 경영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도 있고 주주도 있다. 아무리 1인 주주의 1인 회사라 하더라도 주주와 회사는 구분된다. 주주와 회사는 별개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는 낮은 지분율로 회사를 지배하는 설립자와 그 일가가 아니라 주주들이 주인이다. 피와 땀이 배어 있다고 재벌총수 일가가 멋대로 할 수 있는 개인재산이 아니다. 국가의 온갖 보호와 특혜로 성장했다는 점에서도 더 이상 개인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기업 내 민주주의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가 되는 이유다. 

5일 오전 참여연대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앞에서 유치원 비리근절 3법 통과 촉구 및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소위 ‘유치원 3법’ 개정논란에서도 오너십이 쟁점이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은 토지와 건물, 시설에 자신들의 재산을 투자했기 때문에 개인의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가가 법을 근거로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에 반한다고도 한다. 학교법인에 재산을 출연한 사립학교와는 달리 개인재산이 제공된 사립유치원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는 오너십이 교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위법이 아니라는 억지논리를 만든다. 사립유치원은 학교가 아니며, 학교로 인정하려면 그에 합당한 인건비와 개인 재산을 공공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임대료 등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적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2018년의 유치원법 개정은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과 판박이다. 사학들의 부정부패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유치원비리 근절을 목적으로 한 유치원법 개정논의는 서로 닮았다. 보수야당과 결합한 이익단체의 집단행동 무기가 사유재산권 보장이라는 점도 똑같다. 학교설립자가 개인의 재산으로 학교를 설립했으니 학교는 사실상 설립자의 것이므로 여기에 누구든 개입하는 것은 설립자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사학의 자율성이 무시된다는 논리였다. 폐교와 폐원으로 학부모를 겁박한 장면도 데자뷔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 구도도 사립학교법 논쟁의 시즌2처럼 보이게 한다. 

법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이든, 개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이든 유치원은 사립학교다. 현행법상 사립유치원은 ‘학교’면서 법인이 설립해야 하는 초·중·고·대학과는 달리 개인이 설립할 수 있다. 법인이 아니고 설립자 개인이 운영하더라도 교육관계법령상의 학교이자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법인 사립유치원은 설립인가를 신청할 때 건물과 부지를 출연하여 교육용 재산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유치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법인 사립유치원 역시 개인이 소유한 건물과 부지를 유치원의 교사·교지의 용도로 지정하고 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규제를 받아들이고 인가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사유재산이지만 시·도교육감의 승인, 지도, 감독을 받는다. 감사도 받아야 한다. 사립유치원은 학교이기 때문에 폐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사립학교가 공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국공립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한 범위 안에서 운영을 감독, 통제할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유치원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과정으로 명백한 공교육 과정이다. 그래서 국가의 엄청난 공적재원이 투입된다. 학부모 분담금이 유치원 운영자의 사유재산일 수 없다. 엄연히 교비다. 수입을 교육목적 외 개인 용도로 사용하면 불법이다.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을 내세워 사설 학원화하거나 스스로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사업자로 격하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유치원 비리근절 3법은 교육 목적 교비의 사적인 유용을 방지하기 위해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법상 학교에 걸맞은 공공성을 강화하는 개정법률안이다. 국회는 한 해가 가기 전에 충격받은 학부모들이 더 이상 분노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도록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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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가 바뀌는 데 14년이 걸렸다. 대법원이 종교나 신념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드디어 응답한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여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사법의 원초적 보수성 때문에 판례변경이 쉽지 않은 전례에 비추어보면 이제라도 사회 변화를 수용한 사법부의 결단은 박수받을 만하다.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호소하면서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연 판결이다. 이로써 그동안 형벌과 맞바꿔온 수많은 젊은이들이 양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양심에 따르다가 전과자가 된 그들이지만 이제 양심을 지킨 자신을 대견해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다수와 다르다고 배제하고 차별할 것이 아니라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다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벌을 해선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 후 소송의 당사자인 오승헌씨가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법원 판결 이후에 논란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판결 비판과 합리성을 잃은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그렇다. 군대 간 사람은 비양심적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대표적이다. 병역을 거부한 것이 양심이라면 병역의무를 다한 것은 비양심이냐는 비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립구도 조작이다. 병역거부가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는 의미인데, 의도적으로 ‘양심적’과 ‘비양심적’을 대칭시킨 것이다. 신성한 국방 의무 앞에 열외가 없고 누구나 평등해야 국가안보가 굳건히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남북의 대치상황을 들먹이며 판결을 비난한다. 진영논리로 사법을 재단하기도 한다. 분노와 비판의 목소리를 과대 포장해 판결의 의미를 깎아내려는 언론도 문제다. 있는 그대로를 기사화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이라고 하더라도 대법원의 무죄판결에 비난일색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의 반응이 비논리적이고 반인권적이라면 일침을 가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 아닌가.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도 마찬가지다.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증가할 것이라거나 누가 나라를 지키나 등의 반응을 부각시키거나 양심을 판 병역기피의 불복종 사회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대체복무에 징벌성을 가하려는 기획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로 보게 되면 양심을 파는 징병대상자를 막기 위해서 현역복무보다 훨씬 더 힘든 대체복무로 만들어야 할 정당성이 생긴다. 그래서 지뢰제거 작업이나 복무기간 2배, 3배가 합당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처벌로 둔갑하는 것이다. 징벌적 대체복무로 형벌이 대체되는 꼴이다. 그야말로 명칭사기다. 대체복무 논의에도 비논리가 끼어들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양심을 파는 병역거부자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대체복무의 종류와 기간을 정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면 현역복무에 상응하는 대체복무를 부과하면 된다. 대체복무의 종류와 기간을 정하는데 정당하지 않은 병역거부를 상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함부로 양심을 파는 비양심적 징병대상자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당한 병역거부자에게는 징벌이 된다. 마치 엄한 형벌을 부과해야 잠재적 범죄자들이 겁을 먹고 범죄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흡사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 여부 논란은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종결되었지만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체복무 논의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심적 신념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의 취지에 맞게 인권의 관점에서 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각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임무가 있다. 바로 양심의 자유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올바른 행동으로 인도하고 결정해주는 나침반인 양심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들이 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결정은 이제 법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그들이 이행해야 할 대체복무도 병역의무다. 따라서 징벌성을 띠어서는 안된다. 20대 젊은이들에게는 1~2개월도 황금 같은 시간이다. 할 일 많은 그 시기에 양심을 팔기에는 9개월도 너무 길다. 엄청난 불이익으로 느껴질 것이다. 현역 18개월의 1.5배인 대체복무 27개월도 현역복무를 상쇄하고도 넘친다. 정당한 병역거부자에게 정부안처럼 36개월 징벌적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현역병이 느낄지도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 줄 것이 아니라 병영문화 혁신과 군 인권향상이 우선이어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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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달구는 사안들은 주로 형사처벌에 관한 것이다. 특히 20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목숨을 빼앗아간 끔찍한 범죄 뉴스를 보면서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동질감과 동정심이 든 사람들은 범죄자를 응징해야 한다며 분노한다. 응당 같은 값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안감 때문에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오래도록 격리시키길 원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형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응징과 보복의 감정에 기댄 것이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을 폐지해 성인처럼 처벌하라고 한다. 곧 형기를 마치게 될 조두순을 더 가두어달라는 청원도 수십만을 넘었다.

중형으로 겁을 주어야 일벌백계가 되고, 잠재적 범죄자가 범죄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도 최근 음주운전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방지를 위한 대책을 주문했다. 더 엄하고 중한 형벌에 대한 여론, 언론, 정치의 요구가 빗발친다.

왜 엄벌과 강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일까. 흉악 범죄로부터의 불안감 때문이다. 자연재난, 질병, 대형 교통사고, 산업재해의 위험에 더해 급증하는 범죄위험은 평화로움을 원하는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사건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은 자신은 절대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요구한다. 범죄수법에 관한 선정적 보도에 더해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가감 없이 노출시키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응징 욕구는 치솟는다. 범죄자를 사회에서 배제해야 할 악마와 적으로 낙인찍는다.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여기는 형벌에 거는 기대는 커진다.

이럴 때 정치는 돈이 적게 드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신속하게 뭔가 하고 있음을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인기영합주의가 발동돼 입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여론에 즉각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다. 정치는 강성화 형사정책을 사회통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범죄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법은 날로 비대화되지만 역으로 과잉범죄화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기도 한다. 입법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어떤 금지행위든 형사처벌 규정을 두어야 실효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유해하거나 반사회적인 행위까지 형벌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만연하다. 경범죄 처벌, 자전거 음주운전, 자전거 헬멧 미착용, 자동차 안전벨트 미착용이나 심지어 부동산 투기행위에 대해서도 형사제재의 수단을 투입하려고 한다.

정치권과 입법부가 여론의 풍향에 너무 민감하다. 조문 몇 개만 고치는 단발성 입법 발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의 폭풍만 지나가면 그 법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일단 입법자로서 할 일을 다 했으니 끝이다. 그러는 사이 법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법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형사처벌법을 만드는 것에 그치면 그것만으로 범죄가 예방될 리 없다. 처벌법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때와 장소를 가리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면 법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다. 항시성과 일관성, 그리고 공정성이 핵심이다. 어쩌다 단속해서 처벌하거나, 처벌도 들쭉날쭉하면 법에 대한 불신만 생겨 준법의식은 옅어진다.

성범죄의 예를 보자. 1990년대 중반부터 특별법 제정, 형법 개정, 신상공개 및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 등 처벌수단을 강화하고 다양화하는 등 중형주의의 연속이었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법정형도 강화하고 제재수단을 총망라했지만 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고 있다. 범죄자를 가두어 두는 형사정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슈가 되고 있는 음주를 포함한 위험운전치사상죄도 그렇다.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지만 10년 전에도 그랬다.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사망자의 수가 증가하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신설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느슨하게 적용되니까 오히려 음주운전 사고는 증가추세다. 엄격한 단속과 법적용 및 처벌이 뒤따라야 처벌법의 효과가 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래야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단속, 수사, 처벌이라는 법집행이 총체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야 규범의식과 준법의식이 생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법대로 살면 나만 손해’ 등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을 제정하여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입법의 홍수만 겪게 될 뿐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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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에서 이제는 ‘붉은 깃발법’이 등장했다. 규제를 이르는 전·현직 대통령의 화법이다.

규제완화가 또다시 화두다. 규제를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낙인찍었다. 국가경쟁력을 갉아먹으면서 신성장 산업과 일자리 창출 등 혁신성장의 발목을 잡는 해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규제완화의 부작용은 감춰둔 채 기업은 물론 보수언론과 정부·여당도 규제완화의 깃발 아래 한 몸처럼 움직인다. 규제가 왜 생겼는지, 왜 존속하고 있었는지, 규제를 없애면 어떤 부정적 효과가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규제 때문에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고 경제성장이 뒤처진다고 보는 것이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붉은 깃발을 들라는 법이 없었더라면 자동차의 속도에 감이 없었던 시민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허둥대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선두였던 영국이 독일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규제를 탓하고 있다.

왜 일자리 숫자와 경제지표에 급급하나. 지지율이 조금 떨어졌다고 조급해하는가. 경기가 둔화되고 각종 지표가 나빠지자 재벌에 기대던 과거 정부의 악습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몰래 만나 주고받던 지난 정권과 다르다면 공개적 만남이라는 것과 금전이 오고 가지 않았다는 것일 뿐 재벌에 대한 특혜이자 특정 기업 봐주기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투자와 고용을 압박하는 수법은 이전 정부 판박이다. 하라는 재벌개혁은 제쳐 두고 재벌에 구애하는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역시 권력을 잡고 보니 먹고사는 것이 제일이던가. 개혁하라고 쥐여준 권력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경제를 외치는 언론과 재벌에 끌려가고 있다.   

지금의 지지율 50%대가 정상이다. 공약이행과 개혁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집권 초반의 70%대에서 한참 빠졌다고 방향을 틀 일이 아니다. 오히려 초심 그대로 나가야 할 때다. 이제는 지지기반마저 이탈할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역대 최저 지지율은 은산분리 원칙 공약파기와 삼성 껴안기로 개벌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은 아닌지 불만을 느낀 진보 지지층의 거리두기다. 실망한 촛불시민이 하나둘 표심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집권 2년차다. 개혁을 마무리하고 공약을 실천해야 할 때다. 일자리와 혁신성장에 밀려 기업이 하자는 대로 하다보면 규제의 댐은 무너지고 지지층도 균열이 간다. 정부가 약점을 보이면서 기업에 매달리니 벌써 온갖 기업 민원이 쇄도한다. 고용과 투자를 늘리겠으니 대가를 달라고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한다. 경제부총리가 기업총수를 만난 날 미래먹거리인 바이오에 대한 투자와 혁신의 대가로 복제약가를 올려달라는 민원을 들이밀었다. 은산분리 완화는 규제파괴의 서막이다. 개인정보에 관한 규제와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 관련 규제, 규제샌드박스 5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발전산업기본법 등 소위 붉은 깃발 리스트가 대기하고 있다. 찬반의 논란이 적지 않은 분야들인데 너무 성급하다. 혁신 친화적 경제환경을 조성하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일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조급함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 산업이 가져올 영향도 있을 것이고 규제는 여러 이해당사자의 이익이 복잡하게 충돌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규제는 악이며 규제혁신은 성장과 먹거리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해서도 안된다. 규제만 풀면 혁신성장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규제는 국민의 안전·건강·보건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화학물질관리법’이나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규제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그 예다. 기업에는 비용부담의 규제이지만 넘지 못할 규제의 벽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규제완화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세월호 참사, 여전히 높은 산업재해 사망률, 라돈 침대 사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대참사는 거의 대부분 규제를 완화해준 정부나 국회의 책임이거나 있는 규제를 피해가려는 탈법적 기업운영의 탓이다. 참사로 인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은 규제완화로 얻을 이익보다 훨씬 크다. 자본의 이익 앞에서 규제는 무력해지기 마련이지만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규제는 경제논리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규제가 완화되어 기업 활동이 법률과 국민의 감시를 피해간다면 언제 참사의 위험이 현실화될지 모른다. 국민의 생명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국가가 생명보호의무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자본의 이익, 일자리, 성장 논리에 밀려 규제혁신에 드라이브를 걸면 경제지표도 끌어올리지 못한 채 지지층 이탈의 원심력만 커진다. 안전·건강·보건 및 환경에 관한 규제의 장벽이 견고해야 국정운영의 지지기반도 더 단단해질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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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제7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회한과 오욕의 나날’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사법부(司法府)를 사법부(司法部)라고 썼다. 그는 짧은 민주화 뒤 들어선 신군부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취임 2년 만에 사임하면서 사법부를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취급한 것에 대한 수모와 굴욕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사법부는 어떠한가. 그때는 정권의 외풍에 휘둘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침해되었다면 지금은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훼손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 여전히 독립성이 확고하지 못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믿고 싶지 않지만 청와대의 수석비서관과 통화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이 아니라 스스로 사법부 장관으로 처신한 것이다. 엄선된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법원행정처에서 법관은 관료적 위계질서 속에서 상관의 지시를 따르고 충성하는 사법행정 공무원이었다. 위법한 지시를 내린 상사나 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인 이들은 스스로 법관이기를 포기한 직권남용의 공범자들이었다.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보고서 속의 법원행정처는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행정부처와 같았다.

법원 내 특정 연구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대법원장의 사법정책을 비판한 판사의 성향과 동향을 기록한 문건은 지난 정부에서 작성한 문화예술계 인사의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 일부 보수언론은 진보적이거나 반행정처적 법관목록을 보고도 블랙리스트 의혹의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대다수 사법부 구성원들이 상상하기 힘든 문건들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재판이 재판 외의 요소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일”이라고 정의했다. 법관 개인을 감시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유형이나 부류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인권침해이자 불법행위다.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의 방침에 거스르는 법관들에 대한 성향과 행적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분명 직권남용이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셀프조사·개혁 약속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여러 건의 고발로 검찰수사가 불가피한 가운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1995년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을 시작으로 대법원장은 2006년과 2016년 현직 판사 금품수수 의혹에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었다. 거의 10년 주기인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법원공무원과 법관 개인의 비리였지만 지금은 사법부 내의 조직적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그래서 더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파일이 수백개에 달한다. 파일명만으로도 의심이 가는 것들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컴퓨터는 공용물이자 국가소유다. 공적 업무수행에 제공되는 컴퓨터다. 그 컴퓨터에 작성·저장된 파일은 모두 공적 문서다. 그래서 조사에 작성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판사 개인이 작성했으므로 개인정보라는 주장은 공과 사의 구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용자가 사적으로 작성한 파일이 있다면 반납할 때 삭제했어야 하고 혹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외하고 조사하는 것이므로 사생활 침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권한남용이 구체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긴급히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경우 업무용 컴퓨터 조사를 상당한 범위로 한정한다면 적법한 조사다. 강제개봉도 아니고 강제조사도 아니다.

단언컨대 고질의 뿌리는 관료화된 법원행정처와 제왕적 대법원장에게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사법정책을 다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를 폐지하고 고법판사와 지법판사로 법관인사를 이원화하면 인사업무는 최소화된다. 사법정책은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의 일이다. 예산은 현직 법관이 아니라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그러면 법원행정처는 할 일이 대폭 줄게 된다. 인사가 축소되면 대법원장 권한도 줄어든다.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고 대법관회의에서 호선하면 대통령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법원장도 각급 법원의 법관회의에서 호선해서 사법행정을 맡기면 법원장 승진인사에 목맬 이유도 사라진다. 이처럼 특단의 개혁방안이어야 거꾸로 가는 사법을 되돌려 바로 세울 수 있다.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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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언론에 등장하면 곧바로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거나 결정이 난다. 여론이 형성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면 순식간에 입법부도 움직이고 행정부도 굴복한다. 때로는 사법부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실로 제4의 권부다. 


10대 청소년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신문과 방송을 타더니 소년법 폐지 입법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뒤덮었다고 한다. 몇 십만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청소년 폭력사건이 봇물 터지듯 밝혀지고 분노한 여론은 소년법과 형법 개정을 촉구한다. 비록 나이 어린 청소년이라고 하더라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유형의 상한을 올려서 엄하게 처벌하거나 무기징역 또는 사형이 가능하도록 소년법을 개정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낮추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급기야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불안한 시민을 안심시키고 공분을 잠재우기 위해서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도 소년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죄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성화 형사정책이다. 단죄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라는 언론과 여론의 요구에 굴복하여 엄벌주의로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혹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응보감정은 되살아나고 무관용의 형사정책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의 처벌과 예방에 관한 형사정책이 방향을 잃고 일관성 없이 언론과 여론에 끌려다닌다. 가감 없는 선정적 보도가 여론을 형성하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처벌법으로 안전을 약속하는 패턴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형벌을 만병통치약이자 사회갈등의 최우선 수단으로 여기게 되어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형법을 개정하고 형사특별법을 제정하고 양형기준을 상향하는 것이다. 정치권도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국가예산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정치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돈 들지 않는 입법에 매달리는 것이다. 일관된 형사정책에 따른 입법이 아니라 유권자를 의식한, 여론에 부응하는 임시방편적 입법이다. 그러다 보니 처벌 법률과 범죄구성요건 사이에 부조화와 불일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수많은 형사처벌법 입법으로 범죄는 줄어들었는가. 청소년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인가. 법이 만능이고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인가. 그렇다면 벌써 범죄는 예방되고 줄었어야 한다. 자유형의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상향조정되고 양형기준은 날로 강화되었지만 강력범죄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전자발찌도 채웠지만 성범죄자의 재범은 여전하다. 청소년에게는 형사처벌에 의한 범죄억제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면 처벌받는 아이들만 늘어나게 된다.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청소년만 증가한다. 강력한 형벌로 교도소에 가두어두고 교정과 교화에 힘쓰지 않으면 재범률은 감소되지 않는다. 지금도 소년교도소는 포화상태다. 청소년범죄의 재범률은 성인보다도 높다. 형량을 높여 처벌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가두어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당장은 범죄가 잠잠해지고 사회적 공분도 누그러지겠지만 곧 강력범죄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영원히 가두어둘 수 없는 한 사회성을 상실한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 출소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 재범을 저지르게 된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청소년이 지옥 같은 가정과 학교를 등지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가출팸을 찾는 아이들이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가정폭력에 물들어 스스로 폭력 청소년이 되어 버린 아이들도 수없이 많다. 그들과 어울리다 폭력이 일상이 되고 또래와 어울리다가 집단적으로 생계형 절도나 폭력범죄를 저지르고 성매매도 강요당하고 있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교도소로 보내는 형사정책이야말로 후진국형이다. 


청소년 범죄자의 처벌과 격리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 형벌을 가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사정책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청소년 범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과 보호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들이 범죄나 악행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경제정책, 교육정책, 사회정책,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가정, 학교, 교회가 바로 서야 한다. 경쟁으로 내몰리고 어디에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청소년은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흔들리고 무너진 가정,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학교와 교회의 자리에 경쟁심과 이기심이 자리하는 한 청소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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